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기침을 동반한 감기에 걸려서 아주 제대로 고생했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에 복귀로구나.
이걸 반가워해야 할지 어째야할지.
오늘 저녁에는 어제 낮에 실컷 먹다가 싸온 아구해물찜을 재료로 삼아 볶음밥을 해먹었다. 언젠가 준비해둔 후리가케까지 뿌리니 성찬이 따로 없더라. 이럴 때, 예전에 혼자 살던 시절이 생각나는구나. 순전히 생존을 위해서 먹던 시절의 추억들. 그 시절 이야기를 풀자면 또 한 보따리일텐데.
아참, 아구찜에는 왜 이렇게 콩나물이 많이 들어가는지. 맛이 있긴 한데, 이가 점점 더 시원찮아져서 그런지 질겨진 느낌이랄까. 설거지하다가 든 생각인데, 가위로 콩나물들을 좀 자를 걸... 항상 다 먹고 난 다음에 드는 생각들이지.
오늘 점심에는 인스타맛집(?)이라고 소문난 수원의 어느 식당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가게 앞에 늘어선 차량의 행렬을 보고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지만... 그 느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가게 안을 날아 다니는 파리 때문에 밥맛이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무조건 1인 1식을 주문하란다. 아니 그냥 밥메뉴도 만이천원, 고등어 추가도 만이천원인데 왜... 그때 식당 문을 박차고 나왔어야 했나.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반찬이 좋은 것도 아니고... 하는 수 없이 동행한 꼬맹이 때문에 생선정식 2인분(이것도 무조건 2인 이상이라고 해서)에 콩비지를 주문했지. 콩비지가 너무 싱거워서 먹다가 나중에 양념간장을 좀 얻어다 먹으니 그나마 낫더라. 동행들의 일그러진 인상 때문에 내가 다 밥을 못 먹겠더라. 아, 이럴 때를 대비해서 근처에 백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몇 번 가던 북극해 고등어가 차로 3분 거리였는데 말이지. 돈 쓰고 기분 잡치고를 이런 거라고 해야 하나 어쩌나.
밥을 먹었으니 그냥 가기가 아쉬워서 근처 탑동의 시민농장을 찾기로 했다. 다행히 멀지 않아 금방 갈 수가 있었다. 예전에 갔던 당수동의 시민농장이 얼마 전에 가보니 대단위 아파트숲으로 바뀌어서 아쉬웠는데...
너른 공간에 펼쳐진 잔디에 사람들이 텐트도 치고 공놀이도 하고 있더라.
다음 주초에는 영하의 날씨로 떨어진다고 하던데, 오늘 낮에도 차 온도는 30도던데.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간 모양이다. 아직 음력 8월 아닌가.
작지만 벼농사도 지어서 누렇게 익은 벼구경도 할 수가 있었다.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네.
시민농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작물들을 심은 모양이다.
누구에게 들으니 한 번 시작하면, 주말 내내 농장에서 노가다라고.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들이 곳곳에서 꽃을 피우려고 준비 중이다.
그것도 찍질 못했네 그래. 집에서 키우는 녀석들은 대가 비실비실한데 야외에서 자란 녀석들은 줄기가 아주 단단해 보인다. 종자가 다른 건지 아니면, 환경 때문에 그런 건지.
억새밭에서도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더라.
사진 스팟인가 보다.
이렇게 도시농업 전문가 수료텃밭이라는 타이틀의 밭도 보인다.
우리 꼬맹이는 잠자리채를 들고 사방에 날아다니는 잠자리 사냥에 나섰다.
곤충잡기에 나름 전문가인 내가 요령을 알려 주었지만 내 말은 개코도 듣지 않는다.
앞에서 채를 날리지 말고, 장대에 가만 앉아 있는 녀석들은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후리라고 그렇게 말하는 데도 지 맘대로 하다가 결국 잠자리채 망을 북 찢어 먹었다.
엉터리로 해서라도 잡으니 나는 그게 신기하다. 이놈아 잠자리가 널 잡겠다.
하도 날뛰어서 목덜미에 땀이 줄줄 흐르는 꼬맹이.
결국 잠자리채는 부서 먹고 말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내가 가만 둘러보니, 텃밭에는 대개 다음의 작물들이 심겨 있었다.
배추-무-고구마-가지-고추-당근-호박 이 정도가 아닐까. 배추는 특히 요즘처럼 비싼 시절에는 아주 요긴하지 않을까 싶더라.
휴일인데도 출동하셔서 열심히 작물을 가꾸시는 분들이 보였다.
참 주차장에서는 장구를 치는 분도 있어서 한참 리듬을 타보기도 했다.
요즘이 사마귀들이 활동하는 계절인지 사방에 사마귀가 출몰하고 있다.
이 녀석은 지난 명절 전날 방문한 시흥 늘솜당에서 만난 거대한 사마귀다.
태어나서 이 정도 크기의 사마귀는 처음 봤다. 다큐멘터리에서 사마귀가 개구리를 사냥해 잡아 먹는 걸 보고 기겁했는데 나중에 보니 뱀이며 새까지도 잡아 먹는다고. 정말 무시무시하지 않나.
작물에 물주는 게 농사의 핵심이라고 어디선가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인지 곳곳에 이렇게 물뿌리개가 걸려 있더라.
그리고 보니 우리 동네 천변 텃밭에 농사짓는 이유 중의 하나가 물대기가 용이해서가 아닐까. 그렇게 농사짓지 말라고 해도, 해마다 반복해서 단속과 농사가 거듭된다.
쓰레기 투기를 하지 말라는 경고문인데, 보기 좋게 그 앞에 이렇게 쓰레기들을 투척해 주시는 센스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름 재활용을 하는데, 리사이클 센터에 가보면 가관이 아니다. 귀찮다는 이유로 우리의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걸까.
언젠가 유시민 작가가 방송에서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우리 인류가 에너지를 소모하고 환경에 쓰레기를 만들어내면 우리 지구별이 세 개는 필요하다고. 동네 공원에 가봐도 쓰레기 천지다. 쓰레기통을 만들지 않으면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희망사항은 어디서 나온 건지. 차라리 쓰레기통을 잘 구비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긴 바로 앞에 쓰레기통이 있어도 그냥 길에 쓰레기를 내버리는 장면을 보고 기겁한 적도 있지.
요즘 나름 식집사 행세를 하고 있어서 아침에 커피를 사러 갔다가 복귀하는 길에 만난 꽃집에서 황칠나무를 하나 발견했다. 고 녀석 귀여운데 그래.
참 지난 몇 달 동안 밖에 내둔 치자나무를 들여놔야 하나. 다음 주에 영하로 날씨가 떨어지면 바로 얼어 죽는 건 아니고 말이지.
마지막은 늘솜당에서 보기만 하고 미처 사오지
못한 디저트와 육쪽마늘빵인지 무언가에 대한
미련으로 엔딩.
아디오스 명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