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여행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빛소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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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36 역시 츠바이크 작품답게 재미있었다. 표제작인 <과거로의 여행>이 특히 좋았다. 인간은 결코 추억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과거는 단지 흔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두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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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4-14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지 않은 츠바이크의 글이 계속 늘고 있네요.
이 책도 찜합니다^^

새파랑 2025-04-15 07:52   좋아요 1 | URL
책태기가 왔을때는 츠바이크 작품이 최고인거 같아요. 술술 읽히고 재미있습니다 ㅋ
 
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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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35 동쪽으로는 미래의 20년, 서쪽으로는 과거의 20년이 펼쳐지는 세계에서 나는 어느쪽을 선택할까? 아마 대부분이 서쪽을 선택할 것이다. 서쪽은 그리움이고 동쪽은 희망일테니까. 작가의 상상력은 대단하나, 세계관의 스케일이 다소 작아 아쉬움이 남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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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평안은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8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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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34

<더 이상 평안은 없다>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 이은 치누아 아체베의 아프리카 반식민문학 두번째 이야기이다. 전작이 서구 문명에 대항하여 나이지리아의 전통을 지키려는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서구 문명과 전통 사이에서 무엇도 지키지 못하고 타락하는 나이지리아의 젊은 엘리트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오비 오콩고는 이보족 출신으로, 그는 부족의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유학을 간다. 이후 귀국한 그는 나이지리아의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고, 남들은 일년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한달만에 벌 정도로 성공한다. 하지만 소설의 첫 부분에서 그는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게 된다.


오비 오콩고가 살던 시기에 나이지리아의 공무뭔 세계는 부정부패가 판치는 곳이었었다. 지식인이 된 그는 처음에는 이런 뇌물을 거부하고 서구 식민주의에 저항했지만, 경제적으로 점차 쪼들리게 되고 결국 뇌물 수수죄로 제판을 받게 된 것이다.

[뭣 때문에 교육을 받는 거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가능한 한 최대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잖아. 날마다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 가는 수백만 명의 동포들에 대해서는 눈곱만치의 관심도 없단 말이지.] P.171




게다가 사랑하는 연인이 천민 출신이어서 집안의 강력한 반대로 헤어지게 되고, 자신을 유학보내준 부족 모임에서 눈밖에 난 오비 오콩고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음모였을까? 아님 그가 나쁜 사람이었던걸까? 아님 구조적으로 뭔가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 결과 오비 오콩고는 본인의 이름이 의미하는 ˝마침내 평안해진 마음˝을 얻지 못하고 이제 ˝더이상 평안은 없게˝ 되버렸다.

[왜 그랬을까 모두들 이상하게 여겼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박학다식한 판사는 교육받은 젊은이가 어떻게 저따위 짓을 할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영국 문화원 직원도, 심지어는 우무오피아 사람들도 알 수 없었다. 또한 그토록 확신에 차 있던 그린 씨 역시 알지 못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P.246




낯선 아프리카 문학이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왜 식민사회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 밖에 없는지, 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 역시 타락하게 되는지를 너무 잘 그린 작품이었다. 세상 사는게 어디나 다 비슷한것 같다. 특히 나쁜 쪽으로는 말이다.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어떤 반전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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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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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33

˝눈물 따위로 버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마˝


이 책을 사놓은 건 몇년전이다. 그때는 아직 작가님이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이어서 우주점에 중고책이 많았다. 그래서 그때 영등포점이었던가? 작가님의 책을 중고로 몇개 업어 왔는데, 그동안 안읽고 있다가 아주 뒤늦게 읽었다. 뒤늦게 읽은 소감은... 너무 좋았다. 노벨상 후광효과가 아니더라도 완전 최고였다.


이렇게 슬픔으로만 꽉 채워진 작품이 가능한건가, 이렇게 감정의 높낮이가 없이 계속 높은 밀도의 우울로 글을 쓰는게 가능한건가. 내가 우울한걸 좋아하긴 하지만, 한강 작가님의 우울은 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 작가님의 작품은 계속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은 한강 작가님의 세 단편집 중 두번째로 엮은 단편집으로, 총 여덟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느 하나 빠지는 작품 없었다. 한편 한편 너무 무겁고 여운이 깊게 남아서 연속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 읽는데 오래 걸렸다. 다 좋았지만 그 중 몇가지 인상적인 단편들을 소개해 보자면,




1. 내 여자의 열매

이 작품의 표제작이다. 언제 부터인가 아내의 몸에서 피멍을 보게 된 나는,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다가 계속해서 커지는 멍을 보고 아내에게 병원진료를 권유한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고, 아내는 점점 식물처럼 말라간다. 그러면서 아내에 대한 예정도 점점 식어간다.

[아내의 몸에서 피멍을 처음 본 것은 늦은 오월의 일이었다. 관리실 옆 화단의 모란은 잘린 혀 같은 꽃이파리들을 뚝뚝 밸어대고, 노인정 어귀의 보도블록에는 분드러진 흰 라일락꽃들이 행인들의 구두 밑창에 엉기던 봄날이었다.] P.9


해외출장을 다녀온 어느 날 집이 엉망이 된걸 보게 된 나는, 베란다에 있는 아내가 초록빛을 띠는 나무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다시 아내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아내의 몸에서 석류알과 같은 열매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그 열매를 다른 화분에 심는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서 아내의 몸도 시들어간다. 봄이 오면 아내는 다시 돋아날까?

[어머니,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 거리를 늙고 망가진 얼굴로 떠돌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어요. 고향에서도 불행했고 고향 아닌 곳에서도 불행했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 P.34


=> 처음 읽었을때 느낀 감정은 당혹이었다. 작가님은 무슨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소통의 부재?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 고향, 자연으로의 회귀?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아쉬움? 상당히 어려운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상당히 강렬했다. 채식주의자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여기 실린 다른 단편 중 가장 아름답고 슬픈 문장들이 가득했다.




2.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이는 아빠와 엄마와 함께 푸드트럭에서 장사를 한다. 아빠의 우는 모습이 좋아서 결혼했다는 엄마는 어느날 집을 나간다. 아빠의 의처증에 지쳐서인지, 찢어진 가난에 지쳐서인지, 희망없는 현재의 삶이 지겨워서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아이도 버리고 떠난다. 해질녁의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해질녁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해질녁에 아이는, 여관방 창 너머로 아스라이 사위는 바다를 향해 걸어가고 싶어진다. 흙펄을 핧는 파도의 거품이 흰빛인지 황금빛인지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P.43


이후 아빠는 나를 데리고 엄마를 찾아 다닌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매일 술을 마시는 아빠와 함께 하루하루를 여관방에서 근근히 살아간다. 아빠에게는 더이상 희망이 없고, 아빠는 나와 함께 죽어버리려는 생각까지 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빠는 포기한다. 엄마에 대한 여전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혼자남은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나는 아빠가 밉지 않고 안쓰럽다. 아빠의 슬픔을, 무서움을 이해하니까. 이제 더이상 해질녘 개들의 기분은 궁금하지 않다.

[바닷바람이 아이의 옷 속으로 파고든다. 오그라드는 가슴을 퍼려 애쓰며 아이는 계속해서 걸어간다. 무허가 주택들의 들쭉날쭉한 담벼락들이 흐린 시야 속에서 겹처진다. 해질녁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P.99


=>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아빠와 엄마의 이별 이야기. 엄마가 지겨워하는것도, 아빠가 무서워하는것도 다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함께 갈수는 없었던 걸까? 그들을 헤어지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이 함께 간다는건 그만큼 어렵다. 서로 사랑한다 해도 말이다.




3. 아기 부처

나는 어느날 아기 부처의 꿈을 꾼다. 그 아기부처는 불상이 아니었다. 내 자신의 손으로 주물러서 만들어진 얼굴이 아기 부처의 얼굴이었다. 나는 아기부처의 얼굴을 주무르지만 내가 생각했던 인자한 얼굴은 만들어지지 않고, 빚으면 빚을수록 눈초리는 더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아기 부처 꿈은 무엇이었을까?


주인공인 나에게는 남펀이 있다. 남편은 뉴스 아나운서였고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이었다. 그런 남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는데, 바로 얼굴과 목을 제외하고는 온 몸에 화상을 입어 큰 흉터가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것을 싫어하는 평범한 나는 남편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은 상처를 나에게만 보여준 순간 그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나는 그의 흉터와 용기를 함께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바로 그 흉터가 나에게 안겨준 충격 때문에, 평생 숨기고 싶었을 알몸을 보여줄 만큼 나를 신뢰해준 데 대한 고마움 떼문에 그를 받아들였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P.127


그런데, 견딜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상처투성이의 남편의 육체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연민에서 시작한 사랑이 결혼 후 고통으로 바뀌었다. 나의 이런 고통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느꼈을 것이다. 내가 남편을 피한다는 사실을, 증오한다는 사실을. 남편은 결국 다른 여자를 만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에 오히려 안도감을 얻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의 흉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 흉터 때문에 그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의 흉터가 다만 한 겹 얇은 살갖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다는 것이 내 마음의 얇은 한겹까지 벗겨내주지는 못했다. ] P.134


나는 두번째 아기 부처의 꿈운 꾼다. 이번에 나는 아기 부처의 얼굴 주변을 진흙으로 덮어버린다. 그러나 아기 부처의 얼굴은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서 나를 쳐다본다. 나의 몸이 진흙에 꼬꾸라진다. 이 꿈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나는 결국 남편과 이혼할 결심을 한다. 둘 중 한 사람이 죽지 않는 한 영혼할 거라 믿었던 관계는 그렇게 망가져 버렸다. 육체의 한꺼풀도 극복하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

[삶이 얼마나 긴 것인지 몰랐던 죄, 몸이 시키는 대로 가지 않았던 죄, 분에 넘치는 정신을 꿈꿨던 죄, 분에 넘치는 사랑을 꿈꿨던 죄, 자신의 한계에 무지했던 죄, 그리고도 그를 증오했던 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가학했던 죄.] P.135


어느날 남편이 술에 잔득 취해 들어온다. 그리고 그 여자와 헤어졌다고 말한다. 그 여자는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그 여자는 나를 존경한다는 말을 남편에게 남기고 떠난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관한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였나. 그 어리석음으로 서로를 망쳐면서도 그것을 몰랐나. 그것을 인내라고, 혹은 연민이라고 부르며 믿었으나, 과연 누구를 위한 인내였나.] P.159


그날 밤 나는 마지막으로 아기 부처의 꿈을 다시 꾼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기 부처의 얼굴은 없었고, 아기부처를 이루던 모래알들은 부서져 내렸다. 잠에서 깬 나는 옆에 잠들어있는 남편을 본다. 남편의 흉터에 내 손을 뻗어서 어루만진다. 그리고 내 안에 있던 남편에 대한 증오가 이제 사라진것을 느낀다. 나는 남편의 유자차를 준비한다.


=> 이 단편집에서 제일 좋았던 작품이다. 연민이 사랑이 되었다가 증오가 될때까지 주인공은 남편과의 거리를 두고 방관했지만, 결국 깨닫는다. 문제는 남편의 흉터가 아니라, 남편의 육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고, 내 마음이었다고. 아기 부처의 얼굴은 내 마음에 쌓여있던 증오였다.

증오를 극복하는 것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상대방을 구원하는 것도 결국 내 마음가짐이다. 극복하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갈등은 영원할 수 없다. 긴 겨울을 이겨낸다면 봄은 반드시 올 것이다.




4. 붉은 꽃 속에서

주인공인 선이는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절에 가서 연등회를 본다. 그때 선이른 일곱살, 동생 윤이는 네살이었다. 그 연등회에서 선이와 윤이는 많은 인파속에서 엄마 일행을 놓치고, 나중에 엄마에게 혼난다. 그럼에도 선이는 윤이와 함께 바라본 붉은 연등과 사미니(예비승려)를 마음 깊은 곳에 새긴다.

[그때 그는 자신이 언젠가 일 년에 하루뿐인 초파일을 아쉬워했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일 년에 하루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만큼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을까.] P.260


일년후 다시 연등회를 찾았지만 작년과 달라진게 있었다. 동생 윤이가 사고로 죽은 것이다. 이제 여덟살인 선이는 동생이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매년 선이는 연등회에 가서 윤이를 추억한다. 그리고 현실에 허무함을 느낀 그녀는 여승이 된다. 이제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깨달음과 평안을 얻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다.

[신기한 것은, 순서 없이 떠오르는 그 기억들 속에서 어떤 감정이 솟아났을 때 그것을 잠자코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래서 그 감각과 생김새를 찬찬히 헤아리고 나면 어느 사이 그것이 사라져 있곤 한다는 것이었다. 사라지고 난 밝고 빈 마음속에서 그는 잠시 쉬었다. 다시 기억이나 감정이 솟으면 그것을 들여다보았고, 사라지고 나면 다시 쉬었다. 선방에서 나와 잠시 경내를 걸을 때면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폭우에 씻긴 듯 또렷해져 있곤 했다.] P.284


속세에서 동생 윤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가정과 학교에서 사랑받았지 못한 아픔을 가진 선이는, 이제 승려가 되어 깨닫는다. 모든 감정에는 육체가 있다고, 눈으로 보이는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불빛은 제가 불빛인 줄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P.287


=> 이 단편집에서 가장 쓸쓸한 작품이었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종교적으로 승화한 작품인데, 불교에 대한 전문용어를 모르더라도 그 슬픔과 체념이 잘 전달되었다. 그날 윤이와 함께 바라본 붉은 꽃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무언가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그 속에 추억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다 한결같이 여운이 깊게 남는 작품들이었다. 앞으로 한달에 한권씩만 한강작가님의 작품을 읽어야 겠다. 두권씩 읽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안될거 같다... 하지만...아직 안읽은 한강 작가님 책이 많아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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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4-13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사람 사는 것에 우울하고 힘든 요소가 더 많지 않나 생각되어요.
그것을 잘 포착하는 것 같아요.
한강 작가의 책탑, 멋져요^^

새파랑 2025-04-13 22:15   좋아요 1 | URL
한강작가님 작품 너무 우울합니다 ㅜㅜ 이제 다섯권 읽었는데 올해 안에 다 읽을 수 있을거 같습니다~!!

자목련 2025-04-14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집, 애정해요! 저는 초판을 가지고 있는데 혼자 대견하고 뿌듯해요^^
근데 개정판도 갖고 싶네요. ㅎ

새파랑 2025-04-15 07:54   좋아요 0 | URL
초판 부럽습니다 ㅜㅜ 저 알라딘 우주점 가면 일단 초판인지 보는데 ㅋ 좋아하는 작가의 초판을 모으는거 너무 좋아요~!! 이 소설집 진짜 대박입니다~!!!

독서괭 2025-04-14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새파랑님의 한작가 책탑 시리즈 멋지네요!! 두권씩 읽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될 것 같다는 말씀에 ㅎㅎㅎ 저는 세권 읽었는데 더 읽어야하는데 말입니다 ㅜㅜ

새파랑 2025-04-15 07:56   좋아요 1 | URL
아직 김연수 책탑이 남아있습니다 ㅋ
독서괭님은 일단 한달에 책을 열권씩 사야합니다~! 다음 한강작가님 책은 뭘 읽어야할지 고민입니다 ㅋ
 

역시 츠바이크 ㅋ 심리묘사도 좋고 이야기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교는 말도 안 되는 짓이있다. 부인은 욕망과는 다른 매력의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순수하고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하여 그는 꿈에서조차 그녀의 옷을 벗길 수 없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존재에서 풍기는 향기를 좋아했고, 그녀의 모든 동작을 음악을 듣는 것처럼 즐겼으며, 그녀의 신뢰에 행복감을 느꼈다. 그런가 하면 흥분에 취한 과도한 감정을 혹시라도 그녀에게 들킬까 봐 끊임없이 조심했다. 이런 감정은 아직 이렇다 할 명칭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 형태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그의 마음 속에 숨겨진 채 뜨겁게 달귀지고 있었다. - P29

하지만 사랑은 육체의 깊은 곳에서 맹아처럼 어둡게 꿈틀거리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숨결과 입술로 사랑이라 말하며 떳떳이 고백할 때에야 비로소 사랑이 되는 법이다. 그의 감정은 고치처럼 견고한 실 껍질을 둘둘 말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 감정은 혼란스러운 껍질을 뚫고 솟구쳐 나왔지만, 다시 두 배로 강력히 가슴속 깊이 떨어져 내리며 그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그가 그녀와 같은 집에 살기 시작한 지 두 해가 흐른 뒤의 일이었다. - P29

그가 멕시코로 출발하기 직전 열흘 동안, 두 사람은 사랑에 도취한 상태로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사랑을 고백한 이후 갑자기 분출된 감정의 폭발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두 사람을 가로막는 모든 저항과 장애, 윤리적 사고와 제한을 날려버렸다. 어두운 복도나 문 뒤, 후미진 구석, 그 어디에서든 잠시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가 짐승처럼 뜨겁고 탐욕스럽게 달려들었다. 손은 손을 만지기를 원했고, 입술은 입술을, 들끓는 피는 그와 같은 피를 갈망했다. 온몸이 온몸을 욕망하면서 열을 올렸다. 손발, 의복, 욕망하는 육체의 어떤 부분이든 서로를 느끼고자 모든 신경이 불타올랐다. - P45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시간이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변함이 없다고 되뇌었다. 헤어진 지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신경을 집중하고 들어도 그녀의 목소리는 다르지 않았다. 잃어버린 것도, 사라진 것도 없었다. 그녀가 있어서 예전처럼 감미로운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잔잔히 미소 짓는 그녀의 입술을 열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오래전 그 입술에 키스했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가슴에 편안히 올려놓은 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고개 숙여 그 손에 입 맞추고 싶었다. 단 1초만이라도 살짝 팔짱 낀 그 손을 잡을 수 있기를 바랐다. - P49

그는 스스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지내다 보니 그의 내부에 있는 치밀한 열정의 그물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색이 바래지 않고 꽃이 시들지 않으려면 땅의 영양분은 물론, 하늘의 새로운 빛이 늘 필요하다. 식물이나 모든 구성물이 그렇듯, 우리가 꾸는 꿈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꿈조차도 모종의 감각적 양분이 필요하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감각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본연의 특징과 광채도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 P59

그는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그림자의 기이한 유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혼 없는 형상들, 그들의 흔적에 불과한 어두운 육체들이 달아났다가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모습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별과 해후를 반복하는 이 생명 없는 형상. - P103

얼어붙고 눈내린 옛 공원에서

두 그림자가 과거의 흔적을 찾고 있구나 - P107

그녀와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과거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발아래 드리워진 저 검은 유령처럼 그들은 헛된 노력에 힘을 탕진하며, 달아나고 멈추는 유희를 계속한 것은 아니었을까? - P108

그러고는 더깊은 내면으로 내려가 과거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기억이라는 예언의 목소리가 재차 그에게 말을 건네려고 하는지, 과거를 통해 그에게 현재의 진실을 들려줄 것인지에 귀 기울였다. - P108

그들이 봤을 때 정숙한 부인이 알게 된지 불과 세 시간 된 청년의 휘파람 소리를 듣자마자 단번에 그를 따라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다른 견해를 제기하고 싶었다. 나는 수년 동안 실망스럽고 지루한 결혼 생활을 경험한 여자의 경우 그 마음속에서 격렬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런 성향도 농후하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 P120

이처럼 유일무이한 순간, 어쩌면 열정이라곤 전혀 모르던 사람만이 이렇듯 눈사태처럼 돌발적이고 허리케인처럼 맹렬히 분출하는 열정의 폭발을 겪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면 평생 사용하지 않았던 힘들이 돌무더기처럼 가슴으로 떨어져 내리는 법입니다. 저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이 순간만큼 놀랍고 완전히 자지러질 것 같은 일을 체험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이때 저는 무모하게도 갑자기 제 앞에 무의미한 벽을 발견하고는, 열정적으로 그 벽을 향해 이마를 부뒷쳐 쓰러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간 아끼고 쌓아온 제 모든 삶 전체를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 P232

제가 얼마나 분노하고 절망했는지를 당신께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을 좀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삶 전체를 누군가에게 내맡겼는데, 그는 자신을 파리처럼 취급하며 태연히 손을 흔들어 쫓아버리려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분노가 다시 파도처럼 저를 덮쳤습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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