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화제라는 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 정말 얼마 만에 극장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티켓 값은 15,000원이 되었고, 이제 정말 괜찮은 영화가 아니라면 극장 찾을 일이 없겠다 싶었다.

 

나는 영화에서 전두광이 이끄는 하나회 쿠데타군이 역적모의를 한 30단에서 군 생활을 했다. 첫 해외여행으로 호주에 갔을 때, 군생활을 경복궁(경복 팰리스)에서 했다고 하니 외국 친구들이 그럼 니가 프린스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랬다. 역사 전공자라 전국의 탑과 부도를 찾아다니던 나는 경복궁 야간 근무에 나섰다가 여주 현지에서 만나지 못한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의 자태를 보고 감탄했었다. 라일락 피던 시절, 경복궁 근무에 나설 적에 향원정을 지나면서 풍기던 그 향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책 리뷰할 때만 서설이 긴 줄 알았는데, 영화 리뷰에서도 원래 버릇을 버리지 못하나 보다. “야수의 심장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는 김동규 중앙정보부장의 대통령 저격으로 10-26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바로 계엄령이 선포되고 참모총장이었던 정상호 장군(이성민 분)이 국가 비상사태를 주관하는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한편, 보안사 사령관이었던 전두광 소장(황정민 분)10-26 사건에 대한 합동수사부장 자리를 꿰차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를 한 손에 거머쥐게 되었다. 육사 11기 동기였던 9사단장 노태건과 절친한 사이였던 전두광은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해서 군의 요직을 장악한 상태였다.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정상호 사령관은 수도경비사령관으로 강직한 참군인 이태신 소장(정우성 분)을 낙점하고 자리를 맡아줄 것을 수차례 부탁한다.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요직이기 때문에 군인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자리지만, 이태신은 계속해서 사양하다가 결국 수락한다.

 

우연히 육본에서 하나회 무리를 이끌고 다니면 제 세상 만난 것처럼 행동하는 전두광을 마주하게 된 이태신은 대통령 저격사건을 빌미로 불필요한 수사를 일삼는 그에게 경고한다. 어쩌면 이 순간, 그는 이태신을 자신이 꾸미는 군사반란에 가장 방해가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회유할 수 없다면 바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에 선출된 최한규(정동환 분)의 신정부가 출범하기 전날인 1212일 거사일로 결정한 군사반란 도당은 전두광의 사저인 연희동에 모여 군통수권자인 계엄사령관을 10-26 사건에 엮어 체포하고 정권을 찬탈하려는 역모를 꾸민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그들에게는 아무런 명분도 없었고, 그들의 선배처럼 하극상을 벌여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을 그대로 영화에서는 보여준다.

 

쿠데타에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으로 보이는 수경사 사령관 이태신과 헌병감 그리고 특전사령관을 전두광의 생일이라며 연희동 요정으로 유인한 뒤, 반란군은 계엄사령관 체포에 나선다. 아군 끼리 무력 충돌까지 불사해 가면서 결국 반란군들은 정상호 장군 체포에 성공한다. 국방장관은 미 대사관으로 도주하고, 전두광은 대통령 최한규의 사후 재가를 받기 위해 관저를 찾지만, 대통령은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라며 계엄사령관 체포에 대한 재가를 거부한다. 계엄사령관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태신과 일행은 원대복귀해서 전두광의 쿠데타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에서 육본을 비롯한 모든 군부의 통신감청에 성공한 반란군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장면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하나회 반란군들이 똥별이라고 부르는 육본의 장성들은 서울 시내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그나마 이태신이 휘하 장병들을 동원해서 무력진압에 나서지만, 이미 군부대에 독버섯처럼 퍼진 하나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누가 먼저 서울로 전투병력을 투입시키냐의 경쟁에서 영화는 사활을 건 시간싸움의 정수를 보여준다. 2공수의 서울 진입을 막기 위해, 이태신은 전력을 다한다. 서울로 진입하는 모든 다리에 통행체증을 유발시켜 공수부대의 진입을 막는다. 그리고 이태신은 부평의 8공수에게 긴급연락을 해서 최대한 빨리 서울로 진공해 달라는 간절하게 부탁한다. 다른 수경사 예하 사단들에게도 SOS를 치지만, 상대적으로 2공수에 비해 기동이 느렸고 지휘관들이 주저하는 바람에 타이밍이 놓쳐 버렸다. 서울에서 대규모 교전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 참모차장이 서로 회군하자는 신사협정을 맺고 8공수를 회군시킨다.

 

이렇게 몇 번의 군사반란을 막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진압군은 번번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헌병감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육본의 장성들은 자신의 안위만 걱정해서 육본 벙커를 버리고 수경사 사령부로 도주한다. 전두광이 2공수를 동원해서 빈집이 된 육본 벙커를 탈취하면서 제대로 붙었더라면 벙커 점령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말에서 다시 한 번 좌절감을 느꼈다.

 

육본의 장성들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노태건은 자기 휘하 전방 부대에서 2개 연대를 빼서 서울로 진격시키고, 2공수 여단장 도희철은 쿠데타 성공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부대를 서울에 진입시키는 결정적 행동에 나선다.

 

이태신이 자신의 사령부에서 절대적인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군사반란군과 맞서기 위해 전차중대를 이끌고 소수의 병력으로 출동하는 장면에서는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이 반란군들에게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는 사자후에서 다시 한 번 배우 정우성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 배우가 정녕 내가 알던 <비트>의 같은 배우란 말인가.

 

군사반란에서 결정적 장면은 국방장관 오국상(김의성 분)이 반란군에게 체포되어 전두광의 손을 들어주는 장면이었다. 스피커 대결에서 오국상은 수경사령관 이태신을 직위 해제시키고, 군사반란을 막기 위한 이태신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 버렸다. 재가 승인을 받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대통령 최규한을 협박하러 나선 하나회 반란군들에게 대통령은 계엄사령관 체포안 승인 시간을 적는 것으로 소극적 저항을 보여준다.

 

사실 그동안 말로만 12-12 군사반란에 대해서만 들었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기 전까지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 무지했었다. 사실 반란군들의 계획은 엉성하기 그지없었고, 수차례 그들의 계획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지만 진압군 장성들의 대응 부재로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는 군사반란을 성공시키고 나서 의기양양하게 반란군들이 찍은 사진이 그 후의 모든 것들을 대변한다.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하다 보니 아무래도 많은 허구가 개입된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할 수 있는 반란군과 이태신군과의 세종로 대치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무언가 터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빌드업을 가져간 김성수 감독의 연출이 돋보였다. 아무런 명분 없이 권력을 탈취하는데 혈안이 된 깡패 같은 군인집단의 수장과 압도적인 세력을 과시하는 그들을 막아 보겠다고 혈혈단신으로 나선 외로운 의인이라는 선악의 대결구도가 좀 진부하긴 했지만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설적으로 영화의 제목은 <서울의 봄>으로 되어 있지만, 진짜 서울의 봄은 1979년이 아니라 1980년이었다. 그러니까 감독은 아직 오지 않은 에 대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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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1-27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람료 그쯤 할 거 같더니 과연ᆢ ㅠ 이 영화는 예전에 봤던 남산의 부장들인가? 그 영화를 생각나게 하네요. 거기서 이성민 배우 박통을 연기했는데 싱크로가 높았는데. 그때 전두환 역을 누가 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황정민은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네요.
역사 전공하셨군요.^^

레삭매냐 2023-11-27 18:29   좋아요 1 | URL
코로나를 기점으로 해서 가파르게
상승하던 영화표가 결국 1.5를 찍
었네요. 믿을 수가 없다는.

전두광이는 정말 혈압상승하게
하는 그런 주범이었습니다.

닷슈 2023-11-27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고 싶네요 근데 저는 그간 매냐님이 여성이라 생각하고있었다는 근데 군을 다녀오셨군요

레삭매냐 2023-11-27 18:30   좋아요 1 | URL
여군은 아니구요... 암튼 그랬다고 합니다 ㅋㅋ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습니다.
대략 12월 12일의 9시간을 다루었다고
하는데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밀도가
상당합니다.

그레이스 2023-12-06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주 저희 아이들이 이 영화 예약하더군요.
저는 영화관 다녀오면 머리가 아픈 사람이라,,, 나중에 혼자 봐야겠네요

레삭매냐 2023-12-06 09:50   좋아요 1 | URL
그러시군요. 저도 정말 오랜 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 봤답니다.

근데 오늘은 또 리들리 스콧의
<나폴레옹>이 개봉한다 해서
회사 끝나고 가서 볼까 어쩔까
생각 중이랍니다.

그레이스 2023-12-14 00:17   좋아요 1 | URL
아이들이 보고와서 예매해주겠다고 하고 남편도 보자고 권해서 보고 왔어요. 황정민, 연기 정말 잘하더군요.
보는 내내 씁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다 알고 있던 내용에 픽션이 추가되었고, 전두광이 너무 부각되어서, 이 군사반란을 뒤에서 기획했던 두 인물은 뒤로 물러나고, 함께 했던 반란군들도 다 바보처럼 보이는게...;;
이 현대사를 모르는 세대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기겠다고는 생각됩니다.
왜 유령예매가 많은지 알 것 같았어요.

레삭매냐님 리뷰 덕분에 영화 볼 생각 플러스 했습니다.~^^


레삭매냐 2023-12-14 09:54   좋아요 1 | URL
저도 영화 보고 나서 요즘 너튜브에
범람하는 자료와 분석들을 보고
있는데...

반란인 시작된 다음 9시간 정도 동안
진압군이 반란군을 제압할 수 있는
기회가 한 10번 정도 있었다고 하더
라구요. 반란군의 모의도 치밀하지
않았는데, 상대의 선의만 믿고 9공수
를 부평으로 되돌려 보낸 게 정말
아쉬웠습니다.

이젠 <노량>의 시간이 도래했네요.
다 아는 이야기지만, 트레일러만
봐도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그레이스 2023-12-14 14:06   좋아요 1 | URL
그게 영화의 매력이죠.
두통만 아니면 즐길텐데,,, 노량!
또 다른 정보를 얻어갑니다.^^
 

잠자냥님의 페이퍼를 통해 현암사 78주년 이벵의 존재를 알게 됐다.

뭐 응모를 하게 될 지 아닐진 모르겠지만...


일단 재미로 한 번 가보자.



당장 구할 수 있는 현암사 책이 없는 관계로, 미미 여사의 책을 사러

들른 알라딘 매장에서 현암사 책을 휘리릭 찾아 봤다.


오, 몇 권이 있구만 기래.


이런 책이 다 있었네. 미국 연방대법원의 세상을 뒤흔든 판결 31가지

를 정리한 책이라고 한다.



< 밀러의 주장은 음란물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는 곧

헌법적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가 외설이냐를 규정하는 것은

주의 법령이나 규정이 아니라 오직 통일된 국가적 기준이 적용될

때만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78pp >


그리고 따라 나오는 게 바로 이제 외설을 판단하는 기준을 정할 때

다라는 점에 주목한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뉴스를 가짜 뉴스라고 규정하고 신주 모시듯

하는 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검열 시스템을 보란 듯이 시전

하는 암울한 시절이 도래했다.


수상한 시절에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서양 고전 중에서 가장 부러운 콘텐츠 중의 하나가 바로

<그리스 신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정본이 없다는 점도 특이할 만하

다. 어쩌면 그리스 신화는 근대 들어서 재해석되면서 새롭게 태어나

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서양 작가들이 줄창 우려 먹는 소재이기도 하다. 쫌 부럽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우리 상상 속의 신들과 달리 엄격하

지 않고, 오히려 더 인간적이지 싶다. 그들은 인간들처럼 질투하고

욕심 부리고, 탐욕적이기까지 하다. 어떤 면에서 신의 품성과는 좀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 이 가녀린 피조물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번성하여 그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헌심과 매력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했다. 78pp >


분명 스티븐 프라이 작가는 여기서 예의 피조물들을 요정과 정령들

울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우리 인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한 때 그런 적이 있겠지만, 현실에서 세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편리라는 이유를 들어 지구별의 환경을 오늘도 파

괴하고 있다.



오늘 점심에는 쌀국시를 먹었다.


참 오늘 첫눈이 내렸지. 내가 일하는 동네에서는

거의 블리자드 수준이었다.


그렇게 눈내리는 장면을 보며 쌀국시를 먹고자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어라 눈이 금방 그쳤네.


사무실에서 찍은 동영상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지상에서 찍었어야 했는데... 좀 아쉽다.


집에 가서 현암사 책을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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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1-17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시적엔 현암사의 책을 꽤 읽었던 것 같은데 집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민음사와 문학동네 책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트위터를 하지 않아 이 이벤트에 응모하진 않겠지만 독서의 지평을 넓혀야겠다는 옹골찬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를 준 이벤트이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3-11-18 09:17   좋아요 1 | URL
저두 현암사 책으로는 소세키 선생
의 시리즈만 개지구 있나 봅니다 :>

오래 전에 트위터 탈퇴해서 저도 마찬
랍니다 ~ 인스타는 가능할 지도 모르
겠네요.

추가로 해보려고 작심했으나... 귀차니즘
폭발로 헷

stella.K 2023-11-17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적절한 정신의 양식과 육의 양식의 환상적인 조화로군요! ㅎㅎ

레삭매냐 2023-11-18 09:18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말씀해 주신 대로
영육의 양식이 한 포스팅에
콜라보된 셈이네요 ^^
 

지난달에는 독서일기를 하나도 쓰지 않았네.

하긴 책은 꾸준하게 사들이면서도 책을 읽지 않았으니.

 

이창래 작가의 시간도 거의 나오자마자 사두었으나 읽지 못하고 있다.

소장각만으로도 만족하는 셈인가.

 

어제는 회사 연차를 쓰고 치아 치료를 받았다.

충치가 생겨서 치료 받기로 했는데, 보철이 빠져서 그것도 같이 처리를 했다.

치과에 갈 때마다 두 번 놀란다고. 한 번은 이가 너무 아파서, 그리고 두 번은 비용 청구서에... 어제도 원래보다 충치가 심해서 옆의 이까지 썪었다면 레진 치료를 해야 해서 15만원 정도 더 들 수 있다고 하더라. 세상에나...

 

천만다행으로 옆의 치아에는 옮겨지지 않아서 15만원 굳었다.

한시간 반 정도 치료대 위에 올라가 있으려니 입이 쩍쩍 마르고 아주 피곤하더라.

오늘 독서 모임 위해서 나름 컨디션 조절한다고 했는데 낮잠 자는 바람에 밤에 잠이 오지 않더라.


 

어제 간만에 알라딘 산본점에 들러서 앤드류 리즐리가 쓴 <! 라스트 크리스마스> 회고록을 샀다. 도서관에 있으면 빌려다 보려고 했으나, 도서관에 없어서 그냥 사 버렸다. 마침 적립금도 두둑하게 벌어둔 게 있어서 바로 구매.

 

내가 팝음악에 빠지게 된 게 바로 왬 그리고 조지 마이클 덕분이 아니던가. 지금도 놀라운게 1983년 왬의 첫 앨범 <판타스틱> 발표하던 때, 조지 마이클이 스무살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솔로로 독립해서 그 유명한 <페이스>를 발표할 땐 24살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그의 가장 근거리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리즐리의 회고가 반가웠다.

그들 역시 내가 팝음악에 빠지던 시절의 비슷한 궤적을 그린 모양이다. 최신유행곡 40곡을 분석했다나 매주. 나는 케이시 케이슴 아저씨가 진행하는 <아메리카스 탑 40>를 매주 4시간씩 들었지. 영어는 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그 때 좀더 영어를 잘했다면 그 프로가 얼마나 더 재밌었을까.

 

오늘은 달궁 독서 모임의 출격의 날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을 다 읽고 나서 리뷰까지 모두 작성했다. 난 양장팬이라 민음사에서 전집 시리즈로 나온 <반쪼가리 자작>을 빌려서 읽었다. 중고서점에서 사고 싶은데 잘 나오지 않는 전집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네.

 



점심 먹고 출격해야지.

오늘 처음으로 꼬맹이랑 먹태깡 한 봉다리를 샀는데, 단가가 5천원이었다. 이거 사기 아니야.


세상에 내가 포스팅하게 사진 한 장만 찍는다고 해도,

못찍게 하나. 내가 먹는다고 했냐? 이노마.



보너스컷으로 이번에 수경 재배하고 있는 아보카도 녀석이다.

그동안 딱 한 번 아보카도 재배에 성공했는데...


이번에 잘 뿌리를 내리고 있는 녀석이다.

원래 소주잔에 키우다가 뿌리가 얼마나 내려올지 몰라서 이번

에 별다방 커피병으로 식재(?)했다.



지난 봄에 화려하게 피었던 네리그타 튤립

들도 슬슬 다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기대해볼게 친구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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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11-13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리그타 튤립, 너의 빛을 보여줘!
겨울이 오기 전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레삭매냐 2023-11-14 19:09   좋아요 0 | URL
꽃이 지고 나서 구근을 신문지에
싸 놓으라고 하던데... 저는 그냥
흙에 두었거든요.

그런데 때가 되니 다시 싹이 올라
오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지금 같아서는 어쩌면 봄이 오기
전에 꽃이 필 지도 모르겠다는.

그레이스 2023-11-16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WHAM 좋아했는데,,, 마이마이 시절 귀에 꽂고 듣던 생각이 나네요. 책상에 앉아서 공부는 안하고 계속 되감던, 라스트 크리스마스!^^

레삭매냐 2023-11-16 18:13   좋아요 1 | URL
오옷, 그레이스님도 역시나
WHAMANIA 셨군요 ~~~
동지를 만난 기쁨이 !

하라는 공부는 제쳐 두고
어찌 그리 음악만 줄창
들었었는지요.

<라스트 크리스마>는 지금도
가사가 고저 줄줄 나옵니다.
 



2년 전, 멀리 카자흐스탄에 유명을 달리 하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해방된 조국으로 모셔 오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던가.

 

장군의 유해가 고국의 영공으로 들어오는 순간, 대한민국 공군을 대표하는 전투기에 탑승한 어느 소령님이 장군을 모시겠다는 무전을 들었다. 78년이란 시간이 흘러, 장군이 조국에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육사 교정에 모신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로 나라가 다 떠들썩하다. 21세기도 23년이나 지나서 해묵은 이념 논쟁이 벌어지는 모습에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이웃 초란공님께서 민족의 장군 홍범도 읽기를 제안해 주셨다.

다른 건 몰라도, 책 사는 거 하나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나는 아침 출근길에 송은일 작가의 <나는 홍범도>를 사들었다. 그 책을 들고 출근하는 길이 왜 이렇께 뿌듯하던지.

 

책 읽기에 앞서 너튜브로 워밍업을 했다.

우선 황현필 선생이 2년 전에 올린 1921년 자유시참변을 다룬 영상을 봤다.

방송에 나와 앵무새처럼 홍범도 장군이 마치 자유시참변을 진두에 서서 지휘한 것처럼 역사를 날조 왜곡하는 무리들이 꼭 봐야할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GMY_rIzAfs&pp=ygUT7ZmN67KU64-EIO2Zqe2YhO2VhA%3D%3D

 

봉오동전투와 6개월 뒤의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압도적 병력을 동원해서 간도 일대의 한인마을들을 초토화시키는 일제를 피해 러시아령 자유시로 독립군 부대들은 이동을 해야했다. 이 과정에서 무장한 독립군들과 러시아 농민들 사이에서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고 당시 극동 러시아 지방정부는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요청했다. 당시 자유시에서는 무장해제에 찬성하는 이르쿠츠크파와 반대하는 상해파 고려의용군이 대립 중이었는데, 1921628일 무장해제를 반대하는 고려의용군을 러시아 적군이 공격해서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일부 극우 너튜버들이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전력을 문제 삼기 위해, 자유시참변에 홍범도 장군이 책임이 있다는 식의 주장을 전개했다. 일부 패널들은 방송에서 학계에서도 정설로 인정된 사건의 장군의 무관함에 대해서는 알아볼 생각도 없이 앵무새처럼 짖어대는 꼴을 보려니 속이 뒤집어질 판이다. 무식하면 용감무쌍하다는 말이 여기에 적용되지 싶다. 우리는 이런 무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무식이들은 항상 팩트 타령을 해대지만, 진짜 팩트에 대해서는 1도 관심이 없다. 팩트를 눈 앞에 들이대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당밀이 발라진 탕후루 같이 달달한 조작되고 왜곡된 팩트만을 원할 뿐이다. 그들의 선별적 믿음은 거의 신앙 수준이기 때문이다.

 

구한말 머슴에서 출발해서, 승려와 포수 그리고 의병을 거쳐 독립군으로 거듭나는 장군의 일대기들을 9월에 읽는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우리 책쟁이들은 고저 책으로 말할 뿐이다. 再造山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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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9-01 11: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단 읽고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식한 자가 더 용감하다는 말이 지금보다 더 맞아 떨어질까요.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니 정말 기가 찹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3-09-01 14:05   좋아요 1 | URL
너무 무식해서 상대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위 아래˝가 뒤집어진 역주행의
시대입니다.

초란공 2023-09-01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유투브 정보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3-09-01 14:06   좋아요 1 | URL
오늘부터 시작하기 위해 어제
공부를 좀 했습니다.

어려서 일케 공부를 했다면 국사
만점을 받았을 수도... 그게 다
필요(?)에 의한 공부가 아닌 무조건
외워라식의 폐해가 아니었는지.

미미 2023-09-01 1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현필 쌤 이 강연 올릴까말까 했었는데 레삭매냐님이 올려주셨네요!
멋진 글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23-09-01 14:08   좋아요 2 | URL
세 가지 정도 키포인트로 정리해 주시는데
아주 깔끔했습니다.

일제에 맞선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를
애써 외면하고 폄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애처롭게 느껴졌습니다.

초란공 2023-09-01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현필 샘 왈, ‘제발 방정식의 기본도 모르면서 미적분 이야기하지 마세요!’라고 답답해하시네요^^

레삭매냐 2023-09-01 14:10   좋아요 2 | URL
고장난 녹음기도 아니고...

장 뭐시기 평론가는 사실 확인은
고사하고 뉴라이트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외워되는데 잘 모르는
이들은 까빡 넘어가겠더라구요.
하도 신념에 차서 외워대서요...

무식하지 않으면 그렇게 용감하지
않을 텐데 말이죠. 무식이 죕니다.

그레이스 2023-09-04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욱하는 마음을 누르고, 책 읽기로!

레삭매냐 2023-09-04 15:53   좋아요 2 | URL
결국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결정이 났다고 하더군요. 정말
노답입니다.

그레이스 2023-09-04 16:10   좋아요 1 | URL
지금 동영상 봤습니다.
설명을 잘하시네요
 


 

어제는 퇴근길 라디오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다.

그리고 영화의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대해서도. 재개정판이 나오기도 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던데, 과연 천페이지가 넘는 그 책을 누가 다 읽을까 싶기도 하고.

 

암튼 영화/평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개발 계획이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그가 유럽 대륙 출신 망명 과학자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 태어난 과학자였다. 다만, 그의 아버지가 독일 출신 유대계였다고 한다. 하버드 화학과 출신이고.

 

19455, 유럽 대륙에서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을 붕괴시킨 연합군의 다음 목표는 태평양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던 일본이었다. 당시 일본은 1억 총옥쇄라는 말도 안되는 구호 아래, 미국의 상륙을 대비한 본토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태평양의 사이판-이오지마 그리고 오키나와에서 죽음을 불사한 일본군을 상대하느라 어마어마한 희생자를 기록한 미국 정부는 단박에 전쟁을 끝낼 이른바 한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막 개발된 핵폭탄을 일본에 투하해서 전쟁을 끝내겠다는 결정이었다. 본토결전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미군 100만 명이 희생된다는 결과에 미국 정부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그래서 미영 연합군은 유럽 전쟁을 끝낸 소련의 스탈린에게 대일전 참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유럽 대륙에서 제2전선을 신속하게 열어서 독일군의 대소전 역량을 감소시켜 달라는 요청을 미국과 영국이 지연시켰던 것처럼, 소련은 그럴 마음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힘이 다 빠진 다음에 느긋하게 만주로 진공해서 거저 먹겠다는 속셈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에 따르면, 소련군이 미군보다 먼저 베를린 공략에 나선 이유 중에 하나가 히틀러의 비밀 프로젝트였던 핵무기 개발 연구소를 미군보다 먼저 장악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왜 이렇게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소련은 미국에 심어 놓은 스파이가 보내준 정보로 맨해튼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어제 들은 라디오 방송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핵무기 개발을 위해 거의 전국가적인 차원의 노력을 동원했다. 심지어 농축우라늄을 만들기 위한 원심분리에 도체로 사용되는 구리가 모자라서(이 부분은 운전 중에서 잘 모르겠다) 재무성이 보유하고 있던 은을 14,000톤을 공출했다가 사용했다나 어쨌다나. 이렇게 개발한 핵무기를 1945716일 시험에 성공하고 채 한 달이 못되어 실전에 사용하게 된다.

 

19458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리틀보이로 명명된 핵폭탄을 투하했다. 오펜하이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파괴왕 혹은 죽음의 신이 된 것이다. 이거야말로 역설이 아닌가. 모든 파괴를 멈추기 위해 개발한 가공할 위력을 핵무기가 어쩌면 인류를 공멸시킬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말이다. 사태는 소련의 대일참전으로 더욱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참전으로 미국은 나가사키에 한 번 더 핵무기를 투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의 원폭투하로 태평양전쟁이 끝났다고 알고 있었지만, 전후에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무조건항복에 결정적 이유는 소련군의 참전이었다. 사실 일본은 원폭을 맞은 뒤에도 군부 위주로 결사항전 기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남방전선으로 주력 관동군이 차출된 만주주둔 일본군의 전력은 사실상 허깨비 수준이었고 소련군은 단 일주일 만에 일본이 전쟁에 돌입한 핵심 이유 중의 하나였던 만주를 휩쓸어 버렸다. 결국 더 버틸 수 없었던 일본은 무조건항복을 선언했다.

 

라디오 방송을 다 듣지 못해, 전후 오펜하이머 박사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스파이로 몰려 씁쓸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수소폭탄 개발에도 오펜하이머는 반대했다고 알려진다. 영화에서 핵무기 개발을 주도한 사람으로서 도덕과 윤리 문제는 또 어떻게 다루어졌을지 궁금하다. 영화에 19금 설정이 많이 나온다며 가족과 같이 관람하러 갔다가 민망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그 부분도 살짝 궁금하긴 하다. 오펜하이머는 후두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나중에 과연 내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보게 될까? 아마 아니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읽기 시작한 <베를린 함락 1945>나 읽어야지. 책은 무지 재밌다. 지도 첫 페이지부터 오탈자가 등장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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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8-19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보시죠. 물론 전 극장간지가 넘 오래되서 가서 볼 거 같지는 않지만 흥미롭긴 하더군요. 얼마전 알쓸별잡과 인물사담회에서도 다루었고요. ㅎ

레삭매냐 2023-08-19 22:26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저도 언급해 주신 프로들 본다고
하고서는 미처 못 보고 있네요.
아마 그 프로들을 보았다면 저의
허접한 포스팅의 퀄이 좀 더...

극장은 얼마 전에 톰형 보러
수년 만에 갔더랬답니다.
돈이 아끕지 않더라구요.
말씀해 두신 대로 책 대신
아마 영화로 보게 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적 느낌이~

서니데이 2023-08-26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펜하이머 영화 보러가는 분들 많다고 들었어요.
놀란 감독 신작이라서 개봉전 소식 들었을 떄부터 보고 싶긴 한데,
여름이 너무 더워서 주말에도 영화관을 가는게 잘 안되네요.
책도 페이지가 많다고 하니 쉽게 시작하긴 어렵겠고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08-31 14:42   좋아요 1 | URL
저도 벽돌책 읽을 자신은 없고...
영화로나마 보고 싶다는 생각을
초큼 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3-08-26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이 인기인가 봅니다. 그런데 책값이 비싸네요.
이 책도 벽돌책인가요?

레삭매냐 2023-08-31 14:43   좋아요 0 | URL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급은
아니지만, 준벽돌급이라고 할까요.

얄라알라 2023-08-27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 첫페이지^^;;;

레삭매냐 2023-08-31 14:43   좋아요 1 | URL
퀘니히스베르크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