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영혼
조지 엘리엇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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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 쓰기 깝깝하네. 다른 이도 아니고 작가가 조지 엘리엇, 여성 가운데 (오정희 빼고)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서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거 알고는 득달같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첫빠따로 읽었는데, 푸시시… 김이 새 버린 거다. 책 표지부터 자잘한 글씨를 이용해 큰 해골바가지 하나를 그려 놓아 이 책이 저 바다건너 잉글랜드 대표작가인 조지 엘리엇이 쓴 고딕 소설이라는 걸 광고하고 있어, 그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읽은 다음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희망도서 신청할 때부터 이게 뭥미? 했었다. 그래도 거부감은 없었다. 이이가 활동하던 19세기에는 작가의 젠더를 불문하고 고딕 소설 쓰는 게 일종의 붐을 이루었으니 대표적인 작품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잖아? 내가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개스켈도 고딕 소설을 썼음에야! 이 전통은 20세기까지 흘러 미국의 국가대표 소설가 이디스 워튼 역시 한 고딕 했고.

  또 하나 엘리엇의 특기라고 하면, 청춘 남녀, 간혹가다 청춘은 아니지만 하여간 남녀가 오진 고생 끝에 그들은 “결혼해서 아들 딸 쑥쑥 낳고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 아니라, 굴곡을 겪으며 결혼에 도달한 커플이 결혼한 다음에 복닥복닥 부부끼리 갈등을 겪어가며 서로 미워하고 뒤를 밟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 수 있을까, 마치 세기의 원수들이 만나 살을 대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려내는 데 관한 한, 진짜 세계 챔피언 아닌가? 하여간 조지 엘리엇, 하면 은근히 속으로 기대하는 게 저절로 생긴다는 말이지. 이제 더는 조지 엘리엇의 작품을 읽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새롭게 그이의 단행본이 나왔으니 이 아니 기뻤겠느냐고? 아이쿠, 미끼였는 지도 모르고 덥석 물었던 거다.


  <벗겨진 베일>과 <제이컵 형> 단편소설 두 편을 실은 소설집.

  <벗겨진 베일>의 클라이맥스는 죽은 자 가운데 삼일만에…, 아니고 죽은 자 가운데 삼십분 만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죽음 너머에서 되돌아오는 장면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아니, 내가 뭐라고 부른다고? 그렇다. ㅆㄴㄹ. 이왕 심판하러 그 멀고 먼 길을 돌아왔으면 심판 당해 마땅한 인간 하나 정도는 목이라도 댕거덩 처 죽이고 다시 자빠지든지 뭘 하든지 했어야 좋을 텐데, 그리곤 그만이다. 물론 이렇게 ㅆㄴㄹ이 되도록 일이 꼬이는 게 만든 건(어떻게 꼬였는지는 안 알려드림) 조지 엘리엇의 특기가 십분 발휘되었다고 쳐도 아이고,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고, 괴기스럽기는 한데 촌스럽게 괴기스럽고, 그리고 이거야말로 이미 우리나라 모 종교에서 실용신안 특허를 낸 일종의 “피내림”이란 거 아니었을까?

  <제이컵 형>은 고딕 소설의 또다른 전형 가운데 하나인, 약간 기형적인 체구와 완력을 소지한 인물의 등장이 돋보인다. 이 인물이 주인공의 친형인 제이컵. 어깨에 쇠스랑을 짊어지고 다니는 막강한 완력의 소유자. 말 그대로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의 사나이. 기억하시지? 대서양 건너 미국 땅의 카슨 맥컬러스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딕 소녀. 엄청 키가 크잖아. 열 서너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마 아가씨가. 근데 제이컵은 지체장애까지 있어서 천하장사의 몸에 열 살 수준도 되지 않은 지능밖에 없어 사탕 같은 단 것을 좋아하고, 형제 중에서도 제과 수업을 받은 데이비드를 제일 좋아하는데, 아뿔싸, 데이비드로 말하자면 나중에 쫌스러운 사기꾼이 될 예정이다. 여기서 제이컵이 맡은 배역은 당연히 데이비드 포에서 에드워드 프릴리로 성공적으로 변신해 자그마한 출세가 눈 앞에 닥쳤을 때 다정하게 나타나 깽판을 치는 역할. 뭐 재미는 있지만 스타일이 좀, 조금 오래 전 스타일이라 별로 즐겁지도 않다.

  뭐 그렇다는 거다. 여러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최고의 평점을 매겼으니 유독 이 책이 나하고 맞지 않을 뿐일 확률이 높다. 괜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분들한테 기회를 뺐을 수도 있는 쓸모없는 독후감이 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2백쪽에 이르는, 각 1백쪽임에도 한 글자도 메모하지 않고 읽은 오랜만의 책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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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4-2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동안 지루했습니다… 철 지난 이야기 같긴 하죠. ㅎㅎ

별다섯 줄줄이는 아마도 츌판사로부터 공짜로 제공받은 분들 아닐지….🤣

Falstaff 2026-04-25 07:29   좋아요 0 | URL
제가 그래서 지원도서 안 받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 못 할까봐서요. ㅋㅋㅋㅋ
 
부재지주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황봉모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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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바야시의 전작 <게 가공선>을 흥미롭게 읽어서 주저하지 않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다가 코피 난 책. 아무리 카프 문학이라 해도 적어도 책을 읽는 재미는 있어야 할 거 아냐?

  이 책은 본문 앞에 있는 작가 소개와 고바야시의 메모, 이렇게 두 개만 읽으면 끝은 아니더라도 바쁜 사람을 위한 “읽은 척”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먼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작가 고바야시 다키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농민 소작 쟁의를 가까이서 취재했다. 소설을 쓴 것이 직접적인 사유가 되어, 다니던 은행에서 해고됐다. 이후 일본 공산당에 가입해, 노동자들의 문화 단체 활동 지도 책임을 맡았다. 1933년 2월 접선 장소에서 체포되어 그날, 고문에 의해 살해됐다. 이 소설을 발표한 지 겨우 3년 남짓, 만 29세 4개월이었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 독자에게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적은 글:


  “이 작품을 ‘신농민 교과서’로서 전국 방방곡곡의 소작인과 빈농에게 바친다. 아라키 마타에몬 이야기나 《나무토 비밀수첩(鳴門秘帖)》이라도 읽는 셈치고, 일하는 짬짬이 아무렇게나 누워서 읽었으면 한다.”


  아라키 마타에몬은 에도 시대 검객이라니까 사무라이 영화 보듯이 하라는 거고, <나무토 비밀수첩>은 대중문학을 개척한 전기傳記소설이란다. 그러니까 가볍게 읽으라는 건데, 독자는 소작인이거나 프롤레타리아 농민이어야 한다. 즉, 이 책은 소작인과 빈농을 위한 의식화 자료라는 뜻이다.

  20세기 초반의 농민운동을 위한 의식화 자료를 21세기 초반의 독자가, 근 백년이 흘렀음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는 없잖아?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 유효기간 다 된 작품. 재미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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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23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게 가공선도 지금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 책이 처음나온게 90년대 초반인가? 하여튼 그 때는 또 시대적 분위기라는게 있으니까 엄청 열렬하게 감격하면서 읽었던거 같은데 말이죠. ㅎㅎ

Falstaff 2026-04-23 15:57   좋아요 0 | URL
혹시 바람돌이 님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에 읽으셨던 거 아니었을까요? 뭐든지 순수하게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때. 그 시절에 읽으셨으면 자연스러운 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부럽습니다. (진심입니다.)

잠자냥 2026-04-23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게 가공선은 괜찮지 않습네까! ㅋㅋㅋㅋ
저도 이거 처음엔 그 뜨거움 땜에 별넷 주게 되었는데... 좀 지나니까 별 하나 내리게 되더라고요. 카프 문학이 좀 그렇습죠.

Falstaff 2026-04-23 15:59   좋아요 0 | URL
아휴, 가공선 읽고 놀란 건, 무엇보다 제국주의 일본에 이런 소설도 있다는 것이지? 이런 기분이었습니다. ㅎㅎㅎ 게다가 그쪽 소설답게 문장이 힘도 있고 스토리도 근사하고 말입죠.
근데 이 책은 꽝! 입니다. ㅋㅋㅋ

yamoo 2026-04-2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없을 거 같습니다. 별2개에 공감합니다..ㅎㅎ

Falstaff 2026-04-23 15:59   좋아요 0 | URL
넵! 패스하셔요!!
 
사교계의 영광과 비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9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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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기 전에 <고리오 영감>과 <잃어버린 환상>을 웬만하면 먼저 읽으시기 바랍니다. 인간극의 다른 작품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 환상>을 읽자마자 시작하는 게 제일 좋을 듯합니다. 인간극의 많은 작품의 등장인물과 인연이 질기게 전제되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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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4-2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4-22 13:10   좋아요 1 | URL
ㅋㅋㅋ

페넬로페 2026-04-24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환상이 너무 고구마라 읽기 힘들었는데 여기에 뤼시앵 인생의 끝이 들어 있는가요?

Falstaff 2026-04-22 13:26   좋아요 1 | URL
넹. ㅎㅎ 낮술 담에 낮잠 바로 전이라 짧게만.. ^^;;

Falstaff 2026-04-23 04:28   좋아요 2 | URL
뤼시앵 인생의 끝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발자크 필생의 인생극 자체의 마감이랄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렇다면 좀 허무한 결말이겠지만 말씀입니다. 어제 답글은 실례했습니다. ^^;;

잠자냥 2026-04-24 10:06   좋아요 1 | URL
어제 답글이 더 좋았는뎅...ㅋ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6-04-24 11:32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
술과 함께 하는 독서생활!
페이퍼로 꼭 한 번 남겨주십시오
너무 궁금합니다, 제발!

Falstaff 2026-04-24 15:25   좋아요 1 | URL
에구... 술꾼 주정하는 얘기 그걸 어떻게 씁니까. ㅜㅜ

coolcat329 2026-04-22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환상』 샀는데 기대됩니다. 좋은 팁 감사합니다!

Falstaff 2026-04-23 04:25   좋아요 1 | URL
환상부터 얼른 읽어버리세요. 좀 장황해서 탈이지만.... ㅎㅎ

yamoo 2026-04-2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잃어버린 환상을 구매해야 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26-04-24 15:24   좋아요 0 | URL
읽다가 질식하실 수도 있어요. 페넬로페 님도 고구마 많이 잡수셨다잖습니까. ㅋㅋㅋ

그레이스 2026-04-24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 또 읽으려니,,, 생각이 많아져서, 장바구니에만 넣어 놓았습니다.

Falstaff 2026-04-24 15:24   좋아요 1 | URL
읽은 책 다시 읽기가 그거 참 쉽지 않습니다.
 
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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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희망도서는 전반적으로 망쳤다. 작년에 신청했던 책이 예산 부족으로 올해 이월되어 한 방에 여러 권의 책을 받았는데, 어제 아침에 읽은 데니스 존슨, 어제 저녁 때 읽은 고바야시 다키지는 확실히 망했다. 오늘 쉬고 내일 읽을 조지 엘리엇도 기대 난망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괜히 조지 엘리엇, 조지 엘리엇 하겠어? 조금 기대를 해봄직 하지 않을까? 미치너가 뽑은 영국 최고 소설가 4인방 가운데 한 명이란 이름값을 믿어본다. 4인방이 누구냐고?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조지프 콘래드, 그리고 헨리 제임스. 이번 달에 엘리엇을 읽고 다음 달엔 콘래드를 읽을 예정. 그건 그렇고 누가 헨리 제임스의 <황금잔>을 다시 번역해주지 않으려나…. 

  어째 책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딴 말만 하고 앉았지? 그렇게 보이지?

  맞다. 읽기는 읽었는데 뭐 도무지 할 얘기가 없네.

  약쟁이들 이야기. 내가 약쟁이 소설을 경원하는 건 아닌데, 모르긴 해도 책방에서 특별히 나를 위한 목록이라고 권하는 리스트를 보고 호기심이 동해 며칠 뜸을 들이다가 도서관에 사달라고 신청한 건 맞는데 책을 받아서 기쁜 마음으로 펼친 순간, 어머, 이게 뭥미? 책이 왜 이래? 설마 로렌스 스턴처럼 등장인물의 사망을 조의하기 위하여 한 페이지를 통째로 검정색으로 도배해 놓은 것을 본받아 검정 무늬만 있는 페이지로 작가가 독자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 아닐까? 이를테면 약을 코로 들이마시거나, 복용하거나, 수액으로 정맥에 주입하거나 또는 알코올이라는 약한 C2H5OH 용액을 구강을 통해 벌컥벌컥 마신 후의 애매몽롱함 같은 느낌을 구현한 걸까?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출판사가 페이지 수를 늘리기 위해 꼼수를 쓴 것뿐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더욱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이런 페이지 같은 하드웨어 이야기로 독후감을 질질 끌고 있는 것도 사실은 책을 읽기는 읽었건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알코올 남용자를 비롯한 약쟁이들의 비교적 순한 이야기들. 저 1940년대 잭 케루악이나 윌리엄 버로스 같은 선배 약쟁이들하고 비교하면 그동안 세월이 많이 독해졌음에도 그래도 순둥이 약쟁이들이 자기 발로 치료소에도 들어가고 뭐 개선해보려고 애도 쓰는 거 같은데, 하여간 어떤 형태의 중독이라도 사고는 피할 수 없는 거니까. 게다가 나 스스로 가운데 중과 약할 약자를 쓰는 중약급 알코올 의존증이 있어 이런 종류의 소설은 읽기가 불편하다. 책 속에 담긴 작품들처럼 극단적으로 짧은 소설도 좋아하지 않는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

  아, 몰라, 몰라. 하여간 다 읽었다. 반나절은커녕 두 시간도 걸리지 않은 거 같은데 무지하게 지루하게 읽었다. 독자를 위해 추천하는 AI를 아직까지는 믿을 수 없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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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4-22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희망(도서)에서 절망(도서)으로 나락으로... 망한 도서 목록이네요. ㅋㅋㅋ

잠자냥 2026-04-22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문제의 이 책이 -2026 서울국제도서전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도서-로 꼽혔다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소식 보고... 엥? 심사위원들이 다 약빨았나 싶었습니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 링크

https://sibf.kr/62/103

Falstaff 2026-04-22 11:04   좋아요 0 | URL
sibf.kr
흠. 어딘지 알 거 같네요.
거기... sibalfxxk 의 줄임말입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6-04-22 11:23   좋아요 0 | URL
🤣🤣🤣🤣👏👏
 
사랑의 한 페이지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2
에밀 졸라 지음, 이미혜 옮김 / 빛소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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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여덟번째 작품. 아델라이드 푸크가 마카르와의 혼인 외 관계로 얻은 1남 1녀, 앙투안 마카르와 위르실 마카르 가운데 딸, 위르실이 모자 제조공 무레와 결혼해 고향 마르세유에서 낳은 외동딸 엘렌을 둔다. 이 엘렌 무레 그랑장이 루공-마카르 총서 8번 <사랑의 한 페이지>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부유한 제당업자의 아들 샤를 그랑장은 불같이 엘렌을 사랑하여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아버지 그랑장씨는 엘렌의 집이 너무 가난해서 결혼을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이들은 비밀결혼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르세유에서 숨어 근근하게 살다가, 고맙게도 친척 아저씨가 죽으면서 남편인 샤를에게 연 1만 프랑의 연금을 상속해주어 부부는 한 방에 팔자가 피었다. 연금이 생기고 제일 먼저 감행한 일은 부부가 외동딸 잔을 데리고 지긋지긋한 마르세유를 탈출, 파리 교외 언덕의 깨끗한 집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이때 엘렌이 열일곱 살(오타 같음. 확인 후 수정 예정), 샤를은 스물세 살. 잔이 아홉 살쯤 됐으려나. 지금 살고 있는 트로카대로 언덕 위에 있는 4층 집으로 옮기기 전에 잠깐 바르 호텔에 머물기로 했었는데,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 기쁜 마음으로 파리 구경을 하려 외출을 나갔다가 감자기 남편 샤를 그랑장이 병에 걸려 1주일 동안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숨을 거두어, 졸지에 과부와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막이 올라가면 모녀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있다.


  이 작품의 문제는 딸 잔. 아이의 엄마 엘렌은 균형잡힌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는 당당하고 키도 크고, 금빛 도는 밤색 머리가 마치 해라 여신을 연상시킬 만한 미인에 건강체질이지만, 잔은 죽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병약한 체질과 격세유전으로 넘어왔는지 정신적으로 문제도 있었고 결국 결핵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 할머니를 닮아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엘렌이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폭이 커서 자주 폭발하는 성격에다가 질투가 엄청나다. 아마 증조할머니 아델라이드 푸크가 중증 정신병으로 정신병원에 몇십년 간 강제 입원했던 형질도 잔을 피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첫 장면이 바로 이 잔이 언덕 위의 4층 과부 엘렌의 집에서 수면 중에 근육수축, 경련, 경직, 동공개방과 체온상승을 겪는 것으로 시작한다. 얼음장 같은 2월 밤. 엘렌은 하녀 로잘리를 시켜 늙은 주치의 보댕의사를 데려오라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가 직접 뛰어갔다 오는 편이 빠를 것 같다. 그래 지금 당장 입고 있는 실내복에 숄 하나만 걸치고 맨발에 실내화를 신은 채로 보댕박사 댁으로 뛰어갔으나, 박사는 임산부의 해산을 도와주기 위해 왕진을 가 새벽에나 돌아올 것 같다고 한다. 그리하여 넋이 빠진 엘렌은 그 밤에, 그것도 겨울 밤에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의사를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가 번쩍 든 생각이,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건물주이자 바로 앞에 면한 집의 주인 드베를 씨가 의사라는 것이 생각났다. 엘렌은 서둘러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집 안에서는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35세쯤 보이는 갸름한 얼굴과 잿빛 눈, 엷은 입술을 한 잘 생긴 의사 앙리 드베를이 나타난다.

  앙리 드베를의 눈앞에 몸이 눈부시게 드러난 여성이 서 있다. 숄이 흘러내려 벌어진 실내복 사이로 가슴이 노출되고, 팔도 드러났지만 정숙하고 바른 몸가짐에서 품위가 배어나오는 모습. 보댕의사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앙리 드베를은 아버지 드베를로부터 150만의 재산과 상류고객을 물려받은 실력있는 의사라고 한다. 드베를의 세심한 치료와 처치로 잔은 정상을 찾아가고 그래도 불안한 엘렌은 드베를에게 밤새 환자의 곁을 자신과 함께 지켜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환자와 젊은 남녀, 이미 사랑과 정욕을 아는 남녀 둘이 아침이 밝아오도록 한 밀폐된 장소에서 있게 되는데, 첫날이라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가끔 볼이 따뜻해질 정도였다. 아침이 되자 잔은 정상을 되찾아 다시 예의바른 아이가 됐고.


  의사가 치료를 해준 것도 모자라 바로 옆집에 사는 건물주. 감사 인사차 방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검정드레스를 입은 모녀가 드베를가의 초인종을 누르고, 집사의 인도로 응접실에 들어가니 여주인 쥘리에트 데베를과 일곱 살 정도의 버릇없는 아들 뤼시앵, 쥘리에트의 여동생 폴린과 폴린의 아버지 르텔리애씨, 집안의 가난한 옛친구이자 노처녀인 오렐리양이 함께 있었다.

  크림전쟁 전 프랑스에서 연수 1만 루블이 얼마정도의 수입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엘렌과 잔 그랑장 집안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르주아 가정인 드베를 가문의 안주인 쥘리에트는 자유분방하고 호들갑스러우며 어떤 행사를 치루더라도 자신이 주도하고 싶어하는 외향적 성격이다. 즉 이 동네 사교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인물. 20대, 많으면 30대 초반 정도로 당시 기준에 인생의 절정기에 도달해 있는 여성. 그리하여 유혹도 많겠지. 이 가운데 한 명이 드베를 가문과 친한 잘 생긴 청년이자 독설가 부르주아 말리뇽씨. 저 뒤로 가면 언젠가는 젊은 말리뇽과 하여튼 사고 한 번 치겠다는 생각이 독자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쥘리에트 여사가 엘렌과 잔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자기 커뮤니티의 중요한 한 명으로 만들려는 듯. 그래서 이날부터 엘렌과 잔은 드베를 집안의 정원과 응접실을 무람없이 드나들 수 있는 권리, 자격을 갖게 되어 쥘리에트와 더욱 돈독한 정을 나눌 수 있고, 동시에 합법적으로 남편 앙리 드베를 씨와 열정적인, 간혹은 불타는 정염의 눈길 살짝 나눌 수도 있었다.

  소설에서 이런 사전 작업이 몇 페이지에 이르면 당연히 언젠가는 한 번 화르륵 불이 붙는 법이니 독자는 기대를 해도 좋다. 개봉박두.


  한편 엘렌의 집에서는 남편 그랑장이 죽을 때 미사를 집전한 주브 신부와 신부의 동생인 랑보 씨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관습이 됐다. 뜻은 엘렌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하여라는데 목적은 아무래도 엘렌과 랑보 씨를 엮어주려 하는 것 같다. 랑보 씨가 비록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사람이 진중하고, 친절하고, 진지하며, 하여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상당한 신사로 어디 한 군데 까탈을 잡기 어려운 신의 있고 점잖은 사람 중에서도 점잖은 사람이다.

  엘렌도 랑보씨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연인이나 남편감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남자, 편한 남자, 속상한 거 있으면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정도로 생각해 그의 청혼에 대한 대답은 무기 연기 중이다. 랑보씨도 십년이 지날지라도 그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묵묵히 견디고 있다.

  어때, 소설 읽은 짬밥으로 보면 결국 이 커플이 이루어지겠지? 물론 지지고 볶는 과정을 다 극복하고 나서. 안 알려준다.

  근데 이번 주 화요일 식사 후에 주브 신부가 엉뚱한 말을 엘렌한테 한다.

  “가난한 교구민 페튀 할멈이 아주 아픈 모양입니다. 문안 한 번 가면 좋아할 거예요.”

  그리하여 엘렌은 다음 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진흙길을 따라 허물어져 가는 외딴 집에 들르는데, 정말 해골 같은 할멈이 얼굴만 퉁퉁 부은 모습으로 엘렌을 보자마자 궁상스런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때맞춰 드베를 의사까지 집에 들어온다. 아마도 드베를 의사가 아직 젊어서 정의로운의사협회 회원 정도 되는 모양이다. 할멈이 보기에, 엘렌이 먼저 무너져가는 집에 들어오고 이어서 곧바로 의사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척 보니 둘이 이미 알고 지내는 사이가 확실한데 좋은 쪽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로 보인다. 속으로 꿍얼거렸겠지. “내가 나이가 몇 갠데, 척 보면 알지.” 그리하여 두 사람에게 외치다시피 큰 목소리로 말하기를:

  “아, 두 분은 잘 어울려요. 내가 그런다고 언짢아하지 마세요. 그게 사실이니까.”


  이 페튀할멈. 잉글랜드의 디킨스 소설에 나와서 극을 전격적으로 뒤집어 버리는 잠깐의 역할, 소위 트리거 역이다. 할멈의 활동영역이 (연인들이 한 달 정도 방을 빌려 러브호텔로 쓰기도 하는)자기집 부근, 성당과 공동묘지 인근이다. 이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수십년 동안 발달시켜온 눈치 하나로 온갖 사람들한테 부정과 불륜과 기타 등등을 마치 관심 없는 척하며 지도 편달하는 데 도가 텄다. 그래 눈치 하나는 9단 정도. 이 할멈은 성당 계단 밑에 앉아서 벌써 쥘리에트와 말리뇽이 이제 익을대로 농익어 손만 대면 톡 터질 정도라는 것도, 엘렌과 앙리 드베를 역시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것도 훤하다.

  하지만 할멈도 몰랐겠지. 엘렌과 앙리 사이에는 절대의 장벽, 자신의 질병이 오히려 더 그들을 감시하고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무기로 삼는 잔이 있다는 것을.

  지나가면 다 한 시절, 한 페이지일 뿐이다. 삶도 한 페이지, 사랑도 한 페이지. 이제 석양이 물든 파리를 내려다보며 한 시절, 한 사랑이 다 간 것을 그저 내려다볼 수 있을 때까지, 소설은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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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4-21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페튀할멈 짜증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잇 요망한 할망구 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4-21 17:0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워쩝니까 그래도 할망구 없으면 소설이 콱 막힐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