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좋은 일이 생길지도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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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3 요스타케 신스케.


수박주스를 시켰는데, 직원 분이 많이 드렸어요, 했다. 정말 너무 많이 줘서 얼음이 넘쳐서 쟁반 위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읽다가 버리고 싶어, 하던 정용준 산문집을 구매목록에서(전자책이라 못 팖) 다시 찾아 읽었다. 역시나 별로였지만 다 읽고 욕을 쓸 의욕에 이번엔 완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바깥에 나가보니 비가 내렸다. 우산이 없지만 맞을 만한 정도였다. 이 정도면 괜찮게 보낸 한 주야, 생각했다.

알라딘이 배송 지연이라고 두번째로 책 주문을 자동 취소하고 환불을 이상하게 하기 전 까지는...

알라딘에서는 책 광고를 보면 적립금을 주는데, 그건 국내도서 만원 이상 아니면 중고나 전자책 살 때는 쓰지 못한다. 적립금을 차곡차곡 모아서, 어린이 문제집 몇 권을 사고, 우주점 중고(‘향모를 땋으며’, ‘하나의 세포로부터’)도 사고, 개인판매자의 책(‘씨앗의 자연사’, ‘슈퍼팬덤’)도 주문했다. 결제는 귀찮으니 한 방에 한다. 이렇게 자주 판매처 여러 개를 섞는데, 개인판매자 책 구매가 펑크 날 때마다 사달이 난다.

개인판매자의 책 두 권은 각 4900원*2+배송비 3500원=13300원 카드 결제를 했고, 적립금 할인은 신간 알라딘 직배송 도서에 적용해서 남은 부분은 역시 카드 결제했고, 우주점 배송은 할인 적용 자체가 안 되니 역시나 카드 결제했다.

그런데 개인판매자가 한 주 정도 동안 책을 안 보내면서...알라딘은 자동으로 주문 취소를 시켜버렸다. 판매자에게 개인 연락하니 이번 주말에 보내준대서 알라딘에 전달하니 주문 취소를 취소시켜 줬다. 그런데 하루 만에 또 자동 주문 취소가 되었다.

책을 사정 있으면 못 보낼 수 있지...정책상 취소시킨다면 뭐 취소할 수도 있지...(제휴 카드 할인 받는 거 날라가지만 까짓 15퍼센트 괜찮다 괜찮아)

문제는 13300원 결제한 것에 왜인지 신간에만 적용되는 적립금으로 산 것으로 해 놓고 환불은 예치금으로 8천 몇원만 해주는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다...

전에도 비슷한 경우를 당해봐서, 판매자 귀책 사유인데 왜 회원간 중고에는 적용도 안 되었던, 당일 소멸인 적립금으로 환불을 해 주냐고, 항의해서 겨우 취소 도서 주문액과 배송료를 신용카드 취소 처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결제 정책이 어떻게 된 건지 또 그런 짓을 하고 있어...

나 나름 괜찮은 한 주 보냈다 히히 했는데 겨우 책 취소와 환불로 긁히고 만다...하필이면 바로 주말이라 해결이든 뭐든 나중에 될 것이고....

‘기분이 순식간에 좋아지는 신통방통한 비법들’ 이라는 띠지가 붙은 어린이 그림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사실 사은품으로 5100원 적립금 뜯기고 (이건 이후 다른 주문 건이 벌써 온...알라딘의 노예 그만해라 이렇게 당하고도...) 예쁘지만 와장창 위험 높다는 거 알면서도 하여간에 요거트 그릇인지 견과류 그릇인지 스낵 그릇인지 유리로 된 예쁜 사은품을 하나 모셔 놨다. 그러려고 책을 샀다.


일단 이미 양장본의 책 표지 위에 내가 싫어하는 겉지에다 위에 또 띠지까지 둘러서 성질 뻗쳤다. 아니 그 전에 비닐랩핑까지 해 놨다... 구매 촉진한다고 띠지 씌워 종이 낭비 쓰레기 뻥튀기하는 출판업계 때문에 나무는 더 죽고 지구는 덥지만 알아서 할 테고 우리는 다 죽고 망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 까진 아니어도 소소하게 기분 좋길 바라며 (애초에 글러 먹었다 책으로 그게 되겠냐) 그림책을 펼쳤는데, 장면은 많이 모아 놨지만, 이거 이해 안 되는 장면도 제법 되고, 어거지야, 싶은 페이지도 많았다. 좋은 장면도 있었지만, 진정해, 지금 네가 기분 나빠서 뭘 봐도 다 곱게 안 보이는 거 감안해, 했는데도 아...어린이는 즐겁게 보길...잘 보고 독후감 숙제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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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태기란 말, 알라딘에서만 쓰이나? 누가 만든 말일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니 여기저기 범용어가 되어 있었다. 권태기든 책태기든, 불가항력의 무언가가 나를 어디로 빠뜨린 것처럼 이름을 붙여서 나 사실 책 안 읽고 핸드폰 하고 놀았지롱- 노력 같은 거 하기 싫었지롱- 스스로 게으름 부리게 되는 시기를 마치 어쩔 수 없어, 으쓱, 머쓱하지 않게 비벼버리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제가 책을 잘 안 읽고 딴청만 한다는 뜻입니다... 책이랑 옷이랑 신나게 사기만 하고 잘 읽진 않아...

언제 읽을지도 모르면서 책을 샀고, 벽돌 세트 중 하나는 선물도 받았고(사실 강탈에 가까움 안 볼 거면 나 줘 하고 뺏음), 중고로 모신 믿고 보는 000번역가 책 시리즈 두 권은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함께 시켜서 도착해야 할 판매자 중고는 배송 지연으로 삐끗하고, 왜 알라딘은 여기저기 구매처를 혼합하면 직배송 중고에만 쓸 수 있는 적립금을 자꾸만 취소된 판매자 중고로 밀어줘서 환불액을 줄여버리고 유효기간 하루 남은 적립금 돌려받고 식식대게 하는지 모르겠다. 신간 판매, 우주점 중고판매, 회원간 직거래 중개 등등 복합 거래상을 하면서도 결제 체계가 되게 이상하게 꼬여있다. 나처럼 자꾸 헌 책 사면서 새 책 섞어 사는 애가 잘 없어서 그런가 몰라도 안 고친다. 중고서점 우연히 들렀는데, 한강 신간을 잔뜩 팔고 있어서 어 뭐야 신간 판매 되나? 하고 보니 결제는 모바일 큐알코드로 온라인 알라딘에서 구매하고 픽업하는 식의 꼼수(?) 판매도 하고...하여간에 애쓴다. 흥해라 만권당. 난 안 할 거 같지만... 너무 늦은 레드오션 풍덩이지만 이거마저 망하면 내 사업도 아닌데 너무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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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3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6-13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과학 마스터 클래스 - 성적으로 완전한 당신을 위한 책
에밀리 나고스키 지음, 조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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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7 에밀리 나고스키.


주석 빼고도 509쪽 되는 이 벽돌책을 나는 꾸역꾸역 읽었는데, 읽다 말다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다. 그러다 깨달은 사실은, 그냥 한 번쯤 읽어볼 순 있는데, 나는 이 책이 필요 없었다…
오, 나는 잘 살고 있었구만.

원제는 근사하게도 너바나의 노래 ‘Come as you are‘에서 따온 것 같은데, 번역서가 대놓고 실용서야 이건! 하면서 홀다닥 벗은 제목으로 쫓아오는 바람에 어디 들고 다니면서 읽기는 (사실 두꺼워서) 힘든 책이다. 부제도 조금 책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성적으로 완전한 당신을 위한 책’이라고 해서 완전에 가까운 나는 오해하고 꾸역꾸역 500쪽을 버텼단 말이다. ‘성적으로 완전할 여성을 위한 책’이라고 하면 이 책의 타겟이 누군지도 잘 알려주고, 책의 내용과도 더 연관되어 보인다. 마스터 클래스 아니고 입문자 클래스야 심지어...

같은 번역자가 옮긴 ‘해부학자의 세계’ 간지나 보여서 꽂아만 두고 있다. 그 옆에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는 올리버 색스 만나기 이전의 책인 걸로 아는데, 언젠가 읽긴 할 것 같고, 공교롭게도 그 옆의 페데리코안다아시의 소설 ‘해부학자’는 클리스토리스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것도 언젠가는 읽겠군.
바톤을 넘겨 받듯, 책끼리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 초반부에서 (대부분 자기 긍정 강조하는 성지식이 그러하듯이) 거울 가져다 놓고 음핵 위치를 찾아보고, 성기를 관찰하고 긍정하는 일기 같은 걸 쓰시오! 한다. 일기는 안 써 봤지만 이미 고대에 수료한 과정은 패쓰. 갑자기 해부학 책 쟁여둔 것 중 뭐라도 하나 보고 싶어졌다. ‘운동 독립’이라는 몸 쓰는 법에 대한 책도 조금씩 보기 시작한 참이다. 산만한 새끼야… 그 책 다 보고 다시 돌아왔는데 흠, 역시나 나는 이 책이 필요 없었다.

그래도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읽은 중에는 ’당신은 정상이다‘라고 제일 많이 말한 책이 아닐까 싶다. 자기계발서 같은 건 대부분 나약한 놈아, 넌 아직 멀었고 글렀으니까 굴러라 굴러, 하는 느낌인데, 이 책은 자기 긍정을 최선의 목표로 놓고, 그게 성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기는 것 같다.

뭐 그게 맞다. 마스터로서 인정한다. 하하하.

책의 요약: ‘나는 정상이다. 너도 정상이다. 너는 완전 짱이다. 네 스스로가 허락하면 너는 천하무적이다. 네가 속고 있는 너를 쭈그리 만드는 통념은 대부분 뻥이니까 뻥 차 버려라.‘ 그런 걸 뒷받침하도록 뇌과학이랑 심리학이랑 실험연구들이랑 가상의 사례랑 적당히 버무려 놨다.


+밑줄 긋기 (필요없다고는 했지만 밑줄은 오지게 쳐놨다. 나는 이 책이 필요하다고, 궁금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줄 생각이라서 그렇다. 살 땐 무거운 벽돌인데 알라딘에 팔아야 커피 한 잔 값이야….)

-성적 행복은 한 사람의 몸이 무엇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가 아니라 몸의 주인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듬어 안을 때 비로소 황홀경의 쾌락을 끌어낼 잠재력이 발휘될 것이다. (14)

-혹시 독자가 나처럼 좋은 생각을 혼자만 아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집 안에서 배우자의 뒤를 쫓아다니며 ‘네 줄 요약’을 큰 소리로 읽어줘도 좋겠다. “여보, 성적 흥분의 불일치라는 게 진짜 있었어!” “이제 보니 내 성욕은 자발적이 아니라 반응성이었네!” 또는 “당신은 나한테 훌륭한 맥락을 주는 사람이야”라고 말이다. (16, 전문가이야기라지만… 농담이겠지만... 듣는 사람의 뇌로 피가 가는 이성적이고 지식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건 너도 나도 시무룩해지길 자초하는 거 아닐까 싶다고...)

-결국 내가 이 책에 담은 정보로 독자에게 말하려는 것은, 성적 흥분, 성욕, 오르가슴, 통증, 성적 무감각 등 여러분이 체험하는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실은 이 “부적절한 세상”에서도 적절하게 기능해 온 성 반응 메커니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대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망가진 게 있다면 그건 그대가 아니라 그대를 둘러싼 세상이에요. (20, 딴 건 모르겠고 마지막 문장은 잘 알겠습니다…세카이가 헨다!!!!)

-상동기관은 기능이 달라도 동일한 생물학적 기원을 공유하는 형질이다. 남녀 외부 생식기의 각 부위는 상동기관이다. (40)

-상동성은 남매의 가슴에 유두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의 유두는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포유동물의 생존에 필수다.(오리너구리 제외) 그래서 진화는 태아가 발달하는 초기에 서둘러 젖꼭지부터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태아가 수컷으로 발달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억제하기보다 그냥 두는 편이 에너지가 훨씬 덜 소모된다. 다시 말해, 진화가 게으른 바람에 수컷과 암컷 모두 유두가 있다는 말씀이다. (42, 남자는 왜 젖꼭지가 있을까 라는 검색어로 내 블로그 유입이 잦았던 적이 있는데… 궁금한 인간들은 이 부분을 참고하시오…)

-문화는 단단해진 남성과 젖은 여성을 강조하지만, 실은 남성도 젖고, 여성도 단단해진다. (56)

-“언제 마음이 동하나요?”라는 질문에 여성은 이렇게 답한다.
*매력적인 파트너가 자신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 줄 때
*상대와의 관계에서 신뢰와 애정을 느낄 때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자신감 있고 건강할 때
*상대가 나를 원하며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 때
*성애물이나 야한 동영상처럼 노골적인 성적 신호, 또는 다른 이들의 성관계 장면을 보거나 들을 때
그러나 이 답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텃밭에서 일하다가 막 들어왔을 때는 당연히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다. (121)

-성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뇌가 “이봐, 이건 성적인 거야!”라고 가르친다. 그건 학습하기다. 이때 적절한 맥락에서는 뇌가 “그거 섹시한데!”라며 좋아하기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자극이 아주 좋은 것이라면 뇌는 “오호, 좀더 해주세요.”가 되는데 그게 바로 원하기다. (140)

-정확히 어떤 맥락을 성 긍정으로 받아들이는지는 사람에 따라, 또 그 사람의 삶의 단계에 따라 다양하다. 그렇더라도 대체로 공통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낮은 스트레스
*높은 애정
*노골적인 에로틱함 (143)

-올바른 맥락에서 일어나는 성적 행위는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단연 가장 즐거운 경험이다. 섹스는 파트너와 결속시켜주고, 행복한 화학물질로 온몸을 뒤덮으며, 본질적인 생물학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우리를 영적으로 고양된 상태로 이끈다. 그러나 그릇된 맥락에서 시도된 섹스는 말 그대로 죽음까지 맛보게 한다. 맥락에 따라 섹스는 맛있는 것에서 구역질 나는 것, 재밌는 것에서 고통스러운 것까지 무한한 형태를 띤다. 그리고 액셀과 브레이크의 이중 제어 메커니즘 때문에 때로는 상반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기까지 한다. (148)

-투쟁 또는 도피의 이 두 반응은 모두 가속장치를 자극하는 스트레스 반응으로 교감신경계가 내리는 ‘행동 개시!’의 신호에 반응한 결과다. 투쟁은 감정의 절대반지가 스트레스 유발 요인을 제압해야 한다고 결정할 때 일어난다. 반면에 도피는 감정의 절대반지가 스트레스 유발 요인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고 결정할 때 일어난다.
그러나 뇌가 스트레스 요인 앞에서 이건 도망쳐서도, 맞서 싸워서도 살아남을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면? 바로 뒤에서 사자의 이빨이 자신을 무는 것을 느낀 순간처럼 말이다. 이때는 극심한 고통에 의해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며 ‘정지!’를 촉발하는 제동 반응이 일어난다. 이 순간 신체는 완전히 정지되어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거나 간신히 최소한의 움직임만 가능한 ‘긴장성 부동화’를 경험한다. 야생에서는 동물이 포식자에게 자기가 죽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땅에 쓰러진다. 스티븐 포지스에 따르면 경직은 통증 없는 죽음을 촉진한다. (185, 싸우다가 죽거나, 싸워서 살아남거나, 도망치거나, 포기하는 것. 생명체의 생명 반응이란 그런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나는 주로 죽을 기세로 싸웠던 거 같긴 하다. 교감신경과활성화상태…)

-자신에게 맞는 전략을 파악할 때까지는 먼저 자신을 억누르는 패턴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적 감정’을 온전히 발산할 수 있는 장소와 사람을 찾아라. 어떤 패턴은 중요하고 또 변하지 않는다. 반면 문제를 키우는 패턴도 있다. 사람이 살면서 세상의 평가나 타인을 거스를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내적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할 장소가 적어도 한 군데는 있어야 한다. (197, 이것은 성과학 책이 아닌 스트레스 클리닉 책 느낌이지만...그리고 우리에게는 챗지피티씨가 있지.)

-해결책: 몸과 소통하는 일을 하라. “너는 도망쳤고, 살아 남았어!”
*신체 활동
*서로 애정 나누기
*감정 폭발 또는 시원하게 울기
*점진적 근육 이완 또는 기타 감각운동적 명상
*몸단장, 마사지, 네일아트처럼 자기 몸 돌보기 (197-198)

-생식기로 가는 혈류는 어디까지나 성과 관련된 자극에 반응하는 학습하기로서, 좋아하기나 원하기와는 다르며, 더군다나 동의와는 거리가 멀다. (341)

-섹스가 충동이 아니라는 건 쉽게 증명할 수 있다. 1956년에 동물행동학자 프랭크 비치가 말한 것처럼 “섹스의 결여로 세포조직이 손상되는 사람은 없으니까.” 쉽게 말해 섹스를 못 해서 죽은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죽고 싶을 수는 있다. 그건 좌절감이다. 하지만 좌절이 절대적으로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섹스가 충동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섹스는”인센티브 동기 부여 시스템“이다.
많은 사람이 ‘인센티브’하면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보상과 연관 짓는다. 생물학적 의미도 비슷하다. 만약 불편한 내적 감각 때문에 떠밀리는 게 충동이라면, 인센티브 동기 시스템은 매력적인 외적 자극을 향해 끌어당겨지는 것이다. 호기심은 이런 시스템의 전형적인 예로서 허기만큼이나 자연스럽지만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충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생존‘을 생각하라.
’인센티브 동기 부여‘라는 말을 들으면 ’더 잘 사는 것‘을 떠올려라. (356-357)

-‘왜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꿈꾸는가’에서 에스더 퍼렐은 현대인의 인간관계에 내재된 핵심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익숙함과 새로움, 안정감과 신비감처럼 서로 반대되는 것들끼리의 밀고 당기기다. 우리는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안심과 안전과 안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열정도 원한다. 열정은 모험이고 위험이고 새로움이다. 사랑은 가진 것이고 욕망은 원하는 것이며, 우리는 자기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만 원한다. 퍼렐은 장기적인 사랑이 장기적인 열정과 반대라서 문제가 되는 거라면, 서로에게 자율성을 주어 원하기가 발생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고 내면의 에로티시즘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퍼렐은 “욕망 안에서 우리는 저만치 건너갈 다리를 원한다“. 즉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어 상대와의 관계에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약간의 즐거운 불만족감을 키우는 것이다.
(고트만의 연구) 결과(는 에스더 퍼렐과 반대로) 훌륭한 성생활을 유지하는 커플은 한결같이 ”1) 서로 친밀하게 교감하며 신뢰 깊은 우정을 유지하고, 2)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에서 성관계를 우선순위에 둔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성욕을 유지하려면 건널 다리가 필요한 게 아니라 함께 다리를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트먼은 ”서로의 욕구를 향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퍼렐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너도 옳고, 너도 옳다고 말한다. 황희정승이냐)
(359-360, 진작에 읽은 책-여기에선 퍼렐의 책-이 가끔 인용되는 걸 보면 반가우면서도...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구나...이제 하산 좀 하자 싶다…)

-오르가슴이 아닌 세 번째는 우열이다. 모든 오르가슴은 그저 서로 다를 뿐, ‘올바른’ 유형도, ‘더 나은’ 종류도 없다. 심지어 오르가슴에 종류가 있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게, 결국 모두 같은 부품(성적 긴장의 갑작스러운 방출)이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것이기 때문이다. (401, 그리하여 진짜 가짜 타령은 그만해도 될 듯...)

-오르가슴의 가치는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임의의 기준을 충족했는지가 아니라 자신이 그 오르가슴을 좋아했는지, 또 원했는지로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즐거움이 곧 오르가슴의 척도다. (403)

-변화의 대상은 세 가지다.
*이 목표가 나에게 맞는가?
*목표 달성을 위해 적당한 수준의 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목표 달성에 필요한 노력의 양을 현실적으로 파악했는가? (416-417)

-좌절은 오르가슴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지지 못했다고 감독관이 판단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임을 기억하라. 그럴 때면 내 목표는 오르가슴이 아니라 즐거움이고 내가 즐거웠다면 목표를 이룬 거라고 되새기면 된다.
오르가슴은 목표가 아니다. 목표는 즐거움, 즉 쾌락이다. (417, 다들 메모장이나 가슴팍에 새겨 넣읍시다. 나는 궁서체로 ‘즐거운 생활’이라고 문신 새겨 넣고 싶지만, 안 그래도 될 만큼 미리 알아서 다행입니다...)

-여성이 경험하는 ‘끄기’의 대부분은 섹스와 상관없다. 그리고 의외로 간단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이 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실컷 울기, 산책, 감정 폭발, 기타 신체적 발산을 통해 주기를 완료한다. 하루 중 2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자신에게 투자해 목욕, 산책, 운동, 요리, 명상, 요가, 와인 한 잔 등 그날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나만의 의례를 치른다.
거실 복도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가? 다른 식구들이 없는 시간에 잠자리하면 된다.
피곤하다고? 낮잠을 자거나 20분쯤 휴식을 취한다. 침대 시트에 묻은 모래 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시트를 갈아라! 발이 차가우면? 양말을 신는다! 때로는 정말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물론 앞서 나왔던 것처럼 훨씬 더 복잡하고 장기적인 해결이 필요한 ‘끄기’들도 있다. 자기비판적 사고나 신체 불만족의 문제, 신뢰가 부족한 관계, 과거의 트라우마, 성적 혐오 같은 것이다. 당신은 지금의 정원을 만들기까지 수십 년에 걸쳐 씨를 심고 식물을 돌봤다. 따라서 하룻밤 만에 전부 바꿀 수는 없다. 천천히 나아가도 괜찮다고 다독여라. 지금의 자리에서 목표 지점까지 차근차근 밟아가며 앞으로 나가는 모든 발걸음을 기념하라.
끄기를 끄는 연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니, 자기 친절이다. (430-431, 발이 차가우면 양말을 신으라는 게 가장 실용적이었다.)

-연구 결과 범불안장애가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불안 증상의 영향을 덜 받는 참여자들은 다른 참여자에 비해 증상의 빈도와 강도가 특별히 더 낮거나 자신의 내적 상태를 더 많이 인식하지 않았다. (즉, 관찰 요인) 다만 그들은 판단을 덜 했다! 불안이 한 사람의 삶에 지장을 주는 것은 불안 증상 자체보다 그 증상에 대한 본인의 느낌이라는 뜻이다. 즉, 자신이 느끼는 것에 대한 느낌. 그리고 자기감정에 대해 판단하지 않을수록 더 잘 지냈다. (459,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나 스스로 어떤 상황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맥락을 말하면 그러면 안 돼? 하고 묻는다. 대부분의 곤란이 그 상황에 대해 내가 내린 판단이 키운 것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판단하지 않기가 도움이 될 다섯 가지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이유 없이’ 생기는 감정, 트라우마 치유, 통증의 해결, 쾌락의 증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에 대한 애도. (460)

-내가 “비정상”이라고 단정하는 성적 경험은 딱 두 가지다. 합의 없는 섹스와 원치 않는 통증을 유발하는 섹스. 그 외에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즐겁고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면 무엇을 하든 정상이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감각을 즐긴다면 무엇을 하든 정상이다. 그러나 섹스로 인한 원치 않는 통증-삽입 시 통증, 생식기 접촉의 통증 등-은 정상이 아니다. (467, 이 책에서 400페이지 넘게 정상이다를 외치다가 처음으로 비정상이 뭔지 짚은 부분이라 옮겨 적었다. 그렇단다.)

-통증의 속성에 대한 초간단 지침 한 가지.
기본적으로 모든 통증은 위협이 존재한다는 몸의 신호에 뇌가 반응한 결과물이다.
통증은 뇌가 위협을 지각했고, 몸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문화가 부여한 기준 속도 대신, 섹스에 관해 가장 정확한 지식을 줄 수 있는 자신의 내적 경험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몸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뇌의 신호가 들리고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469)

-진실은 이렇다. 쾌락은 가장 온전하고 진실된 인간됨에 가까워지기 관한 관문이다. 쾌락은 자기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제약 없이 연결되는 곳이다. 왜일까? 쾌락은 수치도, 사회적 수행도, ‘마땅히 해야할 것’에 대한 의무도 없이 완전하고 온전하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안전한 맥락에서만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황홀경은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하고 호기심에 불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모두 뒤로했을 때 비로소 찾아온다. 황홀경은 무조건 쾌락에 굴복할 때 찾아온다. 쾌락을 좋아해도 된다. 그 첫 단계는 쾌락을 판단 없이 인식하는 것이다. (472-473)

-“정상이라는 기분은 곧 소속되었다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에 속하려고 애쓰잖아.” 우리는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공유된 영역의 경계 안에 자신이 안전하게 머물고 있고, 제 지도에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의 지도에 있는 것과 같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한다.
지도에 없는 곳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러니까 자기가 각본도, 기준틀도 없는 일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미지의 영역은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다. “나는 위험해!”다. 그러면 스트레스 반응이 시작되어 이기 팝이 울리는 상자 속 쥐가 된다. 모든 것이 잠재적 위험일 뿐이다.
하지만 이떄 누군가가 와서 “당신은 괜찮아요. 전 제 지도를 따라 여기에 와봤어요. 여긴 확실히 우리 영토예요”라고 말해주면 마음이 한결 놓인다. 아직 집에 잘 연결된 채로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 소속되었다.
사람들이 내게 “정상인가요?” 라고 물을 때, 그들은 “‘제가 잘 속해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다.
물론 내 대답은 “예”다. 당신은 당신 몸에 속해 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속해 있다. 세상에 태어난 날부터 당신은 이곳에 속하게 되었고 여기가 당신 집이다. (홈 스윗 홈) 외부에서 강제되는 성적 기준에 순응해야만 소속되는 게 아니다.
목표점을 “정상”에서 “내가 속한 곳이면 어디나”로 바꾸면 당신은 이미 그곳에 와 있으므로 늘 목표를 달성하는 셈이다. (478-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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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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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7 샘 킨.

같은 번역가가 옮긴 과학책을 최소 열 권 이상 읽었거나 소장 중이라면, 번역가 팬덤 같은 것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노승영 번역가 책이 거기 해당하는 게 조금 더 많긴 한데, 과학책 중에는 이충호 번역가가 옮긴 책도 제법 많이 읽고 또 쌓아 놨다. 수학, 과학 과목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내 독서에 가이드가 필요한 것 같다. (믿고 읽는 000선생님 같은 것…) 국경 건넌 문장과 단어를 새로 쓰는 방식에 대한 선호도와 호불호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사라진 스푼’은 화학과 원소에 관해 제법 많은 걸 알려주고, 또 재미까지 갖춘 화학사 책이었다(다른 작가의 책 ‘원소의 이름’은 그보다 더 어렵고 재미도 덜하고 심지어 두껍다). 샘 킨의 책은 그것 말고도 번역된 게 제법 있는데, 살까 말까 고민한 게 이 ‘과학 잔혹사’였다. 결국 구매욕을 억누른 끝에 전자책 빌려 읽고 히히 돈 굳음, 했다. 안 사길 잘했네...

책의 결론을 읽기 전까지는 자주 의문이 들었다. 다소 잔인하고 선정적으로 읽히기까지 할 과학사의 어두운 이 이야기들을 뭉텅이로 몰아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요신문 같은 데 나온 정치가의 비밀 폭로나 사생활 의혹 제기 같은 기분이 자꾸 들었고, 과학자의 범죄와 사기로 인해 고통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흥밋거리로 소비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읽으면서도 찜찜했다.

그런 우려를 의식했는지, 샘 킨은 책의 말미에 미래에 예측되는, 혹은 상상할 수 있는 과학 관련 범죄를 사례로 들면서, 과학 연구 시작 단계부터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자기가 쓴 것 같은) 과학사의 흑역사를 스토리텔링 형태로 생생하게 읽는 것이 과거 저질러졌던 수많은 과학 관련 범죄들과 같은 일을 그나마 줄일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흠.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 그렇다면 책 머리에 먼저 그런 의도를 밝히고 독자가 읽게 했으면 독서의 방향이 더 명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는 순간 (뒤의 부분은 당위와 교화가 대부분이니까 당연히 재미가 덜 하다) 책 앞부분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많았겠지. 결론을 서문으로 바꾸고 여기가 제일 재미없는 부분이야, 참고 좀만 더 읽어 봐, 하면 좀 나으려나? 책 쓰기란, 책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2018년도에 작은어린이 낳기 직전까지 읽던 책이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였고, 아이 낳고 조리하는 동안 그 책을 마저 읽었다. 임신 기간 중 미국 드라마 덱스터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도 프로메테우스니 커버넌트니 하는 걸 다 봤으니… 그렇지만 우리 어린이는 그럭저럭 잘 자라고 있고, 내가 뭐 응보적 연쇄 살인범이 된 것도 아니고, 영화 속 외계인 같은 걸 내 생애 동안 만날 가망성은 0에 수렴하는 걸 알고… 그냥 취향이지, 취향. 하여간에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에서 이미 다뤘던 시체 도둑 이야기가 이 책에서도 제법 등장했다. 이 책의 원제 ‘얼음 송곳을 든 외과 의사’(The Icepick Surgeon)에 해당하는 안와에다 송곳 밀어 넣어 하는 뇌 절개술 등장하는 부분이 이 책의 클라이막스 같기도 하고(가장 충격적이고 아야 내 뇌… 내 뇌가 아픈 기분이다), 역시나 뇌절제 수술을 받았던 HM을 다룬 책(‘영원한 현재 HM‘)이 관련 연구자 입장이 반영되어 최대한 훈훈하게 쓰였구나, 싶기도 했다. 젠더에 관한 책을 많이 읽다보면 피할 수 없는 브루스-브렌다-데이비드의 슬픈 이야기도 다시 봐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보고 과학자의 이미지를 모두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악마처럼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과학과 과학자를 맹신하지 말고, 또라이 총량의 법칙처럼 어느 집단이든 일정 비율의 또라이는 존재하므로 경계를 늦추지 말자, 상호 감시, 윤리 교육, 뭐 이런 바람직한 걸 들이미는 건 가치가 있긴 하겠다. 그렇지만 정말 일정 비율 이상의 진짜 또라이 나쁜놈은 그런 체로도 걸러지지 않을 테니 그냥 내 일상이, 내 건강이 그런 재수 없는 가짜 전문가에게 걸리질 않길 바라는 확률 게임일 뿐인가, 싶어 무기력한 기분도 들었다. 일반인이 아무리 특정 분야 과학이든 의학이든 이해해보려 해도 사실 고등학교 과정을 심화로 배우는 것조차 힘들단 말이다… 나 생명과학 삼 년 해서 5등급이던게 겨우 4등급 되었다고... 인류를 생각하면 나새끼 과학 안 하길 잘했네…

+밑줄 긋기
-프랑스인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노예사냥에 나서는 대신에 두 경쟁 부족에게 무기를 팔고는 양자 사이에 전쟁을 부추겼다. 결국 전쟁 끝에 한 부족이 다른 부족 사람들을 포로로 잡으면, 프랑스인이 재빨리 와서 포로를 사갔다.

-이제는 시신을 통째로만 파는 게 아니다. 자동차 부품을 털어가는 도둑처럼 시신 도굴꾼은 시신을 분해해 치아와 고막, 각막, 힘줄, 심지어 방광과 피부처럼 각 부위별로 으로써 더 많은 돈(최대 20만 달러까지)을 벌 수 있다. 사망자 가족은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다.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받아오고 나서 뼈가 PVC 관으로 바뀐 것을 발견한 가족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적어도 전체 시신을 받았다. 2004년, 스태튼아일랜드의 한 장의사는 3만 달러를 받고 시신을 육군에 팔다가 붙잡혔다. 육군은 시신에 방탄 신발을 신겨 지뢰 위로 가져가 신발의 성능을 시험했다.)

-˝만약 유령처럼 자신을 영원히 괴롭힌다고 생각한 원수가 사실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했더라면!˝

-프리먼은 머리뼈 꼭대기에 구멍을 뚫는 대신에 안와를 통해 전두엽에 도달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눈 뒤쪽의 안와뼈는 비교적 얇은데, 길이가 20cm쯤 되는 가느다란 막대를 눈 뒤쪽으로 쑤셔넣고 안와에 구멍을 뚫은 뒤 계속 밀어넣으면 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프리먼이 발견했다. 그러고 나서 막대를 앞뒤로 휘저어 변연계와 전두엽의 연결을 아래쪽에서 절단할 수 있었다. 접근 지점의 이름을 따 프리먼은 이 절차를 경안와 뇌엽 절개술이라 불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적절한 도구였다. 사체를 대상으로 허리 천자 바늘로 실험을 해보았지만, 이 바늘은 너무 약해서 안와뼈를 뚫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부엌에서 완벽한 도구를 발견했는데, 어느 날 한 서랍을 열었다가 길고 날카롭고 단단한 얼음송곳이 눈에 들어왔다. 사체를 대상으로 실험을 몇 차례 한 끝에 자신의 직감이 옳다는 확신을 얻었다. 적절한 도구를 손에 넣은 프리먼은 이제 환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지렛대의 받침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얼음송곳 끝부분을 누관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 뒤에 있는 뼈에 맞닥뜨려 더 나아가지 않으면,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날 때까지 망치로 얼음송곳을 두드렸다. 얼음송곳이 뇌에 도달하면, 각도를 달리하며 손잡이를 좌우로 흔들어 뇌엽 절개술을 완료했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반대편 안와를 통해 같은 절차를 반복했다. 수술은 20분 이상 걸리는 일이 드물었고, 환자는 대개 한 시간 이내에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이 지나면, 환자의 얼굴에서 시퍼렇게 멍든 두 눈이 확연하게 나타났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환자는 그것 말고는 불편이나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푹스는 ˝어떤 사람은 열다섯 살에 어른이 되고, 어떤 사람은 서른여덟 살에 어른이 된다. 서른여덟 살에 어른이 되는 것이 훨씬 고통스럽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CIA가 후원한 연구 중 많은 것은 스트레스에 초점을 맞췄는데, 스트레스의 원인을 밝히는 것과 함께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을 살피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이 연구는 가치가 있었다. 이 연구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긴장과 불안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CIA는 거기서 얻은 결과를 왜곡했다. 분석가들이 스트레스의 원인을 알아내자, 그들은 그 연구를 바탕으로 전쟁 포로와 스파이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함으로써 비밀 정보를 캐내는 방법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만약 분석가가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법을 알아내면, 그 대처 메커니즘을 방해하여 압력의 수위를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 전략은 사악하지만 아주 영리한 것이었다. 연구는 학계의 심리학자들이 진행했고, CIA는 그 결실을 챙겼다.

-머리도 틀림없이 그런 결과를 얻도록 돕는 걸 좋아했겠지만, 그가 더 관심을 둔 것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이 믿는 핵심 가치를 공격하고 그 가치가 의미 없는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갈피를 못 잡게 만들어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을 심리적으로 쉽게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운영진에 KGB 요원이 포함된 정신질환자 수용소가 여러 곳 있었는데, 이곳 정신과 의사들은 KGB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면서 반체제 인사를 정신 이상으로 판정하고 감금했다. 가장 흔한 진단은 ‘완만한 조현병‘이었는데, 이것은 서서히 진행되는 가공의 조현병으로, 그 증상으로는 ‘개혁 망상‘, ‘진실을 위한 투쟁‘, ‘불굴의 노력‘, 그리고 기묘하게도 추상주의나 초현실주의 미술을 선호하는 경향 등이 있었다.

-그들은 또한 소련을 노동자들의 천국이사 세계사에서 가상 위대한 국가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나. 따라서 그런 국가에 저항하는 것은 사실상 정신 착란의 징후였다.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천국에 저항하려고 하겠는가?

-예를 들어 X 염색체에 있는 MAOA 유전자를 생각해보라. 이 유전자는 뇌에서 신경 전달 물질의 분해를 돕는 단백질을 만든다. 같은 유전자의 다른 버전들은 각각 신경 전달 물질을 분해하는 속도가 다른데, 각 신경 전달 물질의 존재나 부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사실은 중요한데, 특정 버전의 MAOA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폭력적 성향이 강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나타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다만 어린 시절에 학대나 방임을 경험했을 경우에만 그렇다. 학대나 방임을 경험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정상인으로 자란다. 나쁜 결과가 나타나려면, 나쁜 유전자와 나쁜 경험이 결합되어야 한다.

-존 머니John Money는 음경을 ˝남성의 더러운 성욕을 나타내는 표지˝라고 불렀고, 가축뿐만 아니라 남성도 태어나자마자 거세를 한다면, 세상은 여성이 살아가기에 훨씬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만약 여러분이 이 발언에 놀랐다면, 이 말은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그것을 열정적으로 지지하건 식식거리며 증오하건, 존 머니의 발언에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발언은 항상 어떤 반응을 유발했다. (머리랑 머니라는 학자들 등장 부분에 특히 밑줄을 많이 그었는데, 정말 교감 신경 과활성하게 만드는-빡치는- 새끼들이었다.)

-머니는 1920년대에 뉴질랜드의 엄격한 기독교 공동체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사소한 잘못에도 그를 때렸고, 어머니는 훨씬 심각한 학대를 겪었다. 어머니와 그 자매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힘들게 한 남자들을 증오하게 되었고, 머니는 그들이 자신에게 그러한 편견을 심어주었다고 말했다.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여성이라고 느끼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있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조합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을 나타내는 용어가 필요했던 머니는 언어학을 살펴보았다. 영어를 사용하는 원어민은 다른 언어들에서 다리가 ‘남성‘ 이라거나 테이블이 ‘여성‘ 이라고 표현하는 단어의 성gender에 맞닥뜨릴 때 당혹해하는 경우가 많다. 머니는 바로 그 용어를 빌려와 사람에게 적용했다. 머니의 체계에서는 ‘성, sex‘은 염색체와 해부학 (물리적 속성)을 나타내는 반면, ‘젠더gender‘는 행동과 느낌을 나타낸다. 간단히 말하면, 성은 생물학이고, 젠더는 심리학이다.

-짧은 결혼 생활 외에는 머니에게는 개인적 삶이라고 부를 만한 게 사실상 전혀 없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사람들은 그를 화산처럼 폭발하는 기질을 가진 개망나니로 여기며 싫어했다. 그는 봉투를 재사용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봉투에서 우표를 떼어내게 했고, 밤중에 병원 식당에 들이닥쳐 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갔다. 감히 그의 실수를 지적한 동료들은 또다시 그의 분노에 맞닥뜨리지 않으려면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금방 배웠다.

-머니가 저지른 모든 비윤리적 행위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데이비드가 인간으로서 지닌 자율성을 부정한 것이었다. 브렌다로 살아갈 때 데이비드는 머니에게 여자로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시사하는 증거를 전부 다 제공했다. 머니는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고, 자신이 권위자이므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강조했다. 중성과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은 자신들을 같은 방식으로 대한 그런 심리학자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런 심리학자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치료를 받으라고 강요했다.
머니는 데이비드 같은 남자 아이를 여자로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과학적 질문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과연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점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그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대다수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성 정체성이 해부학과 뇌 구조, 호르몬, 가정환경, 문화적 영향 등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게다가 젠더는 태어날 때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지만, 완전히 유동적인 것도 아니어서, 의사들과 외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국제연합은 2015년에 머니가 옹호한 것과 같은 종류의 수술 (신체 일부가 훼손된 아이와 모호한 생식기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대상으로 한)이 인권 침해라고 선언했다. 불행하게도 데이비드 라이머에게는 너무 늦은 깨달음과 조처였다.(2015년이라니…겨우 십년 되었으면 그 전까지 인터섹스 어린이들 다수가 엄청 고통 받았을 것...)

-우리를 만드는 데 문화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사람은 빈 서판이 아니며, 1억 6000만 년 동안 계속돼온 포유류의 진화를 문화가 마술처럼 압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물론 모든 남녀가 젠더 고정관념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며, 생물학의 실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밀턴 다이아몬드의 표현을 빌리면, 성생물학이 실재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중성인 상태로 이 세상에 오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는데, 그것은 사회가 집어넣길 원하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알려진 모든 시대의 알려진 모든 문화에서 남성과 여성은 다르게 행동했고, 그것이 조만간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절차나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게으르지만, 애니 두컨은 늘 열심히 일했다.

-보통은 그런 의지는 건강한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루고 고정관념을 타파하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두컨은 그런 칭찬을 정당한 방법으로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 기반이 되는 업적 없이 영예를 추구했다. 이것은 과학적 사기를 저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결함이다.

-불행하게도 법의학 중 많은 부분은 잘해야 허점이 많고,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2009년에 미국국립과학원이 내놓은 한 보고서는 법의학의 명백한 문제를 여러 가지 열거했는데, 대부분의 하위 분야에서 과학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이 분야들은 실험과 분석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예감을 과학 전문 용어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시료를 가지고도 법의학 전문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동일한 전문가라도 사전에 용의자가 유죄나 무죄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여부에 따라 동일한 시료를 놓고 아주 다른 결론을 내릴 때도 가끔 있다. (이것은 편향이 분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는 증거이다.)

-분명히 모든 법의학이 쓰레기는 아니다. 독물학과 병리학은 굳건하며, 미국국립과학원 보고서는 특히 DNA 분석을 신뢰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이 분야들은 기반이 튼튼하며, 근거가 확실한 시험 결과에 의존한다. DNA 분석의 경우, 특정 생물학적 시료 (예컨다 혈액이나 정액)를 특정 개인과 아주 높은 정확도로 연결 지을 수 있다. DNA 분석가들은 또한 결과에 확률을 첨부함으로써 항상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대다수 법의학 분야들은 이러한 기본 지침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뼈아프게도 매사추세츠주는 두컨이 체포된 직후에 두 번째로 큰 사고가 터졌다. 애머스트연구소에서 일하던 한 화학자는 실험실에서 시료로 제공된 메타암페타민과 코카인, 케타민, 엑스터시에 손을 대고,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시험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또한, 증언대에 서기 전에 법원 화장실에서 크랙을 흡입하기도 했다.

-사기와 그 밖의 비행은 대중의 신뢰를 잠식하고 과학의 최대 자산인 명성을 훼손한다. 불행하게도 사회가 점점 더 기술과 과학에 의존함에 따라 이 문제들은 더 악화될 것이다. 흥미진진한 새 과학적 모험은 나쁜 짓을 할 새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심리학자들은 전반적으로 어떤 일을 시작할 때부터 윤리를 염두에 둔 사람은 더 정직하게 행동하고 부정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증인에게 증언한 후가 아니라 증언하기 전에 선서를 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게다가 일단 거짓말을 하고 나면, 어떤 의미에서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때를 이미 놓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이 책 전체에서 본 심리적 트릭을 사용해 (진실을 가리기 위해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나쁜 행동을 좋은 행동과 상쇄하거나, 더 나쁜 짓을 하는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은 낫다고 위안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나쁜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아주 능하다. 게다가 맨 마지막에 서명을 하면, ‘귀차니즘‘이 발동한다. 거짓말을 한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지만,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지금까지 적었던 모든 답을 고쳐야 한다면, 굳이 그러려고 할 사람이 있을까? 냉소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윤리에서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악의적인 사람은 아무도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처음부터 윤리를 염두에 두면 반성을 촉진함으로써 대다수 사람들은 비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 목적을 위해 노벨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사전 분석premortem‘이란 개념을 장려했다. 더 잘 알려진 사후 분석postmortem의 경우, 어떤 사건이 일어난 뒤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 사건을 분석한다. 사전 분석에서는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 브레인스토밍을 하는데,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 그렇게 한다. 구체적으로 전체 프로젝트가 어떻게 대실패로 변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연구들은 심지어 단 10분 동안 성찰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집단 사고의 족쇄에서 벗어나 의심을 품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떤 집단들은 이견을 촉진하기 위해 심지어 일부러 사람들에게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역할(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맡긴다. 같은 맥락에서 과학자들은 정말로 다양한 집단에서 나온 반응을 모음으로써 자신들의 맹점을 극복할 수 있는데, 그런 반응 중에 과학자들이 놓친 경고 신호가 있을 수 있다. 다양한 집단에는 인종과 젠더, 성적 지향성이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포함되지만, 비민주주의 체제나 시골 지역에서 자란 사람들, 블루칼라 가정이나 독실한 종교 집단에서 자란 사람들도 포함된다. 생각의 다양성은 광범위할수록 더 좋다.

-그와 동시에 (이것은 가장 어려운 부분일 수 있는데) 커틀러나 머니나 프리먼을 괴물로 묘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괴물이 자신과 상관없는 부류라고 일축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괴물이 아니니까, 나하곤 상관없는 문제야.˝)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본다면, 누구나 비슷한 함정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특정 사례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그만큼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도 뭔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계 태세이다. 카를 융이 말했듯이, 악인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그 악인을 길들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혹은 이 시나리오를 한번 상상해보라. 우주선에서 독일인 여자가 브라질인이 만든 약을 사용해 콩고인 남자를 독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우주선은 중국과 벨기에의 복합 기업의 소유이고, 이 기업은 절세를 위해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얼마나 골치 아픈 상황인가? 혹은 너무 골치 아프니 우주선 상황은 제쳐놓는다고 하자. 여러 기업은 이미 소행성에서 광물을 채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만약 소행성에서 한 광부가 돌로 다른 광부를 때려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먼 행성에서 자녀를 낳기 시작하여 그중 일부는 평생 동안 지구에 발을 디딜 일이 없는 날이 온다면, 지구의 법이 그곳에서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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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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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1 김금희.


시각장애인복지관에 딸린 카페는 내가 잠깐의 시간이 생길 때 숨는 곳이다. 거기는 빵이 정말 맛있다. 탄수화물 기피자인 나도 딸기파이, 밤파이, 대파크림치즈베이글 같은 걸 먹고 놀랐다. 음료도 프랜차이즈 카페들에 비하면 특색 있고 원물 재료 비율이 높다.
카페 안쪽에는 도서관이 있다. 그 도서관에는 복지관 방문을 마치고 장애인용콜택시의 도착을 기다리는 시각장애인들이 머물러 쉴 때가 많다. 아는 목소리를 만나면 반가이 큰 소리로 안부와 근황을 주고 받는 사람들, 자주 듣다보니 이제 나도 아는 목소리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할 일이 있으면 이어폰을 끼고 소음을 차단하긴 하지만, 하여간에 나는 거기가 편하다. 내가 있지만 있는 걸 알 테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편하다.

김금희의 새 장편소설은 오디오북으로 먼저 나왔다고 들었다. 표지만 보면 그래픽노블이나 청소년소설 느낌이었는데, 낭독을 염두에 두고 대사 배치가 약간 희곡처럼 길게 이어지는, 실험적이라면 실험적이고, 이거 오에스엠유인가 그렇게 여러가지 매체로 옮길 만하게도 쓰인 것 같고, 그랬다. 가깝고 친밀하던 사람이 돈을 빌려 떼어먹고 나르는 일이 요즘 젊은 사람에게는 가장 비극일까, 싶게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 이야기가 여기에서도 이어졌다. 장의사 겸 매점인 공간, 정체 불명의 나무 정령 같은 어저귀, 열매가 할아버지와 만나는 꿈 속, 신파와 클리셰가 적당히 범벅된 한국 영화나 드라마 느낌이지만 또 주변 풍광을 묘사하는데 공들인 걸 보면 아...금희언니는 옛날에 시나리오를 쓰려고 시도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망상도 해 보고…

가상의 소읍 완평군, 완주 마을은 완주, 라는 말을 거듭 반복하기 위함인지 조금 뻔하지만 그래도 서사의 고갱이 마냥, 이 여름, 죽지 말고 달려, 온갖 우울증 환자와 빚쟁이들을 위로하려고 애쓰는 느낌이었다. 삶을 살아내는 일을 끝까지 달려 어딘가 도달하는 듯한 완주라는 말로 그리는 건 나는 좀 못마땅했지만 말이다. 꼭 다 달려내야 하는 거니... 가다 못 가면 쉬었다 또 가야 하는 거니, 아픈 다리 서로 기대어…

아직 여름은 이제 시작인 무렵 짧은 소설이라 금세 완독을 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사 놓은지 오래인데 꽂아만 두고 시작도 못하고선...며칠 전 ‘나의 폴라일지’(아마도 이미 다 읽은 내가 학교 도서관에 애들한테 극지방 배울 때 소개하려고 구매 요청해 둔 책) 읽는 동료를 보며 그 책, 저도 봤어요, 저 이 작가 소설 다 봤어요, 했는데 대온실 수리 보고서가 꽂힌 걸 보고 아차차...뻥쳤네… 첫 여름, 완주 또 보고선 아차차차...완전 거짓말 했네...하면서 이 주말 읽었다. 학교 아이들은 내내 싸우고, 사과를 원하고(그러면서 사실 앙갚음을 하려 들고), 따돌리고, 학교에 오기 싫어하고, 뭐 그런 속시끄러움으로 나는 메모장에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건넬 말을 적어 보고, 욕도 썼다 지우고, 챗지피티에게 내가 적은 걸 읊어주며 조언도 듣고...너무 방어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 조금 부드럽게-가자는 버전도 친절하게 꺼내주고 혼자 앓지 말고 여기저기 의논해보라고, 고생했다고 위로까지 잃지 않는 에이아이여… 이 여름 가장 따뜻한 건 왜 에이아이인가… 왜 인간이 아닌 무엇인가..

사실 열매와 어저귀가 잠시 사랑하는 장면도 인간 아닌 존재라고 강조해서 그런가, 외계인보다는 에이아이 같은 정령이랑 교류하는 느낌이었다. 어저귀와 열매가 그렇게까지 속을 터놓기도 전에 말도 많이 안 나눠 보고선 친해지는 걸 보면, 정말 깊어지고 슬퍼지기 전에 너무 서둘러 둘이 다시는 못 보게 된 것도 같았다. 어저귀는 온장고 나르고 장의사 집 수리 열심히 한 정도지, 열매랑 그렇게 통할 만한게 있던가, 싶었는데, 꿀벌 분가하는 장면에서 급전개 해서 둘이 가까워지는 건 조금 작위적이랄까...그것만큼이나 어저귀를 치워버리는 장치도 예측가능하면서도 뭐여 이게...하게 되는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마을 인물 하나하나 생생하게 그려내서 정말 시나리오 읽는 느낌이었다.

난 뭐, 다 못 달려내더라도 천천히 걸어서 가는 데까지 가 보고, 딱히 가고자 하는 곳도 없고, 그냥 걷는 것처럼 그냥 사는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고 그게 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러니까 재미있는 소설이 아직 많이 쌓여 있으니 그거나 짚으며 이 여름 보내면 되고...여름은 책이 잘 읽히는 계절이라 더워도 괜찮다. 더위에 나무가 쑥쑥 자라듯 종이도 죽죽 넘어간다.

+밑줄 긋기
-할아버지: 아이, 아이, 목청이 왜 이리 좋은 겨? 충남도청까지 날러갈 뻔혔네. 근디 지끔 열매 니는 피난 갈겨? 무신 짐이 이렇기 많댜?
손열매: (씁쓸하게 웃으며) 할아부지, 나 갈 데가 읎네.
할아버지: 우리가 보령 팔 대 토백이덜인데 워찌 갈 데가 없는 외톨백이라 허넌 겨?
손열매: 아녀, 지끔 암도 읎어. 친구도 읎구. 사투리 얼릉 고쳐서 성공할라는 동안 친구들 하나둘 떠내 부렸지. 아이, 서울말을 배야 헌게.
할아버지: 아이구, 서울말은 워디로 밴 겨. 삼십 년 무덤에 있던 나보다 보령 말을 더 잘허는디? 식구덜은 워뜨케 된 겨? 느이 에미 애비는 기어코 갈라선 겨?
손열매: 이.
할아버지:(혀를 차며)해여튼 간이 내가 낳은 자슥 새낑이지만 느이 애비가 원판 시절(얼간이의 충청도 사투리)이여. 개갈 안 나넌 화상이래니께.
손열매: 아빠가 시절이라 나도 시절인개 벼. 의사가 나 얼간이 됐다 그러대.
할아버지: 얼라리요, 니가 워째 시절이여? 너는 외탁이여. 생김새도 영 그짝 판이구. 기런 소리 말어. 열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쫄대깃살마냥 야물딱지고 똑부러졌대니께.
손열매:(점점 감정이 격해지며 울먹인다) 아니여, 시절이여, 시절이 중에 시절이여. (025, 악마 같은 할배 뒀다 보니 저렇게 노인들이랑 친하고 정감 있는 장면은 늘 공감 못하고 픽션이여 픽션, 하게 되고...시절이 얼간이면 시절 인연은 얼간이 인연이네 충청도에선...하면서 워 사투리 제법인데, 이문구의 후예네, 하면서 제일 먼저 옮겨 적고 싶었던 부분이다.)

-간디: 야, 너 왜 자꾸 나 간디라고 불러?
양미: 너 인도 사람이잖아. 넌 간디, 니 찐친은 러시아에서 왔으니까 푸틴.
간디: 야, 그러면 너는? 응? 너는?
양미: 나? 난 윤석열이지. (위악 쩔고)
푸틴: (불만스러운 말투로 속삭이듯) 야, 재수 없어, 우리끼리 가자.
간디: 쟤 이번 주도 안 나오면 유급이잖아.
푸틴: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유급하냐? 오지게 인종 차별 하는 애를 우리가 왜 감싸?
간디: 학교 오지 않는 친구가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우리끼리 수업하는 건 수치라고 썜이 그랬잖어. 그 말 할 때 율리야 넌 뭐 했냐? 졸았냐? (37-38, 영화 초능력자에서 보던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 티키타카 장면 비슷해서 식상하긴 해도 간디는 역시 평화주의자로구만…그런데 여기선 좀 더 적극적이다...아 그리고 양미가 뭐임- 하는 말투 쓰는데 요즘 중학생들 ~임 하는 명사형 어미 말투 절대 안 씀...한 십 년 십오 년 유행 지난 듯...청소년 오리엔탈리즘...)

-손열매: 그러니까 그짝 얘기는 대가리도 꽁지도 없이 생선 가운데 토막이다, 그게 외계인의 삶이다, 이건가?
어저귀: 또 외계인...그리고 나는 삶이라는 말도 별로 안 좋아해요. 너무 덩어리 같고 물질적이고 그냥 그거보다 ‘유효’쯤이 살아 있는 상태를 설명하는데 적당하지 않나? 인간, 나무 잎사귀, 물방울, 별 먼지까지 은은히 있다가 사라지는 모양을 다 담을 수 있잖아요. (102, 어쭈, 난 완주가 별로랬는데 삶을 살아낸다는 나한테 어저귀는 삶 별로, 하고 있었다. 이자식...없어져도 별로 안 아쉽더라...흥)

-달을 비추기 위해 기꺼이 더 어두워진 연못의 물결 소리.
뾰족한 전나무 잎들이 공기 중에 긋는 투명한 빗금 소리.
흙 알갱이를 짚으며 땅벌레들이 길을 찾는 소리.
부후된 통나무 껍질을 쪼개며 버섯이 피는 소리.
이불이 펼쳐지듯 밤안개가 너르게 이동하는 소리.
그러다 어저귀와 열매 위로 내려앉는 소리.
그렇게 밤이 존재하는 소리. (155, 아… 이렇게 힘준 부분엔 일부러 더 밑줄 안 긋는데 투명 형광펜으로 작가 언니가 여기야, 여기, 좍좍, 이래 놓은 걸 지나치면 너무 예의가 아니잖아...하고서 한 번 옮겨 적기로 했다.)

-열매는 울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저귀의 누룩 덕분인지 빵은 무섭게 팔려 나갔다. “감동 그 잡채의 천연 효모 빵”으로 어느 블로그에 소개되더니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다 다른 신기한 빵으로 입소문이 났다. 방문자들의 별점도 매겨졌다. 국가 권력급 사워도우, 시간 잘 맞추면 향냄새 나는 장의사 컨셉 카페, 노랑이 믹스커피에 담긴 인생 찐맛, 나이 있으신 사장님은 레알 장례 지도사라고 함, 아무것도 안 넣었다는데 바닐라, 치즈, 트러플향까지 남, 완평의 숨은 맛집, 알바생 성깔 있음. (176, 마침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에서 사워도랑 곡물 발효 음식 읽고 있는데 딱 아퀴가 맞게 빵 굽는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있었다. 난 뭐 어제 냉동 생지 녹여서 버터크로와상을 구워 내가 거의 다 먹었지...천연 효모 빵은 그냥 어디 가서 사 먹을게…)

+비디오 테이프 감성인가, 주인공 이미지랑 썩 맞지도, 끌리지도 않는 표지 감성… 밀짚모자 뭐냐고… 캐리어 왜 허공에 떠 있음… 아 그런데 손열매네 할아버지 역할 오디오소설에서는 최양락 씨구나...표지 보니까 최양락 얼굴로 그려놨다… 충청도 사투리니까 인정…

+독후감 쓴 꼬라지를 돌아보니 내가 T여,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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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5-06-01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대온실 수리 보고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친구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리더군요. 폴라일지는 좀 읽다 접어뒀는데 정말 본격적인 극지방 체험기라 (상상과 달라) 놀랐고요.

첫여름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5-06-02 19:54   좋아요 0 | URL
말씀해주신대로 대온실 수리 보고서 평이 많이 갈려서 아직 읽지 않았는데 궁금해 집니다. 전 산문집 중 식물적 낙관을 읽다가 중단했어요. 좋아하는 소설가인데 그거 다 보다가 괜히 미워하게 될 까 봐 ㅋㅋ폴라일지는 드문 체험이라 읽기 나쁘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