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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궁의 묘성 1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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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 <철도원>을 쓴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1951년 12월에 태어나 주오대학 (부속인지 아닌지 하여간) 스기나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두 번 미역국을 먹은 김에 일본자위대에 입대, 복무를 마쳤다. 이런저런 직장을 다니며 이곳저곳에 투고를 하다가 마흔 살이 되던 해인 1991년에 <빼앗기고 참는가>로 데뷔했단다. 이이가 왜 자위대에 지원했느냐 하면, 당시(1970년) 일본 청년들의 젊음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시마 유키오가 헌법개정을 주장하면서 한바탕 쇼를 벌인 다음에 (미쳤어, 정말)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어린 마음 깊이 충격을 받아서 그랬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이후 일본어로 “악당소설”이라 번역하는 피카레스크 계열의 작품을 쓰다가 위에서 말한 <철도원>으로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도 대박을 친 작가이다. <창궁의 묘성>은 아사다 지로의 주특기 가운데 하나인 중국 청말淸末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다.
<창궁의 묘성>을 읽고 검색을 해보니 우리나라에 이 사람 번역물이 무지 많이 나와 있다. 아마 그동안 내가 이이의 책을 선택하지 않은 건 유명짜한 단편집 《철도원》의 독자 리뷰가 너무 말랑말랑해서 그랬던 거 같다. <창궁의 묘성>은 동네의 존경하는 이웃께서 읽어보면 좋겠다 권하시어 네 권 모두 합해 1,462쪽짜리 장편소설을 독파하게 되었는데, 네 권에 1.5K 페이지라도 한 번 붙잡으면 도무지 손에서 놓을 방법을 찾을 길 없어 닷새에 걸쳐 눈알이 토끼눈이 되도록 읽어 치울 수 있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두 나라가 공동으로 (편집에 따라)일본에서는 25회, 중국에서는 28회짜리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으며, 작품의 속편 격인 <중원의 무지개> <칼에 지다> 같은 것을 속속 출간한 모양이다.
아사다 지로는 결코 예술성에 목매달지 않는다. 작품 목록을 보니 조폭, 폭력 등의 느와르로 시작해 역사물을 거쳐 달달한 최루 소설까지 두루 돈 되는 이야기를 쓴 것 같다. <창궁의 묘성>도 소위 ‘정통 역사소설’로는 읽히지 않았다.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서 있을 법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하여 굴러가게 된 수레바퀴를 실제 인물과 가상인물을 섞어 돌리는 것이 역사소설일 터인데 아사다는 애초부터 다분히 현재의 시점으로 관찰한다. 심지어 철저하게 “청나라의 18세기 사람”인 건륭제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제로 자유민주주의를 꼽았다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하지 못하기도 했다. 아이고, 아사다 씨,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신가? 뭐 이런 기분. 책은 1886년부터 광서25년(1899년)까지가 시대적 배경이다. 아사다는 청조 정부 조직을 설명하면서 난데없이 “지금의 외부무에 해당하는”이라는 표현을 써서 갑자기 시점視點을 흩뜨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소설의 전반전인 구조와 형식 같은 일종의 법칙에 굳이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심지어 판타지 장르에서나 볼 수 있는 죽은 사람과의 대화, 일화도 과감하게 등장시킨다. 그래서 유감? 그건 아니고, 여태까지 이런 형식의 역사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 낯이 설었다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익숙한 역사소설이라면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이나 몇 달 전에 읽은 힐러리 맨틀의 <울프 홀>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박종화 선생의 작품들을 떠올리는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월탄 선생을 ‘역사소설의 태두泰斗’라고 했다. 태두. 한 분야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사람으로 태산과 북두칠성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별을 가져와 한 사람의 자리를 이야기하는 것. <창궁의 묘성>에서 묘성昴星도 별의 이름이다. 겨울 밤 오리온 자리에 나란히 늘어선 세 별의 위쪽에서 찬란히 빛나는 별을 말한다는데, 나 참, 여기서 ‘위쪽’이 어느 방향인 줄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혹시 큰 개, 가장 빛나는 시리우스를 말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고 특정할 수도 없다. 국립국어원이 펼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황소자리의 플레이아데스성단에서 가장 밝은 6~7개의 별”이라 설명한다. 독자는 그냥 묘성이 있다고만 생각해도 무난하다. 묘성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만 알면 된다. 책에서는 묘성이 오랑캐의 별로, 천궁을 다스리는 부와 권위의 별이다. 여태 이 별자리를 타고난 사람이 딱 두 명 있었으니 청의 고종 건륭제 홍력이 하나요, 이 전에 진의 시황제 영정이 다른 한 명이었다고. 별자리가 점지한 이들은 천자가 사는 자미궁을 북두칠성의 국자로 퍼내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천하의 모든 재물과 금은보화를 한 손에 거머쥐게 된다고 하니, 그것 참, 팔자가 세도 보통 센 것이 아니어서 평생 가만하고 편안하게 살 팔자는 못되겠다. 나 같으면 누가 이 별자리 주겠다고 해도, 돈 안 받고 그냥 주겠다고 해도 싫을 것 같다. 사람 한 평생 얼마나 산다고, 그저 편하게 사는 게 장땡인 걸 이제는 알만큼 알아서.
다음은 창궁蒼穹. 창蒼은 푸를 창. 궁穹은 하늘 궁. 궁륭穹窿 할 때의 궁. 청나라 강희제가 지어 옹정제(당시 옹친왕 윤진)에게 하사한 건물인 원명원圓明園의 주궁을 말한다. 그러나 작품 속에는 이를 건륭제가 다시 예수회 사도 브노와와 카스틸리오네에게 설계를 맡겨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고급스러운 바로크 건축물과 부속 장식으로 만들었는데, 한 건물을 아마도 궁륭, 그러니까 돔 양식으로 짓고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를 이을 빼어난 화가이기도 했던 카스틸리오네가 직접 천장화ceiling painting를 그려 넣었으니, 푸르고 푸르른 가을날의 베이징 하늘을 그린 천장화가 진짜 하늘 딱 그대로라서 이 건물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기하게도 원명원에는 천장이 없는 궁이 있다고 헛소리를 하는 거였단다. 그래서 푸른 하늘, 창궁이다. 이 창궁은 1856년 제2차 아편전쟁 때 베이징까지 군화발을 들여놓은 영불 연합군, 이 가운데서도 특히 프랑스 군이, 감히 7대양 너머 미개한 동양에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화려한 바로크 건물이 있다는 데 질투가 폭발하여 자기들 수준보다 더 고급진 건물만 골라 파괴할 때 폭삭 무너뜨렸다. 당시에 파괴된 것은 맞는데 정말로 파괴의 이유가 그러했는 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사다 지로의 추측일 것 같다. 그저 약탈하다가 흥이 돋는 김에 폭파해버리지 않았을까?
그러니 19세기 말에 말하는 창궁의 묘성은 이미 무너진 과거의 화려함 속의 권력이랄까 부귀영화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근데 중국에는 황제, 천자의 뜻임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다른 보물이 있다. 옥새玉璽. 사마천의 <사기 열전> 가운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커플이 전국시대 조나라의 문무를 책임진 인상여-염파. 독후감 분량 때문에 이 커플의 우정, 문경지교刎頸之交는 다음 기회로 하고, 천하의 보물인 완벽한 옥을 지니고 가장 강력한 국가인 진나라 조정까지 가서, 이 완벽한 옥을 구경만 시키고 고스란히 지니고 돌아온 인상여. 결국 시황은 조나라를 멸하자마자 이 옥을 손에 얻어 자신의 인감도장, 옥새를 만든다. 이후 이 옥새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황제가 위한 충분조건이 되어 삼국지연의에서도 옥새 때문에 손견도 죽고, 원술도 죽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 옥을 가리키는 말이 벽璧이다. 완전한 옥을 칭하는 단어가 그래서 티끌 하나 없는 진짜 옥 완벽完璧.
<창궁의 묘성>에서도 이렇게 황제의 천명을 상징하는 보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사다 지로가 이 작품을 쓰던 20세기 말에는 중국 전통의 보물인 옥으로 황제와 제국의 천명을 대신하기에는 너무 저렴해보여 옥 대신 금강석을 선택했고, 무려 1천 캐럿에 달하는 금강석이 삼황오제 시절부터 오직 황가皇家로만, 황가도 그냥 황가가 아니라 하늘의 뜻, 천명을 지닌 황가로만 전해져 내려온다고 구라를 푼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자금성 안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경산에 올라 목을 매 혀를 빼물고 죽기 바로 전에 이 보물, 용옥을 궁전 벽에 숨기고 새로 회를 발라버렸다. 난을 일으켜 명나라를 멸한 이자성은 자금성을 아무리 뒤져도 용옥을 발견하지 못한 채 서쪽으로 말머리를 돌려 도망하고, 이어 성에 든 청의 3대, 어린 황제 순치제는 단박에 옥을 숨긴 벽으로 다가가 바람벽을 부수고 용옥을 찾아냈다는 거다. 이거 진짜 아니다. 구라다. 읽는 분들은 헛갈리지 마시라. 하여간 이렇게 해서 청나라는 중국의 삼황오제부터 내려오는 황제의 천명을 얻은 왕조였다는 것이지.
중국대륙을 평정한 만주족은 현명하게도 한족의 모든 관습과 문화를 유지시키고 심지어 솔선해서 그들을 따라 했음에도, 자기들 조상은 자기들 방식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따로 궁을 짓고 일년에 한 번씩 황가와 왕가 사람들이 모여 술 한 잔씩 올리고 재배를 했는데 바로 그곳에 용옥을 안치시켰다는 구라. 세월이 흘러 6대 건륭제가 등극하고 무려 61년 동안 황위에 있으면서, 천재적이고 탁월한 정치력을 보유했으며, 정복왕이기도 했던 건륭제는 오랜 세월동안 아마도 스스로 민주주의를 터득하는 경지에 올랐는데, 민주주의라는 의회정치를 위하여 황제정은 당연히 무너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 만년의 어느 날, 만고의 충신이자 불굴의 영웅인 노장군 조혜더러 베네치아에서 온 궁중화가 겸 과학자 겸 유리공예가인 선교사 출신 주세페 카스틸리오네를 보필하여 만저우 족의 옛 터인 북으로 가 땅 속 깊이 용옥을 파묻어 버리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래야 황위를 이으라는 천명 역시 사라지고, 몇 대 가지 않아 청나라는 문을 닫을 것이며, 그래야 민주주의 청제政體가 싹을 돋게 하는 토양을 만들 수 있을 터이라서. 이미 죽어 귀신이 된 건륭제는 청나라의 문을 닫기 위하여 자기 자손들이야 어차피 더 이상 천명을 받은 황제들이 아닐 터라 신경쓸 거 없고, 왕조의 문을 제대로 닫을 실력도 되지 못해, 부득이 9대 황제 함풍제의 비, 후에 서태후라고 불릴 탁월하고 선량한 여인에게 청나라의 조종弔鐘을 울리게 한다는 거다.
여기까지 <창궁의 묘성>에 관한 큰 그림이다.
다시 저 위의 묘성으로 돌아가면, 진의 시황제와 청의 건륭제 이렇게 딱 두 명만 묘성을 타고 났다고 하건만, 제목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면 아사다 지로는 당연히 또 한 명의 묘성, 천하의 권력과 재물을 타고난 인물 하나를 더 만들어야 했을 터. 그래서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북쪽, 즈리 출신의 미주알이 째지게 가난한 집안의 넷째 아들 이춘운, 아명 춘아를 등장시킨다. 엄부자친 아래 평화롭게 살던 이춘운의 집에 불운이 닥친 건 아버지와 맏아들이 불귀의 객이 되고서부터이다. 특히 큰형은 인물 좋고, 정의롭고, 성격도 좋아 지역 양가둔梁家屯(양씨 성의 장원 정도)에 이름을 널리 알려 주인댁 작은 아드님과 의형제를 맺었을 정도였다. 그러면 뭘 해. 죽으면 끝인 걸. 둘째 형은 큰 병에 들어 오늘 낼 하고 있고, 셋째 형은 도무지 이런 집구석에서 버틸 도리가 없어 아마도 군대인 것 같은데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남은 건 넷째인 춘아와 막냇누이 영령, 그리고 무능력한 어머니뿐이다. 춘아가 아직 너무 어려 양씨댁 주인한테 소작 한 마지기도 얻지 못해 입에 풀칠이나마 하기 위해 춘아는 하루 종일 동네의 짐승이나 심지어 사람이 눈 똥까지 모아 주민들한테 땔감으로 팔거나 곡식과 바꾼다. 이대로 두면 보나마나 엄마, 춘아, 영령 모두 겨울에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것이 뻔하다. 그래도 춘아와 영령은 될 수 있으면 늘 웃는 얼굴을 하려 애쓴다.
하루는 동네 점쟁이 노파 백태태가 춘아에게 와 하는 말이, 춘아야, 너는 광서 2년(1876년) 10월 11일 밤에 엄마 배 속에서 나왔단다. 너는 다른 별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오랑캐의 별인 묘성을 타고 나와서, 머지않아 도성으로 올라가 자금성 깊은 곳에서 황제를 섬기게 될 거란다. 목화토금수가 불길하게 만나는 병란의 와중에 파군성이 서로 싸우고 있을 때 너는 중화의 재물을 모조리 독차지하게 될 거야.
여기서 말하는 황제는 노불야老佛爺, 즉 살아있는 부처님이라 불리며 사만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서태후를 일컫는 말이다. 광서제가 아니고. 근데 정말 이 똥 줍는 소년 춘아가 여태 진의 시황제와 건륭제만 타고났다는 묘성의 별자리에 올라탄 운명이었을까? 이것 하나만 알려드리겠다. 아니다. 현명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백태태가 보기에 춘아는 조만간 굶어 죽을 상이라, 착한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터무니없는 희망을 가지게 만들어 주어야만 뭔가 하나, 거미줄 만한 가능성을 바라고 그것에 온몸을 투신하며 집념을 태울 것이고, 그리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라 내다봤기 때문이었다. 천명을 신명처럼 믿는 백태태 점쟁이 무꾸리도 인간이 노력하는 발버둥이라면 운명조차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봤다는 거다. 정말 춘아가 생존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안 가르쳐줌.
노불야, 서태후 편이 있으면 반대 광서제 편도 한 명 나와야 한다. 춘아가 사는 양가둔의 작은 아들, 사실은 주씨 성을 가진 양씨 어른의 종첩이 낳은 아들, 즉 서출인데 주씨녀女가 자기 생모인 줄도 모르고 자랐어도 주씨를 볼 때마다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는 했으니 어찌 핏줄이 끌리지 않았을꼬. 서출임에도 정실 부인이 자기 아들처럼 키웠고, 공부도 시켰는데, 아이고, 공부를 해도 너무 잘하는 거다. 장자가 탁월해 과거에 붙어 관직에 나가고, 둘째가 가업을 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알아챈 작은 아들 양문수는 춘아의 큰형과 동네에서 짓궂은 짓은 다 하고 다니면서 날이면 날마다 술 퍼마시고, 음담패설 즐기는 망나니였음에도 단 한 번의 비행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할 공부는 다 한 일종의 천재. 중국에서는 과거의 1차 관문에 붙으면 거인擧人, 최종 과거에 붙으면 진사進仕라고 했다. 가문에 진사가 생기면, 진짜 명문 말고 양씨 가문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는 건데, 정말 가문의 영광이지만 양선생은 속으로 큰 아들이 진사에 붙었으면 했지, 책의 스토리대로 둘째이자 서출인 문수가 진사 급제, 그것도 장원으로 진사에 오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원 급제하면 당연히 홍문관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역시 장원급제 출신의 대 선배 양희정을 만나 스승으로 삼아 열심히 배워 훗날 그의 사위가 된다. 그러면서 양희정을 따라 친 광서제 파에 이름을 올려 광서제의 친정을 서두른다. 광서제는 오랜 세월 서태후의 수렴청정을 받으며 옛 관습에 넌더리가 난 상태여서, 실제인물인 강유위의 개혁안을 읽어보고 그를 존경하는 단계로 발전, 실행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주둥이만 산 강유위의 급진적인 무술변법戊戌變法을 단행하려다 가상인물인 순계에 의한 시해미수 사건으로 광서제에 대해 정나미가 똑 떨어진 서태후한테 거꾸로 역습을 당해 유폐된다. 무술변법으로 거의 모든 변법파, 광서제 파는 숙청을 당해 죽거나 귀양을 간 반면, 당연히 사형을 받을 중죄인인 강유위는 영국 배를 타고 홍콩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고, 같은 변법파 중죄인인 양계초梁啓超도 톈진에서 배에 올라 일본 망명을 떠난다. 양계초가 실제 인물인데 바로 이이가 양문수의 모델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같은 동네 출신이며 의형제의 동생, 친형의 의형제이니까 거의 형제지간이랄 수 있는 두 사람이 한 명은 서태후 진영, 다른 한 명은 광서제 진영에서, 신분상 서로 만나는 일이 법으로 엄하게 금지되어 교통 방법도 없으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좋고 나쁜 관계도 읽을 만하다. 왜 둘이 만날 수 없느냐고? 이춘운, 춘아는 어린 시절 동네 길거리에서 똥을 주워 그걸 내다 팔아먹고 살던 천민 출신이다. 그런 아이가 궁에 들어, 궁전에서도 다른 궁도 아니고 서태후 측근에서 태후를 모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바로 당신이 짐작하고 있는 것, 그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절판. 읽으려면 도서관 나들이나 헌책방을 들여다봐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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