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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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PKD(필립 K. )가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그리고 정확하게 29년 뒤에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연출과 키애누 리브스로다쥬우디 해럴슨 그리고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영화는 특이하게도 실사 영화를 애니메이트화한 그런 스타일의 영화였다.

 

소설과 영화를 투트랙으로 접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진기한 경험이었다우선 영화를 조금 보고 나서 소설의 진도를 뽑았다그랬더니만 조금은 낯선 소설의 줄거리들이 쏙쏙 뇌리에 와서 박히는 게 아닌가 말이다물론 영화가 소설만한 디테일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꼭 말해 주고 싶다.

 

프레드라는 암호명의 언더커버 폴리스는 밥 아크터라는 이름으로 물질 D를 취급하는 약쟁이들 사이에서 암약하면서 일망타진을 도모한다프레드는 스크램블 수트라는 기묘한 복장으로 자신의 상사에게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지 않는 특이한 설정이다그의 상사 행크 역시 그놈의 스크램블 수트를 입고 있어서 서로 누가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다경찰 조직에서는 짐 배리스어니 럭맨 그리고 마약 딜러 도나 호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라는 장비로 합법과 위법을 오가며 약쟁이 일당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맨 처음에 등장해서 물질 D(느린 죽음:slow death)에 중독된 찰스 프렉이 온몸에서 나오는 진딧물 환각에 시달리는 장면도 꽤나 충격적이었다사실 영화로 보면 더 자극적이다어쨌든 프레드는 밥 아크터로 신분을 위장해서 약쟁이들 사이에서 암약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나는 누구이고도대체 여기서 나는 무얼 하는 거지프레드는 멀쩡한 생활인으로 두 명의 딸들과 부인을 가진 정상적인 직장인이었는데 순전히 직업 때문에 약쟁이 행세를 하다가 진짜 약쟁이가 될 판이다약쟁이 친구들이 주는 약을 거부하면 의심을 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이 건네주는 느린 죽음을 덥썩덥썩 받아먹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상당 부분이 PKD의 실제 체험이라는 사실이다. 1970년대 초반네 번째 아내와 이혼한 작가는 실제로 거리의 정키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어쩐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짐 배리스찰스 프렉어니 럭맨 그리고 도나 호슨 같은 캐릭터들이 생생하고 리얼하다 싶었는데 아마 그 시절의 동거인들을 스케치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잡입 수사관인 프레드는 약쟁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물질 D에 중독되고 만다이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당연히 문제가 된다소설/영화에서 프레드는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지만 지속적인 약물 중독으로 심신이 파괴된 그의 판단은 흐릿할 수밖에 없다결국 자신의 상관인 행크로부터 자신이 원하지 않을 그런 결과를 통보받는 프레드그 뒤에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 너무 디테일하게 풀어 놓는다면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이미 스포일은 충분히 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어야겠다.

 

PKD의 또 다른 걸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영화 버전인 <블레이드 러너>에서처럼 작가가 준비한 반전은 기대 이상이었다아 내가 왜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을까엉뚱한 코끼리 다리를 더듬고 있지 않았던가. 1970년대에 이미 이런 설정을 구상했다는 점이 놀랍다과연 내가 사는 이 세상의 실질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아니 그 진실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했던가.

 

소설과 영화를 교차하면서 읽고 보는 재미는 대단했다영화는 소설의 대강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소설이 영화보다 훨씬 더 디테일에서 풍부했고프레드/밥 아크터의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가 치밀했다물론 영화에서 보여준 형상화는 소설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PKD의 다른 소설들을 다시 읽어야 싶다오늘 눈이 엄청나게 내렸지만 대부분 녹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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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7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20-02-17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dvd를 가지고 있는데 보지는 않았어요. PKD원작인지도 몰랐네요@_@;;; 레삭매냐님 덕분에 알게 됩니다. 소설도 영화도 꼭 봐야겠어요. 불끈!

레삭매냐 2020-02-17 09:0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실사로 찍은 다음에 애니메이션
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만족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소설을 읽었더니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시간 되시면 한 번 보시길...
 

 


지금 막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카데미 4개 본상(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각색상) 중에 각본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침 출근길에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나온 씨네21 편집장인가 하는 양반의 예상이 적중했다.

 

사실 아카데미상은 국제영화상이 아닌 미국의 로컬상이다. 게다가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상이라는 점을 편집장은 강조를 하더라.

 

그런 점에서 본상에 해당하는 각본상을 점쳤지 아마.

작품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는 샘 멘데스의 <1917>을 꼽았는데, 전쟁서사와 휴머니즘 그리고 볼거리마저 풍부한 해당 작품이 작품상을 받으리라는 보수적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아카데미나 그래미가 보수적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지 않은가.

아카데미 꼰대들이 외국어로 만들어진 외국 영화에 본상을 주지 않을 거라는 점에 수긍이 갔다. 8-9,000명 정도 되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고 하는데, 원체 보수적인 아카데미다 보니 자국산 영화에 표를 주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편집장은 라이벌 쿠엔틴 타란티노가 두 번이나 이미 각본상을 받은 경력이 있으니 이번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상을 받지 않을까라는 그야말로 점쟁이 뺨치는 예지를 시전해 주시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

 

<기생충>의 빛나는 칸느 영화제 대상이라는 후광으로 국내에서도 이미 천만 관객이라는 흥행과 작품성마저 일군 보기 드문 영화라는 점을 편집장을 높게 평가했다. 참고로 나는 아직 <기생충>을 보지 않아서 그저 후문으로만 영화에 대해 알고 있다. 이 참에 영화를 봐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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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Oscar goes to...

you know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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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2-10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자리, 어느 인터뷰에서든지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잘한다는 의미의 자유자재가 아니라, 정말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봉감독을 보면서 저런 자신감이 있어야 세계에 우뚝 설수 있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예요, 봉감독.
저도 아직 영화 안 본 1인이라서... 봐야겠어요, 이젠^^

레삭매냐 2020-02-10 13:10   좋아요 1 | URL
지금 보니 감독상도 받았다고 하네요.
작품상까지는 아무래도 무리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고수하면 결국
이런 성과를 얻게 되는가 봅니다.

페넬로페 2020-02-10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품상까지 받았어요, 와우~~

레삭매냐 2020-02-10 15:01   좋아요 2 | URL
대박이네요.

각본상과 감독상 정도는 예상했는데.

카스피 2020-02-10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기생충 4관왕 했어요.만세 ^3^

레삭매냐 2020-02-10 15:01   좋아요 1 | URL
본상 3개를 쓸었으니 <기생충>
의 해라고 해도 될 듯 하네요.

캐모마일 2020-02-10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기생충은 진짜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네요.

레삭매냐 2020-02-11 09:10   좋아요 0 | URL
아직도 안 보고 버팅기고 있는
저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ㅋㅋ
 



골수 레드삭스 팬으로 어제 무키 베츠가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뭐 예상하고 있던 바라 크게 놀라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환영하는 바이다. 그런데 레드삭스가 프랜차이즈 스타를 떠나 보낸 게 이번이 처음이던가? 아니다.


시간을 16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2004년 7월 31일,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충격적인 뉴스가 빈타운을 뒤흔들었다.

레드삭스의 주전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컵스로 트레이드되었던 것이다.

그가 누구였던가. 보스턴의 암울했던 시절을 함께 한 그야말로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던가. 신인왕 그리고 우타자로 2연속 타격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노마를 트레이드하다니!


새로 부임한 냉철한 젊은 단장 테오 엡스타인은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정책을 밀어 붙였다. 그것은 바로 86년 묵은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 것이었다.

그 저주를 깰 수만 있다면 프랜차이즈 스타의 트레이드는 그에게 금기가 아니었다.


노마가 보스턴에서 지낸 9년과 무키 베츠의 6년은 비교 불가다.

사실 노마는 숙명의 라이벌 양키즈의 데릭 지터에 비해 전혀 딸리는 실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양키즈는 데릭 지터에게 10년 2억 달러에 달하는 화려한 금액을 선사했고, 보스턴은 냉정하게 노마에게 5년 6천만 달러라는 초라한 연장 계약을 스프링캠프에서 제시했다. 다시 한 번 야구가 냉정한 비즈니스라는 점을 강조해야할 것 같다.



잦은 부상으로 많은 필드 레인지를 커버해야 하는 주전 유격수에게 수비 부담은 크게 다가왔다. 더불어 강점을 가진 타격에서도 빛을 발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결국 노마는 레드삭스와 비슷한 처지의 컵스로 트레이드된 것이다.

그 다음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2004년 가을, 노마 대신 올란도 카브레라를 주전 유격수로 삼은 레드삭스는 양키즈를 상대로 모든 프로리그에서 전무후무한 리버스 스윕을 완성하고, 월드시리즈에서 1946년과 1967년 두 번이나 물먹은 카디널스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고 86년 묵은 저주를 뽀갰다.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모두가 노마를 잊어 버렸다.


다시 2020년으로 돌아와 보자. 보스턴 수뇌부는 이미 올해가 끝나면 프리 에이전트가 되는 무키 베츠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지난 스토브 리그에서 선수들의 몸값 폭등을 목격한 베츠는 연장계약 대신 프리 에이전트 시장에 나갈 것을 공언했다. 전언에 따르면 연장계약에서 보스턴은 10년 3억 달러를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츠는 메이저리그를 상징하는 마이크 트라웃 수준의 연장 계약을 원했던 모양이다. 12년에 4억 2천만 달러. 바이 바이 무키.


한 선수에게 그런 돈을 주는 건 정말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팀의 총 연봉을 2억 달러라고 간주했을 때, 선수 한 명이 팀 연봉의 20%를 가져 가는게 정상인가? 말이 되지 않는다. 레드삭스가 올릴 수 있는 최대 승수를 100승으로 잡았을 때, 그러면 베츠에게 기대하는 WAR가 20.0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팀에 마음에 떠난 선수는 그나마 값어치가 있을 때 트레이듷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아도 망한 계약인 데이빗 프라이스의 계약을 털어 내고 사치세 기준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보스턴 경영진이 짝수해와 홀수해를 오락가락하는 선수에게 그런 계약을 내줄 리가 없었다. 결국 고육책으로 베츠와 프라이스를 묶어 다저스와 극딜에 나선다. 더 이상 팀에 머무를 생각이 없는 선수와 망한 계약을 상징하는 선수 대신 베츠의 자리를 대신할 (하지만 허리 부상으로 건강에 물음표가 달린) 알렉스 버두고와 미네소타와의 삼각 딜로 유망주 한 명을 얻었다.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데이브 돔브로우스키가 보여준 팜을 털어 먹고 돈을 잔뜩 들여 우승한 2018년 우승 모델(게다가 사인 스틸링까지!)보다는 괜찮은 준척 선수들과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응집력으로 우승한 2013년의 우승 모델이 2020년 레드삭스가 추구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보스턴은 이번 트레이드에서 다저스의 개빈 럭스나 더스틴 메이 둘 중의 하나는 꼭 데려왔어야 하는데 그 점이 좀 아쉽다. 아마 베츠 트레이드만으로는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는데, 프라이스를 덤으로 끼워 넣는 바람에 아쉬운 딜이 된 것 같다. 버두고가 부디 건강해서 베츠의 몫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No one is bigger than the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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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MLB를 뜨겁게 달구었던 배추 트레이드 건은 루키 단장의 탬파베이 스타일의 트레이드 결과를 손에 쥐고 현타한 보스턴 수뇌부의 결정으로 막판에 엎어질 위기에 처했었다. 오죽했으면 보스턴 팬들이 팀의 이름은 보스턴 레이 삭스라며 놀려댔을까.

 

그러니까 팀의 가장 강력한 타자인 배추와 썩어도 준치라는 1억 달러 연봉이 남은 사나이 프라이스에 연봉보조 5천만달러까지 해서 손에 쥔게 메이크업’(선수의 생활방식 혹은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알렉스 버두고와 아직 실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신인 투수 그라테롤이라니! 믿어지는가.

 

그러니 당연히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다저스와 보스턴의 딜을 주축으로 미네스타에 에인절스까지 낀 빅 딜은 난항에 부딪혔다. 딜이 무한정 길어지자 성질이 솟구친 에인절수 구단주 모레노는 결구 나가리를 선언했고 에인절스로 가게 되었던 우완투수 후두러 패기작 피더슨(우투수 상대 홈런 36, 좌투수 상대 홈런 0)과 로스 스트리플링은 그대로 다저스에 주저 앉게 되었다. 프리 에이전트가 1년 남은 피더슨은 팀을 상대로 한 연봉조정 분쟁에서 패하면서 사단을 냈지만... 뭐 그렇게 가는 거지.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배추가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기 전, 연장 계약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끝내 배추는 프리 에이전트 시장에서 자신의 가격을 알아볼 심산인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원하는 1042천만 달러는 말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설마 이미 3번의 MVP에 빛나는 트라웃과 비교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배추의 실력은 이제 정점에 달하고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는데 그런 선수에게 장기계약은 절대 안된다. 길어야 1-2년이 배추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일 것이다.

 

어쨌든 딜은 성사되었고, 부디 보스턴이 받은 버두고 외에 지터 다운스와 코너 웡이 팜에서 무럭무럭 자라 피디와 캡틴 베리텍의 왕년의 모습을 재현해 주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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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2-07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직장동료들과 점심먹으면서 이 트레이드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레삭매냐님의 깔끔한 요약정리 감사합니다^^ 사인훔치기의 가장 큰 피해자 다저스-_-;;;;

레삭매냐 2020-02-07 22:32   좋아요 0 | URL
보스톤 팬으로
이번에는 다저스에게 당한 딜로 보이네요 ㅠㅠ
 
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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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의 <술라>를 읽고 나서 <재즈>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마 작년엔가 읽다가 도중에 포기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꼭 읽고 싶어서. 어느 순간, 토니 모리슨의 스타일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재즈>를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써둔 문장이다. 달궁 독서모임에서 <술라>를 다시 만났었는데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 <재즈><빌러비드>로 독서모임을 했다면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까. 전자는 너무 비극적인 서사 때문에 그리고 후자는 삼 대를 넘나드는 복잡한 구성 때문에 쉽지 않았으리라.

 

계속 미루고 있던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빌러비드>를 다 읽고 나서, 완독하지 못하고 있던 <재즈>를 마저 읽었다. 그전에 읽은 기억들을 되살리기 위해 영문 서머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5장 분량의 서머리를 읽다 보니 주인공 조 트레이스와 바이올렛/바이올런트 그리고 도카스 맨프레드 등의 주인공들이 하나둘씩 망각 속에서 소환되었다.

 

신나는 파티장에서 늙은 연인의 총에 맞아 죽은 18세 소녀 도카스 맨프레드의 장례식에 등장한 미용사 바이올렛 트레이스가 벌인 난투극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어 버렸다. 소설의 초반을 장식하는 충격적인 사건은 하나의 미스터리로 작용한다. 어떻게 50살 먹은 조가 도카스와 희대의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조는 왜 처벌받지 않았지? 이런 사건들이 줄지어 벌어지는 데도 조와 바이올렛은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 그런 점에서 보면 남녀간의 결혼은 우리의 상상 저 너머에 고고하게 버틴 그 무엇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192611일이다. 정확하게 역사에 재즈 에이지(jazz age)’란 이름으로 기록된 광란의 20년대를 관통하는 시점이다. 6년 전에 통과된 금주법에도 불구하고 흥청망청하는 경제 활황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의 심장을 강타하는 흥겨운 재즈 리듬에 맞춰 소설은 전개된다. 그런데 조와 도카스의 불륜은 고작 3개월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남녀 관계에 있어 핑퐁게임 같은 비결을 터득한 도카스는 늙은 조와의 관계를 손절하고, 젊고 새로운 애인 액튼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비극의 원인이었을까.

 

토니 모리슨은 현재에서 출발해서 노예제도가 성행하던 19세기 중반까지 바이올렛과 조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간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를 예언하는가 보다. 그런 점에서 토니 모리슨 작가의 소설 속에서 과거라는 시점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어떻게 해서 오늘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게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작가는 과거를 먼저 구성하고 거기에서부터 현재를 이끌어 내는 게 아닐까 싶다.

 

바이올렛의 할머니 트루벨은 부잣집 규수 베라 루이스 아씨 밑에서 일하는 노예다. 베라 루이스는 흑인 노예와 불장난 끝에 집안에 커다란 수치를 안겨 준다. 수치의 결과가 바로 골든 그레이였다. 자신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끝장내기 위해 길을 나선 골든 그레이는 길에서 만난 야생의 흑인 처녀/임신부의 출산을 돕는다. 그레이가 우여곡절 끝에 만난 헨리 레스토리는 헌터스 헌터라 불리는 유능한 사냥꾼이다. 와일드가 낳은 아이가 바로 도카스에게 총탄을 날린 조 트레이스였다. 뜨내기 생활을 하던 조가 버지니아의 팔레스타인 목화밭에서 만난 배필이 바로 트루벨의 손녀 바이올렛이다.

 

장례식 사건 이후 이웃에게 바이올런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바이올렛 삼대에 걸친 서사는 흥미진진 그 자체다. 절묘한 전개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에 어울리는 관계의 연속성에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연적 도라스의 정체를 알게 된 바이올런트는 이제는 죽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도카스 맨프레드의 실체를 찾아 나선다. 이스트 세인트루이스에서 부모와 함께 살던 도카스는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친척 앨리스가 사는 할렘으로 삶의 공간을 옮긴다. 도시에 살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는 조나 바이올런트와는 달리, 화려한 도시의 삶에 완벽하게 매료된 도카스. 그런 도카스에게 아버지 뻘인 조와의 관계는 그저 불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결말 부분에서 도카스의 친구 펠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와 바이올렛에게 안식의 가능성을 부여했다.

 

나는 여전히 재즈에 대해 잘 모른다. 물론 좋아하는 몇 개의 재즈 넘버들이 있긴 하지만, 무질서해 보이는 애드립 연주의 참맛을 모른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토니 모리슨의 인도를 따라가다 보면 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제패하고 흥청거리는 미국 젊은이들이 몸을 맡긴 분위기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기성세대들은 그런 난잡해 보이는 음악이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다. 재즈 에이지 세대가 부모가 되었을 때, 등장한 로큰롤에 대해서도 그들은 마찬가지로 적대적이었으니까 말이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음악들이 이제는 마이너 장르가 되어 소수의 지지자들이나 즐기는 음악이 되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재즈>를 읽으면서 지난 가을에 멈춘 지점이 바로 조의 어머니 와일드와 골든 그레이가 만나는 장면이었다. 바이올런트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설정은 흥미로웠지만, 와일드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아무래도 소화하기에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 지점을 꾸역꾸역 읽다가 잠이 들어 버렸고 결국 몇 달 동안 포기하고 있다가 서머리의 도움으로 원점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실을 기가 막히게 꿰뚫고 있는 화자가 누구일까러눈 점에 대해 작가는 답하지 않는다. 역시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참으로 사랑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와 도카스의 관계가 그랬고, 죽은 소녀를 이해하기 위해 앨리스를 찾아 어린 소녀 생전의 삶을 재구성하고 그녀를 이해해 보려고 수고하는 바이올런트의 모습이 그러했다. 그렇다고 해서 명백한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인 조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말이다. 언제 삶이 그리고 사랑이 만만했던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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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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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지만 작고한 대가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빌러비드>의 서사는 정말 암울했다. 켄터키 스위트홈 농장 출신 도망 노예 세서가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더더욱. 단순하게 서사의 고갱이만 놓고 본다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토니 모리슨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이야기를 다 읽어 보면 마지막에 가서는 수긍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1856, 그러니까 미합중국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남북전쟁이 시작되기 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실제로 있었던 마거릿 가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바로 <빌러비드>. 개인적으로 왜 흑인 노예를 소재로 한 문학은 흑인들의 전유물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백인들이 그 서사를 맡는다면 니들이 뭘 아냐는 흑인들의 비아냥거림이 뒤따르지 않을까라는 노파심 때문이 아닐까.

 

토니 모리슨이 야만과 폭력이 지배하던 19세기 중반의 미국이란 낯선 공간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당시 미국 남부에는 노예제도가 성행하고 있었다. 1793년 엘리 휘트니라는 청년이 발명한 목화 솜에서 씨를 제거하는 조면기의 도입으로 남부 플랜테이션은 활황을 맞이했고, 노예제도는 백인들에게 필요악이 되어 버렸다. 흑인들은 동물보다 못한 처우를 받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매주일 교회에 나가는 백인 지주들은 흑인 노예들의 노동을 착취했고, 가혹한 매질을 아까지 않았으며 도망친 노예들을 나무에 매다는 만행을 저질렀다. 달궁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strange fruits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그런 상황에서 노예주와 자유주의 대립은 결국 무력 충돌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내전 혹은 남북전쟁(1861~65)으로 알려진 전쟁 이후가 아마 소설의 배경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베이비 석스와 세서 그리고 덴버가 사는 124번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씨줄과 날줄을 쉴 새 없이 교차시킨다. 덴버의 아버지 핼리는 켄터키 메이플우드 플랜테이션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어머니 베이비 석스를 몸값을 치르고 해방시킨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노예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나마 주인인 가너 씨의 호의에 의해 그나마 베이비 석스의 해방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

 

다른 농장에 비해 그나마 인간적이었던 메이플우드 농장에서의 삶은 학교 선생과 그의 조카들이 등장하면서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농장에 있던 네 명의 남자 중에서 핼리를 선택했던 세서는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도주를 계획한다. 이 때 등장하는 게 바로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무시무시한 노예 사냥꾼과 보안관이 도망친 노예들을 연방법인 <도망노예법>을 적용해서 다시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에서 노예들에게 안전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만삭의 세서는 발이 망가진 채, 백인 에이미 덴버의 도움으로 강(코스 히어로의 따르면, 물은 탈출을 의미한다고 한다)을 건너 마침내 미리 와 있던 자녀들과 함께 베이비 석스의 품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해방된 노예 베이비 석스는 신발 고치는 기술을 가지고 들판에서 회중에게 설교하는 그야말로 성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아직 막내 아들 핼리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성대한 음식을 준비해서 동네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서 떠들썩한 잔치를 준비한다. 물론 그 잔치에 끝에 도사린 비극의 전조는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세서가 저지른 비극 뒤에 메이플우드 출신 폴 디 가너가 124번지에 도착한다. 이미 성녀 베이비 석스는 세상을 떠났고, 지난 18년 간 떠돌이 생활을 하던 폴 디는 세상의 온갖 비극을 경험한 사나이다. 그는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로이 배티의 최후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124번지는 세서의 아기 유령이 출몰하는 귀신 들린 집으로 모든 이들을 환영하던 곳에서 배척을 받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폴 디는 한판 푸닥거리로 아기 유령을 쫓아내는데 성공한다. 그 뒤에 빌러비드라는 보다 강력한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면서 서사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세서의 유일한 자녀로 124번지에 남은 덴버는 빌러비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동시에 토니 모리슨 작가가 준비한 서사의 소용돌이는 정말 매섭고 힘차게 돌아간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서에게 현재를 규정하는 과거는 추악하고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다. 자신은 모든 수모를 견디고 살아남는데 성공했지만,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굳은 의지가 비극의 시작이었을까. 그런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보고 싶은 생각도 차마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세서나 폴 디 모두 그렇게 염원하던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주체적인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대가 없이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르고 망연자실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참혹한 노예제도 아래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가족의 연속성에 대한 설명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흑인 여성들은 백인 주인님의 성적 착취의 대상이고, 재생산을 위한 브리딩 머신(breeding machine)이었다. 남부의 천박하고 지독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흑인 노예들이 낳은 아이들을 그저 증식된 재산의 일부로 간주했다. 이런 가혹한 상황 아래서 마침내 자유를 얻은 세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알베르토 망겔이 책은 질문하기 위해 읽는다라고 말했던가. 그렇다면 <빌러비드> 만큼 그에 적합한 책이 또 없을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이 행하는 행동들에 대해 끝없이 물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토니 모리슨은 마거릿 가너 실화의 빈 공간에 자신이 창조해낸 고통스러운 문학적 상상력을 채워 넣었다. 세서의 존재를 잡아먹는 성장한 아기 유령 빌러비드를 몰아내기 위해 모인 30명의 마을 여성들이 벌이는 엑소시즘은 이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진부하지만 희생을 통한 구원에 이르는 서사야말로 소설 <빌러비드>의 지향점이 아니었을까.

 

비록 고통과 눈물의 서사이긴 했지만 결국 모두 읽어내면서 왜 <빌러비드>가 토니 모리슨의 작품 세계를 대변하는 작품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사랑을 받지 못하던 자들을 사랑하는 자라 부르리라 <로마서 9:25>

 

As he saith also in Osee, I will call them my people, which were not my people;

and her beloved, which was not bel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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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2-04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독서 모임 멤버 한 분이 이 소설의 결론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도 그렇게 봤는데, 결말이 조금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레삭매냐 2020-02-05 08:53   좋아요 0 | URL
오독까지 포함한 독서가 오롯하게
독자의 몫이듯, 책의 저술 또한
작가의 몫이 아닐까요...

저도 결말이 좀 그렇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