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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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랜드‘의 제작팀이 영화화를 맡은 작품이라 해서 냉큼 서평단에 신청했다. 책을 받아보고서야 안 건데 내가 즐겨 하지 않는 SF 장르였다. 몇몇 리뷰를 통해 여러 번 밝힌 바 나는 과학소설을 읽지 않는다. SF는 문학적인 감성을 볼 수 없는 데다, 온갖 어려운 용어와 문장들로 도배돼있어 소설보단 전공서적을 읽는 기분이라 집중이 안 되거든. 그래서 SF나 판타지 같은 장르는 활자보다 영상을 선호한다. 아무튼 이런 성향의 나님께서 이 책을 도전한 이유는 SF 장르라는 것을 확인 못해서... 가 아니라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라는 초 신선한 컨텐츠에 혹했기 때문이다. 일말의 기대감과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책을 폈으나 역시는 역시나였다. 시작부터 쏟아지는 이름 모를 행성과 외계인들과 초 진지한 횡설수설 문장들에 급 당황하였고, 아무리 읽어도 내용이 눈에 들어오질 않아 집중이 가장 잘 된다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읽곤 했다. 나름 어려운 책도 침대 위에서 꾸역 꾸역 읽어온 나님을 화장실까지 데려다 놓은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못 버티고 무너졌을지도.


밴드 앱솔루트 제로스의 두 멤버는, 자신들을 찾아온 외계인을 따라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에 반강제로 참가한다. 이 가요제는 은하의 별마다 대표로 뽑힌 우주인들이 모여 경연을 펼치는데, 우승 팀은 꼴찌팀을 몰살하여 우주의 질서를 잡을 특권이 주어진다. 이제 지구의 운명은 나사 빠진 두 남자에게 달렸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위기의식이 전혀 없다는...


국민 MC가 생방송의 죽은 분위기를 살리려 아무 말이나 횡설수설 해대는 듯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런 데에 면역력이 낮은 나 같은 독자들은 2부부터 읽으시길 권장한다. 만약 2부도 이해가 안 가거든 과감하게 3부로 넘어가라. 그래도 마찬가지라면 4부로... 이쯤이면 느낌 왔을거다. 모든 페이지가 난해하다는 것을. 리뷰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의 십중팔구가 장점만 적기 때문에 나는 이제껏 비평 위주로 글을 써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내가 아니어도 많은 비평의 글들이 예상되므로, 이번만큼은 나도 장점만 써볼까 했다가 이내 포기해버렸다. 이 책에서 유일무이한 칭찬거리는 번역가 이정아 님의 피 땀 눈물로 완성시킨 초월 번역 말고는 못 찾겠더라.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과, 과연 이것이 맞는 문법인가 싶은 문장들을 우리말로 옮긴 초월 번역가의 수고에 삼삼칠 기립박수와 별 한 개를 무료 나눔 해드렸다. 아 물론 작가의 미친듯한 상상력과 신들린듯한 문장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익살스러운 문체와 포복절도 코믹함. 좋아, 다 좋은데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하겠고, 이 작품이 당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파악이 안되었다. 어떻게 가요제를 다루면서 음악 내용은 없는 걸까. 마법사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해리 포터, 농구할 생각이 전혀 없는 강백호, 조명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엄복동... 아 이건 아니고 아무튼 기본 설정부터 문제 있어 보이는데 SF는 다 이런 걸까.


어찌어찌하여 완독은 했지만 놀랍게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었다. 우주인들의 생김새, 종족의 문화와 특징들, 행성들의 역사 같은 7차원 적인 내용들이 분량의 90%를 차지한다. 제발 좀 우주 얘기는 그만하고 가요제 내용이나 다뤄주길 바랐으나 애석하게도 내 바램은 먼지 알갱이만도 못하다는 걸 느꼈다. 이보다 더한 것은 문법 파괴자가 쓴 듯한 문장들을 욕하고 싶어도 그 글들의 주체가 외계인들이라 욕하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암튼 우주의 언어와 문장들이 뭘 말하려는 건지 대충은 알겠는데 그 이상은 정말이지 이해를 못하겠음. 차라리 어려운 법조문이나 이용약관 같은 글들이 더 이해가 쉬울 정도. 혹시 나만 이런가 싶어서 다른 리뷰들도 읽어봤더니 전부 나처럼 멘붕이 왔더라고. 아무리 봐도 일반 독자들은 버티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국내의 SF 마니아들이여, 부디 그대들만이라도 이 작품을 외면하지 말아달라. 이 책도 누군가에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을 테니까. 여하튼 서평 이벤트답게 괜찮은 리뷰로 보답하고 싶었으나 양심상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음을 출판사에서 부디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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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5-28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좋아요. 한때 추리 소설을 좋아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아까워
저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글을 찾게 되더군요. 사유 깊은 에세이가 좋아요. 재미도 있고요.
비현실적인 건 저도 영상이 좋더라고요.

잘 읽었어요. 서평단 신청해서 리뷰 쓰려면 부지런해야 할 것 같아 저로선 엄두를 못 냅니다. 천천히 읽기가 제 적성에 맞아서요. 천천히, 그리고 반복 읽기를 해 볼까 합니다.

물감 2020-05-28 07:19   좋아요 1 | URL
저도 비현실적인건 잘 안봐요. 나랑 맞는 책만 읽는다해도 시간이 부족하니 점점 이것저것 도전을 안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 생각보다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한 달에 세 네권 정도의 독서와 리뷰가 평균이에요^^ 1년에 백 권 이상 읽는 알라디너들에 비하면 저는 게으른편이죠ㅎㅎ그래서 저도 페크님처럼 적당한 템포로 읽는 걸 좋아합니다. 안맞는 독서 라이프에 스트레스 받고 싶지는 않아서요.
 
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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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재앙‘이라는 단어가 친숙한 시대가 된듯하다. 자연 재앙은 그렇다 치고, 인간이 만든 재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재앙들이 대부분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만, 전염병은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유일한 재앙이다. 세계를 사망으로 물들이는 코로나를 보며 더욱 실감한다. 과거 메르스나 에볼라처럼 코로나도 잠깐의 유행병으로 생각했다가 어느새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 엄청난 재앙 가운데서 재조명된 문학 작품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이다. 일부 이기적인 사람들의 개념 없는 행동으로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 사태 속에서 우리들이 갖춰야 할 것은 바로 공동체 의식이다. ‘페스트‘는 이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성의 교과서였다.


쥐 사체에서 발생한 페스트는 이례 없었던 고통을 선사했다. 계엄령이 내려진 도시는 외부와 차단되고 시민들은 강제로 유배생활에 들어갔다. 페스트는 멈출 방법이 없었고, 서서히 죽어가는 병자를 지켜보는 게 다였다. 감염자들은 시신이 되어 구석에 쌓여가고, 산 자들은 곧 있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사망에게 먹혀버린 이 도시에서 최후까지 페스트와 싸우는 의사 리외.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이 시기에 읽으면 더 와닿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기분이 들어서. 그만큼 페스트와 코로나는 구석구석 닮아있었다. 사실 재난 소설의 내용은 그게 그거라서 숲보다는 나무에 더 주목해야 한다. 고갈되는 음식과 전기. 무너지는 경제. 증가하는 실업자. 고립된 도시와 정지한 시간 속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희망 등등. 집안에 갇힌 시민들이 하는 일은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하고 자책하는 것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 없거나,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사이가 돼버렸다. 그렇게 이별은 갑자기 찾아와 모두의 일상을 헤집어놓았다. 그러나 길어지는 재앙에 적응된 사람들은 슬픔에 무덤덤해지고, 고통으로 탄식하지도 않고, 타인의 불행에도 안타까워하지 않게 된다. 주인공은 이러한 변화들이 곧 불행이며 절망임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감정에 무뎌지지 않고서 어떻게 버티란 말인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묵묵히 죽을 차례를 기다렸다. 과연 인간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존재였다.


등장인물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절묘하게도 셋 다 지금의 한국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 첫 번째는 종교에 의존하며 현실을 망각하는 자들. 재앙은 신의 뜻이니 죗값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스스로 이겨낼 생각을 하지 않는 유형이다. 신천지가 여기에 해당된다. 남들이 죽든 말든 제 신앙만이 전부였던 그들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굳이 적지 않겠다. 두 번째는 사치를 부리며 현실을 부정하는 자들. 절대 재앙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돈과 허세로 자유를 외치는 유형이다. 이태원 클러버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철부지들은 자유를 무슨 돈 주고 사 먹는 삼각김밥처럼 생각하나 본데, 그들이 누렸던 자유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도 적진 않겠다. 때로는 오늘의 치킨을 내일로 미룰 줄도 알아줬으면 한다. 세 번째는 페스트에 맞서 저항하는 자들. 재난을 이겨내자는 국가 방침에 적극 동참하는 유형으로, 이들은 건강한 사회가 곧 개인의 행복이라 믿는다.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들이 이 유형에 해당된다. 거창한 뜻을 품지 않아도 그와 비슷한 이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쉬지도 않고 치료에 전념하는 이들이 있어 코로나의 기세는 차츰 꺾여간다. 그러면 우리는 이 중에 어느 유형에 속해야 할까. 잘 생각해보시라.


카뮈가 이 작품으로 연대의식의 중요성을 일깨운다고 해설자는 기록했다. 아마도 이 교훈 때문에 지금 ‘페스트‘가 재조명 받은 게 아닐까. 코로나를 대하는 인식과 태도는 나라마다 판이했다. 개인의 자유를 더 우선시하는 나라도 있고, 무력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나라도 있으며, 반대로 국민이 자발적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나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는 코로나가 돌자마자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함으로 진정 국민을 위하는 화끈한 나라가 되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미국은 우월주의와 오만함으로 스스로를 방치하다 수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낸 무식한 나라가 되었다. 두 나라는 우리가 생각했었던 이미지와 상반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러시아는 관점을 국가와 단체에 맞추었고, 미국은 개인에게 맞춘 결과이다. 저자는 이런 연대의식의 부재가 몰고 오는 피해에 대해서 다양한 인간 군상으로 기록해두었으니 직접 읽어보길 권장한다.


또한 페스트는 사랑의 부재를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얼마 없는 시간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페스트는 그런 기회조차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페스트는 유독 잔인한 재앙이었다. 페스트가 지나간 도시의 변화는 하나뿐이었다. 괴로운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랬던 사람들은 제발 시간이 멈추길 바라고 있었다. 그동안 힘껏 사랑하지 못한 세월을 보상받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별한 후에야 가족과 연인의 소중함을 느꼈고, 사랑의 감정으로 긴긴 시련과 고난을 버텼다. 재앙이 끝난 후에도 사랑이 죽어버린 세상이라면 재앙이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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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0-05-22 0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장을 넘기지 못하고 계속 다시 읽다가 잠시 내려놓은 작품입니다.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서 너무나도 읽고 싶은 책인데 정말 이상하리만치 집중이 잘 안되네요. ㅠㅠ

물감 2020-05-22 07:09   좋아요 2 | URL
집중이 안된단 말에 공감해요. 저도 그랬는데, 이야기 자체로는 큰 매력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흡입력이 있는것도 아니고 가독성이 좋은편도 아니니까요. 이 책은 남들의 리뷰만으로도 이미 읽어본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더니 나름 잘 넘어가더군요ㅎㅎ 저처럼 편히 내려놓고 읽어보세요^^

페크(pek0501) 2020-05-22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전 읽었는데 이방인보다 좋았어요. 이방인이 너무 엉뚱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바람에 그랬는지도 몰라요. 소설은 참 어렵단 말이에요. 그래서 언제부터가 소설 리뷰는 내 마음대로 쓰기, 로 정하고 쓴답니다. 소설엔 정답이 없음이렷다, 그러면서요. ㅋㅋ

물감 2020-05-22 19:34   좋아요 0 | URL
저는 이방인을 안봐서 잘모르지만 생각을 많이하게 만드는 작가인건 맞는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리뷰는 형식없이 써버려요ㅎㅎ오히려 그런 글이 더 휘리릭 잘써지기도 하고요^^
 
콘크리트 수상한 서재 3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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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제는 소설책의 서평단 모집이 예전만큼 많지가 않다. 그럴 때마다 한국인은 정말 문학을 안 읽는다는 걸 체감한다. 이 정보화 스마트 시대에 허구적인 이야기를 자꾸 봐서 뭐 하냐는 말도 들었지만, 아니 뭐든지 유익하고 득이되는 것만 보고 듣고 살아야 하나? 반대로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감성은 전공서적이나 자기 계발서 같은 책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단 말이다. 먹고사는 데에 그런 건 필요도 없고 도움도 안 된다는 사람하고는 상대를 안 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들을 때마다 깊은 빡침이 전신을 감싸고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받는 세상, 이런 장르문학으로 해소하고 사는 거지 뭐. 여하튼 오래간만에 읽는 국내 미스터리 소설인데 진지하게 리뷰 한번 써보도록 하겠다.


안덕은 다 쓰러져가는 낡아빠진 작은 도시이다. 이곳으로 아들과 함께 이사 온 검사 출신 변호사 세휘. 그리고 그녀의 당숙이자 이 지역을 쥐락펴락하는 최종 보스 장 회장. 얼마 뒤 도시는 연쇄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장 회장을 따르던 오른팔들이 연달아 실종된다. 어쩌다 보니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그녀는 당장의 돈이 필요했고, 방화범을 찾아내면 뒤를 봐주겠다는 당숙의 제안에 넘어간다. 주인공을 정계로 진출시켜 너 좋고 나 좋자는 당숙의 계획이 뻔한 선악과라는 걸 알면서도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알아내야 하는 그녀는 이 일이 보통 위험한 게 아님을 느끼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와서 그만두지도 못한다. 대체 이 연쇄 사건으로 범인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잘 쓴 책이다. 김호연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 이런 느낌을 받았었지.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주요인물을 모두 여성으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범죄소설은 남성들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성이 이끌어가는 작품이 거의 없다. 국내 문학은 더더욱 그렇다. 솔직히 여성 캐릭터들이 수사나 액션을 담당하는 게 한계 아닌 한계가 있긴 하다. 신체적인 문제도 있고, 비협조적인 타인들의 태도도 그렇기에. 범죄소설의 주인공들 직업이 대부분 검사, 변호사, 경찰, 군인, 탐정이고 아무래도 이쪽 바닥이 남성들로 조직화되어 있다 보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여성 변호사가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이런 장르는 예측이 안되면 안 될수록 흥미롭고 집중도 잘 되거든. 게다가 악역도 골렘 같은 피지컬의 여성이었고, 남성들이 저지르는 범죄 계획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 여러 번 편견을 깨준 책이다. 


이것 말고도 작가는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그중 양심과 탐욕의 공존을 이야기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 놀라웠다. 당숙인 장 회장은 도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고, 그만큼 비밀도 많고 뒤가 구린 사람이었다. 반면에 치매 걸린 엄마와 반항 기질을 보이는 자식을 케어하며 집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주인공은 당숙의 협박 어린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법조인이면서도 돈 때문에 장 회장의 개가 되어야만 했던 그녀는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숨이 막혔지만, 집안을 위해서라면 똥이든 된장이든 다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건에서 손 떼고 싶어도 가족을 걸고넘어지는 당숙의 협박으로 수사는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진퇴양난의 번뇌가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여기에 완급조절도 훌륭하고 장면들이 곧바로 영상화될 만큼 매끄러워서 저자가 무슨 시나리오 작가인 줄 알았더니 일반 회사원이라고 함. 이럴 수가.


개인적으로 원피스 만화를 보며 감탄했던 게 그 많은 등장인물들이 전부 깊은 사연을 안고 있다는 거였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주연이든 엑스트라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스토리는 더욱 탄탄해지고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변했다. 이 책도 그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 잠깐 지나가는 비중 적은 인물에게도 사연을 심어주어 리얼리티를 살렸다. 여기에 정유정 작가의 특기인 음산한 분위기 연출까지 집어넣었다. 이만하면 장르문학으로써 웬만한 건 다 갖췄다고 봐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사건 수사보다는 도시의 부조리와 주인공의 집안 문제 쪽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있다는 점과, 주인공이 변호사보다는 아이의 엄마 캐릭터로 더 부각돼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작품의 성격이 어중간해져 버렸다. 연쇄 실종사건을 다루는 플롯으로 소개된 책인데 진짜는 사회소설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제목인 콘크리트의 의미가 본문에 나오진 않았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가리킨 게 아닐까 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듯이, 돈과 세상도 그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범인의 승리로 끝나는 배드 엔딩이다. 근데 난 오히려 흔한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오랜만에 정말 잘 만든 국내 문학을 읽게 되어 감격했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준 황금가지 출판사에도 감사드린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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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의 심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6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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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연휴 기간 동안 책이나 실컷 읽어야지 했던 계획과 달리 저질체력의 몸뚱이는 잉여로운 침대 생활 속에 젖어버렸다. 먹고살기 바빠서 정해진 일정대로만 살다 보니 흐르는 세월이 아까워 뭐라도 해보자며 시작한 것이 독서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제는 낭비되는 시간들이 그렇게 아깝지만도 않다. 나의 독서는 삶의 템포를 늦추고 유연한 생각을 만드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나를 옭아매는 사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정녕 나는 독서가 좋은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괜한 걱정이었다. 독서 슬럼프의 원인과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방전된 배터리는 재충전을 해야 한다. 단 것도 먹어주고, 카페인도 섭취하면서 컨디션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독서가 안 내킨다면, 아직 회복이 덜 된 것이니 좀 더 주무시면 된다. 책을 의무가 아닌 취미로 읽는 사람이라면 참고해보시길. 게으른 나의 독서 생활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느라 말이 길어졌다. 오랜만에 코넬리 옹의 서브 시리즈인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를 골라봤다.


장기간의 재활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변호사로 복귀하는 미키 할러는 라이벌이던 변호사가 갑자기 살해당하면서 그의 모든 담당 사건들을 넘겨받게 된다. 의뢰인 중에는 살인범으로 찍힌 영화사의 대표가 있었고, 이 거물의 변호에 반드시 성공해서 완벽한 부활 신고식을 할 생각이다. 죽은 변호사가 숨겨둔 마법의 총알을 찾아낸 할러는 그것으로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간다. 한편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살인범의 냄새를 맡고 불안에 휩싸이는 할러. 그리고 그에게 접근하는 해리 보슈와 경찰들. 할러는 어떤 위험에 빠진 것일까.


형사물인 ‘해리보슈 시리즈‘는 사건을 파헤치고 수사하는 속도가 시원시원한 편인데, 법정물인 ‘미키 할러 시리즈‘는 액션이 필요 없는 작품이라 진행이 매우 더디다. 또한 등장인물은 많은데 이해관계는 복잡해서 정리하느라 집중력이 오래가질 못했다. 더군다나 1편인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읽은 지 한참 지나서 시리즈의 전후가 가물가물하다. 이래서 시리즈는 텀을 길게 두면 안 됨. 암튼 자칭 교활한 천사였던 할러는 1년의 공백 기간이 지나서 매우 유해져 버렸다. 실력이야 여전했지만 어쩐지 캐릭터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아무튼 이번 편부터 할러와 보슈 두 사람은 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데, 스타일이 정반대라서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으르렁 갸르릉 거리고 있다. 보슈에겐 융통성과 온유함이 필요하고, 할러에겐 윤리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그래서 작가는 두 캐릭터를 붙여서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했다. 다 좋은데 브로맨스는 자제해줬으면.


일거리를 여러 개 받아서 좋기도 하겠지만 범인이 라이벌의 중요 자료들을 들고 날랐다는 게 문제였다. 나름대로 사건을 정리해봐도 구멍은 많았고, 사건들 간에도 연관성이 보이는데 그것마저 알 수 없으니 지금 가는 길이 막힌 길인지 뚫린 길인지 캄캄하기만 했다. 암튼 여러 사건을 맡아서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내용이 계속 교차되고, 등장인물도 여럿 쏟아져 나와 중간까지는 정신이 너무 없었다. 갈수록 판은 커지는데도 좀처럼 명확한 길이 안 나와서 너무 시간만 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안 그래도 느릿느릿한 장르인데. 이번 작품의 핵심은 ‘거짓말‘이다. 법조계의 고인 물이 다 돼가는 주인공은 그간의 경험으로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고 믿고 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거짓말로 남들을 이용하던 그가, 반대로 그 거짓말에 이용당하는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나는 놈의 입장에 있다가 뛰는 놈의 입장이 되고 보니 답답해 죽으려 한다. 늘 그렇듯이 당근 한입 주고 미친 듯이 채찍질하는 사디스트 작가 마이클 코넬리였다.


아무리 무죄를 주장한다지만 당당함이 우주를 찌르는 의뢰인의 태도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다기보다, 사회의 위치가 그런 인품을 낳은듯해 보였다. 어쨌건 이 거물의 변호를 위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건 맞지만, 할러 자신이 누군가의 표적이 되었다는 불안감과, 지나치게 간섭하는 해리 보슈와, 비록 이혼했지만 다시 점수 좀 따보려는 아내와의 줄다리기 등등 서브 스토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느낌이다. 좋게 보면 상다리 휠만큼 먹을게 많은 거고, 나쁘게 보면 메인 요리가 부실한 거다. 후속편을 생각해서 여기저기 밑밥을 뿌리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는 안되지. 이런 구멍을 강렬한 캐릭터로 메꾼다면 모를까, 순둥이가 되어버린 할러에게는 더 이상 배꼽을 커버칠 힘이 없었다. 어째서 작가는 그렇게나 개성 가득했던 캐릭터를 겨우 두 편만에 탈바꿈한 것일까.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을 테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제프리 디버가 떠오른다. 둘 다 미국을 대표하는 하드보일드 스릴러소설 작가이고, 시리즈 작품을 쓰면서 매번 대박을 터뜨리는 것도 똑같고, 범죄 분야의 전문성과 문학의 대중성까지 갖췄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디버의 글이 김경호라면 코넬리의 글은 박완규이다. 디버는 김경호처럼 날카롭고 스트레이트한 음색이고, 코넬리는 박완규처럼 묵직하고 와일드한 음색이다. 여러 면에서 닮아있는 둘이지만 차갑고 강렬한 디버의 글은 겨울 왕국을 연상케 하고, 코넬리의 글은 어둡고 후덥지근한 분위기라서 지하 던전을 연상케 한다. 이상하게도 그 던전에 한번 들어가면 숨쉬기가 힘든데도 나오고 싶지가 않다. 느낌 아시죠?


원래 법정 스릴러 하면 존 그리샴이지만 워낙 벽돌 책이라 읽어볼 엄두가 안 났는데, 코넬리 표 법정물은 두꺼워도 별 부담이 없어서 좋다. 장르 특성상 법정물은 진지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연속이어서 일정한 재미를 주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떤 분야보다도 훨씬 높은 전문성을 요한다. 그 어려운 걸 코넬리는 보란 듯이 해내고 있는데 1편도 그렇고 이번 편도 매우 준수한 내공을 보여준다. 흔한 변호인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만으로 재미를 뽑아내는 게 한계가 있으므로, 기자나 형사들과도 엮어 의뢰 사건의 안팎으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일명 텐션 뻥튀기라고 하는데 코넬리가 이걸 참 잘한다. 타고난 감각과 고유의 컬러를 정말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코넬리 작품은 무조건 읽어주자. 칭찬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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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후 원더그라운드
윌리엄 R. 포르스첸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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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는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놓았다. 전 세계를 골고루 강타한 이번 재앙이 주는 여러 가지 교훈 중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사전 대비의 중요성을 꼽는다. 인간의 힘으로 재앙 자체를 차단하는 건 불가하나 대비만 잘해도 피해가 줄어들 테니.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상 징조를 보고도 안일하게 생각하여 대처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먹구름을 보고도 소나기일 뿐이라며 우산 없이 나갔다가 비를 쫄딱 맞은 미련한 자와도 같다. 왜 리뷰 시작부터 이런 말을 하냐면, 이 책 역시도 아무런 대비 없이 대재앙을 직면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었던 재난 소설 중에서 이 작품의 재난이 역대 최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이 내용에 비벼보지도 못한다. 자, 이제 젖과 꿀이 흐르던 땅이 1초 후에 황폐한 지옥으로 뒤바뀐 천조국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갑자기 찾아온 정전으로 미국의 일상은 정지해버렸다. 거리의 자동차들이 멈추었고, 전자기기들도 먹통이었으며, 비상 전력과 배터리들도 무반응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전자기 충격파(emp)로 발생한 재난의 시작이었다. 공중에서 터진 핵폭발로 감마선 에너지가 방출하고 전자기의 회로가 파괴되어 모든 전자 시스템이 마비된 것이다. 이제 생계에 위협을 감지한 사람들은 사재기를 하고 약탈과 폭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고립된 미국의 소도시는 구멍 난 배처럼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시종일관 분위기가 어둡다. 전기를 못 쓴다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 줄 상상도 못했다. 전기의 부재는 인류의 문명을 청동기 시대로 되돌려놓았고, 현대인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위기에 손도 못써보고 죽어갔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건 역시 환자들이다. 맨 먼저 의료시설에 의존하는 노인들의 죽음부터 시작되었다. 병원과 약국이 전부 강도 맞은 탓에 병자들도 줄줄이 죽었다. 술 담배가 끊어지자 중독자들은 정신 질환을 일으키고, 물과 식량 부족으로 성직자마저 이성을 잃기 시작한다. 이윽고 계엄령이 내려졌지만 붕괴 중인 사회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통제불능인 사람들로 기관 및 시설들은 제구실이 불가할뿐더러 직원들도 전부 달아나 수습할 수도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벅찬데 피난 오는 외지인도 막아야 하고, 구호물품 거래도 해야 했다. 또한 질병 보균자가 있다면 전염병이 퍼질 것도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굶주린 개들이 언제 맹수로 돌변할지 몰라 사전에 죽이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미국 답지 않은 생각과 정책들로 미칠 지경이었지만 감정적인 판단은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죽어가고, 식량과 약품은 바닥치고, 외지인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지도자들 간에 의견 충돌에서 주인공은 길잡이가 되고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역사학자라는 타이틀을 주어서 과거에 있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한부 인생의 딸 걱정으로 이기적인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설정도 주었다. 겉사람은 모두를 살리기 위한 지도자의 입장이었지만, 속사람은 가족을 먼저 살리려는 한 아버지의 입장이었다. 가족이 우선인 게 당연하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이 혼돈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회복될 미국의 역사 속에 수치스러운 오점을 남길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의 존망을 해결하기도 숨 막혔지만 지도자로써 먼 훗날의 비전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실체가 없는 적과의 싸움은 이 얼마나 소모적인가. 승리에 대한 기쁨도 없었고,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쪽에서는 사이비 신흥교가 일어나 지구 종말을 외치고, 저쪽에서는 인간 말종들이 강도 짓을 하고 다닌다. 미쳐돌아가는 세상이었고, 다들 죽지 못해 사는 꼴이었다. 반려동물마저 잡아먹어야 하는 악몽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미국 전역을 파괴하고 다니는 단체가 쳐들어와 전쟁을 치른다. 운 좋게 이겼다지만 대다수가 사망했고 부상자들도 치료약이 없어 서서히 죽음을 맞이했다. 같은 미국인들과의 살육전이라니, 참담한 현실이었다. 적들은 겨우 EMP 하나 터뜨렸을 뿐인데, 미국은 서로 싸우고 자멸한 것이다. 전자기 펄스 폭발은 식량난에서 민족 전쟁으로, 마침내는 전염병으로 이어졌다. 거리에 방치된 수많은 시체와, 오랫동안 치료받지 못한 질병 보균자들로 인해 면역이 약해진 사람들은 치료제 없이 병마와 싸우다 죽는다. 사랑하는 이가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최소한의 존엄마저도 지켜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게임에서만 보던 EMP 충격파가 현실에서는 이렇게나 위험한 것이었다니. 이 모든 시나리오는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작가는 말하였다. 읽어보시면 이 책의 재난이 핵 전쟁이나 코로나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다는 내 말이 이해될 것이다. 약이 없어 죽고, 굶어죽고, 강도 맞아 죽고, 전쟁으로 죽고, 역병으로 죽고, 또다시 아사하고... 그렇게 죽음은 당장이라도 산 자를 데려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보통의 재난 소설들이 디스토피아로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내용을 생략하고, 몰락한 시점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그러나 이 책은 시민들이 공황상태가 되고 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을 매우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이 지나면 이런 일이, 내일이 지나면 저런 일이 발생하는 연쇄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정말 철저히 준비했다는 인상을 받았고, 의도한 대로 독자에게 충분한 경각심을 갖게 한다. 문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부자연스러운 설정이 다소 있지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다. 과학소설이 다 그렇지 뭐, 잘 알잖소? 


사막에서는 금보다 물이 귀하다는 말이 있다. 작중에서는 굶주림 끝에 인육까지 먹는 자들도 등장한다. 그런 괴물이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현실에서는 몇이나 될까. 디스토피아 문학이 다루는 인간 군상을 보면 완전히 타락하여 짐승의 탈을 쓴 자도 있고, 아싸리 다 포기하여 추악할 대로 추악해진 자도 있고, 생존을 위해 더럽고 꺼림칙한 것도 다 받아들인 자도 있다.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이들을 마냥 혐오하고, 가족을 위해 남을 헤치는 자들을 욕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들처럼 되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작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도 아니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 현대 시스템에 감사하라고 쓴 것도 아니다.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이 재난의 경고를 무시했다가는 우리도 청동기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니 비 맞기 전에 우산은 미리미리 준비해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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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4-25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굶주림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인육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감 2020-04-25 23:03   좋아요 0 | URL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지만 재앙 앞에서는 들판의 짐승들과 다름이 없음을 느낍니다. 오히려 어떤 법도 규정도 없는 미물들의 세계가 인간보다 더 질서있으니까요. 비관주의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메시지가 워낙 강렬해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