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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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엔 설마 하던 일이 언제든지 일어난다.


아침에 출근한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감시 당하고, 생존 위협을 받고, 통행을 금지 당하고, 내전(內戰) 의 한복판에서 두 아들을 잃고, 필사의 탈출을 한다. 주인공 아일리시 스택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녀가 설마 하던 일이다. 설마 했기에 그 땅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이라면 난 내가 새처럼 자유롭다고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이런 기괴한 일에 휘말렸는데 어떻게 자유의지가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한 가지 일이 다른 일로 이어지고, 결국 그 빌어먹을 사태가 스스로의 동력을 찾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352p)”

 

아일랜드를 탈출하기 위해 바닷가 공장 건물에 머물 때 만난 모나가 한 말이다. 그녀 역시 아일리시와 다를 바 없는 고통을 겪고 떠나는 중이다. 일찌감치 떠나라고 권하는 말들을 무시한 것은 이렇게 생존의 탈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히 떠나라는 예언자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복 경찰관이 집을 다녀갔을 때 아일리시는 무언가가 집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여기서 나는 숨을 멈추고 읽어 내려갔다. 무언가는 두 남자와 함께 서 있다가 현관으로 들어왔고, 살금살금 집안을 걸어 다닌다. 집 밖 어둠의 일부가 들어왔다. 두려움 혹은 불행일까? 아일리시가 겪는 현실과 마음은 서로 대비를 이루며 묘사된다. 사실적인 서술과 환상적 표현으로. 시를 읽는 것 같다.

 

교원 노조원인 남편 래리 스택이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는 그에게 해야 돼, 이제 당신이나 내 문제가 아니야, …… 교사가 규탄하지 않으면 우리의 헌법적 권리를 위해서 들고 일어날 사람이 달리 어디 있겠어?(41p)”라고 말할 때에도 그가 그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집을 나서는 래리에게 가서 해치워.”라고 말했던 그 시간에서 그녀는 떠나오지 못한다.

 

문 앞에서 주저하던 래리, 녹색 부츠에 발을 집어넣은 다음 비옷을 입으려 애쓰던 래리를 생각한다.(53p)”

 

아일리시는 네 아이를 돌보며, GNSB에 체포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녀는 보안 위험인물로 간주되고, 직장을 잃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며,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정부군과 혁명군의 내전이 발발하고, 그녀의 삶은 급변한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그러나 그것은 상상으로 보여준 실재이다. 그가 보여준 시적 표현들에 공감되어서 더욱 슬프다. 나의 공감은 이 세상엔 이런 비극이 실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작가는 아일랜드에 독재 정부가 집권하고, 감시와 통제와 폭력으로 통치하는 전제국가에서 저항, 체포, 죽음, 탈출의 연속적 사건을 겪어내는 아일리시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의 허구지만, 시리아 내전이나, 우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실재성을 전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을 때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의 느낌은 다르다. 


불면의 밤을 지나고, 시간이 흐르며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설마만일사이에서 몸서리를 친다.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국지전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확대되었다면, 내란이 성공했다면…… 하는 가정들이 일으킨 각성들 때문에 나는 여전히 잠을 설친다. 지금은 시위대에 참여하기 위해 시간을 내지만, 만일 아일리시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불의와 압제에 저항할 용기도 내 남편과 아이들을 독려할 수 있는 순수함도 나에겐 없음을 발견하고 수치심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아일리시가 그렇듯 헌신과 사랑의 세상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공포의 세상에 살도록 저주받는 것(354p)”을 본다. 차라리 내 아이들 나이 때 가졌던 무모함이라도 되갖는 게 마음 편할까?

 

실제일까 하는 의심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몇 분의 오차로, 몇 사람의 소극적 행동으로, 다수의 적극적 저항으로, 다행히 피해간 사악함들, 그것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예언들이 소리치고 있다. 꿈인가 싶은 시간들은 지나갔다. 추스르고 직시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 일어 이 글을 쓴다.

 

세상은 꿈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달아날 방법이 없는 꿈일 뿐이고 그러한 삶의 대가는 고통이다,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355p)”

 

더 이상 이 글을 이어갈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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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4-12-13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볼게요. 담담하게 억누르는 감정이 저에게도 전해집니다ㅠㅠ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2-14 08:37   좋아요 1 | URL
ㅠㅠ
감사합니다
이제 좀 감정이 정리되고 행동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드러나는 진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전야제님 혼란한 시기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청명상하도 - 송나라의 하루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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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돋보기로 들여다 보듯 세밀한 부분을 확대해서 해설한다. 그는 그 컷들에서 북송의 기술, 경제, 문화, 생활상 등과 함께 그날의 분위기, 사람들의 기분까지도 읽어내고 있다. 청명절 하루의 풍경은 이 긴 화폭에 담을 수밖에 없는 많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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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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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저항, 폭력, 내전, 실종, 죽음, 생존, 탈출... 주인공의 세계를 지시하는 단어들이다. 자유의지는 삭제되었다. 비참과 허무로 둘러쌓인 현실에서 그녀의 마음을 그리는 언어는 고통의 시어들이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을 비극에 대비되는 환상적 표현들이 분노와 슬픔을 상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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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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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게 된다.

발하임 풍경 곳곳 베르테르의 눈에 들어오는 보리수들, 그의 가슴 아픈 사랑 위로 슈베르트의 <보리수><세레나데>가 흐른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슬프고 안타깝고 짧은 삶도 함께 떠오른다.

 

아무튼, 괴테를 다시 읽는 중이다. 파우스트에 이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이번엔 문학동네로 읽었다. 어투가 어색해서 덜그럭거리며 읽었던 기억과 달리 문장이 매끄럽다. 번역에 의존해 읽기에 번역자의 단어선택, 문장구성, 직역과 의역에 의지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전 독서가 어려웠던 것은 편지글을 서간체와 서술체로 오락가락하며 쓴 때문이었다.

 

출간 순서로 읽는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먼저다. 그렇게 읽어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파우스트를 읽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초기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슈트룸 운트 드랑, 파우스트는 바이마르 고전주의에 해당하며, 하나는 서간체이고 다른 하나는 극시다. 형식도, 소재도, 정서도, 주제도 다르다. 전혀 다른 작가의 것인 듯 느껴진다. 그런데 파우스트를 먼저 읽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파우스트를 연상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이런 내용이다.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수긍했지 않은가. 나 또한 어딜 가나 그런 감정에 사로잡힌다네. 활동하고 연구하는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볼 때, 인간의 모든 노력이 욕구 충족을 위해 사용되며 그 욕구라는 것이 궁핍한 생활을 연장시키는 것 외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리고 연구 성과에 만족한다는 것이 우리를 가둔 감옥의 벽에 온갖 형상과 밝은 풍경을 그려놓는 것 같은 몽상적 체념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될 때, 빌헬름, 그럴 때면 나는 말문이 막힌다네. 그러면 나는 내면으로 되돌아와 또다른 세계를 발견하곤 하지! 그것 또한 사실적인 묘사나 생생한 에너지가 넘치는 세계는 아니라네. 어렴풋한 예감과 어두운 욕망의 세계지. 그곳에선 모든 것이 내 감각 앞에서 몽롱하게 떠돌고, 나는 꿈을 꾸듯 그 세계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다네.(21p)”

 

파우스트의 방황을 본다.

 

발하임에서 베르테르는 그곳의 일상을 편지로 친구 빌헬름에게 전한다. 아마도 그는 마음의 병(조울증) 때문에 이곳으로 온 듯하다. “번민에서 방종으로, 감미로운 우울에 빠져 있다가도 이내 위험천만한 열정으로 변해버리는(16p)” 굴곡이 심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 때, 농촌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들은 삶의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행복하고 평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지.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겨울이 온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라네.(26p)”

 

과연 그들이 겉에서 보는 것처럼 행복하고 평안하기만 할까? 베르테르의 시각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우울함에 골몰해서 타인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선이다.

 

1부의 베르테르의 편지에 기록된 그의 글만 읽게 되면, 로테를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그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그칠 수밖에 없다. 로테 역시 그를 사랑하지만 약혼자인 알베르트와 결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알베르트는 순수하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베르테르가 편지에서 전해주듯 한편 편협한 사람인 듯 보인다. 베르테르의 편지에서는 로테, 알베르트, 그들이 처한 상황이 모호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2부에서 편집자(빌헬름 혹은 괴테)가 그의 편지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전해주는 정보는, 모호했던 진실을 선명하게 한다. 특히 알베르트의 인물됨, 불행할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결혼 생활, 로테의 감정 등에 대해 베르테르가 오해했음을 독자는 알게 된다. 로테도 자신을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베르테르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베르테르는 그렇게 오해하고 슬퍼하며 매일같이 자신의 모든 활력을 소진시키고, 저녁에는 곤경에 처해 괴로워하는 인간(146p)”이었다.

 

베르테르의 점점 깊어지는 마음의 병은 전에 만났던 남자의 살인사건을 마주치면서 뒤흔들린다. 그 남자는 자신의 여주인을 사랑했었고 그 사랑이 지나쳐 살인을 저지른다. 베르테르는 그 남자를 구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투사전이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문제로 알베르트와 논쟁을 벌이던 중, 알베르트가 그건 안 되네. 그자를 구원할 방도는 없네!”라고 한 말에 베르테르는 상처를 입는다. 그 말은 각인되고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건은 트리거가 된다.

 

베르테르가 죽기 직전 로테에게 읽어준 오시안의 시는 애도시 또는 레퀴엠이다.

봄바람아! 나를 깨우는 까닭이 무엇인가? “내가 천상의 이슬로 당신을 적셔줄께요!”하고 위로의 말이라도 하려는지. 그러나 나의 생기가 다하는 순간이 왔고, 나의 잎들을 모조리 떨궈버릴 폭풍우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네. 내일이면 일찍이 내 아름답던 모습을 본 적 있는 방랑자가 올 것이네. 그의 두 눈은 들판을 둘러보며 나를 찾겠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하리라.(177p)

그 오시안의 긴 시는 죽음을 가리키고 있다. 낭송을 듣고 눈물을 흘린 로테는 석연치 않은 예감을 했다. 그리고 몇 번의 대화를 통해 베르테르의 죽음 암시를 들었던 알베르트도 권총을 내준다. 인간의 죽음이란 참 덧없고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과 죽음을 가르기까지 하는 사랑, 이 모든 소란과 흥분, 조급함과 아우성, 고민과 격렬함, 당시 18세기 괴테 시대 사람들만 겪고 있는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사랑은 너무나 중요해서, 알랭 드 보통이 철학의 위안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아무리 심각해져도 지나치지 않다.”

 

삶에서 겪는 고통을 겪어내는 것의 한계는 각자마다 다 다르다. 사람마다 그 고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다르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자아라는 게 있다. 고통은 다음에 오는 또 다른 고통이나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갖게 해준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만들어진 흔적, 페이소스가 마음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괴테가 1772년 베츨러에서 알게 된 샤를로트 부프와의 실연을 극복하기 위하여 루소의 영향으로 쓴 편지체 소설이라고 한다. 그는 이 소설로 많은 젊은이들의 심연을 건드렸고,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굳이 18세기 사람들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이런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주인공의 이름과 배경만 바뀐 같은 이야기도 되풀이 된다.

 

왜 그럴까? 인간은 그만큼 연약하고, 비슷한 지점에서 무너지니까!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변주한다. 예술의 정수는 서로 통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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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11-18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겨울이 시작되니까(과연...? 🤔) <겨울 나그네>도 듣게 되겠네요. 🙂

그레이스 2024-11-18 06:40   좋아요 0 | URL
ㅎㅎ
겨울나그네 !
전곡 다 틀어놓고 들었습니다.
곡이 난해하지 않아서,,, 독서하기 좋습니다.
오늘 체감 온도는 롱패딩 입어야 할듯요.

2rjfnr 2024-11-18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들어봐야 겠어요.
겨울나그네!~~♡♡

그레이스 2024-11-18 11:08   좋아요 0 | URL
네~♡
이 날씨에 잘 어울립니다.^^
슈베르트의 생애를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깊어집니다.ㅠㅠ

레삭매냐 2024-11-2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하 고견이십니다.

역시 예술의 고갱이들 단계에서는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래 전에, 호주 배낭여행을 떠나
면서 가방에 집어 넣어 가져간
책이 베르테르였지요. 정말 오래
전의 일이네요.

그레이스 2024-11-21 18:34   좋아요 1 | URL
ㅎㅎ
출판사마다 다르기도 하고, 언제 읽는가도 감상이 다른듯 해요.
이번 독서가 제일 좋았어요.
 

체호프는 두려워. 그의 대사를 입에 올리면 나 자신이 끌려 나와.(낯선 여인의 키스7p)”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게 된 이유다. 체호프 단편집 낯선 여인의 키스책머리에 소개된 주인공 가후쿠의 말이다. 체호프의 희곡을 읽는 내내 겪었던 감정 안으로 이 대사가 들어왔다. 바냐삼촌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포스터를 꽉 채운 붉은 색 차, 화려한 수상 이력 중 '2021칸 영화제 각본상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색 사브(SAAB)를 운전하며,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나오는 아내 오토의 대사에 맞춰, 대사를 외우던 가후쿠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오토와 가후쿠의 대사는 책 읽는 톤으로 일정하다. 도심과 해안 도로를 달리던 붉은 색 사브의 인상과 함께 청각의 이미지가 각인된다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후 이 차 안에 오래도록 머문다그녀가 갑작스럽게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타고 다니고 있다. 시력의 문제가 생기면서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된 그는 미사키를 드라이버로 고용하고, 뒷자리에 앉아 여전히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사를 말한다. 가후쿠가 이 차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신차(新車)들에는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일까? 영화가 끝나고 표면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차가 상징하는 의미에 대한 생각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빨간 색 이미지와 함께.

 

그는 히로시마 연극제의 프로젝트로 기획된 <바냐삼촌>을 연출한다. 이 연극은 출발 단계부터 감동을 준다. 각국에서 모인 배우들이 자신의 언어로 연기하는 기획이다. 차 안에서 가후쿠가 했던 감정을 뺀 대사연습은 이들의 대본 리딩에도 적용된다. 감정을 제거하고 대사를 연습하는 반복이 오랜 시간 지속되자 연기자들에게서 불만이 제시되지만 가후쿠는 계속한다. 대사가 나에게 각인되고 내 것이 되고 그 대사가 나 자신을 끄집어내는 순간이 올 때까지. 아이러니하게도 가후쿠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연극의 기획 의도는 <바냐삼촌>이기에 더욱 빛이 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체호프의 희곡속 인물들은 각자의 아픔 속에 갇혀 서로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한다. <바냐삼촌>에 등장하는 인물들, 보이니츠키, 소냐, 옐레나 아드레예브나, 세레브랴코프, 아스트로프, 텔레긴 모두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고 고독하다. <바냐 삼촌>을 각국의 배우들이 자신의 언어로, 혹은 수어로 연기하는 무대, 배우들이 서로의 대사를 숙지하고 연기하는 모습은 같은 언어로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어적으로 전하고 있다

 

단지 아내의 성 상대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다카츠키에게서 다른 진실을 들은 후, 그는 당황한다. 그동안 붙잡고 살았던 것들의 무의미함을 느꼈을까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존재였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불행한 순간이 또 있을까? 다카츠키가 연극에서 하차하고 망설이던 그는 다카츠키 대신 주연을 맡는다.

 

날 어떻게 좀 해줘! , 맙소사……. 내 나이 마흔 일곱인데, 만약에 예순 살까지 산다면 아직도 13년이나 남았어! 너무 길어! 내가 어떻게 13년을 견디고 살 수 있겠나?(바냐 삼촌4막 중)”

그는 보이니츠키의 대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신음한다. 가후쿠는 결국 자신을 끄집어내는 체호프에게 항복하는 중이다.

 

미사키는 현실의 가후쿠에서 소냐이다. 가후쿠의 차를 조용히 운전하며, 체호프의 대사를 듣던 미사키는 자신의 상처를 서서히 드러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서서히 알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은 불행한 어린 시절, 배우자의 외도, 그리고 상실들의 근원에 자리잡은 치유되지 못한 분노와 죄의식에 있음을 알게 된다. 미사키는 산사태로 혼자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엄마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했었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사실은 아내를 혼내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가후쿠는 아내가 쓰러진 날 오래도록 차 안에 머물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가후쿠의 오래된 붉은 색 사브는 분노를 억누르고 진실을 회피하고, 과거와 죄의식에 묶여있는, 버리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는 공간이고 심연이다.

 

바냐 삼촌, 우리는 살아갈 거예요. 길고 긴 낮과 밤들을 살아갈 거예요. 운명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 시련을 꾹 참고 견뎌낼 거예요.(바냐 삼촌4막 중)”

수어로 연기하는 소냐(이유나)의 뒤로 여러 언어로 자막이 올라가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의 희미한 얼굴들을 보며 저들은 자신의 아픔을 떠올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미사키 홀로 운전하는 빨간색 사브가 강변도로를 달리는 엔딩은 가후쿠가 그 고통에서 자유로워졌음을 추측하게 된다

나에게도 이 붉은 색 사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있지. 누구에게나 있지.

 

원작 소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드라이브 마이 카. 조금은 각색되었지만 영화를 보고 이 소설을 읽는 것도 좋았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들의 장면들, 감정들이 섞여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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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rjfnr 2024-11-13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 먼저보고 책을 접했는데요 ᆢᆢ즐겁게. 읽으시기를 바랄께요.♡♡

그레이스 2024-11-13 18:58   좋아요 0 | URL
다 읽었죠 ^^
하루키스럽다는 생각!
책 읽고 영화보신 분 중에 영화가 잘 안들어왔다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저는 책보다 영화 각색이 더 좋았던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4-11-13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이라 해서 봤는데,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근데 중간에 멈춘 상태예요.
다 봐야 하는데 ㅎㅎ

그레이스 2024-11-13 18:46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그렇게 멈춘 영화가 줄서있지요^^
일단 제가 읽은 바냐 삼촌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구요. 그래서 무대가 너무 좋았어요.

고양이라디오 2024-11-14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바냐 아저씨>를 읽었습니다. 역시 좋았습니다.

소냐(이유나)의 연기와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11-14 11:24   좋아요 1 | URL
같은 감동을 느끼셨다니 넘 반갑네요^^
수어로 연기하는 장면, 정적가운데 손이 부딪치는 소리... 넘 감동이었어요 ^^

고양이라디오 2024-11-14 13:55   좋아요 1 | URL
이유나씨 너무 좋았습니다. 수어 연기 감동이었습니다ㅜㅜ

전야제 2024-11-17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틈틈이 읽다가 이제서야 댓글을 남기네요ㅠㅠ 주연인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언젠가 봐야지 하고 아껴두었던 영화인데, 마침 이사도 했겠다 이참에 보려구요ㅎㅎ 그레이스 님의 영화 평론에 반해버렸습니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담백하게 풀어내는 느낌 덕분에 영화 감상이 너무 기대되요. 저번에 부모님 댁 가서 파우스트 가져왔는데, 다음에는 체호프 희곡 전집을 가져와야겠어요. 그레이스님 덕분에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책들을 읽고 싶다는 열정이 마구 듭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1-18 10:22   좋아요 0 | URL
그렇게까지 읽어주셨다니 넘 감사합니다.
전야제님 댓글이 더 감동스럽네요.
즐겁고 보람있는 독서되시길 바랄께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