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쓴 이 시들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경찰들의 강제 진압, 희망버스 등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들이 시에 담겨 있어 읽으면서 우리가 겪어왔던 일들을 떠올릴 수가 있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첫 번째로 실린 시를 보면 이 시집에서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제목이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이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존재는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약자의 편에 선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그들만이 잘사는 세상이 아님을...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


우리는 당신들의 집과 건물이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를 대하는 당신들의 인성도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삶과 생활이

더 윤택하고 빛나길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도

환하고 기름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노예나 종이 아닙니다

당신과 나의 권리는 서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바르게 정돈하고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쓸겠습니다

당신은 닦으십시오


부디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


송경동,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비. 2022년. 10-11쪽.


시에서는 너와 나를 가르지 않는다. 우리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위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너가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나'는 존중받고 싶지만, '너'는 굳이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 시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치워야 할 쓰레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누르려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공동체의 생활에 필요없는 치워야 할 존재다.


그러므로 시인은 당신들은 제발 그런 존재가 되지 말라고 한다. 당신들은 쓰레기니까 치워져야 한다가 아니라, 당신들도 우리와 같이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을 하는 존재라고 한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나와 나의 구분은 없다.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 함께하지 않고 방해하는 존재는 치워야 한다. 


이런 의미를 지닌 시들이 이 시집에 실려 있다. 세상의 불의를 참지 않고 고치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런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사회의 불의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백신'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장 오래된 백신'(104-105쪽)에서 시인은 '사랑과 연대라는 가장 오래된 백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을 살게 해주는 '사랑과 연대'. 이것들이 충만한 세상이라면 시인이 원하는 대로 '큰 의미 없이도 우리 모두를 살리는 / '물결'이나 '바람결'이나 / 조용한 '숨결' 같은 것도 느껴보며 / 조금은 다른 삶의 결로도 살아보고 싶은 / 해 질 녘 우연한 그리움'(''결'자 해지'에서. 93쪽)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그리움이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는 시인에게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시인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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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6-04-26 0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 잘봤습니다. 오늘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kinye91 2026-04-26 06: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남극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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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장면이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도 있고. 또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장면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삶들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너무도 다양하기에, 좋다고 여기는 삶도,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삶도 우리 주변에 있다. 우리가 좋지 않은 삶이라고 하는 것들을 보지 않으려 애쓰고는 있지만, 보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그런 삶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삶들 속에서 자기 삶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길을 잃지 않도록... 어쩌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삶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면역 주사를 맞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공간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삶에 대한 면역을 형성하는... 그러한 백신.


문학의 효용성을 따지기 전에 문학 작품은 그렇게 재미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어떠한 면역을 형성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가들이 삶의 다양한 면을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할 것이고.


클레어 키건의 초기 단편집이다.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출간한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첫 작품인 '남극'을 읽으면서 어, 이 작품 어디서 읽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읽었더라? 분명 클레어 키건의 작품인데... 찾아보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그래, 읽었네... 읽었어. 그런데 왜 이 작품이 같은 출판사에서 또 같은 번역자에 의해서 같은 년도에 다른 책에 각자 실려 출간되었지? 하는 의문.


단편집들이 가끔은 같은 작품을 수록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해에 나오다니.. 참. 그것을 밝혀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 첫 작품인 [남극]이 클레어 키건의 초기 작품들의 성향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여기는 삶 너머에 있는 삶들을 보여주는 작품들.


'남극'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시작부터가 일상, 평범, 보통을 넘어서는 삶의 다른 단면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10쪽)


분명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결혼 생활에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는 얘기다. 남편과의 관계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삶만을 지속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삶이 여기서 시작된다. 다른 삶에의 궁금증.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것으로 인해 비극이든 희극이든 또 일상으로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우리 삶에서는 여러 변수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변수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남극'... 보통 사람들은 가지 못하는 곳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장소가 바로 남극이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떠나야 하는 곳. 일상에서 겪는 보통의 삶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남극을 탐험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남극을 가볼 수 있는 경우가 희박하듯이 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러한 행위이기도 하고.


이런 일상에서 보기 드문 행위들이 이 소설집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그럼에도 많은 소설들에서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서, 클레어 키건은 소설을 통해서 여전히 이 세상은 한쪽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알려졌을 때 우리를 경악에 빠뜨리는 가부장적 폭력이 사실은 삶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음을 이 소설집의 많은 작품들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령 '노래하는 계산원'이라는 소설에서는 둘만 남겨진 자매의 이야기인데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 둘 다 굳이 못을 다시 박지 않았다. 우리 삶에 저 나쁜 놈을 다시 걸어두려 하지 않았다.'(135쪽)


벽에서 떨어진 액자. 그 속에 들어 있던 사진. 그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의 아빠다. 그런데 아빠를 '저 나쁜 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가부장의 폭력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고, 이것을 이겨내는 자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남자에게 종속되는 여자의 삶을 거부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클레어 키건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보여진다. 그렇게 우리가 감추려고 하는 삶들을 클레어 키건은 앞으로 끌어온다. 부정하지 말라고. 안 보려 한다고 그런 삶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삶은 눈속임이 아니라고. 무슨 마술처럼 있던 것을 없던 것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자신을 옥죄는 삶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모습. 주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다시 서는 모습을 이 소설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이라는 소설에서 '나는 너에게 위안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남자를 아이처럼 보살피는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내 세대에서 끝이다.' (168쪽)는 표현이나 '어디 한번 타봐'라는 소설에서 '세상에. 드디어, 10년 만에, 그녀는 원하는 것을 가질 참이다. 살아 있는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줄 사람, 이 옷 속에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느끼게 해줄 사람을 말이다. 로슬린은 이제 아닌 척하면서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194쪽)는 표현처럼, 가부장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의 모습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렇듯 삶에서 겪고 싶지 않은 일들도 역시 우리들 삶에 함께 존재한다고. 이것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고 클레어 키건은 작품을 통해서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클레어 키건의 이 소설을 읽으면 백신 주사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삶의 부정적인 모습을 어느 정도는 경험한 듯한 그런 느낌....


다른 소설들처럼 술술 읽히게 간결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사건을 전개하고 있지만, 그 짧은 소설 속에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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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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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에 '헐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SF작가'(786쪽)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많이 만들었다는 말인데... 사실 본 영화가 거의 없어서 그런 줄 모르고 있었다. 이름은 워낙 SF계에서는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집 제목이 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보지는 않았지만... 소설도 단편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어라? 짧은 소설이네 하고 놀라기도 했고. 미래 범죄를 예방하는 경찰이 자신이 그 명단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다음은? 그런 소설과 영화?


소설을 읽어보면 영어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번역에서 소수보고라고 되어 있다. 소수자의 보고는 다수의 의견과 다르다는 말인데... 이는 재판과정에서도 소수의견을 반드시 명기하는 것을 보면 다수의견만큼이나 소수의견도 중요하다고 여겨야 한다. 


그렇지만 소수의견이 밝혀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다수의견만을 알고 지내지 않는가. 소수의견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생각하지도 않고. 소수의견을 알게 되는 사람은 다수의견만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소설은 그 지점을 파고든다. 소수의견을 볼 수 있는 경찰의 책임자. 그는 자신에게 씌워진 범죄 행위를 미리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위를 미리 안다는 것은 그대로 행동한다는 말일까?


아니다. 자신의 행동을 미리 안다면 그 결과를 안다는 말이니까, 예측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까. 


이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그렇다. 보고서를 본 사람의 행동을 어느 시점에서 예측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보고서를 보지 못했을 경우, 그는 예측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보고서를 본 이후의 시점에서 예측을 한다면, 그는 자신을 위해서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또 본 이후에는 어떨까?


자신과 조직이 걸린 문제라면,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까? 소설은 그 점을 파고든다. 즉 인간은 예측대로 행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면 그대로 순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순응 대신 바꾸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정해진 운명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즉, 결과는 같더라도 예측된 대로 행동했느냐 아니면 자신의 의지로 행동했느냐는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예측 결과를 안다. 그럼에도 예측 대로 행동하기로 한다. 왜? '정의'라고 하면 자신의 행동이 개인의 이익보다는 '정의'를 구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조직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기도 하고.


이런 인간의 모습. 이것이 바로 인간 아닐까? 결과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 결과가 일어나는 과정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라는 것. 이것이 인간이 지닌 특성이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우리나라 점(무속)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점을 치기도 하는데, 그 점괘에 따라서 똑같이 행동할까? 오히려 점은 자신이 결과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지 않을까?


미래가 완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점(무속)에서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안다는 것이 행동을 바꿀 수 있음을, 어쩌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자들이 그 정보를 이용해 남을 재단하고 억압할 수도 있음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경찰 책임자로서 정보를 미리 볼 수 있었으므로, 그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 가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 작가는 잠시 언급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소설은 이렇게 인간의 행동이 예측대로만 되지 않음을, 또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정보를 아는 존재에 의해 휘둘릴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집에는 많은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1950년대에 발표된 소설들인데... 짤막한 소설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다.


사건과 인물들에 여백이 많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 때 만드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 비어 있는 여백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우면 되기 때문인데...


소설의 주제를 살리면서도 많은 부분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기에 이 작가의 단편 소설들이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거기다 이 주제들이 SF의 형식으로 당시 냉전 상황이나 독재,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소설들에서 배경이 핵전쟁 이후로 설정되어 있고, 적대국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 시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냉전이 사람들의 삶만이 아니라 지구도 파괴할 수 있다고, 이렇게 지구를 파괴한 인간들은 지구에 살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인간은 지구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듯한 소설도 있다.


'단기 체류자의 행성'이라는 소설인데, 이 소설에서는 방사능 속에서도 살 수 있는 생물들이 살아남은 지구에 인간들은 단기 체류자로 이곳에 잠시 온 방문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인간들이 파괴한 행성. 그렇게 만든 인간들은 지구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풍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이 작가 대단하구나,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버릴 단편이 없다. 다들 읽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재미도 있고. 필립 K. 딕의 작품을 더 찾아 읽고 싶게 만든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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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술들 : 개항에서 해방까지
김영나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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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 미술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근대의 기점을 어디서부터 잡을 것인가는 논란이 많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1880년대를 기점으로 잡고 있다. 이유를 '동아시아의 문화권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발을 내디디는' 때가 그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근대를 서양문명과의 접촉으로 보는 셈인데, 이 책에서 다루는 미술들 역시 서양 미술과의 접점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미술들이라고 했지만 전통 서화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물론 근대라는 개념을 서양문물과의 접촉으로 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서양문물과 동양문물이 융합되거나 또는 각자 그 시대에 창조되면서 계승, 유지, 발전된다고 한다면, 전통 서화에 대한 부분이 더 많았으면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고 아주 등한시 하고 있지는 않다. 오세창을 예로 들어 그가 쓴 '근역서화징'을 언급하고 있으며, 서화라는 말 대신에 미술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배경을 설명하고 있으니, 그런 아쉬움은 접고 이 책을 따라가면 1880년대부터 해방 직후까지 우리나라 미술들을 대략적이나마 알게 된다.


주로 일본을 통해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서양 미술, 유럽이나 미국에 유학해서 직접 서양 미술을 배운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이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그리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또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었기에 그들의 활동이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니...


이 책에 일본 미술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고,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일본 국적으로 가야만 했기에 포기한 경우가 많았으니, 일본 미술가들에게 배운 사람들이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주류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 미술가들의 경향을 그대로 따라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근대 미술 사조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작품 활동, 또 조선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림만이 아니라 조각에서도 또 사진이나 건축에서도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게 된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지금 한류라고 하는 문화 강국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나오고, 그들의 작품이 사진으로 실려 있어서 근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적절한 책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미술을 1880년부터 해방 직후가지 훑어주고 있어서 한국 미술사의 흐름을 정리하는 데도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점은 식민지를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이 미술 작품들도 보존하기 힘들었다는 사실. 그래서 사라져 사진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작품들도 많았으며 청동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조각들은 전시에 공출되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들이다.


나라를 잃은 민족은 예술까지도 잃게 되니, 그 점을 근대 미술이 시작되는 우리나라 미술계에 일어난 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미술을 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음도 이 책에 잘 나와 있으니... 이런 노력들, 결과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 문화가 만들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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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이해찬 지음 / 돌베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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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다. 좀더 오래 살았어야 할 사람인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데... 그래서 작가 유시민이 이 책의 끝에 쓴 발문 '어느 공적인 인간의 초상'의 한 구절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남은 시간 그가 사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기를 응원한다.'(561쪽)


사적인 욕망을 충족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공적인 일을 그만두지 않았고, 그 공적인 일로 베트남에 갔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아마도 그는 철이 든 이후에는 죽기까지 늘 공적인 삶을 살았던 그야말로 '공인(公人)'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삶을 최민희와의 대담 형식을 빌려 기록한 책. 그의 삶만이 아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독재 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그. 그는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던 사람이고,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한 일에 공과가 있겠지만, 공과를 떠나서 그는 민주화를 염원했고, 민주적 정당을 만들려고 자신의 삶을 바쳤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평생을 그러한 민주화와 민주적 정당을 만드는 데 헌신한 사람. 그 사람이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이기도 하고, 민주적 정당 만들기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에서 좌절도 있었겠지만, 그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 아니겠는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고, 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를 완성하려 한다. 민주화의 완성으로 가는 길에 정당의 민주화가 있다.


정당이 한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거나, 또는 계파로 나뉘어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은 민주적인 정당이 아니다. 당원들의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는 정당,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정당, 이권에 휘둘리지 않고 공적인 목표를 추진하는 정당. 그래서 그때그때 정책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서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 그러한 정당이 민주적 정당이다.


이 책에는 이해찬이 자신이 몸 담고 있던 정당에서 탈당하는 장면이 몇 번 있다. 민주적 정당이 아니라 예전의 정당으로 퇴행하는 것을 참지 못했던,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준 탈당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탈당 이후 그는 다시 자신이 있던 정당으로 돌아간다.


자기와 뜻이 맞는 사람을 모아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것은 어쩌면 민주적 정당 건설이 아니라 자신이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라고, 그것은 공적인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렇게 밖에서 활동하면 거대 정당들이 민주적 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힘들더라도 그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이라고 바꿔가려고 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해찬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국회의원으로서, 정당원으로서 민주적 정당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면, 관료로서의 그는 어떠했을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하는데, 무엇보다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열린 토론을 하고, 정책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마련하고, 일의 체계를 마련했으며, 불필요한 예산을 없애 정작 필요한 곳에 예산이 투입되도록 한 것들. 과감하고 결단력 있게 일을 추진한 그의 실행력을 이 회고록을 통해 볼 수 있다.


관료 문화를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책의 뒷부분에 그가 그러한 관료 생활을 한 지 꽤 지난 뒤에 현재의 관료들을 만나고 한 생각은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2018년쯤부터는 당정협의를 할 때 공무원들의 분위기가 달랐어요. 얘기를 들어 보니 강남 3구 출신, 특목고 출신, SKY대학 출신들이 공무원 사회의 주류를 이루게 됐다고 하더구만, 시험 준비에서부터 그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게 된 거지. 공정하게 시험을 쳐서 뽑는다는 것이 사회구조적으로는 불공정한 결과를 가져왔어요. 우리 사회 장래로 볼 때 굉장히 나쁜 거예요. 보수적인 엘리트 카르텔이 각 분야를 좌지우지할 테니까.'(547쪽)


이 말,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사적인 이익이 아닌 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한 이야기니까.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를 한 사람이 공무원 사회의 모습, 즉 관료들의 모습을 보고 우려를 한 것이니, 그야말로 '공정하다는 착각'을 어떻게 부수어야 하는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가 태어난 것은 이승만 정권 때이지만 이 책의 중심은 대학에 들어간 박정희 독재 정권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긴급조치로 대표되는 독재 정권의 만행, 그에 대한 반대, 그로 인한 투옥, 그리고 다시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87민주화 투쟁으로 쟁취한 형식적 민주주의. 그 다음은 이제 정당 정치인으로서, 관료로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완성하려 한 그의 삶이 펼쳐진다.


그가 한 말 중에 새겨두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173쪽)는 말과,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이 중요해요,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열정과 책임감과 객관성이 중요하지. 재야 운동은 열정과 책임감과 희생이 필요해요. 핵심이 달라, 정치는 균형, 학문은 객관성, 운동은 희생, 헌신이지.'(205쪽)는 말이다.


열정과 책임감은 기본이다. 이 기본 위에 더 갖춰야 할 덕목이 다르다는 말인데, 정치는 균형이라면, 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상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상대는 없애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해야 할 존재다. 대화와 타협. 이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정당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같은 정당 내에서도 모두 같은 의견만을 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펼쳐지면서, 그 의견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균형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 정당의 모습이겠고, 이해찬이 바라는 정당 아니었을까.


이제 그는 떠났다. 하지만 그가 이루려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일은 미래 세대에게 맡겨져 있다. 그 일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그의 삶에서 고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고문받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는데, 고문이 얼마나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는지는, 정계를 은퇴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문받던 시절의 일이 꿈에 나타난다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한 고문을 한 자들, 과연 두 발 뻗고 잘 자고 있는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이 겪었던 일. 이해찬도 피해갈 수 없었고, 그것이 그의 마음에 또 몸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더욱 깨닫게 만든 이 회고록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해찬의 삶을 통해서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살필 수 있으니,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어보면 좋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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