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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20250210 하정우.
복직 싫어...무서워...하면서도 나란 인간 이런저런 궁리하고 있었다. 동아리는 무조건 하이킹반이다. 뒤지게 걸을 거야… 애들은 잘 못 걷겠지… 하면서 단계적인 걷기 경로를 혼자 짜고 앉았다.
<하이킹반 주의사항 및 코스 예상>
운동화, 물, 교통비(돌아갈 때), 가방 가볍게
교통안전, 걷는 자세 바르게,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동아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동아리반장. 느린 사람. 그러나 혼자 남지 않을 정도의 속도. 뒤에서 다른 친구들 낙오되지 않도록. 이탈, 낙오, 문제시 교사에게 멈추도록 바로 알림(호루라기, 전화)
학생 전화번호, 집주소 확인(귀로 대중교통 안내용)
심장 질환, 발목 건강(인대 잘 늘어남, 골절 등) 등 건강 이슈 없는 오래 걸을 수 있는 학생만 참여 가능
1단계: 낙성대공원 2564보 1.6km 29분 왕복 강감찬전시관 등 둘러보고 돌아오기
2단계: 서울대학교 (걸어)가기 2.7km 4184보 48분 왕복
3단계: 한, 한강을 보자, 효사정 3.7km 5750보 1시간8분 편도
4단계: 보라매공원 4.2km 6553걸음 편도
5단계: 국사봉 2.1km 43분+ 산행 일부 20분
6단계: 국립현충원 출발~백운119 1.8km + 2km(워프길 산행 일부) 왕복
7단계: 여의도한강공원 6.6km 10327보 1시간 55분 or 63빌딩 6km 9322보 1시간 48분 편도
…한 명도 신청 안 해서 폐부 되는게 목표. 나 혼자 걸어야지.
걷기와 관련된 책도 미리 읽고 소개하면 좋겠다 싶어서 사놓고 펼치지도 않은 ’길 잃기 안내서‘도 생각하고, 그러다가 하정우도 옛날에 뭔 걷기 책 내가지고 엄청 팔았던 거 같은데 전자 도서관을 뒤적뒤적...애들한테 신과 함께 강림 아저씨야! 하면 좀 관심 갖겠지? 하면서 먼저 읽었다.
공부하다 힘들어 쉴 때도, 허리가 아플 때도, 시험 다 망하고 괴로워 견디기 어려울 때도, 많이 걸었다. 혼자 하는 일 중 가장 좋은 일 같기도 하다. (독서야 미안해 이제 걷기가 이겨…) 이렇게 뒤늦게 걷기 처돌이가 된 뒤에 나온지 7년이나 된 크게 관심 없던 배우가 썼다는 책을 읽는데, 의외로 좋았다. 와 나도 그런데, 하는 부분이나 야 왜 훈수질이야 근데 살살 때려 아파...하는 내용이 많아서 밑줄을 많이 쳤다.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망하는 과정에 있지 않았으면 적히지 않을 디테일도 자세하고 심정까지 탈탈 써주니 재미있었다. 배우나 가수, 연예인들은 이미지 유지하려고 가드를 올리고 쓰는 글이 많았고, 소설가들은 짠돌이처럼 좋은 문장을 픽션용으로 아껴두니, 맨날 수다 참는 시인들 에세이가 제일 낫다, 했는데 뭐 꼭 그렇지만도 않겠다 하는게 오랜만이었다. 주말마다 걷기 안 좋아하는 가족들 냅두고 나가기도 그래서 집에 갇혀 실내자전거를 탄다. 근력을 더 키우겠답시고 2+2kg 덤벨에 이어 8kg 케틀벨이란 쇳덩이까지 직전에 집에 들였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은 빠르게 여기에서 저기까지, 안 가본 새로운 골목길을 걷는 것이다. 그래서 반가워서 더 즐길 수 있었던 책이었나 보다. 책보다보니 하정우가 이야기하는 영화 왜 다 알지...하고 궁금해서 이 배우 필모그래피 보니 영화 본 게 12편이나 되었다… 나도 모르게 처돌이였구나… 팬은 아닌데 하여간에 그랬구나… 마지막으로 본 건 수능 끝나고 큰어린이랑 OTT로 본 ’백두산’? ‘김씨표류기’보고 의외로 안 나빠서 같은 감독거니 보자, 한 건데 이것도 뭐 악평에 비하면 재밌고 가볍게 볼 만 했다. 사실 이병헌 연기를 많이 좋아하는 듯… 뭐든 기대를 내려 놓으면 생각보다 좋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기대를 버려.
+밑줄 긋기
-머리 큰 내가 발까지 큰 건 분명 축복이다.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돌아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걷기밖에 없는 것만 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잘못된 길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디고 험한 길이 있을 뿐이다.
-“제가 상을 받게 된다면, 그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 길에 오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210/pimg_7921671144599455.jpeg)
-끝이 안 보이는 머나먼 길을 말할 때 흔히 ‘천릿길’이라 표현하는데, 천 리는 오늘날의 단위로 계산하면 약 392킬로미터다. 서울에서 우리의 목적지 해남까지는 577킬로미터, 우리의 국토대장정은 천릿길보다 훨씬 더 먼 길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목표점을 향해 직행하지 않고 더 먼 거리로 돌아가는 것을 일명 ‘돌려깎기’라고 부른다.
-날씨가 적당히 흐려서 좋았다. 걷기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일교차가 큰 맑은 날보다는 구름 지붕이 드리운 흐린 날이 좋다.
-고통보다 사람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건, 어쩌면 귀찮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다 견뎌내면 의미가 있으리라는 한줌의 기대가 있지만, 귀찮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이 모든 게 헛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른다는 거니까.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삶을 올바로 지탱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더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며 고통받다가 너무도 빨리 사라져버린 뛰어난 예술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한낱 연약한 인간으로서 그 고통의 무게를 견디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 누구도 이런 삶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감당할 수는 없다.
-그때 나는 실제로 개사료를 먹었는데 흙맛이 났다......
-진간장이나 국간장 말고 반드시 일본 다시마 간장을 써야 맛있다. 그리고 볶기 전에 가지는 물에 한번 데쳐야 한다. 생가지는 기름을 지나치게 잘 흡수하기 때문에, 데치지 않고 바로 볶으면 기름을 왕창 먹어서 맛이 없어진다. (음식 만드는 부분 진짜 볼드체 궁서체라 웃겨서 일부 퍼옴...이거랑 비슷하게 가지 다루는 법을 언어와 매체 근대국어 ‘음식디미방’ 지문에서 봤던 거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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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 흔적 거의 지워놨는데 1670년의 가지 간수하는 법은 왜 흥미로워서 냅둠
-미역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맛있어진다는데 오랫동안 푹 끓여서 이런 맛이 나는 걸까? 사장님에게 물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비밀은 ‘쌀뜨물’에 있었다. 쌀뜨물로 끓인 미역국은 곡물에서 배어난 고소한 맛이 해산물과 고기를 휘감아서, 한 차원 다른 국으로 업그레이드해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힘들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되뇌게 되었다.
‘아, 힘들다......걸어야겠다.’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남 탓을 하는 사람 들을 볼 때가 있다. 물론 그간 쏟아부은 노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 가지다. 오로지 나만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작고 얕은 마 음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책 임을 밖으로 돌릴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화 나고 억울한 마음뿐이다. 그 상태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니까 남 탓은 나를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어쩌면 감사도 연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연결고리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사람을 만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안녕 하세요'라는 인사처럼 쓴다
-(친구들과 한 독서목록의 같이 읽은 책 일부) ‘말의 품격’(이기주), ‘말의 한 수’(다다 후미아키), ‘조훈현, 고 수의 생각법’(조훈현), ‘맨박스‘(토니 포터),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마이클 해리스), ’센서티브‘(일자 샌드), ’최고의 휴식‘(구가야 아키라), ’걷기 예찬‘(다비드 르 브르통), ’운을 읽는 변호사‘(니시나카 쓰토무) (이렇게 까지 한 권도 안 겹치고 생전 처음 듣는 책들은 또 처음이라 신기해서 베껴둬 봄)
-걷기와 휴식, 단순한 삶에 대한 관심,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에 대한 해석, 남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고민, 말의 힘 그러므로 누군가를 탓하거나 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람들은 대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들 말한다. ”가만히 좀 있어“ ”정신없어“ “왜 이렇게 산만해?” “집중 좀 해” 그런 잔소리들도 거침없이 한다. 나는 일면 사람들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딴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여기저기에 다양한 관심을 두는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한우물만 파라는 말은 이 상하게 들린다. 몇 개의 우물을 부지런히 파서 열심히 두레박을 내리다보면, 내가 평생 식수로 삼을 우물을 발견하기가 더 쉬워지 지 않을까? 나는 한 사람 안에 잠재된 여러 가지 능력을 일생에 걸쳐 끄집어내고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이자 의무라고 본다. 그런 과정이 결국 나를 완성해주는 것이라 믿는다.
-아마 나는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위치나 상황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판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경험은 혼자 극복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흔히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당하면서 분명 어떤 노력을 하긴 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들, 이를테면 나무 위로 올라 가서 나뭇가지를 자르든, 온 힘을 다해 나무둥치를 흔들든, 마을로 내려가 장대를 가져와서 감을 따든, 그 시간에 다른 일들을 시도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 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 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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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갤러리에 하정우 사진이 있다니! 해서 봤더니 6년 전 어린이가 야무지게 먹는게 너무 비슷해가지고 둘이 붙여놨던...황해 보다 극장에서 연기나서 도망쳤던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