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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제도 - 월리스의 항해경로 지도 + 월리스 연보 + 월리스 논문 수록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지오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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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2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월리스에 대해 알게 된 때는 2019년에 ‘깃털도둑’이라는 책을 읽으면서였다. 처음에는 픽션인 줄 알고 흥미롭군, 하고 읽었다. 월리스란 탐험가가 기껏 수집한 영국 박물관의 새 박제를 어떤 놈이 깃털 뽑아서 낚시용 미끼(플라이) 만드느라 야금야금 훔치는데 제대로 관리, 감시가 안 되어서 범행을 되게 늦게 알게 되고 표본들은 잔뜩 훼손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거기에서 월리스란 사람이 ‘말레이 제도’란 책을 썼고, 다윈보다 비슷한 시기, 어쩌면 조금 이르게 자연선택설을 발견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월리스가 탐험한 말레이 제도 중에서는 보르네오 섬의 코타키나발루에만 가 봤다. 거기에서 배 타고 조금 더 들어가는 가야 섬이란 곳에서 묵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섬에는 고양이 만한 도마뱀, 강아지만한 멧돼지, 커다란 뱀, 흰개미, 그런 게 있었다. 난 열대 체질 같아… 물론 에어컨 잘 되는 숙소에 묵고 수영장에서 노닥노닥했으니 좋기만 했겠지만, 고수도 좋고 두리안 같은 열대과일도 좋다. 로션 안 발라도 건조해지지 않는 피부 상태가 거기서는 내내 유지되어서 더 좋았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 강물 따라 배타고 가며 봤던 반딧불 무리도 인상깊었다.
이 지역을 언제 또 가 볼지 모르지만, 거의 200년 전 월리스가 배 타고 이 섬 저 섬 다니며 보고 관찰한 것들을 간접 체험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책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사 놓고 펼칠 결심하는 데까지도 오래 걸렸고, 실제로 읽는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지만, 뭔가 같이 갖춰둔 종의 기원보다 먼저 이 책을 읽는게 월리스를 예우해주는 기분을 혼자 느끼고 있었다.

오랑우탄 사냥 이야기는 조금 슬펐다. 표본 채집한다고 총으로 엄청 쏴 대고 얼마난 어떤 개체를 어디서 어떻게 잡았나 어떻게 가공했나 그걸 다 자세히 적어 두었다. 네 덕분에 멸종 위기종 아니냐… 두리안 농장 원주민들은 두리안 훔쳐 먹는 오랑우탄 잡아준다고 좋아했다고 주장하지만, 월리스 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유럽인들이 총질해서 수많은 종을 절멸 시켰을지… 자연사 연구에 많은 표본을 제공하고 거기에서 자연선택이란 통찰을 이끌어낸 것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 과정까지는 오구오구 못하겠다. 오랑우탄 살려내…

라자라는 통치자가 세금으로 벼가 제대로 수확 안 되자 여러 꾀를 써서 주민 수만큼 바늘을 내게 하고, 그걸로 크리스란 칼을 만들어 신성시하면서 동시에 인구 조사한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몰라도 매우 인상깊었다. 월리스가 아니었으면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지 못했겠지. 지혜의 상징이 되는 칼이 원주민들의 사치재 내지 난동 흉기가 되는 것을 보면 섬뜩하기도 했다. 칼이 나쁜 게 아니라 칼을 쓰는 손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난 늘 칼이 무서워서 설거지 마친 주방의 칼들을 꽁꽁 숨기는 버릇이 있다(식칼 들고 가스레인지 상판 내리꽂아 엑스칼리버 만드는 부친 하에 양육되면 생기는 트라우마).

가끔은 유럽 중심주의적인 생각과 자기 사상을 풀어놓기고, 영국이나 포르투갈의 통치나 개척 방법의 불합리성에 불만을 표하며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 방법을 찬양해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시대적이고(19세기) 사회적인(대영제국인) 한계도 있겠지 싶었다. 그렇지만 오지의 험한 바다와 진창길과 거친 숲을 헤쳐가며 새롭거나 드문 생명체들을 찾아 나서는 열정을 보면, 이건 아무리 돈벌이가 되더라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짓 아니면 못하겠네, (실제로 채집이나 뱃일 거들면 돈 준다고 해도 힘들어서 안 한다고 도망가거나 거절하는 원주민들이 많았다) 싶었다. 나보다 약간 젊은 시절의 월리스 아저씨는 참 열정적으로 살았네, 본국과 엄청나게 떨어진, 유럽인 관점에선 거의 지구 끝이나 다름 없는 동네를 겁없이 헤집고 다녔네, 내가 딛고 다니는 범위는 참 좁고 좁구나, 새삼 느꼈다.

극락조를 향한 집념과 이 새의 표본들을 구하기까지 고생했던 과정들을 읽으면, 이건 정말 과학적 탐구심 때문일까? 돈 때문일까? 아름다움을 향한 집착일까? 남들이 못 본 걸 먼저 발견하고 이름 붙이는 영광을 위한 걸까? 아마도 복합적인 이유겠다 싶었다. 오랑우탄과 마찬가지로 극락조도 무역 거래 품목으로 값지게 거래되고, 워낙 희소한데다 유럽인들까지 극락조 채집에 가세해서 이 아름다운 생물이 개체 수도 많이 줄었겠다. ‘월리스흰깃발극락조’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극락조’(421)를 발견한 덕에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확실히 이뤘겠다. 월리스 씨는 여러 조류와 곤충류 등등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자연 선택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다윈과 나란히 논문도 올렸고(비록 덜 유명해졌지만) 이 두꺼운 책 ‘말레이 제도’와 그밖의 서적들도 남겼다. 덕분에 내가 19세기 말의 유럽인이 동남아시아 지역과 오세아니아 지역 일부를 뒤지고 다닌 흔적을 따라갈 수 있었다. 독서대 책잡이가 제대로 버티지 못할 만큼 두껍고 버거운 분량이었지만, 빙긋 웃게 하는 부분도 제법 있었다. 월리스라는 탐험가 자체가 나쁜 유럽놈 같지 않고 실제는 어땠나 모르겠지만(자기 책이니까 최대한 원주민한테 부당하게 굴지 않은 척 했을 수도 있지만) 벌레랑 새 덕후이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새와 벌레와 식물을 한참 들여다보고 저기 좀 봐, 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되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밑줄 긋기
-이 펄프 과육이 먹는 부위이고 그 농도와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버터 같은 진한 커스터드에 아몬드 향을 진하게 첨가했다고 하면 대충 이해가 되겠지만 여기에다 크림치즈, 양파 소스, 브라운 셰리, 그 밖의 독특한 맛이 어우러진다. 과육에는 어떤 과일에도 없는 진하고 차진 부드러움이 있는데 이것이 풍미를 더한다. 시지도 달지도 즙이 많지도 않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 그 자체로 완벽하기 때문이다. 메스껍거나 그 밖의 안 좋은 풍미는 전혀 없으며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진다. 사실 두리안을 먹는 것은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는 것이며 이 맛을 보려고 동양을 여행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112-113, 그렇다, 두리안 이야기였다. 이 부분을 읽기 직전에 이미 냉동 두리안 과육을 주문했을 만큼...월리스 씨 취향이 저랑 겹치시네요.)

-이것은 술라웨시 섬 원주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보편적인, 따라서 명예로운 방법이며 난국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애용된다. 로마인은 자신의 칼에 엎어졌고, 일본인은 스스로 배를 가르며, 영국인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박살낸다. 부기족의 방식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많은 이점이 있다. 사회에서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고 생각하거나, 빚을 졌는데 갚을 길이 막막하거나, 자신이 노예가 되었거나 아내가 자식이 노름빚에 노예가 되었거나, 잃은 것을 되찾을 방법이 없을 때 사람은 자포자기한다. 이런 사람은 이런 가혹한 처사를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복수하고 영웅처럼 죽는다. 크리스(이 동네 장식적인 칼) 손잡이를 움켜쥐고는 다음 순간에 크리스를 꺼내 어떤 이의 심장을 마구 찌른다. 그러면 거리에 “아묵! 아묵!”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창, 크리스, 칼, 총이 그에게 겨누어진다. 그는 미친 듯 내달리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을 모두 죽이다가 전투의 흥분 상태에서 중과부적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 흥분이 무엇인지는 겪어본 사람이 가장 잘 알겠지만, 격렬한 열정에 빠져봤거나 폭력적이고 흥분된 행위를 해 본 사람이라면 어떤 것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것은 정신착란으로 인한 도취 상태이며 모든 생각과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일시적 광증이다. (234-235, 묻지마 학살을 하다가 잡혀 죽는 게 명예로운 자살 방법인 독특한 이야기...amok의 어원)

-야생동물의 삶은 생존 투쟁이다. 자신과 새끼의 목숨을 부지하려면 모든 능력과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가장 곤궁한 계절에 먹이를 구하고 가장 위험한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가가 개체와 종 전체의 생존을 좌우한다. 종의 마릿수도 이에 따라 정해진다. 모든 상황을 곰곰이 따져보면, 언뜻 보기에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상, 즉 왜 어떤 종은 매우 흔한데 이들의 근연종은 매우 귀한가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792, 월리스의 논문 ‘변종이 원형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 중. 1858년 2월 트르나테에서 씀. 바로 발표하지 않고 다윈에게 논평 청함. 다윈의 논문은 월리스 논문과 함께 1858년 7월 린네학회에 제출되었고, 다윈의 ‘종의 기원’은 1859년 11월 출간됨. 누가 먼저일까요? 다윈이 대스타 된 거에 비하면 월리스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렇지만 그럭저럭 자연사학자로 대접받으며 잘 살다 간 것 같다. 이 책 번역판도 한국에는 2017년에야 뒤늦게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가축은 모든 변종의 생존 가능성이 같으며, 야생동물에서라면 경쟁력이 없고 생존할 수 없는 변이도 전혀 단점이 되지 않는다. 금방 살찌는 돼지, 다리가 짧은 양, 모이주머니가 부푼 비둘기, 털이 곱슬곱슬한 개는 자연 상태에서는 결코 존속할 수 없다. 이런 열등한 형태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디는 순간 멸종했을 테니 말이다. 야생의 근연종과 경쟁하여 존속할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798-799, 월리스의 논문 ‘변종이 원형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 중)

-마을에서 말레이어를 몇 단어 이상 구사하는 사람은(술라웨시 섬-마카사르 지역) 한 명도 없었으며, 전에 유럽인을 본 적이 있는 사람도 전혀 없는 듯했다. 이로 인한 가장 불쾌한 결과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를 보면 기겁했다는 것이다. (…) 물소가 나를 발견하면 아이나 가옥에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물을 긷거나 아이들이 멱을 감는 우물에 내가 갑자기 나타나면 순식간에 달아날 것이 뻔했다. 나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괴물 취급 받는 것에 익숙한 적이 없었기에 매일같이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무척 불쾌했다. (291-292, 대부분 환대만 받다가 괴물 보듯하는 사람들을 겪으며 힘든 나날.)

-열대지방에 서식한다는 화려한 꽃들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 물음은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근사한 열대 꽃식물은 우리의 온실에서 재배되었으며 매우 다양한 지역에서 선별되었으므로 한 지역의 풍부성에 대해서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 (308, K-pop 아이돌만 모아 보면 한국 사람 다 예쁘고 잘 생긴 것으로 착각하는 것…)

-이곳에서는 경외와 조소가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한편으로는 가장 끔찍하고 파괴적인 자연 현상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바위, 산, 땅이 흔들리고 떨렸으며 우리는 어느 때든 우리를 집어삼킬지도 모를 위험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불필요한 경고에도-진동은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할 만큼 강해지는가 싶다가도 이내 사그라들었다-수많은 남녀노소가 집에서 뛰쳐나왔다 들어가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치 ‘지진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웃을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나를 따라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323, 유럽인이 동남아시아에서 겪은 지진. 더운 나라에 살고 싶다면서 늘 잊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이 지진 다발지역이란 사실이다.)

-북유럽 대다수 지역의 주민들은 땅을 안정과 휴식의 상징으로 여긴다. 평생 동안의 경험, 동년배와 동세대 전체의 경험을 통해 땅이 굳고 단단하며 거대한 바위에 물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되 불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안다. 땅의 이러한 기본적 속성은 자기 나라의 모든 산에서 드러나는 바이다. 화산은 이 모든 집적된 경험과 정반대의 사실이다. 너무도 무시무시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것이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었다면 땅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이 사실은 너무나 이상하고 불가해 하기에,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으로 처음 우리에게 소개된다면 누가 말해도 곧이들리지 않을 것이다. (369, 지진-화산대에 살아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땅에 대한 인식 차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전무후무한 사치를 즐겼다. 바로 진짜 빵나무였다. (…) 빵나무는 말레이 제도의 여러 지역에서 자라지만 이곳만큼 풍부한 곳은 없는 데다 수확까지의 기간도 짧다. 열매는 뜨거운 잉걸불에 바짝 구워 속을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내가 요크셔 푸딩과 비슷하다고 했더니 찰스 앨런은 우유를 넣은 매시트포테이토 같다고 말했다. 열매 크기는 대체로 멜론만 하며, 한가운데로 갈수록 약간 질기지만 나머지 부위는 꽤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농도는 효모 덤플링과 배터 푸딩의 중간이었다. 이따금 빵나무 열매로 카레나 스튜를 만들거나 얇게 저며서 튀기기도 했지만, 그냥 굽는 게 가장 맛있었다. 열매는 달콤하게 해서 먹을 수도 있고 짭짤하게 해서 먹을 수도 있다. 고기와 그레이비소스를 곁들이면 온대지방과 열대지방을 통틀어 내가 아는 채소 중에 으뜸이다. 설탕이나 우유, 버터, 당밀을 넣으면 맛있는 푸딩이 되는데 매우 은은하고 미묘하면서도 독특한 향미가 난다. 훌륭한 빵과 감자 같아서 결코 질리지 않는다. 빵나무가 비교적 드문 이유는 씨앗을 심으면 늘 실패하고 접붙이기로만 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390, 암본 섬의 빵나무 영업. 나도 먹고 싶어졌다.)

-산 그림자를 빠져나오자 산등성이 한쪽에 깔린 밝은 빛이 보였다. 이내 산꼭대기에서 눈에 띄게 하얀 불 같은 것이 보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저것 좀 보라고 했다. 그들도 그냥 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변을 떠난 지 몇 분이 지났을 때 빛은 산등성이 위로 솟아 있었다. 희뿌연 구름이 걷히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당시에 온 유럽을 놀라게 한 아름다운 (도나티) 혜성이었다. 혜성의 핵은 맨눈으로 보면 밝은 흰 빛의 뚜렷한 원반처럼 보였으며, 거기에서 꼬리가 수평선과 약 30-35도의 각도로 솟았다가 약간 아래로 휘더니 희미한 빛을 솔처럼 넓게 뿌렸다. 꼬리의 곡선은 점차 밋밋해지더니 마지막에는 거의 직선이 되었다. 혜성 꼬리의 밑동은 은하수에서 가장 밝은 부분보다 서너 배 밝아 보였으며, 위쪽 가장자리가 핵에서 꼬리 끝까지 뚜렷하고 날카롭게 구분되는 반면에 아래쪽 가장자리는 차츰 희미해지다 사라지는 것이 이채로웠다. (410-411, 채집 항해 나섰다가 혜성 만나는 운빨. 좋은 기억력과 묘사력)

-이 나비(크로에수스비단제비나비)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마침내 녀석을 잡았을 때 내가 느낀 희열은 자연사학자가 아닌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녀석을 그물에서 꺼내어 멋진 날개를 펼치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피가 머리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임박한 죽음을 예감할 때보다 훨씬 어질어질했다.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그날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흥분한 이유에 전혀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430, 바찬 섬에서 신종 나비 잡고 신나서 머리까지 아픈 나비 덕후)

-마상이(517): 거룻배처럼 노를 젓는 작은 배. 통나무를 파서 만든 작은 배.

-하지만 내 눈에 가장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나무고사리였다. 열대에서 7년을 보내면서 이렇게 완벽한 것은 처음 봤다. 지금껏 본 것은 모두 호리호리하고 높이가 3.6미터를 넘지 않았으며 전혀 아름답지 않았지만, 이 숲 여기저기에 풍부하게 흩어져 자라는 나무고사리는 근사한 양치 잎 머리를 공중으로 9미터 넘게 쳐들어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열대식물 중에서 이토록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은 결코 없다. (547, 단언컨대 가장 아름답다는, 9미터 넘는 아루 제도의 워캄 섬 거대 고사리의 삽화는 아쉽게도 없다. 우리에겐 월리스의 자랑-난 봤는데 엄청 예쁨, 니들은 못 봐서 안 됐네-만 남았다.)

-이 잡다하고 무식하고 잔인하고 손버릇 나쁜 사람들이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경찰도, 법원도, 법률가도 없이 이곳에 모여살지만, 예상과 달리 서로의 멱을 따거나 밤낮으로 서로 약탈하거나 무정부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어찌나 이례적인지! 이들을 보면 유럽에 사는 사람들이 받고 있는 과중한 통치가 이상하게 느껴지고 우리가 과잉 통치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잉글랜드인이 서로의 멱을 따거나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이웃에게 저지르지 않도록 수많은 법률이 해마다 제정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또한 수많은 법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수천 명의 법률가와 변호사를 생각해 보라. 도보에 법률이 너무 적다면 잉글랜드에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551)

-이렇게 생각해 보면 모든 생물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많은 생물은 인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들의 생명 순환은 인간과 별개로 흘러왔으며 인간의 지적 발달이 진행될 때마다 교란되거나 파괴된다. 이들의 행복과 기쁨, 사랑과 미움, 생존 투쟁, 격렬한 삶과 이른 죽음은 자신의 안녕과 영속과만 직접적 관계를 맺으며,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수많은 생물의 동등한 안녕과 영속에 의해서만 제약될 것이다. (558-559)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보관하고 축적할 수 있는 녹말질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해야 한다. 그래야 영양가 있는 음식을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다. 이 바탕에서 채소, 과일, 고기 등을 식단에 추가하면 더 좋다. (563, 월리스 선생님의 건강 상식, 제대로 못 먹고 사는 부족은 병이 많고 피부도 안 좋다고...)

-처음에는 이 많은 방문객이 우연인 줄 알았지만 이제 이유를 알았다. 몇 해 전에 런던에서 줄루족과 아즈텍족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판이 뒤집혀 내가 새롭고 낯선 별종이 되어 이들의 눈요깃감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나 자신이 살아 있는 채로 흥미진진한 전시물이 되다니, 그것도 공짜로. (571, 아루 제도 내륙 마을에서 이번엔 피하기는 커녕 매일 모든 마을 사람들이 보러 찾아온다.)

-노드리듯(670): 노끈을 드리운 듯 빗발이 굵고 곧게 뻗치며 죽죽 내리쏟아지는 모양.

-첫 승무원들은 달아났고, 두 사람은 무인도에 한 달간 갇혀 있었으며, 우리는 산호초에 열 번이나 좌초했고, 닻을 네 개 잃었으며, 돛은 쥐가 갉아 먹었고, 소형 보트는 떠내려갔으며, 열이틀이면 충분한 항해가 서른여드레 걸렸고, 식량과 물이 여러 번 부족했으며, 출항할 때 와이게오 섬에 기름이 한 방울도 없어서 나침반 램프를 켜지 못했고, 무엇보다 고롱 제도에서 스람 섬을 거쳐 와이게오 섬에 갔다가 와이게오 섬에서 트르나테 섬에 오는 전 항해 일정 78일, 즉 단 열이틀 모자라는 석달 동안 순풍을 받은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순풍이 불었어야 하는 계절이었는데도). 우리는 늘 바람을 안고 달렸으며 늘 바람, 조수, 풍압과 싸웠다. 게다가 우리 배는 바람의 각도가 90도 이하이면 거의 범주할 수 없었다. 뱃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내 배를 타고 나선 첫 항해가 매우 불운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679, 파푸아 군의 후반부는 지난한 월리스 씨의 항해 이야기가 한참 나온다. 대항해시대 게임할 때 역풍 불어서 외롭고 고독하게 너무 오래 바다 위에서 제발 육지에 닿길 바라던 생각이 난다. 괴혈병, 크라켄, 세이렌 이런 것도…)

-(파푸아 민족의) 머리카락은 매우 독특하여 거칠고 건조하고 꼬불꼬불하며 작은 다발이나 곱슬머리를 이루어 자란다. 어릴 적에는 매우 짧고 촘촘하지만 나중에는 꽤 길게 자라 촘촘하고 꼬불꼬불한 더벅머리가 되는데 파푸아인들은 이 머리를 자랑이자 영광으로 여긴다. (731, 아무래도 내 조상은 아프리칸 쪽이 아니라 파푸아 인들이었던 것 같다. 나도 내 곱슬머리를 자랑이자 영광으로 여겨야 겠군…)

-반면에 파푸아인이 자녀를 더 가혹하게 훈육하는 것은 활력과 정력이 더 큰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약자는 늘 머지 않아 강자에게 반항한다. 인민이 통치자에게, 노예가 주인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맞서 일어선다. (734, 반항아 파푸아인...점점 내 조상으로 확신하는 중…)

-대지주가 자신의 토지를 전부 숲이나 사냥터로 바꾸어 지금껏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한 모든 사람을 쫓아내더라도 이는 합법적이다. 잉글랜드처럼 인구가 밀집하여 단위면적마다 소유자와 점유자가 있는 나라에서 이는 합법적 살인 권한이다. 아무리 사소한 정도라도 이러한 권한이 존재하고 개인이 이를 행사할 수 있다면, 진정한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야만 상태에 있다. (745, 자연사학자의 결론은 영국 사회를 말레이 제도의 각 사회와 민족에 자신들을 비추어보고 ‘우리는 고귀한 야만인 계층에 비해 결코 실질적이거나 중대한 우위를 유지할 수 없을 것’(744)이라는 데 도달한다. 단순히 미개인들 완전 미개함, 이게 아니라 우리 영국도 더 나을 것 없어, 하는 반성 내지 통찰로 끌고 가는 게 여행의 영향인가 흥미롭기도 하고, 꼭 교훈적일 필요는 없는데 그러고 싶었나 보다 정의로운 월리스 씨, 그런데 다윈에게는 관대하고 겸손했네 싶다.)

+어깨걸이극락조
+파푸아인의 곱슬은 나랑 비슷
+극락조 사냥
+뱀 잡이
+월리스 씨가 분류한 말레이 제도 지역군
+멋있고 잔혹한 크리스 칼
+겨우겨우 뿌순 벽돌 두 권. 소돔120일과 말레이 제도 병행 독서는 좀 과했다. 나 같은 놈 어디 또 있어도 흔하지는 않아서 이번 생에 마주하긴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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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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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8 임솔아.

맨 마지막 소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을 제일 먼저 읽었다. 신년이라서 어울릴까 했는데 배경이 신년이긴 했다. 눈이 쌓인 호숫가에 모인 여성들, 여섯이었다가 넷만 모였지만 멀리 하나까지 다섯이 계속 이어지려 애쓰고 있었다. 연대하다 싸우다 다시 자신 없이 희망을 끌어올리려 분투하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오래 전 읽은 윤이형의 ‘작은마음동호회’와 ‘붕대감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바로 윤이형의 발문이 이어졌다. 고통으로 가득찬 소설집이면 아마 나중으로 미뤄뒀을 것 같다. 고통 서사 중독자이긴 했는데, 오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진화에서 고통이 기여한 바가 있어서 고통 받고 고통에 민감한 존재들이 여태 남아 있고, 또다른 고통 받는 자손들을 이어갔겠지만… 꺼져 진화… 꺼져라 고통… 이렇게 남의-그것도 매우 잘 쓰던 소설가의- 서평을 먼저 읽고 소설들 하나씩 꺼내 읽는 건데 이게 나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더 읽어봐야 알겠다. 다 읽고 나니 서평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독서에 큰 영향을 안 준다. 어차피 직접 읽기 전엔 아무 것도 모른다. 다행이다. 휴.

‘줄 게 있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왜.
‘병원’은 카프카 생각난다고 하면 작가가 좋아할지 화낼지 모르겠다. 윤동주의 병원도 나왔다. 이전에 변신의 잠자의 방 건너편 병원에 대해 상상해 쓴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내가 겪은 병원은 저것보다는 나은데 저런 병원도 어느 세상에는 있겠지. 저런 삶도 가능하겠지. 곧 불가능하겠지. 아, 상해진단서를 끊을지 말지 그걸 끊으면 건강보험이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안 끊었던 것 같은, 입원한 나와 엄마를 한심하게 다루던 의료진들이 여럿 있던 병원이 그나마 저기랑 가깝겠다. 거기에는 피를 흘리는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책을 다 읽도록 뭔가를 쓰거나 밑줄을 긋거나 하지 않았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뒤적이며 건질 만했던 문장이 생각나면 옮기고, 아니면 말고, 했다. 지금은 뭔가 집중력이 무너졌는가, 책한테 딴지를 걸고 싶은가, 대화를 하고 싶은가, 인터랙티브는 아니고 오도방정을 떨며 아무말잔치를 하려고 책읽기는 뒷전인 것 같았다. 이제 한동안은 책 다 읽을 때까지 뭘 찌그리지 말아야지. 옮겨적지 말아야지. 이 책도 거의 절반을 봤지만 남은 동안만이라도 그래야지. 하는 주절이를 마지막으로 적는다. 에효. 후지다.

‘다시 하자고’ 피아 구분 못하다가 분리되는 홀가분함
‘추앙’ 사람 같지도 않은 새끼들 다 죽었으면. 이라고 쓰는데 갑자기 눈 뒤쪽으로 뭐가 위아래 훝고 지나갔다. 비문증은 반대쪽 눈인데. 너무 성질 내지 말아야지.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나는 빌러비드랑 빌리버드가 늘 헷갈린다. 병든 사람이 곁의 사람을 병든 사람처럼 만드는 되먹임을 나는 많이 겪어 봤다고 하기에는 또 다른 모습이라 뭔가 징글징글한데도 애증인지 애정인지 수프 먹고 싶었다.
‘신체 적출물’ 손톱이나 머리카락 말고 잃어본 적 없어서 다행이다.
‘선샤인 살레’ 열대섬 가 본 기억이 나고 다시 가고 싶지만 비행기를 오래 못 타서 이젠 해외 못 갈 것 같다. 이름 잃고 낙원 같은 곳에 이름 없는 사람들과 아주 잠시만 교감하다 일회용 감정 관계 묻고 사라지는 삶 그거 아주 워너비 아닌가 그래서 소설 속에만 있다.

오, 앞에서부터 읽은 소설들은 다 인상적이고 좋았다. 순서대로 읽을 것을 괜히 표제작부터 읽었다. 이거는 매운맛 먹고 샤벳 같은 걸로 도닥거리는 순서였는데 나는 눈부터 실컷 퍼먹고 야 싱겁냐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역시 아까 다짐한 것처럼 책읽기에 집중하고 괜히 옆에서 추임새 넣는 메모 같은 거 좀 자제해야 겠다. 그편이 더 나은 독서인 걸 오랜만에 알았다. 한국 소설 읽기도 오랜만이다. 아주 오랜만인데 생각보다 좋았다.

+밑줄 긋기
-연대에도 자격이 있겠지요. 우리에겐 그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봤어요. 나래씨는 성폭력 피해자였고 앞장서서 싸워왔어요. 나래씨는 피해자들의 싸움에 우리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고통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고통마저 약탈해서 정의로운 척하는 족속을 보듯이 우리를 본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 그런 사람들일까요?(183, ’눈과 사람과 눈사람‘ 중. 당사자성. 고통이 짙으면 비뚤어지기도 한다.)

-단단해지고 싶어서 자기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떼어내 냉동실에 넣어 얼리는 사람은 단단한 사람일까 말랑말랑한 사람일까. (203, 윤이형의 발문 중)

-그들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회는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210, 흑흑)

-“그렇게 슬픔을 이겨나가는 거야.”
이겨나가야 할 정도의 슬픔이 나에게는 없었다. (17, ‘줄 게 있어’ 중. 슬플 거라고 단정하지 마. 슬픔을 강요하지 마. 너의 죄책감을 내 죄책감 스위치 켜는데 쓰지 마.)

-“있고 싶어요.”
“그래, 잊어야지.” (33, 말 되게 못 알아 처먹는 인간들. 사람을 말려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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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쏘 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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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상 입은 밤하늘
오션 브엉 지음, 안톤 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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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오션 브엉.

남자는 베트남 전쟁에 다녀왔다. 싸우다 다쳤다. 돈을 벌어왔고, 깡통에 든 온갖 조림과 과일과 커피와 주스 가루와 향기로운 비누 같은 걸 집에 가져왔다. 그렇지만 이후 내내 술로 살았다. 큰아들을 전쟁에 내보낼 만큼 가난했던 부모를 원망하고, 어머니에게 술주정을 했다.
큰아들의 큰아들은 남자의 꾸중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 떠돌았다. 나이 든 아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췌장암 말기 환자가 되어 있었고,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나무 밑에 묻었다.
큰아들의 작은아들은 나이를 먹도록 혼인을 못했다. 자신보다 스무살 가까이 어린 여자아이를 베트남 깡시골에서 데려왔다. 여자는 한국을 동경했지만 한국살이에, 혼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고향집에 다녀오겠다는 걸 보내면서, 가서 싫으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방 두 달 전 태어난 남자는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암 진단을 받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다. 참전용사 해병병장이었던 남자의 유해는 국립현충원의 충혼당에 모셔졌다. 살아서는 놓여 본 적 없는 로얄층 로얄라인, 한 벽면의 가로 세로 한가운데에 죽어있게 되었다.

나는 그 친척 남자가 베트남에 다녀온 걸 떠올릴 때면, 사람을 죽여봤겠지, 민간인도 죽여봤을까? 베트남 여자들에게 몹쓸짓을 했을까? 잠시 궁금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전쟁에 대해 물을 생각은 안 했다. 남자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그저 말이 없고, 내가 다니러 가면 00이 왔니, 하고 더 할 말을 못 찾았다. 아주 어린 오래 전에 00이가 공부를 잘 한다며, 한 게 가장 길게 걸어온 말이었던 것 같다.

베트남, 하면 그렇게 다녀왔던 남자가 떠오르고, 나중에 다낭 여행을 갔다가 거기는 완전 열대기후는 아니라 겨울에는 선선하구나, 수영을 할 수 없구나, 하고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오래 줄 섰다 먹은 반미는 정말 맛있었는데, 미국이 싫어서 반미인가, 그런 시덥잖은 농담만 맴돌고.

소설 ‘지상에서 잠시 우리는 매혹적이다’를 먼저 사 놨다. 친구가 어느 구절을 옮겨 주며 어떠냐고 물었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많이 찾았던 것 같다. 같은 작가의 시집이 있는 걸 알고 제목이 강렬해서 마련해 두었다. 영한 번역 처음 한다는 한영 번역 위주로 하던 번역가가 옮겼으니 베트남어 아니고 영어로 쓰인 시일 것이다.

시인이 표지 사진만 보면 지정 성별 남성으로 보이니까, 시를 읽다 보니 이 남자는 남자들을 사랑하는 것 같고, 아버지로 괴롭고, 어머니로 조금 녹고, 누군가 총에 맞았던 모양이고, 그랬다.
친구가 단골로 다니던 혼술집에 두어번 따라갔었는데, 어느날 친구가 그 사장님 여자예요,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남의 성별이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나 그런 걸 함부로 예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글 잘 쓰는 게이들이 꽤 많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 없어… 나는 사람 되려면 멀었다.

베트남의 전쟁을 겪은 세대의 후손들이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자식 손주들은 거기에서 받은 영향을 글로 꽤 많이 풀어낸 것 같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치르고 태평양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의 후예인 우리들은 거기에 대해 너무 모르고, 그래서 잘 이야기하거나 쓰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 그 시절을 거친 조부모나 친척 어른들과 생애의 접점이 있긴 했는데, 우리는 물을 생각을 못했고, 그들은 말할 생각을 못했다. 그러고는 21세기에 하나둘 돌아가셨다. 이미상의 소설 ‘셀붕이의 도’에서는 그 상처를 조심성 없이 후벼파서 할아버지를 긁어버린 미히 같은 애도 있었다. 그러진 말아야지.
나의 부모도 정작 제일 뼈아프고 부끄러웠던 젊은 기억은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적당히 몰래 훔쳐봤을 뿐… 그러니까 유산처럼 이야기 따위 물려받을 생각 말고, 유산도 개뿔 없으니 받을 생각 말고, 내 이야기는 내가 매조지 하고 가야겠는데… 내 아이들은 내 엄마나 자기 엄마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긴 할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들은 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쓰인 것만 남는다고 설터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나는 남의 책 읽고 투덜거린 것만 남겠다.

+밑줄 긋기
-네 이름은 중력에 닿았을 때 바뀌었지. 중력은 우리의 슬개골을
부러뜨리는 한이 있어도 하늘을 보여주려고 해. 왜 우리는 자꾸
그래라고 말했을까-저 많은 새들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누가 우리를 믿을까? 라디오 안의 내 목소리가
뼈처럼 바스러지고. 바보 같은 나. 난 사랑이 진짜고
몸은 상상이라고 믿었지. 화음 하나만으로 모든 게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 다시
여기-이 추운 벌판에 서 있잖아. 그녀를 부르는 그.
그의 곁에 있는 그녀. 그녀의 발굽 아래에서 끊어지는
서리 내린 풀. (68-69, ’에우리디케‘ 중. 슬개골은 무릎 앞의 작은 뼈)

-미군 용사가 어느 베트남 시골 처녀를 박았지. 그래서 우리 엄마가 존재하고. 그래서 내가 존재하고. 고로 폭탄 없음=가족 없음=나 없음.

세상에. (92, ‘노트의 파편들’중)

-듣고 있니? 네 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어머니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든 부분이란다.
여기, 한 가닥의 지뢰선으로 깎아내린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이 있네.
걱정 마. 그냥 그걸 지평선이라고 부르면
절대 닿을 일 없으니.
(…) 두려워 마, 총소리는
조금 더 오래 살려는 자들이 내는
실패하는 소리일 뿐. 오션아. 오션아-
일어나. 네 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몸의 미래야. 그리고 기억해,
외로움마저도 세상과 같이 보낸
시간이라는 걸. 여기,
모두가 있는 방이야.
네 죽은 친구들은 바람이
풍경을 통과하듯
너를 통과하고 있어. 여기 절름발이
책상 그리고 그 책상을 지탱하는 벽돌이 있어. 그래, 여기 방이 있어
따뜻하고 피처럼 가까운,
맹세해, 넌 잠에서 깨면-
이 벽들을
피부로 착각할 것이라고.
(107-108, ‘언젠가 난 오션 브엉을 사랑할 거야’ 중)

-번역은 본래 정치적인 행위이며 역사적으로도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얽혀 있어 번역가들을 “제국의 시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답니다. 그 어감이 매우 불쾌하지만 그 말의 뜻이 아주 정당하지는 않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117, 옮긴이 안톤 허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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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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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2 치누아 아체베.

지난 달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읽고 독후감 쓴 걸 AI한테 읽어 보라 하면서 문득 궁금했다. 그 소설은 동아프리카에 한동안 머물던 백인 지주 관점에서 쓰였고, 탄자니아(케냐였나)지역 자연의 아름다움과, 유럽 출신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지역민에 대한 애정, 그의 입장에서 느낀 유대감 같은 걸 담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원주민 입장에서도 그럴까? 원주민 입장에서도 백인과 우정과 연대감을 느끼고 그걸 서술해 둔 작품도 있을까? 그런게 창작되었더라도 동족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고 비난과 함께 매장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AI는 그런 내 질문에 원주민 관점의 소설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어보라고 답했다. 마침 언젠가 소설책을 마련해뒀어서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었다. 연휴의 일곱 권 독서 중 마지막이 이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읽어 보니, 책을 권한 AI조차 되게 외부자 관점이고 뭘 몰랐네 싶었다. 이전 읽은 소설이 동아프리카 지역이라면, 이번 소설은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이보족들의 마을들이 배경이었다. 난 백인과 원주민의 우호적 교류 같은 걸 물었는데, 선교사들에게 설득되어 개종하고 광신적 기독교도가 된 원주민들이 등장했지만, 그들이 이야기의 주축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갈등의 주된 부분이고 원주민 공동체의 전통과 단결을 무너뜨리는 쪽에 가까웠다.

이야기의 주인물인 오콩코는 세 부인(나중에는 두 명 더)과 그 자녀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강인한 남자이다. 그는 게으르고 여성스럽고 능력없던 자신의 부친을 원망하고 부끄러워하면서, 그와는 정반대의 사람이 되고자 애쓴다. 열심히 일해서 가세를 일으키고, 강한 체력으로 훌륭한 씨름 선수의 모습을 보이고(그걸로 남의 여자도 꼬셔서 부인 삼는다), 마을 조상신의 강림 대리자 역할을 하는 에구구의 한 명으로도(비밀이지만) 활약하며 야심을 키운다. 그런 그도 연약했던 딸 에진마에게는 애틋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숨기고, 마을 여인을 죽인 다른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상처럼 데려온 소년 이케메푸나를 아들처럼 키우면서 결국 그의 죽음이 결정되었을 때 약해질 마음이 두려워 스스로 그 아이를 죽여버린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인이나 아들을 마구 때리고, 소리를 지르고, 강함과 전통 유지의 상징 인물이지만,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그냥 개같은 폭력 가장이다.

마을 사람들이 주술에 의지하고, 쌍둥이를 버리거나, 죽은 아이를 악령 취급하며 토막내거나, 죽음에 대해 복수를 하기 보다는 보상을 하면 그걸로 끝내버리는 걸 그린 걸 보면 작가는 그런 잔인한 전통들까지 옹호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서구의 폭력에 맞서 전통을 옹호하다 숭고하게 죽은 인물로 오콩코를 묘사한 뒷표지의 글도 너무 해석을 닫아놓은 느낌이었다. 작가가 나이지리아의 폐습에 저항하고 끝없이 서구사회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가르쳤던 걸 감안하면 오히려 오콩코는 시대착오적이고 폭력, 무대뽀로 침입자들을 밀어내려다 실패하고 굴욕을 참지 못해 역시나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삶을 내버린 인물로 그려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콩코의 죽음과 함께 후반부 짤막한 부분에서 초점화자는 백인 치안판사로 옮겨간다. 자기 구미에 맞게 아프리카에 대해 서술하고 제목 붙이는 그 장면은 이전/이후로 아프리카가 겪는 수모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싶었다.

얌으로 만든 푸푸란 음식이 궁금해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도 이태원에 가면 푸푸, 에구시수프, 비터수프 같이 나이지리아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뭉뚱그려 그런 식당들을 아프리카 레스토랑, 하고 소개하는 페이지들도 있었지만, 좀 더 세세하게 직접 찾아다닌 후기를 남긴 어느 페이지를 보면,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모로코 등등 식당을 운영하는 이에 따라 음식 종류의 세부 구성도 좀 다르고, 아프리카의 서부/동부/북부 문화권의 종족이나 언어나 종교도 다 다르겠다 싶은 걸 알겠다. 우리를 ’아시아‘ 하면서 한중일아세안중앙아시아서아시아남부아시아 모두 뭉뚱그려 버리면 섭섭해할 거면서, 우리도 그냥 ’아프리카‘ 하고 그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에 너무 무지하고 검은 한덩어리처럼 취급하면서 디테일한 차이와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해온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은 구전 문학 비슷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되어서, 사실 이거다 하고 밑줄 친 문장은 없었다. 서사도 장장마다 바로 이어지지 않고 일단 어떤 상황이 발생한 걸 암시한 다음 뒤이어 구체적인 맥락과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변죽 울리며 청자가 뒷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구성이 많았다.

우무오피아 사람들은 아바메 사람들처럼 멸족했을까? 아니면 기독교로 개종해서 겨우 명맥만 잇고 문화적 유산들은 다 잊힌 채로 살게 되었을까? 나이지리아에 무척 많은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고 군부나 정치인들만 부자가 되고 서민들은 여전히 가난한 채 석유 채굴로 오염된 니제르강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에티오피아는 커피라도 사다 마시고 인류의 조상 이야기 할 때마다 들으니까 좀 관심을 가졌는데, 서아프리카는 아는게 참 없다. 영국이 지배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부족간에 이간질하고 사이 나빠지고 하는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든 너무 자주 들어서 신기하지도 않다.

많이 궁금해도 가보기 쉽지 않은 나라들, 에이즈가 국민 절반 이상을 덮친 나라도 허다하고, 외부인들 보면 강도 대상으로 삼고, 그런 방식이 아니면 삶을 유지할 수도 없는 국가들이 많아서 대부분 여행 금지 구역 지정되어 가볼 수 없는 대륙, 방문하기엔 위험한 국가가 대부분인 게 안타깝다. 지도에 존재하지만 찾아가는 게 신기하고 찾아갈 이유를 찾기도 어려운 나라가 되어버리기까지 그 과정의 이야기 일부를 책에서나마 조금 엿본 것 같다. 많이는 읽지 못하더라도 가끔 이런저런 아프리카 국가들의 목소리 들려주는 소설을 읽고 싶은데, 읽어야겠는데, 첫 입부터 썼다. 이제는 외부인인 내가 가도 콜라 열매 같은 거 깨서 나눠주는 호의를 바랄 수 없을 마을의 오래전 모습이 아마도 글로만 남았다. 누군가 기를 쓰고 써서 그나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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