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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ㅣ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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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스너호르커이의 책이 2년만에 출간됐고, 나도 2년만에 그의 새 작품을 읽었다. 내겐 <저항의 멜랑콜리>가 첫 크러스너호르커이였는데, 한 방에 그냥 나가 떨어졌다. 놀라운 문장형식과 집단의 난파현상이라는 독특한 주제에 그만 항복하고 말았던 거였다. 다음은 <사탄 탱고>. <저항의 멜랑코리>와 유사한 주제이지만 분위기가 다른 무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이야기하자면 카프카를 호출할 수밖에 없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전작 독후감에서 한 번 쓴 것처럼, 카프카의 작품 속에서 특유의 불안, 소외, 불통, 두려움의 골짜기에 발을 딛는 것은 측량사나 K, 그레고르 같은 한 명의 주인공인데 반하여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헝가리 변경의 도시 또는 황야지대의 농장 전체로 확장한다. 오늘 읽은 책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단 한 권의 작품만 쓰고 싶었다고 하면서 <사탄 탱고>를 세상에 내놓았고, 그것 한 권 가지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아 <벵크하임…>을 썼다고 했다는데, 하여간 이 두 권과 <저항의 멜랑콜리> 그리고 아직 나오지 않은 <전쟁과 전쟁>을 합해 “크러스너호르커이 4부작”이라 한다고.
이이는 참 독특하다. 2년 만에 읽어서 그런지 서문 격인 “경고”를 읽을 때는 크러스너호르커이 특유의 문장, 한도 끝도 없이 마침표 없이 몇 페이지씩이나 계속되는 단 한 문장이 그 새 낯설어져, 속으로는 맞아, 이게 크러스너호르커이야, 하고 반가움의 마음까지 들었지만, 눈은 길고 긴 한 문장의 미궁에서 갈 길을 헤매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마음이 있는 독자들, 그 가운데 이미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본 독자들은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 정처없이 길고 긴, 여간해서 마침표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문장이 무려 768페이지까지 연속할지니, 왼쪽 페이지 제일 위쪽 왼편에서, 오른쪽 페이지 제일 아래쪽 오른편까지 빼곡하게 들어찼어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문장을 768페이지, 반올림해서 8백페이지까지 읽어야 하는 고문을 견뎌야 당신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위안을 찾을 수 있을 듯한 건, 이미 <사탄 탱고>나 <저항의 멜랑콜리>를 거쳤다면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어떤 주제로 말하고 있는 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더라도, 작가를 오해해도 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의 오해였을 것이라는 만족감과, 그토록 많은 활자의 미로를 통과해냈다는 뿌듯한 즐거움, 포식 후 깊은 트림을 끄집어 낼 때와 비슷한 포만감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그랬으니 당신도 그럴 것이라는 오만과 자뻑을 포함해 말씀드립자면 그렇다는 얘기이니 너무 아니꼬와하지 마시기 바란다, 바라마지 않는다. 아, 먼저 읽은 자의 느긋함과 여유라니!
한 번 더 말하는데, 이이의 작품을 읽고나서,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지만, 카프카를 떠올리지 않기도 힘들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을 읽는 도중에도 측량사가 성주를 만나지 못했듯이, K가 경찰서장이 됐건 보안대장이 됐건, 아니면 중앙정보부나 안기부장이 됐건 간에 하여간 우두머리 코빼기도 못 봤듯이, 어쩌면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에서도 벵크하임 남작은 그저 문제적 인간일 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숱하게 많은 인간들이 남작의 이름만 연호할 뿐이라서 그림자도 비치지 않을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 것도 일리가 있겠지? 이 책의 본문 1부 제목이 “트르르르…”인데 “트르르르…”는 음악, 아마도 본문 가운데 등장하는 ‘사탄 탱고’의 음률 중 한 소절이 아니겠는가, 하는 게 내 의견인 바, 그건 그렇고, 이 “트르르르…”에서의 사실상 주인공은 이끼를 연구하는 식물학 박사이자 헝가리의 대학 교수였으며, 시내 중심가에 있는 발코니 딸린 상태 좋은 2층짜리 주택을 헐값에, 집값 가운데 150만 포린트를 제외한 잔금은 유로화로 받는 조건으로 팔고, 코트만 걸친 채로 3월 22일, 이날이 춘분이었음을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모른 척 그냥 넘어갔는데, 그래서 날짜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없을까 독자로 하여금 찔끔 찝찝한 마음을 남겨둔 채로, 시내의 악명높은 가시덤불 땅, 완전히 방치되어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도심 속 무주공산을 사서 그곳에 집을 지어, 이를 본 시민들은 교수의 집을 처음엔 돼지우리라고 부르더니, 그래도 이끼 박사인 교수가 서툰 솜씨로 날이면 날마다 집을 조금이라도 집처럼 만들기 위하여 손을 보태, 굴이라고도 불렀다가, 헛간으로도 불렀다가, 판잣집을 거쳐 오두막으로 부르기 시작할 즈음, 세상의 돼지우리, 굴, 헛간에 창문이 있을 턱이 없어서 역시 창문 없이 살았는데, 암만해도 만약 적이나 강도 등의 무리가 집에 침입한다고 가정하면 미리 창을 통해 그들이 집 주변으로 접근을 하는지 아닌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안전상 유리하다고 판단해, 오두막으로 불리고 난 후에 동서로 창까지 냈던 거다.
이 일대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을 보자면, 잠재적 범죄행위에 걸맞은, 마침맞은, 빼박 현장일 법한 곳으로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아무도 관심이 없는 지역이라, 때가 되면, 날이 더워지면이라는 뜻인 바와 같이, 알바니아에서 출발해 높은 위도를 따라 올라온 집시무리가 텐트를 치고 살기도 했던 장소로, 즉, 지금은 집시는 출연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건만, 소설을 시작하는 이 날은 늘 익숙한 조용함, 적요, 적막 대신 적지 않은 군중들과, 야당신문 기자들과 지방 TV 진행자와 사진사, 촬영기사가 모여 있는 가운데, 열아홉 살 먹은, 자신이 교수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애가 저녁 다섯시 삼분에, 오두막에서 스물다섯 내지 서른 발짝 떨어진 곳에서 메가폰을 들고 “내가 당신 딸이야, 이 비겁하기 짝이 없는 족제비 같으니”라고 악을, 악을 썼으며, “이젠 빚을 갚으시지”라고 쓰인 팻말을 든 채였는데, 교수가 얼핏 보기에 기억이 나지 않거나 잊었거나 한 여자가 낳았을 지도 모르는 혼외자일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거다.
이 족제비, 이끼 전공 전직 대학 교수는 만일 정말 여자애가 자기 딸이라는 전제로,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르는 게 문제였는데, 교수한테 딸이 생겼는지 안 생겼는지도 모르던 지난 19년 동안 당연히 한 번도 지급하지 않은 수만에 이르는 양육비를 한 번에 달라는 뜻인지, 아니면 자기한테 이런 것하고 영 다른 형태, 형식의 보상 혹은 이제 족제비한테 의지하며 살고 싶다는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치렁치렁한 금발과 사람을 홀릴 것 같은 푸른 눈, 양귀비 꽃처럼 붉은 립스틱을 바른 통통한 입술로 자칭 아빠를 찾아 가시덤불 땅 속 오두막에, 지역 최강의 매스컴(이 장면을 묘사한 “트르르르…” 이후에 아무 생각 없이 수도 페스트에서 보도된 내용을 Ctrl+C 하여 지역사회 신문 방송에 그대로 옮기는 바람에 난리법석을 치루고 결국 도시민 대부분, 대부분을 넘어 모두에게 끔찍한 두려움을 심은 결과 결국 도시 전체를 폭망하게 만든 막강한 권력을 지닌 매스컴)까지 동원해 쳐들어 온 것이 마땅하지 못해, 결국 이끼 전공 박사이자 전직 교수이며 어쩌면 양귀비 꽃처럼 붉은 립스틱을 칠한 여자애의 아빠인지도 모르는 집 주인은, 그와 유일하게 말,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말까지도 아니더라도 적어도 단어 몇 개는 나누고 사는 농부한테, 이 농부의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에 진주했던 병사들로부터 구입해 땅에 묻어두었다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헝가리제 소총 AMD-65에 탄창을 걸고 무려 다섯 개의 탄창이 빌 때까지 허공을 향해 천둥이 떨어질 듯 쏘아 갈겨버려, 결국 시위를 끝내게 만든다. 이끼를 전공했다더니 이거 완전히 동물성, 육식성 아냐?
그런데 다음날 오전 11시 15분, 헝가리 폭주족이자, 네오 나치 비슷하면서도 이 북방의 작은 도시에서 향토방위군을 자칭하는, 큰 덩치에 징을 박은 검은색 가죽바지와 징을 박은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은 무리들이 오두막에 찾아와, 어제 오후 다섯시 삼분 이후에 전직 교수가 시위군중과 신문기자와 TV 진행자 무리를 향하여, 실제로는 허공을 향했지만 향토방위군을 자임하는 이들이 말하길 그들을 향하여 기총소사를 갈긴 일을 치하하며, 어제 오후의 일로 존경심이 북받쳤고, 개인적으로 교수가 좋아져,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교수가 추구하는 가치가 같다는 것을 확신해 자신들이 ‘교수보호협회’를 결성해 더욱 좋아하리라 기대하겠다는 거였다. 대장의 진짜 이름은 요슈커이고, 그냥 킹콩이라 부르는데, 이 킹콩이 총대장은 아니어서 위로 대가리가 두 개 더 있었으니, 하나는 이들 무리 말고 몇 개를 더 거느리고 있는 총두목이요, 다른 하나는 도시의 치안을 총괄하는 경찰서장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교수는 자세히 쓰기엔 분량이 많은 이유 때문에 이들과 척이 쳐, 결국 이 무리의 2번인 ‘저녁별’을 총으로 쏴 죽이고는 죽어라 도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지만, 그의 품 속에는 어쩔 수 없이 향토방위군이자 교수보호협회에 반납할 수밖에 없었던 AMD-65 대신 받은 간단한 소총과, 그것보다 훨씬 더 막강한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현금, 그것도 포린트가 아닌 유로화, 빠닥빠닥한 유로화가 뭉치로 있었던 거였다.
이런 내용이 1부 격인 “트르르르…”의 주요 스토리라서 어찌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에 벵크하임 남작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그럴 확률이 높을 걸? 하고 혼자 배시시 웃으며 속으로는 기고만장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지. 결국 코 깨졌지만.
2부 “럼”에 들어가면, 여기서 “럼”은 저 카리브해 근처의 백성들이 즐기던 독한 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사탄 탱고의 한 선율 같은데, 그저 짐작일 뿐 정확한 건 아니다. 하여간 “럼”에 들어가면 이제, 드디어 벵크하임 남작이 등장한다. 벵크하임 벨러 남작은 아마도 1차 세계대전 이후 제3차 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이 헝가리를 적화하자 여태 호의호식했지만 이제 숙청당할 일만 남은 남작 일가가 아르헨티나로 멀고 먼 항해를 떠날 때 아동이었던 마지막 남작인데, 이젠 온몸이 비쩍 마른 늙은이 신세로 떨어진 인물이다. 망명을 떠날 당시에 얼마나 많은 금은보화를 지니고 갔는지, 어린 벨러는 자라면서, 대가리 다 커서도 돈 쓰는 데 머뭇거림이나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사는 데 늦바람이 무서운 거라더니, 다 늙어서 도박에 맛이 들어 그 많고 많던 재산을 몽땅 카지노에 가져다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라틴아메리카, 아르헨티나의 제3 금융권, 다른 말로 해서 조폭이 운영하는 사채업자에게 거액을 빌려 그것도 몽땅 날려버려, 날이면 날마다 폭행, 린치(같은 말인가?), 신체훼손, 살인의 위협을 받다가 그래도 원금회수가 불가능할 것 같아서 그나마 그간 갚아온 이자만 해도 원금의 서너배가 되어 어느 마음 좋은 조폭 두목께서 넓은 마음으로 처단하지 아니하고 감방에 쳐 넣어버렸던 인물이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대신, 우리 가문에 저 따위 수치스런 오물 하나가 생겼으니 가문의 명예에 스크래치 가는 것을 볼 수 없는, 헝가리의 벵크하임 남작 가문이 아니라 이 집안의 큰아버지 격인 오스트리아의 백작 가문에서 아르헨티나에 수감되어 있는 벨러를 석방시켜 오스트리아로 오게 하고, 대단한 호텔 양복점에 특별 주문해 수트와 코트, 와이셔츠, 내복, 양말 등등을 에르메스 여행가방 여섯 개에 담아, 당연히 유로화로 아껴 쓰면 꽤 오래 쓸 수 있는 돈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는 거라고 하며 지갑에 담아 주머니에 넣어주고 헝가리행 열차에 실어 보낸다. 그러니까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에서는 정말로 벵크하임 남작이 헝가리로 귀향을 한다.
벵크하임 남작이 귀향을 하기는 하는데, 겉으로는 번지르르하지만 속을 알고 보면 거렁뱅이 신세인 줄 모르고, 지역의 야당신문과 TV 방송에서는 수도에서 발행한 타블로이드지 “크로넨차이퉁”과 “쿠리어”에서 아무 생각 없이 판매부수만 올리기 위해 실은 기사를 그대로 옮겨버려 이 도시에는 한바탕 난리법석이 일어나는데, 크로넨자이퉁과 쿠리어가 뭐라 했느냐 하면, 헝가리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도 재산이 많은 것으로 손에 꼽히는 벵크하임 남작이 노년을 맞아 아르헨티나에서 고향 헝가리의 우리 도시로 옮겨와 살기로 했는 바, 자신이 평생 모으고 키운 전 재산을 도시의 발전에 전액 기부할 것임을 발표하였다는 거다. 시장과 경찰서장은 서로 소속당을 달리하는 앙숙이라서 당연히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오해해 그 기사를 토대로 남작이 자기 쪽에게 한푼이라도 더 많은 자금을 기부하게 만들려고 생 쇼를 할 수밖에.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어디?
결론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벵크하임 남작은 헝가리 북쪽의 크지 않은 마을에 예수로 귀향한 것이 아니라 푸르죽죽한 말을 타고 불의 심판을 하러 온 거였다. 그리하여 이 도시는 조만간에 누가 롯의 아내가 됐건 간에 불의 재앙을 받아 폭삭 무너질 예정이기는 한데, 왜, 어떤 과정을 거쳐서 같은 건 독후감의 분량도 분량이지만 그걸 미리 아는 것도 무지 재미없는 일이라 생략할 수밖에 없다. 근데 정말 벵크하임 남작이 계시록에 나오는 악마처럼 푸르죽죽한 말을 타고 불칼을 휘두르냐고? 에이, 늙은 나이에 옥살이까지 해서 배싹 마른 늙은이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냥 비유지, 비유.
하여간 큰 발심을 낼 수 있으면 강추. 다만 읽으면서 화딱지 나더라도 책임 지지 않음.
책이 재미있으니 독후감도 길어지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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