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저녁부터 혼자 있게 될 어제저녁의 메뉴를 생각해 두었었다. 치킨버거를 평소에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두툼한 치킨패티가 들어간 치킨버거에 와인을 먹고 싶었다. 어제 하루종일 어제저녁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퇴근하는 길, 발걸음도 가벼웁게 맘스터치에 들러 싸이버거를 샀다. 맘스터치를 가 본 적이 별로 없는 터라 어느 햄버거가 제일 좋을까 메뉴를 살펴보는데 잘 모르겠더라. 햄버거 좋아하는 다정한 친구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흐음, 모든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해, 하고는 싸이버거를 골랐다. 여동생은 얼마전에 '다릿살이 좋아서' 싸이버거를 먹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치킨의 다릿살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나도 싸이버거! 그거 하나만 먹으면 저녁이 조금 외롭고 초라하지 않을까, 나는 너겟도 주문했다. 그렇게 어제의 초라하면서도 간단한 술상.



LOST ANGEL 은 여동생이 좋아하는 와인이다. 일전에 친구로부터 선물 받아 마시는데 여동생도 한 잔 같이 마시다가 너무 좋다고 하는거다. 저걸 다 마시고나서 내가 늘상 사두는 9,900원 와인 마시더니 이건 맛없네? 하더라. 입맛 귀신 같은 동생이여... 응, 이건 저려미여.....나처럼 이렇게 와인 마시는 사람은 비싼 거 못사놔...저려미..로 냉장고를 채워야 해..미안..


게다가 저 로스트앤젤은 우리 동네 홈플엔 없다. 여동생 동네의 이마트에만 있어. 나는 마침 지난번 안산에 갔을 때 이마트에 들러 로스트앤젤을 두 병 샀다. 사진의 파랑색은 블렌딩이고 또 한 병은 갈색의 까베르네 쇼비뇽. 우선 까쇼를 마셔봤는데, 오, 너무 좋았다. 굿 베리 굿이여. 블렌딩도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어제 마시는데, 오, 이건 단맛이 느껴지네? 그전에 마셨을 때는 단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확실히 단맛이 느껴졌다. 여동생은 두 병의 맛을 비교해서 말해달라길래, 나는 갈색 까베르네 쇼비뇽이 더 내 취향이라고 말해줬다. 그러고보면 알라딘 커피도 그렇고, 나는 블렌딩보다는 싱글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저 버거는 정말 내 취향 아니다.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세상에 핫치즈징거버거 만한 치킨버거는 없는 것 같다. 일단 내가 닭다리살을 좋아하고, 저건 분명 닭다리살로 가득했지만, 그것이 패티의 역할을 할 때는 빛을 잃는다. 치킨 버거의 패티는 가슴살이 진리구나, 나는 어제 몇 번이고 깨달았다. 결정적으로 소스도 내 타입이 아니고... 아무튼 먹다가 치킨 패티 사라지고 빵과 소스만 남은 상황. 이럴 때 두려울 게 무어람? 나는 너겟을 빵과 빵 사이에 넣어 또 먹는다. 그것이 인생.....


근데 닭다리살이 맞는거야 닭다릿살이 맞는거야....빌어먹을 사이시옷... 명사와명사 사이니까 사이시옷 필요한거야? 제기랄 모르겠다.




그렇게 홀짝홀짝 술을 마시다가, 아 맞다, 책장 사진! 내가 알라딘 페이퍼에 책장 사진 올린다고 해놨지? 음주중에 들어가서 찰칵찰칵 찍었다. 일반책장은 그전에 올린 적도 있긴 하지만, 일단 일반책장.




고등학교시절 문학 선생님은 자신의 은사님 얘길 해준 적이 있다. 그 은사님은 본인 서재에 책을 정말 많이 가지고 있는데, 어떤 책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기억하신다는 거다. 그래서 어떤 책에 대해 얘기를 하면 딱 그자리에서 그 책을 빼주실 수 있다고. 기억력이 대단하시다고 얘길 해주셨었는데, 내가 돈을 벌고 책을 사기 시작하고 그리고 이렇게 점점 책이 많아지게 되면서 나 역시 책장을 마련하게 됐고, 그렇게 책을 꽂다 보니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겠던데? 내 책이고 내 책장인데 그걸 모르는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밖에 있다가도 남동생이 책 빌려달라고 하면 오른쪽에서 두번째 위에서 세번째, 하는 식으로 그 책이 어디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몇해전까지는...



그러나 안읽은 책이 쌓이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책을 계속 사지만 공간은 한정적이니, 읽은 책을 내보내야 했던 거다. 방출을 하다가 중고매장 생기면서 중고로 팔기도 하고 또 가끔은 미혼모센터에 기부도 하고 그러면서 내 책장의 책은 절반 이상이 읽지 않은 책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하아- 너무 자주 사서 이제는 샀는지 안샀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고. 그러다가 몇몇책들의 사진을 이곳에도 올렸던 것처럼 두 권씩 꽂아두게 되어버렸던 거다. 분노의 포도도 읽고 넣어두다가 윗칸에서 앗? 이러고 또 찾아냈고(심지어 1,2권 두 권짜리 책이었다 ㅠㅠ), 그 뭣이냐 앤젤라 카터 책도 그랬지. 뭐 그런 책 많다. 다 읽고 넣어두다가 책장에 이미 꽂혀있는 걸 발견할 때의 그 공포... 하아-

요즘엔 그래도 알라딘에서 '너 기존에 산 책이야~' 라고 알려주어서 좀 덜해지게 됐는데, 문제는 기존에 산 책이라는데 나는 기억에 없다는거다... 뭐, 이런 일은 알라디너에게 빈번하게 일어날테니 이쯤하자.



문학선생님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산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 말은 그 당시 듣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들어가고 또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내 돈으로 내가 여러권의 책을 처음 산 날, 문학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아, 그 때 선생님이 말한 게 이거구나! 선생님은 월급날이면 차 끌고 서점에 달려가 뒷트렁크를 책으로 채운다고 했는데, 나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물론 서점에 가서 한아름 안고 오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월급날 기다렸다가 왕창 책을 산다...인생이여... 지금도 커피랑 책이랑 막 사고 싶은데 월급날이 아직 한참 남았음에 곶통..... 인생이여.....


아무튼 그렇게 차곡차곡 샀더니 책장이 필요해졌고, 책장을 샀더니 하나 더 필요해졌고, 아무리 내다 팔아도 하나 더 필요해졌고.... 그렇게 나는 이케아에서 주문한 책장을 조립합니다. 거기에는 페미니즘 책들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맨위의 인형은 몇년전 홍콩 디즈니랜드 갔을 때 조카랑 같이 기념품샵 들어가 고른 것인데, 나는 저걸 사고 나서 '김말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지난 주말 조카가 와서 보고는 '응, 김말이네?' 이러고 아는척 하고 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저 책장 하나는 99프로가 페미니즘 책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많고, 위에서 두번째 칸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들이다. 세상 근사해.... 아무튼 이것이 나의 페미니즘 책장인 것. 멋져... 저게 하루아침에 저렇게 된건 당연히 아니고 시간이 쌓여서 모여진 것들이다. 관심갖고 책을 사서 읽고 그러면서 어떤 책들은 팔고(페미니즘 에세이들은 대부분 팔아버림) 그리고 또 사서 읽고... 반복했던 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책장. 책장이란 무릇 그런게 아닙니까.




오늘은 금요일이라서인지 출근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퇴근 후의 계획도 머릿속에 다시 한번 떠올려보고,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잠겨있던 정원의 문을 열었다.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여는데, 와, 날씨가 너무 좋은거다! 그러자 기분이 막 좋아졌어!! >.<





아 날씨 좋아, 기분 좋아, 한 번 심호흡 하고 들어오면서, 아오, 날씨는 대체 뭘까, 뭔데 이렇게 사람 기분을 갑자기 좋게 만드는거지, 했다. 어쩌면 샐린저의 말대로, 날씨 앞에서 우리는 인질이나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금요일이라서 너무 좋다! 시간이 너무 빨라서 좀 야속하긴 하지만, 책상 위에는 친구가 보내준 호두떡도 있고(히히) 직장 동료가 준 초콜렛과 빵도 있다. 언제든 정원 문을 열고 나가 좋은 날씨를 몸에 직접 받을 수도 있다. 날씨가 좋아서 다 좋은가보다.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책을 몇 권 사고 싶지만, 그건 월급날까지 꾹 참아보기로 한다.





















그럼 여러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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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5-29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면서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예가 의외로 드물던데, 다락방님 책꽂이 책들은 정리가 잘 되어 있네요.
주말 날씨가 좋다던데, 좋은 일 팍팍 생기시길 바랍니다.

다락방 2020-05-29 09:34   좋아요 0 | URL
아이고 그렇지도 않아요. 그래서 사진 작게 올린거에요 ㅠㅠ
전집 같은 경우는 그것들끼리 꽂아놓으면 되니까 괜찮은데 다른건 엉망이에요. 날잡고 정리해야지, 하고 책 다 뺐다가도 얼마 안가 아 짜증난다 그러고 다시 막 꽂아요 ㅋㅋ 그래서 뭐랄까, 막 꽂혀있답니다. 후훗.

날씨가 좋아서 너무 좋아요, 나인님. 날씨가 좋으면 왜 기분도 좋은지 모르겠어요. 나인님도 오늘 그리고 주말도 모두 즐겁게 보내셔요! 저는 나인님과 이렇게 오래오래 알라딘에서 만나는게 정말 좋아요.
:)

잠자냥 2020-05-2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크게 올려주시지 책 구경 좀 하게 ㅎㅎㅎ
초라하고 간단한 술상이라는 말에 사진 보고 으응????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아침부터 햄버거 먹고 싶게 곶통..... ㅋㅋ

blanca 2020-05-29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회사 정원 사진 캬. 다락방님의 금요일 페이퍼를 읽으니 그 기분좋음이 저한테까지 전해져오네요. 이제 저는 책을 빌려 읽기로 했는데 흑, 낡은 책 상태가 책을 넘길 때마다 사람을 절로 우울하게 만드네요. 왠지 찝찝하기도 하고...새책의 중독성은 정말이지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네요.

수연 2020-05-2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책장 완전 근사해요. 너무 근사해. 날씨도 좋고 와인 사진도 좋고 덩달아서 기분 업업되어 하루 시작해요. :)

반유행열반인 2020-05-29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풍경이 막 우리집 같고 심지어 이케아 책장 똑같은 거 우리집에 있어서 깜짝...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진행중인 멤버들은 항상 우리가 같이 읽는 책이 무겁다고 저마다 고충을 토로한다. 한 멤버는 그간 독서대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제 구매해서 독서대를 사용해야겠다고 얘기한다. 나의 경우 독서대가 있고, 아주 요긴하게 사용중이다. 같이읽기 도서를 까페에 가서 읽으려고 하면 반드시 독서대도 가져간다. 테이블에 두고 읽으면 모가지가 너무 아프고 들고 읽으면 손목이 나가버림...

다들 이게 너무 무거워서 이북으로 읽으면 어떨까도 생각해보지만, 그런 단계를 거치면 다시 같이읽기 도서만큼은 종이책으로 결론이 난다. 두꺼운 책은 이북이 편할 것 같지만 어쩐지 또 뒤에 조금씩 남는게 줄어드는 걸 보는게 짜릿한 기쁨이 있어...

그렇게 오늘도 한 멤버는 흑인페미니즘 사상을 들고 출근을 했고 한 명은 들고 다니느라 어깨가 빠질 것 같다고 하는데, 나는 그래서 백팩에 넣고 다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다들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할까... 우리는 왜 이러는걸까. 도대체 이 무거운 책을 왜 굳이 같이 읽겠다면서 어깨 아프고 모가지 아파가며 들고 다니는걸까. 5월에 흑인페미니즘 사상 함께 읽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 7명인데 그중 5명이 완독했다. 근사하지 않은가.


















위의 도서들이 차례대로 6월-9월까지의 도서들인데, 7월의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아니 글쎄, 페이지수가 228 밖에 안되는거다. 보통 같이읽기 도서는 기본적으로 400페이지가 넘고 500-600 에 이르는데, 기존에 읽어온 건 천 페이지 넘는 것도 있었고 막 700,800 그랬는데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228밖에 안돼. 고작! 228이라니!!



오늘 저마다 어떤 도서가 가장 기대되는지 얘기했다. 한 명은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이 가장 궁금하다고 했고 나는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를 빨리 읽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는 에코페미니즘이 가장 궁금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6월 도서인 에코페미니즘을 벌써!!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선행학습.. 아무튼 이런 얘기들 가운데 내가 스트레이트 마인든의 빈약한(!) 쪽수를 확인하고,


"한 권 더 할까요?"


했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두의 원성이 자자해졌다. 왜 쉬엄쉬엄 가지를 못하냐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진심이냐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빵터졌네.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228 너무 약한데, 흐음, 한 권 더갈까, 이렇게 되어서 말했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휴 ㅋㅋㅋㅋㅋㅋㅋㅋ 쫓겨날 뻔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러분 미안해. 내가 여러분 쉬지 못하게 해서 미안해. 228페이지 7월에 우리 맘껏 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7월 도서 멤버중 한 명의 추천이었는데, 빅픽쳐..있었던건가... 쪽수 작은거 밀고 좀 쉬자, 이런 마음 있었어요, 없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나는 오늘 멤버들에게 욕심이 똥구멍까지 차서 미안합니다, 라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욕심이...똥구멍.... 욕심은 넘나 나의것인것을....나는 왜이렇게 됐을까.




멤버중에는 저 도서들을 미리 다 구매한 친구도 있는데, 요즘 너무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 역시 그렇다. 무거운 종이책 백팩에 넣고 메고 다니면서 밑줄 긋고 메모도 하고 생각도 하고 글도 쓰면서, 아아, 공부총량의 법칙은 정말 있나보다 싶고, 내가 어린시절에 이렇게 공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수차례 생각했다. 중,고등학교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나 명문대 갔을텐데. 명문대 갔으면 다른 미래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아니, 중고등시절이 아니라 대학때라도 그래. 나는 여대를 다녔는데 그때 강의를 들으면서 그리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수업듣고 공부하고 그랬다면 대기업에서 겁나 높은 연봉 받고 다니지 않았을까... 지금 하는 것처럼 시간과 에너지를 공부에 쏟았다면 내 미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내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남동생은 나에게 '지금이 누나의 최선이야' 라고 말한다. '누나가 가질 수 있는 자아가 여러개인데, 지금 있는 자아가 누나가 가진 가장 최상의 자아야' 라고. 그러면 또 그런가...한다. 아무튼.




지금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고 있다. 오만년전에 읽고 사정상 다시 읽고 있는데, 와, 할 말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이건 다 읽은 후에 따로 페이퍼 쓸 예정이다. 읽으면서 깨달은 건, 나보코프는 아동성애를 부추키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도 아니고, 아동성애자들의 변명을 해주기 위해 쓴 것도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하고 참 가슴이 아프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롤리타에 대해서 그리고 소설에 대해서 아주 할 얘기가 많아질 것 같다.























어제는 업무적으로 매우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멘탈이 찢어졌다. 이 회사에서만 벌써 18년째 일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트레스도 있고 멘탈이 나갔다 들어올 때도 있다. 나는 내가 나를 먹여살려야 하는 처지고 그러니 노동은 나에게서 앞으로도 오래 떨어지지 않을텐데, 노동에 이런 스트레스는 꼭 필요한 것일까. 노동에 대해 어제 오래 생각했고, 집에 돌아가는 길도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도 몹시 지쳐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일어나 출근하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소한 수다를 떨면서, 어제의 멘탈 찢어짐은 '과거'가 되어 있음을 알았다. 웃으면서 얘기했고, 어쨌든 스트레스도 지나갔다. 물론, 다시 찾아오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분명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진실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을 그리고 또 내일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토요일의 파티를 기다린다. 누군가의 집들이에 가기로 했는데, 저마다 무언가 가져오기로 했다. 와인과 막걸리와 치즈와 명란젓과(응?)... 이런것들을 가지고 친구네 집에 방문한다는 생각에 몹시 짜릿하다. 우리는 돈을 모아서 피자도 치킨도 모자라지 않게 시켜둘 것이다. 너무 짜릿해! 내 제안으로 떡볶이도 배달시키기로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삶은 이토록이나 기쁨과 슬픔과 절망과 기대의 연속이다.

나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더 행복하고 싶고,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뭔지도 너무나 잘 아는데 그건 내 의지만으로 되는게 아니라서 또 좀 슬프다.



덧) 내게는 이케아에서 사서 조립한 책장이 있고, 그 책장은 페미니즘 책들로만 채워졌는데, 다음번에는 그 책장 사진을 올리겠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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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28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빡세게 읽는 것에 진심인 편....

단발머리 2020-05-28 13:55   좋아요 1 | URL
그 진심 알아차리는 편...

다락방 2020-05-28 14:03   좋아요 1 | URL
말려줘서 사실 좀 고마워하는 편....

단발머리 2020-05-28 14:31   좋아요 1 | URL
담에 기회되면 또 도전할거라는 걸 알고 있는 편...

비연 2020-05-28 14:32   좋아요 1 | URL
두 분 대화를 다 알아듣는 편...

단발머리 2020-05-28 14:33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센스 많은 편...

다락방 2020-05-28 14:3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5-29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다섯명 완독! (울고 있는 독서쪼렙)
만원 지하철이여, 나에게 출근길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허하라! (저 진짜 맨날 들고 다니는데 퇴근길에 열페이지 읽는게 다여서 걱정 ㅠㅠㅠㅠㅠ.. 미 완독자 파티 참석 가능할까요?)

다락방 2020-05-29 07:41   좋아요 0 | URL
쟝쟝님, 아시겠지만 완독자가 여섯명이 되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면 쟝쟝님이 넘나 부담이 되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흑인 페미니즘 사상 - 지식, 의식, 그리고 힘기르기의 정치 여이연이론 18
패트리샤 힐 콜린스 지음, 주해연, 박미선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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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5월까지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들 중 가장 좋았다. 나는 흑인이 아니고 흑인으로 살아본 적도 없지만 흑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토로하는 작가의 글이 무슨 말인지 다 알겠더라. 흑인 여성들의 말과 글 그리고 블루스를 인용한 게 특히 좋았다.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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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의 책, 《에코페미니즘》입니다. '마리아 미스'라면 이미 3월에 만난 책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로 몇몇 멤버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주었는데요, 그 마리아 미스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존 멤버들은 자동 참가고요,

참가하실 분들은 참가한다고 댓글 적어주신 뒤에 해당 책을 해당 기간 안에 완독하시고 틈틈이 글을 적어주셔야 합니다.

해당도서에 대한 참가글을 적을 때는 말머리에 제목으로 [에코페미니즘] 붙이는 거 잊지 말아주세요!


참가하고 완독했다고 해서 어떤 상품이나 수료증 같은 건 전혀 없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완독했다는 기쁨 그리고 성취감..은 얻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럼 이만...


6월에 만나요, 여러분!



덧) 마침 이런 기사가 있어 가져왔어요.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반다나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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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28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책이라, 페이지수의 압박은 있으나 (500페이지가 넘는다죠..;;) 찬찬히 읽어볼 생각이에요.
완독의 기쁨. 이건 함께 누릴 때 더 커지는 것 같다는. 저도 슬슬 시작해봐야겠어요.. (선행의 바람..ㅎㅎ)

수연 2020-05-28 09:15   좋아요 0 | URL
선행한 자가 이렇게 또 크나큰 파동을 불러 일으키고...... 크크크

다락방 2020-05-28 14:03   좋아요 0 | URL
아놔 이사람들... 선행에 불붙어버렸다. 불지핀 자 누구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연 2020-05-28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 읽으러 쓩~~ 저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읽고 진짜 망치로 머리가 깨지는 듯한 그런 울림을 받아서 에코 페미니즘 진짜 기대가 커요. 두근두근_ 이제 선행하러 가야지

단발머리 2020-05-28 09:24   좋아요 0 | URL
선행금지! 선행금지!
수연님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다락방 2020-05-28 14:03   좋아요 0 | URL
수연님 책장에 페미니즘 책들을 차곡차곡 채워봅시다. 후훗.
 
사건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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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가 불법이었던 시절에 아니 에르노는 임신을 했고 낙태를 해야 했다. 그녀의 나이 이십대초반, 대학생일 때였다. 그녀는 혹여라도 낙태해줄 의사가 있지 않을까 병원을 방문해보지만 언제나 싸늘한 시선을 받고 돌아선다. 엄마한테도 임신이 들킬까봐 초조하고 나는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알려진대로 뜨개질바늘을 자기가 스스로 자기 안에 넣어보기도 한다. 이내 포기하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그녀를 임신시킨 남자는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살아왔던 그대로의 삶을 여전히 그대로 살아갈 뿐. 남자와 여자가 '함께'한 섹스인데 고민과 고통은 모두 여자의 몫이라니. 게다가 육체적 정신적인 피해가 모두 온전히 여자의 몫이라니.


아니 에르노는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이미 기혼인 남자지인으로부터 혹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자신의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너의 일에게 그녀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한 여성의 이름을 알려주긴 하지만, 자신의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녀에게 섹스를 제안한다. 그로서는 너무 안전한 일이었다. '이미 임신한 여성이니' 자기가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던 셈. 아니 에르노는 그 날의 일을 회상하며 그 남자를 딱히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아니 에르노를 좋아하고, 그녀의 <단순한 열정>을 매우 사랑하지만, 그러나 .. 오늘 아침까지도 내내, 아니 에르노가 그렇게까지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면 그녀는 정말이지, '남자 없이 못사나?' 싶을 정도로 남자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아.



그녀를 도와줄 여자가 드디어, 나타나고 그녀에게 어디로 가면 수술을 (몰래)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며, 그에 해당하는 비용도 빌려준다. 그러나 그 수술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간다.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차있다.

성적으로 순결한, 더럽혀지지 않은 여자를 원하는 남자들이 많지만, 그러면서 자기들은 언제나 여자를 만나면 섹스하기를 종용한다. 섹스를 남자랑 여자랑 하는데, 아니 생각을 해봐, 늬들이 섹스하는 상대가 여잔데 어떻게 순결한 여자를 바라는거야? 대가리 텅 빈 부분? 돈주고 성을 사면서, 그러나 성을 파는 여자들을 창녀라고 욕한다. 여기에서 어떤 모순을 감지하지 못하는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렇게 좋다고 섹스해 놓고서는 임신을 하면 나 몰라라 한다. 낙태를 불법으로 만들어놓고는 사생아는 사생아라며 욕하고. 낙태하면 또 낙태했다고 흉보고. 오래전 읽었던 소설 중에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일전에 낙태한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 남자가 몹시 분노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뭐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어쩌라고? 섹스한 후에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도 여자의 몫이고 임신하고 낙태하는 것도 여자의 몫이고, 여기에 들어가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도 모두 여자의 몫인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들 지랄들이여.. 임신하면 모른척하는 남자도 남자지만, 하아, 이미 임신한 여자니 콘돔없이 안전하게 섹스할 수 있을 것 같아 덤벼대는 남자는 또 세상 무슨 쓰레기여... 그러면서 또 낙태 수술은 안된대.. 세상이 대체 여자한테 어떻게 살라는건지 모르겠다.



낙태수술을 한 여자는 생각보다 많다. 낙태가 합법이 아닌데도 그렇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젊은 아니 에르노가 고민하는 내내 함께 고민했다. 영화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에서 낙태수술을 하고 나오면서 무너지듯 울던 여자의 모습이 내내 겹쳤다. 낙태수술 한 후에도, 심지어 수술할 때 같이 가주지도 않고 돈을 주지도 않아서 내가 대신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그 남자랑 다시 만나던 친구도 떠올랐다.

여자들은 자신을 함부로 대한 남자들을 그리고 세상을 너무 봐주면서, 이해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심지어 사랑까지 했어.


보통 한국 사람들에 대해 얘기할때 '한(恨)의 정서' 라고들 하는데, 나는 이 '한'이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있을 것 같다. 다들 가슴속에 홧병 품고 살고 있을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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