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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만능일꾼, 글루탐산 - MGS를 훌쩍 뛰어넘는 아미노산, 단백질, 생명현상 이야기
최낙언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1월
평점 :
-20241123 최낙언.
문돌이인 나에게 과학 공부를 많이 시켜준 건, 재미있게도 수능 과학 과목이 아니라 수능 국어의 독서(옛날에 비문학이라 하던) 과목이었다. 한바닥짜리 쪽글은 초식동물의 반추위에서 일어나는 대사 과정, 식물 광합성의 명반응과 암반응, 반도체의 작동 원리, PCR검사의 원리, 미토콘드리아와 고세균의 공생과 공생 아닌 것의 구분, 이부프로펜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용매와 용질과 촉매와 어쩌구… 다 열거하지 못할 만큼 이런저런 지식들이 쏟아져내렸다. 당연히 남들 한 학기 걸려 대학교재 한 권으로 배울 것을 10여분 안에 이해할수도 없고, 이해하기를 바라지도 않는게 독해 문제이다. 최대한 빨리 읽어내려가며 구조 파악하고, 적당한 인덱싱으로 나중에 문제 풀다 돌아가서 짝맞추기 잘하도록 끝없는 훈련, 훈련.
과학 공부는 오히려 산수 공부 내지 멘사 두뇌 퍼즐, 뭐 이런 이름이 더 적합한 퍼즐 맞추기에 가까웠다. 근육이 수축하면 이 부분은 줄고, 여긴 늘고, 여기에 자극이 톡 가해지면 순차적으로 몇 마이크로 초 단위로 이 부분은 전위가 발생해 찌르르 흐르고 그게 마이크로세크당 몇 센티미터까지 이동하고 그 전위 발생 정도가 탈분극인지 재분극인지 맞춰 봐 하는… 나는 대소비교와 비례식, 단순 덧셈뺄셈 나눗셈에 매우 취약한 사람인 걸 3년 공부하면서 알았다. 풀이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계산기와 같은 빠르고 정확한 계산은 입시 수학 과학에서 너무나 중요해. 어려서 구몬수학 같은 거 한 번도 안하고 덧셈 뺄셈은 두자리 부터는 세로셈으로 적지 않으면 하지도 못하던 나새끼가 분초를 다투는 고등 수학 과학에 다시 도전한 건…원래도 셈이 느리고 자릿수도 만의 자리 천의 자리 0개수 구분 어렵던 나새기가 노화마저 비가역적으로 진행되어 더 더딘 걸 모르고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구나… 그랬다.
어느 달인가 알라딘에서 독후감에 적립금 상을 줘가지고, 고민하다가 최낙언 선생의 전자책이 보여서 낼름 사버렸다. 글루탐산, 그거 엘-글루타민산나트륨에 붙어 있는 뭔가가 아닌가? 엠에스지 이야기냐… 그래도 늘 펼쳐보면 단순히 맛과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유익한 공부를 시켜주는 선생님의 책이기 때문에 홀린듯 사 놓고 다운로드도 안 받고 잊고 있다가… 수능이 끝나자마자 또 홀린 듯 전자책 사 놓은 거 뭐 있냐...하다가 먼저 펼쳤다.
아니 그런데 이 책에, 내가 수능 생명과학에서 공부하던 게 다 나와 있었다. 수능 국어 지문에 나오던 이런 저런 화학 반응 관련된 거도 나오고… 그냥 수능 과학 공부 안 하고 이 책을 먼저 봤으면 더 재밌고 덜 고생한 거 아닐까 싶게… 단백질과 그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만한 아미노산인 글루타민, 글루탐산 다루면서 선생은 생명의 온갖 작동 원리들- 근수축, 막전위 변화, 광합성, 호흡, 질소순환, 20여가지 아미노산이 이 분자 저 분자 붙고 떨어지고 하면서 이루어지는 분자구조식까지 깨알같이 담아 두셨다. 생명과학이랑 화학 공부하는 중고생들이 이 책 읽으면 통섭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문제 풀이 시키기 위한 수능 과학은 진짜 과학 공부하는 본질은 잃고 순발력과 지구력 테스트를 위한 퍼즐 맞추기 문제로 변질되어 있어서 왜 우리가 이걸 공부하고 나중에 대학가서 어떤 응용 과학에서 이걸 이용하게 될지, 혹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이걸 공부하는지 완전히 망각시키고 있다. 이미 공부 조금이나마 하고 와서 이게 재밌는건지, 진짜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그래도 최대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텍스트랑 그림으로 풀어줘서 그런지 책은 제법 흥미로웠다. 물론 다 이해하지는 못하고 한참 성분명 분자명 나열하는 부분에서는 와 이런 것까지...하는 사람도 있을수는 있지만 말이다… 식품공학이나 화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두고두고 읽을만 해 보였다.
어려서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을 평생 앓고 있다. 학교도 안 들어간 때, 동네 약국 약사 아줌마가 자기가 그 병 낫게 해준다고 엄마한테 엄청 확신에 차서 꼬시는 바람에 엄마는 거의 돈백을 약국에 꼴아박고 나는 뭔 생약인지 정체 불명의 갈색 과립(약간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 같은 제형)약을 일년 꼬박 먹었다.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도 길게 챙겨 줬는데, 거기엔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 계란, 밀가루 등등... 성장기 필수 영양소 담긴 음식 거의 대부분이 써 있어서, 유치원에서 간식시간에 우유 담긴 컵을 무심히 내민 선생님 앞에서 전 우유 마시면 안 된대요 하고 왕 울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서른 중반 다 되어서 병원 종합검진 패키지에 딸린 알레르기 검사를 해 보니… 나는 가장 흔한 식품, 식물, 집먼지알레르기 등등 70여종 항원 중 어느 것에도 알레르기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7살 때 그 수많은 알레르기 가능성 있는 음식을 제한한 건 그저 가장 잘 자라는 시절에 영양 부족으로 성장 지연만 시키고 (내 키는 그래서 157에서 더 못 자랐고…) 그렇게 헛짓거리로 남은 것이었다. 거의 일년 간 비슷한 식습관 (오트밀에 요거트랑 견과류 비벼먹고 단백질 음료에 시리얼바 처묵처묵 한 끼 정도만 일반식사) 하면서 몸무게를 10킬로 쯤 줄이고 체지방 줄이고 근육량은 꽤 늘린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다음 달 건강검진 인바디와 각종 검사로 건강 상태 확인 예정), 내내 건강하게 지내다 식습관이나 운동 습관 그대로 갔는데도 연말 환절기 쯤 되니 아토피성 피부염이 7년 만에 확 올라와 버렸다. 수능 앞두고 2주 쯤 전이었다. 결국 자가면역에 가까운 만성 질환들은 대부분 내 몸 자체가 병의 시작이다. 부신 피질에서 뿜뿜하는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 반짝거리는 피부 보고 아 오늘이 왠지 올해 들어 가장 예쁜 날 같아… 이제 안 이럴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며칠 후 바로 얼굴과 목과 발목과 거의 전신에 염증성 피부염이 벌겋게 돋아나 나는 가려움과 감염 위험과 줄다리기하면서 보습하고, 약한 스테로이드도 발라보고, 그렇게 나 자신이랑 싸우는 날들이다…
잡설이 길지만 결국 우리는 콕 집어서 무슨 물질이 나쁘고, 무슨 음식은 어디에 좋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데, 모든 물질은 그 자체로는 중립에 가깝고 전반적인 환경과 적재적소에 정량이 갖춰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건강과 생명과 질환과 죽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구나 하는 걸 한 번 더 확인하는 독서였다. 그게 과학적인 지식과 전반적인 통찰에 의한 결론이면 좋은데, 대부분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이건 좋다더라, 나쁘다더라 이러고 아니 어디선 커피가 당뇨에 좋다더니 얘는 왜 공복 커피가 혈당 올린다고 어쩌라고! 하면서 버럭질을 하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커피는 그냥 맛있고 기분 좋자고 먹는 거지 건강 따질 거면 그냥 맹물을 열심히 드시라구요…
닉 레인의 ‘산소’와 ‘미토콘드리아’를 예전에 갖추고 이걸 수능 끝나면 볼까, 했는데 이 책에서도 거기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제법 인용되었다. 역시나 나중에 나가는 글 읽으니 저자 선생님께서도 그 책들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셨다 하고 참고문헌에도 적혀 있어서 결국 저 알아서 필요한 책 읽고 그러다보면 그 책들끼리 줄줄이 이어지는 구나...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맨날 이제 최선생님 책 그만 봐야지...하면서도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유사한데 (문제는 양 물질 그 자체는 죄가 없다 암은 랜덤…) 그래도 보다보면 조금이라도 배우는 게 있고 또 재미있어서 자꾸 보게 된다. 쟁여둔 커피 공부 책만 보고 진짜로 하산하겠습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1123/pimg_7921671144504182.png)
주요 아미노산을 한 바닥에 깔끔하게 정리한 그림… 이 책에는 이런 아름다운 도표와 분자구조식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