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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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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정말 오랜만에 읽는 불가리아 소설가이다. 불가리아는 14세기 말에 튀르키예에 점령당해 무려 5세기 가까이 식민지배를 당한 것이 치명적 이유일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아는 불가리아 작가는 원래 직업인 극작가, 소설가, 시인으로의 작품보다는 1977년에 출간한 자서전 <구원받은 혀>로 널리 읽힌 노벨문학상 수상자 엘리아스 카네티 정도 밖에 없다. 불가리아는 우리나라가 개항을 한 1876년에 탈 식민지 무장봉기의 횃불을 올려 79년에 튀르키예의 예속에서 벗어났으나 20세기가 벌써 자리잡은 1908년에야 독립국가로 공인되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문학적 발전을 시작할 수 있었던 불가리아.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그 땅은 다시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또 곧바로 볼셰비키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넓게 자리를 잡았다. 당시의 문학은 어느 정도 정치에 복무를 해야 했으니, 1920년대 불가리아의 정권을 잡은 파시스트의 백색 또는 적색 테러를 피하기 위해 몸조심을 하던 문인들은 각기 자기 살 길을 찾아야 했을 터. 이렇게 살다가 1944년에 본격적인 불가리아 사회주의 국가가 형성되고 문학판은 뒤늦게 반 나치 저항문학이 주류를 이루었으며(원래 문학의 특기 가운데 하나가 뒷북 치는 거다), 곧바로 냉전과 무시무시한 검열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우리 귀와 눈 가는 곳에 불가리아 작가들이 들어올 바늘 틈이라도 있었으랴. 불행하게 비슷한 발칸 지역에 자리잡은 크지 않은 나라들이 다 비슷한 신세이긴 했다.
그러다 1968년이 오고, 얌볼 지역에서 68년생이되 빠른 68년생이라 원숭이띠가 아닌 양띠 남자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가 출생한다. 출생 연도부터 남다르다. 전 유럽 지역에서 자유주의, 사회주의적 사조가 젊은이들의 피를 가열하여 세상 만방에 폭력을 수반한 집회와 시위를 생산한 독특한 시절을 굳이 선택해 세상으로 비집고 나온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당연히 태어날 때는 몰랐겠지만, 소피아대학에서 불가리아어 문학과(국문과)를 졸업하고 불가리아 과학 아카데미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을 시절, 즉 고스포디노프의 인생 가운데 가장 젊은 시절에 그의 조국인 불가리아를 위시해 동유럽에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혁명, 벨벳 혁명의 폭풍이 불어 닥쳤으며, 그는 혁명의 훈풍을 가슴 깊이 호흡하면서 그간 시인, 소설가, 극작가들의 심장을 구속했던 사슬이 풀리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던 첫 세대로 불리어도 그리 어색하지 않는, 행운의 열쇠를 입에 물고 태어났던 거다. 몇백 년 만의 첫 세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처음에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해, 두 권 모두 불가리아 국가 문학상을 받는 기염을 토한다. 이어 첫 소설작품인 <자연소설>은 신인작가로 매우 예외적이라 할 수준이었는지 무려 21개 나라에서 번역 출간하는 놀라운 히트를 쳤다. 단편소설집과 그래픽노블로도 이름을 냈지만 그건 그냥 건너뛰고, 두번째 소설 <슬픔의 물리학>도 불가리아 국가 문학상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특히 독일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아 고스포디노프가 유럽 변방인 불가리아에서 드디어 유럽의 중심무대, 영국, 프랑스, 독일, 스칸디나비아 각지로 이름을 떨치는 계기를 마련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것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인 스트레가-유럽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최종 숏리스트까지 올랐다가 장렬하게 미역국을 마신다. 2020년에 초판 출간한 세번째 장편 <타임 셸터> 역시 출간 당시부터 유럽 경향 각지의 이름이 있는 작가라면 거의 예외 없이 상찬을 쏟아부어 2021년에 드디어 스트레가-유럽 상을 받았고, 불가리아-영어 전문 미국인 역자 안젤라 로델이 번역해 2023년에 부커-인터내셔널 상까지 휩쓸어, 우리나라에 단 한 권 번역해 나온 고스포디노프의 부커-인터내셔널 판, 그러니까 불가리아어-영어-한국어 삼중역 판을 읽기에 이르렀다.
하여간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가 대단하긴 대단하지? 책만 썼다하면 국제적 히트 상품이니 이거 원.
지구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을까? 놀라지 마시라. 17세기 중반 아일랜드 어셔 주교는 그게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 토요일 오후 6시경이라고 딱 못을 박았단다. 17세기면 1600년대. 유럽은 중세에서 갓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정신 못 차리는 사제들이 쌔고 쌨었다. 팍스 바티카나. 이에 비해 버지니아 울프는 1910년 12월을 기점으로 인간의 기질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얼핏 보기에 다른 어떤 날과도 다르지 않은, 우중충하고, 춥고, 신선한 눈 냄새를 띤 날일 뿐이지만 무언가의 봉인이 해제되었고, 이를 극소수의 사람만이 감지해냈다고 한다. 반면에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1939년 9월 1일 이른 아침에 인간의 시간에 종말이 닥쳤다고 주장한다. 수십만 명의 독일군이 폴란드 국경에 밀집해 있다가 드디어 첫번째 포성이 울린 시간이다.
물론 1939년 이전, 1914년 6월 28일의 사라예보에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계 학생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총에 맞아 절명하면서 1차 세계대전의 포성을 울리게 만든 사건도 있었으며, 전쟁 중에는 영미 폭격기에 의한 드레스덴 폭격 말고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상공에서 터진 두 발의 원자폭탄에 의한 집단 학살도 있었지만 유럽 작가의 시각에는 그깟 동양인 대량 학살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전쟁 후에는 소비에트에 의한 철권 독재, 그리고 냉전으로 이어졌다. 철의 장막 안에서는 동구 공산권에서도 자유해방 운동을 탱크와 장갑차의 캐터필러가 압살했으며, 바로 직후인 1968년에는 마르쿠제의 수업을 받은 청년들이 반전과 마리화나와 자유주의와 신 사회주의, 그리고 히피 운동을 세상 만방에 골고루 살포했다. 1980년대 들어서 비틀스와 엘비스가 저물어가는 사이 북구의 아바ABBA 중에 선택을 강요당할 때 속으로는 노랑머리가 좋지만 겉으로는 갈색머리가 더 낫다고 해야 가오가 죽지 않는 시절이 있었고, 바웬사는 자유노조 운동을 시작했으며, 결국 연대기가 끝나기도 전에 각 소비에트 국가에서는 우상과 동상이 길거리에 자빠져 우상의 얼굴에 뭇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히는 참담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세계 최초로 미국 공군에 의한 한 밤중의 폭격이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파괴와 폭음과 살점이 튀는 참상이 아니라 전쟁은 그저 화면 속에서 초록색으로 잠깐 명멸하는 깜박임에 불과한 현상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불가리아, 여전히 그저 그런 나라 가운데 하나밖에 되지 않음에도, 유럽연합의 일원이며, 무엇보다 순정한 백인의 의식에서 중동 아시아인들의 파괴와 학살까지 염두에 둘 생각은 없었다. 작가의 1990년대는 무엇보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특히 아일랜드의 국부가 갑자기 증가하여 아일랜드의 신화시절부터 통틀어 가장 부유한 국가로 자리잡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시절이었을 뿐. 그렇다고 세계의 패권이 여전히 유럽에 남았다고 오해할 정도는 아닌 작가는, 내가 여태까지 이렇게 다분히 3세계 인종의 입장에서 말한 것과 달리,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유럽에 국한해 20세기를 10년 단위로 정리했을 뿐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으며, 그 항변이 옳다.
주요 등장인물은 화자 ‘나’와 가우스틴. 문제는 가우스틴이다.
자신의 이름을 투명 망토처럼 사용하는 가우스틴. 홈리스를 보면 그들에 대한 사랑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습관이 있는데, 자기도 머지않아 그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다. 자신이 “시간의 부랑자”였으니까. 그는 부자다. 자신이 처한 형이상학적 역경이 물리적 고난으로 번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창창한 액수의 현금을 지니고 있을 정도.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일은 노인정신의학과 의사라는 직책이다. 노인들, 특히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걸려 점차 시간을 상실해가는 노인들의 이야기에서 일종의 대피소shelter를 찾는 듯하다. 그의 클리닉은 스위스 취리히 산골에 있다.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지만 세상의 돈 많은 노인들이 말년을 맞아 자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 속에서 죽음을 맞기 위하여 병실을 채운다.
가우스틴을 처음 만난 곳은 9월초 바닷가에서 열린 오랜 전통의 문학 학회였다. 모두 글을 쓰고, 독신이며 책을 내지 못한 20~25세의 청년들. 당시 ‘나’의 아버지는 세상 등진 지 오래였으며, 한달 전 어머니는 세번째 미국으로 불법이민을 감행해 떠났다. ‘나’는 가끔 지난 세기말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복고취향이 있어, 가우스틴이 1937산 토마시안 더블 엑스트라 담배를 세 갑 가지고 있는데 사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즉시 구입했다. 가우스틴은 1928년에 제작한 독일제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여 주어 한 모금을 깊게 빨았는데, 정말 독한 맛이었다. 이렇게 친해졌다. 그는 발칸 산맥 기슭 작은 마을의 버려진 빈 집에 살고 있다고 했으며, 전화가 없어서 우편으로만 연락이 가능하다 했다. 20대 시절에.
그러나 독자들이여, 믿지 마시라. 초장에 나온다. 하지만 ‘나’가 분명하게 선언함에도 그게 진실인지는 책을 거진 다 읽을 때나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눈 여겨 읽게 되지 않으니, 무엇인가 하면, 작가이자 화자 ‘나’는 처음에 자신의 머리 속에서 가우스틴을 만들어냈고, 이후 육신을 갖춰 내 앞에 나타난 존재로, ‘나’와의 공통점은 과거에 대해 집착하는 성향이란다. 하여간, 세월이 흐르고 흘러, 30년 이상이 흘러 애초에 아우구스티누스와 가리발디의 이름을 합해 가우스틴이라 이름지은 그는 취리히 산골에 노인정신의학 병원을 짓고, 1층에 1940년대 실room (지하를 공습 시 대피소로 사용할 수 있어서), 1960년대 실은 2층, 다락방은 80년대와 90년대를 위한 예비실로 건설을 하여 현재부터 순차적으로 과거를 잊기 시작하는 치매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노인들을 치료하고 있다. 이렇게 본문을 시작한다.
각자 지난 시절의 십년간. 어느 시절이 가장 좋았을까? ‘나’는 로테에게 묻는다. “로테, 당신이라면 어느 시기를 선택할 거 같아요? 60년대, 70년대, 아니면 80년대?” 로테는 잠시 말이 없다가 최선의 답을 말한다. “저는 모든 시기의 열두 살 아이이고 싶어요.” ‘나’의 대답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도 이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선택하지 않겠다. 지금 시절이 제일 좋다. 이렇게 계속 늙어가다 그리 늦지 않게 삶을 접는 게 소원이다. 지금, 현재가 가장 행복하니까.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가적 상상력은 이제 단계를 넘는다. 유럽 연합은 각 국민들의 최선의 삶을 위하여 10년 단위의 특정 세월 속에서 국민들이 가장 행복한 시기를 살게 만들려고 모색한다. 그러다가 모든 국민들, 유럽연합국도 아니며 영세중립국인 스위스조차 예외없이 국민투표를 거쳐 국민들이 스스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선택하게 만드는데, 이건 절대로 투표에 의하여 결정할 수 없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우민정치로서의 민주주의 자체. 그러나 유럽국가들은 했다. 소설이니까 했겠지만 하여간 했다. 그래서,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시절로 모든 것이 돌아가면, 유럽은 유토피아가 되는 것일 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닐 수도 있고. 어느 경우든지 하여간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상상력은 거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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