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패티 스미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아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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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최초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게 최초인가 갸우뚱하다. 강렬해서 뇌가 기억하는 것, 그것이 최초가 맞을 것 같다. 선명한 이미지는 아니고 공간과 분위기만 이어진다. 그러니 아무리 애를 써도 젊은 부모에 대한 기억은 잡히지 않는다. 낡은 사진도 정리해서 남은 게 없다. 나는 그 기억을 찾을 수 없고 닿을 수 없다. 아쉬움이 몰려드는 이유는 뮤지션이자 시인인 패티 스미스의 회고록 『패티』를 읽어서다. 자신의 생에 대한 기록, 나를 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쓰려고 한다면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패티 스미스의 이름을 들어봤지만 그의 음악이나 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점이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한 독자가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이 책을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독자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책을 쓰리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의 모든 일을 낱낱이 기록할 거라고. 그렇게 모든 걸 적으면 누구나 거기에서 자신의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머물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날개가 생겨 훨훨 날아갈 거라고. (11쪽)

자신이 기억하는 첫 감각은 움직임이라고 기억하는 아이라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심한 기관지 질환을 앓는 병약한 아이였지만 모든 걸 만지고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아이. 가난한 부모와 차례로 태어난 동생들과 보낸 유년 시절은 패티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철거를 앞둔 주택단지에서 풍요로움보다는 결핍이 가득한 시절. 이사를 다니느라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나룰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패티에게 동생들은 가장 좋은 친구였던 것 같다. 병치레가 잦은 딸을 재우기 위해 자신의 귀한 시집을 건네주는 어머니. 어쩌면 패티의 예술적 감각과 특별함은 이런 어머니에게 받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이 나으면 패티는 동네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그런 패티에게 학교는 재미없는 곳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숲속 연못가에서 악어거북에 빠져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른 아이라니. 나는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다. 패티의 남다름은 또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조차 생경했던 티베트에 관심을 갖는 6학년 아이라니, 정말 독특하지 않은가. 이런 어린 시절의 모습은 나중에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다. 패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라고 생각한다. 열다섯 살의 소녀가 랭보를 만난 건 운명이었다.


자신의 고통을 시집 속에 봉인했을 때 그의 나이가 고작 열아홉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의 고백이 고통에서 그를 해방시켰으리라 믿고 싶었고, 그를 따라 나 역시 모든 걸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영적 여정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111쪽)




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 그것으로 향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패티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나갔다. 대학교 3학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나 글을 쓰고 새로운 예술의 세계로 나간다. 시는 노래 가사가 되고 산문시집의 출판, 드로잉 전시회도 하게 된다. 밥 딜런을 만나고, 시와 세 개의 코드와 소음이 합쳐진 공연. 그 모든 걸 상상하니, 분위기와 벅차오름이 내게로 전해진다. 그리고 프레드 소닉 스미스와의 만나 사랑에 빠진다. 차들이 마구 달려오는데 도로 한가운데서 왈츠를 추는 패티와 프레드. 결혼 후 패티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는 어린 아들이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가 내 글쓰기 시작이었다. 몇 달이 지나자 일과는 더 자연스러워져 나는 내면의 시계에 맞춰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새벽녘 집이 온통 잠의 고치에 싸인 가운데 잭슨의 숨소리가 제 아버지의 숨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었다. 나는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결코 집을 떠나지 않는 여행자의 모험을 계속 써내려갔다. (229쪽)

그러나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패티에게도 소중한 이들과의 이별이 다가온다. 함께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예술적 교감은 나눈 이들의 죽음, 사랑하는 남편과의 영원한 작별까지. 패티는 도움을 받아 다시 새 삶을 시작하고 시를 통해 공적인 삶으로 뮤지션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회고록 『패티』를 통해 나는 뮤지션 패티가 아닌 인간 패티를 만났다. 뮤지션이자 예술가의 행보, 그녀와 함께 노래를 만들고 같은 곳을 향해 나간 동료와 지지자와의 만남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팬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 다른 책을 통해 그녀의 공연, 노래, 시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잘 알아서 반갑고 즐거운 책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아닌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들과 보낸 충만한 느낌, 자신의 아이들과 보낸 그런 시간을 간직한 진솔하고 담담한 글, 인간 패티의 글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나 같은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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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
유디트 헤르만 지음, 신동화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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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말해지지 않은‘을 ‘말하지 않은‘으로 읽는다. 왜일까. 잘못 해석했을 수도 있지만, 감춰져있거나 말할 수 없는 비밀과 말하지 않겠다는 건 다른데 말이다. 분명한 건 유디트 헤르만의 글이 매혹적이라는 것. 현실적인 몽환이라고 할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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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26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경우가 있지요..ㅎㅎ
저는 주제 사라마구를 한동안 계속 사마라구로 읽었죠.ㅎㅎ

유디트 헤르만...<알리스>와 <여름 별장, 그후>를 읽다 말았습니다. 이상하게 저와 잘 맞지 않더라구요...그래서 유디트 헤르만 책4권을 예전에 처분했는데....지금 중고책 가격이 ㅎㄷㄷ 하네요..

그레이스 2026-03-28 18:13   좋아요 0 | URL
저두요
사마라구 ㅋㅋ
반갑네요 ㅋㅋ

자목련 2026-03-29 11:00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알리스>와 <여름~>은 이상하게 처분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책인데 이제야 읽을 것 같아요 ㅎㅎ
최근 <알리스>는 개정판이 나왔더라고요.
 
구름 사람들
이유리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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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것과 상대가 바라는 게 같다면 다툼과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의 시작은 다르다는 것이다. 크고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닌데, 상대는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상대와 내가 같은 지점에 있지 않다는 것. 상대는 나와 같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설상가상 네가 감히, 어떻게라는 태도로 내려다보는 사람들. 특권의식을 내려놓을 수 없고, 그것에 방해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은 존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이유리의 『구름 사람들』속 구름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절대 느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기분이다.


구름 위와 땅으로 구별된 세상, 얼핏 구름 위의 삶이란 꿈속을 거니는 삶이라는 상상을 할지도 모른다. 하늘 위의 분홍빛 구름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실체를 알기 전까지 우리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다. 이유리의 소설을 읽기 전 내가 한 기대도 다르지 않았다. 막연하게 뭔가 아름다운 상상, 구름으로 변한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내만 만난 이유리의 소설, 그가 그려낸 상상은 그러했으니까. 신기하고 애틋한 환상이 치유로 이어지는 이야기. 그러나 이유리의 『구름 사람들』는 작정하고 쓴 것 같았다. 환상으로의 도피가 아닌 진짜 아프고 불행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던 것 건 아닐까. 그게 삶의 민낯이라고. 현실이 그러하다고.


더 화려하고 멋진 세계를 욕망해 높게 쌓아 올린 주상복합의 공간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물질로 만들어진 구름. 땅에서는 집을 구할 수 없어 구름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있다. 땅에 지어진 불법 건축물이 아니라 구름에 지어진 세계. 땅에 발을 딛고 살 수 없어서 오염물질로 가득한 구름 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 그러니까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낮은 사람들이 산다. 생계를 위한 일자리는 땅에 있기에 땅으로 내려가 일하고 구름으로 올라와 살아간다.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 구름 사람들은 가까운 태양으로 인해 목덜미가 까맣고 누가 봐도 구름 사람들이라는 게 표가 난다. 그러니 땅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해도 차별의 대상이 된다.


구름에서 나고 자라 스무 살이 된 주인공 ‘하늘’은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 동생과 살아간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게 땅에만 있기에 사다리를 통해 이동한다. 사다리에 지탱해 공중을 이동하는 삶, 그것은 구름 사람들의 생존 그 자체를 묘사한다. 자칫하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아픈 할아버지는 땅에 있는 병원에 다니지만 병세는 여전하다. 나아지는 대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엄마도 아빠, 하늘이 열심히 일하지만 구름 사람이 아닌 땅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구름 사람들에게 어떤 미래를 꿈꾸는 건 아예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는 일자리를 핑계로 주말마다 구름으로 올라왔다가 마침내 돌아오지 않는 선택을 한 건 아닐까.


삶 전체를 조망해보는 것은 불행의 지름길이다. 단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현명하다. (129쪽)


세상은 불행하고 나쁜 것으로만 가득차 있다. 구름도 땅도 마찬가지다. 세상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도 기쁨과는 마주칠 수 없을 거다. 단 한 조각도. (170쪽)





하늘이 지닌 생각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땅에 내려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생을 구박하고 챙기면서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일. 그래도 동갑내기 원과 함께 구름에서 도망치고 싶은 소망쯤을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려 했지만 구름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인공 강우제 살포설은 그냥 둘 수 없다.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강우제를 살포하겠다는 정치인과 땅 사람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구름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하늘이 아빠를 중심으로 데모를 준비한다. 구름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시위를 하러 내려온 구름 사람들을 경찰이 둘러싸 정작 그들이 시위나 목소리는 땅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 시위가 실패로 끝나자 하늘이 아빠는 혼자 무서운 계획을 감행하고 하늘은 끔찍한 소식을 듣는다.


예고된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렇다 해도 아빠의 죽음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하늘을 위로하고 돌봐줄 어른도 보호자도 없이 어린 동생과 남은 하늘에게 더 이상 불행은 없을 것 같지만 삶이란 얼마나 잔인한가. 동생과 둘이 땅에서 살기로 결심한 하늘은 모아둔 돈으로 집을 구하려 애쓰지만 구름 사람이라는 이유로 방을 구할 수 없고 돈이 많이 버는 유튜버가 되겠다며 동생은 구름을 먹는 방송을 하다 목숨을 잃는다. 혼자 남은 하늘은 다큐멘터리 피디 노을의 제안을 수락한다. 구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후원을 받은 돈으로 땅에서 살 집을 마련하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강우제 살포가 현실이 된다. 땅 사람이 된 하늘은 자신의 고향이었던 곳을 찾는다.


어둠 속에서 발판은 조용하게 웅크려 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당장이라도 올라탈 것을 안다는 듯이. 나는 가만히 발판을 쏘아본다. 살아온 날들이 지독하게 길고 재미없는 한편의 농담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농담은 금방 끝이 나지만, 삶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330쪽)


구름이 아닌 땅에서 살아가는 하늘의 삶은 해피엔딩일까. 혼자 지내기에 넓은 집에 사는 하늘이 한방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의 등을 보며 잠들었던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 누군가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강우제는 살포될 게 분명했고 구름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야 했다고. 노을 피디가 아니더라도 하늘에게 접촉한 이가 있었을 거라고. 누군가의 불행을 전시하고 이용하는 모습은 잘 알고 있다고. ‘구름’이라는 공간의 설정만 다를 뿐 우리는 이런 구조에 익숙하다. 가난, 차별, 계급의 문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걸.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정녕 디스토피아일까. 불운과 불행으로 가득할 삶의 끝은 존재할까. 더 나는 세상, 모두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는 없겠지만 괜찮은 세상을 희망하는 건 어리석은 일인가. 조정과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건강한 사회는 어디에 있을까. 읽는 내내 우울하고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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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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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문학을 읽으며 좋았던 시절, 부러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정이현 특유의 감각은 여전했고 조금 더 보편적인 시선을 담은 것 같다는 느낌. 공감하면서도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며 그 경계와 선이 선명하게 다가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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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은선의 8월 시의적절 20
백은선 지음 / 난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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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시인은 이런 단어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 놀라곤 한다. 그냥 보통의 말인데, 나도 알고 있는 말인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골몰하고 골몰해서 도달한 단어라서 그럴까. 아니면 많이 쓰고 많이 읽어서 그럴까. 어쩌면 나는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고 싶고 알려고 애쓰더라도 말이다.

백은선 ‘뾰’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이 책을 통해 기억으로 남을 ‘뾰’. 백은선의 시집을 읽지 않았기에 그가 닿으려는 시의 마음이나 시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뾰』를 통해서 시가 그에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은 정도다. 모르면 어떻고 알면 어떤가. 책을 읽는 순간에는 백은선과 백은선은 원하지 않았으나 엄마의 재능을 닮은 아들을 일상을 그릴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8월의 바다와 술에 취한 백은선의 취한 밤의 한 조각을 그러잡은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은 사라진 밤과 충동적인 아름다움과 지독한 슬픔에 대해서.

이 책 전 만난 백은선의 산문에서도 느꼈지만 엄마 백은선과 시인 백은선은 선명한 경계를 원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다 속이 상한다. 아이와 살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면서도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에 지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어떻게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쓰는 그는 분명 좋은 엄마다. 그 말을 해주고 싶다. 병에 가득 채워 밤마다 한 잔씩 따라 마실 수 있도록.

시는 빛으로 이루어진 층계다.

시는 어둠 속에서 펼쳐보는 일기장이다.

시는 가장 처음 배운 외국말이다.

시는 불속에서 녹아버리는 뼈

손끝에서 터지는 한 발의 총성

노래를 듣는 순간 떠오르는 과거의 풍경이다.

시는 모든 것이다. 사물의 희미한 윤곽, 생물의 동력, 우주가 부풀어오르는 리듬이 바로 시다. (8월 22일 산문「빛의 층계 끝에 다다를 때」 중에서)





그가 쓴 시 길고 긴 시는 너무 버겁다. 그러나 시를 원하는 그의 뜨거운 갈망은 감격스럽다.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 깊고 진하게 뻗어가는 모양, 아니 사고할 수 없는 어떤 것, 아무도 모르게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것들을 채집하는 그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함께 말하자고 그는 독자에게 손을 내민다. 잡아줄 이가 없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는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하나의 시집이라 여겨도 좋겠다.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섬과 바다

사랑스러운 돌고래들

몇 년이나 헤매고 나서 찾았어

입과 귀의 모든 것

위로는 젬병이라 차라리

잘라버리고 싶었던 것들

남은 평생 단 하나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면

뭘 선택할래?

언젠가 네가 물었고

난 눈을 감은 채

하고 답했지

(8월 18일 시 「뾰」, 일부)

어딘가 빛이 닿지 않는 숨겨진 응달에는 눈이 아직 남았다. 빛으로부터 달아나 자신만의 공간에 안착했을지도 모르나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봄빛을 기다리고 그 너머의 여름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이런 문장 앞에서 사나울 정도로 격렬한 무언가를 품는다. 시인은 여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할 그 모든 여름과 8월이 그에게 영원한 여름이 될 거라고.


찬란한 파동, 펼쳐지는 물의 계단, 층층이 밟고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 있을 것만 같고. 사계절이 한 사람의 삶과 같다면, 여름은 청춘 같다. 물론 청춘이란 말 안에 봄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여름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 내게도 여름이 남아 있다면 그건 팔월의 끝, 마지막 빛 같은 것이 아닐까. (8월 31일 일기 「마지막 여름은 나와 함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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