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소영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다 읽고 멋진 한 줄 평을 쓰고 싶었다. 막연하고 포괄적이 ‘좋다’란 말이 아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책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다 ‘무궁무진하게 건전한 배움의 세계로 인도하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어린이 책 편집자란 이력이 있고 독서교실을 운영하지만 아이는 없는 저자만 생각했을 때 어린이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린이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서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어떤 지식에 중점을 두는 건 아닐까 했다. 그건 독서교실이라는 공간이 글쓰기, 나가서는 논술로 이어지는 시작점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에 대해 잘 모르고 오해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겐 어린이라는 말보다 아이가 더 익숙하다. 한 번도 어린이라는 호칭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주변의 어린이에게도 그렇게 불러준 기억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린이의 생각에 대해서, 어린이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생각해 봤다는 뜻이다.


독서교실에서 만난 어린이는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인격체이고 저마다 지키고 싶은 자신들의 마음과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건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 명, 한 명 생김새가 다르듯 그들은 어린이들이 아니라 개별적인 어린이였다.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 애쓴다 (42쪽)


키가 작아서 높은 곳이 궁금했을 어린이에게 화를 내고 단순히 식감이 싫어서 버섯 먹기를 거부했을 뿐인데 편식한다고 혼을 냈다. 모두 어린이였으면 그 시절의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무조건 건강에 좋다고 먹기를 강요한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런 마음을 충분히 알고 어린이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는 우아하고 점잖다.


어린이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안다. 독서교실에서 저자인 선생님을 챙길 줄 알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책을 골라주고 함께 읽으면서 선생님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하면서 하는 아이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예쁘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엔) 제 마음이 있어요.” (72쪽)


독서교실에 수첩을 놓고 간 아이가 내내 걱정하고 수첩을 찾으면서 선생님께는 알리지 말라고 한 이유를 들으니 더욱 놀랍다. 그 수첩을 저자가 선물했기 때문이고 만약 그 사실을 선생님이 알면 속상해할 거라고. 그러면서 다른 수첩에 기록한 내용을 그 수첩에 다시 옮겨 적는 모습을 상상하니 묘한 기분이다. 어떤 마음을 소중하게 다룬다는 것, 어른인 내가 잃어버린 그 마음을 들킨 것 같다고 할까.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의 편협한 사고를 이런 글에서 발견한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린이가 아닌 학생으로만 생각하고 대하는 어른들 속에 나도 있었다. 누군가 나를 개인의 나가 아니 일률적인 어른으로 대한다면 싫어하면서 어린이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어린이는 2학년 때 2학년만큼 자라고, 5학년 때 5학년만큼 자라지 않는다. 6학년 어린이 중에도 4학년 같은 어린이가 있고, 3학년 어린이 중에도 5학년 같은 어린이가 있다. 심지어 한 어린이가 어떤 때는 3학년 같고, 어떤 때는 6학년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어린이의 학년만 중시하는 바람에 어린이가 발달시켜야 할 여러 덕목들 가운데 공부에 대한 것만 강조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의심하고 있다. (79쪽)


이 책의 제목인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른이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다가가야 하는 세계였다. 올바른 교육과 환대를 받은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당연하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역이라고 하면서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우리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를 만난 어린이들이 부러웠다. 어린이였던 나에게 존댓말을 해준 어른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하게 존중받는 기억도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어린이를 존중하려고 노력한 적이 거의 없다.


어린이를 지나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이 읽고 배워야 할 책이다. 어린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청소년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어른의 몫이다. 책에서 만나 모든 어린이를 더 많은 어른들이 만나고 기억해야 한다. 그 어린이는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가족 구성원인 어린이뿐만 아니라 주변 어린이, 모든 어린이는 책의 저자처럼 ‘남의 집 어른’인 우리가 지켜야 할 귀하고 소중한 존재란 걸.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기 때문에 소수자라기보다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또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사이에 늘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어린이 문제는 한때 지나가는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거쳐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201~20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모든 글은 하나의 소설이며 하나의 귀중한 기록 일지도 모른다. 단지 형식만 다를 뿐. 때때로 삶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어떤 소설은 너무도 평이하고 단조롭게 흐른다. 마치 소설 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처럼. 지금 내 곁에는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에세이가 있다. 각각 다른 작가의 글이다. 두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어느 쪽으로 무게를 둘 수 없을 정도로 균등한 애정을 보낼 수 있다.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황정은이 첫 에세이를 냈다. 제목도 의미심장한 일기日記다. 하루를 기록하는 일그건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은 평범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하루는 어떤 이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며 어떤 이에게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런 마음이 커진다. 코로나 시대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날들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면서도 그 변화에 어떻게든 반응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건 낯설게만 느껴진다. 반응의 시차가 너무 큰 것일까. 어쩌면 나에게만 해당되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실시간으로 영국의 모습을 중계하는 뉴스를 봤다. 그곳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웠고 마치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2020과 2021년의 두 계절이 머나먼 과거처럼 보인 것이다. 일기를 쓴다는 것, 나를 기록한다는 것, 어제와 다른 나, 과거와 다른 나를 마주하는 일, 그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기쁨을 발견하는 일은 가장 중대한 일은 아닐까.


황정은의 소설을 좋아하고 그의 소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어 좋다. 나의 성장이 그의 성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좁고 작겠지만. 그러니 이런 문장을 따라 읽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주억거려도 좋다. 순도 높은 애정을 고백하고 싶을 만큼. 황정은의 글에서 앤을 만날 거라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내게 특히 좋았던 부분은 마릴라가 내면의 혼란을 드러낸 순간들이었다. 앤은 과거에 마릴라가 가져보지 못한 질문과 표현해 보지 못한 분노로 마릴라와 충돌하곤 하는데 마릴라는 그때마다 당혹스럽게 자신의 과거를 돌이킨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앤에게 날카로운 태도를 보이는 몇몇 순간들은 거의 질투로도 보였는데, 나는 그런 순간들이 좋았다. 마릴라가 마냥 완성된 어른이 아니라서 좋았고 그에게도 욕망과 원망이 있었다는 걸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마릴라에게 그런 순간을 마련해 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고마웠다. 그들은 앤의 첫 등장 장면을 미래만 상상하며 그린 게이블즈로 오는 중인 앤이 아니라 그린 게이블즈에 당도하기 전의 앤으로 그려냈다. (46쪽)


한강의 소설은 이상하게 항상 신중함이 느껴진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을 고르고 선택하는 일에 있어 무척 많은 시간을 들여 공들여 쓴 것 같다는 뜻이다. 어느 작가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겠냐만 특히 한강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 겹겹이 쌓인 비밀의 겹을 하나하나 벗기고 마침내 그 비밀을 마주하는 순간의 슬픔이나 분노를 토해낸다고 할까.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다 하고야 마는 그런 소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에 이어 이번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 · 3 사건을 말한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일은 더욱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런 마음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전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최근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눈雪의 은유와 상징에 대해 가만히 생각한다.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강풍이 먼바다의 먹구름을 흩을 때마다 햇빛이 수평선으로 떨어진다. 수천수만의 새떼 같은 눈송이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나 바다 위를 쓸려 다니다 빛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다. 내가 이마를 대고 있는 차가운 차창에도, 두 개의 와이퍼가 끼익, 끽 소리를 내며 닦아내는 버스 앞 유리에도 커다란 눈송이들이 쉼 없이 부딪혔다 사라지고 있다. (67~68쪽)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가 내 손등에 내려앉는다. 구름에서부터 천 미터 이상의 거리를 떨어져내린 눈이다. 그사이 얼마나 여러 차례 결속했기에 이렇게 커졌을까? 그런데도 이토록 가벼울까. 이십 그램의 눈송이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커다랗게 펼쳐진 형상일까. (111쪽)


글을 읽는 일은 쉽고 단순하다. 그러나 글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고 복잡하다. 이해하려는 마음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이해하려는 마음은 다가가는 마음이고 애쓰는 일이다. 황정은의 에세이와 한강의 소설을 이해하는 순간은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믿으면 괜찮다. 읽는 일은 중요하다. 쓰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우선 읽어야 한다. 읽는 게 시작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1-10-14 1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 깊이 동감하게 되네요.^^

자목련 2021-10-15 17:12   좋아요 0 | URL
^^*
스텔라 님, 비가 오고 스산하네요.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1-10-14 1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황정은이 빨간머리 앤에 대해???
황정은과 한강의 신간들 사야지...하면서 까먹고 있었어요.
이해하려는 마음읏 다가가는 마음이고 애쓰는 일!!! 저도 자목련님의 말씀에 고개 끄덕끄덕 했네요^^

자목련 2021-10-15 17:13   좋아요 1 | URL
그쵸? ㅎ
너무 반갑고 좋았어요.
책읽는나무 님, 향기로운 가을 이어가세요^^
 
다산의 철학 -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인문학 편지
윤성희 지음 / 포르체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다 보면 어른들의 말이 꼭 들어맞는 때가 있다.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을 정도다. 그들에게도 그런 말을 전하는 어른이 있었을 것이다. 쓴소리를 하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쓴소리, 이름하여 잔소리를 한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잘못된 결정을 할까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 그건 애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게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스승이나 선배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한 권의 책이 좋은 어른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로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도 그런 어른이다. 아들과 제자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했던 건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였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의 마음이나 태도는 다르지 않아 그대로 모든 게 적용된다는 게 놀랍다. 편지를 소개하는 편지 큐레이터인 저자는 그 점을 잘 알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산의 철학을 들려준다. 얼핏 생각하면 조선시대와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라 접점이 있을까 싶지만 편지를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다산의 편지는 모두 32편으로 가장 많은 부분이 아들인 학연과 학유에게 전하고 있지만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편지를 받는 이들이다. 중한 죄를 지어 유배지에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혹여 아버지로 인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할까 하는 마음 말이다.


세상은 빠르게 돌고 돌면서 한시도 멈추지 않으니 이 세상에 뜻을 둔 사람은 한때의 재난으로 끝내 청운의 꿈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는 가슴속에 늘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는 기상을 품고서 천지도 작다고 보고 우주도 가볍다 여겨야 옳은 것이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24쪽)


한때의 재난은 다산의 아들이 처한 현실일 것이다. 지금 우리도 그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안으로 파고들어 움츠러드는 마음을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내면으로 파고들어 더 깊고 단단한 나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길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마주할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런 점에서 서자로 태어난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도 그런 격려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저자의 적용은 더욱 그러하다. 취업이 너무 힘든 요즘 취준생이나 자꾸만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이들에게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걸 알려준다.


출발선은 내가 그을 수 없지만 도착점은 내가 정할 수 있지 않는가? 세상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길은 언제나 사람 수만큼 있고, 나는 나의 길을 만들 수 있다. 세상이 ‘이게 너의 한계’라고 말할 때마다 기억하다. 나는 내 삶의 영역을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으며, 내 인생의 지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걸. (37~38쪽)


그런 마음은 비단 청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인생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사는 게 뭔지 조금 안다 싶어도 언제나 고비를 만난다. 고비는 저마다 다른 해답을 안겨주기도 하고 때론 비관과 비참함을 몰고 오기도 한다.


귀양살이 아버지 다산을 향한 아들의 애틋한 마음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아들 학연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그로 인해 유배를 풀어주라는 명을 받았다. 반대편의 사람들은 정약용이 도성 안으로 오는 것을 막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직접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뜻을 전한다. 하지만 다산은 귀양은 죽고 사는 일에 비해 작은 일이라며 자신의 절개를 꺾으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자신만의 삶을 사는 일과 죽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답대로, 다른 이는 그 사람이 가진 답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가진 정답을 그에게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닌 삶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폭력이 될 수 있다. (160쪽)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가하는 말들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 상대가 도움을 요청할 때 구체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일, 그게 가장 현명하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가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관심이 필요한 일에는 무감하고 관심이 필요 없는 일에는 지나치게 말을 거든다. 그저 지켜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희일비하는 삶이라는 걸 안다.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변수가 생기는 게 삶이다. 그 자체를 수용하는 일은 어렵다. 다산의 경우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했다는 걸 편지가 증명한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본질에 대해서 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걸. 살아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숭고하다. 그것이야말로 다산이 전하고 싶은 가장 소중한 철학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때때로 하나만 말해주고 전부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 하나가 아주 중요한 힌트였다고 여기면서.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 그 이상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어떤 형체를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편혜영의 단편집 『어쩌면 스무 번』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소설을 읽는 일과 마음을 읽는 일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편혜영의 소설에는 확연하게 실체를 공개한 적이 없는 듯하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말이다. 소설 전반의 분위기는 언제나 불안과 공포가 가득하다.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무엇에서 시작되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독자가 모두 아는 알고 있다는 전제로 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공포는 우리 일상 곳곳에 포진되어 있으니까.



편혜영은 슬그머니 그것을 던질 뿐이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8편의 단편은 하나같이 불운하고 불행하다. 막연하게도 어떤 희망이나 행운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저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편혜영은 몇 개의 조각만 보여준다. 그 조각으로 퍼즐 전체를 상상하는 일, 인물의 과거나 상처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고 할까.



표제작 「어쩌면 스무 번」에서는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의 전원주택에 대한 평화로운 상상을 깨부순다. 치매에 걸린 장인을 돌보기 위한 마지막 선택지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수면제를 먹고 장인이 잠든 그 시간만이 화자인 ‘나’와 아내에게 휴식의 순간이라는걸. 부부에게 찾아온 방문객으로 인해 인지하는 현실적 문제. 한 폭의 그림처럼 여겨지는 전원주택은 안전한 곳도 독립된 곳도 아니었다. 그나마 화자에게는 모두를 피해 옥수수밭에서 숨어 혼자 바라보는 달이 유일한 위안이다.



이랑에 앉아 옥수숫대 사이로 서서히 해가 지는 걸 지켜봤다. 붉은빛을 띠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건 무시무시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조금 더 기다리면 하늘에 희미하게 달이 떠올랐다. 운 좋게 둥근 달을 보는 날이면 옥수수밭에 숨어서 이렇게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싶어졌다. 어쩌면 스무 번. 기껏해야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눈가가 시큰해졌다. (「어쩌면 스무 번」, 27~28쪽)


막다른 골목으로 내쫓기는 기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편혜영의 소설 속 인물은 모두 그러하다. 바닥을 쳐야 일어설 수 있다는 그런 회복력이 아니라 끝도 없이 마주하는 막다른 골목. 「호텔 창문」속 ‘운오’는 사촌 형의 죽음으로 인해 살아남았다는 기억만으로도 살아가는 일이 힘겹다. 자신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 기억의 늪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그런 부채감은 어디에나 있다. 「플리즈 콜 미」의 ‘미조’는 딸을 유학 보내고 모든 게 잘 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퇴직 후 무리하게 벌인 사업이 망하고 치매에 걸린 남편이 실종되고 공부 대신 결혼을 선택한 딸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남편의 실종 후 미조는 술에 의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딸과 사위가 있는 미국에 다니러 와서도 그들 몰래 술을 마신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미조는 알 수가 없다. 남편의 마지막 행선지에 대해 경찰과 딸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한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건 딸도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미조에겐 비밀이 돼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저 잘 살고 싶었고 잘 살기 위해 약간의 비밀과 가면이 필요했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가족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용실을 하며 홀로 아들을 키우는 「좋은 날이 되었네」 속 모자도 그랬다. 아들은 아들대로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도 자신의 방식으로 아들을 대했다. 누구에게도 어머니는 양육에 대해 관심과 조언을 얻지 못한 채 아들을 키웠다. 사실은 서로에게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알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판단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건물만 믿고 대출을 하고 투자를 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많은 걸 묻지 않았고 자신의 형평에 대해서도 전하지 않았다. 자꾸만 늘어나는 아들의 빚처럼 어머니에게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아들이 모르는 사이 건물은 남에게 넘어갔고 아이를 봐주는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심지어 그 아이를 학대하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가위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나는 서로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지만 언제나 사이가 괜찮았다.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것으로 충분했다. (「좋은 날이 되었네」, 190쪽)


산다는 건 모르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일이다. 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질병이나 죽음은 곁을 내주며 살아가고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불운과 불행을 막을 방패는 항상 한발 늦게 준비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보험을 파는 아줌마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룬 「미래의 끝」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완벽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비밀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편혜영의 소설은 불편한 비밀을 하나 더 안겨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을 거라 생각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란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뭐랄까, 코로나 시국에 떠나지 못한 여행지에 대한 낭만 같은 걸 기대했다고 하면 맞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썼고 너무도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셀리의 엄마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쩌면 ‘길 위의 편지’란 제목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길 위라는 건 여행을 의미했고 낯선 곳에서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경험하는 삶에 대해 마냥 설레는 마음만 품었던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이 책은 25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여행기가 맞다. 저자 울스턴크래프트가 여행한 경로를 따라 6월에서 10월 초까지 이어진 여행, 영국의 헐을 시작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함부르크, 영국 도버로 마무리되는 여행이다. 배를 타고 떠나는 시점의 자세한 해상의 날씨, 그에 따른 저자의 솔직한 마음으로 편지는 시작된다.


여행하는 도중의 자연현상과 그것에 대처하는 선장과 선원들의 사소함부터 여행지에 도착해 묵은 숙소의 면모와 사람들에 대한 인상까지 무척 섬세하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독자는 마치 그 풍경을 직접 보는 듯하다. 각각의 장소에서 느끼는 아름답고 훌륭한 자연의 모습, 나라의 사람들의 말과 태도로 알 수 있는 그들의 사회적 관습과 문화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편지라고 할까. 저자가 묘사한 북유럽의 자연은 말 그대로 웅장하고 경이롭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특별한 점은 저자의 통찰력과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각 편지마다 저자의 마음을 일기처럼 보여주는데 때로 외롭고 때로 고독하고 때로 슬픈 감정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다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추천하고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쓸쓸하고도 안타까운 건 그녀가 바라보는 시대의 단점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다양성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획일된 쪽으로 편향된 사회를 미리 알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나라가 자기네 나라를 닮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행자들은 집구석에 있는 편이 낫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어느 정도 윤택해졌을 때라야 취향의 연마로 만들어지고 만들어지게 되는 개인의 청결과 기품의 수준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국민성을 비난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작가들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인간 정신을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나타내는 종이 지구본처럼 가상의 구(球) 안에 가둬놓기 위해 계산된 듯한 독단적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탐구와 토론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8쪽)


1796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척 놀랍다. 그 시기에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사업차 여행을 떠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싶어서다. 21세기인 현재에도 그리 쉬운 결정도 아니고 실행도 어려웠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런 부분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독을 견디며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어떤 이에게도 자신의 공포와 슬픔을 말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면의 진중한 고백이라고 할까.


소멸에 대한 공포는 제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거랍니다. 실존이 종종 불행만을 고통스럽게 의식하는 것이라 해도 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잃는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습니다. 아니, 저로서는 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기쁨과 슬픔에 똑같이 민감한 이 활달하고 들썩대는 정신이 한낱-용수철이 툭 끊어지거나 불꽃이 사라지는 순간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먼지가 되고 만다는 사실도요. 제 영혼을 붙들고 있는 것이 한낱 먼지라니요. 우리 마음에는 소멸할 수 없는 것이 살고 있고, 인생은 꿈 그 이상입니다. (88쪽)


쉽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한없이 다정한 책이다. 내게는 사는 동안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사유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인생 대 선배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에 우리 곁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삶의 가치와 진리에 대해 좀 더 깊이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읽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환경은 인간의 성격이 형성되는 거푸집 같습니다. 제가 최근까지 관찰한 바를 토대로 환경의 영향을 추론해 볼게요. 제가 지난번에 왜 성직자들은 대체로 교활하고 정치가들은 기만적일까라고 물었을 때만큼 심각하진 않습니다. 상업에만 전념하는 인간은 심미안과 정신의 위대함을 전혀 습득하지 못하거나 모조리 잃어버립니다. 기품이 빠진 부의 과시와 정서가 빠진 탐욕적 쾌락은 인간을 짐승같이 만들어, 급기야 그들은 영웅적인 성향의 모든 미덕을 우리의 본성 너머 무언가에 대한 낭만적인 도전이라 부릅니다. 사실 우리는 타인의 행복을 걱정하거나 불행을 탐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21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