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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봄은 지고 ㅣ 더봄 중국문학 전집 13
거페이 지음, 유소영 옮김 / 더봄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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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페이의 “강남 3부작”이 이로써 막을 내렸다. <복사꽃 그대 얼굴>, <산하는 잠들고>에 이어 <강남에 봄은 지고>까지 3권 1,580쪽의 끝장까지 왔다. 창장(長江) 남쪽 ‘푸지’라는 작은 마을 은퇴 관리의 딸 슈미와 엄마의 연인 장자위안과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화자서(花家舍)라는 이름의 유토피아 비슷한 화적떼 집단까지의 방랑과 윤간에 의한 출산으로 얻은 아들 탄궁다譚功達.
2대 주인공 탄궁다는 무대를 작은 마을 푸지에서 더 큰 도시 메이청 현으로 옮긴다. 벌써 탄궁다는 마흔이 넘은 숫총각, 요새 말로 모태 솔로 현장님이다. 하이틴이 된 탄궁다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고 해방군대에 들어가 온갖 중요하고 거친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이루어 영웅의 이름으로 고향 푸지를 아우르는 메이청의 현장에 취임했다. 현의 감옥에서 생을 마친 엄마를 닮아 유토피아를 찾기 보다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으로 메이청 인근에 각종 대형 공사를 벌였다. 가장 중요한 것이 창장에서 물길을 만들어 공업과 농업 용수로 사용하겠다는 것. 이 과정에 주민들 사이에 시위가 생겼고 목수 왕씨가 군중에 떠밀려 보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벌어진다. 훗날 탄궁다는 이때 죽은 목수의 아들 하나 딸린 과부 장진판張金芳과 결혼해 아들 탄돤우譚端午를 낳지만 이때는 탄궁다가 죄를 지어 멀고 먼 화자서로 처벌 성 원격지 배치를 받아 아들 돤우는 장진판이 키운다. 이제 왕년에 불에 타 사라진 유토피아 화자서는 공산주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운영하는 공산주의식 유토피아로 다시 태어났지만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유토피아가 될 수 없는 법이라 탄궁다는 염증을 느끼고 메이청으로 돌아온다. 젊은 연인 야오페이페이도 살인의 죄를 짓고 메이청 현 부근 몇 백리를 방랑하다 생을 끝내고.
이제 대단원에 이른 3대 주인공 탄돤우.
상하이의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그의 학업 수준을 아까워한 교수의 추천으로 베이징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 와중에 천안문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숱하게 많은 학생, 시민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어떤 식으로든지 탄돤우 역시 조금은 그러했다. 체포와 고문, 처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피해 고향인 메이청의 인근도시 허푸로 갔다. 허푸에는 함께 공부를 하고 시 쓰는 흉내도 내며 훗날 허푸 석간지를 간행하는 신문사에서 근무하는 쉬지스를 만나 그의 계획을 따라 낡은 절temple인 초안사로 소풍을 가기로 한다.
이날이 하필 추석이었다. 벌쭘하니 남자들만 가기 뭐해 쉬지스가 여학생 두 명을 부른다. 평소 자신을 흠모하는 눈치를 보였던 슈룽秀蓉과 다른 통통한 여학생. 쉬지스가 시장에 가서 좋은 토종닭 한 마리를 사 손에 들고 찾은 멀지 않은 호젓한 장소 초안사. 소풍은 대체로 즐거웠으며 낡아 거의 황폐한 절의 부엌에서 요리한 토종닭도 맛이 괜찮았는데, 그러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 쉬지스는 통통한 여학생을 데리고 슬쩍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부러 둘만 남겨두고 시내에 가서 영화관에 들어갔고, 당시 젊은 중국인들이 흔하게 그랬는지는 몰라도 쉬지스가 컴컴한 영화관에서 아가씨의 몸을 주물럭거리려다가 대차게 귀싸대기를 얻어 맞은 다음 보름 정도 경찰서 유치장에서 구류를 살고 나왔다.
겨우 열아홉 살인 슈룽은 돤우와 저녁을 먹으며 긴 젓가락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매사 소극적이고 사색에 잠기는 버릇이 있는 돤우도 남자인지라 이미 어두워진 밤, 인적 없는 산사의 절 관리인의 방에 자신과 슈룽 둘 밖에 없으며, 관리인은 며칠 동안 절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어 은근히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상대 여학생들에게는 난진에서 데뷔도 하고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젊은 시인이라 알려진 돤우는 시쳇말로 ‘먹고 들어가는’ 아우라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마른 몸에 몸가짐 역시 조신한 슈룽의 손에서 나무 젓가락을 휙 잡아 빼내 손바닥에 상처를 입힌 돤우는 곧바로 슈룽의 머리를 감싸 키스를 했고, 잠깐 격렬히 고갯짓을 하던 슈룽도 잠시 후 다소곳이 그를 받아주어 함께 관리인의 침대에 오른다. 그리고 잠시 후. 즉, 할 거 다 한 다음에 슈룽은 말한다.
“이제 난 당신 사람이예요.”
이게 3부작의 마지막 작품 <강남에 봄은 지고>의 첫 문장이다.
1부에서 돤우의 할머니 슈미는 사랑하는 장자위안의 시신이 창장변의 갈대숲에서 발견된 후 방랑을 떠나 화적떼 소굴인 화자서에서 두목들 몇 명에게 윤간을 당해 아이를 낳고, 슈미의 아들 탄궁다는 사랑하는 젊은 애인 야오페이페이와 오직 순정한 사랑만 하다가 다소 야만적인 과부 장진판이 덮치는 바람에 결혼을 하고 탄돤우를 낳는다. 이들의 손자이자 아들 돤우는 자신은 사랑하지 않지만 하여간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는 19세 여성 슈룽과 관계를 가졌고, 슈룽은 처음부터 이제 자기는 돤우의 여자라고 선언한다.
땀에 젖은 빨간 라운드 셔츠만 한 장 입은 슈룽과 밤벌레 우는 야심한 시간에 초은사 경내를 산보하는 돤우. 그는 절대로 슈룽을 사랑하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 돤우가 보기에 슈룽은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 밝은 달 아래 풀밭을 보고도 시 귀절 하나 떠올리지 못하고, 달빛을 보면서도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를 연상하지도 못하는 일천한 소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한 번 했을 뿐인데 슈룽은 결혼 생활에 대한 동경에 가득 차 있어서 집과 정원, 가구, 그리고 신혼여행은 티베트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춥다고 한다. 한가위 야심한 시간, 밤이슬 내릴 때 맨몸에 라운드 티셔츠 하나만 입었으니 감기가 든 거다. 열이 오소소 돋는 슈룽. 방으로 돌아온 이들. 그가 지나친 요구를 해도 슈룽은 언제나 “마음대로 해요.”라고 말한다.
밤이 깊어질수록 열이 나는 슈룽. 돤우는 깊게 키스를 해보고 자기 마음대로 한기와 피로로 인한 감기라고 진단한다. 사실 돤우는 새벽 다섯 시 반 열차를 타고 상하이로 돌아가야 한다.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는 것을 확인한 돤우는 슈룽이 깊은 잠에 빠진 걸 확인하고 슈룽의 주머니에 든 돈을 탈탈 털어 절을 나섰다. 돈 속에는 돤우의 상하이 주소를 써준 쪽지까지 들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발견한다.
슈룽은 눈을 떴을 때 당연히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돤우의 가방을 비롯해 그의 소지품도 하나 없었다. 약을 사러 갔나? 슈룽은 기다린다. 오래 기다린다.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안개비. 그러다가 가랑비. 시간이 더 지나니까 장대비가 쏟아진다. 감기 기운은 가실 줄 모르고 열도 내리지 않는다. 오래 기다린 슈룽. 이제 더 머물 수 없다. 무엇보다 위험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의를 입고, 바지와 점퍼를 입고서야 바지 속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걸 알았다. 돤우 씨는 어디 갔을까? 슈룽은 초은사에서 나와 처음엔 내리막 비포장길을 걷고, 길이 넓어지자 아스팔트 포장길을 걷는다. 지나는 차도 없다. 아주 없지는 않다. 얼마나 걸었을까, 차가 한 대 슈룽 앞에 선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가 바라본다. 슈룽은 그대로 걷는다. 남자의 차는 슈룽의 30미터쯤 뒤에서 슈룽과 같은 속도로 따라온다. 십분, 이십분 지나 다시 슈룽의 옆으로 다가온 남자와 차. 차문이 열리더니 그가 말한다. “이제는 안전할 거 같지? 그만 타지 그래.”
남자는 경찰시험에 합격해 연수원에서 연수를 끝내고 나오는 참이었다. 그는 슈룽을 인근 병원에 데려가 입원시키고 링거 주사를 맞게 한다. 입이 거칠지만 하는 행동은 헌신적이다. 탕옌성. 그와 알고 지내기 시작한다. 남녀관계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습해진다. 이들도 당연히 그랬고, 임신중절을 한 번 했으며, 당연히 결혼을 염두에 둔다. 그렇게 시간이 간다. 단돤우는 그날 왜 나를 떠났을까?
베이징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탄돤우에게 교수가 선택을 요구한다. 자기가 추천해주는 국책연구소에 들어가든지 박사과정을 밟으라고. 돤우는 박사를 지원한다. 사실 2안을 선택하는 건 지도교수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돤우는 박사 지원에서 탈락한다. 그리고 다른 교수들 여러명이 보고 있는 가운데 노골적으로 지도교수를 비아냥거리고 거친 욕설을 퍼붓는다. 학교에서 완전하게 떠나겠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이후 상하이로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건만 제대로 살 수 없는 건 베이징이나 상하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몇 년을 비실거리다가 그나마 먹고 살기 위하여 허푸로 돌아온 탄돤우. 그는 정부에서 발행하는 지방지 사무소에서 박봉을 받으며 사는 편집인으로 만족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 귀금속 판매점 앞을 지나다가 한 여자를 본 것 같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울에 비친 여자를 본 것이고, 건장한 남자 옆에서 아마 틀림없이 결혼반지를 고르고 있던 여자도 거울을 통해 탄돤우를 마주 보았다는 걸 알았다. 돤우는 얼른 자리를 떴다. 슈룽은 그날 자기와의 살림을 위하여 남자가 구입한 긴 골목 끝의 아늑한 집에서 약혼자 탕옌성에게 파혼해야 함을 말하고, 탕옌성 역시 별 말없이 수긍한다.
며칠 후, 슈룽은 탄돤우와 결혼한다.
탄돤우는 이제 도색 관광지가 된 화자서에 가고, 슈룽은 앞 편의 여자 주인공이 그랬듯이 방랑을 하지만 꿈에도 그리던 티베트에는 도착하지 못한다. 삶이 이들 사이에서 멀어갈 때, 그때는…, 차마 말해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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