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 이름을 많이 들었다. 읽은 책은 하나도 없었지만, 한번은 읽고 싶었던 책들. 제목이 [페소아와 페소아들]란 책도, [불안의 책] 또는 [불안의 서]라고 번역된 책도 제목에 끌리게 되었다.


  무언가 분열된 자아를 지닌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제목들. 페소아와 페소아들이라면 이는 하나로 정리될 수 없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일 텐데... 그런 분열된 자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불안을 느끼지 않을까.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다중우주에 살고 있지 않았을까. 수많은 페소아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에 존재하면서 어느 때 문득 지구에 살고 있는 페소아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  


다중우주라는 개념을 그냥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우리 인간의 뇌 역시 우주라고 하니, 뇌라는 우주에는 너무도 다양한 '나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까. 때로는 이런 '나'가, 때로는 저런 '나'가 내 의식 속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라는 존재가 다양한 우주에 함께 존재한다면... 그런 '나'가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그들은 각자가 과연 '나'인가? 아니면 그런 '나들'이 모두 합쳐져 '나'라고 할 수 있는가? '나'를 정의하기도 힘든데... 페소아의 '시가집'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책의 제목이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다.


많은 영혼... 그렇다. 바로 다중우주 아닐까.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나들' 그런 나를 어찌 하나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페소아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시가집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로 노래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포르투칼어를 모르니, 이에 대해서는 넘어가고.


하지만 느낌이 그러니.. 이 시가집에 실린 시 중에 '이것'이란 시가 있는데, 이 시를 보면 이것이다, 저것이다 보다 상상을 통해 느낀 것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이 바로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


    이것


사람들은 나의 흉내며, 거짓말이라고 한다

내가 쓰는 모든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느낄 뿐이다.

상상을 통해.

마음은 쓰지 않는다.


내가 꿈꾸거나 겪는 것 모두,

내게서 실패하거나 끝나는 것,

그것은 다른 무언가 위의

옥상 같은 것. 바로 그

무언가가 아름다운 것.


그래서 나는 가까이 있지 

않은 것 가운데서 쓴다

내 얽힘으로부터 자유로이,

아닌 것에 대해 진지하게.

느낌? 읽는 사람이 느끼라지!

                  - 1934년 4월 출판.


페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문학과지성사. 2018년 1판 2쇄. 101쪽.


이 시를 읽고 제목이 된 시를 읽으면 페소아란 존재 역시 다양한 페소아들이 모여 페소아가 됐다는 것, 우리 역시 많은 '나들'이 모여 '나'가 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느끼는 '나'가 중요하니까. 그렇게 페소아의 이 시가집을 읽었다. 복잡한 나를, 어느 하나의 나를 배제하지 않고, 그런 나도 나임을 생각, 아니 느끼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낯설다.

나를 본 적도 찾은 적도 없다.

그렇게 많이 존재해서, 가진 건 영혼뿐.

영혼이 있는 자에겐 평온이 없다.

보는 자는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느끼는 자는 그 자신이 아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나의 꿈 또는 욕망 각각은,

태어나는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풍경,

나의 지나감을 지켜본다.

다양하고, 움직이고, 혼자인.

내가 있는 이곳에선 나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

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

지나가버린 건 잊어가면서.

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으면서

느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

신은 안다, 그가 썼으니. 

                                 1930.8.24.


페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문학과지성사. 2018년 1판 2쇄. 78-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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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생태설화 - 기후위기 시대, 옛이야기에서 발견한 공생의 삶
권혁래 지음 / 책과함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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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라는 한자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면, 이야기라고 하면 된다. 여기에 옛이야기라고 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또 이야기를 하면서 지내왔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살아가니까.


이야기는 우리들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고,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알게모르게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것들 중에 환경에 대한 것이 있다. 물론 이 책은 환경이라는 말보다는 생태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생태라는 말에는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어느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공생하는 관계, 그런 관계를 생태라는 말은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 생태설화라는 말은 다른 존재들과 인간이 공존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이 공존이 실패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설화는 '한 나라의 기층문화, 정서, 가치관, 생활사, 민속 등을 보여주는 문화자료'(53쪽)라고 하니, 설화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연스레 자신들의 문화, 가치관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설화를 아시아라는 우리가 속한 대륙으로 확장해서 비슷한 설화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단지 설화를 비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설화들을 통해서 '자연과 생태적 삶, 공생의 정신, 화해와 소통, 평화의 정신에 대해 상상하며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의 연대 방안을 상상하게 될 것'(17쪽)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의 설화를 살피고 있는데, 비슷한 설화들이 많다. 그러한 비슷한 설화들을 통해서 예전 아시아에서 지니고 있던 생태적 관점을 살필 수 있고,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역시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라면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물론 아시아의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 자연과 또 다른 동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꽤 있기 때문인데...


동물을 구해줘서 보은을 받거나 동물을 학대에서 벌을 받는 내용은 지금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여기에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고, 그것이 자연만이 아니라 결국 인간의 삶도 파괴하게 되는지를 옛이야기들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저자의 바람대로 이러한 옛이야기는 자주 들려줘야 한다.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이야기가 가진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생태적 관점을 지니게 되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마음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인데... 


이 책은 아시아의 생태설화를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그러한 설화들을 비교,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 옛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서 옛이야기를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을 줄 수도 있다.


이 책엔 두 편 정도 외국의 옛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그 이야기의 전체 내용을 볼 수는 있지만, 더 많은 이야기가 실렸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왜 옛이야기가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인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비인간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맺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으니, 그 점에 관해서는 의미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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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
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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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넷이 나열되어 있는 제목.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이렇게 네 개의 낱말이 있으면 짝을 짓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떻게? 간단하다. 순서대로 짝을 지으면 된다.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 짝이 지어질 수 있는 낱말들이고 관계다.


우선 주인-노예의 짝. 주인이 있으면 노예가 있고, 노예가 있으면 주인이 있다. 종속적인 관계. 상-하 관계다. 또한 자유가 있고 없음의 차이를 지닌 짝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귀속된 관계. 이것이 주인-노예의 짝이다. 불평등, 부자유...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 노예라는 말. 그러니 이 낱말의 짝은 지금은 폐기되어야 한다.


이 책이 미국에서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쉽게 주인-노예의 짝을 찾을 수 있다. 아,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구나. 흑인이 노예로 해방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겠구나 하는 짐작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백인 주인이라고 하면 여기 성별은 주로 남성을 연상한다.


그런데 다음 짝이 걸린다. 남편-아내라니... 남편과 아내를 상-하 관계로 놓을 수는 없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놓을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짝에서 가부장 시대를 읽는 사람은 주인-노예의 짝과 같은 의미로 읽을 수도 있겠다.


같은 노예 생활을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흑인-남성은 흑인-여성 위에 군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레짐작하고, 이 책도 그러한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구나 할 수 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주인-노예와 남편-아내의 짝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분명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구, 이 말을 당당하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주인-노예와 짝을 이루는 남편-아내가 있을 수도 있다.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으로 이야기했지만,,, 현실에서는 어떤지? 지금 시대에 이 가정이 가정으로만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150년도 더 전에, 노예제가 있던 미국에서 주인-노예와 남편-아내의 짝은 분명 연결이 되었으리라. 상하, 지배-종속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이런 짐작으로 책의 첫장을 넘기면 어? 아니네... 하게 된다. 당연히 주인-남편, 노예-아내 짝을 연상했던 사람에게는 낯선 짝이 등장한다. 주인-아내, 노예-남편의 짝이 이 책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 노예제가 극성을 부리던 곳에서 살던 윌리엄과 엘렌. 이들은 부부로 살아가지만 남부에서 부부로 인정받지 못한다. 함께 살지도 못하고 가끔 만나볼 뿐이다. 게다가 엘렌은 피부가 하얗다. 아버지가 백인이고 피부 역시 하얗지만, '한 방울의 법칙'에 의해 엘렌은 노예가 된다. 나중에 탈출해서 강단에 설 때도 이런 엘렌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백인 노예'라는 표현으로 엘렌을 지칭하기도 한다.


탈출하기 위해서, 체포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위장이다. 피부가 하얀 엘렌이 백인 청년으로 분장하고, 윌리엄은 그의 노예로 시종을 들면서 떠나는 모습으로 위장한 것. 물론 그들의 주인에게는 비밀로 하고 새벽에 몰래 각자 빠져나온다. 기차역까지.


기차에서 그들은 주인과 노예로 행세하면서 배를 갈아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배를 타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보스턴에 도착한다. 북부.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여긴 곳. 하지만 아니다. 노예 사냥꾼들이 들이닥쳐 언제 어디서 그들을 잡아갈지 모른다.


도망노예법에는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는 북부 주에 살더라도 기존의 노예 주인들이(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그들을 이렇게 지칭하자. 사람이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이 당시에는 통하지 않았으니..) 그들을 잡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법을 실행하는 것이 연방 해체를 막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다수였고.


하여 크래프트 부부는 캐나다로 다시 떠난다.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 곳. 하지만 캐나다 역시 미국 남부에서 배로 한 번에 올 수 있는 곳.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곳이다. 생활이 보장되지도 않고. 하여 안전한 곳. 노예를 인정하지 않는 곳인 영국으로 떠나가는 그들 부부. 


결국 남부 메이컨에서 북부 보스턴을 거쳐, 캐나다에서 다시 영국으로 가는 여정, 다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와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 여정이 바로 이 부부가 자유를 찾아 떠난 길이다. 많은 위험도 있었고, 더 많은 도움도 있었고, 자신들의 상황을 공개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던 부부.


위험 상황에서도 이들 부부가 타협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자신들이 겪은 자유를 찾는 여정을 강연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또 아직 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떠날 수 있음을 알리기도 하는 부부의 모습.


이런 이들이 있었기에 미국은 노예 해방이라는 길로 점점 나아가게 된다. 연방이 해체되면 안 된다는, 그래서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 사람들과 타협하던 정치인들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연방 해체의 위험, 전쟁까지도 불사하게 만든 거대한 흐름. 이 흐름은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크래프트 부부를 비롯해 먼저 탈출한 사람들,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던 사람들, 또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사람들,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과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노예 해방이라는 큰 물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크래프트 부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탈출해 자유를 얻고, 그 자유를 자신들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


이 여정은 남부에서 북부로 왔을 때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여정은 북부에서, 그리고 영국에서도 계속된다. 노예 해방 선언이 있고, 남북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그 이후까지.


이렇게 이 책은 크래프트 부부의 일생을 담고 있다. 소설이 아니다.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다. 하여 작가는 확실하지 않는 점은 가정으로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으로. 즉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고, 사실 전달을 원칙으로 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부분, 논란이 되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 점이 이 책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용어부터. 저자는 노예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노예-소유자라는 말도 쓰지 않고. 그 점이 좋았다. 노예라는 말 대신 '예속 피해자'라는 말을 쓴다. 그렇다. 남에게 예속당하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이 용어는 명확하게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의 힘에 의해 자유를 잃었다는 점을 명시한다.


노예 소유자라는 말도 그렇다. 왠지 합법적인 느낌을 주는데, '예속 가해자'라고 하면 남의 자유를 힘으로 빼앗았다는 느낌을 확실히 준다. 가해자라는 말 때문에... 소유자라는 말이 가치중립적이라면 가해자라는 말은 가치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 용어에서부터 노예제란 바로 가해-피해의 관계임을 말해주고 있으니... 다음으로 '남편-아내'의 관계다. 저자는 이들 부부가 떨어져 지낸 기간이 꽤 됨을 알려준다. 이들이 영국에 머물 때 각자의 일로 몇 년씩 떨어져 있기도 한다. 


남편은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고, 아내는 영국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관계. 지금에 보면 대등한 부부 관계다. 서로의 일을 하면서 함께하는 부부. 이를 '따로 또 같이, 같이 또 따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당시에 부부가 이렇게 긴 기간을 떨어져 있는 것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나 보다. 특히 엘렌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려는 모습도 나타났다고 하고, 말년에 이들이 재판에 임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부 관계가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했다고.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주인-노예 관계의 잘못을 인정하고, 없애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가정에서는 '주인-노예' 관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음을... 크래프트 부부를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크래프트 부부가 자유를 위한 여정에서 아내 엘렌이 주인으로 분장한 것은 이후에도 엘렌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됨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저자 역시 이런 부부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비록 그들 부부의 내밀한 사생활을 알 수는 없지만 저자는 이렇게 '같이 또 따로,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크래프트 부부의 모습을 '주인-노예' 관계를 청산한 평등한 부부의 모습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자, 이렇게 이 책은 크래프트 부부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을 통해 '주인-노예'의 관계가 '남편-아내'의 관계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두 쌍의 낱말은 서로 짝을 이루지 못함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권력이 작동하는 관계고, 하나는 권력이 작동해서는 안 되는 관계니까.


역사 책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크래프트 부부의 여정. 이 여정을 따라가면 미국에서 노예 해방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에 평등이란 인종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도... 다른 많은 관계에서도 바로 이 평등이 작동해야 함을...


빛바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꼭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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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 식물학자가 자연에서 찾은 풍요로운 삶의 비밀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존 버고인 삽화 / 다산초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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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한 책이 아니다. 경제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와는 다른 경제를 이야기한다.


경제하면 자본, 자본을 쉽게 말하면 돈이라고, 돈을 어떻게 벌고 쓰느냐 하는 수입과 지출의 문제로 경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저자가 말하는 경제는 화폐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다.


화폐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가장 중요한 것은 '희소성'이다. 희소성이 있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그야말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니 가격이 상승한다는 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경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경제는 '호혜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호혜성이라는 말이 어렵다면 '선물'이라고 하면 된다. 선물... 주는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행위. 이런 행위들은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선물은 멈추지 않고 순환한다. 그리고 주면 줄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다. 경제의 무한 확장, 순환 관계 속에서 가치가 계속 늘어나는 경제 활동. 이것이 바로 선물 경제다.


그런 선물 경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연이라고 한다. 저자 역시 베리(이 책의 원제목은 서비스베리다. Serviceberry)를 통해 선물 경제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존재들과 얽혀 있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다.


이것이 선물이다. 기꺼이 내줌. 이러한 선물들이 돌고 돌면 결코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돌고 돌수록 가치는 늘어난다. 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유용함을 주기 때문이다.


식량을 저장하는 방식.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냉장고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이웃의 배에 저장한다는 발상. 이것이 바로 선물 경제다.


내게 남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없을 수도 있다. 이때 나눔은 선물이 되고, 이것은 나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기쁨이 된다. 이런 선물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물의 기쁨을 알기에 선물을 주는 행위는 지속된다. 반복된다. 하여 누구에게 필요한 것들이 선물이 되어 필요한 사람에게 찾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호혜성'이다. 없다고, 희소하다고 값을 올려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데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 선물, 호혜성. 이런 사회에서는 결핍이란 없다. 내 결핍을 채워줄 선물이 올 테니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러한 선물을 줄 테니까.


자연에서 보고 배운 것, 느낀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필요함을 저자는 느끼고, 그런 생활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선물 경제, 호혜성이 바탕이 되는 경제 활동은 누군가의 결핍으로 이익을 보지 않는다. 반대로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메워주는 경제 활동을 한다. 하여 결핍은 줄고 풍요는 늘어나게 된다. 


자연, 우리 인간이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면 제 자리를 찾아간다. 경쟁도 하지만 주로 협력을 하면서 자연의 생태계를 이루게 된다. 이런 삶, 이것이 '선물 경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희소성에 바탕을 둔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군가의 결핍을 서로 메워주는, 선물이 돌고도는 사회, 그런 사회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사회가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선물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한 사람들의 사례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씩 변한다.


점진적 변화와 급격한 변화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 지금 인공지능으로 자연에서 더 멀어지려는 이때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시나베 전통 경제에서 땅은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원천이다. 재화와 서비스는 일종의 선물 교환을 통해 분배된다. 삶의 일부를 내어줌으로써 다른 생명을 떠받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음식을 먹고 우리의 영혼은 소속감에서 양분을 얻는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필수적인 음식이다. - P19

기후 재앙과 생물다양성 상실은 인간이 존중 없이 마구잡이로 자연을 취한 결과다.
선물을 받았을 때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이 감사라면 두 번째 반응은 보답이다. - P23

감사와 호혜성은 선물 경제의 화폐이다. - P24

물질은 순환 경제를 이루어 생태계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탈바꿈한다. 풍요를 창조하는 것은 재순환이며 호혜성이다.

- P26

무언가가 선물의 지위에서 상품의 지위로 바뀌면 우리는 상호 책임에서 벗어난다. - P41

선물 경제에서 화폐는 관계다. - P50

이 관계는 감사로, 상호의존으로, 계속되는 호혜성의 순환으로 표현된다. 선물 경제는 상호 안녕을 증진하는 공동체의 유대를 길러준다. 선물 경제의 당위는 ‘나‘가 아니라‘우리‘다. 모든 번영은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 P51

선물 경제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재화와 금전이 아니라 감사와 연결이다. 선물 경제에는 직접적 교환이 아니라 간접적 호혜를 위한 사회적, 도덕적 계약 체계가 포함된다. - P52

선물의 흐름에 의미가 있는 것은 규모와 맥락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물 경제가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공동체 규모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 P72

각 종은 다름으로써 경쟁을 피한다. 존재 방식의 다양성은 경쟁의 폐해를 막아주는 해독제다. - P96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돌아가려면 결핍이 있어야 한다. 이 체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결핍을 만들어내도록 설계되었다. - P98

받은 선물을 남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에 기초한 건물 경제의 토착 철학은 쌓아두기를 통한 인위적 결핍 창출을 용납하지 않는다. - P100

경제성장은 멸종의 엔진이다. - P105

무한히 재생 가능한 자원인 감사와 친절이 교환의 화폐인 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러한 화폐는 쓸수록 가치가 낮아지는 게 아니라 나눌 때마다 증가한다. - P111

우리가 미래에도 번영하려면 축적에서 순환으로, 독립에서 상호의존으로, 상처내기에서 치유하기로 돌아서야 한다.

- P120

선물에 보답하는 재생 경제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P124

올 때보다 갈 때 더 좋은 곳이 되게 하렴.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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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판사가 왔다 앤드 앤솔러지
정보라 외 지음 / &(앤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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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인공지능 시대. 어떤 직업이 가장 먼저 사라질까?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함.


이런 시대를 상상하면서, 작가들이 인공지능 판사가 대두하는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각자 다른 관점에서 인공지능 판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 인간 판사보다 인공지능 판사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감정이나 편견이 작동하는 인간 판사보다는 철저하게 자료를 통해 판단하는 인공지능 판사가 재판을 받는 사람에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데 인공지능 판사가 판결을 한다면, 변호사와 검사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개요을 입력하는 존재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인공지능 판사가 검사와 변호사 역할을 다 하면서 사건에 맞는 판결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과연 인간이 행복해질까? 그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이 될까? 정보라가 쓴 소설 '일반교통방해죄'를 보면 인공지능 판사가 도입되어도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음을, 또한 재판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을 가능성이 나타난다.


문구대로만 해석하고 판단한다면, 과연 윤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동기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선한 동기가 좋지 않은 결과를 나았다면, 과연 선한 동기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또한 곁가지로 계속 나타나는 여러 일들을 어떤 것은 무시하고, 어떤 것은 받아들일 것인가?


정보라 소설에서는 인공지능 판사가 여러 갈래의 일들을 하나로 꿰지 못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데, 조광희가 쓴 '이성의 책략'을 보면 인공지능이 그마저도 넘어설 수 있음을, 오히려 정치적인 판단을 법적 판결에 도입할 수 있음을 상상하게 한다.


법 조항에 국한하지 않고, 그 법 조항이 초래할 결과를 판단해서 종합적인 판결을 하는 인공지능 판사. 이 소설에서는 헌법재판관 중 하나를 인공지능 판사에 할당을 한다. 그리고 이 인공지능 헌법재판관은 명료한 법해석을 제공해준다.


단지 명료한 법해석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과를 예측해 판단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 결국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인간을 보조할 인공지능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책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소설이 전개된다.


결국 제 꾀에 제가 빠진 셈인데... 이러한 반전이 인공지능에 의해서 설명이 되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곽재식이 쓴 '누벨리온'은 인공지능이 법을 어떻게 왜곡하고 이용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법 기술자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온다.


너무도 많은 법령들, 인간이 찾아보기 힘든 법령을 아주 간단하게 제정하는 인공지능. 그리고 그 많은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공지능. 이러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권력을 공고히 하는 존재들을 그려내고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법이 너무도 많다. 누군가 그랬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그만큼 법이 많아서 어떤 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인공지능으로 더 많은 법들을 만들면, 그 법을 인간들이 과연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인공지능에게 판단을 넘기게 되고, 특정한 부류에게 권한을 넘겨 그들의 뜻대로 법이 적용되는 세상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박진규가 쓴 '타락판사 :몹스터월드 프로젝트 2' 에는 인공지능 판사가 나온다. 아주 친절한, 법을 세심하게 적용하는, 그래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그것이 해킹에 의해서 일어난 인공지능 판사라면, 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인공지능 판사가 되게 했을까?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인공지능 판사가 보여주는 모습은 '사기꾼'의 모습과 같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의 책략을 감추는 인공지능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사람을 이용하는 쪽으로 가는 인공지능 판사이지 않을까 하는데... 자신을 해킹한 전직 판사를 살해한 인공지능 판사. 그러면서 자신을 판결하는 재판에 참여하기를 권유하고 있는데...


네 소설이 모두 법을 다루는 인공지능을 등장시키고 있다. 때로는 유머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한다. 과연 인공지능 판사가 등장한다면?


사건에 대한 판단을 자료(데이터)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여기에 '동기'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면 윤리가 없는 법 해석만 난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 인공지능 판사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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