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文解力)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금일 오후에 만나자고 했는데 금요일 오후라고 여긴다거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말에 제대로 사과를 하라고 한다든지. 상대가 전하는 말의 뜻을 다르게 해석하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유명 연예인이 문해력 검사에서 중학교 수준이 나왔다며 문해력 공부를 하고 있다는 방송을 보고 나도 문해력 검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연예인이 문해력 수업을 하는 방송도 보게 되었는데 수업 중 나온 특질이란 단어를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지만 말하기 어려웠다. 아니, 나는 그 단어의 뜻을 몰랐던 게 맞다. 그런데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 같은 이에게 『우리말 나들이 문해력 편』은 안성맞춤의 책이 아닐까 싶다.

‘단어 한 끗 차이로 글의 수준이 달라지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책을 통해 새삼 알게 되었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도 말이다. 책은 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에서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뜻이 달라 헷갈리는 표현」, 2장에서는 「습관처럼 굳어 틀린 줄도 모르고 쓰는 표현」, 3장에서는 「문해력과 문장력을 동시에 높여주는 표현」을 알려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뜻이 달라 헷갈리는 표현」에서는 ‘갑절’과 ‘곱절’처럼 둘이 같은 뜻이 아닐까 싶은 ‘너비’와 ‘넓이’, ‘돋구다’와 ‘돋우다’ 말들과 뭐가 다른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 ‘밤새다’와 ‘밤새우다’, ‘신소리’와 ‘흰소리’ 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소개한다. ‘신소리’와 ‘흰소리’를 보면 이렇다. 신소리는 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이며 흰소리는 터무니없이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거드럭거리며 허풍을 떠는 말이다. 흰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되겠다. 그리고 신소리를 쉰소리로 잘못 쓰거나 잔소리와 같은 뜻으로 오해하지 말아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잘못 알고 사용한 단어와 만났다. 세상에나 정말 창피한 순간이었다. 날씨가 개지 않고 흐린 상태는 ‘끄물끄물하다가 맞는데 나는 ‘꾸물꾸물하다’로 알았던 것이다. 한 번의 의심 없이 말이다.






「습관처럼 굳어 틀린 줄도 모르고 쓰는 표현」에서는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 자주 쓰는 말‘ 겨땀’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 많은 이들이 겨땀이 표준어가 아니라는 걸 모르고 사용할 것이다. 겨땀이 아닌 ‘곁땀’이 표준어라는 걸 잊지 않을 것 같다. ‘밥 한 번 거하게 살게’라는 말도 틀린 말이다. 거하다는 산 따위가 크고 웅장하다는 말이고 넉넉하다는 뜻은 건하다. ‘밥 한 번 건하게 살게’, ‘아침을 건하게 먹었다’로 쓸 수 있다. 가장 흔하게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이 ‘흡연을 삼가해주세요’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게 왜 잘못된 말이지 하고 생각하는 이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바른 표현은 ‘흡연을 삼가주세요’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문해력과 문장력을 동시에 높여주는 표현」에서는 정확한 뜻을 모르면서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들을 만날 수 있다. ‘미더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기분이 좋다면 ‘미덥다’의 뜻을 아는 사람일 것이고 뭐지 싶은 생각이 든다면 미덥다란 말을 모르는 것이다. 믿음이 가는 데가 있다란 말이니 주변 동료나 친구에게 사용해 보면 어떨까. 굳건하고 확실하여 아주 미덥다는 뜻의 ‘구덥다‘,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참되고 미더운 데가 있다는 뜻의 ’실답다’를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사투리도 외래어도 아닌 알고 보면 표준어」란 부록도 유익하다. 사투리로 착각하거나 비속어나 잘못된 말이라고 여겼던 말이 표준어라니. ‘까지다’, ‘빠대다’, ‘삐대다’, ‘싸대다’, ‘오지다’가 모두 표준어였다. 그럼 ‘아따’는 표준어일까? 맞다. 표준어다. 아따는 사투리가 아닌 무엇이 몹시 심하거나 하여 못마땅해서 빈정거릴 때 가볍게 내는 소리다.

매일 쓰는 우리말이 가장 어렵다. 새삼 확인한다. 『우리말 나들이 문해력 편』은 우리가 쉽게 사용하고 무심코 쓰는 말의 소중함과 문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닌 사회적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말한다. 어떤 말을 쓰고 어떤 표현을 하느냐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고 상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올바른 언어 사용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자신과 가족, 친구의 문해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봐도 재밌을 것 같다. 처음 만나는 것처럼 생소한 말이 많겠지만 스마트폰의 세상이 아닌 재미난 우리말의 세계에서 충분히 좋은 시간을 갖게 되지 않을까. 꼼꼼하게 읽고 반복해서 읽는다면 풍부한 우리말을 쓰며 문해력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우리말 나들이 어휘력 편』 과 함께 든든한 우리말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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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6-2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물끄물하다˝ 완전 충격인데요?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다 잘못 쓰고 있었네요.

자목련 2025-06-27 11:42   좋아요 0 | URL
잘못된 표현이라는 사실 조차 모르고 그냥 쓰고 있는 말들이 무척 많았어요.

잉크냄새 2025-06-24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흡연을 삼가주세요˝ 라는 표현에 적응하기는 금연보다 힘들 듯 합니다.
아마 대부분 ‘가‘와‘주‘ 사이에 ‘해‘를 끼워넣고 자신의 해박함에 흐뭇해할것 같네요.

자목련 2025-06-27 11: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삼가주세요라고 쓰면 말씀처럼 고치는 이들이 있을 것 같아요 ㅎ

젤소민아 2025-07-0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리버리‘도 틀린 말이고 ‘어리바리‘가 맞더라고요~~. 이런 책 정말 유용하고 유익합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예보는 정확하게 맞았다. 마치 알람을 맞춰놓은 것 같았다. 그치는 시간도 그랬다. 비가 올지 몰라 우산을 챙기는 게 아니라 반드시 우산을 가지고 외출을 해야 하는 걸 알려준다.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우연의 순간에 맞닥뜨리는 감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었다. 비 때문에 챙기지 못한 것들을 할 여유를 준 것일까. 어제의 하늘과는 다른 하늘이다.


장마의 나날을 보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비를 좋아하지만 비가 지닌 무서움을 잘 안다. 비가 몰고 오는 불쾌지수를 잘 다스려야 한다. 첫 번째 준비로 에어컨을 새로 장만했다. 장만이 아니라 선물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누나를 위해 동생이 선물한 시원함이다. 공간의 재배치가 필요했다. 덕분에 책장을 정리했다. 이번에도 책을 버렸다. 좋아했지만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 읽겠다 다짐하며 버리지 못한 책, 그리고 CD를 정리했다. 갖고 있는 게 많지 않았지만 막상 버리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선물 받은 게 많았다. 고마운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책장에는 공간이 생겼다. 드립 커피와 몇 권의 책을 샀다. 버리는 만큼 맞춰 들이는 건 아니니까. 김애란의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 『소설 보다 : 여름 2025』는 구매 계획이 있었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은 고민하다 구매했다. 왜냐하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을 읽다 만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글이라는 건 알겠는데 어려웠다. 친애하는 이웃 님의 추천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알 수 없으니까.


비가 지나간 아침은 고요하다. 바람도 없지만 시원하다. 이 시원함이 곧 사라질 걸 알기에 더욱 달콤하다. 다시 비가 오기 전 해야 할 일은 세탁기 돌리기. 게으른 마음을 달래며 해야 할 일이 많다. 주말의 아침이 분주하다. 모두 장마의 나날을 안전하게 지냈으면 한다. 눅눅한 일상이 계속되겠지만 보드라운 시간도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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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의 것들을 사랑한다. 김소연의 한 글자 사전을 떠올리지 않아도 저마다 사랑하는 한 글자가 있을 것이다. 우선 떠오르는 것들은 책, 빵, 시, 잔, 꽃, 봄, 눈, 비, 그리고 너. 한 글자에서 세세하게 파고들면 더 다양한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책도 좋아하는 장르가 있고 작가가 있고 간직하는 책이 있다. 빵도 마찬가지다. 빵을 다 좋아하지만 특히 더 애정하는 빵이 있기 마련이니까. 봄의 어느 순간이 좋은지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주말부터 시작되는 장마를 생각하면 선뜻 장맛비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상시화 시리즈 안미옥의 『빵과 시』를 말하려다 보니 이렇게 길어졌다. 그리고 때마침 어젯밤에는 나에게 꽃이 도착했고. 친구가 보낸 사라 작약이다. 꽃과 함께 온 카드에는 안녕^^이란 말이 전부였다. 안녕의 모든 뜻이 담긴 것 같았다. 꽃을 받은 나도 친구에게 안녕^^이라 카톡을 보냈다.


빵과 시와 꽃이라니 좋지 아니한가! 내년의 작약을 기약하고 있었는데 다시 작약이 왔고 나는 기분이 매우 좋다. 6월에도 작약의 시간은 계속된다. 잎을 떼지 않고 최대한 오래 두기로 했다. 왠지 더 풍성해 보이는 게 좋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활짝 피어날지 지켜본다.







6월의 책은 산문과 시를 만날 수 있는 안미옥 시인의 책 한 권이다. 한 권으로 충분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싱그러운 청포도를 표지로 내세운 『소설 보다 : 여름 2025』와 김애란의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곁에 두게 될 것이다. 6월의 책으로 3원 정도면 칭찬 감이다.



빛을 착각한다

매일 쏟아지고 있다고

사랑과 분노처럼

흐린 날이나 캄캄한 날에도

쏟아지고 있다고

어느 날엔 그림자와 빛을 혼동했다

섞이지 않는데도

사랑만 이야기하는 사람을 믿지 못했다

길에는 어제 내린 눈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 발자국에 단단해진 눈

흰빛을 잃고 녹지도 않고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잘 다져진 마음들

나는 슬픔의 버터와 위로의 반죽을

겹겹이 쌓아 빵을 구웠다

깨끗한 마음은 무엇으로 만들까

어떤 형태로 남게 될까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나는 오독되기 위해 애쓴다

식탁 위 놓아둔 빵

만져보면 돌처럼 딱딱했다

(「크루아상」, 전문)



시를 읽으니 빵이 먹고 싶다. 빵이 없다. 빵을 살까 생각한다. 작약이 부풀어 오른 빵 같다. 빵을 먹는 대신 작약을 본다. 눈으로 먹는다. 맛은 모르고 상상할 수 없다. 그냥 작약 빵이라는 말이 재밌다. 어딘가 작약 빵이 있을 것 같다. 빵과 시와 꽃! 정말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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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6-1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약빵!
부드러운 맛일 것 같아요.^^
마지막 작약이라고 하시니 이제 곧 수국꽃이 두둥 등장할 차례이겠습니다.
공원에 수국꽃이 몇 송이씩 눈에 띄더라구요.
소설 보다 시리즈 이번 여름책도 넘 이쁘네요. 어제 딸아이가 소설 보다 책 예쁘다고 완전 흥분하더니만 저 표지였군요. 음…봄 책도 예뻤었는데 생각이 많아지네요.^^
김애란의 소설은 기다리고 있구요.^^

자목련 2025-06-15 10:07   좋아요 1 | URL
부드러운 작약빵을 상상합니다!!
나무 님은 벌써 수국을 보셨군요. 이번 소설 보다 시리즈 표지가 정말 예뻐요.
김애란의 소설은 기대가 크고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애타는 그리움만 남긴다.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나 <폭삭 속았수다>속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한 번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손을 잡고 눈을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을 아는 소설이 있다. 죽은 영혼이 땅에 뿌리를 내려 피어난 꽃, 사혼화. 그 꽃잎을 달린 물을 마시면 꽃에 깃든 영혼과 마지막 한 마디를 나눌 수 있는 놀라운 이야기 김선미의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가 그것이다. 죽은 자의 영혼이 꽃으로 피어난다면? 사랑했던 사람을 딱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마지막으로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혼자 남은 마리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혼화를 보는 능력이 있다. 마리는 사혼화를 찾아주고 관리하는 ‘귀화서’에 계약직으로 취직한다. 떠난 이를 향한 간절함만 있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사혼화. 그러나 쉽게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와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기 못했기에 사혼화를 찾는지도 모른다. 귀화서에서 마리는 그들을 돕는다. 하지만 사혼화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간절하게 찾는다 해도 누구나 사혼화를 볼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화서가 존재하는 것이고, 마리 같은 이들이 있다. 소중한 이의 사혼화를 찾는 이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안타깝다. 마지막 영혼이 꽃으로 피어난다는 설정. 꽃으로라도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은 간절함이 가득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슬그머니 내 슬픔도 꺼내고 싶다. 꿈에서라도 선명한 얼굴을 보고 싶은 엄마, 돌아가신 엄마는 왜 한 번도 내 꿈에 나오지 않는 걸까. 어쩌면 소설 속 시혼화처럼 어딘가 꽃으로 피어나 나를 지켜보는 건 아닐까.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엄마가 나의 영혼을 선택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마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사혼화를 만나면 한눈에 알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관계없는 사람 눈에는 야생화일 뿐이지만 영혼이 선택한 사람에게는 빛이 확실히 보이고 자신을 당기는 듯한 강렬한 에너지도 느껴져 그냥 지나칠 수 없거든요.” (101쪽)


사혼화를 찾아 전하고 싶었던 단 한 마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화서’의 사람들은 죽은 자를 애도하고 상실감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사혼화로 피어나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함께 슬픔을 나누고 남을 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후 그들을 기억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떠난 이들이 바라는 것도 바로 그것이니까.


“저는 앞으로도 사혼화의 미련을 보는 사람이 될 거예요. 사혼화를 찾고, 지키고,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도와주고 싶어요.” (325쪽)


김선미의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를 읽다 보면 영혼을 소재로 한 사마란의 소설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이 떠오른다. ‘챠밍 미용실’은 죽은 사람을 단장해 주는 미용실이다. 챠밍은 이런 일을 500년 동안 해왔다. 죽은 사람을 보는 건 물론이고 고양이와도 말을 나룰 수 있다. 소설은 챠밍 미용실에 방문하는 죽은 자의 사연이나 원한 같은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호러이면서 판타지인 세계로 안내한다. 죽은 자를 안전하게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챠밍은 죽은 자를 단장해주고 그들에게 구슬을 받는다. 구슬은 챠밍에게 깊은 잠을 안겨준다. 죽은 자와 챠밍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존재인 것이다. 마리와 귀화서 식구들이 그러하듯이. 떠나간 이들과 그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연결하는 존재. 일본 소설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 속 고양이도 그러하다. 19년의 묘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고양이 ‘후타’는 의뢰한 사람이 만나고 싶은 인물을 찾아가 그들의 마음 중 일부를 전한다.


이승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딸은 저승에서 잘 지내고 있고 내년이면 학교에도 들어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한 그 마음을 들은 부부의 사연은 여전히 뭉클하다. “추억도 소중하게 키우면 성장하는 걸까.” (124쪽)그들이 나누는 대화처럼 추억을 기억하고 싶다. 언제 어디서 고양이 ‘후타’를 만날지도 모르니 주변의 고양이를 잘 살펴봐야 할 것만 같다.


그리워하면 그리워하는 대로, 기억하면 기억하는 대로 잊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삶을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는 일은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를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미안하다는 말, 그립다는 말, 그 모든 걸 담은 사랑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단 한 번의 삶과 죽음은 모두의 숙명이다. 알고 있지만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다시 한 번만 사랑하는 이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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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6-1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혼화!
좀 슬프게 들리는 꽃이네요.
그래도 누군가에겐 간절한 꽃.
어떤 영화를 보다가 죽은 엄마가 딸의 꿈에 찾아간다면 엄마의 기억이 조금씩 망각되어 나중에 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저승사자가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 대목을 보고선 아, 그래서 내 꿈에 엄마가 안 나탈 수도 있겠구나. 조금 안심했었던 적 있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였지만 한결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근데 그 후로 한 번씩 엄마 아빠 꿈을 꾸게 되면 다시 불안해지더군요. 나를 기억못하면 어쩌나? 싶어서요.
하나의 고민거리가 해결되면 늘 다른 고민거리가…ㅋㅋㅋㅋ
빨간 작약인가요?
왠지 책과 잘 어울리는 꽃처럼 보입니다.^^

자목련 2025-06-11 17:29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영화처럼 그런 걸까 싶네요. 저도 엄마 얼굴이 가물가물해요.
기억한다고 해도 선명했던 기억이 조금씩 옅어지니까요.
네, 빨간 작약(레드 참)이에요. 어쩌면 누군가의 사혼화는 작약일 수도 있겠지요.
 


책을 샀다. 자꾸 책을 산다. 적립금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산다. 리뷰가 좋아서 산다. 이번이 아니면 읽지 못할 것 같아서 산다. 아니다. 그냥 좋아서 산다. 책이 좋으니까. 그렇게 해서 도착한 책은 세 권이다. 잠자냥 님의 리뷰가 좋아서(땡스투) 산 책은 『어느 겨울 다섯 번의 화요일』이다. 이번에 읽지 못하면 못 읽을 것 같은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레웨이 부인』이며, 살까 말까 고민하다 적립금이 큰 지분을 차지한 책은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이다.




1월부터 4월까지는 제법 조절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5월은 과소비다. 빨리 읽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지난번 구매한 소설 가운데 한 권은 읽었으니까. 빨리 읽을 수 없을 경우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다 책장을 본다. 나에겐 읽지 못한, 읽지 않은 책들이 있다. 많지도 않은 책인데 다 읽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읽지 못한 책 가운데 10년 가까이 책장에 있는 책도 있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아무튼 책을 샀다.


커피를 산다. 쿠폰과 스탬프를 줘서 산다. 커피를 잘 아는 이가 좋다고 추천해서 산다. 아니다. 그냥 좋아서 산다. 커피가 좋으니까. 이번에 산 커피는 <콜롬비아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나에어로빅>다. 절대 외울 수 없는 이름이다. 다른 커피도 그렇다. 좋았던 커피를 기억하려면 구매 내역을 봐야 한다. 알라딘에서 구매하는데 만족도가 높다. 드립 백이나 핸드드립을 구매한다. 택배 상자를 열자마자 커피향이 쏟아진다. 정말 좋다. 빨리 커피를 마시고 싶다.






작약을 샀다. 친구에게 선물했다. 코만도였는데 색이 정말 강렬하다. 레드 참과는 다른 강렬함이다. 그리고 며칠 뒤 나에게도 코만도가 도착했다. 이번엔 친구가 보낸 작약이다. 내가 작약을 좋아하니까 보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작약을 선물했다. 코만도는 꽃송이가 무지 크고 너무 빨리 핀다. 그러니까 빨리 질 것이다. 새로운 작약을 통해 작약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간다. 그게 좋다.





엊그제는 여름 같았다. 습해서 진짜 여름인가 싶었다. 선풍기를 꺼낸 친구고 있고 에어컨을 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올여름이 무섭다. 여름이 오는 건 당연한데 그 여름이 무서우니 큰일이다. 여름이 오는 걸 피할 수 없고 나는 그런 능력도 없다. 여름과 잘 지낼 방도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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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리 2025-05-23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책장에도 안 읽은 책이 쌓여가고 있지만 또 한권 늘려가고 있죠

자목련 2025-05-24 10:55   좋아요 1 | URL
안 읽은 책을 향한 마음은 미루고요 ㅎㅎ

blanca 2025-05-23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달 책 쇼핑 대박이에요. 이제 다음 주에 한 권만 주문하고 참을 거예요. 작약을 선물하는 친구 사이 너무 아름답네요.

자목련 2025-05-24 10:55   좋아요 1 | URL
꼭 한 권만 주문하시길 바라요!
고맙고 소중한 친구입니다^^

새파랑 2025-05-24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기대별점 적립금 때문에 책을 계속 사게 됩니다 ㅋ 전 기대별점 적립금 3번 쌓일때마다 사는거 같아요 ㅋ

자목련 2025-05-24 10:56   좋아요 2 | URL
맞아요, 기대별점!
거기다 룰렛 적립금까지 ㅎㅎ

구단씨 2025-05-26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꽃을 잘 모르는데, 작약의 빨강색이 너무 예쁘네요.
꽃잎이 잘 모아진 모습을 보고 장미인가 싶었는데, 활짝 핀 사진을 보니 이게 작약이구나 싶네요. ^^

저도 적립금 아까워서 종종 삽니다. 책도 사지만 사는 양만큼 읽어내지는 못하고, 가끔 커피도 사고...
알라딘 적립금은 참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Y서점처럼 제발 적립금 유효 기간 좀 없애주면 좋겠어요. ㅠㅠ

자목련 2025-05-28 11:15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작약은 처음인데 색깔이 정말 예뻐요. 그리고 신기한 게 지는 꽃잎의 색은 또 완전 히다른 색이고요.
맞아요, 적립금 사용기간이 짧아서 배보다 배꼽이 큽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