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 브로츠와프의 쥐들
로베르트 J. 슈미트 지음, 정보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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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8월 9일 금요일 19시 50분.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한 격리병동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폴란드에 출혈성 천연두가 유행하게 되고, 정부는 환자들을 격리하게 된다. 격리를 통해서 전염병을 차단한다는 발상, 이거 몇 해 전에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코로나19 팬데믹 때 우리 역시 겪었던 일이다.


격리로 일정 시간이 지나 전염병이 잡히면 좋겠는데, 여기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변이가 생긴다. 사람들이 죽어도 죽지 않는 상태로 변하게 된 것. 단지 그런 상태로 변했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렇게 변한 존재들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무차별적으로... 잔인하게.


격리병동에서 시작된 이 재난은 브로츠와프 전체로 번져나가게 된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 하지만 곧 변한 존재, 처음에는 변질자라고 하지만 나중에 좀비로 이들에 대한 규정이 확정이 된다. 그런 존재를 눈으로 목격하고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게 된다.


팔다리가 분리되어도 죽지 않고 그 팔다리가 따로 움직이면서 공격을 하고, 머리가 짓이겨져도 움직이면서 공격하는, 총알이 몸을 뚫어도 죽일 수가 없는 그런 존재들. 살아있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공격해서 그들과 같이 만들어버리는 좀비들.


그렇다. 수많은 좀비 영화, 소설들이 그렇듯이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팔다리가 따로따로 움직이는 좀비는 없었는데... 


경찰이 대응을 하다가, 군인이 출동을 하고, 전염병 전문의들의 조언으로, 이들을 고온에서 태워버리고자 한다. 화장, 말이 좋아 화장이지, 그냥 소각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즉, 과거에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아니라 위험물이 된 존재들이니 아무런 거리낌없이 소각하려 한다. 한데, 소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들을 태우는 연기 속에 전염 요소가 들어 있는 것.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번지는 전염. 


연기를 마신 사람들도 좀비가 된다. 이제는 군인이나 경찰로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니까. 아직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대책은 없는데 전염은 계속 되고, 이때 해결하려 나서야 할 정부는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국민들이 어떻게 되든, 군인들이 어떻게 되든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들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생각을 한다.


그런 목적으로 군인과 경찰을 이용하는데, 이는 부패한 정권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정부를 갖지 못한 나라에서 위기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폴란드의 권력자들은 소련의 눈치를 보고, 국민들의 안전은 뒷전으로 여기는 모습이 소설에서 나타난다고 하겠다. 이게 어디 폴란드만의 문제였겠는가.


책임감 없는 자가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재난, 위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되는지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자신들만 피란을 가고, 한강 다리를 끊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작자들. 이런 지도자연하는 작자들이 이 소설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도시 하나를 폭탄으로 완전히 날려보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이 부패한 권력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때 전염병이 브로츠와프만이 아니라 폴란드 전역에, 아니 전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부패한 권력자들 역시 좀비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런 권력자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니, 사라지는 것이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런 권력자들은 재난 상황에서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 사태를 진정시킬 사람은 누구인가? 소설은 여러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 인물들이 대부분은 죽는다. 많은 인물들 중에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누구일까? 이들은 과연 이 재난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전개가 급박하게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사람을 죽인다고나 할까. 수많은 인물들이 죽어나가는데, 그 죽음의 잔혹함이 말로 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계속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작품을 이끌어가게 될 것인데...


소설의 전개로 보건대 군인들과 경찰들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 그리고 전염병 전문가, 일반 시민들 몇몇들이 다음 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까지 이들은 쫓기고 있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지만, 이제 어떻게 반격할 것인가. 아니 어떤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그 점을 다음 권에 넘기고 있다.


첫권이 75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겨우 12시간이 지났다. 브로츠와프 전역이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제 부패한 지도부는 없다. 이들은 좀비에게 당했다. 그렇다면 이 재난을 해결할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이 점을 찾아가는 것이 폐쇄된 사회였던 1960년대의 폴란드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작가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군인이라도 같은 군인이 아니듯이, 경찰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위하는 군대, 경찰이 있다면,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군대, 경찰도 있다.


여기에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명령에만 따르는 자들, 또 다른 사람들을 가학적으로 다루는 인물들, 그런 인물들이 재난 상황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그들로 인해 위험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번져가게 되는지를 몇몇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렇게 첫권은 1963년 8월 10일 토요일 07시 50분에서 끝난다. 딱 12시간이 지났다. 이 12시간의 사건이 750쪽에 담겼다. 브로츠와프와 그 외곽지대에서 벌어진 일들로... 긴박하게 전개되는 사건들, 급속도로 퍼지는 좀비들.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다음 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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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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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중에 읽은 소설은 소설집의 제목이 된 '가만한 나날'이다. 2018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는데... 


가만한 나날이라는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가만하다'가 무슨 뜻이지? 가만 있어처럼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 대책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고 쓸 때처럼 속수무책일 때, 또는 조용하고 은은하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는데...


이 세 가지 뜻이 모두 소설에 들어있지 않은가. 사회에 갓 발을 들여놓았을 때, 자신이 하는 일을 깊게 살피기 보다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바로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서 상사들의 지시에 어떤 토를 달지 못하는 상태. 그렇다. 가부장제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위계를 따지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 직장에서도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남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기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정말 가만히 있는 나날들이 연속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하지만 세 번째 의미는 좀 다르다.


조용하고 은은하다는 의미는 격정적인 순간을 넘어서서 이제 자신의 삶을 찾았다는 의미, 그래서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쪽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만한 나날이라는 말에서는 남에게 휘둘리는 삶에서 자신의 삶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만한 나날'에서 주인공은 자의든 타의든 그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었고,(회사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해 떠났다고 하지만, 아마 그 회사가 계속 잘나갔더라도 주인공은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 회사에 다닌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들이 이 소설집에 많이 등장한다. 함께 살고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혼인신고를 했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사람, 직장에서 만난 상사를 통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달은 사람 등등.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이가 모두 20대에서 30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제 사회에 갓 발을 들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겪는 일들을 통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어떻게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지, 그 시작이 얼마나 힘든지를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소위 흙수저라고 하는 사람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렇지만 녹록치 않은 사회. 그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야기.


하여 그들의 삶이 평온하다는 의미를 지닌 가만한 나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그렇지 않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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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의 포트폴리오
커트 보니것 지음, 이영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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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소설을 읽다가 이거, 정말 다윈상 후보에 대한 이야기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 자신의 생명을 거둘 수도 있는 호기심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 이야기.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라는 소설,


다윈상이 무엇인가? 위키백과를 참조하라. 하여간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의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다윈상 수상자는 그래서 살아 있지 않다- 수여하는 상 아닌가.


다윈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소설 제목이 재미 있는데, 영영사전에서 timid(소심한)과 Timbuktu(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 위치하는 단어가 time(시간)이라고 한다. (7쪽)


시간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돌릴 수가 없다고...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시간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정말로 죽을 때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자신이 그러한 죽음에 이르고자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정말 죽어가던 사람이 깨어나서 하는 말,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이 죽음을 불사하는 실험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결과는, 아마도 다윈상의 유력한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어리석음, 지나친 호기심. 호기심이 창조를 낳기도 하지만, 생명을 없애기도 하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예전에 몇몇 알던 다윈상 수상자들을 떠올렸으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집 제목이 '멍청이의 포트폴리오'이기 때문에 다른 소설들도 다윈상을 받을 만한 사람들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그것은 아니다. 다양한 내용의 소설이 묶여 있다. 아마도 커트 보니것 초기 단편들을 모아놓은 듯하고.


마지막 소설인 '로봇빌과 카슬로우 씨'는 미완성작이니... 내용이 중간에, 아니 어쩌면 시작 부분에서 멈추고 말았다. 뒤에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모르니, 작가가 구상한 소설 중에 어느 정도까지 진전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 '마지막 태즈메이니안'은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라고 하고, 그의 신랄한 사회비평이 담겨 있는 글이니,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커트 보니것의 관점을 알 수 있다.


제목이 된 소설을 보면 과연 이 소설의 주인공이 멍청이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인물은 우리가 좋은 의미로 쓰는 '바보'라는 말이 어울린다. 바보 의사 장기려처럼... 또는 바보 소리를 들었던 김수환 추기경처럼. 또한 바보 소리를 들었던 어떤 정치인처럼.


자신이 받았던 것을 조건 없이 남에게 베풀려 하는 사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멍청이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사람들로 인해 사회는 조금 더 좋은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보니것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회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다.


자신이 준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드러나게 행동하지 않는, 그야말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고 멍청하다고, 바보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좀더 좋아짐을, 또 그런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짧은 소설들이 묶여 있지만 그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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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 월급사실주의 2025 월급사실주의
김동식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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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이건 자신의 능력에 비해 직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더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여기에서 이렇게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담긴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귀천이 없을까? 힘듦과 쉬움이 있고, 수입이 많음과 적음이 있지만 그것으로 귀천을 따지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 그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인 작가들이 모여 그러한 현실을 소설로 썼다. 이 책이 세 번째 책이다. 2023년에 첫 책이 나왔고, 해마다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으니 올해 나오면 네 번째 월급사실주의 소설이 되겠다.


월급사실주의, 노동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이 삶과 동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 문학이 작가의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것도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있는 문학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바람이 이루어졌느냐는 것을 따지기 전에 이러한 작업을 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겠다. 문학을 통해서 현실을 만나고, 간접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나만 힘든 삶을 겪고 있구나 하는 위안을 느끼는 동시에, 이러한 힘겨운 삶이 내 탓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그래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함께해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 문학은 그렇게 현실에 참여하게 된다.


이 소설집에 황모과가 쓴 '둘이라면 유니온'에서 약간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계엄 선포하기 전에 모인 국무회의 장면이다.


회사에서 일하며 느꼈던 일들을 쓴 소설. 비록 노조를 결성하지 않았지만 둘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장면을 회상하면서 그런 행위가 노조를 결성한 행위라고 여기기로 했다는 소설 속 인물.(215쪽) 이 인물은 그 회사에 더 이상 있지 않고 나온다. 자신의 양심으로 계속 있기 힘들었으니...


그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써왔던 소설을 쓰기로 하고, 나중에 작가노조에 가입을 한다. 하, 소설에서는 작가노조가 금속노조 지회가 되었다고 하는데, 왜? 작가도 철(금속)을 이용하니까... 현실에서 이렇게 소설 속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검색해 보니 2025년에 작가노동선언을 발표했던데... 노조로 아직 공식 출범한 것 같지는 않지만 조만간 작가노조가 출범하겠지. 노조에 대한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데, 이 역시 특정 권력집단과 언론이 조장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이 소설에서 임원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 '이 겨울, 기시감에 시달리며 '회의실의 피터들'을 떠올렸다. '회의실의 코끼리'는 회의중에 절대로 언급되지 않는 일들을 비유한다. 그리고 조직에서 승진하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무능하거나 승진한 뒤엔 반드시 무능해진다는 것이 '피터의 법칙'이다. 리안과 나는 회사 회의실에 피터들뿐이라고 말했었다. 그걸 떠올리니 12·3 내란의 밤, 국무회의 분위기도 할 만한다. ... 아무도 언급하지 않아 코끼리가 된 피터들의 표정은 지겨울 정도로 친숙하다.' (212-213쪽)


그렇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런 피터가 되기 싫어 회사를 나온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고, 회사원의 처우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피터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노조를 결성할 수밖에 없고. 회사를 나와 작가가 된 이후에 작가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소설들이 바로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이 쓴 소설이다.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노동현장을 소설로 보여주는 것, 그런 부당함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최근 '쿠팡 사태'를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니, 쿠팡 사태 이전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면, 월급사실주의 소설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살기 위해서 노동을 하는데, 오히려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작가라면 그런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이러한 현실이 직장을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 인종차별을 알게모르게 당하는 이주노동자들(우리나라에 온 이주노동자 문제도 있지만, 외국으로 나간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돌봄노동자들, 비정규직, 방송의 윤리 문제를 생각하는 방송인, 시각장애인, 인공지능 시대에 데이터 라벨링을 하는 노동자, 중증장애인들이 겪는 문제를 지 작품집에서 각 소설가들이 다루고 있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실. 바꿔야만 하는 현실. 사람이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함을, 그러한 환경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현실에서도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니,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의 작품,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올해도 작품집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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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춘이라는 시인
하종오.조기조 엮음 / 비(도서출판b)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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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시의 길이가 짧다고 시에서 느끼는 감흥이 적다는 말은 아니다. 짧은 시에서 번져오는 깊은 울림. 마음을 물들이는 시들. 그런 시들을 쓴 시인 서정춘.


짧게 쓴 시들만큼이나 시집도 많이 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첫 시집이 28년만에 나온 것에 비하면 나머지 시집들은 아주 빠르게 나온 셈인데...


그는 평소 자신은 세 가지에서 짧다고 '삼단(三短)이라 했다는데, "체구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 '극약 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 (문인수, '지네-서정춘 전'에서. 29쪽)고.


야간 중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가난했던 삶. 마부였던 아버지. 하지만 어린 시절 시에 반해 시집을 필사하면서 시 쓰기를 갈망했던 시인.


주소를 바꿔 투고를 하는 바람에(?) 신아일보에서 시로 당선이 되었다는 시인. 그 전에 용꿈을 꾸었다고... 신아일보에는 시조를 보내고, 동아일보에는 시를 보내려 했는데, 술을 많이 마신 바람에 두 작품의 주소가 바뀌었다는데.


이 책에 실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서정주의 심사평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아, 참... 이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선자와 성명 중의 두 자가 같다는 우연한 사실 때문에 혹 있음직도 한 오해가 염려되지 않은 것도 아니나, 출중한 것을 그 때문에 묻히게 할 수는 없었다. 당선자 서정춘 씨와 선자는 일면식도 없고 단 한 번의 서신거래도 없는 사이인 것을 먼저 여기 분명히 밝혀 둔다.' (157쪽)


이렇게 이 책은 이런 시인 서정춘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해서 후배 시인들이 기획해서 내었다. 1부에는 서정춘이 등장하는 시들을 - 와, 이토록 많은 시인들이 서정춘이란 시인에 대해서 시를 썼다니, 그의 짧은 시와 대조적으로 그의 영향력은 길고도 길구나!-, 2부에는 서정춘 시에 대한 해설을, 3부에서는 서정춘의 사진들과 서정춘의 시에 장사익이 작곡을 했다는 노래 악보와 당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기사 등이 실려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서정춘의 연보가 실려 있는데, 이 연보가 그냥 연대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전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되어 있다. 서정춘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이 연보에서 아버지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피아노 최씨와 외팔이 장씨), 그는 외팔이 장씨를 통해 정지용, 백석 등의 시인을 알게 되고, 외팔이 장씨가 '너는 이미 시인'(172쪽)이라 했다고... 

 

서정춘이란 시인을 잘 모른다면 이 연보를 먼저 읽고, 2부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1부로 넘어가면 좋으리라. 


이 책에서 서정춘에 대한 이야기 중에 김성동이 한 말... 하, 이 정도의 시인이었단 말이구나, 서정춘이란 시인은.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 목월이 있다."

  시단에 떠도는 말 듣고 이 중생이 말하였다.

  "북에 소월이 있고 남에 목월이 있다면 그 가운데 용래가 있다."

  다시 말하겠다.

  "평안도에 백석이 있고 충청도에 용래가 있다면 전라도에 정춘이 있다." (109쪽)


이 책을 읽으면 서정춘의 시집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몇 권 그의 시집이 있지만,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시집들이 있다. 품절된 시집인데... 그러한 시집들이 다시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참에, 그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죽편'이란 시에 곡을 붙인 장사익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노래의 1절과 2절 사이에 [죽편]의 첫 시인 '30년 전 - 1959년 겨울'이란 시가 장사익의 읊조림으로 들어가 있다. 장사익은 죽편이라는 시 제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여행'이란 제목으로 바꾸었는데, 인생은 여행인가? 검색하면 들을 수 있지만, 여기에 링크를 걸어둔다.


EBS 스페이스 공감 - 263회 장사익 - 여행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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