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 1910 망국 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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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년이라는 대장정 끝에 결국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가 작년 여름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난 그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지난 다음에 마지막 <망국>편을 만날 수가 있었다.

 

190481일에 시작된 일본군의 뤼순 포위전은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낸 다음인 190511일 마침내 러시아군의 항복으로 종결되었다. 일본에서는 군신이라는 노기 마레스케의 3군은 별다른 전략 없이 오로지 물량공세를 펼쳐 결국 승리를 얻었지만, 너무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전에 러시아 내부에서는 극동에서 그동안 동양의 약소국이라 깔봐 오던 일본군에 연전연패한 차르 정부에 대한 불신과 염증으로 민중의 소요가 발생했다. 1905122<피의 일요일>로 알려지게 된 사건으로 러시아 제국은 외부의 적 뿐 아니라 내부의 적들과도 싸워야 했다. 주러시아 일본 공사관의 주재 무관 아카시 모토시로라는 문제적 인물이 주도한 공작이 과연 1905년 러시아 혁명에 일조했을까라는 지적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무대는 나폴레옹 전쟁 이래 최대의 결전이라는 봉천 회전이었다. 일본군은 거의 20만에 달하는 육군을 동원해서 봉천에 포진한 러시아군 주력을 일거에 격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쿠로팟킨이 지휘하는 극동 러시아군은 일본군의 성동격서식 기동에 농락당해 우왕좌왕하는 등 초전부터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그런 전투였다. 러시아는 한수 아래로 평가한 일본군에 연전연패하면서 극동 러시아군의 사기는 추락했고, 내부 혁명으로 장기전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고 있었다.

 

일본 역시 러일전쟁 개전 1년이 지나면서 전쟁물자 생산에 한계점에 달해 있었다. 1903년 일본 국가의 총예산이 26천만 엔이었다. 군부는 총 전비로 44천만 엔을 예상했지만, 최종적으로 19억의 예산이 소요되었다. 사상자 역시 10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 상태도 일본이 과연을 전쟁 수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어쨌든 국운을 건 봉천회전에서 일본은 러시아군을 패퇴시키고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다. 물론 상처 뿐인 승리긴 했지만. 전세가 기울자, 러시아군 수뇌는 총퇴각을 선언하고 무의미한 희생을 피하고 후방의 톄링을 지나 시핑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아마 일본군 역시 공세종말점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러일전쟁의 최종 무대는 역시 동해였다.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이끄는 러시아의 태평양함대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추가 증원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뤼순 전투에서 만신창이가 된 일본 연합함대가 본국으로 돌아가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그냥 넘겨주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허송세월할 게 아니라 바로 출격에 나서서 일본 연합함대와 대결을 벌이던가 아니면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훗날을 도모해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진해에서 출격한 연합함대는 1905527일 쓰시마 근방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요격하기 시작했다. 38척으로 구성된 러시아 함대가 일본군의 공격으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면서 러일전쟁은 일본의 완성으로 끝났다.

 

일본의 조야는 청일전쟁처럼 전후 러시아로부터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영토 할양을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의 중재로 1905829일 포츠머스에서 맺어진 조약에서 일본은 남만주 철도에 대한 이권, 조선의 일본 세력권 인정, 뤼순-다롄 할양과 남부 사할린으로 만족해야 한다. 무려 4년치 국가예산과 23만명에 달하는 전사상자에도 불구하고 외교전의 실패로 일본은 청일전쟁처럼 국가 재건을 위한 비용 마련에는 실패했다. 그것은 아마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 세력들이 극동아시아에서 일본이 너무 과하게 성장하는 것에 대해 이미 견제가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본격적인 대한제국의 망국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기에 앞서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근현대사에 “Why so serious?" 같은 걸그룹 노래 제목까지 곁들이고 언 듯 보면 약간 유치해 보이는 라임까지 집어넣으면서 헛웃음을 유발하는 굽시니스트 작가의 창작력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역사가 반드시 엄숙하고 진지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예전에 <국사>를 배우던 시절에 이렇게 재밌는 교보재가 있었다면, 어렵고 외울 거 천지였던 한국의 근현대사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의 망테크 과정은 박시백 작가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고통의 연장선이었다. 동학과 독립협회의 잔당 세력을 규합해서 만들어진 일진회의 비상으로부터 시작해서, 훗날 공화정과 독립운동 세력의 핵심이 되는 상동교회 출신들을 중심으로 했던 이른바 상동파’, 친일 관료들에게 포위된 무능력의 끝판왕 고종은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자주 국가의 외교권을 넘겨주는 을사늑약(2차 한일협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은 결국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어쩌면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는 순간, 망국의 숙명은 결정이 난 게 아니었을까. 그후에도 고종은 1907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과 이준 그리고 이위종을 파견해서 만국에 일본이 한국에서 벌이고 있는 만행을 고발하고,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외교권을 상실한 한국의 호소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일제는 대한제국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고종 퇴위와 이어지는 정미칠조약으로 한국의 군대가 해산되고 내정권마저 상실해 버렸다. 해산된 군대가 기존의 의병 조직에 가담하면서 의병들의 무장투쟁의 차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 19081월 서울 진격에 나섰지만, 일제는 정규군까지 동원해서 전국의 의병활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일본군은 특히 4천명에 달하는 조선인 헌병 보조원들을 동원해서 의병 색출에 나섰다. 그 결과 1908년부터 1909년까지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과 장인환-전명운 의사들의 더럼 스티븐스 저격을 필두로 한 수많은 의거들과 저항들이 있었지만, 망국의 수레바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본격 한중일 세계사>는 배드엔딩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난 8년 동안, 굽시니스트 선생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를 통해 미처 모르고 있던 역사의 많은 부분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최근 읽고 있는 <태평천국>에 대해서도 그가 이미 다룬 부분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20권이나 되는 대작을 마침내 완성한 굽시니스트 작가에게 경의를. 리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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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틱 라이프 6 어쿠스틱 라이프 6
난다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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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가져다 읽다가 말았다. 왜 마저 읽지 않았을까? 이유는 모르겠다. 뭐 그럴 때도 있는 법이지.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있으니 금방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아 지금 막 도서관에 상호대차를 신청한 굽시니스트 양반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마지막 편이 도착했다고 한다. 어서 그것부터 픽업해야 하는데 말이지.

 

이 책은 무려 13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 때는 가요대전에 소녀시대가 나와서 <더 보이즈>를 부르던 시절이었나 보다. 아마 제식칼이도 한 팀에 있었겠지. 몇 권까지 나왔나 싶어서 찾아보니 <어쿠스틱라이프>는 모두 14권까지 나온 모양이다. 대단하구나 그래.

 

질풍노도의 삼십대를 건너고 있던 화자 난다 작가와 그녀의 동갑내기 신랑 한군이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무슨 대단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냥 우리네처럼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나가는 이들이다. 그래서 좀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런 내적 친밀감은 혹시 나만 느끼는 건가 싶기도 하다.

 

역시 노동자 신분이라 그런지 <일의 기쁨과 슬픔>이 가장 마음에 와 닿더라. 누구나 다 일은 하기 싫다. 하지만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우리는 노동시장에 참여해서 나의 노동을 팔고, 그 댓가로 돈을 받아서 먹을 것도 사고 주거 문제도 해결하고 또 약간의 유흥도 즐기는 그런 생활을 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노동하는 이유는 바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말이지.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그에 부수적으로 따라 붙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 근심으로부터 정녕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걸까. 뭐 그렇다고. 마감의 압박에 시달리는 난다 작가의 모습이 왜 그렇게 애처로워 보이는지. 참 어그 부츠 값도 내야 한다고 했던가. 한겨울에 쓰레빠를 직직 끌고 다닐 수는 없다고 신랑 한군에게 사자후를 토하는 작가의 모습이 너무 리얼리스틱하게 다가오더라. 뭐 그렇게 사는 거지 다들.

 

그냥 나는 난다 작가가 그렇게 일상에서 픽업하는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들이 마음에 들더라. 거창하게 무슨 조국과 민족을 위한 거대한 담론보다는 이런 사소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서사 말이지. 캐롤 추천에 등장한 마이클 부블레가 정말 느끼하다는 거에는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끼남 마이클 부블레가 한껏 힘주어 느끼하게 부른 지금은 고인이 된 조지 마이클의 <Kissing a Fool> 커버를 아주 좋아한다네. "You are far~"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정말 크하.

 

아무래도 동갑내기 부부다 보니 서로에게 날리는 독기어린 로맨스도 재미지다구. 난다 작가의 시어머니가 단 하나 며느리에게 부탁한 것이 남편 한군에게 채소를 먹이라는 지상명령이었다고 했던가. 짬뽕에 들어간 죽순을 오징어라고 속이고 먹이려는 난다 작가의 사투나 해물 밑장에 채소를 깔았지만, 교묘하게 해물만 샤삭 골라 먹는 한군의 아웅다웅 독기어린 로맨스라니 이 어찌 재밌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지러운 집안 청소를 위해 S.O.S.를 쳐서 등장한 청소요정님의 에피는 또 어떤가. 과연 청소요정님은 프로다웠다. 난다 작가가 일주일 걸릴 일을 단 4시간에 아주 효율적으로 처리해 주시는 신공을 보여주셨단 말이지. 나는 겁시 나서 도저히 뚜겅을 열 생각도 하지 못하는 2주된 된장찌개를 거침없이 오픈하는 박력에 그만... 하지만 그 위대하신 청소요정님도 그건 버거웠던 모양이지.

 

청소요정님은 냉장고에서 하루가 다르게 미라가 되어 가는 채소들도 과감하게 내 대신해서 정리해 주신다. 게다가 내가 돈 주고 산 것들이라 버리려면 반드시 동반하게 되는 죄책감으로부터도 거뜬하게 해방시켜 주셨다네. 이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물론 한군은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을 비용을 주고 대리하게 만드는 사치라고 비난하지만, 앞으로 집안일을 분담하자는 난다 씨의 제안에 결국 자신의 용돈을 허물어 청소요정님을 다시 부르게 되었다나 어쨌다나. 아 참, 음식물 쓰레기의 냄새 방지를 위해 비닐봉지에 잘 싸서 냉장고에 보관하는 방식은, 회사에서 동료 여직원분이 하는 걸 보고 좀 충격을 먹었었는데 그런 방식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난 오늘 아침에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네.

 

이직이 잦은 한군의 오피스 허즈번드에게 경계심을 품는 장면도 재밌었다. 이미 한군은 게임회사 개발자인 것 같은데, 기여워 같은 타이틀을 대신 셔틀해서 사다 주고 발컨이나 트롤링 같은 그 쪽 분야 용어를 설명해주는 장면도 재밌었다. 엔딩의 뷰티 부분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패스.

 

엔딩에 보니 연재하던 중에 아기도 생겼다고 하는데, 혹시 다른 편에는 육아 로맨스도 추가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재밌고 즐겁게 봤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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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멤논의 딸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우종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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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서 두 권의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의 작품을 꺼내든다. 하나는 <꿈의 궁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가멤논의 딸>이란 책이다. 언제 샀는지 검색해 보니 무려 14년 전에 산 책이다. 그리고 그 동안 난 이 책들을 읽지 않았다. 결심하고 <아가멤논의 딸>을 읽기 시작한다. 어제 하루 동안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정말 작정하고 책읽던 시절이 잠깐 주마등처럼 그렇게 스치고 지나갔다.

 

서론에 프랑스 편집자가 암담한 알바니아의 현실을 다룬 카다레의 <아가멤논의 딸>이 어떻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는지에 대한 소개가 등장한다. 희대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통치하고 있단 알바니아는 1980년대 당시 사상과 문화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카다레의 사회비판 소설이었던 <아가멤논의 딸> 역시 국경을 넘을 수가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서방으로 넘어가 금고에 잠자고 있던 이 책이 독재자가 죽고, 철의 장막이 걷혀진 뒤 발표가 되었나 보다. 이런 우여곡절을 품고 있는 책이라니, 놀랍군 그래.

 

소설에서는 지도자라고만 나오지만, 엔베르 호자 시대 어느 노동절 퍼레이드에 초대받은 저널리스트 화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노동절 퍼레이드는 대단한 행사가 아닐 수 없다. 이 행사에 주인공은 애인 수잔나의 빽으로 초대장을 한 장 얻게 된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공산주의 시스템에서 초대장은 특권의식을 상징하는 하나의 알레고리로 작동한다. 카다레는 소설의 초반부터 대놓고 당시 알바니아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가득 담긴 묵직한 어퍼컷을 날린다.

 

참고로 수잔나는 당 고위 간부의 딸이다. 소설 초반에 트로이 전쟁에 나서는 그리스 원정군의 총사령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 공주가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트로이 원정대의 앞길을 가로 막고 나선 아르테미스 여신의 분노를 잠재울 희생양으로 이피게네이아가 선택된 것이다.

 

수잔나의 아버지는 어쩌면 지도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될지도 모를 자신의 영달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딸 수잔나를 희생양으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노골적으로 수잔나의 희생을 요구한다. 가장 먼저 수잔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짝인 주인공과의 이별을 종용한다.

 

텔레비전 방송국에 소속된 저널리스트인 화자는 자유주의적 견해를 지닌 양심적 지식인이다. 그런 화자의 태도는 친척 아저씨와 서로 다른 견해 차이로 앙숙관계를 형성한다. 요즘으로 치면 소위 세대간의 치열한 갈등의 전주곡이라고나 할까. 엔베르 호자가 주도하는 고립주의, 무신론 세계관으로 무장한 알바니아는 유럽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전혀 유럽답지 않은 시대에 뒤쳐진 국가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이웃 국가들은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는데 국가의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알바니아에서는 먹고사니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철지난 이데올로기 투쟁이 만연한 모양이다.

 

화자의 과거 전력도 문제다. 철저한 감시 사회였던 알바니아에서 동료에 대한 밀고와 배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나의 생존과 평온한 일상을 위해서라면 누구도 무고할 수 있다고나 할까. 화자를 비롯한 3명이 취조를 당했고, 나머지 두 명은 먼 곳으로 좌천되었다고 했던가.

 

도중에 어디선가 등장하는 <대머리의 추락>이라는 제목의 우화는 당시 암울했던 알바니아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에 다름이 아니다. 깊은 어둠 속에 추락한 대머리 남자는 독수리에 얹혀 비상하게 된다. 단 조건이 하나 있으니, 비행하는 동안 내내 날고기를 독수리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머리 남자는 독수리와의 비행을 위해 많은 날고기를 준비해서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문제는 날고기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자신의 몸에서 살점을 떼어서 독수리에게 주기 시작한다. 나중에 그의 해골만 남았더라는 이야기. 전체주의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영혼과 육신마저 내줘야 한다는 우화는 마치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에 대한 르포르타주가 아닌가 말이다.

 

엔베르 호자와 비슷한 결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 주가슈빌리도 이피게네이아, 수잔나와 같은 희생의 제단에 배치된다. 독소전 초기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된 야코프는 19434월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이 셋의 공통점은 모두 뚜렷한 목적을 지닌 정치적 희생양이었다는 점이다. 카다레 작가는 알바니아 사람들 모두가 독재자와 그 일당들이 선전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였다는 말을 빗대어 말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

 

다시 한 번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묻게 되었다. 날고기를 공급해야 굴러가는 시스템이 가진 태생적 한계와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급함의 단면들을 <아가멤논의 딸>을 통해 엿볼 수가 있었다. 이런 사유 또한 부질없는 것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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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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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정리를 하면서 남길 책과 떠나보낼 책을 고르느라 연초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읽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책들은 눈 딱 감고 정리했다. 그리고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전에 교보문고에서 한 번 읽고 나서 동네책방 책모임 도서로 선정되어 결국 샀다지. 동네책방에서는 연독을 하는데, 읽다 말았나 보다. 그리고 정리 도서 대상으로 지목되어 어제 정리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었다.

 

때는 1985, 올해 39세의 석탄 목재상 빌 펄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 전혀 몰랐었는데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읽으면서 그해 <라이브 에이드>가 열렸다는 걸 알게 됐다(1985713). 자수성가한 견실한 가톨릭교도인 빌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아일린과 다섯 명의 딸들이 있다.

 

사실 빌 펄롱은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미시즈 윌슨의 도움이 없었다면, 비빌의 유년시절은 더욱 어려웠겠지. 어머니는 빌이 12살 되던 해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빌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클레어 키건 작가는 현재 빌 펄롱의 삶을 파헤치기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그래야 나중에 빌이 하게 되는 일련의 행동들을 알 수 있고, 그의 심정에 동조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가장의 삶이 그렇듯, 빌 또한 가장으로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오늘도 일상의 짐을 묵묵하게 수행해 나간다. 자상한 가장은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들에 대해 아내 아일린과 상의하고 또 아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선물을 고를 줄 아는 센스도 장착한 남자다. 동시에 클레이 키건은 실업수당과 실업자들의 수가 증가하는 불경기의 혹독한 시기였던 아일랜드의 현실에 대해서도 소설 곳곳에 힌트를 남겨 둔다.

 

그리고 까마귀의 달이라는 12월이 시작됐다. 자기 사업체가 납품하는 수녀원에 들렀다가 빌 펄롱은 삶이 바뀌게 되는 일대 경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일하는 소녀가 그에게 구조 요청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차라리 배로강에 빠져 죽고 싶다고 했던가. 하지만 빌은 소녀의 요청을 무시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평판 좋은 세탁소에 대한 이야기가 그전에 등장한다. 아울러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소문도 작가는 잠시 언급한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빌은 깨닫게 된다.

 

이 사건이 잠잠하던 빌의 일상에 작은 파문을 던졌다. 고민하던 빌은 결국 아내 아일린에게 내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일린은 그들이 수녀원의 소녀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책임도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건 빌이 원한 답변이 아니었다. 이미 다섯 딸들만으로도 빌과 아일린의 삶은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빌의 생각은 달랐다. 그 역시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아버지 없이 자랄 수가 있지 않았던가. 미시즈 윌슨과 네드의 도움이 없었다면, 빌의 어머니 역시 수녀원의 소녀 같은 신세가 되지 않았을까. 마음 따뜻한 가장이자 가난한 이들에게 땔감과 동전을 아낌 없이 나눠주는 의인 빌 펄롱의 인간적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건 이후, 빌의 눈에 수녀원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사건은 1222일 일요일에 발생한다. 남들이 다 쉬는 일요일에도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야적장에 나가 납품할 물건들을 챙겨야 하는 빌의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게 다가오던지. 그리고 수녀원 석탄 광에 있던 엔다(세라 레드먼드)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자기 양심을 자극하는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빌 펄롱의 삶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무리 열심히 미사에 참석하면 뭘 하는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스스로를 그는 위선자라고 규정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즈음에, 빌은 케호 식당에서 주인장 케호 여사에게 지역공동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수녀원과 척을 지면 안된다는 조언을 듣는다. 케호 여사는 마치 앞으로 빌이 할 행동을 미리 알고 있다는 투로 빌에게 그런 말을 건네준다.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척하고 여느 때처럼 평소의 일상을 영위할 것인가? 아니면 불의를 보고 참을 수가 없었던 의인으로 거듭날 것인가? 사실 그동안의 그의 행적에서 이미 빌은 자신의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다만 시기의 문제였을 뿐. 평안한 위선자의 삶 대신,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한 의인이 되기를 자처한 빌 펄롱은 다시 수녀원으로 가서 엔다, 아니 세라를 구출해낸다. 그리고 맨발의 세라를 데리고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지신이 선택한 행동 때문에 앞으로 온갖 고초가 닥치겠지만,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빌의 영혼은 구원받았으리라.

 

지난번 독서 때처럼, 순식간에 책을 다 읽고 나서 결국 이 책도 나의 책장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짧은 분량이라 정리하기 전에 재독을 하고 결정할 수 있었지만, 모든 책을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또한 책과의 인연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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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1-29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책을 200권 정도 정리했어요. 그동안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더라고요.

아직 세상에 빌 펄롱같은 사람이 많다는 걸 믿고 있습니다.

제가 알라딘서재 처음 들어 왔을때
레삭매냐님과 잠자냥님께서
신간 리뷰의 쌍두마차였거든요.
어서 독서 슬럼프
벗어나기를요^^
제가 책을 많이 구매한 게 레삭매냐님 덕분도 있어요 ㅎㅎ

레삭매냐 2026-01-29 11:17   좋아요 1 | URL
우와 무려 200권씩이나?
저도 그 정도 이상으로 해야지 싶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더라구요.

빌 펄롱, 다시 읽어도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신체 능력의 노화와 더불어 집중력
저하 그리고 독서력의 한없는 추락으로
이제 더 이상 신간 도서의 팔로우업이 버
거운 씨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출판업계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
는 대신 사두고 읽지 못한 책들부터 하나
씩 읽자 주의로 선회하는... 쿨럭 그렇다
고 합니다.

그레이스 2026-01-29 1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이 선택의 순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부지중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여서 그렇죠.
무엇이 정의고 불의인지 안다고 해도 자동으로 옳은편의 선택을 할 수는 없죠 ㅠㅠ

책 정리도 선택이네요

레삭매냐 2026-01-29 20:0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의 의견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정의와 불의에 대한 인식도 문제지만...
대부분 인지한 상태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ㅠ

책 정리는 이제 숙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 끝의 세상 - ‘세상 끝’으로 내몰리는 고래와 그 고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ink books 8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써네스트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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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다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읽을 때마다 그전에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들을 새롭게 픽업할 수 있고, 또 예전에는 그렇게 읽었었지라는 추억과 만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어쨌든 좋단 말이겠지.

 

16살의 나이에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은 소년 세풀베다는 헤이허브 선장 그리고 포경사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지구끝 파타고니아로 향한다. 그 때가 아마 1965년 정도였을 것이다. 당시 국가 칠레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선거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포경사에 대한 낭만적 꿈을 품고 고래 살육의 현장에 도달한 소년은 향유고래가 사냥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에서 읽은 것과 냉정한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선원에 대한 꿈을 접었다. 포획당한 고래가 해체되는 모습은 왠지 칠레에서 벌어진 선거에 의한 사회민주주의 실험이라는 고래가 피노체트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로 일거에 압살당하는 장면과 겹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 2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독일 함부르크에 정착하게 된 그린피스 대원 세풀베다는 지구끝에서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학생운동의 지도자 활동을 하다가 투옥과 수감생활 그리고 다시 재수감되어 종신형을 받았다가 독일 앰네스티의 지원을 조국 칠레를 탈출해서 독일에 정착하게 된 현재의 세풀베다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1979년에는 그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그는 단순한 저널리스트가 아닌 혁명가였구나.

 

망명 이래 처음으로 조국의 땅을 밟게 된 세풀베다는 만감이 교차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산티아고에 오래 머무를 틈도 없이 그는 자신에게 연락을 취한 호르헤 닐슨 선장을 만나러 지구끝으로 향한다. 호르헤 닐슨은 피니스테레 호의 선장으로 조수 페드로 치코와 더불어 동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세상의 끝, 피니스테레는 왠지 다른 지구끝보다도도 더 파타고니아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라틴아메리카는 컬럼버스의 항해 이래, 서구세계의 약탈지였다. 서인도 제도의 금과 은을 찾아나선 스페인 탐험가들과 그들의 후예들은 막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자원들을 본국으로 반출했다. 세기가 바뀌어서는 그곳에 널린 다른 자원들에 눈독을 들였다. 자원 채취를 위한 환경파괴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조치였다. 그런 환경파괴로 인한 현지 인디오들의 삶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 파괴와 착취의 연대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세풀베다의 증언이다.

 

세풀베다들이 들른 어느 항궁에 산더미처럼 쌓인 톱밥들은 일본 제지공장으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하지만, 숲에서 베어진 나무들이 종이를 만들기 위한 톱밥으로 만들어지는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나무마저 이런대, 일본 포경선의 목표가 된 세계적 멸종위기종 참거두고래의 운명은 또 어떨까.

 

부유한 이들의 입맛을 돋우는 식도락 재료로 필요해서, 혹은 값비싼 화장품에 들어가는 유지로 사용되기 위해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고래들이 희생되어야 한단 말인가. 대양의 유령선으로 위장해서 고래사냥에 나선 니신마루 호의 선장 다니후지는 잠재울 수 없는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아니 어쩌면 별미를 찾는 혹은 신비로운 향기를 내는 향수를 원하는 내 자신의 숨겨진 욕망의 발현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그런 욕망이 다니후지 같은 인물들을 위험한 난바다로 내모는 동인이라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 같다.

 

조그만 범선 피니스테레를 몰고 고래 학살의 현장에서 거대한 포경선 니신마루 호에 호르헤 닐슨과 바다에서 나고 자란 페드로 치코의 돌진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무모한 도전에 일단의 참거두고래들이 응답해왔다. 이거야말로 인간과 동물의 진정한 연대가 아닌가 말이다. 닐슨과 페드로 치코의 안내로 현장에 도착한 칠레인은 사진 촬영을 포기한다. 그 때 칠레인의 경험이 훗날 <세상 끝의 세상>의 땔감이 되었다.

 

표지에 실린 바다 위로 튀어 오르는 고래의 이미지는 아무런 제약 없이 대양을 누비며 사는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풀베다 선생이 묘사하는 파타고니아에 대한 글을 보면 언젠가 꼭 한 번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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