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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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36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타인과 조우하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믿고 읽는 백수린 작가의 초창기 작품은 어떨지 궁금했다. 문학동네 북클럽에도 가입한데다, 이 책이 이달의 도서? 이길래 문학동네 북샵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바로 읽었는데, '엄청난 작품이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아주 괜찮았다.


사실 내가 이 작품에 대해 기대한 분위기는 <여름의 빌라> 였는데, <여름의 빌리>와는 다른 면이 많았다. 우선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좀 쎄고(?),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작품도 많았으며, 작가가 의도를 꼭꼭 숨겨놔서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던 건지 숨은 의도를 찾는 고생도 했어야 했다. (해설이랑 인터뷰를 보면 답이 잘 나와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작품을 꼽는다면 표제작인 <폴링 인 폴> 이었다. 이 단편은 완전 내 취향 이었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에 대한 짝사랑의 아쉬운 감정을 너무나 잘 그려낸 작품이었다. 이건 작가님의 자전적인 작품(?) 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해본다.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한국어 강사인 나의 수업에 재미교포인 '폴'이 참가하게 되고, 처음에는 그를 꺼리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개인적인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어느 순간 그를 신경쓰게 된다. 삼심대 중반인 나, 그리고 이십대 중반인 폴. 극 I인 나와 극E인 폴.


폴 역시 나를 좋아하는게 아닌가 라는 착각은 만남이 거듭할 수록 옅어졌다. 그는 나를 친누나 같다고
했고, 어느날 폴은 술자리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유리코라는 일본 여학생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폴과 유리코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고독해진다. 하지만 결코 이 마음을 폴에게 말할 수는 없었고 나는 폴에게, 폴은 결코 알 수 없는 나만의 작별인사를 준비한다. 폴은 내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나는 폴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의 이름을 다급히 불렸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이제 두번 다시 나는 이런 감정으로 그를 바리볼 수 없을 것이다. 한 번도 그럴듯하게 명명된 적이 없는 초라한 내 사랑. 이제 와 고백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만큼은 건네고 싶었다. 삼 십대의 사랑은 그렇게 쉽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니까. ] P.65 <폴링 인 폴>


언제나 궁금했었다. 짝사랑은 언제 시작되는건가? 짝사랑 당하는 사람은 짝사랑 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모르는척 하는 걸까? 만약 알고 있었다면 어느 시기가 되서야 알게 되는걸까? 물론 짝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이전까지의 이야기 이지만...


이렇게 쓰고 나니 이 작품이 단순한 짝사랑 이야기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작가는 짝사랑 이야기에 미국인인 폴과 이민 1세대인 폴의 아버지와의 갈등, 이민 2세대의 모국에 대한 마음과 역사 인식을 절묘히 섞어놨는데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아주 매끄러웠다. 살짝 <눈부신 안부>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그 다음으로 <거짓말 연습>이 좋았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언제나 진실말을 말했던 걸까? 아니 타인에게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스쳐 지나가면, 나만 놓아 버리면 끝인 사람들인데? 필요에 따라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이 꼭 나쁜것 만은 아니다. 나쁜건 나를 떠나버린 사람들이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P.15 <거짓말 연습>




Ps. <폴링 인 폴> 작품집을 읽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훨씬 좋아한다는 것을. 그런데 하루키는 왜 좋은걸까? ㅎㅎ

#북클럽문학동네 #이달책 #폴링인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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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5-12 1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에 그럭저럭 괜찮게 읽었던 소설집인데 벌써 가물가물 느낌만 남았어요. ㅎㅎㅎ깨끗하고 맑은 취향(?)의 새파랑님께는 어울릴 것 같습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4-05-13 21:26   좋아요 3 | URL
역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열반인님~!! 사실 전 한강작가님이나 최진영 작가님이 더 취향입니다~!!

저 깨끗하고 맑지는 않는데...단지 보뱅을 좋아할뿐 ㅋ

바람돌이 2024-05-13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북홀릭님과 새파랑님 두분이 한꺼번에 백수린 작가를 좋다고 하시네요. 익히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읽어본 적은 없는데 저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새파랑 2024-05-13 21:27   좋아요 1 | URL
아 ㅋ 요새 바빠서 북플을 잘못하고 있는데 북홀릭님도 그러셨군요~!!!

백수린 작가님 작품 다 괜찮았습니다~!!
 
모비 딕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3
허먼 멜빌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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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온기를 제대로 향유하려면 몸 어딘가가 반드시 추워야만 하는데, 이 세상 모든 특성은 오로지 대조를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은 모든 면에서 편안하다고, 그것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래왔다며 우쫄덴다면 그는 더이상 편안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작품이 있다. 명작이라고 하지만 너무 유명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안생기는 작품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보물섬>, <레 미제라블>, <돈키호테>? 가 그런 예시일거 같은데, 나에게는 <모비 딕>도 그러했다. 뭐 고래사냥 하는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왠지 어린시절에 요약본을 읽어본거 같아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었다.

[왜 늠름하고 건강한 영혼을 지닌 늠름하고 건강한 청년들 대다수는 언젠가 바다로 가게 되길 그토록 열망하는가? 처음 배를 타고 항해하면서 당신과 당신이 탄 배가 이제 육지에서 벗어났다 말을 난생 처음 들었을 때, 그토록 신비한 떨림을 느꼈던 것은 왜인가? 왜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바다를 신성하게 여겼던가? 그리스인들은 왜 바다의 신을 따로 두고 그를 제우스의 형제로 삼았을까? 이 모든 일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 1권 P.40



하지만 우연히 이 책을 선물받았고(내가 골랐지만...), 받았으니 읽어야 하기에 읽게 되었다. 읽고 나서 정말 감탄했다. 이런 엄청난 스케일의 책을 쓰려면 도대체 어떤 경험을 해야하고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해야 하는 걸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포경선의 역사에 대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몇몇 장들은 각주를 세밀하게 풀어쓴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글쓰기 방식 때문에 소설이라기 보다는 논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를 한 번 끝냈다 해도 뒤에는 두번째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두번째 항해를 끝냈다 해도 뒤에는 세번째 항해가, 그뒤에도 또다른 항해가 영원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노고란 그처럼 모두 끝이 없고 견더내기 힘든 것들이다.] 1권 P.135



하지만 이야기의 기본 바탕이 성경이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그렇고, 많은 상징들이 등장하며, 일반인에게는 낯선 해양 용어들과 장비들 때문에 한번 읽고서는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가독성이 좋아서 술술 읽혔다. 번역이 정말 잘되었다는게 느껴졌다.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 이 유명한 첫번째 문장 때문에 ˝이슈미얼˝이 주인공인것 같은데, 그건 이니고 진짜 주인공은 ˝에이헤브˝ 선장이다. 이 작품은 과거 항해에서 ˝모비 딕˝이라는 흰색의 대형 향유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헤브˝ 선장이 복수를 위해 ‘피쿼드호‘를 이끌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향유고래‘ 들을 추격하고 사냥하는 이야기인데, 그의 최종목적은 자신의 다리를 뺏어간 ˝모비 딕˝ 이다. 초반에 멋있게 등장한 ˝이슈미얼˝은 이 작품의 화자 역할을 할 뿐이다.
(˝이슈미얼˝이 작품 초반에는 식인종 출신인 ˝퀴퀘그˝와 브로멘스를 코믹하게 보여주긴 하지만...)

[˝말도 못 하는 멍청한 짐승에게 복수라뇨!˝ 스타벅이 소리쳤다. 녀석은 맹목적인 본능에 따라 선장님을 공격했을 뿐입니다! 미친 짓이에요! 멍청한 짐승 때문에 격분하는 건 말이죠, 에이헤브. 선장님, 제게는 신성모독으로 보입니다.] 1권 P.310



˝에이헤브˝ 선장의 직속 부하로 세 항해사 ˝스타벅˝, ˝스터브˝, ˝플래스크˝ 가 나오는데, 이들은 ‘피쿼드호‘의 포경 보트 세 척을 지휘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1등 항해사 ˝스타벅˝이 바로 그 스타벅스 커피의 유례라고 한다. ‘피쿼드호‘는 아주 큰 대형 어선으로 모선이라 한다면, 포경 보트 세척은 모선에 실려있는 작은 배로, 실제로 ‘향유고래‘를 사냥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자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모든 인간의 정신과 의견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들이 지닌 종교적 신념의 원칙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남의 말을 훔쳐 허세를 부리는 웅변가에게 사상가들의 사상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거대한 지구 자체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독자여, 당신 또한 ‘놓친 고래‘이자 ‘잡힌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2권 P.207



˝스타벅˝을 포함한 대부분은 ‘향유고래‘를 잡아서 돈을 벌어서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게 목적인 일반적인 선원인데 비해, 선장인 ˝에이헤브˝는 돈보다는 복수가 우선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많은 선원들은 결국 리더인 선장의 복수심에 따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피쿼드호‘에 탄 선원 모두는 ˝모비 딕˝과의 일전을 치뤄야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흰 고래를 잡겠디는 너희의 맹세는 나의 맹세만큼이나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에이해브는 심장, 영혼, 육신, 허파 그리고 목슴 까지 그 맹세에 묶여 있다. 너희는 이 심장이 어떤 곡조에 맞춰 뛰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다들 여기를 봐라. 내가 마지막 두려움까지 모두 꺼 줄 테니!˝ 그러더니 그는 거센 입김 한 번으로 불꽃을 꺼버렸다.] 2권 P.396



‘피쿼드호‘와 ‘모비딕‘의 싸움은 마치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 아니면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비유한 것으로 느꼈는데, 과연 인간이 자연과 신을 넘어서는게 가능하기는 할까?

[˝영감 당신은 녀석을 절대로, 절대로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짓을 그만두세요. 이건 악마의 광기보다 더 지독한 짓입니다. 이틀 동안이나 추격했고, 보트가 두 차례나 산산조각났으며, 당신의 그 다리는 또 한번 당신 몸에서 떨어져나간데다, 당신의 사악한 그림자는 영원히 종적을 감췄습니다. 선한 천사들이 떼지어 몰려들어 당신에게 경고하고 있어요. 뭘 더 원하나요? 이 흉악한 고래가 우리를 최후의 한 사람까지 몽땅 힘쓸어버릴 때까지 녀석을 추격해야 하나요? 우리가 녀석에게 이끌려 저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나요? 우리가 녀석에게 이끌려 지옥에라도 들어가야 하나요? 아아, 이 이상 녀석을 쫓는 일은 불경스러운 신성모독입니다!˝] 2권 P.489





내가 예전에 배를 타본적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배라는 것도 하나의 축소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배라는 좁은 공간에서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육지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면서 단 한번의 정박도 없이 거친 파도와 싸워가며 목적을 위해 항해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았고 친근하면서도 두려웠다.

[이제 조그마한 새들이 여전히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는 소용돌이 위를 시끄럽게 울며 닐아다녔고, 시무룩한 힌 파도는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을 때렸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고, 거대한 수의같은 바다는 오천 년 전에 넘실거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 자리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2권 P.513




<모비 딕>은 이야기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문장도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내용 자체가 많은걸 상징하고, 많은걸 담고 있다보니 한번 읽고 완벽히 이해했다고 하긴 힘들거 같다. 한 40% 정도 이해했으려나? 이 작품은 꼭 재독을 해야겠다. (나에게 이런 작품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리고 일러스트가 들어있는 다른 판본도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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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4-21 1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어 저도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에이헤브 선장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기도 했고요.
스타벅의 생각과 이미지가 좋았어요.
이 세상을 떠받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타벅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새파랑 2024-04-21 21:45   좋아요 1 | URL
왜 많은 사람들이 인생책으로 꼽는지 공감했습니다~!! 저도 인생책으로 ㅋㅋ 너무 방대해서 한번 읽기에는 안될거 같은 느낌입니다~!!
북플을 떠받히는 페넬로페님~!!

청아 2024-04-21 1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무슨 테스트에서 스타벅 나왔던거 기억납니다.ㅋㅋㅋ 새파랑님 이 글 당선되실 것 같아요!! 리뷰보니 저도 얼른 이 책도 읽고싶어요. 흐어엉...ㅋ

새파랑 2024-04-21 21:47   좋아요 2 | URL
역시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미미님~!! 미미님도 이책 구매 하셨을텐데요? ㅋ 언제 여유 되실때 꼭 읽으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자목련 2024-04-23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정신의<모비딕>을 읽고 있어요^^

새파랑 2024-04-23 19:35   좋아요 0 | URL
역시 자목련님은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거 같아요~!!!

페크pek0501 2024-04-28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 미제라블을 읽으면서(3권 읽고 차례임) 소설이 아니고 무슨 논문 같다고 느꼈죠. 설명이 장황해서요. 이런 글을 어떻게 쓸 수 있나, 감탄하며 읽게 되어요. 대작에 깃든 작가의 정성과 노고가 저절로 느껴집니다.^^

새파랑 2024-04-28 13:49   좋아요 1 | URL
레 미제라블도 비슷하군요. 전 아직 엄두를 못내겠습니다. 대작이 괜히 대작이 아니더라구요~!!!
 
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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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N24024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진다고.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슬픔'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왠지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설명하기가...


누군가를 죽음으로 떠나 보낸 경험이 다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가족일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고, 반려동물일수도 있고. 나의 경우,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당시에는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느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충격과 슬픔이 옅어졌었다. 어쩌면 이게 맞는 것일수도 있다. 처음에 느꼈던 충격과 슬픔의 강도가 계속된다면 과연 정상적으로 살아갈수 있을까?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 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P.78



하지만 다 그런건 아닐것이다.<애도 일기>의 작가인 '롤랑 바르트' 도 아니었다. 옅어지기는 커녕 점점 아픔이 짙어져간 사람.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 2년동안 수시로 그녀를 회고하는 메모를 남긴다. 그리고 그 메모를 엮은 작품이 바로 <애도 일기> 이다. 그가 출판을 목적으로 남긴 메모는 아니었다. 1977년 10월 25일에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난 다음날부터 약 2년동안 그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메모로 남긴다.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파인 고랑.] P.50



얼마나 그리웠던 걸까? 얼마나 아팠던 걸까? 이런 감정이 완전한 슬픔이구나. 생전에 얼마나 사랑과 신뢰가 있었어야만 이런 애도를 할 수 있는 걸까? 높이 있을수록 더 깊이 떨어지듯이 너무나 소중했었기에 상실은 너무 깊었다.

[오늘 적막한 일요일 아침, 울적하고 암담한 마음속에서, 지금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매우 엄중한 절망적인 테마가 있다. 도대체 앞으로의 내 삶은 그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P.92



이런 슬픔의 극단을 계속 안고 살아간다는게 말이 안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2년 후 '롤랑 바르트'는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하지만 그는 치료를 거부하고 한달 뒤에 사망한다. 공식적으로는 사고사였지만, 어떤 이는 자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여호와의 계곡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당신은 정말 죽은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고 믿나요? 정말 내가 마망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난 지금이라도 당장 죽고 싶어요."] P.167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 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P.216




어머니에 대한 그의 슬픔이 <애도 일기>가 아닌 <망각 일기> 였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만약 그가 마음속으로만 어머니를 추모하고, 어머니에 대한 메모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덜 아프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감정이라는게 글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게 되면 더 극대화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작가들(글쓰는 사람들)이 일반사람들에 비해 더 감성적인 걸지도...


저마다의 슬픔의 깊이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두번다시 만날수 없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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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
아리시마 다케오 지음, 류리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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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3

어떤 리뷰에서 ‘아리시마 다케오‘가 20세기 최고의 일본 작가라는 이야기를 본적이 있었다. 귀가 얇은 나는 ‘최고‘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궁금증이 생긴다. 그래서 구매를 했다, 그리고 읽었다.....<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에는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1. <사랑을 선언하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선언하다>가 가장 좋았다. 이런 꼬이고 꼬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서간체 소설이어서 재미있엇다.


이야기는 어찌보면 간단하다. 남자인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서로 친구 사이임), 그리고 여자인 Y코 이렇게 세 사람이 주요 등장인물이고, 구성은 A와 B가 서로 주고받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Y코의 편지는 맨 마지막에 한번 등장한다.)


A는 Y코라는 여자에게 반하고, Y코라는 여자를 알고 있었던 B는 친구인 A와 그녀가 잘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후 A와 Y코는약혼을 하게 되지만, A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급격하게 기울어져서 A는 급히 고향으로 가서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향에서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빈궁했던 B는 A의 부탁이 있기도 해서 Y코의 집에 들어가서 하숙을 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꼬인다. B는 A에게 편지로 Y코의 소식을 전해주기도 하고, 두 사람 사이의 조언자 겸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A와 B가 주고받는 편지 속 분위기가 바뀐다. A는 의심하게 되고, B는 설명하려고 한다. 두 사람은 흔들리는 사랑과 우정의 그림자를 주고 받는다. 과연 Y코는 A를 포기하고 B를 마음에 두는 걸까? B는 우정 대신 사랑을 택할 것인가? 멀리 떨어져 있는 A는 그렇게 사랑과 우정을 모두 잃어버리는 걸까?

[자네의 패배 위에 축복 있으라.
Y코의 갱생 위에 동정 있으라.
나의 승리 위에 비탄의 눈물 있으라.] P.174



나는 <사랑을 선언하다>를 그냥 흥미진진한 연애소설로 읽었는데, 해설을 읽어보니 그냥 연애소설은 아니었다. 약혼이라는 사회적 규약을 버리고 도덕까지 넘어서서 내면의 진실에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과 그 시대의 젊은 여성이 가부장적 사회에 대항하여 주체적으로 자기 선택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나는 A가 좀 많이 불쌍했다...






2. <태어나려는 고뇌>

<태어나려는 고뇌>는 이 책의 해설자가 가장 좋다고 평가한 작품인데...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처음에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시작한다. 문학가인 ‘나‘는 우연히 화가를 꿈꾸던 ‘기모토‘라는 학생을 만나고, 그가 그린 그림에 큰 감명을 받는다. 하지만 ‘기모토‘는 먹고살기 위해 고향인 훗카이도로 돌아가서 어부 생활을 해야만 했고,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재회한다. ‘기모토‘는 어업에 종사하는 와중에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나‘는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업이라는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기모토‘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그가 돌아간 후 ‘기모토‘의 삶을 상상하면서 그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다.(액자식 구성의 시작)

[이렇게 2년, 3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어쩌다 자네 생각을 하게 되면 나는 인생 여로의 쓸쓸함을 맛보았다. 어찌 되었든 한번 얼굴을 마주하고 어느 정도까지 마음을 함께 했던 동지가 일단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어, 같은 이 지구 상에 호흡하고 있으면서도 미래에 영겁이 되도록 다시는 해후하지 않는… 그것은 얼마나 이상하고 쓸쓸하고 무서운 일인가.] P.187



여기서부터 내가 이 작품을 별로라고 느낀 부분이 진행되는데, 아무리 액자식 구성 이라고는 하지만 ‘자네는..‘이라고 진행되는 2인칭 시점(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걸까?)의 이야기는 뭔가 이야기가 매끄럽지도 않고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카인의 후예>

<카인의 후예>는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날것(?)의 소작농민 ‘닌에몬‘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는 소작료도 제대로 내지 않고, 멋대로 경작하며, 기분 나쁘다고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아내를 함부러 대하는 불한당이고, 사람들은 그를 무서워 한다. 다른 농민들은 지주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만 ‘닌에몬은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본능에 따라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점점 생활이 어려워지고 동네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데다가 아이를 잃고 나자, 이를 극복하기 지주를 찾아가서 소작농민들의 염원인 소작료 경감을 요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지주의 위엄에 주눅이 들어 한마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나서 부부는 농장을 떠난다. 자신을 둘러싼 계급의 굴레를 벗어던진다. 그런데 눈밭을 해치고 나아가는 그들에게 희망이라는게 있긴 한걸까?

[분비나무 숲이 건너편에 보였다. 모든 나무가 벌거숭이가 되어 있는데 이 나무만은 음울한 암록색 잎사귀 색을 꾸지 않았다. 곧게 뻗은 나무 기둥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서 하늘을 찌르고 성난 파도와 같은 바람 소리를 담아 내고 있었다. 두 남녀는 개미처럼 작게 그 숲에 다가갔다가 마침내 그 안에 삼켜져 버렸다.] P.351





추가 1) 일단 세 단편 중 두 단편이 좋았다. <사랑을 선언하다>는 재미있고, <카인의 후예>는 강렬했다. 그냥 읽었을때는 몰랐었는데, 해설을 읽고나서 각각의 단편에서 작가가 생각하던 문제의식과 사상적 고뇌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해설을 읽고 난 후에 읽으면 더 좋을것 같다.


추가 2) 생전에 ‘남녀의 사랑이 절정인 순간에 죽는다‘고 말하고 다녔던 작가는 1923년에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기라도 하듯 유부녀(?)와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좀 섬뜩힌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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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3-31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몰입을 방해한 ˝자네˝는 번역의 문제였을까요?

귀가 얇으시다는 새파랑님, 여전히 열독에 상세 리뷰까지 올려주시는 정성을 나눠주셔서 덕분에 호강하고 갑니다.

**소소한 질문 A, B는 A, B 인데 왜 Y는 Y˝코˝라고 하나요, 혹시나 (제가 일본어 전혀 모르는데) 일본어랑 관련되는 접사인가요?^^;; 죄송해요 별걸 다 궁금해합니다. 제가

새파랑 2024-03-31 22:15   좋아요 1 | URL
번역의 문제 보다는 시점의 문제인거 같습니다. 2인칭으로 진행되다보니 현실성이 결여된거 같은 느낌? ㅎㅎ

저도 책을 읽으면서 왜 A, B 인데, Y코만 이렇게 명시한건지 궁금했습니다.. 뭐 따로 설명은 안나와있더라구요~!!

페넬로페 2024-03-3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가 얇은 새파랑님 ㅎ ㅎ
아리시마 다케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최고의 일본 작가라는 말에 저도 솔깃하네요^^

새파랑 2024-04-01 22:35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는 최고는 아닌걸로......

저라면 하루키 소세키 슈사쿠 이렇게 세분 선택하겠습니다~!!
 
백치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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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2

˝당신의 눈을 어디서 꼭 본 것 같군요...... 하지만 그럴 리는 없을 거에요. 나는 한 번도 여기 온 적이 없으니까요. 어쩌면 꿈속에서...˝


100% ‘선‘으로만 이루어진 사람이 과연 있을까?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내면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선‘한 사람에게도 ‘악‘하거나 나약한 내면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다만 이성이나 제도들이 이를 표출하지 못하도록 할 뿐.


반대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악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악‘을 행할 때에도 내면 어딘가에는 반성과 후회라는 ‘선‘한 요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악인을 교화할 수 있다면, 그들은 ‘악‘의 행동을 멈출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100% ‘선‘으로만 이루어진 구원자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과연 구원자라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라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100% ‘선‘으로 이루어진 사람인 ‘므이쉬킨‘ 공작이다. 작품 초반에 그는 가족 하나 없고, 간질 발작 때문에 어린시절에 스위스로 요양을 떠나 있다가 이제 기차를 타고 고향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거짓말은 하지 않고, 언제나 진실과 진심만을 말하는 ‘므이쉬킨‘을 사람들은 ‘백치‘라고 부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므이쉬킨‘은 100% ‘악‘으로 이루어진 사람인 ‘로고진‘을 만나게 된다. 불한당이었던 ‘로고진‘은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졸부였고, 사랑에 대한 야망과 복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로고진‘이 사랑하는 사람은 <백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여인인 ‘나스타시야‘ 였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므이쉬킨‘과 ‘로고진‘은 단 한번의 대화로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페테르부르크 기차에서 헤어지게 되는데...


이후 앞에서 이야기한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인 ‘나스타시야‘가 등장한다.어린시절 지배계층의 횡포로 인해 부모를 잃은 그녀는 고아로 자라게 되고, ‘토츠키‘라는 거부가 그녀를 키우게 되는데, 그녀는 어린시절에 ‘토츠키‘로부터 유린당하고 그의 정부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똑똑하고 똑부러진 그녀는 성장하면서 아름답고 강한 여인으로 크게 되고, 더이상 ‘토츠키‘의 정부가 아닌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협박하고 괴롭힌다.


‘토츠키‘는 자신의 위신과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였던 그녀를 ‘가냐‘라는 인물과 정략켤혼 시키려고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가냐‘는 자신의 출세와 지참금이라는 경제적 보상을 위해서 그녀와의 결혼을 받아들인다.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고선 말이다.


그리고 ‘가냐‘의 집에서 앞에서 언급한 네 사람, ‘므이쉬킨‘, ‘로고진‘, ‘나스타시야‘, ‘가냐‘ 가 처음으로 함께 만나게 된다. ‘므이쉬킨‘은 한 눈에 ‘나스타시야‘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알아보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응?),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그녀를 구원하려고 한다. ‘나스타시야‘ 역시 그를 알아본다, 그의 선함을 알아본다. 그와 함께 한다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느낀다. 더이상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괴롭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마음속에 품는다.


하지만 그녀는 100% ‘선‘인 ‘므이쉬킨‘ 대신 100% ‘악‘인 ‘로고진‘을 일단 택한다. 당연히 정략결혼의 대상자였던 ‘가냐‘에게는 모욕을 준다...그녀는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대신 왜 절망을 택했을까? 아마 그건 자신이 ‘므이쉬킨‘을 선택한다면 자신 때문에 ‘므이쉬킨‘이 타락할 거라고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미 타락한 자신은 이제 구원받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해서 인지도 모른다.




구원받을 수 있었지만 구원받는 걸 포기한 ‘나스타시야‘, 그녀는 ‘로고진‘과 함께 떠나지만 아직 선한 내면이 남아있었던 그녀는 ‘로고진‘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도망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선‘과 ‘악‘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인간의 마음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스타시야‘는 자신의 이상향인 ‘므이시킨‘이 ‘아글리야‘라는 자신과는 달리 순결한 여인과 결혼할 수 있도록 물밑작업(?)을 한다. 그렇게 해서 ‘므이시킨‘과 ‘아글리야‘는 가까워 지긴 하는데... ‘나스타시야‘는 자기가 물밑작업을 해놓고선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질투를 한다. 이것 또한 사랑과 질투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인간의 마음처럼 말이다.


과연 ‘나스타시야‘는 ‘선‘(므이쉬킨)을 택할까? 아님 ‘악‘(로고진)을 택할까? 변덕과 변덕을 거듭하는 ‘나스타시야‘를 보면 좀 속이 터지긴 하지만, 원래 인간의 마음이라는게 변덕과 모순 덩어리 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해도 된다. 결말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진다. 절대 ‘악‘인 ‘로고진‘은 이런 변덕스러운 그녀를 과연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줄까 있을까?


그리고 절대 ‘선‘인 ‘므이쉬킨‘이 ‘나스타시야‘에게 느끼는 감정은 연만밀까, 사랑일까?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이 가능하긴 한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주인공인 ‘므이쉬킨‘이 백치로 불렸다는 점과, 이 작품의 제목이 <백치>라는 점에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양쪽의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내면을 이처럼 잘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 ‘선‘한 사람의 영향력이 주변을 변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구원할 수는 없다, 구원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추가1)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백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수다스럽고, 개성도 매우 강하며, 여성들(특히 부인들)의 입김은 완전 쎄고, 어떻게 보면 다 정신이상자 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오히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추가2) 예전에 처음 읽었을때는(열린책들 버젼) 이해하기도 힘들고 잘 안읽혔는데, 이번에 재독하니(문학동네 버젼) 확실히 예전보다 이해도 잘 되고 훨씬 잘 읽혔다. 역시 좋은 작품은 재독해야 한다는걸 새삼 느꼈다.


추가3)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책 표지 뒷면에 나온 것처럼 이 책의 1부 이야기 전개는 정말 대단하다. 등장인물 이름만 햇갈리지 않고 1부를 집중해서 읽는다면 2~4부는 술술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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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25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백치는 아직 못 읽었는데,,, 새파랑님 글 제목이 끌리네요. 열린책들로만 있는데,,, 요즘 문학동네에서 도스토옙스키를 새롭게 펴내고 있나봐요.
제가 알기로 새파랑님은 전작읽기 끝내셨는데,,, 도스토옙스키 사랑은 영원하리! 맞습니까?^^

새파랑 2024-03-25 13:34   좋아요 1 | URL
전작을 하긴 했지만 전작한 기분이(?)가 안들어서 다시 읽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출판사 책이 나와서 안살수가 없었습니다~!!

책친놈 2024-03-25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과악에 대한 소재는 늘 흥미로운것 같아요.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등등 입체적인 캐릭터가 더 많이 나오다보니, 100퍼 선으로 나오는 인물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새파랑 2024-03-25 13:35   좋아요 2 | URL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린 가장 아름다운 인간인 ‘므이쉬킨‘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강추합니다. 기왕이면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을 순서대로 읽으면 좋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4-03-25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버전이 읽기가 조금 쉬운 것 같아요. 출판사마다 세계문학을 번역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제목인 백치의 뜻이 그런 거였군요.
선과 악을 왔다갔다하는 나스타시야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한데요^^

새파랑 2024-03-25 13:51   좋아요 2 | URL
열린책들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번 문학동네 버젼도 좋더라구요. <악령>도 어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ㅋ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중에 해피엔딩이 있었나? 싶습니다. 원래 인생은 결국 비극 아닌가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4-03-26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요새 다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읽어나가시는 것 같아서 괜히 반갑네요. 저도 이어서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들이 많아서 자꾸 늦어지고 있습니다ㅠㅠ 좋은 작품은 재독해야 한다는 것 저도 동감해요.
저는 아직 독서 초보라 초독이 대부분이지만 좋은 책들은 다시 읽어야지 생각하며 따로 정리해두고 있는데 언제 재독할 수 있을까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습니다!ㅎㅎㅎ

새파랑 2024-03-27 12:33   좋아요 1 | URL
거리의 화가님이 초보시면 저는....? ㅋㅋㅋ

요새 책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검증(?)된 책 위주로 읽으려고 합니다~!!

청아 2024-03-26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을것 같아 새파랑님 리뷰 절반만 읽었습니다.ㅎㅎ 극과 극의 두 사람이 만나 어떤 일이 생기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저는 선과 악의 경계에 관심이 있어요.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지를요. 도선생님은 그런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캐릭터로 그려내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4-03-27 12:35   좋아요 1 | URL
ㅋㅋ 도스토에프스키는 사랑! 입니다! 이책 읽다보면 아 뭐 이런 사람들이 있지? 이럽니다 ㅋㅋ
가장 극단을 잘 표현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구름모모 2024-03-26 1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출판사 모두 읽으셨네요. 읽지 않은 작품이라 솔깃해지네요.

새파랑 2024-03-27 12:35   좋아요 1 | URL
소장하는 겸 해서 두 출판사 버젼으로 다 읽었네요 ㅋ 도스토예프스키 장편들 순서대로 읽는걸 추천합니다~!!

희선 2024-03-31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구원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겠지요 자신이 그걸 바라야 누군가의 도움도 받아들일 텐데...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사람은 말이 많군요 도스토옙스키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도 조금 듭니다 도스토옙스키 안에 있는 여러 사람...


희선

새파랑 2024-03-31 11:15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 실제로 만나면 엄청 수다쟁이일듯 합니다 ㅋㅋㅋ 이런 수다스러우면서도 깊이있는 성찰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최고인거 같아요~!! 현 시대에 신이 재림해도 타락한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