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보이는 창] 가을호다. 지독한 여름이 가고 그래도 가을이 왔다. 폭염에 폭우에, 이제는 종잡을 수 없는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걱정만 늘고 있는데...


  다시 제주도에는 하루 동안에 내린 비가 너무도 엄청나서 이런 일들이 반복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자연은 어김없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지구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위험하다고 하는 말이 맞다. 기후 재앙으로 죽어나가는 것은 인간들일 테니... 물론 이런 인간들로 인해 먼저 사라져가는 동식물들이 있겠지만, 지구는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인간에 의한 동식물의 멸종만이 아니라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돌아오고 있는데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함께 힘을 합쳐도 될까 말까한 때에 인간들은 이편 저편으로 나뉘어 서로를 죽이는 일을 벌이고 있으니...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든다고 하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데우스가 되어가고 있다고 하면서도 자기들끼리 죽이는 전쟁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쟁을 통해서 다양한 무기를 개발하고, 그 무기를 통해서 다른 과학기술의 개발을 이끌어낸다고 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런 식의 개발은 필요없다고 하고 싶은데...


이번 호 표지는 책 읽는 사람들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에 책읽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 맞아 책을 읽기 시작하기도 했고.


그런데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한강의 작품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작품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취향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작품을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느냐 하지 마느냐 가지고 논쟁 (논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추진이라고 해야겠지만)이 벌어지고 있으니...


무슨 현대판 분서갱유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고 있는 작품이 한강의 [채식주의자]인데, 이 책이 선정적이라나 뭐라나, 윤리 기준에 어긋난다나 뭐라나 하면서 학생들이 읽으면 안 되는 유해 도서라고,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공문이 와 폐기한 적도 있었다고 하고.


"경기교육청, 도서 폐기권고 공문 보내놓고 '검열' 아니라니" - 오마이뉴스

유해도서 낙인 덕 본 '채식주의자' 독서 붐 - 오마이뉴스


이것 참. 학생들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걱정된다고 떠들어대더니, 그런 자신들의 문해력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는지... 문학 작품을 가지고 검열, 폐기 운운이라니... 참... 나...


[채식주의자]가 세 편의 소설이 묶인 소설집인데... 그 중에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우리나라 소설에 주는 상 중에 비록 지금은 존폐 위기에 몰려 있지만 이상문학상은 상당한 권위를 지니고 있는 상이었는데, 이런 상을 받은 작품을 가지고 유해도서 운운하니 할 말이 없다.


책 표지를 보니 이렇게 한강 작품을 놓고 벌어진 논란이 생각이 나고, 이것이 바로 문해력이 부족한 몇몇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문해력을 향상시켜야 할 사람들은 자신들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문해력을 키우는데 이 책 [삶이보이는 창]만한 것도 없다. 어려운 글이 없기 때문이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에 대한 글들도 실려 있으니, 그야말로 문해력을 키우는데 이만한 책도 없다.


문해력만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넓히는데도 도움이 된다. 그냥 나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여러 삶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 바로 우리 세상임을, 인간만이 아니라 우주에 있는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해 도서 운운하지 말고, 이런 우리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부터 읽어보길 권한다. 이런 책을 읽다 보면 한강의 작품을 두고 유해 도서라고 말할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될 테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레이스 2024-11-13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문해렬이 누구에게 필요한지...
이거 원 참!

kinye91 2024-11-13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작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문해력 어쩌고 저쩌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자신들의 문해력 부족을 드러내면서요.
 

  한 편의 서사시다. 시인이 십여 년을 환경파괴에 맞서 싸운 기록이다. 한편 한편이 독립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연결이 된다.


  자연을 파괴하려는 자들에 맞서는 시인의 마음이 이 시집에 온전히 들어가 있다.


  말이 필요없다. 그냥 읽으면 된다. 그러면 자연을 보호하자는, 환경을 파괴하지 말자는 구호보다 더 마음에 와닿게 된다.


  자연스레 자연에 마음이 쏠리고 환경을 보호해야 함을, 그것이 바로 우리를 또한 우리 미래 세대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집을 읽으면 시인의 말에서 한 '문학의 원사(原絲)는 '비애'입니다'(16-17쪽)라고 한 말이 가슴에 들어박힌다.


비애... 그렇다. 슬픔이다. 무엇에 대한 슬픔인가. 나를 둘러싼 또다른 '나'가 파괴되는 것에 대한 슬픔, 아픔이다. 이런 아픔을 무시하지 못하고 나서게 되는 것이 바로 시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시인은 시로써 나서기도 하지만 행동으로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행동이 행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행동은 다시 시로 나타난다.


자연과 함께 했던 일들이, 보금자리를 골프장에 빼앗기고 쫓겨나게 될 운명에 처한 뱀을 보고도 징그럽다고 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러한 뱀을 보고도 슬픔을 느낀다.


       허물


골프장 쪽 둔덕을 내려온 초록색 뱀은

내 오른손 검지를 스쳐

오엽딸기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산길에 떨어진 골프공을 줍던 나도 놀라고 비탈을 흐르던 저도 놀라고

야생이 스쳐간 손에 뱀 비린내가 돋아

슬픔이 독처럼 몸에 퍼졌다


조정,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 이소노미아. 2023년. 42쪽.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쫓아내야 하는지... 그 생명 중에 사람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까? 골프장이 들어서면 동네 사람들이 골프장을 이용할까? 골프장으로 더 편리한 생활을 할까?


아니다. 골프장을 관리하기 위해서 밀어버린 산, 새로 만든 웅덩이, 잔디, 이를 보호하기 위해 뿌리는 온갖 제초제들... 그리고 수시로 날아오는 골프공.


동네 사람이 아닌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마을 사람은 물론이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던 동물들이 집을 잃고 떠나야 한다. 한 순간에...그러니 시인이 마음에 '슬픔이 독처럼 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슬픔을 마냥 안고 살아갈 수 없기에 시인은 슬픔을 털기로 한다. 슬픔을 이겨내기로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자연을 지키는 일이다. 산황산을 지키는 일. 골프장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시인이 살고 있는 곳에서 그렇다면 이는 전국으로 확대될 수가 있다. 개발 광풍으로 사라지는 자연ㅡ생명에 시인은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인의 마음, 행동이 시집 전체에 펼쳐져 있다. 그러니 이 시집은 하나하나의 서정시이면서도 서사시다.


자연을 파괴하려는 사람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장대한 서사시.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다. 자연을, 새싹들을 '마법사의 제자들'이라고 하는 시인. 이런 마법사의 제자들을 우리가 막으면 되겠는가. 마법사의 제자들은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책을 읽다가 이런 시도 있다는 글을 읽고, 어떤 시길래? 하는 생각에 읽게 된 시집.


  이렇게 기괴할 수가!!! 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세상에, 시라면 서정을 떠올리고, 서정이라면 뭐랄까? 그래도 마음을 정화시키는 그런 상태를 많이들 떠올리는데, 이건 뭐, 정말, 작가의 말을 명심해야 했다.


'임산부나 노약자는 읽을 수 없습니다. 심장이 약한 사람, 과민 체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시는 구토, 오한, 발열, 흥분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드물게 경련과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는 똥 핥는 개처럼 당신을


싹 핥아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무슨 영화 시작할 때 경고 문구도 아니고, 이런 말을 시인이 직접 하다니... 정말 기괴한가 보다 하고 읽기 시작. 읽기 시작하자마자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그런데 그런 첫시가 그나마 덜 기괴했다고 해야 할까.


시집을 읽으면 계속 나오는 성기 이름을, 똥, 구멍, 피, 죽음... 결코 순수하다고 할 수 없는, 오히려 더럽다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여기에 보통 사람의 윤리의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아니 시를 읽어낼 수 없는 시들이 연이어 있다.


왜 이런 시들을 썼을까? 시가 시인의 마음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시인의 마음은 사회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시인이 파악하고 있는 이 세상은 가족부터 시작하여 온통 더러움으로 물들어 있는 세상 아니겠는가.


푸름을 자랑해야 하는 나무는 말라 죽어 있고, 배설의 기쁨을 누려야 할 곳들은 기쁨이 아니라 더러움 덩어리처럼 표현되어 있으니... 정말. 우리는 이런 더러움, 죽음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일까?


첫시를 보자.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제목이다. 정현종 시인의 '섬'에서 차용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시들에서는 출처를 밝혀놓았는데 이 시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말을 우리가 보통 쓰는 표현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모듬회 접시 한가운데에

그 섬이 있다


난자당한 살점들이 에워싸고 있는, 그

섬에


닿고

싶다


김언희, 말라죽은 앵두나무아래 잠자는 저 여자, 민음사, 2017년 1판 4쇄. 13쪽.


그 섬은 결코 사랑스러운, 평화로운 섬이 아니다. 죽음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죽음을 거쳐야만 갈 수 있는 섬. 그 섬의 주변에는 여전히 죽음이 난무하는 그런 섬. 왜 그런 섬에 가고 싶을까?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니다. 죽음을 피하지 않고, 죽음을 직시하면서, 죽음과 함께하는 삶일 수밖에 없다. 그 섬에서 사는 삶은.


그러니 결국 시인이 추구하는 삶은 비루함, 더러움, 어려움, 죽음을 멀리 멀리 감추고 사는 세상이 아니다. 시인은 우리의 삶은 이러한 비루함, 더러움, 어려움, 죽음과 함께 있다고, 그것이 바로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라고, 그것이 아니라 삶은 아름다움이라고, 죽음과는 상관 없다고, 죽음은 가려져야 할 존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봐라, 이것이 네가 사는 세상이다. 그런데 너는 죽음과 삶이 함께 하는 세상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네가 사는 세상은 죽음의 세상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죽음으로 둘러싸인 섬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듯하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시 '진달래꽃'을 변주한 '역겨운, 역겨운,역겨운 노래'(38쪽)라는 시를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해 시인이 쓴 '시'라는 작품. 시인은 시를 삶에서 길어올리지 않았다. 죽음에서 끌어왔다. 



내 죽은 몸을 떠나지 못하는


내, 구더기의


영혼


김언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민음사, 2017년 1판 4쇄. 80쪽.


이것이 시라니... 우리가 생각하는 시와 너무 다르지 않은가? 그야말로 똥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구더기, 그것의 영혼이 시라니... 


이런 시가 이 시집에 수두룩하니 나오니, 정말 비위 약한 사람, 아니면 도덕의식이 높은 사람은 읽지 말아야 할 시집이다.


하지만 어디 삶이 좋은 면으로만 이루어졌던가? 그 좋은 면이 가리고 있는 좋지 않은 면, 그것도 우리의 삶임을 이 시집은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는 '꿈보다 해몽' 식의 이해를 가져보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 수피즘. 예전에 신비주의라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들의 교리를 알지는 못하니 무어라 말을 할 수는 없고.


하지만 '루미'란 이름은 기억한다. 수피즘의 큰 스승이라고 기억하고 있으니...


헌책방 나들이를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책들을 발견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내가 구한 시집은 이런 표지가 아닌데, 알라딘에서 상품 검색을 하니 이 표지의 시집이 나온다. 이현주 목사가 번역한, 2014년에 초판이 나온, 늘봄 출판사에서 발행한 시집인데... 어떻게 표지 그림이 다른지...


하지만 다르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겠지 한다. 수피즘. 신비주의. 그냥 무언가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시집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읽어가니 마음을 편하게 하는 시들이 많이 있다. 여기에 '중국 예술과 희랍 예술'(110-113쪽)이란 시를 보면 수피즘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꾸미지 않고 비우는 것.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 그야말로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비우는 것. 이것이 수피즘이다. 이 시에 나온 몇 구절을 보자.


'희랍인의 예술이 수피의 길이다 / 그는 철학에 관한 서적을 연구하지 않는다 / 자기 삶을 깨끗하게 더욱 깨끗하게 닦을 뿐 / 바라는 것도 없고 성도 내지 않는다 / 그 순수로 순간마다 / 여기서, 별들에서, 허공에서 오는 / 온갖 형상을 받아 되비친다 /그가 그들을 보고 있는 같은 빛으로 / 그들이 자기를 보고 있듯이 / 그렇게 그들을 받아들인다'


이 시를 보니 '묵자'에 나오는 '군자불경어수 이경어인(君子不鏡於水 而鏡於人)'이란 말이 떠올랐다.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보라는 말.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바로 그대가 나이다. 이 시의 표지에 있는 말처럼 '내가 당신이라고 말하라'(11-13쪽)인 것이다.


이런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바로 나이고, 그들은 바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들의 거울일 수밖에 없지만.


그러니 이런 자세가 '여인숙'(17-18쪽)이란 시로 이어진다.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이 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인숙


인생은 여인숙

날마다 새 손님을 맞는다


기쁨, 낙심, 무료함

찰나에 있다가 사라지는 깨달음들이

예약도 없이 찾아온다


그들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접하라

그들이 비록 네 집을 거칠게 휩쓸어

방안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

슬픔의 무리라 해도, 조용히

정중하게, 그들 각자를 손님으로 모셔라

그가 너를 말끔히 닦아

새 빛을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어두운 생각, 수치와 악의가

찾아오거든 문간에서 웃으며

맞아들여라


누가 오든지 고맙게 여겨라

그들 모두 저 너머에서 보내어진

안내원들이니


마울라나 젤랄렛딘 루미, 루미시초, 늘봄. 2014년. 17-18쪽


  그래, 이런 마음이라면 세상에 평화가 넘치겠지. 평화로 가는 길. 그것이 루미가 쓴 시들이겠지. 비록 이 시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지라도 적어도 남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고쳐나가려는 노력을 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시집이다. 


  참고로 루미는 지금 터키에서 신성시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춤이 '세마' 춤이라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며 빙글빙글 도는 춤이 유명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란공 2024-10-15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궁금해진 시인이라 루미 평전을 샀더랬습니다. 어떤 인물일지 궁금해지네요^^ 아마 이들이 추는 츰이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흰 옷을 입고 쫙 펴지는 춤을 추는 장면이 수피즘괴 관련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inye91 2024-10-16 09:44   좋아요 1 | URL
루미 시를 읽으면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지 생각하게 돼요. 아마 춤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일본에 '하이쿠'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시조가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시조와 하이쿠의 비슷한 점이나 다른 점에 대해서 세세하게 논할 필요는 없고, 둘은 짧은 형식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만 언급하자.


  또 둘 다 다른 형식의 시에 밀려났다는 (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고전시가로 불리고, 이를 계승한 사람들을 전통시를 쓴다고 하니, 현대시에 분명 한 장르로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짧은 시행에 감정과 생각을 담으려면 압축이 필요하다. 언어를 고르고 골라, 그 형식에 맞춰 표현을 해야 한다. 그러니 짧다고 쉬울 수는 없다.


또한 시조는 여러 형식을 시험했다. 시조라고 알고 읽지 않으면 이 시가 시조인가 하는 시들이 꽤 있다. 가령 시 시조집에 실린 시 한 편을 보자.


                     착시 

                             -교단 일기 12


                    신호등 앞에 서서

                    현수막을 즐기다가

                    반가워라 눈 멈춘 곳

                    내 이름이 선명하다


                    되보다

                    쓰게 웃는다

 

                반갑 등록

 

반금현, 백인종 아이들, 등. 2024년. 25쪽. 


이 시조만 보면 시조라고 인식하기 힘들다. 그냥 짧은 현대시이겠거니 한다. 우리가 길을 가다 혹은 글을 읽다 이런 글자를 잘못 읽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다시 보면서 헛웃음을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에 너무도 비싼 대학 등록금을 비판하는 마음까지 더해, 이런 반값 대학 등록금이 실현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조다.


보통 3줄로 생각하는 시조를 행과 연을 구분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전통시라고 하는 시조를 현대에 맞게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시조라는 형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어쩌면 짧은 형식 속에 내용을 넣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덧붙이게 하려는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제목이 된 시조를 보자. 씁쓸한 우리나라 아이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백인종 아이들 

                                             - 교단 일기 66


                     어릴 적 친구들은 황인종이 분명했어

                     요즈음 아이들은 백인종이 아닌가 몰라

                     흰 얼굴 서로 보면서 하얀 나라 만들겠지


반금현, 백인종 아이들, 등. 2024년. 79쪽


황인종, 백인종이라고 요즘은 구분을 잘 하지 않지만, 그래서 통상적인 구분으로 하는 이 표현에 의하면 우리나라 아이들이 '백인종이 아닌가 몰라'라고 하는 표현에는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고, 해와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놀면서 피부가 햇볕에 그슬린 우리 아이들의 피부가 이제는 밖에서 거의 놀지 못하고 있어 하얗게 변해 버린 현실의 모습.


그런 모습이 과연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시조인데... 짧은 형식에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렇게 이 시조집에서는 지금 우리 시대의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