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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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중부 해변마을 둑토 출신의 응우옌 부부는 1954년 남베트남, 1년 후부터 1975년까지 20년간 ‘베트남공화국’이라 불릴 반메투엣으로 이사해 한 명의 딸을 입양하고 적어도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적어도 둘’ 가운데 큰 아이 ‘퉁’은 훗날 하버드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한 의학박사가 되고, 작은 아이는 대학 교육자로 이름을 알릴 것인데 이 둘째 비엣이 2015년에 쓴 소설 <동조자>가 2016년에 퓰리처상을 받는다. 놀랍게도 첫 장편소설이 미국 작가들의 로망인 퓰리처상을 받은 거다.

  1975년에 응우옌 가족은, 호치민이 건국한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고 세운 일종의 괴뢰국가 베트남공화국의 수도 사이공을 함락시킬 때, 미국으로 ‘도피’했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사이공이 함락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응우옌 가족이 당시 사이공에서 살았는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미국의 기관이나 유력자 또는 군대와 상당히 밀접하게 지내, 그들이 수송기 탑승을 허락한 극소수의 베트남인이었으며, 미국 내에서 식료품점을 차릴 수 있을 재산을 가지고 도피할 정도의 재력을 보유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한 베트남 정∙재계의 주류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혹시 이 가족이 베트남 마지막 응우옌 왕족의 일원 아니었을까? 짐작이다. 확실하지 않으니 오해 마시라.


  간략하게 베트남의 현대사를 살펴보자. 천년 동안 중국의 ‘지배 또는 간섭’을 받아온 베트남은 또 오랜 세월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배까지 겪어야 했다.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또다시 일본군이 진주해 그들 치하에 있었다가 종전 후 드디어 1945년 9월, 호치민이 하노이에서 독립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불운하게도 승전국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그들이 자신의 식민영토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어 초현대식 무기와 전폭기를 동원한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지만, 프랑스는 1954년에 결정적으로 얻어터져 쌍코피를 흘리며 철수했고, 드디어 베트남은 독립을 이루었다.

  하지만 호치민의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 당시 전지구적인 냉전 상태는 만일 베트남이 공산화된다면 이웃한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역시 공산화 물결에 휩쓸릴 것이라는 이른바 도미노 현상의 위협이 서구사회를 압박해 자기들 임의로 위도 17도선을 경계로 남쪽에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찌꺼기 하나를 왕으로 삼아 ‘베트남국’을 만들어준다. 시절이 어느 땐데 왕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 응오 딘 디엠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베트남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자기들이 죽어라 싸워 독립을 쟁취한 북쪽의 베트남민주공화국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 그리하여 유명한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본격적인 내란이 발발하니 우리가 아는 베트남 전쟁이다. 미국이 기록한 최초의 패전. 한국전쟁이 최초의 무승부였고, 베트남전은 여지없이 패전 자체였다. 이때 앞에서 말한 베트남인 가운데 유력자들, 중요한 친미파들은 수송기를 타고 탈출해 미국의 수용소에 도착했고, 돈만 많고 미국과 ‘특별한 관계’까지는 이루지 못한 부자들은 아무 배나 타고 이웃한 나라로 건너간 이른바 ‘보트 피플’ 신분으로 베트남을 탈출했다. 새로이 건국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 남았다가는 무시무시한 재교육을 받거나 죽을 지도 몰라서.


  <동조자>는 사이공 함락을 불과 며칠 앞두고 시작한다. 화자는 ‘나’. 근데 올림말로 쓴다. 좀 이상하다. 계속 읽다 보면 ‘소장님’과 ‘정치위원’에게 쓰는 일종의 자술서이다. ‘나’가 수용소에 갇힌 상태에서 과거, 즉 사이공 함락 직전부터 이 수용소에 수감될 당시까지의 모든 일을 쓰라는 지시를 받고 쓴 자술서.

  그럼 ‘나’는 누구일까?

  북베트남, 훗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될 북베트남의 스파이이자 고정간첩. 동시에 미국 CIA 비밀요원이자 남베트남 장군의 부관이며 정보부 위관장교. 대위였다. 이런 복잡한 일을 아무나 하나? 매우 총명해 1960년대에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옥시덴털 대학에서 6년간 미국사, 미국문학, 문법, 속어와 마리화나, 섹스까지 이른바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모두 몸에 익혀가며 석사까지 공부하고 다시 베트남에 돌아왔다. 이런 특혜는 1954년 프랑스와의 전쟁통에 난민선을 타고 피난할 때 유심히 ‘나’를 발견하고 재능을 알아본 미국인 대사관 직원이자 CIA 요원이었던 클로드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로드는 몰랐지. ‘나’가 점점 커가며 고등학교 다닐 때 의형제를 맺은 ‘만’에 의하여 제대로 의식화교육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된 분자인 것을. ‘나’는 만의 지시에 따라 고분고분 클로드가 지원해주는 대로 미국으로 가 모든 것을 ‘작전상’ 흡수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의형제 가운데 다른 한 명 ‘본’은 북베트남군이 본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처형해버린 이후에 극도의 반공주의자가 되어 버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점. 엄마가 열네 살 때 ‘나’를 낳았다. 아버지는 프랑스인 신부. 맞다. 가톨릭 사제의 아들이자 서양 혼혈. 베트남 사람들이 ‘잡종새끼’라고 부르는. 주인공의 이런 정체성이 작품에서 상당한 의미를 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중간첩으로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이쪽이면서 저쪽이기도 한 인간이자 베트남 자체가 아닐까 싶었다. 나이든 프랑스 가톨릭 사제와 베트남 소녀 사이의 아이, 동양과 서양이 낳은 혼외자, 사람의 눈길을 피할 수 없는 개체, 기타 등등.


  ‘나’는 만과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숱한 접선을 통해 미군의 폭격 일정을 제공하여 베트콩 및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켜 희생을 그나마 줄일 수 있었고, 유력인사의 동선을 알려 그들이 효과적으로 암살계획을 세우게 해주기도 했다. 이런 고급 정보를 보낼 수 있으려면 베트남군 내부에 상당한 신임을 받아야 하는 법, 그러기 위하여 ‘나’는 잡혀온 베트콩 간첩에 대한 고문 같은 것을 직접 수행하지는 않지만 방관하고 참관해야 했으며, 중요하지 않은 베트콩 측 간첩의 체포를 위하여 역시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야 했을 것이다. 즉 양쪽 모두의 철저한 적이 되어야 하는 숙명이다. 어느 쪽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

  정말? ‘나’의 경우는 아닐 확률이 많다. 독자는 그렇게 짐작한다.

  만일 베트남이 승리한 후에 베트남 군대나 미국의 CIA에서 ‘나’가 베트콩의 스파이였다는 것이 발각나면, 발각날 수밖에 없을 터인데, 무조건 처형당할 것은 확실하다. 반면에 베트콩이 승리할 경우 그들의 중요한 수뇌부에 의형제 만이 있어서 그의 지령을 받아 스파이 행위를 한 것이 전쟁 중에 작전상 행한 밀고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 확실하다. 만일 전쟁 중에 만이 죽지만 않는다면.

  그럴 듯하지? 그럴 듯한데, 정말 그럴 듯한 과정만 밟아 진행하면 소설이 재미없어진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더 묻지 마시고.


  하여간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드디어 함락되기 바로 직전에, ‘나’는 장군과 장군의 직계가족, 그리고 골수 반공주의자 의형제 본과 그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미군 수송기 C-130 허큘리스를 타고 탈출한다. 이 과정에 본의 아내와 아들은 누가 쐈는지도 모르는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베트콩일 수도 있고 탈출하지 못한 채 베트콩의 포로가 될 베트남 군이 쏜 총일 수도 있다. 이 일로 본은 미국에 도착해서 만성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다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살인할 수 있는 냉혈한으로 변모한다.

  사이공을 탈출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이 캘리포니아. 이곳에서 장군은 잃어버린 나라, 베트남에서의 재혁명을 꿈꾼다. 의용군을 모집해 마치 호치민이 그러했던 것처럼 파르티잔 활동을 하고, 점점 규모를 키워 집권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베트남공화국을 재건한다는 꿈. 당연히 미국과 미국의회, 미국의 돈을 지원받아야 가능하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서 이런 기미를 눈치채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장군의 휘하에 ‘나’가 있음에. ‘나’가 프랑스 파리 13구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만의 당고모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편지 글의 행간에 투명잉크를 사용해 장군 주변의 정보를 낱낱이 보고하는 바에. 장군은 정말로 태국에 베트남 패잔병을 모아 캠프를 차렸고, 이들을 라오스를 통해 베트남에 잠입시키기도 했다. 마침 미국에서도 이 캠프로 인원을 보낼 예정인데, 여기에 ‘나’의 의형제 본이 다른 두 명의 전직 장교와 함께 지원을 했다. ‘나’도 지원하려 하지만 파리에서 만의 당고모로부터 편지가 온다.

  “너는 그곳에 머물러 있어.”

  안 될 말. 이미 ‘나’는 장군의 맏딸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이를 장군 부부가 알게 된 처지. 장군은 이를 끝까지 모른 척했다가 ‘나’가 비행기 트랙에 오르기 바로 전에, 너 같은 잡종새끼한테 그게 가당하기나 한 짓이냐고 말한다.


  자, 이제 ‘나’가 왜 진술서, 자술서를 쓰게 됐는지 아시겠지. ‘나’는 태국에서 라오스를 거쳐 베트남 땅에 발을 딛자마자 곧바로 포로로 잡힌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포로수용소. 포로만 있는 건 아니고 전에 베트남의 공화국 측에서 그들 시각으로 보아 악행을 저질렀던 분자들이 모인 곳이다.

  그곳에서 이른바 ‘개조’가 이루어진다. 이미 우리는 레닌과 스탈린 치하에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에서 이 개조 과정을 익히 본 바 있다. 그리하여 책에서 상술하는 개조 과정을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이 모든 것을 거쳐야 작가이자 미국의 중요한 교육자인 비엣 타인 응우옌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단하나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 “결코 진부해지지 않을 보편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질문들.”에 대하여.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 무엇을 하는가?

  혁명가는 혁명이 승리를 거두면 무엇을 하는가?

  독립과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들의 독립과 자유를 빼앗는가? (p.647)


  이 물음이 나오기 바로 전에 정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나는 차마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알려드리고 싶을 정도로 절절하게 동감한 결론을.



  * 680쪽이면 요즘 벽돌책이라 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고, 활자의 절대수가 많다. 벽돌이라도 같은 벽돌이 아니다. 그래도 머뭇거릴 필요 없다. 재미있어 술술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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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6-03-16 1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드라마로 봤었는데 마지막에 충격적인 결말을 벌써 잊어버리고는 뭐였지 하고 다시 찾아보고 무릎을 탁 쳤네요 (다시 한 번 ㅎㅎ) 뭐라 말 할 수 없는 감동.. 역시 원작인 책도 재미있군요.

Falstaff 2026-03-16 13:36   좋아요 0 | URL
이걸 드라마로도 만들었군요. 그것도 재미있겠습니다. ㅎㅎ

Forgettable. 2026-03-16 13:40   좋아요 0 | URL
박찬욱감독이 제작했는데 전체 에피소드 감독은 아니어서 막판에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재밌습니다.

yamoo 2026-03-16 14:27   좋아요 0 | URL
포님, 제목이 뭐에요??

Forgettable. 2026-03-16 14:41   좋아요 0 | URL
똑같이 <동조자>입니다. 쿠플에 있어요~~
 
귀환
히샴 마타르 지음, 김병순 옮김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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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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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독후감을 쓰는 스타일은, 처음 읽는 작가일 경우 바이오그래피 대강을 먼저 적는다. 주로 위키피디아를 참고한다. 작가의 지난 일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미리 작가의 생전을 알아두고 읽으면 조금 보탬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기도 하다. 또 남의 사생활 엿보는 게 재미있잖아, 관음증 같은 거 없으니까 괜히 가자미 눈을 해서 볼 필요는 없더라도.

  하샴 마타르의 <귀향>의 독후감을 쓰면서는 굳이 작가의 지난날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전혀. 왜냐하면, 애초에 <귀향>이 히샴 마타르가 쓴 소설인 줄 알았더니, 세상에나, 에세이로 구분하는데, 자기가 살아온 내력을 자기 입으로 줄줄 다 쏟아낸다. 잘 됐다. 골치 아프게 위키피디아 보고, 가뜩이나 짧은 영어 써서 우리말로 바꾸느라 골치 아픈데. 자기 삶을 그대로, 심지어 사람 이름도 그냥 노출시키며 작품을 쓰는 아니 에르노 같은 이도 노벨상 타고 소설만 잘 쓰는데 마타르도 <귀환>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썼으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었을 터, 아쉽기는 하다. 왜 아쉽냐 하면,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 자기 살아온 거에다가 구라를 좀 슬슬 풀어 보태면 훨씬 더 재미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허구라는 이름의 구라를 다른 말로 하면 글루탐산나트륨, MSG 잖여.


  리비아는 16세기 이후, 그러니까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제국까지 몽땅 삼켜버릴 당시니까 오스만 최 전성기 시절부터 20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 비슷한 상태로 있었다. 18세기부터 약 백년 간 리비아 호족 출신 술탄이 지배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19세기 들어 다시 튀르키예의 식민지였다가, 20세기 초에 이탈리아가 튀르키예와 전쟁을 벌여 다시 식민지로 삼았다. 19세기 영국 왕립 지도에도 리비아라는 국호 대신 ‘술탄국 크리폴리아’라고 표기했었다고 <귀환>에 나온다.

  리비아 입장에서 다행이었던 것은 식민지 조선과 마찬가지로 2차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였다는 점. 종전과 동시에 영, 불, 미, 소가 동시에 껄떡거리다가 1951년에 리비아 왕국으로 독립했다. 이때까지 리비아에서는 석유가 발견되지 않아 독립은 했지만 나라가 거지꼴을 면치 못했고, 와중에 모범적인 신생독립국답게 거의 모든 공무원은 태연스레 부정부패에 전념을 해 국민들의 삶은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왕과 귀족을 제외한 모두가 가난을 면치 못한 세월이 흐르고 드디어 당도한 1969년 9월 1일. 국민들의 불만을 등에 업은 스물일곱 살,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젊은 또는 어린 육군 대위가 부대를 이끌고 트리폴리로 진격해 여든 살의 이드리스 왕을 폐위시키고 사회주의 국가 리비아 아랍 공화국을 세웠다.

  이때 런던 주재 리비아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장교 자발라 마타르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사관으로 달려가 로비 접수대에 걸린 존경하는 이드리스 국왕의 초상화를 손수 내려 빌로드 천으로 감쌌다. 마타르는 비록 국왕을 모셨고, 존경했지만 현대 공화정 체제에 더욱 열광했다. 새로운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런던에서 급거 귀국한 자발라 마타르. 그러나 그는 공항에서 곧바로 체포되어 5개월 동안 감옥에서 취조를 받은 다음에야 풀려났다.

  쿠데타 정부는 자발라 마타르 같은 옛 체제의 고급 장교이자 정치인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장 강력한 체제 위협세력이 아니라고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일종의 추방 성격을 띠고 1970년 봄에 유엔 주재 리비아 대표부 1등 서기관으로 임명해 맨해튼으로 보냈다. 자발라 마타르는 자신이 당한 계급 박탈과 강제 전역에 이은 하급 외교관으로 해외 파견근무 역시 역사적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과정으로 인식해 기꺼운 마음으로 뉴욕행 비행을 받아들였다. 아내와 아들 지아드와 함께 맨해튼의 아파트에 짐을 푼 마타르 서기관은 바로 그 해에 둘째 아들이자 훗날 소설가, 에세이스트, 평론가로 이름을 날릴 히샴 마타르를 낳았다.

  어떠셔? 이제 겨우 작가 히샴 마타르가 세상에 나왔다니까? 이거, 지금 위키피디아 복사한 거 아니다. 다 이 책 <귀환>에 나오는 거다. 그것만 시간대 조절해서 쓴 것일 뿐. 그럼 계속 간다.


  3년 동안 UN 리비아 대표부에서 일한 자발라 마타르는 1973년에 귀국한다. 다시 리비아 현대사.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처음부터 폭정을 동반한 독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스물일곱 살의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 장교. 그러나 권력욕은 있었겠지. 1960년대 초부터 원유 생산을 시작하여 검은 오일 머니가 마구 유입되던 시기에 그가 주목하던 정치인은 이웃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 나세르의 어떤 행적을 모방했느냐, 이런 거 따지지 말자. 딱 하나만 알면 된다. 그가 범 아랍권의 대동단결을 외치는 동시에 친 소련, 즉 사회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했다는 점. 당시 사회주의국가, 소련, 중국, 북한, 쿠바, 동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의 공통점은, 일인종신독재. 철권통치 왕권에 버금가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월등하게 큰 권력을 쥐게 된다. 카다피가 보니까, 앗다, 저거 괜찮거든. 그리하여 사회주의를 선언하고, 그러다보니 저절로 종신독재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종신독재를 이루려니까 자기한테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숙청하는 공포스러운 경찰국가가 될 수밖에. 반면에 석유생산으로 유입되는 달러는 석유 말고 다른 생산 기반 없이도 국민생활을 (전과 비교해) 윤택하게 해주어 예상 외로 카다피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다수 생기기는 했지만, 주로 지식층을 중심으로 반 카다피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 반 카다피, 반체제 인사 가운데 손에 꼽는 사람이 바로 자발라 마타르.

  자발라 마타르는 위협을 감지한다. 더 이상 리비아에 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 같아서 가족을 모두 데리고 1980년에 망명길에 올라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한다. 군인 출신이면서 반 카다피 진영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 이집트에서도 그는 반정부 활동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의 해외 투쟁은 1990년까지 계속된다. 이집트 경찰에 의하여 카이로의 아파트에서 밝혀지지 않은 혐의로 체포될 때까지.


  이 와중에 마타르 선생은 맏아들 지아드를 1982년에 스위스의 산 좋고 물 좋은 알프스 산맥 고지에 있는 사립기숙학교에 다니게 한다. 그러나 카다피의 마수는 스위스까지 뻗어 있었다. 당시 리비아 정보부대원의 특징적인 외모였던 긴 생머리를 한 건장한 남성 네 명이 지아드를 감시하는 것을 눈치챈 아버지는 긴급하고 비밀스러운 전문을 보내 가까스로 맏아들을 무사히 데려온다. 둘째 히샴도 원래는 스위스 알프스의 기숙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형이 그 꼴을 당한지라 어쩔 수 없이 1986년에 영국의 사립기숙학교에 들어가 2년 동안 다닌다. 놀랍지? 전직 장교에 외교관이었을 뿐인 공무원이 두 아들을 스위스와 영국의 사립기숙학교에 보내?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부자도 아니잖아? 그렇다. 책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는 군 복무 중에도 부업으로 일본과 유럽의 고급스러운 상품을 수입해 팔아 막대한 돈을 벌었단다. 물론 작품의 주인공이니 돈을 버는 와중에 당시 기준으로 별 잡음도 없었고, 그러니까 부정부패에 관련도 없었다. 그렇게 믿자. 믿어주지 뭐. 믿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하여간 1990년 3월에 이집트 경찰에 의하여 체포된 아빠 자발라 마타르는 이후 모종의 루트를 통해 리비아로 신병이 인계되어 트리폴리에 있는 악명 높은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된다.

  자발라 마타르는 외교관 경력에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이라 누구보다 카다피 정권에 위협을 준 인사였다고 아들 히샴 마타르는 주장한다. 실제로 자발라 마타르가 속한(또는 그가 우두머리로 있는) 조직은 리비아 국경 이남 차드 땅에 저항군 훈련소를 설치했고, 국내에서도 지하 세포조직을 운영했으니 카다피 입장에서는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적이었을 터. 자발라는 아부살림 교도소에서 숱하게 모진 고문을 당했음에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그걸 다 견뎌냈다고, 주위의 모든 증인이 증언한다. 그러니 그랬다고 믿자. 이때 리비아 내에 있던 자발라의 조카들, 히샴의 사촌동생과 외삼촌 등도 자발라의 세포조직으로 지목당해 함께 수감되었는데,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적어도 1996년까지 자발라는 아부살림 교도소에 “생존”해 있었단다. 즉, 이후에 그의 생사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이 책 <귀환>은 2011년부터 시작해 2012년 리비아 혁명으로 카다피가 물러난 이후에 귀국한 히샴 마타르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이다. 아버지는 당연히 죽었겠지만 정말 죽었는지, 죽었다면 어디에 묻혔는지, 혹시 생존해 있거나, 짐작대로 묻혀 있더라도 어쨌거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적고 있다.

  소감을 말하자면, 우리나라 현대사도 만만치 않아서, 아, 그랬구나. 리비아도 그랬구나. 하는 정도. 문장은 좋다만, 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바람에 나중엔 지겨울 수 있다. 나는 뒤로 갈수록 지겨웠다. 당신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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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은 아내 - 미하일 조센코 단편소설집
미하일 조셴코 지음, 예브게니 빠나마료프 옮김 / 써네스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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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년, 우리나라에서는 동학농민전쟁에 이어 청일전쟁과 갑오경장으로 근대사가 한 번 크게 휘청거린 해에 태어난 미하일 조센코는, 한 마디로 해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작가이다. 날 때는 귀족 자제로 나와 혁명의 와중에도 혁명과 이후 내전을 지지한 풍운아. 소부르주아로 살며 동네 사람이나 대중목욕탕 단골 손님 같은 주변인한테 들은 이야기 중에서 좀 우습기는 한데 뭔가 당시 사회의 걸림돌 같은 걸 발견하면 그걸 아주 짧은 소설로 써서, 혁명 조국이 개선해야 할 점, 현 시대 사람들의 개혁해야 할 의식 같은 걸 많이 썼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주로 1920년대에 앞에서 말한 짧은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풍자와 해학을 조센코가 툭 튀어나와 쓰기 시작한 건 아닐 터이고, 누굴 닮았을까? 조금 고골하고 비슷한 것도 같고, 많이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쓴 레스코프와 유사하다. 그렇다고 내가 레스코프를 훔쳤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레스코프가 자리를 잡은 러시아식 손바닥 풍자소설 위에서 조센코가 즐겁게 폭스 트롯을 추었다는 것이지.

  조센코의 폭스 트롯을 당시 권력을 확실하게 잡은 스탈린의 문학적 최측근인 고리키가 귀엽게 읽었다. 아, 이건 무지하게 중요한 이야기이다. 1920년대라고 해도 두 걸음만 더 걸으면 30년대.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곧 시작되는 시기. 어쨌거나 조센코는 고리키의 비호 아래 1937~38년의 대숙청 기간에도 무탈하게 작품, 희곡과 큰 산문을 썼으며, 공포의 시대에서도 낙관적인 풍자를 거침없이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0년대 중반 이후 말년은 진짜 허기진 삶을 살다가 갔다. 그건 나중 일이니 여기서 언급은 하지 않을 것.


  소설집 《남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은 아내: 이하 “남편의 죽음”》은 본문이 겨우 193쪽에서 끝나고 나머지는 역자 해설 비슷한 “조센코의 문학 세계”와 “1920~40년대 러시아의 모습”이란 제목의 사진 화보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은 큰 활자에 대단히 넓은 자간, 행간, 작품 사이의 공백을 두었으면서도 무려 26 작품을 실었다. 짧아도 너무 짧은 소설들.

  1부는 정말로 조센코가 이웃과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 당시 소비에트 사람들의 생활상과 효율적이지 못한 공무원 편의주의 같은 것의 희극적 풍자로 되어 있고, 2부는 “렐랴와 민카”라를 부제로 아마도 렐랴는 민카, 즉 미하일 조센코의 누나로 보이는데, 이 남매의 어린 시절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소설로 썼다. 적은 분량에 또 이렇게 2부로 나누었으니 책 한 권 읽는데 얼마나 페이지가 활랑활랑 넘어가는지 탁, 아시겠지? 하여간 그렇다.


  소설집 《남편의 죽음》의 제목을 하필이면 왜 이걸로 골랐을까? 무려 열페이지에 달하는 제일 긴 작품이라서였을까? 뭐 그럴지도. 레닌그라드의 페트로그라드 지역에서 사는 이반 이바노비치 부틸킨이라는 남자가 주인공 남편. 러시아에서 가장 평범한 남자의 이름을 아시나? 이반 이바노비치 이반스키. 이 주인공하고 성만 다르니 부틸킨도 그저 주변에 널린 흔한 부부의 흔한 남편으로 여기면 된다. 직업은 그림쟁이. 화가까지는 안 되고 그저 포스터, 광고판, 극장 간판 같은 걸 그리는데, 몸이 좀 부실해서 그렇지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조센코는 초를 친다. 부실한 몸이 요즘들어 더 부실해져 이제 이반 생각에 오늘 아니면 내일은 죽을 거 같다. 하여 아내 마트료나 바셀리브나, 목청만 크고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는 이 왈가닥 마트료나가 서둘러 의사를 불러와 맥을 잡게 하니, 장티푸스 아니면 폐렴이란다.

  마트료나는 앓는 남편도 잡도리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하면, 남편의 죽음? 그의 남성성은 지금도 있으나 마나, 차라리 자신의 남성성이 남편보다 훨씬 우월하니 하나도 아쉬운 거 없고, 오직 하나의 근심이 있을 뿐. 첫째로 혹시라도 남편이 죽거나 남편과 이혼하게 되면 자기 힘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 둘째는 설령 이혼을 해서 다른 놈을 만나더라도 그놈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부려먹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남편은 마트료나한테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 이상이 아니다.

  근데 사실 많은 가정이 그렇지 않아? 늙어가면서 그러면서도 점점 남편 잡도리를 더 심하게 하는 것도? 마트료나 여사는 이의 전범을 이루어 죽어가는 남편을 들들 볶고, 지글지글 조리고, 엎고 뒤집으면서 구워 버린다. 나가서 극장 간판을 그려 돈을 벌어 오든, 죽음의 침상에 자빠져 있는 남편이건 그건 다음 문제. 밤에 고열에 시달리며 헛소리를 하고, 낮에는 진이 빠져 다리를 쭉 뻗은 채로 누워 진땀을 흘리며 꿈을 꾸는 남편한테 마트료나는 야물딱지게 바가지를 긁어댄다.

  “어머, 이 사람 좀 봐! 왜 누워 있어? 꾀병 부리는 거 아냐? 일부러 아픈 척하는 거 아니냐고? 일이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돈 벌 마음이 없어진 거냐고?”

  그저 돈, 돈, 돈, 돈…. 그래 뭐 이제 남편의 사용용도는 돈벌이밖에 없으니까. 그게 남편의 팔잔 걸 뭐.

  “왜, 이제 곧 죽을 거 같냐?”

  남편이 대답한다.

  “미안해, 나 이제 죽어. 더 이상 나를 잡지 마. 난 이제 당신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니까.”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나는 당신 같은 사기꾼을 믿지 않아. 죽을지 안 죽을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내게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도 마!”

  마트료나는 남편이 곱게 죽을 수 있게 해줄 추호의 마음이 없다.

  “당신이 그렇게 부자야?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으냐고? 당신 같은 인간을 죽을 자격도 없어. 시체 씻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시체 넣을 관은 무슨 돈으로 사고, 관을 옮길 때 필요한 마차는 무슨 돈으로 빌려? 그리고 신부한테도 돈을 줘야 하는데 설마 지금 나더러 옷이라도 팔아 돈을 주라는 거야? 싫어. 절대 그렇게 못해. 너도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어. 죽더라도 돈을 벌어놓고 죽어야지!”

  이웃 할머니가 염은 돈 안 받고 해주겠다고 해도 눈알을 부라리며 관과 마차, 신부한테 줄 돈 같은 걸 열거하며 죽어가는 남편한테 드드드드득 바가지를 긁어대고 있는 마트료나. 여기다가 남편 죽은 다음에 새로 결혼하려면 두 달 정도 걸리니 적어도 두 달 먹고 살 수 있는 돈까지 벌어오고 죽으라는 거다. 여지없이 레스코프 작품 속 주인공 여자들하고 비슷하다.

  그래서 남편 이반이 드러워서 죽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돈 벌러 나간다는 이야기.


  이런 것들을 스물여섯 편 실은 책. 읽다가 피식, 웃음도 나고 재미도 나름대로 있고 그렇다. 그렇기는 한데 이미 한참 지난 1920년대 말의 소비에트, 주로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시내에서 생긴 웃긴 촌편들이라서 실감은 별로 나지 않는다. 번역한 이가 예브게니 빠나미료프. 러시아 사람으로 2002년에 한국외대 한국어학 과정을 수료한 후에 우리나라 여성과 결혼해 15년 살았단다.

  러시아 사람이라서 조센코의 풍자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더 실감을 해 번역까지 했겠지만, 거꾸로, 그러니까 우리 소설을 러시아로 번역하는 것보다, 러시아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아마도 23배 정도 더 힘드는 거 아닌가 싶다. 빠나미료프가 진심으로 번역을 했음에도 약간 어색한 곳이 있는데, 이럴 경우(모국어→한국어) 출판사 편집부에서 더 공을 들여 교정, 교열에 힘써야 했을 터. 그랬겠지. 그럼에도 간혹 아쉬운 점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뭐 그렇다. 뭐 어쩌겠어. 조센코의 작품을 쉽게 읽지 못하는 우리나라 독자들이 얼마나 안타까우면 러시아 사람이 직접 번역을 해 소개하겠느냐고. 책이 많이 팔린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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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미래
염승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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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에 서울에서 나 동국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도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책 속에 네 번째 실린 단편 <진영의 논리>의 주인공 진영이 박사과정을 수료하기만 하고 논문을 제출하지 못한 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최소임금을 조금 넘는 강사료만 받아 사는 시간 강사인데 잘 살펴보면 진영 속에서 작가 염승숙의 모습 일단을 찾아볼 수도 있겠군. 중학교 교사로 딱 하루 ‘교감’의 직위를 단 채 명예퇴직한 진영의 엄마 이구옥, 애인 ‘전’과 헤어지고 난 다음에 전의 씨톨이 자기 배 속에 착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영의 모습은 백퍼 염승숙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진정으로 아니기를 바란다. 작품들 속의 모든 주연급 등장인물이 염승숙과 비슷하지도 않기를, 완전히 다른 족속이며, 1도 양보 없이 몽땅 작가의 전두엽 속에서 창조한 인물이며 스토리이기를 바란다. 뭐 세상에 이렇게 암울하고, 패배적이고, 모두, 모두 남의 탓 때문에 불행해질 수 있는 거야? 여태 사람들은 어떻게 숨이라도 쉬고 살았을까 싶은 우울의 골짜기를 또다시 구경하게 될지 난 미쳐 몰랐네. 이런 장면들이 싫어서 우리 소설을 좀 멀리 했었건만, 그래서 읽더라도 파르티잔이나 아나키스트들 같이 새로운 문학적 변혁을 꾀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작가들을 골랐었는데, 아이쿠, 언젠가는 한 번 또다시 걸릴 줄 알긴 알았으나, 이렇게까지 읽는 일이 힘들다는 걸 깜박 잊었지 뭐야.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래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책읽기에 집중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날들을 지워가고 있는 중에 이렇게 우울하고, 아픈 이야기를 읽기 싫다. 나는 책만 많이 읽지 문학적 소양이 깊은 사람이 아니다. 염승숙의 문학적 재질이 어떤지 모르겠고, 이이의 작품이 어떤 무게로 진심을 드러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제 염승숙의 작품은 더 찾지 않겠다.

  혹시 울고 싶은 마음 있는 분이라면 이 책 읽고 등장인물들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통곡 한 번 하면 시원하긴 하겠다.

  나는 더 이상 이이의 작품을 읽지 않을지라도, 염선생의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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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3-11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조만간 황동규 시인의 <악어를 조심하라고?>가 올라오겠군요. 저번 달에 일러주셨었죠. 한달이 뚝딱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또 어떤 책들이 먼저 독후감으로 모습을 보일지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따라 읽어보고 싶은 책은 많지만, 하드웨어가 부실하여 다 담아내기는 어려울테니 하나둘 차근히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26-03-11 07:28   좋아요 1 | URL
아이고, 기억하시는군요! 고맙습니다.
넵. 다음주 화요일입니다. ㅎㅎㅎ 황동규 읽으니까 문제가 있더라고요. 다른 시인들의 시집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도서관 서가에서 뽑아 좀 읽어보다가 다시 꽂아둔 것이 몇 번인지 모르겠습니다. 딱 한 권 더 읽었을 뿐이예요. 이러면 안 되는데 싶지만 뭐 어쩔 수 있습니까. 다시 읽힐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ㅎㅎ

yamoo 2026-03-1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해도 뽈님은 정말 대단하시다는!! 이렇게 가열차게 문학을 읽고 독후감을 올리는 알라디너는 절대 없다는! 알라딘에서 상줘야한다는..^^

Falstaff 2026-03-11 15:48   좋아요 0 | URL
아이구, 대단은요 뭘. 그저 혼자 노는 취미에 특화된 인간이라서.... ^^;;

hnine 2026-03-1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친숙한 우리 소설가인데 정작 읽지는 않은 작가들 중 한 사람이랍나다.
책 읽을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Falstaff 2026-03-11 15:49   좋아요 0 | URL
몸은 좀 갔고요, 몸이 가니까 마음은 늘 청춘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조금 갔는데, 진짜 가려고 하는 건 시력이더라고요. 그래서.... ㅎㅎㅎ

coolcat329 2026-03-12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님~ 글 읽고 제가 순간 울컥! 했어요.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날이 그리 많이...‘ 이 문장에서요. 아직 한창이신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 눈은 의학의 힘으로 극복하시면 되죵! 폴스타프님 화이팅! 슬프고 우울한 소설은 멀리멀리~~~

Falstaff 2026-03-13 05:0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맞아요, 슬프고 우울한 책 자꾸 읽어서 좋을 게 없습니다. 요즘 확실하게 느끼고 있답니다. ^^
 
나의 여왕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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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위하여>를 느므느므 재미있게 읽어서, 그랴, 그러니 공쿠르 상을 탔지, 이이가 쓴 게 또 뭐가 있나 검색해보니 <나의 여왕>이 있었고, 이것도 분명히 (종교적 의미도 포함해)진짜 여왕에 관한 소설일 것이라 넘겨 짚어, 도서관 검색해보니까 우리 동네 말고 다른 곳에 딱 한 권이 있어 상호대차서비스 신청해 받아 읽었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하여>에서 예술 작품을 대하는/보는 앙드레아의 빛나는 눈길을 감안하자면. 그런데… 쩝쩝.


  “나는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작품의 첫 문장. 이게 무슨 뜻인 줄 알기 위하여 독자는 책을 끝까지 몽땅 읽어야 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알려고 하지 마시라. 시간적 배경은 1965년 여름. 주인공 ‘나’는 이때 열두 살.

  프로방스 쪽 아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도로변에 낡고 낡았으며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낡은 주유기 두 대를 놓고 영업을 하는 주유소 아들. 위로 누나가 하나 있는데 ‘나’보다 열다섯 살 위. 벌써 결혼해 어딘지 모르는 먼 곳에 살면서 1년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른다. 이때마다 ‘나’를 이런 시골 골짜기에서 기르는 게 마땅하지 않으니 자기가 사는 곳으로 가서 친구도 사귀고 재미있게 놀게 하는 것이 좋다고 바득바득 우기다가, ‘나’를 별로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은 부모가 절대 품에서 떨어뜨릴 수 없다면서 다다다다… 대판 말싸움을 끝으로 눈물바람을 한 채 돌아가는 누나. 얼핏 보면 누나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가 동생을 아끼는 경우 제법 많지? 이 집도 그런 모양이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염화시중의 미소라고? 웃기네. 살아봐라, 그런 부부도 쌔고 쌨다. 부지런했던 아빠는 주유소 장사도 되지 않고 주유소에 붙어 있는 정비소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해 일신우일신 하루가 새로울 지경으로 게을러져 애초 빛이 번쩍번쩍 했던 주유기가 이젠 때가 더대기가 진 것도 모자라 스치기만 해도 먼지가 정전기를 따라 화다닥 옮겨 붙을 지경이다. 성격도 날이 갈수록 더러워지는 것 같다. 아닐지도 모른다. 어려서 뭔가 잘못했던 적이 있는데 얼마나 오지게 귀싸대기를 얻어터졌는지 어금니가 부러졌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게 젖니라서 망정이지 간니면 어쩔뻔했어? 엄마는 등짝 스매싱 아니면 뭐 그리 심하게 두드려패지는 않지만 앗다, 얼마나 입이 거친지.

  ‘나’는 뭐하냐고? 집에서 조금씩 일을 돕는다. 열두 살짜리가 학교는 안 간다. 다녔다. 잘 다니지는 못했다. 인근 도시에서 제일이라고 일컫는 의사가 일찍이 ‘나’의 상태를 판정하기를 ‘나’의 머리 성장이 멈춘 상태라고 한다. ‘나’가 생각하기에 참으로 바보 같은 의사다. 내 머리는 점점 커져 어릴 때 쓰던 모자가 들어가지 못하는데 성장이 멈추기는 뭐가 멈춰? ‘나’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과 독자들은 뇌의 발달, 즉 지능이 멈추었다는 것을 단박에 짐작할 것이다. 그러니 ‘나’가 좀 모자란 건 맞는 말이다. 아마도 여덟 살 수준일 듯. 글자를 읽는데 매우 곤란하고, 쓰는 건 퍼진 스파게티처럼 꾸물꾸물 기어갈 정도. 어린 아이들은 야수 상태인 게 보통이다. 그리하여 학교에서 약자의 자리인 건 당연하고, 꼭 한 명 이상 있는 늑대에게 얻어 터지고, 밟히고, 물리고, 욕을 먹는 일이 다반사. 참다 못한 교장선생이 하루는 부모님의 일차 왕림을 부탁하더니, 더 이상의 학교 교육은 ‘나’에게 쓸모가 없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지금, 1965년에는 집에서 ‘먹구대학’에 다니는 중이다.


  ‘나’도 누나를 따라 다른 곳으로 가기 싫다. 얼마나 좋아. 손님도 거의 없는 주유소에 하는 일이라고는 더러운 C, 원래는 W.C였는데 W자가 떨어져 누군가의 집에서 냄비 받침으로 쓰이고 있어서 C가 된 화장실에 화장지로 아빠가 본 신문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져다 놓는 일, 아주 가끔 주유기로 한 세기만에 찾아온 손님 차에 휘발유 넣어주기 정도의 편한 생활이 좋다. ‘나’는 새로운 것, 변하는 것이 싫다. 그대로인 것이 좋다. 주유소와 언덕, 주유소에 벽돌로 이어 지은 우리집. 언덕 위의 덤불숲. 숲 속에서 보이는, 그러나 진짜로 C속 앉아 자기 몸을 만지던 부인과 마주친 눈길. 그리고 덤불 안 땅 속에 묻은 찢긴 야한 잡지 속 벌거벗은 여자들 사진. 그래서 ‘나’도 누나를 따라 도시로 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열두 살 먹은 지적 장애 그리고 공황장애까지 있는 ‘나’가 집을 떠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도 냄새나는 C에 가위로 오린 신문지를 가져다 놓았다. 다른 날과 달랐던 건 화장실 바닥에 담뱃갑이 하나 떨어져 있었고, 담뱃갑 속에 담배 두 개비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걸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뭐 언제나처럼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언덕에 올라 덤불 속에 들어가 늘 가지고 다니던 성냥을 켜 불을 붙였다. 열두 살 꼬마가 성냥을 가지고 다닌다고? 그렇다. 취미생활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게 습관이 됐다. 벌레를 보면 성냥불을 붙여 태워 죽이는 게 즐거웠달까, 하여간 개운해서. 하여간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숙하게 주욱 빨았고, 담배연기가 빠르게 왕창 폐속으로 진입하면서, 기침도 기침이지만 머리가 어질어질,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돌아버려, 얼른 담배를 던져버렸더니 그게 하필이면 최고의 인화물질인 소나무 낙엽에 떨어져 화라락, 불이 지펴져 버린 거였다. ‘나’는 기겁을 해서 발로 밟아 끄려고 했지만 그게 쉽나. 이때 주유소 마당에서 불 나는 꼴을 목격한 엄마가 비명을 질렀고, 아빠가 소화기를 들고 나와, 정상 상태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도로 뛰러 언덕에 올라오더니 맹렬하게 소화기를 휘둘렀고, 마침 지나가던 남자 어른 몇이 합세해 불을 끄기는 했다.

  다행이라고? 그거 이상이지. 장소가 ‘주유소 인근’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나’가 오늘은 이걸로 끝나지만 점점 대가리가 커지면 나중에 어떤 일을 벌일지 누가 알아? 그리하여 엄마와 아빠가 깊고 깊은 토의를 거쳐 엄지손가락에 인주 듬뿍 묻혀 합의서를 작성했으니, ‘나’를 누나한테 보내자는 것.

  나는 그날로 짐을 쌌다. 짐이라야 뭐 단출하다. 배낭에 ‘나’의 잡동사니들과 옷가지를 몇 넣고, 잠을 안 자고 기다렸다. 드디어 밤이 깊어지고 조금 있으면 새벽이 다가올 시간,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거실로 가서 아빠가 자는 소파를 지나 토끼 사냥용 22구경 엽총과 총알 몇 알을 챙기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창문을 넘어 주유소 생활의 마침표를 찍어 버렸다.

  깜짝 놀랐지? 겨우 열두 살짜리 소년이 22구경 소총과 총탄을 들고 길에 나서면 언젠가는 그걸 쏠 거 아니냐고. 이건 소설작법 1장 9절에 나오는 거니까. 그럼 누가 죽을까? 아이고, 걱정 마시라. 작품의 주인공 ‘나’는 정신지체에다가 공황장애. 하필이면 가출의 경로를 집 앞에 도로를 따라 프로방스 쪽이 아니라 집 저편에 있는 산을 넘어간다. 거의 암벽 수준의 능선을 넘다가 언제 어디서 그랬는 줄도 모르고 기껏 챙겨온 배낭, 그리고 22구경 소총과 탄알을 그냥 홀랑 잃어버린다니까 글쎄. 이런 참.


  깎아지르는 능선을 넘으면 소설이니까 가능한 초목지대가 펼쳐진다. ‘나’는 이곳에서도 피곤한 몸을 뉠 곳이 없어 바위 틈바구니에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잤을까 구별이 가지 않더라도 눈을 떴고, 해가 벌써 중천에 올랐는데, ‘나’를 내려다보는 도전적이고 매서운 눈을 한 ‘나’ 또래의 작은 여자 아이.

  이 아이 이름이 비비안이고, 언필칭 나의 여왕님이다. 비비안 역시 이를 흡족하게 여기고 계속 ‘나’가 비비안을 여왕으로 알고 추앙하기 위하여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니:

  첫째가, 내 몸을 만지지 말 것이로다.

  둘째가, 내가 어디 사는지 궁금해하지 말지어다.

  셋째가, 내가 어디 사는지 찾지 말지어다.

  속세에 까질 만큼 까진 우리 독자들은 한 눈에 알 수 있겠지? 이건 동화 같은 여왕의 이야기이고 비비안 역시 중간 계급 정도 한 평범한 가정의 딸이라는 것을. 그러나 정신지체이자 공황장애의 ‘나’의 입장에서는 결코 아니다. 그야말로 실현 가능한 동화이자 환상 속의 여왕님이 비비안인 것을.

  그래서 어땠느냐고? 이미 알 거 다 아는 21세기의 독자 입장에서는 그냥. 뭐 딱 부러지게 한 말씀 덧붙일 필요 없겠지? 그렇지? 그지? 맞아, 오늘이 대표적, 기념할 만한 음주 독후감이었어. 미안해. 어제 독후감은 홍어 먹기 전이고, 지금은 홍어애탕 먹고 난 다음이야.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만날 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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