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엔 가까이 지내는 선배 언니의 생일이 있었다. 책과 커피만큼 완벽한 선물도 없거니와 선배 언니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그리고 나도 커피를 주문했다. 매번 책만 사건 아니다. 실은 3월과 4월엔 소비가 많았다. 어떤 건 충동적으로 어떤 것 미리 계획한 구매였다.


커피는 충동적이고도 계획적이다. 배송료와 사라지는 적립금이 아까워 책도 한 권 샀다. 커피가 좋아서, 커피가 도착할 때까지 커피를 생각한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기다리는 것같은 느낌은 과하지만 그런 비슷한 감정이다. 원두를 갈아서 직접 내리면 좋겠지만 이런 드립백으로도 진한 커피향을 느낄 수 있느니 충분하다. 커피가 좋아서, 카페에는 안 가도 집에서 커피를 즐긴다. 아침에 삶을 달걀과 마시는 커피가 좋다.


기분 좋은 꽃향기와 살구의 부드러운 산미와 단맛이 좋은 커피라고 알라딘이 광고하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할로 베리티와 무민과 즐기는 풍성한 드립백 7종 세트. 12개의 드립백으로 커피를 마신다. 사실, 각각의 커피 맛을 구분하거나 선호하는 하나의 커피가 있는 건 아니다. 그만큼 커피에 대해 잘 모른다. 좋아하지만 잘 모른다.







아무려나 커피가 좋으면 그만이다. 무민과 즐기는 풍성한 드립백 7종 세트는 이렇게 펼치고 보니 넘 예쁘지 않은가. 좋아하는 이가 곁에 있다면 슬그머니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주고 싶다. 어린 시절 사탕이나 캐러멜 같은 건 친구 손에 쥐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좋아하는 이가 커피를 좋아해야 할 것이다.






골라 마시는 즐거움, 그 중에 더 좋아하는 커피를 발견하게 될 즐거움이 있다. 커피라 좋아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가 좋아서 커피를 샀다. 커피가 좋아서 이렇게 커피를 쓴다. 커피가 좋아서 알라딘도 좋아한다. 맞나? 알라딘은 모르는 알라딘 홍보대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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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은 ‘시간’이라는 체로 걸러진 일종의 사금이다. 무엇이 명작이고 무엇이 고전으로 우리 곁에 남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재판관은 시간이다. 시간은 읽을 가치가 없는 책들은 던져버리고 명작이라는 알맹이만 우리에게 남겨준다. 고전소설이 보여주는 당시 사회 모습과 그 이후에 사회가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그 시대를 공부하고 이해하게 된다. (프롤로그, 16쪽)


선뜻 골라 읽기 어려운 문학이 있다. 바로 고전과 세계문학이다. 사진 속 내 책장의 세계문학도 그렇다. 기필코 읽겠다고 사둔 책들, 방송에서 명사나 드라마 소개로 더 궁금했던 책들이다. 하지만 작정하지 않으면 읽기 어렵다. 왜 그런 것일까. 한편으로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과 현재가 아닌 다른 시대의 삶에 대한 이해 부족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이름만 앍고 작품은 읽지 못한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 그런 이유로 세계문학에 주저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있다. 박균호의 『세계문학 필독서 50』 가 그것이다. ‘셰익스피어에서 하루키까지 세계 문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란 부제가 말하듯이 이 한 권으로 세계문학의 명저를 만날 수 있다.


우선 목차를 살피게 된다. 아마도 나 같은 독자가 많을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을 찾는 일, 누군가 골라둔 50권에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될까. 이상하지 않은가. 독서란 가장 개인적인 동시에 내밀한 것인데 그럼에도 훌륭한 소설, 추천하는 소설을 읽기를 바라기 마음 때문이다. 저마다 문학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 딴지를 걸 수도 있다. 문학을, 그것도 고전을 찾아읽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말이다.




저자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시작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등 50권의 소설에 대해 작가의 이력과 소설 집필 당시의 사회적 배경, 소설의 의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재미있는 소설, 다양한 문화와 사회상을 담은 소설, 새로운 사상이나 사회 변혁운동의 실마리를 제공한 소설을 기준으로 선택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시대적 배경과 문화, 부조리한 사회고발, 그 모든 게 한 권의 소설에 담겼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어떤 소설이든 소설 속 인물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놀라운 건 그들의 고뇌가 현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노동자와 하층 계층의 삶, 기득권의 횡포, 약자와 소수를 향한 차별의 문제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그러니 위고의 《레미제라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피츠제럴드는 순수한 이상을 망각하고 오로지 경제적 성공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다. 1920년대 미국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그 화려함 속에서 스스로 타기를 주저하지 않는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 속에 움트는 사랑과 순수성이 파도와 같이 밀려들며 밀려나가는 소설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106~107쪽)






《호밀밭의 파수꾼》은 강압적이고 획일화된 사회에 반기를 들고 혁명가나 방랑자적 기질을 자신 비트 세대의 정서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비트 세대는 홀든처럼 책과 문학을 좋아하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그들은 산업화가 진행되기 전 시절의 자연, 인간의 존엄성, 긍정적인 세계관을 추구했다. 기성세대의 가치에 순응하지 않는 홀든은 미국 사회에 만연한 획일화에 저항하는 비트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49쪽)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책의 즐거움은 한 권의 책을 다각도로 마주하는 흥미로움이다. 가령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닿을 수 없는 인간 심연에 대해서만 집중했다면 저자는 '메이지 정신', 일본식 제국주의의 흔적에 대해 언급하다. 소설 속 K의 자살이 단순 사랑의 비애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고 나면 소설을 더 풍부하게 일을 수 있다. 거인국과 소인국이 등장하는 동화로 인식했던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치졸함을 묘사한 소설이라니. 그뿐인가. 《돈키호테》를 쓴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전쟁에 참전하여 왼팔이 부러지고 가슴뼈와 치아가 부러졌음에도 4년이나 더 참전한 사람인 줄 몰랐다. 스페인의 많은 독자들이 기사 소설에 열광하고 있다는 점도 몰랐다. 호탕한 기사 돈키호테와 늙은 말 로시난테의 모험기로만 알았으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았다. 소설의 내용과 별개로 평생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고 그 빚 때문에 엄청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발자크. 발자크와 커피에 대한 부분이나 《마담 보바리》가 출간되고 재판에 넘겨졌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한 플로베르가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 무죄를 받았다는 내용도 재미있다.


발자크에게 커피는 검은 석유였다. 발자크라는 엄청난 글쓰기 기계를 작동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커피 포터도 함께였다. 그는 커피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했으며 커피를 타는 성스러운 작업을 그 구누에게도 맡기지 않고 직접했다. (273~274쪽)


『세계문학 필독서 50』를 읽고 나면 이전에 읽었던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카프카, 하루키의 소설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나처럼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나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것이다. 아프리카 문학이나 출신 작가의 소설이 없다는 게 살짝 아쉽지만 나만의 세계문학 목록을 작성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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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4-04-04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책에서 이 부분은 꼭 재미나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부분을 콕 찝어서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걸인의 책을 왕후의 서평으로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뜻한 오후 되시길 바래요 .

자목련 2024-04-05 08:52   좋아요 1 | URL
제가 만나지 못한 책들의 정리를 통해 나만의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던 책이고요.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꼬마요정 2024-04-0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때론 고전이란 책들이 나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너무 좋은 작품들이 있더라구요. 시간이 지나 여전히 읽히는 책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상황에서 각자의 느낌이 다 다르지만 감동 받는다는 게 정말... 멋진 일이네요. 하지만 또 그만큼 사회의 부조리나 개인의 아픔, 혹은 개인의 기쁨이나 가족의 사랑 같은 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자목련 2024-04-05 08:5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책과의 만남에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나만의 책읽기, 나만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꼬마요정 님, 환하고 빛난 금요일 이어가세요^^

Falstaff 2024-04-04 17: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목차만 둘러봤는데요, 말씀대로 아프리카(= 식민지 문학)와 라틴 아메리카 작품이 한 편도 들어있지 않고, 진짜 고전이라고 하는 그리스 문학도 빠졌더군요. 소포클레스나 호메로스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들어 있어야 할 거 같았습니다. 일본 작가가 여섯 명이나 들어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될까?˝ ㅎㅎㅎ 바늘처럼 콕 찔리는 거 아니었겠습니까?

자목련 2024-04-05 08:55   좋아요 1 | URL
모든 책은 주관적인 기록이자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읽은 책이 몇 권 없어도, 설령 한 권도 없다 해도 상관없는 거 아닐까요?
Falstaff 님은 이미 풍부한 Falstaff 님의 기록이 있으니까요!

구단씨 2024-04-04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문학 해설서 같은 느낌이 들어요. ^^
저도 항상 고전이나 세계 문학 많이 읽고 싶고, 그 안의 메시지 확인하면서 인생에 적용하여 살아가면 더 값지겠구나 싶었는데,
현실은 고전이 마냥 가까운 작품들은 아니었네요. ㅎㅎㅎ
궁금했던 책인데, 고전이 궁금하지만 다 읽을 수 없을 때 특히 더 펼쳐보고 싶어질 것 같아요.

구단씨 2024-04-04 20:13   좋아요 1 | URL
아하~!!!
숨어 있는 재미라니, 고전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될 것 같아요! ^^
설명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4-04-05 08:56   좋아요 1 | URL
네, 끌리는 대로 읽고 싶은 대로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화창한 봄, 즐겁게 보내시고요!
 

점심으로 새우볶음밥을 먹었다. 간편조리용으로 나온 새우볶음밥을 먹고 진한 커피를 마셨다. 황사의 기운이 걷히니 맑은 하늘이 보였다. 봄이구나, 봄이었어.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 봄을 즐길 기운은 없다. 3월이 끝나고 내일부터는 달라진 봄을 느낄 것 같다. 4월이니까. 4월은 그런 달이다.


봄이니까 봄을 읽어야지. 그래서 『소설 보다: 봄 2024』를 샀다. 올해부터 가격이 인상되었다. 여름부터는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아무튼 그리고 이장욱의 시집 『음악집』 도 샀다. 최근에 읽은 소설 영향이 크다. 이장욱의 소설을 읽고 나서 신간 시집이 나온 걸 알았고 나는 시집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시집을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읽지 않은 많은 시집들처럼.





그렇다면 나는 왜 시집을 사는가. 시집을 사며 시집을 사는 사람이라는 허세를 키우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먼 기억 속 선물 받은 시집을 읽던 나를 기억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한 권의 시집 전체를 다 읽지 않더라도 시집을 꺼내보고 시집을 읽기는 할 테니까. 우선 이장욱의 시집에서 이런 시를 읽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영원을 잃어버렸다.

자꾸 잃어버려서 믿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원래 그것이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이제 달리지 않고 누워 있다.

목적지가 사라진 풀밭에 자전거를 버려두었다.

바퀴의 은빛 살들이 빛나는 강병을 바라보며

이제 불가능해지는 일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였다.


풀밭에는 아주 작은 음악들의 우주가 펼쳐져 있고

그것을 아는 것은 쉽다.

진실로 그것을 느끼는 것은 모로 누운 사람들뿐이지만

누구의 왕도 누구의 하인도 아니어서

외롭고 강한 사람들뿐이지만


은륜이 떠도는 풍경을 바라보면 알 수 있는 것

햇빛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물의 일렁임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달려가다가 멈추어 서서 문득 잔인한 표정을 짓는 일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겠지만


오늘은 기도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매일 명확한 것들만을 생각하였다.

나의 풀밭에서 부활하려고 했다.

거대한 존재가 내 곁에 모로 누워 있기라도 한 듯이 사랑을 하려고


석양이 내리자

아무래도 나를 바라보는 이가 보이지 않아서

텅 빈 주의를 둘러보았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을 적습니다」, 전문)


문득, 오늘이 부활절이라는 게 생각났다. 그러니까 나는 부활절 예배를 드리지 않았고 기도를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목사 님의 말씀을 유튜브로 듣다가 자꾸 끊겨서 그만두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는 달걀과 떡과 커피를 마셨다. 부활절이라는 건 모른 채. 아무튼 내일은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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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3-3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장욱 인용해주신 시 참 좋네요. 작가 소설을 언젠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부활절이었군요. 저도 잊고 있었습니다.

자목련 2024-04-01 10:12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이 좋아해주시니 좋습니다!
봄이에요, 4월에는 부활의 기운이 넘쳐나면 좋겠습니다^^
 

딸기와 책,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딸기가 금값이라고 하니 금을 먹는 기분이다. 붉고 단 맛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진한 딸기향이 좋았다. 마트에서 구매를 할 때부터 향이 좋았는데 냉장고에서 보관하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달달한 향이 퍼져 나오는 게 기분이 좋다. 딸기처럼 달콤한 소설을 기대하지만 소설을 읽기 전이니 아직 모른다.


장편소설 한 권과 단편집 한 권이다. 책을 고르는 일, 신중하게 하려고 그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나름 만족스럽다. 집중해서 읽으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딸기만큼 아니 이 봄의 나를 설레게 하는 책들, 소설이다.






지넷 윈터슨 장편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는 얀마텔의 에세이를 읽고 궁금했던 책이었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민음사 모던 클래식 개정판으로 나왔다. 이 기회에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이 책 때문에 오렌지와 책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도 있었으나 냉장고 오렌지는 없었다.


문지혁 소설집 『고잉 홈』은 장편으로만 만난 문지혁의 단편을 만나보고 싶어서 구매했다. 단편도 장편에서 느낀 분위기와 감성이 전해질 것 같은 게 고잉 홈이라는 제목이 한몫 거들었다. 김윤아의 노래 Going Home을 좋아하기도 해서 같은 제목이라 더 끌린 이유도 있다.


강원도에 내린 폭설을 스케치한 뉴스를 보면서 그곳은 겨울이구나 생각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은 봄의 절기인데 봄이 아닌 겨울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겠구나 생각한다. 봄에 맞게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고 삶의 시간표를 작성했을 이들의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한숨이 들리는 것만 같다.


예측할 수 없는 하루, 단순하게 살려고 해도 복잡할 수밖에 없는 삶이 돼버렸을 것 같다. 그러니 가장 단순한 것들, 할 수 있는 것들,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 돌아보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건 눈의 늪에 빠진 것 같은 누군가의 바람이 아니라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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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3-20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딸기 아주 맛나 보입니다^^ 오렌지책 저도 궁금하던데, 자목련님 즐거운 독서 하세요!

자목련 2024-03-22 08:32   좋아요 1 | URL
딸기 맛있었어요~ 아껴서먹느라 더 달콤했다는...
오렌지는 기대하고 있고요!

거리의화가 2024-03-21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주말 코스트* 갔다가 딸기를 사 와서 먹었답니다. 비싸서 그런지 먹을 때 아껴먹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순삭했지만 딸기를 먹는 순간은 역시 행복하다 싶었습니다. 두 책 모두 즐독하셔요^^

자목련 2024-03-22 08:33   좋아요 1 | URL
가격 생각하지않고 많이 사서 많이 먹고 싶은 딸기입니다 ㅎ
화가 님, 금빛 같은 금요일 보내세요^^

은하수 2024-03-22 15:42   좋아요 1 | URL
저두요~~~
코스트코 딸기 향이 정말 장난 아녔어요.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지 뭐예요^^

자목련 2024-03-25 13:29   좋아요 0 | URL
진한 딸기 향, 먹고 있어도 딸기가 그립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4-03-25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의 모클 시리즈가 다 죽을 줄
알았는데 열심히 표지 갈이해서 다
시 내고 있어서 신기하더라구요.

새 책은 내지 않고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는 걸까요.

저도 책이 궁금하긴 한데, 마침
집에 오렌지가 있으니 ㅋㅋ
근데 책이 없네요.

자목련 2024-03-27 08:48   좋아요 0 | URL
저는 과거 표지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
책은 도서관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ㅋㅋ
매냐 님 베란다의 튤립은 피었을까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예술가의 삶은 짧고 그가 남긴 작품은 영원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예술가의 일』에 이어 조성준의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를 읽고 든 생각이다. 예술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수많은 예술가 중에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오래 기억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언론에 주목받지 못한 삶, 생전에는 얻지 못한 작품의 가치, 재능만 탐할 뿐 예술가를 돌보지 않은 세상. 음악, 미술, 영화,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25명의 예술가의 삶을 마주하다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그들이 남긴 작품을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다.



작가는 25명의 예술가를 5개의 주제로 나눠 소개한다. 목록을 살피고 끌리는 주제를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그를 먼저 읽어도 충분하다. <차별과 편견을 넘다>란 주제는 블랙리스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도 과거 정권에서 등장했던 블랙리스트. 예술이 전부인 그들은 소리 없이 현장에서 사라졌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도 그러했다.




1950년대 초반 유대인이었고 진보적인 인물이었던 그도 정부의 사상 검증 대상이었다. 직접 심문 받지는 않았지만 방송국 출연 자리를 잃었고 이유 없이 여권 갱신도 거절당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에게 출국 금지라니. 너무도 치사하다. 번스타인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진술서를 쓴다. 아,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흑인 인권 운동 단체를 후원하고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쳤다. 그로 인해 FBI 블랙리스트에 올라 오랫동안 감시당했다. 예술가 얼마나 깊고 강하게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감시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


번스타인은 언제나 경청했다. 클래식 음악으로 정점에 오른 후에도 자기가 하는 음악이 최고라는 오만에 빠지지 않았다.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존재를 존중했다.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떠나야 할 때 떠났다. 그 이후로도 음악을 누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려 했다. (47쪽)


<존 케이지와 굴다처럼>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가는 천재 혹은 괴짜로 불리는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피아니스트로 프리드리히 굴다, 완벽주의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그리고 한국의 거장 김기영 감독이 있다. 김기영 감독과 함께 윤여정 배우, 봉준호 감독이 생각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에 대해 몰랐다. 서울대 의대를 나오고 의대에 진학하고 연극 활동을 했다.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란을 와서 부산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부업으로 <대한 뉴스> 제작했다니. 그것을 계기로 의사는 관두고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부터 영화를 전공했다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술도 하지 않고 영화인과의 교류도 없이 오직 영화만 생각한 감독. 완벽한 콘티 없이는 영화 촬영을 하지 않았다니. 그의 고집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은 김기영 감독 그 자체였다.


그는 사람들이 직면하기 싫은 주제들을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과장하고, 뒤틀고, 기이하게 표현했다. 이상한 방식으로, 이상한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 안에 당시 사회 병폐를 집어넣었다. 기이한 영화로 흥행까지 거머쥔 김기영의 존재는 라이벌들과 비교해 독보적이었다. (101쪽)


<누가 스타를 죽였는가>란 주제에서 만난 예술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하나같이 애처로운 예술가의 이야기다. 대중은 천상의 노래, 매력적인 재능, 놀라운 연기력을 사랑하지만 무대와 공연장, 스크린 밖에서는 그들을 외면하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빌리 홀리데이를 보고 감탄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더러운 검둥이' 취급하며 차별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은 정말 가련하고 가여웠다.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만족했던 에이미를 세상이 알아봤다. 사랑에 빠진 남자로 인해 약물에 중독되고 그가 떠난 후 상처를 노래했다.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 재활원을 찾기도 한 에이미 곁에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스타의 사생활을 깨려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세상이 아니라 회복하기를 기다려주는 대중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노래하는 에이미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 <캡틴, 마이 캡틴>과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거장>에서는 예술을 위해 전부를 던진 이들의 삶을 들려준다. 연기하는 인물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 히스 레저, 패션이고 명품이었던 코코 샤넬, 전 세계 영화감독이 이탈리아를 찾게 만든 모리코네까지 저자가 소개하는 25명의 예술가는 그가 남긴 작품 속에서 우리의 곁에 살아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볼 때 그들의 삶의 겹쳐 보일 것이다.


모리코네는 떠났다. 그래도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위대한 영화는 계속 탄생할 테도, 아름다운 영화음악은 계속 흐를 것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석양이 저문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역사가 하나의 책이라면,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문장으로 가득한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297쪽)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예술가에게 고마운 시간이었다.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월북화가 이쾌대, 김환기와 백남준의 생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들이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고 어떤 환경에 있었고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알고 난 후 작품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것을 발견하려 노력할 것 같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 그들 덕분에 우리가 사랑한 예술이 존재한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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