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녀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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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올해 여름에 93세 7개월 12일을 살다가 런던에서 생을 멈춘 조세핀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아일랜드 작가로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유럽 각지에서 이름을 낸 소설가였던 모양인데, 나는 이름도 몰랐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에세’ 시리즈에서 이런 작가,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 독자 입장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이 시리즈의 18번으로, 열여덟 권 모두 여성 소설가가 쓴 작품으로 구성했다. 여성작가 시리즈가 이것 말고 다른 출판사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작품만 소개하면 되지 굳이 여성작가만 대상으로 하는 것에 불만이 생길 즈음, 은행나무는 드디어 에세 시리즈의 19번에서 처음으로 제럴드 머네인의 <평원>, 150쪽에 불과한 중편 정도의 소설을 찍어, 다음 달에 읽을 예정이다. 괜찮다고 여기는 작가 구성이 남자 한 명에 여자 18명 정도 되는 모양이다. 문학은 여성시대로 오래전에 완전히 바뀌었다. 1번으로 나온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는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었고, 2번부터 한 권도 빼지 않고 집중하고 있다. 좋은 책만 찍어라, 읽는 건 내가 한다. 별로 소용은 없겠지만 광고와 영업도 해준다.


  에드가 오브라이언은 소설 말고도 회고록, 극작, 시, 단편소설도 썼다고 하는데, 하여간 전업작가로 2019년까지, 그러니까 88세에 낸 마지막 장편소설 <소녀>까지 쉬지 않고 뭔가를 썼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1960년부터 64년까지 출간한 시골소녀 3부작, <시골 소녀들>, <외로운 소녀들>, <행복한 결혼을 한 소녀들>일 것 같다. 필립 로스는 오브라이언을 가리켜 “현재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재능있는 여성”이라고 평했다고. 로스가 이렇게 말한 것이 언제 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요즘에 이렇게 주둥이를 함부로 놀렸다가는 네가 뭔데 재능이 있고 아니고, 여성이고 남성이고를 말하느냐고 경향각지를 막론하고 오지게 얻어 터졌을 듯하다. 안 그랴? “가장 재능있는 여성” 속에 은근히 여자가 이 정도면 잘 쓴다고 해줄께, 뭐 이 비슷한 뉘앙스가 보이는 거 같아서 그렇다. 내가 여자라면 로스의 말이 달갑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아일랜드의 대통령이었던 매리 로빈슨은 “그녀 세대의 가장 위대한 창의적인 작가 중 한 명”이라 평했다. 매리 로빈슨은 여성 대통령이었다. 성을 불문하고 오브라이언이 창의적인 작가라고 칭찬한 것이니 얼마나 깔끔하느냐는 것이지. 필립 로스가 좀 그래. 예쁘장한 여자 제자를 뒷말 나오지 않게 자빠뜨릴 생각 하는 늙은 것들이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말이지.

  에드가 오브라이언은 완전 아일랜드 혈통(뭐 이런 혈통이란 게 있기는 있다면 하는 얘기지만)으로 어린 시절에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를 다니며 천주교에 깊은 영향을 받은 초년시절을 지냈다. 1930년생이니 이이의 작품 속 소녀시절은 주로 1940년대 중후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시 천주교 아일랜드는 1960년대 우리나라의 의식하고 많이 다르지 않았다고 여기면 될 듯하다. 그중에서도 시골이면 완고함, 특히 여성의 규범, 특히 성과 몸가짐에 관한 사회와 가정의 압제와 강요는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1960년이 되면 많이 나아지기는 했을지언정 그렇다고 여성이 대놓고 자신의 성적 욕망과 흥분상태를 묘사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않았다고 한다. 18세를 넘어 이제 사회에서 확실한 성인으로 인정받아 음주와 흡연, 섹스를 포함한 연애의 자유를 얻었어도 임신과 피임에 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고, 남의 눈에 띄는 것이 마땅하지 않아 연인이 더블린발 런던행 비행기를 타도 시간을 달리 해 각자 출발해야 하던 때였다.


  이 시기에 에드가 오브라이언은 열네 살 먹은 사춘기 소녀가, 작품에서는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는데, 초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곧 본격적인 사춘기로 접어들었을 정도의 화자 ‘나’ 캐슬린, 애칭 ‘도티’와, 제목이 시골 소녀”들”이어서 이미 알 것 다 알 거 같고 가까이 사는 이웃집 동급생 브리짓, 애칭 ‘바바’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이들 가운데 특히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도티가 몸 속의 성적인 발현이랄까 끌림 혹은 열정을 고스란히 표현하여, 1960년대 초의 아일랜드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시골 소녀들>은 가톨릭 교회와 정부와 문화계 저명인사들로 하여금 대단히 열을 받게 했으며, 당장 금서로 지정된 건 물론이고, 분서갱유의 변까지 당했다고 하나, 이건 특정 공개장소에서 불을 싸지른 건 아니고 그냥 그런 말이 전해진 것이었는데 2015년 조사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혀졌단다. 그렇다 해도 이게 당시의 유럽 변방, 아일랜드의 수준이었다. 어떠셔? 겁나게 웃기지?

  도대체 어떤 장면인데 그러냐고? 독자들은 작품의 시대가 1940년대임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도 16세면 결혼을 하고 17세에 아이를 낳아, 18세에 이혼해 미혼모가 되던 시절. 동네에 늙어 골골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잡화점과 술집을 하면서 돈 깨나 모아 책의 전반부에서 도티의 주정뱅이 아빠가 빚을 많이 져서 은행에 넘어간 도티네 집과 48만5천 평에 이르는 농장을 인수하는 알부자 노총각 잭 홀랜드와, 프랑스 사람으로 더블린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주말이면 이곳 시골에 와 평온한 시간을 지내는 유부남 미스터 젠틀먼, 본명 드모리에 씨. 이들은 열네 살의 도티를 절대 소녀로 보지 않고 신붓감으로 보거나 바람피울 내연녀의 대상으로 대한다. 둘의 공통점은 도티네 집에 비하면 엄청 돈이 많다는 거. 드모리에 씨는 진짜로 부르주아 비슷하다는 거. 도티는 어떨까? 은근히 자기 무릎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잭 홀랜드는 옷과 몸이 더러워서 싫고, 난생 처음으로 진짜 키스를 가르쳐준 미스터 젠틀먼 씨한테는 자글자글하고 간질간질하고 쪼르르한 성적 반응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젠틀먼 씨를 사랑하고, 젠틀먼 씨 역시 자기를 사랑할 것으로 믿는다. 3년, 4년이 지나면 그게 사실로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러면 어느 수준의 성적 묘사인데 그리 수모를 당하고, 엄마가 평생 딸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됐느냐고? 나중에, 4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에 바바와 함께 입학했다가 숨막히는 기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어 퇴학을 당하고, 나이 깨나 먹었으니 자립하기 위해 더블린에 가서, 집이 거덜이 난 도티는 잡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바바는 대학에 진학해 하숙집에서 함께 살고 있을 때, 둘은 더블린의 돈 좀 있는 유부남과 노총각을 꼬여 (주로 바바가) 이들한테, 속된 말로 줄 듯 말 듯 밀당을 즐기며 고급요리와 비싼 술을 마시며 젊음을 즐긴다. 노총각과 바바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유부남은 도티와 절대 그런 사이가 될 수 없으니, 도티의 마음에는 또다른 유부남인 미스터 젠틀먼, 드모리에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부남-점원, 노총각-여대생이 두 커플을 이루어 유부남의 집에 가서 간신히 선을 넘지 않고 스릴을 즐기고 온 날, 하숙집 앞에 검은 승용차가 서 있었고, 승용차 안에는 오랜만에 등장한 드모리에 씨가 들어 있었으니 다시 나이든, 아마 40은 당연하고 50 가까운 꼰대를 하염없이 사랑한 도티는 그만 스르르 오금에 힘이 풀렸던 거다.

  어느 정도 묘사인지 빨리 말하라고? 알았다, 알았어. 둘은, 둘만 하숙집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마주보고가 아니라 나란히, 옆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오늘은 정말로 할 거야, 하고 말 거야. 이러다가 드모리에 씨가 도티의 전신 나신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홀랑 벗었고, 도티 역시 나도 보고 싶어요, 요 지랄을 해 드모리에의 늙은 몸도 홀랑 벗었더니, 역시 당신 생각대로 그냥 흐물흐물 한 것이 매달려 있었는데, 도티가 만져보니까 몽글몽글한 게 귀여웠더라, 뭐 이런 수준이다. 이 정도에서 끝난다. 그걸 지칭하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1960년대면 남학교 화장실 벽엔 “어제 친구네 집에 갔었다. 마루에서 친구 누나가 치마를 입은 채 만세를 부르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집에는 친구 누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등등의 패관문학이 절정을 달했을 때인데, 이 정도 가지고 뭔 금서에, 출간금지에, 분서갱유라는 유언비어까지 떠도느냐는 것이지.


  하여간 그렇다. 내가 읽기엔 문장이 지극히 간결하고, 담백한 데다가 주인공 도티와 바바가 만드는 불량 소녀의 감정이 인상적이어서 마음에 드는데, 한 가지가 머뭇거리게 되는 게 있다. 주로 도티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이 섬세한 간질간질, 충동, 그리고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나이 먹은 남자들의 터치를 어떤 방식으로 보아야 할지 조금 난감했던 걸 말해야겠다. 1940년대 유럽식으로 볼 것인지, 남성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성적 추행으로 봐야 할지. 지금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열네 살짜리 소녀한테 저지르는 성추행이라서 처음엔 그렇게 읽었다가, 점점, 작가 에드나 오브라이언이 남성에 의한 성추행에 관한 인식/기억이라기보다 사춘기 소녀 속에 감추어진 리비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난처했다. 어떻게 읽어야 마땅한가? 이런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는데 나름대로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이 난삽한 독후감을 읽는 분께서는 감안해주시면 좋겠다. 섣불리 말했다가는 얻어 터질 거 같고, 그냥 넘어가자니 비겁하고 찜찜할 것 같았다. 몇 방 얻어 터지는 것이 찜찜하거나 비겁한 거 보다 나을 거 같아서 굳이 말미에 꺼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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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계약 을유세계문학전집 13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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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편 정도 분량의 소설 두 편, <결혼 계약>과 <금치산>이 들어 있다. 제목을 “결혼 계약”이라고 했고, 분량도 많아 나도 애초에 이 작품에 초점을 맞춰 독후감을 쓰겠노라 작심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다 읽기도 전에 아이쿠, <금치산>이 더 재미있었다. 물론 재미가 있고 없고는 독자의 기호에 따른 것이라 내 말이나 의견을 믿을 필요는 없지만 하여간 그랬다는데 뭐. 두 작품 다 발자크 특유의 세밀 묘사에 독자는 턱이 툭, 떨어질 지경까지 몰리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금치산>에서는 간혹 지겹디 지겹게 겪어야 하는 세밀묘사가 사람 본성의 내밀한 음험함이랄까, 반감 같은 거,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기는 좀 거북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발자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고 마는 데, 비록 그의 왕정주의적 시각이 거슬리는, 거슬려도 많이, 많이 거슬리는 진짜 골통 보수적 시각이긴 하지만서도, 이 촌철의 무심한 내던짐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발자크의 진짜 면모는 작품을 다 만들어 놓은 듯, 모든 일은 정의롭게 흘러가게 만들어놓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 여태 쌓아 온 공든 탑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절묘한 결말로 독자의 눈이 홱, 돌아가게 만드는 솜씨이지만, 나는 자칫 지루한 장광설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는 위험 속에서 사람의 감정(이랄까, 심리)를 포착하는 솜씨에 눈이 갔다. 그게 어떤 장면인지 밝히지 않겠다. 쉽게 말해서 나보다 우월한 사람을 나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더 경원하고 미워하는 심리 같은 거. 이렇게 힌트를 드리면 <금치산>이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이니 직접 읽으면서 어떤 장면 가지고 이리 유난을 떠는지 어렵지 않게 찾으실 수 있을 듯.

  그럼에도 오늘 독후감은 예정대로 표제작인 <결혼 계약>에 관해 쓰겠다. <결혼 계약>을 읽으면서 열라 메모를 해둔 것이 아까워 어쩔 수 없지 뭐.


  ‘결혼 계약’이 무엇이냐고? 나나 당신같이 그냥 보통의 사람들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대목이다. 신문기사에서 읽은 거 같은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결혼할 때 특히 현금을 포함한 자산의 유지, 관리, 축적에 관해서 앞으로 어떻게 하자고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그 정도로 뭘 가져본 적이 있어야 알지.

  유럽의 부르주아나 귀족들은 계약서를 써서 공증까지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무슨 계약? 혼인하고 신부와 신랑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동침을 해야 하며, 자녀는 열 명을 두고 이후엔 생산을 위한 일체의 행위를 금함. 삼시 세끼 가운데 아침은 공무에 의한 출장이 아닌 모든 경우에 집의 식당에서 해야 하며, 점심은 직장에서, 저녁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정이 있는 경우 부부의 사전 합의에 의함.

  이런 거, 결혼 계약에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신부가 가져오는 지참금 금액과 방식. 방식이란 현금, 기타 동산의 형태, 부동산을 말하며, 간혹 환어음 형태라면 지급 기일까지. 이번에 알았는데 결혼 후 재산의 활용까지. 예를 들어 19세기 프랑스에 ‘마조라’라는 형태의 재산 형태가 있었는데, 일종의 귀족 집안이 영속해갈 수 있게 만드는 방안 가운데 하나였다. 만일 후작이라면, 작위를 이어갈 자손에게만 증여할 수 있는 (대부분 부동산 형태의) 자산으로 자손이 여러 명이라도 후작위를 이을 맏아들에게 귀속하는 재산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비슷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것이 예컨데 종중재산을 들 수 있겠는데, 마조라는 철저하게 세습 재산, 작위를 세습하는 자손에게만 귀속하니까 조금 다르기는 하다. 하기는 뭐, 우리 집구석, 김포문중에서는 종중재산 전부를 제일 큰 장손께서 한 방에 다 말아 자셨으니까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신랑측의 재산이 이러저러한데, 이 가운데 어디 어디 부동산을 마조라로 정해 절대 허물지 못하는 자산으로 한다, 이런 거까지 다 계약서에 적어, 공증인의 공증까지 받는다.

  그런데 예를 들어 신부가 10만 프랑의 지참금을 가지고 오기로 했는데 9만 프랑만 가지고 오면, 결혼 후 남편은 신부한테 1만 프랑의 빚을 지는 것이 된다. 뭐 그렇단다. 그래서 결혼에 따라 양가에서는 가문 최고의 공증인들을 대리인으로 삼아 철저하게 따지고, 지지고, 볶고, 튀기고, 무치고, 고는 과정을 겪는 모양이다. 여러모로 없이 사는 게 편할 수 있다. 위안으로 삼자.

  아무리 유럽 잡것들이라 하더라도 다 그런 건 아니고, 결혼을 신분상승이나 작위 확보 또는 경제적 곤란의 탈피 등 순정하지 않은 의도일 경우에 문제가 되었을 터. 국가의 왕실간 정략결혼일 때는 훨씬 더 심각했겠지.


  18세기 중엽에 마네르빌이라는 노르망디 귀족이 있었다. 이 양반이 평소 친분이 있던 리슐리외 원수(1696~1788 무지 오래 살았다)가 술김에 중매를 서는 바람에 보르도의 부유한 상속녀와 별다른 결혼 계약 없이 혼인을 했다. 마네르빌 씨가 보르도에 가서 아내가 소유한 랑스트락 성을 보니 얼마나 멋진 성인지 한 눈에 반해 노르망디 베생 지역의 영지를 모두 팔고 보르도로 이주해 가스콘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이는 대혁명기를 무사히 넘긴 후 1813년에 나름대로 편안하게 79세의 나이로 죽는다. 혁명 다음해인 1790년에 카리브해의 프랑스 영지인 마르크니크로 떠나면서 영지를 비롯한 모든 재산의 관리를 가문의 정직한 공증인 마티아스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데, 이 공증인이 실로 양심적으로 수완이 좋아 백작이 귀국할 당시엔 혁명군의 착복은커녕 높은 수익을 내 훨씬 더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1800년에 아내가 죽은 다음 백작은 점점 수전노처럼 변해갔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한테도 예외가 없어서 용돈을 거의 주지 않았는데, 아들은 아들대로 반감이 커져 오히려 낭비성향은 날이 갈수록 커지기만 했다. 그려, 이런 반전을 발자크가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니까. 아들 이름이 폴 드 마네르빌. <결혼 계약>의 남자 주인공 되시겠다.

  폴은 1810년 말쯤 방돔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귀가해서 아버지하고 3년을 보내는 동안 찍소리도 내지 못하는 바람에 저항능력을 상실함과 동시에 정신적 용기도 사르륵 사라지고 말았다. 폭군 아버지한테 억눌린 감정은 어떻게 변했을까? 한恨이지, 한. 하여간 그는 늘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며, 사유할 때는 비열하고 행동할 땐 무모했으며 오랫동안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했는데, 순진한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를 불문하고 대개 희생자가 되거나 기꺼이 속임을 당하는 법이다. 아버지가 죽자마자 폴은 상속받은 현금자산은 국채에 투자하고 영지관리는 성실한 공증인 마티아스에게 맡긴 다음 타지에서 6년동안 잘 먹고 잘 지냈다. 나폴리 대사관을 거쳐 서기관 신분으로 마드리드와 런던을 비롯해 온 유럽을 다니면서 70만 프랑을 해 잡쉈다. 이럭저럭 현금자산을 다 까먹은 뒤에 토지자산에서 나오는 수입에 손을 댈 수밖에 없게 되자 온갖 사치를 뒤로(한 것처럼) 하고 고향 보르도로 귀향해 직접 랑스트락 영지에서 귀족적 삶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결심한다. 이제 자신은 영지를 더 크게 확장할 것이며, 귀족이니만치 결혼을 해 한 다스의 자녀를 생산할 것이고, 얼마 가지 않아 보르도의 국회의원이 되리라고. 근데 내가 잘 쓰는 말이 있지?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있으면 그게 인생이냐고. 폴 드 마네르빌도 인생의 앞길, 그것도 코 앞에 생각하지도 못한 엄청난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세젤예, 나탈리 에방젤리스타 양.

  스페인 부르주아 가문 출신인 에방젤리스타 양보다 사실 나탈리의 엄마 에방젤리스타 여사의 멈추지 못하는 낭비와 사치, 이 낭비벽과 사치벽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고 싶어하는 욕심이 폴 드 마네르빌 백작의 가장 크고 험난한 난관이 되는데, 젊은 폴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세젤예 나탈리의 미모에 눈이 뒤집혀 아무 생각도 없이 장모짜리의 뜻을 따르려 한다. 이때 유일한 폴의 지원군은 역시 늙은 가신이자 유능한 공증인 마티아스. 이미 은퇴해야 마땅할 정도로 나이가 든 노 마티아스는 노구를 이끌고 뱀 같은 에방젤리스타 여사의 의도와 여사의 대리인인 젊디젊은 공증인의 속셈을 환하게 알아차리고 여지없이 카운터 어택을 날려, 겨우겨우 폴 드 마네르빌 백작을 망쪼가 들지는 않을 정도로 만들어 놓는데, 노 공증인 역시, 생각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 아니어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파리로 가서 신혼살림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보르도에 나타난 젊은 백작은, 서울 갔다가 남원 내려온 파립의 이몽룡처럼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을 하고 있었던 거디었으니……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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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19 07: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아리에서 오늘 송기정교수님 모시고 강의듣습니다. 텍스트는 이 책이구요.^^

Falstaff 2024-11-19 07:25   좋아요 1 | URL
앗, 이런... 막 캥기는 걸요. 잘난 척한 거 다 뽀롱날 거 같아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11-19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부 지참금 부분에서 빚지는게 돈 덜 가져온 신부 아니고 신랑인게 이상해요...채무자가 반대로 써진거쥬? (수능국어는 이런 식으로 대상 주체 바꿔서 오답 만드는게 허다해서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쳐 보게 만듦 ㅋㅋㅋㅋ)

Falstaff 2024-11-19 07:48   좋아요 2 | URL
아뉴. 신부지참금 10만에 서명을 했으면 얼마를 가져오든지 이를테면 신부계좌엔 10만이 있어야 하쥬. 모자라면? 신랑이 줘야, 메꿔야 하니까 빚 맞쥬? ㅎㅎ

coolcat329 2024-11-19 09:43   좋아요 2 | URL
저도 그 부분이 이상했는데 꼭 집어 질문해주셔서 속 시원하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4-11-19 10:26   좋아요 0 | URL
뭔가 셀프 채무로군요...이러니 국어 점수도 잘 못 받지 ㅋㅋㅋ기초 산수 독해력 응용문제였군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4-11-19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폴스타프님 글 읽다보니, 딸 이름을 스텔라로! ^^나탈리 아닌가요?^^
마지막 단락 5번째 줄, 세젤예 스텔라...

Falstaff 2024-11-19 08:14   좋아요 1 | URL
앗, 오타네요.
집에 가서 수정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페넬로페 2024-11-19 0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세어봤는데 포피노에 대한 설명이 17페이지더라고요 ㅎㅎ
요즘 시대에도 0.~~몇 몇 프로 상위 클라스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결혼 계약을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어요.
금치산도 괜찮았는데 너무 끝을 빨리 끝낸 것이 좀 아쉽더라고요^^

Falstaff 2024-11-19 15:29   좋아요 1 | URL
아이고... 그걸 다시 세 보셨어요? ㅎㅎㅎ
맞아요. 요즘도 이런 계약 할 거 같습니다. 제 팔자가 편해요. 이런 거 모르고 사는 인생. ㅎㅎㅎㅎ

yamoo 2024-11-19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별5개 출현!! 요거 찜~~~ 전차를모는기수 끝내고 읽으야 겠으요~~

Falstaff 2024-11-19 15:30   좋아요 0 | URL
오호, 화이트 읽으시는 군요. 진심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창비시선 505
권선희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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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에 강원도 도청소재지 춘천에서 태어나 자라 고등학교까지 거기서 졸업했다. 고2 때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열린 율곡백일장에 시를 쓰는 친구 보조로 따라갔다가 엉겁결에 참가했는데 덜컥 상을 타는 바람에 시 쓰기에 관심을 가졌지만, 책도 별로 읽지 않고 그냥 노는 게 즐거워 팔호광장 부근을 주름잡고 좀 놀았던 듯. 대학입시에서 당연히 전기, 후기 다 떨어지고, 백일장 등등에 상탄 내력을 감안해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으니 1983년 봄. 그러니까 소위 “빠른” 65년생이다. 애초에 공부하고는 담을 쌓던 시인. 권선희가 소싯적에 어떻게 놀았고, 시방은 어떠냐 하면:



  청춘 수장고



  한 사십년 전쯤으로 세월 되감아

  운교동 팔호광장 모퉁이 민속 주점 커튼 틀추면

  생애 첫 막걸리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던

  단발머리 가시내들


  따라만 간 놈은 근신

  술잔 받고 안 마신 놈은 유기정학

  몇잔 마신 것이 겁나서 도망쳤다 잡힌 놈은

  그만 무기정학


  근신 받은 놈은 줄창 반성문 쓰다 시인이 되고

  유기정학 받은 놈은 용케도 선생이 되고

  무기정학 받은 놈은

  제법 큰 장례업체 대표 부인이 되어

  그날 팔호광장 기념 계 모임 회장까지 등극했는데


  새끼가 새끼를 치는 나이에도

  3차는 언제나 금기 만발했던 시절로 돌아가

  운교동 팔호광장 초겨울 주점 앞 설까진 가시내들

  짝다리 신나게 흔들고 있다   (전문. P.78~79)



  흠. 그렇군. 권선희가 고등학교 다닐 때 팔호광장 막걸리 집에서 술잔 받기도 전에 선생한테 덜컥 들켜버린 가시내군. 이것들이 아직도 춘천, 아마도 친정 나들이 겸해 만나 2차도 아니고 3차까지 가는데 꼭 막판엔 근신, 정학 기념비가 흑석에 박인 팔호광장 쪽으로 가는군. 말이 광장이지 그게 광장이긴 하니? 좁아 터진 촌구석에서.

  어떠셔? 어릴 때부터 좀 삐딱했겠지? 서울예대에 들어가서도, 아마 서울예전에서 서울예대로 바뀌고 한 2, 3년 됐을 때였을 텐데, 시를 가르치는 선생이 자기 시하고 비슷하게 쓰는 아이들한테만 잘 썼다고 했던 모양이지? 그래서 권선희가 이랬단다.


  “교수님은 왜 교수님의 시와 비슷하게 쓴 친구들의 시만 잘 썼다고 하시는 겁니까? 잘 썼다고 하는 시들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요?”


  결과, 시 가르치는 시 수업에서 쫓겨났단다. 원래 문학 하면서 가르치는 선생들이 거의 다 비슷하게 밴댕이 소갈딱지인 걸 어린 권선희는 몰랐겠지. 수업에서 쫓겨난 건 세계일보 인터뷰 기사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다. 시 선생들 밴댕이 소갈딱지 이야기는 내가 지금 하는 거고. 근데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이 권선희의 시집 가운데 처음 읽었고, 이전까지 권선희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을 읽어보면 권선희처럼 시를 쓰면, 모르긴 몰라도 신춘문예 같은 거는 사주팔자에 나오지 않는 게 (거의)확실하다. 내 마누라 돈 떼먹고 도망간 춘천 여자 한선희는 마흔이 넘어 결혼했지만, 또다른 춘천여자 권선희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백령도 해병대에 근무하는 장교님한테 시집을 가 아들 낳고 살다가 남편 따라 포항도 갔나 보다. 이때 포항제철이 주최하는 ‘샘물 백일장’에 남편의 권유로 아들하고 나가서 덜컥 장원을 했고, 그래서 잡지 『포항문학』을 발간하는 동인모임에 참여를 했으며, 이 잡지 『포항문학』에 작품을 실은 것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신춘문예나 문학지 추천 아니면 어떠랴, 시만 좋으면 되지. 심통맞게 까탈 부리지 말자.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직업군인 남편이 제대를 하고 군무원으로 있을 때, 권선희는 본격적으로 시를 써볼 요량으로 구룡포를 택했다. 한 3년 정도면 시집 한 권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세상에 여편 이기는 남편 있어? 그래서 구룡포로 기어들어 갔고, 정말로 구룡포 타령만 세 번 했으니, 첫째가 《구룡포로 간다》이고, 둘째가 《꽃마차는 울며 간다》이며, 셋째가 바로 이것이니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춘천여자가 2000년에 구룡포에 들어가 2024년에 셋째 시집을 낳았다. 사는 게 그렇지 뭐.

  권선희의 시는 그냥 읽으면 된다. 읽기를 마치는 순간 독자는 시를 다(는 아니겠지만)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이해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시집에 1번으로 나오는 시를 읽어보자. 정말인지 아닌지.



 



  굿당 차리고 을매 되지 않을 때였지. 한 날은 경주 안강 사는 노인네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고 내를 부르데. 고추가 빨갛게 야물 때니 가을이었어. 가보이 마 그런 오두막이 조선 천지 또 있겠나. 엉기성기 수숫대에 흙 반죽한 벽은 기울고 변소도 옳게 읎는 외딴집에서 할미 하나가 구르듯이 기듯이 나와 이 굿쟁이를 맞데. 헛간보다 못한 방 윗목에 앉은 영감 반질반질한 골분 단지가 젤로 값나가는 살림 같더라. 방바닥을 베어 물 듯 엎드려 빌고 비는 당달봉사 앞에서 징은 쳤다만, 사실 아무것도 안 보였어. 정처 없는 귀신들 다 불러제끼며 이 불쌍한 인생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죄 없는 눈은 왜 가렸냐고, 목이 쉬도록 따지고 대들어도 답을 안 주시더라 못 주시더라. 무당보다 더한 팔자가 가엾어 디립다 징만 쳤지. 징에 기대 내가 펑펑 울었지.   (전문. P.10)



  그려, 사는 게 고단해 당달봉사 무당도 되고, 굿판에 앉아 징도 치고, 그 얘기를 듣고 시도 쓰고 그러는 거다. 세상에 어렵지 않은 사람 살이가 어디 있간? 다 그런 거지. 이렇게 권선희는 구룡포로 내려가 과매기나 씹는 대신 거기서 사는 어부, 상인, 해녀, 택시운전수, 무당 등등 주민의 신산한 삶을 그렸다가, 2019년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 덜커덕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이때 병실에선 유방암, 위암, 대장암, 침샘암 이렇게 네 명의 암환자가 입원해 있었고,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때마침 펜데믹 시절이어 환자들끼리 더 친밀할 수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역시 암은 암이라서 모두 다 완쾌, 즉 5년 생존하지는 못하고 기어이 세상을 뜨는 사람도 있었을 터. 시절은 하필이면 세밑이라.



  크리스마스이브들



  코로나로 면회조차 금지된 크리스마스이브

  물 좋기로 소문난 청담동 여성 전용 암 전문 요양병원 13층 복도 끝 방


  위암 말기 황.선.희는 밥 못 먹은 지 한달째 모가지만 길어지고

  유방암 2기에 림프 전이가 있는 권.선.희는 방사선 치료에 곤죽이 되어 누웠다

  똥줄이 불편한 대장암 박.영.이는 비스듬히 걸터앉아 신랑 생일 선물로 스웨터를 짜고

  혀 밑 움푹 도려낸 침샘암 이.경.자는 닭발 국물을 데워 마신다


  택배 상자 가득 단팥빵이 왔고 옥수수차가 끓는다

  박영이가 황선희의 등을 쓸어내린다, 말없이

  이경자가 황선희의 부은 발을 주무른다, 말없이

  권선희가 커튼을 걷었다


  창 너머는 하필 눈발 치는 크리스마스이브

  로터리 대형 트리 축복이 온 누리 다 퍼져도 닿지 않는

  끝 방, 민머리 이브들 언니와 언니와 언니가 되어

  서로의 눈길을 쓸고 있다   (전문. p.46~47)



  그리스마스이브의 복수형을 써서 ‘크리스마스이브들’이 제목이면, 크리스마스를 맞은 암 요양병원에 입원한 여성들을 일컫겠지. 앞에서 말한 네 명의 암환자가 실명 혹은 가명으로 등장한다. 서울에서도 제일 물 좋다는 청담동. 창을 넘으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창문 안쪽은 암, 암, 암, 암환자. 위암 황선희가 명을 잇지 못한 거 같다. 이때 오롯한 고독을 나눠진 네 명의 이브 가운데 한 명인 권선희는 한 명의 상실이 PTSD로 작용, 퇴원한 후에도 쌍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세상이 더러워서. 이 고질은 종합병원 정신건강과의 집중 치료를 받고 나서야 사라졌다고.

  이렇게 권선희의 시는 삶이다. 시인의 스코프 안에 들어온 사람, 시절, 환경, 과거지사 이야기. 나는 그래도 이런 촌스러운 시가 암호로 가득한 소위 현대시보다 더 좋다. 근데 시집 한 권을(꼴랑 한 권임에도) 내리 읽으니까 금방 지겨워진다. 좁은 지역의 비슷한 스토리가 계속되는 바람에. 그러면 구룡포 시리즈는 이제 더 이상 없는 거지? 그래야겠지? 설마 구룡포만 파먹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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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11-18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도 춥은디 왜 자꾸 찡헌 것만 읽고 계세요 ㅎㅎㅎ시험 망했다고 질질 짜는 고삼이들 비하면 안락하고 배부르고 따스한 도서관 수호자 아입니꺼... 이제 전 당분간 (일가기 전까지) 백수니까 백작님하고도 많이 놀아 드려야지 ㅋㅋㅋㅋ니랑 안놀아 하지 마시구요!!!! ㅋㅋㅋㅋ

Falstaff 2024-11-18 10:20   좋아요 1 | URL
우짰든 시험 끝나서 축하합니다!
앞으로 사이좋게 재미나게 놀아보자고요. ㅋㅋㅋ

우끼 2024-11-18 21:01   좋아요 2 | URL
근데 반열님 왜 폴스타프님은 벡작님이에요? (끼어들기)

반유행열반인 2024-11-18 21:21   좋아요 2 | URL
영감님 하면 없어보이잖아요... 그리고 수염이 하얘서요!!!!! 그리고 백과전서파 마냥 백과사전 같이 뚜꺼운걸 맨날 엄청 읽고 써재끼심...(아무거나 주워다 붙임)

반유행열반인 2024-11-18 21:23   좋아요 2 | URL
쓰고보니 제 블로그 아니고 폴스타프님 서재네요...죄송합니다 야 우끼야 왜 여기서 이래 가자 저리로...죄송합니다 아직 애기라서 아무데나 이러고...(질질 끌고감)

Falstaff 2024-11-19 04:1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어디면 어떻습니까. 저는 아무 생각 없이 호칭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24-11-1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 수장고‘ 읽으며 웃다가 ‘크리스마스 이브들‘ 읽고 살짝 울컥했네요.
디립다 징만 쳤지. 징에 기대 내가 펑펑 울었지... ㅠㅠ 이 부분도 ㅠㅠ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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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영토로 말하자면 아일랜드는 물이 좋아 좋은 작가가 많은가 봅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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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그대 얼굴 더봄 중국문학 전집 11
거페이 지음, 심규호 옮김 / 더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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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사꽃? 한자어로 하면 도화桃花. 우리나라에서는 복숭아 가지를 귀신 쫓는 용도로, 꽃의 살煞, 즉 도화살은 “여자가 한 남자의 아내로 살지 못하고 사별하거나 뭇 남자와 상관하도록 지워진 살”이라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다. 이건 예전 식으로 살을 푼 것이고, B급 문화를 대변하는 나무위키는 “매력을 어필하는 능력, 일종의 매력 살”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듯하다. 그러면 거페이가 말하는 “복사꽃 그대 얼굴”은 무엇일까? 화끈하게 가르쳐드리지. 책의 1장 “육손이”에 등장하는 잘 생긴 외간남자 장지위안을 말하는 거다. 남자가 얼마나 멋있게 생겼으면 뻣뻣한 털이 숭숭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복사꽃이라고 했을까? 궁금하지?

  거페이는 1964년생, 올해 환갑을 맞은 용띠 아저씨로, 올 여름에 <봄바람을 기다리며>를 아주 즐겁게 읽었다. 그래서 책 읽은 바로 그날 검색해 거페이가 쓴 “강남 삼부작”이란 것이 있어 중국에서 가장 알아주는 마오둔 문학상을 받았다는 걸 알았다. 이 삼부작 가운데 첫 권이 바로 <복사꽃 그대 얼굴 人面桃花>. 두번째 권 <산하는 잠들고 山河入夢>과 세번째 권 <강남에 봄은 지고 春盡江南>. 거페이가 마음에 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봄바람을 기다리며>가 중국 남자 작가들, 류전윈, 옌롄커, 쑤퉁, 위화 같은 이들만큼 심한 과장과 거친 묘사가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중국판 고난의 행군이었던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의 현대사 속의 사람들을 그렸으면서도 그랬다. 이런 차별성이 마음에 들어 서슴없이 <복사꽃 그대 얼굴>을 집어 들었는데, 아이고, 이 책은 안 그러네.


  중국에서 복숭아 나무, 복숭아 꽃 그러면 1번이 도연명의 무릉도원이요, 2번이 유관장의 도원결의를 떠올린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근데 도연명, 이이의 성 도陶는 항아리 ‘도’니까 무릉도원, 동정호의 남쪽 호남 무릉에 복숭아 정원이 있는 별천지, 유토피아, 율도국하고 관계없지만, 도연명이 작가 거페이와 한 고향인 장시성 사람이다. 저 먼 시절에 초나라 땅, 장강 이남이며, 원나라 시절 이전부터 희극戱劇(알기 쉽게 얘기해서 ‘차이니즈 오페라’)로 이름을 낸 지역이기도 한데, 이곳의 작은 고을 푸지普濟의 지주 루칸 선생도 희극을 즐기며 도원명의 무릉도원을 꿈으로 알고 살았다. 이 양반이 약 2백 무畝, 2백 마지기를 소작주고 자기 손으로는 노동하지 않는 천생 지주였지만, 알고 보면 이이의 꿈이 별유천지비인간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거였는데, 누구나 똑같이 일하고, 소출은 n분의 1로 나누며, 똑같이 지은 집에서 같은 품질의 음식과 의복을 향유하며 사는 거였다. 동리의 모든 집과 집은 지붕이 있는 통로로 연결하고 통로를 따라 장강에서 끌어온 물이 흘러 같은 물을 마시며 사는 거였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삼부작의 제1권 <복사꽃 그대 얼굴>의 막이 올라가자마자 이런 꿈을 꾸고 있던 루칸 선생은 멘탈 디스오더, 미쳤다. 양저우揚州의 교육기관 부학府學에서 파면당해 푸지로 돌아온 아버지는 향리에 은거해 (쉬운 얘기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서당 훈장질로 먹고 살던 딩수쩌와 시서를 즐기며 친밀하게 지내다가 50세 생일 선물로 딩 선생한테 받은 장려 한유가 그린 진품 “도원도桃園圖” 때문에 그랬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믿을만하진 않다. (1957년에 베이징시와 장쑤성이 합동으로 도원도를 감정한 결과 위작으로 밝혀졌다고 원주에서 밝힌다. 그러나 이걸 믿어야 할지, 원주 역시 소설의 한 부분으로 생각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런 식의 원주가 속속, 과한 빈도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루칸 선생이 딩수쩌와 이상은李商隱의 시 “무제 2”를 논하다가 ‘금두꺼비’를 ‘금매미’로 읊어 두 양반이 서로 귀싸대기를 후려 갈기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딩수쩌의 앞니가 쑥 빠지는 지경을 목격하더니 이 일 이후로 미쳤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이때 까지는 금두꺼비면 어떻고 금매미면 어떠랴, 독자들은 생각하리라. 그러나 천만의 말씀. 1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상은의 시 속에 나오지도 않는 금매미가 아닌 진짜 실물, 작은 호박으로 눈을 해 박은 순금 매미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게 사연이 참 많다는 말이지. 사랑하지만 한 순간도 성적인 터치를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떠나는 남자가 여자한테 남기는 정표로. 게다가 순금이다, 순금.

  루칸 선생의 무남독녀 외동딸 이름이 슈미秀美. 맞다. 일용 엄마하고 같은 이름이다(이 독후감은 탤런트 김수미 씨 별세 닷새 전에 썼다. 고인도 웃고 넘길 거 같다). 루 선생은 실성한 상태에서 계속 다락방에 머무르기만 했다. 1년에 한 두 번씩만 밖에 나와 세배를 받을 뿐 하루 종일, 일년 열두 달 다락방에서 기와 모양 그릇, 와병을 쓰다듬으며 지냈다. 그러다가 하루는 다락방에 불을 싸질러 선생이 평생을 읽던 서책과 도원도와 와병을 몽땅 태울 뻔했다가 억지로 두 개를 건졌으니 가장자리가 검게 탄 도원도와 이 와병. 이후 억센 사내들을 불러 다락방을 다시 고쳤고, 해가 바뀐 1901년의 늦봄. 마당엔 복사꽃이 분분한 시절에 등나무 가방을 든 루칸 선생이, 이게 웬 일이니, 이 날이 열다섯 살 슈미가 세상에 태어나 두번째로 월경을 시작하는 날이었는데, 자기 발로 다락방을 걸어 나와 마당에 혼자 서 있는 딸 슈미한테 자기는 떠난다고, 말하고, 갔다가, 금방 돌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푸지에 비가 올 거야.” 두리번거리다가 헝겊으로 만든 우산을 펼쳐보지만 다 헤진 우산이 살만 남아있어, 다시 뒤로 돌아, 그냥 갔다. 그리고 날이 바뀌기도 전에 정말로 푸지엔 비가, 그것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슈미가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모습이었다.


  실성한 가장을 찾으러 동분서주하는 엄마. 그리고 집안의 회계이자 청지기 바오천. 이런 와중에 노파가 찾아온다. 그리고 하는 말이:

  “붉은 보라빛 상서로운 구름이 동남쪽에서 날아와 나리 발 밑에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기린으로 변했어. 그러자 당신네 나리가 그걸 올라타고 하늘로 올라갔지. 하늘로 올라가면서 손수건을 한 장 떨어뜨리는데…”

  하면서 더러운 손수건을 내민다. 손수건 가를 따라 이집 하녀 시췌가 수놓은 것이 확실한 지라, 갔네, 갔어, 그런데 어디로 갔나?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푸지에서 제일 가까운 대처 메이청에서 어머니의 동생 장자위안이 불쑥 나타난다. 드디어 나왔다, 장자위안. 앞에서 말한 순금 매미를 남기고 떠날 사람. 어머니는 슈미더러 처음엔 외숙이라고 부르라 했다가 금방 외삼촌이라 부르면 된다고 한다. 근데 장자위안은 그냥 사촌오빠라고 부르면 좋겠단다. 원 참, 족보가 이러면 어떻게 해? 가족 중에 ‘추이롄’이라는 이름의 하녀가 있다. 저장성 후저우가 고향인데 초년 팔자가 드세 기구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다섯 군데의 기원妓院, 기생집과 네 곳의 시집을 거쳐 루칸 선생이 몸값을 치르고 데려왔다. 이 방면에 워낙 빠삭한 여자라서, 슈미에게 귀띔을 하기에, 생각해봐라, 엄마는 완溫씨고, 남자는 장씨거늘 어떻게 남매일 수 있겠니?

  그럼 뭐야? 뭐긴 뭐야, 혼외 연인이지. 그러나 하나 더. 장지위안이 무엇을 남기고 떠날 거라고? 맞다 금으로 만든 매미. 작은 호박으로 눈알을 해 박은. 아빠 루칸 선생은 이상은의 시 “무제 2”의 금두꺼비를 금매미라 했다가 크게 싸움을 하고 절친끼리 의절을 한 사람. 장지위안 역시 무릉도원, 유토피아, 율도국을 꿈꾸는 사내다. 그 역시 개개인이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 혼인하고 싶으면 누구와 혼인하면 되는 세상, 그게 아빠와 딸이라도, 엄마와 아들이라도 관계없는 세상을 꿈꾼다. 다만 루칸 선생과 다른 점은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법을 바꾼다는 변법變法과 혁명을 해야 한다고 설파하며, 정말로 그것을 위해 계를 짜고 열성분자로 활약 중이다.

  세상에 뜻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 아빠와 절교했지만 슈미가 선생으로 모시는 딩수쩌의 심부름으로 옆동네 샤좡에 사는 쉐 거인(擧人: 가장 낮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 쉐쭈옌의 집에 갔더니 거기 장지위안이 있던 거다. 쉐거인의 집 앞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연못에 낚시를 늘인 곱추가 있었으니, 나중에 알고 보니 장쑤성에서 가장 유명한 밀정이었다. 스토리가 되려니까 슈미가 장지위안을 쉬쭈옌의 집에서 만났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나중엔 쉬쭈옌이 자기 집에서 잡혀 목이 잘리고 몸뚱이는 장강의 백사장을 뒹구는 신세가 된다. 다행히 추포하러 온 관군이 과거 합격 동기라서 관아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대신 단칼에 죽게 하는 관용을 베풀긴 했지만 이걸로 장지위안의 변법과 혁명은 사실상 종을 치게 되고, 세 불리함을 부인하지 못하는 장지위안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금 매미를 남기고 밤길을 나서, 불과 며칠 후 장강의 얼음에 박힌 발가벗은 주검으로 발견되고 만다. 세상에 변법, 법을 바꾸고 혁명을 하는 게 쉽나 어디? 이렇게 1장 “육손이”는 막을 내리고 더욱 드라마틱한 2장 화자서로 넘어가, 또다른 유토피아, 율도국의 비극을 맞는다. 3장은? 유토피아, 무릉도원을 직접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주인공,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야 작고 초라하게 도화만발한 장면으로 삼부작의 1권 <복사꽃 그대 얼굴>은 막을 내린다.

  4장이 일종의 에필로그인 셈. 내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너무 긴 에필로그를 뽑는다. 거의 한 권 수준이니 원 참. <복사꽃 그대 얼굴>에서도 4장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숨길 수 없었다. 하긴 2권, 3권으로 넘어가기 위해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나도 3부작 끝까지 달려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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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1-15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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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권선희,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화요일. 오노레 드 발자크, 《결혼 계약》
목요일. 에드나 오브라이언, <시골 소녀들>
금요일. 정재훈, <위구르 유목 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