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Z’ 딱 봐도 기호학인 듯 보이는 이 책은 롤랑 바르트라는 작가만 보고 사두었었다. 기억에는이미지와 글쓰기라는 책을 읽고 좋아서 책을 몇 권을 구입했는데, 읽어내는 속도는 몇 권 되지도 않은 구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 책은 책장에 꽂혀만 있는 신세였었다. 결국 바르트 읽기도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이번에 발자크 읽기를 하면서 다시 이 책을 펼쳐들었다.


S/Z』는 바르트가 발자크의 사라진느를 텍스트로 해서 강의한 내용이다. 제목의 S는 사라진느, Z는 잠비넬라의 첫 알파벳이다. 둘 다 이 소설 속에서 화자가 한 여성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문장과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이때 텍스트는 5가지 코드로 읽혀지는데, 해석학 코드(Hermeneutic code, HER.), 행동적 코드(Proairetic code, ACT.), 문화적 코드(Referential code, REF.), 의미론적 코드(Semic code, SEM.), 상징적 코드(Symbolic code, SYM.)이다. 어떤 말과 행동 인물을 표현하는 텍스트에서 독자는 의심하고, 재생하고, 정보를 얻고, 짐작하고, 교감하는 상호작용을 한다. 바르트는 이 소설을 561개의 렉시아(lexia, 독해 단위)나누고 그것을 코드 기호를 달아놓고 분석한다. 이렇게 조각조각 내서 읽는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가끔은 내가 텍스트와 상호작용하며 얻은 의미들이 일치하는 지점에서는 작은 희열을 맛본다.

 

바르트는 이 강의를 통해사라진느를 세상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은 텍스트를 읽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므로 전적으로 그것에만 의존해서 소설을 읽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사라진느를 먼저 읽고 감상을 한 후에 참고한다면 확장된 독서경험이 될 것이다. 어쨌든 나는 도움을 받았다.


 사라진느는 문학과 지성사의 책으로 처음 읽었다. 힘들게 읽었던 생각이 난다. S/Z에도 본문은 수록되어 있다. 두 권이나 있는데 민음사 책을 또 산 이유는 전적으로 제목을 오독한 탓이다. 검색하던 중 사라진 샤베르 대령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발자크 읽기를 하던 중이라 망설이지도 않고 구매버튼을 눌렀고 받아보고서야 사라진샤베르 대령사이에 점 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라진샤베르 대령

! 샤베르 대령은 사라지지 않았다.” (ㅋㅋㅋㅋ)

 

그러면 문지사는 사라진느’, 민음사는 사라진이라고 했을까? 프랑스어에서 SarrasineSarrasin이라는 남성명사에 e를 붙여 여성명사를 만든 것으로 사라진느로 읽는다.(전자사전에서는 사람이름이 아닌 일반명사는 사라진으로 발음이 나온다.) 여기서 또 의문! 왜 남자 주인공에게 여성이름을 붙였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었다. 거세당한 카스트라토 가수 잠비넬라를 사랑했던 사라진은 나중에서야 그 정체를 알게 된다. 사라진에게서 이중적인 심리를 읽게 된다. 그가 진실을 알고 잠비넬라에게 퍼붓는 분노는 속은 것에 대한 화이기도 하면서, 자신 안에 있는 동성애적 성향을 거부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바르트는

사라진(Sarrasine)이라는 낱말은 프랑스인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여성성이라는 또 다른 함축 의미를 실어 나르고 있다. 특히 프랑스어의 고유명사 연구를 통해 남성(Sarrazin)이 통상적으로 확인되는 고유명사인 경우, 이 여성성은 여성의 특수한 형태소로서 마지막에 e를 일반적으로 받는다. (함축된) 여성성은 텍스트의 여러 장소에서 고정되도록 되어 있는 하나의 기의이다. 그것은 성격 분위기 수사 상징을 형성하기 위해 동일한 종류의 다른 요소들과 결합될 수 있는 이동성 요소이다.(S/Z롤랑 바르트 93p)”

그는 사라진이 보인 난폭한 분노는 잠비넬라로부터 온 거세공포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다시 이야기를 청취하던 여인의 분노로 나타나는데, 그녀 역시 같은 공포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쎄 여기까지는 내 지식이 짧아서 동의하는 것을 유보하고 싶다. 제목에 대한 비슷한 해석을 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남성명사는 사라쟁, 여성명사는 사라진사라진느두 가지 발음이 다 검색된다. 그러나 제목이 전하는 의미들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고유명사를 읽는 발음 사라진느로 표기하는 편을 선택하겠다.


민음사 번역 사라진은 너무나 매끄럽게 잘 읽혔다. S/Z에 실려 있는 번역문과 비교했을 때 좀 더 의역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감춰져 있는 의도, 기호, 의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면서 눈과 의식을 이끌어가는 힘은 민음사 번역에 더 있었다. 잠비넬라의 정체가 드러나는 지점까지 빠른 속도로 끌려가게 된다.

 

떠들썩한 연회장과 추운 겨울 회색빛 정원의 이미지로 시작된 대조법은 한 존재에게서 보여지는 상반된 이미지를 향한다. 랑티 백작 저택의 떠들석한 연회 한 가운데 홀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노인, 노쇠한 육체 위에 입혀진 화려한 의상은 누더기로 보이고, 보석들은 기괴한 존재의 모습을 더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낸다. 더욱 의미심장한 대조는 이 환상적인 인물에게 강렬하게 느껴지는 여성적 교태다.

이 병약한 육신에 새겨진 노쇠의 흔적에 별수 없이 주목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깊은 혐오가 마음을 죄어 왔다(25p).”

이질적인 요소들은 눈길을 끌고, 호기심을 갖게 하고, 심지어 혐오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인물의 등장에 집안이 발칵 뒤집히지만, 그를 감시하고, 부축하고, 그 앞에서 웃음 짓는 랑티가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수상쩍다. 그는 그들의 행복, 목숨, 재산을 움켜진 마법의 인물 같았다(20p)”라는 말을 통해, 랑티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사치가 그에게서 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도니스, 엔디미온은 그 노인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등장한다. 벽에 걸려 있는 아도니스는 사라진의 조각을 보고 그린 것이고, 그 모델이 잠비넬라라는 사실이 구술되는 순간, 존재는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결국 추기경의 노리개였던 카스트라토 가수 잠비넬라의 정체가 밝혀지고, 피그말리온의 욕망을 갖고 있던 사라진은 분노한다. 잠비넬라를 사랑했던 사라진의 당혹스러움에는 공감할 수 있으나, 분노에는 그럴 수 없다. 그의 분노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군중 속에 기괴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병들고 노쇠한 잠비넬라에게 연민을 갖게 된다.

 

이질적인 요소들은 내러티브를 통해 연민을 일으킨다. 외부로 보여지는 이미지, 그 존재가 갖고 있는 사회 통념적 시선으로는 배척될 수밖에 없는 이미지의 근원에 타인의 욕망에서 비롯된 폭력이 있었음을 알게 될 때, 그에게서 비애를 느낀다. 그리고 그 폭로된 정체 앞에서 공포로 절규하는 사라진느, 그의 분노는 측은하다. 인간은 보여지는 것에 의해 눈이 멀 수 있다.

 

이번에는 발자크에게 묻고 싶다. 글을 쓴 의도가 무엇이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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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0-28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Z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통과합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4-10-28 17:5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coolcat329 2024-10-29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Z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기호학이 뭔지 모르나 독자가 소설을 읽고 문장과 상호작용하는 다섯 가지 코드는 궁금하네요.
제 생각에도 ‘사라진‘보다는 ‘사라진느‘가 더 맞는 거 같아요. 민음사 번역이 읽기 수월하다니 참고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10-29 09: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기호학은 볼수록 어렵네요
ㅎㅎ

서니데이 2024-10-29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라진보다는 사라진느 쪽이 더 여성명사 같은데, 남성명사가 사라쟁이군요.
원서가 외국어인 책은 번역이 잘 되어 있어야 읽고 이해하기 좋은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4-10-29 21:22   좋아요 1 | URL

그렇죠?
오랜만이고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님도 평안하세요

레삭매냐 2024-10-30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쓰는 기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발자쿠 선생.

평생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어
떻게 쓸 수 있었는지 그저 신기
할 따름입니다.

S/Z의 저자는 무려 롤랑 바르트
네요. 책은 처음 알게 되었네요.

그레이스 2024-10-30 09:07   좋아요 1 | URL
발자크가 사라진느를 바르트가 사라진느를 텍스트로 S/N을 강의한 동기에 어떤 접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도시에서 몰려든 관광객을 향해 내키지 않는 웃음도 지을 줄 알았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자신들의 삶을 살아냈던 것이다. 어쩌면 원형 그대로의 화포를 찾고자 하는 내 욕심으로 화포 이외의 것에서 눈을 돌렸을 것이다. 자신은 온몸으로 문명의 편리를 누리며 전통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는 꼴이었다. 당신들은 언제나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으라고 그래야만 한다며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는 몰염치와 다르지 않았다.
여행은 때로 누군가에게 모독일 수 있었다.
결국 몽족과 그녀들의 화포를 찾아 헤맨 내 발걸음도 내 안의 잣대만으로 다른 것에 눈감아버리는, 순수 혈통에 집착하는 뿌리 깊은 이기심과 닮아 있었는지 모른다. 여기는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동안 그네들이 끝끝내 지켜온 삶의 터전이었고 나는 더운 여름날 시원한바람이나 물 한 모금보다 못한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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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희곡선 을유세계문학전집 5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박현섭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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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명동의 극장에서 연극 갈매기를 봤었다. 이 내용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갔던 나는 전하려는 메시지를 대략 짐작만 하고 감동도 공감도 하지 못했었다. 가볍게 던져지는 대화들과 주인공의 자살이 맥락 없이 다가왔다. 연기나 연출의 문제가 아니라 체호프의 작품 자체가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19세기 말 안톤 체호프는 러시아 문학사에 있어 공백 시대에 등장했다. 네크라소프,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가 세상을 떠났다. 톨스토이는 절필을 선언했다. 그런 시기에 체호프가 등장했다. 초기에는 코믹하고 가벼운 글들을 썼고, 그레고로비치로부터 칭찬과 격려의 편지를 받고서야 지방의 의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었다. 그의 단편과 희곡들에서 엿보이는 것처럼 체호프는 개인주의자였고 예술가의 시선을 갖고 있다. 그래서 1890년 강제 유형에 처해진 사람들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사할린으로 여행을 간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 여행 때문에 병을 얻었고 그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이유가 된다. 그는 지방의 의사로 있으면서 관찰한 사람들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고, 그의 작품에는 의사가 등장한다.

 

이 희곡집에는 갈매기, 바냐삼촌, 세자매, 벚나무 동산체호프의 4대 희곡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담겨있다. 이 희곡들은 러시아 농촌 사회의 전형적인 인물들과 이 농촌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도시의 귀족 또는 지식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대화의 전반적인 정서는 우울이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정치적 암흑시대의 러시아인들의 무기력과 자기중심주의를 읽게 된다. 사실 체호프는 정치에 무관했기에 지식인들의 이런 정서와 태도는 농촌소외와 더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철도의 발달과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경제는 호황이었다. 이와 더불어 철도건설은, 농노해방으로 시작되었던 사람들의 도시로 유입은 더욱 가속화했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도시 인구는 급격하게 팽창했다. 반면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 패배감으로 인해 우울함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마샤와 메드베덴코의 우울함은 표면적으로 엇갈린 사랑때문인 것처럼 보이나 이들의 대화를 읽어보면 더 근본적인 이유들을 보게 된다왜 항상 검은 옷을 입느냐고 질문하는 메드베덴코에게 마샤는 불행하기 때문에 입는 인생의 상복이라 말한다. 그런 그녀에게 메드베덴코는 가난에 대해 토로한다. 마샤는 트레플레프를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메드베덴코와 결혼한다. 과연 메드베덴코는 그녀를 사랑해서 구애했을까? 그의 구애가 너무 열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의심을 하게 된다. 아마도 두 사람에게는  체념이 반복되어 습관이 되어 있는 듯 보인다.

 

트레플레프는 여배우 아르카디나의 아들이다. 그녀는 자기애가 강하고, 그래서 아들은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 그는 유명한 여배우의 아들로 항상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고 인정욕구가 강하며 자의식이 강하다. 당시 무대에 올려지는 연극을 구태의연하다고 비판하고 오만하다. 그는 새로운 형식의 희곡을 쓰고 무대를 선보인다. 가정극 공연을 위해 작은 무대가 세워지고 그의 희곡은 올려지지만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어머니의 비웃음을 산다.


주목하게 되는 지점은 트레플레프 주변인들이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고, 이해하려고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인 니나도, 그의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도른조차도 그런 듯 보인다. 그의 고통의 깊이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죽은 갈매기라는 복선, 광기를 보이는 그의 행동들에서도 그의 자살 시도에 대한 아무런 전조를 읽지 못한다. 죽음을 가져온 두 번째 자살은 더욱 갑작스럽다. 관객조차도 그의 이런 심리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관심과 문제에 몰두해 있어 누군가의 말을 듣고 들여다볼 여유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스몰토크, 날씨 이야기, 농담 속에 외로움이 묻어나고 있다. 많지도 않은 사람들이 각자의 고민에 빠져 있으면서 그들 속에서 서로 소외시키고 소외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트레플레프는 왜 그런 무대를 올렸을까? 아르키디나가 어렴풋이 느낀 것처럼 모친인 그녀를 조롱하기 위해 난해한 작품을 올린 것이 아닐까? 모친으로부터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음을 보게 된다.

 

트레플레프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니나가 그의 곁을 떠나고, 그는 절망감에 자살시도를 한다. 시간이 흐르고 그는 글을 써서 성공한 작가가 된다. 새로운 형식의 글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도른은 그 사람은 이미지를 통해 사고할 줄 알아요. 그 사람 소설은 색감이 풍부하고 선명해요. 나는 그걸 강하게 느낍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분명한 쟁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인상을 던져 줄 뿐, 그 이상이 없어요. 사실 인상 하나만으로는 멀리 나갈 수 없거든요.(체호프 희곡선을유출판사, 96p)”라고 말한다. 그렇듯 트레플레프는 한계를 느낀다.

 “새로운 형식에 대해 그렇게 떠들어 댔지만, 지금 보니 나 스스로 점점 타성에 빠져들고 있어.(체호프 희곡선을유출판사, 98p)”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오래 멀리 끌고 갈 수 없다. 그는 작품에서 진부함과 따분함을 지우기 위해 다시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트레플레프 뿐 아니라, 그가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트리고린의 말을 통해서도 작가로서의 고통을 전하고 있다. 아마도 체호프의 작가로서 고충이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모친 아르카디나는 데카당하다고 비판하고, 관객의 호감을 사지 못했던 그의 작품이 후에는 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모더니즘, 이미지나 상징, 허무의 냄새가 가득한 전위적인 작품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대중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른의 말처럼 전달하는 메시지와 분명한 쟁점을 던지지 못함으로 그는 한계에 부딪친다. 애초에 그의 글쓰기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질문하게 된다.

 

또한 도시로 갔다가 트리고린에게 버림받고 배우로도 성공하지 못한 니나가 찾아왔을 때, 그는 니나에게 곁에 있어줄 것을 호소한다.

 “나는 외롭습니다. 내 마음에 온기를 전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나는 마치 지하에 있는 것처럼 추워요. 그래서 무엇을 쓰든 간에, 내 작품은 모두 메마르고, 딱딱하고, 음울해져요. 여기 남아 줘요, 니나, 제발 부탁해요, 아니면 당신과 함께 가도록 해 줘요!(98p)” 

얼마나 외롭고 처절한 부탁인가?

 

그는 작가로서 한계와 상실의 심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죽음의 갑작스러움에서 체호프에게 감탄하게 된다. 아무 정보 없이 봤던 연극에서 내가 너무 개연성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인 듯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이 체호프의 의도였다.

 

트레플레프의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구멍은 작가로서의 성공, 사람들의 인정과 같은 것으로 메꿀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글을 씀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한계를 만나고 더욱 깊은 절망에 빠졌다.

 

갈매기의 트레플레프의 자살(갈매기)도 바냐삼촌의 절규(바냐삼촌)도 모두 갑작스럽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갑작스러움만 본다면 체호프가 그리려는 인물들을 지나친 것이다. 그의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나보코프는 "체호프는 등장인물을 교훈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고, 인물을 미덕의 전형으로 만들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인간상 그대로를 정치적 메시지나 문학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그려낸다"고 말한다. 한 인물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가 관찰한 필부 필녀를 그대로 그리고 있다. 이들이 만나 어떤 사유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체호프의 등장인물들은 진정한 도덕과 정신문화, 물질적 안정과 풍요가 러시아 민중에게 뿌리 내리지 않는 한, 고매한 지식인들께서 선술집 옆에 다리나 학교를 짓느라 아무리 고군분투하더라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나보코프, 러시아 문학 강의 456p)”

 

사람은 다 자신의 문제에 몰두해 있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타인의 고통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기란 어렵다.- 나의 문제가 가장 크고 당면한 문제이기에.  당연히 트레플레프와 같은 사람은 소외된다. 개인주의가 이제는 삶의 규범처럼 되어서 개인의 사생활은 침해당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그 영역들의 모임에서 트레플레프와 같은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추방을 당하게 된다. 19세기말 러시아 농촌 소도시 체호프가 그려내는 사람들은 다 외로웠다

 

나는 고통받는 타인에게 어느 정도 얼마나 지속적으로 관심을 둘 수 있을까? 그의 요청이 없다면 무관심해도 괜찮을까? 혹시 내가 놓쳤던 사람들은 없을까? 등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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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0-16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통 받는 타인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유지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백만 한 가지 문제들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죠.

나는 외롭고 싶지 않지만 또 타
인의 외로움은 잘 모르겠다 -

아, 쉽지 않은 명제입니다, 참말로.

그레이스 2024-10-16 19:09   좋아요 1 | URL
^^ ㅠㅠ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인간의 고통은 변함이 없죠
표면적 이유만 달라졌을 뿐!
 
보이체크.당통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9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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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까지 레포트 제출인데, 9시에 내용을 봐달라고 한다. 독일 희곡 한편을 보고 비평을 써서 제출하는 과제라고. 읽지도 않은 책 비평을 어떻게 봐주란 얘기인지. 암튼 읽었다. 뭔가 설득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들만 지적하고 마무리 했다. 이미 레포트는 제출했겠지만 읽어보기로 했다.

 

희곡에는 당최 손이 가지 않는다. 파우스트 읽을 때도 몰입하는데 까지 오래 걸렸다. 셰익스피어 읽을 때는 그나마 많이 알고 있던 내용이라 그런지 조금 나았지만, 희곡은 여전히 재능 없는 배우의 연기처럼 덜그덕 거리면서 읽혀진다. 유진 오닐의 희곡도 미뤄두고 있는 상태인데, 결국 딸내미 때문에 희곡을 읽게 되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24살에 일찍 죽어서 세 개의 작품밖에 없다. 보이체크1837년에 뷔히너가 죽은 이후 1879년에야 비로소 상연되었다. 그리고 이 희곡이 출간될 때는 상당히 손질된 상태로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서로 인과관계가 아닌 개별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장면들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듯 보이지만 인간들과 사건들이 주인공 보이체크에게 영향을 주고, 보이체크 또한 각각의 장면마다 심리상태가 급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이체크는 실제로 당시에 있었던 살인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한다. 1824년 살인죄로 공개 처형된 가발장이 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를 모델로 하고 있다. 뷔히너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사회를 들끓게 했던 사형집행의 당위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본다. 보이체크의 정신이상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인간을 정신이상으로까지 몰고 간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보이체크는 대위의 이발사다. 산업사회에서 최하위층의 삶을 살고 있는 보이체크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벌기위해 3개월 동안 의사의 임상실험 대상이 된다. 보이체크를 중심으로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의사, 도덕과 명예를 강요하며 보이체크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대위, 돈과 육체의 욕망을 채워줄 남자들에게 몸을 주는 마리-마리는 보이체크가 사랑하는 여인이고, 그의 아들을 낳았지만 아이를 사생아처럼 키우고 있다. 가난 때문이다. 마리와 같은 여인을 욕망을 채우기 위해 차지하는 군악대장. 대위와 의사는 보이체크의 몸과 정신을 착취하는 이들이다. 그들과 함께 마리와 군악대장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심리 상태를 극단으로 몰아간다. 소외, 박탈감, 수치심, 질투, 분노, 좌절 등의 감정 상태에 빠진 보이체크는 결국 마리를 죽이고 미쳐버린다.

 

각각의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화와 사건들은 그 시대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봉건적인 가치관과 계급사회로부터 온 권위주의는 여전히 유물로 남아있다. 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으로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고, 새로운 계급이 탄생되었다. 환원주의 시대인 것이다.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여인을 살 수도 있고, 사람을 당나귀로 바꾸는 실험대상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돈을 얻기 위해 마리는 남자들에게 몸을 팔고, 보이체크는 의사에게 몸을 판다. 두 사람의 모습은 당시 하층민의 삶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이 보이체크가 정신이상을 보이도록 한 원인이라는 게 작가의 진단인 것으로 읽혀진다. 보이체크가 대위에게서 받은 멸시나 의사로부터 받은 모욕은 몸 그 자체에 새겨지는 것이다. 이성이 작동할 수가 없다. 그의 인격이 박탈당하는 장면에서 모욕과 수치가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질투 때문에 몸서리치는 보이체크의 분노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의 한 감정을 짧게 한 장면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사람에게는 덕이 있어야 한다며, 보이체크를 비난하고 가르치는 대위에게 보이체크는 말한다.

 

보이체크 : , 대위님, 덕 말입니다! 저에겐 아직 그게 부족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같이 천한사람들에게 덕이란 게 없어요. 그러니 그저 본능대로 행동할 뿐이죠. 하지만 제가 신사라면, 모자며 시계며 예복이 있고, 고상하게 말한다면, 그땐 저도 예의 바르게 행동하겠죠. 덕이란 참 멋지지요. 하지만 전 가난한 놈인걸요.

-27p

 

보이체크의 말을 통해 하위계층의 보편적 가치관을 보게 된다. 신사처럼 입고 고상하게 말하는 사람에게서 덕이 나온다. 돈에서 덕이 나온다는 이야기. 지금은 우리가 이 말을 부인하겠지만, 그 시절의 비참한 가난 속에 살던 하층민의 삶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단정 짓기 힘들 것 같다. 그들이 도덕이나 이성에 의해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힘들다고 뷔히너는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환경이 개인의 윤리와 도덕성을 이런 식으로 지배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는 아니어도 한 인간이 이런 모욕적인 삶을 살고 존재할 자리를 잃게 되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필경사 바틀비역시 자본주의와 기계주의 사회에서 마음이 고장 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오래 전이나 현재나 인간이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을 생각하게 된다. 사회 안전망이라는 것이 복지에 있다는 것, 개인이 삶을 영위하고 그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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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22 10: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824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궁금해요. 희곡은 소리내어 읽어야한다고 어디선가 봤어요
(파우스트 읽다만 사람) 그래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데
역시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05-22 10:24   좋아요 5 | URL
제가 연극에 대한 노출이 많지 않아서 그렇다는 자체 진단을 내리고 있어요.
연주회나 뮤지컬은 좋아하는데 연극은 안찾게 되요^^

scott 2021-05-22 10:2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보이체크 연극으로 보면 충격!적이지만
희곡은 첨부터 읽기 보다 유툽 영상과 함께 읽고 보면 좋습니다.
숙제도 대신 해주시는 그레이스님은
新사임당 ^ㅎ^

청아 2021-05-22 10:33   좋아요 4 | URL
와~그런 방법도 있었네요!!스콧님👍

그레이스 2021-05-22 10:46   좋아요 6 | URL
감사합니다
대신은 아니고 잘했는지 읽어달라는 뜻이었는데 차마 잘했다는 얘기는 못하겠더라구요
제출 직전에 봐달라는 의도는 ‘많이 말하지마‘ 아닐까요? ㅋ

그레이스 2021-05-22 10:58   좋아요 4 | URL
유튜브 영상 팁 감사합니다 ~

mini74 2021-05-22 11: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희곡은 너무 어려워요. 따님 귀여워요. ㅎㅎ울 아인 본인 관련 글 볼까봐 난린데 부럽기도 합니다 *^^*

그레이스 2021-05-22 11:35   좋아요 4 | URL
오늘 이 리뷰 읽어보고 자기 글이 그렇게 앞뒤가 안맞진 않았다고 말하면서 웃더라구요.
자기 글이랑 제 글이랑 별로 관점차이는 없는것 같다고...ㅎㅎ

새파랑 2021-05-22 12: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재미있어요. 그레이스님 이해력 짱~! 이 책을 읽은 느낌이 들어요^^ 저도 희곡은 어렵던데ㅡㅡ 이런 과제도 하다니 요즘 학생들은 수준이 정말 높네요~!

얄라알라 2021-05-22 19:35   좋아요 3 | URL
그래도 마감 3시간 전에 봐달라고 부탁하는 자제분은 모범 학생인 것 같아요. 땡 하기 직전까지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과는 다르네요^^ 게다가 제겐 넘사벽 장르의 글인데 자제분도 그레이스님도 멋지십니다. scott님 말씀처럼 新사임당이 그려집니다. ^^

그레이스 2021-05-22 19:49   좋아요 2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Falstaff 2021-05-22 21: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의 원작보다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작품 <보첵크 Wozzeck>에 먼저 익숙했습니다. 베르크가 무조음악을 기반으로 드라마를 만들어서 그랬는지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뷔히너의 <보이체크>보다 베르크의 <보쩨크>가 더 좋습니다.
근데 고백하건데, 희곡보다는 무대 위에서 희곡을 변주하는 연극이 (심지어 영화보다)더 재미있고, 여기에다 음악까지 입혔으니 오페라가 더 재미있었을 게 틀림 없겠지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1-05-22 21:04   좋아요 3 | URL
이 희곡이 연극이 올려지기 전에 오페라 <보체크>의 대본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오늘 유튜브로 연극을 봤는데 정말 많은 변주들이 이루어지고 있더군요.
오늘날도 변함없이 이 연극이 변주되어 올려지는데는 무언가 관통하는 메세지가 있어서겠죠?
falstaff님 감사해요~~

붕붕툐툐 2021-05-22 2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연극 많이 좋아하는데, 이 작품도 연극으로 본 거 같아요~ 웬 미친놈들이 많이 나왔던 기억만 남아있네요~ 희곡으로 읽어볼 생각은 못했는데, 따님 덕분에 도전을 해볼까 싶네요~ 엄마한테 봐달라고 하는 딸은 분명 엄마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니, 두 분 다 멋지십니다~~

그레이스 2021-05-22 21:24   좋아요 1 | URL
^^연극으로 보신 분들이 많으시네요.
제가 너무 문외한인가봐요^^;;
좀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