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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이기호 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닌데 읽은 책 전부 재미있었다. 이 책이 528쪽이나 되지만 선뜻 구입해 읽어본 것도 바로 그 재미있다는 인상 내지는 기억 때문이다. 읽어보니 과연 재미있다. 인물도 많이 나오고, 배경도 다양하고(광주, 서울, 용인, 파리), 서사도 드라마,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면 좋겠지만, 과연 어떤 개가 '이시봉'을 연기할 수 있을까. CG나 AI로 만들어진 영상은 별로인데...
소설은 광주에 사는 강아지 이시봉이 위험에 빠진 고양이를 구하는 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시작된다. 이시봉의 보호자인 20대 백수 청년 '이시습'은 어느 날 SNS에 올라온 영상을 봤다며 이시봉을 찾아온 사람들의 방문을 받고 고민에 빠진다. 브리딩 업체 '앙시앙 하우스'의 직원인 이들은 이시봉이 그들의 대표인 정채민이 오랫동안 찾아온 프랑스 출신의 품종견 비숑 프리제 중 하나라며, 이시봉을 넘기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한다. 이시습은 친동생처럼 귀여워한 이시봉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건 상상도 안 해본 일이었지만, 치킨집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였고, 돈 때문이 아니라 이시봉을 위해서도 전문 업체의 보살핌을 받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후 이시습은 이시봉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고민하면서 직접 서울에 있는 앙시앙 하우스에 방문해 보기도 하고, 용인에 있는 정채민의 자택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채민이 여러 견종 중에서도 비숑 프리제에 유난히 집착하게 된 사연을 듣기도 하고, 그 사연이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시습은 이시봉 덕분에 자기 자신과 아버지의 삶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는데, 그것을 보게 된 후의 삶은 그 전의 삶과 같아도 같지 않을 것이다. 나로만 살면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위해, 어떤 사람은 소설을 읽고 어떤 사람은 개를 키우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