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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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적 시각적 이미지들이 상징과 묵시를 만들어 낸다. 무엇이 진실이고, 내가 알고 믿고 있는 것들은 과연 실제로 있는가? 도무지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일들은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믿지않고, 허상에서 의미와 암시를 받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세계를 오독하고 오해함으로 오류를 행한다.

 

 

종소리

아침에 종소리를 듣고 깨어나는 후터키의 장면은 카프카의 소송을 떠올리게 한다. 아침에 눈을 뜬 요제프 K 앞에 나타난 검은 색 재킷을 입은 낯선 남자들처럼(소송카프카), 종탑이 없는 마을에서 종이 울리는 것은 기이하다. 후터키의 감정은 주변의 사물이 내는 소리로, 작은 창을 통해 본 새벽의 적막한 마을의 묘사로 읽고 있는 나(독자)에게 전달된다. 종소리는 곧 후터키로 하여금 요람과 관의 십자가에 결박되어 경련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불안하다. 종소리에서 죽음, 심판의 암시를 받는다.

 

어느 시월의 아침 끝없이 내릴 가을비의 첫 방울이 마을 서쪽의 갈라지고 소금기 먹은 땅으로 떨어질 즈음(이제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온통 악취 나는 진흙 바다가 펼쳐져 들길로 다니기도, 도시로 가기도 어려울 터이다), 후터키는 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유령같은 종소리보다 그를 더 놀라게 한 건 갑작스러운 정적, 위협적인 침묵이었다.……돌연 주위의 말 없는 물건들이 신경을 건드리는 대화를 시작했다(찬장이 삐걱 소리를 내고 냄비가 덜거덕거렸으며 사기 접시가 딸깍 내려앉았다).(114-15p)”

후터키의 불안이 전달되어 나(독자)는 암시와 음울한 전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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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공산당 체제의 몰락의 시기 집단 농장의 해체와 함께 사람들이 떠난 후 남아있던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길 원하지만 떠나질 못하고 있다. 농장의 길은 마차 몇 대만 지나다니고 그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갇혀 남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1년 반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리미아시가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마을의 술집으로 한 사람씩 모여 든다. 이 술집에 한 사람씩 등장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영화의 POV (Point-of-View Shot),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카메라를 전환하여, 그 인물이 고개를 돌렸을 때 다른 인물이 화면에 들어오도록 하는 방식과 같다. 그들은 언제인지 그 공간에 들어와 있고, 갑자기 그의 존재가 인지된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욕망 때문에 이리미시아의 귀환에 대해 서로 다른 기대감을 안고 있다. 술집에 모인 사람들의 기다림과 불안의 양가감정은 메시아니즘적 분위기를 전달한다. 어쨌든 마을은 묘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들의 기대감, 특히 후터키의 기대감과 달리, 귀환한 이리미아시는 연설을 통해 에슈티케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고 그들이 농장을 떠나도록 선동한다. 사실 이리미아시의 정체는 그들의 기대감과 달리 정보원이고 감시자이며 사기꾼이다. 역설적으로 이리미아시의 선동은 사람들이 농장으로부터 떠날 수 있게 해준다. 후터키의 경우 그는 머물러 살 용기떠날 용기도 없었음을 깨닫는다.(271p)

그렇게 그들은 농장을 떠나고, 길에서 흥분과 열정, 불안이 뒤섞인 감정(277p)”을 느낀다. 크라네르가 큰소리로 농장을 향해 저주와 욕을 하는 감정은 희망일까? 불안일까? 그들의 환호는 불안에 대한 반어적 표현으로 보인다. 이내 엄습하는 절망과 불안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의 길을 깊은 침묵 속에서 걷는다. 비가 내려 진흙으로 뒤덮인 길은 그들을 끌어내리는, 오래된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과 무기력을 상징한다.

 

 

탱고, 거미줄

기다리던 그들이 추는 탱고는 그들 속에 감추어진 욕망과 기대감을 주체할 수 없어 표출하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고, 무엇이라도 해야 하기에. 이 탱고는 6스텝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발도사 스텝이고 앞뒤로 반복하는 것이 한 세트로 이루어져 있다. 기다리다 지쳐 아코디언은 느리게 연주하고 그 리듬에 맞춰 말파리는 8자를 그리며 날아다닌다. 8자는 탱고 스텝이 그리는 이미지와 겹쳐진다. 그들은 지쳐 잠이 들고 조용히 거미는 거미줄을 친다. 이 거미줄은 그들의 무기력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아코디언의 비단결 같은 곡조를 타고 거미들이 마지막 공연을 감행했다. 거미들은 술병과 유리잔, 찻잔과 재떨이에 느슨하게 거미줄을 드리웠고, 테이블 다리와 의자 다리를 가느다란 실로 은밀히 연결했다. 마치 눈에 띄지 않게 그물망을 쳐서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라도 즉각 감지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처럼. 거미들은 잠자는 사람들의 얼굴과 다리 그리고 손에도 거미줄을 쳤고, 그런 뒤에 번개같이 은신처로 퇴각하여 거미줄이 미세하게라도 흔들릴 때를 기다리다가, 그러다 다시 거미줄을 칠 채비를 했다. 말파리들은 거미줄과 밤으로부터 피신하여 기운 없이 빛나는 불빛 속에서 끊임없이 8자를 그리며 날아다녔다 (6228p)”

이 거미줄은 부에서 그들의 꿈이 연결되는 웹(web)으로 발전 진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폐허가 된 알마시 저택에 도착해서 함께 잠을 자던 그들은 꿈을 꾸고, 이들의 꿈은 서로 연결되고 있다. 6장 술집에서 잠들었던 그들 몸 위로 거미줄을 치고 있는 이미지 이 연결된 꿈의 이미지가 된다. 한사람의 꿈은 다른 사람의 꿈으로 건너가고 또 다른 사람의 꿈으로 이어진다. 꿈이 깊어지고 서로 연결되면서 문장 부호가 사라진다.(296~299p) 집단 농장 폐쇄되고 공동체는 몰락을 향해 가지만 남아 있던 그들은 여전히 옛 공동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함께 타락하고 함께 죄의식에 빠지고 함께 무기력해지고 함께 불안하다. 그러기에 폐허가 된 저택에서 함께 잠을 자며 욕망은 다르지만 그 꿈이 연결된다는 작가의 글쓰기는 경이롭다. 그 심연에는 불안이 가라앉아 있다.

 

 

종소리에 잠이 깬 후터키가 내다보던 작은 창으로 시작되어 창()의 이미지는 의사의 감시대, 에슈티케가 매달려 들여다보던 술집의 창, 마을을 떠날 때 크라네르가 부셔버린 창문으로 이어진다. 후터키의 창은 적막감과 불안을 암시하고 의사의 창은 감시를 상징한다. 의사는 창을 통해 관찰한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어린 소녀 에슈티케가 들여다보려 했던 창은 그녀의 소외와 타자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농장의 사람들은 감시에 적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의를 하던 슈미트와 슈미트 부인과 후터키는 이른 아침 찾아온 헐리치 부인과 크라네르 부인의 시선이 창을 통해 그들의 진실을 볼까봐 경계한다. 오랜 세월 관계를 통해 서로를 잘 알지만 그것이 감시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관계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시절을 살았음을 폭로한다. 농장을 떠날 때 크라네르가 집의 창을 깨는 행위는 이 경계를 부수고 싶은 욕망과 충동의 표출이다. 그리고 창을 부숨으로 안과 밖의 구분은 사라진다.

 

 

다시 종소리, 의사의 글쓰기

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은 이 창을 통해 관찰하고 글을 쓰던 의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는 집단농장의 해체로 직장을 잃어버린 알콜 중독에 걸린 심장병 환자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창을 통해 그들을 관찰(감시)한다. 심장병 발작으로 입원했던 그는 집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이 농장을 떠난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는 창을 통해 내다보지만 사람들을 볼 수가 없고, 상상으로 글을 쓴다. 문득 그는 자신의 글이 예언적 행위라고 깨닫는다. 자기가 쓰는 글이 일어날 것임을 확신한다. 오랫동안 해온 작업이 결실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종소리가 들려오고 그는 그 종소리가 그에게 이런 능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종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선 그는 그의 상상과 달리 무너진 교회 종탑의 종을 치고 있는 미친 노파를 발견하고 실망한다.

기록자(혹은 작가) 역시 진실을 모르고 거짓된 암시를 씀으로 누군가를 기만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 쓴다. 그가 쓴 내용은 후터키가 종소리에 깨는 장면(1)을 그대로 써내려 간다. 순서상 부는 6장에서 1장으로 진행되는 이유를 마지막 1장에서 발견한다. 그러면 이 소설은 의사의 글인가? 의사는 소설의 등장인물인가? 그의 생각에서 힌트를 얻는다.

 

그는 이제 유일무이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 능력으로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세계를 묘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닐, 어느 한도까지는 혼란스러운 사건들 배후의 메커니즘에도 간섭할 수가 있었다!”(1,387p)

 

종소리는 하나의 상징이 되고 소설의 안과 밖 경계를 제거하고 방향을 사라지게 한다. 이 비가향성(Non-orientable)과 안과 밖, 앞면과 뒷면의 구분이 없는 곡면 도형이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 소설은 점들로 이어진 위상 수학처럼 이미지들로 이어진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한다.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에슈티케

에슈티케라는 연약한 존재가 이 소설에서 상징하는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렵다.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다락방의 소녀 에슈티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오빠 서니를 많이 의지하고 있는 반면, 그로부터 심리적으로 지배당하고 있다. 에슈티케의 죽음은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5) 그녀의 시체가 베일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는 현상은 더욱 해석이 어렵다. (문맥상 이 몸은 에슈티케의 것인데 그것을 지시하는 중요한 문장은 마치 아닌 듯 번역되어 있어서, 영어 번역을 찾아보았다. 영어 번역은 에슈티케임을 시사하며, 오히려 의미는 살아있는 몸처럼 보인다는 데 방점이 있는 듯 보인다.)

 

세 사람이 며칠 전 크라네르가 짠 거칠거칠한 관으로부터 소녀의 시신을 들어 올리지 않았더라면, 맹세코 그들은 밀랍같이 하얀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도는 곱슬머리를 한 채 평화로이 잠자는 육신을 소년의 어린 여동생으로 믿고 말았을 것이다.("If the three of them hadn’t lifted the body out of the rough coffin Kráner had knocked together a few days before, they would have sworn that the body with the waxen face and the reddish curls, sleeping so peacefully, was the boy’s younger sister.")”(4316p)

 

길을 걷던 이리미아시의 일행이 베일에 쌓인 에슈티케의 시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현상을 목격하고 이리미아시는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320p) 특히 에슈티케의 승천은 꿈도 아니고 환각도 아닌 실제로 있는 현상으로 묘사된다. 미친 노파가 치는 종소리를 후터키와 의사가 묵시나 계시로 들었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현상이 실체로 드러나는 것을 그린 의미가 있다. 드러난 것이 진실인가? 감춰진 것이 진실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체인가? 질문을 남긴다.

작가는 노벨수상 연설에서 천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곁에 있는 날개를 감춘 혹은 날개 없는 새로운 천사는 희생이고, 이 천사들은 우리 때문에 희생된 존재이다. “단 한번의 부당하고, 경솔하고, 품위 없는 행동에 몸과 영혼이 상처 입은 희생된 천사, 그게 에슈티케다. 그 소녀는 그런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짓밟히고 냉혹한 조롱 앞에 무방비 상태로 희생되었다. 에슈티케가 의지하고 추앙했던 오빠 서니는 폭력적이고 거짓을 일삼는 존재다. 그를 따르는 에슈티케는 부조리함을 쫓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절망적인 세계에서 왜곡된 진실과 거짓된 대상을 향한 희생을 강요당하는 존재의 상징이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 - F.K.

이 책 면지에 인용한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기다리던 것이 도착하고 알기를 원했던 실체가 드러날 때 그것은 나를 기만하고 배반하는 진실이라면 차라리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더 낫다는 의지적 표현일 테다.

농장 연설과 모금 후 이리미시아는 그들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먼저 떠난다. 그들은 이리미아시에게 더 머물기를 바라면서, 사람들은 그가 떠나자 해방감을 맛본다. 이 양가감정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믿는 것들 중 나를 기만할, 진실이 아닌 것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 존재로서 느끼는 불안이라 생각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 못한 한계 때문에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농장을 떠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과 불안의 상태를 반복한다. 약속과 달리 그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되고, 트럭 안에서 불안해한다. 그들은 다시 모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각자 배정된 곳으로 이동하며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지만 뒤돌아서면서 절망할 것을 예감한다. 이들뿐 아니라 이리미시아, 의사 모두 기만당하고 있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돌아오는 이 사이클은 인간의 삶이고 역사일까? 이것을 벗어나려면, 아니 최소한 절망에 지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작가는 연설에서 반역을 말한다.

 

저항의 멜랑콜리, 헤르쉬트07769를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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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ass 2026-01-19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레이스님. 영화도 보셨나 봅니다!!! 와우.... 무려 7시간이라서...저는 아직 엄두가 안난다는...

그레이스 2026-01-19 21:40   좋아요 1 | URL
저도 궁금하고 중요한 장면만 잘라서 봤어요.
제가 찾아볼때는 유튜브에 있었는데,,, 지금은 내렸다고 합니다.
벨라 타르도 읽긴 했는데,,, 대담이나 인터뷰 형식이라...!
그래도 도움은 조금 됐습니다.^^

그렇게혜윰 2026-01-19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벵크하임 읽고 이걸 읽으니 잘 읽혔지만 이 실험적인 글을 자주 읽을 것 같진 않아요 ㅎㅎㅎ 사둔 책 하나만 더 읽고 전 문 닫을래요! 7시간짜리 영화는 거의 미니시리즈 아닙니까?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이런 글로 대신 보고 읽은 셈....

그레이스 2026-01-19 21:45   좋아요 1 | URL
영화 상영하는 극장이 있다고 하는데,,, 기절할듯요.
저는 거미줄치는 장면이 궁금해서 봤는데,,, 아무래도 오래전 흑백영화라 상상이 나을듯요.
탱고를 추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이더라구요.^^
ㅎㅎ
벵크하임!
저는 조금더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전자책] 인간의 역사와 문명 미국 먼로주의와 아메리카 외교정책
서진호 / 루미너리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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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전쟁, 스페인령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미국의 영토확장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수탈을 뒷받침했던 먼로독트린에 대해 알아본다. 신먼로주의라는 이름아래 제국주의적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있다. 먼로주의란 ‘내가 다 먹을테니 건들지마!‘ 뜻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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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6-01-07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지적 즐거움을 줄 것 같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 싶은 욕심만 앞서고 독서 속도는 빠르지 않으니 마음만 빠르다고 할 수 있어요.ㅋㅋ
그레이스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레이스 2026-01-07 18:34   좋아요 1 | URL

루미나리 시리즈
핵심만 잘 정리해 놓은 책이라 참고하고 지식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페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설의 서두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대서양 상공에 기압계상 최저기압이 자리하고 있었다.”로 시작한 묘사는 카메라처럼 대기와 달과 태양계로 상승했다가 다시 하강해서 대기 중의 수증기 장력은 최고치를 나타냈고, 대기 습도는 낮았다고 언급한다. 갑자기 땅으로 쑥 내려와 자동차들의 질주를 실타래 같은 보행자 무리를 앵글에 담는다. 그 이미지 안으로 소리가 삽입된다.

 

한층 강렬한 속도의 선들은 다소 느슨하게 움직이는 보행자 무리를 가로지르는 순간 굵어졌다가, 나중엔 더 빨라지더니 약간의 진동 끝에 다시 고른 리듬을 유지했다. 수많은 소리들이 철선처럼 억센 하나의 소음으로 뒤엉켰다. 그 소음에서 뾰쪽한 끝이 여기저기 튀어나왔고, 소음을 따라 날선 모서리가 길게 이어지다가 다시 평평해졌으며, 소음에서 명확한 소리들이 산산이 부서져 공중으로 흩어졌다. …… 지그시 눈을 감고 이 소음에 귀를 기울이면 지금 자신이 제국 수도이자 황궁이 자리 잡은 빈에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111p)”

 

정말 기가 막힌 표현들이다. 19138월의 빈이라는 시간과 장소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시청각적 묘사들은 처음부터 작가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님을 알려준다. 이 작품 전체의 글에 담겨있는 비유와 상징 언어들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

 

그렇게 작가의 앵글은 자동차 사고를 포착하고 이것을 구경하는 구경꾼들 무리들 중 한 여인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이 사고를 목격하고 그 원인을 제동거리라는 과학적 설명을 해주는 행인1과 그 사고원인을 듣는 행인2(중년여성)의 안도는 과학의 진보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무엇인가 설명 가능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현상을 보여준다. 한편, 이 사고는 사람들의 믿음과 달리 1914년의 전쟁을 암시하는 듯 불안하기도 하다.

 

이것이 어쩌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진보하는 과학적 사고에 발맞추어 사고하도록 요구받는 특성! ‘특성이란 그가 속한 세계에서 존재가 가져야 할 것으로 요구되는 정체성이나 자질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특성 없음은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주인공 울리히는 실제로 특성을 거부하고 가능성 감각을 추구한다. “열린 문을 잘 지나가려면 문에 단단한 테두리가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123p)” 그의 아버지 노교수의 좌우명은 시대의 특성에 부응하는 현실적 감각을 가진 인간에 대한 적절한 비유다. 그에 반하는 것이 가능성 감각이다.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경계를 넘어 새로움을 추구하고 창조한다. 그는 사회에서 환영받을 천재성과 특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자극한 것이 살인범 모스부르거다. 모스부르거는 사회적 관습, 도덕, 법과 같은 어떤 규범으로도 포획되지 않는 사람이다. ‘특성없음의 왜곡되고 극단적인 존재다. 울리히의 모스부르거에 대한 관심은 잊혀지지만, 그의 친구인 화가 클라리세는 모스부르거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그녀는 니체의 해를 생각해내고 살인과 초인을 연결시키는데까지 나아간다. 클라리세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의 극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이러한 정신은 남편 발터를 지배한다. 발터의 열등의식은 클라리세의 욕망과 결합되어 울리히를 살인하라고 압박하는 꿈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에는 울리히와 연결된 4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보니파티아, 디오티마, 클라리세, 아가테이다

보니파티아는 울리히의 정부이고 가벼운 성적 상대일 뿐이다. 그녀의 도착적 성충동을 관찰하는 울리히의 시선에서 나는 오히려 그녀의 고독을 본다

디오티마는 평행운동의 중심에서 준비 위원회를 모집하고 주도한다. 본명이 에르멜린다 투치인 그녀를 디오티마라 부르는 것에 상징성이 있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사랑에 관한 디오티마의 말을 인용한다. 지혜로운 여인이란 뜻일 테다. 울리히와 사촌관계인 그녀는 상징적 지도자나 공허한 이상주의자로 인식된다. 그녀가 주도한 평행운동은 실패로 끝난다.

클라리세는 어릴적 친부에게서 받은 상처를 안고 있다. 그녀의 결핍은 니체적 의지에 전도되어 초월욕망으로 변형된다. 그녀의 욕망은 광기를 띈다. 울리히는 그녀에게 이념이란 페티시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모스부르거에 집착하고, 그를 만나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아가테는 울리히의 이란성 쌍둥이로 마치 울리히에게 그동안 잊혀져 있던 듯 갑자기 등장한다. 아버지의 장례 때문에 오누이는 재회한다.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 아래 억눌린 삶을 살았던 그녀는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하고 다시 재혼했다. 그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하다. 울리히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고 자유를 찾아 오빠와 함께 살기 위해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다. 울리히의 사상, 책을 통해 영향을 받아 진정한 자유가 주는 삶을 꿈꾸고 실행하지만, 한계에 부딪친다.

이들은 각각 여성으로서 상처를 갖고 있고 억압된 욕망을 발현시키려는 나름대로의 길을 찾지만 모두 실패하고 있다. 이 여성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을 갖도록 억압당하고, 그것을 거부하기에는 신체적, 사회적으로 취약한 존재들이다. 이들의 욕망, 허영, 광기, 의지를 마주하면서 울리히의 사유는 변하고 발전한다. 그녀들과의 대화나 관계는 울리히의 사유에 변화를 가져오는 촉매역할을 한다.

 

울리히에게 중요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 사람들을 대하는 고정된 태도나 사상이 없다. 그러기에 아른하임 앞에서는 디오니소스적이고, 클라리세 앞에서는 아폴론적이다. 이들과의 대화(1권)에서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 오버랩된다. 그가 희구하는 사상은 그의 시대 사유를 벗어나는 어떤 것이기에 그런 듯하다. 디오티마와의 이야기 중 다이아몬드에 대한 비유가 힌트를 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 둘 다 다른 환경에서도 그 속성이나 사용가치가 변하지 않음을 들어 인간의 고유함을 설명한다. 그 변하지 않는 고유한 개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특성 없음을 견지하고 가능성 감각을 열어놓는 이유는 이 본래적 특성을 찾기 위함이다.

 

특별히 고향에서 재회한 울리히와 아가테는 대화를 통해 정신적 합일의 순간을 맛본다. 아가테가 묻고 울리히가 답하는 식의 대화는 니체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도덕에서 무엇이 비본질이고 본질인지를 알려면 습관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울리히와 아가테의 대화는 구체적으로 니체의 선악의 저편이나 도덕의 계보를 연상시킨다. 도덕은 외부로부터가 아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을 지킬 힘 역시 그 내면에 있고, 사회의 도덕적 와해는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선악의 문제와 같은 이분법적 논리를 거부하고 해체한다. 이런 해체는 무화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존재를 둘러싼 시대와 세계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본래적이고 고유한 특성을 찾기 위한 것이다. 울리히는 그것을 사랑이라 깨닫고 아가테와의 동거를 통해 완벽히 이루려는 꿈을 꾼다. 외부의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자유함 속에서 맛보려했던 천년의 제국이라 이름붙인 그 세계는 종말론적인 빛을 띄고 의미만을 전달한 채 실패한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 1960년대 해체주의나 현대 철학에 가까운 사유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을 1932년에 썼다는 데 작가의 천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동시대 니체의 사상에서 앞으로 나타날 사상을 전망한 것일까? 그는 철학자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산중의 쓰러진 나무나 벤치에 앉아 풀을 뜯어먹는 소떼를 보면서도 한순간에 다른 삶으로 옮겨가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150p,3권)”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울리히는 아가테에게 습관을 벗어나는 순간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어떤 순간적 깨달음의 상태, 혹은 다른 세계가 열리는 체험의 순간이 그들의 대화 중 찾아온다. 그들이 경험한 환영(幻影)”과 대화의 내용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의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아기로 변화하는 변용(Verwandlung)”을 연상시킨다.

 

인내심 많은 정신은 이 모든 무겁기 그지없는 짐을 짊어지고 그의 사막을 달려간다. 가득 짐을 실은 채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하지만 고독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정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정신은 사자가 된다. 정신은 자유를 쟁취하려 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자유를 쟁취하고 의무 앞에서도 신성하게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사자가 되어야 한다.…… 정신도 한때 너는 해야 한다를 가장 신성한 것으로서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은 가장 신성한 것에서도 미혹(迷惑)과 자의(恣意)를 찾아내야 한다. 그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를 강탈해 내려면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강탈을 위해 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부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35-38p, 민음사)“

 

울리히와의 대화 중 자유를 쟁취하려는 사자가 된 아가테는 빈으로 오고 두 사람은 완전한 자유와 사랑만이 존재하는 천년제국을 이루려 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완벽한 자유보다는 의무가 주어진 삶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칸트가 잠깐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1866년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7일 전쟁 이후 통일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1879년 동맹을 맺는다. 1879년 독오동맹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대등한 동맹에서 의존적 동맹으로 그 관계가 이어진다. 그 관계는 경쟁적이지만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 오스트리아의 통치 아래 있던 발칸반도 슬라브족의 독립요구가 높아지고,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지지한다. 오스트리아 내에서도 범게르만민족운동과 범슬라브주의가 충돌하면서 긴장상태가 이어졌다. ‘평행운동은 이런 배경에서 추진되었다. 민족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 종교적 권력 하에서 평행운동과 같은 거대 담론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모임을 만들고 이끈다. 그러나 평행운동거대 담론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드러내는 소설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담론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포섭하지 못한다. 심지어 이 모임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자들조차 소외되고 있다. 20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 직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시대정신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혈통, 민족, 사상을 지지해줄 무리와 모임 속으로 재편된다. 또한 모스브루거와 같이 어떤 담론 어떤 가치로도 포획되지 않는 존재도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의 발산과 자유를 원하지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경계를 넘지는 못한다. 아가테가 실망하고 교외로 나갔을 때 그녀만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473p,3)”고 깨닫고, 세상은 그녀 없이도 완벽하다고 느낀 소외감은 당시 대부분 사람들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당신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노라!(475p,3)”라고 한 시인의 말을 인용하는 아가테의 감정은 사람들의 것은 아니었을까?

 

길거리의 포고문과 광고를 읽는 울리히는 일상적 시민 세계에 대한 허기(313p, 3)”를 그것들로 채우려고 한다. 이 의도에서 울리히가 일상적 시민들과는 이격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 벽보판의 내용들은 당시 유럽, 혹은 오스트리아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 특히 자본주의 정신이 지배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아마도 이 광고를 보면서 아가테가 느끼는 소외나 불안을 느낄 것이다. 울리히는 도덕의 부재, 삶의 실재성이 가져오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그야말로 가능성 감각을 갖고 있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사유다.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세계 속의 인간은 평온함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철학적 사유와 실천을 견지하며 살아가더라도 급변하는 세계와 그로부터 압박해오는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AI’는 이 시대의 화두이자 여러 담론을 파생시키는 제시어가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전문성을 박탈당하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전문성 뿐 아니라 인간을 규정하던 특성들도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친절, 인내, 관용, 배려와 같은 미덕을 장착한 인공지능이나 휴머노이드가 돌봄이나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사랑을 교류하게 될 미래를 전망한다. 이 시대는 인간에게 어떤 특성을 요구하게 될까? 그러면 나는 무엇을 거부해야 할까? 그 시대 특성 없음이란 그리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한 해체는 어디까지 용인하게 될까? 아직 상상이 안 되지만 이상하게 암울해진다.

 

철학적 에세이즘이라고 이름붙일 만큼 철학적 질문들이 제시되는 소설이다. 이 책을 통해 다른 방향에서 본 니체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목적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이해에서 그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많은 독서였다. 하지만 더 확장된 사유를 통해 인간의 본래적 특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다. 인간의 고유함은 사랑에 있었다.


* 니체 전집이 있으나 번역도 활자도 읽기가 불편하다. 일단 <비극의 탄생>만 새것으로 나머지는 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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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2-28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라~~~이렇게 말했다, 는 저의 애독서예요.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죠.^^

그레이스 2025-12-28 10:24   좋아요 0 | URL
저는 애독서까진 아니고 가끔씩 들쳐보게 되는 책이예요.
니체가 현대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페크님 행복한 연말되시고,,, 2026년에도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래요~~

젤소민아 2025-12-28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하이퍼텍스트 좋아해요~~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5-12-29 07:12   좋아요 0 | URL
과찬이시네요.~감사합니다.~

독서괭 2025-12-29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특성없는 남자 너무나 어려울 듯 합니다. 저는 더 식견을 넓히고 도전하기로.. ㅠㅠ

그레이스 2025-12-29 16:57   좋아요 1 | URL
저도 일단 저지르고 봤죠.
함께 읽는 동아리 회원들이 있어서,,, 숙제하듯 했습니다.ㅎㅎ

서곡 2026-01-01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026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6-01-01 13: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차트랑 2026-01-08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허걱~ 청하出 니체 전집이라니!!!

그레이스 2026-01-08 14:17   좋아요 1 | URL
오래 됐어요
새로 나온 책들 보니 문장도 더 쉽게 나왔구요.
하나씩 바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차트랑 2026-01-08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소장품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저라면 계속 가지고 있고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6-01-08 19:10   좋아요 1 | URL
네^^
그럴까봐요!
 
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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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한 편지에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와 같은 작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1805년 제1차 나폴레옹 전쟁 직전부터 조국 전쟁이라 불리는 1812년의 제 2차 나폴레옹 전쟁을 지나 1820년까지 15년 동안 559명에 이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대하소설이다. 역사소설, 전쟁소설, 성장소설 등으로 불릴만한 서사가 담겨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를 거론할 만 하다.

 

작가는 유럽 국가들의 대 나폴레옹 동맹과 전쟁의 역사를 서술하고 평가한다. 이 산문 부분에서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보게 된다. 3권에서 제논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가설의 오류를 논증하는 부분은 독특하다. 역사는 인류의 운동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 운동은 무수한 인간들의 의지로부터 흘러나오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연속적인 사건들 가운데 임의로 한 사건만을 떼어 고찰한다 해도 그 시작점을 찾을 수 없다.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인간 의지의 총합으로서 고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관찰을 위해 무한소 단위역사의 미분, 즉 인간들의 동질적인 욕구를 가정하고 적분법(이 무한소의 총합을 취하는 것)을 가정할 때만 우리는 역사의 법칙에 대한 이해를 기대할 수 있다.(33519p)”

이 작품을 두 번 혹은 여러 번 읽으면 작가의 독특한 역사관에 더 관심을 두고 읽게 된다. 조급한 마음으로는 얼른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다.

 

특별히 작가는 이 소설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그는 나폴레옹이 특별히 뛰어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이 연속되는 인류의 운동에 의해 움직인 인물이다. 그는 애초에 이런 전쟁을 일으킬 욕망이 없었던 인물이라고까지 말한다. 한 인물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무수한 인간들의 의지의 총합에 의해 생성된 운동 에너지-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의 흐름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개인이 책임을 회피할 명분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적 영웅주의를 부정하고 권력을 부정하는 관()이다.

 

러시아의 제1차 대 나폴레옹 전쟁(1805)이 러시아의 의지와는 다르게 협상(틸지트)으로 끝난 후, 2차 전쟁(1812)의 시작은 개인들의 모욕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국경부근에서 시작된 긴장과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1812624일 나폴레옹은 50만 명의 대군을 직접 이끌고 러시아 원정길에 나섰다. 나폴레옹군이 승리할 때는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이 모스크바를 향하도록 진행된다. 보로지노 전투는 사실 나폴레옹의 명령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치러진 전투였고, 러시아 군 사령관 쿠투조프는 러시아군이 승리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만큼 프랑스에도 희생이 많았던 전투였다. 양군의 많은 희생에 쿠투조프는 눈물을 보이고, 이후 그는 러시아군 병사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명령을 한다. 모스크바를 비우고 피난과 퇴각을 결정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다. 나폴레옹 군대는 1812914일 목표하던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화재의 원인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 화재가 상징하는 것은 모스크바에 들어온 프랑스군의 앞으로 겪게 될 고난이다.

 

모스크바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6개월을 버틸 수 있는 군량이 모스크바에 있었음에도, 약탈을 허용함으로 스스로 위기에 빠지게 된다. 반면 모스크바를 떠난 러시아군은 페테르부르크를 향하는 가도를 따라 북쪽을 향하다 모스크바를 끼고 우회해서 남쪽을 향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측면 행군(42141p)”이다. 이 지역은 식량이 풍부했다. 106일 프랑스군의 퇴각이 시작되고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쪽을 향해 가고자 했지만, 남하해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에 막혀 북쪽 루트를 따라 서진하게 된다. 프랑스군의 퇴각과 러시아군의 추격이 시작되고, 양 군 모두 그 빠른 속도 때문에 많은 사상자와 낙오자가 나왔다. 다 떨어진 신발 혹은 신발조차 갖추지 못해서 천으로 칭칭 감고 행군하는 프랑스군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퇴각의 절정은 베레지나강 도하다. 프랑스군은 다리를 급히 놓아 수만 명이 건너지만 많은 병사가 얼어 죽거나 공격으로 희생되었다. 겨울 혹한과 굶주림, 질병으로 대부분의 병력이 소멸한 상태에서 간신히 국경을 넘어간다. 원정군 60만 명 중 살아 돌아간 병력은 극히 일부였다. 그들의 퇴각은 모스크바에서 스몰렌스크로 오르샤, 보리스, 민스크, 베레지나 강(181211월 말), 빌뉴스를 지나 폴란드 국경에 이른다. 러시아 사령관 쿠투조프는 러시아군이 프랑스군의 측면을 공격하여 나폴레옹을 생포할 수도 있었다. 사실 러시아군 역시 지쳐있었고 정면으로 부딪히면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작전명령은 내리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로 인해 황제의 신임을 잃고, 비난을 받는다. 톨스토이는 전설적인 노장 쿠투조프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바로 잡는다.

 

세 가문을 중심으로 젊은 남녀 주인공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죽는 서사보다 전쟁 부분이 더 부각되어 다가왔다. 러시아 사교계라든지 귀족들의 사랑이야기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에서도 반복되는 내용이라 식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812년 전쟁이 시작될 무렵 전장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참관인이었던 피에르가 모스크바에서 프랑스군의 포로로 잡혀 끌려가다 풀려나는 과정에서 보인 변화는 깊은 울림을 준다. 그와 함께 포로가 되었던 농민 출신 플라톤은 본래적으로 갖고 있는 훼손되지 않은 인간의 선함이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미사여구도 어떤 책의 인용도 아닌 말에 울림이 큰 이유는 그 정직하고 선한 마음 때문이다. 말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농노제가 있던 시절, 징병은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귀족들이 자신에게 속한 농노를 할당된 수만큼 나라에 제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국가에 바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귀족회의는 숫자로 계산되는 농노들의 처지를 실감하게 한다. 왕정국가의 전횡과 부조리다. 1805, 출정 전 들판에서 군대를 사열하던 왕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과 1812년 모스크바를 탈출하면서 남긴 왕의 메시지(칙령)를 듣는 민중의 마음은 확연히 다르다. 모스크바를 버릴 리 없다고 믿었던 왕이 나는 만찬 무렵에 돌아올 것이다.’라고 한 말은 민중을 낙담하게 한다. “민중의 이해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는데 그 말은 너무 단순하고 지나치게 쉬웠다. 그것은 군중 가운데 누구나 내뱉을 수 있는, 따라서 최고 권력으로부터 나온 칙령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33660p)” 곧 그 낙담은 분노로 바뀐다. 1917년 차르를 몰아내고 혁명을 일으키게 될 분노의 싹이 튼 시점이지 않을까?

 

20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볼콘스키가의 안드레이, 마리아와 로스토프가의 니콜라이, 나타샤, 그리고 피에르 베주호프는 방황하고 사랑하고 상실하고 자아를 찾아간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 쿠투조프 총사령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등 실존하는 역사적 인물을 중심에 배치하고, 거기에 이 주인공들과 다른 가상의 인물들을 투입한다. 이들은 러시아에게도 개인에게도 어려운 사건들을 통과하며 구도하고 사랑한다. 러시아가 치러낸 전쟁을 리얼리즘으로 엮고, 그 위에 인간 실존의 주제를 그려간다. 긴 시간동안 많은 양이었을 것이 분명한 자료와 문헌연구를 통해 그의 역사에 대한 꿰뚫는 통찰력 위에 인간의 삶이 구체화되고 있다.

 

역사에서 숙명론은 비합리적인 현상(우리가 타당성을 납득할 수 없는 현상들)을 설명하는데 불가피하다. 우리가 역사의 그런 현상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쓸수록 그것들은 우리 눈에 더욱 비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쓸수록 그것들은 우리 눈에 더욱 비합리적이고 불가해한 것이 되어 버린다.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를 위해 살고,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를 이용하며, 지금 이런저런 행동을 할 수 있거나 없는 것을 자신의 온 존재로 느낀다. 그러나 행동을 하는 순간 어느 한순간에 행해진 그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역사의 자산이 된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 행동은 자유로운 의미가 아닌 숙명적인 의미를 띄게 된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두 가지 측면의 삶이 있다. 하나는 그 관심이 추상적일수록 더 자유로워지는 개인적 삶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법을 불가피하게 따라야 하는 불가항력적이고 집단적인 삶이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지만 모든 인류의 역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일단 행해진 행위는 돌이킬 수 없으며, 인간 행위는 시간 속에서 다른 인간들의 무수한 행위들과 엮여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된다.(3118-19p)“

 

발레를 배웠다는 오드리 햅번의 날아갈 듯이 추는 나타샤 댄스는 전장에서 병사들의 싸우는 발, 부상당해 피흘리는 발, 필사의 탈출과 추적을 하는 군인들의 헐벗은 발의 이미지로 변해버렸다. 지도에 프랑스군과 러시아군의 이동과 전투가 있었던 지역을 이은 긴 선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 길을 걸었던 혹은 그 길에 묻힌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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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5-12-25 1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벽돌책의 아우라가 대단합니다!
그것을 읽으신 그레이스님도 멋지고요.^^

그레이스 2025-12-25 13: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메리크리스마스~ 모나리자님!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도 멋지세요^^
2026년에도 열독하세요~~♡


고양이라디오 2025-12-26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윽 4권을 아직 안 읽어서 스포 때문에 리뷰를 읽을 수가 없네요ㅎㅎㅎ 얼른 4권 읽고 리뷰 읽어보겠습니다.

행복한 연말 되세요^^

그레이스 2025-12-26 16:54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그럴 때 많죠!^^
리뷰 기다릴께요.
고라님도 행복하고 평안한 연말 되세요~~♡
 
내 어머니의 자서전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김희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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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태어난(1949) 앤티가 섬이 속한 앤티가 바부다(Antigua and Barbuda)는 카리브해와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섬나라이자 영국 연방의 회원국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미니카 연방(Dominica) 역시 서인도 제도에 있는 섬이고(도미니카 공화국과는 다른 나라다), 작가의 부모의 출신지다.

 

15세기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유럽 국가들(주로,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영토 쟁탈전의 각축장이었다. 이들은 이 섬들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였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원주민이나 유럽인들의 노동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 자리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로 채워졌다. 이것은 원주민 사회의 붕괴와 새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이끌었다. “플랜테이션 경제는 엄격한 인종적, 계급적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운영되었으며, 이는 현대 카리브해 사외의 불평등한 구조적 특성의 역사적 기원이 되었다.(인간의 역사와 문명: 서인도 제도 사탕수수 농장과 노예 노동김상철)”

 

이 섬들의 사람들에게 무역풍은 노예를 가득 채운 배들이 바다에서 들어오던 비참한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바람이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그래서,

내 등 뒤는 언제나 황량한 검은 바람이었다.(7p)”

라는 문장은 섬의 역사와 그것을 개인적 사건으로 취하는 화자의 삶을 동시에 의미한다. 매 순간 이 무역풍이 그녀의 삶에 불어온다.

 

내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 죽었다(7p)”라고 하는 화자의 실존적 문장은 반복된다. 이 명제는 화자인 에게 인생의 화두가 되었다.(230p)” 지독히도 외로운 존재의 고백이다. 그래서 평생 동안 와 영원 사이에 서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고, ‘는 평생 동안 낭떠러지에 서 있었다고(8p)” 생각했다.

 

는 어머니의 꿈을 꾸지만 사닥다리를 내려오는 어머니의 발뒤꿈치만을 바라본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 본적이 없기에 꿈에서도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전달한다. 유니스의 집에 맡겨졌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간 날, 처음으로 꿈에서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아마도 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을 때 들었던 기억때문인가 한다. 더욱 애절한 느낌을 받는다. 사닥다리, 발꿈치는 영적 교류를 상징하기도 한다. 발꿈치는 의 어머니처럼 이 땅을, 그녀가 사랑했던 땅을, 맨발로 걸었던 여성들의 애환의 역사를 그려보게 한다.

 

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사람(Scots-man)인 아버지와 아프리카 족속(African people)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피부는 타락의 빛깔을 띠었다-구리, , 광석의 빛. 그는 스코틀랜드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돈과 권력을 쫓는 사람이었다. ‘는 아버지를 도둑, 압제자로 부른다. 실제로 그는 관료의 자리에 있으면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했다. ‘사람(man)’족속(People)’의 구분은 지배세력과 지배당하는 자의 차이다. 아버지는 ‘man’이고, 어머니는 ‘People’이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를 돌보지 않는다. 그는 에게 정복자이고 지배자다.

 

는 자신이 받은 교육, 식민지에 행한 유럽식 교육을 부정한다. 그것을 처음으로 신은 신발과 양말로 상징하고 있다. 그 때문에 발이 붓고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찢어져도, 길이 들도록 신어야하는 강요당하는 유럽 문명이다. ‘가 받은 교육은 배우면 얻게 되리라던 만족감을 안겨 주지 못했다.” 대답 없는 질문들과 분노만을 채웠을 뿐이다. 그리고 피부색 그이상의 영속적인 굴욕을 주었을 뿐이다.

 

'나'의 이름은 수엘라 클로데트 리처드슨이다. 어머니의 이름은 수엘라 클로데트 데바리외. 수엘라는 어머니가 수녀원에 버려질 때 그녀를 싼 천에 새겨진 이름이었고 클로데트 데바리외는 그녀를 발견하고 거둬 키운 수녀의 이름이다. 이처럼 이 나라 사람들은 굴욕적인 이름으로 불리운다. 앨프레드, 앨버트, 유니스 ……. 그녀는 수엘라라는 이름이 아닌 화자로 등장한다.

 

가 굴욕적이고 억압적인 삶을 거부하는 방식은 자신의 목소리와 몸을 사랑하고, 섬의 하늘과 대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아니, 자신을 사랑하고 그 땅을 사랑하기에 그 치욕스런 삶을 받아들일 수 없다.

 

는 남성들과의 사이에서 성적 욕구를 채우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잉태한 아이를 없앤다. ‘의 죽음을 무릎 쓴 임신 중단은 처음엔 그 누구의 소유도 되지 않겠다는 저항으로 보인다. 여러 번 이 행위가 반복되었을 듯한 시간들이 지나고, 그 행위는 에게 존재적 선언이 된다. “나는 단 하나의 아이도 낳기를 거부했다.(207p)” ‘는 수태하길 갈망하면서, 그 결정에 애통해 했다고 말한다. ‘가 수태를 거부하고 자궁을 말리는 것은 인종에 속하길 거부했고, 국가를 받아들이길 거부(234p)”하는 선언이다. 불편한 묘사들이 이어지는 이 주제는 참담하고 처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제목이 내 어머니의 자서전임에도 어머니와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고 아버지의 태생과 불의한 삶, 그에 대한 의 분노, 그리고 의 이야기가 많은 양을 차지한다. 아버지도 남편도 죽고, 그녀는 오랜 시간 반복해왔던 세상과 존재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대답한다. 한 사람이 수태되고 태어나는 것부터가 미스터리이고, “어느 날 문을 열고 마당으로 걸음을 내딛지만, 거기에 바닥은 없고 밑도, 벽도, 색도 없는 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추락도, 그 멈춤도……, 그러기에 그가 누구인가는 답할 수 없는 미스터리라고. 인간 실존에 관한 사유는 정체성의 선언으로 나아간다.

 

나는 족속(people)이 아니고, 국가(nation)도 아니다. 다만 나는 내 행동들이 한 국가의 행동들이 되기를 이따금 바랄 뿐이다.(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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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내 어머니의 자서전이라고 했을까? “내 인생에 대한 이 이야기는 내 인생의 이야기인 만큼 내 어머니 인생의 이야기이기도하고 동시에 내가 가지지 않은 아이들 인생의 이야기(207p)”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모두 의 안에 뿌리를 두었기에 의 이야기이고, 어머니의 이야기다. 그것은 를 둘러싼 제국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세계와 그 폭력과 억압을 향한 복수의 이야기다.

 

우리는 인종, 성별, 외모, 지능, 성격, 부모, 계급, 국가, 역사적 시간 등, 그 모두를 선택할 수 없다. 왜 그렇게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 모든 것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들은 역사적 주술 속에서 살아간다. 이 역사적 주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하고, 누구의 소유가 되는 것에 저항하고, 자신의 존재는 스스로가 정하겠다고 결정하면 그 삶은 급진적이고 때로는 충격적인 모양을 갖게 된다. 그 에너지는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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