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만화 병자호란 상.하 세트 - 전2권 만화 병자호란
정재홍 지음, 한명기 원작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년 전에 한명기 작가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읽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뒤에 만화로 다시 만나게 됐다. 파란만장한 17세기 중원의 왕조교체기의 기로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야했던 과거는 21세기 한반도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다. 과거에는 비극이었고, 지금은 어떤지 아직 판정이 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더더욱 주목이 된다고 해야 할까.

 

6년 전에 나온 만화의 존재는 아예 모르고 있다가, 오늘 도서관에 들렀다가 알게 됐다. 어제 우연히 너튜브 역사채널 그리고 진주박물관 채널을 통해 병자호란에 대해 다시 한 번 복습(?)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아주 좋은 예습이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 조선 왕조 3대 찌질한 군주로 선조-인조-고종을 꼽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는 인조가 아닌가 싶다. 임진왜란으로 파천-몽진을 클리어한 선조의 손자 능양군은 숙부 광해군을 몰아내는 반정을 성공시켜 임금이 되었다. 철저하게 서인으로 구성된 인조 정권은 재조지은의 나라 명나라에게도 정권 초기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괄의 난으로 대표되는 것처럼 반정 공신 사이의 알력도 다스리지 못했다. 인조는 세 번이나 파천하는 무능의 화신 같은 군주라고 판단된다.

 

건주여진 출신의 누르하치가 칠대한을 슬로건으로 걸고, 1615년 팔기군을 창설해서 1618년부터 상국 명나라를 상대로 요동 공략에 나선다.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명나라의 압도적인 국력 앞에 만주족의 후금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에 막대한 군자금과 인력들을 소모시킨 명나라에게 후금의 침공은 결정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당시 만력제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멸망할 뻔한 국난을 극복하는데 성공한 조선은 당연히 명나라를 아버지의 나라로 여기고 달자의 나라 후금을 오랑캐로 철저하게 멸시했다. 그러지 않아도 성리학적 질서에 입각한 조선의 사대부 지식인들에게 후금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금수 같은 그런 존재였다.

 

후금도 이런 사정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주적은 조선이 아닌 명나라였기에 우선 요동을 집어삼키고 산해관을 돌파하는데 집중했다. 명나라 조정의 요청과 강압으로 광해군의 조선은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619년 사르후 전투에 조선 정예 조총수들을 투입했다. 사실 아무리 명나라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지만, 실리주의자 광해군은 자국의 정예병들이 멀리 만주 땅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죽어나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결국 요동의 정예군들이 투입된 사르후 전투를 필두로 한 전투에서 명의 사로군들이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전쟁의 주도권은 후금에 넘어가게 된다.

 

반세기에 가까운 만력제 연간에 곪을 대로 곪은 명나라는 이미 승승장구하는 후금의 철기병들을 막을 능력이 없었다. 그나마 명나라의 마지막 영웅 원숭환이 영원성 전투에서 홍이포로 누르하치에게 중상을 입히고, 결국 죽게 만들면서 시간을 버는데 성공했다. 4대 버일러 출신의 홍타이지가 누르하치의 후계자가 되어 보다 적극적으로 중원 공략에 나서게 된다.

 

이런 중원의 사정을 외면한 채,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던 인조 정권의 운명은 훗날 대청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는 홍타이지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이미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9년 전인 1627년 정묘호란 당시 홍타이지는 다른 버일러 출신의 아민을 파견해서 조선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다. 후금의 요청은 간단했다. 명과의 관계를 끊고, 자신들과 무역 거래를 하고, 형제 관계를 맺자는 것이었다. 홍타이지는 거국적 관점에서 명나라와의 전면전을 위해 후방을 안전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조는 두 번째 파천을 하면서, 강화도로 피신해서 장기전을 두려워하던 후금으로부터 화친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런 안일한 정책을 훗날 병자호란 당시에도 써먹으려고 하다가 아주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백성에게 인심을 잃은 인조정권은 임진왜란 당시처럼, 사방에서 근왕군이 일어나 조정 보위에 나서지 않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지 않았을까. 해마다 계속되는 기근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휼하고,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권이 무슨 민심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더 큰 화근은 숭명배청 사상에 젖은 다수 척화파들이 조정을 주무르게 되면서, 결국 홍타이지 군대의 두 번째 침공인 병자호란은 피할 수 없는 상수가 되어 버렸다. 다시 생각해 봐도 아무런 대책이나 실력도 없이, 무조건 후금/청나라를 달자(오랑캐)의 나라로 규정하고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사신의 목을 베자는 주장이 가당키나 했단 말인가. 정작 청나라의 침공이 시작되고 나서, 주전과 화전 주장를 거듭하다가 파천과 몽진 타이밍을 놓치고 남한산성으로 꼴사납게 도주했다가 삼전도의 치욕을 겪게 되지 않았던가.

 

어제 너튜브에서 본 1636년 청나라의 특수 기동작전에 대한 분석은 그동안 병자호란에 대한 생각의 틀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명나라를 상대하고 있던 청나라 군대는 조선을 상대로 장기전을 펼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무조건 최단기간 내에 조선을 굴복시켜야만 했다. 그들은 이미 조선 조정의 대전략을 알고 있었다. 외적의 침입이 시작되면, 특히 수군에 약한 청나라를 상대로, 인조 정권은 강화도로 몽진해서 장기전 모드에 돌입할 거라는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남의 근왕군이 집결해서 청군을 상대하게 될 거라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홍타이지는 조산의 사정을 잘 아는 호부승정 마푸타를 지휘관으로 삼아 300명의 특수 기동대를 조직해서 선발대로 압록강을 건너게 했다. 청군은 평안도와 황해도의 조선군 수비대가 산성 위주의 방어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많은 시간과 병력이 소모되는 공성전을 피하고 무조건 한성으로 내달렸다. 강건하고, 잘 먹지 않아도 장거리 기마 운용이 가능한 만주마를 동원해서 하루에 90KM를 주파하는 신속 기동전으로 단 6일 만에 마푸타의 선발대는 한성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이른바 충격과 공포 전술이 아니던가. 홍타이지가 이끄는 3만의 청군 본대도 남하하면서 조선군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버렸다. 300기의 바야라라고 불리는 만주 철기 최정예부대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이미 그들은 누르하치 시절, 요동 공략전에서 단 20기로 수십배에 달하는 명군을 격파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신속한 청군의 기동전 앞에, 조선 조정은 강화도로 도주하자는 계획을 실기하고 결국 남한산성에서 농성전을 기획했다가 파국에 자처하게 됐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오로지 요행수만 바라고 남한산성에 들어갔던 인조 정권은 46일 간의 농성 끝에 결국 홍타이지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한 겨울 산성 수비에 나선 병사들을 입힐 피복이 없어 거적을 뒤집어쓰고 병사들은 보초를 서야 했다. 군량미 비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임금 이하 모든 장병들이 굶으면서 적을 상대해야 했다. 명나라와의 전투에서 얻은 교훈에서 배운 청군은 성능 좋은 홍이포로 남한산성에 정확한 포격을 개시했다.

 

전장의 상황이 이럴진대, 주전을 주장하는 대신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던 강화도마저 청군의 수중에 들어간 것도 모르고 결사항전을 앵무새처럼 주장했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나라를 망국으로 인도한 무리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들이 가진 화이관이라는 맹목적 세계관에서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선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조반정의 공신이었던 주화파 최명길은 최명길 대로 국가와 조정 그리고 군주를 위해 최선의 방책을 도모했고 또 반대편에 서 있던 예조판서 김상헌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국난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척화파들은 청군이 화친에 반대한 인사들을 선발해서 자신의 진영에 보내라고 했을 때, 자신들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자청해서 적진으로 향했다. 이른바 척화 삼학사인 홍익한, 윤집 그리고 오달제들은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조선 사대부들의 기개를 보여 주었다. 이들이야말로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한 인조 같은 무능한 군주에 비하면 조선 선비의 귀감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결국 대전쟁을 초래한 위정자들은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구차하게 정권과 목숨을 유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청군에게 약탈당하고 심지어 인신이 구속되어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의 신세는 너무 비참했다. 군주인 인조를 대신해서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 인질이 되어 끌려갔던 소현세자와 강빈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찌질이 군주 인조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소설 <남한산성>은 아주 오래 전에 읽었다. 역사평설 <병자호란>10년 전에 읽었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로 만들어진 <남한산성>을 볼 차례인가.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고 들었는데, 다시 한 번 격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우리의 현 위치는 어디인가 그리고 우리의 방향성은 어떤 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388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주국가로서 생존은 쉽지 않은 미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마른 삶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3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달에 중고서점에 들러 브라질 출신의 작가 그리실리아누 하무스의 <메마른 삶>과 윌라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를 샀다. <루시 게이하트>를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두어장 읽다 말았나 보다. 어제 저녁에 <메마른 삶>을 찾아 단숨에 읽었다. 분량도 적고, 20세기 브라질이라는 이국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파비아누의 사연이 우리네 그것고 많이 닮아서 독서에 가독이 붙더라.

 

브라질의 세르탕에서 혹독한 가뭄을 피해 소몰이꾼 파비아누는 가족을 이끌고 새로운 거처를 찾아 나선다. 무시로 찾아드는 가뭄과 가난 그리고 무지는 파비아누 가족을 괴롭히는 디폴트 같은 요소다. 사실 부자들이라면, 그런 요소들은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6명의 가족 가운데 하나였던 앵무새를 희생시키고 발레이아(포르투갈 어로 고래를 의미한다고 한다)가 잡아온 기니피그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는 파비아누 일가. 아이들조차도 마초맨 파비아누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소설 초반에 그랬던가, 파비아누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씌우고 싶었다고. 우는 아이에게 격렬한 증오를 느끼는 파비아누.

 

어쨌든 어느 버려진 농장에 새로운 삶의 거처를 차린 파비아누는 가뭄이 끝나고 돌아온 주인에게 날품을 파는 소몰이꾼이 된다. 지주는 결코 파비아누처럼 글도 읽지 못하고 무식한 카브라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실컷 파비아누를 부려 먹고는 가축들을 분배하지만, 낙인이 없기 때문에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파비아누는 다시 주인에게 헐값으로 넘기고 채무노예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 모든 게, 주인공 파비아누에게는 배움이 없는 탓이라고 그라실리아누 하무스는 은연중에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주로 대변되는 세상의 기득권층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배움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주장일까. 비토리아 어멈의 요청대로 옷을 만들 옷을 사고, 생필품을 사러 시장에 나갔다가 노란 제복의 군인의 꼬임에 빠져 노름판에 뛰어 들었다가 파비아누는 밑천을 다 날려 먹고 낭패에 빠진다. 바로 이 부분에서 군사독재가 횡행하던 브라질의 시대상을 정확하게 저격한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헌정질서를 뒤엎은 군사 독재정권이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한 적이 있었던가.

 

가진 돈만 날렸으면, 파비아누는 그저 운이 없었다고 하겠지만 사건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결국 일단의 군인들에게 포위된 파비아누는 마체테로 실컷 두들겨 맞고 결국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가 감옥에 갇힐 이유가 있었던가? 폭압적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성과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이 사건으로 파비아누는 그 좋아하는 술집 출입도 꺼리게 되었다. 이런 대중의 자발적인 자제야말로 군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던가.

 

소설에는 파비아누 가족들의 시선이 차례로 등장한다. 아이들의 시선도 나오지만 좀 약하다. 대신 비토리아 어멈과 가족에 헌신했지만 비참하게 죽고 마는 발레이아의 시선이 주목할 만하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그저 그녀에게는 제대로 만들어진, 제분소 토마스 씨가 가지고 있던 침대만이 삶이었다. 유랑민 같이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파비아누 가족에게 침대란 어떤 의미였을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하나의 상징이지 싶다. 그리고 유랑을 멈추고 한곳에 정착하게 만드는 하나의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초 파비아누와 달리 비토리아 어멈은 셈도 할 수가 있었고, 자신의 남편이 지주에게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음 타자는 발레이아다. 아이들보다 더 신나는 삶을 살고 있다. 가족들이 기아에 시달릴 적에는 통통한 기니피그를 잡아 아사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도 했다. 또한 태어나면서도 파비아누들에게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파비아누는 발레이아에게 가차 없이 총질을 해댔다. 역설적으로 발레이아의 신세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파비아누의 미래이기도 했다. 지주에게 반항한다면, 땅이 없는 소작농 신세의 카브라로서는 해고와 더불어 쫓겨남을 의미한다. 그에게 선택지가 있었을까? 심지어 그는 연대할 동지조차 없었다.

 

그가 선택한 결정은 야반도주였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냐는 도박에 나선다. 문제는 모든 기회가 사라진 다음에 내린 결정이라는 점이다. 사실 인간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요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자각,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액션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파비아누는 도주에 나선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메마른 삶>이 마냥 희망으로 가득한 건 아니다. 말미에 그라실리아누 하무스는 결국 발레이아처럼 소용이 없어진 이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의 자식들은 대도시가 원하는 순수한 노동자로 수용되게 될 거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파비아누는 자신을 노름판이라는 함정에 빠뜨려서 돈을 갈취하고, 감옥까지 쳐넣은 노란 제복의 군인을 만나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지만 마체테 칼날을 휘두르지 않는다. 자신들의 종복으로 활동해야 하는 군인들이 대표하는 정부라는 조직에서 퍼트린 선전선동에 세뇌된 대중(파비아누)은 반란을 꿈꾸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행동하지 못한다. 1930년대, 브라질 대중이 직면한 한계를 명백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돼지를 잡아 시장에 팔러 나왔다가 세금징수원에게 당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죽음과 세금으로부터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던가. 하무스 작가는 소설의 어딘가에서 파비아누가 배웠다고 해서 그의 삶이 나아지거나,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한다. 비참한 현실에 대한 자각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파비아누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묻게 된다.

 

그라실리아누 하무스는 기자, 정치인(시장) 그리고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메마른 삶>1938년에 발표된 하무스의 네 번째 소설이다. 브라질 법에 따라, 사후 70년이 지난 202411일 저작권이 만료되었다고 한다. 책을 살펴보면, 저작권 부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유 이용 저작권(public domain) 책인가 보다. 처음 만난 하무스 작가의 <메마른 삶>은 짧지만 강렬했다. 하무스의 다른 작품들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4-11-20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서 보물을 건지셨네요^^

레삭매냐 2024-11-21 09:55   좋아요 1 | URL
네 그러합니다 ^^

윌라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도
같이 사서 읽고 있는데, 여러 책들
을 동시에 읽는 바람에 지지부진
하네요 ㅠ
 
파리 대왕 : 그래픽 노블
아메 데용 그림, 이수은 옮김, 윌리엄 골딩 원작 / 민음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리대왕> 그래픽노블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원전을 빌려서 먼저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소설은 번역 이슈 때문인지, 소문만큼 그다지 감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픽노블 <파리대왕>은 달랐다.

 

같은 원전을 바탕으로 했으니 내용이 다를 리는 없었다. 하지만, 문학작품을 형상화한 그래픽노블에 좀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게 또 영화하고는 다른 맛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독자는 원전과 어떤 점에서 변별력을 찾아야 하는 걸까. 원전을 얼마 전에 읽어서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그래픽노블을 만나니 그 장점에 반해 버렸다고 해야 할까.

 

원전에서는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던 부분들이 그래픽노블에서는 좀 더 시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 물론, 원전의 재창조를 맡은 아메 데용 작가의 상상력이 어쩌면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랠프와 뚱보 그리고 잭들이 표류하게 된 섬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그들의 고립성에 대해 좀 더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이것은 작가가 시도한 하나의 실험이라고나 할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격체들이 그들을 지도하거나 통제할 어른들 없이 고립된 섬에 모였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문명국가 영국에서 자란 소년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놀이와 먹거리 충족이라는 본능에 충실해지고 구조가 우선이라는 랠프와 뚱보는 소수파가 된다. 이런 권력의 이동이야말로 윌리엄 골딩이 원작에서 많은 의미를 부여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잭 메리듀와 로저 일당은 구조보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주의를 내세운다. 사실 랠프와 뚱보가 주장하는 구조는 언제올지 모르는 희망이고, 실현될 가능성도 요원하다. 전자의 주장이 자력으로 가능한 현실이라면, 반대로 후자의 주장들은 전적으로 타의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두 팀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화재로 섬을 홀라당 태워 먹을 만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섬 외부에 배가 보이면 봉화를 올리기로 한 팀들이 사냥에 정신이 팔려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게 사과로 끝날 일인가?

 

잭 메리듀 일당은 사냥을 핑계로 얼굴에 위장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일종의 마스크로 자신들의 수치심을 가리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방식이었다. 동시에 위장을 거부한 랠프와 뚱보를 배척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동시에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일종의 야만화 선언을 위한 신호가 아니었을까. 생존을 위해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는 랠프와 뚱보의 합리적 조언에도 잭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냥 지금 이대로, 당장의 먹거리들만 해결이 된다면 섬에 남아도 좋다는 식의 사고의 발로다.

 

원작의 아우라가 너무 강렬해서 그래픽노블을 맡은 아메 데용 작가의 부담이 크지 않았을까. 핵무기 경쟁으로 세상에 공멸해 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1950년대, 인류의 문명이 과연 올바른 길로 진화되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에 기반한 형이상학적 주제들이 넘실거린다. 물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는다. 문명세계에서 소외된 인간들은 결국 다시 야만 혹은 자연친화적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단 말인가. 그런 형질은 과연 선천적인가? 아니면 후천적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어지는가. <파리대왕>의 그래픽버전을 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년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하늘에서 내려온 짐승'에 대한 이미지의 형상화도 주목할 만하다. 공포는 대상에 대한 진실 파악을 어렵게 만든다. 이미 죽은 조종사를 괴물 혹은 괴상한 짐승이라고 규정한 소년들은 아예 근처에조차 가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철 있는 어른이었다면 조종사의 낙하산 천을 이용해서 오두막 지붕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종사가 탈출하면서 지니고 있던 물품 역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근원적 공포는 모든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켜 버렸다.

 

잭 메리듀가 실권을 잡기 전에, 선거로 선출된 두목 랠프는 우리 보통 사람을 상징한다. 그의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뚱보는 합리적 사고의 선봉장이다. 잭 무리의 상징인 무력을 애초부터 사용할 수 없기에, 뚱보는 잭 대신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랠프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그런 뚱보가 잭 일당에게 죽은 뒤, 랠프의 운명 역시 풍전등화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사냥감이 되어 쫓기던 랠프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문명의 구조를 받게 된다.

 

마침내 섬에 도착한 순양함에서 파견된 일군의 해군들이 소년들에게 묻는다. 몇 명이나 되는 소년들이 섬에 있느냐고.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알 수가 없었던 그들은 할 말이 없다. 인간사냥을 하던 잭의 무리에게 무슨 재밌는 놀이를 하고 있냐는 말에도 역시 대답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하더라도, 관점에 따라서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소년들에게 질문을 던진 장교는 그들이 순진무구할 거라는 예단을 하고 있었던 것일 지도. 결국 외부인은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전혀 모를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그래픽노블은 보여준다.

 

엔딩의 극적인 장면에 이르기까지 아메 데용 작가는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런 활극을 지어낸다. 원전에서 출발해서 무언가 원전과 다른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구상은 그런 점에서 성공했다는 판단이 든다. 원전에 등장하는 '오랑캐=savage' 번역 때문에 정말이지, 새로운 번역을 기대해 보고 싶다. 그게 가능할 진 모르겠지만 말이지. 원전보다 그래픽노블에 좀 더 높은 평가를 하고 싶은 건 나만은 아닐지 궁금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4-11-08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랑캐 ㅎㅎ
야만인 놔두고 오랑캐
너무했어요
저도 그것때문에, 그외에도 더 있지만 신뢰가 안가더라구요. 일단 끝까지 읽고 원서로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4-11-08 19:09   좋아요 1 | URL
책이 어렵지 않아 저도 언젠가
한 번 원서로 도전해 봐야지
싶더군요 !

원서로 선독하셨다니 고저
대단하십니다.

번역이 참... 그랬습니다.
 
나를 안아줘 - 자크 프레베르 시화집
자크 프레베르 지음, 로낭 바델 그림, 박준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주말이다. 그리고 도서관에 갔다. 희망도서로 신청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그래픽노블>이 도착했다고 해서. 집에서 출발할 때는 추웠는데, 도서관에 가는 동안 더워졌다. 아니, 걸어서 더워졌는지도. 쓱데이라 쇼핑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이마트에 갔을 적에 지하 주차장 온도는 31도였다. 11월인데 이거 여름인가 싶더라. 근데 걱정하지 마, 다음 주에는 바로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니까.

 

또 살짝 옆으로 새는구나. 도서관에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빌렸다. 그 중에 하나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화집 <나를 안아줘>였다. 그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하지만, 리뷰를 쓰기 위해 일단 대출해서 집에 가져왔다. 책을 다섯 권이나 빌려서 집에 오는 내내 무거웠다. 내가 쓰는 쓰는 리뷰는 그만큼의 무게일까.

 

40쪽 남짓 되는 시화집에는 파리에 사는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내가 또 이런 거 좋아하지. 로낭 바델이라는 작가가 그린 그림체에서는 왠지 2년 전에 작고하신 장 자크 상페가 떠올랐다. 프랑스 작가들은 대부분 이런 스타일의 왠지 헐거워 보이는 그런 그림체들을 선호하는가 싶기도 하고. 세밀화 보다는 왠지 모르게 빈 공간 혹은 여백의 미학의 추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내 마음에는 든다. 카툰도 왠지 미국 스타일의 그것보다는 유럽 작가들의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의 시화는 거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아니 키스를 하는 커플에 대한 자크 프레베르의 시선이었다. 이곳이 한국의 서울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라는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대중의 시선은 비슷한 모양이다. 누군가는 엄격한 도덕률을 적용해서, 공공장소에서 그런 애정행각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네. 온전히 그 시간은 그들의 것이라고, 작가는 선언한다. 그냥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고 지나가면 되지 않나.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질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너그러움과 관대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결국 삶에서 온 게 아닐까. 누구나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아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아니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모두 다 알고 싶지도 않다. 결국 그런 깨달음으로부터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본질적 질문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오페라하우스 같이 으리으리한 홀에 우뚝 선 지휘자. 지휘자 좌측에서는 하프로 무장한 궁수 같은 이가 사랑의 화살을 우측의 가냘파 보이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날리기 일보직전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만 너무 충실한 나머지, 상대방에게 노래 혹은 화살로 평생 갈 마음의 상처를 주었을 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서 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공통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를 전달해도, 그전에 이미 무언의 제스처나 공기의 흐름 같은 부수적인 것들 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던가. 짧은 메시지와 한 컷의 그림만으로도 참 많은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도마뱀이 내 손에서 튀면서 꼬리를 남기고 떠났대.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누군가를 구속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남긴 부작용을 작가는 도마뱀 꼬리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시시각각 소용돌이 치는 내 감정조차도 종잡을 수가 없는데 어찌 타인의 감정을 내가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삶을 알지 못하고, 날을 알지 못하며 결정적으로 사랑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던가. 삶이나 사랑이 모두 예정된 길로만 가게 된다면 그 또한 심심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변주되면 또 그것도 감당할 수 없겠지만.

 

짧은 시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자크 프레베르의 <나를 안아줘>에는 많은 울림이 담겨 있다.뭐랄까 오래 전, 진지보수 공사 나가서 땅에서 캐낸 칡을 씹는 그런 맛일까. 씹을수록 맛이 나는, 읽을수록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원제 <Embrasse-moi>(웅브하세 무아~)는 샹송 가수 뤼시엥 드릴이 1946년에 발표한 곡의 제목이기도 하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 드릴의 샹송은 아주 간드러진다. 책 읽다가 이렇게 샹송곡도 알게 되는구나.

 

[뱀다리] 나온 지 4년 밖에 안 되었는데 절판이라니, 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운 책을 접하게 되는 채널은 다양하다. 종이신문에 실리는 책 소개도 참조하고, 요즘에는 인스타 그리고 스레드를 통해 새로운 책들을 알게 된다. 나의 인스타 피드에 오른 캐드펠 수사 시리즈도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렇다면 또 내가 참을 수가 없지.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무려 20권이나 된다는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빌렸다.

 

우리의 주인공은 58세 정도로 추정되는 퇴역한 십자군 전사 캐드펠 수사다. 캐드펠 수사는 젊어서 세상을 주유하면 많은 경험을 쌓았다. 동방에 가서는 성도 예루살렘에도 갔었다고 했던가. 이 양반은 수도원보다 어쩌면 속세에 더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그런 매력을 지닌 특이한 수사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여러 여성과 연애 경험도 많은 것 같다고 추정된다. 참고로 중세 교황들은 자식도 여럿 두었었다.

 

지난 15년 동안,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의 슈루즈베리 수도원에서 허브 밭을 가꾸며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게 살던 캐드펠 수사에게 이제 막 파란만장한 모험이 펼쳐질 5월의 어느날이 다가왔다.

 

클뤼니 수도회에서 촉발한 성인들의 유물 그리고 유골 수집에 대한 열풍은 슈루즈베리 수도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광과 짭짤한 수입을 가져다 줄 성물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야심가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결탁(?)한 콜룸바누스-제롬 수도사 콤비의 활약으로 귀더린이라는 곳에 있다는 성처녀 위니프리드의 유골 발굴에 나선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여기서 정확하게 중세를 휩쓸었던 성물 수집 열풍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 시선을 보여준다. 나도 예전에 로마에 갔을 적에, 가톨릭 사제로 로마에서 유학하던 사촌 형님과 성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개인적 성화의 발로가 아닌가 싶었다.

 

자 문제는 귀더린 사람들이 슈루즈베리에서 파견된 6인조 유골 발굴단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 , 캐드펠은 웨일스 출신으로 잉글랜드 사람들을 위한 통역으로 발굴단에 선발됐다. 그리고 자신의 수하에 있던 수사라기보다 건달 같아 보이는 존 수사도 같이 동행한다. 캐드펠은 특유의 친화력과 같은 웨일스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역 유지인 리샤르트와 그의 딸 쇼네드, 대장장이 베네드 등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캐드펠과 대조적으로 노르만 귀족 출신의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고압적이고 오만한 자세로 귀더린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산다. 사실 국왕의 권력을 능가하던 중세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로,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귀더린 촌구석에 사는 이들의 외지인에 대한 반감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오해에서 비롯된 충돌이 발생할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귀더린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유지 리샤르트를 돈으로 매수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망신만 당한다. 더 큰 문제는 다시 한 번 성 위니프리드의 유골 이전 문제에 대한 협상을 하기 위해, 모임에 오던 리샤르트가 행방불명되고 나중에 싸늘하게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소설은 미궁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우리 캐드펠 수사가 실력을 발휘할 순서다. 중세 사람답지 않게, 리샤르트가 살해된 현장을 보존하라고 귀더린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런 건 현대식 수사 방식이 아닌가. 이야기는 성 위니프리드 유골 이전 문제에서, 리샤르트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다. 지금처럼 지문 검사나 CCTV나 녹음 자료 같은 범행의 전모를 밝혀줄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캐드펠 수사의 수사는 자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제 해결 방식도 상당히 중세스러운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결론은 모두가 행복한 엔딩이다. 역시 수사답게, 모든 건 신의 뜻에 맡긴다. 신의 종을 자처하는 수사지만 캐드펠은 미제 사건을 상당 부분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처리한다. 현대식 탐정들과 달리, 일이 흘러가는 대로 억지스럽지 않게 하는 방식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엘리스 피터스 작가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47년 전에 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올드스쿨 스타일에 아주 세련되진 않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 캐드펠은 신의 소명을 받은 수사지만, 동방의 성도에서는 사라센인들의 화살 공격에 맞서 싸운 전사였으며 15년 동안의 수도원 허브 밭 주인으로 진통제 역할을 하는 양귀비즙의 효능에 대해서도 잘 아는 그리고 속세의 잔기술을 사용하는 데도 능한 그런 인물이다. 수도원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존 수사가 사랑을 찾아 떠날 때에도 전적으로 공감해 주지 않았던가. 엄숙한 신의 뜻과 사그라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의 본질을 잘 아는 캐드펠 수사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4-11-01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결 방식은 중세스러운데 실사 내용을 보면 너무나 인간적인..... 3권 수도사의 두건은 캐드펠 수사가 좋은게 좋은거지라고 하면서 끝맺어지거든요. 진짜 설마 이렇게 맺을까 싶은데 딱 모두에게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더라구요. 저는 그래서 이 시리즈 너무 좋네요. 지금 4권 읽고 있는데 갈수록 더 좋습니다. 그리고 벌써 10권까지 나왔어요. 신나요. ㅎㅎ

레삭매냐 2024-11-01 12:48   좋아요 0 | URL
저는 어제 1권 다 읽고 나서
바로 10권으로 넘어 갔답니다.

나머지는 도서관에서 수배해
서 보려구요.

한동은 캐드펠 수사의 매력에
옴팡지게 빠져서 보낼 듯 하
네요. 아, 당장 읽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4-11-01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권이나 되는 시리즈네요.
일단 한 권쯤은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배경이 중세라서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4-11-01 12:54   좋아요 1 | URL
https://www.youtube.com/watch?v=B4CraGmc7Xw

BBC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대요.
너튜브에 있는가 보더라구요.

위키피디아를 참조해 보니
1편의 배경이 1137년 5월이라고
하네요.

엘리스 피터스는 1977년부터
1994년까지 17년 동안 캐드펠
시리즈 21편을 썼네요.
현대판 발자쿠인지도 모르겠
습니다.

Forgettable. 2024-11-01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좋아하는 시리즈인데 새로 나와서 더 많이 팔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4-11-01 14:1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
예전에도 한 번 나왔던 것
같더라구요. 저희 도서관
에 오래 전 버전이 있더라구요 ^^

전 21권의 완간을 기대해 봅니다.

coolcat329 2024-11-01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2권 거의 다 읽어가는데 정말 캐드펠 수사 때문에 읽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참 끌리는 캐릭터에요.

레삭매냐 2024-11-01 19:50   좋아요 1 | URL
그러시군요.
저는 1권에서 10권으로 건너
뛰어 읽고 있답니다 ^^

중간도 읽을 계획이랍니다.

캐드펠 수사, 마음에 드는 캐릭
터입니다.

stella.K 2024-11-01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시리즈 첨 나왔을 때 재밌다고 해서 사 봤는데 뭐가 쟀다는거지? 읽다 결국 포기한 적이 있어요. 제 스탈은 아니던데 지금 다시 읽는다면 그때 왜 그랬을까 참회하며 읽게 될까요? 😢

레삭매냐 2024-11-01 19:52   좋아요 1 | URL
말씀 듣고서 찾아 보니 무려 20년
전에 나왔더라구요 :>

어쩌면,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또 보게 되면 감흥이 다를 수도 있
지 않을까요. 참회까지야...

stella.K 2024-11-01 19:59   좋아요 1 | URL
헉, 20년 밖에 안 됐나요? 전 한 30년쯤 됐나했더니. ㅎㅎ
그렇긴 하죠? 첨 읽을 땐 뭐야? 하다가도 나중에 읽으면
이렇게 재밌는 책이었어? 할 때도 있죠.
이 시리즈가 그런 게 되길 바라며 언제고 함 읽어 보겠습니다.

서니데이 2024-11-01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도서관에서 이 시리즈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때는 그렇게 인기있는 책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나오면서 표지가 달라져서 잘 몰랐는데, 리뷰 보니까 평이 좋은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4-11-02 10:29   좋아요 1 | URL
저는 이런 책이 있는 지도 몰랐
는데, 예전에 나온 책을 아시는
분들이 역시 알라딘 서재에는
많네요.

무언가 새로 만나는 기분이라
그런지 열심히 달려볼까 합니
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1-02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네요

레삭매냐 2024-11-03 00:39   좋아요 1 | URL
시리즈 시작부터 아주 화끈하게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