유진과 데이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0
서수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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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유진은 호주 남자 데이브와 연애 중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진은 졸업 후 도망치듯 호주로 떠났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술집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데이브와 연인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연애 초반부터 각자가 나고 자란 문화의 차이 때문에 크고 작은 다툼을 빚는다. 예를 들어 유진은 정식으로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부모님께 자신을 소개하고 싶다는 데이브가 너무 성급한 것 같은 반면, 데이브는 자신을 좋아한다면서 자신의 가족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유진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5년 넘게 연애를 이어간다. 


서수진 작가의 소설 <유진과 데이브>를 한 줄로 요약하면 '한국 여자와 호주 남자의 국제 연애 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다. 나도 딱 그 정도를 기대하고 읽었는데, 읽어보니 그렇게 단순히 요약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유진과 데이브 사이에는 문화 차이만 있는 게 아니라 인종 차이, 계급 차이, 젠더 차이도 있다. 호주 안에서도 시드니의 문화와 태즈메이니아의 문화가 다른 것처럼 지역 차이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커플이든 처음에는 사랑만으로 시작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사랑만으로 버틸 수 없는 지점이 온다. 반대로 처음에는 사랑만으로 시작한 관계는 아닌데 점점 사랑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유진과 데이브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전자 같은 후자, 후자 같은 전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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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눈물 참은 눈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승우 지음, 서재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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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짧은소설 시리즈를 좋아한다. 이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에는 일반적인 단편보다도 훨씬 짧은 길이의 소설이 주로 실리는데, 그 짧은 길이의 소설에도 작가의 성향이나 특징이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다. 이승우 작가의 <만든 눈물 참은 눈물>도 그렇다. 이승우 작가의 소설에는 비슷한 듯 다르거나 다른 듯 비슷한 것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갈등하는 인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렇다. 


가령 표제작 <만든 눈물 참은 눈물>에서 화자인 '케이'는 어떤 일 때문에 사죄하며 눈물을 참는 영화배우의 모습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참는 것과 안 나오는 눈물을 흘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울지 생각한다. 출간 당시에는 주목을 못 받았지만 어느 명사의 추천을 받으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다면 그 책을 걸작으로 만든 것은 작가인가 명사인가(<걸작의 탄생>), 절판된 소설집의 개정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아 두 편을 제외한다면 그 책은 개정판인가 새 책인가(<훼손>), 개정판을 내면서 문장을 다 뜯어 고치면 같은 글이라고 볼 수 있는가(<최선의 문장>) 등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을 소설의 소재로 삼은 것이 흥미롭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집 이야기>라는 단편이다.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부자가 자신이 살 호화 저택을 몇 년에 걸쳐서 짓는 동안, 목수는 검소한 모양의 자기 집을 몇 달 만에 완성하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도 집을 지어줘 거대한 마을을 이루었다는 이야기이다. 옛날 동화 같지만, 돈이나 집 등을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그걸 자랑하는 걸 성공이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보다가 이런 이야기를 읽으니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부자는 못 되니 목수라도 되어야 할 텐데 그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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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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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넷플릭스 드라마 <아웃랜더>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그동안 역사적 사건으로만 알았던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생생하게 알 수 있어서 좋다. 역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인 2023년에 출간된 황모과의 소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1923년 9월 일본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타임슬립이라는 SF적 장치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보다 자세히 배우고 보다 생생히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


소설은 2023년 일본 수도권 어딘가에서 한국 청년 민호와 일본 청년 다카야가 100년 전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현장 한복판으로 타임슬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함께 움직이고 있지만 입장은 사뭇 다르다. 아시아 홀로코스트 진상 규명 위원회에서 일하는 민호는 관동대지진 당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조선인들을 한 명이라도 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조부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고 우익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다카야는 민호가 찾고 싶어하는 진실과는 또 다른 진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결국 두 사람은 입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따로 움직이기로 한다.


한편 1923년 8월 말 도쿄에서 다리 공사 인부로 일하는 조선인 평세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세에게는 어릴 때부터 상대와 몸이 닿으면 그 사람이 죽는 순간이 보이는 일종의 예지력이 있었다. 이 능력 때문에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그는 도망치듯 일본으로 왔는데, 하필 자신에게 가장 잘해주는 마달출의 몸에 닿았을 때 그가 얼마 후에 비참한 죽음을 맞는 장면을 본 것이다. 평세의 불안한 예감대로 얼마 후 일본의 관동 지역을 뒤엎는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다. 평세는 달출과 함께 도망을 가는데, 위기의 순간마다 낯선 차림을 한 조선인 청년이 나타나 그들을 구한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만 보면 미래에서 온 한국인 청년 민호가 과거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이라는 사건의 피해자인 조선인들을 구하는 내용 같지만, 소설의 결말 부분까지 읽으면 조선인 피해자들을 구한 것은 한국인 후손들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1923년 당시에도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위험에 빠진 조선인들을 도와준 소수의 일본인들이 있었고(이는 픽션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그 후손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쓴 내용이다)오히려 같은 조선인이지만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더욱 악랄하게 조선인을 괴롭히는 조선인도 있었다(이들이 자경단으로 활동하다 나중에 야쿠자로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관동대지진을 재조명하는 콘텐츠가 종종 나오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관동대지진처럼 대중이 가지고 있는 불안이나 불만의 감정을 약자,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연결시켜서 그들을 대상으로 폭력성을 노출하게 함으로써 대중이 가진 불안이나 불만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피하는 상황이 한국,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관동대지진 하면 일단 일본을 규탄하는 목소리부터 나오고 그것이 맞지만, 요즘에는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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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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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우에노 지즈코가 야마나시에 집을 짓고 도쿄를 오가며 살고 있는 생활에 대해 쓴 산문집이다. 호쿠리쿠 출신으로 대학 진학 이후 계속 도쿄에서 살았던 저자는 20년 전 지인의 권유로 후지산이 있는 야마나시현의 땅을 구입했다. 원래는 주말이나 방학 때 잠깐 와서 지낼 목적으로 집을 지었는데, 갑자기 팬데믹이 발생하고 재택근무가 일상화 되면서 도쿄가 아닌 산속 집에서 지내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정년 퇴직을 하면서 도쿄대 연구실에 있던 책들을 산속 집으로 전부 옮긴 이후에는 서고로서도 산속 집의 존재가 귀해졌다.


책에는 도시 출신인 저자가 난생 처음 산골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희로애락이 자세히 나온다. 산에서 살아보니 기대한 대로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자동차와 인터넷만 있으면 생활하는 데 불편함도 거의 없다. 외지에서 온 독신의 노년 여성이라서 소외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저자처럼 외지에서 온 중노년이 많았고, 결혼한 사람도 이혼, 사별 등으로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에게 운전이나 집 관리를 맡기다 남편이 죽거나 이혼하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여자들이 많은데, 계속 독신이었던 저자는 스스로 운전도 하고 집 관리도 할 수 있어서 남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줄 수 있어 좋았다고.


벌레나 산짐승 때문에 공포를 느낀 적도 있지만, 산속 집에서 살면서 얻은 기쁨이나 즐거움에는 비교할 정도도 못 된다. 봄, 여름, 가을에는 산나물, 죽순, 송이, 은어 등 그 계절에 나는 제철 식재료를 직접 수확해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다. 주변 농가에서 파지 제품으로 내놓은 복숭아, 옥수수, 양상추 등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서 식비도 덜 들고 건강도 좋아졌다. 겨울에는 집 근처 스키장에서 아침 운동 대신 스키를 타며 체력을 기르고 무기력을 날린다. 연말 연시에는 저자처럼 혼자인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연말연시 가족'으로 지낸다. 너무나 부러운 노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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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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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나이가 들어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 노인을 버리는 '고려장'이나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 나오는 '오바스테[姨捨]' 같은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버려진 노인은 그 후에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버려진 노인은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짐승의 공격을 받아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알래스카 원주민 출신 작가 벨마 월리스의 소설 <두 늙은 여자>를 읽기 전에는 말이다. 이 소설은 저자가 알래스카 아타바스칸족 출신인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알래스카 인디언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다.


겨울이 오고 혹한이 이어지자 짐승 사냥이 불가능해 먹을 것이 줄어들고 기근이 발생한다. 부족장은 부족회의 끝에 부족에서 가장 늙은 두 여자 '칙디야크'와 '사'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부족장과 부족원들은 물론이고 딸과 손주도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칙디야크와 달리, 사는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라며 오히려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인다. 과연 사는 자신이 선언한 대로 더는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서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오래 걷기, 불 피우기, 사냥하기, 낚시하기 등등)을 척척 해낸다.


사의 나이는 일흔다섯, 칙디야크의 나이는 여든으로, 요즘 노인은 예전 노인과 다르다는 말이 있는 현재 기준으로 봐도 상당한 노인이다. 게다가 부족원들은 물론이고 피가 섞인 가족에게도 배신당해 멘탈도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삶을 이어간 사와 칙디야크가 너무 대단하다. 겨울부터 가을까지 알래스카의 대자연속에서 두 사람이 먹이를 찾고 잘 곳을 마련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마지막에 자신들을 버린 부족원들을 다시 만나 기분 좋은 '복수'를 하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역시 나를 부정한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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