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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향하여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 반타 / 2025년 7월
평점 :
필멸의 존재이기에 불멸을 꿈꾸는 인간. 그러나 불멸의 존재가 되면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생물학적 몸을 지니고 있으면 불멸할 수가 없다. 세포는 죽음으로 향해 가니까. 불멸하기 위해서는 세포를 바꾸어야 한다. 무엇으로? 죽지 않는 존재로... 그런 존재가 있을까?
지금까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이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노화를 늦추거나 또는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냉동해서 다음 시기로 치료를 넘기는 방법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불가능했다고 앞으로도 불가능하다는 법은 없다. 인간이 추구하는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발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뇌만 남기고 또는 뇌에 기억되어 있는 기억들만 다른 저장장치로 옮기고, 육체는 언제든 개조하거나 바꿀 수 있게 한다면, 또 기억도 이 장치에서 저 장치로 계속 옮겨 저장해서 영원이 보존되도록 한다면, 그때는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톤 허가 쓴 이 소설을 읽으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불멸이 영원이라면, 이 소설 제목이 '영원을 향하여'니까 인간이 불멸의 존재를 꿈꾸는 내용일까 추측을 했지만, 아니다. 소설에서 인간들은 불멸을 꿈꾸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인간이니까.
그렇다면 '영원을 향하여'는 무엇일까? 죽음을 향하여 간다는 말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죽음에 이르니까. 하지만 죽음이라고 하면, 그 이후 세계를 알 수 없기에 영원이라는 말을 쓰기엔 뭔가 좀 미진하다.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영원이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나노봇으로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한다. 또한 나노봇으로 자신들의 기억도 보존된다. 그런데 그렇게 다시 나노봇으로 돌아온 인간이 과연 그 전에 몸을 지닌 인간과 같을까?
기억이 같더라도 전의 존재와 후의 존재가 같은 존재일 수는 없다. 분명 다르다. 소설 속 인물도 그 점을 느낀다. 따라서 그들은 불멸을 추구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다만 이들은 무언가를 계속 남기려 한다.
이 남는 것이 바로 기록이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기록을 한다.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무엇을 느꼈는지를 기록하고 그것을 다른 존재에게 넘겨 계속 기록하게 한다.
기록, 언어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언어로 이루어진 것 중에 인간다움의 한 요소로 시를 꼽는다면, 이 소설에 시가 그토록 많이 인용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든 인물에게 문득 시 구절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시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생각한다. 시 못지 않게 음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록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첼로연주자인 것이 이를 대변한다.
뭉뚱그려 이야기하면 예술이다. 예술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해주고 있음을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예술 역시 기록되지 않으면 전승이 되지 않는다. 하여 기록함, 기록됨이 소설에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몇 백 년이 흘러도 지속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삶은 영원히 기억이 되는데,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우리는 기록으로 우리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지 않나 하니, 이런 기록을 담당한 언어는 인간의 과거-현재-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언어'는 인간이 영원을 향해 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이 왜 기록을 하면서 기억하려 할까 하면 바로 그것이 사랑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행동이 기록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런 절실한 마음이 기록이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록은 영원을 향해 가는 길이다.
영원을 향해 가기 위해서 작동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에 이르게 하는 것이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언어와 사랑이 함께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수 백 년에 걸친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각 인물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들을 목차에 따라 정리하면 '말리 -> 용훈 -> 엘렌 -> 파닛 -> 로아 -> 델타 -> 크리스티나'
여기까지가 지구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사람(? 사람의 형체를 지닌 나노봇? 이들을 엄밀히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인간의 몸이 아닌 나노봇으로 바뀌었기 때문)들이라면 그 이후의 기록은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이어지게 된다. 아피나라는 존재가 그 책임을 지게 될 텐데...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여 지구에서 기록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말리에게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사랑, 한용훈은 남편인 쁘라섯에 대한 사랑, 엘렌은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파닛은 한용훈과 또 시에 대한 사랑, 로아는 그의 두 엄마에 대한 사랑이 있고, 델타와 크리스티나는 파닛의 나노봇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이어주고 기억되게 하는 것이 언어로 기록된 공책이기에, 이 공책에 쓰인 내용들이 이어지면서 영원을 향하여 가게 된다.
지구에서 마지막 기록자라 할 수 있는 크리스티나에게 아피아가 하는 행동은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아니 지구 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더라도 이들이 남긴 기록은 계속 살아남아 영원히 기억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아피아)가 방주에 돌아가야만 한다고 설득했다. 그녀는 동의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델타가 남긴 공책에 내(크리스티나) 생각을 써 넣으면 아피아가 나의 일부를 방주로 가지고 돌아가 방주가 언젠가 지구의 궤도를 떠나 여러 세대에 걸친 피할 수 없는 여행을 떠날 때 나의 일부가 별들 사이에서 살아가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거절하려 애썼지만 아피아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고 명백히 이것이 공책에 들어가야 할 이야기의 다음 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하얀 밤 내내 잠들지 않고 내 이야기를 썼다.' (227-328쪽)
이렇게 기록은 영원히 남게 되고, 이들이 살아오면서 지녔던 사랑도 영원히 남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으로 영원을 향해 가게 된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말리가 엄마를 만나는 장면, 그리고 한용훈이 누군가를(분명 쁘라섯이다) 보고 달려가는, 영혼이라도, 그 장면으로 소설은 끝난다. 바로 이들은 이렇게 영원을 향하여 간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
'그는 이제 달린다. 빛을 향하여. 그리고 곧 그는 자기 자신의 서사에서 달려나가, 시의 손길에서 달려나간다. 영원을 향하여.'(352쪽)
서술자의 변주가 소설에서 엘렌이 말하는 '모차르트의 주사위 게임'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전개가 짜임새 있게 진행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기에 '모차르트의 주사위 게임'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왜 그가 기록자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그것이 어울리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변주를 통한 조화. 재이 있게 읽은 소설이다. 특이하다고 생각한 점은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영어로 소설을 썼고, 이를 소설가인 정보라가 번역했다는 점. 읽기 전에는 작가인 안톤 허가 미국에 살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