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견문 2 -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유라시아 견문 2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권이다.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는 저자인데, 이번에는 미얀마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인도를 거쳐 이란, 이집트 등의 이슬람 국가들로 가는데... 정말 많은 나라들을 견문하고 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있지만, 그간 알고 있던 것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많은 책이다.


저자는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 또한 책에만 매몰되어 있지도 않다. 여기에 서구의 시각을 벗어나 있다. 현지에 가서 현지인들과 만나면서 현지 방송, 현지 언어로 자신의 견문을 넓힌다.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지만, 읽다 보면 저자가 상당히 많은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는 기본이고, 아랍어까지 공부를 한다. 왜냐? 한쪽 언어로 전달되는 정보만 얻어서는 균형을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쪽 언어로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현지의 언어를 공부한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2016년이 주요 시대다. 10년 전이다. 과거의 일이라 저자의 예측이 빗나간 경우도 있다. 당연하다. 당시의 눈으로 판단한 역사의 흐름이 그대로 전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은 방향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지만 순간순간 정체되기도 하고 방향을 살짝 틀기도 한다. 여기에 숱한 우연들이 겹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저자의 예측이 맞았느니 틀렸느니 따질 필요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자세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저자의 주장이 어떤 의미인지, 그러한 주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10년,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역사라는 긴 강물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다. 저자의 예측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선형으로 갈 수도 있으니까. 


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이번에는 '인도'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분할이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지도 명확히 알게 되었고... 여기에 미국-영국의 식민지 정책이 한몫을 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고나 할까.


자신들이 싼 똥을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치우게 하고 있다는 생각. 이것은 중동도 마찬가지다. 중동을 화약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 중동 국가들이 이렇게 된 이유도 바로 유럽의 제국주의에서 기인한다는 것.


이들이 전파한 민족주의가 이슬람이라는 전체의 세계를 나라로 축소시키고, 다시 이들을 영국이나 미국같은 제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지지하고, 우호적이지 않은 나라를 적대하면서 갈등을 일으켰다는 것. 제국주의 분할지배가 성공하면, 그 다음에는 이렇게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를 통해서 보게 된다.


이슬람이 수천 년 여러 민족, 여러 종교들을 포용하면서 서로 공존하는 삶을 살아왔었는데, 이를 '움마'라고 표현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민족주의가 국가와 결합하면서 국경선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


최근에 다시 이슬람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세계화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저자의 예측이 있는데...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갈등이 사그라들 것 같았던 중동이 여전히 갈등 중이고, 이제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려 한다는 움직임마저 있으니.. 아직도 중동은 '화약고'인 것이 맞다.


물론 저자는 '중동'이라는 개념도 반대하고 있지만, 이 중동이라는 개념 역시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저자가 책의 제목으로 쓰고 있는 '유라시아'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번 권의 작은 제목이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인데... 여러 나라에 머물면서 그 나라의 문화, 역사를 살피고, 그것을 세계의 관점에서 살피는 일. 그야말로 견문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학자들이 외국에 나갔다 와서 쓴 글들도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그 나라를 통해서 우리의 현재를 보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는데, 이 책 역시 그렇다.


유라시아의 견문을 통해 현재를 살피면서 과거를 불러와서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 바로 '히잡'에 관한 것이었다. '히잡'을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슬람에서 히잡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나타나는 상징이 되고 있다고.


여성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히잡 착용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이 히잡을 다양하게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들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


또한 '히잡'이 남성의 시선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는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점도 그렇고, 프랑스에서 히잡 착용을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종교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자, 우월의식이 발동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똘레랑스의 나라에서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고, 그것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주는 것이 당연한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까 했는데, 저자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고.


할랄 음식도 마찬가지다. 할랄은 좋다. 건강한 먹을거리니까, 세게 도처에서 할랄 표시를 한 음식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이슬람에서 약간 비판적이라는 것. 왜냐하면 이슬람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데, 할랄 표기를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할랄 음식으로 번 돈을 자본 축적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쓸 때 그때서야 비로소 할랄 음식이라 할 수 있다는 말... 


이슬람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이번 권인데... 이런저런 그동안 한쪽으로 치우친 내 생각을 다른 방향에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유라시아 견문'이다. 이제 3권이다. 어떤 견문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라시아 견문 1 -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 유라시아 견문 1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 오래 된 책이다. 10년 전에 나온 책. 강산이 한 번은 변했다. 아니, 요즘처럼 격변하는 시대에는 강산이 여러 번 변한 시기이다. 강산만 변하나 하면 아니다. 세계가 변했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온 내용이 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시에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서 현재를 읽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했는데, 이 책에서 예측하거나 제시한 내용들이 이미 실행이 되었거나, 또는 실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10년이라는 세월이 아무리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어도 기본적인 원리는 바꾸지 못한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항들이 아니라 기본이 되는 원리, 원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짧은 시간에 바뀌는 정책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변화할 수 있는 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 저자 역시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서 그 점을 깨닫고 또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다.


저자가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서 보는 것은 세계를 남과 북으로 나누는 것,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는 것과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대결로 보는 것, 그리고 여러 종교들의 갈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중 어느 하나로 치우치지 않는 융합이다.


즉 과거로부터 이어받을 것은 이어받고, 서양이든 동양이든 경계를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체제,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세계화 시대가 당연히 그러하다고 생각하지만 예전에도 이러한 주고받음이 일상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가 간의 경계에 머물지 않고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 확장이라고 해도 좋지만 경계를 열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유라시아를 통해서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고의 유연성, 대책의 현실성, 그리고 근본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하나의 국가나 체제의 틀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그간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세계화가 지금 시대에 별안간 나타난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이미 있었음을, 당나라 때 수도인 장안은 국제도시였음을, 그리고 동남아와 중국, 남아시아, 페르시아 등등이 이미 교류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모습들이 서양의 근대화로 인해 오히려 닫혀버렸다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이런 국제적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따라서 진보가 일직선 상에서 일어나는, 과거를 밀어내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에 불러와 미래에 통합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이슬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데, 이는 동남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문화권에 살고 있고, 이들의 문화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가 대립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님을 저자가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순간 교류가 끊기고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보다는 배척하려는 모습이 우세하게 되었는데, 과거를 제대로 안다면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로 나아가기 힘들다는 것.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서 저자는 과거뿐이 아니라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2015년에 유라시아 견문이 시작되었는데, 오래 전 이야기라고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책이다. 지금도 우리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제시되어 있다.


특히 특정한 나라의 시각에 많이 치우쳐 있는 우리의 현실을 교정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2권, 3권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설게 하기'란 말이 생각났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아니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면서 늘 생각한 것이, 또 SF라고 평가받는 소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낯설게 하기'다.


낯설다는 말은 곧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나'라는 자아가 있고, 이 자아와는 다른 '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낯섬이 일어난다. 즉 낯섬은 다름을 인식하는 행위다. 다름을 인식해야 변할 수 있다.


남을 인식하지 못하고, 남을 인식한다고 해도 나와 남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그냥 나의 다른 부분으로만 여긴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 변화는 다름의 인식에서 오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으면 갈등도 없다. 갈등은 낯섬과 마주쳤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즉 삶이 변화없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서 앞으로 어떤 삶이 전개될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측불가능성, 이것이 낯섬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낯섬은 불안을 동반한다. 불안을 안정으로 해소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해소를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따르게 된다. 이 갈등이 바로 우리 삶이다.


그러므로 SF소설은 낯섬을 통해서 우리에게 삶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소설을 통해서 다름을 인식하게 되고, 이 다름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균일하고 평평했던 안정적인 삶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변화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두려움과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소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과는 다르다. 


현실과 다름을 인식하고 읽어가서 실제 삶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 이렇게 다른 삶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다.


김초엽 소설집을 읽으면서 낯섬, 다름, 그러면서 단순히 관광객이 아닌 내 삶에 그러한 낯섬을 끌어오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관광과 여행을 구분한 사람이 있었다. 관광은 보고 지나침, 여행은 내 삶에 끌어오기였던가?)


적어도 같음만을, 단일함만을 추구하지는 않게 되었다고 할까? 낯섬이 작동하기 위해서 '나'를 인식해야 하듯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내 삶, 내 사고방식을 생각했다고나 할까.


나를 알지 못하면 낯섬을 경험할 수 없다. 낯섬이란 바로 '나'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면서 먼저 '나'를 생각한다. '나'를 생각하고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존재들을 생각한다.


이들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아니 나와 같지 않음을 생각한다. 다르지 않다는 말은 존재한다는 뜻이고, 그들은 그들 나름의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서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면, 존재들은 모두 다름을, 심지어 '나'조차도 하나가 아님을 깨닫는 데서 나와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뭐,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작품을 읽으면 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김초엽 소설들처럼 잘 읽힌다.


잘 읽히면서도 무언가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소설의 끝에 가서 더, 더 무엇을 생각해야 한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인, 어쩌면 계속되는 과정 속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할 수도 있고, 세상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하나의 답이 없음을, 나 자신도 하나가 아닌데 어떻게 하나의 정답이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여러 삶이 있고 그러한 삶의 우열을 가려서는 안 되니, 이 삶이 옳다 그 삶은 그르다고 말할 수 없음을...


다만 관계를 통하면 자신만의 삶을 유지할 수는 없음을, 관계란 바로 낯섬에서 발동하고, 낯섬은 나와 너를 인식한 상태에서 서로가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잃으면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관계의 시작임을 생각한다.


총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중에 다른 책에 수록된 작품이 네 편이다. 아마도 읽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소설, 어디에서 읽었는데, 어디였더라? 찾아보기도 했으니까.


예전 습관대로 소설집 뒤를 찾아보았다. 예전에는 소설집으로 단편 소설들을 엮어서 낼 때 그 소설들이 처음 발표된 지면을 알려준 적이 많았기 때문인데... 없다. 작가의 말을 읽어도 추천의 말을 읽어도 읽은 작품이 어디에 먼저 발표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런...


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 분명 읽었는데... 찾아볼 순 있다. 조금만 수고하면. 그 결과 종이책으로만 이야기하면, 먼저 출판된 책들은 다음과 같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자이언트북스. 2023년)

'양면의 조개껍데기' (팔꿈치를 주세요]-큐큐. 2021년)

'달고 미지근한 슬픔' ([다시, 몸으로]-래빗홀. 2025년)

'비구름을 따라서' ([토막난 우주를 안고서]-허블. 2025년)


여기에 '진동새와 손편지'란 소설은 '한국타이포그라피 학회'의 의뢰를 받아 쓴 작품이고 이 소설의 한 문장 한 문장을 타이포그라피로 써서 전시도 했다고 한다. 이 전시 영상이 있는데... 이것도 보면 좋을 듯하다.


한국타이포그라피 학회 (http://www.k-s-t.org/vibrating-birds-and-handwritten-letter/about.html)


여기에 덧붙이면 이 책을 산 이유 중 하나가 비정기 무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간될 때는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이제서야 읽었으니...


한편 한편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이 낯섬이고, 이 낯섬을 통한 관계 맺기는 결국 우리 삶은 과정에 있고, 늘 변화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마디 더 덧붙이면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편하게, 그러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은 '소금물 주파수'였다.


작가의 고향인 울산과 고래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이렇게 존재들이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낯섬이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나와 남의 관계 맺기의 시작임을 또 그것이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어서.


판매되지 않는 이 무크지에 실린 김초엽 자신이 이번 소설집에 대해 한 말을 끝으로 인용한다. 이보다 더 이 소설집을 잘 정리할 수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


'편협한 한 개인의 몸에 갇혀 살아가고,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고, 오해하고 충돌하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경계 밖을 이해하고자 갈망하고, 마음을 잘 전달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는 한계가 우리가 지닌 희미한 빛이자 가능성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여기 담긴 소설들은 그 한계와 가능성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초엽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출간 기념 무크지. 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술공화국 선언 - 강력한 기술, 흔들리는 가치, 인류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알렉스 C. 카프 외 지음, 빅데이터닥터 옮김 / 지식노마드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으면서 반감이 들기도 한다. 뭐야, 미국의 패권을 주장하는 책이잖아. 이거야 원.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과학기술이 복무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 국가가 어디냐면 미국이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첨단 기업들이 국가와 연결되지 않고 개인의 만족을 위한 사업, 기술 개발에 몰두했기 때문에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가 힘들어졌다는 판단을 하고, 과학기술은 국가와 결합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옳음보다는 좋음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니, 세계화 시대에는 맞지 않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이 주장이 통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금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패권국에서 밀려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관세를 통해 다른 나라들을 겁박하는 것이나 도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 여기에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니...


트럼프는 각종 협약도 폐기하고 있으니, 유엔이라는 단체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즉 세계화 시대는 저물고 각 국가의 각자도생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되겠다.


이런 때에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첨단 과학기술의 회사들이 어떻게 해야할까를 주장하는 책인데, 저자가 공동체, 공동체 주장하지만 이 공동체는 미국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시 세계를 주도하려면 개인의 만족을 위한 사업과 기술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와 연결이 된 사업과 기술이 주도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읽으면서 반감이 들 수밖에... 그럼 우리는 뭔가?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미투자를 몇천 억원 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과학기술과 첨단무기를 결합하는 것도 모두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공동체를 인류로 확장하지 않고 한 국가로 축소시키고 있는 이 주장이 왜 지금 나오고 있을까? 과학기술이 인류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이 시대에 오히려 그러한 기술들로 인해 힘을 잃어가는 나라가 있고, 그 나라가 힘을 잃어가니 나라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 그러니 다시 힘을 되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과학기술과 국가가 결합이 되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인류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미 이 책의 저자에게는 세계화는 없다. 각 국가만이 있을 뿐이다. 국가만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미국만 있을 뿐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미국이 다시 강해져 패권국가로 군림하고, 거기에 과학기술이 기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어쩌면 기술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사회로 가는 발판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국가와 결합한 과학기술의 예로 핵추진 잠수함 이야기가 나오는데,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관철시킨 해군 장교를 영웅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핵추진 잠수함으로 미국은 바다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지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가 있는 회사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결합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인권, 이런 것은 없다. 오로지 국가의 이익과 자신들의 이익을 일치시키고 있다. 따라서 온갖 무기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만들려고 하고 있다. 무기가 아니라 무기를 무력화 시키는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그들은 이러한 기술이 무기로부터 죽어가는 사람들을 좀더 저렴한 가격에 효율적으로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패권을 잃지 않으면서...


참...이렇게 미국의 패권을 이야기하지만, 역시 미국 사람답게 세계 시민임을 포기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책의 끝부분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기술 공화국을 재건하려면 집단적 경험, 공유된 목적의 정체성, 결속시킬 시민적 의례를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277쪽)고.


이 말만 보면 다른 나라들도 이렇게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지니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지녀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각국은 각자도생의 세계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 더욱 과학기술을 국가와 결합시킬 수밖에 없는데, 국가와 결합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군수 아닐까 한다. 이는 과거의 '군산복합체'를 부활하자는 말과도 같지 않을까 하는데... 설마, 그것은 아니겠지.


이래서 읽기 불편하다. 하지만 미국이 이렇게 나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이제 세계화는 국가 간의 경쟁, 각자도생의 세계로 변하고 있으니,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어이 없음'이라고 내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잃지 않는 방법도 고민해야 하니, 이래저래 힘든 세상에 직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경고의 의미로 이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손 놓고 구경만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저자도 이런 말을 한다. 이 말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모든 과학기술이 국가와 또는 기업과 연관될 때 적어도 우리는 이 점을 먼저 살펴야 한다.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를 떠나서 이 책엔 새겨둘 만한 말들이 제법 있다. 그 중 둘을 여기에 적어둔다.


'만일 우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단 한 번이라도 오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면 반드시 그 사실을 전제로 해서 설계와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221쪽)


그리고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지녀야 할 자세, 이것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묻고, 그 답에 대해 다시 '왜?'라는 질문을 4번 더 반복하는 것이다. 이를 '5Whys'라고 부른다.' (2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 인간 - AI 시대, 문명과 문명 사이에 놓인 새로운 미래
김대식.김혜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이 인간' 제목이 참신하다. 새로운 문명과 문명 사이에 있는 인간이라고, 우리가. 이 사이를 '과도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개념이 좀 다르다. 과도기라고 하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중간이라는 말인데, 결국 저쪽으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 건너가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말이 '과도기'라는 말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인데...


반면 '사이'라는 말은 건너다라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갈 수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사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사이 인간'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지금 'AI시대'를 향해 가고 있지만, 'AI시대'가 정해져 있고, 반드시 그쪽으로 가야 한다는 당위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는, 또는 이쪽도 저쪽도 바꿀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사이' 아닌가. 우리 '사이 인간'은 이 문명과 저 문명의 사이에 있으면서, 현재의 문명도 또 미래의 문명도 바꿀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사이 인간'에 들어 있는 뜻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과도기'라는 말보다 '사이'란 말이 좋다.


이 책에서 질문을 하고 있는 김대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두려움과 기대를 갖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 이를 우리는 호모메디우스 Homo Medius, 즉 '사이 인간'이라 명명하기로 했다'고.(10쪽)


그러면서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열다섯 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한 내용을 이 책에 실었다. 정말로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현재 문명에서 자신의 꿈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그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다가왔고 앞으로 더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대해서 대화를 했다.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한 문명에서 다른 문명을 받아들이거나 또는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앞으로 어떻게 발달을 할지 사실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예측한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인공지능이 어떻게 그러한 상태에 도달했는지 잘 모른다고도 하니. 여기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에 인공지능이 들어온 이래 인공지능을 거부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 시대로 가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이미 세계는 그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과도기 인간'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듯한 요즘인데, 굳이 '사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 문명을 완전히 떠나 저 문명으로 가자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이 문명에서도 유지할 것은 유지하되 새로운 문명을 거스를 수 없으니 이 문명과 새로운 문명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사람의 대화를 그런 관점에서 읽었다.


첫번째로 실린 최재천과의 대화에서 '두려움'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낯선 것을 보면 두려워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이는 자신이 했던 행동을 반추하면서 생기는 감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그 점을 생각하면 최재천의 이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는 인간이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지구에 저질러온 일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보다 더 똑똑한 존재가 등장하면, 그 존재가 인간이 생태계와 동물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를 똑같이 대할까봐 걱정하는 거죠. 이 두려움이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듯해요.'(20쪽)


이러면서 그는 '공존'을 이야기한다. 협동과 공존, 이것이야 말로 가장 좋은 생존(생활)방식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의 말을 '사이 인간'에 적용해보면 우리는 미래의 문명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문명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간 우리가 해온 행동을 되돌아보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는 노력, 그러한 실천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 'AI시대'라고 한다면, 이 문명에서 우리는 인간-인간, 인간-자연 등의 협력과 공존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AI시대'를 대비하는 '사이 인간'이 지녀야 할 자세다. 즉 이쪽과 저쪽을 다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과도기 인간'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리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과 나약함을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59쪽)라는 장강명의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신지영의 말이 있는데, '우리는 AI와의 소통에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비언어적 표현을 더 풍부하게 활용해야 하며, 감각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 AI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기술을 다루는 능력의 개발이 아니라, 사람과 더욱 깊이 교감하는 법의 학습에서 출발해야 합니다.(253쪽) ... AI와의 소통에 익숙해질수록 인간과의 소통을 피곤해할 수 있어요, ~ 성장이란 바로 이러한 감정적 소모를 경험하며 이루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254쪽)'는 말.


감정적 소모, 이는 인간의 나약함과도 연결이 되고, 신체와 감정을 지닌 인간이 지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이 인간'은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인간의 특성을 지키면서 'AI시대'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가 유현준이 '저는 AI가 건축가의 도구를 넘어서 '파트너'가 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고 생각해요'(76쪽)라고 했듯이, 'AI시대'를 거부할 수 없다면 협력을 하고 공존해야 한다.


인간의 특성을 잃지도 않으면서 인공지능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함께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 아닐까 한다.


이제는 인간의 관계를 넓고 깊게 해야 하는 시대.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사이 인간'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