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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조무래기별들 -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박일환 지음, 박해솔 그림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이 삭막해질수록 가정의 소중함이 몸으로 다가온다.
뉴스를 보면 연일 안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고, 이들이 내 몸의 파장을 흩뜨려놓는다.
마음이 안 좋다. 따뜻한 이야기,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소녀가 어느날 할머니가 되어 온갖 존재들과 함께 어울려 살게 되는 이야기. 하울이 생활하는 공간은 전쟁으로 점철된 살벌한 세계인데, 반대로 소피가 생활하는 공간은 온갖 존재들이 함께 어울리는 장소의 기능을 하니...
세상이 삭막할수록 가정이 할 수 있는 일, 또한 가정이 해야만 할 일이 있단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여성성'을 발견했는데, 이 여성성이 결국 가정을 구원하는 요소이고, 가정의 구원이 세상의 평화와도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하울로 대표되는 밖으로만 나도는 남성의 존재. 자신의 약함을 강함으로 포장하지만 한없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고, 소피로 대표되는 여성은 할머니처럼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도, 게다가 사람이 아닌 존재까지도 받아들이는 그런 존재가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남자들이라고 다 밖으로만 돌지는 않는다. 남자들 중에서도 '여성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도 밖으로 밖으로 바쁘게 살아가지만, '여성성'을 잃지 않고 있다. 바쁘게 살면서도 가족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를 시로 표현하고 있다. 시에 담긴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그 시를 조금 더 길게 산문으로 풀어쓰고, 시와 산문에 어울리는 그림이 딸이 그리고 있으니...
살아가면서 가족에만 매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밖으로만 나돌 수도 없는 일. 밖으로 밖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시선은 늘 가족에게 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 시와 글들. 또한 따스함이 묻어나는 그림들.
또 아버지와 딸이 함께 작업을 하면서 어쩌면 공통된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여성성'이 발현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딸들을, 그리고 아내를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고, 또한 가족에게만 머물지 않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잔잔히 퍼져가는 모습이 느껴지는 글이다.
여기에 크기 또한 겉옷의 큰주머니에 들어가기에도 적당하니, 언제 어디서든 지니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한 편 한 편이 따스하게 마음에 다가오니, 전철에서든, 버스 안에서든 자신만의 시간이 있을 때 최첨단 기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가끔은 이런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책을 읽어볼 일이다.
읽으면서 가족간의, 아니 사람들간의, 사람과 자연과의 교감을 느껴볼 일이다.
그러면 자신의 마음도 따스하게 물들게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