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를 시작하면서 읽은 책이다. 프랑스 소설을 읽을 때, 『랑송 불문학사』로 정리하곤 했다. 『미술사적 방법론』은 한 미술가가 어떤 주의(~ism)을 선택하기까지 미술사의 흐름을 아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임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문학에서도 유효(중요)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랑송 불문학사』가 작가 별로 구분지어 정리하고 있다면 이 책은 현대소설의 등장과 그 이후 주요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주의(~ism)의 변화와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소설의 사회학적인 측면을 더 많이 다루고 있다.
먼저 간략하게 18세기 소설을 정리한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어느 장르보다도 사회의 진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15p) 사회적 환경, 시대적 풍속 묘사, 일상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의 소개와 함께, 정념의 이미지, 행복과 절망을 재현함으로 연극이나 시보다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흡입력과 활력이 있다. 소설이 지닌 사회학이다. 실제로 18세기는 소설이라는 형식이 자리를 잡은 시대이다. 루소의 『신 엘로이즈』를 유례가 없는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한다. 흑색 소설(Roman noir), 연애소설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초상과 관습적 에피소드들을 거론한 후 장르로서 역사소설을 다룬다. 역사소설의 등장은 장르의 혁신으로서 월터 스코트가 빅토르 위고나 플로베르 등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소설을 스탕달로 시작하고 있다. 스탕달의 사실성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작은 실제 사실’을 중요시한 작업은 사실주의적이다. 그가 44세에 발표한 『아르망스』는 문학적 시사성을 띤 작품이다. 주인공을 통해 관찰된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대표작인 『적과 흑』을 소개한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작가는 발자크이다. 그의 작업에서 콩쿠르 형제에서 에밀 졸라에 이르는 서민과 하층민들을 대상으로 한 작업들이 엿보이는데, 『사생활의 장면』, 『창녀들의 영화와 비참』 등에서 그 예를 찾는다.
낭만주의 작가로 조르주 상드를 소개한다. 조르주 상드가 1831년 파리로 와서 자리를 잡을 무렵은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을 내놓을 참이었고, 뮈세는 이제 막 『스페인과 이태리의 꽁뜨』를 발표했으며 스탕달은 『적과 흑』을 발자크가 『상어가죽』을 펴냈다.”(121p) 상드의 소설의 틀을 빌린 그의 연애담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로 털어놓은 작가의 어조를 감지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여성운동적인 요구를 첨가해놓고 있다. 그는 이상주의적인 전원소설도 발표한다. 혁명을 겪고 난 뒤 그의 사상은 발전하고, 이상세계에 관심을 가진다. 조르주 상드의 이상주의는 미래로의 도피라고 평가하고 있다.
“스탕달, 발자크와 더불어 소설이 하나의 장르로 성립되어가고 있는 동안 낭만주의 시인들 역시 소설적인 형식을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129p)했다. 비니와 뮈세가 그 작가들이다.
1836년 뮈세의 『세기아의 고백』은 시 『밤』의 연작을 쓴 시인의 정념에 넘치는 연애 이야기를 옮겨놓은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속내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한 세대의 증언을 담고자 했다. 서정성과 표현성이 강한 상징들이 지배적인 시인들의 소설들은 라마르틴느, 뮈세, 비니, 위고의 낭만주의 작품이다.
“발자크 사후 십년 동안 소설계는 단 하나의 걸작밖에 내놓지 못했다. 그것이 『보바리 부인』이다. 이 변화무쌍한 시기 동안 얼마나 많은 종류의 경향들이 서로 교차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실험들이 이 장르의 새로운 진로들을 예고했던가! …… 발자크의 그림자는 프랑스 소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135p)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와 대립했고 실증주의는 정신주의에 대립했다. 『레 미제라블』은 『보바리 부인』과 『제르미니 라세르퇴』 같은 소설들 가운데 문득 나타난 조화를 깨는 작품이었다. 사실주의 소설가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위고의 소설에는 사실주의적 경향이 작용하고 있었고, ‘사회적’연구와 ‘철학적’ 연구의 요소가 있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레 미제라블』은 서민들 가운데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소설사회학은 이런 책이 프랑스인의 심성이 변화하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연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145p)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 소설의 모델이었다. 발자크는 현대소설의 아버지였다. 플로베르는 그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정비했다.”(150p) 그는 진실성이 깃들도록 고심했다. 플로베르의 방법은 과학적이었다. 플로베르는 자료조사를 중요시하는 유파의 최초의 승승이었다. 에밀 졸라의 실험소설에서 볼 수 있는 방법론이다. 그의 『감정교육』은 실패의 소설이다. 한 세대의 파탄과 한 인생이 서서히 와해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주의에서 자연주의로 옮겨가는 과정에 공쿠르가 자리하고 있다. 1861년에 “우리가 쓰는 소설의 특수한 성격들 중 한 가지는(…) 이 시대에 대한 가장 역사적인 소설이라는 점일 것이다. 우리들 세기의 정신사에 가장 많은 사건들과 실화들을 공급해 주게 될 소설이란 말이다”(177p)라고 공쿠르 형제는 썼다. 그들은 역사에서 소설로 옮겨갔다. 현실에서 채취한 ‘문헌documents’으로부터 소설을 구성했다. 이 구성 원칙은 후에 나타날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소설가들에게서 나타난다. 『제르미니 라세르퇴』는 문학사에 남을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서민들의 파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소녀시절의 극적인 경험, 불행한 임신, 쥐피용과의 불화, 화해, 결별, 고트뤼슈와 맺은 관계, 우연히 만난 사랑, 병, 그리고 죽음. 진짜 자연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자연주의 소설이라 할 수 있”(184p) 다.
에밀졸라는 1865년에 이 『제르미니 라세르퇴』를 지지했다. 에밀 졸라는 ‘문학작품이란 바로 예술가의 비전을 통해 전치(轉置)된 현실이다’라고 문학적 원칙을 설명했다. 그 전치(轉置)는 이성과 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작업은 창조자의 기질에서 유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제르미니 라세르퇴』를 높게 평가했다. 졸라는 젊은 시절에 뮈세를 찬양했다. 후에는 낭만주의를 벗어날 필요를 느꼈다. 하지만 『랑송 불문학사』는 『목로주점』을 낭만주의적 소설로 분류하는 것으로 보아 그런 요소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를 서사적 사실주의라는 챕터로 분류하고 있다.
에밀 졸라는 실험 소설에서 과학자의 방법과 소설가의 방법이 유사한 것으로 비교하고 있다. 1868년 겨울에서 1869년에 이르는 동안 『루공 마카르』 총서를 계획하며, 자신의 소설들 속에서 새로운 과학정신을 보여 주고자 했다. 1867년 『테레즈 라캥』에서 기질의 반응을 연구했고 이 작품들에서는 더 뚜렷하게 환경이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1878년에 루공 마카르 가문의 족보를 발표했다. 그는 그 족보가 이미 1868년에 작성되었으며, 그 이후 자신은 그 족보에 일치시켜 작품을 써왔을 뿐이라고 공언했다. 1969년 라크로아 출판사에 제출한 계획에는 열 권 정도의 소설만이 예정되어 있었다. 1871년 이후의 것인 <소설들의 목록 liste des rommans>은 20여 권을 예상하고 있었다. 한 가문의 박물지이며 한 사회적 시대의 그림으로서의 소설들이다. 자연주의에서 에밀 졸라가 차지하는 무게만큼이나 많은 페이지를 들여 『루공 마카르』 총서의 소설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 프랑스 현대 소설사 분량의 절반 정도 위치에 에밀졸라와 자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일 단 여기서 멈췄다. 에밀 졸라는 『루공 마카르』총서 읽기를 마친 후 다시 정리하기로 했다. 순서적으로 『테레즈 라캥』을 먼저 읽었어야 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잊고 있었던 뮈세의 『세기아의 고백』을 구입했고, 절판된 스탕달의 『아르망스』를 도서관에서 대출해왔다. 무재고 출판판매(POD)를 하는 공쿠르 형제의 『제르미니 라세르퇴』는 주문해서 며칠 전 받았다. 플로베르의 『살람보』도 꺼내놓았다. 지난주에 읽었던 페낙의 『소설처럼』에서도 거론되는 소설들이어서 반가웠다. 미술사, 문학사는 펼치면 읽어야 할 책들이 줄을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