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소설 『새해 연습』을 생각한다. 소설의 주인공 홍미가 올해를 살아가며 하는 다짐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올해는 늘 새해를 위해 연습하는 해였다.’ 새해를 위한 연습이라는 말이 괜히 안쓰러우면서도 이상하게 좋았다. 새해를 기대하거나 소망을 품지 않으면서도 연습할 수 있다는 말이 좋았던 것 같다. 연습하고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해가 바뀌면 나이의 뒷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 큰 의미는 없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과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을 생각할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에 대한 감사, 그 무사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는 삶이 되었다. 재미나는 게 없다는 친구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재미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내가 조금 쓸쓸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서 며칠 전에는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연금에 대해 문의를 했다. 해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납입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우선은 그냥 두기로 했다. 금액이 적은 이유가 가장 컸다. 적어도 너무 적었다. 납입액이 적으니 당연한데 그걸 간과했다.


그건 그렇고, 새해를 위해 나는 클레어 키건의 단편집 『남극』을 샀다. 땡스투는 원서로 읽고 있는데 번역본이 나왔다는 건조한 분께. 커피도 샀다. 주문한 커피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는 건 좋지도 않다는 것. 그래도 좋은 쪽으로 약간은 기울고 있다는 것. 이제는 알라딘 커피가 제일 맛있는 커피가 되었으니까. 싱가포르에 다녀오면서 작은 언니가 사 온 드립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기대가 크지 않다.





다시 추워진다고 한다. 올해 12월은 작년과 비교하면 평온한 달이다. 어떤 일이든 최악의 것과 비교하면 괜찮아보인다. 그러나 최악은 다른 최악을 불러오기도 하고 살아가는 일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사는 일이니까. 현재를 기준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쿠팡의 개인정보는 유출되었지만 비밀번호만 바꾸고 탈퇴는 못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다.


내년 12월에 기억할 올해 12월은 어떨까. 이것은 내년을 기대한다는 뜻인가. 기대하지 않는 것보다 기대하는 일이 좋은 것일까. 새해를 연습하는 올해는 이틀 남았고 나는 이런 시를 읽는다.

남은 이야기들은

지워지거나 모르거나

겨울이었지

무슨 말을 덧댈 수 있을까

우리 늘 모호했는데 유독

당신의 정맥,

유난히 추웠던 겨울 집에서

우리 무언가를 보았는데

어떤 이야기들은 선반 위에 둔 흐린 바깥이고

휘파람 같은 거라고

안경 알을 닦을 때도

파르스름한 정맥이,

그런 슬픈 그물에 걸려 다시 넘어지더라도

조금 근사하고 싶어

붉은 이상한 저녁에

우린 서로 미래를 돌려주었는데

사랑은 뒤를 봉합하지도 않고 사라지곤 했지

참 추운 날이야

새들의 부리가 작아졌어

이 딱한 부재를 이월하는 상자 밖으로 버리며

이것은

혼자라는

없음에 대한 일

(「그런 12월」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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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12-3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작년 12월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너무 큰 일을 겪었었죠.
말씀하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들의 무사함에 대해 저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자목련 2025-12-31 11:28   좋아요 0 | URL
새해에는 밝고 신나는 뉴스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감은빛 님, 건강하고 따뜻한 새해 맞으시길 바라요^^

서곡 2026-01-01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자목련님 해피 뉴이어~~

자목련 2026-01-04 10:37   좋아요 0 | URL
서곡 님, 건강하고 행복한 2026년 시작하셨길 바라요^^
 

책장을 정리 중이다. 이제는 많다고 할 수 없는 책들을 골라낸다. 요즘 가장 자주 들여다보는 건 시집이다. 욕심껏 사들인 시집, 시인의 첫 시집,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작가가 읽고 있거나 추천해서 구매한 시집. 그리고 내가 좋아서 계속 좋아하려고 구매한 시집들을 본다. 그리고 발견하고 질문한다. 아, 나는 이 시집도 갖고 있구나, 나는 이 시집을 읽었던가. 허연의 시집 『오십 미터』도 그러했다. 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쓴 글을 검색하고 책장을 살피니 정갈한 자세로 있었다. 이 시집이. 그러니까 이 글은 미안하고 미안해서 쓰는 글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에게, 내가 좋아한다고 여긴 허연 시인의 시집에게. 그리고 내 마음에게.


시인의 시를 따라 읽다 보면 과거에 읽었던 시의 분위기와 마주할 때가 있다. 같은 제목이거나, 어디선가 듣거나 읽은 시인에 대한 기억들. 그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내가 그렇게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뭐 그래도 상관없다. 모든 글들이 창작자의 손을 떠나 독자로 칭하는 이들에게 건네졌을 때 그것은 독립적인 것이 되기도 하니까.


『오십 미터』가 출간할 당시 나는 수술 후 회복 중이었다. 지난 글을 읽어보니 그랬다. 그래서 나의 처지를 생각하며 「자세」란 시에 끌렸다. 단어, 그 자체에 말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어쩌면 처음 읽게 된 시는 이랬다. 최근에 가장 많이 펼쳐보는 『작약과 공터』에서 만난 「시월이 시」 때문이다. 시인에게 10월은 특별한 달이구나 생각하면서. 어느 시절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11월의 기억이 떠올라 기억은 불편하고 기억이 슬퍼서 서러웠다.


기억은 우리보다 빠르고 허름하다. 기억은 피로 말한다. 행복해도 짐일 뿐인 것. 어짜피 모든 별의 소식은 우리가 사라진 다음 이곳에 도달한다. 캄차카 반도의 반딧불이도, 북해의 일각고래도 기억 속에 있다. 기억은 불편한 짐이다. 석관(石棺)보다 무거운 짐이다. 기억은 피를 흘린다.


가면극이 끝날 때까지 그녀에게 세 번쯤의 통증이 찾아온다. 세 번의 기억이 그녀를 직면한다. 그녀는 세 번쯤 피를 흘린다. 피 앞에서 자비는 언제나 착각이다. 배우의 실수에서 시를 찾기 위해 그녀는 피를 흘린다. 기억은 피가 된다.


시월에 대해 울고, 시월에 대한 기억을 흘리며, 시월에 대해 시를 쓴다. 시월은 기억이다. 시월은 피다. 구체제 같은 완행열차 소리가 들린다. 왠지 편안하다. 오늘의 구도(構圖)는 피를 흘리고 완행열차와 함께 기억이 됐다.


‘기억’ 그 어감을 피가 말해주지 않는가.

(「word 시월」, 전문)




기억이 소멸하길 바라지만 기억은 언제나 굳건하다. 그래서 기억을 지우려 애쓴다. 댕강 잘려 나가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시구절을 반복하고 반복한다. 주문처럼 그렇게.

망각이여 오라

지층을 읽으려고 했던 날들은

속죄할 테니

망각이여 오라

거대하고 흰 망각이여 오라

전부가 사라져도 좋다

망각이여 달려오라

뒷모습으로만 남아도 좋다

망각이여 오라

(「망각이여」, 일부)


내가 좋아했던 허연의 시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계속 좋아한다고 여긴 허연의 시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첫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에서 만난 이런 시 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너무나 처연하게 늘 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을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전문)


그렇게 서슬 퍼런 유리 조작으로 살기를 바랐던 나쁜 소년은 여전할까. 아니, 독자인 나는 그런 마음을 품었나 보다. 그래서 여전히 조금은 불행하고 하루에 한 끼는 슬픔을 먹는 그런 시인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바람을 모른 채. 그리고 시를 읽으며 인사를 건넨다. 반가우면서도 왠지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이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 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오십 미터」, 전문)

다시 또 책장 앞을 서성인다. 내가 좋아한다고 여겼던 시집을 본다. 정리는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당분간 이곳을 서성이는 시간은 조금 더 길어질 것이다. 모르겠다. 그냥 우선은 시인을 따라 해본다. 때가 오면 벚꽃 날리는 그 길에서 너와 이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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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12-28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허연 시인의 시집 <오십 미터> 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나서 덕분에 오랜만에 꺼내서 다시 읽어보았어요.
잔뜩 끄적거려놓은 메모가 많네요.

자목련 2025-12-29 11:46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시집을 갖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ㅠ.ㅠ
다락방 님 덕분에 찾아보았고 다시 읽게 되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5-12-28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황지우 시 읽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ㅠ
단어가 시인들에게 가면 부서지기도 하고, 피를 철철 흘리기도 하고, 적셔지기도 하는 듯요. 저렇게 꽂아놓으니 넘 예쁘네요.
전 시집을 너무 막대하는듯요

자목련 2025-12-29 11:4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정말 시인의 능력은 대단해요!
언제 읽어도 반가운 시가 있고, 처음 만나는 것 같은 시도 있고 ㅎㅎ
요즘은 시집이 너무 예뻐요. 출판사의 놀라운 마케팅~~!
 



누군가 눈이 오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않고 오늘, 내일 눈이 오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눈 대신 쏟아진 많은 비로 아파트 입구는 미끄럽고 위험하다. 나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 아니다, 기다린 건 친구였고 책이었다. 지난주 친구를 만났고 엊그제는 책이 도착했다. 친구와 책은 다 좋고 반갑다. 길고 긴 수다로 다음 날은 피곤한 하루였지만 즐거운 피곤함이었다. 그리고 즐거움을 예고하는 책이 있다. 그 즐거움을 언제 만끽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책은 좋지 아니한가.





많은 책은 아니다. 작은 책탑이다. 세 권의 책 가운데 수잰 스캔런의 『의미들』은 도착한 지 꽤 된 책이다. 앨리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고 『의미들』이란 제목에 끌려 구매한 책이다. 앤솔러지 ‘얽힘’의 네 번째 프로젝트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은 예소연 작가가 참여해서 선택했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잠자냥의 5별로 궁금해서 땡스투 하고 구매했다.


알라딘 통계를 보니 올해는 정말 책을 많이 사지도 않았고 읽지 않았다. 그러니 리뷰를 쓴 책도 적다. 내년에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게 될까. 목표를 세우는 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올해보다는 조금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 주구장창 책을 읽던 예전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책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이니 인사를 전해야겠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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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12-24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눈이 왔는데 자목련님 사시는 곳엔 비가 내렸군요 날씨가 춥지 않아서 빙판길이 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자목련님 메리 크리스마스🎅

자목련 2025-12-24 16:02   좋아요 0 | URL
제가 있는 곳은 꽤 많은 비가 내렸어요.
망고 님, 해피 크리스마스 🎄

페넬로페 2025-12-2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겨울엔 비가 많아요.
비 내리는 날은 겨울의 색깔을 좀 더 어둡게 하는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책읽기는 좋네요.
집중이 잘 돼요.
자목련님!
메리 크리스마스^^
내년에도 같이 열심히 책 읽자고요.

자목련 2025-12-24 16:06   좋아요 0 | URL
저는 이래저래 집중을 못해서 걱정입니다.
페넬로페 님의 깊고 알찬 책읽기, 응원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잠자냥 2025-12-2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워진다고는 하지만....)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자목련 2025-12-24 16:08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도 냥이들과 포근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해피 크리스마스 🐱 🐱 🎅 🎅

독서괭 2025-12-2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메리 크리스마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저도 궁금하네요~

자목련 2025-12-27 11:25   좋아요 1 | URL
독서괭 님 덕분에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습니다.
이곳엔 눈이 와요, 함박눈으로~~
주말 평온하게 보내시고요!
 

서랍에서 산타를 꺼냈다. 밤마다 별이 반짝인다. 밤새 켜져 있는 줄 알았는데 몇 차례 시도를 해 본 결과 5시간 켜지고 자동으로 꺼진다는 걸 알았다. 5시간의 기준은 뭘까, 깊은 밤이 유지되는 시간이라는 걸까. 제품을 만든 이만 알 수 있을 터. 누군지 모르는 그는 나처럼 궁금해하는 이가 있다는 걸 알까.


새벽에는 꽤 많은 겨울비가 내렸다. 이제 비는 내렸다 하면 폭우 수준이다. 비가 그치고 한파가 온다는 알림 문자를 받고 나니 겨울의 추위를 실감한다. 12월이니 이 추위는 하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중수, 고수의 추위가 남았다는 말이다.





책과 커피를 샀다. 정확하게는 소설과 커피를 샀다. 최은미의 짧은 소설 『별일』, 과 정이현의 단편집 『노 피플 존』이다. 오랜만에 마음산책 짧은 소설을 만나고 정이현의 소설은 특히 더 오랜 만이다. 원두를 가는 일이 귀찮아서 핸드드립으로 구매했다. 원두를 가는 건 나보다 작은언니가 많이 하지만. 알라딘에서 출시되는 원두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지만 먼저 마셔본 이들 덕분에 선택은 어렵지 않다. 땡스투는 오늘도 새로운 커피와 함께 오늘도 반할 리뷰를 쓰신 그분에게!


산타의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웃게 된다. 인위적인 웃음이지만 미소는 언제나 좋다. 택배 상자를 열자마다 퍼지는 커피향은 더 좋다. 맛을 보면 좋음이 더 커질 것이다. 소설도 그렇겠지 기대한다. 최은미의 아주 짧은 단편과, 정이현의 적당한 단편이 들려줄 이야기. 겨울을 함께 보낼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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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 2025-12-11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향이 여기까지 전해져 오는 듯 합니다. 맛과 향이 잘 어우러진 독서 커피 되셔요~^^

자목련 2025-12-16 12:32   좋아요 0 | URL
커피향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날들 이어가세요^^

독서괭 2025-12-1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산타 푸근하고 예쁘네요~ 성탄절 분위기 확 납니다^^

자목련 2025-12-16 12:33   좋아요 1 | URL
근데 산타가 선물은 안 줄 것 같아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5-12-1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 주 잠깐 외출했을 때 눈 앞에 싼타 인형? 동상?이 있는 거에요. 예뻐서 사진 찍었는데 웃는 눈 모양이 자목련 님의 싼타와 비슷하단 생각을 했어요.ㅋㅋ
그리고 책 두 권 다 눈길이 갑니다.
원두 커피향은 벌써 상상이 가구요.^^

자목련 2025-12-16 12:36   좋아요 1 | URL
트리는 없지만 산타랑, 루돌르, 눈사람 인형을 연말 분위기를 내고 있어요^^
나무 님, 따뜻하고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책장의 시집을 정리했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읽지 못하는 미안함이 아니라 그 마음이 허영이라는 걸 깨달아서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시들, 읽고 싶을 때 읽어야지 하며 쌓아둔 시집들은 그 마음의 결과였다. 물론 계절마다 떠오르는 시집이 있고 시가 있다. 좋아하는 단어가 등장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이 나오면 더 찾아서 읽기 마련이데, 그러다 보니 어떤 시집은 하나의 시만 읽고 나머지 시들은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준의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도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집에는 유독 짧은 시들이 많았고(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제목 때문인지 아쉬운 느낌이 있었다.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것이 시인의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만가만 그 일상을 따라가다 마주한 상실과 슬픔은 박준의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확인한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에 대한 소회는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하라고 한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는 시가 지독하게 쓸쓸하고 외롭게 다가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해가 지면

책도 그늘이 됩니다

두어장씩

넘겨가며 읽었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은

아직 친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호숫가 마을에

막 도착한 대목에서

책을 덮습니다

귀퉁이를 잇새처럼

좁게 접어둡니다

바람이 크게 일고

별이 오르는 밤이면

우리가 거닐던 숲길도

깊은 속을 내보일 것입니다

(「소일」, 전문)





올해는 비가 잦습니다

서쪽 마을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습니다

버린 기억을

테두리처럼 두른 것이

제가 이곳에서

한 일의 전부입니다

끝을 각오하면서도

미어짐을 못 견디던 때였고

온전히 가져본 적 없어

손에 닿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움큼씩

쥐고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틀림없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싶으면

일단 등부터

지고 보는 버릇도

이즘 시작된 것입니다

(「은거」, 전문)

책을 읽다 멈추고 잦은 비를 바라보며 걱정하는 일상은 우리가 보낸 지난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인가. 박준의 시가 닿는 곳에는 그런 다정함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런 다정함과 그 뒤에 감춰진 고단함을 생각한다.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어떤 것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마음이나 형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

유월과 칠월을 지나는 동안에는 쌀을 두컵씩만 씻었습니다 그 사이 뜨물 같은 마음도 생겨 아득한 것마다 가까이했습니다 움켜쥐면 적은 듯도 했지만 반듯하게 펴면 이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아래 흰빛」, 전문)

자꾸만 ‘미음’을 ‘마음’이라 읽는 건 왜일까. 끓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까. 그러면 끓이면 그 마음은 뜨거워질까, 아니면 끓이다 보면 증발하는 것일까. 아니다, 모든 건 다 제목 때문이다. 엉켜 붙은 어떤 마음, 자꾸만 꿈에 보이는 누군가를 떨쳐버리고 싶은 내 마음. 그 모두와 이별해야 한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완벽하고 완전하게.

미음을 끓입니다 한 솥 올립니다 회회 저으며 짧게 생각합니다 같이 사는 동안 보여주지 못한 나의 수선이 어른거립니다 이내 다시 되작거립니다 체에 밭쳐둡니다 아시겠지만 진득하게 남은 것은 버려야 합니다 묽어져야 합니다 고개를 파묻습니다 나는 아직 네게 갈 수 없다 합니다 (「마음을 미음처럼」, 전문)

시집을 읽다 보면 솟구치는 욕망. 시집을 더 읽어야 한다는, 더 갖고 싶다는 허세가 커진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들을 다스릴 줄 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11월의 마지막 날, 박준의 시를 읽다가 엉뚱하게 허연의 시를 찾는다. 11월의 시가 아닌 시월의 시. 이번에는 ‘시월’ 대신 ‘십일월’을 넣어서 읽는다. 이별하는 시간이다.

이별하는 것 말고 다른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은 시월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병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하는 단풍잎. 영혼이 빠져나가 파삭거리기만 하는 풀밭, 초속 오 센티미터로 떨어지는 마지막 열매들. 죽은 새끼들을 낙엽에 묻고 날아가는 새들. 그리고 흙장난하는 아이들 이마에 불어오는 사연 많은 바람. 시월엔 가득 찼던 것들과 뜨거워졌던 것들이 저만치 떠날 짐을 꾸린다. 그걸 알아챈 추억들도 남쪽으로 가고. 시월엔 이별이 전부다. 시월은 이별밖에 할 줄 모른다. 시월에 무릎을 꿇는 이유다. 세상엔 만남의 몫이 있는 만큼 헤어짐의 몫도 있어서 이토록 서늘하다. (「시월의 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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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11-3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시들이 참 좋네요. 지금의 정서와 맞물려 곱씹게 됩니다. <시월의 시>가 특히 와닿네요.

자목련 2025-12-03 15:18   좋아요 0 | URL
허연 시인의 이번 시집<작약과 공터>의 시들이 참 좋아요^^

구단씨 2025-11-3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 시집을 종종 사곤 했는데, 이제는 사지 않게 되더라고요.
거의 다 읽지 않게 되고, 다시 펼쳐봐야지 하는 다짐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요.
근데 또 이상하게도 요즘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요즘 세계문학을 정리하고 있어요.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서 채워넣었던 것들이 이제는 정말 장식으로만 머물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이제 다가올 내일, 12월은, 2025년과 헤어지는 시간이겠네요.

자목련 2025-12-03 15:20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시집, 좋아하는 시만 남기려고 하는데 그게 또 어렵네요 ㅎㅎ
저도 읽지 못하는(아니, 읽지 않는) 세계문학도 정리할 예정입니다.

12월 따뜻하고 건강하게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