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은 다른 책으로 연결된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작가가 같을 때 이런 경우가 많다.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를 읽게 된 이유가 그렇다. 『북극을 꿈꾸다』로 그를 알았지만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탐험하고 방문한 장소에 대한 기록과 사유를 섬세하게 그려낸 『호라이즌』은 내가 읽기에 어려운 책이었으니까. 때문에 꼼꼼하게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책이고 놀라운 책이라는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저자 배리 로페즈는 여행자이자 탐험가이고 기록자였고 연구자였다. 그의 생은 여행하며 체험하고 읽고 쓴 시간으로 채워졌다. 55년 동안 8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보고 배우고 느끼고 사유한 것들을 책으로 써냈다. 『호라이즌』은 생전에 마지막 집필한 인문 에세이다. 남극과 일흔여 개 나라를 여행하고 보낸 세월을 돌아본 책이다. 그가 간 장소, 그가 본 역사적 유적지,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러니 900페이지가 넘을 수밖에. 누군가는 이 책이 지식과 정보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한 번쯤 찾고 싶은 여행지를 꿈꾸는 시간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공간에 대한 탐구와 사유로 안내하는 문학서가 될 것이다.


책은 오리건주 서부의 파일웨더곳을 시작으로 캐나다 북극 스크릴랭섬, 아프리카 케냐, 적도 인근의 푸에르토아요라, 호주, 남극 등 세계 곳곳으로 안내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자주 멈췄다. 인터넷으로 지명을 검색하고 역사에 기록된 탐험가를 검색하며 따라가야 했다. 그가 만난 지구의 곳곳은 고고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의 글로 만나는 황홀하고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검색이나 정보로 만날 수 없는 놀라운 경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느 장소에서든 눈에 보이는 것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며 관찰했다. 그리고 과거의 삶을 상상하며 그려보았다. 한 마리 새, 한 마리 고래, 남겨진 뼈나 집 터에서 그가 발견하려고 했던 건 무엇일까. 표면이 아닌 깊숙한 내부, 그곳에 처음 존재했던 동물과 사람의 삶의 형태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돌아보는 것 같았다.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며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곳의 지배하고 그곳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만 역사의 기록에서 놓치고 만 어떤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이라고 할까.





나는 그 장소들에 처음 갔을 때는 놓치는 게 많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번째로 갔다면 어떤 것을 받아들이든 간에, 전체적인 경험에서 전과는 다른 영향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다른 장소들에서 밤을 보낼 것이고, 날씨도 다를 것이며, 그 사이 내가 읽은 책들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 여행 이후 얻은 깨달음들과 내가 살면서 한 실패들도 분명 예전의 인식을 바꿔 놓을 터였다. 아무리 여러 차원에서 엄밀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그곳을 아무리 여러 번 여행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한 장소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는 장소 자체가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장소는 그 깊은 본성상 투명하지 않고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48~49쪽)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일어난 일들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고, 거기에 아직 어떤 실마리가 남아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51쪽)


그러니 그의 가방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 하나의 장소를 방문하기 전 그곳에 대한 기록을 찾고 함께 가는 이들(대부분 연구가, 탐험가, 과학자)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미리 세심하게 계획했다. 그의 글은 인류의 발자취를 연구하고, 인류의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호라이즌』 은 인문학, 지질학, 생물학, 지구과학, 지구 역사, 환경까지 모든 걸 수렴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간 장소에 나는 가지 못할 것이다. 단 하나의 장소에도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 장소를 꿈꿀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 여행지로 만나는 남극 대륙에서 지구온난화, 남극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곳에서 운석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놀랍다. 화성, 소행성대, 달에서 조각들이 남극에서 발견된다니. 그 운석 조각을 마주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배리 로페즈의 산책을 따라 남극의 풍경을 그려본다.

남극점 기지에서 나가 산책하는 날이면 나는 남극 고원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으며 어디를 바라보든 만나게 되는 풍경의 단순함을 즐겼다. 하늘에서는 종종 햇빛이 다양한 종류의 굴절 현상을 일으켜 눈길을 사로잡는 신기한 광경을 보여주었는데, 이를테면 양쪽으로 아주 연한 분홍색과 라임색의 밝은 빛무리가 생기거나ㅡ이를 환일이라 한다ㅡ 태양과 지평선 사이에 증기로 된 유령처럼 흐릿한 빛줄기가 달의 흙을 연상시키는 회색 기둥을 만들었다.

영원히 지고 있는 태양, 눈을 밟으며 걷는 내 부츠에서 나는 뽀드득 소리, 고원의 광활한 정적 위로 내 숨소리는 주변에 있는 건물들이 어쩐지 내가 투사해낸 실체 없는 환영인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들게 했다. 그것들은 언제라도 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816~817쪽)


배리 로페즈의 생생한 글로 지구의 자연과 역사를 만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되살린 기억과 꼼꼼한 기록으로 이끈 자연 여행은 끝나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는 우리가 살아갈 지구, 앞으로 남겨질 자연에 대한 연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아름답고 끝이 없는 추구여야 한다고.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인간의 안락과 이득을 위해 자연 세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언젠가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다. 나는 우리의 문화적 운명에 관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생물학적 운명에 관해 우리가 마침내 서로 유의미한 대화를 나룰 수 있으려면 어떤 대격변이, 혹은 더 낫게는 어떤 상상의 행위가 필요한지 종종 생각한다. (85쪽)


더 알고자 하는 욕망, 감지하고 측정하는 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단순히 알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미지의 것에 대비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끝이 없는 추구다. (285쪽)


여행자에게는 아름다운 안내서가 된다. 연구자와 과학자에는 정확하고 사려 깊은 교과서가 된다.그리고 나 같은 독자에게는 자연과 지구의 역사를 선물하는 그런 책이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닿을 수 없지만 정말 경이롭고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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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1-1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말씀대로 책은 다른 책을 연결하고, 가지 못하지만 꿈 꿀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무척 공감합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닿을 수 없지만 꿈 꿀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책을 저도 보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 합니다.

자목련 2025-01-16 09:42   좋아요 0 | URL
어려운 책이지만 정말 좋은 책이라고 말씀드려요!
따뜻한 하루 보내시고요^^

꼬마요정 2025-01-1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도 못 가보겠지만, 함께 꿈을 꾸고 싶어집니다.

자목련 2025-01-16 09:44   좋아요 1 | URL
지명을 검색하고 세계 지도를 찾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바닷가에서 노을 지는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2025년이 생경하다. 그저 숫자에 불과한데 먼 미래에 도착한 기분이다. 푸른 뱀의 해라고 했던가. 고모와 선생님이 뱀띠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다정한 동생도. 같은 해에 태어난 건 아니지만 나에게 소중한 이들이다. 이렇게 띠로 연결해 보니 재밌고 한결 친근한 것 같다.


2025년의 첫 책을 샀다. 커피만 구매하려고 했는데 적립금이 아까워서 책을 골랐다. 무료 배송 가격을 맞춰야 해서 책을 더했다. 책을 덜 살려고 하는 마음은 언제나 유효하다. 궁금한 책은 많지만 이상하게 구매하는 책은 시집이다. 유수연의 시집은 처음인 것 같다.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란 제목의 시집.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샀다. 사실은 이 소설도 그렇다. 세라 온 주잇의 『뾰족한 전나무의 땅』이다. 이 소설은 정보가 조금 있다. 윌라 캐더가 극찬하고 직접 편집했다고 한다. 『루시 게이하트』의 작가 윌라 캐더 말이다.







두 권의 책과 커피로 2025년을 시작한다. 8일이나 지났지만 새로운 마음을 지닌다. 나에게는 새로운 마음이 조금 필요하다. 새로운 마음, 새로운 산뜻함, 새로운 기분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새로운 소식을 듣고 싶다. 아마도 그 새로운 소식은 모두가 바라는 그것일 것이다.


2025년의 계획 같은 건 없다. 그냥 산다. 그래도 이런 건 지키고 싶다. 올해는 덜 사고 많이 읽는 일.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년보다 덜 사고 작년보다 많이 읽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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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1-0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자목련님 처럼 2025년이란 미래에 도착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생각 보다 과거와 달라진게 없어서 약간은 실망하고 있어요. ㅎㅎ 그래도 올 해에 또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 하면서 밝은 희망도 가져 봅니다. 자목련님 올해도 늘 건강하시고 좋은 책 알려 주세요. 감사 합니다.

자목련 2025-01-09 11:26   좋아요 1 | URL
어느 순간 해가 바뀌고 새로운 숫자를 마주하는 게 느낌이 없기도 합니다. ㅎㅎ
나이가 든 탓일까 싶어요.
마힐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환하고 맑은 날들 이어가시길 바라요!

희선 2025-01-0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만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래야겠네요 지난해에는 별로 못 봐서... 새해가 됐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군요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네요 나라도...


희선

자목련 2025-01-09 11:27   좋아요 0 | URL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 쓰는 속도는 더욱 느려집니다.
올해는 조금 속도를 내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희선 님도 좋은 책들 많이 만나시길 바라요.
많이 춥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고양이를 처방한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도대체 어떤 병원에서 고양이를 처방해 준다는 건지. 소설을 읽기 전부터 판타지 소설이구나 싶으면서도 나도 고양이를 처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온 이시다 쇼의 『고양이를 처방해 드립니다 2』에서는 네 가지 사연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네 명의 환자에게 고양이가 처방된 것이다. 모든 판타지가 그렇듯 고양이를 처방해 주는 ‘고코로 병원’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어떤 이는 우연한 방문으로 어떤 이는 지인의 소개로 그곳을 찾는다.


대학생 ‘모에’는 엉겁결에 병원을 방문했다. 울적한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높은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이가 위험해 보여 그곳에 가게 된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려고 한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해버린다. 의사 ‘니케’는 아무런 설명 없이 고양이를 처방하겠다며 고양이 한 마리와 설명서를 지급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사람에게 고양이라니. 일주일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어쨌든 고양이를 데리고 온 모에는 고양이를 살핀다. 할 말이 있다며 찾아온 애인도 고양이를 보자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만 나눌 뿐 할 말은 나중으로 미룬다. 애인이 헤어지자고 말할 거라 짐작한 모에는 마음이 한 결 놓인다. 우선은 고양이가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니까.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 레오나에게 사정을 말하고 고양이에 대해 몰랐던 것을 듣는다. 일주일 후 모에는 병원에서 다른 고양이를 지급받는다. 이번 고양이는 지난번 고양이와는 다르게 장난꾸러기였다. 그리고 한 마리가 더 처방되었다. 고양이를 돌보면서 모에는 애인에게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애인이 할 말은 헤어지자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전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떨어져서 자주 못 보는 게 걱정이라고. 모에는 세 마리의 고양이를 통해 고양이마다 원하는 게 다르게 관계를 맺는 방법도 다르다는 걸 배운다. 애인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는 걸 말이다.


아내가 떠나고 일상의 의욕을 잃은 노인 ‘다쓰야’는 며느리의 소개로 병원을 찾는다. 방에서만 지내는 손자에 자신까지 걱정을 더하면 안 되기에. 다쓰야에게 처방된 고양이는 특대형 고양이였다. 모에처럼 일주일을 지내는 게 아니라 툭하고 다쓰야에게 묵직하게 안겼다. 고양이를 안은 채 니케 의사와 대화를 나누다 생각한다. 손자에게 고양이처럼 작은 빛으로도 걸을 수 있는 강인함이 있는지에 대해서. 손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다쓰야는 밤 산책을 하다 손자가 야간 학교에 다니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걸 좋아한다는 것도.






오빠가 우선인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레오나’는 삼수를 하는 친구를 따라 병원에 가게 된다. 그러다 엄마가 싫다는 말을 해버린다. 그런 레오나에게 아기 고양이가 처방된다. 집에 14년을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 ‘하지메’가 있는데 말이다. 아기 고양이를 돌보는 하지메를 보면서 레오나는 엄마에 대한 갈등과 유기묘 보호 센터에서 일하는 오빠와의 관계를 생각한다. 속으로 쌓아두었던 감정을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은 손님은 레오나의 오빠 ‘도모야’다. 지친 것 같다며 동료가 소개해 준 것이다. 직장에서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그에게 역시나 고양이가 처방된다. 그러나 정작 병원에는 고양이가 없고 의사는 집에 있는 고양이를 챙기라고 한다.


“고양이를 처방하겠습니다. 힘들 때는 참지 말고 고양이에게 의지하는 게 좋습니다. 참아서 좋은 일은 하나도 없죠. 기대든 쓰다듬든 좋을 대로 하십시오. 그래 봐야 고양이 마음이 인간 마음대로 되지는 않지만요.” (260쪽)


도모야의 고양이는 1년 동안 눈을 감고 잠만 잔다. 그래서 걱정이다. 떠나보낼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아 두렵다. 직장에서 유기묘 보호 센터에서 고양이를 돌보며 입양 관련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고양이는 곁에서 지켜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런 도모야의 마음을 아는지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고양이는 말이죠, 당신의 생각 이상으로 강인합니다. 고양이가 눈을 감고 자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설사 그때가 혼자라고 해도 고양이는 즐거운 꿈을 꾸면서 떠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고 있습니다. 여하튼 고양이는 모든 고민을 낫게 해주니까요.” (308쪽)


모든 고민을 낫게 해주는 고양이는 없겠지만 처방받은 고양이를 상상한다. 내 곁에 새롭게 등장한 작은 고양이, 혹은 거기 있던 고양이. 소설에 등장한 고양이는 사람처럼 말을 하거나 신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양이를 돌보면서 고양이를 살피고 행동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가족이나 연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유쾌하고 다정한 소설이다.


집사는 아니지만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책은 관심이 많다. 19년의 묘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고양이 ‘후타’가 사람들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는 이야기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 ‘미쿠지’란 이름의 고양이가 우연하게 신사를 찾은 이들에게 고양이가 건네는 말씀을 들려주는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신비한 존재다. 그들은 슬픔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고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물론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아도 고양이는 그 존재로 기쁨이며 사랑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고양이를 만나게 된 이용한의 『명랑하라 고양이』 속 고양이는 남다르다 시인이 만난 다양한 사연을 지닌 길 고양이. 고양이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책을 볼 때마다 오빠네 집 고양이를 떠올린다. 집에 갈 때마다 달라지는 고양이들. 사라진 고양이도 있고 귀여운 아이 고양이도 있다. 가만히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고양이가 좋아서, 고양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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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12-27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눈을 감고 자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설사 그때가 혼자라고 해도 고양이는 즐거운 꿈을 꾸면서 떠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고 있습니다.˝
11년된 노령묘를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 위안이 되는 구절이네요. 고양이가 아닌 자꾸 제 감정을 이입해 서글퍼지곤 했는데...

자목련 2024-12-31 13:58   좋아요 1 | URL
잉크냄새 님의 그 마음을 고양이가 알 거라 생각합니다. 11년 된 고양이와 행복한 새해 맞으시길 바라요!

잠자냥 2024-12-27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막냉이를 좀 처방해드리고 싶군요. 😺

자목련 2024-12-31 14:00   좋아요 2 | URL
막냉이 처방이 긴급합니다!
여섯 마리 냥이랑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구단씨 2024-12-2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사도 아니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처방 받은 고양이가 몸과 마음을 낫게 해준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긴 합니다. ^^
언젠가부터 주변에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는 분들이 많은데,
귀하고 아끼면서 돌보는 모습에 뭔가 안정적인 기분도 들어요.
그것만 떠올려봐도 고양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뭔가 치유가 되는 건 맞는가 봅니다.

자목련 2024-12-31 14:01   좋아요 0 | URL
잘은 모르지만 반려견, 반려묘를 돌보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돌봄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
냥이는 만날 때마다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꼬마요정 2025-01-0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마다 성격이 다 다르고 관계 맺기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랑입니다. ㅎㅎㅎ
너무 따뜻한 이야기네요. 사람도 고양이도 모두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한 세상 살아낼 수 있을 거예요.
카프랑 모짜랑 레이 딱 처방해드리면 하루 종일 정신이 없을지도... ㅎㅎㅎ

자목련 2025-01-02 16:46   좋아요 0 | URL
정신 없는 하루 보내고 싶습니다. 근데 카프, 모짜, 레이가 저에게 관심이 없을 것 같아요 ㅎㅎㅎ

서니데이 2025-01-02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새해 첫 날 잘 보내셨나요.
서재의 진한 파란색 수국이미지가 참 예뻐요.
고양이를 처방해드립니다,를 지난달에 구매했는데, 2권이 새로 나왔나요.
아는 책이 보이면 반가운 느낌입니다.
2025년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고, 좋은 시간 되시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25-01-09 11:23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 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1권을 만나고 천천히 2권을 만나셔도 좋겠지 싶어요.
말씀처럼 아는 책이 보이면 정말 반가고요!
눈이 많이 오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어제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았다. 내리는 햇살에 남은 눈도 곧 녹을 것이다. 추위는 조금 누그러졌다. 하루 사이에 다른 풍경이다. 세찬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누구가 이 눈이 크리스마스에 오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올해는 열흘도 남지 않았다. 아쉽기도 하고 왠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도 크다. 동지였던 어제는 두 명의 친구가 왔다. 눈을 뚫고 온 친구들, 포장 해온 뼈다귀 해장국을 먹으면서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해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정치 이야기를 하다니, 나이가 먹은 거라고. 밤이 가장 짧은 동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두 친구는 동지가 지나면 봄이 오는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벌써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탄핵의 결과 그 이후를 말이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친구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문 앞의 택배 상자를 안으로 넣어주었다. 올해의 마지막 책이다. 크리스마스니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문한 책이라고 할까. 한강의 『디 에센셜: 한강』, 겨울이니까 『소설 보다: 겨울 2024』, 리뷰가 좋아서 궁금한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8월은 악마의 달』과 안톤 체호프의 『상자 속의 사나이』까지 네 권이다.





한강의 『디 에센셜: 한강』의 목록을 살핀다. 내가 좋아하는 단편이 보여서 더 반갑고 좋다. 처음 만나게 될 시와 산문 때문에 설렌다.

당신은 모른다.

목이 말라서 눈을 뜬 차가운 새벽. 기억할 수 없는 꿈 때문에 흠뻑 젖은 눈두덩을 세면대 위의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리라는 것을 모른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당신의 손이 거푸 떨리라는 것을 모른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뱉어보지 않은 말들이 뜨거운 꼬챙이처럼 목구멍을 찌르리라는 것을 모른다.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제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회복하는 인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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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서울 경기권에 어마 무시한 첫눈이 내렸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첫눈이라는 걸 확인할 정도가 전부였다. 11월에 내린 첫눈과 함께 가을은 감쪽같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을은 아직 남아있다. 곳곳에서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잎을 볼 수 있다. 그래도 12월이니 마음은 겨울로 이동한다.


12월이라고 쓰고 보니 마음이 바쁘다. 딱히 잡힌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게 있는 것만 같다. 그런 게 있던가.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 한 해의 마지막이 달이라는 게 뭔가 압박으로 다가온다. 30일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 올해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 그러나 반문한다. 그럼 뭘 했어야 하지? 나름의 계획들은 언제나 그렇듯 무산되고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아, 모르겠다. 12월이라서 그런가 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책 이야기를 하자. 단 두 권이 주는 만족과 행복. 어제 도착한 책이다. 김소연 시인의 『생활체육과 시』, 스콧 피츠제럴드의 『바질 이야기』. 잠자냥 님의 리뷰를 읽고 구매했다. 땡투도 함께. 표지도 너무 근사하다. 책 구매에 있어 표지가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 크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 작고 가볍다. 그러니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미루지 않고 바로 읽어야만 가능하다.







김소연의 『생활체육과 시』는 아침달의 ‘일상시화’ 시리즈다.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와 비슷하다. 시를 좋아하는 이이라면 시인의 산문과 시를 함께 읽을 수 있다. 두 시리즈를 비교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의 같은 듯 다른 기획, 독자의 선택의 폭은 다양해진다.


일기예보를 자주 찾아본다. 폭설이 올까 무서우면서도 눈을 기다리기도 한다. 겨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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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12-0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질책 샀어요ㅋㅋㅋ˝생활체육과 시˝는 제목이 독특하네요. 꼭 무슨 교양과목 중에 있을 것 같은;;

자목련 2024-12-04 12:57   좋아요 0 | URL
12월엔 바질~~
<생활제육과 시>는 정말 강의 제목 같기도 해요^^

구단씨 2024-12-0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바질이야기.
소개글 흥미로워서 궁금했는데, 저도 이번 기회에 장바구니에 쏘옥~ 합니다.

여기는 첫눈이 완전 함박눈 수준으로 내리다가, 거의 매일 비가 내리다가 그럽니다.
겨울이 추운 건 당연한데, 조금만 추웠으면 좋겠네요.

자목련 2024-12-04 12:58   좋아요 0 | URL
바질, 같이 읽어요!
너무 춥지 않은 겨울, 적당한 추위를 기대해요^^

희선 2024-12-0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해 마지막 달도 조금 있으면 삼분의 일이 가겠습니다 늘 십이월엔 한 게 없네 하는군요 2024년에 더 한 듯합니다 눈이 많이 와서 피해도 있다고 하는데, 눈을 못 본 저는 부럽기도 합니다 눈이 와도 피해가 없으면 좋을 텐데...

자목련 님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자목련 2024-12-09 15:31   좋아요 1 | URL
어느 지역은 폭설로 피해가 크고 어느 지역은 눈을 보기 힘들죠.
희선 님도 아프지 마시고 따뜻하고 건강한 날들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