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은 발자크는 정확한 지형적 등고선을 그려 세계의 신화적 정체성을 확고히 세웠다그리고 파리는 그의 신화가 자라난 곳이라고 말한다. 이런 문장들 때문에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읽고 싶은 것이다. 파리는 발자크의 인간극에 등장하는 은행가, 의사, 고리대금업자, 매춘부, 변호사, 군인, 언론인, 작가, 예술가 등 잡다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발자크는 이들을 등장시켜 파리의 평면을 구석구석 그리고, 그들의 풍속을 전시한다. 발자크의 작품은 19세기 파리라는 도시를 조망하고, 그 거리에 위치한 건물의 내실을 들여다보는 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도시 공간을 점유하고, 이주하고, 계층을 형성해가는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전달한다. 그의 작품 덕에 흩어져있는 여러 자료들이 통합되고 재구성된 도시의 이미지가 전달된다. 그렇게 완성된 이미지, 19세기 파리 증강현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파리는 발자크의 작품 거의 모든 곳에서 등장한다. 때로는 시골 지형에 그늘을 던지는 그림자다. 한 도시의 역사적 지형의 온갖 양상을 노출한다.”

그는 도시에서 신화를 제거하고 그 도시에 충만해 있는 근대성의 신화를 제거함으로써 그 도시의 현 상황에 대해서뿐 아니라 그것의 장래 모습까지를 조망하는 새로운 시야를 열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으로, 그는 자신의 진술이 기대고 있는 심리적 버팀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노출시키며 도시의 문서고에 소장된 생명 없는 자료들이 길을 잃곤 하는 욕망이 혼탁한 연극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근대적 자아가 구축되는 방식과 도시가 이루는 변증법이 밝혀진다.(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데이비드 하비, 45-50p)“

 

13인당 이야기에 실려 있는 3편의 소설 페라귀스, 랑제 공작 부인, 황금 눈의 여인을 읽다보면 사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각의 소설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들은 혁명 이후 결성된 비밀결사의 멤버이거나 연루된 사람들이다. ‘페라귀스는 혁명 후 결성된 여러 결사체 중 하나인 데보랑의 수장을 일컫는 말이다. ‘데보랑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예루살렘 성전의 석공들에게까지 이른다. 이런 기원은 이 집단에 비밀스러움과 신화성을 부여한다. 13인당은 흩어져버린 데보랑13인의 조직원들이다. 3편의 소설들은 이들이나 사건들보다는 파리의 지형과 힘의 이동, 내밀한 공간의 풍경들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작가 스스로 이런 내용에 더 힘을 쏟고 있다는 생각이다.

 

발자크는 페라귀스에서 파리는 살아있는 괴물”, “가장 매력적인 괴물이라고 말한다.

여기는 아름다운 여인인가 하면, 저기는 늙고 가난한 남자다. 여기는 마치 새로운 왕조의 화폐처럼 아주 새것인가 하면, 이쪽 구석은 유행을 따르는 여인처럼 우아하다. 완벽한 괴물이지 않는가! 학문과 천재성으로 가득한 다락방이 머리에 해당된다면, 낮은 층들은 포만감으로 행복한 위장에 해당되며, 상점들은 진정 발에 해당될 것이다. 분주히 걸어다니는 사람들, 바쁜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온다. 이 괴물은 항상 얼마나 활기찬 삶을 살고 있는가! 무도회의 마지막 마차가 파리라는 괴물의 심장 한가운데에서 멈추는 새벽 시간이 되기 무섭게 괴물의 팔에 해당되는, 외곽에 퍼져 있는 구역들은 벌써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집집마다 하품하듯 살짝 틈이 보이던 문들은 이제 활짝 열린다. 그 문들은 마치 수만 명의 남자 혹은 여자에게 보이지 않게 조종당하는 거대한 바닷가재의 점막과도 같다.(25p)”

 

그러나 오, 파리여! 너의 음침한 풍경, 어둠 사이로 살짝 비치는 빛, 깊고도 고요한 너의 막다른 골목들을 찬미해보지 않은 자, 밤 열두시와 새벽 두시 사이에 너의 웅성거림을 들어보지 않은 자, 그들은 너의 진정한 시()에 대해, 너의 기이할 정도로 몹시 상반된 두 얼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극소수의 몇몇 애호가들은 파리를 음미하면서 절대로 아무 생각 없이 걷지 않으며, 파리의 생김새를 너무나 잘 알기에 무사마귀 하나도 부스럼 하나도 붉은 반점 하나도 다 가려낸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 파리는 늘 괴물 같으면서도 경이로운 그 무엇이요, 활동과 기계와 사유의 놀라운 집합체다. 또한 수십만 개의 소설이 탄생하는 도시오, 지성이 모여드는 세계의 머리다. 그러나 파리 애호가들에게 파리는 슬프거나 쾌활하고, 추하거나 아름다우며, 생명이 넘치거나 죽은 것과도 같다. 그들에게 파리는 하나의 창조물이다.(27p)”

 

페라귀스는 오귀스트 드 몰랭쿠르가 생 제르맹 사교계의 여왕 쥘 부인(클레망스)이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거리, 솔리 가에서 목격하고 미심쩍어 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발자크는 파리의 길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다.

파렴치한 죄를 저지른 수치스러운 인간이 존재하듯, 파리에는 불명예스러운 길이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고상한 길도 있고, 정직한 길도 있으며, 아직 그 길이 도덕적으로 어떤지에 대한 평판이 형성하지 않은 새로운 길도 있다. 또한 암살자의 길도, 상속받은 늙은 과부보다 더 늙어 보이는 길도, 존경받을 만한 길도 있으며, 늘 깨끗한 길이 있는가 하면 늘 더러운 길도 있다. 노동자의 길도, 근로자의 길도, 장사꾼의 길도 있다. 다시 말해 파리의 길은 인간의 속성을 지닌다. 또한 길이 생긴 모양에 따라 우리는 그 길에 대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고정된 생각을 품게 된다(23-25p)”

파리의 길은 인간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 뒷골목은 도시의 상징과 기호, 역사를 담고 있다. 더 나아가 현대의 도시에서도 내가 어느 길을 걷고 있는가혹은 어느 거리에 살고 있는가가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클레망스의 시신을 찾아 화장해서 재를 간직하려는 쥘 공작, 그를 위해 친구 자케가 행정 처리를 한다. 그가 수행하는 서류작성과 절차의 지난한 과정은 파리에서의 죽음은 그 어떤 수도에서의 죽음과 다르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검은 시트 위로 흐른 눈물 자국의 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도시, 법적으로 일곱 등급의 장례식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도시, 돈의 액수에 따라 망자를 덮는 흙을 파는 도시, 고통을 이중으로 이용하는 도시, 교회의 사제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기 위해서도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도시, <진노의 날>을 부를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성가대원이 참여할 경우 교회 재산 관리자가 개입해 돈을 더 요구하는 도시, 그런 도시에서는 그 무엇도, 설사 그게 고통과 관련된 것일지라도 관료적 인습에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185p)”

 

관 속에서도 관료주의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반면 그물이 쳐진 다리의 하류 쪽 강에 몸을 던지는 이다의 죽음은 클레망스의 죽음과 대조된다.

 

 

랑제 공작 부인은 귀족계급의 특징을 완벽히 지니고 얼마 동안 그 계급의 전형으로 간주되던여인이다. 그녀를 사랑했던 몽리보 후작은 혁명을 지지하는 비밀결사의 일원이며 유능한 군인이다. 몽리보를 유혹하기 위한 그녀의 아양과 교태는 사교계에서 생존하기 위한 태도다. 몽리보는 그녀에게 빠졌었으나 배신감을 느끼고 그녀를 무시한다. 그녀의 이 태도는 구태에 빠진,여전히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왕정복고시대 복귀한 망명 귀족들을 비판하기 위한 상징이다.

 

이들은 생 제르맹 사교계에서 만났다. “사십여 년 전부터, 파리에서는 그들의 태도나 말투 등 한마디로 생 제르맹의 관습이 일찍이 궁정이 하던 역할을 하게 되었다.(240p)” 파리의 상류계급에게는 그들의 중심지가 있었고, 그 장소는 이동해 왔다. “14세기에는 생 폴 저택이, 15세기에는 루브르궁이, 16세기에는 궁정과 랑부예 부인의 저택과 루아얄 광장이, 그리고 17세기와 18세기에는 베르사유 궁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었다.” 루아얄 광장 주변에 거주하던 귀족들은 주변에 상점들이 들어서고 구역의 평판이 나빠지자 강 건너 생 제르맹 구역으로 이동했다. 언제나 도시의 상류 계급은 여유 있는 공간을 점유하고 배타적인 세계를 만들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이런 욕구들의 흐름이 파리를 모습을 형성하고 바꿔간다. 도시 전체라는 공간적 관점과 긴 시간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살아있는 생물(괴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왕정복고 이후 귀족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몰락의 원인을 서술한다. 왕정복고 이후 시대의 변화에 맞춰 그들이 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그 의무는 저버리고 벼락출세자들처럼 자신의 탐욕만을 쫓았다. 벼락출세자들이라면 부르주아이고, 탐욕의 대상은 돈이다. 돈은 힘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일 뿐인데, 사실 그들이 갖고 있는 내재적 가치를 버리고 똑같이 돈을 쫓고, 버려야할 전통과 구습을 쫓았기에 힘을 잃었다고 발자크는 말한다. 그들의 폐쇄성 또한 영국의 상원과 비교하면서 비판받는다. 랑제공작부인의 죽음은 생 제르맹의 귀족들의 몰락을 상징한다.

 

황금 눈의 여인파리의 인상학에서 발자크는 파리 사람들의 얼굴에서 지옥의 기운을 읽는다. 그리고 신곡의 지옥 이미지를 불러온다.(436p) 그리고 파리에 사는 사람들을 네 계급노동자(프롤레타리아), 하류 중산층, 상류 중산계층, 예술가으로 나눈다.

노동자들에게 휴식처럼 보이는 쾌락은 몸을 지치게 만드는 방탕이다. ……모든 피조물에는 다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존재할 터, 아마 그들도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릴 적부터 힘과 망치와 절단기와 방적공장의 지배하에 들어가, 일찍이 유황을 뒤집어 쓴 흉한 처지가 된다. 못생기고 힘센 그 집단을 상징하리라. 기계에 대한 이해력은 숭고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릴 줄도 안다.(440p)”

이 계급에 대한 묘사들은 마르크스가 주목하고 인용했다는 이미지들이다. 이 계급을 나누는 데 작동하는 시스템은 당연히 자본이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와 별로 차이가 없다. 발자크의 통찰과 예지가 빛나는 지점이다.

이렇듯 파리에서 하층민들은 살기 위해 과도하게 움직이고, 두 부류의 부르주아지들은 몸을 망가뜨려가면서 취한 이득을 타락을 위해 낭비하고, 예술가들의 사유는 너무도 냉혹하며, 상류층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도한 쾌락을 추구한다. 그러니 파리 사람들 얼굴이 어찌 흉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러나 파리에서는 하층민이건 중산층이건 상류층이건 모두가 필요라고 하는 냉혹한 여신의 채찍을 맞으면서 계속해서 달리고, 뛰어다닌다. 펄쩍펄쩍 뛰고, 깡충깡충 뛴다.(458p)”

가히 신곡지옥에서 채찍을 피해 이리저리 달리고 있는 무리의 이미지다.

 

자신의 신분과 맞지 않는 곳에서 목격된 쥘 부인의 불행은 파리의 공간이 갖고 있는 계급을 보여준다. 몽리보가 랑제 공작 부인의 내실에 들어가는 것은 한 사람의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몽리보가 랑제 공작 부인을 자신의 방으로 납치하는 것과 앙리가 파키타의 비밀 저택으로 가는 것은 파리의 공간에 존재하는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힘을 가지려는 시도다. 묘지는 그 힘에서 벗어난 장소임에도 역시 권력이 그들의 사후에도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13인당 이야기인물들의 삶은 파리의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공간의 권력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망 또한 마찬가지다. 수많은 도시계획의 성공과 실패는 인간이 무엇을 욕망하는가를 파악하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게 하는 거리를 만드는 것은 욕망을 읽는 인문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저자가 거대 도시를 읽는 방법에 있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의 진단과 해법에는 반대한다.

 

파리를 살아있는 괴물이라 말했던 발자크의 통찰, 그리고 그 도시를 괴물로 만들어가는 인간의 욕망, 그 욕망이 만들어낸 채찍에 쫓겨 이리저리 달리는 지옥의 이미지!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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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4-12-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에는 꼭 발자크의 소설들을 도전해보겠습니다! 한 권은 구매했는데 아직 시도도 못했어요. 소개해주신 데이비드 하비의 책이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12-27 13:24   좋아요 1 | URL
^^
데이비드 하비 책 좋아요. 추천합니다.
독서 응원합니다.
 
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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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엔 설마 하던 일이 언제든지 일어난다.


아침에 출근한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감시 당하고, 생존 위협을 받고, 통행을 금지 당하고, 내전(內戰) 의 한복판에서 두 아들을 잃고, 필사의 탈출을 한다. 주인공 아일리시 스택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녀가 설마 하던 일이다. 설마 했기에 그 땅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이라면 난 내가 새처럼 자유롭다고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이런 기괴한 일에 휘말렸는데 어떻게 자유의지가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한 가지 일이 다른 일로 이어지고, 결국 그 빌어먹을 사태가 스스로의 동력을 찾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352p)”

 

아일랜드를 탈출하기 위해 바닷가 공장 건물에 머물 때 만난 모나가 한 말이다. 그녀 역시 아일리시와 다를 바 없는 고통을 겪고 떠나는 중이다. 일찌감치 떠나라고 권하는 말들을 무시한 것은 이렇게 생존의 탈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히 떠나라는 예언자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복 경찰관이 집을 다녀갔을 때 아일리시는 무언가가 집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여기서 나는 숨을 멈추고 읽어 내려갔다. 무언가는 두 남자와 함께 서 있다가 현관으로 들어왔고, 살금살금 집안을 걸어 다닌다. 집 밖 어둠의 일부가 들어왔다. 두려움 혹은 불행일까? 아일리시가 겪는 현실과 마음은 서로 대비를 이루며 묘사된다. 사실적인 서술과 환상적 표현으로. 시를 읽는 것 같다.

 

교원 노조원인 남편 래리 스택이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는 그에게 해야 돼, 이제 당신이나 내 문제가 아니야, …… 교사가 규탄하지 않으면 우리의 헌법적 권리를 위해서 들고 일어날 사람이 달리 어디 있겠어?(41p)”라고 말할 때에도 그가 그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집을 나서는 래리에게 가서 해치워.”라고 말했던 그 시간에서 그녀는 떠나오지 못한다.

 

문 앞에서 주저하던 래리, 녹색 부츠에 발을 집어넣은 다음 비옷을 입으려 애쓰던 래리를 생각한다.(53p)”

 

아일리시는 네 아이를 돌보며, GNSB에 체포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녀는 보안 위험인물로 간주되고, 직장을 잃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며,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정부군과 혁명군의 내전이 발발하고, 그녀의 삶은 급변한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그러나 그것은 상상으로 보여준 실재이다. 그가 보여준 시적 표현들에 공감되어서 더욱 슬프다. 나의 공감은 이 세상엔 이런 비극이 실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작가는 아일랜드에 독재 정부가 집권하고, 감시와 통제와 폭력으로 통치하는 전제국가에서 저항, 체포, 죽음, 탈출의 연속적 사건을 겪어내는 아일리시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의 허구지만, 시리아 내전이나, 우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실재성을 전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을 때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의 느낌은 다르다. 


불면의 밤을 지나고, 시간이 흐르며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설마만일사이에서 몸서리를 친다.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국지전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확대되었다면, 내란이 성공했다면…… 하는 가정들이 일으킨 각성들 때문에 나는 여전히 잠을 설친다. 지금은 시위대에 참여하기 위해 시간을 내지만, 만일 아일리시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불의와 압제에 저항할 용기도 내 남편과 아이들을 독려할 수 있는 순수함도 나에겐 없음을 발견하고 수치심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아일리시가 그렇듯 헌신과 사랑의 세상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공포의 세상에 살도록 저주받는 것(354p)”을 본다. 차라리 내 아이들 나이 때 가졌던 무모함이라도 되갖는 게 마음 편할까?

 

실제일까 하는 의심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몇 분의 오차로, 몇 사람의 소극적 행동으로, 다수의 적극적 저항으로, 다행히 피해간 사악함들, 그것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예언들이 소리치고 있다. 꿈인가 싶은 시간들은 지나갔다. 추스르고 직시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 일어 이 글을 쓴다.

 

세상은 꿈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달아날 방법이 없는 꿈일 뿐이고 그러한 삶의 대가는 고통이다,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355p)”

 

더 이상 이 글을 이어갈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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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4-12-13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볼게요. 담담하게 억누르는 감정이 저에게도 전해집니다ㅠㅠ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2-14 08:37   좋아요 1 | URL
ㅠㅠ
감사합니다
이제 좀 감정이 정리되고 행동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드러나는 진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전야제님 혼란한 시기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청명상하도 - 송나라의 하루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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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돋보기로 들여다 보듯 세밀한 부분을 확대해서 해설한다. 그는 그 컷들에서 북송의 기술, 경제, 문화, 생활상 등과 함께 그날의 분위기, 사람들의 기분까지도 읽어내고 있다. 청명절 하루의 풍경은 이 긴 화폭에 담을 수밖에 없는 많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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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나 조형의 아름다움은 늘 사랑보다는 외로움이고, 젊음보다는 호젓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공감 앞에서 비로소 빛나며, 뛰어난 안목들은 서로 그 공감하는 반려를 아쉬워한다. 반려 없이 보는 아름다움은 때로는 아픔이며, 때로는 외로움과 호젓함이며, 때로는 그 의미를 잃는다. 사랑을 잃은 사람의 눈에 세상이 빛을 잃어 보이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공감하는 사람끼리 그처럼 아름답게 바라보던 자연과 조형 작품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허망해 보인다는 것은 아름다움이 그처럼 외로움을 잘 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최순우 18p)”

 

선생의 안목이나 사랑, 그 깊이에도 미치지 못하나 그 뜻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에 막내와 동행한다. 취향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감상을 바로 알아듣고, 때로 다른 의견으로 나에게 자극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와 함께 가면 말이 많아진다.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본 월 텍스트(wall text)”가 마음을 울려서 셔터를 누르고 오랫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청자상감운학문매병(233p)에 있는 문장이다. 책에서는 무심히 지나간 문장이었으나, 큐레이터의 선택을 받고 벽에 새겨지고 조명을 받으니 새로운 의미로 살아온다. 가끔 경험하는 일이다. 최순우 선생의 우리 유산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이 전시된 자기들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에는 간송미술관 소장 청자, 분청사기와 신윤복, 김홍도, 김득신의 회화에 대한 소개와 감상이 많다. 또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에서는 간송 전형필과의 각별함을 보여주는 글이 담겨있기도 하다.

 

어제도 퇴근길에 어수선한 세모의 네거리에 서서 지금 내게 생각키는 것은 누구의 얼굴이냐고 자문자답을 해 보았고 그 자답이 옛 애인의 얼굴도, 가족을 얼굴도 아닌 한 선배의 얼굴이었다는 데 스스로 놀랐다.……내가 서울을 떠날 때 그분이 전송해 주었는데, 우리는 차 속에 나란히 앉아 서로 차고 있던 팔뚝시계를 바꾸어 차면서 오고 가는 마음속의 대화가 있었고 그 묵묵한 대화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간송 전형필과 벽오동 심은 뜻에서)”

 

회화 전시실은 그야말로 보고 싶었던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회화 전시 작품이 바뀔 때마다 몇 개의 작품을 보고 오는데 그쳐야 했던 아쉬움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시간이었다.

 

이번 개관기념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신윤복의 미인도와 화첩이고 그밖에도 김홍도의 풍속화첩, 정선의 산수화, 이정의 금니(金泥)로 그린 <삼청첩>, 김정희의 글씨도 너무 반가운 작품이었다. 1관에서 5관 그리고 간송의 방을 관람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만큼 한 작품 한 작품이 오래 머물고 보게 되는 것들이었다.

 

그 중 나를 흥분하게 했던 작품은 심사정의 <촉잔도권>이다. 횡권! 대략 8미터에 달하는 가로로 그려진 두루마리 그림이다. 오세창은 평문(評文)에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가 있지만 이 <촉잔도권>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썼다.

심사정 필 <촉작도권>


오세창이 꼽은 3대 횡권(橫卷)<몽유도원도>, <강산무진도> <촉잔도권>이다. 아이랑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 회화실에서 <강산무진도>를 전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다녀왔다. 그 몇달 전에는 실감 영상실에서 미디어 작품도 감상했었다. 막내는 미디어 작품이 좋았다고 하지만, 나는 그 실물과 대작을 그린 화가에게 감동했다. 그리고 여기서 <촉잔도권>을 만났다. 이 그림 앞에서 나는 말이 많아졌다


촉잔도가 뭔지 알아?” 아이는 사천지방에 있는 거잖아.” “알고 있네?” “잔도는 산의 절벽에 놓인 길.” “유방이 관중을 떠나 서촉 지방으로 갈 때 항우를 안심시키려고 한신이 잔도를 불태웠대, 그리고 수리하는 척하면서 우회해서 진창으로 쳐들어갔어. 거기서 암도진창(暗渡陳倉)’이라는 말이 나왔어…… 너무 나갔다. 흐흐.

 

심사정은 그 지역의 산세를 보고 쓴 이백의 촉도난을 주제로 촉으로 가는 험난한 길을 표현했다. <몽유도원도><강산무진>도 보다 여백과 운무를 이용한 원근법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두루마리 그림은 8미터가 넘는 작품들이다. 심사정의 경우 자신의 삶을 빗대어 담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험난한 산봉우리들을 타고 돌며 아슬아슬하고 먼 길을 걷는 것이 인생이라는 철학적 해석도 가능하다. 감상자마다 다 다른 메시지를 발견할 것이다.

 

이인문 <강산무진도>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에는 360여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 배웅하는 가족들, 장터, 노는 아이들, 노동하는 사람들, 험준한 산 등 여행자의 눈에 비친 풍경들이 담겨 있다. 끝없이 펼쳐진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시간 속에 이어져 온 공동체의 생활 등. 이 그림에서도 감상자의 시선에 포착되는 풍경과 주제는 다양하다.


화가들은  왜 이런 작품들을 그렸을까화가라면 한번쯤 도전하고 남겨볼 만한 작업이라는 의미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도장깨기 하듯 보는 기쁨도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워낙 많이 알려져 있다. 조선 초기 작품이라 화풍 역시 차이가 있다. 아마도 횡권 전체 실물을 감상할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일본 톈리 대학까지 가 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혹시 국내에서 전시하게 되면 볼 마음이 생길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꺼림칙하다. 11미터에 달하는 그림과 찬문을 상·하 권으로 나눠놓았다는데 마음이 상한다.

 

<강산무진도>를 접하고 김훈의 강산무진을 사서 읽었다. 역시 나는 김훈의 소설과는 맞지 않는다. 그의 남한산성, 흑산등은 제목과 관련된 역사는 기록과 고증보다는 소설 속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강산무진 역시 불치병에 걸린 중년 남성이 우연히 들른 박물관에서 이 작품을 본 감상을 한국을 떠나며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풍경과 연결시킨 것이 전부이다. 모두 분주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죽음을 앞둔 자신의 상황의 생경함, 존재의 외로움 등을 전하려는 의도인 듯 보인다. 그렇지만 강산무진이라는 제목은 너무 크고 연관성이 떨어진다. 스토리는 진부하고 맥 빠졌고, 그런 작품에 이런 제목을 갖다 붙인 의도가 의심스러웠다더구나 작가가 전시를 관람했는지 의심되는 지점이 있다.

 

전시실 안 소파에 앉아서 맞은편 벽에 걸린 그림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훑어보았다.(강산무진339p)”

 

8미터가 넘는 두루마리 그림을 벽에 걸었다고? 실제로 박물관 신문을 검색해봤다. 사진에는 작품이 유리관 안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올해 전시에서도 당연히 비스듬히 경사진 판 위에 눕혀져 있다. 2006년 이전 전시에서는 걸어 놓았을까? 아님 소설이니까...?


<청명상하도> 이 작품은 상하이 전시 때 벽에 수직으로 붙여져 있는 사진을 보았다. 이 책은 앞의 몇 장만 감상하다 말았는데, 5미터에 달하는 그림과 양쪽에 붙은 제발문이 붙어있는 중국에서 손에 꼽히는 두루마리 그림을 저자가 자세히 해설해 놓았다. 잊고 있었다.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다.


 

중국에도 횡권 작품이 당연히 많이 있겠지. 올해 우연히 갖게 된 북경고궁박물관 기념품인 수첩과 만년필은 왕희맹의 <천리강산도>를 모티브로 한 굿즈다. 이 작품도 12미터에 달하는 대작이다. 북송시대 청록화법의 변모과정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중국의 회화사를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우연한 즐거움이다.

왕희맹 <천리강산도>


고속철도 출발시간 15분 전에도 커피를 사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나를 말없이 기다려 주는 딸을 보며, 문득 이러면 나중에 같이 다니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안!”이란 말을 던지듯 하고 서둘러 기차에 올라탄다. 막내를 향해 빨리해!”를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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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11-27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저도 다녀오긴 했는데 저는 평일 시간이 안되어서 주말에 갔더니 진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좀 힘들었어요. 저는 심사정의 촉잔도권 봤지만 딱히 마음에 들어오지는 않더라구요. 물론 멋지고 훌륭한 작품인건 당연하지만요.
이번에 저는 도자기 하나가 눈에 진짜 똬악 들어오더라구요. 저도 나중에 그레이스님처럼 멋진 관람기는 못써도 대충이라도 쓰야 할텐데 요즘은 진짜 책볼 시간도 없어서 시간 아껴 책보고 있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4-11-27 15:58   좋아요 0 | URL
ㅎㅎ
평일에도 사람이 적은 건 아니라서...
조금 기다리긴 했어요.
휴일에 안오길 잘했어. 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자기 중에 오리연적이 좋았고 최순우님도 그 연적에 글을 쓰셨는데 넘 좋았어요.
분청사기모란문병도 좋았죠
거기 전시된 작품 다 좋았어요.ㅎㅎ
간송에서 알짜만 남기고 팔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한번 다시 들려보고 싶었어요.

막시무스 2024-11-27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안에 꼭 다녀와야 할것 같아요!ㅎ

그레이스 2024-11-27 17:59   좋아요 1 | URL
미인도 전시는 기간이 얼마 안남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인도 못보더라도 다른 좋은 작품들이 많아요.
기념품점 옆에서 설문조사 하시고 네컷 무료로 찍어보세요.^^

전야제 2024-11-27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촉잔도권에 흠뻑 빠지신 그레이스님의 감상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실제로 가서 감상하는게 최고일테지만, 못 가보는 저에게 그레이스님의 관람기는 정말 소중합니다. 덕분에 저도 간접적으로라도 감상하면서 촉잔도권의 아름다움을 느껴봅니다. ˝험난한 산봉우리들을 타고 돌며 아슬아슬하고 먼 길을 걷는 것이 인생이라는 철학적 해석도 가능하다.˝라는 해석이 너무 멋져요. 해석이 감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다시금 느낍니다. 덤으로 김훈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비평 부분도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촉잔도가 사천지방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 그레이스님의 자녀분 정말 멋진데요! 부모님께서 신나게 말씀하시는 주제에 대해서 아이들도 알고 있을 때,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ㅎㅎ 멋진 글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11-27 19:2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전야제님!
그냥 제 감상이 그렇다는 거죠!^^
가끔 신나서 얘기하다 보면 애들이 웃고 있어요!^^ 미술관에서는 벌써 다음 작품으로 애들 발걸음이 옮겨지고 있는걸 보게되요.
나중엔 아이들한테 배우는 시기가 오겠죠^^

페넬로페 2024-11-27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녀 오셨군요.
미술관에 가면 작품에 대한 감상이 달라 그것도 재미있어요.
다른 작품에 맘이 뺏겨 저는 촉잔도권이 있었나 아리까리 합니다 ㅎㅎ
그래도 저는 김훈의 문장을 좋아합니다^^

그레이스 2024-11-28 08:08   좋아요 1 | URL

어제,,, 벌써 그제네요 화요일에 다녀왔습니다. 비가 와서 좀 그랬는데 오늘처럼 눈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죠.
미술관 카페에서 보는 비오는 바깥 풍경이 운치있어 좋았습니다.
나중에 기회 있을때 다시 가봐야겠어요.
너무 멀긴 하네요.^^
저도 에세이는 좋아합니다.^^
 
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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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저항, 폭력, 내전, 실종, 죽음, 생존, 탈출... 주인공의 세계를 지시하는 단어들이다. 자유의지는 삭제되었다. 비참과 허무로 둘러쌓인 현실에서 그녀의 마음을 그리는 언어는 고통의 시어들이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을 비극에 대비되는 환상적 표현들이 분노와 슬픔을 상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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