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 지음, 김유경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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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카를로스 루이스의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는 ‘우아한 사고’란 말에 끌린 책이다. 우아한 사고란 무엇일까 싶은 거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현대인의 민낯과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sns와 인터넷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우리네 일상에서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들려준다. 더불어 이대로 간다면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지 예측한다. 시대에 뒤떨어질까 봐 트렌드를 모르는 바보가 될까 두려운 마음에 좋아요를 누르고 일상이 상품이 되고 세상.


저자는 디지털 화면이 지배하는 세상, 현재를 ‘스크린 시대’라 말한다. 과연 정확하다. 스마트폰에 빠져 대화는 단절되고 오프라인은 사라지고 온라인만 유효한 세상이 되었으니까. 이 책을 읽기 전 시청한 다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이 거실에 모여 있지만 과거와 다르게 TV 채널에 두고 싸우지고 않고 오가는 대화, 아니 소리가 아예 없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말하며 그게 무슨 문제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비단 다큐 속 가족만 그럴까.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런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더 빠르게 더 강렬하게 변하는 세상에 공감하기 위해 내 속도와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모두 그러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는 어떤 강박과 욕망의 끝에서 마주하는 감정은 허무가 아닐까.


시대와 환경이 변했고 저자의 말대로 집단보다는 개인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 세상이기에 과거와 다르게 가족, 학교, 친구, 지역사회를 통한 영향력은 크지 않다. 장소와 시간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 개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의 역할은 중요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스트린 시대에는 더 중요한 것들, 더 급진적인 것들이 중심이 되어 과거 새대의 경험이나 역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겪을 기후변화, 가상현실, 메타버스, AI가 중요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같은 시간 선상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대성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해시태그, 유행, 뉴스 등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원자화되면서, 동시대성을 인식할 여유조차 없다.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에게 동시대성은 단지 동시성을 뜻하고, 이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느낀다. (59쪽)




스크린 시대 이전에는 TV, 라디오, 신문 등 제안된 미디어에 의존했기에 직접 경험한 것들에 대한 신뢰가 컸지만 현재는 스크린 속의 콘텐츠에 동화되어 세계화된 성공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된다. 본격화된 세계화는 사막화, 기후변화, 인구 과잉, 자원 부족, 전염병 같은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가득한 미래를 전망한다. 이는 창의성을 저해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인식도 제안한다. 챗지피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부한 시각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오히려 점차 퇴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시각 언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역량의 부족으로 이어지며, 시각 정보에 대한 비판적 사고 발달을 가로막는 결정적 걸림돌이 된다. (292쪽)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우아함은 무엇일까.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우아한 사람은 자신만의 미적 취향을 키우면서 스스로 보기에 아름답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린다. 이 말은 기준이 정해졌기에 어떠한 제안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은 선택의 기준이 없기에 휘둘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산다. 누가 좋다고 하면 좋은 거니까,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한 가짜 뉴스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대신 그렇구나 믿게 된다. 그러니까 우아한 사람이란 자신만의 안목이 있고 분별력과 사고력을 갖춘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에서 주장하는 것은 안목을 키우는 일이라고 여긴다. 의심하고 비판하며 정보에 대해 맹신하지 말고 경험하며 자신이 느낌 감정을 이모지가 아닌 다양한 어휘로 주고받으며 상대와 소통하는 일.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생활 태도가 아닐는지. 자연스럽고 평온함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아함이라 생각한다.

철학서라서 어려운 용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스크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신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스마트폰와 거리두기, 더불어 나와 타자의 관계를 점검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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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패티 스미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아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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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최초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게 최초인가 갸우뚱하다. 강렬해서 뇌가 기억하는 것, 그것이 최초가 맞을 것 같다. 선명한 이미지는 아니고 공간과 분위기만 이어진다. 그러니 아무리 애를 써도 젊은 부모에 대한 기억은 잡히지 않는다. 낡은 사진도 정리해서 남은 게 없다. 나는 그 기억을 찾을 수 없고 닿을 수 없다. 아쉬움이 몰려드는 이유는 뮤지션이자 시인인 패티 스미스의 회고록 『패티』를 읽어서다. 자신의 생에 대한 기록, 나를 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쓰려고 한다면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패티 스미스의 이름을 들어봤지만 그의 음악이나 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점이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한 독자가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이 책을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독자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책을 쓰리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의 모든 일을 낱낱이 기록할 거라고. 그렇게 모든 걸 적으면 누구나 거기에서 자신의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머물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날개가 생겨 훨훨 날아갈 거라고. (11쪽)

자신이 기억하는 첫 감각은 움직임이라고 기억하는 아이라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심한 기관지 질환을 앓는 병약한 아이였지만 모든 걸 만지고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아이. 가난한 부모와 차례로 태어난 동생들과 보낸 유년 시절은 패티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철거를 앞둔 주택단지에서 풍요로움보다는 결핍이 가득한 시절. 이사를 다니느라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나룰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패티에게 동생들은 가장 좋은 친구였던 것 같다. 병치레가 잦은 딸을 재우기 위해 자신의 귀한 시집을 건네주는 어머니. 어쩌면 패티의 예술적 감각과 특별함은 이런 어머니에게 받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이 나으면 패티는 동네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그런 패티에게 학교는 재미없는 곳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숲속 연못가에서 악어거북에 빠져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른 아이라니. 나는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다. 패티의 남다름은 또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조차 생경했던 티베트에 관심을 갖는 6학년 아이라니, 정말 독특하지 않은가. 이런 어린 시절의 모습은 나중에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다. 패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라고 생각한다. 열다섯 살의 소녀가 랭보를 만난 건 운명이었다.


자신의 고통을 시집 속에 봉인했을 때 그의 나이가 고작 열아홉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의 고백이 고통에서 그를 해방시켰으리라 믿고 싶었고, 그를 따라 나 역시 모든 걸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영적 여정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111쪽)




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 그것으로 향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패티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나갔다. 대학교 3학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나 글을 쓰고 새로운 예술의 세계로 나간다. 시는 노래 가사가 되고 산문시집의 출판, 드로잉 전시회도 하게 된다. 밥 딜런을 만나고, 시와 세 개의 코드와 소음이 합쳐진 공연. 그 모든 걸 상상하니, 분위기와 벅차오름이 내게로 전해진다. 그리고 프레드 소닉 스미스와의 만나 사랑에 빠진다. 차들이 마구 달려오는데 도로 한가운데서 왈츠를 추는 패티와 프레드. 결혼 후 패티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는 어린 아들이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가 내 글쓰기 시작이었다. 몇 달이 지나자 일과는 더 자연스러워져 나는 내면의 시계에 맞춰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새벽녘 집이 온통 잠의 고치에 싸인 가운데 잭슨의 숨소리가 제 아버지의 숨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었다. 나는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결코 집을 떠나지 않는 여행자의 모험을 계속 써내려갔다. (229쪽)

그러나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패티에게도 소중한 이들과의 이별이 다가온다. 함께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예술적 교감은 나눈 이들의 죽음, 사랑하는 남편과의 영원한 작별까지. 패티는 도움을 받아 다시 새 삶을 시작하고 시를 통해 공적인 삶으로 뮤지션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회고록 『패티』를 통해 나는 뮤지션 패티가 아닌 인간 패티를 만났다. 뮤지션이자 예술가의 행보, 그녀와 함께 노래를 만들고 같은 곳을 향해 나간 동료와 지지자와의 만남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팬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 다른 책을 통해 그녀의 공연, 노래, 시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잘 알아서 반갑고 즐거운 책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아닌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들과 보낸 충만한 느낌, 자신의 아이들과 보낸 그런 시간을 간직한 진솔하고 담담한 글, 인간 패티의 글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나 같은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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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03 1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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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사람들
이유리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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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것과 상대가 바라는 게 같다면 다툼과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의 시작은 다르다는 것이다. 크고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닌데, 상대는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상대와 내가 같은 지점에 있지 않다는 것. 상대는 나와 같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설상가상 네가 감히, 어떻게라는 태도로 내려다보는 사람들. 특권의식을 내려놓을 수 없고, 그것에 방해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은 존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이유리의 『구름 사람들』속 구름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절대 느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기분이다.


구름 위와 땅으로 구별된 세상, 얼핏 구름 위의 삶이란 꿈속을 거니는 삶이라는 상상을 할지도 모른다. 하늘 위의 분홍빛 구름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실체를 알기 전까지 우리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다. 이유리의 소설을 읽기 전 내가 한 기대도 다르지 않았다. 막연하게 뭔가 아름다운 상상, 구름으로 변한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내만 만난 이유리의 소설, 그가 그려낸 상상은 그러했으니까. 신기하고 애틋한 환상이 치유로 이어지는 이야기. 그러나 이유리의 『구름 사람들』는 작정하고 쓴 것 같았다. 환상으로의 도피가 아닌 진짜 아프고 불행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던 것 건 아닐까. 그게 삶의 민낯이라고. 현실이 그러하다고.


더 화려하고 멋진 세계를 욕망해 높게 쌓아 올린 주상복합의 공간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물질로 만들어진 구름. 땅에서는 집을 구할 수 없어 구름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있다. 땅에 지어진 불법 건축물이 아니라 구름에 지어진 세계. 땅에 발을 딛고 살 수 없어서 오염물질로 가득한 구름 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 그러니까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낮은 사람들이 산다. 생계를 위한 일자리는 땅에 있기에 땅으로 내려가 일하고 구름으로 올라와 살아간다.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 구름 사람들은 가까운 태양으로 인해 목덜미가 까맣고 누가 봐도 구름 사람들이라는 게 표가 난다. 그러니 땅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해도 차별의 대상이 된다.


구름에서 나고 자라 스무 살이 된 주인공 ‘하늘’은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 동생과 살아간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게 땅에만 있기에 사다리를 통해 이동한다. 사다리에 지탱해 공중을 이동하는 삶, 그것은 구름 사람들의 생존 그 자체를 묘사한다. 자칫하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아픈 할아버지는 땅에 있는 병원에 다니지만 병세는 여전하다. 나아지는 대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엄마도 아빠, 하늘이 열심히 일하지만 구름 사람이 아닌 땅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구름 사람들에게 어떤 미래를 꿈꾸는 건 아예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는 일자리를 핑계로 주말마다 구름으로 올라왔다가 마침내 돌아오지 않는 선택을 한 건 아닐까.


삶 전체를 조망해보는 것은 불행의 지름길이다. 단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현명하다. (129쪽)


세상은 불행하고 나쁜 것으로만 가득차 있다. 구름도 땅도 마찬가지다. 세상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도 기쁨과는 마주칠 수 없을 거다. 단 한 조각도. (170쪽)





하늘이 지닌 생각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땅에 내려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생을 구박하고 챙기면서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일. 그래도 동갑내기 원과 함께 구름에서 도망치고 싶은 소망쯤을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려 했지만 구름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인공 강우제 살포설은 그냥 둘 수 없다.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강우제를 살포하겠다는 정치인과 땅 사람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구름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하늘이 아빠를 중심으로 데모를 준비한다. 구름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시위를 하러 내려온 구름 사람들을 경찰이 둘러싸 정작 그들이 시위나 목소리는 땅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 시위가 실패로 끝나자 하늘이 아빠는 혼자 무서운 계획을 감행하고 하늘은 끔찍한 소식을 듣는다.


예고된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렇다 해도 아빠의 죽음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하늘을 위로하고 돌봐줄 어른도 보호자도 없이 어린 동생과 남은 하늘에게 더 이상 불행은 없을 것 같지만 삶이란 얼마나 잔인한가. 동생과 둘이 땅에서 살기로 결심한 하늘은 모아둔 돈으로 집을 구하려 애쓰지만 구름 사람이라는 이유로 방을 구할 수 없고 돈이 많이 버는 유튜버가 되겠다며 동생은 구름을 먹는 방송을 하다 목숨을 잃는다. 혼자 남은 하늘은 다큐멘터리 피디 노을의 제안을 수락한다. 구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후원을 받은 돈으로 땅에서 살 집을 마련하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강우제 살포가 현실이 된다. 땅 사람이 된 하늘은 자신의 고향이었던 곳을 찾는다.


어둠 속에서 발판은 조용하게 웅크려 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당장이라도 올라탈 것을 안다는 듯이. 나는 가만히 발판을 쏘아본다. 살아온 날들이 지독하게 길고 재미없는 한편의 농담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농담은 금방 끝이 나지만, 삶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330쪽)


구름이 아닌 땅에서 살아가는 하늘의 삶은 해피엔딩일까. 혼자 지내기에 넓은 집에 사는 하늘이 한방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의 등을 보며 잠들었던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 누군가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강우제는 살포될 게 분명했고 구름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야 했다고. 노을 피디가 아니더라도 하늘에게 접촉한 이가 있었을 거라고. 누군가의 불행을 전시하고 이용하는 모습은 잘 알고 있다고. ‘구름’이라는 공간의 설정만 다를 뿐 우리는 이런 구조에 익숙하다. 가난, 차별, 계급의 문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걸.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정녕 디스토피아일까. 불운과 불행으로 가득할 삶의 끝은 존재할까. 더 나는 세상, 모두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는 없겠지만 괜찮은 세상을 희망하는 건 어리석은 일인가. 조정과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건강한 사회는 어디에 있을까. 읽는 내내 우울하고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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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은선의 8월 시의적절 20
백은선 지음 / 난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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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시인은 이런 단어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 놀라곤 한다. 그냥 보통의 말인데, 나도 알고 있는 말인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골몰하고 골몰해서 도달한 단어라서 그럴까. 아니면 많이 쓰고 많이 읽어서 그럴까. 어쩌면 나는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고 싶고 알려고 애쓰더라도 말이다.

백은선 ‘뾰’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이 책을 통해 기억으로 남을 ‘뾰’. 백은선의 시집을 읽지 않았기에 그가 닿으려는 시의 마음이나 시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뾰』를 통해서 시가 그에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은 정도다. 모르면 어떻고 알면 어떤가. 책을 읽는 순간에는 백은선과 백은선은 원하지 않았으나 엄마의 재능을 닮은 아들을 일상을 그릴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8월의 바다와 술에 취한 백은선의 취한 밤의 한 조각을 그러잡은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은 사라진 밤과 충동적인 아름다움과 지독한 슬픔에 대해서.

이 책 전 만난 백은선의 산문에서도 느꼈지만 엄마 백은선과 시인 백은선은 선명한 경계를 원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다 속이 상한다. 아이와 살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면서도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에 지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어떻게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쓰는 그는 분명 좋은 엄마다. 그 말을 해주고 싶다. 병에 가득 채워 밤마다 한 잔씩 따라 마실 수 있도록.

시는 빛으로 이루어진 층계다.

시는 어둠 속에서 펼쳐보는 일기장이다.

시는 가장 처음 배운 외국말이다.

시는 불속에서 녹아버리는 뼈

손끝에서 터지는 한 발의 총성

노래를 듣는 순간 떠오르는 과거의 풍경이다.

시는 모든 것이다. 사물의 희미한 윤곽, 생물의 동력, 우주가 부풀어오르는 리듬이 바로 시다. (8월 22일 산문「빛의 층계 끝에 다다를 때」 중에서)





그가 쓴 시 길고 긴 시는 너무 버겁다. 그러나 시를 원하는 그의 뜨거운 갈망은 감격스럽다.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 깊고 진하게 뻗어가는 모양, 아니 사고할 수 없는 어떤 것, 아무도 모르게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것들을 채집하는 그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함께 말하자고 그는 독자에게 손을 내민다. 잡아줄 이가 없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는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하나의 시집이라 여겨도 좋겠다.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섬과 바다

사랑스러운 돌고래들

몇 년이나 헤매고 나서 찾았어

입과 귀의 모든 것

위로는 젬병이라 차라리

잘라버리고 싶었던 것들

남은 평생 단 하나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면

뭘 선택할래?

언젠가 네가 물었고

난 눈을 감은 채

하고 답했지

(8월 18일 시 「뾰」, 일부)

어딘가 빛이 닿지 않는 숨겨진 응달에는 눈이 아직 남았다. 빛으로부터 달아나 자신만의 공간에 안착했을지도 모르나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봄빛을 기다리고 그 너머의 여름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이런 문장 앞에서 사나울 정도로 격렬한 무언가를 품는다. 시인은 여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할 그 모든 여름과 8월이 그에게 영원한 여름이 될 거라고.


찬란한 파동, 펼쳐지는 물의 계단, 층층이 밟고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 있을 것만 같고. 사계절이 한 사람의 삶과 같다면, 여름은 청춘 같다. 물론 청춘이란 말 안에 봄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여름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 내게도 여름이 남아 있다면 그건 팔월의 끝, 마지막 빛 같은 것이 아닐까. (8월 31일 일기 「마지막 여름은 나와 함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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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미 지음, 수하 그림 / 마음산책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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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의 『별일』속 11편의 짧은 소설은 별일 아닌 이야기로 여길 수도 있고, 정말 별일이 다 있네로 기억할 수 있다. 몇 편은 재미있게 읽었고 몇 편은 자꾸만 마음에 남았고 몇 편은 만약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보통의 일상을 담은 그러니까 평범한 이야기인데 왜 이리 짠하고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될 에피소드들이 아파서 울컥한다. 변화무쌍한 나의 호르몬이 문제인가. 이 모든 걸 나이 탓으로 돌려야 할까.


사람 사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둘러보면 다들 웃을 일만 가득한 것 같지 않은데 나와 가까운 이들에게만 안 좋은 일이 생기고 걱정이 늘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냥 별일 아닐 거란 말로 위로하기엔 우리는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알안다. 속상함을 삼키고 일부러 표정을 숨기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어떤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일면식 없는 타인, 이웃도 친구도 아닌 누군가에게. 『별일』 은 그런 만남의 이야기라 봐도 괜찮다.


표제작 「별일」을 보면 화자 중희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담배 냄새의 범인을 찾으러 나섰다. 담배 냄새를 따라 도착한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민 여자를 만난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처음 보는 여자였는데 어쩌다 보니 담배 냄새에서 시작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고 서로의 이름까지 알게 된다. 범인을 못 잡고 돌아오면서 그곳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여자의 이름과 대화는 오래 기억하지 않을까. 예상치 못한 만남에서 받은 이상한 위안을 말이다. 공동주택에서 담배 냄새는 별일이면서도 별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고통스러운 냄새가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테니.


현금인출기에서 남의 만두를 훔친 「이상한 이야기」속 나와 만두 주인의 만남도 그렇다. 주인이 오기를 30분간 기다렸다가 만두 봉지를 집어 들었을 때 주인이 등장하다니. 타이밍이 기묘하다. 돌려줘야 하지만 나는 그 만두를 고집하고 그곳에서 나온다. 그 만두의 맛을 정말 잘 알기에, 그 만두가게에서 보낸 시간과 추억이 있어서. 만두가게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건 내 사정이고 만두는 내 것이 아닌데. 만두 주인도 만두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나를 계속 따라온다. 마치 내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것처럼.





빨리 집으로 가야 하는데 그토록 기다렸던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이 오고 답장을 하느라 시간은 지체된다. 휴대폰이 고장 났다고 부탁을 하는 내용이었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왜 이런 타이밍에 연락이 오고 만두 주인은 돌아가지 않는 걸까. 심지어 가까운 사람한테 연락 온 거 아니냐고, 그거 피싱이라고 말한다. 이상하고 낯선 친절을 선뜻 믿을 수 있을까. 무서운 세상이라서 이런 일은 별일도 아닌가.


그러가 하면 「모르는 이야기」속의 만남은 타인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어진 필요한 만남이다. 내 집을 마련한 기쁨으로 화장실을 공사를 맡긴 인테리어 시공업자와의 만남은 기대로 가득했다. 얼마나 신중하게 고르고 선택한 업체인데 사장에게 사기를 당했다. 고소를 진행하고 일상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주인공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남편인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사장의 형이 피해액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하라고 했을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과 통화하고 집으로 방문했던 과정이 진심이라고 여겼는데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 일을 계기로 아내와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도 그 사장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이런 일은 얼마나 허다할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모임 1」과 「이야기 모임 2」의 만남은 신선하다.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서 ‘못 배길 때’ 소집되는 모임이라니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족, 가까운 친구나 이웃과는 나누지 못하고 다른 상대를 찾아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 만나고 헤어진다는 ‘티슈 친구’가 생각났다. 처음 본 타인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름과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는 관계. 정말 별일인데 별일이 아니라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들으러만 가서는 안 된다. 각자 준비해온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는 반드시 같이 밥을 먹고 헤어진다. 닉네임은 색깔 이름 하나로 정한다. 복잡할 것은 없다.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때그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먹는 것뿐이다. (「이야기 모임 1」, 91쪽)


세상에나 이런 일도 있어 하며 호들갑을 떨 수 있는 상대는 얼마나 될까. 그러다가 나는 그런 상대인가 싶다. 통화보다는 카톡이나 문자에 익숙한 시대. 긴 영상보다는 짧은 몇 초의 영상에 빠져드는 이런 세상에 ‘이야기 모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작가 최은미는 살다 보면 아무나 붙잡고 속상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별일 아닌 일도 별일이 되어 서로의 마음에 내려앉아 살아있기를 바라는. 별일 아니니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고 툭툭 털어버리라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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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2-2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최은미 작가님 소설이로군요.
덕분에 눈에 담고 갑니다.
찻잔도 눈에 담았구요.^^

자목련 2026-03-04 09:48   좋아요 1 | URL
이번 짧은 소설은 색다른 느낌이라고 할까요. 나쁘지 않았어요.
피어나는 봄, 만끽하시길 바라요!

다락방 2026-03-0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찻잔 너무 예뻐요!!

자목련 2026-03-10 11:26   좋아요 0 | URL
봄마다 꺼내는 잔인데 예쁘다 칭찬하시니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