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 또 다른 삶으로 가는 여정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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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이 세 번째 읽는 커스크로 읽은 책마다 페미니즘적 작품이라는 소개문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읽기로는 그냥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인데 굳이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는 것을 보니, 요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로 광고를 하면 책 판매에 도움이 되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던 것이 기억난다. <환승>도 비슷하다. 결혼을 하고 아들 둘 낳은 여성이 이혼하고 아들들과 함께 살다가 사정이 생겨 사실상 거주가 가능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지역자치회 소유 부동산을 구입해, 두세 주 동안 내부수리에 들어간다. 이 기간 동안 아들들은 아빠한테 보내고, 특히 아랫집에 사는 고약한 늙은 부부를 위시하여 몇몇 사람을 만나고 몇몇 문제도 생기는데 그런 몇몇을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이다. 특정 사건 또는 인물, ‘특정’이라고 해도 살면서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는 유별나지 않은 사건 또는 인물 이야기에서 따른 사건 또는 인물로, 이 사건 또는 인물에서 또다른 사건 또는 인물로 옮기는 것을 레이첼 커스크는 “환승transit”라고 썼다.

  내 경우엔 이 책이 레이첼 커스크의 “환승 3부작” 가운데 첫번째 책인 줄 알고 골라 읽었다. 근데 다 읽고 독후감을 쓰려 책 소개 같은 걸 훑어보니 이런, “윤곽 3부작” 가운데 두번째 책이란다. 맞다. 뉴욕 타임즈가 “21세기 최고의 책 100” 가운데 열네 번 째로 꼽은 것이 <환승>이 아니라 <윤곽Outline>이었네 그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다음에 읽을 레이첼은 <윤곽>으로 하면 되지 뭐.


  제일 먼저 소개하는 에피소드는 주인공이자 화자 ‘나’에게 점성술사가 보낸 메일 이야기이다. 흠. 점성술사, 즉 점쟁이의 예언이라고? 소설작법 7장 2절에 보면 “점쟁이와 노파의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특히 불운이나 불행에 관한 예언은 더욱 그러하다.”라고 쓰여 있는 건 몇 번 이야기했다. 그러니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에 이거 뭐 시작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겠군, 긴장하게 만든다.

  점성술사가 보낸 메일은 말한다. ‘나’와 관련한 천궁에 아주 중요한 뭔가가 곧 통과할 예정인데, 그것이 ‘나’의 앞날에 아주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금 ‘나’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고 지금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다가올 일에도 희망을 가질 수 없어 힘들어하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단다. 아울러 보태기를, ‘나’가 고통스러워하며 몇몇 질문을 떠올렸지만 아마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을 거라니, 이게 얼마나 맞는 말인지.

  이 과정을 무난하게 헤쳐 나가려면 방법이 있는데 그건 아래 칸을 클릭하면 가르쳐 주겠다, 다만 소정의 요금을 내야 한다, 해서 화자 ‘나’는 기꺼이 많지 않은 돈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단다. 당연히 메일이 주장하는 바는 화자 ‘나’ 한 명에게만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거의 모든 도시 인류가 겪는 공통의 현상이고, 아마도 이 메일을 받은 영어권의 무수한 영어 사용자들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며 따라서 똑 같은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 것이다. 이걸 알면서도 ‘나’는 돈을 지불한다. 당장 집 사는 일을 결정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렵고 정신 사나운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런던은 서울만큼 그럴까, 그랬을까 싶기는 하지만 부동산 열풍에 휩싸여 있어서 런던과 이웃한 위성 도시에 적당한 집을 구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던 때였던 모양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은 한정되어 있다. 부동산 중개인이 조언한다. 양식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의 허름한 집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불안한 동네의 좋은 집보다 훨씬 바람직하다고. 맞는 말이다. 특히 런던과 위성도시 같이 다양한 인종이 살고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둘을 키우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고른 집이 위에서 말한 형편없는 상태의 지역자치회가 소유한 집. 전에 살던 사람은 가나 출신의 아프리칸 영국인으로 딸과 아들을 의사와 변호사로 키워 이제 자기들 책임을 벗어나 아름다운 가나로 돌아가 여생을 마칠 계획이다. 아랫집 노부부는 40여 년 전에 입주한 터줏대감으로 자치회와 직접 계약한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집 수리를 위하여 방문한 건축업자가 내부를 둘러보더니 말한다. 고생을 자초했다고. 집안에 벌레가 가득할 거란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변 다른 집과 똑같이 보이는 회색 벽돌로 지은 아담한 빅토리아식 3층집이건만 내부는 거의 폐허 상태로 차마 독후감에 옮기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게다가 사사건건 기고만장해 악담과 욕설을 쏟아내는 아랫집 고약한 늙은이들까지. 이래서 만나는 사람이 건축업자, 아마 인테리어 업자일 텐데 역자 김현우는 건축업자라고 옮기기를 고집한다. 그리고 아랫집 부부.


  길을 가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자 제러드를 발견한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15년 전, 아파트 꼭대기 층 그의 집에서 1년 남짓 동거했던 남자. 이날 지나치고 며칠 후에 초등학교 교복을 입은 어린 여자애와 손잡고 있을 때 다시 만난다. 그의 여덟 살 먹은 딸 클라라. 길가에 빅토리아풍 집들이 모인,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의 거주지역에서. 제러드는 몇 년째 클라라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학부모 역할을 수행한다. 이제는 엄마들과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처음에 아기 엄마들 모임에서 여자들이 자기에게 적대적이라 놀랐다고 한다. 캐나다 사람인 아내 다이앤은 일이 많은 사람이라 엄마 역할에 무관심하고, 엄마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반감을 드러낸다.

  이제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다이앤은 남편인 한 남자로 하여금 ①다른 사람을 돌보는 법, ②책임감을 가지는 법, 그리고 ③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제러드가 육아를 전담하게 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건 비평가들이 레이첼 커스크에게 페미니스트 작가라는 타이틀을 줄 수 있게 하는 다분히 여성주의적 시각에서의 돌봄, 책임감과 관계를 말한다. ‘남성’은 돌봄, 책임감, 관계가 결여된 인간을 가리키는 단어라는 뜻? 설마 아니겠지. 남자들은 이 책에서 말하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체득하기를 바라는 여성적 돌봄, 책임감, 관계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다른 의미에서 돌봄, 책임감, 관계의 형성과 유지 방법이 있다. 커스크의 이 책은 이런 남성성에 관해서는 침묵한다. 뭐 좋다. 그럴 수 있다. 의견 차이이고 커스크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난할 생각은 없다. 조금 아쉽기는 해도.

  다만 남성이 여성의 이런 성향을 익히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여성이 남성의 돌봄, 책임감, 관계를 익히는 것도 매우 어렵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화자 ‘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다음에는 염색하러 간 미용실의 주인 남자 데일과 수습 미용사, 그리고 10대 초반의 소년 고객과 아이의 어머니. 그러면 점성술사의 예언은 어떻게 된 거냐고? 소설작법 7장 2절? 놀랍게도 이 책 속에서 7장 2절은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저 뒤쪽으로 가면 ‘나’가 점성술사의 메일을 한 번 더 거론하기는 해도.

  내가 그간 읽은 커스크의 작품과 사실 그리 특별하게 구별되는 작품은 아니다. <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 시골생활>에서는 말 그대로 도시 아가씨가 아닌, 아직 이혼수속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도시 유부녀’가 갑자기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시골 마을로 내려가 오페어로 입주해 가정부가 되는 이야기이며, <브레드쇼 가족 변주곡>은 아내가 대학 학과장이 되자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고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남는 시간에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또는 몰두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환승> 중에서 제러드 이야기는 이미 전에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커스크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독자에게 즐거움까지 줄 수준이다. 아쉬운 건 이런 옴니버스 식 모음은 읽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금방 휘발되는 수가 많다는 것. 이 책은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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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영혼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9
정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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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 한국전쟁 휴전서류에 서명도 하지 않았던 1953년,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그나마 모든 전쟁물자와 구호물품이 쏟아져 들어오던 항구도시 부산에서 출생해 부산고등학교, 서울대 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월간지 기자로 활동하면서 소설을 쓴다. 1983년에 등단한 후 계속 정진해 1992년 소설집 《완전한 영혼》을 내니 그의 나이 서른아홉.

  우여곡절의 시기를 살았다. 유소년기 시절의 부패하고 무능했던 이승만을 거쳐 1992년까지 한 시절도 빠짐없이 정치군인이 지배하던 오오 대한민국, 우리 대한민국을 관통했다. 꼬박 40년을. 대학시절에는 유신반대를 외치며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도피하고, 검거되어 고문 끝에 동지들의 이름과 숨은 곳을 발설한 후 제법 길게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을 것이고, 작가보다 선배들의 경우에 1970년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에 큰 빚을 진 것처럼, 정찬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 피해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산다는 부채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소년시절 이후 30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정치군인에 의한 군부독재 속에서 호흡하던 작가는 월간 “신동아”를 발간하는 신문사 기자로 자신의 젊은 시절에 독재정권의 정보, 수사기관이 민간인 운동가들을 어떻게 탄압하고 고문했는지, 이에 대한 넓고 자세한 자료를 확보하고 열람하는 데 유리했을 것이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소년이었다는 배고픔의 기억과, 부패한 사회 속에서도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 경제규모가 점점 천민자본주의를 향해 맹렬하게 발진하는 모습도 목격하였을 것이니, 다른 건 몰라도, 고생은 했겠지만, 작가로의 소위 “문학적 재산”은 다른 세대보다 제법 빵빵했으리라.


  이 시대를 산 사람들은 비교적 편했다. 무조건 정부를 비판하면 곧바로 정의를 편드는 쪽에 선 것 같은 기분을 가질 수 있었으니. 사실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긴급조치 9호에 의하여 정부나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을 딱 한 번 했다는 죄목으로 무거운 벌을 받아 감옥에 갇힐 수 있었으니. 몇 번 말한 적 있듯이 나 또한 교사 한 명이 수업시간에 붙들려 나가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런 세월이었다.

  정찬 앞에 드디어 변화의 시기가 왔다. 1987년 선거. 시민저항으로 얻은 전두환 정권의 백기는 6.29 선언으로 이어져 오랜 세월을 거쳐 드디어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기회가 온 것. 기억난다. 나는 선거권이 있었으나 그동안 한 번도 투표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뽑을 때까지 모든 선거를 보이콧하고 있었던 거다. 정찬처럼 나 역시 1987년 선거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다. 유력 후보는 여당에서 노태우 후보, 갈라진 야당에서 김대중, 김영삼 후보. 나는 절망했다. 둘 중에 한 명만 나와라, 누가 됐든 찍겠다, 했는데 둘 다 나왔다. 그래서 이번 선거 역시 또다시 보이콧해버리고 말았다. 이건 내 경우이고 정찬은 당연한 선거 결과에 깊이 절망했던 거 같다.

  그래서 이이의 작품 속에는 민주화 운동 당시 정권에 의해 당한 고문, 고문이 인간성에 얼마나 심각한 상흔을 남기는지에 관한 이야기, 광주민주운동 당시 살아남은 피해자의 삶과, 관동지진 당시 현장에 있었던 1909년생 소년이 무정부주의자에서 일본 고문 기술자의 유일한 제자가 되는 과정과 이후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을 썼다.

  그리하여 인상깊었던 작품은 미친 20세기를 관통해 지나온 늙고 은퇴한 고문기술자가 그의 일본인 고문 스승의 죽음을 맞아 과거를 회상하고 장례식에 참가하고, 다시 돌아와 소회를 밝히는 중편소설 <얼음의 집>이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은 건 <얼음의 집>에 비하면 소품이랄 수 있는 <패랭이 꽃>.

  <패랭이 꽃>에서는 어린 아들과 용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안양을 거쳐 당시 우리나라 유일의 협궤열차인 수인선을 타고 가다가 다시 버스로 바닷길을 달려 갈 수 있었던 오이도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수인선 타 보셨나? 수원에서 아침 열차를 타면 왼쪽으로 끝도 없는 염전과 작은 포구가 줄지어 늘어서고, 생물 생선과 해산물, 해초 등이 든 세피아 색 다라를 들고 멀지 않은 시장으로 향하는 아주머니들. 어전, 야목, 고잔, 사리, 군자역을 지나 한 시간 너머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역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인천 송도역에 닿는다. 40년도 넘었다. 멀리 놀러 갔다가 후배들을 데리고 수원에 들러 이름을 잊은 극장에서 심야영화, 실비아 크리스텔이 타이틀 롤을 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단체관람한 후 수원역으로 걸어가 해장국 한 그릇씩 먹인 다음 수인선 경험도 시켜주던 나. 이만하면 괜찮은 휴학생 선배였던 것도 같은데….

  책을 읽는 것도 책 속에 독자의 경험이 들어 있으면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패랭이 꽃>이 제일 좋았다. 하지만 작가의 기억과 기대와는 달리 이미 다 개발해 갯가라고 해도 건조한 먼지와 플라스틱 폐품과 문짝 떨어진 쓰레기 냉장고만 나뒹구는 오이도. 그리고 보태지는 화자 ‘나’의 어린 시절 기억. 그 속에 단 하나 남은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는 아마도 전후 산으로 도피한 파르티잔. 살면서 계속된 경찰의 방문과, 누에 물레를 돌려 생활을 꾸리던 어머니, 그리고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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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봄은 지고 더봄 중국문학 전집 13
거페이 지음, 유소영 옮김 / 더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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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페이의 “강남 3부작”이 이로써 막을 내렸다. <복사꽃 그대 얼굴>, <산하는 잠들고>에 이어 <강남에 봄은 지고>까지 3권 1,580쪽의 끝장까지 왔다. 창장(長江) 남쪽 ‘푸지’라는 작은 마을 은퇴 관리의 딸 슈미와 엄마의 연인 장자위안과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화자서(花家舍)라는 이름의 유토피아 비슷한 화적떼 집단까지의 방랑과 윤간에 의한 출산으로 얻은 아들 탄궁다譚功達.

  2대 주인공 탄궁다는 무대를 작은 마을 푸지에서 더 큰 도시 메이청 현으로 옮긴다. 벌써 탄궁다는 마흔이 넘은 숫총각, 요새 말로 모태 솔로 현장님이다. 하이틴이 된 탄궁다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고 해방군대에 들어가 온갖 중요하고 거친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이루어 영웅의 이름으로 고향 푸지를 아우르는 메이청의 현장에 취임했다. 현의 감옥에서 생을 마친 엄마를 닮아 유토피아를 찾기 보다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으로 메이청 인근에 각종 대형 공사를 벌였다. 가장 중요한 것이 창장에서 물길을 만들어 공업과 농업 용수로 사용하겠다는 것. 이 과정에 주민들 사이에 시위가 생겼고 목수 왕씨가 군중에 떠밀려 보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벌어진다. 훗날 탄궁다는 이때 죽은 목수의 아들 하나 딸린 과부 장진판張金芳과 결혼해 아들 탄돤우譚端午를 낳지만 이때는 탄궁다가 죄를 지어 멀고 먼 화자서로 처벌 성 원격지 배치를 받아 아들 돤우는 장진판이 키운다. 이제 왕년에 불에 타 사라진 유토피아 화자서는 공산주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운영하는 공산주의식 유토피아로 다시 태어났지만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유토피아가 될 수 없는 법이라 탄궁다는 염증을 느끼고 메이청으로 돌아온다. 젊은 연인 야오페이페이도 살인의 죄를 짓고 메이청 현 부근 몇 백리를 방랑하다 생을 끝내고.


  이제 대단원에 이른 3대 주인공 탄돤우.

  상하이의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그의 학업 수준을 아까워한 교수의 추천으로 베이징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 와중에 천안문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숱하게 많은 학생, 시민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어떤 식으로든지 탄돤우 역시 조금은 그러했다. 체포와 고문, 처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피해 고향인 메이청의 인근도시 허푸로 갔다. 허푸에는 함께 공부를 하고 시 쓰는 흉내도 내며 훗날 허푸 석간지를 간행하는 신문사에서 근무하는 쉬지스를 만나 그의 계획을 따라 낡은 절temple인 초안사로 소풍을 가기로 한다.

  이날이 하필 추석이었다. 벌쭘하니 남자들만 가기 뭐해 쉬지스가 여학생 두 명을 부른다. 평소 자신을 흠모하는 눈치를 보였던 슈룽秀蓉과 다른 통통한 여학생. 쉬지스가 시장에 가서 좋은 토종닭 한 마리를 사 손에 들고 찾은 멀지 않은 호젓한 장소 초안사. 소풍은 대체로 즐거웠으며 낡아 거의 황폐한 절의 부엌에서 요리한 토종닭도 맛이 괜찮았는데, 그러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 쉬지스는 통통한 여학생을 데리고 슬쩍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부러 둘만 남겨두고 시내에 가서 영화관에 들어갔고, 당시 젊은 중국인들이 흔하게 그랬는지는 몰라도 쉬지스가 컴컴한 영화관에서 아가씨의 몸을 주물럭거리려다가 대차게 귀싸대기를 얻어 맞은 다음 보름 정도 경찰서 유치장에서 구류를 살고 나왔다.

  겨우 열아홉 살인 슈룽은 돤우와 저녁을 먹으며 긴 젓가락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매사 소극적이고 사색에 잠기는 버릇이 있는 돤우도 남자인지라 이미 어두워진 밤, 인적 없는 산사의 절 관리인의 방에 자신과 슈룽 둘 밖에 없으며, 관리인은 며칠 동안 절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어 은근히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상대 여학생들에게는 난진에서 데뷔도 하고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젊은 시인이라 알려진 돤우는 시쳇말로 ‘먹고 들어가는’ 아우라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마른 몸에 몸가짐 역시 조신한 슈룽의 손에서 나무 젓가락을 휙 잡아 빼내 손바닥에 상처를 입힌 돤우는 곧바로 슈룽의 머리를 감싸 키스를 했고, 잠깐 격렬히 고갯짓을 하던 슈룽도 잠시 후 다소곳이 그를 받아주어 함께 관리인의 침대에 오른다. 그리고 잠시 후. 즉, 할 거 다 한 다음에 슈룽은 말한다.

  “이제 난 당신 사람이예요.”

  이게 3부작의 마지막 작품 <강남에 봄은 지고>의 첫 문장이다.


  1부에서 돤우의 할머니 슈미는 사랑하는 장자위안의 시신이 창장변의 갈대숲에서 발견된 후 방랑을 떠나 화적떼 소굴인 화자서에서 두목들 몇 명에게 윤간을 당해 아이를 낳고, 슈미의 아들 탄궁다는 사랑하는 젊은 애인 야오페이페이와 오직 순정한 사랑만 하다가 다소 야만적인 과부 장진판이 덮치는 바람에 결혼을 하고 탄돤우를 낳는다. 이들의 손자이자 아들 돤우는 자신은 사랑하지 않지만 하여간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는 19세 여성 슈룽과 관계를 가졌고, 슈룽은 처음부터 이제 자기는 돤우의 여자라고 선언한다.

  땀에 젖은 빨간 라운드 셔츠만 한 장 입은 슈룽과 밤벌레 우는 야심한 시간에 초은사 경내를 산보하는 돤우. 그는 절대로 슈룽을 사랑하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 돤우가 보기에 슈룽은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 밝은 달 아래 풀밭을 보고도 시 귀절 하나 떠올리지 못하고, 달빛을 보면서도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를 연상하지도 못하는 일천한 소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한 번 했을 뿐인데 슈룽은 결혼 생활에 대한 동경에 가득 차 있어서 집과 정원, 가구, 그리고 신혼여행은 티베트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춥다고 한다. 한가위 야심한 시간, 밤이슬 내릴 때 맨몸에 라운드 티셔츠 하나만 입었으니 감기가 든 거다. 열이 오소소 돋는 슈룽. 방으로 돌아온 이들. 그가 지나친 요구를 해도 슈룽은 언제나 “마음대로 해요.”라고 말한다.

  밤이 깊어질수록 열이 나는 슈룽. 돤우는 깊게 키스를 해보고 자기 마음대로 한기와 피로로 인한 감기라고 진단한다. 사실 돤우는 새벽 다섯 시 반 열차를 타고 상하이로 돌아가야 한다.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는 것을 확인한 돤우는 슈룽이 깊은 잠에 빠진 걸 확인하고 슈룽의 주머니에 든 돈을 탈탈 털어 절을 나섰다. 돈 속에는 돤우의 상하이 주소를 써준 쪽지까지 들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발견한다.

  슈룽은 눈을 떴을 때 당연히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돤우의 가방을 비롯해 그의 소지품도 하나 없었다. 약을 사러 갔나? 슈룽은 기다린다. 오래 기다린다.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안개비. 그러다가 가랑비. 시간이 더 지나니까 장대비가 쏟아진다. 감기 기운은 가실 줄 모르고 열도 내리지 않는다. 오래 기다린 슈룽. 이제 더 머물 수 없다. 무엇보다 위험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의를 입고, 바지와 점퍼를 입고서야 바지 속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걸 알았다. 돤우 씨는 어디 갔을까? 슈룽은 초은사에서 나와 처음엔 내리막 비포장길을 걷고, 길이 넓어지자 아스팔트 포장길을 걷는다. 지나는 차도 없다. 아주 없지는 않다. 얼마나 걸었을까, 차가 한 대 슈룽 앞에 선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가 바라본다. 슈룽은 그대로 걷는다. 남자의 차는 슈룽의 30미터쯤 뒤에서 슈룽과 같은 속도로 따라온다. 십분, 이십분 지나 다시 슈룽의 옆으로 다가온 남자와 차. 차문이 열리더니 그가 말한다. “이제는 안전할 거 같지? 그만 타지 그래.”

  남자는 경찰시험에 합격해 연수원에서 연수를 끝내고 나오는 참이었다. 그는 슈룽을 인근 병원에 데려가 입원시키고 링거 주사를 맞게 한다. 입이 거칠지만 하는 행동은 헌신적이다. 탕옌성. 그와 알고 지내기 시작한다. 남녀관계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습해진다. 이들도 당연히 그랬고, 임신중절을 한 번 했으며, 당연히 결혼을 염두에 둔다. 그렇게 시간이 간다. 단돤우는 그날 왜 나를 떠났을까?


  베이징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탄돤우에게 교수가 선택을 요구한다. 자기가 추천해주는 국책연구소에 들어가든지 박사과정을 밟으라고. 돤우는 박사를 지원한다. 사실 2안을 선택하는 건 지도교수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돤우는 박사 지원에서 탈락한다. 그리고 다른 교수들 여러명이 보고 있는 가운데 노골적으로 지도교수를 비아냥거리고 거친 욕설을 퍼붓는다. 학교에서 완전하게 떠나겠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이후 상하이로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건만 제대로 살 수 없는 건 베이징이나 상하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몇 년을 비실거리다가 그나마 먹고 살기 위하여 허푸로 돌아온 탄돤우. 그는 정부에서 발행하는 지방지 사무소에서 박봉을 받으며 사는 편집인으로 만족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 귀금속 판매점 앞을 지나다가 한 여자를 본 것 같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울에 비친 여자를 본 것이고, 건장한 남자 옆에서 아마 틀림없이 결혼반지를 고르고 있던 여자도 거울을 통해 탄돤우를 마주 보았다는 걸 알았다. 돤우는 얼른 자리를 떴다. 슈룽은 그날 자기와의 살림을 위하여 남자가 구입한 긴 골목 끝의 아늑한 집에서 약혼자 탕옌성에게 파혼해야 함을 말하고, 탕옌성 역시 별 말없이 수긍한다.

  며칠 후, 슈룽은 탄돤우와 결혼한다.

  탄돤우는 이제 도색 관광지가 된 화자서에 가고, 슈룽은 앞 편의 여자 주인공이 그랬듯이 방랑을 하지만 꿈에도 그리던 티베트에는 도착하지 못한다. 삶이 이들 사이에서 멀어갈 때, 그때는…, 차마 말해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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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6-30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페이 강남 3부작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셨을텐데 비록 남의 나라라도 이렇게 꼼꼼하게 읽어 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가는 뿌듯해 할 것 같아요. 저도 좀 진득하게 읽는 작가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ㅋ

Falstaff 2025-07-01 05:43   좋아요 1 | URL
3부작 다 읽어야겠다, 마음 먹고 일곱달 반이나 걸렸는 걸요. ㅎㅎㅎ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만 이 3부작 보다는 <봄바람을 기다리며>가 훨씬 좋았습니다. <봄바람...> 때문에 거페이 좀 읽어야겠다 싶었었거든요. ㅋㅋ
 
소중한 저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6
제럴드 머네인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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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지 않았던 머네인의 <평원>을 읽으면서 내내 루이 페르디낭 셀린느의 책 <밤 끝으로의 여행>이 머리속을 배회했었던 것처럼, 작품집 《소중한 저주》를 읽는 중에는 의식이 흐르는 쪽으로 사유를 멈추지 않았던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곤혹스러웠던 <율리시즈>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꺼내 읽는 듯한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피네간의 경야>와 더 비슷한데 끝까지 읽지 못해서 모르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제럴드 머네인을 읽겠다고 마음먹으면 먼저 《소중한 저주》를 읽은 후에 <평원>을 펼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작가의 작품 스타일과 어떤 방식으로 픽션을 전개하는지 작지 않은 힌트를 얻을 수 있고, 그 만큼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단편 열두 편을 실은 작품집. 머네인은 자신의 책을 “산문 픽션집”이라 해야 만족할 듯하다. 그는 소설이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대신 ‘픽션’이라고만 했다. 기존의 소설이라는 스토리 위주의 양식을 지양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산문 예술형식을 기존에 쓰는 단어인 픽션이라고 칭한다. 그의 세계관은 그리하여 정치와 경제, 사회적 인간들 간의 유기적 움직임에 있지 않고, 자신과 주위의 자연 그리고 사색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용하는 뇌활동에 국한한다. 지리적으로 보면 실제로는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호주”)의 빅토리아 주, 멜버른 시에 속하지는 않지만 영향권에 있는 멜버른과 위성 도시,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사색의 경계인 깁슬랜드와 ‘헬베티아’라고 하는 자신의 세계.

  등장인물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굳이 ‘아무렇게나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는 누구’로 지칭한다. 특히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인과 다르다. 새벽이 오기 전에 내 이름을 알아내면 목을 내 놓겠소. 공주 투란도트에게 이렇게 약속하고, 근사한 아리아 <아무도 잠 못 이루리>를 뽑는 테너 칼라프 왕자처럼. 나머지는 전부 그와 그녀로 표기하는데, 그와 그녀가 숱한 빈도로 등장해도 독자가 질리지 않는 이유는 “그가, 즉 주인공이” 또는 “그가, 즉 그녀의 남자친구가” 이런 식으로 보충해 설명을 해주어 독자가 도대체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 지 조금도 헛갈리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며, 심지어 우리말이지만 읽으면서 약간의 리듬감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1인칭 화자로 등장하건, 3인칭 ‘그’로 나오건 간에 1인칭 화자와 작가 시점의 그는 전부 작가인 것이 틀림없고, 소설이라기보다 산문으로 쓴 픽션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만큼 작품 속 스토리 역시 작가가 기억하는 한에서 머네인의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가 영국에서 배를 타고 호주로 이주한 시절부터 현재까지 직접 보거나 누구한테 들었거나, 확실한 기억이라고 주장하지는 못하지만 어렴풋한 어린시절의 음각화처럼 새겨져 있는 희미한 필름에 국한한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반응을 한다거나, 어떻게 생각을 했을 거라는 표현 역시 없다. 그건 화자 또는 작가가 알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니까.

  정리해보면, 물리적 지리는 최대 빅토리아 주, 중간 정도로 멜버른 시를 둘러싼 몇 개의 위성도시, 작게는 책이 잔뜩 쌓여 있는 제럴드 머네인의 집 서재. 시간은 듣거나 보거나 유년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에 의거한 할아버지 시절부터 현재까지. 사색의 공간은 자신이 만든 (아마도 빅토리아 주보다는 조금 작을) 깁슬랜드 숲과 크기를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영토인 헬베티아.


  작가가 그림에는 별로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특정 세부 모습 하나를 평생 가슴에 담게 되는데, B.W. 리더가 그린 <2월> 속 ‘길 옆에 물이 찬 특정한 바퀴자국의 이미지’이다. 부언을 하면 비가 오고 얼마 되지 않은 시골길에 마차가 지나가 땅이 팬 바퀴자국에 물이 고인 장면이다. 실제로 바퀴자국에 다가가 내려다보면 고인 물에 비친 맑은 하늘도, 우연히 동네 여자 아이와 함께 있었다면 아이의 콧잔등에 조밀하게 박인 깨소금 같은 주근깨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작가가 주인공으로 삼은 그의 가슴에 평생 남아 있었다. 이 바퀴자국은 그를 따라다니며 어떨 때는 치마와 양말, 신발을 가방에 넣은 채 어둑한 길을 따라 맨발로 댄스파티에 가는 소녀의 발에 밟혀 생각지도 못한 거머리가 소녀의 발등에 달라붙기도 한다. 주인공인 그는 B.W.리더의 그림을 감명 깊게 보았지만 미술평론 잡지에서는 “칭찬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풍경화”라고 혹평을 해 놓았던 것을 기억한다. 세월이 흘러 50대 초반이 된 주인공인 그는 <그 깁슬랜드 숲에서>라는 그림을 보게 되고, 이 그림에 나오는 길이 바퀴자국의 이미지와 연결이 되는데, 길과 바퀴자국과 깁슬랜드라는 지명이 또 40여 년 전 보고 여태 보지 못했던 특정 이미지와 연결이 된다.

  일곱 살 때 누군가 소박한 외국우표 수집 앨범을 물려준 적이 있다. 많지는 않지만 세계각국에서 만든 우표가 망라되어 주인공인 그를 우표를 만든 나라가 어디 있는지 지도책을 찾게 만들었는데, 이 나라들 가운데 헬베티아Helvetia라는 나라 이름이 있었다. 각주를 보면 “로마 제국에 정복되기 전 현 스위스 지역…(중략)…스위스 연방국을 의인화한 여성의 이름이기도 하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주인공인 그는 헬베티아가 어느 나라를 말하는지, 이미 망해버린 나라인지, 아니면 “높은 깃이 달린 옷을 입고 풍성하고 색이 짙은 머리칼을 가지고 표정에 슬픔이 살짝 깃들어 있는 남자”가 사는 숨겨진 나라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리하여 헬베티아는 점점, 40년이 지나도록 (물론 나중에 헬베티아가 스위스 연방의 다른 이름인 줄 알게 되어도) 자신이 속한 자신만의 나라로 기능한다.


  중∙단편이 열두 편 실렸다고 했는데, 사실 작품을 중∙단편으로 구분하는 것도 머네인이 바라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산문 픽션 열두 편. 이렇게 써야 마땅할 듯. 열두 편 모두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동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모두 ‘픽션’이니까 어떤 픽션에서는 슬하에 1남1녀, 어떤 픽션에서는 슬하에 2남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영국에서 호주로 이민 온 가족. 처음엔 농지로 개간한다는 조건으로 평야에 넓은 땅을 불하 받고 대출도 얻어 집도 지었지만 가혹한 호주의 자연에 굴복하여 개간을 포기하고 빅토리아 주 변두리의 작은 도시로 옮겼다가 세대가 바뀌면서 맬버른의 동서남북 위성도시로 또다시 옮겨 사는 가족의 일원인 것은 공통점이다. 주인공인 그는 모든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시간만 나면 책을 읽었는데 집에 책을 읽는 사람이 없어서 늘 몇 권의 책을 헤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시험에도 합격했으나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해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하고, 초등학교 교사도 하고, 글도 쓰고, 결혼도 하고, 대학 과정을 밟고, 단과대학에서 픽션창작을 십수년 강의하다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해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고 등등 제럴드 머네인의 개인사와 별로 다르지 않은 환경을 유지한다. 그러니 그의 픽션은 모두 자신의 서재에서 오로지 기억과 상상에 의존해 펼친 의식의 확장 과정이라고 단언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주제는 자신의 마음이며, 그의 글이 출판으로 적합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헬타비아인 방식으로만 쓸 수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고.(p.362~3) 다만, 내가 기껏해봐야 딜레탕트라는 점만 잊지 마시라.

  이 책의 테마는 몇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축약하기는 하지만 자체로는 한 인간이 평생 추구한 거대한 사고. 그건 가족사와 책, 그리고 호주의 자연으로의 평야와 산. 가족사는 빼자. 가족사 없는 사람은 있기는 있지만 거의 없으니. 그럼 책, 책으로 대표하는 소위 문학과 주인공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개간하려고 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만 호주의 평야. 이 거칠고 광활한 평야는 주인공인 그 또는 주인공인 제럴드 머네인이 평생을 건 문학과 다르지 않다. 독자는 이 점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된다. 책 또는 글쓰기와 읽기에 대한 사색. 자연과 평야에 대한 태생적 숙고. 이것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 틀림없이 책이 가득한 서재 책상에 앉아 손에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진 상태에서 서로 흘렀을 것이라서, 독자는,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하여간 나는 고생스럽게 읽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한번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딱 그 책을 다시 편 듯한 느낌. 그러나 놀랍기도 하지. 그새 세월이 흘렀나 보다. 제럴드 머네인이 결코 프루스트보다 읽기 쉽지 않건만 이제는 진도가 나간다. 적어도 읽히는데, 그것도 흥미롭게 읽힌다. 다만 읽는 속도가 문제. 그러나 이제 남아도는 것이 돈하고 시간밖에 없는 시절이라 그까짓 것, 천천히 읽어 여유로워 오히려 좋다. 하루 일곱 시간 읽어서 겨우 백 쪽을 넘기는 찬찬한 독서. 나도 머네인의 사색을 따라 급하지 않게 몇 십 년을 훌쩍 넘어다니며 순한 시간 여행도 하고, 시간 속 작은 장치들이 서로 졸졸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보는 것이 이렇게 즐거워질 지 몰랐다. 이게 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드디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을 때가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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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우리 사람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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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엄 그린, 하면 암만해도 책은 <권력과 영광>이요, 영화는 <제3의 사나이>렸다. 독후감을 쓰는 자리이니 영화는 다음으로 하고, 책으로 말하자면 <권력과 영광>에 필적할 그린의 작품을 기대하면서 읽지만 읽을 때마다 혹시 하다가 역시, 하고 말아 조금은 허탈하다. 그럼에도 그린의 책이 눈에 보이면 일단 읽을 책, 읽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그레이엄 그린이 명실상부한 대중소설의 으뜸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책, 영상과 비교하면 시시하기 그지없지만 그린 당대의 기준으로는 대단한 스릴과 서스펜스, 추리, 폭력 그리고 스파이 극이었다고. 근데 누가 슬그머니 다가와 옆구리 쿡쿡 찌르면서 <권력과 영광> 말고 어떤 책이 제일 재미있더냐고 나지막이 물으면 현대문학에서 나온 단편집 《그레이엄 그린》을, 귓속말로 속삭일 거 같다. 추리와 스파이극의 대가니까 나 역시 마치 비밀인 것처럼 귓속말로. 뭐라? 단편집? 지금 장편 독후감 초장에 다른 책을 들먹이니 이거 뭐 시작도 하기 전에 초 치고 있는 거냐고? 아이, 그럴 리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냥 경상남도 사천시, 삼천포로 빠졌을 뿐이다.


  아바나Havana, 쿠바의 수도. 시대는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형제, 그리고 체 게바라가 주도하는 쿠바 혁명이 들불처럼 번져 웬만한 지방 도시를 혁명군이 장악했던 1950년대 중반 무렵으로 보인다. 쿠바의 현 대통령 정권이 위태롭게 삐걱거리며 종말을 향하고 있어서, 전통적인 쿠바의 수입원이던 관광객의 수도 현저하게 줄어들고, 아바나를 중심으로 제법 밀도 있게 모여 살던 유럽인과 미국인들도 슬슬 각자의 본국으로 빠져나가던 시기에, ‘워몰드’라고 하는 찌질한 40대 중년 남자가 있었으니 며칠 후에 열일곱 번째 생일을 맞는 어여쁜 딸 밀리의 아버지요, 미국 남자와 바람이 나 미국으로 야반도주한 아내를 잊지 못해 만날 우거지 죽상을 하고 다니는 전기청소기 아바나 대리점 주인이었다. 사실상 이혼 상태임에도 완고한 가톨릭을 ‘하느님 말씀처럼’ 믿는 어여쁜 딸 때문에 서류상 혼인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독자가 얼핏 생각하기에 혹시 나중에 다시 합치는 거 아냐?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안심하시라 그럴 일 없다.

  이제 워몰드 선생의 딱 하나 남은 소원이 있다. 근데 소원을 이룰 가망이 전혀 없어서 이제 소원은 꿈의 단계로 진입해야 했으니, 그 꿈이 뭔가 하면, 딸 밀리를 스위스에 있는 국제 학교에서 공부시키는 거였다. 스위스 국제학교는커녕 혁명으로 어수선한 쿠바를 떠나 조국인 영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도 어려워 여태 아바나에서 뭉기적거리고 있을 뿐임에야.

  워몰드한테 딱 한 명의 친구가 있다. 닥터 하셀바허. 이름만 봐도 독일 출신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닥터 하셀바허는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창기병으로 참전해 빌헬름 2세의 격려도 들었던 인물로, 전쟁이 끝난 후에 새롭게 의학을 공부해 이름 앞에 닥터를 붙였다. 독일 가운데서도 베를린이 고향이라 확실한 독일인이고, 베를린은 베를린이되 그게 동쪽인지 서쪽인지 (스파이가 아닌 게 틀림없는)하셀바허와 그의 친구 워몰드를 제외한 1950년대 중반의 뜨거운 냉전의 시대에 미국의 문 앞에 자리잡은 쿠바 아바나에 집결한 모든 국가의 스파이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던 거였다. 온갖 추측과 유언비어, 거짓이 난무하던 냉전시대. 그땐 다 그랬(을 거)다.


  우울하고 찌질한 워몰드 선생 앞에 두 남자가 나타난다.

  한 명은 쿠바 경찰권력의 거의 정점에 선 캡틴 세구라. 붉은 독수리라는 별호를 즐기는 그는 자타 공인 고문과 신체절단의 전문가이며 사람가죽으로 만든 담배 케이스를 들고 다니는 말한새뚝, 말 한 마디에 나는 새도 뚝 떨어뜨리는 공포의 존재. 워몰드보다 약간 나이를 덜 먹었다지만 1950년대에 30대 후반, 40 초반이면 중년 취급을 받았는데, 겁도 없이, 망쪼 든 나라의 경찰권력이면 겁도 없는 게 자랑이긴 하지만 하여튼 겁도 없이 워몰드의 열일곱 살 먹은 어여쁜 밀리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아들답게 결혼을 하고 싶어도 결혼은 아버지의 동의를 먼저 얻고, 이후에 상대에게 프로포즈 해 승낙을 받는 ‘절차’를 고집한다. 따라서 아주 자주 밀리를 학교까지 태워주고, 방과 후에 집까지 데려다 주건만 여태 손목은커녕 살갗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순정파이기도 하다. 세구라의 인간 구분 방법은 고문 가능 계급과 고문 불가능 계급, 딱 두 가지. 유럽에서 온 백인과 미국인은 고문 불가능. 나머지는 대부분 가능.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역시 고문 가능 계급. 으시시하지? 걱정하지 마실 사.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 진짜 악당일 확률은 거의 없으니.

  다른 한 명은 거의 백인 전용 술집 수준인 카페 슬리피 조에 나타난 영국인 호손. 그는 워몰드가 영국인이기는 한데 남프랑스 니스에서 출생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워몰드는 호손이 청소기 본부에서 나온 검사관으로 짐작했었다. 호손이 워몰드를 아무도 없는 화장실로 데려가, 수도꼭지에서 물을 콸콸 틀어놓고 어떤 도청장치도 대화를 엿들을 수 없게 만든 후 말을 하기를, 사실 자기는 비밀정보기관 소속이란다. 그리고 워몰드 주변에 숱하게 많이 스파이들이 깔려 있으며 지금 하셀바허를 주목하고 있는 중이라고. 워몰드에게 자신이 지금 세비야빌트모어 호텔 501호에 머물고 있으니 밤 열한 시에 꼭 들러 달라고 부탁하고 사라진다. 밤이 되어 정말 호텔로 찾아가는데 이날 따라 유난히 워몰드를 잡고 놓아주지 않으며 한 잔만 더, 한 잔만 더, 하고 기어이 세비야빌트모어 호텔까지 따라붙는 닥터 하셀바허. 그럼에도 우리의 워몰드는 하셀바허를 눈꼽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호손을 만나러 가는 엘리베이터까지 기어이 동승하는 하셀바허. 차마 5층을 말하지 못해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6층 간다고 하고, 6층 문이 열리자마자 그대로 내빼 501호, 호손을 만나니, 하는 말씀이, 이제 대 영제국의 비밀첩보기관 아바나 사무실을 꾸리라는 것. 앞으로 금고, 무전기, 훈련 받은 직원 등 모든 필요사항을 갖출 예정이란다. 당연히 머뭇거리는 워몰드. 그런데 런던에서 한 달에 세후 150달러를 급여로 주고, 경비로 따로 세후 150달러, 여기에 필요한 활동비 추가 청구, 놀라운 조건에 어쩌면 밀리의 스위스 국제학교가 꿈이 아닐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수락하고 만다. 스파이 훈련은커녕 도망간 아내와 찌질한 성격과 알코올 의존증에 가까운 술 등등 거의 루저 수준에 도달한 후줄근한 중년 남자가 말이지. 어떠셔, 딱 떠오르는 인물 하나 있지? 조지프 콘래드의 <비밀요원> 주인공이자 후줄근한 문방구 사장 벌록 씨. 그나마 벌록 씨는 배 나온 중년이긴 하지만 일 벌어지면 후다닥 몸을 던지기라도 하지.


  이제 워몰드는 난리가 난 거다. 처음엔 스파이고 뭐고 그냥 살던 대로 살았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니까 정말로 런던의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 지하에서 150달러짜리 수표를 한 장 보내는 거다. 국장과 주름 하나 없이 말끔하게 다림질한 회색 프란넬 정장 차림의 호손이, 워몰드가 정치, 경제 정보를 얻기에 최고의 장소인 컨트리클럽에 가입하기 위해 추가비용을 신청했다는 걸 알고, 워몰드야말로 천부적인, 뼈 속까지 스파이 체질이라고 치하했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 정말 워몰드가 정보 수집을 위해 저명한 백인과 쿠바 고위급만 회원으로 있는 컨트리클럽에 가입했을까? 여기에 아직 어려서 어리광이 심하고 눈치도 없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해야 성질이 풀리는 밀리, 그리고 밀리의 막강한 후원자인 캡틴 세구라가 개입한 사실은 런던의 누구도 모른다. 밀리가 아빠와는 상의도 하지 않은 채 덜컥 말을 한 마리 샀다. 말? 그것도 폼 나는 경주마. 쿠바라서 유럽에 비하면 헐값이긴 하지만 그래도 워몰드 입장에선 눈이 뒤집힐 정도. 거기에 세구라가 충동질해서 최고급 안장과 채찍 등 부속품 일습을 갖추고, 어느 부자의 마구간도 임대해버린 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작 말을 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컨트리클럽 밖에 없는 걸? 이때 호손이 기타 경비 어쩌고 저쩌고 해서 울고 싶은데 따귀 한 대 맞은 것처럼 얼른 컨트리클럽 가입 비용을 장난 혹은 절망 비슷한 심정으로 런던에 청구해 보았던 것.

  근데 덜커덕, 클럽 가입 비용도 수표로 보내왔으니 이제 소심한 소시민 워몰드의 가슴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돈을 받았으니 뭔가 스파이활동 보고를 해야 할 것. 마침 진공청소기 판매를 위한 연중 정기 행사로 쿠바의 지방을 순회하는 차에, 런던에다 산악지역에 반군들이 요새를 지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내친 김에 요새를 스케치해서 보냈는데, 이 스케치가, 배운 게 청소기 판매밖에 없어서, 전기 청소기의 부품을 스케치한 거였다. 이 보고서를 철저하게 믿는 런던의 비밀정보기관의 국장과 고위급들. 그러나 첩보력이 영국만 막강한 것이 아니라,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든 단단한 건물의 지하실에도 이중첩자가 있는 게 틀림없어, 얼마 되지 않아 미국, 영국의 다른 첩보기관, 서구는 물론이고 눈치로 보니 소련 등 공산진영에서도 쿠바 산악지대에 요새가 있고, 그것을 제공한 스파이가 워몰드라는 얘기가 퍼져, 워몰드는 하루 아침에 말 그대로 세계적 스파이 스타로 등극해버린 것.

  일이 너무 커졌지? 그린의 작품 속에는 대개 조금씩 유머 코드가 있는데, 이 정도면 유머를 넘어 진지하게 보이려 노력하는 코미디 수준이다. 그러나 그린의 스파이물이 하염없이 코미디로 흐를 수는 없는 법이란 걸, 그린 좀 읽은 독자들은 안다. <아바나의 우리 사람> 역시 같은 의미에서 조금씩 폭력과 살인과 복수로 번져갈 것임을.

  탁월한 대중 작가 그레이엄 그린. 딱 그것만 기대하고 읽으시기 바람.


  아참, 이것 인용한다 해놓고 그냥 지나쳤구나. 본인 자신이 스파이 경력이 있는 그린은 당연히 보수주의자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말이지, 아이고 깜짝이야. 워몰드의 직원으로 들어온 비어트리스가 후에 런던으로 소환되어 변론을 해야 하는 입장에 몰린다. 이때 비어트리스가 최고의 비밀정보기관과 육해공군 지휘관 앞에서 말한다.

  “조국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요? 2백 년 전에 누군가 발명한 깃발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이혼에 대해 토론하던 주교단과, 의회에서 서로 맞은편에 대고 고함치던 하원 의원들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민노총과 영국국유철도와 협동조합을 말하는 건가요? (중략) 세상엔 누군가의 조국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어요. 안 그래요? (중략) 당신들이 평화와 정의와 자유를 원한다는 말을 우리는 더는 믿지 않아요. 어떤 자유요? 당신은 그냥 출세를 원하는 거잖아요.”


  우연인지는 몰라도 위 인용은 <율리시즈>에서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문장과 매우 흡사하다.

  “나의 조국은 나를 위해 죽어달라.”

  그런데 나는 위대한 제임스 조이스의 말을 조금 비틀어 이렇게 말하곤 하지.

  “나의 조국은 한 번이나마 나를 위해 죽는 척이라도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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