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TFLEX 것플렉스 두부 스낵 - 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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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이것은 너무나 꼬소해서 순삭했습니다. 캔맥주 하나 마셨고요. 캔맥주 마시기 전에는 소주 한 병 마셨어요. 소주는 김치부침개와 양념게장과 함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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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2-07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치부침개
양념게장
소주는 각각 100자평란에 쓰시오.

다락방 2025-02-07 14:0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알라딘은 양념게장을 갖춰놔라!! 소주도 갖춰놔라!! 나 백자평 써야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치부침개는 엄마표 양념게장은 시장표 였습니다. 껄껄.

2025-02-07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7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7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5-02-07 15:07   좋아요 1 | URL
ㅋㅋㅋ 안그래도 어제 다른 분도 왓츠앱으로 ‘카톡에 너 떴던데 그거 너야?‘ 물어보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2-07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것도 맛있군요? 아몬드와 현미 중 다락방님의 원픽은??

다락방 2025-02-07 15:08   좋아요 2 | URL
아몬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몬드는 좀 달콤해요. 현미는 고소합니다. 굳이 하나여야 한다면 아몬드지만 현미도 정말 좋아요!! >.<

잠자냥 2025-02-07 15:52   좋아요 0 | URL
둘 다 좋다는 소리군.... 중얼중얼....

다락방 2025-02-07 17:24   좋아요 0 | URL
네네 둘다 같이 사야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5-02-08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8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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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브링리는 형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감을 겪으며 <뉴요커>지의 일을 그만뒀다. 그가 다시 일을 하기로 마음 먹은 곳은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방문했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 넓은 미술관에서 매일 다른 구역에 대한 경비일을 맡으며 숱한 예술 작품들 앞에 물끄러미 서보고 한참 들여다보면서 작품들로부터 감동을 받고 그 작품의 뒷이야기들을 공부해가며 그는 매일매일을 차곡차곡 형에 대한 그리움을 쌓아가고 애도한다. 미술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보내며 어떤 날은 그동안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작품에 크게 감탄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너무 오랜 시간 작품들과 함께 해서 예술이 가치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악기관, 이집트관, 현대미술, 무기와 갑옷 전시관등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인간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를 원하는데, 그건 결국 형의 죽음을 그리고 자신의 상실감을 받아들이며 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인 것이다.


나는 언제나 예술에 제대로 감동받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가지고 태어나는 감각일 수도 있을테지만, 어릴 때부터 예술 작품에 노출되는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 나에게는 예술적 감각이라는 것은 뒤늦게 훈련한다고 터득되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내 스스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찾아가 물끄러미 그림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아직도 대다수의 작품을 보며 크게 감동을 받지 못하고,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가득할 때 그림을 보고 위로받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직 그림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사람은 되지 못한다. 물론, 가끔은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나도 어떤 그림들에는 크게 감동을 받기도 하는데, 어느 여름날 예술의 전당에서 본 샤갈의 그림이 그랬고, 뉴욕의 큰 미술관들 사이에서 작게 존재하고 있던 갤러리에서 본 클림트의 그림에서 그랬다. 그것들이 준 감동이 위로인지 기쁨인지 정확하게 짚어낼 순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사실이다. 내게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 예술이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메트로폴리탄의 그 많은 작품들은 페트릭 브링리에게 장미였다. 


우리에게는 빵이 필요하고 장미가 필요하다.

패트릭 브링리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하며 급여를 받고 있으니 큰 돈은 아니어도 그에게 필요한 빵은 먹을 수 있었을 것이며, 위대한 예술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감탄하며 그에게 필요한 장미도 충분했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패트릭 브링리에게 단순히 빵과 장미만 준 건 아니었다. 그는 짧게는 몇십년전부터 길게는 몇백년 전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박물관에서 '과거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장소인 박물관들(p.850)'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데, 박물관 본연의 그 일이야말로 그에게 형을 충분히 그리워해도 된다고, 애도해도 된다고 대신 말해주는 것 같지 않았을까. 박물관이 예술품들을 기억하게 해줬다면, 그런 상징적 장소에서 패트릭 브링리는 형을 기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박물관이 작품을 품고 오래오래 유지되듯이, 그러면서 많은 방문객들을 받았듯이, 패트릭 브링리도 형을 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그래도 된다는 위로와 격려를 받은게 아닌가.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패트릭 브링리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장 크게 얻은건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경비일을 하며 묵묵하게 서 있는 순간마다 말을 걸어주던 관람객들, 혹은 위대한 그림 앞에서 모사하던 예술가 지망생들, 그에게 이 모든 작품들이 정말로 진짜가 맞냐고 묻는 관광객들. 그리고 그와 함께 교대를 하거나 함께 일하던 다른 경비원들. 몇백명이나 되는 동료 경비원들의 이름을 익히며 그들 개인의 역사를 듣고 또 자신의 역사를 말하면서 친근함을 유지하면서 패트릭 브링리는 앞으로의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을 받는다. 사람에겐 빵도 필요하고 장미도 필요하지만, 빵과 장미를 건네는 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형을 잃은 상실감으로 그가 지금 이곳에 흘러왔다면, 그로부터 5년후 그는 이곳에 다니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새로 태어난 아들도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 세상을 떠나서 기억속에 남겨지지만 누군가는 새로이 찾아와 그의 삶을 더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애도의 시간들을 보내다가 그는 이제 누군가를 새로이 돌봐야 하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삶은 이렇게 지속된다. 생은 이렇게 순환한다.



이제는 더 이상 처음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대처럼 단순한 목표만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살아나가야 할 삶이 있다. -p.269



박물관에서 십년간 일을 하면서 그 사이에 패트릭 브링리에게는 딸도 생긴다. 아이 둘과 함께 활기찬 삶을 살면서 그는 십년간 일했던 박물관에 작별을 고한다. 그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그의 새로운 소식을 축하해주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그는 지금 이곳을 나간다고 해서 이들과 영영 작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곳, 각자의 역사를 가진 대단한 사람들이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곳에 그는 자주 들를 것이다. 작품을 지키는 사람이 아닌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이 되어 방문할 것이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서도 방문할 것이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의 애도가 진행되는 것은 수많은 예술 작품 때문에 그리고 그의 예술을 느끼는 감각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구나, 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에게 그의 애도가 가능해지고 여전히 살아나가야 할 삶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사람 때문에 가능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몇백명의 이름을 전부 외우고 있던 이 미술관에서 나가 새로이 선택한 직업은, 맨하튼 시내를 가이드해주는 일이다. 결국, 이 도시를 낯설어하는 사람에게 이 도시를 설명해주는 일을 그가 하고자 한다. 그는 예술 때문에 박물관에 갔을지는 모르나, 그리고 도시를 샅샅이 보고 싶어 가이드를 선택했을지 모르나, 그의 내면 저 깊은 곳에서는 이미 자신에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8년전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방문했었다. 책을 읽노라니 내가 방문했던 그 때 그곳에 패트릭 브링리가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전시실에서 저 전시실로 옮겨가며 나는 많은 경비원들을 보았는데, 그들중 한 명은 패트릭 이었을 수 있겠구나. 패트릭이 아닌 경비원들도 모두 저마다의 역사를 가진 사람이었겠지. 나는 일자리로써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생각한다. 박물관은 내가 작품을 보러 가는 곳 그 이상은 아니었는데, 패트릭 브링리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동료 경비원들이 너무나 다양한 삶을 살아온 개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소위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다. 화이트칼라 직종은 비슷한 교육을 받고 관심도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료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재능과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경비원의 세계에는 이런 문제가 없다. 메트가 새로운경비를 고용할 때면 기본적으로 ‘와서 면접보세요‘라는 내용의 짧고도 명료한 광고를 낸다(예전에는 《뉴욕타임스》, 요즘은 온라인에). 경비 담당 부서에서 찾는 사람은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강한 사람이고 그들은 이 일에 적합한 다양하고도 방대한 인력풀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 P183


덕분에 나는 일자리로써의 박물관을 생각해보고 직업으로써의 경비원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곳에서 찾는 일꾼이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게 아니라면, 게다가 패트릭 브링리의 말대로라면 그들의 출신나라도 다양한데,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그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 그곳에서 다른 동료들과 목례를 나누면서 끝나면 바에 가 맥주도 한 잔 하면서, 그리고 대부분의 낮시간은 작품들 앞을 서성거리면서 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적지 않은 시간을 패트릭 브링리처럼 어떤 그림의 역사에 대한 문헌이나 책을 찾아 읽으며 지식을 쌓고, 혹여라도 질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아는 것들을 답해주면서, 웅장한 예술작품들 앞에서 가끔은 벅차하는 그런 일을, 내가 직업으로써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애도가 일어나고 다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욕을 다지게 한 이 장소에서 일하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떤 감정을 갖게 되고 어떤 의욕을 다지게 될까. 그곳은 나에게 어떤 장소가 될까? 내가 받게 되는 것이 무엇이든, 필연적으로 빵과 장미를 얻게 될 것은 틀림이 없다. 물론, 사람도.



삼십년간 행복을 연구해온 서은국 교수는 자신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우리의 원시적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음식과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행복을 따로 연구해온 건 아니지만, 나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과 사람이라는 것에 적극 동의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면 거기에 더해 아름다운 작품들도 가득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만한 곳으로 움직이게 되어있다. 패트릭 브링리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형을 애도하고 삶을 계속해나가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닿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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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2-04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야 왜케 잘 썼어?
이 인간 왜 잘 썼지? 리뷰대회 있나?? 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2-04 11:4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리뷰대회에서 똑 떨어진 리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나는 원래 좀 잘 쓰지 않았나요? 흠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2-04 11:51   좋아요 0 | URL
어쩐지🤣🤣🤣👏👏👏
 
십계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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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없다. 그럴 줄 알았지만 역시 윤리적 감각이 부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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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2-03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 이거 샀는데 왜 구매자 표시 안뜨지? 다른 계정으로 샀나? 암튼 내돈내산 책입니다.

단발머리 2025-02-03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 별 ㅋㅋㅋ🌟🌟

다락방 2025-02-04 11:42   좋아요 1 | URL
미친 반전 이런 광고 진짜 별로에요.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ㅎㅎ

관찰자 2025-02-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재미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낸 다락방님의 의지를 칭찬합니다!

다락방 2025-02-04 11:43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재미없을거지?‘ 했는데 끝까지 재미없더라고요? ㅋㅋㅋㅋㅋ

구름물고기 2025-02-07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이 그러하다

다락방 2025-02-07 11:2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구름물고기 님도 이 책을 읽어 보셨나요?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 주어와 동사가 온전히 갖추어진 문장으로 말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그렇지 않으면 언어는 성장할 수 없어요"라고 말해 주었다.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장인데 조금 더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낑낑거리는 사람에게는 "쉽게 생각하세요. 쉬운 문장들이 바로바로 나올 수 있는 실력이 돼야 복잡한 문장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자주 이처럼 말했다.
"이 수업에서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실수의 권리는 초보에게만 있습니다. 그 권리를 마음껏 누리세요. 언어에는 왕도가 없어요. 최대한 많이 실수하며 이야기하는 수밖에는."
실수의 권리를 누리라니, 왕초보의 설움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탈리아어에 있어서 3세 미만의 어린이인 것이다. 무엇을 해도 내 잘못이 아닌 시기, 조금 있으면 훅 지나갈, 미숙해도 좋은 잠깐의 시기. - P92

"인텐시브 수업을 들으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같은 내용이라도 너무 짧은 시간에 진도를 빼면 절대 오래 남지 않습니다. 그게 언어예요. 언어는 시간을 들여야만 실력이 늘어요. 내가 본 인텐시브 학생들이 대부분 같은 어려움을 겪었답니다. 빨리 배우면 빨리 잊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순간 머릿속에 불이 하나 켜지는 기분이었다. 랑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확한 지적이었다. 지난 학기 도무지내 이탈리아어가 늘지 않던 이유와 이제 조금씩 편해진이유가 그 안에 있었다. 시간이었다. 20대 내내 프랑스어를 체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나는 잘 알고 있다. 언어는 운전면허 시험처럼 속성 마스터가 가능한 공부가 아니다. 하나의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헤엄쳐가는 일과 같다. 지속해서 이탈리아어를 감각하고 생각하 - P99

며 지낸 지난여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느리고 지루하게 흐르던 그 시간 동안 조금씩 이탈리아어가 내 몸으로 흡수되었던 것이다. - P100

지난 2주간 들리지 않는 소리와 쉽게 나오지 않는 단어들에 절망하며 보냈는데,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니 사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말들을 잘 듣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렇게해서 될까?‘ 하며 깊은 한숨을 쉬던 볼로냐의 새벽들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아 한없이 작아지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칠흑 같은 시간에도 노력의 흔적들은 소복소복 쌓여 갔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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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3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료나 스파게피 먹고 싶네요. 저자분은 이탈리아어를 배우셨던가 봐요. 이탈리아어 멋지죠~~ 오페라의 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1-31 10:02   좋아요 1 | URL
이 분은 한국에서 살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미친듯이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프랑스 남자 만나 결혼해 일하면서 사는데 그러다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싶어지는 바람에 일주일(?) 볼료나 어학연수도 다녀오십니다. ㅎㅎ 그러면서 당연히 오페라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요. ㅋ ㅑ ~ 취미는 있어야 하는것 같습니다.
 

십자군전쟁은 교황의 주도하에 서유럽 기독교세력이 소아시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이슬람세계를 공격한 종교전쟁이므로 당연히 왕성한 교세와 강력한 교권을 전제로 했다. 말하자면 십자군전쟁을 위해서는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힘도 요구되었지만 ‘십자군‘ 전쟁을 발의하고 추진하는 데 요청되는 광범위한 ‘종교적‘ 열정과 강력한 ‘종교적‘ 지도력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 P8

교권(權)과 속권(俗權)의 보편적 제휴 또한 교권이 승리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중세 유럽의 한 특징은 게르만국가와 기독교의 제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중세를 ‘로마적 요소와 게르만족 요소의 결합‘으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중세사회는 기독교 성직자와 게르만족 전사(戰士)들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사회였다. 중세의 지배계급은 고위 성직자와 귀족이었다. - P13

그레고리우스 7세는 부르군드의 윌리엄백(伯)에게 "로마교회의 자유를 방어할 군사적 힘과 필요하다면 성베드로를 돕기 위해 군대를 이리로 보내주려는 그대의 사려와 열망을 요망합니다"라는 편지를 썼다(1074. 2). 교황은 같은 해 3월의 한 연설에서도 이교도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도제국을 구원할 것을 호소했다. 동년 12월에 독일황제 하인리히 4세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교황은 비잔틴제국의 기독교도들이 이교도들에 의해 전에 없이 매일 죽어가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기독교도와 성지를 구하기 위해 교황청이 적극적으로 행동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 P15

이슬람 측이 소아시아, 시칠리아, 이베리아반도 등 지중해세계를 장악하고 기독교세계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그레고리우스7세는 성지탈환을 위한 성전이야말로 기독교계의 숙원인 동.서교회 재통합을 구현할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 P16

교황 우르바누스 2세(1088~1099)가 십자군운동을 발의한데에는 그의 야망도 한 몫을 했다. 그레고리우스 7세의 이상을 계승했다고 자부한 우르바누스는 십자군운동을 통해 기독교세계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특히 교황청의 과세권을기독교세계 전체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교황은 그것을 로마교회와 결별한 그리스정교회를 로마가톨릭교회 아래로 통합하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 - P16

특히 기독교세계의 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은 교황의 십자군운동 발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지하듯이 로마제국의 동·서 로마제국으로의 분열(395), 서로마제국의 멸망(476), 동로마(비잔틴제국의 로마 계승권 주장 등과 함께 로마교회와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교회 사이의 기독교세계 주도권 다툼이 격렬해지고 거기에 필리오케논쟁과 성상(聖像)파괴문제 등 신학상의 문제까지 겹쳐 로마교회와 비잔티움교회는 1054년에 서로 상대 교회를 파문하고 갈라섰다. 그레고리우스 7세도 기독교세계의 재통합을 위해 노력했지만 우르바누스 또한 동·서교회를 다시 통합하여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하나의 기독교세계를 만들려 했다. - P17

결국 소아시아의 대부분을 장악한 셀주크 투르크족은 니케이를 수도로 하는 새로운 이슬람제국을 창건했다. 그리고 1092년에 투르크족 토후들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도 자신들의 영역에 편입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여타의 아바스조 영역 - P20

에도 진출했다. 그리하여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 셀주크 투르크족은 유럽 기독교도들의 성지순례와 동방무역을 방해하는가 하면 예루살렘의 기독교도들을박해했다. 투르크족의 진출은, 위에서 지적했듯이 유럽 기독교세계 전체를 움직이게 할 일을 벌여 자신의 웅지를 펴려던우르바누스 2세에게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 P21

교황의 설교에 감동한 청중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고 외쳤다. 많은 지원자들은 엄숙하고 자랑스럽게 서약하고 십자가를 자신들의 옷에 붙였다.11) 교황은 이어 프랑스 각지를 순회하면서 십자군전쟁의 당위성을 설파했고, 많은 열성적 설교자들도 곳곳을 누비면서 십자군으로 출전할 것을 독려했다. - P22

십자군전쟁에 나선 유럽인들은 물론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신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 기독교도들이었다. - P23

십자군은 위로는 군주와 영주로부터 아래로는 농민과 걸식부랑자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었고, 남성은 물론 여성도 원정대에 참가했다. 광의로 볼 때 십자군전사(戰士)는 어깨나 가슴에 ‘십자장‘을 단 사람들을 의미했지만- 십자군은 싸우려나갈 때에는 십자장(十章)을 가슴에 붙이고 귀향길에는 두어깨 중간의 등에 십자장을 붙인다고 했는데 이는 「누가복음」14:27의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는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를 연상케 한다- 전사들만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 - P26

그처럼 가난과 압박의 일상에 시달려온 농민들은 실제의 예루살렘과 천상의 예루살렘을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피에르같은 인사들의 달콤한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그들은 ‘꿀과 젖이 흐르는 팔레스타인‘이란 환상에 젖어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실상 풍요와는 먼 거리에 있었지만 민중십자군은 동방을 꿈의 땅으로, 나아가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신천지로 여겼던 것이다. 물론 민중십자군의 과도한 기대는 환멸로 끝났다. 제2회 십자군 이후 유럽 농촌사회에서 성지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 P29

제4회 이후의 십자군은 후기 십자군으로 불리는데, 후기 십자군은 몇 가지 점에서 전기 십자군과 달랐다. 즉, 예루살렘이 아닌 이집트가 십자군의 공격대상이 되었고, 이전에 비해 세속적, 경제적 동기가 더 강하게 작용했으며, 교황청이 보다 적극적으로 십자군을 주도했던 것이다.
사실 12세기말 이후 십자군정신은 크게 약화되었다. 십자군의 연이은 실패는 일부 유럽인들로 하여금 "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P43

몽골족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겨준 1260년의 나불루스전투는 마메루크조와 이슬람교에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그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마메루크조는 생존할 수 있었고, 이슬람교또한 계속하여 동지중해세계에서 번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가능성은 크지 않았지만 서유럽이 바라던 대로 몽골이 기독교세계로 개종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 기독교보다 이슬람교를 더 강력한 종교로 여긴 몽골족은 오히려 이슬람교도가 되었다. - P54

한편 루이 9세가 병사한 사실을 인지한 바이바르스는 계속 전진하여 트리폴리를 차지하고 1291년에는 동쪽으로 눈을 돌려 아크레를 점령했다. 그에 앞서 교황 그레고리 10세가 유럽 군주들에게 십자군에 참여하도록 호소했지만 그는 자신의 호소가 받아들여지기 전에 타계했다. 뒤이어 티레, 베이루트, 하이파, 아틀리트 등도 이슬람 측에 함락되었다. 그때 이슬람교도들의 보복으로 6만여 명의 기독교가 학살되었다고 한다. 그후에도 지역 차원의 소규모 원정군이 조직되기는 했지만 제8회 십자군을 끝으로 중세의 십자군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 P55

사실 십자군전쟁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성공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사가들은 십자군전사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무장마저 허술했던 것(오합지졸의 농민십자군이 더욱 심했다), 당시의 교통통신 수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먼 지역으로 원정한 것, 국왕과 대영주들의 참전해 지휘부가 대립한것, 중동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데다 십자군의 성격마저 변화한 것 등을 실패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 P57

은자(隱)피에르가 십자군을 모병한 모습은 십자군이 성공하지 못한 사정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십자군운동이 발의된 클레르몽 종교회의 후 십자군전사들을 모으는 데 적지 않게 이바지한 사람은 피에르였는데, 맨발에 헙수룩한 옷차림을 한그 노인은 프랑스와 독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무지한 농노들과 그들의 아들 등 기율 없는 군중을 모았다.
대부분 기아선상을 넘나들던 농민십자군들은 피에르가 우유와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해줄 것으로 믿었다. - P57

요컨대 로마교회나 십자군전사들은 중동에 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갖지 못했고, 따라서 중동에 대해 심각한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11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은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세계였다. 기독교 또한 유럽의 폐쇄성에 이바지했다. - P62

유럽 기독교도들의 십자군운동은 성지회복이라는 당초의 목적 달성에 실패하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상업적 성격의 전쟁으로 변질되어 십자군이란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었지만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서히 작용했지만 그것의 영향은 결국 중세의 문을 닫고 근대의 문을 열게 했다. 사가들이 십자군운동을 정점에 도달한 중세 유럽의 소산물이었으되 중세를 붕괴의 길로 이끈 운동으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 P65

십자군운동은 참전한 봉건귀족들로 하여금 장기간 영지를 떠나 있게 함으로써 왕권의 강화와 정치적 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우리는 국왕들이 십자군원정 전비(戰) 마련을 위해 직접 세금을 징수한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국왕들로 하여금 제한적이나마 중산층은 물론 귀족에게도 세금을 징수하는 선례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한 것은 십자군전쟁이었다. - P69

하지만 십자군운동으로 인해 군주들이 제한적이나마 귀족에게도 과세할 수 있게 된 것, 상업의 부활로 화폐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 봉건귀족의 경제적·정치적 지위가 동요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민족주의적 의식이 보다 강화된 것 등을 고려할 때 십자군운동이 중세 말의 정치적 발전에 끼친 영향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 P70

무엇보다도 십자군의 연이은 실패가 교황의 권위에 악영향을 끼쳤다. 교황이 신의 가호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십자군전사들은 줄곧 가혹한 시련과 죽음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십자군의 동기도 종교적인 것에서 세속적인 것으로 바뀌어 갔다. 또한 위에서 지적했지만 유럽인들은 점차 성지와 동방세계에 대한 환상에서도 깨어났다. 시야가 넓어진 일부 십자군전사들은 교회가 강조한것과 달리 아랍 무슬림들이 야만적이고 야수적인 사람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패가 거듭되면서 교황과 성직자들의 무능과 허상은 보다 명확히 드러난 반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보다 현실적으로 사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 P71

이슬람교도에 대한 십자군의 필요 이상의 만행은 그들의 기독교와 기독교세계에 대한 적대의식과 중오감을 크게 증대시켰다. - P73

둘째, 십자군은 투르크족 무슬림들로 하여금 결국 성전의식으로 무장하게 했고,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도에 대한 관용을 포기하게 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아랍 무슬림들은 지중해세계 도처에서 오랫동안 기독교세계와 싸웠지만 기독교도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이었다. 하지만 아랍과 투르크족 무슬림들은 십자군과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거기다 아랍과 투르크족 무슬림 모두 십자군의 지나친 만행에 분노했다. 십자군전쟁을 겪으면서 무슬림들은 기독교도에 대한 이전의 관용적 태도를 버렸다. 그리하여 십자군전쟁 이후 이슬람세계와 기독교세계는 이전보다 더 격렬하게 대립하게 되었고, 특히 동지중해세계는 두 세계의 첨예한 대립의 무대로 변했다. - P77

봉건적 질서와 기독교정신의 결합물로 평가받는 십자군운동이야말로 기독교정신이 낳은 것이었다. 십자군전사들이 꿀과 젖이 흐르는‘ 팔레스타인이란 환상에 자극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십자군은 본질적으로 신앙심이 불러온 원정이었다. 십자군 전체가 그러하지만 특히 농민십자군과 소년소녀십자군은 종교적 열정이 십자군운동의 추진력이었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세월과 더불어 십자군에도 물질주의의 때가 끼어갔지만 적어도 초기의 십자군에는 상업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십자군은 또한 기사도(道)의 소산물이기도 했다. 십자군의 지휘부를 구성한 기사들 및 성묘기사단과 병원기사단 기사들이 입증해주지만, 십자군에 참전한 기사들은 신앙심에서나 용맹성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비잔티움을 약탈한 제4회 십자군전사 등 예외가 없지는 않았지만 십자군 기사들은 중세의 기사도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P90

200여 년에 걸친 십자군원정은, 유럽 기독교세계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지중해를 되찾게 했지만, 기독교세계와 이슬람세계의 대립을 심화시키고 증오심을 증대시켰다. 전술했듯이 원래 무슬림은 그들이 정복한 땅의 기독교도와 유대교도들에게 비교적 관용적이었다. 하지만 십자군전쟁 동안 무슬림의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후 두 종교는 화해는 커녕 서로 상대의 존재마저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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