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다르고 플롯이 다른 책들을 읽고 비슷한 감상과 결론을 내릴 때 나는 혹시 매너리즘에 빠졌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선택하는 책들이 다 비슷한 주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무슨 책을 읽어도 같은 주제로만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일한 주제에 갇혀있는 것은 실천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아님 그 주제는 인간의 오래된 질문일까? 오래 전이든 현대이든 많은 작품에서 나는 같은 질문 앞에 멈추고 만다. 독자인 나는 모든 시대의 작가들과 함께 같은 질문 앞에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타임루프 안에 갇힌 듯하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와 카프카의 의 주인공들은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백치의 미시킨 공작은 불우하게 태어났다. 좋은 후원자를 만나 간질 발작과 심리 치료를 위해 스위스에 머물다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을 백치라고 소개한다. 스스로를 백치라 말하는 미시킨 공작의 이 정체성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그것이 경험을 통해 외부로부터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귀족들은 미시킨을 향해 정중한 태도를 보이나 그 예의를 갖춘 말에는 조롱을 가득 담고 있다. 미시킨이 자신의 간질 발작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말하는 내용은 독자에게는 연민을 자아낸다. 그러나 소설 속 청자들은 오히려 비웃음으로 대한다. 아마도 이런 반응은 도스토옙스키가 경험한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이 질병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독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미시낀은 무언가를 지나치게 민첩하고 섬세하게 이해하고, 또 그것을 기막히게 잘 전달할 줄 아(백치18. 141p)”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한다. 사람들의 갈등과 욕망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선의를 발견하고 정직하게 접근한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의 곤란을 해결해주려고 한다. 그의 순수함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당혹감을 일으키고 반감마저 갖게 하는 듯 보인다. 그들은 욕망과 세속적 기준으로 그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치정극 같은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러시아의 귀족계급의 몰락과 철도와 같은 문명의 발달,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한 사회에 들어온 인물 미시킨이 환대받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배제되고 추방당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욕망이 목격되고 위선이 드러난다. 미시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탐욕이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백치를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집필했다. 그 집필 기간 동안 첫딸이 태어났고 4개월 만에 죽었다. 돈에 쫓기던 시기여서 잠시 중단했던 작업도 다시 재개해야만 했다. 그는 스위스를 떠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작품을 완성한다. 아이를 잃은 도시는 그에게 얼마나 잔인할까? 더구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글을 계속 써야만 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처럼 종일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글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그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적대감을 느꼈으리라.

 

카프카의 주인공 K는 측량사로서 고용되어 성()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고 간 일자리는 없고 성주나 성의 일을 담당하는 관료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는 그 성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한다.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성의 관청은 규칙과 절차로 운영되지만, 그 체계는 모호하고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K는 관청의 관리인(클람 등)과 접촉하려 하지만, 방식은 간접적이고 불확실하다. 그와의 사이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관리들은 그와 관청과의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한다. 그를 소외시키고 있는 이 관료사회의 부조리는 깊고 소외를 더욱 강화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그 성의 주민들도 그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K는 그 사회에 환대받지 못하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밀려난다.

 

카프카에게 은 통과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진, 절망적인 장애를 의미한다. 그 앞에서 존재는 기다린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이다. 에 나타난 이 소외의 부조리는 견고한 관료주의라는 문턱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작가 자신이 마주해야 했던, 이 세계의 닫힌 문이다.

 

K가 이 성에서 욕망하고 시도한 것은 측량사로서 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일은 학교에서 청소와 보조로서의 역할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는 것이 실존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됨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요구와 개인의 욕망이 부딪히는 지점 중 하나다. 미완성인 이 소설에서 K의 기다림이 끝났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부정적 전망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의 실존을 부정하는 공동체의 부조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세계(국가, 사회)로부터 어떤 소외의 경험을 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타자들이 기다림과 같은 상황에 놓인 대상은 무엇이고, 무시된 욕망은 무엇일까?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이런 소외를 경험하는 우리 사회 타자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계급과 배제된 존재의 독백이다. 독백을 듣는 독자로서 내가 깊이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은 나 역시 같은 계급이고 마음속으로 같은 독백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대화와 생각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욕망과 그 욕망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자본주의가 만드는 계급과 권력(홈파티」 「숲속 작은 집), 부동산 현상과 계급 간 격차의 심화(좋은 이웃, 빗방울처럼), 그로인한 실존의 문제와 존재의 고독(이물감, 레몬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에 관해 들여다보게 한다.

 

, 아파트, 부동산으로 이제 우리는 여러 계급의 그들을 만들어 냈다. 욕망하고 기다리고 배제됨은 그들 때문이라는 원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의 소통할 수 없는 언어를 갖고 있다. 자본 정신에 의해 의미가 만들어지고 특정한 계급끼리만 유통되는 언어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폐지상자에 넣은 남편과 이 책을 집어올려 들춰보던 화자의 마음이 공명하며 나에게 전해져 온다. 그 감정의 실체는 치솟는 아파트 값에 의한 추방에 대한 것이 아닌 그 동안 붙들고 있던 신념을 잃어버린 상실감이다.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라고 생각했던 신념!

 

나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가? 아님 내가 이상한가?

나는 자발적 타자인가, 소외당한 타자인가?

 

조금 우울했지만, 사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 신념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같은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찾는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기도한다. 세상이 변하길!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6-02-1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이라면 역시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죠. 몇년 전에 카형제들 읽고 한참 되었는데, 책소개 동영상에서 백치에 대한 소개가 있더라구요. 그래, 다음은 백치야! 했는데 그레이스님 서재에서 <백치>를 만나네요. 저의 다음 픽은 백치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시니어들 모임에서 독서토론을 진행해본 적이 없어 조금 걱정이 되었다. 분명 난이도가 저마다 각각일 테고 기준을 어디에 두고 준비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복지관 담당자는 현장에서 함께 읽도록 한 권을 여러 번에 나눠서 진행하도록 요청했다. 큰 글자 책을 무료로 나눠주고 함께 읽기에 적당한 문학을 골라달라고 했다. 분량과 큰 글씨 책이 상위 기준이 되어 버렸다.

노인과 바다로 정하고 나는 나 나름대로 헤밍웨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분량을 정해서 1시간 반 동안, 읽고 한 두가지 정도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기에 다른 이야기를 하긴 힘들겠지만, 강의든 독서 모임이든 텍스트가 정해진 후 작가와 다른 작품들과 배경이 될 만한 책들을 읽고 소개하는 게 오랜 습관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연결 독서를 했다. 이 기회에 헤밍웨이를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1, 2차 세계대전, 그리스-터키 전쟁,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에 참전했었다. 20여개의 나라를 옮겨 다녔다. 그의 젊은 시절은 파리에서 지냈다. 그는 파리에서 사랑을 하고 가정도 갖고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었다. 그가 인정한 작가로는 제임스 조이스나 에즈라 파운드였다. 조이스는 그가 비난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하나였다고 한다. 또한 에즈라 파운드와는 말년까지 애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거트루드 스타인이나 피츠제럴드와의 교제는 존경의 대상보다는 친구나 경쟁자로서였던 듯하다. 스콧과 어니스트의 각별했던 우정이 갈등과 결별로 가게 된 이유들에 대해서 작가들은 여러 가지를 댄다. 그들의 부모, 성품, 글쓰기,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경쟁심 등등. 이유는 많다. 난 그 이유와 상관없이 인간은 얼마나 상처입기 쉬운 자들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헤밍웨이에게 파리의 생활은 가난했다. 그리고 관계의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글을 써서 생활은 조금씩 나아질 희망이 있었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고, 많은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작가로서 감수성을 자극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가정환경은 불우했다. 아버지는 권총자살을 했고, 어니스트는 그 이유가 어머니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우울증을 앓았고, 요양생활도 했고 죽기 전에는 그 증상이 심했었다고 한다. 그가 자살한 이유를 미국 정보국의 심한 압박에서도 찾지만 부모로부터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마음의 질병으로 보는 자들이 많다. 헤밍웨이는 한 장소에 붙박인 삶을 살지 않았다. 한 여성에게 머물지도 않았다. 그는 네 명의 여성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애인들도 적지 않았다. 여성주의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그의 편력은 그의 가정사와 모친에 대한 증오심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쿠바와 카리브해를 사랑했던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1952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고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병이 깊어진 그는 1961년에 생을 마감한다. 죽기 3년 전 쓴 깨끗하고 밝은 곳(A clean, well-lighted place)은 짙은 허무주의를 느끼게 한다. 오래 전 우연히 이 단편의 영문판 서두 몇 줄을 읽다가 멈출 수 없어 끝까지 읽어버렸었다. 아름답고 버릴 것 없는 간결한 문장들이 그리는 인간의 깊은 고독과 실존의 상실에 전율하게 된다. “Many must have it(insimnia)!”로 끝나는 문장은 가슴이 울렁일 정도로 존재의 깊은 고독을 전한다. 이런 nihilism무기여 잘 있어라(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에도 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가 노벨상을 받고 얼마 안되어 심한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에서 나는 더욱 그의 허무에 공감하게 되었다. 알콜 중독이었던 그가 요양을 하고 금주를 시도했던 것을 보면 삶에의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허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빙산 이론

헤밍웨이는 자신의 창작 방법을 빙산 이론Iceberg Theory이라고 불렀다. 말하기보다는 생략함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빙산이론에 대하여

 

글을 쓰는 데에도 역시 여러 가지 비결이 있다. 글을 쓰다가 어떤 부분을 생략할 때, 그 순간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생략해서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생략된 부분은 언제나 남아 있는 부분을 더욱 강력하게 해준다.(파리는 언제나 축제292p)”

라고 말했다.

 

노인과 바다 역시 많은 부분이 입말체의 대화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바다에 홀로 있을 때도 혼잣말을 하던지 물고기나 새와 혹은 죽은 물고기의 사체와도 이야기하는 장면들의 대화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헤밍웨이는 작품 속 상징은 없으며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야기 속의 모든 것-소년, 바다, 청새치, 상어-을 진짜처럼 만들려고 애썼고, 그 각각이 여러 가지를 의미하기를 바랐으며, 이는 애초에 상징으로 디자인 된 것도, 계획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헤밍웨이의 말) 또한 그는 한 편지에서

 

이건 제 평생을 바쳐 쓴 글입니다.<노인과 바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짧은 글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면이 담겨져 있고, 동시에 한 인간의 정신세계도 담았지요. 지금으로서는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입니다.(찰스 스크리브너에게. 1940. 서간 선집p.503-504)”

라고 했다. 그러므로 중요한 의미를 읽어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인 것이다. 드러난 빙산은 가라앉아 있는 부분을 읽어내도록 이끈다.

 

노인과 바다

노인은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다. 그의 배의 돛은- 여기 저기 밀가루 부대로 기워져 있는- 마치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보였다는 표현 뒤에 깡마르고 주름이 깊게 잡혀 있는 검은 반점으로 덮여있는 얼굴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돛은 노인의 얼굴이다. 오랫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의 배의 돛은 패배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여전히 만선으로 돌아오고 있었다면 여기저기 기워진 돛이 눈에 띄지도 않았거나 오히려 영광의 상처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실패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처음 내 집 마련하고 살면서 자녀를 키우고, 출가시키고 홀로 남은 집, 여기저기 낡고 고장 나고 색이 바랜 집일 수도 있겠다. 남들은 더 크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떠났는데, 퇴직하고 노년이 되어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느낄 법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번 밑창을 갈고 꿰맨 자국이 있는 구두의 이미지도 떠올랐다.

 

회원 중 한 분이 아기들도 자신의 얼굴을 보고 좋아하지 않고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고, “주름지고 늙은 얼굴을 누가 좋아하겠어, 어쩌다 거울을 보면 나도 내가 귀신같은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고 어디 주름이 있다고 그러시냐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위로랍시고 입에 발린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사진작가들이 주름이 깊게 패고 검버섯이 여기저기 생긴 노인들의 얼굴을 찍어 전시한 것들을 보면, 예술가들은 그 얼굴을 뒤덮은 주름 하나하나도 예술로 만드는 것을 보게 되며, 이유는 그것들 하나하나에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일 거라고,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시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쎄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나도 그 나이가 되어 봐야 그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될지 알 것 같다.

 

소설 속 산티아고 노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제도 바다에 나갔고 그제도 나갔고 84일 동안 바다에 나갔으니 다음날도 배를 타고 나간다. 그는 아프리카 바닷가에 거닐고 사자가 고양이처럼 뒹굴며 노는 꿈을 꾸고, 먼 바다에서 다랑어를 잡던 시절과 소년과 고기를 잡던 기억을 떠올린다.

 

바다에 나가 혼잣말을 하는 노인의 모습을 통해 그가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혼잣말 자주 하시냐는 질문에 독거를 하던 가족들이 있던 혼잣말을 조금씩은 한다는 대답을 통해 그분들의 외로움에 대해, 기억을 더듬는 노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일할 때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한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혼잣말을 했다는, 갑작스러운 솔직한 이야기에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대부분 홀로 사시는 분들이어서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있었기에, 마음 한가운데가 습격을 받은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찡하게 아파왔다. 망망대해에 홀로 배에 있는 산티아고의 외로움이 그분들 것과 겹쳐졌다.

 

큰 물고기를 잡고 그것에 끌려가면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상상한다. 무언가를 어렵게 성취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과 혹시 더 큰 어려움과 실패가 이어질지 모르는 인생에 대한 불안이 노인에겐 없다. “좋은 일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 법이야.”라고 말할 뿐이다. 그 물고기를 배 옆에 매어 놓아도 여전히 노인의 것이 아니다. 노인은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라고 말한다. 노화가 진행되고 육체는 쇠약해지고 파괴되어도 패하지는 않는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이런 작가에게서 절망이나 죽음을 읽을 수 있을까?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심지어 그것은 죄다.”라고 했던 산티아고는 뼈만 남은 거대한 사체를 싣고 돌아와 소진된 채 누워있다. 그는 소년에게 자신이 완전히 졌다고 말한다. 노인의 항해는 실패인가? 대답은 각자의 몫이다.

 

노인과 바다를 텍스트로 정했다고 하자 남편은 시니어 모임인데 제목 때문에 저항감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 역시 제목 때문에 잠깐 망설였었다. 분량과 큰 글씨 책이라는 선정기준 때문에 선택하긴 했지만 여기서 던져지는 메시지와 토론 주제에 대한 확신은 있었다. 몇 개의문장이 그들의 가슴을 건드리고 적시고 생각에 빠지게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 분들의 노년에 기억될 한 문장, 한 장면이라도 남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들이 상징과 묵시를 만들어 낸다. 무엇이 진실이고, 내가 알고 믿고 있는 것들은 과연 실제로 있는가? 도무지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일들은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믿지않고, 허상에서 의미와 암시를 받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세계를 오독하고 오해함으로 오류를 행한다.

 

 

종소리

아침에 종소리를 듣고 깨어나는 후터키의 장면은 카프카의 소송을 떠올리게 한다. 아침에 눈을 뜬 요제프 K 앞에 나타난 검은 색 재킷을 입은 낯선 남자들처럼(소송카프카), 종탑이 없는 마을에서 종이 울리는 것은 기이하다. 후터키의 감정은 주변의 사물이 내는 소리로, 작은 창을 통해 본 새벽의 적막한 마을의 묘사로 읽고 있는 나(독자)에게 전달된다. 종소리는 곧 후터키로 하여금 요람과 관의 십자가에 결박되어 경련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불안하다. 종소리에서 죽음, 심판의 암시를 받는다.

 

어느 시월의 아침 끝없이 내릴 가을비의 첫 방울이 마을 서쪽의 갈라지고 소금기 먹은 땅으로 떨어질 즈음(이제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온통 악취 나는 진흙 바다가 펼쳐져 들길로 다니기도, 도시로 가기도 어려울 터이다), 후터키는 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유령같은 종소리보다 그를 더 놀라게 한 건 갑작스러운 정적, 위협적인 침묵이었다.……돌연 주위의 말 없는 물건들이 신경을 건드리는 대화를 시작했다(찬장이 삐걱 소리를 내고 냄비가 덜거덕거렸으며 사기 접시가 딸깍 내려앉았다).(114-15p)”

후터키의 불안이 전달되어 나(독자)는 암시와 음울한 전망을 하게 된다.

 


,

헝가리 공산당 체제의 몰락의 시기 집단 농장의 해체와 함께 사람들이 떠난 후 남아있던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길 원하지만 떠나질 못하고 있다. 농장의 길은 마차 몇 대만 지나다니고 그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갇혀 남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1년 반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리미아시가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마을의 술집으로 한 사람씩 모여 든다. 이 술집에 한 사람씩 등장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영화의 POV (Point-of-View Shot),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카메라를 전환하여, 그 인물이 고개를 돌렸을 때 다른 인물이 화면에 들어오도록 하는 방식과 같다. 그들은 언제인지 그 공간에 들어와 있고, 갑자기 그의 존재가 인지된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욕망 때문에 이리미시아의 귀환에 대해 서로 다른 기대감을 안고 있다. 술집에 모인 사람들의 기다림과 불안의 양가감정은 메시아니즘적 분위기를 전달한다. 어쨌든 마을은 묘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들의 기대감, 특히 후터키의 기대감과 달리, 귀환한 이리미아시는 연설을 통해 에슈티케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고 그들이 농장을 떠나도록 선동한다. 사실 이리미아시의 정체는 그들의 기대감과 달리 정보원이고 감시자이며 사기꾼이다. 역설적으로 이리미아시의 선동은 사람들이 농장으로부터 떠날 수 있게 해준다. 후터키의 경우 그는 머물러 살 용기떠날 용기도 없었음을 깨닫는다.(271p)

그렇게 그들은 농장을 떠나고, 길에서 흥분과 열정, 불안이 뒤섞인 감정(277p)”을 느낀다. 크라네르가 큰소리로 농장을 향해 저주와 욕을 하는 감정은 희망일까? 불안일까? 그들의 환호는 불안에 대한 반어적 표현으로 보인다. 이내 엄습하는 절망과 불안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의 길을 깊은 침묵 속에서 걷는다. 비가 내려 진흙으로 뒤덮인 길은 그들을 끌어내리는, 오래된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과 무기력을 상징한다.

 

 

탱고, 거미줄

기다리던 그들이 추는 탱고는 그들 속에 감추어진 욕망과 기대감을 주체할 수 없어 표출하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고, 무엇이라도 해야 하기에. 이 탱고는 6스텝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발도사 스텝이고 앞뒤로 반복하는 것이 한 세트로 이루어져 있다. 기다리다 지쳐 아코디언은 느리게 연주하고 그 리듬에 맞춰 말파리는 8자를 그리며 날아다닌다. 8자는 탱고 스텝이 그리는 이미지와 겹쳐진다. 그들은 지쳐 잠이 들고 조용히 거미는 거미줄을 친다. 이 거미줄은 그들의 무기력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아코디언의 비단결 같은 곡조를 타고 거미들이 마지막 공연을 감행했다. 거미들은 술병과 유리잔, 찻잔과 재떨이에 느슨하게 거미줄을 드리웠고, 테이블 다리와 의자 다리를 가느다란 실로 은밀히 연결했다. 마치 눈에 띄지 않게 그물망을 쳐서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라도 즉각 감지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처럼. 거미들은 잠자는 사람들의 얼굴과 다리 그리고 손에도 거미줄을 쳤고, 그런 뒤에 번개같이 은신처로 퇴각하여 거미줄이 미세하게라도 흔들릴 때를 기다리다가, 그러다 다시 거미줄을 칠 채비를 했다. 말파리들은 거미줄과 밤으로부터 피신하여 기운 없이 빛나는 불빛 속에서 끊임없이 8자를 그리며 날아다녔다 (6228p)”

이 거미줄은 부에서 그들의 꿈이 연결되는 웹(web)으로 발전 진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폐허가 된 알마시 저택에 도착해서 함께 잠을 자던 그들은 꿈을 꾸고, 이들의 꿈은 서로 연결되고 있다. 6장 술집에서 잠들었던 그들 몸 위로 거미줄을 치고 있는 이미지 이 연결된 꿈의 이미지가 된다. 한사람의 꿈은 다른 사람의 꿈으로 건너가고 또 다른 사람의 꿈으로 이어진다. 꿈이 깊어지고 서로 연결되면서 문장 부호가 사라진다.(296~299p) 집단 농장 폐쇄되고 공동체는 몰락을 향해 가지만 남아 있던 그들은 여전히 옛 공동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함께 타락하고 함께 죄의식에 빠지고 함께 무기력해지고 함께 불안하다. 그러기에 폐허가 된 저택에서 함께 잠을 자며 욕망은 다르지만 그 꿈이 연결된다는 작가의 글쓰기는 경이롭다. 그 심연에는 불안이 가라앉아 있다.

 

 

종소리에 잠이 깬 후터키가 내다보던 작은 창으로 시작되어 창()의 이미지는 의사의 감시대, 에슈티케가 매달려 들여다보던 술집의 창, 마을을 떠날 때 크라네르가 부셔버린 창문으로 이어진다. 후터키의 창은 적막감과 불안을 암시하고 의사의 창은 감시를 상징한다. 의사는 창을 통해 관찰한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어린 소녀 에슈티케가 들여다보려 했던 창은 그녀의 소외와 타자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농장의 사람들은 감시에 적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의를 하던 슈미트와 슈미트 부인과 후터키는 이른 아침 찾아온 헐리치 부인과 크라네르 부인의 시선이 창을 통해 그들의 진실을 볼까봐 경계한다. 오랜 세월 관계를 통해 서로를 잘 알지만 그것이 감시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관계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시절을 살았음을 폭로한다. 농장을 떠날 때 크라네르가 집의 창을 깨는 행위는 이 경계를 부수고 싶은 욕망과 충동의 표출이다. 그리고 창을 부숨으로 안과 밖의 구분은 사라진다.

 

 

다시 종소리, 의사의 글쓰기

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은 이 창을 통해 관찰하고 글을 쓰던 의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는 집단농장의 해체로 직장을 잃어버린 알콜 중독에 걸린 심장병 환자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창을 통해 그들을 관찰(감시)한다. 심장병 발작으로 입원했던 그는 집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이 농장을 떠난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는 창을 통해 내다보지만 사람들을 볼 수가 없고, 상상으로 글을 쓴다. 문득 그는 자신의 글이 예언적 행위라고 깨닫는다. 자기가 쓰는 글이 일어날 것임을 확신한다. 오랫동안 해온 작업이 결실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종소리가 들려오고 그는 그 종소리가 그에게 이런 능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종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선 그는 그의 상상과 달리 무너진 교회 종탑의 종을 치고 있는 미친 노파를 발견하고 실망한다.

기록자(혹은 작가) 역시 진실을 모르고 거짓된 암시를 씀으로 누군가를 기만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 쓴다. 그가 쓴 내용은 후터키가 종소리에 깨는 장면(1)을 그대로 써내려 간다. 순서상 부는 6장에서 1장으로 진행되는 이유를 마지막 1장에서 발견한다. 그러면 이 소설은 의사의 글인가? 의사는 소설의 등장인물인가? 그의 생각에서 힌트를 얻는다.

 

그는 이제 유일무이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 능력으로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세계를 묘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닐, 어느 한도까지는 혼란스러운 사건들 배후의 메커니즘에도 간섭할 수가 있었다!”(1,387p)

 

종소리는 하나의 상징이 되고 소설의 안과 밖 경계를 제거하고 방향을 사라지게 한다. 이 비가향성(Non-orientable)과 안과 밖, 앞면과 뒷면의 구분이 없는 곡면 도형이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 소설은 점들로 이어진 위상 수학처럼 이미지들로 이어진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한다.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에슈티케

에슈티케라는 연약한 존재가 이 소설에서 상징하는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렵다.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다락방의 소녀 에슈티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오빠 서니를 많이 의지하고 있는 반면, 그로부터 심리적으로 지배당하고 있다. 에슈티케의 죽음은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5) 그녀의 시체가 베일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는 현상은 더욱 해석이 어렵다. (문맥상 이 몸은 에슈티케의 것인데 그것을 지시하는 중요한 문장은 마치 아닌 듯 번역되어 있어서, 영어 번역을 찾아보았다. 영어 번역은 에슈티케임을 시사하며, 오히려 의미는 살아있는 몸처럼 보인다는 데 방점이 있는 듯 보인다.)

 

세 사람이 며칠 전 크라네르가 짠 거칠거칠한 관으로부터 소녀의 시신을 들어 올리지 않았더라면, 맹세코 그들은 밀랍같이 하얀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도는 곱슬머리를 한 채 평화로이 잠자는 육신을 소년의 어린 여동생으로 믿고 말았을 것이다.("If the three of them hadn’t lifted the body out of the rough coffin Kráner had knocked together a few days before, they would have sworn that the body with the waxen face and the reddish curls, sleeping so peacefully, was the boy’s younger sister.")”(4316p)

 

길을 걷던 이리미아시의 일행이 베일에 쌓인 에슈티케의 시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현상을 목격하고 이리미아시는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320p) 특히 에슈티케의 승천은 꿈도 아니고 환각도 아닌 실제로 있는 현상으로 묘사된다. 미친 노파가 치는 종소리를 후터키와 의사가 묵시나 계시로 들었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현상이 실체로 드러나는 것을 그린 의미가 있다. 드러난 것이 진실인가? 감춰진 것이 진실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체인가? 질문을 남긴다.

작가는 노벨수상 연설에서 천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곁에 있는 날개를 감춘 혹은 날개 없는 새로운 천사는 희생이고, 이 천사들은 우리 때문에 희생된 존재이다. “단 한번의 부당하고, 경솔하고, 품위 없는 행동에 몸과 영혼이 상처 입은 희생된 천사, 그게 에슈티케다. 그 소녀는 그런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짓밟히고 냉혹한 조롱 앞에 무방비 상태로 희생되었다. 에슈티케가 의지하고 추앙했던 오빠 서니는 폭력적이고 거짓을 일삼는 존재다. 그를 따르는 에슈티케는 부조리함을 쫓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절망적인 세계에서 왜곡된 진실과 거짓된 대상을 향한 희생을 강요당하는 존재의 상징이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 - F.K.

이 책 면지에 인용한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기다리던 것이 도착하고 알기를 원했던 실체가 드러날 때 그것은 나를 기만하고 배반하는 진실이라면 차라리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더 낫다는 의지적 표현일 테다.

농장 연설과 모금 후 이리미시아는 그들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먼저 떠난다. 그들은 이리미아시에게 더 머물기를 바라면서, 사람들은 그가 떠나자 해방감을 맛본다. 이 양가감정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믿는 것들 중 나를 기만할, 진실이 아닌 것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 존재로서 느끼는 불안이라 생각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 못한 한계 때문에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농장을 떠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과 불안의 상태를 반복한다. 약속과 달리 그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되고, 트럭 안에서 불안해한다. 그들은 다시 모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각자 배정된 곳으로 이동하며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지만 뒤돌아서면서 절망할 것을 예감한다. 이들뿐 아니라 이리미시아, 의사 모두 기만당하고 있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돌아오는 이 사이클은 인간의 삶이고 역사일까? 이것을 벗어나려면, 아니 최소한 절망에 지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작가는 연설에서 반역을 말한다.

 

저항의 멜랑콜리, 헤르쉬트07769를 읽기로 했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ainbass 2026-01-19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레이스님. 영화도 보셨나 봅니다!!! 와우.... 무려 7시간이라서...저는 아직 엄두가 안난다는...

그레이스 2026-01-19 21:40   좋아요 1 | URL
저도 궁금하고 중요한 장면만 잘라서 봤어요.
제가 찾아볼때는 유튜브에 있었는데,,, 지금은 내렸다고 합니다.
벨라 타르도 읽긴 했는데,,, 대담이나 인터뷰 형식이라...!
그래도 도움은 조금 됐습니다.^^

그렇게혜윰 2026-01-19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벵크하임 읽고 이걸 읽으니 잘 읽혔지만 이 실험적인 글을 자주 읽을 것 같진 않아요 ㅎㅎㅎ 사둔 책 하나만 더 읽고 전 문 닫을래요! 7시간짜리 영화는 거의 미니시리즈 아닙니까?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이런 글로 대신 보고 읽은 셈....

그레이스 2026-01-19 21:45   좋아요 1 | URL
영화 상영하는 극장이 있다고 하는데,,, 기절할듯요.
저는 거미줄치는 장면이 궁금해서 봤는데,,, 아무래도 오래전 흑백영화라 상상이 나을듯요.
탱고를 추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이더라구요.^^
ㅎㅎ
벵크하임!
저는 조금더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페넬로페 2026-01-20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볼까 하다 포기했어요 ㅎㅎ
카프카의 소설도 다시 읽고 싶은데
그것도~~ㅠㅠ
변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확인이 두려워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ㅡ드디어 이름 외웠어요 ㅡ
계속 읽기, 응원합니다♡♡♡

그레이스 2026-01-20 10:45   좋아요 1 | URL
저도 페넬로페님 응원해요!
함께 화이팅!
변화 앞에 두려움을 갖는 것 존재의 불안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드네요^^;;
7시간 영화는 극복하기 어려워요 ^^
조급한 세상에 살고 있단 생각이 드네요.

하루살이 2026-01-21 0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항의 멜랑꼴리>도 기대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6-01-21 09: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페크pek0501 2026-01-2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탄탱고, 를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 리뷰는 완독 후 읽어야 할 듯요.
발 빠르십니다. 뒤따라가겠습니다.^^

그레이스 2026-01-22 12:28   좋아요 0 | URL
^^
네~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

yamoo 2026-01-22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탱을 오래전에 사 두었는데, 아직까지 읽지를 못하구 있네요. 사탱을 사면서 이 작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노벨상을 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샀더랬습니다..ㅎㅎ

그레이스 2026-01-23 12:06   좋아요 0 | URL
오!
예감이 맞으셨네요~^^
노벨상 탈 만한 작가 맞는듯요!^^

레삭매냐 2026-01-23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탕탱고 마저 읽어야 하는데...
잠시 멈춰서 있네요.

올해는 꼭 읽어 보려구요.
영화랑 같이 보니 맥이 잡히는
느낌이랄까요.

그레이스 2026-01-23 21:44   좋아요 1 | URL

분위기나 이미지는 어느정도 전달하는 듯요
넘 길어서 문제죠^^

카리나 2026-01-25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덕분에 어렵게 읽은 사탄탱고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감사해요.

사탄탱고를 읽으면서 역시 이 정도는 써야 노벨상을 받는거지..하면서 어렵지만 깊이있는 글, 독특한 구성에 감탄하면서 읽었어요.

7시간짜리 영화가 있다는것도 놀랍네요~

<저항의 멜랑콜리>도 얼른 도전해보려구요.
계속 읽기 저도 응원합니다^^

그레이스 2026-01-25 08:00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저항의 멜랑콜리도 이만큼 좋았으면 좋겠어요.
카리나님의 읽기와 글 응원합니다!~♡
 
[전자책] 인간의 역사와 문명 미국 먼로주의와 아메리카 외교정책
서진호 / 루미너리북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폴레옹전쟁, 스페인령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미국의 영토확장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수탈을 뒷받침했던 먼로독트린에 대해 알아본다. 신먼로주의라는 이름아래 제국주의적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있다. 먼로주의란 ‘내가 다 먹을테니 건들지마!‘ 뜻 아닌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6-01-07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지적 즐거움을 줄 것 같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 싶은 욕심만 앞서고 독서 속도는 빠르지 않으니 마음만 빠르다고 할 수 있어요.ㅋㅋ
그레이스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레이스 2026-01-07 18:34   좋아요 1 | URL

루미나리 시리즈
핵심만 잘 정리해 놓은 책이라 참고하고 지식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페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설의 서두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대서양 상공에 기압계상 최저기압이 자리하고 있었다.”로 시작한 묘사는 카메라처럼 대기와 달과 태양계로 상승했다가 다시 하강해서 대기 중의 수증기 장력은 최고치를 나타냈고, 대기 습도는 낮았다고 언급한다. 갑자기 땅으로 쑥 내려와 자동차들의 질주를 실타래 같은 보행자 무리를 앵글에 담는다. 그 이미지 안으로 소리가 삽입된다.

 

한층 강렬한 속도의 선들은 다소 느슨하게 움직이는 보행자 무리를 가로지르는 순간 굵어졌다가, 나중엔 더 빨라지더니 약간의 진동 끝에 다시 고른 리듬을 유지했다. 수많은 소리들이 철선처럼 억센 하나의 소음으로 뒤엉켰다. 그 소음에서 뾰쪽한 끝이 여기저기 튀어나왔고, 소음을 따라 날선 모서리가 길게 이어지다가 다시 평평해졌으며, 소음에서 명확한 소리들이 산산이 부서져 공중으로 흩어졌다. …… 지그시 눈을 감고 이 소음에 귀를 기울이면 지금 자신이 제국 수도이자 황궁이 자리 잡은 빈에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111p)”

 

정말 기가 막힌 표현들이다. 19138월의 빈이라는 시간과 장소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시청각적 묘사들은 처음부터 작가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님을 알려준다. 이 작품 전체의 글에 담겨있는 비유와 상징 언어들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

 

그렇게 작가의 앵글은 자동차 사고를 포착하고 이것을 구경하는 구경꾼들 무리들 중 한 여인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이 사고를 목격하고 그 원인을 제동거리라는 과학적 설명을 해주는 행인1과 그 사고원인을 듣는 행인2(중년여성)의 안도는 과학의 진보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무엇인가 설명 가능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현상을 보여준다. 한편, 이 사고는 사람들의 믿음과 달리 1914년의 전쟁을 암시하는 듯 불안하기도 하다.

 

이것이 어쩌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진보하는 과학적 사고에 발맞추어 사고하도록 요구받는 특성! ‘특성이란 그가 속한 세계에서 존재가 가져야 할 것으로 요구되는 정체성이나 자질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특성 없음은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주인공 울리히는 실제로 특성을 거부하고 가능성 감각을 추구한다. “열린 문을 잘 지나가려면 문에 단단한 테두리가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123p)” 그의 아버지 노교수의 좌우명은 시대의 특성에 부응하는 현실적 감각을 가진 인간에 대한 적절한 비유다. 그에 반하는 것이 가능성 감각이다.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경계를 넘어 새로움을 추구하고 창조한다. 그는 사회에서 환영받을 천재성과 특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자극한 것이 살인범 모스부르거다. 모스부르거는 사회적 관습, 도덕, 법과 같은 어떤 규범으로도 포획되지 않는 사람이다. ‘특성없음의 왜곡되고 극단적인 존재다. 울리히의 모스부르거에 대한 관심은 잊혀지지만, 그의 친구인 화가 클라리세는 모스부르거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그녀는 니체의 해를 생각해내고 살인과 초인을 연결시키는데까지 나아간다. 클라리세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의 극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이러한 정신은 남편 발터를 지배한다. 발터의 열등의식은 클라리세의 욕망과 결합되어 울리히를 살인하라고 압박하는 꿈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에는 울리히와 연결된 4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보니파티아, 디오티마, 클라리세, 아가테이다

보니파티아는 울리히의 정부이고 가벼운 성적 상대일 뿐이다. 그녀의 도착적 성충동을 관찰하는 울리히의 시선에서 나는 오히려 그녀의 고독을 본다

디오티마는 평행운동의 중심에서 준비 위원회를 모집하고 주도한다. 본명이 에르멜린다 투치인 그녀를 디오티마라 부르는 것에 상징성이 있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사랑에 관한 디오티마의 말을 인용한다. 지혜로운 여인이란 뜻일 테다. 울리히와 사촌관계인 그녀는 상징적 지도자나 공허한 이상주의자로 인식된다. 그녀가 주도한 평행운동은 실패로 끝난다.

클라리세는 어릴적 친부에게서 받은 상처를 안고 있다. 그녀의 결핍은 니체적 의지에 전도되어 초월욕망으로 변형된다. 그녀의 욕망은 광기를 띈다. 울리히는 그녀에게 이념이란 페티시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모스부르거에 집착하고, 그를 만나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아가테는 울리히의 이란성 쌍둥이로 마치 울리히에게 그동안 잊혀져 있던 듯 갑자기 등장한다. 아버지의 장례 때문에 오누이는 재회한다.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 아래 억눌린 삶을 살았던 그녀는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하고 다시 재혼했다. 그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하다. 울리히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고 자유를 찾아 오빠와 함께 살기 위해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다. 울리히의 사상, 책을 통해 영향을 받아 진정한 자유가 주는 삶을 꿈꾸고 실행하지만, 한계에 부딪친다.

이들은 각각 여성으로서 상처를 갖고 있고 억압된 욕망을 발현시키려는 나름대로의 길을 찾지만 모두 실패하고 있다. 이 여성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을 갖도록 억압당하고, 그것을 거부하기에는 신체적, 사회적으로 취약한 존재들이다. 이들의 욕망, 허영, 광기, 의지를 마주하면서 울리히의 사유는 변하고 발전한다. 그녀들과의 대화나 관계는 울리히의 사유에 변화를 가져오는 촉매역할을 한다.

 

울리히에게 중요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 사람들을 대하는 고정된 태도나 사상이 없다. 그러기에 아른하임 앞에서는 디오니소스적이고, 클라리세 앞에서는 아폴론적이다. 이들과의 대화(1권)에서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 오버랩된다. 그가 희구하는 사상은 그의 시대 사유를 벗어나는 어떤 것이기에 그런 듯하다. 디오티마와의 이야기 중 다이아몬드에 대한 비유가 힌트를 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 둘 다 다른 환경에서도 그 속성이나 사용가치가 변하지 않음을 들어 인간의 고유함을 설명한다. 그 변하지 않는 고유한 개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특성 없음을 견지하고 가능성 감각을 열어놓는 이유는 이 본래적 특성을 찾기 위함이다.

 

특별히 고향에서 재회한 울리히와 아가테는 대화를 통해 정신적 합일의 순간을 맛본다. 아가테가 묻고 울리히가 답하는 식의 대화는 니체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도덕에서 무엇이 비본질이고 본질인지를 알려면 습관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울리히와 아가테의 대화는 구체적으로 니체의 선악의 저편이나 도덕의 계보를 연상시킨다. 도덕은 외부로부터가 아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을 지킬 힘 역시 그 내면에 있고, 사회의 도덕적 와해는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선악의 문제와 같은 이분법적 논리를 거부하고 해체한다. 이런 해체는 무화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존재를 둘러싼 시대와 세계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본래적이고 고유한 특성을 찾기 위한 것이다. 울리히는 그것을 사랑이라 깨닫고 아가테와의 동거를 통해 완벽히 이루려는 꿈을 꾼다. 외부의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자유함 속에서 맛보려했던 천년의 제국이라 이름붙인 그 세계는 종말론적인 빛을 띄고 의미만을 전달한 채 실패한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 1960년대 해체주의나 현대 철학에 가까운 사유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을 1932년에 썼다는 데 작가의 천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동시대 니체의 사상에서 앞으로 나타날 사상을 전망한 것일까? 그는 철학자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산중의 쓰러진 나무나 벤치에 앉아 풀을 뜯어먹는 소떼를 보면서도 한순간에 다른 삶으로 옮겨가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150p,3권)”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울리히는 아가테에게 습관을 벗어나는 순간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어떤 순간적 깨달음의 상태, 혹은 다른 세계가 열리는 체험의 순간이 그들의 대화 중 찾아온다. 그들이 경험한 환영(幻影)”과 대화의 내용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의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아기로 변화하는 변용(Verwandlung)”을 연상시킨다.

 

인내심 많은 정신은 이 모든 무겁기 그지없는 짐을 짊어지고 그의 사막을 달려간다. 가득 짐을 실은 채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하지만 고독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정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정신은 사자가 된다. 정신은 자유를 쟁취하려 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자유를 쟁취하고 의무 앞에서도 신성하게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사자가 되어야 한다.…… 정신도 한때 너는 해야 한다를 가장 신성한 것으로서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은 가장 신성한 것에서도 미혹(迷惑)과 자의(恣意)를 찾아내야 한다. 그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를 강탈해 내려면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강탈을 위해 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부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35-38p, 민음사)“

 

울리히와의 대화 중 자유를 쟁취하려는 사자가 된 아가테는 빈으로 오고 두 사람은 완전한 자유와 사랑만이 존재하는 천년제국을 이루려 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완벽한 자유보다는 의무가 주어진 삶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칸트가 잠깐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1866년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7일 전쟁 이후 통일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1879년 동맹을 맺는다. 1879년 독오동맹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대등한 동맹에서 의존적 동맹으로 그 관계가 이어진다. 그 관계는 경쟁적이지만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 오스트리아의 통치 아래 있던 발칸반도 슬라브족의 독립요구가 높아지고,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지지한다. 오스트리아 내에서도 범게르만민족운동과 범슬라브주의가 충돌하면서 긴장상태가 이어졌다. ‘평행운동은 이런 배경에서 추진되었다. 민족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 종교적 권력 하에서 평행운동과 같은 거대 담론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모임을 만들고 이끈다. 그러나 평행운동거대 담론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드러내는 소설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담론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포섭하지 못한다. 심지어 이 모임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자들조차 소외되고 있다. 20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 직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시대정신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혈통, 민족, 사상을 지지해줄 무리와 모임 속으로 재편된다. 또한 모스브루거와 같이 어떤 담론 어떤 가치로도 포획되지 않는 존재도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의 발산과 자유를 원하지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경계를 넘지는 못한다. 아가테가 실망하고 교외로 나갔을 때 그녀만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473p,3)”고 깨닫고, 세상은 그녀 없이도 완벽하다고 느낀 소외감은 당시 대부분 사람들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당신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노라!(475p,3)”라고 한 시인의 말을 인용하는 아가테의 감정은 사람들의 것은 아니었을까?

 

길거리의 포고문과 광고를 읽는 울리히는 일상적 시민 세계에 대한 허기(313p, 3)”를 그것들로 채우려고 한다. 이 의도에서 울리히가 일상적 시민들과는 이격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 벽보판의 내용들은 당시 유럽, 혹은 오스트리아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 특히 자본주의 정신이 지배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아마도 이 광고를 보면서 아가테가 느끼는 소외나 불안을 느낄 것이다. 울리히는 도덕의 부재, 삶의 실재성이 가져오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그야말로 가능성 감각을 갖고 있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사유다.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세계 속의 인간은 평온함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철학적 사유와 실천을 견지하며 살아가더라도 급변하는 세계와 그로부터 압박해오는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AI’는 이 시대의 화두이자 여러 담론을 파생시키는 제시어가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전문성을 박탈당하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전문성 뿐 아니라 인간을 규정하던 특성들도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친절, 인내, 관용, 배려와 같은 미덕을 장착한 인공지능이나 휴머노이드가 돌봄이나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사랑을 교류하게 될 미래를 전망한다. 이 시대는 인간에게 어떤 특성을 요구하게 될까? 그러면 나는 무엇을 거부해야 할까? 그 시대 특성 없음이란 그리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한 해체는 어디까지 용인하게 될까? 아직 상상이 안 되지만 이상하게 암울해진다.

 

철학적 에세이즘이라고 이름붙일 만큼 철학적 질문들이 제시되는 소설이다. 이 책을 통해 다른 방향에서 본 니체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목적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이해에서 그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많은 독서였다. 하지만 더 확장된 사유를 통해 인간의 본래적 특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다. 인간의 고유함은 사랑에 있었다.


* 니체 전집이 있으나 번역도 활자도 읽기가 불편하다. 일단 <비극의 탄생>만 새것으로 나머지는 장차!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5-12-28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라~~~이렇게 말했다, 는 저의 애독서예요.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죠.^^

그레이스 2025-12-28 10:24   좋아요 0 | URL
저는 애독서까진 아니고 가끔씩 들쳐보게 되는 책이예요.
니체가 현대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페크님 행복한 연말되시고,,, 2026년에도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래요~~

젤소민아 2025-12-28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하이퍼텍스트 좋아해요~~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5-12-29 07:12   좋아요 0 | URL
과찬이시네요.~감사합니다.~

독서괭 2025-12-29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특성없는 남자 너무나 어려울 듯 합니다. 저는 더 식견을 넓히고 도전하기로.. ㅠㅠ

그레이스 2025-12-29 16:57   좋아요 1 | URL
저도 일단 저지르고 봤죠.
함께 읽는 동아리 회원들이 있어서,,, 숙제하듯 했습니다.ㅎㅎ

서곡 2026-01-01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026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6-01-01 13: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차트랑 2026-01-08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허걱~ 청하出 니체 전집이라니!!!

그레이스 2026-01-08 14:17   좋아요 1 | URL
오래 됐어요
새로 나온 책들 보니 문장도 더 쉽게 나왔구요.
하나씩 바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차트랑 2026-01-08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소장품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저라면 계속 가지고 있고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6-01-08 19:10   좋아요 1 | URL
네^^
그럴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