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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먼의 변호인 ㅣ 묘보설림 17
탕푸루이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6월
평점 :
원래 사려고 했던 책이었는데, 마침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서 대여해서 읽게 됐다. 나중에 조금 후회했다. 이 책은 사서 읽었어야 했다고. 그만큼 재미있고 또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무려 변호사, 소설가, 각본가 그리고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탕푸루이의 <바츠먼의 변호인>에서 작가는 현대 타이완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기본 줄거리는 훗날 ‘해안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대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출신 압둘아들이 일가족 살인 사건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나서, 국선변호인 탕바오쥐에게 조력을 받게 된다는 설정이다.
저자 탕푸루이는 어린 아이까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소설의 전면에 배치한다. 설상가상으로 범인은 이주노동자 출신 무슬림이다. 당연히 의사소통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피고는 법정에서 충분히 법적인 조언과 도움을 얻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어떤 배경이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검사 측에서는 면밀하게 수하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사실 여론재판적 성격에서 이미 압둘아들은 이길 수 없는 게임의 피해자였다.
타이완 원주민 아미족 출신으로 자신의 아버지 역시 비슷한 강력 사건의 가해자였던 탕바오쥐, 흔히 바오거 그리고 아미족 친구들 사이에서는 타카라라고 불리는 보신주의의 화신 같은 남자 퉁바오쥐가 국선변호인 자격으로 압둘아들 변호에 나섰다. 그의 사이드킥으로는 촉망받은 미래 엘리트이자 대체복무요원 롄진핑이 자원했다. 그리고 역시 인도네이사 출신 간병인 이주노동자 출신 통역사 리나가 압둘아들 구하기 트리오를 결성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신산하다. 매일 아침 새벽 출근길에 만나는 내가 사는 동네 물류센터에서 퇴근하는 피로에 젖은 그네들의 모습이 압둘아들과 리나에게서 보여졌다. 언어와 관습, 기후 등 모든 게 다른 환경에서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남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탕푸루이 작가는 리얼하게 그려낸다. 특히, 세계 원양어업에서 큰몫을 차지한다는 타이완의 현실에 대한 르포르타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탕바오쥐들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면서, 그동안 감추어왔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대기업의 악랄한 착취의 단면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아미족 역시 원주민으로 주류 한인들에게 모욕을 받으면서도 역시 다른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에게는 가혹한 착취를 일삼는 악순환의 고리를 저자는 가감 없이 드러낸다.
소설의 전반에서는 아무래도 타이완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질감 때문에 진도가 더디게 나갔지만, 일단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니 책이 갑자기 너무 재밌어졌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탕푸루이 저자가 빌드업해둔 티키타카식 법정 드라마가 폭발하면서 도저히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 예전에 한 때 '묘보설림' 시리즈를 즐겨 읽었었지. 한참 뒤에 다시 만난 묘보설림 시리즈의 매력이 되살아난 그런 느낌이랄까.
또 하나 <바츠먼의 변호인>을 뜨겁게 달구는 쟁점 중의 하나는 사형제 찬반에 대한 논쟁이다. 사형제 존치가 결코 범죄율을 줄이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재판 과정에서 혹시라도 오심이 발생했을 경우 결과(사형)를 번복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이유로 롄진핑은 사형제에 반대한다. 하지만, 나중에 국민투표 결과로 밝혀지게 되지만 대중은 사형제에 찬성한다. 법조계에 투신하는 모든 이들이 롄진핑 같은 정의파는 아니겠지만, 또 이런 캐릭터가 없다면 소설이 재밌겠는가.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또 소설 전개상 꼭 필요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압둘아들 구명에 나선 롄진핑과 리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관계에서 이른바 썸타는 관계에까지 도달하지만, 진핑의 애인 리이룽과 그의 보수적인 아버지 롄정이의 개입으로 진핑과 리나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닫는다. 아니 진핑의 거짓말을 알게 된 이룽이 질투심에 불타 둘의 사진들을 공개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진핑의 아버지 롄정이가 법조 집단의 보수적 가치를 주장하는 일단의 집단을 대표하는 주자라면, 소위 MZ세대인 진핑은 반대편에 서 있다. 진핑은 아버지 롄정이가 수시로 구사하는 인맥을 동원한 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는 롄정이가 사실은 넓은 의미에서 범법도 자신의 재량 아래서, 주무를 수 있다는 점은 사법 농단의 엄연한 현실에 대한 명징한 지적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아들 진핑의 압둘아들 변호인 선임을 막기 위해 재판관 배정에까지 개입하지 않았던가.
바오거의 아미족 친구 펑정민이나 롄정이가 작은 레벨의 빌런이라면, 슝펑 선업의 회장 훙전슝은 그야말로 스케일이 다른 그레이트 빌런이다. 인신매매, 불법감금 그리고 심지어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고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는 데 있어 거추장스럽다고 판단되는 요소들은 죄다 없애 버린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치부와 모종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압둘 아들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했다. 훙전슝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협박은 물론이고 막대한 재력을 이용해서 정관계의 인사들, 심지어 총통까지 좌지우지하는 무시무시한 실력자다. 과연 이런 이들을 상대로 해서 바오거 트리오가 압둘아들 구하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훙전슝은 소설 <바츠먼의 변호인>의 전개상 꼭 필요한 빌런이다. 자신이 속한 재계는 물론이고,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이용해서 정관계 더 나아가 사법계까지 조종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최고의 악당이 아닌가. 이런 거악에 맞서는 끊임없이 선을 증명해야 하는 바오거 집단의 구성원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다. 악은 공공연하고 줄기차게 자신의 사악함을 만방에 퍼뜨리지만, 그에 맞서는 카운터 파트너들은 항상 패배의 연대기를 쓸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작은 목소리들이 모인 연대의 들불을 곳곳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헛된 소망이겠지만, 탕푸루이 작가가 바오거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작품들도 내주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 번만 쓰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뱀다리] 표지에 배 밑으로 추락하는 인물을 형상화한 이미지가 실려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보니, 소설의 발단이 된 사건이구나 싶었다. 정말 잘 만든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