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너무 즐겁다.

날씨 핑계 대지 말 것 - P27

공을 끝까지 보세요 - P42

언제 어떻게든 공은 날아온다. 공이 라인 근처에 애매하게 떨어지고 있다면 일단 준비하자. 공을 칠까 말까 할 땐 치는게 차라리 낫다. 라인은 생각보다 두껍다. 그리고 라인 위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두꺼운 라인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코트 위에 선 자의 문이다. 그 선택이 인생에서 어떤 포인트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삶이라는 코트에서 조금씩 이기는 유일한 방법 같다. - P70

제3의 장소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공간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중립적인 성격을 지니며, 대화가 중심이 된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개개인을 존중해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휴식과 재충전이 가능하다.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가 근본적으로 집과 다르지만, 심리적인 편안함과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집의 성격과 흡사하다고 덧붙였다. - P87

테니스를 같이 치는 건 상황에 따라 이루기 쉽기도, 어렵기도 하다. 우선 코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시간을 맞춰야 한다. 여기에 실력이 비슷해야 원만한 게임이 가능하다. 누군가 테니스 동호회(이하 클럽)에 속해 있고 그 클럽이 손님을 받는다면 상대를 정기 모임에 초대할 수도 있다. 하나라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 한번 밥 먹어요"처럼 지나가는 말이 되어버린다. - P95

달리기나 수영 같은 건 자기 혼자 못하거나 천천히 해도 괜찮아. 테니스는 상대가 없으면 못 쳐. 본인이 못 치면 상대가 잘 안 해주려고 들어. 우선 랠리가 돼야 하니까. 공 한 번씩 넘기고 끝나면 재미없잖아. 세 번, 다섯 번 넘기고 또 열 번씩 넘기고 그래야 홍도 나고 재미가 있지. 그럴 때 희열을 느낀단 말이야.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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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커포티 선집 3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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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55

"내가 찾아낸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인 건 그저 택시를 잡아타고 티파니에 가는 거에요.


그런 사람이 있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 그들은 한곳에 머물수 없다. 잠시 붙잡아 두더라도 곧 떠난다. 그럼에도 슬퍼하거나 실망할 순 없다.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좋아했던 거니까.


트루먼 커포티 전작읽기 세번째 작품으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읽었다.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도 있다는데 보진 못했지만 나도 제목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건 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으로만 읽어도 매력적인데 영상으로 보는 오드리 햅번의 '홀리 골라이틀리'는 얼마나 매력적일까.

["난 절대 추태를 부리지 않을 거야. 게다가 맹세컨대, 홀리를 두고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네. 그런 생각 없이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 사랑하면서도 낯선 사이로 남을 수 있어. 친구이면서 낯선 사람."] P.18




이 책은 작가이자 화자인 '나'가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십여년 전에 뉴욕을 떠난 '홀리 골라이틀리'를 떠올리면서 시작한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살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히피와 비슷한 느낌?

[언뜻 보기에는 보통의 원시 목각과 닮았다. 하지만 원시 조각은 아니었다. 여기 있는 이 조각은 홀리 골라이틀리를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검은색 물체가 사람을 닮을 수 있는 한계에서는 최대로 닮았다.] P.14




매력적인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대부분은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다. 연애인 매니저, 재벌, 심지어 감옥에 갖혀있는 죄수까지도. 그녀는 배우로 성공할 수도 있었고 재벌집 부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안락한 생활 대신 술집과 사교계를 전전하며 그들에게 돈을 받고 생활한다. 여왕벌처럼 군림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허름한 아파트 윗집에서 지낸다.

[난들 부자고 유명해지는 게 싫겠어요? 그것도 내 계획에 있답니다. 언젠가는 거기까지 이르도록 노력할 거고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난 내 자존심이 졸졸 따라왔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느 맑은 날 아침 '티파니'에서 아침을 먹는다고 해도 여전히 나이고 싶어요.] P.55




같이 사는 사람은 자주 바뀐다. 그리고 비좁은 그곳에서 매일 파티를 연다. 그녀를 추앙하는 많은 사람들이 매번 모인다. 그들 사이에서 질투가 날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말 그들은 '홀리 골라이틀리'를 추앙한다. 도대체 어떤 매력때문에 아무 남자나 만나고 다니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끌리는걸까?




아마 어느 곳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며, 법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바라볼때 생기는 동경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고양이에게 이름도 붙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지 않아서, 언제든 떠나야 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독립된 존재니까.




하지만 마음 한켠에 불안한 마음은 있다. 어느곳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만 살았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면 어쩌나 하는 것. 그녀는 마약사건에 연루되어 어쩔수 없이 뉴욕을 떠나게 되면서 이런 걱정을 잠시 한다. 과연 그녀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티파니에서 아침을' 볼 수 있을까?

["나 너무 두려워요. 친구. 그래, 드디어. 이런 식으로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으니까. 내던져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게 내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야. 심술굿은 빨강,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P.154




그녀가 어디에 있든 언젠가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기를 바래본다. 그녀의 고양이가 결국 자신의 안식처를 찾은것처럼.

[그는 따뜻해 보이는 방안 창문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고양이의 이름이 무얼까 궁금했다. 이제는 분명히
이름이 생겼을 테니까. 분명히 어딘가 자기가 속할 수 있는 자리에 다다랐을 테니까. 아프리카 오두막이든 어디든, 이젠 홀리도 그런 자리를 찾았기를 바랄 뿐.]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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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6-0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안 보셨다구요?
얼른 영화보시길요, ㅎㅎ
오드리 헵번도 멋지고
남자 주인공도 좋아요^^

바람돌이 2025-06-0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영화를 안본분을 만나다니... 안본 눈 부럽습니다. ㅎㅎ 근데 책에서 보여지는 홀리와 영화속 홀리는 좀 다르네요. 영화를 본지 오래돼서 긔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요. ^^
 

작가님의 작품노트. 정원을 가꾸는 작가님의 모습이 상상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 P10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ㅡ 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ㅡ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 P12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 P19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P19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P21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 P25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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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49
짐 크레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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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52

"<행복한 죽음>을 그렇게 쉽사리 강탈당히는 결과를 자초한 것은 너무 무책임했다. 고통과 노년의 유동적인 세계에 도달할 때까지 기를 쓰고 나아갔어야 했다. 꿋꿋하게 참고 견뎌서, 침대에서의 편안한 죽음이라는 정당한 보상을 받으려고 애썼어야 했다."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어떻게 살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을것인가도 중요하다. 당장 내일 무슨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죽음의 순간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갑작스럽게 죽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이 다가왔을때 마음을 준비할 시간, 정리할 시간, 작별의 시간이 주어지길 바랄 뿐이다.


짐 크레이스의 <그리고 죽음>은 내가 생각하는 죽음과 정반대인, 최악의 죽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직전에 읽은 한강작가님의 <작별>이 정신적으로 아름다운 죽음을 보여준다면, <그리고 죽음>은 육체적으로 적나라한 죽음을 보여준다. 이런게 죽음이라고?

[여러분이나 나 같은 동물의 수명은 겨우 90년입니다. 거북보다 휠씬 짧지요. 우리는 거북보다 먼저 죽어야 합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거북보다 먼저 죽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으니까요. 우리의 탄생은 죽음으로 들어가는 관문일 뿐입니다. 갓난아기가 태어날 때 큰 소리로 우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이 말을 필기하지 마세요. 사람은 살기 시작하는 순간 죽기 시작합니다. 삶은 자궁에서 시작되는 내리막길, 정자가 난자를 만나 달라붙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내리막길입니다.] P.49




작품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주인공인 50대 부부인 남편 조지프와 아내 셀리스가 죽어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적이 없는 바닷가 모래언덕 뒤에서 옷을 입지 않고 있는 두 부부가 육체가 심하게 회손된 상태로 죽어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부부는 거기서 뭘하고 있었던 걸까? 왜 옷을 벗고 있었던 걸까? 누가 죽인 걸까? 이후 왜 그들이 거기에 갈 수 밖에 없었는지 왜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발견된건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변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런데 하고 많은 부부들 중에 하필이면 그 두 사람이.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열정의,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희생자가 되어,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두개골이 함몰된 그런 꼴로 발견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만한 나이에 그만한 학식을 가진, 볼품이라곤 없는 남녀가 야외에서 섹스와, 그리고 살인과 맞닥뜨리게 될줄 어느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P.9




30년전 부부는 자신들이 살해된 그 장소에 있었었다. 당시 부부를 포함한 생물학자 여섯명(남4, 여2)은 이곳 근처의 연수원에서 처음 만났다. 혈기왕성한 20대 생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분야인 생물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연구와는 별개로, 혈기왕성한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짝짓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실 남편 조지프에 대한 아내 셀리스의 첫인상은 안좋았다. 남편은 겉보기에도 남자답지 않아 보였고 범생이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내 셀리스는 다른 남자들을 욕망하였지만 그들은 셀리스보다는 다른 여성 생물학자인 페스타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어찌어찌하여 조지프와 셀리스는 눈이 맞게 된다. 그냥 그렇게 끝났으면 다행인데 문제가 생긴다. 그들의 방관 혹은 사소한 실수로 큰 사고가 발생하여 동료중 한명이 죽은 것이다. 게다가 큰 사고가 일어난 순간에 두 부부는 자신들이 (미래에) 죽는 모래언덕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 사고는 아내인 셀리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남편인 조지프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첫사랑이었던 아내와 사랑을 나눴던 그 모래언덕을 소중한 추억의 장소로 생각해서 사고가 난 이후에도 혼자서 찾아가곤 했던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아내와 함께 해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당연하다. 첫 만남이 최고다. 바리톤만에 갑시다. 옛 추억을 위해서. 죽기 전에. 그는 수천 번이나 제의하곤 했다. 그러나 셀리스는 단 한 번도 동의하지 않았다. 조지프를 만난 그 주일과 그들의 첫 섹스를 회상하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그 주일을 생각하면 페스타와 화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열정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사랑이 어떻게 불을 지를 수 있는지를 새삼 기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P.180




30년 후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시작된 곳이지만, 타인이 비극으로 끝난 그 모래언덕을 찾아간다. 그르고 거기서 살해당한다.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왜 그들이 갑자기 거기에 간건지 이유가 나온다. 모래언덕에서 아내 셀리스의 성욕으로 인해서 두 사람이 사랑이 시작되었다면, 30년 후 남편 조지프의 성욕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이 끝난 것이었다.

[그들의 이력은 확정되있다. 앞으로 일어 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덧붙일 것도 없다. 그들이 죽은 날짜는 기록되었고, 그것은 결코 지울 수 없다. 아무것도 바뀌거나 수정될 수 없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죽지 않은 이들의 심정이나 그들이 지어내는 신화뿐이다. 그것이 세상이 존재하는 유일한 <최후의 심판일>이다. 뒷궁리가 주는 이익. 죽은 사람들 자신은 추억을 박탈당한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P.194




두 사람은 모래언덕에서 서서히 썩어간다. 다양한 생물들은 그들을 부패시킨다. 죽은 그들에겐 더이상 존엄이 없다. 그저 죽은 생물체이자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었다. 딸인 실비는 연락이 안되는 부모를 찾아 나선다. 처음에는 걱정하지 않았지만 점점 죽음을 예감한다. 결국 경찰이 바닷가에서 썩어가는 부부를 발견한다. 딸인 그녀는 부모의 비참한 죽음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실비는 엄청 슬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모의 죽음으로 해방을 느낀다. 이또한 죽음의 아이러니 인걸까?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아흐레째 되는 날 해질 녁에는 그곳에 뿌려진 생명과 사랑의 흔적들은 모두 사라졌다. 자연계가 홍수처럼 되돌아왔다. 우주의 화려함이 되돌아왔다. 모래 언덕에 잠시 머문 조지프와 셀리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흙 속에 남아 있다 해도, 그것은 풀의 활기 찬 속삭임을 북돋워 줄 뿐이다.] P.209




살해 과정과 사체가 부패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해서 막 추천하기에는 꺼려지는 작품이지만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다. 새로운 스타안의 책을 만나고픈 분들에게만 추천하고 싶다. 어차피 인간도 생명체일 뿐이다. 죽으면 결국 생태계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살아있을때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 죽음도 잘 준비하고. 죽으면 다 끝이니까. 죽음은 모든 생물에게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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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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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N25051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작별이라는 단어거 이렇게 슬픈 건지 몰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영원할 수 없다. 문학이나 노래 등 예술에서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건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든 헤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만남과 작별의 순간들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않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로 한강작가님의 단편 <작별>은 시작한다. 왜 하필 눈사람일까? 작가님께서 <흰>이라는 소설에서 보여준 것 처럼 '흰색'인 '눈'이 순수하고 연약하며 죽음을 상징하고, '눈사람'은 겨울이 지나면 녹아서 없어질 수 밖에 없는 사물이다. 그렇다면 '눈+사람'은 이런 흰색의 특성을 보여주는 인간의 죽음을 말하려고 했던걸까?

[이게 혹시 마지막인가. 그녀는 문득 의문했고, 살아오는 동안 두어 차례 같은 의문을 가졌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그때마다 짐작이 비껴가곤 했는데, 기어이 오늘인가.] P.17




연인을 기다리다가 깨어나 보니 눈사람으로 변한 '그녀', 그리고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연인 '현수'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지만 이윽고 그녀를 만나고 나서 진짜임을 안다. 그는 그녀에게 짧게 입을 맞추지만 그녀는 그녀의 입술과 혀가 조금 녹는걸 알아차리고 뒤로 물러선다. 그녀는 죽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주변사람에게 작별을 준비한다.

[어느 쪽이든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전까지 없었던 무엇인가가 두 사람의 사이에 생겨난 이유를. 보이지 않는 길고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그들을 연결하는 실체로서 존재하게 되고, 그 실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가 몸 어딘가에 더듬이처럼 생겨난 까닭을.] P.30




그녀는 그를 잠시 내버려두고 아들 '윤'을 만나러간다.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서 십년째 키워온 아들은 눈사람으로 변한 엄마를 보고 놀라면서 어떻게든 그녀를 되돌리기 위한, 그녀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떠올려본다. 경찰에 신고해볼까? 병원에 가볼까? 냉동고에 들어가볼까? 남극이나 북극으로 가볼까? 당장 내일 날이 풀리면 엄마가 녹아버리는건 아닌지 아들은 걱정하고, 그녀는 그런 아들을 안아준다. 그러면서 가슴과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새어 나오는걸 느낀다.


추운 겨울이기 때문에 그녀는 아들을 다시 집으로 들여보낸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과거 스쳐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직장에서의 차별, 오빠의 괴롭힘과 자살, 남편과의 이별. 괴로웠던 지난 과거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아직도 알 수 없는 것들은 있었다.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건지.

[그녀는 어두운 냇물을 내러다보있다. 벌거벗은 버드나무들이 희끗한 눈발을 머리에 인 채 캄캄한 수면을 항해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저 검은 불속 어딘가에 여름의 잉어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은회색 비늘을 빛내며 수면으로 올라올 아열대의 여름으로 그녀는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인지 그녀 자신 역시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았다.] P.46




그녀는 조금씩 녹아 사라지고, 그런 그녀의 옆에 그가 나를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에게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마지막을 지키고 싶어했다. 아들에게 전화가 온다. 그녀는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단 한마디의 말을 남긴다. 이후 물기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그녀는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완전히 소멸하지만 마지막 따뜻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남기고 간 것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본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을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순간에 하고 싶어 하는 말, 모든 군더더기를 덜어낸 뒤 남는 한마디 말을 그녀는 했다. 날카로운 것에 움뚝 찔린 것 같은 말투로 아이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나도 사랑해.] P.53






헤어짐을 나타내는 단어는 아주 많다. 작별도 있고, 이별도 있고, 고별도 있고, 결별도 있고, 사별도 있다. 이별이나 결별이 다시 만남을 기약하지 않는, 주로 연인 사이에서 쓰이는 단어라면, 작별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단어라고 한다. 사실 죽어서 만날 수 없는 헤어짐이라면 고별이나 사별이 더 맞을텐데, 한강 작가님의 이 작품은 <작별>이 너무 잘 어울린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마주할 수 없어서 슬프긴 하지만 기억속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까, 언젠가는 다른 세상에서 만날테니까 말이다.

[나직이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가 얼굴을 돌려 그녀를 멍하게 마주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의 입술이 만났다. 그가 차가움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입술과 혀가 녹는 것을 견뎠다. 그것이 서로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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