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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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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을 치고 고독한 공간을 만들어 읽어야만 한다. 그의 침묵을 읽어내려면! 어두운 숲은 죽음에 가까이 간 사람의 낯설고 적막함! 빛나는 은유 덩어리! 죽음이 이렇게 빛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고 영원한 빛 가운데 있을 것이란 믿음이 은유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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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 - 세계 미술관 기행 3
다니엘라 타라브라 지음, 김현숙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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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길을 잃는 꿈, 다시 같은 그림 앞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헤매다가 아이들과 만나 웃으면서 잠이 깼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주 오래 전 같기도 하고, 잠시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파리에 루브르가 있다면 마드리드에 프라도가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경험이었다. 오늘날의 프라도 미술관은 명실상부한 회화작품의 보고다. 1819년 '왕실 박물관'으로 문을 연 이후, 왕실과 수도원 소유 작품들의 국유화와 구입으로 회화 소장규모는 압도적이다. 2(3)까지 방들로 이어지는 전시실을 채운 작품들은 경탄을 불러 일으켰다. 프라 안젤리코, 벨라스케스, 고야, 엘 그레코, 무리요,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히에로니무스 보스, 티치아노, 루벤스, 램브란트, 알프레히트 뒤러……. 무지막지한 작품들의 연속, 골라서 보는 것도 벅찬 곳이다. 몇 번을 방문해야 다 볼 수 있을까?

 

미리 공부하고 갔음에도 아이들이 2(3)부터 내려오면서 지도에서 볼 작품을 픽하고 작전을 짜지 않았다면, 0(1)부터 군중들과 함께 움직이다가 마지막에는 지쳐서 놓친 작품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이것도 봐야 돼를 외치며(조그맣게^^) 멈추었고, 작전대로 움직이는 아이들과 헤어졌다가 겨우 따라잡곤 했다. 발바닥이 불이 나는 듯한 통증을 참으며 0(1)까지 도착하는 동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ninas>,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 강하>,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등의 작품들 앞에 조용히 앉아 선생님 얘기를 듣고 있는 열 명 남짓의 유치원 아이들을 자주 목격했다. 딸이 ! 처음으로 부럽다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막내와 달리 미술 감상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둘째도 이번 여행 중 프라도 미술관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프라도 미술관 하나 보기 위해 마드리드에 가도 비용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바르셀로나를 향하는 기차 안에서도,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경외에 가까운 감상으로 본 후에도 여전히 프라도를 아쉬움으로 기억했다.

 

이 책에는 프라도 미술관의 탄생과 왕가와 귀족들의 작품 수집 열정, 역사적인 배경, 궁정화가들과 스페인에 머물던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전시된 중요 작품에 대한 해설과 역사적 배경 설명도 자세히 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 벨라스케스와 펠리페 4세의 관계, 그가 그린 당시 스페인 왕가의 그림 들은 당시 스페인과 프랑스 네덜란드의 역사를 소환한다. 또한 궁정화가였던 고야와 알바공작부인 그리고 고도이의 관계 역시 작품에 대한 해설을 통해 알게 되는 이야기다. 프라도 미술관에 가려고 한다면, 이 책과 함께 스페인 예술로 걷다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스페인 예술로 걷다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다. 서로 보완되는 점이 있다.(나중에 페이퍼로 쓸 예정)


프라도 미술관에는 스페인 미술사의 세 인물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엘 그레코 작품을 위해 전시실로 여러 개의 방이 할애되어 있다. 그리고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품들도 걸려있다. 하루에 다 감상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브레다의 함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고야의 <180853>과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 강하>는 나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았다. 예수님과 마리아의 춤동작과도 같은 팔 모양과 기울어진 몸의 포즈는 시리도록 푸른색과 함께 다른 형태의 '피에타'로 다가온다. 책으로만 공부했던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에서의 소실점은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제단화의 형태로 그려진 히에로니무스보스의 <쾌락동산>의 기괴함은 눈을 돌리고 싶은데 자세히 보게 되는 이중적 감정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여기서 뒤러의 그림 <자화상><아담과 이브>를 만나는 게 얼마나 행운으로 느껴지는지! 인상적이었던 전시실은 고야의 귀머거리 집에서 뜯어온 작품들로 이루어진 검은 그림'들의 방이다. 벽지에 그렸던 작품들이라 훼손이 된 자국이 있다. 여기에 <파묻히는 개>가 있었다. 처음 이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이런 그림을 그렸던 고야는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한참 생각하게 했었다. 개의 절망적인 상황과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던, 그러나 무시무시한 적막만이 둘러싼 그 고독에 전율했었다. 그리고 <사투르누스>도 있었다. 자식을 잡아먹는 그의 눈에 서린 고통과 공포! 몸의 쇠락과 상실의 고통으로 인한 난청(청력상실)을 겪으며 자신을 이 어두운 집에 가두던 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작품들이었다.

 

미술관 안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사진 찍느라 감상에 방해되지 않아 좋았다. 건물 주위에는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무리요의 동상이 서있다. 스페인에서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화가인가를 의미한다. 고야는 공사 중인 입구에 서 있어서 가려져 있었고, 무리요는 패스, 벨라스케스 동상 앞에서 잠시 사진을 찍었다.

1128일 마드리드는 아직 가을이었다. 초록의 상록수들 사이에 낙엽수들이 붉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고, 벨라스케스의 하얀 동상 앞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전시실 벽을 채운 그림들이 떠오른다. 꿈속에서 나는 그 방들을 오가며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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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12-06 0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방금 돌아오셨으니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쓰신 기록이라 더 잘 읽었습니다. 저는 곧 스페인 여행을 할 참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레이스 2023-12-06 06:32   좋아요 1 | URL
아!
그러세요?
제가 다시 설레네요^^
계절은 여기보다 한달정도 늦다고 보면 됩니다.
행복한 여행되시길 바래요~~

새파랑 2023-12-06 0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다녀오셨군요~! 완전 부럽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즐거운 관람이 되셨을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3-12-06 08:16   좋아요 2 | URL

좋았습니다.
넘 바쁘다가 간 여행이라... 마드리드를 넘 짧게 다녀와서... 언제 다시 갈지, 아예 못 갈지 모르지만 마드리드에는 한번 더 가고 싶네요.

호시우행 2023-12-06 0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족여행으로 2008년 스페인에 갔을 때 들렀던 프라다 미술관이 생각나게 합니다. 글 잘 읽었어요.

그레이스 2023-12-12 10:27   좋아요 1 | URL
다녀오셨군요.
다른 계절의 마드리드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3-12-06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루브르에 갔을 적에는
플래시만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
찍어도 된다 했는데...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물론 사진 찍지 말라고 해서 모
두가 안 찍는건 아니었지만요.

프라도 뮤지엄에 다녀 오셨다니
고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아, 나도 가고잡다 에스파냐~!

그레이스 2023-12-06 09:58   좋아요 3 | URL
^^
마드리드 왕궁에서 어떤 남자아이가 사진 찍다가 엄청나게 큰소리로 창피당하는걸 봤어요.
게다가 프라도에는 거의 전시실마다 한사람씩 안내원이 앉아있어서^^
전 사진 못찍게 하는게 더 좋은 듯요.
오롯이 감상만 하다 나올 수 있어서...!

언젠가 꼭 가시길!

페넬로페 2023-12-06 11: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라도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는군요.
여행 다녀오면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오래 전 같기도, 또는 내가 거기 갔다 온 건 맞나, 하는 기분~~공감합니다.
근데 제게 지금 아련한 정취로 더 오래 남아 있는 건 그냥 여행지에서의 공원 벤치, 카페 테라스같은 멍때렸던 공간이더라고요 ㅎㅎ
사그리다 파밀리아, 가고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3-12-06 12:01   좋아요 3 | URL
^^
사그라다 파밀리아!
감동이었습니다.
갑자기 오르간 연주 음악이 울리는 바람에 울뻔했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장소에 있는듯 했지요^^~♡
 

목로주점을 다시 폈다. 어떤 책은 먼저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나 갖고 있던 책을 뒤늦게 읽었을 때 그런 경우를 만나면 아쉬움은 두 배가 되고, 나의 게으름을 탓하게 된다. 벌거벗은 미술관에서 공공 박물관과 루브르 궁전의 개방에 대한 의미는 목로주점의 한 장면을 기억하게 했다.

 

“18세기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근대적 개념의 박물관의 연원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혁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벌거벗은 미술관158p)”고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집권 과정에서 수집한 물품을 전시해서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물품들은 나폴레옹이 점령지에서 가져온 탈취물이긴 했지만, 그것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한 프랑스의 이 열린 박물관은 곧 유럽 각지에 국가 단위의 대규모 박물관이 들어서는 19세기 박물관의 시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양정무 교수는 말한다.(이견이 있다는 것도 인정)

 

1682년 루이 14세는 프랑스 왕궁을 베르사유로 옮기고, 루브르 궁전에는 여러 왕립 기관들이나 협회들 특히 미술 아카데미와 공예 공방이 자리하게 된다. 한편, 왕실 수집 미술픔의 수장고 역할도 하게 된다. 1725년부터 루브르의 살롱 다폴롱(Salon d’Apollon)‘이나 살롱 카레(Salon Carré)‘에서 살롱전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 살롱전은 국가적 이벤트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 4년 후인 1793, 프랑스 정부는 이 공간을 국가 소유의 미술품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공공 미술관으로 모든 시민에게 개방한다.


구체제의 심장이었던 왕궁을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개방한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고, 이곳을 과거의 지배층으로부터 몰수한 미술품으로 채운다는 것도 놀라운 결단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미술관으로 개방된 루브르 궁전의 회랑을 걸으면서 새로운 세계가 왔다는 것을 충분히 느꼈을 겁니다.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게 위해 건설된 웅장한 회랑이 이제 시민들의 공간이 되었고, 지배층만이 누려왔던 미술품들을 직접 보고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겁니다. 루브르 이전에 세워진 유럽의 초기 미술관들도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어느정도 예견했지만, 지배층이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들의 주도하에 확실하고 극적인 변화로 이끌어낸 공이 바로 루브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벌거벗은 미술관161~163p)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서 제르베즈와 쿠포의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함께 하기로 계획했던 파리 시내 산책은 폭풍우로 인해 무산된다. 기왕에 옷까지 차려입은 그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향한다. 색색의 우산을 받쳐 든 그들의 행렬은 행인들에게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제공해 주었지만, 지나간 시대 왕궁을 향하는 빈민가 사람들의 행진은 시대적 은유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

 

루브르에 도착한 그들은 이어지는 살롱들과 수많은 그림들 앞을 차례로 지나간다.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는 그림 앞에 잠시 머물렀을 뿐,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아폴론 관에 도착한다.

 

아폴론 갤러리에서 무엇보다 하객들을 감탄하게 만든 것은 그곳의 바닥이었다. 장의자의 다리가 비치는 바닥은 거울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르망주 양은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어 눈을 감았다. 모두들 고드롱 부인에게 조심조심 발을 떼어놓으라며 주의를 주었다. 마디니에 씨는 일행에게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금박과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목이 뻐근하게 아팠고, 뭐가 뭔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는 살롱 카레로 들어가기 전에 창문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샤를 9세가 민중을 향해 총을 발포한 발코니입니다.”(목로주점1126p)”

 

일행은 <가나의 혼인잔치> 그리고 <모나리자> 앞에 머무른다. 그들의 감상은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여전히 계속 이어지는 그림들, 또 그림들, 여러 성인(聖人)들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표정의 남자와 여자들, 온통 시커멓게 칠해진 풍경들, 노랗게 변해버린 동물들, 강렬하고 요란한 색채들로 이루어진 인간과 사물의 뒤엉킴, ……수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예술과 고대인들의 섬세한 소박함, 베네치아인들의 화려함과 네덜란드인들의 풍성하고 빛나는 삶이 무지를 드러내는 어리둥절한 눈빛 앞에서 차례로 지나갔다. (목로주점1128p)”

 

그들은 살롱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이곳저곳을 헤매며, 지루한 행진을 한다. 출구를 찾지 못해 하마터면 갇힐 뻔한 그들은 폐관을 알리는 경비원의 안내로 루브르의 뜰로 나온다.

 

생애 처음으로 박물관이란 곳, 방들이 이어지는 왕의 궁전에서 길을 잃는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파리 서민의 생생한 관람 경험이란 생각이다. 문화의 근대적 정의(定義). 그럼에도 이 장면에 가슴이 뭉클했다. 결혼식 주인공들과 하객의 행렬이 루브르의 작품들 앞에서 행위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작품 안에 남겨진 에밀 졸라의 체취다. 비평가, 예술가들의 친구, 후원자인 그는 자신의 작품 안에 미술의 이미지들을 새겨 넣었다.

 

벌거벗은 미술관의 저자와의 만남이 동네 도서관에서 있었다. 주제는 '루브르 박물관 인문 여행'. 루브르의 역사와 건물의 구조와 수집품들에 대한 개관, 각 전시실 작품들과 프랑스 역사를 버무린 듣기 편하고 기분 좋은 강의였다. 강의를 들으며, 못보고 지나친 것들이 너무 많았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시 또 가볼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꼭 봐야할 작품 목록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돌아와서 관련된 책들을 뒤적거렸다.


저자의 '난처한' 시리즈도 좋지만, 하나 소개하자면 상인과 미술이다. 사인받으려고 책을 내밀자 처음 쓴 책이라고 반가워한다. 그러면서 "재미없지 않아요?" 하는데, 물론 난처한 시리즈나 벌거벗은 미술관처럼 쉽고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웠다.난처한 미술이야기 6권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것 같기는 하다.


딸과 함께 한 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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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15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상인과 미술>이 탐나서 구매하려고 보니 품절로 뜨더라구요. 그래서 중고로 구매하려고 보니 가격이 ㅎㄷㄷ
그리고는 잊혀졌는데, 그레이스님이 다시 일깨어주시네요..^^
벌거벗은 미술관은 여러번 눈에 밟혔는데...읽을만 한가요? 이런 미술관 시리즈 관련 책은 미술관련 저작자글이 꼭 내더라구요..그래서 관심이 뚝 떨어졌다는...거의 유명한 그림의 되새김질인데...이제는 좀 거시기하더라구요. 그래도 쌈박한 글을 만나면 반갑지만...그런 비율이 좀 적은지라...그레이스님의 벌거벗은 미술관이 괜찮다면 저도 구매해서 좀 볼까 합니다..ㅎㅎ

근데 <목로주점>은 읽었는데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아요. 그냥 좀 재미없었다는 인상은 강하게 남아 있는데...흠..^^;;

그레이스 2023-11-15 10:30   좋아요 1 | URL
ㅎㅎ
벌거벗은 미술관 재미있어요.
학예사 시험 준비 중인 제 딸도 저도 하루 정도 걸려 읽은 책이라 yamoo님 난이도가 어떠실지 모르겠어서... 에잉 넘 쉽다 그러실 수도 있지만, 암튼 ‘난처한‘시리즈 난이도로 생각하시면 좋을 듯요.

재밌고 쉽지만 사이사이 짚어주는 역사와 미술사의 중요한 장면들 중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yamoo 2023-11-15 16:28   좋아요 1 | URL
오~~ 그렇군요! 벌거벗은...구매해야 해야 할듯하네요..
목로주점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 될 듯해요..^^;; 전혀 기억나지 않으니...

근데 따님이 학예사 시험 준비중이라니...헐~~ 대단합니다!!

레삭매냐 2023-11-16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두요 !

20년 전에 첨 루브르 갔을 적에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 탕이었답니다.

뮤지엄 중앙을 장식하고 있던 니케
여신의 조각상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어디선가 만난 님프 조각은
정말... 그 시절의 사진들을 좀 찾아야
쓰겄는디... 당최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절친이 그 시절 사진들 찾아다가 블
로그에 올리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했더니만 소설
을 쓰라고 하대요 ㅋㅋㅋ

모나리자는 정말 쬐그매서 감흥이...

그레이스 2023-11-16 18:20   좋아요 2 | URL
ㅎㅎ
모두 모나리자 쪽으로 몰려가서 다른 전시실은 한가하다는 ...!
담번에 가면 다른 전시실도 더 보고, 저녁때 박물관 카페에 머물러 보고도 싶어요^^

서니데이 2023-12-05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12-06 10:15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리커버)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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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 전시를 함께 관람한 딸은 그림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벽과 벽, 지붕과 지붕, 창문들, 단순화된 사각의 면들로 겹쳐진 화면들은 흡사 큐비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초기 프랑스에서의 풍경들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빛이 비치는 면과 그늘이 지는 반쪽 얼굴로 표현된 자화상에서 후기의 단순화된 입체들을 예감하게 된다. 큰 화폭에 공간감을 없앤 단순한 기하학적 면들의 겹침과 그 사이의 공간을 생략해버린다. 빛이 비치는 곳에는 공간감을 없애고 어두운 곳은 오히려 미지의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아마도 이런 표현 때문에 답답함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계단>1949


어두운 숲을 향해 오르거나 어두운 바깥으로 열려있는 문을 향해 내려가는 계단은 그 어둠 때문에 두려워 주저하게 되는 마음을 읽게 된다. 빛은 모서리 반대쪽에 어둠을 만들어내면서 입체를 이룬다. 그 명암이 만들어낸 벽체가 가둔 공간은 사람들의 외로움과 갈등과 지친 하루를 감추지만, 그것들은 무심히 던진 시선에 의해 포착된다. 한 공간 안에서 서로에게 타자가 된 두 사람, 서로에 대한 마음을 참고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그들을 보며 짙은 외로움을 느낀다. 빛이 어둠을 만들 듯 도시화는 소외된 공간을 만든다. 수직으로 확장하는 다리와 철로는 원래 있던 주택을 제자리를 잃은 모습으로 고립시킨다.

 

호퍼는 시간이 만들어낸 빛을 그리고 있다. 아침과 낯의 태양 빛, 노을, 밤의 불빛 등. 그러나 그의 빛을 그리는 그림 안에는 반드시 짙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공간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공간은 두려움, 불안을 전한다. 빛이 비치는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고독하고 지쳐 보이고, 그들은 마음을 감추고 있어 긴장감이 흐른다. 따뜻한 빛 속의 나른함이 왜 그리 사무치게 외로운지. 화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하지만, 오히려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 이율배반에 빠진다.


<호텔의 창>1956


이 책은 시인인 마크 스트랜드가 호퍼의 그림을 감상한 내용들로 이루어져있다. 호퍼의 대표적인 그림들과 그에 대한 해석과 감상들이다. 그는 호퍼의 방들은 욕망의 침울한 안식처(105p)”라고 표현한다. 벽에 가려진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없지만 관찰자의 눈에 포착된 사람들의 모습에서 추측만 할 뿐이다. 텅 빈 방안에 깊숙이 들어 온 빛은 그 시선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시 텅 비어있는 방처럼 엄청난 무게의 침묵만을 전할 뿐이고, 불안과 고독은 커져간다.

 

밤의 레스토랑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나이트호크)과 철로 옆의 집(철로 변 집)을 바라보는 관찰자, 도로나 철로는 그가 지나가면서 그들을 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마도 도시에서 우리의 관계는 이런 것이 아닐까? 그저 지나가면서 눈에 비친 아무 관계도 아닌 관계.

 

마크 스트랜드가 이 책을 나이트 호크에서 시작해서 빈방의 빛으로 끝내고 있는 이유를 짐작해본다. 지나가면서 언뜻 바라본 불 빛 속의 네 사람, 그들의 포즈와 표정이 자아낸 분위기 때문에 시선을 거둘 수 없다. 거기까지다. 들여다볼수록 텅 빈 방처럼 침묵하고 있어 알 수 없어 고독은 더욱 커져만 간다.


<나이트호크> 1942

<빈방의 빛> 1963

 


작가의 감상을 가끔 펼쳐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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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05-01 07:39   좋아요 3 | URL
큰 화폭에 공간감을 없앤 단순한 기하학적 벽들의 겹침? 빛이 있는곳에는 공간감을 줄이고 어둠이 있는곳에는 미지의 공간을 남겨둔것 같은 표현에서 저도 그런 느낌을 느낀것 같아요.
그란데 오히려 작가의 삶에서 그 절절한 고독을 발견하지 못하면 감상을 깨뜨릴것 같고, 또 발견한다면 그것도 이입이 되어서 방해가 될것 같은? 생각요
아이러니 하네요^^
전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5-01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호퍼 이야기 나오면 꼭 부인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름은 잊어버려서 찾아보니 조세핀이군요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보니 조세핀도 그림을 그렸지만, 자기 그림보다 남편이 그림을 그리게 도와줬다는 이야기였어요 두 사람이 다 그림을 그렸다면 둘 다 잘 안 됐을지... 그건 모르는 이야기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3-05-01 07:42   좋아요 0 | URL
조세핀의 영향에 대해서도 알죠!
그의 작업 중에 수채화는 그녀의 영향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많은 포즈와 장면 연구에 직접 모델이 되기도 하고, 조언을 했다는 얘기도 읽었습니다.
그려도 재능있는 화가였다고는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5-01 07: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퍼의 그림은 주체가 없고 객체들만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고독과 우울, 불안감이 느껴지는데 호퍼가 누구인지 궁금하면서도 깊은 내막은 알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들고…^^ 전시 좋으셨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5-01 08:04   좋아요 1 | URL
저랑 비슷한 감상을 하시네요! 감동!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DYDADDY 2023-05-01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호퍼의 그림은 단편수상집의 표지에 있는 것을 처음 보았어요. 밖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에 담담한 그리움이나 고독이 느껴져 인상이 깊었던 그림이었어요 그 이후에 몇몇 작품을 보았는데 자연을 배경으로 하든 도시를 배경으로 하든 피사체를 객관적으로 표현하지만 그 안에 깃든 쓸쓸함이 느껴져 종종 보게 됩니다. 따님은 아직 그런 감정을 받아들이실 나이가 아니라서 답답하다고 느끼셨는지도 모르겠어요.
전시에 가보고 싶지만 여건상 힘들어 그레이스님의 감상으로 대신해봅니다.

그레이스 2023-05-01 08:55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런 감상까지 하기에는 어리죠^^
‘어려서 그래!‘ 라고 말은 안했지만요!
나름 답답함이란 표현도 나름 잘 본 거라 생각했구요. ㅎㅎ

이 전시는 특히나 날짜랑 시간 예약을 하고 꼭 그 시간에 들어가야 해서 조금 까다롭긴 했어요.
줄서고 기다리느라 감기 들 뻔 했어요 ㅠ

DYDADDY 2023-05-01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식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이성으로 획득이 가능하지만 문학이나 예술은 감정으로 획득해야하는 부분이기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따님이 ‘어려서‘라는 부정적 의미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조금 부러운‘의 느낌이랄까요. ㅎㅎㅎ 많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쓴 경험을 했다는 것이니까요.
전시관에 많은 사람이 북적이면 차분하게 감상하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날씨에 웨이팅룸이라도 있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드네요. 생각보다 봄이 너무 길어집니다. 요즘 마스크 해제 후에 병원이 성시이니 그 줄에 서지 않으시도록 건강 유의하시기 바라요.

그레이스 2023-05-01 11:18   좋아요 1 | URL

저도 부정적인 느낌으로 읽은건 아니었는데,,, 그 아이 나이 대로 감상했다는 걸로 알아들었어요^^
저도 딸이 부러웠어요 ㅋㅋ

아!
전시와 관련된 미술관의 진행에 아쉬움이 있긴 했습니다^^

새파랑 2023-05-01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그레이스님 리뷰 보고 샀는데 ㅋ
호퍼 작품이 세계문학고전 표지로 많이 쓰여서 궁금하더라구요 ^^
저도 전시화가보고 싶습니다 ㅜㅜ

그레이스 2023-05-01 14:35   좋아요 1 | URL
아!
갑자기 책임감 확 느끼네요 ㅋㅋ
저는 좋으시리라 기대합니다~^^
아직 여유 있으니 기회가 있으시길 바래요 ~

가필드 2023-05-01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시회 다녀오신 분들이 다들 좋으셨다 하셔서 기대감이 있네요 그레이스님 리뷰 보고 저도 가기전 읽고 보고 싶군요 🤗

그레이스 2023-05-01 17:50   좋아요 1 | URL
가필드님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래요~~

초란공 2023-05-01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갖고 있는 책인데... 읽지 않았군요 ^^ 그림을 볼 때 느껴지는 마음 속 어딘가 휑한 느낌을 작가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기대가 됩니다~! 전시는 어떠셨나요?

그레이스 2023-05-01 21:41   좋아요 1 | URL
전시 좋았어요
다만 나이트호크는 스케치만 와서 그게 조금 안타까웠어요 ㅠ
그래도 호퍼의 유명작들과 초, 중, 후기 각 단계 작품들을 볼수 있어 좋았어요
그의 에칭을 감상한게 좀 특별했습니다.

초란공 2023-05-01 21:4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나이트호크가 안와서 좀 아쉽네요. 그러고보니 제 북플 대문 이미지도 나이트호크인게 생각났습니다^^ 여러 작가들이 호퍼의 책을 읽고 쓴 글을 모은 <빛 혹은 그림자>란 책도 있는데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아내는 이 책이 재미있었다고 해요.

그레이스 2023-05-01 21:45   좋아요 1 | URL
아!
북플 대문 이미지!~♡
저도 그 책 확인해봐야겠어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집이네요
재미있을듯요

yamoo 2023-05-04 0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그림이.. 전시된 그림을 사진 찍은 것이 아니라 해당 그림 이미지를 가져 오신거 같아요. 사진을 절대 못찍게 하더라구요. 1층 제외하고는..

전 거의 모든 그림을 도록에서 봐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뭐 괜찮았지만...1층 호퍼가 그린 일러스트들은 사진을 안찍을 수 없었습니다. 호퍼의 일러스트는 호퍼에 관한 책 중에서 도록에 실린 일러스트가 거의 없기에 이번 호퍼 전시는 무척 좋았던 기회였습니다~~

그레이스 님의 전시 후기를 보니 완전 색다른데요~~ 마크 스트랜드 책은 그냥 치나쳤었는데 꼭 사서 봐야 겠네요!!

그레이스 2023-05-04 09:49   좋아요 0 | URL

저도 1층에서만 찍었습니다.

위에 올린 그림은 제 책에서 직접 찍기도 하고 이미지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보시면 차이를 아실듯요 ~^^

딸이 호퍼는 일러스트 작가로 더 좋다고 하네요.^^

레삭매냐 2023-05-05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마크 스트랜드 책
사둔 것 같은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호퍼의 그림 저도 마음에 들더
라구요.

그레이스 2023-05-05 08:41   좋아요 0 | URL
^^
찾으시길요~
휴일이니 여유있게 !
 


18~19세기 한국 미술을 공부하기 전 전통미술의 상징'을 먼저 배우고 있다(옛그림을 보는 법』으로). 서양화로 말하면 도상학인 셈이다. “그림은 소리 없는 시이고,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라고 했던 곽희나 그림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고 했던 소동파의 말 속에 담긴 시화일체사상(詩畫一體思想)과 기원의 상징이 된 생물과 기물들을 담은 그림 감상법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19세기까지 화가들에 대해서도 익히게 된다


18세기 후반 광통교 일대에는 서화판매점들이 생겼다. 왕실과 사대부들이 향유하던 미술문화가 서민들에게까지 확장되면서 민간에 미술시장이 만들어졌다. 술을 좋아했다는 오원 장승업(1843~1897)이 광통교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고 다녔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지역에서 미술품 거래가 활발했음을 알려주는 일화다.

광통교에 서화 가게가 생기게 된 것은 그 근처에 있던 도화서의 존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19p)”

도화서 화원들이 궁궐 외로 주문을 받았던 양반들은 대부분 북촌에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북촌과 광통교를 잇는 인사동이 서화골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우연히 읽게 된 이 경성의 화가들근대를 거닐다』 두 권(북촌편서촌편)은, 전통 미술 계보를 잇고 서양화를 받아들인, 근대 화가들의 이야기를 북촌과 서촌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풀어낸 책이다.

 

북촌과 서촌은 미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북촌은 조선시대 명문 집안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고, 서촌 지역은 주로 역관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곳이고, 일제강점 이후 궁궐이나 총독부와 관련 있는 신흥 부자들이 살고 있어서 경제적 여유가 있던 지역이었다. 이들은 미술계의 고객과 후원자 역할을 했다. 점차 많은 미술가들이 북촌과 서촌에 몰려들었고, 화숙(畵塾)들이 생겨났다.

 

종로구 청진동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은 오원의 적통을 잇는 화원이었고 새로운 미술운동의 중심에 있던 동양화단의 좌장(23p 북촌편)”이었다. 그는 그의 집에 경묵당(耕墨堂)’이라 이름을 붙이고 개인 화실을 만든다. 그의 화실에서 3년을 배웠던 고희동(1886~1965)은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한 최초의 서양 화가다. 안중식은 1911년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미술교육기관인 서화미술회를 이끈다. 서화미술회출신 이용우(1902~1953), 오일영(1890~1960), 이한복(1897~1944), 김은호(1892~1979), 박승무(1893~1980), 최우석(1899~1964), 노수현(1899~1978), 이상범(1897~1972) 등은 훗날 근대화단의 중심인물들이 된다.

 

저자는 북촌과 서촌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화숙을 열고 창작활동을 했던 동양화가와 서양화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지석영의 형 서화가 지운영, 김정희의 제자 오경석의 아들인 전각의 명인 오세창, 마지막 내시 출신화가 이병직, 임금의 초상을 그린 인물화의 귀재 김은호, 산수화의 거장 배렴, 월북 작가 중 북에서도 명성을 누린 이석호, 김기창, 장우성 등은 북촌편에 소개되고 있는 작가들이다. 그 중에서도 춘곡(春谷) 고희동은 끝까지 하지는 못하고 동양화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서양화의 첫발을 내디딘 작가로 이름을 알린다. 이병직의 얌전하고 단정한 그림과 글씨는 시선을 끈다. 스승 김규진의 필치를 벗어나 자신만의 기법을 갖춘 그림들이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미술계도 새로운 구조로 재편되는데 서양화에는 김관호, 이인성, 오지호, 동양화에는 안중식과 조석진의 제자들로 김은호, 이상범, 이한복, 이용우, 등이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이름을 내고 있었다. 순종의 어진을 그린 천재화가 이당 김은호는 권농동 낙청헌화숙을 연다. 17세의 김기창이 찾아간 곳이 이 낙청헌이다. 그 후 그는 낙청헌을 떠나 도쿄미술학교에서 유학한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화가들이 중앙고와 휘문고를 거쳐 도쿄미술학교로 유학을 했다. 그들의 등용문은 조선미술전람회였다. 이 전람회 주최는 총독부였고, 재능 있는 화가지망생들을 지원했다. 이때 설립된 미술가협회와 교육기관 역시 일본의 후원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전람회에서 요구하는 그림의 주제 역시 식민 통치의 방향에 적합해야만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낙청헌출신 장우성의 <귀목>이란 그림을 들 수 있다. 1935년 제 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작품이다. 식민지 한국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조선총독부가 주창한 향토색을 구현한 전형적인 작품이다. 진취적 기상보다는 원초적 풍습과 소박한 풍경을 담은 그림을 통해 미개함을 주지시키려는 의도를 담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같은 낙청헌출신 백윤문은 일본인을 비하하는 듯한 그림을 출품해서 불려가 조사를 받고 기억상실증에 걸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서촌편에서는 서양화가들이 많이 소개된다. 아무래도 역관들이 자리 잡았던 동네라는 성격과도 통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싶다. 이 서촌 편에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내용은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동문 나혜석, 천경자 두 사람의 여류작가들과 월북 작가들에 대한 소개다. 북촌편에서 박래현이 김기창 편에서 잠깐 소개된 것이 아쉬웠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경도되어있던 시절 예술계에도 광복 후 자신의 사상을 분명히 드러낸 작가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정현웅, 동양화가 이여성 서양화가 이쾌대 형제 들이 그 예다. 북촌편에서 소개되었던 이석호와 달리 그들은 월북이후 화가로서 공명(功名)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경복고등학교는 많은 서양화가들의 산실이 되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2고보였던 이 학교에서 가르쳤던 야마다 신이치와 사토 구니오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야마다 신이치는 조선미술협회를 설립한 일본인 3인 중의 한사람이다. 야마다 신이치의 뒤를 이어 부임한 사토 구니오의 지도를 받아 화가로서 성공한 인물들이 유영국, 장욱진, 임완규, 김창억, 이대원, 권옥연 등이다. 서촌을 중심으로 활동한 서양화가로는 미국유학을 다녀온 장발(張勃 1901~2001), 프랑스에 유학한 이종우, 도쿄미술학교 출신 이제창 ·공진형 등 이다. ‘옥동패라 불린 이승만, 김중현도 서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누하동, 사직동, 옥인동 등에 살던 그들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교류했다.

 

추사 김정희를 추앙해서 추사체를 구현한 이한복, 김정희의 세한도를 되찾아온 손재형은 오늘날 추사 연구에 큰 기여를 한 동양화가들이다. 이상범이 누하동에 청천화숙을 열고, 많은 제자들과 동양화가들이 서촌으로 모여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근대미술사에도 역시 우리 역사와 함께 걸을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의 삶도 함께 흔들리고 상처와 불운으로 쓰러지고 잊혀지기도 했다. 그림과 글씨에 탁월했던 이완용의 작품, 총독부의 지원을 받은 많은 화가들의 작품과 삽화들을 보면 예술적 재능에 대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분단과 전쟁 속에서 북으로 향했던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침묵과 저평가, 봉건적인 가부장제에서 비운의 삶을 마감한 여성 예술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작품을 그려냈던 그들의 운명과도 같은 열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집들은 허물어지고 자취는 사라져도 작품들이 남았다. 그들의 작품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평가를 받는다.



한국근현대미술전 관람을 가기 전 읽은 두 권의 책은 작품을 감상하는 다른 시선을 갖게 해주었다. 근현대미술사의 맥을 짚게 해주었고, 이번 전시 5개의 섹션 1.우리 땅, 민족의 노래, 2.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3.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4.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 「5.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중 앞의 3개의 섹션을 장식하고 있는 화가들(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이인성, 구본웅, 이쾌대, 나혜석, 천경자, 박래현, 김환기, 유영국 등)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깊이를 더하게 해주었다.

이쾌대 <자화상>

이쾌대<군상>

이번 전시에서 오래 머물렀던 작품들은 두 번째 섹션 분단미술사에서 족적을 남긴 변월룡과 이쾌대의 작품이다. 변월룡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때 북한의 미술계를 이끌었던 화가다. 이쾌대는 형과 함께 월북 작가로서 가장 저평가되었고, 언젠가 재평가되어야 할 주요작가라는 인식되더니, 급기야는 가장 중요한 근대작가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의 대표작 <자화상><군상>이 전시되었는데 그런 평가들을 납득하게 한다. 그가 거제 수용소에서 보낸 편지 글귀를 읽으며, 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들, 그 암울한 현실 속에서 빛나는 그의 작품 속 인간의 모습과 메시지가 안타깝기만 하다.

 

5관까지 갔다가 아쉬운 마음에 다시 거슬러 올라가 오래도록 감상한 작가가 박래현이다. 함께 전시되어있는 나혜석이나 천경자의 작품들이야 워낙 자주 만났었고, 그들에 관한 책들도 많이 접했었다. 박래현은 김기창에 가려서 저평가된 작가라고 한다. 부부라 그런지 그림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그들은 작품 변화의 흐름도 함께 했다. 작가의 앵포르멜, 비구상 작품들을 보며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납득하게 되었다.

박래현 <이른 아침>


<박래현의 비구상 작품들>


나는 근대사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여전히 그 역사의 숙제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그 정서를 공유한 자의 인지상정이 아닐까?




보고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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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4-24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노 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화숙이란 단어가 좋게 들립니다...

그레이스 2023-04-24 20:06   좋아요 1 | URL
화숙은 도제식으로 그림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라고 하네요^^

그레이스 2023-04-25 06:26   좋아요 2 | URL
아!
백윤문의 <분노>는 장기판을 뒤엎는 사람이 일본 의상을 입고 있어서, 일본인 비하의도가 있다해서, 고초를 겪고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하네요 ㅠ
오랫동안 작품을 그리지 못하다가 말년에 돌아왔는데 예전 실력으로 회복되지 못했다고 해요.

페넬로페 2023-04-25 22:02   좋아요 2 | URL
저도 ‘화숙‘이란 단어가 좋게 들리네요.
이 단어에 이런 뜻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그레이스 2023-04-25 22:07   좋아요 2 | URL
~♡
저도 화숙이란 단어 뜻 처음 알았는데, 그곳에 달린 이름도 너무 좋았어요.
~!^

서곡 2023-04-24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쯧쯧쯧 설명 감사합니다~~

가필드 2023-04-25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한국근대미술전 다녀오셨군요
책 정리도 잘 해주셔서 보기전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될거 같네요 ^^

그레이스 2023-04-25 07:45   좋아요 1 | URL

마침 좋은 책을 읽고 있어서,,, 얼리버드 예매를 해놓긴 했었는데, 다녀오니 읽고 가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4-25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감상기 잘 읽었어요. 이쾌대나 박래현에 주목이 가네요.
책과 전시까지 한번에... 일석이조의 효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짬을 내서 다녀오고 싶어졌어요!

그레이스 2023-04-25 13:00   좋아요 2 | URL
전시도 좋았구요
미술관옆 카페에서 몽촌호 바라보면서 커피 한잔 하는것도 넘 기분 좋았어요^^

yamoo 2023-04-25 1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대미술 전시....이거 어디서 하나요? 설에서 하면 주말을 이용해 보러가야겠어요!

귀한 후기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3-04-25 19:13   좋아요 1 | URL
소마미술관이예요~~
8월27일까지 합니다^^

yamoo 2023-04-27 13: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희선 2023-04-26 0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북으로 간 사람은 잘 모르기도 하네요 작가도 그렇고 화가는 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있군요 여성 작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니... 박래현 그림 좋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3-04-26 07:49   좋아요 1 | URL
예!
저도 박래현 그림 찾아보게 되네요^^

서니데이 2023-04-26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시를 보러 가기 전이 미리 한번 예습하고 가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대충 보고 빨리 지나가게 되더라구요.
옆에서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서 가는 것도 좋지만, 시간 여유있게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4-26 16:34   좋아요 1 | URL

오늘 춥네요 ㅠ

페크pek0501 2023-04-27 16: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많은 공부가 되는 페이퍼입니다. 페이퍼를 읽은 저도 공부가 됐는데 여러 책을 읽고 이 페이퍼를 작성하신 그레이스 님은
더 많은 공부가 되었겠습니다. 한 분야를 파는 공부의 매력이 퐁퐁~~ 느껴집니다. 저도 열공하고 싶은 마음이 솟습니다.^^

그레이스 2023-04-27 16: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파는 것까지는 못하고 몇일 붙들고 있다 쉬었다 다시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페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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