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츠먼의 변호인 묘보설림 17
탕푸루이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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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려고 했던 책이었는데, 마침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서 대여해서 읽게 됐다. 나중에 조금 후회했다. 이 책은 사서 읽었어야 했다고. 그만큼 재미있고 또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무려 변호사, 소설가, 각본가 그리고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탕푸루이의 <바츠먼의 변호인>에서 작가는 현대 타이완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기본 줄거리는 훗날 해안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대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출신 압둘아들이 일가족 살인 사건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나서, 국선변호인 탕바오쥐에게 조력을 받게 된다는 설정이다.

 

저자 탕푸루이는 어린 아이까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소설의 전면에 배치한다. 설상가상으로 범인은 이주노동자 출신 무슬림이다. 당연히 의사소통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피고는 법정에서 충분히 법적인 조언과 도움을 얻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어떤 배경이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검사 측에서는 면밀하게 수하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사실 여론재판적 성격에서 이미 압둘아들은 이길 수 없는 게임의 피해자였다.

 

타이완 원주민 아미족 출신으로 자신의 아버지 역시 비슷한 강력 사건의 가해자였던 탕바오쥐, 흔히 바오거 그리고 아미족 친구들 사이에서는 타카라라고 불리는 보신주의의 화신 같은 남자 퉁바오쥐가 국선변호인 자격으로 압둘아들 변호에 나섰다. 그의 사이드킥으로는 촉망받은 미래 엘리트이자 대체복무요원 롄진핑이 자원했다. 그리고 역시 인도네이사 출신 간병인 이주노동자 출신 통역사 리나가 압둘아들 구하기 트리오를 결성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신산하다. 매일 아침 새벽 출근길에 만나는 내가 사는 동네 물류센터에서 퇴근하는 피로에 젖은 그네들의 모습이 압둘아들과 리나에게서 보여졌다. 언어와 관습, 기후 등 모든 게 다른 환경에서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남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탕푸루이 작가는 리얼하게 그려낸다. 특히, 세계 원양어업에서 큰몫을 차지한다는 타이완의 현실에 대한 르포르타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탕바오쥐들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면서, 그동안 감추어왔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대기업의 악랄한 착취의 단면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아미족 역시 원주민으로 주류 한인들에게 모욕을 받으면서도 역시 다른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에게는 가혹한 착취를 일삼는 악순환의 고리를 저자는 가감 없이 드러낸다.

 

소설의 전반에서는 아무래도 타이완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질감 때문에 진도가 더디게 나갔지만, 일단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니 책이 갑자기 너무 재밌어졌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탕푸루이 저자가 빌드업해둔 티키타카식 법정 드라마가 폭발하면서 도저히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예전에 한 때 '묘보설림' 시리즈를 즐겨 읽었었지. 한참 뒤에 다시 만난 묘보설림 시리즈의 매력이 되살아난 그런 느낌이랄까.

 

또 하나 <바츠먼의 변호인>을 뜨겁게 달구는 쟁점 중의 하나는 사형제 찬반에 대한 논쟁이다. 사형제 존치가 결코 범죄율을 줄이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재판 과정에서 혹시라도 오심이 발생했을 경우 결과(사형)를 번복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이유로 롄진핑은 사형제에 반대한다. 하지만, 나중에 국민투표 결과로 밝혀지게 되지만 대중은 사형제에 찬성한다. 법조계에 투신하는 모든 이들이 롄진핑 같은 정의파는 아니겠지만, 또 이런 캐릭터가 없다면 소설이 재밌겠는가.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또 소설 전개상 꼭 필요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압둘아들 구명에 나선 롄진핑과 리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관계에서 이른바 썸타는 관계에까지 도달하지만, 진핑의 애인 리이룽과 그의 보수적인 아버지 롄정이의 개입으로 진핑과 리나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닫는다. 아니 진핑의 거짓말을 알게 된 이룽이 질투심에 불타 둘의 사진들을 공개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진핑의 아버지 롄정이가 법조 집단의 보수적 가치를 주장하는 일단의 집단을 대표하는 주자라면, 소위 MZ세대인 진핑은 반대편에 서 있다. 진핑은 아버지 롄정이가 수시로 구사하는 인맥을 동원한 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는 롄정이가 사실은 넓은 의미에서 범법도 자신의 재량 아래서, 주무를 수 있다는 점은 사법 농단의 엄연한 현실에 대한 명징한 지적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아들 진핑의 압둘아들 변호인 선임을 막기 위해 재판관 배정에까지 개입하지 않았던가.

 

바오거의 아미족 친구 펑정민이나 롄정이가 작은 레벨의 빌런이라면, 슝펑 선업의 회장 훙전슝은 그야말로 스케일이 다른 그레이트 빌런이다. 인신매매, 불법감금 그리고 심지어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고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는 데 있어 거추장스럽다고 판단되는 요소들은 죄다 없애 버린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치부와 모종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압둘 아들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했다. 훙전슝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협박은 물론이고 막대한 재력을 이용해서 정관계의 인사들, 심지어 총통까지 좌지우지하는 무시무시한 실력자다. 과연 이런 이들을 상대로 해서 바오거 트리오가 압둘아들 구하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훙전슝은 소설 <바츠먼의 변호인>의 전개상 꼭 필요한 빌런이다. 자신이 속한 재계는 물론이고,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이용해서 정관계 더 나아가 사법계까지 조종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최고의 악당이 아닌가. 이런 거악에 맞서는 끊임없이 선을 증명해야 하는 바오거 집단의 구성원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다. 악은 공공연하고 줄기차게 자신의 사악함을 만방에 퍼뜨리지만, 그에 맞서는 카운터 파트너들은 항상 패배의 연대기를 쓸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작은 목소리들이 모인 연대의 들불을 곳곳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헛된 소망이겠지만, 탕푸루이 작가가 바오거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작품들도 내주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 번만 쓰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뱀다리] 표지에 배 밑으로 추락하는 인물을 형상화한 이미지가 실려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보니, 소설의 발단이 된 사건이구나 싶었다. 정말 잘 만든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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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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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크리스마스에 읽기 시작한 TCBC(캐드펠 수사 시리즈)2탄을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역시 시리즈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적응기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1편과 10편을 만났는데, 도서관에서 빌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20년 만에 복간된 TCBC 시리즈가 대중에게 인기인 모양이다. 이번주에 빌렸는데 예약일 걸려서 빨리 읽어야지 싶었는데, 책을 잡으니 그냥 술술 넘어 가더라.

 

때는 1138, 노르만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두고 모드 황후와 스티븐 왕을 지지하는 편으로 나라가 나뉘어 내전이 한창이었다. 웨일즈 국경의 슈롭셔 지방의 슈루즈베리 역시 내전의 불길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슈루즈베리 수비대는 모드 황후를 지지하는 편이었지만, 스티븐 왕의 압도적인 군세 앞에 결국 성을 내주게 된다. 수비군의 핵심이었던 윌리엄 피챌런과 애더니 그리고 헤스딘의 아눌프 가운데 피챌런과 애더니는 도주에 성공했지만, 농성 중에 스티븐 왕을 모욕했던 아눌프는 포로로 잡히게 된다. 관대하기로 소문난 스티븐 왕이었지만, 이번에는 아눌프 일당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눌프를 필두로 한 수비대 94명이 모두 플라망 용병대에 의해 처형되어 성에 걸리게 된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캐드펠 수사는 17세 고스릭이라는 소년을 맡게 된다. 하지만 알고 이 소년 고스릭의 정체는 도주한 애더니의 영애 고디스가 아니던가. 애더니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스티븐 왕의 군대의 눈을 피해 캐드펠 수사가 실력을 발휘해야 할 순간이 도래했다.

 

한편, 부친 시워드와 계승권자 오라비 자일스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얼라인 시워드는 자신의 소유의 군대와 영지를 스티븐 왕에게 넘겨준다. 고디스 애더니의 정혼자 휴 베링거 역시 실제 권력자 스티븐 왕에게 백기투항하지만, 스티븐 왕의 참모들은 베링어의 진의를 의심한다. 결국 스티븐 왕은 애더니의 딸이자 베링어의 정혼자인 고디스를 체포하고, 피챌런과 애더니가 빼돌린 군자금의 행방을 찾으라는 밀명을 내린다.

 

스티븐 왕의 가신 프레스코트가 처형한 슈루즈베리 수비대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가운데, 캐드펠 수사는 기이한 점을 하나 발견한다. 원래 처형당한 사람들은 모두 94명이었는데 시신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처형당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교살당했다. 잉글랜드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엘리스 피터스는 교묘하게 살해된 피해자의 케이스를 삽입하는 빌드업으로 소설의 긴장감을 더한다.

 

다른 축에는 캐드펠 수사와 젊은 귀족 휴 베링어의 치밀한 두뇌 싸움도 배치했다. 베링어는 캐드펠 수사를 돕는 고스릭의 정체(고디스 애더니)를 파악하고, 캐드펠의 주변을 맴돈다. 사실 이번 편은 노련한 캐드펠과 젊은 패기의 베링어 간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드펠 수사는 고디스의 도움으로 억울하게 죽은 니컬러스 페인트리의 신원을 밝히는데 성공하고, 그의 조력자였던 부상당한 토럴드 블런드도 구조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 94명의 처형당한 수비대원 중에 얼라인 시워드의 오라비인 자일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런 학살이라는 비극 가운데서도 엘리스 피터스는 두 쌍의 남녀 간에 피어나는 로맨스도 곁들이고, 페인트리를 살해하고 오두막에서 토럴드를 공격한 진범을 밝히는 과정에 개입한 캐드펠 수사의 고뇌하는 존재의 면모를 탁월하게 부각시킨다.

 

이번 편에서 어쩌면 진짜 빌런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던 휴 베링어는 캐드펠 수사의 교묘한 심리전에 말려 크게 한 방 먹는다. 서로 진심을 감추고, 덫을 놓은 걸 뻔히 알면서도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기발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캐드펠 수사의 능력에 감탄했다. 역시 젊은 패기가 전직 십자군 전사로 동방을 전전하며 세상을 경험한 캐드펠 수사의 노련함에 밀렸다고 헤야 할까.

 

아무래도 12세기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진범을 특정하는데 성공했지만, 결정적 증거 부족으로 결국 결투라는 방식의 신명재판이 진행된다. 예전에 읽은 에릭 재거의 <라스트 듀얼>이 떠올랐다. 오래 전에 영국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새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구축한 질서와 섭리가 우선하던 중세 시대에 진실을 가리기 위해 기사들이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정말 스펙터클했다.

 

전직 십자군 전사로 이교도를 상대로 한 성지탈환에 누구보다 앞섰던 캐드펠 수사는 속세를 떠나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정착해서, 평화의 사도로 변신했다. 하지만 결투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피가 끓어오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캐드펠 수사가 다양한 허브를 비롯해서 약초에 정통한 것도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는 다양한 이유로 다치고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하는 '힐러'의 역할도 무난하게 수행한다. 약자를 돕는 데 있어 힐러만큼 파급력 있는 캐릭터가 또 있을까.

 

10편에서 뜬금없이 잉글랜드 내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좀 낯설었는데, 얼마 전에 주경철 선생의 <중세 유럽 이야기>에 나오는 노르만족의 잉글랜드 정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드 황후(마틸다)와 스티븐 왕의 권력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니,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역사적 배경이 좀 더 와 닿았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읽고 배워야 하나 보다.

 

계속될 캐드펠 수사 세계관의 확장이 기대가 된다. 슈롭셔의 새로운 부 행정장관이 된 휴 베링어의 활약에 더불어, 이러저러한 사유로 등장한 다채로운 캐릭터들과의 콜라보도 주목할 만하다. 1편과 10편도 성녀의 유골 에피소드는 서로 이어지지 않는가. 이번 편에서 웨일즈를 거쳐 노르망디(?)로 도주한 모드 황후 편의 고디스 애더니와 연인 토럴드 블런드도 한 번만 쓰기에는 아까운 캐릭터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들의 컴백을 기대해 본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동네 관내 도서관에는 재개정판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1권과 2권 밖에 없다. 지난 가을에, 캐드펠 수사 시리즈 3권과 4권을 희망도서로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도서관 예산 조기 소진으로 희망도서 선정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내년에 다시 도전해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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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인 이야기 - 모험하고 싸우고 기도하고 조각하는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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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중고서점에서 한 번 사서 볼까 싶던 책이다. 주말에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바로 옆 북트럭에 있는 걸 보고는 막 나오는 길에 빌려서 순식간에 다 읽었다. 대중들을 위한 역사 개설 정도의 수준이라 다 읽는데 이틀이 걸렸다. 역사책이 이렇게 읽는 재미가 있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는 1492년 콜럼부스보다 한참 전에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다는 바이킹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문난 깡패 집단인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를 근거로 해서 유럽에 진출했던 모양이다. 바다와 강은 물론이고, 육지에서도 배를 끌고 다녔다는 바이킹들은 바랑기아 용병대로 유럽 영주들에게 고용되어 마치 해병대 같은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

 

이들은 아이슬란드를 거쳐, 그린란드에까지 진출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린란드에 그들이 정착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바이킹들이 그린란드에 진출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후 상황이 나쁘지 않았지만, 간빙기가 지나고 다시 날이 추워지고 자원이 소모되면서 그린란드 정착지에 있던 바이킹들은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킹의 일파로 알려진 노르만족이 프랑스 서북부의 노르망디에 거주하게 되면서 유럽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훗날 정복왕 윌리엄으로 알려진 노르망디공 기욤이 잉글랜드 왕위 계승 쟁탈전에 참가하게 되면서 노르망디와 잉글랜드를 아우르는 왕국을 신설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얼마 전에 읽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도 나오는 마틸다 왕비가 플랜터저넷 왕조의 시조가 되는 헨리 2세의 어머니였단 말이지. 사실 뜬금 없이 1권을 읽고 나서 10권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당대 역사를 모르고 읽다 보니 궁금한 점들이 좀 있었는데, 이번에 주경철 선생의 <중세 유럽 이야기>를 읽으면서 궁금한 점들이 많이 풀리게 됐다. 역시 이래서 책을 읽어야 하는구나 싶다.

 

누가 뭐래도 중세 유럽을 구성하는 두 가지 축은 봉건제와 교회였다. 이런 이유로, 세속군주와 교회를 대표하는 교황의 대립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카노사의 굴욕으로 알려진 대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내린 파문을 취소해 달라며 눈밭에서 속죄 의식을 거행했다. 결국 교황권의 승리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이 사건은 세속에서 권력 투쟁에 성공한 하인리히 4세가 복수전에 나서면서 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이었던 서임권은 교황에게 귀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점 중의 하나는 중세 최고의 발명품으로 알려진 <연옥>이라는 개념이었다. 원래 종래의 기독교 세계관은 구원을 상징하는 천국과 처벌을 상징하는 지옥의 이원적 시스템이었는데, 여기에 중간적인 "연옥"이 추가되었다. 사후 바로 천국에 갈 정도의 선행을 쌓지 않은 이들은 바로 이 연옥에서 수년간의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천국에 갈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훗날 성경에 나오지 않는 개념이라며 프로테스탄트들에게 혹독한 비난을 받았지만, 정말 신박한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청빈과 자본주의 이윤 추구에 대해서도 기독교는 굉장히 유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가난한 자들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리지만, 근대 사회의 주인공이 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원론이 아닌 각론에서 탄력적인 운영의 묘미를 보여준다. 노동을 통해 마련된 자본이기 때문에, 돈놀이꾼이 추구하는 자본을 통한 이자장사도 가능하다는 그런 논리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그렇다면, 돈놀이꾼이 주무르는 자본이 노력을 통해 얻은 게 아닌 불로소득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결국 과정과 절차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현대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성장에 스토아 철학은 많은 부분에서 기여했다.

 

가난과 청빈에 대해서도,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프로테스탄트 자본가들은 맹공을 퍼붓는다. 심지어 네덜란드에서는 무위도식하는 이들을 잡아다가 강제 노동을 시켰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붉은색 염료로 사용되는 브라질나무의 껍질을 벗기는 혹독한 노동에 빈민과 부랑자들이 동원됐다. 일하지 않는 자들은 먹지도 말라는 강압적 프로파간다의 출발점을 여기서 엿볼 수가 있었다.

 

살인을 금하는 기독교 정신도, 이교도와의 전쟁에서는 예외로 간주됐다. "신이 그것을 원한다"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격문으로 촉발된 십자군 전쟁으로 결국 성도 예루살렘은 그들의 바람대로 탈환되었다. 서방 세계에 비해 우세했던 동방 무슬림 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지만, 십자군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십자군 이데올로그들은 이교도와의 전투에 참가한 기독교 전사들이 적과 싸우다 사망하면, 순교자가 되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에서 살인은 금하고 있지만, 신앙의 적에 대해서는 예외적이라는 억지논리로 십자군 전쟁의 폭력성을 정당화했다.

 

세속 권력과 교황권의 투쟁은 결론적으로 근대적 사법 제도의 출현을 예고하는 전조였다. 가령 예를 들어 신명재판 같이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방식으로 대중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는 없었다. 관습법이나 성문화된 법조항이 필요하게 되었고, 부르주아 근대사회로의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던 시절이 바로 중세였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 아닌가 싶다.

 

21세기에 메르스와 코로나19가 있었다면 중세에는 흑사병(페스트)라는 팬데믹이 전 유럽을 초토화시켰다.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선페스트는 교역을 통해 지중해 연안 도시에 상륙했고, 전 유럽인구의 1/3 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설적으로 급격한 인구 감소는 인간의 중요성에 집중하게 되었고, 피렌체와 같은 자유도시의 발전 그리고 뒤이은 르네상스 인본주의 예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됐다.

 

16세기 대항해시대에 세계를 제패하게 될 서구문명의 도래에 앞서 중세 유럽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주경철 선생의 탁월한 빌드업에 경의를 표한다.

 

[뱀다리] 말미에 나온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이야기를 하지 않았네. 21년 전에 로마 바티칸에서 미켈란젤로가 24살 때 만들었다는 첫 번째 피에타 상의 실물을 보고 그만 숨이 멎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 작품을 인간이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작품이었다. 젊은 천재의 첫 번째 시도와 두 번째 발디니 피에타 그리고 말년의 론다니니의 피에타가 보여주는 아우라는 또 달랐다. 대리석 돌 속에서 이런 작품들을 뽑아낼 수 있는 천재 조각가의 실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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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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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하는 빅토르 바통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다.

아마 바통 씨가 꿈꾸던 미래의 부유한 모습이 아닐까.)


빅토르 바통은 몽상가를 꿈꾸지만 그의 실체는 망상가에 가깝다. 첫 번째 세계대전에서 왼손에 영구적 장애를 입은 바통 씨는 오늘도 거리에서 친구를 찾는다. 그는 기본적으로 외롭다. 아니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외로운 존재가 아닌가. 친구가 있다면, 바통 씨가 새로운 친구를 찾을 리가 없겠지. 그는 왜 친구가 없을까.

 

세계대전이 끝나고, 살기가 팍팍한 프랑스 파리에서 상이 용사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1924년 프랑스 출신 에마뉘엘 보브는 자신의 첫 소설 <나의 친구들>을 발표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그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은 바통 씨는 비롯 가난뱅이지만, 겸손하고 예의를 차리는 그런 친구다. 문제는 가끔 망상에 젖어 선을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의 성정은 치명적 결과를 가져 오지만 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우유 가게 아가씨에게 고백공격을 했다가 보기 좋게 차였다. 아무래도 이 친구, 금사빠인 것 같다. 모든 정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거라구?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면서도, 종종 선을 넘는다. 바로 그게 문제다. 그리고 상대방의 선의를 자신이 결정하고, 관계를 시작해 버린다. 가만 살펴 보니, 인간 관계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미션이 아닌가. 특히나 나이가 들어서 그러니까 세상의 단맛 쓴맛을 다 보고 난 뒤에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기란 더더욱 어려운 법.

 

그렇다면 애타게 자신의 속을 드러낼 만한 친구를 찾는 바통 씨의 문제는 무엇일까? 친국에 대한 격언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 다 말할 필요는 없겠지. 바통 씨의 감정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궁핍한 사정을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상대방이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나? 그들이 바통 씨에게 원하는 건, 50프랑을 빌리거나 혹은 하룻밤의 즐거움 정도다. 아니 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거리에서 그가 만난 이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 무언가 금전적인 부분을 요구한다. 이 소심한 남자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앙리 비야르 같이 정체가 수상한 사람의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지질 않나. 아까 내가 뭐랬어, 바통 씨는 금사빠라고. , 이 사람 좀 이상한데 그래.

 

자신에게 양복을 살 돈과 일자리를 제공한 라카즈 씨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기차역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박애정신의 발로로 라카즈 씨는 바통 씨에게 돈도 주고 또 일자리도 주었다. 아니 그랬더니만, 사리판단하지 못하는 바통 씨는 그의 어린 딸에게 금사빠 정신을 발동해서 추파를 던졌다가 그만 낭패를 당한다. 아니 도대체 어쩌자구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거지? 아 너무 감정이 이입된 것 같다.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그리고 평소의 바통 씨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놀랄 만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단 말인가. 자신을 가난뱅이 상태에서 빼낼 구조선을 그렇게 걷어찼단 말이지.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에마뉘엘 보브 작가는 디테일의 강자답게 아주 세세한 부분을 포착해낸다. 타인의 손톱 정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아 당시 파리 사람들은 그런 점들을 중요하게 생각했구나. 아울러 어느 개인의 입성에 대해서도 포인트를 두고 있다는 점을 보브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바통 씨에게 그런 면면을 투영해서, 목욕재개하고 라카즈 씨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안개 낀 파리 거리가 마치 사진 현상을 하는 밝아지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 착오로 일을 망쳐 버리는 바통 씨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너무 성급하게 관계를 진도를 빼거나, 좀 쉽게 싫증내는 것도 그렇다. 인간관계란, 전력질주하는 그런 단거리 경주가 아닌 페이스를 조절해 가며 뛰는 장거리 마라톤에 가까운 게 아닌가. 아주 뜨겁지도 그렇다고 미지근하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인연을 이어가는 기술을 바통 씨는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그런 것들이 누가 알려준다고 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인물로 낙인 찍힌 바통 씨는 결국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몽루주의 아파트에서 퇴거명령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자신을 쫓아낸 걸 후회하게 될 거라는 망상에 젖는 바통 씨. 당장 먹고 살기에도 바쁜 이들이, 그런 자신을 기억할 리가 있을까. 엔딩까지 씁쓸하지만, 바통 씨는 그래도 자신의 처지에 대한 명징한 해석으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나의 친구들>은 너무 외로운 나머지 친구 찾기 나선 바통 씨로 대변되는 우리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다. 무슨 거창한 시대정신에 대해 토론할 그런 친구가 아닌, 어제 먹은 짬뽕 맛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주변에 있는가라고 바통 씨는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관계 속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또 그렇게 상처도 받고 반대로 위로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의 본질이 아니던가. 외로운 금사빠 바통 씨에게 한 잔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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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26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것 같습니다.
21세기 뉴욕 타임즈 선정 책에 들어 있는 것 같은데요.

레삭매냐 2024-11-26 13:2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저는 재밌게 읽었답니다.

그냥 바통 씨가 불쌍하더라구요.
전쟁에서 영구 장애를 얻게 된
불쌍한 상이용사의 절절한 외
로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한밤의 도박 페이지터너스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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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7월의 마지막 날에 산 책을 11월이 돼서야 다 읽다니. 사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소설은 7월의 마지막 날과 어제 그리고 오늘 3일 동안 다 읽은 셈이다. 분량도 적고 또 노름/도박을 소재로 한 책이라 금방 다 읽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마 읽다 말고 다른 책 읽느라 그랬겠지.

 

오스트리아 빈 출신 의사이자 작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한밤의 도박>이 오늘 풀어볼 책이다. 이 짧은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도박 빚 때문에 불명예 전역한 친구 오토 본 보그너가 공금 횡령으로 위기에 처했다며,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빌리(빌헬름) 캐스다를 찾아온다. 빌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100굴덴 정도인데, 보그너는 1,000굴덴이 필요하다며 빌리의 부유한 외삼촌 로베르트 빌람 씨에게 돈을 융통해 볼 것을 부탁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로베르트 빌람은 빌리의 외삼촌으로 한 때 빌리를 돌봐 주고 적으나마 용돈도 주고 그랬던 사이이지만 최근 들어 소원해져 버렸다. 그러니까 보그너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말이다. 대신, 빌리는 무언가 한 가지 꼼수를 발견했다. 카페 쇼프라는 곳에서 일요일 오후마다 작은 노름판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빌리는 자기가 가진 돈을 가지고 그곳에 가서 요행수를 바라고 돈을 따서 보그너를 돕겠다는 복안을 도출해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벌써 제목에서부터 무언가 불행한 엔딩의 전조가 느껴지지 않은가.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빌리는 카페 쇼프의 작은 노름판에 참가하고, 노름판에서 돈을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다가 결국 사단을 내고 만다. 물론 빌리가 적당하게 돈을 따서 노름판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운명의 여신은 빌리의 편에 서지 않았다. 바덴 역에서 빈으로 가는 기차를 놓친 게 큰 패착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 때마다 카페 쇼프로 돌아온 빌리는 노름판이 끝나는 230분경까지 광기에 휩싸여 슈나벨 영사에게 무려 11,000굴덴이라는 거금의 빚을 지게 된다.

 

물론 아르투어 슈니츨러 작가는 냉정하게 제3의 입장에 서서 조금씩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빌리 캐스다 소위의 심리 변화를 시시각각 독자에게 전달한다. 나도 고스톱을 좋아하지만, 절대 큰돈으로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물러설 때를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카지노/도박판에 오래 머물수록 돈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돈을 잃었다면 손절할 수도 또 반대로 어느 정도 돈을 땄다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블랙잭 테이블 같은 노름판에서 광기에 물들어 영혼과 자본을 털어 넣는 이들을 관찰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지.

 

도박으로 신세를 망친 보그너를 구하기 위해 노름판에 뛰어 들었다가 정말 패가망신하게 된 빌리의 운명이 비참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슈나벨 영사는 빈털터리가 된 캐스다 소위를 빈의 병영으로 데려다 주면서, 노름빚 상환 기한인 24시간에서 좀 더 연장해 주는 아량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 안된다고 못을 박는다. 노름빚이 기한 내에 상환되지 않으면 캐스다 소위의 연대장에게 알리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는다.

 

자 이제 벼랑 끝에 몰린 빌리 캐스다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순식간에 한 개인의 운명이 전도유망한 청년 장교에서 거액의 노름빚을 진 도박쟁이 신세로 추락하게 될 수도 있다는 비극적 가능성을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능수능란하게 도출해낸다. 그래도 로베르트 빌람 외삼촌이라는 믿을 구석이 있던 빌리는 그르 찾아가 보지만, 레오폴디네라는 여성을 만나 전재산을 탕진해 버렸다는 말에 의기소침하는 빌리. 그런데 그 레오폴디네는 예전부터 그가 알고 있던 여성이 아니던가.

 

오래전에는 매춘부였지만, 이제는 외삼촌의 자금을 바탕으로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옛 연인 아니 외숙모 레오폴디네를 찾아가 거의 구걸하다시피 자금을 빌려달라고 사정하는 빌리. 궁색한 처지에 몰린 빌리를 희망고문하던 레오폴디네는 사실 빌리에게 구원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구원의 가능성이 닫혀 버린 빌리는 결국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물론 작가는 엔딩에 젊은 청년 장교의 죽음을 더욱 비극으로 만들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이런 역설적 장치야말로 소설 <한밤의 도박>이 품은 씁쓸한 현실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의사로 경력을 출발했지만, 작가 활동을 더 많이 했던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한밤의 도박>에서 주인공 빌리 캐스다 소위의 수시로 변하는 심리를 독자에게 충실하게 전달한다. 노름판에서 돈을 많이 딸 때는 부유한 육군 장교의 모습을 그리며 행복해 하다가,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당장 닥칠 비극을 감당하지 못하는 비참한 청년의 모습을 연출한다. 장황한 심리 묘사 대신, 급변하는 청년의 감정을 임상에서 체득한 전문가답게 유려하게 그려낸다.

 

빌리 캐스다가 전문 도박꾼이었다면 오히려 그의 비참한 최후를 동정하지 않았겠지만, 동료 보그너를 위해 노름판에 나섰다가 그만 패가망신했기에 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동료 빔머 중위가 나서서 판돈을 올리고 계속해서 노름빚을 지는 걸 제지했지만, 도파민 과다로 이성을 잃은 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예정된 파국이 다가왔다. 아마 빔머 중위의 제지를 빌리가 받아 들였다면, 소설 자체가 구성되지 않았겠지. 그렇게 예정된 비극은 굴러갔다.

 

이 책을 샀던 지난여름을 회상해 보니,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다른 책들을 만나 보겠다고 <엘제 양> 그래픽 버전을 먼저 읽지 않았나. 왠지 매력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다른 책들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집에 쌓아 놓은 책탑을 좀 허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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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25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 놓고 안 읽은 책이 산더미입니다. 부지런한 셈인데 자책을 하시다니요. ㅠ 슈니츨러 별로란 평이 많던데 이 작품은 안 그런가 봅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그림 좋습니다!

레삭매냐 2024-11-25 14:56   좋아요 2 | URL
스레드에서 소장한 책이 특정량
을 넘어가면 부동산 문제가 된
다고 하던데... 어제 책탑을 쌓다가
멘탈이 살짝-

이 악물고 책탑 정리에 들어가야
지 싶습니다.

아직 다른 슈니츨러의 책들을 만
나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한밤의
도박>은 재밌었습니다.

이미지는 AI가 맹글어 주었는데
신기하더라구요.

stella.K 2024-11-25 19:31   좋아요 1 | URL
헉, 스레드에서 소장한 책이 특정량
을 넘어가면 부동산 문제가 된다굽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와, AI가요? 제법인데요?
전 아직 AI이 써 본 적이 없네요.
어떻게 쓰는 거죠? ㅋ

레삭매냐 2024-11-26 08:06   좋아요 1 | URL
책이 많아지면 그 만큼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
이 아닐까요 :>

레오나르도라는 녀석
을 사용하는데, 키워드
를 넣으면 이렇게 알아
서 이미지를 만들어준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