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Entanglement 얽힘 2
김이설.이주혜.정선임 지음 / 다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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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는 김이설, 이주혜, 정선임 작가가 참여한 얽힘 두 번째 프로젝트다. 얽힘이란 말에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다. 세 작가의 단편을 읽는 것 외에도 작가들이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는 「얽힘 코멘터리」가 있어 소설이 어떻게 쓰였고 의미하는 바에 대해 들을 수 있다. 맨 마지막에 「얽힘 코멘터리」가 있지만 단편 하나를 읽고 코멘터리를 읽는 방법도 나쁘지 않았다.


이주혜의 「할리와 로사」는 전주로 1박 2일 여행을 온 ‘할리’와 ‘로사’의 이야기다. 그저 평범한 여행 이야기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전주라는 지역이 할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다. 서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할리와 네일숍을 하는 로사는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지내온 이웃이자 친구이다. 점심을 먹고 맣은 시간을 보내지만 사적인 부분은 알려고 하지 않는 그런 관계. 방송에 나온 전주를 보는 할리의 표정을 보고 로사가 결정한 여행지였다.

소설은 전주한옥마을을 시작으로 순교지 산행으로 이어지며 할리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할리가 그곳을 왜 떠나고 싶었는지 가족과 관계를 끊고 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로사는 그런 할리를 지켜보며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순교지 산행을 포기하지 않도록 기다리고 격려한다. 시간이 늦어 성당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저 아래 시내에 불빛이 하나둘 커졌다. 건물들은 이제 별자리처럼 이어지는 조명 윤곽으로 남았다. 할리는 빛과 어둠의 교대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고작 흙 한 줌이 돌아왔는데, 그것을 우리는 귀향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할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무엇을 참는지도 모르고 한껏 참았다. (「할리와 로사」, 39쪽)

할리의 귀향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여행이란 이름으로 전주에 잠시 들렀을 뿐이다. 그건 로사에게도 마찬가지다. 할리가 다음 여행지로 생각한 인천은 로사에게 아픈 기억으로 가득한 곳이니까. 얽힘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공간에서도 그러하다. 좋은 기억으로 연결되는 공간은 친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상처를 떠올리는 공간은 손절의 대상이 된다. 전주를 여행하게 된다면 소설 속 할리와 로사의 여정을 따라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선임의 「해변의 오리배」는 서울에 사는 ‘미연’이 친구 ‘승재’의 부고 소식을 듣고 인천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침 영종도에서 사춘기 딸 ‘유나’가 좋아하는 아이돌 공연을 예매했기 때문이다. 미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유나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미연에게 인천은 과거의 공간이다. 승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때 어울렸던 사이가 전부다. 친구들의 말처럼 사귀거나 한 게 아니므로.

인천에 온 목적은 장례식장이 아니라 공연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나는 공연을 보지 않겠다며 차에서 내린다. 유나의 목적은 공연이 아닌 카톡을 주고받은 상대였던 것. 미연은 유나의 카드 사용 내역을 쫓아 유나를 따라가지만 상대를 확인하는 대신 공연장으로 향한다. 이제부터 미연에게 새롭게 채워질 수 있을까. 유나와 삐걱대는 관계는 풀릴 수 있을까.

김이설의 「최선의 합주」는 다른 두 소설과 다르게 소설의 배경이 인천이다. 엄마는 유부남이었던 아빠와 결혼해 ‘유현’을 낳았다. 유현은 아빠의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존재다. 그러나 어느 날 아빠와 함께 온 오빠는 달랐다. 오빠는 가출을 반복하다 집을 나갔지만 아빠의 죽은 후 돌아왔다. 그 후로 엄마가 돌아시고 유현에게 유일한 가족은 오빠뿐이다. 직장에 다니가 그만둔 무료 강의를 들으며 지내고 시내버스 기사인 오빠의 수입으로 생활한다.

강의를 듣다 만난 경은 언니를 오빠에게 소개한 건 나였지만 결혼과 동시에 오빠가 집을 나간다는 소식에 당황한다. 반기는 이 없는 결혼식에 갔다 나올 수 밖에 없다. 신행 후 집에 온 오빠와 경은 언니는 그들의 집으로 떠난다. 나와 오빠와 경은 언니가 잘 지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가 둘과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뿐일까. 셋이 함께 일 때만 가족이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할까. 그런 생각 때문인지 유현이 배우는 리코더 연주의 공연이 끝난 후 마음이 오래 남는다. 떨리고, 두렵고, 어렵고, 힘들고, 외로운.

아홉 명의 합주는 무사히 잘 마쳤으나 결국 빈 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빈 소리를 그대로 둔 채 연주했다. 관객들은 그게 우리 전체의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럼 상관없었다. 어쩌면 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이 제일 떨리고, 두렵고, 어렵고, 힘들고,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최선의 합주」, 137쪽)

인천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소설을 읽으며 그 시절이 떠올랐다. 연인이 병원에 입원해 일을 마치고 서울까지 갔다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겨울이. 그런 뜨거움, 그런 열정이 있었던 날이 있었다. 인천에 사는 이들에게 익숙한 공간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해변의 오리배」에 나오는 중국집이나 「최선의 합주」 속 유현의 오빠가 운전하는 914번 버스를 타는 승객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다시 「얽힘 코멘터리」를 통해 인물 사이의 관계, 기억, 장소에 대한 대화를 읽으니 북토크나 작가와의 대화에 초대된 기분이다. 소설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점이 얽힘 프로젝트가 바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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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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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 그저 작은 실수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을 잃게 하고 남은 생을 슬픔에 빠져 살게 하는 것. 의도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 순간으로 삶은 멈춘다.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살아간다. 실종된 어린 소녀 ‘시시 래들리’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나의 작은 무법자』에서 만난 이들이 그러하다.


실종된 소녀는 죽음으로 돌아온다. 누가 이런 잔혹한 짓을 했을까. 소녀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을 기대했지만 그건 아니다. 범인은 공개되고 그는 감옥에 있고 소설은 30년 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은 소녀의 조카로 스스로를 무법자라 말하는 소녀 ‘더치스’와 소녀가 돌보는 남동생 ‘로빈’, 남매를 지키는 경찰서장 ‘워크’의 일상이다. 위크는 더치스의 엄마 ‘스타’와 범인 ‘빈센트 킹’의 친구로 30년 전 사건의 목격자다. 형제 같았던 친구를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 일로 평생 그 사건에 갇혀 산다. 그리고 형량을 마친 빈센트 킹이 마을로 돌아온다.


술과 약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엄마 스타와 어린 동생 로빈을 지키는 무법자 더치스는 이제 빈센트도 주시해야 한다. 엄마 곁을 맴도는 수많은 남자들과는 다르다. 이모를 죽이고 래들리 집안을 망가트린 장본인이니까. 그래서 더치스는 자신을 돌볼 수 없다. 로빈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애쓰고 흔들리는 엄마를 붙잡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워크는 그런 더치스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열세 살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삶이라는 걸 알기에. 더치스의 주변을 살피고 도움을 준다. 그 사건으로 인해 워크의 삶도 멈춰지만 중요하지 않다. 친구인 스타와 그녀의 아이들과 빈센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할 뿐이다.


돌아온 빈센트는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다. 부동산 업자가 집을 팔라고 거액을 제시했지만 낡은 집을 수리할 뿐이다. 빈센트가 시시를 죽인 건 사고였다. 어쩔 수 없는 실수로 시시 가족은 물로 모두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가해자가 맞지만 한 편으로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나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더치스의 엄마가 총에 맞았고 현장에 있던 빈센트는 범인이 되었다. 더치스와 로빈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정말 빈센트는 범인일까. 과거 연인이었던 스타를 죽였을까. 소문처럼 그녀가 여러 남자를 만나는 걸 질투하고 복수해서 그랬을까. 무법자 더치스는 로빈을 지켜낼 수 있을까. 소설은 점점 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빈센트는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문다. ‘마사’가 자신을 변호해 주기를 바란다. 마사는 스타의 절친이고 워크의 여자친구였다. 워크와 헤어진 후 마을을 떠나 변호사가 되었다. 빈센트는 왜 마사를 지목한 것일까. 이 일을 계기로 다시 만난 워크와 마사는 빈센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증거를 살피고 사건 당일을 재구성한다.





어린 남매는 외할아버지 ‘핼’의 농장에서 생활한다. 더치스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 외할아버지에게 방어적이고 공격적이다. 당연하다. 이모 시시를 잃었지만 엄마인 스타를 방치했으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손주인 남매까지 모른척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핼은 엄마를 잃은 남매를 자신의 방식대로 돌본다. 농장 일을 알려주고 교회에 데리고 가고 더치스에게 운전을 가르친다. 더치스와 로빈은 그 시간에 스며들고 농장의 삶에서 웃음을 찾고 행복을 느낀다. 마침내 찾아온 남매의 평온은 곧 사라진다. 핼이 다크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다크는 스타의 주변을 맴돌던 남자로 그가 운영하는 클럽에 더치스가 불을 내고 가져간 보안 테이프를 찾으러 먼 농장까지 온 것이다.


유일한 보호자였던 핼의 죽음으로 남매는 위탁가정에서 입양을 기다린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부부를 만났지만 더치스의 나쁜 행동으로 무산되고 둘은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엄마를 죽인 빈센트가 석방되는 방송을 보기 되고 더치스는 로빈을 두고 떠난다. 자신이 없으면 로빈은 원하는 곳으로 입양될 수 있으므로. 빈센트를 만나기 위해 그를 죽이기 위해. 긴 여정의 끝에서 만난 빈센트는 스스로 생을 마친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은 모두를 울게 만든다.


더치스가 핼의 이웃인 돌리와 나누는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사람, 나와 같은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게 생인지도 모른다. 어린 더치스의 바람처럼 처음으로 돌아가 숨 쉬기부터 할 수 있다면 괜찮을까. 아닐 것이다. 어떤 기억은 평생 우리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까. 숨 쉬기 이후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니까.


“우리는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될지 고를 수 없는 건지도 몰라. 어쩌면 그건 미리 정해진 건지도 몰라. 어떤 사람은 우리처럼 무법자야.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서로를 찾아내는 건지도 몰라.” (488쪽)


“끝맺음이요. 난 다 잊어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숨 쉬기부터 다시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488쪽)


『나의 작은 무법자』는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일들로 채워진 생의 비밀을 발견하는 아름답고 놀라운 미스터리 소설이다. 돌이길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나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온통 절망뿐인 삶이 단 한 사람의 사랑과 볼살 핌으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시 숨을 쉬고 그 이후를 채울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빈센트를 놓지 않고 그와 그가 사랑한 스타와 그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워크, 서툴지만 더치스와 로빈에게 애정을 쏟는 핼, 평생 스타를 사랑한 빈센트를 통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확인한다. 고통의 삶을 견딜 수 있는 건, 불행의 연속인 삶에서 나가갈 수 있게 하는 건 사랑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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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9 1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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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9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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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시 일상시화 7
안미옥 지음 / 아침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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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산다. 시를 읽는다. 그냥 읽는다. 끌리는 대로 읽다 꽂히는 시가 있으면 메모한다.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한 시. 그런 모호함이 좋다. 소설에도 모호함이 있지만. 왠지 모호와 난해는 시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시인 안미옥의 에세이 『빵과 시』는 시를 쓰는 마음, 시를 준비하는 마음을 빵과 연결시켜서 보여준다. 시를 좋아하는 이라면, 아니 빵을 좋아하는 이라면 반가고 기꺼울 책이다.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 아침달 시리즈 ‘일상시화’의 마지막이라니 아쉽다.


시인은 시를 언제 쓸까, 떠오르는 시상을 어떻게 붙잡을까. 시어에 숨겨진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시인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따라오는 생각이다. 시를 써야지 준비하면 바로 시를 쓸 것 같은 생각은 독자의 오만이다. 단 번에 시가 되고 단 번에 소설이 될 수 없으니까. 그러니 아무 말이나 쓴다는 시인의 글은 괜히 반갑다. 아무것도 아닌 나도 뭔가 쓰려고 하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시간을 정해두고 그 안에 쓰려고 노력하니까. 쓴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렵다는 건 모두에게 같다는 게.


시를 쓰기 전에 한글 창을 켜고 시간을 정해둔 뒤 아무 말이나 쓴다. 일종의 모드 전환을 위해 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시의 주제와 상관없이 워밍업의 시간은 늘 필요하다. (33쪽)


『빵과 시』이라는 제목답게 시인은 빵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빵, 자주 가는 카페, 친구들과의 만남, 동네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빵을 좋아하는 이라면 빵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 모양과 맛을 떠올릴 것이다. 잘 모르는 빵이 등장하면 나는 검색을 했다. 아, 이런 빵이구나. 시인이 좋아하는 카페가 나오면 나는 또 검색을 했다. 내가 모르는 공간, 한 번도 간 적 없고 앞으로 방문할 일이 없을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을 상상했다. 「이혜와 서울」란 이름의 카페는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 같다.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한 어떤 그리움까지 생겼으니까.


빵은 어디에나 있다. 빵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또 가장 멀리 있는 형태로. 손 닿을 곳에. 마음 닿는 곳에. 시가 그러한 것처럼. (62쪽)


가만가만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아이의 정직한 마음은 웃음과 감탄을 불러온다. 빵과 시에 대한 글을 쓴다는 엄마에게 관심을 보이고 천변의 돌 다리를 건너며 멋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행동으로 나온다는 아이.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시인의 바람은 생각하면 생각이 밖으로 나오고 문장이 다음 문장을 쓸 수 있게 만든다고 이어진다. 시인처럼 좋은 시와 문장을 쓰는 삶은 아니지만 생각이 행동으로 나온다는 걸 잊고 있었구나 돌아보게 된다.


시는 흐르고 있는 것일까. 멈춰 있는 것일까. 흩어지는 것일까. 가라앉아 있는 것일까. 사라진 것일까. 새겨진 것일까. 어떤 시는 투명한 상자 안에 서 영원히 흐르고 있는 모래바다 같다. 가라앉으면서 흐르는. (83쪽)


시인에게 모든 건 시로 연결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글을 읽기 전까지는 시인이 원하는 시와 독자가 어떻게 읽어주기를 바라는지 몰랐다. 모든 시에는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은 질문을 발생시키고 삶과 고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런 마음은 당근을 먹으면서 당근 케이크를 생각하고 자꾸 씹히는 당근 조각 같은 시로 이어진다. 세상의 모든 시가 품은 괴로움은 시인이 시를 쓰며 넣어둔 씨앗은 아닐까.


시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만큼 사람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동물 앞에서도, 생활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끄러운 일 앞에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생활 없이, 이웃 없이, 사랑 없이, 반성 없이는 시도 없고 시인도 없다. (139~140쪽)


빵이 좋아서, 시가 좋아서 만난 책. 시가 더욱 궁금해졌다. 바게트빵을 상어라 생각하는 아이를 키우고 유서를 편지처럼 보낸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고 쓰는 사람이 된 시인. 그 마음이 시가 되어 나와 닿았을 순간. 시를 읽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일이고 고통을 읽는 일이고 헤아리는 일이다. 다 알지 못하고 알 수 없어 오독하며 시를 읽는다.


사람이 자라면 눈물도 더 크게 자란대 다들 이걸 어떻게 감추고 살까 매일 한 뼘씩 커지는 눈을 어디에 묻어두고 있는 걸까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거울 속에 감춰둔 것 같다 그래서 거울을 볼 때마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되나봐

너는 빵 속에 숨겨두었지? 그래서 울고 싶을 때마다 빵을 먹잖아 부드러운 빵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너는 매번 딱딱한 빵을 먹는다 잘 씹히지도 않는 빵을 오래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시 「적란운 위에 쓴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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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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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인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으로 살고 있다. 속내는 멈춤 그 자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럴 수 없기에 천천히 느린 속도로 산다. 빠르게 가라고 재촉하는 이가 없는데 왜 마음은 불편한 것일까. 이런 마음은 괜찮다고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소설을 읽었다. 윤성희의 단편집 『느리게 가는 마음』를 읽으면서 마음속 더위를 날려주는 바람을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익히 알았던 윤성희의 소설이 주는 기쁨을 만끽했다. 삶의 슬픔과 불운에 대해 수군대고 혀를 차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다며 달래는 유머.


우리의 삶 전체를 행운으로 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디에도 그런 삶의 주인공은 없다. 누구나 누군가를 잃고 상실과 동행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다만 견디는 것이다. 켜켜이 쌓여있던 슬픔을 지켜보고 알아주는 소중한 이와 함께. 『느리게 가는 마음』 속 8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 곁을 지키는 이들처럼. 혼자가 아니기에 소설의 주요 키워드인 생일을 축하하는 이들이 있기에 살아간다.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인물의 구성이 윤성희 소설의 장점이다. 처음부터 특별하고 끈끈한 관계가 아닌 시간이 지나 단골이 되고 우연한 만남의 연속으로 친밀해진 사이라고 할까.


사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8편의 이야기는 슬프고 우울하다. 가장 가까운 이의 부재를 견디며 살아간다. 죽은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아빠에게 엄마가 남긴 마지막 김치라는 걸 모르고 매일 먹는 김치볶음밥을 그만 먹고 싶다고 말하는 아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의 생일에 가장 좋은 그릇을 꺼내 생일상을 차리고 콜라를 따라주는 엄마, 혼술 유튜버의 영상에서 죽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그 식당을 찾아가는 아들.


때문에 『느리게 가는 마음』에서 기억을 떠올리고 축하를 건넬 수 있는 생일이라는 장치는 유용하다. 잘 모르는 사이여도 반갑게 축하를 해주고 거짓으로 생일이라고 말해도 식당에서는 미역국을 내준다. 외할머니의 생일이라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고 지난 시간을 이야기한다.






이쯤에서 표제작 「느리게 가는 마음」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암 투병 중인 엄마 대신 나를 살피고 챙기는 이모와 함께 느리게 가는 우체통을 찾아간다. 이모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보낸 엽서를 찾기 위해서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결혼해서 엽서를 받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이모의 엽서를 찾다가 다른 이의 엽서를 읽게 되는데 자신에게 보낸 내용이 많았다. 1년이 지나 자신에게 도착할 마음.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모한테 엽서에 적힌 사연들을 몰래 읽어봤다고 고백했다.

“뭐 근사한 내용 있었어?”

“거의 비슷비슷하던데. 별거 없더라.”

“그치. 별거 아니지. 그런데 또 별거지.” (「느리게 가는 마음」, 98쪽)


별거 아닌데, 별거인 것. 남편이 죽고 음식 하기가 귀찮았는데 자신들이 맛있는 거 먹으려고 식당을 시작했다는 할머니들의 말도 비슷하게 다가온다. 시골길에서 느리게 가는 만물트럭에서 생일 케이크를 발견하는 우연. 남녀노소 나이와 상관없이 축하할 수 있는 날, 생일. 아픔과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우선은 축하로 시작할 수 있는 생일이 있다는 게 참 좋다.


친구 윤석에게 생일이 아닌데 생일 축하 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해피 버스데이」의 ‘나’도 그랬을 것이다. 구내식당의 미역국과 잡채를 먹으며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덕분에 직장 상가의 단골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는데 그곳에서 가스폭발 사고를 당한다. 크게 다치지 않는 나는 항상 동생에 비해 운이 나쁘다고 여겼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생일 축하 인사를 받을 수 없는 동생을 떠올리며 동생의 흔적을 찾는다. 그러니 엉뚱하게 생일이 아닌 날에 생일 축하를 하고 그런 축하 인사를 받고 싶다. 생일이 아니어도 생일처럼 보내는 하루, 그런 하루가 있어 다른 힘겨운 하루가 살만해질지도 모르니까.


“생일 축하해.” 나는 윤석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 생일은 아직 멀었어.” 윤석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생일처럼 지내라고 말했다. 점심에 미역국도 사 먹고 저녁에는 케이크에 촛불도 밝히라고. (「해피 버스데이」, 192~193쪽)


생일에 아빠가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아 가출하는 소설 속 십 대 청소년이 아니라서 그런가. 나이가 들면서 생일을 챙기는 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미역국을 챙겨 먹지도 않고 케이크를 사지도 않는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는 가족이나 친구가 생일을 챙겨주기를 바랐다. 생일을 챙기는 일, 나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다. 문득 언젠가 나의 부재에도 나의 생일을 챙기는 이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매일을 생일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생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도 좋겠다. 생일이라는 이유로 실수나 잘못을 용서받고. 누군가 세상을 떠나는 날, 누군가는 태어나는 것처럼 죽음과 상실의 자리에 기쁨과 축하로 채워질 것이다. 다시 또 삶은 그런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오늘 생일을 맞는 누군가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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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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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선 길을 잃기 마련이다. 두렵거나 무섭다기보다 처음 간 곳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길을 찾으면 그만이라고. 돌아갈 곳이 있으니 괜찮다고. 그러나 돌아갈 곳이 어딘지 잃어버리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걸 발견하면 절망에 빠진다. 도움을 청해야 할 이가 아무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폴 윤의 단편집 『벌집과 꿀』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러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향을 떠나고 길을 나선다. 정착한 듯 보이지만 뿌리를 내린 적 없다. 원망할 대상은 사라졌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들의 여정(여행이든 이주든)은 고단함을 넘어 고독하고 쓸쓸하다. 때문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타인을 돌본다.


첫 번째 단편「보선」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교도소에 갔다가 출소한 ‘보’의 이야기다. 교도소에서 만난 이의 소개로 낯선 동네의 카지노에서 일한다. 집과 카지노를 오가는 게 전부인 어느 날 동료의 잃어버린 아이를 찾다가 주인집 딸과 마주한다. 그녀에게도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족이 있지만 가족과 살지 못하고 집을 원하지만 집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감정을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자신이 살아온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사연도 마찬가지다. 「코마로프」 속 탈북한 뒤 이곳저곳을 떠돌다 스페인에서 청소 일을 하는 나이 든 여자 ‘주연’의 사연, 런던 외곽 한인타운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크로머」 속 탈북 한인 2세 부부의 이야기.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곳이 없는 주연은 사람들이 아들이라 말하는 남자에게 진짜 엄마의 주소를 전하고 한인 2세 부부는 길을 잃은 아이가 신경 쓰이고 걱정된다.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도는 삶.


소설 속 인물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한 한국계 디아스포라들이다. 「보선」, 「코마로프」, 「크로머」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지만 조선인 고아와 에도시대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역참에서」, 할아버지를 이어 사할린섬의 교도소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고려인 십 대 소년 ‘막심’의 이야기 「고려인」, 러시아 극동 지방의 고려인 정착지에 임관한 러시아인 장교가 목격한 고려인의 삶을 보여주는 「벌집과 꿀」, 한국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의 이야기 「달의 골짜기」는 한국의 아픈 역사를 불러온다.







표제작 「벌집과 꿀」과 「달의 골짜기」는 짙은 여운을 남겼다. 내가 잘 모르는 역사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벌집과 꿀」의 고려인에게 러시아인 장교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자 외부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하나가 되어 뭉쳐야 했다. 고국을 떠나온 그들에게 그들을 지킬 수 있는 이들은 그들뿐이라고 믿었을 테니까. 설령 무지한 믿음일지라도.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고 관심도 없는 땅에서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벌집과 꿀」, 198쪽)

“그럼에도 내일이라는 게 있지 않게습니까?”(「벌집과 꿀」, 199쪽)


전쟁의 상흔만 남은 고향 집을 고치고 혼자 살아가는 「달의 골짜기」속 ‘동수’에게도 다르지 않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지만 동수에겐 그곳이 집이었으니까. 땅을 일구고 가축을 키우고 한 번씩 만나는 땜장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샀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전쟁고아인 남매를 거두며 살아간다. 결국엔 서로에게 상처로 남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매일 밤 여기서 달이 뜨고, 기울고, 부서졌단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냈지. (「달의 골짜기」, 250쪽)


그들은 살아내야 하기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땅을 개간하고 넓혀간다.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나아간다. 어느 누구도 정확한 방향과 길을 알려주지 않지만 멈출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실패를 반복하며 방향을 찾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낸다. 그곳이 어디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는 진리에 기대어. 변하지 않는 그 사실은 여전히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어딘지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나가가는 이들에게 애틋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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