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역사학자의 토론과 해석
오수창 지음 / 그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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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으니. 적어도 춘향과 몽룡이라는 이름은 국민 거의가 알고 있다고 해야 할 듯. 아니 몽룡은 몰라도 변사또는 잘 알고 있을 듯.

 

고전소설이라고, 판소리계소설이라고 하는 작품 중에서 '심청전, 흥부전, 별주부전'과 함께 너무도 잘 알려진 소설이다. 그래서 고전문학자들이 춘향전을 가지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또 춘향전이란 작품이 구전되어 오면서 다양한 판본들을 남기기도 했고.

 

또 춘향전을 이어서 계속 소설을 쓰기도 했으니, 신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해조의 '옥중화', 그리고 일제시대에 이광수가 쓴 '일설 춘향전'. 내가 알고 있는 최인훈의 작품 '춘향전', 김주영의 작품 '외설 춘향전' 등 너무도 다양한 춘향전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오수창은 책 뒷부분에서 이광수가 쓴 '일설 춘향전'을 분석하는 데 한 장을 할애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상반된 의견도 나오고 하나로 정리가 되지 않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역사학자인 오수창이 춘향전에 대한 책을 냈다. 역사학자의 토론과 해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역사학자가 본 춘향전이다.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서 역사학자답게 역사 자료를 통해 분석을 해가고 있는데, 우선 춘향은 기생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오수창은 기생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판본을 읽어도 내용을 보면 기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특히 몽룡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기생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며, 신관사또와 대결할 때도 기생임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춘향전은 기존 사회를 전복하려는 내용이 전혀 없다고, 기생이 수청을 거부한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전거를 들고 있다. 오히려 수령이 기생들에게 수청을 들라고 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 그런 행위를 해서 처벌 받은 수령도 있다는 것. 다만, 명문화된 법과 실제 행해지는 법은 달라서 대다수의 수령들은 기생들의 수청을 요구하고 받았다는 것.

 

하지만 명백히 법전에 의하면 관기로 하여금 수청을 들게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을 오수창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법을 저지른 것은 춘향이 아니라 신관사또라는 것. 결국 춘향은 기존 제도를 통해 저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역사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대다수 백성들은 법전의 내용을 몰랐을 거고, 그들에게는 법보다는 주먹이 더 가까웠을 터이니, 수령들이 기생 수청을 받는 것이 다반사였던 상황에서 그것이 합법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가정이지만. 그러니 수청 거부를 하는 춘향에게 관리에게 저항하는 민중의 모습을 읽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가 여러 판본 중에 가장 나은 작품이라고 하는 '춘향전 완판 84장본'에 신관사또의 탐학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하면 관기에게 무작정 수청을 들라고 하는 것 자체도 민중들에게는 거부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요즘 말로 하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을 당시 민중들이 해서 춘향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 서민의식의 성장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는 해석은 좀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암행어사가 봉고파직을 하는 장면은 조선의 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 암행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봉고'에 그친다는 것.

 

관료의 죄상을 적어 관찰사나 중앙정부에 보고하면 파직이나 그에 준하는 처벌은 왕을 통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소설에서 '봉고파직'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문학적 표현을 위한 장치임에 불과하다는 것.

 

여기에 낭청이라고 나오든, 회계나리로 나오는 사또들을 보조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이 인물들은 그냥 넘어갔었는데, 역사학자의 눈에는 조선 현실을 너무도 잘 표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지방관료로 갈 때 관료들이 자신을 보조해줄 사람을 데리고 갔는데, 이는 엄연히 불법임에도 대부분 용인되고 있었다는 것. 그들은 그 관료를 보좌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 청렴한 관료를 보좌하는 낭청은 떨어질 떡고물이 별로 없었을 터이고, 탐관오리를 보좌하는 낭청은 부정을 저지르기 쉬웠을 터. 낭청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회계나리라고도 표현하는데, 회계나리라는 표현은 지방 관료가 회계를 그에게 맡겼다는 것이니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소지가 많고, 당연히 관료의 비위를 맞추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표현하는 것은 당시 관료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이 점은 새로 알게 된 내용인데...

 

이몽룡의 아버지는 나름 괜찮은 관료였기에 낭청이 힘없이 표현되기는 했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 인물로 나오고, 신관사또의 낭청은 신관사또가 춘향과 대립하고 있기에 그 역시 부정적인 인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것. 춘향이 강하게 저항하는데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이 낭청이라는 인물임을 저자는 논거를 들어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 역사학자가 알아낼 수 있는 춘향전에 숨겨진 다른 요소는 천자문에 관한 것. 조선시대에도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교육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는 것. 그래서 이몽룡과 방자의 대화에서 천자문을 희화화 하는 것은 그런 의식들을 작품 속에 끌어들여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에는 한문교육을 받으면 당연히 천자문부터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천자문을 교육하는 것이 문제임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는 것을, 그래서 춘향전에서 방자와 몽룡이 천자문을 가지고 희롱하는 장면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그것도 이런 주장을 정약용이 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을 춘향전이 체제를 전복하는 사상을 지닌 작품은 아니지만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힌 이유는 바로 인간성의 발견이고, 그 인간성을 짓밟으려는 강한 자에게 맞서 결국 승리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는 춘향과 몽룡이 비록 신분은 다르지만 서로를 온전한 인간으로, 개인으로 인정했고 사랑했다고, 그런 쪽으로 시대가 흐르면서 춘향전의 다른 판본들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미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받고 사랑을 한 춘향이 신관사또로부터 기생이라는 신분의 사람, 즉 기생으로만 대우받는 것에 저항했다고 할 수 있다. 춘향전은 개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고, 개인을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만 여기는 풍토는 이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는 게 이 책을 읽은 내 느낌이다.

 

한번 자유를 맛본 사람은 부자유를 견딜 수 없듯이, 개인의 온전함을 인정받고 그렇게 지내왔던 춘향 역시 기생이라는 신분으로만 자신을 판단하고 대우하려는 신관사또의 처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신분여하를 떠나 온전한 인간, 개성을 지닌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인정한 사랑을 이룬 사람이 그 사랑을 지켜나가려 저항하는 춘향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자들이 해석하는 춘향에서 그리 많이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품 내에서 표현된 내용들과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서 춘향전에 나타난 춘향과 다른 인물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춘향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작품 내용 속에서 해석의 요소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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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상상력 -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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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해 갈수록 더욱 필요해 지는 것은 예술적 상상력이다. 이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말이지만 예술과 기술은 하나에서 출발했다. art라는 말을 기술이라는 말로도, 예술이라는 말로도 번역을 하니 말이다.

 

그러니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예술에 대한 필요성 역시 커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과학기술과 예술을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어느 하나만 중시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면 그것을 더욱 느끼게 된다.

 

왜냐 예술은 바로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에 속한 것들을 다음으로 넘어가게 해준다. 지금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상상이 현실이 되게 한다.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여준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은 예술이다. 예술적 상상력이다. 그런 상상력이 고갈되면 우리들 삶은 황폐해진다.

 

이 책에서 딱 한 구절만 인용하라면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이 말을 인용하겠다.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상상-또는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241쪽.

 

얼핏 보면 지식과 상상을 대비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니 지식에 집중하지 말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하라는 말이 나오지. 하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아인슈타인도 그랬을 것이라고.

 

상상은 지식과 상반되지 않는다.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치 고등학교 때 윤리 시간에 배운 , 그러나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칸트의 말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그러므로 개념을 감성적인 것이 되게 하는 것(즉, 직관 안에서 개념에 그 대상을 부여하는 것)과 직관을 오성적인 것이 되게 하는 것(즉, 직관을 개념 속에 가져오는 것)은 다 같이 필요한 것이다.  - 칸트, 순수이성 비판, 전원배 역. 삼성출판사. 1985년. 102쪽.

 

이 말처럼 상상과 지식은 함께 간다. 곧 지식의 축적 없는 상상은 맹목이고, 상상 없는 지식은 건조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오종우는 이를 '상상력은 폭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지식은 축적의 이미지다. 축적되어야 폭발한다. 즉 상상력과 지식은 대립하지 않는다. 상상력은 지식이 쌓이면 폭발하듯 나온다는 뜻이다(242쪽)'고 말한다. 

 

이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오종우는 미술과 음악과 문학을 넘나들며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지식의 축적이다. 그런 축적을 통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들에게 보이는 것 너머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이 책을 읽어가면 재미도 있지만 여러 예술 장르에 걸쳐 다양한 지식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식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고를 할 수도 있고.

 

예술적 상상력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기존 통념을 뒤엎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그런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기존의 틀에만 얽매여 있는 것은 상상이 결핍된 지식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지식이 쌓이고 쌓여 폭발해 다른 세상을 열어젖힐 수 있게 하는 촉매제, 그것이 바로 예술적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런 예술적 상상력은 기술을 인도하기도 한다.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저자 오종우는 그렇게 예술의 세계와 기술의 세계가 융합되는, 그리고 기존의 틀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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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비디오로 라쇼몽을 보다. 내용이야 많이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지만, 직접 영화로 보니 새롭다.

 

  한자어로 나생문(羅生門)이라고 쓰는데, 일본어로는 라쇼몽이라고 읽는다. 다 허물어져 가는 문 이름이다. 폐허를 상징하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 앞에서 세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 영화의 처음에는 비가 내리고 두 사람이 등장한다. 곧이어 영화가 전개되면서 한 사람이 더 등장해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아쿠타카와 소설에 '나생문'이란 소설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인가 보다 하고 이 소설만 읽으면 낭패를 당한다. 이 소설은 그냥 배경에 불과하고,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인간의 이기심을 드러내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영화와 소설은 제목만 같고 나머지는 다르다. 영화는 오히려 '덤불 속' 또는 '숲 속에서'로 번역되는 소설과 관련된다.

 

한 사내의 죽음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누구의 말이 옳은가? 소설 속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진실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며 또는 영화를 보면서 진실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영화는 소설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는다.

 

영화에서 나무꾼이 하는 이야기를 삽입하고 있는데, 이는 소위 사무라이라고 하는, 또는 남자다운 도둑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들의 나약함을 포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스님은 이런 인간의 악에 대해서 실망을 한다. 인간은 악한 존재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간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가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비록 살기 힘든 상황이지만 나무꾼을 통해서 희망을 본다. 자식이 여섯이든 일곱이든 힘들긴 매한가지라고, 버려진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나무꾼, 그리고 비가 그친다.

 

이 영화 속 사건과 같이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일이 많다.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판단하는가? 우리는 법에 이런 판단을 맡기곤 한다. 그렇지만 법 역시 완전하지 않다. 편견을 가진 인간이 법을 통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라쇼몽을 보면서, 또 다시 작은 범우문고판 [나생문(외]를 읽으면서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의 모습을, 그래서 도덕을 현실의 욕망 속에 밀어넣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힘든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간다는 현실 속에 인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결국 희망은 현실에서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밖에 없다. 소설이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영화에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 대한 믿음, 그것은 바로 현실에서 진실을 살아가려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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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의 도시 사용법 -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기 20
박경화 지음 / 휴(休)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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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환경을 지키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선 플라스틱 사용 문제만 해도 그렇다. 플라스틱이 환경이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에서 플라스틱 줄이기가 얼마나 힘든가.

 

의식적으로 쓰지 않아야지 해도 어느 순간 주변에 플라스틱이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비닐을 포함하면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플라스틱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최소한 줄이려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도시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만큼 환경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그 피곤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인류 전체가 살아가기 어려운 조건을 계속 만들어 가게 된다.

 

어려운 문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이 빠진 사회 구조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는. 이 책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지구인이고, 지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산다고 할 수 있으니, 도시에 살면서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생활방식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우선 적게 소유하는 것.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빌려쓰는 습관을 지닌다면 환경 보전에 일조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사회적으로 공유경제로까지 나아가면 좋을 것이라고.

 

마찬가지로 에너지 사용도 줄이면 된다. 콘센트만 잘 뽑아두어도 전기를 많이 절약할 수 있으니 작은 실천부터 하면 좋을 듯하다. 여기에 도시에서도 자투리 공간에 텃밭이나 꽃밭을 만들 수 있고, 또 만들고 있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으며, 농촌과 도시 사람들이 직거래를 하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여행할 때도 환경을 생각하는 여행을 하면 좋다고, 다양한 환경보호 실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구인으로서 지구를 보존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우리 스스로가 지구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준단 말인가. 그렇다고 지구를 보존하는데 거창한 일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된다는 것.

 

최소한 자신의 생활에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것부터 줄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쓰레기. 그래서 처리하기 힘든 것이 지금 도시 생활 아닌가. 오래 쓸 수 있고, 다시 쓸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물건들부터 쓰는 습관을 지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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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언어 - 통념의 전복, 신화에서 길어 올린 서른 가지 이야기
조현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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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받아왔던 교육을 생각하며 이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선 국어에서 신화를 가르치는 단원이 있었으면 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매 학년마다 신화가 실려 있었으면... 단지 신화만이 아니라 신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글까지 단계적으로 수록했으면.

 

의무교육을 마치고도 우리나라 신화 하면 오로지 단군신화나 고주몽 신화 또 박혁거세와 같은 건국 신화 정도만 기억하게 되는 그런 교육 말고 우리나라 신화 전반을 알게 하는 그런 교육이었으면.

 

또한 신화가 바로 당시 사람들의 사고를 표현한 것이므로, 이 책의 제목처럼 신화의 언어 또는 신화와 표현 정도로 하는 교육이 있었으면 했다. 왜 신화에서 그렇게 표현했는지를 생각하는, 단계적으로 더 깊게 고민해 보는 그런 교육을.

 

역사에서도 신화와 역사의 상관관계를 가르쳤으면 한다. 역사라는 과목이 사실의 나열로 외우기 바쁜 우리나라 현실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신화는 당시 사회의 풍습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신화를 통해서 역사에 접근하는 교육도 했으면 좋겠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 현실에서 실감이 나지 않는 그 먼 과거를 신화를 통해 만나게 되면 좀더 생생한 역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 다른 교과목에서는 신화를 활용한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 가령 미술에서는 신화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음악에서는 이런 신화를 바탕으로 음악적 표현을 만들어보는 과정을, 과학에서는 신화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도덕이나 윤리에서는 신화에 나타나는 생활에 대해서, 사고 방식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등등 신화를 통해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지닌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조현설의 [신화의 언어]를 읽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그래도 나름 신화에 관한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모르는 신화도 많았고, 또 그 신화를 통해 다양한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동서양의 신화를 아우르면서 네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무의식과 역설, 자연과 타자, 문화와 기억, 이념과 권력'이라고 분류를 하고 있다.

 

그만큼 신화는 우리들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들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 삶의 양식, 사고 양식이 신화에 드러나 있는데, 신화를 배우지 않고 가볍게 지나쳐 온 것이 아쉬운 것이다.

 

신화는 단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규정해 주는 존재다. 신화를 통해서 우리는 자연스레 과거와 연결되기도 하지만 현재의 우리를 미래로 연결해 주기도 한다. 그만큼 신화는 우리들을 결속시켜 주는 역할도 하는데, 그 결속이 배타적이지 않기 위해서도 신화를 알 필요가 있다.

 

다른 민족을 배제하기 위해서 신화를 동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특히 중국이 하는 동북공정과 관련지어 신화나 다른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이 책 4부 '이념과 권력'에서 잘 알려주고 있다) 신화가 어떤 의미로 작동하는지를 알면 그것을 방지할 수도 있게 된다. 신화는 배제가 아니라 포용, 융합을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신화들이 나오지만 그 신화를 통해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간간이 현재의 관점에서 신화를 평가하고 우리들 삶을 돌아보게도 하고 있으니, 신화는 과거에만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들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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