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한국사 -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탐닉했나
김동주 외 지음 / 서해문집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주로 먹고 마시고 탐닉한 것들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여러 학자가 모여서 다양한 대상들을 탐구했는데, 그것들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우리들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오거나 중요하게 다가왔다.


처음은 밥에서 시작한다. 밥이라고 하지만 쌀이다.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쌀. 쌀 소비량은 많은데 생산이 적어 혼분식을 장려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를 한 적이 있었으니... 쌀밥을 싸온 학생은 벌을 받았는데, 이 책에 보면 그렇게 벌을 받은 학생을 부러워한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왜? 그 아이는 쌀밥을 싸오고 싶어도 쌀 수 없었을 테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은 쌀을 구할 여력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혼분식을 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건강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혼분식을 장려하고 강제한 것은 쌀 생산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쌀 소비량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맛없는 밥은 잘 먹지 않았다. 생산량이 많은 통일벼가 실패한 이유가 바로 밥맛을 좋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 입맛까지 강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요즘은 쌀소비량이 급격히 줄었고, 쌀만은 100% 자급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하는데, 과거에 이렇게 쌀을 선망하던 시대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이 책은 밥으로 시작해서 마약으로 끝난다. 마약, 한때 마약청정국이라고 불리던 우리나라도 마약의 유통이 많아졌다고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으니... 하지만 마약을 소비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관행이 굳어져 있는데, 공급원을 단속하고, 그들을 막을 방도를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마약을 다룬 저자의 주장이다.


식물에게서 추출한 마약 (대마, 아편)은 오래 전부터 비상 약품으로 쓰이기도 했고, 더욱 위험한 것은 합성 마약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마약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때로는 권장되기도 했다고 하니, 지금처럼 풍요로운 세상에서는 마약 문제는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어느 정도는 동조하는데...


그렇다고 '소비의 한국사'라는 제목의 책에서 굳이 마약을 다룰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은 있다. 마약을 소비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니기 때문인데...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들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즉 대다수의 사람이 생활하면서 소비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마약을 제외하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것들 중에 이것들이 이렇게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왔구나,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것들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물... 이건 우리 생활에, 아니 생존에 필수적이다. 물이 없으면 죽는다.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보다는 생수를 사서 마시는 사람이 더 많다. 생수를 배달시켜 먹는 모습과 근대에 물장수들에게 물을 사서 먹는 모습을 비교하고 있는데...


물을 사먹는다는 개념이 생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식수가 부족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즉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식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니 먼 곳에서 물을 길어와 생활을 할 수밖에 없고, 이를 담당하던 사람들이 물장수였다는 것. 지금은 생수 판매자들이라고 해야 하는데...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음에도 생수를 사서 먹는 사람이 많다는 현실에 대해서 좀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해주었더라면, 왜 우리는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생수를 사 먹게 되었나 하는 점을 밝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 장이었는데...


'물'은 필수적이니 그렇다쳐도,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생활에서 거의 곁에 있는 소비 대상이 '라면, 커피, 술'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지금도 엄청나게 소비되고 있는 것들이 바로 이것들이니, 이런 소비 대상들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글들이 있으니 읽을 만하다. 아, 이렇게 이것들이 우리 생활에 자리를 잡았구나 하는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주는 내용들이 있었다.


음식과는 달리 우리 생활에 들어온 것들, 가전제품이다.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학교에서 가정형편조사를 할 때 이것들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었던 때가 있었으니... 우리나라는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순으로 대부분의 가정에 보급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빨래를 담당하는 세탁기가 맨 뒤에 자리잡은 과정을 보면 우리 현대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바로 '식모'라는 존재인데, 이 '식모'라는 존재는 도시화로 인한 이농 현상과 연결이 된다. 농촌에서 살기 힘들기 때문에 도시로, 특히 서울로 나이 어린 사람들(식모들은 여성들이니, 여자들이라고 하자)이 올라오는데, 학력도 기술도 갈 곳도 없는 이들이 식모로 남의 집에 들어가 집안일을 하면서 생활을 하게 된 한국 현대사의 모습.


이들이 빨래를 했기에 굳이 세탁기가 필요 없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식모라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로 변하면서, 주부가 직접 빨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세탁기를 거의 도입하게 되었다는 말. 하... 슬픈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강남'을 보면, 왜 그곳에 집착을 할까 하지만, 현대판 신분을 말해주는 곳이 바로 강남이라고 할 수 있으니... '분당'-확장 강남이다-에 사는 사람은 성남에 산다고 하지 않는다. 분당에 산다고 하지. 마찬가지로 '동탄'에 사는 사람은 화성에 산다고 하지 않는다. '동탄에 산다'고 한단다. 이런 곳이 한두 곳이 아닌데. 이것의 원조가 바로 '강남'이라고... 이것은 바로 지역을 소비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고.


이밖에도 '음악, 극장, 관광, 기차역, 장난감, 투기와 도박'등도 다루고 있는데... 이 중에 기차역에 관한 내용은 얼마 전 고속도로의 종점을 두고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권이 걸려 있는 일에 달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니.


다양한 소비의 대상들. 그것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어떻게 생활에 들어왔는지를,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관심 있는 대상을 골라서 읽어도 좋다. 그러면서 지금과 비교, 대조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비슷한 경우는 많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것이니까. 즉,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소비를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별하는 데이터 : 상관관계, 이웃, 새로운 인식의 정치 방송문화진흥총서 255
웬디 희경 전 지음, 김지훈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차례를 살펴본다. 내용이 쉬울 것이라 예측한다. 우선 제목부터 그렇지 않은가. 차별하는 데이터. 즉 데이터가 차별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제목인데...


우생학도 나오고, 동종선호와 알고리듬(알고리즘이라고 하는 것을 이 책에서는 알고리듬으로 번역했다)이 나오니, 이는 데이터를 가지고 특정 생각을 강화하고, 다른 존재들을 차별하는 근거로 삼는다고 판단할 수 있다.


내용도 그렇다. 그런데 읽다보니, 어렵다.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직관으로는 그냥 데이터를 차별의 도구로 삼는구나 하는데, 그것을 논리로 증명하는 이 책은 수학 지식이 없으면 비판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읽으면서 이 책을 손에 쥐고 읽는 사람은 이미 '동종선호'에 빠진 것이고, 이런 책을 추천받은 것은 '알고리듬'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데이터의 함정에 스스로 빠진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인문학, 사회학, 철학, 공학, 수학이 이 책에 모두 녹아들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과 논거들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논거들을 하나하나 분석할 수있는 능력은 없으니... 저자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읽게 된다.


저자는 분석에서 그치지 않는다. 데이터를 통해 예측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된다고 한다. 우리가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은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즉 실천이 중요하다고.


그래서 데이터에서 누락된 존재들을 살필 수 있어야 하고, 그 존재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예측가능한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데이터의 정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서로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지표로 삼는 것이 시급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주장을 이 책의 끝에서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21세기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기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요청이 아니라, 다름 안에서 자유롭게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458쪽)


이렇게 우리가 데이터를 통해서 정리를 하는 것은 배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이를 인식하고, 그런 차이들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데이터는, 그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우생학은 차이를 차별을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이 책에 나온 내용이고...


동종선호나 알고리듬이나 상관관계가 포용이 아니라 자신들의 집단을 강화하고 다른 존재들을 밀어내는 근거 역할을 했다는 것, 그러한 것을 차이를 드러내 차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결코 차이를 감춰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많은 내용들이 있는데, 잘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있고, 특히 수학-공학적인 분야에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지만, 큰 틀에서 다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름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데이터 속에 사라진 존재들을 인식해야 한다고 이해한 읽기였다.


가볍게 읽기엔 너무도 전문적인 내용이 많은 책이라고 해야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 - 우리는 왜 강남에 주목하는가
김시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 유예가 없다는 발표. 그러니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라고 하는 정책. 그러자 똘똘한 한 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이라는 의문이 나오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보유세 인상 운운하는 말이 나오고 있고.


그런데 똘똘한 한 채라는 말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강남에서 온 말이리라. 강남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보통 사람들은 살 수 없는 금액이 되었으니...


청년들이 집을 포기한다는 말이 나온 지가 오래되었는데, 이때 집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집의 기준이 강남이면 당연히 포기할 수밖에 없다. 무슨 집값이 평당 1억도 아니고 2억에 가까운지... 어떤 곳은 평당 2억도 넘으니... 누가 집을 살 수 있겠는가.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으로 강남 집값이 내려간다고 하는데, 그 폭이 몇 억이다. 그런데 몇 억을 내려도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이다. 보통 서민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집값 상승의 원흉으로 불리는 강남. 도대체 강남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부촌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가?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은 어린 시절에 강남에 살았다고 한다. 그는 강남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체험만이 아니라 여러 자료들을 살펴 강남의 역사와 앞으로의 전망을 살피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강남하면 우리는 아파트를 먼저 떠올리지만 강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집들은 아파트가 아니라고 한다. 소위 주택이라고 불리는 집들과 빌라라고 하는 집들이 대다수고, 예전 골짜기에 아파트들이 들어섰다고...


이 아파트들도 계획적으로 강남 3구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들어섰다고 하는데, 본래 상습 침수구역이던 강남에 치밀한 대책 없이 아파트들과 도로들, 지하철이 들어서서 홍수에 취약한 점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강남 개발의 처음에는 강북에 살던 사람을 강남으로 이주시키려는 계획이었으나, 집들을 지어놓고 교통 편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강북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는 사실.


여기에 지금의 잠실이 잠실도라는 섬이었는데, 강남 개발을 추진하면서 한강의 지류와 본류를 바꾸어 잠실을 강남에 묶어놓았다는 것. 지금 잠실 롯데월드 근처에 있는 석촌호수는 본래 한강이었는데, 강남 개발을 하면서 한강을 막아 호수가 되었다는 점.


강남 개발의 목적이 안보 문제였다는, 즉 강북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접해 있으면 유사시 피난하기가 힘드니, 인구를 한강의 남쪽으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목적으로 추진했다고, 그래서 강남의 모 아파트 단지에는 총을 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었다고, 또 그린벨트라고 개발제한구역이 환경을 지키기 위한 목적보다는 군사상 안보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 등 강남의 역사에 대해서 시대 순으로 어떻게 개발이 되었는지, 그렇게 개발되었을 때 나타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 강남의 역사를 알 수 있고, 또 앞으로 확장 강남이라고 해서, 강남의 미래도 알 수 있게 되는데...


정부 주도로 강남 개발을 하다가 도중에 더 남쪽에 관심을 두어 강남 개발에서 거의 손을 떼었다고 하지만,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어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는 점. 여기에 온갖 투기 세력들이 가세해서 더욱 집값을 올려놓았는데... 


한번 오른 가격이 잘 내려가지 않고 또 많은 편의시설이 들어오면서 강남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강남의 집들은 똘똘한 한 채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강남이라고 해서 다 부유한 사람들만 산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비닐하우스가 있던 곳이 강남이라는 것, 강남 개발을 위해 쫓겨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소수에게만 이득이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남 개발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는 인간을 꿈꾸는가 - 인간과 비인간, 그 경계를 묻다
제임스 보일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I. 말도 많지만, 아마도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세계가 다 연결되어 많은 정보들이 인터넷(사이버) 세상에 집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정보들을 우리가 보고 이해하려면 평생이 걸려도 힘들겠지만, AI는 그렇지 않다.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재배열하기도 한다. 언어 사용이 그렇다. 이제는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언어 구사를 한다고 하니... 하긴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런 활동을 가지고 AI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인간과 같은 (또는 비슷한, 아니면 인간에 준하는) 활동을 하는 존재인데,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AI가 지닌 위험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래에 AI로 인해 벌어질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면서 우리 인간이 지닌 두려움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AI는 분명 지속적으로 개발될 것이고, 왜냐하면 이토록 매력적인 AI를 한 나라가 포기한다고 해서 다른 나라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런 기술을 선점한 나라가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가게 될 것이므로, 어떤 나라도 쉽게 AI 개발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지금 돌아가는 추세를 봐도 그렇다. AI에 대한 경쟁이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줄지 않을 것이고, 이미 개발된 AI를 되돌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불가역성이라고 해야 하나? 한번 나온 기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이용되느냐에 대해서 합의를 볼 수는 있지만, 그 합의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것이 문제지만, 그래서 AI로 인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기보다는 인간(인격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즉 AI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는 문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나아가게 된다고... 결국 타자는 나를 이해하기 위한 짝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AI를 인간이냐 아니냐로 판단하게 되면 결국 인간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직관적으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구분한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말 말고, 인간처럼 대우해야 한다는 '인격성' 개념으로 가면 달라진다.


비인간 존재들 중에서 인간처럼 대우받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법인'이다. 이런 '법인'의 사례를 잘 살펴서 AI에 대한 논의에 참고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법인'을 인격성 있는 존재로 인정한다면, AI 또한 인격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인간-동물들은 어떤가? 이미 비인간-동물들을 인격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해서 소송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았는가.


소송에서 승소했느냐 패소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송의 당사자 (비록 대리인이 소송을 진행하기는 했지만)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이들에게 '인격성'을 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키메라'와 같은 혼종 존재는 또 어떤까? 


인간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비인간-동물, 그냥 키메라로 통칭한다면, 이 키메라에게 인격성을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점도 문제가 된다. 


'인격성'이라는 말이 인간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격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한다는 말은 독립된 개체로 인정한다는 말. 즉 인간처럼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존재들을 인간의 이익만을 위해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기에.


저자는 '새로운 기술로 창조된 인공의 존재를 법적 평등권을 누리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국민의 일원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바로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였다'(312쪽)고 말하고 있다.


AI로 인한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를 따지기 전에 그는 먼저 우리가 창조한(?) AI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것인지를 생각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법인, 비인간-동물, 키메라와 같은 혼종 존재'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쉽지 않은 문제고, 이 책의 저자도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는 종 기반 논리 및 능력 기반 논리를 병행하는 이중 기준에 기반한 접근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즉,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능력과 무관하게 경계선 안에 포함된다. 이것이 바로 핵심 원칙이다. 다만 인간이라는 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442쪽)고 하고 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는 어떤 고민도 없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는 바로 종 기반 논리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인간의 범위를 종 기반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존재도 인간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그 능력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또한 문제가 된다.


인간과 비슷한 능력이라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을 중심에 놓고 다른 존재를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종 기반 논리로만 인간을 정의해서는 안 된다고... 능력에 기반한 것도 포함해서 인간의 범주를 확장해야 한다고, 우리의 경계선을 넓혀가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미 인간 사회에서 법적인 권리를 누리고 있는 '법인'이고, 이를 참조한다면 AI를 인간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존재, 즉 고차원적 지능 및 의식을 갖추고 추상적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인격체'들이 이 행성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게 될 수 있다'(522쪽)고 하니, 우리가 그러한 세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의 경계를 넓혀가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 -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렉스 카프, J.D. 밴스, 이들은 미국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 뉴 노멀 탐문 1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라시아 견문을 흥미롭게 읽었다.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어서,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 해주어서.


이번에는 아메리카 탐문이라고 해서 기대를 갖고 읽었다. 미국이라는 나라 무시할 수 없는 나라 아닌가. 비록 저물어가는 제국이라고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미국이 앞으로 몇 년 몇 십 년 동안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트럼프 말고. 이런 예측불가능한 인간 말고, 이 예측불가능한 인간 뒤에 있는 사람들.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


누굴까?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일론 머스크? 그는 한 때 트럼프 행정부에서 관료들을 해고하는 첨단에서 활동했었다. AI시대에 관료주의는 걸맞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많은 관료들을 AI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


그래, 그는 화성으로 인류를 이주시키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지. 지금은 화성보다는 달에 더 관심이 있다고 하던데, 달은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니, 우선 달에 인간이 거주할 수 있다면, 또는 그곳에 기지를 건설할 수 있다면, 우주로의 꿈에 한발짝 다가갈 수도 있겠다.


일론 머스크 말고 나머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이들의 좌장 노릇을 하는 사람이 피터 틸이라고 한다. 실리콘밸리를 벗어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단지 관심이 아니라 미국 정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일론 머스크와 팔란티어 기업의 운영자인 알렉스 카프를 트럼프에게 소개하다시피 했다고 하니... 이들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1기, 2기 모두) 승승장구하게 된 것도 피터 틸 덕분이라고 한단다.


이런 피터 틸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신정정치라고 할 수도 있는 정치와 종교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신념. 


종교는 영성이고, 이러한 영성을 잃은 사회에서 영성을 회복한 사회로, 그럼으로써 공동체를 중시하는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고 하는데...


조금 이상하다. 종교로 회귀한다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다른 정치인들은 고정관념에 빠져 있어 자신들의 주장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예측불가능한, 제멋대로인 트럼프를 잘만 조정하면 자신들의 주장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피터 틸의 수제자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트럼프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하고 있는 밴스라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부터 미군에 각종 장비와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는 팔란티어 기업의 카프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향력은 만만치가 않다고.


그 역시 피터 틸과 같이 종교와 정치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하며, 세계화를 거부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 이 네 명이 대단한 건 맞아, 그런데 이 대단함이 인류에게 무슨 이익을 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피터 틸이나 밴스가 주장하는 것은 종교와 결합한 정치이지만, 이것이 세계로, 인류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 안으로, 그것도 백인들로 축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니... 


트럼프의 이민자 정책이 그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 각국을 관세로 협박해서 자국에 투자하게 만드는, 백인들의 삶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는 현실이 무슨 종교와 정치의 결합이란 말인가?


종교는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지 않나? 이 사랑과 평화가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면 그것이 어찌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종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한데 종교란 이름으로 오히려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 아닌가. 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모습이기도 하고.


저자인 이병한이 이들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있지만, 책의 말미에서 이들의 주장이 실현될 가능성은 10%도 안 될 것이라고 한다. 60%정도는 지금의 미국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흘러갈 것이란 예상인데... 그러면 미국은 곧 세계 최고의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들 주장대로 되어도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팔란티어 기업만 보더라도 AI기술을 군대와 결합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군대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곳에 AI를 보급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런 사회에 과연 영성이 꽃필 수가 있을까?


힘든 일, 돈을 버는 일은 AI가 하고,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고 영성을 키우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오히려 생활 하나하나까지도 통제받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다른 존재들을 몰아내는 배타성이 더욱 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되었는데, 이들 네 사람이 아무리 영성을 중시한다고 해도, 지금 나타나고 있는 모습은 그와 반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기한이 정해져 있는 정치를 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들은 무기한 자신들이 뜻을 펼칠 수 있는 정치를 하려고 한다. 마치 교황처럼. 아니면 플라톤의 철인처럼.


그것이 가능할까? 그러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종교와 결합하면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정에 불과하다. 현실정치에서 종교가 작동을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족쇄가 될 것인데, 그 족쇄는 다른 집단이라고 명명된 사람들에게 작동할 것이니, 포용이 아닌 배타가 만연한 사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사회가 바람질할까? 하는 생각.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레스 카프, J.D. 밴스를 다루고 있는 이 책. 이 네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데서 의의를 찾아야겠다. 이들이 원하는 대로 미국이 흘러가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고. 


AI시대. 지금까지 경험 못했던 세상. 예측하기도 힘든 세상. 그런 세상을 선도하고 있는 네 사람의 이야기니, 참조할 만은 하다. 이들의 삶이나 주장에 동의하지는 못하겠지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트랑 2026-03-01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급해주신 알렉스 카프의 기술공화국 선언, 피터틸의 Zero to One 은 그 내용 자체로 보아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수 있다고 봅니다. 둘 다 법학과 철학 전공자들인데 극우성향을 보이고 있어 더욱 위험한 인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힘이 아주 강력해서 몹시 염려스럽군요.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kinye91 2026-03-01 16:18   좋아요 2 | URL
그래요. 저도 읽으면서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들이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 되면 안 될텐데, 참으로 예측하기 힘든 미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