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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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작가는 글을 쓸 때 두려움을 느낀다면서, ‘잘 쓰고 있나’ ‘인물이 윤리적인가’ ‘고증이 확실한가와 같은 자기 검열을 자주 한다고 고백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인물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불편한 것을 애써 감추는 건 기만이고, 시대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이런 질문들을 오래 논했다는 작가의 말이 맴돌았다.(시사In) 인물들과 이야기에서 작가의 고민에 공감되는 지점들이 있다. 나 역시 다 읽고 나서도 그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리뷰를 할 방향을 찾지 못했었다.

 

모 배우의 한 줄 평이 카피라이팅 슬로건(copywriting slogan)이 되었다. 그의 영향력 때문에 과장된 경향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둘째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읽고 소설 넘 신박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도, 다 읽은 책을 소장하기 위해 구입하는 것을 보고도 아이의 취향이겠거니 하고 읽어야 할 책 순서에서 뒤로 미뤄 놨었다. 막내 아이도 읽고 좋았다고 하고, 지인들도 좋은 평가를 하고, 그제서야 책을 옆에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자는 의견이 나오고서야 읽기 시작했다. 확 빨려들어가고 신박한 느낌은 들었다. 계속해서 긴장시키는 부분도 있었다. 독서모임 회원들은 만난 순간부터 정말 좋았다고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나는 마음이 불편하지? 방어벽을 쌓았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인물들이 주는 불편함이 너무 컸다. 선과 악, 윤리적이고 비윤리적인 문제는 아니다. 인물들이 경계에서 줄을 타고 있어서, 사유라는 게 없어서, 작가가 그들을 위해 변명을 하고 있는 듯해서 무서웠다. 작가는 중립적인 자리에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문제를 던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짧은 문장 안에서도 작가의 철학은 묻어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독서모임에서 회원들과 토론하면서 나는 철학 없이 재미로 읽는다면 차라리 영화를 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미디어와 텍스트는 어떻게 다를까? 나의 경우 독자의 사유에는 텍스트가 더 선명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는 기이한 상상인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주제는 무겁다. 내 경우, 망막을 통해 들어온 이미지는 사라지거나 그 세계 안에 머물거나 인상적인 몇 장면을 남기거나 하는 정도로 생각을 만든다. 반면, 텍스트 한 단어 한 문장이 그대로 들어와 각인되고 비평과 수용을 통해 사유가 된다. 그래서 더 선명하다.

 

읽은 후 몇 달 동안 작가의 펜이 향하는 방향이 어디일까 고민 했다. 권력에 복무하기보다는 항거하며 시대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작은 지점을 찾아가는 게 문학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기억이고, 그것을 오답 삼아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나라고 한 작가의 말에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여전히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에는 마음이 쿵 내려앉는 불안을 겪는다.

 

등장인물들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들의 경향성은 우리 시대정신이지 않을까? 특히 혼모노에서 무당이 섬기는 할멈 신이 그 정신의 극단적 상징이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의 내용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혼모노는 최근 내란과 그 배후 사건들과 관련하여 더욱 시의적이다.

 

혼모노(ほんもの)는 일본어로 진짜’, ‘진품을 뜻한다. 일본 문화에서 이 단어는 장인정신의 상징이다. “저 사람은 진짜 혼모노다라고 말하면, 그 분야에서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한편 집착적인 오타쿠를 뜻하는 은어로 쓰인다. 그렇게 '혼모노'는 진품에서 비정상으로, 찬사에서 조롱으로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가 오타쿠처럼 집착하며 욕망하는 실체는 무엇일까? ‘길티 플레져’, 죄의식을 동반하는 즐거움일까? 죄의식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누군가를 추앙하는 팬클럽 회원들 각자에게 숨겨진 의도에 대한, 순수하지 못함에 대한 것일까? 누군가를 추앙하는 것, 진실이 무엇이든 무조건 믿는 것이 스스로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 때문일까? 그들은 배타적 언어와 규칙들과 가식적인 대화와 가장된 호의로 의구심들을 덮는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모인 가짜들이다. 그들은 마치 이빨과 발톱이 빠진 호랑이를 만지는 것과 같이, 진실이 아닌 허위의 대상을 추앙하는 아니 자신의 욕망을 추앙하는 사람들이다.

 

'구의 집'이라는 이름에는 누군가의 범죄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감금과 고문을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을 설계한 주인공은 구보승이지만, 이것을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자는 그의 스승 여재화이다. 대학원생이던 구보승에게 설계를 맡기고, 그 설계대로 세워진 건물에 이름을 구의 집이라고 명명한 것은 자신의 죄와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이다.


이 작품에서 구보승은 이 건축물 설계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그것이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의의를 부여한다. 재능도 의욕도 없어 보이던 대학원생 구보승이 뜻밖에 열정과 비상한 재능을 보이며 설계에 구현한 공간은 감금과 고문, 의도된 자백을 받아내기에 최적화된 건물이다. 구보승에게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두 사람 중 누가 혼모노이고 니세모노(가짜)일까?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 홈페이지에서 남영동 대공 분실’의 빈틈없이 용도에 최적화된 정교한 설계가 담겨진 도면을 볼 수 있다이 건물은 한국의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고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왜 작가는 한 건축가의 설계가 아닌 그야말로 무기력한 무사유의 인간이 그를 대리하게 했을까? 그 유명한 건축가를 변명하는 듯 보여 오랫동안 고민했다. 두 사람 다 설계를 의뢰받는 순간부터 건물의 용도를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은 정의나 인륜 같은 것에 무심한 채 순간의 욕망과 성취감에 충실했고, 다른 한 사람은 사회적 명성, 사회적 지위때문에 거절할 수 없는 범죄에 다른 사람을 가담시키고 그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결론은 그가 끌어들인 사람이 한 명 두 명 백 명으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타인의 안위나 사회적 정의와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정신을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위험하다. 그 극단적인 정신의 형태가 혼모노의 할멈 신이다. 박수무당30년 간 섬기던 신은 다른 신애기에게로 옮겨간다. 그 귀신 조차 자신의 이익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다. 그런 신에게 자신의 안위를 의탁하고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국가와 많은 사람들을 위해야 할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해 신당을 찾는 욕망이 낳을 결과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할지는 자명하다.

 

이것이 시대정신의 경향성이다.

단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인의 욕망만을 추구한다. 타자들 혹은 공동체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아니 그런 것들을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직관적인 죄의식만을 희미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습관이 된 이런 경향은 죽음의 위험을 당한 혈육 앞에서도 자신의 자존심과 욕심을 우선순위에 놓는 어리석음을 낳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것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은 자연스럽다. 시류에 합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욕망만을 추구하고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고 경향이 된 존재가 개별자로서 혹은 집단을 이루어 괴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무섭고 두렵다. 그게 내가 되지 않으란 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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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의 구두 - 하이데거,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의 그림으로 철학읽기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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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데리다, 사르트르, 하이데거 등 철학자들에 의해서 해석된 미술작품들과 그들의 미학을 읽게 된다. 그들의 이론서에서 미학의 액기스만 뽑아낸듯 하다. 문학, 미술, 음악을 보는 미학적 시선을 맛보게 해준다. 미학사나 미학개론서 보다 더 즐겁고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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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멜랑콜리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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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후 독립한 헝가리는 혁명과 반혁명의 혼란을 겪어왔다. 독일 점령 시절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역사에서 비극적 사건들로 이루어져있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1956년 헝가리 혁명은 유혈사태를 가져왔고,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독재와 혁명과 다시 반혁명으로의 부침이 많았던 역사의 경험 속에서 1980년대 말, 동구 공산권의 붕괴 위기는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까? 체제 붕괴의 분위기와 국경 개방이라는 물리적 조치 등은 멀리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희망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체제의 몰락과 함께 무질서와 혼란이 점점 확산되고, 사람들은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작가 역시 불안하지 않았을까? 무질서와 혼란과 폭동이 잠잠해지고 차갑고 잔인한 질서로 회귀했던 역사의 망령이 그를 사로잡고 공포스럽게 했을지도 모른다.

 

연착되는 기차, 쓰레기로 쌓여가는 거리, 지독한 추위, 물자 부족, 무질서는 도시(국가)의 기능 상실과 피로감을 시사하고 있다. ‘붕괴의 증상들은 알아차릴 수 있더라도 그 원인은 도저히 불가해한 일로 남았기에(12P)’ 사람들은 일상을 살면서 무질서에 가담하고, 아직 실제적 위협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생존을 위해 득달같고 악착같은 몸부림을 친다. 들려오는 참사들과 사고들, 비행(卑行)의 소문들은 플라우프 부인이 기차에서 모르는 남자로부터 당한 위협과 더불어 다가올 대재앙, 어떤 거대한 파국, 혹은 종말이 다가온다는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다. 이것은 곧 붕괴하게 될 구체제의 종말을 앞둔 동유럽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다. 작가는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인지를 밝히지 않고 모호하게 쓰고 있다. 불온한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온 플라우프 부인은 집을 정돈하고 최대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한 대비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하게 되는 대응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상황을 인식하고 방법을 찾는 데 있어 차이를 보인다. 에스테르의 경우가 철학자 혹은 예술가의 것이라면, 에스테르 부인은 정치적인 방법으로 상황에 대응한다. 반면 벌루시카의 경우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자신이 추종하는 에스테르와 천체에 관심을 둘 뿐이다. 그는 우체부로서 그가 다녀할 길을 걷고 달리며 하루일과가 끝나면 태양과 달과 지구의 운동을 퍼포먼스로 사색한다. 과학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플라우프 부인, 에스테르, 에스테르 부인, 벌루시커 등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삶의 영역을 지키려하고 자신이 가치라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결말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그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두문불출하며 음악의 순정율을 연구하던 에스테르는 밖에서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는 소문을 들으면서 우리는 끝장이 났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 행동, 상상력에 실패했어. 심지어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이해하려는 안쓰러운 시도조차 실패했어.(173p)’라고 하며. 그가 순정률에 천착하고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 원래 주어진 질서가 망해가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스테르는 평균율을 비판하며 자연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진리를 가리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정율을 따라 조율하고 우리의 귀에는 익숙하지 않은 화성을 연주한다. 그러나 폭동의 기운이 가득한 바깥으로 외출 후, 그의 생각은 변한다. 산책 수 돌아와 창문을 판자로 가리고 바리케이트를 치는 모습은 플라우프 부인과 비슷하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소음이 들려오고 도시가 폭동에 휩싸였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벌루시커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생각하며, 그를 찾기 위해 나갔던 그는 돌아와 판자를 뜯어내고 창문을 열고, 스타인웨이 앞에 앉는다. 연주 전 베르크마이스터 화성계로 다시 재조율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에게 얼마나 편안한를 느낀다. 그가 평균율에 맞춰 스타인웨이를 연주하는 것과 자신의 시계를 종탑에 맞추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는 실패한 것인가?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거나 지금까지 생각해낸 것들을 물린다는 게 아니라 돌림노래 같은 자기-지식적인 사변의 탐닉에서 자유로워졌다.(320p)”라고 생각한다. 이성이 세계의 균열의 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맹신했던 지성과 합리성은 세계의 고통스러운 빈틈이라기보다 부분으로 속한, 세상의 그림자라고 이해했다.(320p)” 결국 지성이란 것도 세상에 대한 반영, “들쑤시는 대화 속에 우리의 존재를 조종하는 반사작용들과 동조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가 평균율이라는 음악의 착각을 빠져 나오듯, 그는 지성이라는 것 자신의 연구가 그저 맴을 도는 탐닉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유로워졌다. 판자를 뜯어내고 창을 통해 보이는 종탑 시계를 보며 시계를 맞추는 행위는 그 의미의 상징이다.


그 주위의 모든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들의 원래 의미를 되찾았다. 창문은 다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되었고, 난롯불은 다시 온기를 전달하는 난롯불이 되었고, 거실은 모든 흥밋거리를 앗긴 대대적인 손상에서 피난처 구실을 하기를 그만 두었고 바깥세상은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문의 현장이 아니었다.(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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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도시에 들어와 있는 서커스단은 수상하고 불온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고래를 전시하는 서커스단 주위로 군중들은 몰려들고 이 군중을 위험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서커스단의 대공이라 불리는 인물은 그 소문의 중심이 된다. 단장은 대공에게 상업적 차원에서 그 칭호를 부여했으나, 기형적으로 작은 키에 평범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그의 모호한 실체는 대공(The Prince)’이라는 이름과 함께 더욱 비밀스럽고 공포감을 조성한다. 서커스단이 거쳐온 도시마다 그의 선동에 동조해서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겨났다. 모여든 군중 안에는 이들도 섞여 있다. 전체주의나 파시즘이 태동할 때, 군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성을 끄집어내는 '광기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왜인지 히틀러가 떠오른다.

 

에스테르 부인은 도시의 이 혼돈과 폭동을 이용해서 짧은 시간에 권력을 쟁취하는 인물이다. ‘청결운동 위원회를 조직하고 외부로부터 도시로 군대를 끌어들여 혼란을 수습한다. 이 과정에서 중령과의 관계는 그녀의 성적 욕망이 권력에 대한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을 엿보게 된다. ‘청결운동은 더럽고 불온한 것들을 깨끗하고 질서있게 순정한 것으로 바꾸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하나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것들은 제거해버리는 파시즘의 방법이다. 위원회는 폭도를 처형하고, 또한 에스테르 부인은 자신이 잡은 권력에 위해가 되는 자들을 제거할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대공은 폭력으로서 권력을 상징하며, 에스테르 부인은 혼란 뒤에 되풀이 되었던 전체주의 독재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벌루시커는 마음속에서 여러 번의 저항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위원회와 주방장, 너더반과 그의 친구들과 달리 벌루시커는 서커스단 주위에 모여 있는 군중들을 그이 위험하게 보지 않는다. 의심하는 자들은 강박을 전염병처럼 공유하고 있고, 그것은 그들 내부에 불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미스터리는 고래 이상은 없다.(258p)” 그들은 단지 고래라는 생물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화를 몰래 엿들은 그는 대공의 의도를 알게 된다. 그가 그 대화를 듣고서야 알게 된 것은 저항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방어했고 직감을 억눌러 서커스와 함께 도착한 그 군중과 지역민의 불길한 예감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연결(265p)”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군중들은 원래부터 폭도였을까? 그들이 폭도가 되도록 한 힘과 계기는 응집된 분노와 불안감에 선동이라는 불을 지핀 것일까? 벌루시커의 저항은 에스테르의 우울감과 다른 것일까?

 

중요한 시기에 실패한 듯 보이고 뒷걸음치는 듯 보이는 역사가 반복될 때, 또 격변의 시기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우울함과 무기력증을 보인다. 저항의 한 모습이다. 에스테르가 창을 닫고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는 것, 플라우프 부인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벌루시커가 심적인 저항감을 느끼는 것 모두가 그런 모습이라 생각된다. 상충하는 감정인 듯 보이지만 내 속을 들여다보면 분노나 이런 저항감이 우울감과 함께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의 부조리와 파멸을 보며 멜랑콜리는 지식인이 갖게 되는 정서이자 저항의 모습이기 쉽다. 과연 그것만이 유일한 저항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플라우프 부인의 공포로 시작하여 그녀의 장례식과 시신의 부패로 끝을 맺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을까를 생각한다. 격변과 혼란과 불온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그녀의 시도는 무화 되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없다. 격변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추운 날씨에 시신은 동면의 시간을 거쳐 이내 부패를 시작하고, 그 몸에는 폭동과 같은 혼란이 시작된다. 많은 단계를 거쳐 부패가 끝나면 죽음이후 진짜 죽음과 같은 고요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 혼돈처럼 보이는 부패에도 질서가 존재한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소멸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은 헤아릴 수 없는 명령으로 이루어진다. 이 마지막 부분이 우리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주는 것인지 멜랑콜리 그 자체만 전하고 마는 것인지 각자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그래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얻는다. 우울의 감정은 역사의 부조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그것이 언젠가는 다른 형태의 감정인 분노가 되고 역사를 다시 앞으로 가게 할 동력이 되게 할 것이다.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이 번역의 문제일까 생각했다. 물론 단어 선택에 있어 아쉬운 점은 있다. 그러나 원래 문장 구조를 잘 살려야만 하는 작품이기에 훼손하지 않는 것이 번역의 첫 번째 원칙이 되어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연체이고 호흡이 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고, 콤마(,)로 이어진 여러 개의 절은 주어가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중첩된다. 긴 문장에 삽입구는 마치 지문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확대시킨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다층적 의미를 생산한다. 영화로 본다면 몽타주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식 속에 흐르는 생각과 함께 사건이나 확대 이미지가 병행된다.

예를 들자면

그런 뒤 이번 주, 두 번째 주를 맞아-그녀는 등 뒤에서 우드득 손가랄 관절을 꺾었다- 깔끔한 정원, 말끔한 가정 운동은 들끓는 열의로 조직, 착수되었고, 그래서 끔찍한 폭동이 일어난 지 닷새가 못되어, 가게들은 문을 열고 그 안의 선반들은 상업적 활동의 징후를 내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487P)”

와 같은 문장이다. 청결운동을 주도해가는 에스테르 부인의 권력과 욕망을 손가락을 우두둑 꺾는 소리와 이미지로 더 강하게 설득한다. 서로 대립되는 의식과 장면들이 한 문장 안에 배치함으로 공포, 긴장감, 기괴함의 효과를 낸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우울하지만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것과 그것이 희망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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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2-28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쪽 수를 찾아보니 536쪽의 두툼한 책이네요. 그 두께감을 느낄 수 없게 찍은 사진이라 무효~~ㅠ 책의 두께로 꿈뻑 죽게해주세요~

그레이스 2026-02-28 22:02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런데 사탄탱고 나 헤르쉬트랑 비교해보아도 그리 둑껍게 느껴지지 않아오
어쨌든 주문이 있으니 올려보겠습니다.

차트랑 2026-02-28 20:08   좋아요 1 | URL
저의 무리한 청을 들어주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전에 읽으시고 올려주신 책들의 두께에 기가 눌려
꿈뻑 죽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닙지요~.

그렇게 엄메 기죽어~ 하고나면 상쾌한 기분이 든답니다.

(컴마를 남발하여 길게 쓰면, 전체 문장의 주술어를 교란시키는 효과가 있음은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오류는 수정했습니다~

그레이스 2026-02-28 20: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yamoo 2026-03-01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포슽잇! 정말 가열차게 릵으셨나봅니다. 저두 2권 갖고 있는데...아마도 읽지 못할듯해요. 수소문해 보니 가독성이 떨어진다, 재미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라..^^;;

그레이스 2026-03-01 10:46   좋아요 0 | URL
조금 힘들게 읽긴 했지만 읽고 나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상받을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26-03-03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러스너호르커이 작가의 책들은
사두기만 하고 아예 읽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네요 ㅠㅠ

그래도 오늘 <죔레는 거기에> 새로
나왔다고 해서 그거 사러 갈려구요...
그랬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2026-03-03 10:41   좋아요 1 | URL
죔레... 고민중이예요
아직 헤르쉬트.. 를 못읽어서...;;
 


시대가 다르고 플롯이 다른 책들을 읽고 비슷한 감상과 결론을 내릴 때 나는 혹시 매너리즘에 빠졌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선택하는 책들이 다 비슷한 주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무슨 책을 읽어도 같은 주제로만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일한 주제에 갇혀있는 것은 실천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아님 그 주제는 인간의 오래된 질문일까? 오래 전이든 현대이든 많은 작품에서 나는 같은 질문 앞에 멈추고 만다. 독자인 나는 모든 시대의 작가들과 함께 같은 질문 앞에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타임루프 안에 갇힌 듯하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와 카프카의 의 주인공들은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백치의 미시킨 공작은 불우하게 태어났다. 좋은 후원자를 만나 간질 발작과 심리 치료를 위해 스위스에 머물다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을 백치라고 소개한다. 스스로를 백치라 말하는 미시킨 공작의 이 정체성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그것이 경험을 통해 외부로부터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귀족들은 미시킨을 향해 정중한 태도를 보이나 그 예의를 갖춘 말에는 조롱을 가득 담고 있다. 미시킨이 자신의 간질 발작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말하는 내용은 독자에게는 연민을 자아낸다. 그러나 소설 속 청자들은 오히려 비웃음으로 대한다. 아마도 이런 반응은 도스토옙스키가 경험한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이 질병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독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미시낀은 무언가를 지나치게 민첩하고 섬세하게 이해하고, 또 그것을 기막히게 잘 전달할 줄 아(백치18. 141p)”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한다. 사람들의 갈등과 욕망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선의를 발견하고 정직하게 접근한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의 곤란을 해결해주려고 한다. 그의 순수함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당혹감을 일으키고 반감마저 갖게 하는 듯 보인다. 그들은 욕망과 세속적 기준으로 그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치정극 같은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러시아의 귀족계급의 몰락과 철도와 같은 문명의 발달,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한 사회에 들어온 인물 미시킨이 환대받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배제되고 추방당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욕망이 목격되고 위선이 드러난다. 미시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탐욕이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백치를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집필했다. 그 집필 기간 동안 첫딸이 태어났고 4개월 만에 죽었다. 돈에 쫓기던 시기여서 잠시 중단했던 작업도 다시 재개해야만 했다. 그는 스위스를 떠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작품을 완성한다. 아이를 잃은 도시는 그에게 얼마나 잔인할까? 더구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글을 계속 써야만 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처럼 종일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글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그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적대감을 느꼈으리라.

 

카프카의 주인공 K는 측량사로서 고용되어 성()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고 간 일자리는 없고 성주나 성의 일을 담당하는 관료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는 그 성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한다.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성의 관청은 규칙과 절차로 운영되지만, 그 체계는 모호하고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K는 관청의 관리인(클람 등)과 접촉하려 하지만, 방식은 간접적이고 불확실하다. 그와의 사이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관리들은 그와 관청과의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한다. 그를 소외시키고 있는 이 관료사회의 부조리는 깊고 소외를 더욱 강화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그 성의 주민들도 그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K는 그 사회에 환대받지 못하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밀려난다.

 

카프카에게 은 통과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진, 절망적인 장애를 의미한다. 그 앞에서 존재는 기다린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이다. 에 나타난 이 소외의 부조리는 견고한 관료주의라는 문턱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작가 자신이 마주해야 했던, 이 세계의 닫힌 문이다.

 

K가 이 성에서 욕망하고 시도한 것은 측량사로서 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일은 학교에서 청소와 보조로서의 역할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는 것이 실존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됨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요구와 개인의 욕망이 부딪히는 지점 중 하나다. 미완성인 이 소설에서 K의 기다림이 끝났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부정적 전망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의 실존을 부정하는 공동체의 부조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세계(국가, 사회)로부터 어떤 소외의 경험을 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타자들이 기다림과 같은 상황에 놓인 대상은 무엇이고, 무시된 욕망은 무엇일까?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이런 소외를 경험하는 우리 사회 타자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계급과 배제된 존재의 독백이다. 독백을 듣는 독자로서 내가 깊이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은 나 역시 같은 계급이고 마음속으로 같은 독백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대화와 생각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욕망과 그 욕망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자본주의가 만드는 계급과 권력(홈파티」 「숲속 작은 집), 부동산 현상과 계급 간 격차의 심화(좋은 이웃, 빗방울처럼), 그로인한 실존의 문제와 존재의 고독(이물감, 레몬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에 관해 들여다보게 한다.

 

, 아파트, 부동산으로 이제 우리는 여러 계급의 그들을 만들어 냈다. 욕망하고 기다리고 배제됨은 그들 때문이라는 원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의 소통할 수 없는 언어를 갖고 있다. 자본 정신에 의해 의미가 만들어지고 특정한 계급끼리만 유통되는 언어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폐지상자에 넣은 남편과 이 책을 집어올려 들춰보던 화자의 마음이 공명하며 나에게 전해져 온다. 그 감정의 실체는 치솟는 아파트 값에 의한 추방에 대한 것이 아닌 그 동안 붙들고 있던 신념을 잃어버린 상실감이다.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라고 생각했던 신념!

 

나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가? 아님 내가 이상한가?

나는 자발적 타자인가, 소외당한 타자인가?

 

조금 우울했지만, 사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 신념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같은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찾는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기도한다. 세상이 변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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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2-10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이라면 역시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죠. 몇년 전에 카형제들 읽고 한참 되었는데, 책소개 동영상에서 백치에 대한 소개가 있더라구요. 그래, 다음은 백치야! 했는데 그레이스님 서재에서 <백치>를 만나네요. 저의 다음 픽은 백치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레이스 2026-02-10 14:00   좋아요 1 | URL
우리에게 알려진 소설들 아닌 작품들 보면 훨씬 심리적이고 현대적느낌이 있어요.
더 좋은듯 해요~!
감사합니다 ~

차트랑 2026-02-23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봐도, 읽으시는 책의 두께로다가 늘 저를 압도하시네요. 올려주신 책의 두께를 보고는 껌뻑 죽습니다 ㅠ 더불어 고무적인지라 두께 좋은 책사진 환영합니다~!

그레이스 2026-02-23 09: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압도정도는 아니예요^^
함께 읽다보면 도움이 되요.

레삭매냐 2026-03-03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 주에 도끼샘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랑 데뷔작이라는 <가난한 사람들> 조금씩 읽기
시작했답니다.

역시 도끼샘이라는.

그레이스 2026-03-03 10:4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역시 ! 라는!
 

시니어들 모임에서 독서토론을 진행해본 적이 없어 조금 걱정이 되었다. 분명 난이도가 저마다 각각일 테고 기준을 어디에 두고 준비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복지관 담당자는 현장에서 함께 읽도록 한 권을 여러 번에 나눠서 진행하도록 요청했다. 큰 글자 책을 무료로 나눠주고 함께 읽기에 적당한 문학을 골라달라고 했다. 분량과 큰 글씨 책이 상위 기준이 되어 버렸다.

노인과 바다로 정하고 나는 나 나름대로 헤밍웨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분량을 정해서 1시간 반 동안, 읽고 한 두가지 정도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기에 다른 이야기를 하긴 힘들겠지만, 강의든 독서 모임이든 텍스트가 정해진 후 작가와 다른 작품들과 배경이 될 만한 책들을 읽고 소개하는 게 오랜 습관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연결 독서를 했다. 이 기회에 헤밍웨이를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1, 2차 세계대전, 그리스-터키 전쟁,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에 참전했었다. 20여개의 나라를 옮겨 다녔다. 그의 젊은 시절은 파리에서 지냈다. 그는 파리에서 사랑을 하고 가정도 갖고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었다. 그가 인정한 작가로는 제임스 조이스나 에즈라 파운드였다. 조이스는 그가 비난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하나였다고 한다. 또한 에즈라 파운드와는 말년까지 애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거트루드 스타인이나 피츠제럴드와의 교제는 존경의 대상보다는 친구나 경쟁자로서였던 듯하다. 스콧과 어니스트의 각별했던 우정이 갈등과 결별로 가게 된 이유들에 대해서 작가들은 여러 가지를 댄다. 그들의 부모, 성품, 글쓰기,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경쟁심 등등. 이유는 많다. 난 그 이유와 상관없이 인간은 얼마나 상처입기 쉬운 자들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헤밍웨이에게 파리의 생활은 가난했다. 그리고 관계의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글을 써서 생활은 조금씩 나아질 희망이 있었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고, 많은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작가로서 감수성을 자극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가정환경은 불우했다. 아버지는 권총자살을 했고, 어니스트는 그 이유가 어머니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우울증을 앓았고, 요양생활도 했고 죽기 전에는 그 증상이 심했었다고 한다. 그가 자살한 이유를 미국 정보국의 심한 압박에서도 찾지만 부모로부터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마음의 질병으로 보는 자들이 많다. 헤밍웨이는 한 장소에 붙박인 삶을 살지 않았다. 한 여성에게 머물지도 않았다. 그는 네 명의 여성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애인들도 적지 않았다. 여성주의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그의 편력은 그의 가정사와 모친에 대한 증오심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쿠바와 카리브해를 사랑했던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1952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고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병이 깊어진 그는 1961년에 생을 마감한다. 죽기 3년 전 쓴 깨끗하고 밝은 곳(A clean, well-lighted place)은 짙은 허무주의를 느끼게 한다. 오래 전 우연히 이 단편의 영문판 서두 몇 줄을 읽다가 멈출 수 없어 끝까지 읽어버렸었다. 아름답고 버릴 것 없는 간결한 문장들이 그리는 인간의 깊은 고독과 실존의 상실에 전율하게 된다. “Many must have it(insimnia)!”로 끝나는 문장은 가슴이 울렁일 정도로 존재의 깊은 고독을 전한다. 이런 nihilism무기여 잘 있어라(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에도 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가 노벨상을 받고 얼마 안되어 심한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에서 나는 더욱 그의 허무에 공감하게 되었다. 알콜 중독이었던 그가 요양을 하고 금주를 시도했던 것을 보면 삶에의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허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빙산 이론

헤밍웨이는 자신의 창작 방법을 빙산 이론Iceberg Theory이라고 불렀다. 말하기보다는 생략함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빙산이론에 대하여

 

글을 쓰는 데에도 역시 여러 가지 비결이 있다. 글을 쓰다가 어떤 부분을 생략할 때, 그 순간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생략해서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생략된 부분은 언제나 남아 있는 부분을 더욱 강력하게 해준다.(파리는 언제나 축제292p)”

라고 말했다.

 

노인과 바다 역시 많은 부분이 입말체의 대화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바다에 홀로 있을 때도 혼잣말을 하던지 물고기나 새와 혹은 죽은 물고기의 사체와도 이야기하는 장면들의 대화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헤밍웨이는 작품 속 상징은 없으며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야기 속의 모든 것-소년, 바다, 청새치, 상어-을 진짜처럼 만들려고 애썼고, 그 각각이 여러 가지를 의미하기를 바랐으며, 이는 애초에 상징으로 디자인 된 것도, 계획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헤밍웨이의 말) 또한 그는 한 편지에서

 

이건 제 평생을 바쳐 쓴 글입니다.<노인과 바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짧은 글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면이 담겨져 있고, 동시에 한 인간의 정신세계도 담았지요. 지금으로서는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입니다.(찰스 스크리브너에게. 1940. 서간 선집p.503-504)”

라고 했다. 그러므로 중요한 의미를 읽어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인 것이다. 드러난 빙산은 가라앉아 있는 부분을 읽어내도록 이끈다.

 

노인과 바다

노인은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다. 그의 배의 돛은- 여기 저기 밀가루 부대로 기워져 있는- 마치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보였다는 표현 뒤에 깡마르고 주름이 깊게 잡혀 있는 검은 반점으로 덮여있는 얼굴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돛은 노인의 얼굴이다. 오랫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의 배의 돛은 패배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여전히 만선으로 돌아오고 있었다면 여기저기 기워진 돛이 눈에 띄지도 않았거나 오히려 영광의 상처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실패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처음 내 집 마련하고 살면서 자녀를 키우고, 출가시키고 홀로 남은 집, 여기저기 낡고 고장 나고 색이 바랜 집일 수도 있겠다. 남들은 더 크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떠났는데, 퇴직하고 노년이 되어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느낄 법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번 밑창을 갈고 꿰맨 자국이 있는 구두의 이미지도 떠올랐다.

 

회원 중 한 분이 아기들도 자신의 얼굴을 보고 좋아하지 않고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고, “주름지고 늙은 얼굴을 누가 좋아하겠어, 어쩌다 거울을 보면 나도 내가 귀신같은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고 어디 주름이 있다고 그러시냐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위로랍시고 입에 발린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사진작가들이 주름이 깊게 패고 검버섯이 여기저기 생긴 노인들의 얼굴을 찍어 전시한 것들을 보면, 예술가들은 그 얼굴을 뒤덮은 주름 하나하나도 예술로 만드는 것을 보게 되며, 이유는 그것들 하나하나에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일 거라고,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시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쎄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나도 그 나이가 되어 봐야 그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될지 알 것 같다.

 

소설 속 산티아고 노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제도 바다에 나갔고 그제도 나갔고 84일 동안 바다에 나갔으니 다음날도 배를 타고 나간다. 그는 아프리카 바닷가에 거닐고 사자가 고양이처럼 뒹굴며 노는 꿈을 꾸고, 먼 바다에서 다랑어를 잡던 시절과 소년과 고기를 잡던 기억을 떠올린다.

 

바다에 나가 혼잣말을 하는 노인의 모습을 통해 그가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혼잣말 자주 하시냐는 질문에 독거를 하던 가족들이 있던 혼잣말을 조금씩은 한다는 대답을 통해 그분들의 외로움에 대해, 기억을 더듬는 노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일할 때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한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혼잣말을 했다는, 갑작스러운 솔직한 이야기에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대부분 홀로 사시는 분들이어서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있었기에, 마음 한가운데가 습격을 받은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찡하게 아파왔다. 망망대해에 홀로 배에 있는 산티아고의 외로움이 그분들 것과 겹쳐졌다.

 

큰 물고기를 잡고 그것에 끌려가면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상상한다. 무언가를 어렵게 성취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과 혹시 더 큰 어려움과 실패가 이어질지 모르는 인생에 대한 불안이 노인에겐 없다. “좋은 일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 법이야.”라고 말할 뿐이다. 그 물고기를 배 옆에 매어 놓아도 여전히 노인의 것이 아니다. 노인은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라고 말한다. 노화가 진행되고 육체는 쇠약해지고 파괴되어도 패하지는 않는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이런 작가에게서 절망이나 죽음을 읽을 수 있을까?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심지어 그것은 죄다.”라고 했던 산티아고는 뼈만 남은 거대한 사체를 싣고 돌아와 소진된 채 누워있다. 그는 소년에게 자신이 완전히 졌다고 말한다. 노인의 항해는 실패인가? 대답은 각자의 몫이다.

 

노인과 바다를 텍스트로 정했다고 하자 남편은 시니어 모임인데 제목 때문에 저항감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 역시 제목 때문에 잠깐 망설였었다. 분량과 큰 글씨 책이라는 선정기준 때문에 선택하긴 했지만 여기서 던져지는 메시지와 토론 주제에 대한 확신은 있었다. 몇 개의문장이 그들의 가슴을 건드리고 적시고 생각에 빠지게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 분들의 노년에 기억될 한 문장, 한 장면이라도 남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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