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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 곽재식의 기후 시민 수업
곽재식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2월
평점 :
작가가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계속 질문했던 “궁금하잖아요? 안 궁금하세요?”했던 말이 생각난다. 정말 알고 싶어서 조사하고 연구한 느낌이 전해진다. 매체나 책을 통해 알고 있긴 한데 그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냥 다 알고 있으려니 하고 넘어가는 궁금했던 부분을 짚어줘서 좋았다. 대부분 아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가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려 들면 분절된 정보들 때문에 그때서야 무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의 호기심을 따라가면서 읽어 가면 다음에 오는 내용이 더 궁금해지고 독서 속도는 빨라진다. 과학자와 SF작가라는 두 가지 타이틀이 글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까? 작가는 서운해 할지 모르겠지만 SF보다 이런 글쓰기를 더 잘하는 것 같다.
환경 주제의 책들을 여러 권 읽었지만 이렇게 흡입력 있는 책은 오랜만이다. 전문가의 책들은 자료들의 분석과정을 따라가야 하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활동가의 책들은 감상적이거나 불안을 조성하는 선동적인 어투의 책들, 대두되는 이슈들을 나열하고 대안들만을 제시하는 수박 겉핥기식의 서술이 되기 쉽다. 가끔은 의도가 의심되는 책들도 있었다. 같은 자료를 놓고 이렇게 정반대의 주장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또한 제시하는 국외 자료나 사건들의 경우 체감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덧붙이자면, 이 책은 그런 자료들이나 사건들에 접근하는 관점이나 정서가 낯설지 않아서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주제는 기후변화! 과학사나 역사의 에피소드, 전설, 지구의 오래된 역사를 예로 들면서 각 장을 시작한다. 첫 번째 장은 기후변화, 온난화에 관한 내용이다. 텔러의 연설로 시작한다. 그는 원자력이나 핵에너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 인물이다. 1959년 ‘미국석유협회’에 초청된 텔러는 석유를 태우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로 인한 온실효과로 많은 육지가 물에 잠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회의장을 싸늘하게 만들었던 이 연설은 사실 기후변화문제가 대두되기 전의 일이어서 그의 특이함만이 부각된 에피소드가 되었다. 이어서, 작가는 15세기 <산가요록>에 기록되어 있는 조선시대 온실의 설계와 만드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그리고 지구 온실 효과의 긍정적인 면과 이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기체를 소개한다. 이 기체들이 갖고 있는 분자구조와 이 구조가 어떤 원리로 온실효과를 가져오는지에 관해 이야기 한다. 호기심 천국 과학 선생님의 입담 넘치는 수업시간처럼 지루한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가 제시하는 숫자들도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끄덕거리며 보게 된다.
오랫동안 0.03퍼센트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기후학자들이 걱정했듯 0.04퍼센트를 넘기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이미 0.04퍼센트를 넘긴지 몇 년이 지났다고 한다. 온실기체를 줄이는 것만을 놓고 볼 때, “매년 400억 톤, 매일 1억 1000만 톤, 100킬로미터를 달리는 자동차 54억대만큼의 온실기체를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된다.” 확 와 닿는다. 온실 기체 중 메탄가스가 대두되는 것은 적은 양으로도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한 온실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되새김질 하는 초식동물들의 경우 배 속에 사는 미생물들이 풀을 분해하면 꾸준히 메탄가스를 뿜어내는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리고 비료의 남용으로 생기는 아산화질소, 냉각장치에 쓰이는 플루오린 계열 물질들, 이 물질들을 생산하는 개발도상국들과 국제 경제적 역학관계 등 얽혀있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제시한다.
다음 장에서 지구상에 있었던 기후변화와 다섯 번의 대멸종의 역사를 다룬다. 그는 또 이 장을 김종직이 1472년 기록한 『유두류록』이라는 지리산 유람기에 적힌 지리산 선암(船岩)이라는 바위에 관한 전설로 시작한다. 대홍수 전설이다. “공교롭게도 지리산에 배바위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61p)고 하면서 SF작가로서 독자를 끌고 가는 상상력의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전 세계 전설이나 신화로 전해지는 홍수 이야기로 확장시키고 지구상에 기록된 대멸종을 거론한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변화는 자연 그대로의 상황에서 저절로 일어났던 다섯 번의 대멸종에 비하면 그 영향이 작을 수 있다. 이후 기후 변화의 충격이 대멸종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할 지라도 사회의 약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형태로 먼저 나타날 것이다. 피해가 작다고 하더라도 간과하면 안 되는 이유다.
“기후변화에 대해 알아내는 것은 그냥 사회를 살펴보니 망조가 든 것 같으므로 지구 멸망의 징조가 느껴진다거나, 세상에 여러 나쁜 일이 벌어지는 꼴을 보니 종말이 가까워진 것 같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 농도가 0.02퍼센트였는데 0.04펴센트가 되었다는 측정 결과의 차이를 알아내고, 그것이 얼마나 충격인지 계산해보는 문제다.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 문제에 달라붙어 작은 차이를 세밀하게 따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서 긴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측정하고 계산한 덕택에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위협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96p)
이쯤 되면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해서 저자가 말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된다. 기후의 변화는 지구 전체의 멸망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생물 종이나 열악한 환경에 있는 특정한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구는 괜찮지만 우리, 우리 중 누군가는 생존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고 시원한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침수의 위험과 뜨거운 열기에 노출된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다음 장에서 기후변화를 연구해 온 과학자들, 유니스 푸트, 아레니우스, 가이 캘린더, 찰스 데이비드 킬링의 가설과 연구와 자료들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산화탄소 양이 늘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프 킬링 곡선이 만들어지기까지 측정 장소의 선정과 톱니 모양으로 이루어진 곡선을 해석해준다. 물론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해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말다툼이나 기싸움 때문이 아니라, 매일같이 온도계 눈금을 읽는 눈과 이산화탄소 측정 기구를 조작하는 손 덕택이라는 점”(138p)을 강조한다.
기후변화 협약이나 국제기구들이 탄생하게 된 계기들과 그 역사에 대해 짚어 가는데 나의 경우는 여기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발단이 된 사건들이나 위기의 원인은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2021년 현재 이회성이라는 한국인 경제학자가 회장으로 있는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를 소개하면서 이런 협의체가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관용어구가 유행되었던 UN환경개발회의(UN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인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와 여기서 환경에 관해 의견을 나누게 되었던 국제관계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UNFCC(UN기후변화협약)이라는 틀이 생기고, COP(Conferece of Parties)라고 명칭이 붙여져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여러 나라들이 하는 회의를 이어간다. COP1으로 시작된 회의는 2020년에 COP25를 넘었다. 여러 환경 관련 기구와 기금, 그레타 툰베리 같은 상징적 인물의 활약 등을 서술하고 있다.
드디어 다른 환경 책에서도 많이 거론되는 재생에너지와 대체 에너지를 다룬다. 작가는 현재 시점에서 발전량과 그 효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또한 전기차와 수소차에 대한 전망을 하며, 이것 또한 국제관계와 경제성이란 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한다. 수소차의 발전가능성이 더 컸던 것과 달리 전기차가 더 앞서게 된 이유는 카세트의 소비와 함께 리튬이온배터리의 개발에 있다. 그리고 핸드폰 발달과 함께 배터리 품질은 더욱 발전했다. 무겁고 효용성이 떨어졌던 전기차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생산성이 높은 중국과 같은 곳에서 어느 개발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가도 중요한 변수다. 국제적인 수요도 이 변수와 관련되어서 달라진다. 우리는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다른 기술 분야의 발전에도 계획대로 가두어놓고, 틀에 맞추어 제약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술을 좀 더 자유롭게 시도해보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265p)
수소경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수소생산과 수소연료전지 생산 기술과 그 수요가 중요하다. 더 좋은 수소 기술을 개발하라고 다그친다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여러 나라가 수소경제에 관한 기술 개발과 사업을 해나가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기술에 대한 설명은 실로 과학자적 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공에서 플라스틱이 나오는 환상적인 상상이다. 비용의 문제만 해결되면.
환경을 주제로 한 책은 읽고 나면 의무감과 죄책감이 무겁게 남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곽재식 작가도 마지막 장에서 우리가 할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탄소발자국 표도 제시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의무감보다는 이해와 동의가 앞선다.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조장하거나, 한편의 주장을 위해 논증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환경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것은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이웃들을 생각함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계속 마음을 울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전하는 지식을 아는 것이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