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부터 읽었다. 열전만 읽어도 된다는 말도 들었고, 해서 열전을 먼저 펼쳤다. ‘백이 ·숙제 열전은 익숙한 이야기였지만 뭔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이 되는 은·주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또 공자가 춘추에서 했던 말과 의미도 알아야 사마천이 왜 그의 말에 비판적인지도 알게 된다.

 

공자는 말하기를 백이, 숙제는 과거의 원한을 기억하고 있지 않음으로써 남을 원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子曰 不念舊誤 怨是用希 -公冶長, 論語) 그들에게 어진 것이란 구하는 대로 얻어지는 것인데 또한 무엇을 원망하였겠는가?”(求仁得仁 又何怨乎 -述而, 論語)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백이의 심경을 비통한 것으로 보았고, 그들의 일시를 보고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그들은 굶주려서 곧 죽으려고 하였을 때, 노래를 지었는데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비나 꺾자꾸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바꾸었으니

신농(神農), (), ()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버렸으니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 우리는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마침내 이들은 수양산에서 굶어 죽고 말았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두 사람은 과연 원망하는 것인가? 원망하지 않은 것인가?

10~12p

 

각주를 읽어가면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 백이 숙제에 대한 공자의 말에 대한 사마천의 비평은 많은 학자들이 분석해 놓았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내용이었다. 사마천이 사기를 기록하는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열전의 마지막에 있는 태사공자서를 먼저 읽었다. 태사공 사마천의 사기를 기록하는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통해 세태를 읽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읽어가다간 놓치는 부분이 많고 속도도 느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움을 받을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https://tv.naver.com/v/14939289


먼저 열린연단의 김병준 교수의 사마천사기강의는 사마천이 사기를 기록하는 방향과 그 가치를 이야기했다. 사마천은 사기로서가 아니라 으로 기록했다. ‘태사공자서를 보면 주공 이후 500년 만에 공자가 나왔고, 이제 공자 이후 500년이 되어가니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중단하지 않고 계속 기록해나가는 의무를 넘어서서 새로운 소명을 갖게 되는 부분이다.

 

태사공(사마천)사기를 대하는 자세의 변화는 이릉의 화를 당하면서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한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궁형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사마천 평전을 보니 보임안서(보임소경서)’에 사마천의 울분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고 한다. 임소경(임안)은 자신도 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사마천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의 잘못을 꾸짖는다. 사마천은 임소경에게 답장을 보내며, ‘이릉의 화(궁형)’를 당하게 된 억울함과 당시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음에 대한 서운함과 궁형을 받은 후 미천한 신분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울분을 전하고 있다. 이 서신에서 그는 사기를 기록하는 의의를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원래 한 번 죽기 마련인데 어떨 때는 (그 죽음이) 태산보다도 무겁고, 어떤 때는 기러기 털보다 가벼운 것은 그 (죽음의) 쓰임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옛날에 부귀를 누리다가 이 이름이 닳아 없어진 사람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고, 오직 특별하게 비상했던 사람들만이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왕(文王)은 갇힌 몸으로 주역을 풀어냈고, 중니(仲尼)는 어려움을 당해 춘추(春秋)를 지었으며, 굴원(屈原)은 추방을 당하고서 마침내 부()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左丘)는 앞을 못 보게 된 뒤에 국어(國語)를 완성했으며, 손자(孫子)는 발을 잘리는 형벌을 당한 채 병법(兵法)을 편찬해냈고, 불위(不韋)는 촉() 땅에 유배되는 바람에 여람(呂覽)을 세상에 전 할 수 있었으며, 한비(韓非, 한비자)는 진()나라에서 감옥에 갇혀 세난(說難)고분(孤憤)을 썼고, 300편은 대부분 빼어나고 뛰어난 이들이 자신들의 분함을 떨쳐내려고 지은 것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가슴속에 한 맺힌 억울함이 있었지만 자신들의 도리를 통하게 할 수가 없게 되자, 그로 인해 지나간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述王事 思來者]. 이에 자구처럼 눈이 없고 손자처럼 발이 잘린 사람은 결국 세상에서 쓰일 데가 없게 되자 물러나 서책(書冊)을 논함으로써 자신들의 분을 풀어내며, 자신들의 생각을 담을 공허한 글[空文]로나마 스스로를 들어냈습니다.

- 173~174p, ‘보임안서, 62사마천전, 한서 열전3, 반고

 

이 서신은 반고의 한서』 「열전사마천전에 기록되어 있다. 사기를 읽다보면 사마천의 기록 뒤에 가끔 후대의 사관들이 내용을 덧붙인 것을 볼 수가 있다. 주로 사마천의 기록을 보충한다거나 유실된 내용을 대신하거나 사마천의 의견에 반대하는 경우이다. 저선생, 가생 그리고 반고 등이 이러한 기록을 남겼다. 반고는 후한(後漢) 사람이고 유교가 나라의 기틀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 많은 경우 사마천의 기록을 참고하면서도 다른 시각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10권으로 완역된 한서가 최근에 출판되어서 부분적으로 참고할 수 있었다. ‘보임안서전문도 여기에서 읽고 참고했다.




사실, ‘보임안서를 읽고 사기를 읽는 것은 기록자인 사마천의 마음과 저술의 방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기를 읽기 위해서는 중국사에 대한 개괄은 하고 시작해야 한다. 본기세가를 읽는다고 해도 중국고대사의 맥을 잡는 것은 어렵다. 그것이 기전체의 특징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국지리가 갖는 의미를 놓치면 사기는 읽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나라가 낙읍으로 천도함으로 황실의 권력이 약해졌다는 것, 진나라가 파·촉을 먼저 차지함으로 초나라를 침략할 발판을 삼았다는 것, 항우가 관중지방을 포기하고 팽성으로 돌아감으로 대업을 놓치게 된 것, 한중 땅으로 들어갔던 유방이 다시 관중으로 들어가서 천하를 통일한 것, 그리고 형양과 성고 전투 등 중국의 지리는 사기를 읽는 데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이러한 중국의 고대사와 지리에 대한 정보를 잘 설명해주는 강의를 youtube를 통해 구독하게 되었다. 사기삼국지를 읽기 위한 지리 강의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https://youtu.be/ZUy2AHVHXiQ





진시황 때부터 한나라가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잘 정리한 책이 시바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이라는 책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고, 간결하면서도 역사적인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잘 전달하고 있다. 천재적이란 생각이다. 이 작가는 책 한권을 쓰기 위해 한 수레 분량의 책을 읽고 참고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함께 읽은 책은 미야기다니 마사미쓰의 맹상군자산의 꿈이다. 읽을 예정인 책은 개자추, 악의, 안자. 그리고 11권으로 구성된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





 




사기를 읽기 위해 세 개의 출판사 책을 병행해서 보았다. 텍스트로 삼았던 책은 까치 출판사의 책이었다.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어서 읽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책 페이지마다 있는 각주가 아주 잘 되어있어 참고할 내용이 많았다. 아쉬운 점은 각주에 있는 한자에 독음이 없어 모르는 한자는 일일이 사전을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 옛날처럼 옥편을 찾아야 했다면 포기했겠지만 다행히 네** 사전이 있어서 사진을 찍거나 쓰는 것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자독음까지 써놓기엔 분량이 너무 많아 페이지를 할애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해하기로 했다.^^

 


참고하기 위해 병행해서 본 책은 올제출판사의 클래식 시리즈 사기이다. 원전을 살리면서 조금 더 읽기 편하게 번역해 놓았고, 권위 있는 번역자들이어서 믿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번역에 있어서 견해가 다른 내용들은 설명을 하고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이유도 친절하게 적고 있다. 이 시리즈들은 평소에는 구하기가 어려운데, 다행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사두어서 참고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책은 민음사의 사기. 열전은 잠시 품절 상태이다가 다시 재출간 되었다. 읽기에 쉽도록 현대어로 쉽게 번역되어 있다. 본래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함께 읽은 동아리 회원 중 한 분은 쉬운 말로 번역했다고 해서 쉽게 읽히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역사서이므로 그 안에 있는 지식을 다 이해하려면 바탕이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 텍스트가 있고 그 내용 중 이해 안되는 내용을 참고하는 용도로는 좋다는 생각이다. 혹시 중고등학생들이 읽으려고 하면 민음사 책이 좋을 듯하다.

 

열전만을 읽었는데도 사마천의 시선과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 미야기다니 마사미쓰는 맹상군이란 책에서 염옹이 쓴 시를 통해 맹상군 열전의 한 에피소드의 뜻을 전하고 있다.

 

누가 개소리를 내는 것을 천하다고 하는가

능히 백호구의 옷을 가지고 왔으며

누가 닭소리 내는 것을 천하다고 하는가

능히 함곡관 관문을 열게 했도다

비록 성현(聖賢)이라 할지라도

그 두 선비처럼 짐승 소리는 내지 못했으리라

그러므로 알라, 시냇물은 흘러서 바다가 되고

티끌은 모여서 큰 언덕을 이루는도다

사람의 개성을 존중해야 사람을 쓸 줄 아는 것이니

여러분은 맹상군을 천하다고 하지 말라

-맹상군미야기다니 마사미쓰

 

역사는 사람, 그들의 우연한 만남, 그 우연한 만남이 만들어 낸 생성과 소멸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 사마천의 글 속에 은밀하게 전해지고 있는 메시지에 조응하게 되었다.

 

결국, 열전만이라도 읽어볼까 하고 시작했던 사기읽기는 본기세가로 이어지고, 를 옆에 두고 함께 읽어야 하는 필요까지 생기게 되었다. 아마본기부터 순서대로 읽었다면 열전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열전에는 사마천의 마음이 숨겨져 있고 독자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 본기세가읽기는 연관되는 소설들까지 읽게 되는 대장정으로 이어졌다.

 

세가를 다 읽고 사기읽기를 마무리 하면서 동아리 회원들과 수고했다는 축하인사를 전하고, 이제 맘껏 다른 소설들을 읽으며 쉬어야겠다는 계획을 했지만, 머릿속에는 사기를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글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미루고 있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결국 노트북을 켰다. 정리를 하다 보면 다시 한 번 읽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텐데, 저렇게 쌓아놓은 책들은 언제 다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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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28 00: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사기를 다 읽다니요. 너무 대단하세요. 저는 솔직히 말해 재미없어서 읽다 말았는데요. 고문은 왜 그렇게 제게 힘든지....ㅠ.ㅠ 그레이스님 사기 완독에 감탄하고 잠시 반성하다가 그래도 사기는.... 하면서 입맛만 다십니다. ^^

그레이스 2021-03-28 08:15   좋아요 4 | URL
저도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읽어서 완독할 의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5개월에 걸쳐서 진도표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함께 낭독하기도 하고, 한달에 한권씩 마무리 했습니다.
마지막 달에는 속도가 붙어서 세가 두권을 한꺼번에 했구요.
서로 감사해하고 축하했습니다.~♡
누군가 함께 읽는 사람들이 있으면 하실 수 있을거예요~^^

그레이스 2021-03-28 01: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급하게 책 보이는대로 쌓느라 이 밤중에 소란을 떨었네요 ^^
뭔가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ㅋㅋ
마치 여행가서 사진남기듯이
제대로 본 것 없이 휙 둘러보고 사진찍고 돌아오는 사람들처럼...
아직은 제게 <사기>가 그런듯 하네요^^

새파랑 2021-03-28 08: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기˝를 읽으셨다니 이거 사기 아닙니까? ㅋ(농담입니다...) 와 책탑에서 놀라고, 이 책을 읽기 위해 여러책을 병행해서 보시는 것에 더 놀랍니다^^ 저같은 문외한은 그냥 감탄만~!! 완독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03-28 10: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읽었다는 것 외에는 별 차이가 없을듯요.

붕붕툐툐 2021-03-28 09: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넘 멋지세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도 맘 속 늘 도전을 품고 있는 책입니다~ 그레이스님 페이퍼 읽으니 사기 뽐뿌가 엄청 오네요!ㅎㅎ

그레이스 2021-03-28 10:09   좋아요 3 | URL
^^
지금 딸한테 뽐뿌가 뭐냐고 물었어요.
ㅋㅋ
‘축하‘ 감사합니다~

scott 2021-03-2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레이스님 저기 사기책 탑 전부 완독 하시는동안 유튭 강의랑 병행 하신건가요??
고전 독해력이 엄청 나세요 이정도 분량은 전공자도 1년 동안 못 끝냄!

르네상스 건축 미학 책도 읽으시면서
파노프스키 알고 계셔서 깜놀하고
사기책 완독 하셔서 더 깜놀 ㅎㅎ

완독 축하합니다. ^ㅎ^

그레이스 2021-03-28 16:32   좋아요 2 | URL
부끄럽습니다;;;
감사해요

그레이스 2021-03-28 16:34   좋아요 2 | URL
노마드 배울게 많아요
강추합니다~
 

저자 위안싱페이는 중국 고전문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도연명집전주陶淵明集箋注』, 『도연명연구陶淵明硏究』가 눈에 띈다. 도연명의 작품 전체를 주해하고 도연명 연구에 권위가 있는 학자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에서는 후대 화가나 선비들이 도연명의 시를 제재로 그린 그림들, 그림에 붙인 발문들, 그 그림을 감상한 사람들의 글들, 그리고 도연명에 대한 추화시인 화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소명태자 소통이 그의 작품을 모아 『문선(文選)』에 몇 편 선록한 뒤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도연명을 활발히 그리기 시작한 것은 송대(宋代) 부터이다.

송(宋)의 이공린(李公麟)이 그린 2폭 「귀거래혜도(歸去來兮圖)」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그린 것이다. 이공린의 이 작품은 후대에 그려질 그림에 도연명의 모습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현존하는 도연명 관련 그림의 화법은 대체로 이공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202p) 이공린의 작품으로 알려진 모사본 미국 워싱턴 프리어 미술관 소장 7폭 연명귀은도(淵明歸隱圖)는 많은 사람이 이 그림의 배경이나 도연명의 모습을 따라 그렸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국화, 소나무, 술은 도연명을 나타내는 것들로, 그림에서도 도연명을 이미지화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귀거래사(歸去來辭)와 관련된 그림은 원, 명, 청 시대로 가면서 그 원형을 따르다가 자유로워지고 다양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도연명 관련 그림의 화법은 대체로 이공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서화가 중국 본토 보다는 타이뻬이와 미국에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워싱턴 프리어 미술관과 타이뻬이 고궁박물원이 그 소장지의 예다.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언젠가 가서 직접 보고 싶은 그림들이 보인다.

이 책을 보는 즐거움은 그림을 통해 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 흥취(興趣)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림과 함께 그림의 제재(題材)가 된 시구를 옆에 써놓고 낙관을 찍는다. 글씨도 한 편의 예술이었으니 그 글씨가 흘러간 자취와 낙관의 모양과 찍힌 자리, 남겨놓은 여백은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을 완성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낙관의 주인은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힘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그림에 붙인 발문들을 보며 시대를 흘러 유명한 문사들을 거쳐 간 오딧세이를 상상하게 된다. 옹방강, 소동파 등의 감상자들의 이름을 마주하는 즐거움이 있고, 수장인(收藏印)을 남긴 여러 후대인들의 손길과 숨결도 느낄 수 있다. 건륭감상(乾隆鑑賞)이라는 수장인은 청대(淸代)에 도연명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분명 닭이 그려져 있지 않은데 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림, 술 취한 사람과 취하지 않은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데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 모습, 세 사람이 고개를 젖히면 웃고 있어 그들의 옷차림과 신발까지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는 발문이 붙여진 그림, 도대체 지필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과 글을 읽는 아비의 모습, 술 취해 부축을 받는 도연명의 모습.…… 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그림들이 많다. 한편 망중한을 즐기고, 농사일 하고, 벗을 그리워하는 그림에서도 도연명의 자태는 표표하다고 말한다.

「도화원기(桃花源記)」는 도연명은 진나라의 유민(流民)이 산속에 들어가 마을을 이룬 것으로 썼으나 후대로 갈수록 사대부들에 의해 이상향으로 바뀌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역시 그 영향을 받은 그림으로, 이 책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림뿐만 아니라 많은 문사(文士)들이 도연명의 시에 화운(和韻)한 화도시(和陶詩)를 소개하고 있다. 눈에 띈 사람들은 소동파나 이백, 조맹부, 건륭제였다.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도연명의 시를 좋아했고 배우고 많은 화도시를 남겼다고 한다. 건륭제가 도연명의 빈사(貧士)에 화운한 시를 보며 과연 한 나라의 황제가 가난한 선비의 마음을 알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나라의 선비였던 조맹부가 청나라에 출사한 자신을 향한 비난에 도연명을 그려 대답했다는 것을 보니 모든 시대와 사조, 모든 처지마다 공감되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동파(東坡) 이후로도 도연명의 작품 수보다 훨씬 많은 화도시들이 창작되어져 왔다.

다음은 소식의 화도시이다. 참으로 도연명의 신운(神韻)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손님 하나 내 집 문 두드리고
마당 앞 버들에 마을 매었네.
텅 빈 마당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닫힌 문 앞에서 한 참 서 있네.
주인은 책 베고 누워
꿈에 평생의 벗을 만나고 있네.
갑자기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술잔을 쏟아버렸네.
허겁지겁 옷 입고 일어나 손님께 사과하니
꿈에서 깨어도 모두 실례하여 민망해라.
그예 고금사를 이야기하니
답하지 않아도 얼굴 정다워라.
나에게 어디에서 왔냐 하기에
무하유의 땅에서 왔다고 말해주었네.

-264p


1,600여년이 지나도록 많은 도연명을 그린 그림과 화도시가 창작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당연히 그의 글 안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의 정서를 끌어올리고 마음을 달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귀거래사」와 「도화원기」는 화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학 제재이다. 출사한 선비들에게는 동경할 만한 내용일 것이다. 복잡다난한 생활 속에서 망중한의 한 때를 동경하는 것이리라.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들이 겹쳐진다.)

도연명은 명말 청초의 유민화가에게 인기가 많았다는데, 그 역시 도연명이 두 왕조를 섬기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여 추숭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자신이 그런 길을 가지 못한 것을 덮으려 오히려 도연명을 앞에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도연명의 시를 읽으며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림을 보면 그 곳에 내가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노래하지만 거기에 배어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이 그 많은 그림과 화도시로 공명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잊은 작가는 분비물에 대해 쓸 뿐’이라고 했던 윌리엄 포크너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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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장 최근에 나온 도연명 전집이다. 각 시마다 그리고 시의 수마다 해석을 붙였다. 이 해석을 다 읽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어떤 때는 시를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지식을 가진 나에게는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 읽었던 『도연명을 그리다』의 저자 위안싱페이의 해석을 참고하고 있어서 병행 독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화가들의 그림의 제재가 되었던 귀원전거(歸園田居), 음주(飮酒), 책자(責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專), 의고(擬古),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중점적으로 감상했다. 그리고 부록에 붙여진 심약(沈約)의 「도잠열전(陶潛列傳)」,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도연명문집 서문(陶淵明 文集 序)」, 위안싱페이의 「도연명의 향년에 대하여」를 통해 도연명이나 그를 세상에 소개한 소명태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주 유익한 자료였다.

<음주> 20수는 한 세트의 시다. 당연히 같은 시기, 즉 의희 13년 가을에 지어졌을 것이다. 이해 9월은 유유(劉裕)가 북벌해 장안(長安)까지 이르렀고, 다음 해 6월에는 상국(相國)이 되고, 송공(宋公)에 봉해지며, 최고 예우인 구석(九錫)이 내려졌다. 2년 뒤 7월 유유는 송왕(宋王)으로 승진하고, 그다음 해 6월 유유는 바로 찬탈해 황제를 칭한다. <음주> 20수는 마침 진 왕조가 장차 망하고, 유유가 찬탈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연명은 일찍이 유유의 참군(參軍)을 지냈고, 유유의 권세가 날로 높아지던 무렵이니, 자연스레 어떤 사람은 도연명에게 다시 나가 유유에게 의탁할 것을 권했을 것이지만 도연명은 단호히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음주> 시 안에

쯧쯧 속세의 어리석은 놈들아, 咄咄俗中禺
또한 마땅히 황기를 따라야지. 且當從黃綺
잠시 이 마실 것 함께 즐기시길, 且共歡此飮
저의 수레는 돌릴 수 없다오, 吾駕不可回
한번 갔으면 곧장 마땅히 그만둘 일이지, 一往便當已
무엇을 하려고 다시 우유부단하는가? 何爲復狐疑
깨달으면 응당 돌아옴 생각해야지, 覺悟當念還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도 버려지나니. 鳥盡發良弓

등의 문구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소생(邵生), 삼계(三季), 벌국(伐國) 등의 말로서 진나라가 망하게 될 것을 암시했다.
-953p, <도연명의 향년에 대해>⟪도연명연구⟫ 위한싱페이


「음주(飮酒)」라는 시를 감상하며 나 역시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와 정서를 그렇게 읽었다. 출사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달리 수레를 돌려 세상과 이별했던 것은 그가 살았던 격랑의 시대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고뇌 가운데 시작되었으나 후에는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 같다. 국화 한 송이에서, 술이 익어 갈건에 술을 거르는 행위에서, 갑자기 술을 들고 찾아온 노인과의 대화에서, 산중에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에서… 그런 작은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마음. 필사적으로 보였던 그 마음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일치가 되는 순간을 다음 시에서 발견했다.


42-5.
사람 사는 곳에 오두막 엮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 없구나.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지,
마음 멀어지니 땅은 절로 외지노라.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고,
유연하게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
산기운은 해 저물면서 아름답고,
날던 새 서로 더불어 돌아오누나.
이 안에 ‘참된 뜻’이 있으니,
말하려 하나 이미 말 잊었노라.
-361p, 「음주(飮酒)」 중 제 5수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고, 유연하게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는 도연명의 시 중 절창으로 여겨진다. 그 의미를 여러 번 되새기다가, 바로 그가 지향했던 삶의 순간을 불현 듯 경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에는 적막함, 외로움, 작별의 아쉬움, 그리움, 고뇌도 있지만, 흥취가 넘치고, 재미있는 순간들도 등장한다. 술과 관련된 시가 주로 이런 정서가 많았는데 그는 마음이 어지러운 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더 나아가 자신을 잊고 일치되는 순간을 적극적으로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고 흥취를 즐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손님들 있어 늘 함께 머물러 지내는데,
취향은 까마득하게 경지를 달리하네.
한 선비는 늘 홀로 취해 있고,
한 사내는 한 해 동안 깨어 있네.
깨고 취해서 또한 서로를 비웃나니,
말을 해도 각기 받아들이지 못하네.
-388p, 「음주(飮酒)」 제 13수

술을 그쳐볼까(止酒)는 술을 끊을 수 없는 이유를 대는 재미있는 시이다. 번역이 재미있게 된 것 같다. 애주가들이 좋아할 만한 시라는 생각이다.

맛있는 것은 채마밭 아욱에 그치고,
크게 기뻐함은 어린아이에 그치네.
평생 동안 술은 그치지 아니하나니,
술 그치면 마음에 기쁨이 없기 때문.
저녁에 그치면 편히 잘 수가 없고,
새벽에 그치면 일어날 수가 없네.
날이면 날마다 그걸 그치고 싶으나,
몸의 순환이 그쳐서 다스려지지 않네.
……
417p 「술을 그쳐볼까(止酒)」 중

「책자(責子)」라는 시에서 그는 종이와 붓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보고 실망감을 짧은 시 한 구절에 담고(“아들놈이 다섯이나 있다 하나, 모두 지필을 좋아하지 않네” -『도연명을 그리다』), 술이나 마셔야겠다고 마무리 한다. 그 실망감을 억지로 감추려는 것인지 아니면 생긴 본성대로 살라고 놓아주는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하겠다. 웃음과 함께 그의 마음을 지나간 서늘한 한 가닥 바람을 느꼈다. 부모 마음은 똑같으리라는 생각에…….

그는 어떤 마음으로 도화원기를 썼을까? 어떤 권세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농사 짓고 고기 잡아 굶주릴 걱정 없이 한가할 때 시 짓고 사는 마을을 그렸을까? 도화원 사람들이 나가서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건만 떠나면서 길목마다 표시를 해두고 밖에 나와 사실을 알리는 방문자가 얄궂다. 독자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마을을 다시 찾지 못하는 엔딩에서 안도한다. 도연명의 마음도 같았으리라.

그가 지키고 싶었던 도화원은 그의 마음이었을까? 시시때때로 세상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휘저어지지 않으려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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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 전집 대산세계문학총서 38
도연명 지음, 이치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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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에 관한 책 4권을 읽었다. 먼저 읽은 것은 김학주의『도연명』. 읽다가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구입한 것이 이 책 『도연명전집』이다.

처음 도연명의 글에 매력을 느낀 것은 「귀거래혜사」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돌아가자 歸去來兮 ’ 라고 말하는 부분이 마음에 와서 부딪치고 사로잡았다. 도연명의 「귀거래사」 전체를 다 읽고 자연히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에 관심이 갔다. 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려는가.

가난해서 밭 갈고 뽕나무를 심어도 자급자족할 수 없었던 선비. 아이들은 많고, 가난하게 사는 자신을 안타깝게 여긴 숙부가 추천해주어 팽택현 수령이 되었지만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 하며 도장끈을 풀고 집으로 돌아가며 지은 사(辭).

그는 이 사(辭)의 서문에서

나의 본성이 자연스러움을 좋아하여 억지로 꾸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고프고 추위에 떠는 것이 비록 절박하지만 본심을 어기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전에도 벼슬한 적이 있으나 모두 생계에 쫓겨서 스스로를 부렸던 것이다. 이에 슬퍼하고 비분강개하여 평생 품었던 뜻에 깊이 부끄러워하였다. ……이 일로 인해 본 심을 따르게 되어, 글을 지어 이름 붙이길 ‘귀거래혜(歸去來兮)’라 하였다. 을사년 11월에 서문을 쓴다.
-296p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 서문 중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동진(東晉)시대 사람. 곧 송(宋)으로 나라가 바뀐다. 이러한 어지러운 시기에 관리를 하는 것은 그가 밝힌 본성으로 견뎌내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돌아가자
바야흐로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이미 스스로 마음이 육신의 부림을 받도록 하였거늘
어찌 근심하여 홀로 슬퍼만 하리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앞으로의 일은 바른 길 쫓을 수 있음을 알았다네.
실로 길을 잘못 들었으나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으며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
배는 흔들흔들 경쾌하게 나아가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 옷자락을 날린다.
길 가는 사람에게 앞길을 묻고
새벽빛 희미하니 한스럽게 여긴다.
-296~298p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 중 제1수


그의 돌아감은 본성때문이라 하지만 의지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자신이 월든으로 간 것은 필사적(desperately)이었다고 한 것처럼. 본성이 맞지 않아도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경우가 세상에는 더 많다. 그 머무름이 더 타당하게 보인다. 본성을 따라 세상을 등지는 것이 어렵고 고독하다.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길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唐代까지도 인정받지 못했다. 왕유는 도연명의 걸식시(乞食詩)를 거론하며 “한 번의 부끄러움도 참지 못하더니 종신토록 부끄러움을 겪는구나. 이 역시 남과 나를 괴롭히는 것이니, 작은 것을 지키느라 큰 것을 잊고 그 뒤에 끼칠 누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고 비판한다.

도연명의 시를 감상하며, 비록 번역에 의지한 것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그의 마음을 느꼈다. 의지적으로 선택한 길이지만 외롭고 고독하며 생활의 빈곤으로 우울함도 느낀다. 아들들에게 주는 편지에서는 자신의 살아온 삶은 본성을 따른 것이고 후회함이 없지만 아들들이 풍족하게 살도록 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힘을 다해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왔으나, 너희들에겐 어려서부터 춥고 배고픈 생활을 하게 했구나.……”(아들 엄 등에게 주는 글, 與子儼等疏) 힘을 다해 벼슬을 그만두었다는 말에서 그가 당시 갈등했고 그만두는 데 많은 의지가 필요했음을 알게 되었다.

후대의 많은 사대부들은 도연명의 글을 읽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자연에 귀의(歸依)하여 술을 즐기고 마음 가는 대로 산 사람으로 도연명을 그렸다. 왕유와 같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시구 행간에서 그의 마음에 무수한 갈등이 오고 가서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閑情賦)

드디어 집이 보이고 기뻐서 달리고, 머슴아이와 아이들을 반겨주고, 집으로 돌아와 어린 것들 데리고 들어가 방에 들어가니 편안함을 느끼겠다는 시구는 필사적인 마음과 그 마음을 흐르는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져 울컥했다. 도장끈을 풀어놓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어떤 마음이었을지가 헤아려진다.

아무리 자기 본성이라지만 세상을 거스르는 일이 쉽고 즐겁기만 하겠는가. 고독과 괴로움이 더 많을 것이 인지상정으로 알아지는 것인데.

그는 <육체, 그림자, 정신(形影神>에서
육체가 그림자에게, 그림자가 육체에게, 정신이 설명하며라는 오언시 3수를 통해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는 육체와 그림자의 괴로움과 정신이 설명하는 이치를 이야기 한다. 함께 할 사람이 없어 술잔을 놓고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를 하는 고독한 밤의 광경이 떠오른다. 이 글을 읽다보면 그가 정신분석학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그는 세상으로부터 외따른 곳에 초막을 짓고 멀어진 땅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며 마음을 비워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소처럼 술을 마시고 마당을 서성이다가 울타리 밑에 핀 국화를 따고 유유히 고개를 들다 남산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본다.(飮酒) 불현 듯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의 어떤 깨달음의 순간이다.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아니 거기에 이르러서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감정을 다스려야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슬프고 한스러워 홀로 지팡이 짚고 돌아오는데
울퉁불퉁한 산길 가시덤불 우거진 곳을 지나갔다.
산골짜기의 물은 맑고도 얕아
이내 발 씻기에 좋구나.
갓 익은 술 거르고
닭 한 마리 잡아 이웃을 부르니
해는 지고 방 안 어두워
싸리나무로 밝은 촛불 대신한다.
즐거우나 밤 짧아 아쉬운데
어느덧 다시 날이 새는구나.
-70~72p 「전원의 집으로 돌아와(歸園田居)」 중 제5수


어쩌면 내가 신념대로 살려고 할 때 느꼈던 감정을 그의 시들에 이입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시를 짓는 재주가 있으면 ‘화도시(和陶詩)’라도 지어볼텐데…….

돌아가자
바야흐로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이미 스스로 마음이 육신의 부림을 받도록 하였거늘
어찌 근심하여 홀로 슬퍼만 하리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앞으로의 일은 바른 길 쫓을 수 있음을 알았다네.
실로 길을 잘못 들었으나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으며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
배는 흔들흔들 경쾌하게 나아가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 옷자락을 날린다.
길 가는 사람에게 앞길을 묻고
새벽빛 희미하니 한스럽게 여긴다.
296~298p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 중 제1수 - P296

슬프고 한스러워 홀로 지팡이 짚고 돌아오는데
울퉁불퉁한 산길 가시덤불 우거진 곳을 지나갔다.
산골짜기의 물은 맑고도 얕아
이내 발 씻기에 좋구나.
갓 익은 술 거르고
닭 한 마리 잡아 이웃을 부르니
해는 지고 방 안 어두워
싸리나무로 밝은 촛불 대신한다.
즐거우나 밤 짧아 아쉬운데
어느덧 다시 날이 새는구나.

70~72p 「전원의 집으로 돌아와(歸園田居)」 중 다섯 번째 수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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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21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이 올려주신 도원명 시들 넘 좋아요 그레이스님 글 읽고나니, 도원명의 글 속에 그저 안빈낙도가 아닌 갈등과 고뇌가 담긴 것 같아 더 와닿는듯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2-01-22 00:1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