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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이번엔 전영애 역으로 읽었다. 민음사도 함께 병행했다. 몇 년 전에는 열린책들로 읽었었다. 이 책(파우스트전영애 역, )은 마주보는 페이지에 독어 원문과 한글 번역이 나란히 있어서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나는 독일어를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발음규칙은 알고 있고, 눈으로 각운과 리듬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독어를 알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공부해 볼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신곡읽을 때는 이탈리아어, 호메로스 읽을 때는 그리스어, 그리고 라틴어, 불어, 일본어……. 이런 식으로 마음속에서는 10개는 족히 되는 언어를 익혔다.^^

 

이 작품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317, 전영애 번역, )는 민음사나 문학동네, 열린책들에서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잘못을 범하니까)”로 번역되었었다. 아마도 이 구절은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328~329)”과 함께 파우스트의 욕망, 방황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세계를 그 가장 깊은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지, 모든 작용하는 힘과 그 맹아를 보려는(382~385)”욕망, 그 비밀을 알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임을 예언하는 듯하다.

 

평생을 실험실에서 연구를 했으나 그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파우스트는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 그를 메피스토펠레스가 찾아오고, 계약을 맺는다. 메피스토가 상징하는 의미는 여러가지 전통적인 의미로 악마, 혹은 자연에 깃들어 있는 정령 등, 그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지식은 절대적 힘과 관련있음을 암시한다. 메피스토가 그의 영혼을 데려갈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할 순간이 언제가 될까? 1부 그레트헨과의 사랑의 순간도, 2부 헬레나와의 사랑이나 아르카디아 건설의 순간도 아니다.

 

파우스트가 헬레나를 만나는 장면에서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할 극치의 순간이 도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숨을 잘 못 쉬겠어요, 떨려요, 말이 막혀요, 이건 꿈입니다. 날과 장소가 사라졌어요.(9413-9414)”라고 말한다. 아르카디아에서 헬레네와 함께 하는 파우스트는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파우스트가 부르는 목가에서 그의 행복은 아직 미래 시제로 투사된다.

우리의 행복, 아르카디아답게 자유롭기를!(9573)

인간은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그 행복이 완전함을 확신하지 못한다. 극치의 행복은 오히려 불안감을 준다. 언제고 이 행복은 사라질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있기에, 극치는 완전한 행복이 아니다.

 

에우포리온의 죽음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에우포리온은 그리스 해방전쟁을 도우러 갔다가 요절한 시인 바이런이 어려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이 막에서 파우스트의 애도시(哀悼詩)는 바이런을 가리키고 있다. 사랑의 가장 이상적인 결론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 사회적 제도로 이야기 한다면, 결혼과 자녀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얼마나 불안하고 변하기 쉬운지!

 

파우스트 23막에 해당되는, 괴테 자신이 고전적 낭만적 환영극이라 했던, ‘헬레나 비극은 당시 독일인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품었던 동경과 그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보여 준다. 괴테의 역사적 통찰이라 함은 파우스트가 신적 존재 헬레나와 함께 형성한 이상적인 아르카디아는 역사 밖의 공간으로, 헬레나를 통해 구현되는 고대 세계 역시 근대의 역사적 시점에서 다시 재현할 수 없는 허상(독일문학사최민숙 외, 215-238p)”이라는 것이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그가 바이마르 궁에 있으면서 보고 겪었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땅속에 있는 보물(금)을 근거로 지폐를 발행해서 국가의 재정위기를 타결하는 왕과 재상들의 모습과 그들을 기만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논리는 오늘날 금융경제-숫자로만 확인되는 화폐에 대한 맹신으로 돌아가는-를 보여준다.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하는 것 또한 고금에 통하는 불의다.

 

플라스크 안에서 만들어진 인간정신으로만 존재하는 호문쿨루스는 육체를 욕망하고, 그리스 세계를 향하고 생명을 시원과 탄생에 대한 신적권위에 도전한다. 비너스의 탄생, 갈라테아의 승리 등을 연상케하는 신화들과 생명의 근원을 연구했던 고대 철학자들이 뒤섞여 등장한다. 그들이 외치는 만세(Heil)는 여전히 침범당하지 않은 생명의 근원을 찬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의 모두에게 지극한 경하를, 원소들, 너희 사대원소 모두에게!(8486-8487)”

 

헬레나가 사라지고 슬퍼하던 파우스트는 산위로 이동해가고, 자연을 내려다보며 메피스토펠레스와 논쟁을 벌인다. 그는 자연이 질서 정연하고 완벽하다고 주장하지만, 갑자기 메피스토의 주장대로 자연이 거칠고 혼란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그 힘에 대항하여 싸우고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갑자기 찾아온 욕망일까? 곧 땅을 차지하고 국가를 건설하려는 욕망으로 향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 황제편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적인 세력의 도움으로 승리한다. 그 공으로 아직은 바다인 미래의 간척지를 받는다.

 

파우스트는 이 해안지대를 간척하여 새로운 미래 국가를 세울 꿈을 꾼다. 필레몬과 바우키스의 오두막과 신전을 불태운다. 끝없는 욕망의 추동과 무리한 개발이 가져오는 근대의 문제를 시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바다가 메꿔진 후, ‘한밤중그의 저택 앞으로 의인화된 결핍··근심·궁핍이 다가오고, 그들 중 근심만 열쇠구멍으로 숨어 들어간다. ‘한밤중과 의인화된 근심의 알레고리는 넘어지는 인간의 보편적인 상황에 관한 진리를 전해준다. 이것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근심은 말한다.

내가 한번 내 것으로 소유한 사람 

그에겐 온 세상을 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영원한 침울이 내려앉아 

태양이 뜨지도 않고 지지도 않고

바깥으로는 모든 감각이 완전해도 

안에는 암흑이 깃들어 있어.

온갖 보물이 있어도 

제 것으로 만들 줄 모른다.

행복과 불행이 망상이 되고

넘침 가운데서도 굶주린다.

희열이든, 괴로움이든 

그걸 다른 날로 밀쳐두고,

오직 미래만 기대하며 

그래서 결코 완수하지 못한다.(11453-11466)”

 

근심이 내쉰 숨으로 파우스트가 눈이 멀었다는 것은, 실제로 실명한 것이지만, 상징적 의미가 강하게 다가온다. 근심으로 눈이 멀다! 반면, 육체의 실명 후 마음에 빛이 비춰졌다는 파우스트의 고백은 결론을 달리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그는 삽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건설할 미래 세계를 꿈꾼다. 낙원 같은 땅 자유로운 터에 자유로운 백성을 꿈꾸며 드디어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낸다. 일반적으로, 파우스트의 마지막 욕망이 모두의 낙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는 구원받았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메피스토는 그를 차지하지 못했다.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는 5막 역시 이런 해석을 내리게 한다. 하지만, 그의 낙원 건설의 꿈이 모두의 것이 아닌, 즉 그 시혜를 받는 자들의 꿈이 아닌, 파우스트 개인의 것이고, 이를 위해 집이 불태워지고 죽임을 당한 개인(필레몬과 바우키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그것이 구원받을 이상이었는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근대 국가주의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다. 이 이상국가의 꿈이 한 인간에게 악용된 역사를 보면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괴테와 니체 바그너의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같은 그림자를 찾는 이유일 듯하다.

 

인간의 욕망은 돈 섹스, 명예 세 가지로 귀결된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듯 보이는 2부의 5막들에 그려진 파우스트의 욕망이다. “나는 다만 이 세상을 달려왔다(11433).”라고 고백하는 파우스트의 길은 인간 모두가 방황하는 길이다. 누가 이 방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그 방황에서 때로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의식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 욕망으로 인해 멸망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괴테의 초기 문학 사조는 ‘Sturm und Drang’이. 질풍노도(疾風怒濤)라는 말은 일본인들의 번역이다. 독어의 원래 의미는 폭풍우와 돌진이다. 그것도 폭풍우 속으로 돌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폭풍우가 되어 마구 내닫는다는 의미다.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씀으로 이 사조의 대표작가가 된다. 그리고 그는 낭만주의 작품을 쓸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그는 고전주의를 이끌었다.

 

독일문학사에서 고전주의’(古典主義, Klassik)라 함은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1786~88)이 시작되는 1786년부터, 쉴러가 사망하는 1805년까지의 약 20년간을 지칭한다. 이때가 독일문학의 최전성기로 전성기 고전주의’(Hochklassik)라 부르기도 하며, 주로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학운동이기 때문에 바이마르 고전주의’(Weimarer Klassik)라 부르기도 한다.”(새 독일문학사안삼환 218p)

 

이성을 중요시하던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감정위주의 ‘Sturm und Drang’이 다시 이성 위주의 고전주의로 옮겨간다. ‘바이마르 고전주의1775년 괴테가 바이마르 공국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을 받아 바이마르로 가는 데에서 그 기틀이 세워졌다. 명징성, 고대문화 숭배, 문학을 통한 국민 교육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과 자연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다.·동경·마적(魔的)인 것, 무한성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독일 이상주의’(deutscher Idealismus) 문학운동의 마지막 단계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의 사조는 분류하자면 '바이마르 고전주의'이다. 하지만 파우스트 1부와 2부 사이에 60년이란 세월이 존재하고, 작품 안에는 ‘Sturm und Drang’, 자연주의, 낭만주의가 분위기도 보게 된다. 그의 작품을 어느 한 사조로 묶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폴레옹이 예나Jena와 바이마르 시를 통과했던 1806년 바로 그 해에 헤겔은 정신현상론, 괴테는 파우스트1부를 완성시켰다.…… 쉴러는 칸트를 통해, 낭만주의자Romantiker들은 피히테와 셸링을 통해 각인되어진 반면, 괴테의 자연관, 인생관은 고전철학자의 누구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다. 그의 창작활동은 어떠한 철학의 지지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자체 안에서 풍부한 사상을 지니고 있었고, 그의 자연과학의 연구는 그의 창작과 동일한 상상력에 의해 인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헤겔에서 니체에로카를 뢰비트 21p)”


10월의 마지막날 여주 전영애 교수의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에 다녀왔다. 전시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교수님의 영상과 주제별 책 선정에 담은 정성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한때는 미술가를 꿈꿨던 괴테의 회화작품들과 멋진 필체의 영인본, 고서적들…… 다시 한번 독일어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과 여행도 꿈꿔본다. 그곳에서 방황해볼테다.^^ 

기념으로 서동시집을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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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04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몇년 전 전영애 교수 완역했다고 무슨 다큐 프로에 나왔는데 수도하듯이 번역을 하셨겠더군요. 순간 박경리 작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자그마하신 분이 어떻게 번역을 하셨을까 존경스럽기도 하고. 책 참 탐스럽네요.

그레이스 2024-11-05 10:45   좋아요 3 | URL
네, 보면 사게되는 책입니다. 날씨도 좋고, 장소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 다큐 저도 봤는데, 참 멋있게 사신다 생각했습니다. 11월엔 이탈리아에 계신다고... 아마도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번역하기 위해 자료 수집차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쿤체 시집도 나왔는데 다 장정이 너무 예뻐서 조만간 들여놓을 듯 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1-04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우스트> 1권만 읽고 2권을 읽다 말았는데 리뷰를 보니 <파우스트>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그레이스 2024-11-04 18:26   좋아요 1 | URL
2권은 다섯개의 막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독립적인것처럼 보여서 읽기에 매끄럽지 않긴 해요.
파우스트의 방황이므로 ^^
1 권과 2권 사이에 60년이란 시간이 있으니, 글쓰기도 조금 다른듯 하구요.
그래도 제 생각에는 2부까지 읽어야 주제가 전달된다는 생각입니다.
독서 응원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1-04 22:25   좋아요 1 | URL
응원감사합니다!!

초란공 2024-11-04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여백 서원 3번 다녀왔어요~ 그 사이 괴테 마을이 자리를 잡았나요? 궁금하네요!

그레이스 2024-11-04 21:30   좋아요 0 | URL

괴테마을이 예뻤어요
여백서원은 한달에 두번 낭독과 강연회에만 신청해서 들어갈 수 있어서 밖에서만 봤구요
괴테 마을에 프랑크푸르트 시절과 바이마르 시절의 건물이 2동 있었어요
바이마르 저택 내부는 아직 설치중이구요,,,
다른 하나는 바이마르로 가기전 지내던 저택으로 물건과 책들을 전시한것입니다..
정원도 손질이 되어있구요 둘러싼 산들도 하나의 풍경으로 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희선 2024-11-05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괴테의 책을 읽고 괴테마을에도 다녀오셨군요 한국에 그런 곳을 만들다니, 대단하네요 건물을 실제 괴테가 지내던 곳과 비슷하게 꾸몄나 봅니다 그 안에 전시품이 있군요 괴테가 살았던 곳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괴테마을이군요 여백서원도 멋지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4-11-05 07:23   좋아요 1 | URL

여백서원이 먼저 시작되었죠^^
만들어지는 과정도 멋집니다.

전야제 2024-11-07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님 댁에 놔두고 온 파우스트를 이번 주에는 꼭 가져와서 제대로 읽어봐야겠어요ㅎㅎ 고전 작품을 뒤늦게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서양 예술사 지식과 함께 설명해주셔서 마치 수능 비문학 지문을 읽어나가듯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의 서재에 있는 글로 공부 많이 하려구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11-08 15:04   좋아요 1 | URL
ㅎㅎ
수능비문학!
공부할 정도는 아닌데...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4-11-08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괴테 마을이라는 곳이 있었군요.

예전에 딴나라에 잠시 살던 시절에
괴테 인스티튜트라는 곳이 있어서
한 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만 하
고 미처 가보진 못했거든요.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해 보니,
이게 독일 문화원이군요 ^^
아 무식도 하여라.

그레이스 2024-11-08 21:41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덕분에 알았습니다.
괴테마을은 여주에 있습니다.^^
 


베르나르 뷔페, 그의 그림들은 그 앞에 오래 머물게 하는 자력이 있다. 그가 화판에 그어놓은 선들은 작가의 지문이다. 여러 개의 날카로운 선들이 반복적으로 오고가며 형태를 이루고 그 선들은 살아서 저마다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기하학적 직선과 단색으로 그려진 그의 꽃들은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화려하다. 핍진한 인물들의 얼굴과 몸은 공허와 슬픔과 불안과 고통을 전달하고, 다채로운 도시 풍경 속 간결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그 장소를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한다. 한 작품 한 작품 머물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주제의 공간으로 들어와 있고, 여러 개의 날카로운 선으로 표현된 화가의 사인이 머릿속에 박힌다. 고독한 자화상인 <광대의 얼굴>만약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죽을 것이다라고 한 말, 그리고 그의 최후는 작가의 실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1976), 캔버스에 유채, 250×430㎝

이어지는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다 맞은 편 벽 전체를 덮고 있는 그림과 마주치고, 그 앞으로 자석처럼 끌려갔다. “단테신곡이다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지옥의 밑바닥 얼음으로 뒤덮인 곳에 떨어진 영혼들이 몸을 비틀고 증오와 고통으로 뒤엉켜있는 그림이었다. 그는 어떤 맘으로 하필이면 신곡 중 지옥의 밑바닥으로 그렸을까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서있었다. 그가 그려온 인물의 모습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지옥 군상과 주제의 그림이 자연스럽다.


신곡을 다시 읽고 있는 나는 이 책을 처음 읽던 내가 아니었다. 단테와 신곡역시 같은 사람 같은 책이 아니었다. 단테가 통과해간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나눈 신학적 베이스와 그가 창조한 새로운 이미지들을 발견했다. 첫 번째 독서에서 지나쳐버린 역사와 인물들과 의미들을 주워 올렸다.

 

단테 신곡 강의는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신곡 연구를 강의한 내용이고, 학자나 예술가들의 대담도 함께 담겨 있다. 신곡 안에 키워드가 되는 단어의 원어 연구와 다른 작품들 안에서 용례 비교를 통해 작가의 의도에 가까운 의미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의 문학이나 사회 문화에서 비슷한 상황을 들어 비교하고 있어 그 부분은 공감이 어렵다. 그럼에도 나같이 단천(短淺)한 독자에게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와 헤시오도스의 서사시를 먼저 살피고 비교한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안내자 베르길리우스를 알아야하고 베르길리우스를 알려면 서양의 근본적인 서사시의 전통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의 기원이 트로이아로부터 오는 배경도 그 이유가 된다. 그런 기원을 갖고 있지만 단테의 신곡은 그들과 대립적이기도 하고, 창조적이다.

 

50년 동안 단테에 천착해온 저자의 강의와 질의응답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준 높은 질문과 이마미치의 답변은 신곡을 보는 눈을 몇 단계 높여 주었다. 14,15세기의 이탈리아와 라틴어, 역사, 단테학회 자료 등을 자료로 신곡을 풀어 놓은 양과 학문적 깊이는 내게 벅차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천구의 체계를 천국편에 적용하고 있으며, 아리스토 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긴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알면 알수록 단테의 지식과 글로 표현해내는 천재성에 감탄하게 된다.

 

지난번에 읽었던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단테도 다시 읽고 참고했다. 이 책들 역시 새롭게 얻어지는 것들이 많았다.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은 도판이 그리 좋진 않다. 항상 명화(그림)로 보는 ○○○○제목의 책들을 보면 도판이나 내용에서 조금 실망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열린책들 출판사의 신곡에 담긴 구스타프 도레의 판화가 더 인상적이었다연옥의 탄생은 연옥의 기원과 발전된 계기, 사람들 사이에 인식되기까지의 과정 등에 관한 내용으로 흥미로웠다. “12세기 말까지 연옥이 명사로 일반화되지 않았고 사용되지 않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14세기의 시인 단테가 그곳을 명료하게 묘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연옥이라는 어휘가 생겨나고 불과 백 년쯤 후에 단테가 이를 묘사한 것이다. 이는 실로 선험적이고 위대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단테 신곡 강의333p)”고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말한다.

 

 

문학과 예술을 읽고 감상하다보면 도처에서 신곡을 만나게 된다. 미술관 전시실로 이어지는 모퉁이를 돌아 벽에 걸린 지옥풍경과 조우하는 것처럼. 단테가 인간의 연약함과 고귀한 정신, 절망과 소망, 빛과 그림자 등 삶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는 보편성에 공감한다. 그리고 예술과 문학은 그에 조응한다. 조금 더 오랜 시간 조금 더 깊고 자세히 읽어 보면, 그 공감의 영역을 넘어서 새로운 지식의 지평이 펼쳐지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이마미치 도모노부처럼 평생을 바쳐야 얻어지는 것들이다. 스스로 일천함을 깨닫는 독서였다. 신곡을 읽는다는 것은 예술과 문학 속에 남겨진 그 유물을 찾을 수 있는 시야를 얻는 유익이 있다. 그러기에 재독에 재독을 더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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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5-30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파일명 정리규칙만 보아도^^ 얼마나 진심으로 읽으시는지...

[신곡]은 언어의 벽을, 번역된 텍스트여도, 느끼며 읽다가 포기하게 됩니다. 저는 그랬어요. 그레이스님처럼 읽고 또 읽고로 돌아가야 뭔가 얻을 수 있겠네요^^

그레이스 2024-05-30 22:29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처음 읽을땐 지옥, 연옥, 천국 편으로 나누어서 했는데,,, 이번에는 더 세분화 했어요 ^^

레삭매냐 2024-06-17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먼 모양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번역하신 단테의 <신곡>
이 좋다해서 일단 사두기는 했는데...
어느 순간 읽다 말았네요.

분발해서 다시 도전을...

그레이스 2024-06-17 13:42   좋아요 1 | URL
도전! 응원합니다 ~~♡
 

알베르토 망구엘은 말한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이다. 우리가 첫 페이지를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알베르토 망구엘 15p)”


우리는 이 트로이 전쟁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서, 이 일리아스라는 서사시 안에서 신화나 예술작품을 통해 익숙한 파리스의 심판’, ‘트로이의 목마’, ‘라오콘의 죽음등과 같은 사건들을 만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이 서사시 안에서는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 5일간 전투 이야기다. 일리아스는 한 영웅의 분노와 딸을 빼앗긴 아버지의 슬픈 기도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영웅의 화해와 죽은 아들의 시체를 찾아 돌아간 한 아버지의 슬픔으로 마치고 있다. 그러니 첫 페이지를 열기 전 까지는 친근하다는 역설의 설득력에 미소를 짓게 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는 이 서사시에는 분노가 그 한축을 이루고 있다. 아킬레우스가 분노때문에 전투에서 물러나고, 그로인해 많은 그리스 전사들이 희생될 때, 그를 설득하는 포이닉스의 알레고리는 인상적이다.

 

사죄의 여신들은 위대한 제우스의 따님들이지만

절름발이고 주름살투성이고 두 눈은 사팔뜨기여서

미망(迷妄)의 여신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것이 그들의 일이오.

그러나 미망의 여신은 힘이 세고 걸음이 빨라 사죄의 여신들을

크게 앞질러 온 대지 위를 돌아다니며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지요.(9502~506 )”

 

또한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거두고 전투에 참여할 것임을 선언할 때, 아가멤논이 변명처럼 말하는 운명의 여신(모이라), 복수의 여신(에리뉘스), 그리고 아테(미망의 여신)에 관한 예화(19) 역시 유명한 알레고리이다. 일리아스에 대표적인 두 알레고리에서 두드러지는 사죄, 운명, 복수, 미망(迷妄)이라는 단어들은 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정신이다. 아가멤논의 변명은 히랍인의 사고방식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고 한다.

 

일리오스의 들판에 여기저기 쓰러져있는 전사들의 시체들, 그들을 수습하기 위해 하는 하루 동안의 휴전과 화장(火葬)은 이 서사의 한 축을 이루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구들! 출정하기 위해 그들이 갖추는 무장의 리스트와 묘사들, 죽은 자의 무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 또한 중요한 장면들이다. 아가멤논,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무장 장면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에서 그들의 운명을 가르는 암시를 발견하게 된다.

 

신들의 개입과 싸움은 사실상 이 전쟁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가운데, 5일간의 전세의 향방을 결정하는 힘이다. 그 각각의 전투는 무언가 인간들에게 그 운명의 선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여지를 주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부분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른 시점과 해석과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부풀리고 소용돌이치며 아킬레우스를 쫓아오는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를 표현하는 은유와 직유는 이 서사시의 장관을 이룬다. 일리아스에서 절정을 아킬레우스의 전투 장면으로 꼽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는 프리아모스의 모습에서 감정의 극치를 경험한다.

 

세 번을 읽었어도 여전히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이 많은 작품이다. 읽을 때마다 참고할 책들이 많아진다.

처음 읽는다면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책이 강대진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이 책이야 말로 호메로스의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서사시의 구조, 출정한 국가의 지도와 참모의 리스트, 각 권마다 해설-중심사건, 인물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 초보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쉽게 서술한 점이 돋보인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이펙트는 내가 처음 참고했던 책이다.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간다. 이 책에는 호메로스 문제, 사본, 트로이 유적 발견, 호메로스의 작품이 철학자들과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 학자들의 논쟁에 관한 저자의 탐구가 실려 있다. 더불어 망구엘의 감상들이 담겨 있는 유려한 문장들은 호메로스를 읽지 못한 독자를 유혹한다.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오래된 이 두 은유는 우리에게 인생 전체가 하나의 투쟁이자 여행이라고 말해준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15p)”

은유는 당연히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이다. 은유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지 …… 독서 중독자들이 겪는 공통된 증상이지 않을까?

애덤 니컬슨의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망구엘의 탐구 작업을 더 깊고 자세하게 다뤘다. 그 역시 호메로스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청동기와 청동 무구, 지중해를 둘러싼 문명과 그리스인들의 정착지, 이동과 교류의 역사, 유적과 발굴, 연구자들, 사본들, 발견자들에 대해 서술해 간다.

일리아스에는 목록시들이 등장한다. 그리스에서 출정할 당시의 함대의 목록과 10년이 지난 시기 트로이아 해변에서 출정을 다짐하는 전사들의 목록, 그리고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새겨 놓은 형상의 목록이다. 목록시에 관해 도움을 받은 것이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 호메로스와 그 이후 문학과 예술에 나타나는 리스트에 관한 글들이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어떻게 편집되어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아스에서 자칫 덫이 되기 쉬운 목록시를 고양된 정서로 흥미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아킬레우스의 방패> 안젤로 몬티첼리 1820

시몬 베유의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저자가 일리아스를 감상한 글이다. 그녀는 이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것은 힘이라고 한다. 승리자건 물질이건 힘과 접촉하면, 힘의 불가피한 효과 아래 놓인다. 힘은 사람을 사물로 변화시키는 본성을 갖고 있다. 일리아스는 이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승리의 영광을 꿈꾸며 전쟁에 참여한 전사들은 마침내 전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전쟁은 죽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일리아스를 보는 그녀의 생각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호메로스 세계에서 시는 패배한 자와 죽은 자에게 속한 것이며, “호메로스 안에서는 진정한 승리자란 없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알베르토 망구엘 89p)”고 말한다. 시몬 베유는 호메로스는 승자나 패자를 찬양하지도 경멸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으며, “놀라운 공평함이 일리아스를 이끈다(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시몬 베유 57p)”고 말한다. “운명이 결정한 한계 속에서 신들이 전권을 갖고서 승리와 패배를 배분(같은 책 57p)”할 뿐이다.

 

전사들은 모두가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시몬 베유의 해석이 유독 더 가슴을 울리는 것은 지구 다른 편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들 때문일 것이다. 매분 매초 죽음의 가능성을 자각하며,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고서는 하루에서 그 다음 날로 넘어갈 수 없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시몬 베유 41p)”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가슴 밖에서는 서식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서식하는 것은 질투, 미움, 공포,

그리고 악의, 그리고 야망, 그 가까운 곳에

사랑의 서식지가 있다…….

-Phases월리스 스티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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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0-29 2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쟁은 전쟁을 원하는 이들이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전쟁의 피해는 전쟁
을 원하지 않는 애꿎은 이들이
감당하게 되는 역설이 문제지요.

미망이라는 키워드에 꽂히네요.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음...

과연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와 오디
세이아를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미망의 단계에 들어섰나요.

그레이스 2023-10-29 22:13   좋아요 3 | URL
미망에 빠졌죠.
그리고 다시 벗어나기도 하고,,, 한 개인의 분노가 공동체 전체를 미망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서곡 2023-10-30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사들은 모두 형벌을 받는다......덧붙이자면 전쟁 지역의 모든 개체들이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현재에도 만연한 폭력과 전쟁 앞에 무참해집니다. 잘 봤습니다 한 주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10-30 09:29   좋아요 2 | URL
예 그렇죠. 전장이란 말이 필요없는게 현대전이니까요 ㅠ
서곡님도 10월 잘 보내시고 11월 행복하게 시작하시길요~

청아 2023-10-30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생 전체가 투쟁이자 여행이다.‘이 말이 저에게 와닿네요. ‘힘은 사람을 사물로 변화시킨다‘는 말도요. 전쟁에도 그 외 힘이 작용하는 어떤 경우에든 적용되는말 같아요.

우크라이나에 이어 가자 지구도 전쟁상황이니 가슴아프고 두렵기도합니다. ㅠㅜ

그레이스 2023-10-30 13:11   좋아요 2 | URL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그런 말들에 꽂히는게 지금 상황때문이란 생각도 했습니다.
언제든 적용될수 있겠죠
평화는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해서 안타깝고 두렵네요ㅠ
 

 

혹시 에우리피데스를 알고 계십니까?”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주인공 와타나베가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말하고 있다. 환자는 여자 친구 미도리의 아버지다. 미도리와는 연극사 수업에서 만났다. 미도리가 병실을 맡기고 일을 하러 간 사이, 아버지가 눈을 뜨고, 와타나베는 자기소개를 한다. 참 어색한 만남이다. 이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소소한 신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환자에게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듯 보이는 이 이야기 가운데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가 등장한다. 왜 하필이면 에우리피데스일까? 에우리피데스가 즐겨 썼던 데우스 엑스 매키나에 관한 대목에서 작가의 의도를 눈치 채게 된다.

 

그의 연극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엉망으로 혼란에 빠져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가 통하고 모든 사람의 행복이 달성되는 일은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카오스가 닥쳐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게 또 실로 간단하게 풀립니다. 마지막에 하느님이 나타나는 거죠. 그리고 교통정리를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모든 일이 제대로 해결됩니다. 이걸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르고 있어요.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에는 노상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오는데, 이 대목에 이르러 에우리피데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갈리고 있어요.

그러나 만일 현실 세계에 이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면 일은 편할 겁니다. 곤란하게 됐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이 위로부터 스르르 내려와서 모두 처리해 줄 테니까요. 정말 편할 겁니다. 우리는 대학에서 대체로 이러한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의 멍한 얼굴에서 이해했는지 기색을 찾으며 지껄이는 이 이야기는 그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역시 혼돈에 빠져 옴짝달싹 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인공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소설의 마지막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말하던 이 병실 장면과 겹쳐진다.

 

하루끼가 와타나베를 통해 말한 것처럼 이런 장치가 우리 인생에도 있다면, 어떨까? 처음 대답은 없는 편을 선택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구원만이 해결책일 것 같은 인생의 순간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방이 꽉 막히고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조금 살아보니, 속단과 장담은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시절의 몫이란 생각이 든다. 소포클레스가 누군가 이틀 또는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미리 내다보려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트라키스의 여인들943~945)”이라고 노래한 것처럼 장래는 알 수 없으니. 어찌 알겠는가 그처럼 나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바랄 혼돈가운데 빠지게 될지.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에는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한다. 아울리스에서 신전에 제물로 바쳐진 이피게네이아는 아르테미스에 의해 타우리스족의 땅 타우리케로 옮겨지고 신전의 사제로 살고 있다. 어머니와 그의 정부를 죽이고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던 그녀의 남동생 오레스테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훔쳐오라는 아폴론의 명령을 받는다. 친구 퓔라데스와 그 땅에 도착하고, 사로잡힌 그들은 이 신전의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처한다. 제물의 축성을 담당한 이피게네이아와 오레스테스는 대화 도중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남매는 토아스 왕을 속여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가지고 이 땅을 탈출하기로 한다. 역풍으로 인해 배가 출발하지 못하고 생포될 위기에 처하지만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구해준다.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토아스의 추적을 멈추게 하고 그들을 떠나게 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에서는 이 기계적 장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사라졌다. 대신 이피게니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을 살리려 하고, 그녀의 지혜와 설득의 힘이 구원으로 이끌고 간다. 그 땅의 통치자 토아스의 마음을 돌린다. 한때 낭만주의자였던 괴테다운 마무리란 생각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를 향해 출항하려고 모여든 그리스 연합군의 함대가 바람이 불지 않아 항구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이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칼카스의 예언이 아가멤논에게 전달되었고, 아가멤논은 그녀를 아울리스로 데려오라는 편지를 보낸 상황이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번복하지만, 메넬라오스가 막아서고, 아울리스에 모여있는 그리스 함대의 압박을 느낀다. 사실을 알고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반대하고, 이피게네이아 역시 아버지에게 애통해하며 간청한다. 아킬레우스 역시 그녀를 구해주겠다고 한다. 이피게네이아의 아버지의 호소에 다시 마음을 바꿔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신전을 향한다.

 

이전 신화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아 삼부작,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에 따르면 이피게네이아는 아울리스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져 죽든지, 구원되어 헬라스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든지, 구원되어 타우리오족의 땅에서 불멸의 존재가 된다. 에우리피데스는 그녀가 죽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라신은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따르면서, 더 많은 등장인물, 더 많은 변수들을 추가했다. 17세기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아킬레우스와 이피게네이아의 사랑이 이 극을 이끌어가는 한 축이 된다.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아가멤논에게 존재만으로도 압박이 되었던 오디세우스가 직접 등장하여 트로이로의 출전을 재촉하는 그리스군의 입장을 대신한다. 라신은 여기에 이 극의 반전을 일으킬 인물 에뤼퓔레를 등장시킨다.

 

어쨌든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 등장하는 아가멤논의 가정사를 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의 분노를 산 아가멤논이 딸을 제물로 바치고, 그의 부인 클뤼타이메스트라는 트로이에서 돌아온 그를 죽이고, 딸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내내 저주한다. 아들 오레스테스는 복수를 위해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다. 트로이 전쟁은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동생 헬레네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비극 아니 참극이 가능할까?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어떤 일도 벌일 수 있고, 그 욕망으로 인해 이런 비극은 오늘날에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신탁이나 명예, 미덕이라는 것들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이피게네이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의 지위를 시사하고 있다. 그 여성의 운명은 그 가정이 속해 있는 도시국가와 더 큰 세계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 여성뿐 아니라 한 개인을 지배하는 시대정신과 그 정신의 한계는 이피게네이아를 재해석한 라신과 괴테에게서도 볼 수 있다. 개인은 그 정신에 의해 때로 원하지 않는 삶으로 이끌려 간다. 에우리피데스의 이피게네이아도 라신의 에리퓔레도 자발적으로 희생을 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선택에는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큰 힘이 작용하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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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21 16: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르웨이 숲에 저런 대사가 있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한 주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08-21 16:59   좋아요 3 | URL
제 책이 오래되서 페이지 안 넣었어요.
거의 뒷부분에 있습니다.^^

페넬로페 2023-08-21 17: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부분이 저런 면이예요. 엉뚱하지만 진지한 모습요.
에우리피데스 읽으면 저도 꼭 저 부분 인용하려고 했어요.

그레이스 2023-08-21 17:42   좋아요 3 | URL
^^~♡
어제 상실의 시대 다시 읽었어요.
3번째네요
바쁜데....ㅠ
다시 읽으니 못봤던 것들이 많았네요.

청아 2023-08-21 2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라신 희곡선>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아가멤논 <일리아드>에서 얄미웠는데 콩가루 집안이었군요?
상실의 시대 3독이라니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3-11-08 13:11   좋아요 2 | URL
콩가루집안 ! ㅎㅎ
저도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 별로예요
여기서도 그렇긴한데,,, 그리스 연합군 총지휘관이라는 무게가 느껴지긴 해요.
암튼 갈등하는 그도 별로 맘에는 들지 않죠.
상실의 시대 읽을때마다 다르네요.
발췌때문에 도서관에서 노르웨이의 숲도 빌려봤으니...^^
그런 책이 있더라구요.
제게 자꾸 돌아오는 책이!

라신 희곡집도 좋았어요
잃시찾때문에 페드르(파이드라)도 봐야해요.

cyrus 2023-08-21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20대 중반에 문학사상사 판 <상실의 시대>를 읽었어요. 책 속에 에우리피데스를 언급한 대목이 있었군요. 신기해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권이거든요. 20대의 저는 에우리피데스를 잘 몰랐을 거고, 그가 쓴 비극을 읽을 줄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

그레이스 2023-08-21 21:0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책을 읽을수록 자꾸 고전쪽을 향해 가게 되네요^^
 

그리스 비극을 처음 읽었을 때는 서사를 놓치게 되는 순간이 많았었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한권 전체를 읽는데 주석(註釋)이라는 돌부리들을 만나 흐름이 깨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재독(再讀)의 즐거움 중 하나는 처음과 달리 제법 막힘없다는 것이다. 두 독서 사이에 지식을 쌓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확인해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처음 읽을 때보다 오히려 참고할 책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서사는 알고 있으니 처음 겉핥기로 지나쳤던 지식을 더 찾아보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무엇을 더 읽어야할지 잘 보이기 때문이다.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 BIBLIOTHEKE를 번역한 이 책은 토마스 불핀치나 에디스 해밀턴, 그리고 국내작가가 쓴 그리스 로마신화와 달리 간결하여 곁에 두고 사전처럼 읽기에 편한 책이다. 호메로스나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했던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에서 신화나 영웅의 이야기를 각색하고 재구성했다. 이렇게 신화책들은 구전되거나 극적효과를 위해 재구성된 것들을 기록하다보면 내용이 많아지고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공존하게 된다. 아폴로도로스는 기원전 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아테나이 출신 대학자이다. 이전 기록들을 참고하여 백과사전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비블리오테케 BIBLIOTHEKE’. 고대 도시 국가의 탄생과 그 왕들의 계보와 함께 그들과 관련된 신화에 관한 정보를 주고 있다.

 

그리스 비극을 읽기에 좋은 참고서다. 예를 들자면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배경이 되는 고대 테바이의 신화와 역사를 시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라이오스와 아들 오이디푸스로 이어지는 테바이의 왕위계승자들과 찬탈자들, 테바이 전쟁에 관한 기록은 두 세 페이지 안에 비극의 핵심 내용이 담겨있다. 한 줄의 문장을 비극으로 탄생시킨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아니, 복잡하고 극적인 사건을 신문기사처럼 간결하고 정확한 정보로 전달하는 아폴로도로스와 같은 기록자에게 감사하게 된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시간적으로 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사이에 위치하지만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이디푸스 왕이 분노와 죄책감으로 스스로 눈을 멀게 한 이후 시간이 흐른 후의 이야기다. 격정이 지나가고 절망했던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달라져있다.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나는 법 앞에 결백하며 영문도 모르고 그리 했던 것이오.(549)”라고 말합니다. 진실을 알게 되었던 때, 죽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으나 세월이 흘러 고통이 가라앉고, “홧김에 지난날의 과오를 너무 지나치게 벌주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그때서야 비로소 도시가 나를 억지로 나라에서 내쫓으려 했다.(437~440)”라고 회상합니다.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아테나이 시민과 테세우스에 의해 환대를 받는다. 그는 예언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과거 눈이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비웃고 의심했던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의 위치에 서게 된다. 눈이 있으나 볼 수 없었던 것을 눈을 잃고 시간이 흐른 후 보게 되는 역설이다.

 

그를 쫓아온 크레온은,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희극에서 비판했던, 정치적이고 외교적 수사에 강한 인물이다. 그는 부드러운 언변과 태도로 감춘 욕망을 이루어내는 노회한 사람이다. 오이디푸스에게 행한 일들이 정의롭지 않음이 드러나도, 여전히 능란한 말로 변론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정치적인 인간도 안티고네라는 복병을 만나 악수를 두고 후회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 교훈적이다.

 

자신을 찾아온 폴뤼케이네스를 만나지 않으려하는 오이디푸스의 노여움에서 세월이 흐르고 깨달음이 있다 해도 여전히 성품이 변하기는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안티고네의 설득으로 내키지 않지만 아들을 만나기로 한 오이디푸스가 퇴장하고 코러스가 부르는 노래는 슬프다.

 

경박하고 어리석은 청춘이 지나고 나면

누가 고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누가 노고(勞苦)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오?

시기, 파쟁, 불화, 전투와 살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난받는 노년이

그의 몫으로 덧붙여지지요.

힘없고, 비사교적이고, 친구 없고, 불행 중의

불행들이 빠짐없이 모두 동거하는 노년이.”

(1229~1238)

 

힘없고, 불행한 상황은 불가피하다해도, 비사교적이고, 친구 없는, 비난받는 노년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주인공이 하데스를 향하는 장면은 호머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단테의 신곡의 장면과 오버랩 된다. 또한 노년의 주인공이 욕망, 수치심, 분노 등을 내려놓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템페스트에서도 보게 된다. 오이디푸스의 죽음은 그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보상처럼 보인다. 아폴로도로스는 비블리오테케에서 앗티케의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탄원자로 앉아 테세우스의 환대를 받았으나 곧 죽었다.(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211p)”라고 짧게 말하고 있으나, 소포클레스는 믿음과 상상력을 통해 재현한다. 고대인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 땅에서의 삶과는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므로, 죽음을 앞둔 인간은, 모든 정념(情念)이 사라지고, 안식을 맞이한다. 인간에게 죽음은 실존이며 영원한 숙제이고 철학적 주제일 수밖에 없다. 문학의 주제로 반복 재현되는 이유일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죽고 안티고네는 테바이로 돌아간다. 크레온은 테바이를 위험에 빠뜨렸던 폴뤼케이네스의 시체를 장사지내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벌였던 왕권다툼과 추방된 폴뤼케이네스가 아르고스의 군대를 이끌고 조국 테바이를 쳤던 테바이 전쟁이라는 역사가 배경이다. 그러므로 크레온의 명령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안티고네는 안티고네가 이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체 위에 흙을 덮으러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명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체포해서 무덤에 가두는 크레온 앞에 다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등장한다. 소년을 의지해서 등장한 그는 올바른 숙고(생각)’이 가장 값진 재산이라고 말합니다. 그 올바른 숙고의 결과는 양보’, 자기 의지를 바탕을 한 완고함을 거두고 유연해짐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올바른 길은 하나밖에 없음을 주장(796, 685행)하는 크레온에게 하이몬이 한 충고(710, 723, 712-14, 715-17행)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하이몬과 테이레시아스 모두 배움과 양보, 그리고 실천적 지혜와 유연한 융통성을 강조한다.

 

마사 누스바움은 세계에 대해 완고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반응하면 세계가 품은 가치의 풍부함을 인식하는 길을 여는 한편, 충분한 만큼의 안전과 안정으로 향하는 길도 함께 열 수 있다.(연약한 선208p)” 고 말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크레온이 주장한 에토스의 단일성은 어리석고 추악하고 빈곤하다.

 

강태경 교수는 크레온은 페리클레스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당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는 패권주의를 추구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동맹국인 밀레토스(Miletus)와 사모아(Samoa)의 분쟁에 개입하여 사모아와 전쟁을 벌인다. 분쟁국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전사자가 속출하자 가정장례를 국가 장례절차로 치르게 한다. 사모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 페리클레스는 전몰자를 위한 장례의식에서 연설을 한다. 애도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연설을 했다. 페리클레스의 통치적 의도를 엿보게 된다.


이 작품이 디오니소스 연극축제에서 처음 상연되었을 때 아테네인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그 공로로 극작가를 사모아의 총독으로 추대했다. 이 작품은 첫 상연 이후 32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연극축제에 출품되었다.(『고전문헌목록』 J. 랑프리에르)


이 작품에 페리클레스를 비판하는 의도가 있었다면, 작가인 소포클레스가 사모아의 총독으로 추대됐다는 사실 또한 아이러니하다.

 

지금까지 안티고네에 대한 거의 모든 해석들은 헤겔의 논의의 변주와 반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겔의 영향력은 절대적(안티고네39p)”이라고 한다. 그는 비극이란 동등한 두 권리 내지는 윤리적 요청의 충돌이며 안티고네는 그러한 충돌의 역학과 그것이 종합적으로 해결되는 정--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개괄적 이해를 제시한다. “상대적으로 동등한, 궁극적으로 일면적인이 두 윤리적 행위는 각자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상호배제적이라는 점에서 참된 정의”, 곧 보다 높은 윤리적 차원을 획득하지 못하고 상호 파멸에 이른다는 것이 헤겔의 설명이다.

안티고네는 시대와 함께 재해석되어 왔다. 18~19세기 계몽주의 시대, 안티고네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이미지로 열광 받았다. 양극화와 극단적 진영논리가 팽배한 현대 상황에서 마사 누스바움의 해석이 적용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완전히 수동적인 희생자는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를 할 수 없고 크레온과 같은 행위자는 타자를 보지 못한다. ‘운명의 칼날에 서려면 반드시 이런 식으로 질서와 무질서, 통제와 연약성 사이에서 극도로 섬세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연약한 선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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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7-23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약한 선>의 발췌문 인상적입니다. ^^
이렇게 어려운 책을 재독하시느라 뜸하셨군요!
공부는 할수록 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ㅎㅎ

그레이스 2023-07-23 22:38   좋아요 3 | URL
^^;;
공부하는 팀이 늘어났어요.
고전 읽기 모임이 하나 더 생겨서 다시 재독 중입니다^^
재밌는데,,, 다시 읽고 논제 만드는데, 더 수월하지도 않네요.

새파랑 2023-07-24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랑 좀 다른거 같아요 ㅋ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깊이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3-07-24 01:02   좋아요 1 | URL
;;
다 각자 읽는 프레임이 다를 뿐이죠.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3-07-24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름을 잡을 수 있다고 하시니 혹하네요.
근데 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샀던 것 같은데.. 심지어 읽었던 것 같은데..?? 본가에 있나 찾아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3-07-24 18:02   좋아요 1 | URL
ㅎㅎ
완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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