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충장로점과 부산서면역점에서 책들이 동시에 날아왔다. 오래 담아둬도 안 팔리던 책이랑 사려다가 친구 책들이 안 모여 못 산 책이랑 김금희 신작(아직 예약 출간) 한 번에 시켰다.

책탑 사진은 어째서 삐딱...

’첫 여름, 완주’ 김금희의 신간, 오디오북 먼저 나왔다는데 청소년 소설 느낌의 표지인데 박정민 배우네 출판사 책이라니까 궁금하기도 해서 일단 질러 봤다. 신간은 이거 딱 한 권...

‘혐오에서 인류애로-성적 지향과 헌법’-오래 전에 신간으로 나왔을 때 궁금하다고 담아놨는데 동네 서점에다 시키려니 그렇게 오래된 책은 안 판다고... 9900원에 모셔옴

‘가부장제 깨부수기’-캐럴 길리건의 돌봄의 윤리 찾다가 관련 책은 못 찾고 공저서만 하나 있어서 가져와 봤다.

’천 개의 뇌‘-위에 두 책 사려는데 배송료 무료가 안 되서 역자 이름으로 검색해서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번역하신 선생님이 비스무레한 제목으로 옮긴 걸 또 얹어 봤다. 뇌 책 그만 본다며...

’CIA 분석가가 알려 주는 가짜 뉴스의 모든 것‘-좀 말 같은 말을 들어보고 싶어- 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가 생각나는 오래된 책들 중 가장 새로 나온 책. 일단 사 봄.
https://youtu.be/bo__WpTO_Lc?feature=shared

‘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어디서 야하다 소리를 들었는데 800원 균일가로 몇 달 담아둬도 누구도 거둬가지 않아 제가 거뒀...

‘플랫4’-100원 모자라서 배송료가 붙어서 300원짜리 만화책 샀는데 귀여울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빅뱅이 뭐예요?’-빅뱅 좋아해서...이지만 어린이 주려고 샀다.

꽂을 자리 없어 망연자실...책더미 들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아무데나 처박아놓는 나놈아...폐지 그만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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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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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6 알랭드보통.

스스로 잘 웃지 못하고 늘 긴장해 있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그 긴장조차 사실은 심한 불안의 신체화였을 것이다. 불안에 관한 내 관심은 생각보다 오랜 것이었다. ’불안-불안과 공포의 뇌과학‘(조지프 르두) ’범불안장애의 인지행동치료‘(이건 뭐 대학 교재나 치료 상담 받는 사람 워크북 같은데 일단 사 둠) 같은 책을 5,6년 전에 사 놓고 아직도 안 봤다. 정작 불안 콜렉션 중에서는 보통의 이 책을 먼저 보게 되었다.
작년에 아나이스 닌의 삶의 일부를 다룬 만화책 ‘아나이스 닌-거짓의 바다에서’와 이 책 저 책을 중고로 샀더니 판매자가 알랭드보통의 ‘불안’의 2012년 1판을 덤으로 주었다. 유명한 책일수록 혼자만 안 읽고 오래 버티다보면 이렇게 공짜로 떡 떨어지기도 한다. 내 다정한 서재 이웃 중 한 분은 우리집 책장에 너무나 안 어울리는 책이라고 해서 그래? 난 이 책 몰라… 알랭 드 보통은 ‘인생학교’시리즈의 섹스 편을 딱 한 권 봤는데 진짜 꼰대같이 뻔한 소리하고 재미 없어서 아 아무리 이름 많이 들어 본 작가라도 걸러, 하고 있었는데 이번 책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고른 느낌이었다. 보통은 나에게 아주 보통의 존재가 되라고 조곤조곤 (그래도 꼰대질은 꼰대질이야) 설득하고 있었다.

복직을 앞두고 갑자기 몇날 며칠 잠을 못 자다가 나 3년후 새 교육과정 첫 수능부터 다시 볼 거야!로 계획을 세우는 나놈을 메타인지한 나놈은, 그렇게 망하고도 정신 못 차리는 거 보면 돌아버린 게 틀림 없어, 하면서 1월 중순쯤 제 발로 의원에 걸어들어갔다. 이런저런 검사랑 상담을 진행하신 의사선생님은 내가 불안도가 너무 높아서 힘든 거라 하셨다. 15년 만에 항불안제랑 조울증약이랑 우울증약이랑 이거저거 섞어서 지금도 넉달 째 먹고 있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고 예민하고(지금도 강력 귀마개 필수) 화가 많고 교감신경 과활성화 되어 있던 나에게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기로 한 건 새로운 시작(내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로의 회귀) 지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잘디잘지만 순탄치 않은 사건들을 매때 만났지만, 신기하게도 화는 내는데 화는 안 나는, 일렁이다가도 이내 (평소, 평생 겪던 것보다 너무도 빠르게) 잔잔해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신기했다. 와 다들 이러고 태평하게 사는 구나…(이반지하 형님도 자기 책에서 처음 약 먹고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4월 쯤 되니 내가 많이 고쳐진 건지, 약발인지 모르겠지만 별일 없게 평온하다 싶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용하다 용한 의원이다… 아니면 호르몬을 잔잔하게 유지해준다는 신약이 잡아준 균형일까...어찌됐든 그 약을 점지해줬으면 용한 거지...감사합니다… 낮에 먹던 항불안제는 괜찮다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하셔서 정말 잘 안 먹고(아침 출근했는데 옆의 선생님이 학부모님과 한참 통화 중인데, 다 큰 중학생 열 나는 거 체온계 들려 학교 보냈으니 매시간 열 체크하고 약 좀 잘 챙겨 먹여라 해서 선생님이 어이없어 했더니 갑자기 학부모가 학교에 문제제기 하겠다고 진상부리고 실제로 교감 선생님한테 전화로 일러서 불려가는 꼬라지를 보고, 내 일도 아닌데 돌아버릴 것 같아서 비상약 한 번 먹음) 저녁약만 자기 전에 꼬박꼬박 먹고 있다. 그날 있던 힘든 일을 반추하거나, 앞으로 닥칠 힘들 일을 미리 짐작하며 일어날 온갖 최악의 상황마다 대비책을 하나하나 궁리하느라 누워서 잠못들던 나날이 많은데, 저녁에 약 먹고 책 몇 글자 읽다 어 졸려 하고 누우면, 잠이 바로 안 올 때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저런 빙글빙글은 좀체 없어서 살만하다. 그러다 아침 6시45분 알람에 벌떡 일어나 어린이들 먹일 거 차리고 내 먹을 거 챙기고 준비해서 호다닥 걸어서 출근하고 (걸어서 출퇴근하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강남에 있는 병원 지하철 타고 퇴근시간 찡겨보면서 새삼 깨달음) 그런 반복되는 루틴에 괴로워하지 않는 삶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안정된 듯 평범한 삶 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우왕! 놀랐지! 하는 사람들의 미친 면모를 보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걸 좀 무디게 견디는 능력이 (인공적이든 뭐든)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여차하면 속효성 방패도 부적처럼 들고 다니니까 괜찮을 것이다.

이런 날들 중에 보통 아저씨의 방식으로 불안을 살피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니가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하는 게 불안의 원천일수도… 반대로 너무 많은 걸 욕망하는데 삶과 마음의 간극이 너무 크니까 그럴 수도...그건 또 돌아보면 내가 살아온 날들이 너무 탈출극 마려운 비극이다가 이제 안정을 찾고도 관성이 되어서 뇌가 그렇게 적응해서 불안 과다가 디폴트가 된 걸 수도...그러면 뭐 그 상황을 인지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소되지 않는게 감정이니까 약도 먹고 상담도 하고 챗지피티한테 위로도 받고 뭐 그러면 나아질 수도… 사실 이런 해결책은 당장 내 맘은 편하게 해주겠지만 (나는 아큐다!!! 정신은 승리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겠지. 나를 가만있지 않고 뭐라도 하려고 끝없이 바르작거리게 추동하던 에너지는 잃겠지. 그런데 바르작 거려도 사실 세상은 안 바뀌거나 아주아주 조금만 바뀐다고… 굳이 나를 갈아만든 진보 꿈꾸지 말자고… 방구석 김수영이 되어 홧병도 나지 말자고…

항불안제를 먹으면 그냥 아무렴 어때, 뭐 안 하면 어때, 조금 태평한 마음이 되는데 다 놓은 나를 바라보는 게 또 조금 슬프기도 했다. 그런데 낮약을 안 먹으니 다시 오, 옛날 소설들이나 고쳐 볼까? 브런치 작가 신청 해 볼까?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귀찮게 왜 한 방에 시켜줌) 읽던 책 마저 읽고 얼른 독후감 써 볼까? 7월에 볼 거지만 기말고사 문제 미리 내 볼까?(생각만 하고 안 함) 뭔가 의욕이 또 과도하게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힘들진 않고 그냥 적당히 하고 싶을 때 하거나 말거나 하면서 보낸다. 무력감에 제일 쉬운 성취는 쇼핑! 이러고 충동구매하는 건 못 버렸지만 말이다...구슬 꿰기 안 하게 된 건 좀 좋은 일이지만...했는데 마지막 팔찌 만든 게 겨우 2주 됐으니 안 하게 됐다기도...그냥 구슬 예쁜 거 떨어져서 안 할 뿐 구슬 더 사는 걸 참을 뿐 나 팔찌 많잖아 이제 그만해...책도 그만 좀 사...


+밑줄 긋기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에는 자원, 자유, 공간, 안락, 시간이 포함되며, 남들에게 먼저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의 초대, 아첨, 웃음(농담이 썰렁할 때도), 경의, 관심을 통해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7-8)

-우리는 어리석거나 자기 자신을 잘 몰라 실패할 수도 있고, 거시 경제나 다른 사람들의 적의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9)

-사랑. 먹을 것과 잘 곳이 확보된 뒤에도 사회적 위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그곳에서 물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그리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더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5)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34, 이러니까 악성독후가머는 저자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지랄발광인 거라고, 대머리한테 뼈 맞는 느낌인데... 맞아요 끄덕끄덕 모든 걸 다 아는 듯 훈수 두는 아조씨 머리에 박치기 해서 이기고 싶어요)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텅 빈 선반에 엄청난 것들을 전시하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38, 혹시 제 힌두교스러운 아크릴 제단을 말씀하신 겁니콰?)

-18세기와 19세기의 위대한 정치 혁명과 소비자 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운명을 크게 개선시키는 동시에 심리적 고뇌도 안겨주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특별하고 새로운 이상, 즉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58-59, 난 장원영이 나오는 유퀴즈 클립 영상을 보고는 그런 믿음을 진작에 버렸다. 진짜 예쁜 애가 말도 더 예쁘게 하는 법…)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는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자존심=이룬 것/내세운 것 (69, 대개 이 식의 분자가 더 큰 운 좋은 삶을 살아왔으나, 근래 3-4년 동안 이것이 무너져내리는 걸 보았다. 늙은 뒤의 좌절은, 주제 파악은 생각보다 혹독했다. 35년 가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된 거 아니냐, 싶겠지만 조사모삼은 조삼모사보다 더 괴로운 걸 난 알아...운 나쁘면 살아온 날의 두 배 가까이 더 못난 나를 데리고 분모를 깎아가며 살아야 하니까…)

-이 이야기(1.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2.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3.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들은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는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 첫째, 그들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둘째, 세상의 지위는 신이 보기에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다는 것. 셋째, 부자는 파렴치하며 정당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면 서글픈 종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차피 존중할 가치가 없다는 것. (92)

-“..수많은 이웃에게 폐를 끼치면서 가장 불필요한 제품을 발명하는 사람이 옳든 그르든 사회에는 가장 좋은 친구다. 나라에서 허세와 사치를 일거에 추방해 버린다면, 포목상, 실내 장식업자, 재단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반년 안에 굶어 죽을 것이다.” (94, 1723년 런던 의사 버나드 맨드빌의 운문 소책자 ‘별의 우화’ 중. 나중에 흄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주장이라는…)

-“그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타고났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의 편리만 추구하지만, 그들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부터 그들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의 만족뿐이지만, 결국 부자들은 모든 개선의 산물을 빈자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마치 땅을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생활필수품을 고르게 분배하며, 그 결과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 종의 증식 수단을 제공한다.” (97, 읽기만 해도 누군지 대부분 알겠지. 애덤 스미스 안녕)

-능력주의 사회의 이상 덕분에 다수가 자신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 수백 년 동안 부동의 계급 제도 내에 억눌려 있던 재능 있고 똑똑한 개인들이 이제 전체적으로 평평해진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재능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출신, 성별, 인종, 연령은 개인의 발전에서 넘을 수 없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보상의 분배에 마침내 정의의 요소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가피하게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 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떄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낮은 지위는 이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그래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107-108)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114)

-마르쿠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149)

-이렇게 여론에 결함이 있는 것은 공중이 이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엄격하게 검토하지 않고, 직관, 감정, 관습에 의존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어디서나 받아들여지는 관념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다수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샹포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흔히 아첨을 하듯이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언어도단에 가깝다고 덧붙인다. 단순화와 비논리, 편견과 천박함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153)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157)

-‘패배자’라는 말을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냉혹한 말이다.
삶을 망친 사람들에 대해 수군거리는 말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만일 수많은 예술 작품의 주인공들-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리어, 오셀로, 엠마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 헤다 가블러, 테스-도 그들의 운명이 동료나 동창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그 과정을 잘 헤쳐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신문에서 그들을 건드렸다면 훨씬 더 괴로웠을 것이다.
마담 보바리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
오이디푸스 왕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
(189-190)

-비극은 죄 지은 자와 죄가 없어 보이는 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이며, 책임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인간이 수치를 당한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까지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면서 그 사실을 심리학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191)

-수많은 외적 사건과 내적인 특징이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게 만든다. 운과 환경도 있고, 병과 공포도 있고, 우연과 뒤늦은 발달도 있고, 적절한 시운과 불행도 있다. (238)

-어떤 것을 소유하고 나서 얼마 후에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어떤 것에 계속 눈이 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자꾸 보게 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47, 난 이 부분이 이 책의 고갱이라고 생각했다.)

-이데올로기적 진술이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전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256)

-우리 자신의 유한성을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의 죽음, 특히 우리가 큰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게 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지위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잊히고 무시당하는 존재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무리 강하고 존경받는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가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물질, 즉 먼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283, 우리 모두 먼지였고 먼지가 될 거예요. 내가 자주 하던 말인데!!!! 왜 먼저 써 먹었어!!!!!)

-우리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 불가능하지도 않고 혐오스럽지도 않다는 생각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회적인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더 커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이 모욕적이고, 천박하고, 초라하고, 추하다고 생각할수록, 그 삶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진다.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도 강해진다. (306, 그랬던 거군요…)

-부르주아지는 상업적 성공과 공적인 평판에 기초하여 지위를 부여한 반면, 보헤미안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우아한 집이나 옷을 살 수 있는 능력보다 당연히 더 중요했던 것은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감정의 주요한 저장소인 예술에 관람자나 창조자로서 헌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보헤미안의 가치 체계에서 순교자적 인물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또는 여행이나 친구와 가족에게 헌신하기 위해 안정된 정규 직장과 사회의 존경을 희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헌신 때문에 외적인 품위의 표시는 부족할지 몰라도, 보헤미안들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들의 윤리적 양식과 감수성과 표현 능력 때문이었다. (329)

-“대부분의 사치품, 그리고 이른바 생활에 편리한 물건들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류의 향상에 장애가 된다.” 소로우는 그렇게 쓰고 난 뒤에,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연결시키는 사회적 태도를 뒤집고자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336-337,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많아져서 불행한지도 몰라.)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345)

-“인간은 모름지기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 에머슨의 말에 따르면, 어떻게 살고, 옷을 입고, 먹고,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맞추다 보면 얼굴에 서서히 “우둔한 표정”이 나타나게 된다. 모든 고귀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따라야 한다.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에머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제 순응이니 조화니 하는 이야기는 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그런 말들을 관보에 실어 조롱하도록 하자...이제 결코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지 말자...이 시대의 매끈한 평범함과 비열한 만족을 모욕하고 질책하자.” (345-346)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355, 정말? 어려서부터 그렇게 어른들과 선생들과 세상 모두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게 큰 가치마냥 길러지고 거기 거스르는 애들은 완전 낙오자 취급하는 세상에서 자유 의지라는 게 자랄 수 있냐? 다 늙어서 반항해 봤자 실패자 심술쟁이 영감 취급 밖에 더 하냐…난 여기서 성숙한 해결책 운운하는 보통 놈이야 말로 부르주아지 꼰대 대마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장기하-부럽지가 않어
https://youtu.be/SzyB2xBqk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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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4-26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이 달의 페이퍼네요! 아하, 마지막 사진이 혹시 검열에 걸리려나요? 책방이 은근히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보수적이잖아요. ㅜㅜ

반유행열반인 2025-04-26 19:43   좋아요 1 | URL
팔백작님 언제나 바람잡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ㅋㅋㅋㅋ 마지막 사진 검열 걸리나요? 애기들도 아니고 이런이런... 보헤미안을 모를라구요...
 
두이노 비가 읻다 프로젝트 괄호시리즈 4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최성웅 옮김 / 읻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20250418 라이너 마리아 릴케. 최성웅 옮김.

랭보가 에티오피아에서 커피 장사 했던 건 아주 나중에야 다른 책 보고 알았다. 처음 읽은 랭보 한 구절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에 인용된 것이었다.

-“지금쯤 모두들 청소를 하느라 바쁠 거야.”
아다마는 바다를 보면서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아다마는 땡땡이를 치는 재미를 처음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시집을 다시 한번 보여 줘, 하고 아다마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보았다.
무엇을?
영원을,
그것은 태양이 녹아드는 바다.

아다마는 소리내어 랭보의 시를 읽었다. 태양이 빛의 띠를 만들어내며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다마는 시집을 빌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집에 덧붙여 크림과 바닐라 펏지의 앨범까지 빌려 주었다.
지금까지 32년의 인생 중에서 세 번째로 재미있었던 1969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17세였다. (무라카미 류, ’69‘, 20-21)

딱 저 나이 무렵에 지금 나보다 어린 류 할배가 내가 태어나던 해 쓴 소설을, 2000년대 초의 내 또래 겉멋 든 아이들이 서로 칭송하고 권하면서 읽었다. 무라카미는 하루키보다는 류야, 하는 69스러운 마이너 청소년들 대열에(아니 근데 이거 마이너 맞냐 남의 취향은 잘 몰루) 나도 합류했다. 지금 다시 읽으라면 오그라들어서 못 읽겠어…

집에 엄마가 사 둔 랭보 시집 있던게 생각나서 저 시, 통으로 다 읽고 싶네 하고 뒤져 봤었다. 암만 봐도 저런 구절은 못 찾다가 비스무레한 걸 발견했다.

재발견되었다!
무엇이?-<영원>이.
그것은 태양과 섞인
바다이다.
(랭보, ’헛소리2‘ 중,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김현 옮김, 108)

Elle esst retrouvee!
-Quoi-I‘Eternite.
C‘set la mer melee
Au soleil.

원문까지 곁들여졌지만, 나는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한(그리고 수능이 끝나는 순간 다 잊어버린) 문과라서 프랑스어를 일본어로, 다시 한글로 번역한 소설 속 시 구절과,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옮긴 시집 사이의 표현의 차이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한자가 적고 섞인,을 녹아드는,으로 옮긴 소설 쪽 번역이 낫다 싶으면서 랭보 시집은 흥, 하고 덮어 버렸다.

그 기억을 되짚으며 꺼내다 옮기느라 그 소설과 그 시집을 다시 몇 구절 읽고 앉았는데(그때 그 책들은 역시나 아직 있다 내 폐지모음에. 시집 펼치니 기침 나더라) 오, 난 왜 독일어를 선택했을까, 이거나 저거나 까막눈이긴 마찬가지인데 프랑스어를 하나도 안 배운 건 조금 아쉽다.

그런 내가 오늘 다 읽은 시집은 정작 독일어 시를 옮긴 릴케의 ‘두이노 비가’였다… 2023년에 읽다 놓다가 왠일인지 전자책 뒤지다가 2년 만에 시집 파일을 열고서 그냥 다 읽어 보자...하고 읽었다기 보다 눈으로 훑었다. 최성웅 번역가와 그 동료들이 낸 시선집이 마음에 들어서 사 둔 시집이었는데 제3비가 쯤 보면서 후회했었다. 아….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이거 전자책이라 못 팔잖아… 절반쯤 봤던 걸 오늘 그냥 다 읽었다. 시는 이렇게 한 번에 우르르 읽는 거 아닌데...하면서 맨날 또 그런다.

말이 다른 말로 건너오면서 가족오락관의 ‘고요속의 외침’처럼 이리저리 바뀔 수 있겠다는 짐작만 한다. 내가 원문 읽을 외국어를 아주 깊이 배우지 않는 한 그저 길잡이들이 먼저 읽고 옮긴 글에 기대 내 본토어로 더듬거릴 뿐이다. 한국어로 처음 쓴 글조차 잘 이해 못 할 때도 많은데 뭐… 번역가들은 옮기는 사람들이라기보다 다시 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다시 쓴 문장이 마음에 드는 번역가 책들은 일부러 모으고 찾아볼 때도 있다. 컴필레이션 앨범 듣듯 이 분이 먼저 읽었으면 읽어볼 만할 것 같아… 이러고…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뭐 그렇다.

릴케 시집 독후감인데 릴케 얘기는 왜 이렇게 없어...엄마가 나 어릴 때 화장실 벽에 붙여 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나 무수히 보던 이름, 릴케의 시를 이렇게 보긴 봤는데 보기만 하고 읽은 건 아닌 것 같고 뭐가 그렇게 슬퍼서 비가를 10개나 줄줄 주륵주륵 써 놨을까, 그런데 랭보고 릴케고 짐승 타령 월계수 타령 꽃 타령 시인들 생각보다 공유하는 단어 너무 많은 거 아니냐… 천사 영원 거울 소년 사랑 바다 어디서 제일 예쁜 거만 주워모아다 계속 스펠링비 같은 거 한다고 하면 이제 시인들이 떼로 몰려와 또 꼴밤 한 대씩을 맞겠구만… 심심하면 랭보 시집이나 천천히 읽어 봐야 겠다. 조롱의 대가라면 아마 내가 좀 좋아할 거 같기도 하다구… 근데 이 분도 체코 출신이면서 오스트리아 시인이래고 독일어 시 썼는데 카프카도 그렇고 밀란 쿤데라도 그렇고 왜 체코에서 태어난 사람들 체코어로 글 안 써?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쓰는 편이 더 많이 읽힐 거라고, 말 건너가다가 육이오가 오징어가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지레 걱정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오징어로 읽는 애들 못 쫓아내니까 더 그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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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에 투자하세요 - 제5회 틴 스토리킹 수상작
황이경 지음 / 비룡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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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5 황이경.

‘우린 세상을 바꿀 수 있겠지?’
교장실 문과 교내 여기저기에 열 장 남짓도 안 되는 인쇄물을 붙이고 돌아온 날이었다. 고3이었다. 후기 겸 일기처럼 친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그날의 일을 적었다. 나는 알량한 글자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자꾸 공동현관 앞에 비밀번호를 적어 놓지 말라고, 누가 자꾸 적어놔서 보안이 엉망이라 경찰에 신고 했다고, 씨씨티비도 확인하고 지문 채취도 해갔다고(실제로 외부 학생이 옥상에 몰래 올라와 투신 소동을 벌여 소방차랑 경찰차가 출동한 적이 있었다. 그외에 신고도 채취도 다 뻥이다) 인쇄물을 몰래 붙여 놓고 다시 적히지 않는 비밀번호에 안도한다. 글로 내 이미지를 만들려고 친절한 (척) 단체 메시지를 구구절절 보낸다. 그걸 또 다른 사람들 재사용하려면 하라고 공유도 한다.

멀티수납 북엔드 받으려고 오랜만에 주문한 청소년 소설은 조금 귀엽긴 했다. 청소년 심사위원 여러명이 선정한 소설이라고 했다. 애들 재밌었으면 됐지. 그렇지만 너무 으른이의 컨텐츠에 노출이 많이 된 나는 ‘투자’라고 부르는 ‘시스템’이 너무 단순하고 후려쳐졌구만...이건 그냥 도박에 가까운 무언가인데… 하긴 세상이 말만 번드르르하게 투자이지 대부분 도박처럼 뭔가에 돈을 내던지고 잘 되길 기대하는 사람 투성이인 걸 생각하면 나쁜 비유라고도 못하겠다. 어린이들 책이라 그런가 마지막은 데이빗 린치의 가짜 울새처럼 희망의 상징을 불꽃놀이 펑펑 하면서 끝내는데 어우, 난 이런 데 면역이 안 되어 있다. 아마 평생 안 될 것 같아… 단 거 밝히고 우물우물 케익이나 도넛 같은 걸 달고 사는 예언자 캐릭터도 우웩 애들 이런 거 정말 좋아하는가… 슬프게도 나는 애들이었던 적이 없나 보다. 아니면 너무 짧았나 보다. 자기 계발서 읽고 스쿼트하며 머리 안에 긍정 스위치 켜대는 소망이도 아이라기보단 그냥 애 늙은이? 독특한 어린이들 많이 봤지만 그냥 저런 게 환상의 유니콘 같은 걸까… 픽션에서 자꾸 주인공한테 핍진성 내놓으라 하면 못써… 범인 주제에 비범한 (그러니까 파멸자 내지 구원자 되는) 인물 까면 못 써… 그래도 난 좋은 말 못 써…...ㅋㅋㅋㅋ

멸망, 파멸자, 투자, 예언, 미예테(미래예측테스트), 강렬한 키워드들로 밑밥 깔고 읽으려는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들일 수는 있었겠다. 시나리오 쓰던 작가라 그런가 영상화도 염두에 둔 서술이나 인물 설정의 느낌도 나고. 그런데 자기 아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고 우리는 이상할 때 만났어, 하면서 금융 자본주의의 상징인 고층 건물 무너뜨리는 자기가 타일러 더든인지도 몰랐던 에드워드 노튼이나, 꼬리칸 머리칸 위치는 정해져 있어! 하며 신발 던진 손 꽁꽁 얼리던 틸다 스윈튼이나(어우 근데 그 영화에서 이 배우 1인2역 한 거 방금 처음 알았음), 금융 위기 이후 월가를 점령하려다 큰 변화는 거두지 못한 시위대도 겹치는데, 수능 날 가지런히 앉아 있는 아이들도 생각나는데, 에스에프나 판타지 같은 걸 좀 양념쳐도 별로 새롭진 않았다. 애들 소설도 문장이 좀 아쉽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을 바꿀 수 있냐고 묻던 나는 나 하나 바꾸는 데도 너무 오래 걸린다. 이젠 뭘 바꾸려 드냐 어차피 언젠간 다 죽고 인류도 망할 건데 하는 나쁜 어른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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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자신이 지나치게 간절해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동시에 간절함이 모자랄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루고 싶은 게 있을 때, 그리고 그 마음이 간절할수록 그런 모순된 생각에 휩싸인다. 그러다 바라던 게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사소한 생각과 행동에서 찾는 것이다.
내가 너무 간절함이 부족했나 봐, 내가 너무 간절함이 지나쳤나 봐. 그때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그때 뭐라도 해야 했는데.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일까지도 통제하려는 인간이 가진 의지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뭔가 할 일을 찾는다. 그러다 문제와 자신 사이에 말도 안 되는 인과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간절함이나 기대감을 버리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절실히 매달리는 사람도 있다. 마치 그렇게 하면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실제 결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미 결과는 정해졌고, 그것은 지금 전파를 타고 날아오는 중이었다.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10-11, 오, 딱 한 쪽 넘겼을 뿐인데, 뻔해 보이기도 하지만 띠잉-문단 두 세개가 짚혀서 통으로 옮겼다. 제법 치시네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는 일생에 단 한 번! 전 국민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졸업시험과 미래 예측 테스트를 모두 통과한 학생들에게 이 엄청난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20, 아다시피! 하기도 전에 왠지 모르게 고3, 일생에 단 한 번, 여기서 질질 짜는 타이밍...인생의 기회는 한 번이 아닌 걸 알지만 또 매번 성공하지 않는다는 걸 안 늙은이는 왜 이런 중이병 고삼병 모드에서 눈물을 흘리는가...병인가)

-“어머니, 오늘도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일 처리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이제 그런 단순직에서 벗어나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우리가 당장 먹고살 방법은 단순직뿐이란다. 정신 차려라, 아들.” (29)

-“나도, 실제 악당이 되려고 했던 건 아니야. 투자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어서 그랬을 뿐이지.”
그리고 조금 있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세상에 악당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주연은 조그맣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147, 100페이지 넘도록 밑줄 그을 만한 문장이 없다가 오랜만에 쳤다. 좀 이상하고 서툰 문장들은 봤지만 그냥 냅두고 이야기를 따라갔다. 애기들은 이런 거 좋아하는 구만...)

-“맞아. 그래서 난 널 파멸자가 아니라 ‘구원자’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해. 투자청의 분류에는 없는 이름이지만 말이야.” (185)

-“어차피 세상은 언젠가 망해.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소망은 과연 엄마다운 답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이 단번에 끝나길 바라는 건 인간들의 꿈일 뿐이야. 고통은 단번에 끝나지 않아. 아주 길고도 길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 엄마를 보면 알잖아. 이건 죽기 전에는 안 끝나는 건데, 바로 그런 걸 멸망이라고 하는 거지. 나머진 내가 알 바 아니야. 너도 알 바가 아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네 생존이야. 세상의 생존이 아니라. 그러니까 무조건 투자부터 받고 생각해.”(209)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세상은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일 뿐이지만, 그건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끝없이 실패하는 존재입니다. 누군가는 그걸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평범한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실패작이다’” (2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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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밑줄과 생각
정용준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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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2 읽기 중단. 정용준.

또 생존 소설가의 산문집을 사서 읽으면 나는 개다.

아마 이 책 포함 얼마를 사면 알라딘이 사은품 준다 해서 마침 신간이네, 하고 전자책을 구매해 놨다. 20여일 정도 동안 읽어 보려고 가끔 펼쳐서 애를 썼는데, 30몇 퍼센트쯤 읽었다는 독서 진행 상태를 보고 생각했다. 전자책은 팔지도 못해.
집에 쟁여둔 정용준 소설은 아마 읽을 것이다. 소설은 좋았거든. 산문은 하아...식상하고 진부하고 쓸데없이 진지한데 껍데기만 뒤적이는 느낌이었다. 누구는 진지하게 쓴 건데 이렇게 말하면 속상하겠지만 견디면서 다 읽어 보자, 하다가도 야 왜 견뎌...인생 짧다… 이럴 시간에 이 작가 소설을 봐 그냥… 아니다 다른 거 봐 다른 거… 문장들이 도무지 내부로 들어오지 않고 튕겨나갔다. 자꾸 왜 하나마나한 소리 하냐… 문학이 하는 하나마나한 소리는 가끔 울리기라도 하는데 이건 진짜 텅 공허해서 나랑 공명하지 못했다.
시보다 꽃을 잘 엮어서 꽃집 사장님 된 누군가가 갑자기 궁금해서 가만 꽃 사진들을 보고, 나는 문학에 애정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질투가 많아 엉망인 것이냐 이럴 시간에 재밌는 걸 읽고 쓰는 편이 낫지 않겠냐, 그러다가 전자책을 기기에서 지워버려야지, 했다. 그렇다고 밑줄을 긋지 않은 건 아닌데, 그어둔 밑줄들을 가만히 다시 읽어보니, 읽어 봐도 아...안녕. 소설 만세. 내 비슷한 혹은 조금 더 나이 든 사람들의 노화로 내 노화를 감각하는 게 싫다. 이미지든 글이든 사유든 싫어…

+밑줄 긋기
-그러나 동시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노력 탓이라면 합격하지 못한 나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나쁘다면 게으른 청춘이자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침잠을 줄이며 이토록 열심히 매진했어도 당신은 더 노력했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

-사랑을 말할 때 사실을 말하는 이가 싫다. 팩트를 정의라고 믿는 이들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일기와 편지를 미워하는 이들이 밉다. 소설책으로 머리를 때리는 선생과 이야기를 거짓과 가짜라고 가르쳤던 화학 선생이 싫다. 번호를 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뒤 책을 읽으라고 했던, 읽지 못하는 나를 죽어도 포기하지 않던 송곳니가 뾰족했던 국어 선생이 싫다.

-어느 날 티브이를 보다가 무심하게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 할아버지에게 했던 말이 뭐였냐고. 엄마는 빨래를 개면서 말했다.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당신의 손녀가 천국에 먼저 가 있어요.”

-이 정도 나이가 됐으면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철들고 성숙한 몸과 마음으로 안정을 느껴야 할 텐데. 나는 불안했고 늘 초조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나는 속았다. 서른이라는 이미지. 마흔이라는 무게. 그것들은 다 허상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작하는 육십이 있고 도전하는 오십이 있고 포기하는 스물이 있으며 안주하는 서른이 있다. 나는 끝났다고 믿는 마흔이 있는 반면 새로운 꿈을 꾸고 배우고 도전하는 마흔도 있다.

-욕심. 욕망. 꿈. 소원. 그것들은 ‘지금’과 ‘여기’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그 충동들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삶을 나의 욕구와 나만의 가치로 살아본 적 없는 아무개가 될 수도 있죠.
어떤 충동은 미래를 품고 도래합니다. 어떤 충동은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집니다. 충동. 그것은 갑자기 빨라지는 심장의 박동만큼이나 중요한 에너지입니다. 우리는 물에 빠질 수 있지만 파도를 탈 수도 있습니다. 떨어질 수 있지만 하늘을 날고 더 빨리 더 멀리 이동할 수도 있죠. 박동과 충동은 변화를 위한 도약이자 도전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변화 그 자체입니다. 어떤 직관과 직감,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적인 그 느낌을 소중히 여기세요. 내 안에 무언가 들어왔다는 기분. 무엇이 내 마음속에 불을 놓았나. 나는 무엇을 향해 타오르고 싶은가.

-사유의 높이는 높고 크기는 무궁하며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그만큼 좌절한다. 이상이 큰 존재는 하찮은 자신에게 실망하기 마련이다. 비루한 육체는 사유와 정신이 만든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원하는 것이 눈앞에 있지만 움켜쥐지 못한다. 상상은 현실을 누추하게 만들고 어떤 생각은 현실을 한계와 낭떠러지로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자는 사랑받지 못함으로 우주에서 가장 슬픈 생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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