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모두 늙는다. 병들고 아프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병을 숨긴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당당하게 간병을 요청한다. 초고령 사회에서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픈 부모를 홀로 간병하고 돌보다 발생한 사건에 놀라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는 걸 알지만 뚜렷한 해결 방안은 없다. 가족이 모두 매달려 간병을 하다 지쳐 마지막으로 시설을 선택한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경우에 가능한 일이다. 부모만 늙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늙고 간병과 돌봄은 곧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를 읽으면서 친구들의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 두 분이 살아계시지만 언제 어떻게 병원 신세를 질지 몰라 무섭다고. 나 살기도 바빠 간병은 엄두도 나지 않고 병원비도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소설은 엄마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곧 등장해야 할 장례식장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 이 소설은 좀 이상하다. 치매의 엄마는 죽었지만 연금이 들어왔고 딸 명주는 엄마의 죽음을 숨기기로 결심한다. 명주는 작은방 관에 죽은 엄마의 시신을 넣고 살아간다. 그게 가능하다고?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사가 늘어나고 이웃 간의 왕래가 적은 사회에서는 놀랄 일도 아니다.
명주에게도 사정은 있다. 이혼 후 생계를 위해 일하다 발에 화상을 입었고 심각한 후유증으로 일 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그런 명주에게 엄마가 간병을 제안했다. 엄마의 연금으로 생활한 명주에게 엄마는 살아있어야 했다. 다행히 아무도 엄마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옆집 청년만 빼고. 명주에게 아는 척을 하고 할머니 안부를 걱정하는 청년 준성이 문제였다. 물리치료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준성은 집에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야간에 대리운전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명주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준성은 한 번씩 반찬을 나눠주시던 할머니가 궁금했다. 할머니 딸인 게 분명한 명주는 시원하게 답을 하지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할머니가 걱정되었지만 준성에겐 아버지 하나로 벅찼다. 준성이 고등학생 때부터 뇌졸중을 앓았고 지금은 알코올성 치매까지 있다. 형은 빚만 남기고 외국으로 떠났고 준성은 가장이 되었다. 바로 옆집에 살지만 서로의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명주는 딸 은진이 찾아오기 전까지 엄마의 시신을 매장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혼 후 엄마와 살던 은진은 고등학교 때 사고를 치고 아빠의 집으로 들어갔다. 사고 수습은 모두 명주의 몫이었지만 하나뿐인 딸에게 마음이 늘 약했다. 대학을 졸업한 은진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명주는 외할머니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은진이 모든 걸 알게 될까 겁이 났다. 은진은 외할머니의 시골집을 찾아냈고 그걸 빌미로 돈을 요구했다.

명주는 엄마를 시골집에 모시기로 결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런 명주 앞에 손에 피를 묻히고 준성이 집에서 뛰어나왔다. 준성과 함께 들어간 집에는 준성의 아버지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준성은 외제차 대리운전을 하다 사고가 났고 집에 불이 나서 아버지는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수리비와 병원비는 준성이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를 집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예전과는 다른 수준의 간병이었고 아버지를 목욕시키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명주는 담담하게 자신의 집으로 준성을 데리고 와 죽은 엄마의 관을 보여주고 준성에게 제안한다. 모든 건 다 자신이 할 수 있고 두 분을 시골집에 매장하자는 계획을 들려준다. 이삿짐을 옮길 트럭을 빌리고 운전은 준성이 하면 된다고.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218쪽)
50대의 명주와 20대의 준성의 연대는 서로의 사정을 잘 알기에 가능하다. 가족을 돌보는 어려움은 물론이고 육체적 경제적 한계로 보이지 않는 미래와 허방을 딛는 것 같은 삶을 끝내고 싶은 간절함.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그런 간병과 돌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가장 깊숙하게 파고든다. 돌봄 노동의 피상적인 면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 둘러보면 내 주변의 지인이 겪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 그래서 몰입하게 되고 한 편으로는 두려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와의 이별은 가까이 다가온다. 조금 더 미루고 싶은 마음과 병든 부모와 살아가는 시간이 막막하다. 가정의 달이라는 5얼에 너무 빨리 떠난 부모가 그리우면서도 아빠나 엄마가 오랜시간 병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게 사실다.
늙고 병든 부모를 외면하고 돌봄을 다른 형제에게 미루고 마는 현실. 류현재의 소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에서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진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194쪽)외침은 가장 솔직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가족이 되었을까. 누구의 잘못일까. 긴 병에 효자없다는 속담은 긴 병은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가족을 돌보느라 희생하고 정작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한 여성의 삶을 들려주는 김유담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돌봄은 여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봄 노동의 비용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부모를 간병하고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제 정말 정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차례다. 아픈 가족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함께 돌보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내일을 기다리고 미래를 꿈꾸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 되고. 명주가 살고 싶은 이유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일이 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 위로 내려앉는 한 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고 있고 싶은 이유였다. (13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