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의 반응 때문인데 나쁜 일의 경우 그렇게까지 속상할 일인가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에 계속 신경을 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보면 그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는 건 어렵고 이해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 사랑하는 일은 어떨까? 상대의 모든 걸 품어주고 견디는 게 사랑일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걸 감수할 자신이 있는 것일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당편소설 『장미와 주목』속 ‘이저벨라’가 선택한 사랑은 도무지 모르겠다. 그녀가 상대의 무엇에 반했는지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장미와 주목』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심연을 채우고 지배하는 게 무엇인지, 타인에 대해 안다는 건 얼마나 무지한가 스스로 묻게 된다.


소설은 죽어가는 누군가가 화자인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으로 시작한다. 기억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존 게이브리얼’, 그를 중오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나를 찾다니. 존 게이브리얼과의 만남은 호기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못생긴 사기꾼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은 이상한 욕망 말이다. 존 게이브리얼의 죽음의 순간은 그들의 첫 만남을 불러온다. 과거 나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와 한 몸인 상태로 런던을 벗어나 형수 테리사의 의 고모가 유산으로 물려준 집이 있는 세인트 루에서 생활했다. 형수는 많은 정치 행사에 참가할 생각이라고 했고 그와 관련된 이들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지역의 보수당 대표로 나선 주자는 존 게이브리얼이었다. 그는 대단한 이력의 소유가는 아니었지만 선거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세인트 루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지 아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다. 존 게이브리얼에게 나는 완벽한 청자였다.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나를 방문한 다른 이들은 안타까운 시선과 연민의 말들을 전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달랐다. 삶을 포기하려고 수면제를 모으고 있던 나를 한눈에 알아본 사람은 귀족 아가씨 이저벨라였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었기에 그랬을까. 나는 이저벨라와의 만남이 즐거웠고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모아둔 죽음이 아닌 삶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녀를 좋아하고 어쩌면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그러나 그녀에게는 정혼자가 있었다. 그녀는 세인트 루의 성에 노부인들과 지내며 전쟁에 참가한 연인 사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면 결혼을 할 거라고.


나와 이저벨라는 선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그 중심엔 당연 존 게이브리얼이 있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그가 술주정뱅이에 폭력을 쓰는 남편으로부터 한 여인을 구해준 일은 일파만파 커졌다. 사람들에게 둘은 내연관계처럼 보일 수 있었으니까. 여인은 자신이 존 게이브리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속상해하고 자책했다. 나에게도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 보수당의 승리를 위해 세인트 루의 많은 이들이 의견을 냈고 결국엔 존 게이브리얼의 승리는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저벨라가 기다리던 정혼자가 왔다. 이저벨라 정말 잘 어울렸다. 존 게이브리얼은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저벨라에게는 행복한 결혼생활만 남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런 결말은 도착하지 않았다. 존 게이브리얼과 이저벨라가 떠났으니까.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존 게이브리얼은 귀족에 대한 반감으로 이저벨라를 꺾으려 했다는 것과 이저벨라는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나에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의술의 발전으로 나는 휠체어에서 벗어났고 우연한 장소에서 존 게이브리얼과 재회한다. 그를 통해 이저벨라가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예상대로 비참한 환경이었지만 이저벨라는 아니었다. 예전과 같은 분위기였다.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저벨라가 세인트 루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놀라운 건 그녀가 존 게이브리얼을 대신해 총에 맞아 죽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 죽음이 무섭다고 했던 그녀였다. 선거 행사의 만남에서 그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그를 모른다고 했던 그녀였다.


“전 그를 몰라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죠. 누군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235쪽)


분명 이저벨라는 존 게이브리얼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를 알지 못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맞는 말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내 감정과 내 입장에 우선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사랑은 복잡하고 삶도 마찬가지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 ‘메리 웨스트매콧’으로 쓴 소설에서 중점을 둔 것은 인간의 내면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신이 지난 생을 돌아보는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형수 테리사가 짚어주는 이 부분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녀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죠.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건 ㅡ 그녀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단순하기 때문이었어요 ㅡ 무서울 정도로 단순했죠. 그녀는 언제나 본질만 생각했어요. 당신은 이저벨라가의 인생이 짧게 끝나버렸다고, 일그러지고 부서져버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난 그것 자체로 완전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347쪽)


『장미와 주목』의 화자인 휴 노리스가 이저벨라의 삶을 통해 자신의 그것을 마주한 것처럼. 오 분이나 천년이나 의미는 똑같고,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이 T.S 엘리엣의 『네 개의 사중주』 중 “장미의 순간과 주목의 순간은 같다”에서 가져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다른 소설이 그러했듯 재미있게 읽었지만 가슴 한 구석을 지나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있다.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는 이저벨라의 모습은 남편과 가족이 전부였고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 여겼던 『봄에 나는 없었다』에서 상실을 느꼈던 ‘조앤’,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던 엄마의 죽음와 불행한 결혼을 통해 성장하는 『두 번째 봄』속 ‘셀리아’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인간 심연에 대한 사유, 애거서 크리스티의 통찰이 놀랍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도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봄에 나는 없었다』, 중에서)


사람이 자라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두려운 일인가. 사람에게 다른 어떤 순간보다 더 자기 자신다운 특별한 순간이라는 게 있을까? (『두 번째 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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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에 벚꽃을 보고 왔다. 일부러 시간을 냈다. 지금 아니면 볼 수 없으니까. 매년 피는 벚꽃인데 만날 때마다 벅차다. 올해는 더 풍성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보다 나무는 더 자랐을 것이고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을 테니. 나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지키고 성장한다. 눈 닿은 곳마다 벚꽃이 가득했다. 떨어진 꽃잎이 아까울 정도였다. 정말 황홀해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싶었다. 넋을 놓는 순간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면 도로가 없는 시골길이고 많지 않지만 차들도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동영상을 찍었는데 조작 미숙인지 저장된 게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벚꽃터널을 지나는 그 순간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은 남았으니 충분하다.









지척에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은 경이롭다. 낮에는 기온이 높아 4월의 여름인가 싶었다. 야트막한 동산에는 연둣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파트 화단의 크기가 작은 수수꽃다리의 연보라도 곱고 생기가 돈다.





표지가 벚꽃처럼 고운 김혜진의 단편집과 벚꽃처럼 황홀한 맛의 커피까지 좋은 게 많다. 땡스투는 꽃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다는 님에게. 김혜진은 정말 성실한 작가인 것 같다. 4월의 절반이 지났다. 남은 절반은 벚꽃의 기억과 소설의 즐거움, 맛있는 커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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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1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벚꽃에 가려서 잘 안보이지만 은행나무에 새 잎이 나기 시작한 걸 오늘 아침에 봤어요. 가을이 되어야 존재감을 뽐내는 나무가 사실은 지금부터 자기 존재를 내뿜기 시작한다는걸 새삼스럽게 발견했네요. 그러니 벚꽃이 진다해도 뭐가 슬플까요? 그저 다음에 또 다른 아름다움이 늘 있으니 말이죠. 김혜진 작가의 책이 봄빛이네요. 저도 그 봄빛을 한번 느껴봐야 하겠어요. ^^

자목련 2026-04-15 10:37   좋아요 1 | URL
맞아요, 벚꽃은 지고 또 피니까요. 장미가 피면 또 반하겠지요. 빠른 계절의 순환에 정신을 못 차리겠지요. 김혜진의 단편집은 봄빛 그 자체입니다!

잠자냥 2026-04-1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전 올해 벚꽃 가득 제대로 못 봤는데 자목련 님 덕분에 봅니다.
그리고 지금 제 입안에는 땡투향기가 가득합니다. ㅋㅋㅋㅋㅋ

자목련 2026-04-16 09:00   좋아요 0 | URL
실제는 더 어마어마한 풍경이었어요.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더라고요.
오늘의 수많은 땡투 중 하나도 저입니다 ㅎㅎ

blanca 2026-04-1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감탄 나오는 풍경이에요. 빨간 머리 앤 만화 생각나네요.

자목련 2026-04-16 09:01   좋아요 0 | URL
아, 빨간 머리 앤 만화를 생각해주시다니요. 저도 그랬거든요!!

독서괭 2026-04-1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벚꽃 너무 아름답네요! 미국 오니 벚꽃이 안 보여요~ 올해는 못 보려나봐요 ㅠ

자목련 2026-04-16 09:01   좋아요 1 | URL
미국엔 더 크고 멋진 나무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도 벚꽃을 못 보는 건 아쉬울 것 같습니다.

망고 2026-04-1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상적인 벚꽃터널 풍경입니다😍 바람 불어서 꽃잎이 우수수 날리면 딴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풍경이에요
저도 요즘 벚꽃보러 다니는데 갑자기 더워져서 꽃도 일찍 폈고 지금은 거의 지고 있더라고요 이제 곧 작약이 피고 수국을 만나게 되겠죠😄

자목련 2026-04-16 09:02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도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피더라고요.
맞습니다. 저는 지금 작약을 검색하고 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6-04-16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벚꽃이 꽃대궐을 이루었군요.^^
이곳은 벚꽃잎 한두 장 달려있으려나요?
이렇게 가버린 꽃구경을 윗쪽지방 알라디너님들의 사진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게되네요.^^
그나저나 김혜진 작가의 책표지 왜 이렇게 이쁜가요? 끝나가는 봄을 다시 붙잡는 느낌입니다.

자목련 2026-04-16 09:04   좋아요 1 | URL
제가 사는 지역에서 남쪽의 꽃 소식은 가장 빨리 마주한 포근한 소식이었어요.
김혜진 작가 표지, 봄이 가득해요. 말씀처럼 봄을 곁에 둔 기분이에요^^
 



책을 샀다. 모두 소설이다. 소설이 좋아서, 새로운 소설을 찾았다. 새로운 소설이라니, 새로운 소설은 무엇인가. 읽지 않은 소설은 모두 새로운 소설이 아닐까. 아니다. 내게 온 소설이 새로운 소설이다. 그래서 예소연의 단편집은 반갑다. 『너의 나쁜 무리』엔 좋았던 「소란한 속삭임」이 수록되었다. 그러니까 위픽 시리즈로 출간되었던 소설이다. 정이현의 단편집을 읽으면서도 알게 되었다.


위픽 시리즈 한 권의 가격과 소설집 한 권의 가격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리즈에는 작가의 인터뷰가 있으니 차별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위픽 시리즈의 소설이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집에 묶여 나온다는 걸 알았으니 읽고 싶었던 위픽 시리즈를 기억했다가 그 작가의 단편집이 나오면 살펴봐야겠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미와 주목』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 중 하나다. 추리소설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들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문동에서 개정판으로 나왔다. 기존에 읽지 않았기에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구판 디자인을 선호한다. 베로니크 오발데의 연작소설집 『한낮의 불운』은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이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알려주신 잠자냥의 평이 좋아서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땡스투는 다락방 님에게. 재미있을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꽃축제가 열리는 모양이다. 내가 사는 지역 근교에서도 다양한 꽃 축제가 열린다. 아파트에도 붉은 동백이 보인다. 사진은 친구가 보낸 동백이다. 오래된 동백, 어르신 동백이다. 올봄은 작년보다 얼마나 짧을까. 봄이 오래 지속되면 좋으련만. 아무튼 나는 4월이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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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4-03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읽은 소설’이 아니라 ‘내게 온 소설이 새로운 소설’이라는 말씀에 공감했어요 ㅎㅎ
저도 며칠 전에 자목련님께 땡투하고 <상자 속의 사나이> 들였는데, 저의 첫 체호프라 더 기대되네요! 아직 자목련님의 리뷰는 안 올라왔더라고요. 나중에 리뷰 올라오면 반갑게 읽으러 올게요 :)

자목련 2026-04-06 14:07   좋아요 1 | URL
사실, 읽지 않은 소설(책장 속 모든 소설)이 모두 새로운 소설입니다 ㅎㅎ
귀하고 귀한 땡투가 곰돌이 님이셨군요. 감사합니다. <상자 속의 사나이>도 새로운 소설이고요!

책읽는나무 2026-04-04 0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 소설 모두 눈길이 갑니다.
근데 <한낮의 불운>책 구입동기에 혼자 웃었네요. 다락방 님에게 득이 된..ㅋㅋㅋ
예소연의 <소란한 속삭임> 위픽 시리즈 단편이 꽤나 인상적였어요. 그리고 조금 읽다가 말았는데 작년 이상문학상이었나? 예소연 작가가 대상을 받았더군요. <그 개와 혁명> 그 단편도 참 인상적였어요. 예소연 작가도 계속 성장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소설집이 벌써 나왔다니 눈길이 가네요. 책표지도 깔끔하구요. 커피랑 너무 잘 어울린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봄비가 내리고 있네요. 벚꽃잎이 다 떨어질 듯 합니다.ㅜ.ㅜ
그래도 빗속의 벚나무들이라도 눈에 계속 담아야겠죠. 아까우니까.^^
어르신 동백나무의 자태를 함께 감상 잘하고 갑니다.

자목련 2026-04-06 14:11   좋아요 2 | URL
모두 좋을 것 같아요. <한낮의 불운>은 잠자냥 님은 땡투할 수 없다고 떠서 ㅎㅎ
네,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 <영원에 빚을 져서>도 좋아요. 나중에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어제도 한바탕 비가 와서 꽆이 많이 졌을 것 같기도 해요. 오늘은 쌀쌀하고요.
나무 님, 따뜻한 오후 이어가세요^^
 


한 번씩 그런 순간과 마주한다. 이게 진짜 내 생일까 하는 의구심. 그러니까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깨어나야 하는 게 깨지 않는 건 아닐까. 자각하지 못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 존재하는 나는 실제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꿈을 자주 꾸는 내가 싫다. 어떤 꿈은 너무 잘 맞아서, 어떤 꿈은 너무 무서워서.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유디트 헤르만의 에세이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다.


이 책은 시학 강의록으로 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유디트 헤르만, 작가 자신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라 할 수도 있다. 하긴 뭐가 중요하겠는가. 읽는 동안 그에게 빠져들었고 나는 이제 유디트 헤르만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어쩌면 나는 이처럼 잡을 수 없는, 몽환적이고 몽환적인 글에 매료되는지도 모른다. 그의 단편집 『레티파크』에서 느꼈던 분위기, 그 소설에서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조금 알 것 같고 이 에세이를 통해 모호했던 것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의 가족, 친구, 지인, 정신분석가, 그가 좋아한 공간에서 보낸 시간, 그곳에서 보낸 여름에 대한 이야기.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과 운명처럼 만난 특별한 이들(선택가족)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을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쓰고자 노력하고 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이야기에는 첫 문장이 있다. 책 속 이야기가 시작하는 문장이 아니라, 내 머릿속 이야기가 시작하는 첫 문장 말이다. 가끔은 어떤 이미지 또는 순간, 무언가를 향하거나 무언가에서 떨어지는 시선. 하지만 대개 그것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듣고, 불과 몇 초일 뿐이지만 그동안에 명확하고 몸에 바로 와 닿는 감각을 느낀다. (45쪽)


이 에세이는 이상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연결돼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것은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이 되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내 글은 멍청하다. 작가에게 연결, 영향, 소설은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정신분석가와 작가에게 그를 소개한 친구 ‘아다’와 세상을 떠난 ‘마르코’ 가 에세이를 지배한다고 느꼈다. 그들이 함께 보낸 여름은 자유롭고 명랑하고 선명하다. 여름의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모든 규율은 사라지고 그들만의 규칙으로 채워진 시간들. 아직 읽지 못한 『여름 별장, 그 후』이 더욱 궁금하다. 에세이를 읽기 전 읽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나는 이후에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정식 분석을 받는다고 하면 상담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유디트 헤르만이 들려주는 건 그가 의자에 누워있고 박사는 그 뒤에 서 있는 게 전부다. 대화라기보다는 말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레티파크』의 「꿈」의 모습이다. 에세이에서 상담을 끝낸 후 오랜만에 우연히 그를 만나 나눈 이야기.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자신의 소설을 읽었냐고, 그러니까 단편 「꿈」에 대해서. 『레티파크』 속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이야기 「시」도 마찬가지다. 모두 실제라는 것. 그녀의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보낸 시간, 폐쇄 병동으로 아버지를 면회 가던 시절, 그리고 아버지에게 시를 읽어준 일.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한 가장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직장에 다녔고 그녀를 키운 건 할머니였다. 어머니가 벌어온 돈으로 담배, 책, 가구를 사고 그것들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 아버지. 그런 부모가 고독과 불안을 안겨줬을 건 분명하다. 평생 우울증을 앓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놀라운 일을 벌인다. 그것은 부모가 살던 거리의 모든 집이 팔렸고 사람들은 이사를 나가고 그녀의 부모가 마지막 세입자였을 때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누군가 이사 온 것처럼 꾸민다. 그러니가 가짜 명패와 희미한 불빛, 발코니의 식물들. 어머니의 안정을 위한 아버지의 아이디어는 다정하고 살뜰하다.


쓴다는 건 결국 나를 꺼내는 일이며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누군가를 향한 애도이자 그리움, 거짓과 진실을 오가는 마음, 왜곡된 기억과 사진으로 남은 선명함 같은. 그게 소설이든 에세이든, 혹은 일기나 메모든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자꾸 ‘말하지 않은’으로 읽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무엇일까?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주제일까. 정확하지 않은 기억일까. 아니면 비밀일까.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말, 닫히고 감춰진 말들일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영영 알지 못할지도.


어떤 문장은 현실에 너무 가깝다. 그것들은 현실에 속하며, 현실과 분리할 수 없다. 그것들에는 비밀이 없다. 그것들은 명백하고, 진실이며, 이 문장들에는 뒤흔들 것이 없다. 하나의 이야기 안으로 인도하는 문장들은 중간 세계에서 오고, 불투명하고, 해석 가능하고,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세계를, 나의 세계를 이야기를 통해 바꿀 수 있다. (82쪽)


여전히 모르겠고 나는 닿을 수 없다. 다만, 삶을 쓴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 무엇을 쓰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쓰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 무의미한 글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고 어느 순간 의미 있게 다가오기도 하니까.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열리게 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물론 말해지지 않아도 상관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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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로 이어지는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결정된 어떤 일, 어떤 선택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에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 앞에 설까 생각하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맨 처음이 아닐까. 그럴 수 없기에 그것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은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더라도 단 하나의 선택으로 끝난다. 과거로 돌아가도 그 선택을 할 거라는 알기에, 그게 나라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윤리적 딜레마’란 주제로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가 참여한 『근접한 세계』를 읽다 보면 누구나 어떤 선택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이는 나만을 위한 선택, 어떤 이는 모두를 위한 선택을 생각할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걸 알지만 선택은 책임이 따라오기에 언제나 어렵다. 공익을 위한 제보,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비밀을 공개한 뒤 남은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는 그런 삶을 조명한다. 소설은 화자인 기자가 ‘손동하’란 인물을 인터뷰하는 이야기다.

손동하의 선택은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이어졌고 그는 한국을 떠나야 했다. 대의를 위한 그의 선택은 개인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가능했다. 모두를 위한 선택이 개인에게도 이로운 일일까. 소설을 읽는 우리는 그의 선택을 지지한다. 선택 밖에 있기에, 선택 안의 그의 복잡한 내면을 모르면서 응원한다. 어쩌면 모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연수는 어렵고 주제의 무게감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선택과 과거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손동하가 들려주는 그가 어린 시절 만난 소녀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미래는 가능한가 묻는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으로 다가올 미래는 어떤가.

삶이란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과거가 존재하기에 현재와 미래가 있는 것이다. 결국 미래를 사는 일은 오늘을 사는 일이며 무엇을 선택하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우리들의 실패」속 큐레이터 ‘가스미’는 고인이 된 사진작가의 작품 전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고민하고 고민한다. 전시할 작품이 아닌 공개되지 않은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인의 취향이라 할 수 없는 범죄인 사진이었다. 사진작가와 자신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야 할까. 자신이 알았다고 믿은 모습은 거짓이란 말인가.

사진작가의 아들은 반발한다. 아버지는 죽었고 그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묵인할 수 있다 주장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론화할 수는 없지만 전시를 강행할 수 없었다. 세상은 모르고 나만 아는 일, 그러니 비밀로 묻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누가 그를 비난할 것인가. 한편으로 이처럼 세상은 모르고 소수만 아는 엄청난 비밀은 얼마나 될까. 시간이 지나 드러나고 밝혀지는 일들 말이다.





왜 그때 그 상자를 열었을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온다. 열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시회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세계가 어딘가 있다면 지금이 세계의 나를 잃더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피해자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전시회 성공을 기뻐하는 나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나도,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아니다. (「결정적 순간」, 167~168쪽)


예술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 큐레이터가 조언을 구하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인의 일이라면 어떨까. 가까운 이의 비밀, 그러니까 범죄에 관련된 비밀을 알았다면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내가 알았던 이가 전혀 다른 이로 존재하는 순간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 한 사람을 아는 일은 현재뿐이 아닐까. 함께 할 미래를 아는 일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모든 것은 가능할까. 아니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뒤에 이어지는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의 대화는 소설이 어떻게 쓰여졌고 그 과정을 이해하기에 충분하고 대화를 읽고 나면 소설이 더 좋아진다. 두 작가가 소설가로 살아가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가늠하게 된다고 할까.

저는 그 다정함이 과거의 기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상상을 통해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미래적 시점’에서 오는 것이라 믿습니다. 운명론의 노예가 아닌 결단의 주체로써 독자에게 인물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가로써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다정함일 것입니다. (김연수, 201쪽)

『근접한 세계』 는 ‘윤리적 딜레마’란 주제로 쓰였지만 김연수의 소설은 미래를 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최근 그가 가장 주목하는 주제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떠올랐고 가장 최근에 읽은 『겨울 정원』 속 「조금 뒤의 세계」를 생각하면 그렇다. 김연수의 소설을 읽다 보면 지금의 삶을 가만히 생각한다. 나와 연결된 우리가 만드는 미래. 만약에는 불가능하지만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진지한 사랑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 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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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3-11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어떨까? 궁금했었는데 리뷰를 읽다보니 금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자목련 2026-03-11 11:55   좋아요 1 | URL
나무 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