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은 무엇일까. 눈을 감아봐야 알까. 아니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일까. 어쩌면 마음의 평정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제목만 보고 잠언 비슷한 글이 아닐까 짐작했다. 제목 때문에 에밀 시오랑이 생각나기도 했다. 생에 마지막 2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로 모두 9편의 짧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아내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1940년~1941년에 쓴 글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신기하게도 그가 살아온 시대는 80년 전인데 마치 지금의 우리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사는 건 결국 다 같은 것일까.


그는 말한다. 절망과 비탄이 가득한 삶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실패와 좌절 대신 웃음과 사랑을 바라보며 그래야 한다고. 그래서 이 짧은 9편의 이야기는 아프면서도 위로받는 기분이고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맨 처음 만나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은 물질만능주의를 살면서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누가 봐도 초라한 행색의 청년 ‘안톤’은 가진 게 없다. 그러나 정작 안톤은 걱정이 없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타인에게 나누고 돈이 아닌 필요한 것들로 받는다. 아름다운 순환이라고 할까.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면 그만이다. 그런 마음은 최악의 인플레 사태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나에게 돈이란」으로 연결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돌아보고 깨닫게 한다.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돈의 실패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우리는 비록 돈에 실패했지만,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는 않았다. (「나에게 돈이란」, 42쪽)


3년은 편히 살 수 있는 거액의 돈뭉치를 내고 빈 오페라 티켓을 샀던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거라는 슈테판 츠바이크. 석탄 부족으로 난방이 되지 않아 코트를 입고 따닥따닥 붙어 앉은 관람객. 음악가의 훌륭한 연주와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전하는 감동. 돈이 줄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알려준다. 돈을 좇는 삶이 아니라 돈에서 자유롭고 돈이 아닌 삶의 가치를 생각하라고.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나에게 돈이란」, 44쪽)


존경하는 로댕의 작업실에 방문하고 그의 집에서 본 로댕의 놀라운 작업 열정에 반한 「영원한 교훈」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프랑스 혁명사를 읽다가 발견한 사소한 일화에 대한 것이다. 루이 16세가 콩코르드광장에서 처형되는 극적인 날, 광장과 지척인 센강에서 수많은 낚시꾼이 평소와 다르지 않게 낚시를 하고 있는 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의 통찰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그것이다. 우리가 살고 만드는 역사. 삶이란 무엇이며 역사란 무엇인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역사를 진정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모든 역사책이 센강의 낚시꾼에 관한 그날의 사소한 일화를 빼놓지 않고 다루기를 바란다. 우리는 현재 매일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센강의 낚시꾼」, 53쪽)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센강의 낚시꾼」, 54쪽)


슈테판 츠바이크의 완벽한 문장으로 빛어낸 훌륭한 이야기는 짧고 강렬한 글에 담긴 심오한 울림은 오래 곁에 머문다. 그래서 한번에서 끝나지 않는다. 분량이 짧기도 했지만 좋아서 두번 읽게 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으면서 히라오 마시히로의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가 생각났다. 닮은 듯한 제목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건 다 같지만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니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규범과 도덕이 필요하다.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를 혼란에 빠진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 무질서한 사회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학습했다고 할까. 그럼에도 우리 삶에서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필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는 윤리학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도덕과 윤리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눈에도 안 보이고, 있는 것이 당연하며, 딱히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린 바로 죽을 것입니다. 도덕이 없으면 바로 죽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반대로 지금 내가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면 이미 우리 주변에는 도덕, 윤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32~32쪽)


윤리는 무엇이며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막연하게 다가오는 질문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개인의 윤리는 자유, 사회의 윤리는 정의, 친밀한 관계의 윤리는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하여 강의한다. 윤리의 기본 원리를 12개이며 3개의 영역에서 세분화하여 4개로 설명한다. 정의와 윤리철학에 대해 이론적 내용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실험, 소설, 게임, 정치에서 어떻게 윤리가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이고 강렬한 사고실험은 이렇다. ‘버튼을 누르면 1억 엔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선가 모르는 사람이 죽는다면 버튼을 누르겠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단순하게 1억 엔인데 누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모른척할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면 다른 누군가가 버튼을 누르고 그 누군가의 죽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나는 모두 개인이고 내 위치에서만 생각하면 끝나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도 남에게도 좋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 이것이 윤리이고 정의가 아닐까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대도 할 수 있고 상대가 해도 되는 일은 나도 해도 된다는 것, 바로 상호성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혼자가 아닌 사회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관계는 무척 중요하다. 나 개인으로 존재하면 그만이라 여길 수 있지만 개인고 개인이 연결된 사회에서 개인은 나이면서 동시에 상대이고 결국은 우리라는 사실이다.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시작이라는 것이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명제다.


자유라는 것은 나에게는 권리가, 남에게는 의무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에게 모두 해당하니 남에게는 권리가 나에게는 의무가 있다는 뜻도 됩니다. 나의 권리는 타인의 의무와 세트입니다. 의무를 지키면 나의 자유는 제한되지만, 그것은 나의 권리를 즉,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124쪽)


80년 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에서 전하는 긍정과 사랑이 정의와 윤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디에 가치를 두어야 할까 하는 문제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모인 사회의 윤리는 그럴 수 없다. 사회 윤리는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어야 하니까. 저자는 그것을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 말한다. 개인, 사회, 친밀한 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 어렵지만 우리가 찾아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정의 자체가 윤리의 일부이며 사랑과 자유도 윤리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원했던 윤리는 이 모든 것들의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들 중에 하나가 튀어나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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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1-12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대의 사람들은 역사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구절에 공감이 됩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 궁금해 졌습니다. 자목련님의 좋은 글 감사 합니다. _()_

자목련 2024-11-13 16:07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이었어요. 현재의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게 신기했고요.

달자 2024-11-13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느강 낚시꾼의 일화는 특히 많은 울림을 남기네요. 좋은 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4-11-13 16:09   좋아요 0 | URL
다른 이야기도 좋았지만 말씀처럼 그 일화는 여운이 오래 남았어요.
 


집중력이 떨어진다. 속도도 떨어진다. 읽기, 쓰기, 어떤 일을 진행하는 속도. 모든 게 그러하다. 당연하다. 늙고 있으니까. 아니 이 늙음은 나에게만 한정된 것이다. 다른 이들은 그들의 속도와 집중력이 있으니까. 시간의 느림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의 속도와 상관없이 제 속도로 뚜벅뚜벅.


노란 은행잎이 가득하다. 가로수의 잎들이 누렇게 빨갛게 변한다. 곧 가을이 사라질 징조다. 입동이 지나면 바로 겨울이 올 것 같기도 하고. 옆집은 김장을 하려는지 어제 보니 문 앞에 파와 큰 대야가 가득하다. 김장철이 다가오고 있구나. 올해 배춧값은 어떤가. 김장을 직접 담그는 건 아니지만 항상 궁금하다.


계절은 계절대로 흐르고 나는 나대로 흐른다. 읽고 싶고 궁금했던 책을 샀다. 소설이다. 예소연의 단편집 『사랑과 결함』, 조해진의 장편 『빛과 멜로디』. 곧 읽겠지. 읽게 되겠지. 이주혜와 위수정의 소설이 궁금한데 위픽 시리즈는 살짝 주저한다. 중고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성급한 마음을 접어두고.







여름 옷을 정리하면서 옷 몇 벌을 버렸다. 내가 좋아했던 티셔츠를 거리낌 없이 버리는 쪽으로 밀었다. 겨울 신발 하나 쓰레기봉투에 넣어 입구를 묶었다. 책도 몇 권 버렸다. 이런 단호함이 필요하다. 책은 더 큰 단호함이 필요하다. 가을이 가기 전에 책을 정리하자. 가을이 너무 빨리 가버려서 타이밍을 놓쳤다는 핑계는 대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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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11-06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드는 것의 가장 나쁜 점은 설렘의 상실인 것 같아요. 집나간 설렘을 함께 기다려요.

자목련 2024-11-06 15:08   좋아요 0 | URL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걸 설렘이 알아야 할 텐데요.
 

고구마를 먹는다. 커피를 곁에 둔다. 커피도 좋겠지만 Tea를 겯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차를 잘 모르지만 이런 책은 괜히 끌린다. 사실,내가 좋아하는 찻 잔이 등장할 거란 예감 때문이다. 『영국의 여왕과 공주』란 제목을 보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아한 드레스와 왕관이 따라올지도 모른다. 그렇다. 표지부터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의 삶은 정작 우아하지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태생부터 운명이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이 책 저자가 독특하다. Cha Tea 홍차 교실이라니 영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2002년 개교한 일본의 Cha Tea 홍차 교실에서 집필했다. 짐작할 수 있듯 일본에 영국의 차 문화를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차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의 여왕과 공주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영국의 여왕과 공주』에서 만날 수 있는 여왕과 공주는 모두 22명이다. 시간순으로 차례로 왕비, 여왕, 공주를 소개한다. 우선 제일 먼저 만나는 왕비는 브라간사의 캐서린(1638~1705)이다. 캐서린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영국 왕실에 차 문화를 정착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공작 주앙 4세의 둘째 딸로 가톨릭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당시 포르투갈과 영국의 동맹을 위해 1662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다. 정략결혼인 셈이다. 결혼 전부터 차를 즐겨 마신 그녀가 가져온 차가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녀는 침실이나 침실 옆의 사적인 공간에서 차 모임을 열였다. 자극이 강한 차를 마시고 위가 상하지 않도록 차를 마시기 전에 버터를 바른 빵이나 차에 설탕 또는 사프란을 넣어 마시는 방식이 유행했다고 한다. 포르투갈에서 주문한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등장하기도 했다고. 놀라운 건 모임에 남편의 정부도 참석했다고 한다. 왕비와 왕의 정부가 나란히 차를 마시는 분위기는 어땠을까. 속마음은 감추고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한 나라의 왕비로 사는 일은 일반 국민을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왕위를 이을 자식이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 왕위를 놓고 서로 쟁탈을 벌이는 형제와 친척들, 그러니 맨 처음 영국의 여왕이 된 앤(1665~1714)은 어땠을까. 앤 여왕은 ‘로열 터치’로 기억될 것 같다. 왕의 손길이 병자에게 닿으면 병이 낫는다는 ‘로열 터치’를 윌리엄 3세가 폐지했으나 앤이 부활시켰으니 국민의 사랑은 충분히 받았을 것이다. 앤 여왕 시대에 은으로 만든 찻주전자가 보급되었다고 한다. 앤 여왕은 서양 배를 모티브로 한 로코코 양식의 찻주전자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유가 있었다. 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서양 배 시나몬 콩포트’였다고 한다. 모두의 추앙을 받는 여왕이었으니 단 음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앤 여왕이었다.


그렇다면 ‘애프터눈 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어머니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된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1837년 즉위 후 가신에게 처음 내린 명령이 ‘차와 타임스지’를 가져다 달라고 했으니 그녀의 차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가 알 수 있다. 하지만 ‘애프터눈 티는 빅토리아 여왕이 아닌 여왕의 침실 여관이었던 공작부인 마리아 러셀을 만나러 오는 손님이 많아서 시작되었다고.


공작 부인은 자신을 만나러 오는 모두를 만찬에 초대하기 어려워 만찬 전 티타임에 초대한 게 관습으로 굳어졌다는 설이 있다. 5시~ 5시 반사이에 공작부인이 참석하는 차 모임이 있다는 기록, 이것이 ‘애프터눈 티’의 기원이라고. 이러한 배경도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1840)이 일어난 원인이 되었다.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영국에 할양된 홍콩에서도 ‘애프터눈 티’가 유행했다고 한다.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엘리자베스 2세 (1926~2022)와 불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1961~1997)의 생애도 빼놓을 수 없다. 사진, 초상화, 삽화 같은 풍부한 자료는 책을 읽는 재미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국의 왕비와 공주 22명의 생애를 만날 수 있는 점도 흥미롭지만 시대별로 명예혁명(1688), 스페인 계승 전쟁(1701~1714)과 같은 영국을 둘러싼 유럽 역사의 흐름도 짚어볼 수 있는 점도 유익하다. 개인적으로 예쁜 찻잔과 도자기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좋아하는 잔을 꺼내 차를 마실 때 한 번쯤은 영국의 캐서린 왕비나 공작부인 마리아 러셀이 생각날 것 같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224쪽)


차를 음미하는 즐거움은 음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찾는다. 일종의 요리책이자 중세 유럽의 문화와 일상도 함께 만날 수 있는 『중세 유럽의 레시피』는 그런 의미로 흥미로운 내용을 담은 책이다. 우아한 귀족의 식사, 새하얀 보석의 달콤한 유혹, 대대로 누리는 과실의 축복, 신과 함께 살고, 신과 함께 먹다(중세 전기의 수도원 요리), 기사가 들여온 식문화(중세 아랍 요리), 왕족의 대관식 메뉴까지 흥미롭다. 관심이 있는 분야의 레시피를 선택해서 즐길 수 있다. 거기다 각종 향신료와 허브의 쓰임새와 재료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다.


도전해 보고 싶은 요리는 이런 것이다. ‘렌즈콩과 닭고기 스튜’로 렌즈콩이 구약 성서에도 등장했다니, 정말 오래된 식자재로 사용된 것 같다. 보관이 용이하고 영양도 좋아서 수도원의 식사 메뉴에도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점점 추워지는 요즘에 아주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다. 닭다리 살을 굽고 닭 육수를 부어 30~40분 약불에 끓이고 다른 냄비에는 렌즈콩과 육수를 끓이고 순무가 들어가는 게 포인트다. 마트나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는 재료라서 누구나 한 번쯤 해 볼 수 있는 요리가 아닐까 싶다.




렌즈콩과 닭고기 스튜




중세 시대의 식재료가 신분에 따라 어떻게 나눠지는지 알려주는데 빵의 경우는 질 좋은 밀가루로 만드는 최상급 흰 빵은 귀족과 왕족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잡곡 등이 들어 있는 빵은 등급이 낮은 것으로 시민 계급이 많이 먹었고 마지막으로 농민들은 그보다 더 질이 낮은 밀가루로 구운 빵을 먹었다니 좀 씁쓸하다.


맛있는 빵, 부드러운 빵으로 이야기를 돌려보면 ‘원파운드 케이크’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파운드케이크는 버터, 밀가루, 달걀, 설탕을 각각 1파운드씩 사용해 만든 케이크에서 유래되었다. 미니 오븐을 구비한 1인 세대에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케이크가 아닐까.




원파운드케이크




책으로 중세 유럽의 달콤한 맛과 삶을 만날 수 있다. 영화 속 판타지나 우아한 중세를 요리로 만나는 즐거움과 함께 요리를 좋아하고 새로운 요리를 발견하는 기쁨을 원한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이전과 다르게 ‘애프터눈 티’가 다가올 것 같다. 알고 나면 마음이 달라진다. 책의 역할이라고 할까. 아무튼 커피를 제일 좋아하지만 깊은 잠을 위해 차를 마시기도 하는데 『영국의 여왕과 공주』를 통해 만난 Tea와 찻잔이 생각알 것 같다. 거기다 그들의 안타까운 삶도.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 아니라 불화한 왕실, 국익을 위해 맺어진 혼사, 서로가 서로를 증오한 왕과 왕비의 모습은 시대를 지나 현재의 영국 왕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역사가 기록하고 그 기록을 읽는 우리가 느끼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렇다. 어쩌면 왕실을 둘러싼 스캔들, 끊임없는 가십은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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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10-2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차와 마들렌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자목련 2024-10-29 09:11   좋아요 0 | URL
요즘 같은 날씨엔 따뜻한 차와 달달한 간식이~~

망고 2024-10-2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렌즈콩과 닭고기 스튜 메모! ㅋㅋㅋㅋ

자목련 2024-10-29 09:11   좋아요 0 | URL
망고 님의 요리 기대할까요? ㅎㅎ

페넬로페 2024-10-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 사람들은 차에 엄청난 열정이 있더라고요. 가끔씩 차 마시면 좋은데 커피에 기계적으로 손이 가요^^

자목련 2024-10-29 09:1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일어나면서 커피 마실 준비를 해요^^
 


어제저녁 8시가 되기 전 노벨문학상을 검색했다. 수상자가 궁금해서였다. 노벨문학상을 기대하고 관심이 많았던 때를 지나왔지만 그래도 누가 받았을까 궁금하기는 했다. 속보로 기사가 떴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순간 나는 대박!이라고 외쳤다. 혼자였다. 얼마 후 H가 카톡을 보냈다. 한강 작가 소식 들었냐고, 너무 좋다고. 좀 전에 다른 친구가 한강의 수상 소식에 깜짝 놀랐다는 카톡을 전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 문학을 읽고 좋아하는 이가 없다는 게 쓸쓸했다.


한림원의 선정 이유가 기사로 뜨기를 기다렸다. TV 채널을 돌렸다. 늦은 밤에야 뉴스로 접할 수 있었다.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는 한강은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온라인 서점의 마케팅이 시작되었다. 이참에 『디 에센셜: 한강』을 들여놓을 생각이다.


사색하기 좋은 가을일까, 그런데 사색이 아닌 잡념만 늘어난다.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런 책이 나를 도와주기를 바란다. H를 만났을 때 『일인칭 가난』에 대해 말했었다. 둘 다 읽기 전이었고 얼마 전 H는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나는 이제 읽으려 한다. 작가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작가가 태어났을 때 나는, 뒷말은 생략하겠다.








소설도 읽어야지. 단풍을 연상시키는 표지의 『소설 보다 : 가을 2024』, 조경란의 단편을 읽기 시작한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그리고 책장에 있는 한강의 단편집을 다시 읽고 싶다.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 『흰』, 『채식주의자』를 추천했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이 좋다. 아무려나 어떤 책이든 무슨 상관일까. 이 기회에 좋아하는 마음을 더하며 한국문학이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책은 쌓이고 감격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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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10-11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민음사 라이브 보고 있다가 진짜 그 소식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어요. 저는 <소년이 온다>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자목련님이 좋아하신다는 소설들도 읽은 것 같은데 아, 기억이 안 나요. 기록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희랍어 시간> 읽어보고 싶어요. 기분좋은 금욜이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4-10-13 08:08   좋아요 0 | URL
정말 놀라고 기쁜 날들이에요!
<희랍어 시간>, <흰>은 정말 고통을 아름답게 그려낸 시 같아요. 당분간은 한강 덕분에 우쭐할 것 같아요. ㅎㅎ

망고 2024-10-1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너무 기뻐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ㅎㅎㅎ이 기쁨을 저는 가족과 나눴습니다.부모님이 함께 좋아해 주셨어요 이렇게 쓰니 제가 탄 상인줄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10-13 08:10   좋아요 0 | URL
부모님과 함께이 기쁨을~~
방송에서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관련된 소식이 나놀 때마다 집중하고요 ㅎㅎ

coolcat329 2024-10-1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 애독자이신 자목련님에겐 어제 한강 작가의 수상이 더욱 큰 기쁨으로 다가왔을 거 같아요.
오늘도 즐겁습니다.

자목련 2024-10-13 08:1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기뻤어요. 이 기회에 천천히 재독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10월과 함께 가을이 왔다. 더 이상 창을 활짝 열지 않는다. 환기를 위한 시간이 아니면 활짝은 사양한다. 징검다리 휴일을 지나고 나니 이번 주는 어영부영 다 사라졌다. 실은 추석 연휴부터 어영부영 보냈다. 여름 명절 같은 더위에 지쳐서 하는 일 없이 짧은 안부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느닷없이 임시공휴일이 된 국군의 날은 모두가 쉬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가족 일원 중 한 명은 월차를 쓰고 10월의 첫날을 쉬었다고 했다.


아무튼 덧신이 아닌 양말을 챙겨 신어야 할 10월이 되었다. 올해는 10월, 11월, 12월까지 세 달이 남았다.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내년에는 얼마나 빠르게 지나갈 것인가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가을이니까 시집을 샀다. 분명한 명분도 있다. 시집의 제목에 ‘작약’이 있으니까. 자고로 작약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런 제목의 시집은 구매해야 한다. 뒤늦은 발견으로 미안해할 정도다.






이승희 시인의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김경미 시인의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그리고 신용목 시인의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까지 세 권의 시집. 세 권의 시집을 훑어보다 멈춘 시는 이런 시다.

발이 구두를 다 써서

발가락이 구두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귀가 말을 다 써서

더는 듣고픈 말이 없는 것

다 쓴 관계들이 가득한 사진첩들

다정도 부드러운 손을 다 썼을까

저녁노을 다 써 버린

커피색 유리창 옆

당신과 맞잡은 나의 손이 풀린다 (김경미 「다 쓴다는 것」, 전문)



시집과 더불어 읽고 싶은 단편은 조경란이 수상한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책에는 신용목의 단편도 있다. 시인의 단편이 궁금하다. 이미상 단편을 읽을 수 있는 소설 보다 : 가을 2024』. 그건 그렇고 어쩌자고 나는 자꾸 시집을 사는지 모르겠다. 시를 읽지도 못하고 시집을 정리하기도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시 읽는 밤이면 좋겠다. 시 읽는 밤이 이어지길 바란다. 시가 머무는 밤, 시가 맴도는 밤이면 좋겠다. 2024년 가을이 그렇게 지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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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04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조경란 작가가 영예를 안았군요.
그렇지 않아도 조용해서 뭐하며 지내나 궁금했는데
소식들으니까 반갑네요. 예전에 잠깐 인연이 있어서 말이죠. ㅎ
나중에 한 번 사 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4-10-05 16:32   좋아요 3 | URL
오, 그 인연이 궁금하네요 ㅎㅎ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yamoo 2024-10-07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경란 작가...아직도 건재하군요. 제겐 너무 지루한 작품이라 몇 권 읽고 말았습니다. 서하진과 조경란 등은 좀 지루하더군요. 공선옥 작가가에 비해서요....^^;;

자목련 2024-10-08 17:06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공선옥 작가와 비교하면 지루하다고 할 수 있죠. 조경란 작가의 초반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때가 있는데....

그레이스 2024-10-1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시경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제목때문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