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춘이라는 시인]을 읽고, 서정춘 시인의 시집이 그리 많지 않으니, 다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을 먹다.


  짧은 시, 또 적은 편수의 시들이 실려 있는 시집. 그러나 짧은 시에서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되니, 참 진한 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 몇 권의 시집에 다른 시집을 구하려 했더니, 이런 절판이란다.


  이 시집도 그렇다. 알라딘에서 책을 검색해보면 이렇게 나온다. 품절이라고... 그리고 이유가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시집들이 절판이 되어 구하기 힘든 상태. 운이 좋게 여러 도서관을 찾아보니, 있다. 오래 전에, 15년 전에 발간된 (이제 16년 전이라고 해야겠지. 2010년에 발간된 시집이니) 시집이라 몇몇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아주 못 구해 읽을 시집은 아니다.


하지만 소장은 할 수 없다. 헌책방을 뒤져 운 좋게 구하면 모를까, 품절은 곧 절판과 같은 뜻이고, 이는 더이상 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아쉽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구할 수 있는 시집을 구해서 잘 읽을 수밖에. 이 시집, 읽으면서 짧음의 미학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시란 짧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짧게 표현하기 위해서 잘라낸 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잘라낸 말들을 시로 살아난 말들을 통해서 찾아야 하는데...


이 시집에서 서정춘은 한 쪽을 넘기는 길이의 시를 쓰지 않았다. 시들이 모두 한 쪽에 한 편씩 들어가 있다. '새벽', '돛'이라는 시는 두 줄이다. 그 두 줄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새벽이라는 시간을 우리는 주로 시각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시인은 이를 청각과 시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시를 보면 '흰 꼬리 고양이 울음소리가 / 문지방에 희미하게 걸렸습니다'(31쪽)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새벽이다. 이런 시들... 이토록 진한 서정이라니... 그냥 읽으면서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한번 더 마음 속으로 음미하고, 눈을 감고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시들.


좋다. 이 시집의 제목은 '빨랫줄'이란 시에서 가져왔다. 그 시를 보자. 빨랫줄.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 마당 있는 집에서는, 또는 옥상이 있는 집에서는 빨랫줄이 있었다. 그런 빨랫줄을 보고 시인이 표현한 것을 보자. 이렇게 진한 서정이 시에 담겨 있다.


  빨랫줄


그것은, 하늘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 줄 같다

그것은, 하늘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방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당겨주는 힘

그 첫 줄에 걸린 것은

바람이 옷 벗는 소리

한 줄 뿐이다


서정춘, 물방울은 즐겁다. 천년의시작. 2010년. 15쪽.


다음에는 서정춘의 절판된 시집인 [귀]를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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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내린다. 

  겨울이면 당연히 눈이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겨우내 눈이 한번도 오지 않으면 이상하고 섭섭하다.

  눈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눈은 다른 식물들에게도 물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흔히 강수량이라고 하는데, 이 강수량이 부족하면 우리뿐 아니라 자연도 고통을 겪는다. 강수량은 강우량과 강설량을 합쳐 부르는 말이니까, 겨울엔 눈이 와야 한다.


  그런데 눈이 오면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계에 지장을 받는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생계에 큰 지장은 없더라도 출퇴근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동할 때 미끄러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싫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눈이 오면 마냥 좋았다. 많은 것을 눈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싸움, 눈사람 만들기, 눈썰매 타기 등등. 또 하얀 눈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일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남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기도 하고. 이렇게 어린 시절의 눈은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시간의 문제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무엇을 급하게 할 이유가 없다. 눈이 오면 그냥 놀면 된다. 바쁘게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 어린 시절은 시간이 느리게 간다. 시간이 많다. 그러니 급할 일도 없다. 


여유있게 느리게 시간을 즐기니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해가 쨍하든 날이 흐리든 어떻게든 놀거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논다. 이것은 바로 여유에서, 느림에서 왔다. 그 느림이 나이들어가면서 점점 빨라진다. 여유는 줄고, 시간은 빨라진다. 더 빨리 하기 위해 길은 도로가 되고 꼬부랑길은 쭉 뻗은 직선 도로가 된다. 길을 가는 존재가 사람이라면, 도로를 가는 존재는 자동차다. 


자동차는 느리게 갈 수가 없다. 최근에 많은 도시에서 최고속도를 시속 50킬로미터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빠름이 사고를 많이 일으키니 조금 느리게 가면 여유가 생기니 사고가 줄지 않을까 해 펼치는 정책. 실제로 사고율이 많이 낮아졌다고도 하고. 특히 어린이 보호구역, 노인 보호구역에서는 그 속도를 더 늦추기도 하니까. 이런 속도를 다들 지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실제로 도로에 나가보면 그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들은 별로 없다. 물론 단속카메라 앞에서는 잘도 지킨다. 빠른 시대에도 범칙금(과태료 등등)을 내지 않고 빠르게 가려고 하니까. 시내 도로도 그런데 고속도로로 가보면, 제한속도 카메라 앞에서만 지키는 차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그건 참 좋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느리게-상대적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이는 빠름이 대세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눈은 반갑지 않다. 느리게 가게 할 뿐만 아니라 사고를 유발하기도 하기 때문인데... 그런데 이런 사고가 꼭 눈 때문일까? 눈이 오면 더 천천히 가라고 그렇게 경고를 하지 않는가. 천천히, 느림을 받아들이면 사고를 줄일 수 있는데... 그런 느림을 참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 아닌가. 그러니 책임을 눈에게 지우지 말자. 


눈이 내리면 잠시 쉬라는 거구나, 조금 늦게 여유있게 가라는(하라는) 거구나 하면 되는데, 현대인의 생활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유홍준의 시집을 읽다가 '눈'을 떠올리고, 느림과 여유<->빠름과 조급함을 생각했다. 바로 이 시가 그런 생각을 하게 했는데, 발상이 기가 막히다.


  아스팔트 속의 거북


이 아스팔트 밑에 거북이 산다

분명하다 갑골의 등짝처럼 딱딱한 이 길바닥이

저렇게 쩍쩍 금이 간 것은

원칙을 지키지 않은 공사 탓이

아니다 짧고뭉툭한 발목에 질끈 힘을 주고

끙차, 아스팔트 속의 거북이 등짝을 밀어올렸기 때문

확실하다 초과적재한 저 화물차의 중량 탓이

아니다 저 균열, 거북의 등을 보라

이 비루먹은 길들을 다 갈아엎을 심산으로

해안이 가까운 남해나 거제

해남이나 진도의 캄캄한 밤에

아스팔트 속으로 제 대가리를 밀어넣었을 거북!

이 망할놈의 나라 도로 곳곳을

오늘도 롤러를 단 공사용 차량이 다진다

갈라 터진 길바닥에 새 아스콘을 붓고 다진다

아스팔트 속의 거북 수천 마리가 떼죽음, 압사를 당한다


유홍준, 나는, 웃는다. 창비. 2007년 초판 3쇄. 56쪽.


논바닥이 가뭄에 말라 땅이 갈라지면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다고 하는 표현은 봤지만, 도로 위 아스팔트가 갈라진 것을 거북이 등으로 표현하다니... 도로, 빠름의 대명사. 거북, 느림의 대명사. 둘의 기묘한 대조. 우리의 생활이 느림을 용납하지 못함을 이렇게 '거북 수천 마리가 떼죽음' 당한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이것이 현대인의 생활이지 않을까. 도로의 이런 상황을 부실공사, 과적으로만 보지 말자고, 그것은 빠름을 추구하는 우리 생활이 일으킨 문제라고. 이런 상황이니 '눈'도 좋을 리가 없다. 하여 유홍준의 이 시를 읽다가 눈을 생각하고, 내 생활이 너무 빠름과 조급함으로 치우치지 않았는가 반성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그의 흉터''문 열어주는 사람'이 묘한 짝이구나 했는데, 이 두 시를 통해 시인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꽁꽁 감추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것 또는 갇혀 있는 것을 드러내고 꺼내주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마음이 포근해지는 '천국 가는 길'이란 시도 좋았고, '아교'라는 시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벌레 잡는 책'을 읽으면서는 낄낄거리기도 했고, '북천'이란 시를 읽으며 왜 서정주의 '동천'이란 시가 떠오르지, 나중에 두 시를 연결해 봐야지 하는 생각도 했으니.


여러모로 읽기에도 좋고 생각도 할 수 있는 그런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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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가 무엇일까? 시집 제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는 '비가(悲歌)'다. 말 그대로 슬픈 노래.


  그런데 시인은 이 시에서 이 노래는 '아직 한번도 불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는 슬퍼하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슬픈 노래는 '불길처럼 흘러간 후에 / 강물보다 더 우렁우렁 눈물 쏟아낸 다음에 / 끝내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 길을 지우고 난 후에 / 사막 같은 악보를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사막 같은 악보. 무엇이 있지. 무엇을 찾을 수 있지. 백지라고 해도 좋을 듯한 표현인데... 그만큼 마음에 모래만이 가득한 상태. 바람이 불면 이 모래가 흩날려 곧장 제 형태를 바꾸곤 하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형태가 바뀌어 버리는 사막. 그래서 누구나 다 다른 모습을 기억하는 그러한 사막. 사막 같은 악보. 이런 사막같은 악보가 쉽게 드러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 또한 제 마음을 드러내기 힘들다. 밖으로 표현하지 못해 안에서 안에서 메말라가는 마음.


이렇게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노래는 진정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일 것이다. 


그런데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슬픔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슬픔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서 있는 사내 2'라는 시를 읽으며 어쩌면 이 사내와 같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슬픈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 있는 사내 2


  쑥부쟁이 칡덩굴 얽히고설키며 철 따라 피고 지던 꽃들과 풀들의 흙을 밀어내어 논을 만들고 밭을 일구다가 꿈같은 속세의 끄트머리라고 당간을 세우고 금천을 넘게 하더니 어느날 불타고 무너져 내려 인의도덕을 서원하는 마당이 되더니 다시 부수고 그 자리에 고랑을 파고 씨를 뿌리는 전답이 되었으니 이 조화는 사람의 일인가 세월의 장난인가

  큰길 오가던 사람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후세에 비석으로 한을 달랜들 금 가고 마음 모서리 떨어져 나간 채 서 있는 저 사내의 삭은 가슴만 하겠는가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 


나호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시인동네(문학의 전당), 2017년 초판 2쇄. 44쪽.


아마도 시인은 원주 흥법사지에 갔으리라. 거기서 느낀 점을 시로 썼으니, 시집에 작은 글씨로 *표로 장소를 알려주려 했겠지.


산에서 절로, 절에서 서원으로, 다시 서원에서 전답으로 바뀌었던 과정.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오고갔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곳에 서려 있을 텐데, 그것을 지켜보는 사내의 심정은 어떨까?


그 사내의 삭은 가슴에서 나오는 노래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아닌가. 그런 노래, 듣고 싶은가. 아니 그런 노래는 불러지면 안 된다. 불러지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마음이 사막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마음을 사막으로 만들어놓고, 그들로 하여금 슬픈 노래를 만들게 해놓고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자들은 또 누구인가.


그런 자들로 인해서 슬픈 노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왜, 슬픈 노래는 슬픔이 다 지나간 다음에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애도가 끝나야 그때서야 비로소 슬픈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슬픈 노래가 사막 같이 변한 마음에 오아시스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위안해주기 위해서는 슬픔이 지나가야 하니까. 그런 슬픔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 하여 '삭은 가슴'을 지니지 않게 해야 하니까.


이 시집을 읽으면서 하염없이 슬픔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럼에도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히는 것이 아니라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게 되듯이, 그렇게 시집을 읽으며 희망을 찾는다.


           비가(悲歌)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불러지지 않은 그 노래는

슬픔이 불길처럼 흘러간 후에

강물보다 더 우렁우렁 눈물 쏟아낸 다음에

끝내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길을 지우고 난 후에

사막 같은 악보를 드러낼 것이다

슬픈 사람은 노래하지 않는다

외로워서 슬픈가

슬퍼서 외로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어디쯤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듯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부르는 그 노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나호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시인동네(문학의전당), 2017년 초판 2쇄.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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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휴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폐간이라고 해야 한다.


  예전에 내가 받아보았던 잡지들이 격월간에서 계간으로, 계간에서 휴간이 된 경우가 많았고, 노숙인의 자활을 돕고 있는 [빅이슈]도 격주간에서 월간으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유지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학교에서 교과서도 디지털로 하자고 하는 세상이니, 종이에 인쇄된 잡지들이 살아남기는 더더욱 힘들어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샘터] 역시 오랜 기간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잡지였는데... 비록 정기구독을 한 적은 없지만 가끔은 읽을 기회가 있던 잡지였고. 그래서 이 잡지가 그만 발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하나의 잡지가 사라지는구나. 이렇게 종이책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구나. 아직은 서점에 가면 종이책들이 많은데, 이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디지털로 읽는 것과 종이라는 물성을 지닌 책으로 읽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지 않고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데...


너무도 많은 책들이 있어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른다. 잡지들이 하나둘 휴간, 폐간하고 있는데, 이것이 종이책으로 옮겨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하지 못하는 세상이니.


이번에 알라딘에서 샘터 잡지를 창간호와 마지막호를 묶어서 판매를 했다. 이런 책 광고가 나오면 사야지 하는 강박에 시달린다. 읽든 읽지 않든 사놓아야 무언가를 했다는 느낌.


종이책에 덜 미안한 마음. 이렇게라도 사라지는 잡지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창간호, 와, 정말 오랜만에 세로로 인쇄된 책을 읽었다.


어린 시절에는 종종 세로로 된 책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신문도 세로 인쇄였지, 아마... 그러다가 가로로 모두 바뀌었는데...


세로 인쇄만이 아니라 창간호는 한자가 그대로 쓰였다. 그래도 사람 이름에는 한글로 토를 달아주어 읽을 수 있는데, 본문에는 토를 달지 않아 한자를 모르는 세대는 읽기가 힘들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한자와 한글이 함께 쓰였던 시대가 있었는데, 샘터 창간호가 1970년 4월호이니, 이때까지도 한자어가 일상에서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했고, 생각할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데, 창간호 특집이 '젊음과 여성'이다.


당시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기획으로 잡아 창간호를 발간했다고 보면 되는데... 젊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때가 되어서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져 여성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에 보면 남성 중심의 사고가 더 우세한 것은 말할 것이 없으니, 여성에 대한 관점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비교할 수 있는 창간호이기도 하다.


마지막호의 표제에 '첫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동안 샘터와 만났던 사람들의 글과 독자의 글들이 실려 있고, 새로운 해를 출발하는 1월에 샘터 마지막호가 나오다니,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라는 것을, 그래서 [샘터]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창간호와 같이 고흐의 그림으로 표제를 장식했고, 샘터 기자들의 말이 길게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감회가 새롭다. 


[샘터]의 휴간으로 창간호와 마지막호를 만나게 되었지만, 마지막호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닌다.


손에 쥐고 읽을 수 있는, 그러한 잡지들이 계속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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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8 16: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향수 속으로 사라지는 잡지책들, 출판사 입장에선 팔리지 않는 잡지책의 출간을 이어나가기 힘들겠지요.

kinye91 2026-01-18 17:18   좋아요 1 | URL
그런 점이 안타까워요. 전통이 있는 잡지들이 계속 출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은빛 2026-01-18 17: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잡지와 단행본을 함께 만드는 출판사 여러 곳에 일했었어요. 잡지가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는 짧은 소비기한 탓입니다. 책의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단행본은 수십년 동안 판매가 가능하죠. 문학은 수백년도 가능할테고요. 잡지도 물론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정기적으로 발행한다는 발행 주기 때문에 다음호 이전까지만 유통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잡지를 거의 읽지 않죠. 그리고 과거 잡지 유통은 몇몇 총판들이 거의 독점했는데, 비합리적인 유통구조 덕분에 유통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버틸수 있는 건, 구독자가 많은, 혹은 충성도 높은 구독자 층을 보유한 곳들 뿐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이 커지고, 지역의 중소 서점들이 몰락하며 잡지 총판들도 함께 어려움을 겪으며 왜곡된 유통구조는 크게 영향받지 않아도 상관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여전히 잡지의 유통기한이 짧고, 판매량이 적은 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점이죠.

제가 일했던 잡지사 한 곳은 결국 제법 유명했던 잡지를 폐간하고 단행본 출판사로 돌아섰어요. 안타깝지만, 구조적으로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kinye91 2026-01-19 09:24   좋아요 0 | URL
네, 그러네요. 유통기한이나 판매량이 잡지의 발행에 큰 영향을 주니, 이것을 보완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수익을 떠나 좋은 잡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사회였으면 해서요.

카스피 2026-01-18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샘터잡지 오래전에 집에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최인호의 가족이지요.샘터가 폐간하는 이유는 판형이 작고 페이지수가 적어 광고수록이 많지 않아서 그런것 같습니다.요즘 잡지들보면 거짓말 보태서 광고가 반이지요.

kinye91 2026-01-19 09:26   좋아요 0 | URL
광고 없이 좋은 잡지들이 계속 발간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게 참 힘든 일이겠지만요.
 

  아주 오래 전에 '사랑굿'이란 시집을 읽은 적이 있다. 어렵지 않은 시. 마음에 들어오는 시들.


  그러다 우연히 김초혜 시인의 남편이 조정래 소설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느 글에서 조정래 소설가가 예전에는 김초혜 남편 조정래였는데,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 작가로 설 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런 사실에서 하나 더 나아가 이들의 가족문학관이 있다는 사실. 그 문학관의 이름이 좀 길다. 2017년에 개관했다고, 전라남도 고흥에.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문학관'


  그럼, 조종현은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시조시인이고 조정래 소설가의 아버지란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아버지 역시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분이라고 하고... 이렇게 가족문학관이 생기는 문학 가족인데.


이 시집은 1943년생인 시인이 2017년에 발간한 시집이니 70이 넘어서 낸 시집이다. 원숙함의 경지라고 해야 하나,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뒤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모습이 담겼다고 해야 하나.


읽으면서 '잠언'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달관의 경지다. 이 정도면. 하여 시집에 실린 시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추운 겨울, 또 냉혹한 사회 현실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시들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한발 물러나 보게 하는 시들도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물론 이렇게 달관의 경지에까지 이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달관의 경지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다 현대시를 비판하는 시를 읽고는 시인들에게도 현대시는 어렵구나, 그렇지, 현대시는 비평가들을 먹여살리는 역할을 하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니 비평가들이 해설해주어야 그나마 그렇구나 할 수 있으니.


하지만 비평가들마저 온갖 문학이론을, 철학을, 사회학을 들이대어 해석해내는 시들이 과연 많은 사람들에게 와 닿을까. 오히려 그런 시들이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역할을 하지 않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들을 보면 어려운 시보다는 쉽게 마음에 다가오는 시들이 더 많지 않아. 거기에 그리 길지 않아서 암송할 수도 있고.


원로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초혜 시인이 쓴 '현대시'를 보자.


    현대시


자기도 뜻을 모르고

남은 더 모르게 쓴다


시가 울고 있다


김초혜. 멀고 먼 길. 서정시학. 2017년 초판 4쇄. 79쪽.


얼마나 간단명료한가.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껴 시를 멀리하면 시도 울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해야 하는데...


이렇게 짧은 시들. 잠언과 같은 시들이 이 시집에 실려 있으니,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에 위안을 주고 싶을 때 이 시집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짧은 시 한편 더... 각박한 시대.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


    사람


흙과 나무와 바위를

모두 품는다


그래서 산이다


그래야 사람이다


김초혜. 멀고 먼 길. 서정시학. 2017년 초판 4쇄. 21쪽.


나중에 기회가 되면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문학관'에 한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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