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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3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신의 피조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진지하게 끄적거리는 일”에 집중하기로 서약했다는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필명:마크 트웨인)은 인쇄공,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 광부, 주식 투기꾼, 언론인 등의 직업을 거쳐 저널리스트이자 유머 작가로 명성을 얻는다. 그의 작품 안에는 그의 이런 이력이 인물과 사건의 소재로 등장한다. 사진 속 그의 모습에는 유쾌함과 당당함이 서려있다. 정작 그는자식을 둘이나 잃고 파산을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순회강연으로 부채를 갚은 것을 보면, 청중의 사랑을 받는 뛰어난 입담의 소유자였음이 짐작된다. 입담 뿐 아니라 그에게서 후광처럼 비치는 유쾌함 때문에 환영을 받았을 것 같다.
다른 청소년 문학들과 마찬가지로 완역된 버전을 다시 읽게 되면, 어린 시절에는 놓치고 간 내용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작가가 말하는 메시지를 생략한 책들도 많고, 설사 완역된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해학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담장 페인트칠 사건―자신이 벌로 받은 페인트칠하기를 놀이로 가장해서 친구들에게 댓가를 받고 미션을 클리어 하는―은 톰의 뻔뻔하고 얄밉고 기발함 때문에, 아직도 『톰소여의 모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 장(章) 마지막 부분에 붙인 작가의 말은 가히 철학적이다.
“톰은 이 세상이 그렇게 공허하지만은 않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행동에 관한 중요한 법칙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어른이건 아이건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어렵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이 책의 저자처럼 현명하고 훌륭한 철학자였다면, 노동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놀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이치를 알게 되면 조화를 만들거나 물레방아를 밟아 돌리는 일은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리라. 영국에는 여름철에 하루 일정으로 사두마차를 몰고 30킬로미터에서 5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다니는 부유한 신사들이 있다. 그런 특권을 얻기 위해 꽤 많은 돈이 드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 신사들이 그런 일을 하고 품삯을 받는다면 그 일은 노동이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곧 그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37p)”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톰은 ‘노동을 뛰어넘는 놀이의 힘’을 경험했다는 것인데, 작가의 이 첨언은 요한 하위징아의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를 떠올리게 한다. 생각의 흐름은 ‘방드르디’의 원시적 삶에까지 이른다.
‘인전 조’라는 인물은 작품 중 긴장과 갈등을 가져다주는 인물이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혼혈이다. 그는 악행을 일삼고, 살인을 저지른다. 톰과 헉은 그의 범죄현장을 목격함으로 사건에 휘말린다. 그로 인해 톰과 헉은 아이들이 할 수 없는 모험을 한다. 그런데 인전 조라는 인물이 단순한 악당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몇몇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는 의도로 폭행을 하는데, 그 복수의 이유가 아주 상세하게 그의 말로 기술된다.
“이걸 포기하고 이 마을에서 영원히 그냥 떠나가라고? 지금 포기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 몰라. 전에도 말했고 지금 또다시 되풀이해 말하네만, 난 저 여자의 돈 따위는 관심 없어. 그건 자네가 가지라고. 저 여자의 남편이 나에게 몹시 못되게 굴었어.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치안 판사로 있으면서 걸핏하면 나를 부랑자로 몰아 유치장에 처넣었거든. 어디 그뿐인 줄 알아. 그건 새 발의 피야! 말채찍으로 나를 마구 갈기기도 했어! 감옥 앞마당에 세워 놓고 검둥이처럼 나를 말채찍으로 때렸단 말이야!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앞에서! 말채찍으로 때렸다고! 이제 알겠어? 그놈은 나한테 실컷 못되게 굴더니만 그만 뒈져 버렸어. 하지만 그놈의 여편네한테라도 분풀이를 해야겠단 말씀이야.(334p)”
그 마을에서 그가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려 준다.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이유를 부여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하는 것에서 작가의 비판의식을 읽게 된다. 그 대륙에서 벌어진 폭력의 역사를 계승한 자들의 차별과 멸시와 착취를 고발한다. 그러기에 작가는 살인을 저지른 인전 조의 마지막을 비참하고 불쌍하게 그리고 있다.
“문을 열어젖히자 어슴푸레하고 어두컴컴한 동굴 안의 처참한 광경이 드러났다. 인전 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로운 바깥세상의 빛과 자유를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문틈에 바짝 얼굴을 갖다 대고 엎드린 채 죽어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가련한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 짐작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톰을 가슴이 뭉클했다. 그 사람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377p)”
주인공 톰 외에 중심 되는 인물은 단연 허클베리 핀이다. 그들의 미시시피강 모험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이벤트다. 무인도에서의 며칠간 생활에서 보여준 톰의 기지와 함께 두드러지는 것은 헉의 자유로움일 것이다. 두 사람의 이러한 성격은 당시 성인들의 위선과 탐욕을 드러내는 효과를 거둔다. 허클베리 핀과 달리 조 하퍼와 톰 소여가 느끼던 죄책감이 어느새 사라지는 장면에서 그들이 받은 교육이 그러한 기초에서 이루어진 무너지기 쉬운 것임을 시사한다.
“마침내 많은 주민들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흥분에 짓눌려 비틀거렸다. 혹시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보물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세인트피터스버그와 인근 마을에 있는 모든 ‘유령의 집’을 찾아다니며 마루의 판자를 모두 뜯어내고 주춧돌마저 파헤치며 샅샅이 뒤졌다. 그것도 나이 어린 아이들도 아닌 어른들이 그랬던 것이다. 그 중에는 꽤 점잖고 현실적인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톰과 헉이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서 그들을 칭찬하고 또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이들 기억으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들의 말이 그렇게 존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사람들은 그 말을 하나같이 존중하고 되풀이했다. 두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간에 모두 특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두 아이는 평범한 말이나 일상적인 행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과거 역사까지 들추어내서는 그것을 특별한 독창성의 표시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마을 신문은 그 아이들의 삶에 대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400p)”
일상으로 돌아 온 두 소년은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다시 산적단을 만들고 비밀서약을 하며 앞으로 있게 될 모험을 예고한다. 어쩌면 이 서약은 오염되지 않으려는 맹세로 보이기도 한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앞으로 하게 될 모험의 주인공은 허클베리 핀이다.
작가의 비판이 예리하다. 이야기 사이사이 작가의 메시지를 교묘하게 숨겨놓는 재치와 필력 때문에 그것을 그냥 지나칠 정도로 매끄럽게 읽혀진다. 해학과 풍자가 한수 위라는 진리를 새삼 확인한다. 작가의 표현처럼, 웃음을 주기위해 진지하게 끄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