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개, 그리고 죽도록 쓰기
앤 패칫 지음, 정소영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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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앤 패칫이다. 1992년 첫 소설 <거짓말쟁이들의 수호성인>으로 데뷔했고, 2001년 출간한 소설 <벨칸토>가 미국에서만 백만 부 이상 판매되고 전 세계 서른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2012년에는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대단한 이력을 가진 작가인데, 부끄럽게도 나는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앤 패칫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저자가 어떤 이력을 가진 작가인지,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지 몰랐고, 이 책 한 권으로 저자의 팬이 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국내에 출간된 앤 패칫의 책 전부를 주문했거나, 주문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둔 상태다. 에세이가 이렇게 좋은데 소설은 얼마나 좋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앤 패칫을 알았던 사람은 당연하고, 나처럼 앤 패칫에 대해 몰랐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앤 패칫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고, 좀 더 알고 싶어질 것이다. 저자는 현재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작품이 널리 읽히는 작가이지만, 여섯 살 때부터 장래희망이었던 작가가 되기 위해 경력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소설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어서 잡지사로부터 청탁 받은 온갖 글을 썼다. 그는 이 시절을 매문을 해야 했던 불행한 기억이 아닌, 돈을 받으면서 (돈 주고도 못 받을) 글쓰기 훈련을 한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부모의 이혼과 가난으로 순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나 자립과 창작, 연애와 결혼(그리고 이혼) 문제로 분주했던 청년 시절, 우여곡절 끝에 작가로 성공하고 완벽한 반려자까지 얻었으나 가족과 친구, 반려견을 잃는 과정에서 느낀 심적 고통을 글에 담을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이런저런 사람들과 오랜 기간 떨어져 살았다. 언쟁과 실망이 생겼고, 그중 대부분은 사소하고 쉽게 화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타인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갈라섬과 화해를 통해서, 사랑과 사랑에 대한 의심을 통해서, 섣부른 판단과 재회를 통해서인 것이다." (457쪽)


이 책에는 저자의 엄마쪽 할머니와 사별한 이야기도 나오고, 열여섯 해를 함께 산 반려견 로즈를 무지개 다리 너머로 떠나 보낸 이야기도 나온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저자의 초기 경력이었던 논픽션 작가로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린 시절 저자를 매혹했던 이야기, 대학 시절 자신에게 영향을 준 스승들과 식당에서 일하며 소설을 구상한 이야기, 작가를 위한 보조금을 받아서 마침내 첫 장편 소설을 완성하고, 첫 책을 출간하고 북투어를 다니고 독자를 만나고 직접 독립서점을 차린 이야기 등등이 다채롭게 실려 있다. 글쓰기 또는 작가 되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를 위한 실용적인 정보 사이에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 - 가족, 친구, 연애, 결혼, 이혼 등 - 가 적절하게 담겨 있어서, 마치 앤 패칫이라는 미국인 여성의 일생을 담은 미국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 같았다. 문장도 좋아서, 오래 곁에 두고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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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여서 다행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주란 지음, 임수연 그림 / 마음산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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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제거하는 방식의 서사를 좋아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또한 욕심이라는 걸 받아들이고(인생은 원래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서 자신의 세계를 전보다 넓히는 사람의 이야기에 더 끌린다. 이주란의 소설들이 그렇다. 이주란의 소설에는 작거나 크거나 오래되거나 새로운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긁으며 통증을 확인하는 대신 사람을 만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면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회복의 힘을 채운다.


이주란의 짧은 소설 모음집 <좋아 보여서 다행>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헤어진 남자의 개를 돌보러 간 여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부를 만나러 간 남자,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모를 만나러 간 여자, 오랜만에 연락 온 언니의 아이가 하는 공연을 보러 간 여자 등등. 이들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그래서 얼마나 힘든지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눈앞의 음식을 먹고, 나무들을 관찰하고, 절판된 시집을 찾는다. 이따금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을 했던 사람의 기억이나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고도 사과 받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지만 그걸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그저 버티면서 시간의 흐름이 고통까지 씻어가 주는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의 자세가 누군가에게는 수동적이고 회피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말 고통스러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른 생각을 하면서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면 왜 고통스러웠는지조차 잊게 되고, 어쩌면 행복이라는 걸 느낄 수도 있게 되는 것 아닌가. 말로 표현된 감정만이 감정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소설로 쓰인 내용만이 내용의 전부는 아님을, 사람도 인생도 그렇다는 사실을 이주란의 소설은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부족한 게 아니라 그래서 충분하다고 느끼게 하는 점. 이 점이 내가 생각하는 이주란의 소설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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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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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고전 읽기에 관한 책이 많이 보인다. 그 중 몇 권을 읽으면서 사람마다 어떤 책을 고전으로 여기는지, 고전이라 불리는 책 중에서도 어떤 책을 주로 읽는지가 조금씩 다르다는 걸 느꼈다. 박연준 시인이 읽은 고전 서른아홉 권을 소개하는 책 <듣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는 다른 작가들이 쓴 서평집에선 보기 힘든 분야의 책이 상대적으로 많이 보인다. 바로 시집이다. 박용래 <박용래 시선집>, 김소월 <진달래꽃>, 서정주 <화사집>,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앤 섹스턴 <밤엔 더 용감하지> 등 시인이 특별히 애정하는 시와 시집, 시인 이야기는 만날 기회가 드물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서평집 읽기의 장점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첫 번째는 그동안 몰랐던 책을 알게 되는 것, 두 번째는 이미 읽은 책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것이다. 첫 번째에 속하는 책 중에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와 로맹 가리의 <흰 개>가 있고, 둘 다 얼른 읽어보고 싶어서 바로 장바구니에 추가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닌, 다시 말해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지는 않은 책들 중에서는 이상의 <봉별기>와 장자 <장자>를 읽어보고 싶다. 이상을 비롯해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문인들이 쓴 시나 소설을 그동안 많이 안 읽은 것 같다(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봐서 졸업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피한 것 같다). <장자>도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 읽어보는 것으로.


오래 전에 읽은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아주 큰 수확이다. 제목만 보면 요리책 같고 나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간단한 요리가 좋다고, 재료 그대로를 먹는 건 더 좋다고 말"하는 "반(反)요리책"이다. "나는 요리하는 여성이 아니다. 나와 생각이 같은 다른 여성들을 위해 한마디하자면, 나는 여성이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화덕 앞에 머물며 음식을 만들고 가사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 나는 요리보다는 좋은 책 읽기(혹은 쓰기), 좋은 음악 연주, 벽 세우기, 정원 가꾸기, 수영, 스케이트, 산책 등 활동적이고 지성적이거나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책 40~41쪽 인용)"(65쪽) 한줄 한줄이 밥보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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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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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캘리(신연선 작가)님 추천으로 벨마 월리스의 소설 <두 늙은 여자>를 읽고 너무 좋아서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벨마 월리스의 다른 책 <새소녀>를 중고로 구입해 읽었다. 새 책이 아닌 중고책을 구입해 읽은 건, 이 책이 현재 절판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벨마 월리스 책 좋은데 왜 절판일까. 이 책이 나왔을 때 알아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고 미안하고, 유튜브 '핀드티브이(PINNED TV)'를 통해 벨마 월리스의 책을 소개해 주어 이제라도 읽게 해준 캘리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감사해요ㅠㅠ). 


소설은 벨마 월리스의 전작인 <두 늙은 여자>와 마찬가지로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전승되어 온 전설을 바탕으로 한다. 그위친족 소녀 '주툰바'는 어릴 때부터 요리나 바느질보다는 남자 형제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사냥하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새들이 내는 소리를 완벽하게 흉내 내서 '새소녀'라는 별명이 붙은 주툰바는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고 평생 이대로 살고 싶다. 그위친족이지만 주툰바와는 다른 무리에서 자란 소년 '다구'는 어릴 때부터 달리기나 사냥보다는 자연을 관찰하고 몽상하기를 즐겼다. 일 년 내내 따뜻한 '해의 땅'에 관한 전설을 들은 다구는 언젠가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남몰래 품고 있다. 


<두 늙은 여자>가 늙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무리에서 쫓겨난 두 여자가 보란 듯이 생존에 성공하는 해피엔딩 스토리였기 때문에 <새소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주툰바와 다구는 둘 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범(성역할)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눈총을 받고 각자가 원하지 않았던 삶의 방식을 강요 당한다. 결국 주툰바는 무리에서 이탈하는 편을 택하고 다구는 일단 무리의 요구를 따르는 편을 택하는데, 주툰바는 물론이고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삶을 살게 된 것처럼 보였던) 다구조차 잔혹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란 이래도 비극 저래도 비극인 걸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 비극을 만드는 건 무엇일까. 그들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 주툰바와 다구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건 그들의 운명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마주친 인간, 더 정확히는 혐오에 세뇌된 일부 인간이다. 우리 종족은 옳고 다른 종족은 나쁘다는 말. 여자는 이렇게 살고 남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 이런 말을 어릴 때부터 주입 당하고 그 말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이 눈앞의 인간을 괴롭히고 그것을 합리화한다. 머나먼 알래스카의 원주민들이 옛날부터 들어온 전설이라는데 요즘 세상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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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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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님의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영화 <기차의 꿈>을 보고 너무 좋아서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다. 근데 소설과 영화의 내용이 비슷하나 같지 않다. 일단 영화와 소설의 큰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면, 고아 출신의 가난한 백인 남자 로버트 그레이니어가 주로 육체 노동에 종사하며 한 평생을 살다 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미래를 약속하기도 하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서 예쁜 딸을 얻기도 하고, 화재로 가족과 집을 모두 잃는 등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고, 그래서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산 사람이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찬사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원작 소설을 읽었는데, 줄거리는 동일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가령 영화에서 로버트는 중국인 노동자가 백인 노동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때 그들을 말리려다가 저지 당하고 끝내 그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평생 동안 죄책감을 느낀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소설에서 로버트는 중국인 노동자를 죽이려는 백인 노동자 무리에 자발적,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영화에 소년 시절의 로버트가 숲에서 부상을 당해 죽어가는 남자를 만나는 장면이 짧게 나오는데, 소설에는 이 남자의 서사가 제법 길게 나오고 그 내용이 상당히 끔찍하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소설에는 나오는 암소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 작가가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감독(각본도 담당함)은  원작 소설을 그렇게(낭만적이고 감동적으로) 각색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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