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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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는 남의 고통을 구경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남의 고통이 중계되기도 한다. 나와는 떨어져 있는 고통. 그러한 고통을 구경하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일까?


절대로 아니다. 그러한 사회는 문제가 있는 사회다. 즉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고통을 구경하고 있으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으니까.


저자는 목격과 구경을 이렇게 분한다.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흥미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24-25쪽)고.


이 정의에 따르면 고통을 구경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다. 자신의 흥미와 관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으로 고통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고통이 남의 고통만으로 끝날까?


남의 고통이 곧 자신의 고통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세상이니, 다른 이에게 닥쳤던 고통이 내게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만큼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닌 사람은, 그러한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개인의 고통이 집단의 고통이 되고, 이는 공동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즉 고통은 사적인 것에서 공적인 것으로 전환될 때 사회적 연대가 가능해지고, 고통의 원인을 없앨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고통을 거치는 과정, 애도의 순간들. 개인의 애도가 공동체의 애도가 된다면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 책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애도가 우리의 애도가 되고 결국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도록.'(262쪽)


아마, 이 책의 제목을 '고통 구경하는 사회'라고 지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고통을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목격하고, 그러한 고통의 맥락을 찾고 고통의 원인을 없애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바람을 담아서.


따라서 저자는 고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고통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누구에게? 아직 고통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뉴스룸 기자로서 많은 고통들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던 저자는, 그러한 고통을 전달할 때 고통받는 사람에게 또다른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닌지, 또한 고통을 전시함으로써 고통의 맥락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한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를 담은 것이 바로 이 책이고, 이러한 기자로서의 자세는 우리가 흔히 '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단지 흥미를 위해서 또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또 자기 만족을 위해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러한 고통을 없앨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즉 고통과 고통을 이어 고통을 없애는 연대를 마련하기 위해 기사를 쓰는 기자들. 이런 기자들에게 '기레기'라는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없다.


'기레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심해진 이유를 기자들도 찾아야 한다. 그들이 내보내는 기사들에 대해 이 책의 저자만큼 고민을 했는지... 아마도 그러한 고민을 하고 기사를 내보냈다면 '기레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온 '갈등이 있다고 외치기보다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묻고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일'(206쪽)이라는 말처럼 기자들이 고민하고 기사를 내보낸다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하여 그러한 고통을 없애려 하는 시도를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닌가 하고.


읽으면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이 떠올랐다. 사람 몸도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으니, 좋지 않은 말을 들은 물이 찌그러지듯이, 좋지 않은 뉴스들을 접하면 우리 마음도 많이 망가진다는 그런 주장을 한 책. 어떤 사람은 그래서 신문을, 뉴스를 보지 않게 되었다는 후일담도 있는 이 책인데...


그렇다고 이런 뉴스들을 듣지,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나? 다른 이들의 고통에 눈 감는다고, 그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 몸이, 내 마음이 물과 같다면, 고통을 외면하면서 나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 책의 저자의 고민도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그러한 고통을 보여주는 이유가.


이 책에서 저자의 답을 얻는다.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34쪽)


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 감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보고 단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연대하여 그러한 고통이 지속되지 않도록, 또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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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송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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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건강권을 나라개인의 건강권을 나라가 모두 관리한다면? 자신의 건강을 기록하기 위해서 팔뚝에 칩을 심고, 그 칩에 운동, 영양, 질병 등 모든 것들이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기록을 늘 국가가 감시하고 있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부족하다고 하면 법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내 건강을 나라가 챙겨주니 좋다고 할 것인가? 이것은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종류인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은 내 건강을 지키라고 권유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제도라면, 이 소설 [어떤 소송]에 나오는 '방법'은 건강에 관련된 모든 것을 나라가 관리하는 것이다. 관리하고 처벌하고...


미아 홀이라는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생물학자다. 그러니 건강에 관해서 과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다. '방법'에 호의적이다. 반면 동생 모리츠 홀은 이렇게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에 반대한다. 그는 자신만의 시간, 자신만의 공간, 그리고 건강하지 않을 권리까지도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살인죄로 기소되어 감옥에서 자살을 한다. 자살? 이 사회에 가장 큰 범죄다. '방법'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법'은 오류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방법'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한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채취된 DNA가 모리츠의 것으로 밝혀져 모리츠가 기소되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 DNA가 모리츠의 것이 아님이 밝혀진다. '방법'에도 오류가 있다는 것이 법정에서 밝혀진 것.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방법'이 주장하는 바와 동생의 죄없음 사이에서 고민하던 미아 홀은 동생이 옳았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방법'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즉, 개인의 건강을 모두 국가의 관리에 둘 필요가 없다는 것. 개인은 고통받기도 하고, 그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


이런 미아 홀을 선동하고 재판정에 세우는 크라머라는 기자가 나온다. 그는 '방법'의 대변자다. '방법'만이 진리라고 믿고 사는 사람. 그런 그와 미아 홀은 대립을 하지만, 미아 홀은 그를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도 하고, 또 마지막 판결 집행에도 그를 임석할 사람으로 지명한다.


여기까지 '방법'에 의해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는 미아 홀을 보면, 개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승리를 거둔다는 결말로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미아 홀은 사면된다.


이유? 국가는 희생자, 순교자를 만들지 않는다. 희생자나 순교자라는 개념이 나오는 순간 '방법'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여 거대 권력은 그러한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미아 홀의 승리로 끝날 것 같던 싸움이 결국은 거대 권력인 '방법'에 의해 진실이 가려지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이는 언론과 권력이 유착이 되었을 때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송에서 명백한 증거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이용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거대 권력에 의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질이 된다.


(미아 홀의 말이 어떻게 왜곡되어 증거로 채택이 되는지, 그러한 일을 하는 크라머라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이 소설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판사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관점에서 증거나 말을 판단하고 판결하는 모습들... 이거 과거의 일도 또 다른 나라의 일도 아니다.)


미아 홀의 싸움은 절대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가져오기 위한 싸움이었지만, 그러한 싸움은 언론에 의해서 철저히 왜곡되며 권력이 미아 홀을 고립시킴으로써 - 순교자로 만들면 이는 미아 홀을 승리자로 만드는 것이니, 사면함으로써 미아 홀을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게 하는 방식으로 -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한다.


이렇게 소설은 행복한 결말이라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끝난다. 이런 일이 한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으니...


'방법'이라는 건강 독재...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개인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개입을 하거나 강요를 하는 것은 좋을 수 없음을, 그러나 그러한 권력의 통제는 알게모르게 작동을 하거나 또는 언론을 통하여 사람들의 비판적 능력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동됨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경계에 서는 일 또는 경계에 서서 이곳과 저곳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추는 일. 그것을 비판적 사고라고 해도 좋다. 그러한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보여주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그러한 것을 살필 수 있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비록 권력이 이들을 마녀로 또는 범죄자로 낙인 찍을지 모르지만 단일한 체계에 균열을 내는 존재는 권력에게 그러한 취급을 당했던 사람들임을...


소설 속 대화를 인용하면서 마친다.


"마녀란 말은 울타리 타는 여자란 표현에서 나왔어...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 아웃사이더야. 아웃사이더는 위험하게 살아가. 권력이란 때때로 자기 힘을 증명해 줄 본보기를 필요로 하는 법이야. 특히 내부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에는 더 그렇지. 아웃사이더들은 여기 안성맞춤이야. 자기들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거든. 굴러떨어진 과일이지." (145쪽)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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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브라이언 애터버리 지음, 신솔잎 옮김 / 푸른숲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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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름을 붙이기 나름이라고 해도 좋지만, 각 장르로 분화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장르 중에 사실주의 소설과 판타지 소설, 또는 SF소설도 있다. 


이 책은 판타지 소설과 SF소설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르 귄 같은 경우에는 SF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작가가 르 귄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판타지에 SF소설도 포함시키면 된다.


판타지를 그냥 환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상상으로 만들어 낸 세계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다.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그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소설을 사실주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사실주의 소설도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남 직한 일을 형상화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사실주의 소설도 역시 상상의 산물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있음 직한 현실과 완전히 다르다고 여기면서 읽는 작품인 판타지 소설은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과연 판타지 소설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그냥 상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는데... 아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상상은 현실에서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것,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기에 그것을 채우려는 우리의 활동이다.


그렇다면 상상이 문학으로 표현된 것이 판타지 문학이고, 판타지 문학은 현실에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무엇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판타지라고 생각하기에 거리를 두고 작품을 읽을 수 있고, 읽음으로써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깨닫기도 한다. 그것이 판타지가 우리에게 주는 효과다.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는 현실을 바꿀 수가 있다. 판타지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판타지를 읽고 현실에서 부족한 점, 보완해야 할 점 등을 생각한 독자가 행동으로 나설 때 현실이 바뀌는 것이다. 문학의 힘.


소위 정통 문학이라고 하는 문학만이 아니라 문학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판타지는 상상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기에 현실과 비교할 수 있는 세상을 제공해 준다.


다른 세계를 보는 것. 우물 안의 개구리에서 벗어나는 것. 자신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고 그 한계 너머를 보게 해주는 것이 판타지다. 그러므로 판타지는 현실의 쌍으로 현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현실이 판타지에 영향을 주고, 다시 판타지는 현실에 영향을 준다. 이 책의 첫장에서 저자는 르 귄의 말을 인용한다.


"판타지는 물론 진실이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을 뿐, 진실인 것은 맞다"(62-63쪽)


사실이라고 하지 않았다. 진실이라고 했다.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진실이다. 진실로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지 않은가. 사실주의 문학이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서 진실로 향해 간다면, 판타지는 상상을 통해서 진실로 간다.


경계 너머,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 그러한 상상을 현실로 가져오기. 이것이 판타지가 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판타지 소설에는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 이야기가 있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기도 한다.


마법의 세계, 허황된 것 같지만, 그러한 마법은 우리의 사고를 극한까지 몰아갔을 때 만나게 되는 지점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불교의 화두에 있는 말,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와 같다고 할까.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절벽에 서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고, 자신이 살아온 현실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나아가야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판타지라고 보면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판타지를 보는 아홉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제목만 이어 보아도 책의 내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거짓말로 진실을 말하기, 마법이 현실 세계로 뻗어 나간다면, 화합을 추구하는 결말, 갈등보다 건설적인 각본, 여성을 억압하는 북 클럽에 저항하기, 더 나은 세계가 있다는 생각, 환상 동화 속 소년 찾기, 익숙한 과거를 재구성하는 공간, 두려움 너머의 진실을 보기


그렇다. 판타지는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이 나오지만 마법은 상대를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화합을 향하고, 갈등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며,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성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추구한다.


여기에 유토피아란 완성된 세계가 아니라 과정 중의 세계라는 점을 보여주며, 그래서 디스토피아에서도 유토피아를 찾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는 과거를 보여주더라도 현재를 재구성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가 마주치는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함께 나아가야 함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에 압도되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법을, 다만 두려움에 이름과 얼굴을 부여하고 우리 삶의 한 공간을 내어주는 법을 배운다'(411쪽)고 한다.


이 문장만 보아도 판타지가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판타지 작품과 자신이 설정한 아홉 가지 주제로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판타지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도 판타지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판타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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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5-07-05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울리지의 불신의 유보, 란 게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게 환타지겠지요. 그러려니 하는 거~. 해리 포터에 나오는 1과 2분의 1이란 승장강이 있다고 바로 믿어지는 것. 아니, 믿고 싶어하는 것! 전 판타지를 잘 읽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좀 사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긴 하는 것 같아요. 그치만 판타지에 정말 좋은 예술 작품이 많다는 건 압니다.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이라든가 아술러 르 귄의 모든 소설들....저도 이 책 읽고 있어요. 더 꼼꼼히 읽어야겠어요~. 덕분에요!

kinye91 2025-07-06 08:28   좋아요 0 | URL
판타지를 여러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판타지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책이에요. 그리고 저도 칼비노 소설과 르 귄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책에서는 르 귄에 대한 글도 꽤 있어서 좋았어요.
 
합리적 망상의 시대 - 자기기만의 심리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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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확증 편향'이다.


보통 과학적 문해력이 뛰어날수록 이성으로 감성을 제어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연구에 의하면 '과학적 문해력과 수리력이 늘어날수록 문화 양극화는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심화된다. 일반 대중이 과학을 더 많이 배울수록 ... 이들은 더 능숙하게 자기 집단의 의견과 관련된 경험적 증거를 찾고 - 혹은 필요한 경우 꾸며 내고 - 의미를 부여한다'(263쪽)는 주장이 있다.


이것을 인정하기 힘든가? 과학자들은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창조과학론'을 생각해 보자. 진화론을 믿지 않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들을 창조론에 꿰어맞추려고 한다. 


이런 점만 봐도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꼭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인간의 합리성에 반하는 사고 경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후광 효과라는 것도 그렇다. 사람이 신이 아니고,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엄청난 비난을 퍼붓는다. 그가 자신은 그런 존재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음에도.


특히 유명인들에게 이것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마치 그 사람은 완벽한 존재여야 한다는 듯이, 그가 말했다 또는 그가 그렇게 행동했다가 판단 기준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러한 후광 효과는 인간의 이성과는 배치되지만 우리가 실생활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후광 효과말고도 비례 편향이라는 것이 있다. '거대한 사건(과 거대한 감정)에는 마찬가지로 거대한 원인이 있기를 바라는 심리적 갈망'(53쪽)이라고 하는데, 이는 음모론과 연결이 된다. 외계인의 음모라든지 뭐라든지 무언가 알지 못하는 원인을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 비례 편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정 선거라는 음모론이 특정 사람들을 휩쓴 적이 있다.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를 자신들의 정책이 잘못되었거나 정치를 잘못했다는 쪽에서 찾지 않고 부정 선거라는 쪽으로 돌리는 것, 이것도 일종의 비례 편향이다. 


굳이 정치를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이러한 비례 편향에 빠져 원인을 외부로 돌릴 때가 많다. 힘없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앞에서 든 것들 외에도 참 많은 생각의 오류, 판단의 오류들이 나오는데 '매몰비용 오류, 제로섬 편향, 생존자 편향, 최신성 환상, 과신 편향, 환상 진실 효과, 쇠퇴론, 이케아 효과'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들이 우리들의 생활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들어 보여주고 있는데...


읽으면서 맞아, 나도 그런 적이 있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들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이케아 효과 같은 것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존재에 다른 것보다 더 애착을 느낀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 존재에 쏟아부은 자신의 노력은 양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의 판단으로 제한되지 않으니 말이다. 자기가 시간과 공력을 투여한 존재에 어찌 애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전문가가 만든 훌륭한 작품보다도 더 나에게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높은 가치를 매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높은 가치에는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 들어 있으니까.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 경향도 있지만 우리를 부정적인 쪽으로 몰아가는 사고 경향도 많으니,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늘 합리적일 수는 없지만, 대체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려 하지 않는가. 그것이 진화의 결과이기도 할 테니까.


그러니 이러한 사고 경향을 알아두는 것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 상황에 맞는 사고 경향을 떠올릴 수 있고, 떠올리는 순간 그러한 사고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적어도 그러한 사고 경향을 떠올렸다는 것은 감정에 푹 빠져들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니까. 자신을 조금 떼어놓고 볼 수 있는 이성이 작동하는 시간을 확보했다는 뜻이니까.


하여 이 책에 나온 많은 사고 경향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많은 대담들을 통해 그러한 경향에 빠진 사람들과 또 자신의 경험을 적절히 조화시켜 이 책을 썼기에 이해하기가 쉽고, 그것들이 지닌 위험성을 파악하기도 쉽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경향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면서 자신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있으니, 정보의 바다가 넘실대는 현대 사회에서 차근차근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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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년이 파랗지는 않다
조지 M. 존슨 지음, 송예슬 옮김 / 모로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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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자 퀴어인 남자 이야기.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대와 자신의 성향이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어떤 선택을 할까?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 이 책의 저자인 존슨은 1985년 생이다. 그렇다면 지금 40이라는 말인데, 그가 살아온 시대라면 흑인도 퀴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아니다. 그는 흑인이자 퀴어라는 이유로 언제 어떻게 배제되고 목숨을 잃을지 몰라 두려워 한다. 


하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두려워 하는 세상이라면 그건 잘못된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세상이라면 그건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남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기를 두려워하던 존슨. 그렇다고 자신의 성적 지향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줄넘기를 좋아하지만 미식 축구도 하고, 육상 선수로 나서기도 하는 등 소위 남성성이 강하다고 하는 운동에도 즐겨 참여한다.


성적 지향에 따라 좋아하는 운동과 잘하는 운동이 따로 있을 수가 없지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구분하기도 하니... 그 역시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밝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었음에도.


따스하게 감싸주는 가족들에게서 자란 존슨에게도 세상은 위험한 곳이었다. 경찰이었던 아빠는 그것을 더 잘 알았을 것이다. 흑인 경찰이지만, 흑인 경찰의 아들에게는 언제든 경찰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이 책에는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흑인 남성들 이야기가 나온다. 병으로 죽는 경우도 있지만 폭력으로 죽는 경우도 있으니...


그렇지만 가족의 지지는 삶을 살아가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어려움을 건네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존슨은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것을 축복이라고 한다.


게이 자식을 두느니 죽은 자식을 두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면서 자식을 살해한 사람 이야기도 있는데, 존슨에게는 자신을 자신으로 인정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그냥 친구로- 친구가 되는데 성적 지향성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것은 그에게 축복이었다.


이런 축복을 그는 자신의 축복만에 그치게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쓴 이유가 그것이다. 여전히 성적 지향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것을 밝히기를 꺼리는 청소년들도 많다는 것.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들려줌으로써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


그래, 세상이 하나로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다양성이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고 하면서 유독 성적 지향성이나 피부색으로 사람들을 차별하는 경우는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의 개념을 반려동물이나 인공지능 로봇까지로(사이보그) 확장하는 시대에 그래도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인 인간을 왜 구분하면서 내치려고 할까?


이런 시대에는 오히려 더욱 더 함께하려고 해야 하지 않나. 다르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다름이 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고...


저자가 주장하듯이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사회 아닌가.


여전히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활성화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이 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저자의 이 말을 명심했으면 한다.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커뮤니티에 공평과 평등을 부여할 때, 피해를 보는 사람은 억압자뿐이다.' (126쪽)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당신은 억압자이냐고? 왜 약자들에게 공평과 평등을 부여하면 안 되냐고?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흑인다움과 퀴어함, 그 밖에 정체성을 누르는 억압에 맞서 싸울 때 가장 든든한 도구는 바로 제대로 된 교육이다.' (93쪽)


흑인다움이나 퀴어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미 강자들은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언급을 하지 않는 것. 백인이 강자인 사회에서 백인다움을,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이성애자임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으니, 여기서 흑인다움과 퀴어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미 차별받는 소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함의 주장이다.


그만큼 '주류 사회는 순전히 다름을 억압하려고 '정상' 개념을 세운다'(13쪽)는 말이 여전히 통용되는 것이다.


흑인 남성이자 퀴어로서 살아온 존슨의 회고록, 여전히 소수자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이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또 앞으로 살아갈 세대들이 이것을 의식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 점을 명심하자.


흑인여성이자 퀴어인 오드리 로드의 [자미], 백인여성이자 퀴어인 재닛 윈터슨의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도 같은 맥락의 책이다. 다들 소수자지만 그들 또한 다른 상황, 다른 삶을 살았으니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준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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