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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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게 된다.

발하임 풍경 곳곳 베르테르의 눈에 들어오는 보리수들, 그의 가슴 아픈 사랑 위로 슈베르트의 <보리수><세레나데>가 흐른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슬프고 안타깝고 짧은 삶도 함께 떠오른다.

 

아무튼, 괴테를 다시 읽는 중이다. 파우스트에 이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이번엔 문학동네로 읽었다. 어투가 어색해서 덜그럭거리며 읽었던 기억과 달리 문장이 매끄럽다. 번역에 의존해 읽기에 번역자의 단어선택, 문장구성, 직역과 의역에 의지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전 독서가 어려웠던 것은 편지글을 서간체와 서술체로 오락가락하며 쓴 때문이었다.

 

출간 순서로 읽는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먼저다. 그렇게 읽어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파우스트를 읽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초기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슈트룸 운트 드랑, 파우스트는 바이마르 고전주의에 해당하며, 하나는 서간체이고 다른 하나는 극시다. 형식도, 소재도, 정서도, 주제도 다르다. 전혀 다른 작가의 것인 듯 느껴진다. 그런데 파우스트를 먼저 읽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파우스트를 연상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이런 내용이다.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수긍했지 않은가. 나 또한 어딜 가나 그런 감정에 사로잡힌다네. 활동하고 연구하는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볼 때, 인간의 모든 노력이 욕구 충족을 위해 사용되며 그 욕구라는 것이 궁핍한 생활을 연장시키는 것 외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리고 연구 성과에 만족한다는 것이 우리를 가둔 감옥의 벽에 온갖 형상과 밝은 풍경을 그려놓는 것 같은 몽상적 체념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될 때, 빌헬름, 그럴 때면 나는 말문이 막힌다네. 그러면 나는 내면으로 되돌아와 또다른 세계를 발견하곤 하지! 그것 또한 사실적인 묘사나 생생한 에너지가 넘치는 세계는 아니라네. 어렴풋한 예감과 어두운 욕망의 세계지. 그곳에선 모든 것이 내 감각 앞에서 몽롱하게 떠돌고, 나는 꿈을 꾸듯 그 세계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다네.(21p)”

 

파우스트의 방황을 본다.

 

발하임에서 베르테르는 그곳의 일상을 편지로 친구 빌헬름에게 전한다. 아마도 그는 마음의 병(조울증) 때문에 이곳으로 온 듯하다. “번민에서 방종으로, 감미로운 우울에 빠져 있다가도 이내 위험천만한 열정으로 변해버리는(16p)” 굴곡이 심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 때, 농촌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들은 삶의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행복하고 평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지.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겨울이 온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라네.(26p)”

 

과연 그들이 겉에서 보는 것처럼 행복하고 평안하기만 할까? 베르테르의 시각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우울함에 골몰해서 타인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선이다.

 

1부의 베르테르의 편지에 기록된 그의 글만 읽게 되면, 로테를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그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그칠 수밖에 없다. 로테 역시 그를 사랑하지만 약혼자인 알베르트와 결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알베르트는 순수하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베르테르가 편지에서 전해주듯 한편 편협한 사람인 듯 보인다. 베르테르의 편지에서는 로테, 알베르트, 그들이 처한 상황이 모호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2부에서 편집자(빌헬름 혹은 괴테)가 그의 편지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전해주는 정보는, 모호했던 진실을 선명하게 한다. 특히 알베르트의 인물됨, 불행할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결혼 생활, 로테의 감정 등에 대해 베르테르가 오해했음을 독자는 알게 된다. 로테도 자신을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베르테르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베르테르는 그렇게 오해하고 슬퍼하며 매일같이 자신의 모든 활력을 소진시키고, 저녁에는 곤경에 처해 괴로워하는 인간(146p)”이었다.

 

베르테르의 점점 깊어지는 마음의 병은 전에 만났던 남자의 살인사건을 마주치면서 뒤흔들린다. 그 남자는 자신의 여주인을 사랑했었고 그 사랑이 지나쳐 살인을 저지른다. 베르테르는 그 남자를 구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투사전이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문제로 알베르트와 논쟁을 벌이던 중, 알베르트가 그건 안 되네. 그자를 구원할 방도는 없네!”라고 한 말에 베르테르는 상처를 입는다. 그 말은 각인되고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건은 트리거가 된다.

 

베르테르가 죽기 직전 로테에게 읽어준 오시안의 시는 애도시 또는 레퀴엠이다.

봄바람아! 나를 깨우는 까닭이 무엇인가? “내가 천상의 이슬로 당신을 적셔줄께요!”하고 위로의 말이라도 하려는지. 그러나 나의 생기가 다하는 순간이 왔고, 나의 잎들을 모조리 떨궈버릴 폭풍우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네. 내일이면 일찍이 내 아름답던 모습을 본 적 있는 방랑자가 올 것이네. 그의 두 눈은 들판을 둘러보며 나를 찾겠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하리라.(177p)

그 오시안의 긴 시는 죽음을 가리키고 있다. 낭송을 듣고 눈물을 흘린 로테는 석연치 않은 예감을 했다. 그리고 몇 번의 대화를 통해 베르테르의 죽음 암시를 들었던 알베르트도 권총을 내준다. 인간의 죽음이란 참 덧없고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과 죽음을 가르기까지 하는 사랑, 이 모든 소란과 흥분, 조급함과 아우성, 고민과 격렬함, 당시 18세기 괴테 시대 사람들만 겪고 있는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사랑은 너무나 중요해서, 알랭 드 보통이 철학의 위안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아무리 심각해져도 지나치지 않다.”

 

삶에서 겪는 고통을 겪어내는 것의 한계는 각자마다 다 다르다. 사람마다 그 고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다르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자아라는 게 있다. 고통은 다음에 오는 또 다른 고통이나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갖게 해준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만들어진 흔적, 페이소스가 마음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괴테가 1772년 베츨러에서 알게 된 샤를로트 부프와의 실연을 극복하기 위하여 루소의 영향으로 쓴 편지체 소설이라고 한다. 그는 이 소설로 많은 젊은이들의 심연을 건드렸고,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굳이 18세기 사람들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이런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주인공의 이름과 배경만 바뀐 같은 이야기도 되풀이 된다.

 

왜 그럴까? 인간은 그만큼 연약하고, 비슷한 지점에서 무너지니까!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변주한다. 예술의 정수는 서로 통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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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11-18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겨울이 시작되니까(과연...? 🤔) <겨울 나그네>도 듣게 되겠네요. 🙂

그레이스 2024-11-18 06:40   좋아요 0 | URL
ㅎㅎ
겨울나그네 !
전곡 다 틀어놓고 들었습니다.
곡이 난해하지 않아서,,, 독서하기 좋습니다.
오늘 체감 온도는 롱패딩 입어야 할듯요.

2rjfnr 2024-11-18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들어봐야 겠어요.
겨울나그네!~~♡♡

그레이스 2024-11-18 11:08   좋아요 0 | URL
네~♡
이 날씨에 잘 어울립니다.^^
슈베르트의 생애를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깊어집니다.ㅠㅠ

레삭매냐 2024-11-2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하 고견이십니다.

역시 예술의 고갱이들 단계에서는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래 전에, 호주 배낭여행을 떠나
면서 가방에 집어 넣어 가져간
책이 베르테르였지요. 정말 오래
전의 일이네요.

그레이스 2024-11-21 11:38   좋아요 1 | URL
ㅎㅎ
출판사마다 다르기도 하고, 언제 읽는가도 다른듯 해요.
이번 독서가 제일 좋았어요.
 

체호프는 두려워. 그의 대사를 입에 올리면 나 자신이 끌려 나와.(낯선 여인의 키스7p)”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게 된 이유다. 체호프 단편집 낯선 여인의 키스책머리에 소개된 주인공 가후쿠의 말이다. 체호프의 희곡을 읽는 내내 겪었던 감정 안으로 이 대사가 들어왔다. 바냐삼촌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포스터를 꽉 채운 붉은 색 차, 화려한 수상 이력 중 '2021칸 영화제 각본상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색 사브(SAAB)를 운전하며,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나오는 아내 오토의 대사에 맞춰, 대사를 외우던 가후쿠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오토와 가후쿠의 대사는 책 읽는 톤으로 일정하다. 도심과 해안 도로를 달리던 붉은 색 사브의 인상과 함께 청각의 이미지가 각인된다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후 이 차 안에 오래도록 머문다그녀가 갑작스럽게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타고 다니고 있다. 시력의 문제가 생기면서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된 그는 미사키를 드라이버로 고용하고, 뒷자리에 앉아 여전히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사를 말한다. 가후쿠가 이 차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신차(新車)들에는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일까? 영화가 끝나고 표면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차가 상징하는 의미에 대한 생각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빨간 색 이미지와 함께.

 

그는 히로시마 연극제의 프로젝트로 기획된 <바냐삼촌>을 연출한다. 이 연극은 출발 단계부터 감동을 준다. 각국에서 모인 배우들이 자신의 언어로 연기하는 기획이다. 차 안에서 가후쿠가 했던 감정을 뺀 대사연습은 이들의 대본 리딩에도 적용된다. 감정을 제거하고 대사를 연습하는 반복이 오랜 시간 지속되자 연기자들에게서 불만이 제시되지만 가후쿠는 계속한다. 대사가 나에게 각인되고 내 것이 되고 그 대사가 나 자신을 끄집어내는 순간이 올 때까지. 아이러니하게도 가후쿠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연극의 기획 의도는 <바냐삼촌>이기에 더욱 빛이 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체호프의 희곡속 인물들은 각자의 아픔 속에 갇혀 서로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한다. <바냐삼촌>에 등장하는 인물들, 보이니츠키, 소냐, 옐레나 아드레예브나, 세레브랴코프, 아스트로프, 텔레긴 모두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고 고독하다. <바냐 삼촌>을 각국의 배우들이 자신의 언어로, 혹은 수어로 연기하는 무대, 배우들이 서로의 대사를 숙지하고 연기하는 모습은 같은 언어로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어적으로 전하고 있다

 

단지 아내의 성 상대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다카츠키에게서 다른 진실을 들은 후, 그는 당황한다. 그동안 붙잡고 살았던 것들의 무의미함을 느꼈을까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존재였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불행한 순간이 또 있을까? 다카츠키가 연극에서 하차하고 망설이던 그는 다카츠키 대신 주연을 맡는다.

 

날 어떻게 좀 해줘! , 맙소사……. 내 나이 마흔 일곱인데, 만약에 예순 살까지 산다면 아직도 13년이나 남았어! 너무 길어! 내가 어떻게 13년을 견디고 살 수 있겠나?(바냐 삼촌4막 중)”

그는 보이니츠키의 대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신음한다. 가후쿠는 결국 자신을 끄집어내는 체호프에게 항복하는 중이다.

 

미사키는 현실의 가후쿠에서 소냐이다. 가후쿠의 차를 조용히 운전하며, 체호프의 대사를 듣던 미사키는 자신의 상처를 서서히 드러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서서히 알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은 불행한 어린 시절, 배우자의 외도, 그리고 상실들의 근원에 자리잡은 치유되지 못한 분노와 죄의식에 있음을 알게 된다. 미사키는 산사태로 혼자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엄마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했었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사실은 아내를 혼내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가후쿠는 아내가 쓰러진 날 오래도록 차 안에 머물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가후쿠의 오래된 붉은 색 사브는 분노를 억누르고 진실을 회피하고, 과거와 죄의식에 묶여있는, 버리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는 공간이고 심연이다.

 

바냐 삼촌, 우리는 살아갈 거예요. 길고 긴 낮과 밤들을 살아갈 거예요. 운명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 시련을 꾹 참고 견뎌낼 거예요.(바냐 삼촌4막 중)”

수어로 연기하는 소냐(이유나)의 뒤로 여러 언어로 자막이 올라가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의 희미한 얼굴들을 보며 저들은 자신의 아픔을 떠올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미사키 홀로 운전하는 빨간색 사브가 강변도로를 달리는 엔딩은 가후쿠가 그 고통에서 자유로워졌음을 추측하게 된다

나에게도 이 붉은 색 사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있지. 누구에게나 있지.

 

원작 소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드라이브 마이 카. 조금은 각색되었지만 영화를 보고 이 소설을 읽는 것도 좋았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들의 장면들, 감정들이 섞여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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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rjfnr 2024-11-13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 먼저보고 책을 접했는데요 ᆢᆢ즐겁게. 읽으시기를 바랄께요.♡♡

그레이스 2024-11-13 18:58   좋아요 0 | URL
다 읽었죠 ^^
하루키스럽다는 생각!
책 읽고 영화보신 분 중에 영화가 잘 안들어왔다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저는 책보다 영화 각색이 더 좋았던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4-11-13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이라 해서 봤는데,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근데 중간에 멈춘 상태예요.
다 봐야 하는데 ㅎㅎ

그레이스 2024-11-13 18:46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그렇게 멈춘 영화가 줄서있지요^^
일단 제가 읽은 바냐 삼촌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구요. 그래서 무대가 너무 좋았어요.

고양이라디오 2024-11-14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바냐 아저씨>를 읽었습니다. 역시 좋았습니다.

소냐(이유나)의 연기와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11-14 11:24   좋아요 1 | URL
같은 감동을 느끼셨다니 넘 반갑네요^^
수어로 연기하는 장면, 정적가운데 손이 부딪치는 소리... 넘 감동이었어요 ^^

고양이라디오 2024-11-14 13:55   좋아요 1 | URL
이유나씨 너무 좋았습니다. 수어 연기 감동이었습니다ㅜㅜ

전야제 2024-11-1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틈틈이 읽다가 이제서야 댓글을 남기네요ㅠㅠ 주연인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언젠가 봐야지 하고 아껴두었던 영화인데, 마침 이사도 했겠다 이참에 보려구요ㅎㅎ 그레이스 님의 영화 평론에 반해버렸습니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담백하게 풀어내는 느낌 덕분에 영화 감상이 너무 기대되요. 저번에 부모님 댁 가서 파우스트 가져왔는데, 다음에는 체호프 희곡 전집을 가져와야겠어요. 그레이스님 덕분에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책들을 읽고 싶다는 열정이 마구 듭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1-18 10:22   좋아요 0 | URL
그렇게까지 읽어주셨다니 넘 감사합니다.
전야제님 댓글이 더 감동스럽네요.
즐겁고 보람있는 독서되시길 바랄께요
감사합니다 ~~.
 

파우스트』, 이번엔 전영애 역으로 읽었다. 민음사도 함께 병행했다. 몇 년 전에는 열린책들로 읽었었다. 이 책(파우스트전영애 역, )은 마주보는 페이지에 독어 원문과 한글 번역이 나란히 있어서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나는 독일어를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발음규칙은 알고 있고, 눈으로 각운과 리듬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독어를 알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공부해 볼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신곡읽을 때는 이탈리아어, 호메로스 읽을 때는 그리스어, 그리고 라틴어, 불어, 일본어……. 이런 식으로 마음속에서는 10개는 족히 되는 언어를 익혔다.^^

 

이 작품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317, 전영애 번역, )는 민음사나 문학동네, 열린책들에서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잘못을 범하니까)”로 번역되었었다. 아마도 이 구절은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328~329)”과 함께 파우스트의 욕망, 방황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세계를 그 가장 깊은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지, 모든 작용하는 힘과 그 맹아를 보려는(382~385)”욕망, 그 비밀을 알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임을 예언하는 듯하다.

 

평생을 실험실에서 연구를 했으나 그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파우스트는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 그를 메피스토펠레스가 찾아오고, 계약을 맺는다. 메피스토가 상징하는 의미는 여러가지 전통적인 의미로 악마, 혹은 자연에 깃들어 있는 정령 등, 그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지식은 절대적 힘과 관련있음을 암시한다. 메피스토가 그의 영혼을 데려갈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할 순간이 언제가 될까? 1부 그레트헨과의 사랑의 순간도, 2부 헬레나와의 사랑이나 아르카디아 건설의 순간도 아니다.

 

파우스트가 헬레나를 만나는 장면에서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할 극치의 순간이 도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숨을 잘 못 쉬겠어요, 떨려요, 말이 막혀요, 이건 꿈입니다. 날과 장소가 사라졌어요.(9413-9414)”라고 말한다. 아르카디아에서 헬레네와 함께 하는 파우스트는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파우스트가 부르는 목가에서 그의 행복은 아직 미래 시제로 투사된다.

우리의 행복, 아르카디아답게 자유롭기를!(9573)

인간은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그 행복이 완전함을 확신하지 못한다. 극치의 행복은 오히려 불안감을 준다. 언제고 이 행복은 사라질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있기에, 극치는 완전한 행복이 아니다.

 

에우포리온의 죽음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에우포리온은 그리스 해방전쟁을 도우러 갔다가 요절한 시인 바이런이 어려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이 막에서 파우스트의 애도시(哀悼詩)는 바이런을 가리키고 있다. 사랑의 가장 이상적인 결론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 사회적 제도로 이야기 한다면, 결혼과 자녀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얼마나 불안하고 변하기 쉬운지!

 

파우스트 23막에 해당되는, 괴테 자신이 고전적 낭만적 환영극이라 했던, ‘헬레나 비극은 당시 독일인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품었던 동경과 그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보여 준다. 괴테의 역사적 통찰이라 함은 파우스트가 신적 존재 헬레나와 함께 형성한 이상적인 아르카디아는 역사 밖의 공간으로, 헬레나를 통해 구현되는 고대 세계 역시 근대의 역사적 시점에서 다시 재현할 수 없는 허상(독일문학사최민숙 외, 215-238p)”이라는 것이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그가 바이마르 궁에 있으면서 보고 겪었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땅속에 있는 보물(금)을 근거로 지폐를 발행해서 국가의 재정위기를 타결하는 왕과 재상들의 모습과 그들을 기만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논리는 오늘날 금융경제-숫자로만 확인되는 화폐에 대한 맹신으로 돌아가는-를 보여준다.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하는 것 또한 고금에 통하는 불의다.

 

플라스크 안에서 만들어진 인간정신으로만 존재하는 호문쿨루스는 육체를 욕망하고, 그리스 세계를 향하고 생명을 시원과 탄생에 대한 신적권위에 도전한다. 비너스의 탄생, 갈라테아의 승리 등을 연상케하는 신화들과 생명의 근원을 연구했던 고대 철학자들이 뒤섞여 등장한다. 그들이 외치는 만세(Heil)는 여전히 침범당하지 않은 생명의 근원을 찬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의 모두에게 지극한 경하를, 원소들, 너희 사대원소 모두에게!(8486-8487)”

 

헬레나가 사라지고 슬퍼하던 파우스트는 산위로 이동해가고, 자연을 내려다보며 메피스토펠레스와 논쟁을 벌인다. 그는 자연이 질서 정연하고 완벽하다고 주장하지만, 갑자기 메피스토의 주장대로 자연이 거칠고 혼란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그 힘에 대항하여 싸우고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갑자기 찾아온 욕망일까? 곧 땅을 차지하고 국가를 건설하려는 욕망으로 향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 황제편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적인 세력의 도움으로 승리한다. 그 공으로 아직은 바다인 미래의 간척지를 받는다.

 

파우스트는 이 해안지대를 간척하여 새로운 미래 국가를 세울 꿈을 꾼다. 필레몬과 바우키스의 오두막과 신전을 불태운다. 끝없는 욕망의 추동과 무리한 개발이 가져오는 근대의 문제를 시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바다가 메꿔진 후, ‘한밤중그의 저택 앞으로 의인화된 결핍··근심·궁핍이 다가오고, 그들 중 근심만 열쇠구멍으로 숨어 들어간다. ‘한밤중과 의인화된 근심의 알레고리는 넘어지는 인간의 보편적인 상황에 관한 진리를 전해준다. 이것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근심은 말한다.

내가 한번 내 것으로 소유한 사람 

그에겐 온 세상을 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영원한 침울이 내려앉아 

태양이 뜨지도 않고 지지도 않고

바깥으로는 모든 감각이 완전해도 

안에는 암흑이 깃들어 있어.

온갖 보물이 있어도 

제 것으로 만들 줄 모른다.

행복과 불행이 망상이 되고

넘침 가운데서도 굶주린다.

희열이든, 괴로움이든 

그걸 다른 날로 밀쳐두고,

오직 미래만 기대하며 

그래서 결코 완수하지 못한다.(11453-11466)”

 

근심이 내쉰 숨으로 파우스트가 눈이 멀었다는 것은, 실제로 실명한 것이지만, 상징적 의미가 강하게 다가온다. 근심으로 눈이 멀다! 반면, 육체의 실명 후 마음에 빛이 비춰졌다는 파우스트의 고백은 결론을 달리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그는 삽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건설할 미래 세계를 꿈꾼다. 낙원 같은 땅 자유로운 터에 자유로운 백성을 꿈꾸며 드디어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낸다. 일반적으로, 파우스트의 마지막 욕망이 모두의 낙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는 구원받았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메피스토는 그를 차지하지 못했다.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는 5막 역시 이런 해석을 내리게 한다. 하지만, 그의 낙원 건설의 꿈이 모두의 것이 아닌, 즉 그 시혜를 받는 자들의 꿈이 아닌, 파우스트 개인의 것이고, 이를 위해 집이 불태워지고 죽임을 당한 개인(필레몬과 바우키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그것이 구원받을 이상이었는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근대 국가주의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다. 이 이상국가의 꿈이 한 인간에게 악용된 역사를 보면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괴테와 니체 바그너의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같은 그림자를 찾는 이유일 듯하다.

 

인간의 욕망은 돈 섹스, 명예 세 가지로 귀결된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듯 보이는 2부의 5막들에 그려진 파우스트의 욕망이다. “나는 다만 이 세상을 달려왔다(11433).”라고 고백하는 파우스트의 길은 인간 모두가 방황하는 길이다. 누가 이 방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그 방황에서 때로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의식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 욕망으로 인해 멸망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괴테의 초기 문학 사조는 ‘Sturm und Drang’이. 질풍노도(疾風怒濤)라는 말은 일본인들의 번역이다. 독어의 원래 의미는 폭풍우와 돌진이다. 그것도 폭풍우 속으로 돌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폭풍우가 되어 마구 내닫는다는 의미다.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씀으로 이 사조의 대표작가가 된다. 그리고 그는 낭만주의 작품을 쓸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그는 고전주의를 이끌었다.

 

독일문학사에서 고전주의’(古典主義, Klassik)라 함은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1786~88)이 시작되는 1786년부터, 쉴러가 사망하는 1805년까지의 약 20년간을 지칭한다. 이때가 독일문학의 최전성기로 전성기 고전주의’(Hochklassik)라 부르기도 하며, 주로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학운동이기 때문에 바이마르 고전주의’(Weimarer Klassik)라 부르기도 한다.”(새 독일문학사안삼환 218p)

 

이성을 중요시하던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감정위주의 ‘Sturm und Drang’이 다시 이성 위주의 고전주의로 옮겨간다. ‘바이마르 고전주의1775년 괴테가 바이마르 공국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을 받아 바이마르로 가는 데에서 그 기틀이 세워졌다. 명징성, 고대문화 숭배, 문학을 통한 국민 교육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과 자연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다.·동경·마적(魔的)인 것, 무한성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독일 이상주의’(deutscher Idealismus) 문학운동의 마지막 단계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의 사조는 분류하자면 '바이마르 고전주의'이다. 하지만 파우스트 1부와 2부 사이에 60년이란 세월이 존재하고, 작품 안에는 ‘Sturm und Drang’, 자연주의, 낭만주의가 분위기도 보게 된다. 그의 작품을 어느 한 사조로 묶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폴레옹이 예나Jena와 바이마르 시를 통과했던 1806년 바로 그 해에 헤겔은 정신현상론, 괴테는 파우스트1부를 완성시켰다.…… 쉴러는 칸트를 통해, 낭만주의자Romantiker들은 피히테와 셸링을 통해 각인되어진 반면, 괴테의 자연관, 인생관은 고전철학자의 누구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다. 그의 창작활동은 어떠한 철학의 지지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자체 안에서 풍부한 사상을 지니고 있었고, 그의 자연과학의 연구는 그의 창작과 동일한 상상력에 의해 인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헤겔에서 니체에로카를 뢰비트 21p)”


10월의 마지막날 여주 전영애 교수의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에 다녀왔다. 전시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교수님의 영상과 주제별 책 선정에 담은 정성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한때는 미술가를 꿈꿨던 괴테의 회화작품들과 멋진 필체의 영인본, 고서적들…… 다시 한번 독일어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과 여행도 꿈꿔본다. 그곳에서 방황해볼테다.^^ 

기념으로 서동시집을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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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04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몇년 전 전영애 교수 완역했다고 무슨 다큐 프로에 나왔는데 수도하듯이 번역을 하셨겠더군요. 순간 박경리 작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자그마하신 분이 어떻게 번역을 하셨을까 존경스럽기도 하고. 책 참 탐스럽네요.

그레이스 2024-11-05 10:45   좋아요 3 | URL
네, 보면 사게되는 책입니다. 날씨도 좋고, 장소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 다큐 저도 봤는데, 참 멋있게 사신다 생각했습니다. 11월엔 이탈리아에 계신다고... 아마도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번역하기 위해 자료 수집차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쿤체 시집도 나왔는데 다 장정이 너무 예뻐서 조만간 들여놓을 듯 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1-04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우스트> 1권만 읽고 2권을 읽다 말았는데 리뷰를 보니 <파우스트>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그레이스 2024-11-04 18:26   좋아요 1 | URL
2권은 다섯개의 막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독립적인것처럼 보여서 읽기에 매끄럽지 않긴 해요.
파우스트의 방황이므로 ^^
1 권과 2권 사이에 60년이란 시간이 있으니, 글쓰기도 조금 다른듯 하구요.
그래도 제 생각에는 2부까지 읽어야 주제가 전달된다는 생각입니다.
독서 응원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1-04 22:25   좋아요 1 | URL
응원감사합니다!!

초란공 2024-11-04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여백 서원 3번 다녀왔어요~ 그 사이 괴테 마을이 자리를 잡았나요? 궁금하네요!

그레이스 2024-11-04 21:30   좋아요 0 | URL

괴테마을이 예뻤어요
여백서원은 한달에 두번 낭독과 강연회에만 신청해서 들어갈 수 있어서 밖에서만 봤구요
괴테 마을에 프랑크푸르트 시절과 바이마르 시절의 건물이 2동 있었어요
바이마르 저택 내부는 아직 설치중이구요,,,
다른 하나는 바이마르로 가기전 지내던 저택으로 물건과 책들을 전시한것입니다..
정원도 손질이 되어있구요 둘러싼 산들도 하나의 풍경으로 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희선 2024-11-05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괴테의 책을 읽고 괴테마을에도 다녀오셨군요 한국에 그런 곳을 만들다니, 대단하네요 건물을 실제 괴테가 지내던 곳과 비슷하게 꾸몄나 봅니다 그 안에 전시품이 있군요 괴테가 살았던 곳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괴테마을이군요 여백서원도 멋지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4-11-05 07:23   좋아요 1 | URL

여백서원이 먼저 시작되었죠^^
만들어지는 과정도 멋집니다.

전야제 2024-11-07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님 댁에 놔두고 온 파우스트를 이번 주에는 꼭 가져와서 제대로 읽어봐야겠어요ㅎㅎ 고전 작품을 뒤늦게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서양 예술사 지식과 함께 설명해주셔서 마치 수능 비문학 지문을 읽어나가듯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의 서재에 있는 글로 공부 많이 하려구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1-08 15:04   좋아요 1 | URL
ㅎㅎ
수능비문학!
공부할 정도는 아닌데...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4-11-08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괴테 마을이라는 곳이 있었군요.

예전에 딴나라에 잠시 살던 시절에
괴테 인스티튜트라는 곳이 있어서
한 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만 하
고 미처 가보진 못했거든요.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해 보니,
이게 독일 문화원이군요 ^^
아 무식도 하여라.

그레이스 2024-11-08 21:41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덕분에 알았습니다.
괴테마을은 여주에 있습니다.^^
 
푸른 기록
신상웅 지음 / 소요서가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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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를 펼치고 저자의 이동경로를 따라간다. 중국 남서부와 라오스, 태국, 베트남의 도시와 촌락에 표시하고 일본의 교토에서 마친다. 쪽 염색의 역사와 전해지는 경로는 한 민족의 고난과 이주의 역사였다. 푸른 기록은 몽족 여인들의 팔에 물든 지워지지 않는 맵고 시린 시간이다. 반면 푸른 천에 새겨진 무늬들은 그들의 삶을 상징하는 기호들이다. 쪽풀들이 자라는 고장, 쪽물이 들어있는 항아리들이 푸른 숨을 쉬는 마을, 파란 천이 바람에 나부끼고, 화려한 무늬가 피어나는 그런 풍경을 절로 상상한다. 사진들 속 시리도록 푸른빛이 물들어 온다.


중국 서남부의 변방도시 구이저우(貴州) 카이리. 이곳에서부터 저자는 쪽빛 여행을 기록한다. 구이저우 성에는 먀오족 자치현들이 여기저기 있다. 카이리는 먀오족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관문 격인 도시이고, 바사마을은 본격적인 먀오족 자치현이다. 그리고 샤오황 마을……. 쪽 염색을 찾아가는 여정은 먀오족(몽족)의 이주역사를 따라가는 것이다. 곳곳에서 만나는 여인들이 입은 푸른색의 옷들은 그의 심장을 뛰게 한다.

 

먀오족의 바사마을 민속관에서 본 쪽 염색과정.

쪽물이 무르익으면 물 표면에 자주색 피막이 떠다닌다. 빛이 나던 금속성의 피막은 천으로 옮겨오지 않는다. 색이 아니라 빛이다. 푸른색이 진해질 때로 진해진 무명은 검은색에 가깝다. 그냥 검은색이 아니라 여름 밤하늘처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좀 아득한 무엇이다. 푸르다 못해 검게 물이 오른 천을 건져내면 표면에 자주색 꽃이 이끼처럼 돋아난다. 작은 폭죽이 터지듯 천을 비집고 피어오른 것들은 쪽물 위에 떠돌던 그 빛이다. 금박처럼 반짝이던 자줏빛은 천이 마르면서 사라진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색이고 쪽 염색의 막바지에 잠깐 다녀가는 찰나의 빛이다.(31p)”

그의 묘사는 새벽녘 여명에 별빛이 사라지고 푸른 기운이 도는 하늘빛이 떠오른다.

 

가을걷이를 하는 겨울은 염색의 계절이다. 삼나무 통에 쪽물이 익어간다. 푸른색으로 물들인 무명은 양포, 거기에 납염으로 무늬를 넣은 것은 '화포'라 부른다납염이 시작된 전설-꿀벌이 앉았다 간 자리에 쪽물이 들지 않자, 소녀는 밀납 때문에 염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은 한편의 그림동화다. 이름난 염장이를 찾아가고, 명장 유 노인의 방염제는 석회와 콩가루, 어디에나 무엇이든지 푸른 색을 위한 재료인 듯 싶다. 윈난성(雲南省) 다리(大理) 저우청 마을의 찰염(紮染)-실로 묶거나 꿰매어 염색하는-과 이로부터 나온 '두화포'는 삶의 터전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와 지혜로 무늬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생활사다.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 북부 산악지대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몽족의 조상은 중국 구이저우의 먀오족이다. 그는 태국의 치앙마이, 매살롱을 향한다. 그는 화포의 자취가 사라지고 관광객을 향해 웃음 짓는 사람들에게 지역에서 실망하던 자신에게서 식민주의(colonialism)와 관광주의(tourism)적 시선을 발견하고 반성한다. 어쩌면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는 그들에게서 전통이 지켜지지 않음을 개탄하지만그 생각은 "문명의 편리를 누리는 자의 몰염치"이다. 오래 남는 깨달음이었다.

 

라오스에도 몽족의 디아스포라는 이어진다. 몽족은 18세기에 중국을 떠나 라오스로 왔다. 그곳에서 푸른 염색은 바틱이라 불린다. 오래고 고된 시간 동안 여인들은 화포에 무늬를 넣어왔다. 그것이 그녀들의 역사다. 라오스의 몽족은 중국 땅에서 이주해왔고,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국의 용병이 되고, 전쟁이 끝난 후 흩어져 태국으로 망명하거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저자는 베트남의 디엔비엔푸와 박하로 향한다. 지역마다 화포가 담고 있는 그림들은 다르고, 그것들은 시간과 장소의 역사의 기호이고, 삶의 문양이다.

 

저자는 중국의 샤오싱에서 항저우로 이어지는 운하에서 표해록』의 저자 조선의 최부를 떠올리고 그 일행의 난파와 표류 그리고 귀향(歸鄕) 길 되짚는다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화포는'시보리'가 되고 이것은 다시 '노렌'과 같은 형태로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노렌은 발이나 커튼의 형태다기록으로 남아있는 일본의 쪽 염색은 8세기에 시작되었고, 일본의 방식대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을 저팬 블루Japan Blue’라 부른다. 교토 왕궁 서쪽에 자리잡은 니시진은 교토의 섬유와 염색의 중심지다.

 

저자 를 이 길로 이끈 것은 박지원이 옷을 해 입었다던 화포에 대한 기록 때문이다. 조선에서 만든 것인지, 중국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이 기록 때문에 길을 떠나, 쪽빛 길(Blue road)을 걷는다. 염색가 신상웅, 그의 쪽빛 탐구는 내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박제가의 <연평초령의모도>를 추리1790년 베이징이라는 책을 썼다고 하니 찾아 읽어봐야겠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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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0-31 0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지도를 찾아서 보기도 하셨군요 몽족은 중국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살았군요 그렇게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옮겨 간 곳에서 언제나 쪽 염색을 했나 보네요 민족과 염색의 역사... 한국에서 하는 쪽 염색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니 나주가 나오는군요

그레이스 님 시월 마지막 날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4년 두달 남았다니...


희선

그레이스 2024-10-31 08:18   좋아요 1 | URL

예상치않게 몽족의 역사를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이 지나면 11월이네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레삭매냐 2024-11-02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라오스 몽족이
파테트라오 공산반군에게
적대적이어서 라오스가
공산화된 다음에 무척이나
핍박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흥미로운 책인 듯 합니다.

그레이스 2024-11-02 14:02   좋아요 1 | URL

저도 쪽염색이 우리나라에만 있는게 아니라는것과,,, 소수민족의 역사, 지리를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S/Z’ 딱 봐도 기호학인 듯 보이는 이 책은 롤랑 바르트라는 작가만 보고 사두었었다. 기억에는이미지와 글쓰기라는 책을 읽고 좋아서 책을 몇 권을 구입했는데, 읽어내는 속도는 몇 권 되지도 않은 구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 책은 책장에 꽂혀만 있는 신세였었다. 결국 바르트 읽기도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이번에 발자크 읽기를 하면서 다시 이 책을 펼쳐들었다.


S/Z』는 바르트가 발자크의 사라진느를 텍스트로 해서 강의한 내용이다. 제목의 S는 사라진느, Z는 잠비넬라의 첫 알파벳이다. 둘 다 이 소설 속에서 화자가 한 여성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문장과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이때 텍스트는 5가지 코드로 읽혀지는데, 해석학 코드(Hermeneutic code, HER.), 행동적 코드(Proairetic code, ACT.), 문화적 코드(Referential code, REF.), 의미론적 코드(Semic code, SEM.), 상징적 코드(Symbolic code, SYM.)이다. 어떤 말과 행동 인물을 표현하는 텍스트에서 독자는 의심하고, 재생하고, 정보를 얻고, 짐작하고, 교감하는 상호작용을 한다. 바르트는 이 소설을 561개의 렉시아(lexia, 독해 단위)나누고 그것을 코드 기호를 달아놓고 분석한다. 이렇게 조각조각 내서 읽는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가끔은 내가 텍스트와 상호작용하며 얻은 의미들이 일치하는 지점에서는 작은 희열을 맛본다.

 

바르트는 이 강의를 통해사라진느를 세상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은 텍스트를 읽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므로 전적으로 그것에만 의존해서 소설을 읽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사라진느를 먼저 읽고 감상을 한 후에 참고한다면 확장된 독서경험이 될 것이다. 어쨌든 나는 도움을 받았다.


 사라진느는 문학과 지성사의 책으로 처음 읽었다. 힘들게 읽었던 생각이 난다. S/Z에도 본문은 수록되어 있다. 두 권이나 있는데 민음사 책을 또 산 이유는 전적으로 제목을 오독한 탓이다. 검색하던 중 사라진 샤베르 대령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발자크 읽기를 하던 중이라 망설이지도 않고 구매버튼을 눌렀고 받아보고서야 사라진샤베르 대령사이에 점 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라진샤베르 대령

! 샤베르 대령은 사라지지 않았다.” (ㅋㅋㅋㅋ)

 

그러면 문지사는 사라진느’, 민음사는 사라진이라고 했을까? 프랑스어에서 SarrasineSarrasin이라는 남성명사에 e를 붙여 여성명사를 만든 것으로 사라진느로 읽는다.(전자사전에서는 사람이름이 아닌 일반명사는 사라진으로 발음이 나온다.) 여기서 또 의문! 왜 남자 주인공에게 여성이름을 붙였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었다. 거세당한 카스트라토 가수 잠비넬라를 사랑했던 사라진은 나중에서야 그 정체를 알게 된다. 사라진에게서 이중적인 심리를 읽게 된다. 그가 진실을 알고 잠비넬라에게 퍼붓는 분노는 속은 것에 대한 화이기도 하면서, 자신 안에 있는 동성애적 성향을 거부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바르트는

사라진(Sarrasine)이라는 낱말은 프랑스인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여성성이라는 또 다른 함축 의미를 실어 나르고 있다. 특히 프랑스어의 고유명사 연구를 통해 남성(Sarrazin)이 통상적으로 확인되는 고유명사인 경우, 이 여성성은 여성의 특수한 형태소로서 마지막에 e를 일반적으로 받는다. (함축된) 여성성은 텍스트의 여러 장소에서 고정되도록 되어 있는 하나의 기의이다. 그것은 성격 분위기 수사 상징을 형성하기 위해 동일한 종류의 다른 요소들과 결합될 수 있는 이동성 요소이다.(S/Z롤랑 바르트 93p)”

그는 사라진이 보인 난폭한 분노는 잠비넬라로부터 온 거세공포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다시 이야기를 청취하던 여인의 분노로 나타나는데, 그녀 역시 같은 공포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쎄 여기까지는 내 지식이 짧아서 동의하는 것을 유보하고 싶다. 제목에 대한 비슷한 해석을 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남성명사는 사라쟁, 여성명사는 사라진사라진느두 가지 발음이 다 검색된다. 그러나 제목이 전하는 의미들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고유명사를 읽는 발음 사라진느로 표기하는 편을 선택하겠다.


민음사 번역 사라진은 너무나 매끄럽게 잘 읽혔다. S/Z에 실려 있는 번역문과 비교했을 때 좀 더 의역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감춰져 있는 의도, 기호, 의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면서 눈과 의식을 이끌어가는 힘은 민음사 번역에 더 있었다. 잠비넬라의 정체가 드러나는 지점까지 빠른 속도로 끌려가게 된다.

 

떠들썩한 연회장과 추운 겨울 회색빛 정원의 이미지로 시작된 대조법은 한 존재에게서 보여지는 상반된 이미지를 향한다. 랑티 백작 저택의 떠들석한 연회 한 가운데 홀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노인, 노쇠한 육체 위에 입혀진 화려한 의상은 누더기로 보이고, 보석들은 기괴한 존재의 모습을 더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낸다. 더욱 의미심장한 대조는 이 환상적인 인물에게 강렬하게 느껴지는 여성적 교태다.

이 병약한 육신에 새겨진 노쇠의 흔적에 별수 없이 주목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깊은 혐오가 마음을 죄어 왔다(25p).”

이질적인 요소들은 눈길을 끌고, 호기심을 갖게 하고, 심지어 혐오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인물의 등장에 집안이 발칵 뒤집히지만, 그를 감시하고, 부축하고, 그 앞에서 웃음 짓는 랑티가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수상쩍다. 그는 그들의 행복, 목숨, 재산을 움켜진 마법의 인물 같았다(20p)”라는 말을 통해, 랑티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사치가 그에게서 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도니스, 엔디미온은 그 노인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등장한다. 벽에 걸려 있는 아도니스는 사라진의 조각을 보고 그린 것이고, 그 모델이 잠비넬라라는 사실이 구술되는 순간, 존재는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결국 추기경의 노리개였던 카스트라토 가수 잠비넬라의 정체가 밝혀지고, 피그말리온의 욕망을 갖고 있던 사라진은 분노한다. 잠비넬라를 사랑했던 사라진의 당혹스러움에는 공감할 수 있으나, 분노에는 그럴 수 없다. 그의 분노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군중 속에 기괴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병들고 노쇠한 잠비넬라에게 연민을 갖게 된다.

 

이질적인 요소들은 내러티브를 통해 연민을 일으킨다. 외부로 보여지는 이미지, 그 존재가 갖고 있는 사회 통념적 시선으로는 배척될 수밖에 없는 이미지의 근원에 타인의 욕망에서 비롯된 폭력이 있었음을 알게 될 때, 그에게서 비애를 느낀다. 그리고 그 폭로된 정체 앞에서 공포로 절규하는 사라진느, 그의 분노는 측은하다. 인간은 보여지는 것에 의해 눈이 멀 수 있다.

 

이번에는 발자크에게 묻고 싶다. 글을 쓴 의도가 무엇이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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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0-28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Z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통과합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4-10-28 17:5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coolcat329 2024-10-29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Z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기호학이 뭔지 모르나 독자가 소설을 읽고 문장과 상호작용하는 다섯 가지 코드는 궁금하네요.
제 생각에도 ‘사라진‘보다는 ‘사라진느‘가 더 맞는 거 같아요. 민음사 번역이 읽기 수월하다니 참고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10-29 09: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기호학은 볼수록 어렵네요
ㅎㅎ

서니데이 2024-10-29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라진보다는 사라진느 쪽이 더 여성명사 같은데, 남성명사가 사라쟁이군요.
원서가 외국어인 책은 번역이 잘 되어 있어야 읽고 이해하기 좋은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4-10-29 21:22   좋아요 1 | URL

그렇죠?
오랜만이고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님도 평안하세요

레삭매냐 2024-10-30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쓰는 기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발자쿠 선생.

평생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어
떻게 쓸 수 있었는지 그저 신기
할 따름입니다.

S/Z의 저자는 무려 롤랑 바르트
네요. 책은 처음 알게 되었네요.

그레이스 2024-10-30 09:07   좋아요 1 | URL
발자크가 사라진느를 바르트가 사라진느를 텍스트로 S/N을 강의한 동기에 어떤 접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