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작가님은 그저 좋을 뿐이다.

책과 노트와 펜만 있으면 나는 계속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사람에게는 절반만 의지하고 책과 글에 절반을 의탁하면서, 의젓하고 담대한 존재를 꿈꾸며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 - P9

언젠가는 죽은 새를 두 손으로 안아 들고 흙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묻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장래 희망은 죽은 새를 묻는사람. 그 많은 새들은 어디에서 죽을까.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 무엇도 죽은 자신을 훼손할 수 없는 곳을 찾아가 죽을까. 새는 그럴 수 있다. 멀리멀리 날아가 죽을 수 있을 것이다. - P26

사랑을 모르고도 나는 분명히 사랑한다고 느낀다. - P43

오늘 같은 강풍에는 새도 낮은 곳으로 피신했을 것이다. 낮은 나뭇가지에 않아 나무와 함께 흔들리며 나무를 부추길지도 모르지. 걸어, 걸어라, 나무야. 수천만 년 숨겨온 너의 비밀을 이젠 공개해버려! - P49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면 모두 떠날 거라고 믿었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면 더 멀리 달아났다. 작아지도록, 한없이 작아져서 보이지 않도록. 나에게는 나뭇가지와 돌멩이가 있었다. 그리고 혼자 걸을 수 있는 수많은 길. - P149

무언가를 집요하게 강박적으로 좋아하던 나는 흐르고 흘러 머나먼 바다로 가버렸다. 이제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하는 사람. 당신은 모르겠지만 좋아하고 있어요. 잔잔하고 고용하게 홀로 좋아합니다. 이 마음에는 아쉬움이 없고, 이 마음은 시간과 함께 사라질 테니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P167

소설이니까, 소설이어서 쓸 수 있는 이야기이고, 소설의 그런 점이 좋아서 나는 소설을 쓴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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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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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63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가 언제나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새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작가의 초기작을 읽는다는 건 정말 흥미롭다. 지금과는 다른 초기작품만의 참신함, 풋풋함, 생동감, 미숙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음악은 또 다르다. 음악의 경우는 초기작이 명반인 경우가 종종 있지만, 문학은 초기작이 명작인 경우는 별로 못본것 같다. 아마 문학은 참신성 보다는 깊이를 더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갑자기 쓸데없는 이야기를 적은것 같다...


최근에 어려운 책(아우스터리츠...)을 읽어서 오늘은 좀 잘읽히고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었기에 선택한 책이 바로 김연수 작가님의 초기 단편집인 <스무살>이다. 나의 선택은 훌륭했다. 대만족 이었다.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건가 싶었다. 김연수 작가님의 다른 명작들에 비해 완성도라든지 깊이가 떨어지는건 분명 있었지만 정말 참신했다. 그리고 책 제목처럼 작품마다에서 젊음이 느껴졌다. 나는 스무살 때 뭘 하고 있었을까?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P.9



<스무살>에는 총 9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스무살>은 자전적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인데, 읽다보면 이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햇갈리기도 했다. 김연수 작가님의 스무살 에피소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스무살에 그저 별뜻없이 들어간 대학 영문과, 그리고 그 시대에 일상이었던 데모, 사랑, 아르바이트까지 스무살의 추억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그들은 지금 뭘 하고 살고 있을까?

[세상에서 단 한 번 가까위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 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따금 먼 곳에 있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말 역시 우스운 말이지만, 부디 잘 살기를 바란다. 모두들.] P.44



<죽지 않는 인간>도 비슷한 느낌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뭔가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나를 스쳐지나간 소중한 사람들이 등장할 뿐이었다. 동료 작가이자 요절한 J, 레고드가게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별할 수 밖에 없었던 서연, 만나본적은 없지만 나의 음성사서함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던 승미,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작가님은 그들이 현실에서 사라졌다 하더라도,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글을 통해 그들을 추억한다면, 소설속에서 되살린다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간 나는 이 세계가 너무나 두려웠어요. 언제나 혼자라는 느낌뿐이었는데, 일단 나 자신을 구할 능력이 없다는 건 분명했지요. 당신 역시 나를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나 외엔, 그 무엇으로부터도 단절되어 있는 아이였으니까. 고립. 뭐, 그런 단어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이죠.] P.225



특이한 소재의 작품들도 상당히 좋았다. 죽을정도로 완벽한 롤러코스터에 대한 이야기인 <마지막 롤러코스터>, 선풍기 수집가와 희귀본 수집가라는 특이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공야장 도서관 음모사건>, 한편의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작품인 <사랑이여, 영원하라!>, 인화한 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찍힌 걸 본 승민, 그리고 그런 승민의 도플갱어인 '나',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사람의 공허한 청춘을 흥미롭게 연결시킨 <뒈져버린 도플갱어>까지, 완벽함 보다는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예컨대 선생 역시 불후의 소설을 쓰게 된다면. 그후에는 소설가로서 존재의의가 사라집니다. 불후의 소설을 이미 썼으니까요. 저라면 만약 불후의 소설을 쓰게 된다고 해도 그 소설을 발표하진 않을 겁니다. 자신의 존재의의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우를 저지르고 싶진 않으니까요.] P.116



이제 김연수 작가님의 <7번국도>만 읽으면 소설은 다 읽게 된다. 시원섭섭하다. <7번국도>는 7월에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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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6-30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스무 살> 좋아해요. 뭔가 딱 몽글몽글한 그 젊을 때만 쓸 수 있는 감성이 살아 있지 않나요? 자전적 이야기라 해서 더더욱요. 드디어 대망의 김연수 작가 전작을 마치게 되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7번국도>도 진짜 좋았어요.김연수 작가가 새파랑님 서재에 오셔서 보시면 흡족해하실 것 같아요. ^^ 박상영 작가 에세이집에 등장한 김연수 작가 실제 모습도 딱 기대한 그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새파랑 2025-06-30 20:35   좋아요 0 | URL
작품에서 젊음이 막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얼마전에 동네책방에서 ‘디 에센셜 김연수‘를 구매햏는데 사장님께서 저랑 김연수작가님이랑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하시더라구요 ㅋ영광이었습니다~ 7번국도도 기대가 됩니다~!!!
 
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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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62 명작이라고 하는데 너무 안읽히고 어려웠다. 간접체험담이어서 그런가... 나의 독서능력이 부족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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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김연수 작가님의 초기 단편집. 그냥 글센스가 느껴진다. 역시 최고.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 P9

나는 시위 대열의 중간쯤에서 적당히 팔을 흔들며 구호나 외치다가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하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놈이었다. 당시 대학교에는 나 같은 높들은 수천 명도 넘게 있었다. 중요한 사람들은 나 같은 녀석들이 아니라, 맨 앞에 있는 학생들이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뛴 이유는, 괜히 돌아봤다가 뒤에서 날아온 최루탄에 얼굴이 맞을까봐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뛰면서 항상 생각해 봤지만, 최루탄이 눈에 박히는 것보다는 뒤통수에 박히는편이 휠씬 나을 것 같았다. - P11

그 당시에 내게는 사귀는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사권다기보다는 나는 주로 ‘오늘은 노을이 지는 곳까지 걸어가봤다‘ 운운하는 편지를 써보내고, 그 여자애는 그 편지를 읽는 그런 관계였다, 불문과에 다니던 그애와 나는, 내가 열 번 편지를 보내면 그애가 한번 데이트를 해주는 계약을 맺었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이유로 쓰는 편지라면 하루에 열 통씩이라도 보낼 수 있다. 매일 만나야만 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하루종일 편지를 쓰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을 쓸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나리는 인간은 마치 글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P23

재진의 말을 듣고 보니 살아오면서 내가 새소리를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인 건 많아야 서너 번뿐인 것 같았다. 스무 해 동안, 서너번뿐이라니!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가 언제나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새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 P34

세상에서 단 한 번 가까위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 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따금 먼 곳에 있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말 역시 우스운 말이지만, 부디 잘 살기를 바란다. 모두들. - P44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다들 팔 생각이 없는 선풍기를 사고 있습니다. 파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해도 저는 사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외로운 구입이라도 하겠다는 뜻입니다." - P84

복권을 예로 들죠. 만 장 중에 당첨복권이 한 장들어 있다고 칩시다. 당첨번호를 발표하지 않는 한에는 모든 복권은 당첨확률이 만분의 일이 될 겁니다. 희귀본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야장 선생처럼 회귀본을 수집하는 사람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책이 있어야만 존재의의가 있는 것이지요. - P116

예컨대 선생 역시 불후의 소설을 쓰게 된다면. 그후에는 소설가로서 존재의의가 사라집니다. 불후의 소설을 이미 썼으니까요. 저라면 만약 불후의 소설을 쓰게 된다고 해도 그 소설을 발표하진 않을 겁니다. 자신의 존재의의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우를 저지르고 싶진 않으니까요. - P116

괘종시계처럼 하루에도 열두번이 넘게 내 머릿속으로는 ‘바다로! 바다로!‘라는 말이 울렸어요. 모든 것은 끝이 나버렸고, 깜깜해. 바다로! - P127

모든 일시적인 관계는, 특허 우연한 만남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경우라면, 잠에서 깨어나는 즉시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자기물건을 챙겨서 그 방을 빠저나오면 더이상 문제를 일으키진 않는다. 물론 그날 태섭이 챙겨서 가저외야 할 물건은 진영의 구두였다. 하지만 태섭은 새벽이 되자마자 방을 빠져나오지도 않았고, 진영이 방콕에서 친절한 아시아 남자에게 선물 받았다던 구두도 가져오지 않았다. 태섭은 한번 더 진영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가면을 쓸 때 우리는 서로 딱 한 번 만날 수 있다. 그게 규칙이다. 만약 두번째로 만난다면, 둘 중 하니는 상대방의 가면을 벗기고 실제 얼굴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 P141

"왜 다시 들어가려고 했는가?"라고 기자가 질문하자, 그가 대답했다. "터널 속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세상에는 그 대답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나는 이해하는 사람이다. - P156

성승경에 대해 찍으면 찍을수록 성승경은 사라졌다. 인간 성숭경이 사라지고 열사 성승경이 탄생하게 되자 다큐멘터리는 극영화가 됐다. 그게 바로 재민을 비롯한 그의 세대들이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다. - P195

그간 나는 이 세계가 너무나 두려웠어요. 언제나 혼자라는 느낌뿐이었는데, 일단 나 자신을 구할 능력이 없다는 건 분명했지요. 당신 역시 나를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나 외엔, 그 무엇으로부터도 단절되어 있는 아이였으니까. 고립. 뭐, 그런 단어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이죠.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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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3
장애령 지음, 문현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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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61 장아이링의 단편집. 표제작 <색, 계>가 궁금해서 읽었는데, 표제작 보다 다른 작품들이 더 좋았다. <색, 계>는 오히려 영화가 더 대단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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