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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N25063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가 언제나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새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작가의 초기작을 읽는다는 건 정말 흥미롭다. 지금과는 다른 초기작품만의 참신함, 풋풋함, 생동감, 미숙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음악은 또 다르다. 음악의 경우는 초기작이 명반인 경우가 종종 있지만, 문학은 초기작이 명작인 경우는 별로 못본것 같다. 아마 문학은 참신성 보다는 깊이를 더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갑자기 쓸데없는 이야기를 적은것 같다...
최근에 어려운 책(아우스터리츠...)을 읽어서 오늘은 좀 잘읽히고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었기에 선택한 책이 바로 김연수 작가님의 초기 단편집인 <스무살>이다. 나의 선택은 훌륭했다. 대만족 이었다.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건가 싶었다. 김연수 작가님의 다른 명작들에 비해 완성도라든지 깊이가 떨어지는건 분명 있었지만 정말 참신했다. 그리고 책 제목처럼 작품마다에서 젊음이 느껴졌다. 나는 스무살 때 뭘 하고 있었을까?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P.9
<스무살>에는 총 9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스무살>은 자전적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인데, 읽다보면 이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햇갈리기도 했다. 김연수 작가님의 스무살 에피소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스무살에 그저 별뜻없이 들어간 대학 영문과, 그리고 그 시대에 일상이었던 데모, 사랑, 아르바이트까지 스무살의 추억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그들은 지금 뭘 하고 살고 있을까?
[세상에서 단 한 번 가까위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 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따금 먼 곳에 있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말 역시 우스운 말이지만, 부디 잘 살기를 바란다. 모두들.] P.44
<죽지 않는 인간>도 비슷한 느낌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뭔가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나를 스쳐지나간 소중한 사람들이 등장할 뿐이었다. 동료 작가이자 요절한 J, 레고드가게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별할 수 밖에 없었던 서연, 만나본적은 없지만 나의 음성사서함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던 승미,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작가님은 그들이 현실에서 사라졌다 하더라도,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글을 통해 그들을 추억한다면, 소설속에서 되살린다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간 나는 이 세계가 너무나 두려웠어요. 언제나 혼자라는 느낌뿐이었는데, 일단 나 자신을 구할 능력이 없다는 건 분명했지요. 당신 역시 나를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나 외엔, 그 무엇으로부터도 단절되어 있는 아이였으니까. 고립. 뭐, 그런 단어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이죠.] P.225
특이한 소재의 작품들도 상당히 좋았다. 죽을정도로 완벽한 롤러코스터에 대한 이야기인 <마지막 롤러코스터>, 선풍기 수집가와 희귀본 수집가라는 특이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공야장 도서관 음모사건>, 한편의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작품인 <사랑이여, 영원하라!>, 인화한 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찍힌 걸 본 승민, 그리고 그런 승민의 도플갱어인 '나',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사람의 공허한 청춘을 흥미롭게 연결시킨 <뒈져버린 도플갱어>까지, 완벽함 보다는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예컨대 선생 역시 불후의 소설을 쓰게 된다면. 그후에는 소설가로서 존재의의가 사라집니다. 불후의 소설을 이미 썼으니까요. 저라면 만약 불후의 소설을 쓰게 된다고 해도 그 소설을 발표하진 않을 겁니다. 자신의 존재의의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우를 저지르고 싶진 않으니까요.] P.116
이제 김연수 작가님의 <7번국도>만 읽으면 소설은 다 읽게 된다. 시원섭섭하다. <7번국도>는 7월에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