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도 못한 존재들과 그들의 시위를 비문명적이라 말하며 매달 9백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아가는 국회의원 이준석이 공존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 

심지어 그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뽑았다. 누군가는 그 사람이 월급 구백만원 받아도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거지. 박경석이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서 한 행동이 뭔데? 같이 지하철 타고 출근해보자는 거였잖아. 이준석은 심지어 그것을 자신이 길에 소변보는 행위에 비유한다. 

통통하게 잘 먹고 사는 볼을 해가지고 과학고등학교와 하버드대학교를 거쳐 좋은 교육을 받아놓고-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장애인들에게 교육이란 얼마나 닿기 어려운 것인지!- 세상에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학고.. 똑똑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 아닌가요? 하버드는요? 하버드대학은 알고 있나요? 당신네 대학 졸업한 사람이 세상 부족한 것 없이 살면서 장애인들을 향한 혐오를 조장한다는 사실을? 


박경석의 말대로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도 이 책 덕분에 그걸 깨닫게 되긴 했다. 이 나라 모든 초중고교에 무엇보다 과학고등학교에 이 책이 교과서로 쓰였으면 좋겠다. 



국민은행 009901-04-01715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모든 인용문은 전자책 발췌)

그런데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요, 이건 꼭물어봐야죠. 그렇게 당신들 일상이 소중하다면서, 이 사회를 함께 살고 있는 어떤 사람들이 그 일상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거는왜 전혀 문제가 되질 않을까요? 나는 1분이라도 막으면 시민들한테 그렇게나 미안해하는데, 왜 장애인들 그렇게 사는 거에 대해서 미안해하는 사람은 이렇게나 없는 건가. 어떤 장애인들은요, 말 그대로 이동을 할
수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해왔어요. 학교에갈 수가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해왔죠.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까 노동도 할 수가 없지. 누가 이 무능한 사람들을 고용해서 데려다 쓰겠어. 그러니께네 이 장애인들은 출근길 지하철을 애초에 탈 수도 없고, 탈 일도 없는 거야.
그렇게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채로 시설에,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거죠.
출근길 지하철이 1분만 지연돼도 그게 그렇게 문제라면서요. 당신들 일상 전체가 1분 늦어지는 거니까. 그런데 장애인들은 1분이뭐야, 한평생 그 일상을 누릴 수가 없어요.

23년을 외쳐도 그 가장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조차 계속 지연이 되고 있는 거야. 고놈의 "좀만 기다려라", "좀만 기다려라"란 말만 맨날들어가면서.
정말이지,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 평생의시간은 비장애인들 1분의 시간만큼도 가치가없는 거예요. 진짜 심각하게 불평등한 상황인거지. 그런데도 시민들에게 이런 상황이 전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장애인들이 이 사회에서 전혀 쓸모없는존재로 취급받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거라고 봐요.

이게 지하철행동을 통해서 드러난 이 사회의 본질이에요. 쓸모 있는 사람만 시민권열차에 태워가지고 열심히 운반하고, 쓸모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예 무정차하고서 내버려두고 떠나는 거.

그런데 그 와중에 존재감이 어마어마한사람까지 갑자기 등장을 해버리네?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였던 이준석이 대선 끝나고서[2022년 3월] 페이스북에다가 전장연을 공격하기 시작한 거야. 이야! 이런 스피커 큰 사람이 딱 나와가지고 장애인이 차별받는 현실을 본질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하나도 없으면서 대중들이 그냥 시위 방식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부추겨버리면 어떻게 하나.
당연히 이준석 덕에 지하철행동이 어마어마하게 알려지기는 했죠. 이준석이 참전한 이후에 우리 관련된 기사가 엄청나게 급증하기도 했고, 심지어 이준석이랑 JTBC에서 일대일 공개 토론까지 했잖아. 그때 토론 끝나고그 사람이 그러더라고. 대표님은 나한테 고마워하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너희는 내 덕분에 유명해져서 좋은 거 아니냐, 서로 윈윈하자는 조로 말이야. 하하. 이 말 직접 들어봐요. 엄청나게 모멸적이야.

우리가 이준석 덕분에 더유명해지긴 했는데, 역설적으로 정작 우리들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는 사람들은 더 없어져 버리는 거야.

이준석 같은 사람은요, ‘내용‘을 파편적으로나마 좀 다루더라도 결국에는 이걸 활용해서 자기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 정치놀음에 이런 소수자 이슈를 먹잇감으로 삼는 잔재주가 엄청나게 능한 사람인 거야. 그러니 사실들 몇 개를 아주 교묘하게 편집을 해가지고 그냥 막 퍼뜨려 버릴 수도 있는 거지. 이사람은 자신감이 있을 거거든요. 이준석이랑우리랑은 영향력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 사람들이 사실 확인 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그냥 자기가 말하는 대로 믿어버릴 거라는 자신감 말이야.

애초에 장애인들이조금 많이 타기만 해도 대혼돈이 찾아올 정도라면 이건 지하철, 대중교통 시스템 자체에문제가 있는 거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들한테그런 태도를 취한 경찰이 문제인 건데, 그 이야긴 아무도 안 하지.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전장연은 ‘사회적 테러‘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장애인이라는 약자 지위를 이용해서 처벌도 제대로 안 받는다고요. 오세훈 시장에게 분명하게 말을 하고 싶어요. 누군가의 일상을 방해하고 그러는 게 테러라면요, 여태껏 이 국가가 장애인들에게 해온 역사는 그럼 장애인들한테 매 순간 테러였어요. 정말로요, 장애인들에게는 이 사회가 테러 그 자체예요.

노들장애학궁리소라는 데서 활동하는 고병권 선생님께서 지하철행동 50일 차쯤 됐을때, 한 칼럼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과연 장애인들이 죄 없는 시민의 발목을 잡았는가. 오히려 시민들이야말로 장애인들의 발목을잡아온 건 아닌가." 저는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을 해요.

누구는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 폭력을 묵인하고서 자기 혼자 그냥 꾸역꾸역 올라타서 출근을 하는 게 정말로 그렇게나 마냥 당당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버티면서 싸우는 거, 당연히 많이 외롭지요. 차별받는 사람들이 저항하는 존재가 된다는 변화의 과정은 숙명처럼 외로울 수밖에 없는 거더라고. 외로움이 뼈에 사무칠정도야.

시위 방식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욕을 들어먹어도요, 우리 시위에 공감한다는 응답[61퍼센트]마저도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보다는 한참 높아요,
하하.

지금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타봐요. 그때 우리 욕하던 연령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득 차 있어요.

이 능력주의 사회에선 경쟁에서 탈락하는 순간 사실은 지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예요.

시설에 가둬두는 게 제일 정당화되는 사람들은 보통 사회가 의사 표시를 직접적으로 잘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는 발달장애인들인데요, 그 사람 의사를 다른 사람들이 잘 못 알아먹으면, 그 사람은 자유를 포기해도 된다고 봐야 하는 건가요?

탈시설 반대한다는 이준석이도 내가 당신은 다섯 명이랑 한 방에서 살고 싶냐 물어보니까 대답을 어정쩡하게 하드만. 자기도 그렇게 살기 싫은 거거든.

중증장애인들은 존재 자체가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 수 없는 게 아니고요, 지역사회가 조건을 갖출 생각도 안 하면서 중증장애인들의 존재를 그렇게 낙인찍고 있을 뿐인 거예요. 사회가 문제인 걸 자꾸 장애인 개인들 존재의 문제로 바꿔버리면 안 되는 거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생산성 자체가, 능력주의나 비장애중심주의 자체가 문제인 건데, 그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나도 그래도 능력 있어요, 이런 데서 머문거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인종차별주의로 인해 커다란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 ‘시의적절한‘ 직접행동을 벌여본 적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기다려라!’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기다려라‘라는 말은모든 흑인들이 귀가 닳도록 들어온 말입니다.
‘기다려라!‘라는 말은 거의 언제나 ‘안 돼‘를의미했습니다."( -마틴 루서 킹의 편지 재인용)

요새는 우리가 지하철행동이나 버스행동으로 유명해졌으니까, 우리가 계속 그 투쟁 방식만 사용한 줄 아는 사람도 많더라고. 그런데 아니에요. 돌이켜 보면 우리는 2001년 이동권 투쟁 때 선로에 내려가서 지하철 막고 싸우기도 했지만은, 그이후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전법을 써가면서 직접행동을 해왔죠. 직접행동에서 어떤방식을 활용할 건가에는 맨날 똑같이 정해진답이란 게 없는 거거든. 그러니께네 투쟁을할 때는 언제나 정세를 열심히 읽어야 하고, 상황을 잘 읽어서 그때그때 다르게 판단을 해야 돼요. 지금은 어떤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지, 당장 뭐에 맞서 싸울것인지도 열심히 고민을 해야 하고

실제로 이준석이가 그렇게 사실 왜곡해가지고 합리적으로 잘 포장해다가 전장연 직접행동 공격해대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그러자마자 전장연에 대한 혐오 발언이 대중들사이에서 압도적으로 증가를 했어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윤석열에게 항의하다가 끌려가신 신민기란 분께서 고맙게도 이걸 트위터에다가(그때는 ‘익명의 데이터 분석가‘라는이름으로) 딱 데이터 분석 해서 올려주기도했잖아. 그거 보니까 실제로 이준석이 나타나자마자 혐오 발언이 급증했더라고. 특히 ‘에펨코리아‘ 같은 데서. 이거뿐인가? 내내 절 따라다니면서 스토킹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너도 지하철 막지 않냐"면서 제가 가는 길 앞을막는 사람도 생겨나고. 전장연 사무실 직접와서 불 질러버리겠다고 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전장연 유튜브 영상에 "히틀러 나치가 장애인 학살 프로그램 T4 참 잘했다, 우리도 T4 같은 거 도입해야 한다" 같은 댓글도 마구달리고,

우리 전장연의 유진우라는 장애인 활동가는요, "너 다리 병신이니까, 이제 팔도 부러뜨려 줄까?" 이런 말까지 들었어요.

이렇게 성공해서 뿌듯하긴 했는데, 당장바뀌는 건 또 없데요? 그 와중에 얼마 안 있어서 또 발산역에서 장애인 한 분이 리프트 타고 내려가다가 추락해가지고 돌아가신 거야.
정말로 화가 많이 났죠. 우리 이야기 진작에 들었으면 그렇게 안 됐을 텐데. 그래서 일단 싸워야 되니까 서울시청으로 갔어. 아니, 근데 원래 거기 점거 안 하려고 했는데, 막 싸우다 보니까는 우리도 모르게 시청을 점거를 해버렸네? 그런데 뭐, 점거를 해도 효과가 없는거예요. 시청은 진짜 별로 신경도 안 쓰더라고.

이렇게 단식을 할 때는요, 그렇게 싸워도 관심도 못 받으면 그냥 놔두는 것보다 주위에서 막 싸워주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내가 정말로 죽겠다 싶었는지, 동지들이 시의회에서 이명박이가 시정 질문 응답할 때 기습시위도 하고, 결정적으로 나 단식 31일째 되는 날에 시청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서 엄청 빡세게 싸웠어요. 2001년에 처음 철로 점거할 때하고는 수준이 달랐죠. 일흔여섯 명이 연행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빡세게 싸워서였는지, 서울시도 나 단식 38일째 되는 날에 딱 발표를 해버리더라고. 우리랑 협상하는 모양새로 보이기 싫었는지, 그냥 일방적으로다가 그러긴 했지만, 하하. 어쨌거나 2004년도까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하겠다, 저상버스 도입하겠다 한 거지.

성과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지만요. 곧바로 성과가 나오지 못한게 곧 실패를 의미하는 건 아닌 거예요. 실패라는 거는 오히려 우리가 기획한 직접행동, 그러니께네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우리 목소리를 사회에 알릴 기회 자체를 우리 스스로 날려먹는 거야. 힘들 거다라고 딱 단정 지어버리고서, 그 실행 자체를 시도도 하지 않는 태도 말이야.

그때 내가 이준석이한테 대놓고 말을 했어요. 우리 요구 가지고서 정책적으로 논의를 좀 해보자, 그리고 그 전에 일단 우리보고 비
문명이라고 표현을 해서 비하한 거에 대해서는 좀 사과를 해달라고. 그랬더니 이준석이가 이렇게 답을 하더라고요. "저는 지금 어떤 사람을 두고서 비문명이라고 한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하시는 행위가 비문명이라고 한 거죠. 제가 여기 나가가지고 노상 방뇨 해봐요. 그런 게 바로 비문명이에요."
이 이야기 듣는데, 갑자기 벙찌더라고. 당연히요, 우리가 한 행동이 비문명이 맞을 수도 있어요. 사실 문명이란 게 마냥 좋은 게 아니잖아. 어차피 장애인들 다 배제하고서 만들어진 게 문명인데, 우리가 이런 거에 맞서 싸우면서 차라리 비문명이 되는 게 좋은 걸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이거를 노상 방뇨 따위에 비교를 하나? 그럼 우리가 여태까지 이 문명에 맞서 싸워온 거, 2001년부터 우리 존엄까지 다 버려가면서 저항해온 거는 고작해야 길거리에 오줌 싸는 수준이었던 건가.

노동자들도요, 대부분은자기 이익이랑 직접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 노동자 투쟁에는 웬만해서는 참여하지 않아요. 같은 노동자더라도 당장의 자기 생존 문제랑 직결된 거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거야. 노동자들끼리도 그 지경인데, 이 사람들이 자기랑 관계없어 보이는 소수자들 싸움에 직접 참여하려 하겠어요? 뭐노동자들 중에 일부 소수자 정체성 가진 사람들은 안 그러겠지만, 이런 사람들은 수적으로보면 사실 소수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요, 그런 사안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냥 관객으로만 남아 있으려고 해요. 그게 좋잖아. 피곤할 일도 없고. 관심 생기면 좀 지켜보다가 재미없으면 언제든 관심 꺼버리면 되고.

장애인에 대한 무감각은 진짜 말 그대로 장애인이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서 그런 거예요. 사실은 우리 주변 곳곳에있는데, 완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게 만드니까 아예 신경도 안 쓰게 되는 거지. 감각한다고 해봐야 기껏해야 동정과 시혜를 발휘할 대상쯤으로만 감각하는 거 아닌가?
제가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거는 동정과 시혜 베푸는 사람들한테나 따뜻함의 감각을 줄 뿐이지, 장애인의 존재와 목소리 자체를 감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고 보면 장애를 입기 전부터 나는 어떤 무감각 상태에 계속 빠져 있었던 건지도 몰라요. 하반신에 찾아온 무감각 말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떤 존재들에 대한 무감각 말이야.

나는 부족하나마 현미경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려고 노력을 하면서, 나랑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이 세상에 ‘다른 속도‘라는 것이 있구나, 라는 거를 매일같이 새롭게 깨달아가고 있어요.

소수자들의 투쟁이라는 거는 결국 이 세상에서 제대로 감각되지 않던 존재들을 이 세상이 감각할 수 있게끔 드러내는 과정이잖아.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고, 존엄한 존재라는 거를 재확인하는 과정인 거지. 이 사람들이 딱 하고 이 사회에 드러나게 되면은 이 사회에 통
용되는 기준이라는 게 얼마나 누군가를 배제하고 만들어져 왔는지가 아주 명확하게 보이는 거거든요.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4-11-04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다시 봤습니다.. (잘못 복붙하셨나 했...)

중간에 박준석이라는 오타가 보여서 신고하고 정독 갑니다.

다락방 2024-11-04 11:55   좋아요 1 | URL
박준석........... 어쩔;;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4-11-04 17:38   좋아요 1 | URL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싶지 않은 무의식의 반영

다락방 2024-11-04 18:29   좋아요 1 | URL
저능 이준석 진짜 너무 싫어요!!

햇살과함께 2024-11-04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계좌번호 좋아요~ 저도 이 책 빨리 읽어야 하는데요~
 
슬픔을 아는 사람 - 유진목의 작은 여행
유진목 지음 / 난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사람들은 슬픔과 무력함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완전히 낯선 공간에 닿아야만 하는 것 같다. 내가 그랬었는데 유진목 시인도 그랬다. 내가 그 때 하노이를 선택했는데 유진목 시인도 그랬다.
별개로, 여행지의 사람들을 사진 찍어 책에 싣는 행위는 나를 좀 불편하게 한다. 그래도 되는걸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4-11-0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될 것 같은데…. 🤔

다락방 2024-11-04 18:28   좋아요 0 | URL
이 사람들한테 책에 싣는다고 다 허락 받은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옥이 새겨진 소녀 스토리콜렉터 44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악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악을 받아들이게 될 수는 있다. 가난이나 상실로 크게 약해졌을 때. 내가 악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악을 받아들이게 되는 인간이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가졌던 의문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어떻게 버섯 하나로 책을 썼다는거지? 도대체 버섯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한다는거지? 게다가 분량도 이렇게 많아? 이렇게나 할 말이 많다고? 만약 버섯을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튼 버섯'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면 분량이 적은 책이었을텐데, 아니 세상에 이 책을 보라지. 버섯으로 500 페이지가 넘는다니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버섯으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언젠가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놀랐던 기억도 떠올랐다. '엘린 켈지'는 자신의 책 [거인을 바라보다]에서 자신이 고래를 관찰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고래를 관찰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들까지 배에 태워 항해했던 일도. 아, 세상엔 고래에 관심을 갖고 삶을 꾸려가는 사람도 있어! 했었는데, 애나 칭은 그게 버섯이다. 세상엔 버섯 때문에 오백페이지 넘는 책을 써내는 그런 사람이 있어. 


이 책에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우선 버섯의 생애가 그렇다. 소나무 옆에서 자라나는 버섯, 소나무가 없다면 자랄 수 없는 버섯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소나무는 인간의 교란이 작용해 자라난다. 비옥한 토지가 아닌 폐허같은 땅에서 자라나는 소나무 그리고 버섯. 소나무와 버섯 그리고 숲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단순히 생각하면 그러므로 지구를 파괴하지 말고 자연을 보호하자 로 흐를 수 있을 것 같겠지만, 그러나 애나 칭은 인간이 관여하는 교란이 그리고 인간이 생각하는 오염이, 모든 존재에게 해로운 것은 아니며 어떤 것들의 탄생에도 관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교란이, 오염이, 폐허가, 부정적이거나 비극적인 것만은 아리나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닫게 되는것이다. 아니, 정말이지 놀랍지 않은가!


게다가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진다.

버섯을 찾으러 다니고 그것을 판매하고 구매하고 또 그것이 선물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버섯과 버섯채집인들은 자본주의의 주변에 머물다가 어느 순간 자본주의 안으로 쑥 들어갔다가 다시 자본주의 주변으로 나가게 되는 이야기. '그래서 자본주의가 나빠' 로 이어지는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얽히는 인간과 비인간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나 역시 거기에 찌들어있는만큼, 누구나 자본주의로부터 예외일 순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숲으로 들어가 버섯을 채집하는 일은, 그리고 중간과정을 거쳐 그 버섯을 선물하며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은, 면접을 보고 고용보험을 적용받고 노동을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애나 칭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이 인간 중심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게 아니다. 우리 삶은 그렇게 구성된 게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면서 비인간과 함께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비인간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교란이 소나무를 그리고 버섯을 살게 하는 것처럼. 교란과 오염과 폐허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인간과 비인간은 공존하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이정도를 생각했다면, 재독하는 지금, 나는 인간의 다양성을 들여다보게 된다. 인간의 다양성 때문에, 지구는 망하지 않을 수 잇을 것 같다고, 아니 망하더라도 그 속도를 조금 더 늦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나 칭만 해도 누구도 들여다볼 것 같지 않았던 버섯을 들여다보고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사는 세상을 그려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엔 그런 사람이 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된단 말이다.



K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경제학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0년간의 성공적인 전문직 활동 후, 자신의 연구가 누구도 돕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멍하고 지루한 눈을 보았는데, 그들과 이야기한 후 단지 자신의 강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학생들 역시 가치가 있는 질문과의 연결이 끊어져 있었다. K 교수는 자신의 인생 궤적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는 소년이었을 때 조부모님 마을을 방문했던 경험을 기억했다. 시골을 탐험하면서 얼마나 살아 있음을 느꼈던가! 그 풍경은 사람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삶을 존속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연구 방향을 일본의 소농민 풍경을 재생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가 소속된 대학이 버려진 밭과 숲의 일부에 출입해 사용할 권리를 획득할 때까지 논쟁하고 밀어붙였고, 단지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농민이 가진 삶의 기술을 공부하게 할 목적으로 학생들을 그곳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함께 배웠다. 관개수로를 다시 뚫고, 벼를 심고, 숲을 개방하고, 숯을 만들기 위해 가마를 짓고, 소농민의 눈으로 관찰하고 소농민의 귀로 들으며 숲을 돌보는 방식을 발견했다. 그의 강의는 이제 얼마나 열정적으로 변했는가! -p.322


이 K 교수의 이야기는 이번에 읽을 때 아주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결정이 선하다거나 옳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직업에서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학생들의 멍한 눈을 인지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 시도했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지는거다. 그의 애초 경제학자가 되고자 하는 목적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라고 했는데, 그런 대답쯤은 사실 예의상 하는 말일 수도 있지 않나. 다들 네가 그걸 하려는 이유가 뭐야, 라고 하면 자신이 선하거나 정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게 되지 않겠나. 그런데 이 K 교수는 정말 학생들의 멍한 눈빛을 염려했던 거다. 그가 바꾼 강의 방식이 사실 모두에게 다 좋은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모두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잘못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고쳐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은 거다. 그가 어떻게든 연결되어 애나 칭과 관계를 맺고, 이렇게 나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버섯에 관심을 가지고 채집을 하고 그것으로부터 산과 환경과 생물과 세균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통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채집인과 산림조합이 만난 자리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곳의 언어를 상대에게 들려주기 위해 통역을 찾아야만 했던 일, 그러나 거기 누구도 전문 통역인이 아니라 그 시간은 꽤 오래 걸렸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걸 배우게 되는거다. 



산림청이 채집인들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가 있는데,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각각이 진술한 후에 우리는 크메르어, 라오어, 미엔어로 순차 통역을 듣고, 통역가를 찾기 위한 짧은 허둥거림이 있는 후에 과테말라식 스페인어 통역도 이어진다. 각 언어는 조화되지 않은 서로 다른 억양으로 귀에 들어오고 공기 중에 잊힐 수 없는 상태로 유령처럼 머무른다. 단순한 질문이나 규칙 설명조차 매우 긴 시간이 걸린다. 불편하지만, 나는 우리가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이해한다. 우리가 아직 토론하는 방법을 알지는 못할지라도 말이다. -p.447-448


아니, 너무 놀랍지 않은가!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전부 다른데, 그럼에도 서로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해 통역을 순차적으로 기다리는 일. 여기서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자지러지게 좋은거다. 인간 진짜 뭐지??



인간이 비인간과 공존한다는 걸 이제는 아주 잘 알겠다. 

그동안의 독서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이 책에서 본다.

누군가 지구 어딘가에서 고래를 연구했듯이 송이버섯을 연구한다는 것, 누군가는 자본주의에서 빗겨나 송이버섯을 채집한다는 것, 누군가는 문제를 인지하고 바꾸려고 한다는 것, 누군가는 이 채집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개인의 역사를 듣고자 한다는 것, 누군가는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는 것. 이게 진짜 너무 좋은거다. 나라는 사람이 혼자 살아가면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이, 이렇게 책 한 권으로 가능해진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지구를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지만(이런 생각 자체도 인본주의적이다) 그러나 지구 곳곳의 모습을 다양하게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걸 들려주고자 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들로, 다른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을 들려주고자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걸 경청한다면, 지구든 세상이든 망하는 거 조금쯤 늦춰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멋지다 애나 칭

멋지다 송이버섯

멋지다 포스트 휴머니즘 

그리고 멋지다 이 다양한 인간들.



하여간 이 버섯 책 진짜 짱으로 좋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살과함께 2024-10-3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입니다!!

다락방 2024-10-31 14:02   좋아요 1 | URL
짱이었어요!!!

단발머리 2024-11-02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번 완독의 위업을 달성하신 다락방님께 기립 박수 드립니다!! 👏👏 👏👏👏

다락방 2024-11-04 09:47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의 기립박수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음 그런데 이 책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여전히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하더라고요. 하아- 독서력은 쉽게 키워지진 않는 것 같습니다. 갈 길이 너무 멀어요 ㅠ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개정2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반성완 외 옮김 / 창비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는 작가들 나와서 그나마 조금 재미있게 읽긴 했다.
그런데 나는 현대 미술 정말.. 이해를 못하겠어. 삽화로 들어간 피카소 그림 보고 물음표 천개 되었다. 뭘 느껴야 하는가.. 친구는 피카소 그림이 아마도 미술에서의 시일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것 같다. 하여간 이 책 다 읽었다. 만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4-10-28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다락방 2024-10-28 09:25   좋아요 0 | URL
끝났습니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