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이 휴대폰이 될 때까지 글로벌 경제 교실 재미있게 제대로 시리즈 27
케빈 실베스터.마이클 힐린카 지음, 신인수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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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60316 케빈 실베스터, 마이클 힐린카.

중학교 1학년 사회 교과서에서는 세계화를 다루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이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사례를 들어 확인한다. 청바지나 티셔츠가 주로 등장하고, 교과서나 교육과정이 달라져도 사례는 비슷하다.
이 책은 티셔츠, 천식 흡입기, 바로 이 책, 휴대전화, 안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나누어 설명하고, 그때마다 거치는 나라들, 사람들, 추가되는 비용, 이윤까지 세세하게 보여준다. 교과서 사례의 심화 버전이라 할 만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 - 그런 값을 치를 만한, 누군가 희생할 만큼. 책에서는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생각이 있는가? 기능은 비슷해도 디자인이 더 나은 제품에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것인가?

나를 둘러싼 물건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나에게 왔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이 책은 그 궁금증을 일부 해소시켜 주었다. 또 궁금한 것이, 우리가 사용한 하수, 변기물 내려 사라진 그 물질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같은 것도 궁금하다. 파고들수록 내가 덜 지불한 비용은 누군가를 착취하는 게 되는 구나, 내가 깨끗해지려고 더 더러워져야 하는 사람과 환경이 있구나, 글로벌 분업 체계는 어마어마하게 제조 공정을 세분화해 놔서 뭐 하나 만들려면 정말 온 세계가 힘을 합쳐야 하는 구나 싶었다. 그러니 책에서 말하는 대로 무슨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든 간에 감사할 줄 알아야겠다. 모든 작은 것들이 모여 뭔가를 이루는 거니까 작은 것도 놓치지 말아야겠다. 생산과 소비를 연결의 관점에서 보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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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상태에 중독될 수 있어요. 불안감 증가와 수면 부족 증상은 휴대폰 중독과 연관이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은 휴대폰에 얼마나 시간을 많이 쏟고 있나요?(89, 놀랍게도 오후 7시반 현재 20분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네요...친구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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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세계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쿠르초 말라파르테 지음, 이광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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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5 쿠르초 말라파르테.

일요일은 어느새 초조한 날이 되었다. 내일이면 다시 그곳에, 일꾼이 된 시늉을 하며, 에휴 또, 하는 마음에다, 종전을 앞두고 패배의 신호 같은 불길함을 느끼며 살짝 미치고 많이 늙은 것 같은 독일군의 마음을 슬쩍 가져다 대본다. 독일인들이나 이탈리아 권력층 앞에서 동조하듯 사실은 빈정대는 말라파르테가 글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글로 치는 허풍이려니 한다. 실제 앞에서는 내색도 못하고 사바사바 했을 것 같은 놈인데, 글로는 온갖 정의로움, 휴머니즘, 반파시즘, 그렇게 쓰면 그렇게 남는다. 이 책을 전쟁 르포나 역사책으로 읽으면 안 될 것 같다. 전쟁 환상 문학에 가깝다. 잔혹한 풍경들을 미화해 놓았는데, 그게 전쟁이나 분쟁을 찬양하기 위한 게 아니라 전쟁 속에 부서지는 인간과 동물과 세계가 겪는 잔혹함을 더 강하게 느끼도록 하는 장치 같은 것이다.

불을 피해 호수로 뛰어든 수백마리 말이 머리만 내민 채 밤새 얼어죽어 다음 봄이 와서 썩기 전까지 단단하게 굳어 있는 장면, 선물이라고 자랑하는 굴이나 홍합 바구니가 사실 포로나 유대인들의 눈알 무더기였다는 끔찍한 에피소드, 군 위안소에서 고통받는 동시에 이십일 후에 집에 돌아가게 될지, 죽게 될지, 사실 너무나 끝을 잘 알고 있는 젊고 어린 유대계 여성들의 절망하는 모습, 쥐 취급 받고 잔혹하게 학살당하는 유대인들, 독일어를 잘 읽는 똑똑한 포로들을 선발해 모두 죽여버리는 군인들,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미친 전쟁 속 장면들에 말, 개, 쥐, 새, 순록, 파리 같은 동물들의 이미지를 겹치면서 동물들의 수난, 동물과 다를 것 없이 겪는 인간의 수난, 전쟁의 고통은 아랑곳 안 하고 흥청망청인 상류층들의 추함 같은 모습을 그려 놓았다.

보나파르테의 반대로 나쁜 편, 이라는 ‘말라파르테’를 필명으로 쓰고, 파시즘을 지지하다 그들의 행태에 실망하고 조롱하며 반파시스트를 자처하고, 독일계 아버지 자녀이지만 자기는 진짜 이탈리아인이라고 자처하며 독일인들을 완전히 타자화해서 관찰하고 비꼬고 조롱하는 말라파르테라는 인물은 흥미로웠다. 그가 겪었든 상상했든 그리고자 하는 장면을 극적이고 비장미나 잔혹미 넘치게 꾸미는 솜씨는 그게 사실과 다르건 같건 간에 탁월했다. 문학과 허구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게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말라파르테는 종군 기자라기보다는 기레기에 가깝겠지만, 전쟁의 참혹상과 허무함을 직접 겪은 이들과 겪지 않은 후대에까지 남겨준 전령 쯤 되겠다. 이렇게 미친 짓인 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전쟁은 계속 반복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후대에게 무슨 모습을 남기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전쟁 여파로 급등하게 될 원유 가격에 베팅하는 날파리떼들로 기억될까. 어떤 사람들의 삶은 불타고 절단되고 썩어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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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트는 글자 그대로 하면 “망가진, 결딴난, 완전히 부서진, 폐허가 된”이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 지금 유럽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망가진 유럽이 어제의 유럽이나 이삼십 년 전의 유럽보다 좋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모든 것을 달리 어떻게 바꿔볼 수 없는 유산으로 물려받는 것보다 좋다. (10)

-“이탈리아는 참 아름답지.” 수잔나가 말했다.
“추한 나라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그냥 아름답기만 한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406)

-“제 피티에 데트르 팜므.” 루이제가 특유의 포츠담식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로 조용히 말했다. “여자인 게 참 유감이네요.“ (414, 남자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여자들은 노동에 시달리고, 위안소로 끌려가고,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총살당한다.)

-“제 말은 연어와의 전쟁을 말하는 겁니다. 여기서는 말이죠, 라플란드 사람이건 핀란드 사람이건 다 연어 편이에요. 일전에 강가에서 독일 병사 몇이 죽은 채 발견됐어요. 아마 연어가 죽였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럴지도 모르죠. 연어가 승리한다면 그야말로 축하를 해주고 싶네요. 연어 문제는 인간과 문명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456, 모두가 연어를 응원해서 독일군이 아마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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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 과몰입하는 좌뇌, 침묵하는 우뇌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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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3 크리스 나이바우어.

잘 찍는 편이다. 평생 짐작과 찍기로 살아왔다. 가족이 사 온 가방에 든 것이 무슨 라면 무슨 과자라든가, 통화 상대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정확히 짚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한다. 몇 시 몇 분 쯤 되었겠다, 생각하고 시계를 보면 오차 범위 5분 이내로 맞춘 적도 많다.
이 책은 말과 논리는 좌뇌의 영역이지만, 그것으로 설명 안 되는, 우뇌의 직관과 이해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뇌가 얼마나 복잡한데 딱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기능을 지정하는 건지 조금 신뢰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의 내용을 못 믿는다면 그건 네 좌뇌가 그런 거야, 못 믿도록 방해한 거야 한다. 그러니까 좌뇌는 T하고 우뇌는 F한다는 건가…
제목대로 뇌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보았지만, 신경심리학의 연구 결과가 불교나 명상에서 말하는 상태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게 주요한 주장이었다. 선불교도, 마음챙김도 이름만 들었지 뭘 하는지 알지 못하니까 그냥 막연하게 그런가 보다 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알겠는 것,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떤 깨달은 느낌을 받는 것, 그런 현상이 우뇌의 이점이고, 그걸 잘 활용하면 좌뇌 혼자 폭주하며 고통받고 고민하는 걸 덜어낼 수 있다고 한다. 자아는 없다는 주장도 한다. 뇌에 의식이나 자아 같은 게 있다고 믿는게 우리의 착각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냥 흘러가는 걸 보며 그렇구나, 나는 지금 화가 났구나, 커피가 쏟아졌구나, 뭐 그렇게 달관하면 편해, 하는 소리로 읽혔다. 뜬구름 잡다 끝나서 실습 부분이 있지만 그것마저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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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것은 곧 범주화하며 정보를 처리한다는 뜻이고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우뇌에는 해석적 사고를 훌쩍 뛰어넘는 다른 방식의 지능이 존재한다. (81)
-좌뇌의 패턴 인식 기계는 항상 작동하는 일종의 생물학적 기능이며 사실상 멈추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좀 더 괜찮아진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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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의 여름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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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8 박완서.


이번에 본 박완서 단편 전집 2권은 1975년부터 1978년까지 발표된 작품들이었다. 여전히 읽는 재미는 있었지만, 한 작가만 통독 전작 하는 건 금세 물리거나 이전만 못하네, 하는 고약한 심보만 돋우는 짓이다. 소설들은 여전히 전쟁 후 시대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러니 질리고 물릴 일 없겠지만 이 다음부터는 연달아 보지 않고 아껴봐야겠다.

개학 후 한 주가 정신 없이 흘렀다. 이상하게도 새벽 중간에 깨서 오래 잠들지 못한다. 그러다 얕은 꿈인 듯 생각인 듯 주변의 사람들, 해야할 일들, 일어나면 엊저녁 충동구매한 옷 구매를 취소해야지 하는 생각까지, 잡념이 소음처럼 들끓다가 어느새 알람이 울린다. 전날 싸둔 도시락을 들고 씩씩하게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걸음걸이는 예전같이 빠르고 넓은 보폭을 못한다. 개학 직전에 하루 무리를 한 채로 내리 3일 여행을 다녀와서 많이 걸은 무릎이 상했다. 며칠마다 의원 가서 물리치료 받고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받아 온다.
그렇게 맞은 첫 일요일이어서, 아침부터 기가 팍 깎였다. 내일부터 또 일하러 간다… 소설 속에는 취직이 못 되어, 겨우 얻은 그 자리가 불안정해 결국 일을 관두고 자영업 생각하는 사람부터, 피엑스 물건을 빼돌리다 미군들에게 덤벼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 수험 생활에 또 실패하고 시험을 보다 말고 뛰어 나온 사람, 남편을 너무도 멀리 보내 두고 살짝 미쳐가는 건지 본성이 드러나는 건지 하여간에 외로움에 절어버린 사람 등 나보다 괴로운 사람이 잔뜩 나온다. 그러니까 엄살 그만 부리고 그냥 살아야지.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하니까 일상 풍속 소설 읽는 걸 좀 쉬어야 겠다 싶었다. 소설 핑계를 다 대네. ‘망가진 세계’ 나 ‘율리시스’나 크러스너호르커이라슬로 같은 더 빡센 걸 절절매며 읽어야 좀 더 확실하게 조그맣고 보잘것 없는 일상을 감사히 여길런지. 그런데 이쪽 진짜 세계도 망가지고 있어서 문득문득 불안하다. 갑자기 내가 있던 건물이 폭격을 당하고,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이, 모은 책들이 불타 사라지고, 뭐 그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기껏 겪는 불운은 주식이 떨어지는 정도이지만 뭐 그렇게 지내고 있다. 쓰지 않는 건 다 없어지니까 이렇게 쪽글이라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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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망령이라면 용한 무당 시켜 지노귀굿이라도 해서 좋은 곳으로 천도라도 할 수 있으련만, 용한 판수를 시켜 경이라도 읽어 다시는 못 헤어날 옥중에 가둘 수라도 있으련만, 북쪽에 살아 있는 자의 망령에 대해선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161, ‘돌아온 땅’ 중. 월북 삼촌 때문에 자식들의 앞길이 막히자 속상한 어머니 마음)

-왜 사회는 젊은 놈이 반드시 어떤 집단에 속해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철통 같은 제도를 마련해놓고도 열 명 중 아홉 명은 아무 집단에도 안 끼워주고 팽개쳐버리는 걸까. (216, ‘꼭두각시의 꿈’ 중. 그러게 왜 그러는 걸까.)

-자기가 식욕이 없을 때, 타인의 식욕처럼 덮어놓고 싫은 건 없다. (341, ‘집 보기는 그렇게 끝났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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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지음, 전중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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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7 데이비드 버스.

책을 사모으는 방법도 여러가지인데, 언제인지 ‘욕망’이 들어가는 소설책, 심리학책, 정체 불명의 에세이? 하여간에 그렇게 네 권 사 놨고 마지막 500쪽 넘는 이 책을 끝으로 욕망의 여정이 끝났다. 결론은…
‘욕망의 진화‘(진화심리학책. 세모)
’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소설. 야한 거 볼라면 세모. 작품성 따지면 엑스)
’몸, 욕망을 말하다‘(에세이인가. 200여쪽 읽다 말았다. 엑스. 읽을 수록 빡침)
‘욕망 수업’(이건 설교집인가. 초반부 읽다가 각이 나왔다. 책의 형태를 갖췄다고 다 책은 아님. 읽다 맒. 엑스엑스)
“걸러야 할 키워드로 ‘욕망’이 추가되었습니다.” 욕망의 여정, 당분간 안녕…

5-6년 전 쯤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라는 성선택 관련 책을 재미있게 보았다.
https://m.blog.naver.com/natf/222055543596
일반적인 미학은 아니고, 배우자 또는 성적 상대를 고르는데 동물들이 어떤 경향을 보이는지 이야기하는 책이었고, 동물행동학 연구 대부분에 인간에 대한 연구 약간 섞은 책이었다. 나름 재미있었다.

이번 ‘욕망의 진화’는 성선택의 인간판인데, 이 책을 보고 욕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제법 보았다. 성선택과 성차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자도 그 부분을 의식하고 엄청 방어적으로 우리가 어떤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그게 필연적이거나 불변의 것이 아니고, 인간 존재에 대해 잘 안다면 오히려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경향성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자주했다.

정말 그런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고, 이런 책을 보면 생식 행동과 관련해서 인간은 동물과 그리 큰 차이가 없는듯하다. 그래서 인간만 특별난 존재로 여기는 마음이 사그라들고 조금 겸손해진다.

성선택과 관련해서 섹스, 성관계, 연애 뭐 이런 용어 대신 번역자는 ‘짝짓기’라는 말로 남녀 관계를 대부분 지칭해서 그 점이 재미있었다. 정말, 짝짓기 관련 심리학 연구를 총망라해 놓았다. 보다 보면 대부분 통설에 거스르지 않는, 남자는 밝히고 여자는 버티고 그런 이야기가 아주 많이 나와서 읽다보면 질리기도 했다. 그래도 후반부의 여성의 성 전략 관련은 흥미로운 부분이었고, 너무 이성애 편중이라 생각했는지 동성애 이야기와 잘못된 만남(배우자 밀렵이란 말로 표현해놨다)에 대해서도 후반부에 덧붙여 놓았다. 진화심리학은 ‘경향성’까지는 다양한 가설로 풀어 놓았지만, 진짜 인과관계까지는 밝혀 놓은 게 거의 없다. 저자는 자신과 동료 연구자들이 연구했던 결과를 통해 인간이 왜 이 모양인지에 대해 나름 대략 이 정도의 비율로 그 모양이야...다 그런 건 아닌데 대부분 그래… 뭐 이런 식으로 뒤집히길 바란 통념들을 공고히 해줘서 실망하게 했다. 그래도 후학들을 위해 앞으로 후속 연구에서 이런 점 제대로 밝혀 줬으면 좋겠어, 하고 연구 주제 제안도 많이 한다. 정말, 짝짓기에 대해 샅샅이 훑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어느 성이 몇 퍼센트 어떤 경향이 있고 어쩌고 하는 연구 결과가 거의 대부분이라 일반 교양서처럼 재미있게 읽기엔 좀 힘들고, 약간 대학 전공 수업 교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번역한 전중환 선생님의 ‘진화한 마음’은 6-7년 전에 보았는데, 독후감을 다시 보니 지금이랑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했던 말을 매번 또 반복하고 비슷한 걸 또 다시 읽고 또 쓰고 그러고 있구나…
https://m.blog.naver.com/natf/221615240156
‘욕망’에 대해 나름 탐구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책들을 파 봤는데, 욕망의 정의도 불분명하고, 대체로 성욕이란 말의 대체어로 욕망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속 시원하고 이거다 싶은 책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프로이트나 라캉까지는 가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못 알아듣는 말만 늘어놓을까 봐 겁난다. 너무 진화론에 수긍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서도 ‘아마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게 됐을 거야’ 하던 썰이 책에 나와서 오, 했는데 그냥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구나, 뭐가 답인지는 알려고 내내 애를 쓰겠지만 진짜 명쾌한 뭔가는 나오지 않는 분야가 이성애 관계론이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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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수많은 성공들의 길고 끊임없는 대열에서 나온 산물이다.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진화의 성공담이다. (232)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행동이 성공을 거두는 까닭은 상대에 대한 정서적인 헌신을 신호하고, 손실을 끼치기는커녕 이득을 제공하며, 배우자에 대한 여성의 심리적 선호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268, 읽고 있는 박완서 단편 소설에서 배우자들은 이걸 모르고 다 정반대로 행동해서 여성들이 삶을 공허하고 지긋지긋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가해자 남성은 아내를 붙잡으려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점점 더 심하게 아내를 학대하여 배신을 차마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해자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셈이다. 아내가 지금의 남편과의 생활이 너무 소모적이라 판단하고 차라리 다른 곳에서 더 나은 남자를 만나려는 결심을 하게끔 부추기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가해자 남편들이 종종 아내를 학대한 후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울고불고 매달리면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까닭일지 모른다. 곧 이렇게 뉘우치는 행동은 아내를 통제할 목적으로 학대 전술을 사용하는 것에 내재한 결함, 즉 버림받을 위험성을 피하기 위한 시도이다. (314, 부모의 결혼 생활 내내 지겹게 본 장면이라 난 모든 부부가 다 이런 줄 알았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심지어 남편을 죽여버리기까지 한다고…)

-여성이 사랑을 얻기 위해 섹스를 제공하고 남성이 섹스를 얻기 위해 사랑을 제공한다면, 남성에게서 섹스를 빼앗는 행동은 그의 사랑을 차단하고 이별을 돋우는 효과적인 방책이 될 것이다. (351, 뻔한 소리 같은데 글로 써 놓은 걸 읽으니 왜 이리 무섭고 슬프냐)

-우리는 진화가 명한 성 역할에 속박된 노예가 아니다. 각각의 짝짓기 전략을 초래하는 조건들을 잘 이해함으로써 어떤 전략을 작동시키고 어떤 전략을 휴지 상태로 둘지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406, 그렇구나. 그런데 난 왜 이걸 보고 있는지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심심했나)

-불안한 혹은 양가적인 애착 유형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진정 자신을 사랑해 주는지 매우 불안해 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융화되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과 진정 친밀해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고 믿는다. 이들은 다른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자신의 욕망이 오히려 사람들을 쫓아버릴 것이라고 느낀다. (462, 이 부분 보고 나야 나, 한 사람? 일단 저요….)

-(설문)“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면, 비록 서로 만난 지 지극히 짧은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둘이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결과, 크나큰 성차가 관찰되었다. 남성의 55.2퍼센트가, 그러나 여성은 겨우 31.7퍼센트만이 이 문장에 대해 강력하게 혹은 어느 정도 동의하였다. (493-494, 강력하게 함의하는 바가 있지 않나…이 책 내내 성차의 존재를 이런 시시콜콜한 부분에서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남성은 정작 여성 친구(여자사람친구)는 성관계 따위는 꿈도 꾸지 않는데 그녀가 자기에게 어느 정도 성적으로 끌리고 있다고 잘못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503, 진화심리학자 블레스케의 연구로 밝혀진 상황이래)

-남성은 여성보다 성적 부정에 더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정서적 부정에 더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성차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재확인되었다.(513, 한국에서는 최재천 선생님이 이 연구를...애기 때 읽은 개미 제국의 발견만 생각나는데 거기에서는 진화적, 유전적 관점에서 생식을 포기한 일개미들 이야기를 인상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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