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평안은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8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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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34

<더 이상 평안은 없다>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 이은 치누아 아체베의 아프리카 반식민문학 두번째 이야기이다. 전작이 서구 문명에 대항하여 나이지리아의 전통을 지키려는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서구 문명과 전통 사이에서 무엇도 지키지 못하고 타락하는 나이지리아의 젊은 엘리트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오비 오콩고는 이보족 출신으로, 그는 부족의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유학을 간다. 이후 귀국한 그는 나이지리아의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고, 남들은 일년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한달만에 벌 정도로 성공한다. 하지만 소설의 첫 부분에서 그는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게 된다.


오비 오콩고가 살던 시기에 나이지리아의 공무뭔 세계는 부정부패가 판치는 곳이었었다. 지식인이 된 그는 처음에는 이런 뇌물을 거부하고 서구 식민주의에 저항했지만, 경제적으로 점차 쪼들리게 되고 결국 뇌물 수수죄로 제판을 받게 된 것이다.

[뭣 때문에 교육을 받는 거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가능한 한 최대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잖아. 날마다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 가는 수백만 명의 동포들에 대해서는 눈곱만치의 관심도 없단 말이지.] P.171




게다가 사랑하는 연인이 천민 출신이어서 집안의 강력한 반대로 헤어지게 되고, 자신을 유학보내준 부족 모임에서 눈밖에 난 오비 오콩고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음모였을까? 아님 그가 나쁜 사람이었던걸까? 아님 구조적으로 뭔가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 결과 오비 오콩고는 본인의 이름이 의미하는 ˝마침내 평안해진 마음˝을 얻지 못하고 이제 ˝더이상 평안은 없게˝ 되버렸다.

[왜 그랬을까 모두들 이상하게 여겼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박학다식한 판사는 교육받은 젊은이가 어떻게 저따위 짓을 할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영국 문화원 직원도, 심지어는 우무오피아 사람들도 알 수 없었다. 또한 그토록 확신에 차 있던 그린 씨 역시 알지 못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P.246




낯선 아프리카 문학이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왜 식민사회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 밖에 없는지, 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 역시 타락하게 되는지를 너무 잘 그린 작품이었다. 세상 사는게 어디나 다 비슷한것 같다. 특히 나쁜 쪽으로는 말이다.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어떤 반전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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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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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33

˝눈물 따위로 버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마˝


이 책을 사놓은 건 몇년전이다. 그때는 아직 작가님이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이어서 우주점에 중고책이 많았다. 그래서 그때 영등포점이었던가? 작가님의 책을 중고로 몇개 업어 왔는데, 그동안 안읽고 있다가 아주 뒤늦게 읽었다. 뒤늦게 읽은 소감은... 너무 좋았다. 노벨상 후광효과가 아니더라도 완전 최고였다.


이렇게 슬픔으로만 꽉 채워진 작품이 가능한건가, 이렇게 감정의 높낮이가 없이 계속 높은 밀도의 우울로 글을 쓰는게 가능한건가. 내가 우울한걸 좋아하긴 하지만, 한강 작가님의 우울은 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 작가님의 작품은 계속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은 한강 작가님의 세 단편집 중 두번째로 엮은 단편집으로, 총 여덟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느 하나 빠지는 작품 없었다. 한편 한편 너무 무겁고 여운이 깊게 남아서 연속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 읽는데 오래 걸렸다. 다 좋았지만 그 중 몇가지 인상적인 단편들을 소개해 보자면,




1. 내 여자의 열매

이 작품의 표제작이다. 언제 부터인가 아내의 몸에서 피멍을 보게 된 나는,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다가 계속해서 커지는 멍을 보고 아내에게 병원진료를 권유한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고, 아내는 점점 식물처럼 말라간다. 그러면서 아내에 대한 예정도 점점 식어간다.

[아내의 몸에서 피멍을 처음 본 것은 늦은 오월의 일이었다. 관리실 옆 화단의 모란은 잘린 혀 같은 꽃이파리들을 뚝뚝 밸어대고, 노인정 어귀의 보도블록에는 분드러진 흰 라일락꽃들이 행인들의 구두 밑창에 엉기던 봄날이었다.] P.9


해외출장을 다녀온 어느 날 집이 엉망이 된걸 보게 된 나는, 베란다에 있는 아내가 초록빛을 띠는 나무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다시 아내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아내의 몸에서 석류알과 같은 열매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그 열매를 다른 화분에 심는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서 아내의 몸도 시들어간다. 봄이 오면 아내는 다시 돋아날까?

[어머니,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 거리를 늙고 망가진 얼굴로 떠돌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어요. 고향에서도 불행했고 고향 아닌 곳에서도 불행했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 P.34


=> 처음 읽었을때 느낀 감정은 당혹이었다. 작가님은 무슨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소통의 부재?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 고향, 자연으로의 회귀?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아쉬움? 상당히 어려운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상당히 강렬했다. 채식주의자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여기 실린 다른 단편 중 가장 아름답고 슬픈 문장들이 가득했다.




2.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이는 아빠와 엄마와 함께 푸드트럭에서 장사를 한다. 아빠의 우는 모습이 좋아서 결혼했다는 엄마는 어느날 집을 나간다. 아빠의 의처증에 지쳐서인지, 찢어진 가난에 지쳐서인지, 희망없는 현재의 삶이 지겨워서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아이도 버리고 떠난다. 해질녁의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해질녁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해질녁에 아이는, 여관방 창 너머로 아스라이 사위는 바다를 향해 걸어가고 싶어진다. 흙펄을 핧는 파도의 거품이 흰빛인지 황금빛인지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P.43


이후 아빠는 나를 데리고 엄마를 찾아 다닌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매일 술을 마시는 아빠와 함께 하루하루를 여관방에서 근근히 살아간다. 아빠에게는 더이상 희망이 없고, 아빠는 나와 함께 죽어버리려는 생각까지 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빠는 포기한다. 엄마에 대한 여전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혼자남은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나는 아빠가 밉지 않고 안쓰럽다. 아빠의 슬픔을, 무서움을 이해하니까. 이제 더이상 해질녘 개들의 기분은 궁금하지 않다.

[바닷바람이 아이의 옷 속으로 파고든다. 오그라드는 가슴을 퍼려 애쓰며 아이는 계속해서 걸어간다. 무허가 주택들의 들쭉날쭉한 담벼락들이 흐린 시야 속에서 겹처진다. 해질녁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P.99


=>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아빠와 엄마의 이별 이야기. 엄마가 지겨워하는것도, 아빠가 무서워하는것도 다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함께 갈수는 없었던 걸까? 그들을 헤어지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이 함께 간다는건 그만큼 어렵다. 서로 사랑한다 해도 말이다.




3. 아기 부처

나는 어느날 아기 부처의 꿈을 꾼다. 그 아기부처는 불상이 아니었다. 내 자신의 손으로 주물러서 만들어진 얼굴이 아기 부처의 얼굴이었다. 나는 아기부처의 얼굴을 주무르지만 내가 생각했던 인자한 얼굴은 만들어지지 않고, 빚으면 빚을수록 눈초리는 더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아기 부처 꿈은 무엇이었을까?


주인공인 나에게는 남펀이 있다. 남편은 뉴스 아나운서였고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이었다. 그런 남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는데, 바로 얼굴과 목을 제외하고는 온 몸에 화상을 입어 큰 흉터가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것을 싫어하는 평범한 나는 남편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은 상처를 나에게만 보여준 순간 그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나는 그의 흉터와 용기를 함께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바로 그 흉터가 나에게 안겨준 충격 때문에, 평생 숨기고 싶었을 알몸을 보여줄 만큼 나를 신뢰해준 데 대한 고마움 떼문에 그를 받아들였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P.127


그런데, 견딜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상처투성이의 남편의 육체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연민에서 시작한 사랑이 결혼 후 고통으로 바뀌었다. 나의 이런 고통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느꼈을 것이다. 내가 남편을 피한다는 사실을, 증오한다는 사실을. 남편은 결국 다른 여자를 만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에 오히려 안도감을 얻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의 흉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 흉터 때문에 그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의 흉터가 다만 한 겹 얇은 살갖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다는 것이 내 마음의 얇은 한겹까지 벗겨내주지는 못했다. ] P.134


나는 두번째 아기 부처의 꿈운 꾼다. 이번에 나는 아기 부처의 얼굴 주변을 진흙으로 덮어버린다. 그러나 아기 부처의 얼굴은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서 나를 쳐다본다. 나의 몸이 진흙에 꼬꾸라진다. 이 꿈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나는 결국 남편과 이혼할 결심을 한다. 둘 중 한 사람이 죽지 않는 한 영혼할 거라 믿었던 관계는 그렇게 망가져 버렸다. 육체의 한꺼풀도 극복하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

[삶이 얼마나 긴 것인지 몰랐던 죄, 몸이 시키는 대로 가지 않았던 죄, 분에 넘치는 정신을 꿈꿨던 죄, 분에 넘치는 사랑을 꿈꿨던 죄, 자신의 한계에 무지했던 죄, 그리고도 그를 증오했던 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가학했던 죄.] P.135


어느날 남편이 술에 잔득 취해 들어온다. 그리고 그 여자와 헤어졌다고 말한다. 그 여자는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그 여자는 나를 존경한다는 말을 남편에게 남기고 떠난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관한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였나. 그 어리석음으로 서로를 망쳐면서도 그것을 몰랐나. 그것을 인내라고, 혹은 연민이라고 부르며 믿었으나, 과연 누구를 위한 인내였나.] P.159


그날 밤 나는 마지막으로 아기 부처의 꿈을 다시 꾼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기 부처의 얼굴은 없었고, 아기부처를 이루던 모래알들은 부서져 내렸다. 잠에서 깬 나는 옆에 잠들어있는 남편을 본다. 남편의 흉터에 내 손을 뻗어서 어루만진다. 그리고 내 안에 있던 남편에 대한 증오가 이제 사라진것을 느낀다. 나는 남편의 유자차를 준비한다.


=> 이 단편집에서 제일 좋았던 작품이다. 연민이 사랑이 되었다가 증오가 될때까지 주인공은 남편과의 거리를 두고 방관했지만, 결국 깨닫는다. 문제는 남편의 흉터가 아니라, 남편의 육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고, 내 마음이었다고. 아기 부처의 얼굴은 내 마음에 쌓여있던 증오였다.

증오를 극복하는 것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상대방을 구원하는 것도 결국 내 마음가짐이다. 극복하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갈등은 영원할 수 없다. 긴 겨울을 이겨낸다면 봄은 반드시 올 것이다.




4. 붉은 꽃 속에서

주인공인 선이는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절에 가서 연등회를 본다. 그때 선이른 일곱살, 동생 윤이는 네살이었다. 그 연등회에서 선이와 윤이는 많은 인파속에서 엄마 일행을 놓치고, 나중에 엄마에게 혼난다. 그럼에도 선이는 윤이와 함께 바라본 붉은 연등과 사미니(예비승려)를 마음 깊은 곳에 새긴다.

[그때 그는 자신이 언젠가 일 년에 하루뿐인 초파일을 아쉬워했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일 년에 하루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만큼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을까.] P.260


일년후 다시 연등회를 찾았지만 작년과 달라진게 있었다. 동생 윤이가 사고로 죽은 것이다. 이제 여덟살인 선이는 동생이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매년 선이는 연등회에 가서 윤이를 추억한다. 그리고 현실에 허무함을 느낀 그녀는 여승이 된다. 이제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깨달음과 평안을 얻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다.

[신기한 것은, 순서 없이 떠오르는 그 기억들 속에서 어떤 감정이 솟아났을 때 그것을 잠자코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래서 그 감각과 생김새를 찬찬히 헤아리고 나면 어느 사이 그것이 사라져 있곤 한다는 것이었다. 사라지고 난 밝고 빈 마음속에서 그는 잠시 쉬었다. 다시 기억이나 감정이 솟으면 그것을 들여다보았고, 사라지고 나면 다시 쉬었다. 선방에서 나와 잠시 경내를 걸을 때면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폭우에 씻긴 듯 또렷해져 있곤 했다.] P.284


속세에서 동생 윤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가정과 학교에서 사랑받았지 못한 아픔을 가진 선이는, 이제 승려가 되어 깨닫는다. 모든 감정에는 육체가 있다고, 눈으로 보이는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불빛은 제가 불빛인 줄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P.287


=> 이 단편집에서 가장 쓸쓸한 작품이었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종교적으로 승화한 작품인데, 불교에 대한 전문용어를 모르더라도 그 슬픔과 체념이 잘 전달되었다. 그날 윤이와 함께 바라본 붉은 꽃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무언가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그 속에 추억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다 한결같이 여운이 깊게 남는 작품들이었다. 앞으로 한달에 한권씩만 한강작가님의 작품을 읽어야 겠다. 두권씩 읽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안될거 같다... 하지만...아직 안읽은 한강 작가님 책이 많아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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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4-13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사람 사는 것에 우울하고 힘든 요소가 더 많지 않나 생각되어요.
그것을 잘 포착하는 것 같아요.
한강 작가의 책탑, 멋져요^^

새파랑 2025-04-13 22:15   좋아요 1 | URL
한강작가님 작품 너무 우울합니다 ㅜㅜ 이제 다섯권 읽었는데 올해 안에 다 읽을 수 있을거 같습니다~!!

자목련 2025-04-14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집, 애정해요! 저는 초판을 가지고 있는데 혼자 대견하고 뿌듯해요^^
근데 개정판도 갖고 싶네요. ㅎ

새파랑 2025-04-15 07:54   좋아요 0 | URL
초판 부럽습니다 ㅜㅜ 저 알라딘 우주점 가면 일단 초판인지 보는데 ㅋ 좋아하는 작가의 초판을 모으는거 너무 좋아요~!! 이 소설집 진짜 대박입니다~!!!

독서괭 2025-04-14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새파랑님의 한작가 책탑 시리즈 멋지네요!! 두권씩 읽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될 것 같다는 말씀에 ㅎㅎㅎ 저는 세권 읽었는데 더 읽어야하는데 말입니다 ㅜㅜ

새파랑 2025-04-15 07:56   좋아요 1 | URL
아직 김연수 책탑이 남아있습니다 ㅋ
독서괭님은 일단 한달에 책을 열권씩 사야합니다~! 다음 한강작가님 책은 뭘 읽어야할지 고민입니다 ㅋ

그레이스 2025-04-18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강은 다 갖고 있는데,,, 반갑네요 ㅎㅎ
영문책도 몇권!
<내여자의 열매>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입니다.
 

N25029~30

˝무서워하지 말아요. 당신이 만약 영원히 상실된다 해도,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내 마음속에서 당신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거 하나는 꼭 잊지 말아요.˝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다. 그의 에세이 보다는 소설을,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 팬이다. 같은 작품의 개정판이 나오면 사모으는 것도 좋아하는 팬이다. 하루키의 장편 시리즈는 2~5회 사이로 재독한 팬이다.


그 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특히 의미있는 작품이다. 왜냐면 내가 대학교때 하루키의 첫 책으로 읽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사상사 구판(알라딘에서 검색도 되지 않는다...), 민음사 합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이렇게 세가지 버젼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핀볼>, <양을 쫓는 모험> 쥐 3부작 이후 나온 작품으로, 환상적인 모험을 보여주는 하루키 스타일이 시작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교훈? 감동? 그런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스토리 자체가 정말 재미있고 구성도 탄탄하다. 게다가 하루키 주인공 특유의 쿨함이 잘 담겨 있어서 유쾌하고, 두꺼운 분량에 비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한 통도 들어 있지 않았다. 전화기에도 녹음된 메시지는 없었다. 아무도 내게는 볼일이 없는 것 같았다. 상관없다. 나 역시 아무에게도 볼일이 없다.]  P.111(1부)




정직한 제목처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두개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닿을듯 말듯 하면서 평행하게 진행되나, 결국 닿지는 못한다. 왜냐면 ‘세계의 끝‘은 내 머리속에 존재하는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비정한 현실의 이야기니까.

[˝그게... 어떤 세계죠?˝ 나는 박사에게 물었다. ˝그 불사의 세계 말입니다.˝, ˝평온한 세계예요. 자네 자신이 만들어 낸 자네 자신의 세계이지. 자네는 그곳에서 자네 자신일 수 있어. 그곳에는 모든 것이 있고 또 모든 것이 없어. 자네는 그런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겠나?˝]  P.121(2부)




주인공인 ‘나‘가 비정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살아가는 동시에 ‘나‘의 머리속에는 ‘나‘가 인지하지 못하는 또다른 자아인 ‘세계의 끝‘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후 ‘원더랜드‘의 ‘박사‘는 나에게 ‘셔플링‘이라는 것을 진행하고, 이 ‘셔플링‘에 의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미묘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나‘에게 심어진 죽음의 스위치도 함께 켜진다.

[˝그러나 자네는 그 세계에서, 자네가 여기에서 잃은 것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자네가 잃어버린 것과 잃어 가고 있는 것들을.˝]  P.103(2부)




‘셔플링‘ 때문인지 ‘나‘는 ‘세계의 끝‘에서 ‘문지기‘에 의해 ‘그림자‘를 잃게 된다. ‘문지기‘는 ‘박사‘의 ‘셔플링‘효과를 의미하고, ‘그림자‘는 현실세계인 ‘원더랜드‘‘‘의 추억 또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나‘는 더이상 현실세계를 살아갈 수 없다.

[˝두려워할 일은 없어. 이건 죽음이 아니야. 알겠나? 영원한 삶이지. 그리고 그곳에서 자네는 자네 자신이 되는 거야. 그에 비하면, 지금 이 세계는 겉보기만 그럴듯한 환영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걸 잊지 말게나.˝]  P.127(2부)




‘나‘에게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현실인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의 죽음이냐, 아니면 내 머리속의 무의식인 ‘세계의 끝‘에서의 불멸 중 하나에서 말이다. 과연 ‘나‘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그렇게 멋진 세계인지 어떤지는 나도 몰라.˝ 그림자가 말했다. ˝그러나 그곳은 적어도 우리가 살아야 할 세계야.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도 있고. 너는 그곳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거기에서 죽어. 네가 죽으면 나도 사라져.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야.˝]  P.308(2부)




오랜만에 다시 읽은 이 작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즐거움 보다는 쓸쓸함이었다. 주인공인 ‘나‘는 쿨해 보이지만 사실은 소중한걸 잃어버린, 아니 소중한게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소중한게 없는 사람에게 삶이라는게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현실인 ‘원더랜드‘에서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한건지도 모른다. 그나마 ‘나‘의 자아의 세계인 ‘세계의 끝‘에서는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데, 그곳에서나마 ‘쿨함‘을 벗어 던지고 쓸쓸하지 않게 살아가길 바래본다.

[좀 더 젊었던 시절, 나는 그런 슬픔을 어떻게든 언어로 환치해 보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언어를 늘어놓아도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는 없었고, 나 자신에게도 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나의 언어를 닫고, 나의 마음을 닫았다. 깊은 슬픔이라는 것은 눈물이라는 형태조차 띨 수 없다.]  P.318(2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야 말로 비정한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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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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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27

˝당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은 당신에게 그 가치를 되돌려 준다. 그것은 오직 당신만의 것이고, 그렇기에 곧 당신 자신이 된다.˝


내가 보뱅을 좋아하는걸 플친들은 대부분 아실거다. 왜 보뱅이 좋냐고 하면 주변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 한사람을 향한 순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가벼운 마음, 그 무엇도 계산하지 않는 순수함이 글에서 그대로 느껴져서 이다. 요즘 시대에 이런 글을 만나기가 어디 쉬운가. (비슷한 느낌의 국내작가로 김연수 작가님이 떠오른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른 이의 시선과 생각이라는,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 절망했던 푸르른 섬들에 다다르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그녀처럼 사랑하는 것은 더욱 감미로운 일이다. 부재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랑,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사랑.] P.51



하지만 이전에 출판된 보뱅의 <마지막 욕망>을 읽고 좀 당황했었다. 내가 생각하던 보뱅의 글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우울하고 너무 흑화되어서 읽는게 힘들었다. 보뱅도 이렇게 우울함을 느끼는구나, 보뱅이 쓰는 문장과 다르게 그도 속마음으로는 힘들구나 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앞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좋지도 않았다... 기존에 국내에 출판되었던 작품들의 개정판이 나오는걸 보고 이제 국내에 출판할만한 보뱅의 다른 좋은 작품은 없겠구나 라고도 생각 했다. 이제 마지막이라니.....



그래서 <빈 자리>가 출판되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었으면 아마 진작에 출판되었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예전 같았으면 발매되자마자 바로 구매했겠지만, <빈 자리>는 몇주 지나서 구매했다.(그래봤자 한달 안에 구매함 ㅋ) 그런데 다 읽고 나서... 늦게 구매한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할 수 밖에 없었다. 보뱅은 보뱅이었다. 보뱅이 보뱅했다. 이건 너무 좋아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지친다. 그래도 ‘그것‘ 그 초목의 잎, 그 빛, 그 이름이 있다. 때때로 당신은 그것을 마땅히 그래야 하듯, 그것이 요구하는 대로 따로 떨어져 고요 속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이 낡지 않고 변치 않았음을 보게 된다. 당신이 선택했던 처음 그날처럼 빛나고 있음을.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그것이 당신을 선택했고, 당신을 비추며, 당신을 그 자리에 머무르도록 붙잡고 있음을.] P.70



누군가의 ‘빈 자리‘를 이렇게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누군가의 부재를 슬퍼하기 보다는 그것 하나 만으로도 추억이라고,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보뱅 이고 이 책 <빈 자리>가 바로 그 증거다.

[그것 외에는 쓸 것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에서 노래할 것은 삶 속에서 사라진 사랑뿐이니까 그 사랑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죽어가는 꽃의 향기를 모으듯 글을 쓴다. 치유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꽃잎 위의 갈색 반점, 곧 사라질 젖니에 깨물린 흔적 같은 자국, 지울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기다림 외에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P.82



<빈 자리>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다. 하지만 한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소설식으로 리뷰하자면 이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날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알게 되고 그 여자를 마음에 품는다. 하지만 그 여자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고, 단지 옆에서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남자는 곁에 있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 어느날 그녀는 죽는다. 존재하던 빈자리에서, 부재하는 빈자리가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슬퍼하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그녀를 추억하고, 그림속에서 책속에서 일상속에서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의 빈자리는 슬픔이 아닌 짧은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



보뱅을 의심한 내 자신을 다시한번 반성하며, 봄이라는 계절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힘든 시기를 견뎌낸 봄과, 지고지순한 사랑과, 보뱅의 아름다운 문장은 많이 닮아보인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슬픔 까지도 말이다.

[당신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늦장 부리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술도 한 잔 마신다. 그러고는 말하지 않은 한 가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삶에서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 일 년은 한번 짓는 미소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고 십 년은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당신에게 남겨지는 것은 단 하나의 행운, 단 하나의 축복뿐임을 생각한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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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03-30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리뷰 참 따뜻하네요.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더 확실해 졌어요.

새파랑 2025-03-30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뱅 정말 좋습니다~! 곰돌이님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ㅋ 조만간 보뱅 책탑 리뷰를 한번 써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5-03-30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뱅은 읽어야 할 숙제 같은 작가인데 아직 입니다. 빈 자리도 기대되네요^^

새파랑 2025-03-30 18:33   좋아요 1 | URL
보뱅은 페넬로페님 취향이실거라 확신합니다~!! 가끔 매운 작품 읽다가 순한 작품 생각나실때 읽으시면 좋을거 같아요~!!

희선 2025-04-01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보다 먼저 나온 책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 책은 살지 말지 하다가 샀군요 그래도 아주 늦게 사지 않았네요 이 책은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군요


희선

새파랑 2025-04-01 10:12   좋아요 1 | URL
완전 마음에 듭니다. 너무 좋습니다~! 역시 살까말까 망설일때는 사는게 답인거 같아요~!!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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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26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작년 한강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었을 시간에 나는 한 카페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청춘을 읽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하루하루 소모가 반복되던 날들 중 그래도 나름 의미가 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뭐 이후에는 계속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기는 했지만...


나는 2024년에 한강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거라고 예상은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온다면 한강작가님이 받을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당시에 내가 읽은 한강 작가님 작품은 <채식주의자>, <희랍어시간>, <작별하지않는다> 단 세편이었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인상적이었고, 특히 시적인 문장과 기존 한국문학에서 느끼기 힘든 특유의 깊은 어둠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알라딘 우주점에 가서 안읽은 중고책을 하나둘 모으고 있었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지만 더이상 못읽는 와중에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신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행타는걸 선호하지 않아서 한강작가님 신드롬이 한창일때는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그동안 못읽고 있었다가, 이제 유행이 좀 가라 앉아서 다시 읽으려고 마음을 잡고 선택한 작품이 <소년이 온다>였다.


사실 이 작품이 한강 작가님의 대표작인건 알고 있었지만 손이 가질 않았다. 역사배경의 소설을 선호하지 않고, 5월 광주에 대해서는 많이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게 나의 독서 인생 가장 큰 실수였다. 바로 <소년이 온다>를 이제야 읽었다는 것. 만약 이 책을 한강 작가님의 첫 작품으로 읽었더라면 나는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이전에 작가님의 모든 책을 구매하고 읽었을거라 확신한다. 아 바보같이 나는 왜 이제서야 <소년이 온다>를 읽은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읽은 한국 문학중 단 하나, 최고의 작품을 말하라고 하면 <소년이 온다>를 고를 것이다. 왜 한림원에서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번을 쉬지 않고 무겁고 아프게 느껴지는 작품은 처음이었다. 텍스트 만으로 이렇게 깊은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니, 문장 문장하나가 마치 실제 장면처럼 그려질 수 있다는게 너무 놀라웠다. 영상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을것 같은 감정의 깊이. 이게 바로 문학의 힘,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소년이 온다>는 6개의 장과 마지막 에필로그로 그성되어 있는데, 1장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어느 장 하나 빠지지 않고, 이야기는 촘촘히 이어진다.




<1장> 어린 새 : 동호

2인칭 시점으로 화자가 주로 관찰하는 대상은 이 책의 주인공인 아직 중학생인 소년 ˝동호˝다. ˝동호˝는 친구인 ˝정대˝와 함께 시위대가 행진하던 광장에 있었지만, 군인들의 총격에 강제로 해산되고, ˝정대˝가 옆구리에 총을 맞는것을 본다. 이후 ˝동호˝는 ˝정대˝를 찾기 위해 사망자들이 안치되어 있는 상무관으로 가고, 그곳에서 이후 이아기의 주인공들인 ˝은숙˝, ˝선주˝, ˝진수˝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P.17


˝동호˝는 친구 ˝정대˝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게다가 ˝정대˝의 누나인 ˝정미˝도 실종되었다. 이제 곧 무장한 군인들이 이곳 상무관으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동호˝는 친구와 누나를 찾아서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자신까지도.] P.45.




<2장> 검은 숨 : 정대

2장은 군인이 쏜 총을 맞아 사망한 ˝정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망한 다수의 시민과 함께 군인들에 의해 포개져 방치된 ˝정대˝의 영혼은 자신의 육신을 떠나지 못한다. 썩어가는 시신들에 대한 묘사는 너무 사실적이서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머리속에 그려지는 그들의 육신, 나의 심장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고통. ˝정대˝의 영혼은 친구 ˝동호˝의 죽음을 느낀다.

[어디선가 누나의 혼도 어른거리고 있을 텐데, 그곳이 어딜까, 이제 우리한텐 몸이 없으니 만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을텐데. 하지만 몸 없이 누나를 어떻게 만날까. 몸 없는 누나를 어떻게 알아볼까.] P.51


5월 광주의 잔혹한 참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이 2장이라 생각한다. 아무 잘못도 없이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들, 그들의 빼앗긴 인생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단지 그곳에, 광주의 광장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억울한 혼은 아직 여기에 있다. 지금도 남아 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57




<3장> 일곱개의 뺨 : 은숙

3장 부터는 5윌 광주 이후 육체와 영혼의 상처를 가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3장의 주인공은 당시 고3 여학생이었던 은숙이다. 그녀는 계엄군이 상무관을 무장진압하기 직전에 시민군들과 대학생 ˝진수˝의 배려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함께 싸우고 싶었던 마음과 함께 살아남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은숙.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P.89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출판사 직원이 되어, 5월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한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국가의 지속적인 감시와 검열 때문에 그 책 내용의 대부분은 삭제되고 만다. 그럼에도 책의 내용은 연극으로 상영된다. 삭제된 부분은 소리로 전달되지 않고 단지 입술의 모양으로만 표현된다. 하지만 이 책의 원고 교정을 했던 은숙은 이들이 말하려는 내용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연극 속에서 소년을 본다, 그리고 동호를 떠올린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른지 못 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꽃은 양초 불꽃들이.] P.102




<4장> 쇠와 피 : 진수

4장은 그날 이후 살아남았던 대학생 ˝진수˝에 대한 이야기로, 그와 함께 고문을 당하고 감금된 나의 회고로 진행된다. 당시의 비인간적인 고문은 작가님의 문장을 통해 그 아픔과 비참함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정말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괴롭히는게 가능한걸까? 사실이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증거니까.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럽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4


˝진수˝는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형량은 무의미했다. 국가에서 그들을 특사로 석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가는 그들에게 사죄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았지만, 감옥 밖에서 형량을 사는것과 다르지 않았다. 5월의 아픔과 감옥에서의 치욕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 매일 매일 술로 버티던 ˝진수˝는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된다. 죽음밖에는 답이 없었던 살아남은 자의 아픔. 결국 국가가 그에게 선고한건 7년형이 아니라 사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아니, 그런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던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던 걸 증명한 거야.] P.130




<5장> 밤의 눈동자 : 선주

5월 광주에서 시민군에 가담해 저항하다 옥살이를 한 ˝선주˝가 주인공이다. 감옥에서 나온 그녀는 한 사회단체에서 묵묵히 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날의 아픔과 치욕속에서 쥐죽은듯이 조용히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윤˝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 5월 이후 몇십년만에 말이다. 그는 당시 여성으로 구속된 그녀에게 증언을 부탁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그녀 스스로 증언하는게 가능하긴 한 걸까? 악몽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뿐인데 말이다.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있다고 중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살아남기 위하여] P.167




<6장> 꽃 핀 쪽으로 : 동호 어머니

6장은 이제는 늙은 ˝동호˝의 어머니가 ˝동호˝에게 쓴, 보낼 수 없는 편지다. 너무 그리워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동호˝를 본 것 같았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는 ˝동호˝라고 믿는다.

[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 줄라고 온 것인디, 늙은 내가 너를 놓쳐버렸어야. 시장통 좌판 사이로, 골목골목으로 한시간을 뒤지고 댕겨도 없어야. 무릎 속이 쑤시고 어질어찔 골이 흔들려 바닥에 주저앉았다이.] P.179


자식을 먼저 보낸, 그것도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식을 둔 부모님의 아픔은 얼마나 클까? 자식잃은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이 세상에 없다. 어머니는 그때 ˝동호˝를 상무관에서 데리고 나오지 못할걸 아직도 후회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억속에 ˝동호˝는 여전히 어린아이다, 그시절 그대로. 어머니의 시간은 여전히 1980년 5월 광주에 멈춰있다.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끝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에필로그는 작가님이 이 책을 쓴 계기와 다짐이 실려있는 장이다. 난 여지껏 이렇게 비장한 에필로그는 본적이 없다. 1980년 1윌 작가님은 서울로 이사오고, 이후 친척들로 부터 5월 광주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르 듣게 되며, 우연히 당시의 참상이 담긴 사진집을 보게 된다. 이후 작가님은 5월 광주의 흔적을 찾아간다. 그리고 ˝동호˝의 이야기를, 5월 광주의참상을 쓰겠다는 다짐을 한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서아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씨주세요.] P.221






그 날 이후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은 다 다르지만 그들이 겪은 아픔은 모두 이어진다. 과거 그들이 겪은 아픔은 한강 작가님의 펜을 통해 현재 우리의 아픔으로 이어진다. 이런게 문학의 힘이자 역할이라 본다. 역사는 단절될 수 없는 것이다.과거는 단지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P.95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참상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책의 뒷면에서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 이라고. 격하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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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3-19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빠져나오기가 힘들죠
한강 작품은 다 그런거 같아요 ㅠㅠ
전 아직 리뷰 못 쓰고 있어요.

새파랑 2025-03-19 21:50   좋아요 1 | URL
저도 이 뛰어난 작품을 리뷰 쓰는게 부담이 되긴 했는데 그래도 왠지 기록하고 싶어서 써봤습니다 ㅜㅜ 리뷰 쓴다고 다시 읽는데도 너무 우울하네요 ㅜㅜ

명작입니다~!!

페넬로페 2025-03-20 0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읽다가 몇 번이나 멈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새파랑님께서 한강을 뛰어넘는 작품이라고 하시니 저도 재독해야 할 것 같아요^^

새파랑 2025-03-20 14:54   좋아요 1 | URL
독보적이다는 느낌이 듭니다 ㅋ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몰입감도 좋고 ~! 이런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다니 너무 좋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03-20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도 여운 있게 읽으신 것 같아 좋네요. 특히 이 작품은 제가 처음으로 읽었던 한강 작품인지라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아프지만 꼭 읽어야 할 소설이에요^^

새파랑 2025-03-20 08:00   좋아요 0 | URL
역사 전문가 화가님 ㅋ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읽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25-03-24 0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오고 열해가 넘었군요 저도 아직 못 봤네요 언젠가 보기는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때 일을 경험한 사람은 그걸 잊지 못할 듯합니다 경험하지 않았다 해도 잊지 않아야 하는 일이군요


희선

새파랑 2025-03-26 21:04   좋아요 0 | URL
이 작품 희선님은 완전 좋아하실거 같아요. 감정이 점점 고조되기 보다는 처음 부터 끝까지 계속 강렬한 아픔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제 읽으셔야 합니다 ㅋ

페크pek0501 2025-03-2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읽었지만 리뷰를 쓸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새파랑 님은 꼼꼼히 잘 쓰셨네요. 이 소설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는데 한강 작가는 더욱 아파하며 소설을 썼을 거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죠. 아파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 같았으니까요. 등장인물들의 분신이 되어 쓴다고나 할까... 저도 5 18에 대한 소설, 영화를 많이 봐서 더 이상 안 봐도 될 것 같아서 노벨문학상 수상이 없었다면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 듯해요. 위대한 쾌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