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 -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김동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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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 삶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 가령 집안일 같은 것, 또 소비자가 스스로 하는 일들, 표를 키오스크라는 기계에서 자신이 직업 끊거나 주유소에서도 기름을 직접 넣는 것. 이것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을 해서 우리들 삶을 좀더 편안하게 해주고 있지만 결코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일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 책은 '유령들'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로 여겨지는 말. 마치 유령처럼 취급당하는 대학 청소노동자들, 특히 민주노조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들을 유령취급하는 대학이나 또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자 노동이든 유령 노동이든 당연히 그냥 노동이라고 불러야 하고, 그런 노동을 하는 사람은 노동자라고 해야 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근로의 권리와 의무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이 천대받아서는 안 되는데... 과연 그런가?

 

노동자이되 노동자임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노동이되 남들 눈에 잘 띄지 않아야 하는 노동, 그것이 바로 청소노동이다. 아침에 출근하루 때 보면 쓰레기로 덮여 있어야 할 거리가 깨끗한 것을 보게 된다. 이미 청소노동자들이 새벽에 나와서 치운 것. 왜 이들은 이렇게 일찍 일을 해야 할까?

 

우리들 인식이 아직도 이들 노동을 정당하게 대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로 인해 깨끗한 환경이 유지되고 우리들이 기분좋게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노동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보일 때는 더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찡그리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외관이 지저분해 보인다고 (청소하는데 그럼 어떻게 외관이 깨끗할 수가 있지? 건물에 이물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청소 안 했다고 뭐라 하는 족속들이 그것을 치우는 사람에게 무어라 한다. 치우면서 외관이 지저분해졌을 뿐인데) 또 냄새난다고 (이들 몸에 밴 냄새 때문에 저들이 냄새 없는 환경에서 지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걸어올라가란다. 이런 청소 도구들을 지니고 어떻께? 이렇게 이들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일 때가 많다. 보이지 않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바로 자기들 눈에 보일 때는 이렇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게다가 대학가에서 시험 때가 되면 강의실에서 자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들이 자고 있을 때 강의실 청소를 하면 대뜸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강의 시작 전에는 청소를 마쳐야 하는데, 학생들이 자고 있으면 안 할 수도 없고, 하기도 힘든 상태.

 

이 책은 이런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 대학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반으로 쓴 대학 청소노동자, 그냥 청소노동자라고 하기보다는 민주노조에 가입된 청소노동자들 이야기.

 

이들을 대하는 용역업체의 태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늘 갈등하는 관계임에 틀림없으니, 그런데 원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고용하는 대학의 태도는 참 문제가 많다. 청소노동자들을 좀더 편하고 싸게 이용하기 위해서 이들은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을 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것은 자신들과 관계없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임금을 대학에서 지불하면서도 용업업체에 떠넘긴다.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나마 괜찮다고 해야 하나?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용역업체 편을 들어 민주노조를 와해시키려는 행동을 한다. 결국 이 책에 따르면 대학과 용역업체와 사용자 편을 드는 노조가 삼위일체가 되어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민주노조를 와해하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들의 노동은 그림자 노동처럼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 아니라 당당한 노동이다. 임금이 지급되어야 하는, 그림자 노동이 아니라 보이는 노동, 실체 노동이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제대로 된 노동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유령 취급을 당한다.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들로 여긴다. 당연히 노동조건 또한 열악하기 그지 없다.

 

대학이라는 곳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답게 이들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에도 신경쓰고, 이들이 적합한 조건 속에서 당당하게 노동을 하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우는 고사하고 특히 민주노조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는 존재로 더더욱, 이들을 해체시켜 말 잘듣는 노조만을 존속시키려 한다. 대등한 존재로 이들을 인정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모 대학에서 일어난 민주노조 출범부터 거의 해체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 먹먹해진다. 민주화가 되었다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까지 한 정권에서, 그것도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도 여전히 비정규직에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유령처럼 지내야만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들이 아직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는 현실에 아무리 눈 감으려 해도 이들은 유령이 아니라 인간임을 보여주는 이 책. 그래 우리가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령처럼 일을 하는이 아니라 마치 우렁각시처럼 일을 하지만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그들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때문에 작가의 말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비리에 눈감고, 약자를 억누르는 사회에서 정의는 움트지 않는다. 죽은 진리의 전당에서 지식인이 태어날 리 만무하다. 그런 곳에서 학생도, 교수도 어차피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에는 무관ㅅ미하다. 그들에게 피억압자들의 운명을 맡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오로지 짓밟힌 자들끼리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나는 억잡자들의 승리를 바라지 않는다. 아직 그들이 이겼다고 보지도 않는다. 억압자들만 승리하는 세상에서 피억압자들은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꿈이 있어야 저항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억압자들의 실패를 보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피억압자들의 역사가 억압자들의 기록으로 새롭게 덧칠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민주노조 파괴는 현재진행형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 (303-304쪽)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 점을 알아야 한다.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에밀 마르틴 니묄러(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가 했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엔 사회주의자들을 숙청했다. /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들을 숙청했다. /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이 책은 이렇게 니묄러의 말을 생각하게 해준다. 결코 그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 이야기임을 생각하라고.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다행히도 대학에서 직접고용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책이다. 고압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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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20-02-28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령들˝ 꼭 읽기도 하겠고, 여러 기관 신청도서에 신청해놓겠습니다!

2020-02-28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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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소설에서 다룰 만하다고 여기는 작가 10명을 선정해 그의 소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나타난 작가가 꽤 많은데 그 중 10명을 추리는 것도 일일텐데, 그들의 소설에 대해서 세계 문학과의 관련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 책에 나와 있는 작가들이 우리나라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작가는 많고 좋은 작품도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소설가들은 한 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시대를 대표한다는 말이 좀 그렇다면 소설의 경향을 대표하거나 주도한 사람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런 작가와 작품들을 선별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으니, 로쟈, 이현우의 설명을 따라가면 우리나라 현대소설의 흐름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황석영 편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로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대의 핵심적인 모순에 대해서, 본질에 대해서 파악하고 그 문제를 파고드는 소설을 써야 한다. 그것이 현대소설이고 소설가의 역사적 책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소설과는 다른 것이다.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잘 쓰는 사람들은 많다. 굳이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면 시대의 핵심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여러 제약 때문에 단편으로는 곤란하고 장편으로 확쟁돼야 한다. (173쪽)

 

이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10명의 소설가와 소설을 골랐다고 생각하는데, 여덟 번째인 이문열까지는 평가나 생각이 조금 다르더라도 그래도 한 시대의 대변하는 그런 작가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인성과 이승우에 대해서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이문열과 비교하기 위해서 작가와 작품을 선정했다고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1950년대에서 시작한다. 소위 전후문학이라고 하는 소설들... 손창섭을 다루고 있다. 이견이 없다. 손창섭이 전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암담한 생활을 잘 그리고 있다는 데는 동의하니까. 이 시작부터 로쟈는 장편소설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말 그대로 단편은 삶이나 시대의 어느 한 면만을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 그 시대의 핵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손창섭은 장편소설을 쓰지 못했다고...

 

이런 한계는 다음 작가들에게서도 이어진다. 60대를 열어젖힌 최인훈에게서도 같은 한계를 그는 발견한다. [광장]은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해당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하여 이런 시대적 상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필요한데, 로쟈가 다루고 있는 작가는 이병주다. 사람들 사이에서 저평가된 작가라는. 그의 작품 [관부연락선]을 대상으로 해방전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책의 내용은 그것보다는 이병주라는 작가를 재조명하는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했다는 김승옥, 리얼리즘 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황석영을 다루면서 1960-7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들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때 나온 소설들은 단편이라서 한계가 있다고 하고, 장편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김승옥은 기독교로, 황석영은 역사소설로 나아간 것이 아쉽다고 하고 있다.

 

독재자를 비판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이 부분의 해석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이런 [당신들의 천국]만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우리 사회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같은 소설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경제개발을 해야 한다고 강한 독재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결과 경제성장은 이루었지만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 자본주의가 정착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이 드러나고, 그것을 표현하는 소설이 필요해진 것.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 내용은 리얼리즘이지만 표현은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후 자본주의 모순을 다룬 장편소설이 나와야 하는데...

 

성장소설로 넘어가게 된다.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지식인 계층이 된 것. 교양이 필요한 시대. 소위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성장소설이 등장하고 많이 읽히게 된다. 이런 흐름을 주도한 것이 이문열이고 [젊은 날의 초상]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떠난 관념에서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 두 소설가는 이런 이문열의 성장소설과 비교하기 위해 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인성의 아주 낯선 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와 이승우의 [생의 이면]

 

아버지 부재의 이문열이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한 성장소설을 썼다면 이인성은 살아있는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썼고, 이승우는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없는 부재 상태에서 성장하는 소설을 썼다고.

 

이렇게 로쟈는 넓은 의미의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리를, 사람들의 삶을 추구하는 소설들에서 이제는 가정에서 자아를 형성해가는 소설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세계문학과의 연관성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점이 한국문학을 세계문학 속에서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가령 성장소설이라는 부류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는 이문열, 이인성, 이승우를 예로 들면 이문열에게서는 괴테이야기를, 이인성에게서는 제임스 조이스와 카프카를, 이승우에게서는 헤세와 지드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 그밖에 황석영에게서는 고리키를, 김승옥에게서는 토마스 만,이병주에게서는 발자크를 함께 언급하고 있다.

 

로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문학을 세계문학과 연결지어 우리들 시야를 더 넓혀주고,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소설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소설(소설가)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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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얼라이브 - 남자를 살아내다
토머스 페이지 맥비 지음, 김승욱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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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 근성으로 하는 힘겨루기가 바로 남자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185쪽)

 

남자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런 폭력성이다. 그것을 용감함이라고 포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용감과 폭력은 다른 개념이다. 용감은 즉 용기는 성별에 상관없이 발휘될 수 있는 자질이다. 자신을 지키려는, 또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굳센 의지가 필요한 일이고, 용기를 발휘하는 사람에게 남자답다느니, 여자답다느니 하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폭력은 좀 다르다. 여성성이 평화와 쉽게 연결이 되고 남성성이 폭력성과 쉽게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세상은 흘러 왔다. 그래서 남자 하면 힘겨루기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책에서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도 이것은 계속 환기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신 안에 있는 남성을 느끼고 남성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두 번의 피해를 당하게 된다. 아니 더 많은 피해가 있었겠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피해는 수를 헤아릴 수 없으니, 이 책에서는 두 번의 피해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어린 여성으로 추행을 당하는 9세 때 이야기와, 여성임이 밝혀져 목숨을 건지게 되는 29세 때 이야기. 전혀 다른 결과인 듯하지만 본질은 같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존재에게 규정당하는 것이다. 강도에게는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녀라는 이유로 아빠(의붓아빠라고 해야 하나, 나중에 유전자 검사 결과 친부가 아니라고 밝혀지니)에게 특정한 존재로 규정당하는 것이다.

 

자신을 자신이 규정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규정당하는 존재로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여성성을 부정하고 남성성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 그는 그래서 남성이 되려고 한다.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 라는 질문은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다. 단지 생물학적으로 가슴이 없고, 양경(陽莖)이 있다고 남성인가? 그는 가슴 절제 수술을 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여전히 얇고 가늘고 톤이 높다. 테스토스테론을 맞기로 결정을 한 이유도 외면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을 시행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으로 생각되는 특징들이 몸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남성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한 남성이 된 것인가?

 

이런 질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남성, 여성은 없다. 도대체 어디에 기준을 둔단 말인가? 이 책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를 만드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그가 내보이는 모습이다. (186쪽)

 

이 말은 외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폭력성이 남성을 대표한다고, 남성으로 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면 된다는 말이다.

 

결코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 안에 있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고, 그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무엇이 여자를 만드는가? 라는 질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언제나 집에 와 있었다. (203쪽)

 

이 표현으로 남자를 또 여자를 만드는 것은 어느 순간에 확 일어나는 일, 즉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 또는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거나 또는 성전환수술을 하거나 법적으로 성전환 인정을 받은 때로부터가 아니라 이미 자신은 그 존재로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책에서 동생이 했다는 말. 그 말 속에 다 들어 있다.

 

"누나는 항상 나한테 형이었어." (216쪽)

 

책 제목 [맨 얼라이브]를 '남자를 살아내다'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그런 만큼 이 책은 성전환자의 이야기다. 논픽션이라고 한다. 사실에 기반한 자신의 이야기라는 거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바꿨겠지만, 사실인 이야기다. 그만큼 성전환자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성전환하기도 힘들지만 하기까지의 과정도, 그 다음에 겪어야 할 일들도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잘 인정하지 않는 자신 안에 있는 자신을 찾아 살아가려고 할 때 겪을 수 있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겪게 되는 괴로움과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성전환자의 삶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시작하지도 않지만,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을 종점으로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들의 삶이 과정이듯이, 이들의 삶도 마찬가지임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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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이 돌고 돌아 기쁨이 된다면 좋겠지만, 슬픔은 돌고 돌아도 슬픔이다. 자전을 하면 낮과 밤이 생기듯이 기쁨의 구간을 통과하기도 하겠지만, 결과는 뫼비우스 띠 위를 달리는 것처럼 다시 제 자리.

 

  슬픔의 자전은 슬픔으로의 회귀다. 그렇지만 슬픔으로의 회귀라고 해도 마냥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낮이 자전해선 낮으로 돌아오고, 밤이 자전해서 밤으로 돌아오지만, 자전한다는 것은 다른 세계를 거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한 바퀴 돌았을 때 다시 원점으로 온 것 같지만, 자전은 공전과 더불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지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슬픔의 자전은 똑같은 위치에 있는 슬픔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슬픔은 끝없이 반복이 된다. 무한반복. 영원회귀라고 할 수도 있는 슬픔의 자전. 그 슬픔으로 인해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슬픔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슬픔으로도.

 

슬픔을 슬픔으로 깨닫고 함께 할 수 있다면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을 할 수 있을텐데... 그 말이 그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슬픔을 한사코 함께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 그럼에도, 늘 우리는 그래도 또는 그럼에도 라는 말로 세상을 좀더 밝게, 기쁨 쪽으로 밀어갈 수가 있다.

 

제목이 된 구절이 들어 있는 시를 본다.

 

슬픔의 자전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그녀는 사과를 매만지며 오래된 추방을 떠올린다

그녀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다

자전의 기울기만큼 사과를 기울인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속살을 파고드는 칼날

 

아이는 텅빈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손가락에 물을 묻혀 하나씩 적는다

 

사과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끊어질 듯 말 듯 떨리는 사과 껍질

그녀의 눈동자는 우물처럼 검고 맑고 깊다

 

혀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

그녀 속에서 얼마나 오래 굴렀기에 저렇게

둥굴게 툭툭,

사과 속살은 누렇게 변해가고

 

식탁의 모서리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입속에

사과 조각을 넣어준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 짠맛이 돈다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2018년 1판 7쇄. 90-91쪽.

 

남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 시인만이 지닌 감수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감수성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시인의 말이 감동적이다. 오히려 시인의 말이 한 편의 시다. 그 중에 두 연을 인용한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2연)

 

내 슬픔의 무게를 나누어 져주는 (5연 일부)

 

그래, 이렇게 슬픔의 무게를 나누어지면 슬픔의 총무게는 줄지 않겠지만, 누군가에게 너무도 무거운 짐으로 남지는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

 

슬픔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시. 그리고 다른 시들을 통해 슬픔을 만나게 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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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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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마찬가지로 '따로 또 같이'라는 말도 좋아하고, 또 '대동소이(大同小異)'란 말도 좋아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내가 참고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울리되 똑같아서는 안 된다. 그건 폭력이다. 전체주의다. 그렇다고 홀로만 갈 수는 없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보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봐도 그렇다. 자연 속에서 홀로 사는 것 같지만, 아니다. 그들도 함께 살고 있지는 않지만 삶을 위해서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인이라고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다만 '같이'라는 말보다는 '따로'나 '홀로'라는 말이 앞에 올 뿐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비슷한 점이 있다.

 

인간이라는 종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같지만 다른 것도 분명 있다. 그 다름을 인정할 때 함께 살아가는 묘미를 맛볼 수 있다. 그래서 한 가족이라고 해도 방들이 서로 구획되어 있다.

 

한 집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은 또 따로 있는 것, 지역도 마찬가지고, 사회, 국가, 이 지구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범위를 넓혀가다 보면 우주 역시 마찬가지다. 따로 가고 있지만 함께 가고 있고,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똑같지는 않은.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다. 좋다. 대놓고 개인주의자라고 선언하다니... 우리는 흔히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하는데,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개인주의를 부정하면 전체주의에 빠지게 된다. '나'란 존재는 없고 온통 '우리'만 존재한다.

 

무서운 일이다. 내 몸에 있는 세포들도 똑같지 않고 다르게 작동하고 있는데, 나를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라고 하면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은 판사 문유석이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글로 써낸 것인데, 그 중에 '행복도 과학이다'라는 글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58-59쪽)

 

그렇다. 개인주의는 바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주의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남의 원망을 받으면서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단 말인가. 또 개인주의는 집단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주의다. 자신의 생각을 버려두고 집단의 논리만 따라가면 역시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개인주의자 선언이 반갑다.

 

책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인지 아닌지 차치하고 그 존재들에게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 하면 검은색만 떠올려야 하는데... 다른 색도 있다. 그림자 모양도 좀 다르고. 또 그림자 색이 다른 존재는 색깔도 다르다. 이렇게 우리는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들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보다 이 책 내용을 잘 설명하는 표지가 있을까 싶다. 글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 의견을 무조건 따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가되, 독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 우리들은 모두 독립된 존재고, 독립된 존재로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개인주의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지점에서 개인주의는 시작한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자는 행복한 사회를 꿈꾸되, 큰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작은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가는 사람, 그 행복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도 연결될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래서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성장사에 얽힌 이야기도 있고, 판사로서 겪었던 일들을 풀어놓은 글도 있고,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을 담은 글도 있다. 글들 역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특히 예전에 쓰인 글이지만 메르스 사태에 대한 글을 통해 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을 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알려지지 않은, 흔히 공포에 빠지기 쉬운 질병에 대응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의 마지막에 아이를 잃어버린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시장에서 아이를 찾아 달리는 여인을 그냥 지나쳐 갈 수도 있는데, 그 역시 함께 뛴다. 아이를 혼자 찾는 것보다는 여럿이 찾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고, 그런 자세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조금씩 행복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개인주의자다. 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다른 사람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는. 그래서 개인들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그런 사회.

 

수월하게 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이 책에 나온 글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논의를 해볼 내용들이 많다. 그래, 우리 모두 개인주의자가 되자. 어느 한쪽으로 분류되어 틀지워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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