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련다. 빅이슈가 늘 해왔던 일들을 알리는 글들이 많으니.


  물론 지금 언급하는 글도 마찬가지지만, 6월 3일 대통령 선거일이 공표되었으니, 선거에 관한 이야기 좀 하자.


  [빅이슈]와 선거는 전혀 연결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선거가 무엇인가? 국민의 대표를 뽑는 행위 아닌가. 국민의 대표라고 할 때 국민에는 모두가 속한다. 적어도 투표권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빅이슈]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사회적 취약계층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사람으로 따지면 그렇고, 지구와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약한 고리에 속해 있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대표라면, 지구와 우주를 대표한다고 하지 않고 그냥 그 나라 국민들만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국한시키더라도, 그런 사람을 뽑는 선거라면 어떠해야 할까?


누가 대표 자격이 있을까? 어떤 사람을 대표로 뽑아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나?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가 유토피아(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곳)라고 한다면, 차선을 추구해야 하지 않나. 공리주의?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면, 그 나라에서 다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살펴야 한다.


몇몇 부자들, 권력층들, 법조인들, 경영자들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보다 소위 중산층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차상위계층부터 시작하여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 이들이 다수이지 않나. 그렇다면 이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을 대표로 뽑아야 하지 않나.


이것을 어떻게 판단하지? 답은 간단하다. 이 말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이 방법은 가장 확실하다. 아니 이 방법을 제외하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거짓이거나 잘 몰라서 하는 주장이 된다.


그 주장은 바로 세금을 올리자다. 세금을 올리자고 하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다고 생각한다. (국민저항권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면 안 되는데...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이 세금과 죽음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세금만큼은 피할 수 있는 길이 많다)


하지만 사회적 기반 시설을 만들려고 해도 돈이 필요한데, 이 돈은 세금으로 마련될 수밖에 없는데, 세금을 깎아주면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자본주의 사회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복지 정책이고 뭐고 펼칠 수가 없다. 국가의 재정은 대부분 세금으로 마련될 수밖에 없고.


그런데도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해도 중산층이나 그 이하 사람들이 반대를 한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상위 1%정도의 극소수 부유층에게 종합부동산세다 뭐다 해서 세금을 올리면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도 반대를 한다. 왜 그럴까?


나라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하고 있는 세금제도가 바로 누진세 아니던가. 많이 벌면 그만큼 더 내고, 덜 벌면 덜 내는 제도. 그러니 세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부여되어야 하고 (이때 공평은 똑같은 액수가 아니다. 누진세가 그야말로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차별일 수 있겠지만, 능력주의에서 말하는 능력이 바로 개인의 능력만을 의미할 수는 없다고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우선은 누진세가 공평, 공정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절한 수준의 세금을 걷어야 한다.


감세, 감세 정책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그러니 이번 호에서 오후가 쓴 '투표, 이렇게 하세요 - 정치와 세금의 상관관계'에 동의한다.


'우리 모두 세금을 걷겠다는 후보를 찍자. 아무리 인물이 훌륭하고 공약이 좋아도 유권자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에게는 표를 주지 말자.'(57쪽)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제 우리나라 대표를 뽑는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예비 선거를 거쳐 몇 명으로 정리된 후보들이 나올 것이다. 그들이 온갖 공약을 내걸 것이고. 지금까지 많은 후보들이 내건 공약이 그야말로 공약(空約-빈 약속)이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경험했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는 좋은 공약만 보지 말자. 우리들을 불편하게 하는 공약을 내거는 후보들에게 관심을 갖자. 아마 세금이 잘 걷힌다면 [빅이슈]가 하는 일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추가하면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살펴야 한다. 내가 낸 세금이 모두를 위한 행복에 이바지 한다면 누가 세금을 반대하겠는가. 오히려 더 내겠다고 나서지 않겠는가. 


세금 인상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까닭은 그동안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결코 세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낸 세금이 엉뚱하게 쓰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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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이 그림이 된다. 문자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와 다르다. 낱말을 가지고 그림을 만든다. 그림이 시가 된다. 글자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시가 되는 시들. 그런 시들을 모아 놓았다.


  한글을 가지고 디자인을 한 옷들과 다른 상품들도 있고, 또 시에 한글 그림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약간 다르다. 시집을 펼치면 두 쪽이 하나의 시를 이룬다.

  왼쪽 면에는 시인이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구절이, 오른쪽 면에는 그 구절과 통하는 그림이, 그림 밑에는 짧은 시나 제목이 있다.


타이포그래피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을 준다. 그냥 오른쪽 면만 보면서 제목을 추측하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제목과 그림에 쓰인 글자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도 좋고.


  이 시집 제목이 된 시는 이렇다. 왼쪽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그리고 그림에는 쌍둥이로 추정되는 사람이. 하지만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시간은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가 이런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림과 시가 하나가 된 시집이라는 것.


  왼쪽에 나온 구절들의 출처를 찾아봐도 좋고. 그것들은 우리가 곱씹을 수 있는 말들이니까.


무엇보다도 한글을 여러모로 다양하게 쓰고 있다는 점이 좋다. 한글이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한 시집이다.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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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을 비난하려는 의도로 쓰는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이 혐오 표현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쓴다. 그런 말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반대로 그 표현을 자신들이 먼저 쓴다. 그래, 이 말, 나는 이렇게 쓴다 하면서.


  그런 말 중에 '퀴어queer'란 말이 있다. 이상하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쓰던 말들을, 그것이 어때서? 우린 너희와 달라. 그 다른 점이 바로 우리 특징이야 라는 듯, 당당하게 쓰고 있는 말.


  요즘은 퀴어란 말을 혐오 표현이라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어의 사용을 뒤바꾼 것이다. 혐오 표현에서 당당한 표현으로. 그 표현 속에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더 드러내는 쪽으로. 퀴어 축제가 있으니.


'이반'이라는 말도 있다. 혐오 표현이 아닌 말인데, 이 말은 '일반'이라는 말을 비틀어 쓰던 말이었다. 우리가 흔히 일반인, 일반인 하는데, 이 일반인에는 정상성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기준과 다른 사람들은 정상성이 결여된 사람들이고, 이들은 일반인의 범주에 들기 힘들었는데...


이 말을 뒤집는다. 그래? 너희가 일반이라고? 그럼 우린 이반이다. 하여 이반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퀴어와 비슷하게 그 말이 지닌 의미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당당하게 자신들을 표현하는 말로 바꾸어 버린 것.


피하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맞서는 것이다. 언어의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자신이 그 의미를 재창조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사고방식을 넘어서게 된다. 사고방식을 넘어서면 태도가 달라진다. 당당해진다. 그래,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홍어'라는 말이 그렇다. 바다에 사는 생물 이름으로만 쓰이지 않았다. 특정 지역을 비난할 때 쓰였다. 비하하는 말, 혐오 표현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쓰는 사람이 있겠지만.


지금은 홍어가 특정한 지역만의 생물이 아니다. 홍어는 전국에서 요리에 쓰이는 생물이다. 생물? 아니 죽어서 발효되어 더 인기를 끈다. 회로도 먹지만 삭혀서 먹는 것이 더 잘 알려진 요리다.


독특한 냄새, 톡 쏘는 맛. 홍어를 어찌 비하할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즐기는 사람이 많은 음식을.


그러다 홍어를 '퀴어'나 '이반'처럼 쓴 시를 만났다. 시집 전체가 홍어 예찬이다. 당당하다. 우리 곁을 떠날 수 없다. 하긴 이름도 홍어(洪魚)다. 생김새가 넓적해서 홍어라고 하겠지만, 어느 곳에서나 삭혀서도 먹을 수 있어서 널리 쓰이는 물고기라고 홍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두루두루 우리와 함께 하는 홍어. 그런 홍어를 문순태 시인시를 통해 우리 곁으로 가져온다. 언어의 의미 역시 긍정적으로... 홍어는 이제 당당한 우리의 음식이고, 자기를 드러내는 개성적인 존재가 된다. 누구도 무시해서는 안 될. 


'홍어, 전라도의 힘이여'라는 시에서 전라도의 힘이라고 하지만, 이때 전라도는 특정 지역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화를 이루어낸,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들을 의미한다. 그러한 우리들이 바로 홍어다.


홍어, 전라도의 힘이여


너는 아무나 먹을 수 있는 

비린내 나는 물고기가 아니다

짓밟힌 민초들의 울부짖음이고

애원성(哀怨聲) 판소리 가락이자

동학농민군의 죽창이거나

임을 위한 행진곡이며

눈물 머금고 핏빛으로 피어난

오월의 무등산 철쭉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를

음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불꽃같은 맛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다

입에 넣고 씹기도 전에

폭발하듯 툭 쏘는 저항과

숨막히는 최루탄 냄새

홍어를 먹는다는 것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자는 것

함께 홍어를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홍어가 되자는 것

오래 삭힐수록 더 날카롭게

되살아나는 전라도 기질

아, 온몸 떨리게 하는

전라도의 힘이여


문순태, 홍어, 문학들. 2023년 초판 2쇄.  14쪽.


어디 전라도만이겠는가? 독재에 저항하는 우리 민중들은 전국 도처에 있었으니, 홍어가 전국의 모든 사람이 먹는 음식이 되었듯, 이렇게 홍어는 우리에게도 불의에 저항하는 힘의 상징이 된다.


이렇게 홍어는 이제 저항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의 상징이 된다. 함께함,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을 대표하게 된다. 그렇게 홍어는 시인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홍어의 톡 쏘는 맛을 톡톡히 보여준 시간이다. 홍어가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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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이 온다]에 출판사 직원인 은숙이 나온다. 광주를 겪은, 그러나 민주화가 되지 않은 시대, 출판 검열의 시대. 검열관에게 뺨을 맞은 은숙.


  엄혹한 시대다. 수많은 죽음을 겪고도 다시 죽음과 같은 검열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시대. 소설 속 이야기지만, 그런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시집을 설명하는 글에서 시인 김혜순이 그런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뭐 망설일 것 있나? 읽어봐야지. [소년이 온다]가 소설로 쓰였다면, 시는 그런 사건을 좀더 압축적으로, 감정적으로 전달해줄 테니.


  뺨 일곱 대를 맞았다고 한다. 한 대에 시 한 편. 시인은 그 분노를 시로 쏟아내었다. 하지만 밝힐 수는 없는 일.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일. 시 자체가 직설이 아니라 세계를 자신의 감정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니.


차마 일곱 번째 시는 발표하지 못했다고, 어디엔가 두었다가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경찰서에 따라가서 뺨을 일곱 대 맞은 적도 있었다. 맞으면서 숫자를 세었다. 하숙집에 엎드려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출판사를 결근하고 썼다. 그 시들을 몇 년 묵혔다가 이 시집에 실었다. 마지막으로 쓴 일곱번째 시는 걸릴 것 같아 애당초 넣지 않았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시집엔 여섯 편만 들어 있다.' (2017년 복간본, 시인의 말에서. 아마 1988년 초판본에는 이런 말도 싣지 못했으리라)


이런 사건을 '그곳'이란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


'세계 제일의 창작소' (그곳 1)이고 '스토리와 테마 들이 만들어져 떨어지는'(그곳 1) 곳이 바로 그곳이다.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사실을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들어진 사실은 진실처럼 유통이 된다. 그런 시대를 거쳐 지금은 최소한 그러한 거짓들이 사실로 둔갑하는 세상은 아닐 거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는데... 


'스토리와 테마 들이 만들어지는, 세계 제일의 창작소'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버젓이 사실을 왜곡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그곳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그곳에서 창작되는 많은 스토리들이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곳의 존재를 안다. 그곳이 실제했음을, 그곳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스토리와 테마들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안다. 그곳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나 만나는 '그곳'이 되어야 한다. 


복간된 김혜순의 시집 [어느 별의 지옥] 맨 앞 부분에 실린 '그곳' 연작시 여섯 편. 그러한 그곳이 있는 곳이 지옥이다. 지옥은 꼭 죽어서만 가지 않는다. 하여 우리는 시집 제목인 '어느 별의 지옥'을 찾아 없애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집 제목이 된 시를 읽어 본다. '그곳'과는 다른 의미겠지만.


  어느 별의 지옥


무덤은 여기

가슴에 매달린 두 개의 봉분

이 아래 몇 세기 전의 사람들이 아직 묻혀

숨 들이켜고 있는 곳

바다에 달 뜨고 달 지듯

두 개의 무덤 아래

죽은 자들이 모여

망망대해를 펼치고 오므리는

달을 올리고 끌어당기는

여자의 깊은 몸 구중궁궐

또 한세상

몇 세기 전의 어둠이 아직도

피 흘리며 갇혀 있다가

초승달 떠오를 때

기지개 켜는 곳

뱀과 뱀이 입 맞추고

초록 풀 나무 덩굴이 수천 번

되살아나고 뒈지는 곳

어느 별의 지옥은 여기 


김혜순, 어느 별의 지옥, 문학과지성사. 2025년. 초판 2쇄.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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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봄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는 분들도 조금은 지내기 편해질 수 있겠지.


  계절로 인해 편해지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이 분들이 자신의 생활을 꾸려갈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제공하는 쪽으로 바뀌는 것이 더 좋겠지만, 아직은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그래도 이번 호에는 연예인 엄태구 씨가 나와 빅이슈 판매 도우미로 활동했다는 기사, 특히 자신을 돋보이게 하지 않고 추운 날씨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니, 더욱 훈훈해졌고.


읽다가 2024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가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이란 단어를 선정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63쪽)


좀 무서운 단어지만, 뇌가 썩는다는 말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 이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편협함에 갇힌 사고방식으로 해석한다면, 알고리즘이라는 말과 '뇌 썩음'이라는 말을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알고리즘이 무엇인가? 자신의 성향, 취향에 맞는 것들을 연이어 제시해서 그것들을 계속 보게 만들고,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질 틈을 주지 않는 것 아닌가.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만 그것도 콘텐츠(내용이라고 해야 하나)만 달리해서 계속 본다면, 편향적 사고를 지닐 수밖에 없다. 편향적 사고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니 그것이야말로 '뇌 썩음'에 해당하리라.


그런 점에서 이번 호에 실린 젊은 정치인이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누구는... (96-101쪽 참조)


'고도화된 다툼의 방식이 정치라 생각한다. 폭력적으로 싸우는 방식은 옳지 않지만, 싸움이 정치의 본질인 것이다.'(100쪽)


정책들의 싸움, 그것이 정치다. 고로 정치는 언어로 하는 싸움이다.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싸움이 바로 정치다. 언어가 아닌 폭력의 수단이 동원되는 순간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 된다.


그러니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주장이 없다면 정치는 없다. 다른 주장들이 언어를 통해 오고가고, 그러면서 자신의 주변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과정, 언어들의 싸움... 아니 주장들의 싸움, 이것이 정치다. 그러니 고도화된 다툼의 방식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말을 잘못 해석해서 고도화된 정치 행위로 폭력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고도화된 정치 행위가 아니라, 국민을 어려움으로 빠뜨리는 헌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에 불과하다. 즉 고도화된 다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면 '뇌 썩음'으로 나아간다. 알고리즘에 빠진다.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주변을 볼 수 있는 눈이 사라진다.


오로지 자신에게 좋은 것들로만 주변을 채운다. 이런 존재에게 공동체란 존재하기 힘들다. 공동체에 온갖 존재들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뇌 썩음'과 가장 거리가 먼 잡지가 바로 [빅이슈]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빅이슈]는 다양한 글들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동체를 이루는 소수자를 외면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글들도 좋았지만 '뇌 썩음'이란 단어로 '알고리즘'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정말 정치인들은 이런 '뇌 썩음'을 경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젊은 정치인의 말을 다시 새기자. 뇌 썩음을 방지하는 길은 고도화된 다툼의 방식이 정치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다른 무엇보다 다양한 책을 읽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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