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엔 가까이 지내는 선배 언니의 생일이 있었다. 책과 커피만큼 완벽한 선물도 없거니와 선배 언니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그리고 나도 커피를 주문했다. 매번 책만 사건 아니다. 실은 3월과 4월엔 소비가 많았다. 어떤 건 충동적으로 어떤 것 미리 계획한 구매였다.


커피는 충동적이고도 계획적이다. 배송료와 사라지는 적립금이 아까워 책도 한 권 샀다. 커피가 좋아서, 커피가 도착할 때까지 커피를 생각한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기다리는 것같은 느낌은 과하지만 그런 비슷한 감정이다. 원두를 갈아서 직접 내리면 좋겠지만 이런 드립백으로도 진한 커피향을 느낄 수 있느니 충분하다. 커피가 좋아서, 카페에는 안 가도 집에서 커피를 즐긴다. 아침에 삶을 달걀과 마시는 커피가 좋다.


기분 좋은 꽃향기와 살구의 부드러운 산미와 단맛이 좋은 커피라고 알라딘이 광고하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할로 베리티와 무민과 즐기는 풍성한 드립백 7종 세트. 12개의 드립백으로 커피를 마신다. 사실, 각각의 커피 맛을 구분하거나 선호하는 하나의 커피가 있는 건 아니다. 그만큼 커피에 대해 잘 모른다. 좋아하지만 잘 모른다.







아무려나 커피가 좋으면 그만이다. 무민과 즐기는 풍성한 드립백 7종 세트는 이렇게 펼치고 보니 넘 예쁘지 않은가. 좋아하는 이가 곁에 있다면 슬그머니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주고 싶다. 어린 시절 사탕이나 캐러멜 같은 건 친구 손에 쥐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좋아하는 이가 커피를 좋아해야 할 것이다.






골라 마시는 즐거움, 그 중에 더 좋아하는 커피를 발견하게 될 즐거움이 있다. 커피라 좋아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가 좋아서 커피를 샀다. 커피가 좋아서 이렇게 커피를 쓴다. 커피가 좋아서 알라딘도 좋아한다. 맞나? 알라딘은 모르는 알라딘 홍보대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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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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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다. 먹고 싶지 않다. 먹으면 안 된다. 갖고 싶다. 갖고 싶지 않다. 가져도 되는가? 뜬금없는 나열에 이게 뭔가 싶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의심. 그 욕구를 자제하고 절제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사회의 규범과 시선의 기준에서 벗어난 욕망은 충족되어서는 안 되는가? 아사이 료의 『정욕』을 읽고 든 생각이다. 바른 욕망(正欲)이라니, 도대체 바른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의 모든 욕망은 바른 것인가? 그것을 정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런 의미에서 아사이 료의 『정욕』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읽기도 전에 궁금증을 불러오고 읽은 후에도 정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니까. 소설적 재미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이냐고, 괜찮은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작가는 소수와 약자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 연대를 이끌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성향을 오픈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을 향한 편협한 시선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라고 할까. 소수의 선택을 존중하고 취향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봐야 할까. 이제 소설을 이야기해 보자.


남들과 다른 성향을 지닌 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소수, 혹은 비주류에서도 다른 범주에 속하는 이들이다. 다수가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그들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당할 피해나 손실을 알고 있다. 아니,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선뜻 소수를 응원하거나 그들의 편에 설 용기를 내지 못할 때가 많다. 『정욕』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로, 그들의 사정과 형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평범한 초등학생이 아닌 등교 거부를 하고 유튜버가 된 초등학생과 그의 가족, 연애나 결혼 출산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침구 판매 여사원,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 없고 가족 이외의 남자와 접촉해 본 적 없는 여대생, 이성의 모든 관심을 한몸에 받는 외모를 지녔지만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 남학생. 그들은 주변에서 건네는 말과 시선이 불편하다. 일일이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고 설령 설명한다 해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애당초 나는 이 세상이 설정한 커다란 길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42쪽)


이쯤에서 궁금할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 취향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고 그게 뭐 어떠냐고 말이다. 침구 판매 여사원, 남학생의 욕망이 사람이 아니라 특정한 사물에 대한 페티시즘이라면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놀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이성이 아닌 사물에 끌린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사실 보통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큰 관심도 없지만 막상 남다른 취향에 대해 알게 된다면 끊임없이 꼬집고 파고들기 마련이다.


소설은 소수에서도 소수인 그들이 연대하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나아가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삶이 있다고, 내가 알 수 없는 욕망도 존재한다고 말이다. 얼핏 그런 의도는 나쁘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면 달라진다. 도덕성, 인간 존엄성에 위배된다면 용납될 수 없다. 그 지점에 대해 작가는 언급을 회피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물론 소설 속 이런 문장은 우리 사회가 소수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부족하다는 걸 각인시키기에 훌륭하다.


어엿한. 평범한. 일반적. 상식적. 자신이 그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째서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사는 길을 좁히려고 할까. 다수의 인간 쪽에 있다는 자체가 그 사람에게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정체성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누구나 어제 본 건너편에서 눈뜰 가능성이 있다. 어엿한 쪽에 있던 어제의 자신이 금지한 항목에 오늘의 내가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이 살기 쉬운 세상이란 곧, 내일의 내가 살기 쉬운 세상이기도 한데. (329쪽)


모든 욕망과 다양성을 생각한다. 그 가운데 내가 속한 범주의 욕망과 다양성도 있을 것이다. 나의 그것은 존중받지 못하는가. 존중받고 있는가. 그것은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한 것인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에 어떤 욕망은 그 자체로 삭제되거나 존재 자체를 거부당할 수도 있다.


다수의 결정과 선택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건 부당한 힘을 과시하는 행태를 지녔다. 다수와 소수가 균형을 맞춰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건 당연하다. 균형점을 정하는 일은 어렵고 함부로 강요할 수 없다. 그러니 바른 정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우선을 내가 모르는 삶이 있다는 것, 나는 끝내 알 수 없는 삶이 있다는 것, 그것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나쁘지 않다.


재미와 함께 질문을 던지고 없던 의문을 끄집어 내는 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라는 전략적인 한 줄 광고는 탁월하나 동의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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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4-12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거 다락방 님도 과하다! 그랬는데 자목련 님도 비슷한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저도 읽기는 읽어야 하는데... ㅎㅎㅎ

자목련 2024-04-14 17:56   좋아요 0 | URL
지금은 다 읽으셨을 듯^^

페넬로페 2024-04-1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소설이었군요.
저는 인문학 서적인 줄 알았어요^^

자목련 2024-04-14 17:57   좋아요 1 | URL
제목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은오 2024-04-1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자목련님 두분 다 그저 그렇다고 하시는데.... 리뷰를 읽을수록 그래서 오히려 더 궁금해지는 마음. 악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4-13 20:2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내가 읽어야겠다~!!

은오 2024-04-13 23:38   좋아요 1 | URL
읽고계십니까?! ㅋㅋㅋㅋ

잠자냥 2024-04-14 00:24   좋아요 1 | URL
내일 아침부터….

은오 2024-04-14 10:21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 멋잇어...

잠자냥 2024-04-14 10:26   좋아요 1 | URL
🤯🔫

자목련 2024-04-14 17:58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읽으세요^^
 
레티파크
유디트 헤르만 지음, 신동화 옮김 / 마라카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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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무너져내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조심해야 한다. 남김없이 다 쏟아낼지도 모르니까. 아무나 붙잡고 보기 흉한 흉터로 남은 상처에 대한 사연을 하소연할 수도 있다. 유디트 헤르만의 단편 소설 『레티파크』 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가 왠지 하소연 같기도 하고 넋두리 같기도 한 느낌. 처음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던 분위기와 감정은 소설의 것이 아닌 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몇 개의 짧은 이야기를 읽노라니 그 흥분은 조금 가라앉았다.


소설 속 인물은 자신의 히스토리를 전부 보여줄 생각이 없다. 물론 인물과 인물의 관계, 과거의 이력을 일부러 숨긴 건 아니다. 내밀한 감정을 비밀스럽게 보일 듯 말 듯 감춘다고 할까.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어떤 슬픔이나 상실에 대해 적극적인 설명이나 표현을 하는 순간 삶이 구차해진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래서 어떤 이는 그 허탈함과 절망을 말이나 행동으로 끊임없이 보여주고 어떤 이는 그저 듣거나 보고만 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면할 수 없어서다. 어찌할 바 모르는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기에.


떠난 남자를 기다리는 이에게, 그가 돌아올 자리를 지키듯 서성이는 여자에게 그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말하지 못하는 마음. 과감하게 떠나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이별과 상실의 경험이 없는 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페티시」 속 엘라에게 아이만이 “우린 출발해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별과 상실을 확인하는 게 두려운 엘라와 다르게 「어떤 기억들」 속 여든두 살의 그레타는 그 모든 일을 다 경험한 할머니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세입자 모드와 단둘이 산다. 과거에는 가족과 살았고 다른 세입자도 많았다. 그레타는 새 세입자를 찾지 않는다. 모드는 이주 동안 떠나있다 돌아와야 하는데 혼자 남을 그레타를 걱정한다. 그런 모드에게 그레타는 이렇게 말한다.


살다 보면 정말이지 몹시 기묘한 일들이 다시 떠오르곤 해요. 순간순간 나의 꿈들이 깨어났던 만. 분명 나는 잘 있을 것예요. 혼자서도, 걱정할 것 없어요. 잘 다녀와요. (143쪽)


소설 곳곳에는 그레타가 살아냈을 삶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 세입자 모드를 면접할 때 했던 질문들(책을 읽나요, 노인과 관계를 맺어본 적 있나요. 마약을 하나요, 인생을 즐기나요, 등등)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레타는 두려울 게 없어 보인다. 설령 모드가 떠난 사이 자신이 죽더라도 말이다. 이상한 건 그레타의 말에 괜히 독자인 내가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앞으로 다가올 삶의 기운이나 감각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온다는 걸 믿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런 믿음이 생긴다면, 확신을 갖는다면 삶은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까. 그게 가능할까. 면접은 다가오는데 한 아이는 아프고 다른 아이의 볼도 뜨겁다. 친구 닉에게 두 아이를 부탁하고 테스는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 테스가 면접을 보러 간 사이 닉은 두 아이와 종이비행기를 만든다. 돌아온 테스에게 닉은 종이비행기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테스는 닉에게 자신이 면접해서 한 말을 들려준다. 어떤 기대도 절망도 없이, 그러나 단호한 테스의 의지가 느껴진다.


진실. 나는 사람들한테 진실을 말했어. 달리 뭘 말하겠어? 나는 아이가 둘 있다고, 싱글맘이라고, 정신 병동 경험이 있다고 말했어. 나는 이렇게 표현했어. 나는 오랫동안 집에 있었고 이제 다시 나가고 싶다고. 일을 하고 싶다고. 나는 말했어. 저는 씩씩해요, 저는 투지가 있어요, 저는 낙관적이에요. 저는 안정적인 사람이고 평정심을 가졌어요. (「종이비행기」, 97쪽)


그녀가 면접에 합격하고 출근에 대한 안내를 전할 전화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희망할 뿐이다. 테스가 걱정되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소설 밖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단정해버리면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살면 살수록 배우고 깨닫는다. 그래서 「교차로」속 패트리샤는 집을 비운 사이 침입해 난동을 피운 옆집 세입자의 십 대 아들을 선뜻 고발할 수 없다. 끊임없이 고민한 후에야 결정을 내리면서도 번복하게 되고 후회하는 일,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그녀는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문장 하나하나는 모두 심연이라고. 이렇게 말할까, 아니면 다르게 말할까, 아니면 아예 그냥 말하지 않는 게 상책일까. (「교차로」, 216쪽)


하나의 답이 정해진 게 아니고 구체적이고 정확하지 않아서 신경을 끊을 수 없게 만든다. 자꾸 생각한다. 이미 지난 사랑에 대해, 지난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버릴 수 있다고 다짐해다가 한순간 생각에 빠져드는 걸 반복한다. 미련할 정도로. 그렇다. 유디트 헤르만은 삶의 대부분이 그러지 않냐고 말한다. 삶에는 모호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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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 2024-04-0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오늘 리뷰도 정말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24-04-08 19:59   좋아요 1 | URL
달자 님, 많이 아쉬운 리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디트 헤르만의 다른 소설을 이어서 읽고 싶어졌어요.
 

고전소설은 ‘시간’이라는 체로 걸러진 일종의 사금이다. 무엇이 명작이고 무엇이 고전으로 우리 곁에 남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재판관은 시간이다. 시간은 읽을 가치가 없는 책들은 던져버리고 명작이라는 알맹이만 우리에게 남겨준다. 고전소설이 보여주는 당시 사회 모습과 그 이후에 사회가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그 시대를 공부하고 이해하게 된다. (프롤로그, 16쪽)


선뜻 골라 읽기 어려운 문학이 있다. 바로 고전과 세계문학이다. 사진 속 내 책장의 세계문학도 그렇다. 기필코 읽겠다고 사둔 책들, 방송에서 명사나 드라마 소개로 더 궁금했던 책들이다. 하지만 작정하지 않으면 읽기 어렵다. 왜 그런 것일까. 한편으로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과 현재가 아닌 다른 시대의 삶에 대한 이해 부족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이름만 앍고 작품은 읽지 못한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 그런 이유로 세계문학에 주저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있다. 박균호의 『세계문학 필독서 50』 가 그것이다. ‘셰익스피어에서 하루키까지 세계 문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란 부제가 말하듯이 이 한 권으로 세계문학의 명저를 만날 수 있다.


우선 목차를 살피게 된다. 아마도 나 같은 독자가 많을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을 찾는 일, 누군가 골라둔 50권에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될까. 이상하지 않은가. 독서란 가장 개인적인 동시에 내밀한 것인데 그럼에도 훌륭한 소설, 추천하는 소설을 읽기를 바라기 마음 때문이다. 저마다 문학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 딴지를 걸 수도 있다. 문학을, 그것도 고전을 찾아읽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말이다.




저자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시작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등 50권의 소설에 대해 작가의 이력과 소설 집필 당시의 사회적 배경, 소설의 의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재미있는 소설, 다양한 문화와 사회상을 담은 소설, 새로운 사상이나 사회 변혁운동의 실마리를 제공한 소설을 기준으로 선택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시대적 배경과 문화, 부조리한 사회고발, 그 모든 게 한 권의 소설에 담겼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어떤 소설이든 소설 속 인물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놀라운 건 그들의 고뇌가 현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노동자와 하층 계층의 삶, 기득권의 횡포, 약자와 소수를 향한 차별의 문제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그러니 위고의 《레미제라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피츠제럴드는 순수한 이상을 망각하고 오로지 경제적 성공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다. 1920년대 미국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그 화려함 속에서 스스로 타기를 주저하지 않는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 속에 움트는 사랑과 순수성이 파도와 같이 밀려들며 밀려나가는 소설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106~107쪽)






《호밀밭의 파수꾼》은 강압적이고 획일화된 사회에 반기를 들고 혁명가나 방랑자적 기질을 자신 비트 세대의 정서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비트 세대는 홀든처럼 책과 문학을 좋아하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그들은 산업화가 진행되기 전 시절의 자연, 인간의 존엄성, 긍정적인 세계관을 추구했다. 기성세대의 가치에 순응하지 않는 홀든은 미국 사회에 만연한 획일화에 저항하는 비트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49쪽)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책의 즐거움은 한 권의 책을 다각도로 마주하는 흥미로움이다. 가령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닿을 수 없는 인간 심연에 대해서만 집중했다면 저자는 '메이지 정신', 일본식 제국주의의 흔적에 대해 언급하다. 소설 속 K의 자살이 단순 사랑의 비애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고 나면 소설을 더 풍부하게 일을 수 있다. 거인국과 소인국이 등장하는 동화로 인식했던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치졸함을 묘사한 소설이라니. 그뿐인가. 《돈키호테》를 쓴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전쟁에 참전하여 왼팔이 부러지고 가슴뼈와 치아가 부러졌음에도 4년이나 더 참전한 사람인 줄 몰랐다. 스페인의 많은 독자들이 기사 소설에 열광하고 있다는 점도 몰랐다. 호탕한 기사 돈키호테와 늙은 말 로시난테의 모험기로만 알았으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았다. 소설의 내용과 별개로 평생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고 그 빚 때문에 엄청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발자크. 발자크와 커피에 대한 부분이나 《마담 보바리》가 출간되고 재판에 넘겨졌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한 플로베르가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 무죄를 받았다는 내용도 재미있다.


발자크에게 커피는 검은 석유였다. 발자크라는 엄청난 글쓰기 기계를 작동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커피 포터도 함께였다. 그는 커피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했으며 커피를 타는 성스러운 작업을 그 구누에게도 맡기지 않고 직접했다. (273~274쪽)


『세계문학 필독서 50』를 읽고 나면 이전에 읽었던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카프카, 하루키의 소설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나처럼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나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것이다. 아프리카 문학이나 출신 작가의 소설이 없다는 게 살짝 아쉽지만 나만의 세계문학 목록을 작성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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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4-04-04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책에서 이 부분은 꼭 재미나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부분을 콕 찝어서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걸인의 책을 왕후의 서평으로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뜻한 오후 되시길 바래요 .

자목련 2024-04-05 08:52   좋아요 1 | URL
제가 만나지 못한 책들의 정리를 통해 나만의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던 책이고요.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꼬마요정 2024-04-0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때론 고전이란 책들이 나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너무 좋은 작품들이 있더라구요. 시간이 지나 여전히 읽히는 책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상황에서 각자의 느낌이 다 다르지만 감동 받는다는 게 정말... 멋진 일이네요. 하지만 또 그만큼 사회의 부조리나 개인의 아픔, 혹은 개인의 기쁨이나 가족의 사랑 같은 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자목련 2024-04-05 08: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책과의 만남에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나만의 책읽기, 나만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꼬마요정 님, 환하고 빛난 금요일 이어가세요^^

Falstaff 2024-04-04 17: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목차만 둘러봤는데요, 말씀대로 아프리카(= 식민지 문학)와 라틴 아메리카 작품이 한 편도 들어있지 않고, 진짜 고전이라고 하는 그리스 문학도 빠졌더군요. 소포클레스나 호메로스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들어 있어야 할 거 같았습니다. 일본 작가가 여섯 명이나 들어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될까?˝ ㅎㅎㅎ 바늘처럼 콕 찔리는 거 아니었겠습니까?

자목련 2024-04-05 08:55   좋아요 1 | URL
모든 책은 주관적인 기록이자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읽은 책이 몇 권 없어도, 설령 한 권도 없다 해도 상관없는 거 아닐까요?
Falstaff 님은 이미 풍부한 Falstaff 님의 기록이 있으니까요!

구단씨 2024-04-04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문학 해설서 같은 느낌이 들어요. ^^
저도 항상 고전이나 세계 문학 많이 읽고 싶고, 그 안의 메시지 확인하면서 인생에 적용하여 살아가면 더 값지겠구나 싶었는데,
현실은 고전이 마냥 가까운 작품들은 아니었네요. ㅎㅎㅎ
궁금했던 책인데, 고전이 궁금하지만 다 읽을 수 없을 때 특히 더 펼쳐보고 싶어질 것 같아요.

구단씨 2024-04-04 20:13   좋아요 1 | URL
아하~!!!
숨어 있는 재미라니, 고전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될 것 같아요! ^^
설명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4-04-05 08:56   좋아요 1 | URL
네, 끌리는 대로 읽고 싶은 대로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화창한 봄, 즐겁게 보내시고요!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10
재닛 윈터슨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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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넷 윈터슨의 장편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는 얀 마텔의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넷 윈터슨이란 작가의 이름조차 몰랐다. 얀 마텔은 “어떤 책이든 우리에게 다른 삶을 살게 해주며, 다른 이의 지혜와 어리석음을 가르쳐 줍니다.”라고 말했다.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말인데 왜 이리 마음을 울렸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란 소설을 기억하고 있었고 덕분에 읽게 되었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란 제목에서 이미 오렌지만을 과일이라 주장하는 이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는 이가 등장할 거란 걸 알 수 있다. 뻔한 예상하다. 그러나 스스로 오렌지만이 과일이라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오렌지가 얼마나 좋은 과일인데, 왜 오렌지가 아닌 다른 과일을 선택하느냐고 강요 섞인 조언과 권유를 계속할 것이다. 나도 그럴지 모른다. 내가 좋은 걸 다른 이가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전부라 믿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에는 오렌지 말고도 다양한 과일이 있다는걸. 설령 세상에 과일이 오렌지 하나만 존재한다고 해도 그 오렌지를 거부할 수 있다고.


소설의 주인공 ‘지넷’의 어머니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다.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최선을 다해 지키려 하고 그 안에 입양한 딸 지넷을 가두려 한다. 아니, 자신이 세계를 완성하려고 지넷을 입양한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넷과의 충돌은 당연한 일이다.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구약 성서 「신명기」부터 읽도록 가르쳤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이 규정해 놓은 삶, 그것이 선이고 정의였다. 그게 무엇이든 모든 걸 다 흡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아이 지넷에게 세상은 얼마나 좁고 답답했을까. 귀가 안 들리는 지넷에게 성령 충만한 거라고 말하는 어머니라니.


지넷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며 품었던 기대는 무너졌다. 학교에서 지넷은 별종인 학생이자 왕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지넷 탓이 아니다. 존재와 동시에 어머니에게 세뇌당한 세계가 지넷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단 숨에 그것과 결별하고 살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 지넷은 여전히 교회에 나가고 어머니를 돕고 신을 위해 일한다. 그러나 지넷은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고 어머니가 항상 건네준 오렌지만이 과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 깨우친다. 열여섯 살의 지넷의 눈앞에 나타난 소녀 멜라니를 향한 마음은 사랑이었다. 성경 공부를 하고 서로를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 지넷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비롯한 교회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여자를 사랑하는 일, 그것은 죄이고 악이었다.


집을 나온 지넷은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트럭을 운전하고, 장례식 일을 돕고, 아이스크림을 팔면서 생활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정신병원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시간이 흐르고 지넷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철학적으로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니까.”(285쪽)라고 말하지만 너무 늦었다.


소설은 지넷이 자신의 내면에 다다르고 완성하는 자전소설이며 성장소설이자 여성 소설이다. 창세기에서 시작해 롯기로 끝나는 목차를 보면 성경 소설이라 할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지넷이 스물다섯 살에 출간한 소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랍고 대단하다. 그러니 십 대 소녀의 반항기, 세상을 향한 당돌한 몸짓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소설이다. 지넷이란 이름이 만들어갈 세계의 시작이라고 할까.


세상엔 수많은 형태의 사랑과 애정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동안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함께 지내기도 한다. 이름은 주는 것은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이는 본질과 관련된 것이며 힘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사나운 밤에 누가 당신을 집으로 부르겠는가? 당신의 이름을 아는 사람뿐이다. 낭만적 사랑은 싸구려 소설로 희석되어 수천 권 수만 권의 책으로 팔린다. 어딘가에서는 낭만적 사랑이 여전히 원서와 같은 석판에 적혀 있다. 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바라다고 건너고 뙤약볕 아래에서의 고생도 마다 않고 내가 가진 전부를 줄 것이다. 그러나 남자를 위해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은 파괴자가 되려고만 하지 결코 파괴되지는 않으려 하니까. 그래서 남자들은 낭만적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리고 난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282~ 283쪽)


나는 당연히 지넷을 응원했지만 엘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엘시는 교회의 다른 어른과 달랐다. 귀가 아파 병원에 있을 때도 멜라니와의 사건으로 지넷이 비난받을 때도 엘시는 일방적인 무리들과 달랐다. 어린 소녀 지넷에게 유일한 어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조금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병원이 아니라 지넷 곁 가까이 있었더라면, 그녀의 죽음이 조금 더 늦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크고 아쉬움이 남는다.


“A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B일 수도 있는 거야.”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는 거야.” (61쪽)


가장 단순하고 보편적인 진리, 그 아름다운 가치를 오직 엘시만이 지넷에게 알려주었다. 엘시가 지넷에게 들려준 말들이 분명 지넷을 든든히 지켜주었을 거라 믿고 싶다. 엘시의 말은 여전히 힘이 된다.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지넷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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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4-0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구절은 다시 읽어도 좋네요. 저도 엘시가 안타까웠어요.... 지넷 윈터슨은 그래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 좀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자목련 2024-04-04 11:39   좋아요 0 | URL
제목만 기억하고 있던 소설인데 잠자냥 님의 리뷰 덕분에 읽게 되었어요. 이 작가의 다른 소설도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고 싶고요^^

독서괭 2024-04-0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령 세상에 과일이 오렌지 하나만 있더라도 거부할 수 있다!! 👍👍👍

자목련 2024-04-04 11:41   좋아요 1 | URL
당당하고 독립적인 삶을 생각해요! 이 소설 흥미롭고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