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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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나 위험한 일을 경험하게 된 이후의 삶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 다른 하나는 감사와 충만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다. 작년 2월 아파트에 화재가 났었다. 3층 아래의 집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는 소방관의 안내에 따라 대피했다. 감사하게 인명사고나 피해는 없었다. 그날의 경험과 기억은 한동안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이후의 사고도 변화했다. 모든 게 허무하고 부질없다는 것, 그리하여 더 내가 원하는 쪽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굳건해졌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여겼지만 2월이 되니 2월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공현진의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처럼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공현진은 소설을 통해 그런 마음을 나누고 연대하며 살아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지만 그런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


표제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속 수영 강습에서 만난 ‘주호’와 ‘희주’는 각자의 계기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교사였던 희주는 학폭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지구가 아프고 언젠가 물에 잠길 거라는 사실이다. 다른 이들에게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희주의 사고방식은 옛 연인이나 그녀의 엄마에게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다. 학교를 그만두고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물론 쉽지 않았다. 버리는 대신 필요해서 사들이는 물건이 훨씬 많았다. 우연히 수영 강습을 받게 되면서도 그랬다.


주호는 직장에서 동료가 죽었는데도 공장이 돌아가고 아무렇지 않게 이어진다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기계를 껐다. 뭔가 달라져야 하는 데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동료와 상사의 반응은 달랐다. 처음엔 주호를 이해하는 것처럼 대했지만 회사를 쉬게 만들었다. 예전의 주호라면 그들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무엇이 주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주호와 희주는 별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주호와 희주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행동하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은 책망하고 비난할 권리가 있을까.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은 좋은 단편이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될 대로 되란 식의 흐름이 아닌 그 멸망이 언제일지 모르니 멸망이 온다고 해도 그전까지 함께 잘 살아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혼자서만 살아가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희주는 반짝이던 도시가, 사람들이, 색색의 거리들이 물에 잠긴 모습을 상상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같이 떠내려가는 것,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55쪽)


「녹」은 결혼이주여성과 시간강사인 화자의 이야기로 제목의 ‘녹’은 이주여성의 이름이다. 화자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수업에서 녹을 만났다. 둘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같은 처지지만 녹이 화자의 아이를 돌봐주면서 둘은 수직관계가 된다. 녹을 배려했고 녹의 아이를 데려오는 일이 불편함을 표현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그러다 비 오는 날 녹의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 엄마가 있은 곳으로 오는 길이었다. 녹은 화자가 강의하는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주임교수는 화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주임교수의 말은 악의가 없는 교양 있는 친절한 말이었다. 화자를 해촉하겠다는 뜻은 아닌 것처럼.


다른 의미를 담지 않는, 그래서 훼손되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자격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것이야말로 특권이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말이 끝나고 난 후에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는 특권. (「녹」, 13쪽)


주임교수와 화자의 관계는 녹과 화자의 관계와 같았다. 화자는 녹이 아이를 데려오는 걸 환대해야 했을까. 잘못은 화자에게만 있을까. 돌봄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되었다면 녹도 화자도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화자의 아이는 녹을 찾고 화자 역시 녹이 필요하지만 그건 가능할까. 1인 시위를 하던 녹이 사라진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고발하는 역할에서만 그쳐 아쉽다. 물론 소설에서 대안이나 공동체를 그려낸다고 해도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만.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속 인물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 중심이 아닌 변두리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중심으로 향하기를 간절히 열망하거나 안달 내지 않는다. 그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체념의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짓기 직전」속 인물도 마찬가지다. 소설에서 화자와 ‘석주’는 친구 사이다. 화자는 여행사에서 전화 상담을 한다.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의 노동 운동에 큰 관심이 없다. 석주는 일을 하지 않고 밴드에서 보컬 활동을 한다. 석주의 아버지는 석주가 남자답지 않고 군대를 가지 않고 채식을 한다고 때리지만 돈을 준다. 석주는 밴드에서 잘린 후 스스로 밴드를 결성하는데 거기서도 잘렸다. 그래서 둘만의 밴드를 결성하고 이름을 짓는 중이다.


그저 음악을 함께 하고 싶고 그 시간을 누리고 싶은 것뿐이라고 석주는 말했다. 진심도 자격이 있어야 가질 수 있어? 내가 정말 많은 걸 바라는 거야? 나는 석주의 넋두리를 들었다. (「이름을 짓기 직전」, 131쪽)


석주에게 그냥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충분하다고. 어쩌면 공현진이 이 소설집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그대로 충분하다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시선이나 제도의 개선을 필요하다는걸. 석주처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돌아가는 마음」과 「권능」에서도 만날 수 있다. 「돌아가는 마음」속 언니는 가출을 했지만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지만 목사인 아버지가 축도를 할 때 사라진다. 그런 언니가 5년 만에 돌아와 결혼을 하겠다고 통보한다. 엄마는 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대신 상대가 믿는 사람인지 묻는다. 가출 전 모두의 자랑이었던 언니에게 분명 무슨 일이 있었지만 소설에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일에 대해 부모가 언니를 위로하거나 이해하지 않았다는 건 알 수 있다. 어렵게 얻는 딸을 잃은 이모가 조카인 화자의 모든 걸 간섭하는 「권능」에서도 비정상적인 신앙에 대해 보여준다. 가족 간의 관계에서 신앙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현실적 어려움은 신앙이 아닌 상대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에서 나온다.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의 선자 씨처럼 말이다. ‘진아’와 ‘선자 씨’를 요양 보호사 자격증 준비반에서 만났다. 진아는 아픈 아버지를 돌볼 방법으로 선자 씨는 남편을 부양할 목적으로 공부하며 서로를 돕는다. 수업을 들으면서 선자 씨의 질문을 진아는 빠짐없이 알려준다. 진아가 수도계량기 동파로 새벽에 전화를 걸자 선자 씨는 트럭을 몰고 달려온다. 그런 선자 씨의 합격을 진아는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름을 짓기 직전」과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속 인물의 우정이 아름답고 따뜻하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사라지고 오직 나만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세상이다. 인간이 아닌 AI와 소통하는 시대를 쫓으며 살아간다. 먼 미래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풍경은 어떨까. 적막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마지막 순간에 유일한 존재로 남은 인간 ‘하나’의 이야기를 그린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3인칭의 세계」 속 이런 문장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거리에 멈춰 서서 침묵과 소란이 오가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이 마지막 풍경을 보기 위해 자신이 남아 있었다. 빠르게 시간이 가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시간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은 이후의 세상이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전하고 고독하고 아름답고 무서운지. 소란스럽고 외롭고 소름 끼치고 사랑스러운지. 누군가는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 때문에 자신이 남았다는 것을 하나는 알아챘다. 인간들이 사라진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3인칭의 세계」, 274쪽)


작가는 살아가는 삶이 고단하여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고 어차피 행복한 결말이 보장되지 않은 삶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조금만 더 주변을 둘러보고 용기 내어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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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 Entanglement 얽힘 4
예소연.전지영.한정현 지음 / 다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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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의 말은 진위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긍정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잘하지 못한 일에는 잘할 수 있다는 격려가 담겼고 잘했을 경우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정의 말은 실낱같은 희망의 싹을 짓밟는다.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렇다.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상급 학교의 진학을 선택할 때였다. 근거리의 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랐던 어른들의 말을 솔직하지 못했다. 그 시절 가장 혹독한 말은 모두 할머니 입에서 나왔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여자가, 딸이 무슨...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를 썼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형편이 어려우니 엄마를 도와주면 어떻겠냐, 혹은 미안하지만 이번엔 네가 양보를 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랬더라도 고집을 피웠을 것이다. 모든 행동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지 알면서도 말이다.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 을 읽으면서 왜 그 시절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권력에 엄마는 말을 아꼈다.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했고 하고 싶은 말도 삼켰다. 엄마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서러울 정도로 알고 싶고 듣고 싶다.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에 수록된 세 편은 숨기고 감춰진 말들, 그러니까 해야 하는데 무언의 압력이나 사회적 통념이란 이유로 여성의 일상 속에서 하지 못한 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지영의 「나쁜 가슴」은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이라 우리가 그동안 그것이 얼마나 나쁜 말이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인지 묵인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순간, 여성은 사라지고 모성만 강조된다. 모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산후조리원에서 아이에게 모유를 주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하지만 그게 어렵고 안 되는 산모는 많다. 화자 ‘유진’은 엄마라 불리는 것도 익숙하지 않는데 모유 수유의 어려움마저 엄마의 탓으로 돌린다. 산후조리원장의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단어는 산모들의 기분을 묘하게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리 중 누구도 제 이름이 아닌, 엄마로 통칭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나쁜 가슴」, 14~15쪽)


“나쁜 가슴이 뭐 어때서요?”

그녀의 말에 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공허한 눈 속에서 슬픔과 절망, 무엇보다 단단하게 뭉친 분노를 발견했다. 내 마음이 그녀의 눈에 비친 것만 같았다. (「나쁜 가슴」, 26쪽)


모유가 적은 산모에게 나쁜 가슴이라 말하며 산모를 죄인 취급하는 원장의 말.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은 마음, 역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존재하고자 했던 마음은 왜 부정당하는 것일까. 이 단편은 우리 사회가 모성을, 출산한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준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대단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회운동에 참여해 대학원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고모를 바라보는 조카 ‘성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정현의 「가짜 여자친구」도 다르지 않다. 여학교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교사의 성추행과 폭력을 대하는 미온적 태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연대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차별과 폭행을 옹호하고 당연시하는 말들이야말로 영원히 금지되어야 할 말이라고.


전지영의 「나쁜 가슴」과 한정현의 「가짜 여자친구」이 사회와 개인 사이를 오가는 금지된 말들에 대한 것이라면 예소연의 「나의 체험학습」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말과 관계에 관한 것이다. 소설 속 ‘수이’는 가장 가까운 이와 이별한 반복된 경험으로 상대에게 진심을 내놓지 못한다. 단단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헤어짐을 떠올리기 때문에 항상 불안과 함께다. 과거의 일은 그저 우연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는 수이에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미미 이모와의 만남은 관계의 새로운 확장이다.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엉뚱하면서도 진중하다. 침묵하고 이별할 순간을 두려워하는 대신 뭐든 말하고 함께 해나간다.


고맙습니다, 같이 가, 혹은 그러지 마.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에 대해 생각했다. 둘 중 하나가 그 말을 내미는 순간 나는 이별에 대해 생각하고 만다. 그러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되고 그 순간 마력이 솟구쳐 그 말은 우리를 이별의 순간으로 데려간다. 나는 몇 번이나 그런 식의 헤어짐을 겪었고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갈까?” “ 가자.” 우리는 금지된 말을 하지 않고도 제법 자유롭게 대화할 줄 안다. (「나의 체험학습」, 84쪽)


나는 언제나 관계라는 것이 명명백백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러한 점이 나를 질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나 돌고래나 개나 언제든 누군가를 떠날 수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일지도. (「나의 체험학습」, 117쪽)


언제나 그렇듯 세 작가의 얽힘 코멘터리를 읽으며 개운한 기분이 든다. 독자들이 이 시리즈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얽힘 코멘터리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를 읽고 저마다를 사로잡는 불안과 쌓아두고 숨겨둔 말들이 하나씩 발화했으면 좋겠다. 어떤 불안은 자꾸 꺼내야 없어지기도 하니까. 하지 못한 말들의 무게에 억눌려 위축된 마음이 기지개를 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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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
안효원 지음 / 밤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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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일들과 마주한다. 내가 원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게 삶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바로 수긍하고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 적응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안효원의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는 그런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기록은 일상이고, 기록은 삶이다. 그러니 이 책은 살아가는 이야기,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 란 제목에서 당신은 어디에 끌리는가? 아파본 사람은 아파서에 멈추고, 시골에 살거나 시골을 꿈꾸는 이들은 시골이란 단어가 그럴 것이다. 시골에 살기도 하고 튼튼하지도 않는 나는 읽기 전부터 조금 마음이 아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투병기 혹은 회복기라는 착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냥 사는 이야기. 웃고, 울고, 실수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시골 농부의 이야기다.


저자가 처음부터 귀농을 결정한 건 아니다. 수업이 끝난 토요일 버스를 기다리느니 2시간 걸어서 집에 오던 아이, 고등학교부터는 집을 떠나 자취를 하고 PD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국문과에 입학한 청년은 영화주간지의 기자가 되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소개하는 분야로 이직도 했다. 왕복 다섯 시간의 출근길이 무리였을까 몸이 신호를 보내왔고 수술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회복을 위해 고향 포천으로 돌아왔다. 충천을 위한 시간은 어느덧 토박이의 삶으로 변화했다. 우연한 계기로 초등학교 인턴 국어 교사를 시작했고 도시로 가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바람과는 다르게 저자의 선택은 결론적으로 귀농이었다.


농부의 딸이고 동생이기에 나는 농사를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그래서 저자가 들려줄 농사 이야기가 시시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었다. 너무 재밌고 놀라웠다. 언제나 그렇듯 짐작은 경험이 아니니까. 초등학교 아이들과 수업을 하며 아버지를 도와 조금씩 농부가 되어가는 과정은 즐겁고 감동이었다. 저자에게는 힘겨운 과정이 더 많았을 수도 있겠지만.





농사는 힘겹다. 그냥 씨를 뿌리고 때 되면 수확하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 살피고 자연의 영향을 받고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적절한 비와 바람과 태양 같은 건 없다. 산에 심어놓은 더덕 넝쿨을 다 뜯어내고 옥수수를 뽑는 일은 귀여운 실수다. 아버지는 논에 제초제를 주는 일도 대충 주면 된다고 하지만 그 대충은 아버지만 알 수 있다. 그러니 적당히 논을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실패하고 실수하고 시간을 투자하면 보인다. 손을 놓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깨닫고 알게 된다.


오늘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일 한 시간 더 하고 망가진 거 고치면 그만이다. 고치면 논둑은 더욱 단단해진다. (69쪽)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러하다. 어제와 똑같아서 지겨울 수도 있지만 어제와 똑같으니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 수 있다.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시골이기에 도시에 가면 모든 게 맛있고 좋아 보인다. 일손이 부족해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친구와 친척의 도움을 받아 일을 하는 날은 신나고 즐거운 날도 기억된다. 혼자 사는 이웃 할머니께 아이들과 인사를 가면 과자가 수북이 반긴다. 작은 학교, 작은 동네에 보탬이 되고자 참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한 공동체의 10년 시간은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글쓰기가 된다.


저자의 하루를 상상한다. 매서운 추위로 가득한 겨울의 날들은 좋아하는 책과 둘러싸여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눈 내린 둔덕을 찾아 아이들과 눈썰매를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내 부천댁과 ‘밤나무 북스테이’ 공간을 위해 열심히 뭔가를 계획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아파서 시골에 왔지만 좋아서 시골에 살고 있다는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을지도.


어쩌면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기대하는 삶을 위해 기대하지 않았던 삶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이는 기대하지 않았던 삶에서 기대 이상의 것을 발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가야 할 삶은 알 수 없다. 미지의 날들이기에 희망을 꿈꾸기도 하고 반대로 불안을 버리지 못한다. 삶의 방향을 어디로 둘 것인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분명해질 것이다. 괜찮다는 위로와 함께.

봄이면 뒷산에서 상큼한 상아를 뜯어 먹고, 이제는 먹을 사람도 없어 동네 오디를 혼자 다 따 먹는다. 집 앞에 자라는 딸기는 작고 볼품없지만 제철 딸기의 향을 오롯이 품고 있어 좋다. 버드나무 꽃가루가 사방에 날리면 한상의 세계에 온 것 같고,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서산으로 지는 해를 보는 것도 좋다.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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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22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골에서 살기가 여전한 내 소망이지만 나이 탓에 망설여집니다. 두 딸은 절대로 안된다고 손사레를,ㅠㅠ

자목련 2026-01-27 09:55   좋아요 0 | URL
시골 살기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아요. 편의시설이 부족한 곳도 많고 이웃과의 관계도 중요하고요.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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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거리낌 없어지고 어떤 면에서는 의뭉스러워진다. 뭔가를 소유하고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이뤄야 한다는 의무감이 가득하다. 대화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깊이는 얕아진다. 진심을 표현하는 게 어렵고 가벼운 수긍이나 농담으로 눙 치는 경우가 늘었다. 사느라 그런 거라고, 고단해서 그런 거라고 여기면서도 돌아서면 내심 서럽고 웅크러진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속 단편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작가와 함께 나이를 들고 작가가 그려낸 소설 속 인물이 전혀 남 같지 않음이 반가우면서도 쓸쓸한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공간을 방문할 기회, 부러움의 대상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무의미한 대화 속에서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마는 「홈 파티」나 타국의 휴양지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겪는 묘하게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 소통의 부재보다는 돈의 문제로 부각되는 「숲속 작은 집」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경제적 어려움을 직면한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홈 파티’나 ‘숲속 작은 집’이라는 제목만 보면 우리네 현실과는 다른 삶이 아닐까 싶은 기대와 다른 각도를 보여주는 것. 나의 자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삶의 장면이 어떻게 펼쳐질지 성찰하게 만드는 단편이다.


이처럼 이번 단편집에서 김애란이 들려준 이야기가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그냥 있을 법한 장면이나 삶의 조각이 아니라 누군가 살아내고 경험하는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독자에게 가장 친숙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을 「좋은 이웃」이 그렇다. 층간 소음이 심각한 요즘 좋은 이웃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마찬가지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아니, 내 집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전세를 살며 독서지도사로 공부방을 운영하는 ‘나’는 윗집의 공사로 인해 소음과 일에 차질이 생기고 피해를 입는다. 이사를 오기 전 인테리어 공사 안내를 하고 서명을 받으며 좋은 이웃이 되겠다는 말은 이행되지 않는다. 선의로 이해를 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전세이기에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과 가르치는 학생의 이사로 복잡하다. 장애가 있는 시우가 곧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학부모는 그곳까지 와서 수업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만 선뜻 대답을 할 수 없다. 좋은 이웃이자 좋은 선생님은 의지가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좋은 이웃」, 142쪽)






남들처럼 사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 때가 되면 전세가 아닌 자가의 공간에서 살 수 있다는 행운은 나만 비껴가는 것일까. 이런 마음은 「빗방울처럼」에서도 만날 수 있다. 「좋은 이웃」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문제를 다루지만 한층 심각한 전세 사기에 대한 이야기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앞둔 ‘지수’에게 닥친 일은 뉴스에서나 들은 것이었다. 집 주인이 집을 담보도 대출을 받고 연락 두절이 된 것. 천장에선 물까지 새는 상황에 할 수 있는 선택은 새 아파트 입주가 아닌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는 일이다. 그럴 수 있다 쳐도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은 감당할 수 없다. 아무리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라지만. 누가 지수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이 머물다 떠난 자리가 단정하길 바랐던 지수는 물 새는 천장 도배를 위해 도배사를 부른다. 안방 천장 상태를 살피던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건네는 그 평범한 말을 통해 아무에게도 받지 못한 위로를 그녀에게서 받는다. 생의 마지막을 결심한 그 순간에 말이다.


삶의 끝이 무엇일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그저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언제쯤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희망을 끈을 놓지 않으면서. 그러니 어떤 일들은 그냥 이유 없이 다가오고 일어난다.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의 ‘은미’에게도 그랬다. 달콤한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의 간병이 길지 않을 거라고 여겼지만 현실은 계획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 연인 헌수와의 이별이야말로 예정된 수순이었고 엄마를 떠나보낸 은미는 사십 대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는 나이, 그러나 이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나이, 은미는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화상 영어 사이트를 통해 원어민에서 영어를 배운다. 그 과정에서 ‘안녕’이란 말이 은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연인과의 만남과 헤어짐, 엄마와의 작별, 그리고 원어민 교사와의 이별. 왜 나만 이렇게 버겁고 힘든가 싶었던 모든 것들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는 위안.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안녕이라 그랬어」, 250쪽)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준비하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니다. 삶은 알려주지 않는다. 언제쯤 원하는 삶과 마주할지 알 수 없다. 좋은 삶을 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과 비교하고 절망한다. 행복의 수치를 돈으로 헤아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그들의 사정도 있고 아픔도 있을 것이다. 김애란은 그것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돈과 이웃의 이야기로 엮은 『안녕이라 그랬어』를 통해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더 높은 곳, 다른 계층으로의 이동을 욕망하는 자연스러움을 포착한다. 그리고 나 혼자만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니라고 가만히 위로를 건넨다.


앞으로도 저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작가의 말 중에서, 316~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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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4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거노인인 나에겐 더 실감나는 내용입니다.

자목련 2026-01-22 09:33   좋아요 1 | URL
현실감 있는 이야기라,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 같아요.
호시우행 님, 날씨가 매섭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이성과 감성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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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에서 독자가 바라는 건 무엇일까. 첫눈에 반해 아무런 장애 없이 완벽한 사랑과 행복한 결말일까. 아니면, 숱한 오해와 헤어짐을 반복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일까. 뭐가 됐든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동일시되어 연애 감정을 전달받기를 원한다. 연애를 꿈꾸면서도 연애를 멀리하는 요즘 20~30대가 연애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과 『오만과 편견』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첫 장편소설인 『이성과 감성』은 연애의 첫 시작과 전반적인 모든 과정을 만날 수 있는 연애소설이다. 『이성과 감성』은 앞서 읽은 『오만과 편견』과 인물 설정이나 스토리가 상당히 비슷하다. 『이성과 감성』엔 유머러스한 인물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까. 주인공 자매는 물론이고 상대 남성의 성격이나 집안 배경도 흡사하다. 소설 속 자매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유산이 이복 오빠에게 돌아가며 어쩔 수 없이 정든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사랑이 시작될 것 같지만 사실 첫째 엘리너는 이사 전 사돈총각인 에드워드와 연애 감정을 키우는 중이었다. 물론 사돈 집안에서는 엘리너를 환대하는 건 아니었다. 거리가 멀어져도 둘 사이의 확신이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좀처럼 에드워드의 연락은 없었다. 반면 메리앤은 이사 온 곳에서 두 명의 남자를 만난다. 메리앤을 좋아하는 브랜던 대령과 메리앤이 첫눈에 반한 월러비. 메리앤의 마음은 나이차가 많이 나는 브렌던 대령보다는 또래인 청년 월러비에 향했고 언니 엘리너의 눈에는 둘 사이가 약혼한 것처럼 보였다. 브랜던 대령은 메리앤의 감정을 알면서도 메리앤을 향한 마음을 접지 않는다.


이성과 감성이란 제목처럼 소설 속 두 주인공은 서로 반대 성향을 지녔다. 철저하게 이성적 판단이 강한 언니 엘리너와 생각이나 판단보다는 감정에 이끌려 행동하는 동생 메리앤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 요즘 유행하는 성향으로 보자면 엘리너는 T, 메리앤은 F라 할 수 있다. 엘리너는 한편으로는 신중하다 못해 고지식하게 보인다. 에드워드에게 숨겨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도 차분함을 잃지 않으니 말이다. 메리앤의 명랑은 사랑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제발 한 번 더 생각하면 어떨까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니 미래를 확신하는 월러비가 연락이 닿지 않고 마침내 들려온 소식이 그의 결혼 소식이니 메리앤의 상심은 병이 될 수밖에 없다.





엘리너와 메리앤의 사랑은 끝내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에드워드의 숨겨진 약혼자와 월러비의 결혼은 충격이었기에 브랜던이 사랑하는 이도 메리앤이 아닌 언니 엘리너가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놀라운 건 이 소설이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이라는 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그와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소설에 녹아냈다고 할까. 어디 그뿐인가. 제인 오스틴은 그 시대의 사회적 관습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다. 장자상속의 문제점을 꼬집고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에드워드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재미있는 건 결혼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결혼에서 행복은 운이라 말했던 『오만과 편견』속 샬럿처럼 『이성과 감성』에서도 약혼을 했지만 파혼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을 때 이익을 생각하는 따지며 유리한 선택을 한 루시의 모습은 그 시대의 영국의 사회가 어땠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엘리너와 메리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주변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을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발생하는 감정은 어떻게 표현되는 게 좋을까. 얼핏 생각하기에 엘리너와 메리앤의 감정이 반박씩 드러나면 가장 완벽할 것 같지만 사랑하는 일도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 뭐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스스로를 다잡는 엘리너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였다. 엘리너에게서 K- 장녀 모습이 겹쳐진 건 나뿐일까.


겉으로는 아무런 기쁨도 드러내지 않았고, 어떤 말이나 미소로도 표현되지 않았답니다. 오직 엘리너의 가슴속에서만, 그 고요하고 강인한 만족감이 머물러 있었어요. (477~478쪽)


“나는 침착하게 행동할 거야. 내 마음의 주인이 될 거야.” (542쪽)


사랑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어떠냐고 묻는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지난 사랑의 모습을 가만히 돌아보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어쨌든 돌고 돌아서 사랑의 결실이 이뤄지는 모습은 독자로서 흐뭇하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연애소설이라는 걸 확인한다.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을 맞아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 소설이라는 점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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