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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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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유쾌한 독서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그 흐름을 거스르며 사는 것은 투쟁하거나 소외되거나 무리를 떠난 캐릭터가 되기 쉽다. 순례 씨라는 캐릭터는 작가가 말했듯 우리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대안이 될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까? 만일 이 이야기를 순례씨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삶이나 마음을 통해 풀어 갔다면 식상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수림이가 가족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어른들의 모습과 순례 씨의 특별한 삶을 그리고 있어 재미있었다. 순례 씨의 생각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가 지향하는 삶이 투명해서 그녀의 선택은 분명하다. 자본과 계층의 문제에 매몰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에게 단순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전한다. 식상하지 않게.

 

김 순례 씨는 세신사 일을 해서 번 돈으로 1층 양옥집을 샀다. 순례씨는 그 집을 때탑이라 불렀다. 주변지역이 개발되고 지하철역이 들어오면서 집값이 두 배로 뛰고, 집의 일부분이 도로로 편입되면서 많은 보상금을 받았다. 땀 흘리지 않고 얻은 재산에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게 바로 순례 씨의 경제관념이다. 그래서 빌라(현 순례주택)를 짓고, 임대료는 시세대로 받지 않고 순례 씨가 먹고 살만큼만 받는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조은영 미용실 원장은 우리 식구는 이 순례 주택을 딛고 일어섰어요.(11p)”라고 자주 말한다. 이 빌라야 말로 필요에 의해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장이다. 옥상을 함께 쓰는 공간으로 공유하고, 누구든지 이 공간에서 먹을 수 있도록 라면과 김치, 커피를 채워놓는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게 밤에만 옥상에 혼자 있다가 조용히 내려가는 401호 영선 씨의 새벽을 방해하지 않는 순례주택 사람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배려를 본다. 순례 주택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주거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 원더 그랜디움에 주인공 오수림의 가족이 살고 있다. 엄마는 빌라촌 아이들이 단지내 학교에 다니는 것 때문에 아파트값이 더디게 오른다고 속물적 성향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버릇처럼 솔직히 말해서로 시작하는 노골적인 인터뷰 내용이 나가는 바람에 거북마을 빌라촌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아파트 카페에서도 퇴출되었다.

수림의 아버지는 대학 시간 강사다. 언니 미림은 공부만하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캐릭터! 수림이를 낳고 엄마가 몸이 아팠던 까닭에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순례 씨의 손에서 자랐다. ‘1인 가족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2이라 생각하는 수림이는 순례주택이 더 편하다. 엄마는 그런 수림이를 서운해 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해한다.

 

원래 이 아파트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집이었다. 딸과 사위가 전임교수가 될 때까지만 도와달라는 부탁에 집에 들어와 살고, 함께 사는 게 불편한 할아버지가 오랜 연인이던 순례 씨의 빌라 201호에 살았다. 수림이의 부모님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으로 과시하고 구별 짓고, 허위와 허영만을 쫓는 스노비즘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림이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작가는 수림이의 가족과의 갈등, 가정의 역기능성, 계층 간 갈등 등의 문제를 순례주택이란 공간 안에서 풀어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수림이 부모님은 파산상태에 이른다. 아파트를 떠나 갈 곳이 없었던 그들을 받아준 곳이 순례 씨의 순례주택이다. 수림이네 부모님은 거북동 빌라촌 순례주택에 살면서, 어른들이 그렇듯 절망적으로 변화가 없지만, ‘진정한 어른으로 변해갈지 기대하게 된다.

 

우리가 도시 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경계의 문제를 보게 된다. 순례주택의 옥상 공유는 임대주택과 분양 아파트가 함께 있는 주상복합건물의 고층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을 막아 화재 대피로를 차단함으로 인해 생긴 분쟁에 대한 뉴스를 떠올리게 한다. 빌라촌 애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됩니다(28p).”라고 했던 수림이 엄마의 인터뷰는 흔한 이야기라, 얼굴이 붉어지는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이 순간 특별히 생각나는 시가 있다. 신철규 시인의 슬픔의 자전이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중슬픔의 자전신철규)


그 아이가 자신의 슬픔의 크기를 말하기 위해 동원한 단어가 지구, 그 지구만큼 슬펐다는 표현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시인의 표현처럼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먹먹했다도로와 건물이 그어놓은 우리 안의 경계와 구별짓기가 아이들의 가슴에 이 지구만큼 큰 슬픔을 새겨놓은 것이다그 아이의 상상 속에 가장 큰 세계인 그 지구를 이런식으로 조각내고 황폐화시킬 수 있는 힘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게 비극이다.

 

순하고 예의 바르다는 의미의 순례(順禮)에서 순례자(巡禮者)에서 따온 순례(巡禮)로 개명한 순례 씨의 정신이 담긴 곳이 순례주택이다. 순례 씨는 통장에 천만 원이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잔액을 털어서 함께 먹고 나누고 돕는데 사용하고, 더 이상 재산을 불리지 않는다. 불의하게 벌어 가족만을 위해 쓰는 남편과 이혼하고 땀 흘려 벌어 아들을 키웠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받으려 하자, 자신의 재산은 국경 없는 이사회에 기부하기로 한다


지구별을 순례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해법이고 위로다.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순례 씨와 같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겪는 많은 사회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순간순간 내가 순례 씨가 되어보는 것도 좋다. 꿈같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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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22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갈때마다.이.책 사서쌤이.추천도서러.세워두셔서.제목을.많이 봤는데, 순례를 ritual이라.생각했어요 그레이스님 깔깔 웃게.만든 작품이라니.호감 더.상승

그레이스 2023-10-23 06:33   좋아요 1 | URL
요즘 중학교 추천도서로 뜨더라구요.
전 어른들이 보아야할 책으로 추천합니다.
촌철살인의 속시원한 부분들도 있어요^^

아! 그리고 읽는데 2시간정도 걸린것 같아요.

yamoo 2023-10-23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즐겨 읽는 분야는 아니지만 간만에 그레이스 님의 리뷰를 보니 반갑네요..^^

그레이스 2023-10-23 09: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3-10-24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잠깐
도서관에 들러서 빌리려고 했는데...
실패했네요.

집에 가면서 빌릴라구요.
기대 중입니다.

그레이스 2023-10-24 22:02   좋아요 1 | URL
^^
빌리셨나요?
즐독하시길~~~
 
톰 소여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3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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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피조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진지하게 끄적거리는 일에 집중하기로 서약했다는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필명:마크 트웨인)은 인쇄공,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 광부, 주식 투기꾼, 언론인 등의 직업을 거쳐 저널리스트이자 유머 작가로 명성을 얻는다. 그의 작품 안에는 그의 이런 이력이 인물과 사건의 소재로 등장한다. 사진 속 그의 모습에는 유쾌함과 당당함이 서려있다. 정작 그는자식을 둘이나 잃고 파산을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순회강연으로 부채를 갚은 것을 보면, 청중의 사랑을 받는 뛰어난 입담의 소유자였음이 짐작된다. 입담 뿐 아니라 그에게서 후광처럼 비치는 유쾌함 때문에 환영을 받았을 것 같다.

 

다른 청소년 문학들과 마찬가지로 완역된 버전을 다시 읽게 되면, 어린 시절에는 놓치고 간 내용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작가가 말하는 메시지를 생략한 책들도 많고, 설사 완역된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해학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담장 페인트칠 사건자신이 벌로 받은 페인트칠하기를 놀이로 가장해서 친구들에게 댓가를 받고 미션을 클리어 하는은 톰의 뻔뻔하고 얄밉고 기발함 때문에, 아직도 톰소여의 모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 장() 마지막 부분에 붙인 작가의 말은 가히 철학적이다.

 

톰은 이 세상이 그렇게 공허하지만은 않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행동에 관한 중요한 법칙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어른이건 아이건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어렵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이 책의 저자처럼 현명하고 훌륭한 철학자였다면, 노동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놀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이치를 알게 되면 조화를 만들거나 물레방아를 밟아 돌리는 일은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리라. 영국에는 여름철에 하루 일정으로 사두마차를 몰고 30킬로미터에서 5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다니는 부유한 신사들이 있다. 그런 특권을 얻기 위해 꽤 많은 돈이 드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 신사들이 그런 일을 하고 품삯을 받는다면 그 일은 노동이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곧 그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37p)”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톰은 노동을 뛰어넘는 놀이의 힘을 경험했다는 것인데, 작가의 이 첨언은 요한 하위징아의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를 떠올리게 한다. 생각의 흐름은 방드르디의 원시적 삶에까지 이른다.

 

인전 조라는 인물은 작품 중 긴장과 갈등을 가져다주는 인물이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혼혈이다. 그는 악행을 일삼고, 살인을 저지른다. 톰과 헉은 그의 범죄현장을 목격함으로 사건에 휘말린다. 그로 인해 톰과 헉은 아이들이 할 수 없는 모험을 한다. 그런데 인전 조라는 인물이 단순한 악당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몇몇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는 의도로 폭행을 하는데, 그 복수의 이유가 아주 상세하게 그의 말로 기술된다.

 

이걸 포기하고 이 마을에서 영원히 그냥 떠나가라고? 지금 포기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 몰라. 전에도 말했고 지금 또다시 되풀이해 말하네만, 난 저 여자의 돈 따위는 관심 없어. 그건 자네가 가지라고. 저 여자의 남편이 나에게 몹시 못되게 굴었어.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치안 판사로 있으면서 걸핏하면 나를 부랑자로 몰아 유치장에 처넣었거든. 어디 그뿐인 줄 알아. 그건 새 발의 피야! 말채찍으로 나를 마구 갈기기도 했어! 감옥 앞마당에 세워 놓고 검둥이처럼 나를 말채찍으로 때렸단 말이야!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앞에서! 말채찍으로 때렸다고! 이제 알겠어? 그놈은 나한테 실컷 못되게 굴더니만 그만 뒈져 버렸어. 하지만 그놈의 여편네한테라도 분풀이를 해야겠단 말씀이야.(334p)”

 

그 마을에서 그가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려 준다.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이유를 부여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하는 것에서 작가의 비판의식을 읽게 된다. 그 대륙에서 벌어진 폭력의 역사를 계승한 자들의 차별과 멸시와 착취를 고발한다. 그러기에 작가는 살인을 저지른 인전 조의 마지막을 비참하고 불쌍하게 그리고 있다.

 

문을 열어젖히자 어슴푸레하고 어두컴컴한 동굴 안의 처참한 광경이 드러났다. 인전 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로운 바깥세상의 빛과 자유를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문틈에 바짝 얼굴을 갖다 대고 엎드린 채 죽어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가련한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 짐작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톰을 가슴이 뭉클했다. 그 사람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377p)”

 

주인공 톰 외에 중심 되는 인물은 단연 허클베리 핀이다. 그들의 미시시피강 모험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이벤트다. 무인도에서의 며칠간 생활에서 보여준 톰의 기지와 함께 두드러지는 것은 헉의 자유로움일 것이다. 두 사람의 이러한 성격은 당시 성인들의 위선과 탐욕을 드러내는 효과를 거둔다. 허클베리 핀과 달리 조 하퍼와 톰 소여가 느끼던 죄책감이 어느새 사라지는 장면에서 그들이 받은 교육이 그러한 기초에서 이루어진 무너지기 쉬운 것임을 시사한다.

 

마침내 많은 주민들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흥분에 짓눌려 비틀거렸다. 혹시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보물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세인트피터스버그와 인근 마을에 있는 모든 유령의 집을 찾아다니며 마루의 판자를 모두 뜯어내고 주춧돌마저 파헤치며 샅샅이 뒤졌다. 그것도 나이 어린 아이들도 아닌 어른들이 그랬던 것이다. 그 중에는 꽤 점잖고 현실적인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톰과 헉이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서 그들을 칭찬하고 또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이들 기억으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들의 말이 그렇게 존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사람들은 그 말을 하나같이 존중하고 되풀이했다. 두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간에 모두 특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두 아이는 평범한 말이나 일상적인 행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과거 역사까지 들추어내서는 그것을 특별한 독창성의 표시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마을 신문은 그 아이들의 삶에 대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400p)”

 

일상으로 돌아 온 두 소년은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다시 산적단을 만들고 비밀서약을 하며 앞으로 있게 될 모험을 예고한다. 어쩌면 이 서약은 오염되지 않으려는 맹세로 보이기도 한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앞으로 하게 될 모험의 주인공은 허클베리 핀이다.

 

작가의 비판이 예리하다. 이야기 사이사이 작가의 메시지를 교묘하게 숨겨놓는 재치와 필력 때문에 그것을 그냥 지나칠 정도로 매끄럽게 읽혀진다. 해학과 풍자가 한수 위라는 진리를 새삼 확인한다. 작가의 표현처럼, 웃음을 주기위해 진지하게 끄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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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3-25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학생때 읽어본거 같은데 기억은 전혀 안나네요 ㅋ 별 다섯개라니 단순 청소년 문학이 아닌가 봅니다~!

모험 시리즈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그레이스 2023-03-25 12:30   좋아요 1 | URL

단순한 청소년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당시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금서가 되기도 했다고 읽었습니다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 세계 51가지 기념일로 쉽게 시작하는 환경 인문학,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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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의 날? 책장을 넘기다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책은 두권째! 자칫 교과서같은 느낌을 주기 쉬웠던 이전 책과 달리 재미있는 지식이 많았다. 이런 기념일들이 많다는 것은 생존을 위협받는 생물들이 많다는 의미함이겠지. 제목에서 ‘수업‘이란 단어가 없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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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6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6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6-06 13: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렁이의 날도 있나요. 예전 어떤 선생님이 나무젓가락 갖고 다니면서 비온후 나왔다 돌아가지못하고 죽어가는 지렁이 풀밭으로 옮겨준다는 생각나네요. 손으론 차마 못 잡고 ~~

그레이스 2022-06-06 13:55   좋아요 4 | URL
있더라구요^^
그거 말고도 특별한 날이 많았어요
비온후 하천변 산책로 걸을 때마다 달팽이랑 지렁이 피하느라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데....
젓가락 갖고 다니시면서 옮기시는 분이 계시더라구요^^

새파랑 2022-06-06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수업이 있으니까 교과서 기분이 듭니다~!! 지렁이의날이 있으면 알라디너의 날도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ㅋ

그레이스 2022-06-06 18:58   좋아요 4 | URL
ㅎㅎ
언제로 해야 하나요??^^

scott 2022-06-06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구 환경 수업!
하는 날은
교실 밖을 벗어 나는 날!ㅎㅎ



그레이스 2022-06-07 00:25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 2022-06-09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일 달력을 보면, **의 날, 이라는 표시가 많이 있는데, 환경 관련된 기념일이 상당히 많았네요.
이 책을 보고 나면 달력과 포털 사이트에서 나오는 **의 날을 조금 더 가깝게 느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2-06-10 00:06   좋아요 3 | URL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는데, 조금은 관심있게 볼듯요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서니데이님~~
 


우정과 신뢰, 진실과 편견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설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들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기성세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고등학교 1학년 박서은이 학교 건물 뒤 옛 소각장에서 벽돌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절친 지주연이다. 주연이가 서은이랑 전날 그곳에서 만났다는 사실과 벽돌에서 나온 주연이의 지문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주연이는 둘이 만나서 다퉜다는 사실은 시인하나, 그 이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국이나 신문 기자들의 취재와 경찰들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친구들이나 선생님, 주변인들이 주연이와 서은이에 대한 평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연이가 따돌림을 받던 서은이와 절친이 되었던 의도에 대해서도 엇갈린다.

 

주연이요?

주연이는 다들 친해지고 싶어 하는 그런 애죠. 예쁘고 공부 잘하고 집에 돈도 많고. 그런 애들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친구가 모여드는 법이잖아요.……제가 아는 건 그게 다예요. 주연이가 서은이 구세주였다는 거.

저야 모르죠. 주연이 같은 애가 왜 서은이를 그렇게 챙겼는지. 가난한 애들 도와주고 싶은 동정심, 정의감, 뭐 그런 거 아니었을까요?”(19~20p)

 

절친 좋아하네. 누가 절친을 그렇게 대해요? 지주연이랑 박서은은 절친이 아니라 계약 노예 같은 사이였다니까요.”(30p)

 

주연이가 그렇게 잘해 줬는데, 아무리 말려도 남자한테 눈이 돌아서 소용 없었대요. 주연이가 서은이 정신 차리게 하려고 진짜 애 많이 썼다고 하던데요.”(58p)

 

친구들과 주변인들의 증언은 단편적 목격담과 소문에 의한 평가이다. 주연이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엄마와 아빠가 자신의 무죄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고용한 유능하다는 김변호사 역시 주연의 무죄를 믿지 않고 단지 유리한 증거만을 수집하고 있다. 그 유리한 증거란 것이 서은이에 대한 나쁜 소문들이었다.

 

가장 어이없는 상황은 프로파일러의 질문이다. 서은이의 남자친구로 인해 둘 사이가 소원해지고 오해가 쌓이고 사건 당일 두 사람이 다퉜다는 이야기를 듣고, 프로파일러는 질문한다. “너 서은이 좋아했니?”라고 서은이를 사랑했냐고 묻는다. 결국 프로파일러도 무죄추정의 원칙 따윈 던져버리고 주연이를 연인사이 집착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른 범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알아보고 친구가 되었던 주연이와 서은이는 외부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공부 잘하고 부유한 주연이와 가난하고 왕따였던 서은이 두 사람 관계를 프레임 안에서 판단하고 있다. 사람들은 능력있는 아빠를 가진 주연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결이 날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다. 죽은 서은이만 불쌍하다고. 한편 가난하고 아이들하고 잘 친해지지 못했던 서은이에 대한 친구들의 평가도 기울어 있다.

 

주연이는 서은이를 진짜 죽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재판은 주연에게 불리해지고, 결정적으로 주연의 범행이었음을 증언하는 목격자가 나타난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목격자만 그 진실을 안다.

 

이 소설은 우리 아이들에게 우정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친구와의 관계에서 소유하려는 태도는 건강하고 균형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을 알려 준다. 결국 경제적으로 베풀기만 했던 주연이 역시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런 비극적 상황에 빠지게 된다.

 

정범기 추락사건을 떠올렸다. 단지 사고로 옥상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정범기가 고등학생이고, 양궁선수로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과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유로 비관 투신으로 추측하는 기자나 주변인들을 그린다. 다른 단편들 안에서도 역시 한 존재를 바라보는 프레임과 편견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


주연이와 서은이를 목격했던 사람들의 단편적인 기억들과 두 사람이 처한 환경을 근거로 판단하는 주변인과 검찰, 변호사 등을 보게 된다. 확증편향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씌워진 프레임을 벗으려 애쓰기도 하고 타인을 향해 프레임을 덧씌우면서 살아간다. 이런 프레임들이 많을수록 존재는 자유를 빼앗기고 억압당할 수밖에 없다. 왜곡된 기준들 안에서 판단을 내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슬프다.

 

아이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또한가지 대목은 목격자 증언이다. 이 결정적이 증언으로 인해 주연이는 살인자가 되었다. 성경의 십계명 중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이다. 그냥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증언을 거짓으로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증언이 타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거짓말이 아닌 거짓 증언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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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12 21: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보이는 것으로 틀을 만들고 그 틀에서 이미 판을 짜는 거 같아요. 목격자가 뭔가 숨기는듯한 느낌?! 요즘 청소년소설은옛날보다 꽤 다양한 주제를 다루네요. 궁금합니다 주연이 무죄일지 ~

그레이스 2022-04-12 21:39   좋아요 4 | URL
서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기억을 못하는 주연이 안타까웠어요 ㅠ

scott 2022-04-12 21: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이런 잔혹성을 마땅히 처벌하지 못해서 더 큰 문제 인것 같습니다. 합의 화해 전학이외에는 학교측 선생측은 방관 하는 ㅜ.ㅜ

그레이스 2022-04-12 21:42   좋아요 4 | URL
이 이야기하고는 조금 멀지만 얼마전 학교폭력 방지 시민단체 푸른나무 김종기님 이야기를 티비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죠.

미미 2022-04-12 21: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애니 ‘돼지의 왕‘과 매즈 미켈슨의 ‘더 헌트‘가 떠오르네요. 이런 작품들이 많다는건 사회에 만연한 문제란 생각이 들어요. 프로파일러는 대체 왜그랬을까요. 결말이 궁금해요!! ^^*

그레이스 2022-04-12 22:15   좋아요 4 | URL
저도 쓸까 말까 했는데 결말이 반전이어서....^^

프레이야 2022-04-12 2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우성 김향기 나온 영화 증인 생각납니다. 좋은 증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그 자폐아이요. 편견과 선입견에 기대는 순간 얼마나 많은 오류를 낳는지요.

그레이스 2022-04-13 06:38   좋아요 3 | URL
역시 프레이야님은 영화로 답을 하시는군요!^^
찾아봐야겠어요.

희선 2022-04-12 23: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거짓 증언은 아이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른이 그런 모습을 보여서 아이도 그렇게 될까 싶은 생각도 들고... 틀에 맞춰서 보려고 하는 것도 그렇지 않나 싶어요 겉만 보면 모를 게 많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저도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그레이스 2022-04-13 06:40   좋아요 3 | UR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는 판단과 말을 하지 말아야할텐데...!

거리의화가 2022-04-13 09: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목격자 진술이 양날의 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의 사회도 결국 어른들의 사회를 닮아간다는 생각에 씁쓸해지는군요.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말 여러 모로 동감합니다.

그레이스 2022-04-13 12:36   좋아요 3 | URL
제가 여기 쓰지는 않았지만 소설 속 아이들의 생각과 말이 넘 아팠습니다.
마지막 목격자의 독백은 더욱 그랬구요 ㅠ

희선 2022-05-07 0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한 말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두 사람 일은 두 사람밖에 모르기도 하고... 주연이 부모가 주연이한테 사랑을 줬다면 달랐을지도 모를 텐데 싶습니다

그레이스 님 또 축하합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5-07 07:36   좋아요 3 | URL
감사드려요
희선님!
평안하고 행복한 주말되시길요~~

새파랑 2022-05-07 0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2022-05-07 07:33   좋아요 3 | URL
앗! 감사합니다
새파랑님도 축하드려요

mini74 2022-05-07 0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감축드리옵니다 *^^*

그레이스 2022-05-07 08:02   좋아요 3 | URL
미니님 황공하옵니다~^^
미니님도 감축드리옵니다~~!

미미 2022-05-07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있어서 찜해두었어요.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달콤한 주말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5-07 12:2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미미님도 평안하게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5-07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5-08 07: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이제야 봤어요
5월은 챙겨야할 일들이 많네요.
행복한 5월 되세요

얄라알라 2022-05-08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이시네요.

청소년 소설, 제가 좀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소개해주신 소설들을 읽으니,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생각 열린 어른 되어야 겠다는 마음.

프로파일러의 질문은 직업윤리(?)와 전문성을 의심하게 할, ㄲㄷ 스러운 질문인데 제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5-08 17:28   좋아요 2 | URL
^^
감사합니다~
얄라알라님!
그런 계통에 계신분들은 자신의 프로페셔널을 믿고 개별적인 상황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죠?
저도 항상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5-08 2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확증편향이나 편견 등의 사전판단이 없었다면, 인류는 어쩌면 더 큰 위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했던 요인이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레이스님의 페이퍼를 통해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편견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과거에는 맞지 않았던 것처럼, 과거에 경험적으로 쌓여진 우리 삶의 가치관들을 오늘날에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레이스님, 저도 뒤늦게 축하드려요, 축하도 여유를 가지고 살펴야 하는데 저도 정신없이 지냈습니다..ㅜㅜ:)

그레이스 2022-05-08 21:4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말씀은 아그네스 헬러의 편견이란 책의 내용이 아닌가 싶네요^^
편견의 긍정적효과!

^^
감사드려요 ~~^^

scott 2022-05-09 1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추카!

이 작품 드라마로 제작 된다면

그레이스님 덕분 ^ㅅ^

그레이스 2022-05-09 17:32   좋아요 2 | URL
^^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5-09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레이스 2022-05-09 18: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님두요~!
 
프란시스코의 나비 -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권장도서, 개정판
프란시스코 지메네즈 지음, 하정임 옮김, 노현주 그림 / 다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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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국경을 넘어 캘리포니아로 가면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국경이라는 말은 판치토(프란시스코)가 멕시코의 고향에서 자주 들었던 단어였다. 국경 너머에 있는 것은 희망이었고,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약속의 땅이었다.

 

판치토의 가족은 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를 향해 국경을 넘는다. 1940년대 국경을 넘는 불법이민자들이 그렇듯이 판치토네 가족도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도착한 그곳은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텐트촌이다. 판치토의 가족들은 딸기수확이 끝나면 포도 농장으로, 포도 수확이 끝나면 목화 농장으로, 그들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이동을 하며 산다. 판치토는 학교에 다니게 되지만 잦은 이동 때문에 친구들과의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동생들이 태어나고, 아버지는 아픈 허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많아진다. 형 로베르토는 농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시내에서 일자리를 찾아 한 곳에 정착하기로 한다. 판치토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그만 하고 싶어 한다. 로베르토가 일자리를 갖게 되고 판치토 역시 한 지역의 중학교에 계속 다니게 된다. 학교에서 독립선언문을 암기하고 있는 판치토 앞에 이민국 직원들이 들이 닥친다.

 

판치토가 외우고 있던 구절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역설적인 그림 앞에 맥이 빠지고 허무하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자유와 행복의 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에서 그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진리가 아닌 것이다. ‘국경 순찰대차에 태워져 형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10대의 판치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국경만 넘으면 보장될 것 같았던 행복은, 그 철조망이라는 물리적 경계 뒤에 언어, 국적과 같은 훨씬 넘기 어려운 장벽이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벽은 애벌레를 담고 있는 유리병이 상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교실 뒤에 있었던 병 안의 애벌레는 판치토를 닮았다. 실로 몸을 꼭꼭 감싸는 고치는, 숨겨두었던 판치토의 마음-엄마와 아빠와 형이 넓은 목화밭 안으로 사라진 뒤 기다리던 유년기의 두려움, 언어로 인한 고독, 선생님께 받은 외투가 커티스의 잃어버렸던 옷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느낀 수치심-을 상징한다.

한편 고치가 나비가 되고, 병속에서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이 책의 첫 장에 인용한 토마스만의 말처럼,

세상의 문제는 사실 단 하나뿐이니…….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어떻게 열린 곳으로 나아갈 것이가?

어떻게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될 것인가?”

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순환을 깨뜨리고 나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영어 제목은 The Circuit : Stories from the Life of a Migrant Child 이다. 불법이민 가정의 아이 프란시스코의 유년시절은 circuit(순환)이다. 그것은 판치토의 가족이 끊임없이 목화, 포도, 딸기 농장 사이를 떠돌아다닌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애벌레에서 고치로 또 나비로 변태해 가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가난의 순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그들도 농장을 유랑한다. 그리고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농장주들의 횡포에 분노한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인간애에서 희망을 그린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멕시코에서 하와이에서 같은 고난의 시간을 보낸 역사를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작가에게서는 오히려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프란시스코 지메네즈는 멕시코로 추방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형과 함께 일하며 가족들과 재회한다. 어렵게 학교를 다니고 꿈을 이룬다. 현재 콜롬비아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돌파 Breaking Through라는 후속 작품에서 소개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작가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기회라는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느슨해진 철조망처럼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지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미국의 국경선에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이 보여주듯 그런 희망을 생각하기 어렵다. 밖으로 장벽이 많고 높은 배타적인 사회는 내부에서도 경계가 많아지고 뚜렷해진다. 외부로 향한 잣대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은 내부에서도 효력을 발휘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배타적인 경계와 장벽이 높은 사회에서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 자전적 소설에는, 두 세대 이전,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본 인간의 행복추구권에 대한 역설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방인들은 행복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난이라는 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과연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인가? 경계와 장벽을 만들고 추방하는 사회에서 과연 누구에게나 기회와 권리는 있는 것인가? 에 대한 논제들을 던져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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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13 20: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꿈을 이루고 어려웠던 과거를 책으로 써내며 진짜 나비가 되었네요. 그레이스님 글처럼 분노의 포도나 애니갱? 맞나요. 생각도 떠오르네요. 구분짓기와 국경선만 없애도 훨씬 평화로워질거란 글이 기억나요 *^^* 재미있는 책 소개 고맙습니다 ~< 찜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1-07-14 07:14   좋아요 5 | URL
애네껜, 애니깽 ...
어차피 외래어니
김영하 작가의 <검은꽃>이나 청소년소설<에네껜아이들>이 유카탄반도에 이주했던 노동자들 이야기죠^^


scott 2021-07-14 0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저임금 불법 이민자들이 없으면 멈춰버리는 곳입니다
목숨 걸고 국경 너머온 부모는 그자리에서 사망하고 아이만 살았는데
이들 전부 코로나로 어디 수용소로 보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1-07-14 06:43   좋아요 2 | URL
ㅠㅠ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이들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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