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에 만족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어쩌면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른다. 나부터도 굵은 팔뚝과 늘어나는 뱃살이 걱정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건 아니지만 신경이 쓰인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옷맵시가 나지 않아 속상하고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날씬한 몸과 맑은 피부는 누구나 원하는 신체 조건이 된지 오래다. 건강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아름답게 보이고자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조절한다. 심각하게 운동을 한다. 하루라도 계획된 식단대로 식사를 하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진정으로 몸을 사랑하는 일일까?
정신분석가 ‘수지 오바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 몸에 갇혀버린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직접 상담한 사례를 통해 완벽한 몸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쉬지 않고 심각한 다이어트를 한다. 거식증과 폭식증에 시달리다 성형 중독에 빠지거나 자신의 신체를 혐오하여 일부를 절단하기까지 이를 정도에 이른다. 날씬해진 몸과 수술로 얻은 쌍꺼풀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찾기 때문이다. 자해를 하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내야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이 사회가 얼마나 날씬하고 마른 몸을 요구하고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가상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몸을 가꾸고, 각종 사이트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광고들은 차지하더라도 면접을 위해 미용 성형을 하고, 결혼과 출산 후 변화하는 몸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저자는 우리 몸이 성장하는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양육하는 태도에 따라 아이의 인격과 감성이 달라지듯 몸에 대한 인식도 그러한 것이다. 몸을 위한 것들, 그러니까 먹고 입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을 소홀히 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유아기를 지나 사춘기에서 접어들고 어른이 되기까지 하나의 몸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운 이야기다.

몸은 말 그대로 물리적인 측면에서 차차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만들어진다. 우리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먹었는지, 으깬 음식을 먹었는지, 음식을 먹인 사람이 재미있게 먹였는지 산만하거나 초조한 태도로 먹였는지, 보호자가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는지 우악스럽게 안았는지 전혀 안아주지 않았는지, 자주 기저귀를 갈아주었는지 충분히 갈아주지 않았는지…… 이와 같이 우리 몸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수많은 변수들이 양육의 물리적 환경으로서 우리 몸을 형성한다. 사전에 주어진 몸이란 없다. (117~119쪽)
엄마가 청결을 중요시하면 아이는 저절로 배우듯 다이어트나 몸에 대한 애착과 불만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함부로 날씬한 게 좋다고, 눈(코, 키)가 작아 걱정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이 힘들면 저절로 몸살이 나거나 아픈 것처럼 우리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더불어 내 몸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다양한 몸들과 몸을 꾸미고 움직이는 다양한 방식들은 우리에게 당연히 즐거움과 고마움을 안겨주는 경험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안정된 몸이 필요하다. 그런 몸은 행복과 모험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몸의 존재를 확신하는 그런 순간, 이윽고 우리는 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272쪽)
몸을 주제로 한 책이라 읽는 동안 인문학자가 쓴 『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 인류학』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다뤄진 부분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점점 하나로 획일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유의 문화나 관습이 서양의 마른 모델이나 다양한 광고(성형, 제약회사, 의류)에 지나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 인류학』이 다양성을 말하고 있다면 『몸에 갇힌 사람들』은 몸에 대한 자존감을 말한다. 다른 주장을 펼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두 책에서 말하는 건 몸의 행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