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30세대가 책 사는 데 쓰는 비용이 한 달에 1만 원도 안 된다는데(9천 원이라던가), 나는 며칠이 멀다 하고 책을 사고 또 샀다(내 텅장 눈 감아). 9월 초에도 몇 권 산 것 같은데, 이 글에는 9월 중순~하순에 산 책들을 소개해본다. 





이번 주에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들을 보다가 여성 작가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와 찬쉐가 눈에 들어와 앞으로 쭉 따라 읽어보기로 했다. 마침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설 <소네치카, 스페이드의 여왕>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4권으로 출간되었기에 구입해봤다.​


영국 작가 중에는 줄리언 반스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해서 읽어보는 편이다. 최근에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을 읽었는데, 마침 이언 매큐언의 SF 소설 <나 같은 기계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기에 구입해봤다.

 




아니 에르노의 책 중에 국내에 출간된 책들은 다 읽었다고 기뻐하기가 무섭게, 아니 에르노의 책이 세 권이나 더 출간되었다. 일단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밖의 삶>과 <바깥 일기>를 구입했다. (남은 한 권은 사람의집에서 출간된 <아니 에르노>다). 책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강화길 작가의 <풀업>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한정현 작가의 <쿄코와 쿄지>도 구입했다. 두 분 다 좋아하는 작가님이라서 매우 기대된다. 어제 윤고은 작가님 신간도 예약 구매 완료함. 팟캐스트 <책읽아웃> 최은미 작가님 편 듣고 <마주>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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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된 결과인지, 어젯밤에는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그 덕분인지 오늘 아침도 평소 기상 시간보다 두 시간 빠른 5시에 기상. 그래도 뭔가 일찍 침대에서 빠져나오기가 아쉬워서, 어젯밤에 읽다 만 책을 읽었다. 


그 책은 바로바로 독일 작가 카르스텐 두세의 <명상 살인>.



















예전에는 추리소설, 범죄소설만 읽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 장르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에는 일 년에 다섯 권 읽을까 말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건, 어디선가 재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고, 세 권이나 나올 정도면 작품성은 몰라도 대중성은 보장된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지... 작가 이력이 특이한데, 작가 카르스텐 두세는 독일 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라고 한다. 변호사가 범죄 소설을 쓰는 일은 종종 있지... 근데 이 작가, 변호사로만 일한 게 아니라 방송 작가로도 일했다. 주 장르는 시사, 범죄 이런 거 아니고 무려 코미디. 심지어 독일 방송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그림메 상' 후보에도 올랐고, 독일 텔레비전 상과 코미디 상은 여러 번 수상했다고...(독일인의 코미디, 궁금하네...)


<명상 살인>은 카르스텐 두세의 첫 소설로, 출간되자마자 독일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지금도 상위권에 있다고 한다. 높은 인기에 힘입어 2권, 3권도 나왔고, 한국에도 출간된 상태. 이야기는 살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평범한 남자가, 아내의 권유로 명상을 배우게 되면서 살인에 눈을 뜨는 그런 내용이다. 아직 도입부만 읽어서(주인공이 명상 스승과 만난 상태. 완전 초반이다) 앞으로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지 무척 궁금하다. 무엇보다 소설 중간중간에 나오는 명상 관련 잠언들이 참 좋다. 가령,


당신이 문 앞에 서 있다면, 그것은 그저 서 있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부인과 다툰다면, 오로지 다툼에 몰두한다. 그것이 명상이다.

만약 당신이 문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부인과의 언쟁을 떠올리는 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명상이 아니다.

그저 멍청한 짓에 불과하다. - 요쉬카 브라이트너, <추월 차선에서 감속하기 - 명상의 매력>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는 사람은 자유롭지 않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강박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일을 그냥 하지 않는 사람만이 자유로운 자다. - 같은 책



이런 문장들이 참 좋았다. 요새 읽고 있는 또 다른 책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 생각나기도 했고. 이 책은 너무 좋아서 밑줄을 치다 치다 치는 게 지겨워졌을 정도. 지금 책 뒷면을 봤는데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가 삶을 더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삶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장소에서 사색하는 것, 새들의 세계를 알아차리는 것, 아무것도 할 필요없이 그저 앉아 있는 것. 이러한 크고 작은 퇴거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알아차린다. 인식이 확장되면 더 많은 것들을 온전히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트라이앵글 소리 정도로 들리던 세상이 실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합주였음을 깨닫게 된다. - 김보라, 영화감독



위 글을 쓴 김보라 감독님은 명상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영화기자 김혜리 님이 진행하는 팟빵 매거진 <즐거운 생활>에 출연해 명상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신 적도 있다(오랜만에 그 방송 다시 찾아 들어봐야겠다.) 감독님에 따르면, 명상의 핵심이자 정수는 '알아차림'이다.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이게 말로는 쉬워보이는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명상 살인>에서 인용한 문장처럼, 누구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기다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아내와의 말다툼을 생각하고, 아내와 말다툼을 하는 동안에도 그 순간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할 일을 떠올리는 식으로, 우리는 순간을 살지 못하고 그 전이나 그 후를 산다.


그래서 최근에 나는 가능한 한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하는 일을 줄이고, 해야 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가능한 한 하지 않는 쪽으로 하고 있다. 이게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대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삶의 자세와는 정반대라서(해야 하는 일은 꼭 해라, 하고 싶은 일도 해라, 하기 싫어도 해라 해라 해라!!!) 죄악감이 들 때도 있는데, 대체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이득을 보는 게 누구인지를 생각하라는 내용도 이 책에 나온다. 잘생긴 나무는 사람들의 가구로 쓰일 뿐이고, 못생긴 나무는 산을 지키고, 뭐 이런 내용도 나오고... 아아 집중력 떨어진다. 커피 마시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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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때문인지 불면증 때문인지 아니면 둘이 겹친 것인지,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진 후로 잠을 다시 이루지 못했다. 덕분에 요즘 유행하는(벌써 한물 간 유행이 되었으려나) 미라클 모닝을 어쩌다 보니 하게 되었다. 수면 시간 3시간인 상태로는 하루 일과를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 것 같아서, 책을 읽으며 다시 잠을 청했는데 오히려 점점 더 정신이 말짱해지고 눈이 떠져서 책 두 권을 읽어치운 거 실화냐... (설마 불면증이 재발하는 건 아니겠지)

















새벽에 읽은 책 두 권 중 첫 번째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체스 이야기, 낯선 이야기의 편지>이다. 오래 전에 최민석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듣고 궁금해서 구입했으나 왠지 손이 안 가서 안 읽었는데 책장에서 눈에 띄었지 뭐야...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은 건 두 번째인데, 전에 읽은 책이 그닥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이 책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너무 재밌었다. 


특히 <체스 이야기>가 그랬다. 초반에 체스 챔피언 나오는 부분은 <퀸스 갬빗>처럼 흥미진진한데, 중반 이후로 소설의 분위기가 확 바뀌더니 결말은 이게 뭐야? 싶었다. 근데 평론가 님의 해설을 읽고나서 소설을 다시 읽으니... 와 어떻게 이런 내용을 이런 형식으로 구현했나 싶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두 번째로 읽은 책은 사진작가 케이채 님의 여행 산문집 <케이채의 모험>이다. 이 책은 예전에 케이채 님이 트위터에서 재고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셔서 부랴부랴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제목 그대로 저자의 모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여행이 아니라 모험이라고 할 만한 게, 저자가 가본 나라(지역)들이 주로 아마존(브라질), 파키스탄, 가나, 수단, 남수단, 남극 등등 사람들이 웬만해선 잘 가지 않는 곳들이다. 


대왕 모기가 가득한 숙소에서 이불을 둘둘 말고 잔 이야기, 입국할 때 실수로 도장을 안 받아서 고생한 이야기 등등도 있지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어떤 우연, 어떤 인연을 만나 최고의 한 장을 찍게 되었는지로 맺어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 종국엔 감동적이었다. 좋은 사진은 "찍는" 게 아니라 "찾는" 거라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케이채 님은 현재 그린란드를 여행 중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부디 몸 건강히 잘 다녀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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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알라딘 서재의 달인 / 북플 마니아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로써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연속" 알라딘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었네요! (알라딘 서재 고인물?? ㅎㅎ)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면, 예전에는 알라딘 달력도 주고 다이어리도 주고 머그컵도 줬는데 
요새는 선물을 많이 안 줘서 아쉬워요 ㅠㅠ 

그래도 한 해 동안 제 알라딘 서재를 찾아주시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정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리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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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2-17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10년 연속이라니 굉장하십니다! 10개 모으신 분들에겐 뭐 특별한 거 안 주나요? 암튼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12-17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키치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바람돌이 2021-12-17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이 말이 쉽지 이렇게 꾸준히 오랫동안 뭔가를 열심히 하는건 진짜 안 쉬운데.....
대단한 키치님 축하드려요. ^^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 20부작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기에 큰맘 먹고 구입한 책인데 드라마 방영 소식은 들리지 않고 책만 남았다. 처음엔 핍이 주인공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핍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서 이게 뭔가 싶었다. 나중에 그들 모두가 핍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나서야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과 작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이해되었다.


대학 졸업 후 간신히 취업한 직장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핍은 오늘도 상사의 눈을 피해 엄마와 통화하느라 정신없다. 핍은 유일한 가족인 엄마가 자신을 키워준 건 감사하게 여기지만, 엄마가 예나 지금이나 경제 관념이 없고 정신이 불안정한 데다가 자신에게만 의지하는 게 부담스럽다. 핍은 자기 또래 여성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이 남자 저 남자와 연애도 해보고 싶고 젊음을 맘껏 누리고 싶지만, 현실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데려갈 집조차 없다. 


핍은 현재 여러 사람들과 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일종의 셰어 하우스다), 어느 날 동거인 중 한 사람인 아나그레트가 핍을 불러세운다. 아나그레트는 유명한 인터넷 무법자인 안드레아스 볼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볼프의 '선라이트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핍은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는 게 탐탁지 않았지만, 현재 직장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는 말에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때까지만 해도 소설의 중심 인물이 핍인 줄 알았는데 점점 안드레아스 볼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안드레아스 볼프는 동독 정부의 핵심 인사인 아버지와 교수인 어머니 슬하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체제에 대한 불만 때문에 번듯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안드레아스는 청소년 상담사로 일하다 한 여자아이를 알게 되고, 그 여자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려다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후 안드레아스는 자신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더 큰 범죄를 기획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지의 정체를 폭로하는 일을 하게 된다. 안드레아스는 위키리크스처럼 각국 정부 또는 기업의 불법 행위를 폭로하는 일을 해 주목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인터넷 세계의 무법자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소설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핍과 안드레아스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현대 사회의 어두운 실체를 보여준다. 


........


이 소설에는 인터넷과 페미니즘에 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문장이 곧 저자의 입장 또는 견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하다. 


만약에 마르틴이 포르노를 안 본다면 아마 포르노를 안 보는 유일한 독일인일걸. 인터넷 포르노는 독일 남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독일 남자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주변을 통제하려 들고 자신이 가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어. 마르틴은 내가 인터넷으로 여자 친구들을 잔뜩 만나니까 자신은 인터넷 포르노를 보는 것일 뿐이라고 하더라고. (36쪽) 


그가 폭로하는 정보 대부분이 여성 탄압과 관련돼 있음을 알고 핍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 그는 인터뷰나 보도 자료에서 늘 공격적 페미니즘 성향을 드러냈다. 아나그레트가 여자들끼리의 모임을 선호하고 지금도 여전히 볼프를 존경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92쪽) 


"그래봤자 다 허튼소리일 분이야. 나는 이렇게 부패한 세상에 순수한 빛을 비추고 다른 남자들의 성차별주의를 비난하는 사람이다, 이거잖아. 볼프는 여자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여자들을 이해하는 유일한 남자로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소름 끼치는 부류야." (338쪽) 


톰은 묘한 혼종 페미니스트였다. 행동만 보면 나무랄 데 없는 페미니스트인데 개념적으로는 페미니즘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예전에 톰은 레일라에게 "나는 페미니즘이 남녀 평등주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페미니즘 이론에 완전히 공감할 수가 없어. 여자들이 남자들과 동등하면 안 되는 건가. 왜 꼭 여자들은 남자들과 다르고 남자들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339쪽) 


안드레아스의 관점에서는 네트워크에 사회주의를 적용한 것이 바로 인터넷이었다. (656쪽) 


발가벗은 채 변기에 앉아 있는 어느 집 아내의 업로드된 이미지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간의 구분이 사라졌음을 알렸다. (...) 기계로 인해 인간의 뇌는 피드백 회로로 축소되고, 각자의 개성은 대중적 일반성으로 매몰될 것이다. 인간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6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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