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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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물에서 나와 여기저기로 팔딱팔딱 뛰는 생선 같던 젊은 날의 김영하 소설을 젊은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와 내가 거의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마트한 세상이 약간 고개를 내밀 때, 아직은 촌스러운 낭만과 전근대적 성향이 남아 있었을 때의 김영하 소설은 다른 작가의 글과는 많이 달랐다. 한마디로 신박했다. 민족이나 모든 사람을 위한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그냥 개인이 주인공인 그의 소설이 재미있었고, 공감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동안 김영하 글쓰기는 변화되어 갔으며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갔다. 치열하게 살아낸 결과로 쌓인 궤적이 많지만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니 그것은 넘쳐날 수밖에 없다. 들인 공과 노력이 아깝지만 과감히 쳐내야만 한다. 특히 노년이라는 확실한 길이 보일 때, 급하게 불을 줄이고 필요 없는 것은 걷어내야 한다. 남겨야 할 것은 순수한 관조뿐이다.

 

김영하의 에세이 단 한 번의 삶에서 그것을 보았다. 작가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지만 많이 비워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에피소드와 다른 책의 인용이 조화로웠고, 작가다운 성실한 깊은 성찰이 있었다. 한 번씩 방송매체를 통해 본 작가가 워낙 달변이라 그가 쓴 에세이도 잘 읽힐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부모의 부재는 항상 실감되지 않는다. 평소 잊고 있다가 엉뚱한 곳에서 부모의 부재를 인식하게 되면 그때마다 슬픔을 느낀다. 이 책은 작가의 어머니의 빈소에서 시작된다. 나의 엄마와 비슷한 증상으로,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신 작가의 어머니 얘기에 그만 처음부터 울고 말았다.

 

자식은 부모의 제한된 정보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내가 인식하고 판단하는 부모는 실제와 많이 다를 것이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의 영정사진을 보며 내가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작가 역시 어머니의 빈소에서 인생을 중간에 보게 된 영화 같다고 느낀다. 빈소에서 알게 된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소설에서의 반전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보았던 부모님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실망할 때도 있다. 특히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권위적이었고 다정하지 않았다. 작가 역시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부모의 희망과 기대대로 자식은 잘 움직여주지 않는다. ‘기대와 실망의 왈츠(p.51)’가 계속 엇갈리며 반복된다. 그것이 어느 순간 서로에 의해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 각인되고 쌓인 감정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언제나 어렵다.

 

남들이 가는 길을 절대 그대로 가지 않을 것 같은 작가 인생의 이야기에 재미있는 부분도 많다. 뭔가를 저지르고 실패하고, 다시 재도전해 성과를 내는 작가의 고집도 좋았다. 많이 읽고 많이 쓴 사람답게 평범한 것에서, 느끼고 다듬어 깊은 울림을 주는 작가의 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내가 사는 방식, 늙음, 앞으로 가야할 방향에 대한 편안함과 용기를 얻었다. 대놓고 자기계발서라 이름 붙인 책보다 작가들의 에세이가 훨씬 더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 한번뿐인 삶에서의 인생 사용법(P.194)’을 오랜만에 유쾌하게 읽고 배웠다.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십 년이 여럿 쌓였다. 할 줄 아는 것만 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도 변했다.]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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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책, 모비 딕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홍한별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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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이라는 단어는 모비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 책은 원제인 <Why read Moby-Dick>에 충실하다. 소설의 순서대로 단순한 감상이 아닌, 역사와 정치, 인간 심리를 통해 모비딕에 접근한다. 명쾌하고 유익하다. 제목이 약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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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6-05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책이 있네요?!

페넬로페 2025-06-05 12:52   좋아요 0 | URL
유익하고 재미 있습니다.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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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는 일생의 영상에 온전한 ‘나’는 없을 것 같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바움가트너의 회상과 철학에 사랑, 관계, 뿌리, 역사가 있듯, 질주하는 인간 삶엔 그 모든 것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신랄하고 따뜻한 폴 오스터의 문장에 인생의 의미가 깊이 있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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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품은 세계 -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
황선엽 지음 / 빛의서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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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나를 형성하고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무수히 많다. 부질없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육체, 우주, 철학, 도덕, 세계, 자본주의, 사람아무리 생각해도 내 결론은 언어이다.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며 이해하고, 그것으로 나를 표현한다. 언어의 기본인 단어가 나라는 존재를 나타내는 출발인 것이다.

 

강원도 정선으로 방언 답사를 갔을 때, 어떤 어르신이 상추를 부루라고 하는 것을 듣고 시작된 황선엽 저자의 단어 탐구는 지평선이 보이지 않아 넘실대는 바다처럼 보이는 거대한 땅덩이 같다. 인간에 의해 시작된 단어가 땅에 뿌리를 내려 과거와 지금, 시작과 변천, 어원과 옛 문헌을 넘나들며 자라나고 때론 꺾이며, 열매를 맺는 과정을 저자는 생생하게 서술한다.

 

23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장마다 다른 주제로 단어의 세계를 소개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거의 내가 모르는 것들이기에 재미있었다. 강의식으로 서술한 저자의 친절함으로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좋은 강의를 듣고 흡족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말대로 단어의 변화를 들여다보며 인류의 변화상, 민족의 역사, 세태의 변천(p4)’을 엿볼 수 있었다. 외국어 문법은 열심히 공부하지만 우리말 문법은 당연하게 넘어가는 것(p8)에 대한 반성도 했다.

 

일생동안 한국어를 사용해왔고 나름 책도 열심히 읽는다고 자부하지만, 항상 단어의 부족을 느낀다. 글을 쓸 때도 매번 사용하는 단어가 비슷하다. 그렇다고 작가들의 사전에나 나올법한 단어의 남용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전하고자 하는 언어를 평범하면서도 신박하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신조어가 사용되기에 그것을 따라가기도 바쁘다. 사실 내가 탐구하고 공부해야 할 것은 단어나 국어인데, 신조어의 뜻을 몰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 싫어 오히려 그것에 대한 검색을 더 열심히 한다.

 

 

단어가 품은 세계는 정지용의 시 <향수>로 시작된다. 시보다는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의 노래로 먼저 알게 된 이 시(노래)가 너무 좋아 자주 듣고 따라 부르기도 했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얼룩백이 황소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본 적이 없었다. 얼룩백이는 몸에 호랑이처럼 줄무늬를 가진 칡소를 가리킨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누런 소를 한우로 규정하면서 예전에 볼 수 있었던 칡소가 사라졌다. 또한 황소는 누런 소가 아니라 다 성장한 수소를 뜻한다. 그러므로 얼룩백이 황소는 수소 칡소를 말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많은 것을 습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조금만 의문을 품고 생각해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칡소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시 <향수> 얼룩백이 황소는 바로 칡소다. 지금은 누런 소만 쉽게 볼 수 있으나, 원래 우리나라에는 흰 소, 검은 소, 칡소 등 다양한 색의 소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학교에 다닐 땐 선생님들이 왜 그리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켰는지 잘 모르겠다. 음치과에 속하는 나는 그것이 무척 곤혹스러웠다. 어른이 하라고 하니 안 할 수도 없어 할 수 없이 매번 불렀던 노래가 바닷가에서라는 동요였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챕터 11, ‘단어를 아는 과정은 삶을 아는 과정이다에서 저자는 해당화에 대해 언급하며 나의 추억을 소급해준다. 해당화는 장미과에 속하는 것으로 작은 나무에 향이 진한 꽃이 피고 주로 바닷가에서 찾아볼 수(p.141)’ 있다.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 가사에도 들어 있어 해당화는 한국의 토종 장미라고 불린다. 똑같은 한자를 사용하지만 중국에서는 해당화를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당화를 뜻한다. 외국에서 온 꽃사과나무가 산사나무와 비슷해 해당화라고 불렀다.



-산사나무 열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산사나무를 인용한 아름다운 문장이 많다. 민음사 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권의 책표지를 산사나무 잎을 모티프로 디자인 할 정도이다.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을 때 나에게 산사나무는 프랑스와 프루스트 적 느낌이 강한 것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듯한 이국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산사나무 열매는 이미 우리나라의 술 산사춘의 원료이고 탕후루의 원조도 산사나무 열매이다. 산사나무 열매는 신맛이 강해 달게 먹기 위해 탕후루로 만든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으로 이 나무가 전과 다르게 엄청 토속적으로 다가온다. 똑같은 사물과 단어라도 언제, 어디에서 사용되는가에 따라 이렇게나 그 의미나 느낌이 달라진다.

 


엄마는 당신이 나물 요리를 좋아해 반찬으로 많이 만드셨는데 그 중 내가 가장 싫어한 것이 가죽 나물이었다. 가죽나무는 참죽나무와 비교되는데, 참죽나무에 비해 쓸모없는 부분이 많아 가짜라는 의미의 ()’가 붙는다. 참죽나무의 과 대비된다. 저자는 장자<소요유>를 인용하며 가죽나무같이 쓸모없는 것에 대한 미학을 말한다.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엄마가 요리해주었던 가죽 나물은 사실 참죽나무 순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참죽나무를 가죽나무로 부르고 진짜 가죽나무는 개가죽나무라고 한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알았을 때, 요즘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

 

지인의 결혼식으로 강남에 있는 더채플앳청담예식장에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다. 저자는 '더채플앳논현' 결혼식장에 다녀온 적이 있나보다. 저자는 이 결혼식장이 상호를 정한 바탕에는 외래어에 대한 선호와 선망이 들어있다고 했다. 이러한 예가 단지 이것 하나뿐이겠는가? 시어머니가 쉽게 찾아오지 말도록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지어 놓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시댁식구들과 자주 가는 고기집 버드나무식당에서 즐겨 먹는 갈매기살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다. 갈매기살은 갈비와 삼겹살 사이의 부위인데 식감이 소고기와 비슷하다. 갈매기살이라는 단어는 갈매기와 전혀 상관없다. 갈매기살의 갈매기는 가로막이라는 말이 변한 형태이다. 이 부위가 돼지의 갈비와 삼겹살 사이에 있는 것이니 가로막의 의미를 사용해 갈매기살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평소에 왜 갈매기살인지 궁금했지만 한 번도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요즘 어디를 가도 완전 기본이 된 기계 장치가 키오스크. 주로 식당이나 카페, 햄버거 가계에 키오스크라고 불리는 무인단말기가 설치되어 있다. 본래 키오스크는 정자를 뜻하는 페르시아어인데 유럽에 들어오면서 터키풍의 정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말이 가판대란 의미로 바뀌고 현대에는 주문을 위한 무인단말기를 나타내는 것이 되었다.



 -키오스크는 원래 정원 등에 지은 개방형 작은 건물을 뜻했다. 이 말은 궁궐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



-키오스크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전면이 개방된 간이 판매대와 소형 매점을 일컬었다.

 

 

이 책의 내용은 다양하고 범위가 넓다. 고추, 산초, 상추, 강아지풀과 성경의 가라지, 명아주, 김치에 대한 단어의 어원과 유래열일하다’, 구독, 양치질, 낱말 앞에 이 붙는 단어들의 공통점, 순우리말, 지명에 대한 구체적이고 성실한 설명이 있다. 언어에 대한 정책들, 시대의 인권감수성의 반영, 민간어원 등 언어가 가지는 특수성과 문제점에 대한 고찰도 있다.  각 챕터마다 참고할 수 있는 이미지도 풍성하다. 한 책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있어 옆에 두고 여러 번,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훈몽자회로 시작해 고려가요가 나오는 순간 국어는 어려워진다. ‘그려긔, 그려가그려기에 관형격조사나 호격조사가 결합할 때 마지막에 있는가 탈락한다고 하겠지요. 그러다 관형격조사에서도 그려기의 형태가 쓰여 그려기의가 되고 현대국어에서는 호격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남게 된 것입니다.‘라는 문장도 뒷목을 잡게 한다.

 

단어가 품은 세계의 부제목은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이다. 이 책을 읽고 당연히 아는 것이 많아져 삶의 품격이 올라가고 단어의 사용이 풍부해진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국어 수업이라는 말에서 이 책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반부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책의 내용에 전문성이 많아 살짝 어려워진다. 어려워진다는 것은 재미없어진다는 말과 연결된다. 국어학자의 성실과 의무라고 여겨지지만 일반인 독자에게는 갑자기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저자 역시 딱딱한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그것이 우려된다.

 

저자의 강의를 직접 듣는 듯한 이 책은 단어로 시작하지만, 단어에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다. 단어로 시작해 세상의 이치를 알게 하고, 궁극적으로 삶의 자세와 철학을 배우는 중요한 기회를 준다. 봄빛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활기차게 보이는 요즘의 세상을 본다. 천지가 단어 투성이다. 그것에서 말이 이어지고 나의 우주가 열린다.  



**이 글에서 인용한 이미지와 그에 대한 설명은 책에 수록되어 있고 페이지는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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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27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키오스크의 유래 재밌네요. 써먹어야지.... ^^
이 책 읽으면 진짜 삶의 품격이 좀 올라갈까요? 요새 진짜 단어의 빈곤을 너무 많이 느껴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

페넬로페 2025-05-28 00:24   좋아요 1 | URL
키오스크의 어원은 정말 새롭더라고요, 오늘 산책길에서 저도 딸아이에게 키오스크와 갈매기살의 어원과 의미를 설명해줬어요.
이 책 읽으면 삶의 품격보다는 추억이 많이 소환되었어요.
국어 부분에서 깊이 들어갈때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의 악몽같은 문법이 떠오르고요 ㅎㅎ
내용은 정말 풍성합니다^^

그레이스 2025-05-30 09:32   좋아요 1 | URL
정원사에서 배움 ㅋ
근데 이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매번 파고라 라고 했어요 ㅎㅎ
저도 이 책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희선 2025-05-28 0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룩백이 황소나 황소가 누런 소가 아니다는 글을 보니, 이 작가가 예전에 라디오 방송에 나온 게 생각났습니다 그때 듣기는 했는데, 기억하는 건 별로 없네요 그래도 나왔다는 거 기억해서 다행입니다 앞부분은 재미있을 듯한데, 뒤로 가면 어렵게 느껴지겠습니다 해당화 이야기도 했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말을 잘 알고 딱 알맞은 데 쓰면 참 좋을 텐데, 어려운 일이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5-05-28 08:35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저는 처음 접한 내용이라 새로웠어요. 제가 위에 인용한 것은 이 책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잘 기억을 못할 것 같아요.

단어를 적시적소에 잘 사용하는 것이 매번 어려워요.

새파랑 2025-05-28 0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칡소 처음 봤는데 우리나라 소 맞나요? ㅋ 저도 맨날 쓰는 단어만 쓰는거 같아요. 어휘력 부족 ㅜㅜ

페넬로페 2025-05-28 10:43   좋아요 2 | URL
네, 예전에는 검은 소, 칡소 같은 얼룩소가 있었는데, 누런소를 한우로 규정하면서 사라졌다고 해요.
이 책을 읽어도 어휘력은 별로 높아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몰랐던 단어의 세계가 재미있어요^^
 

올해 신년계획으로 꼭 헬스장에 등록한다고 결심했지만, 당연히 아직이다. 그 대신 많이 걷고, 산책길 여러 군데에 설치되어 있는 공원 기구 운동도 한 번씩 한다. 어차피 헬스장에 가도 이용하는 기구가 한정되어 있다. PT를 받지 않는 한, 헬스 중독자인 근육맨들이 포진하고 있는 곳에 선뜻 끼어들 수가 없다. 깨작깨작 기구 몇 개 들어 올리고, 러닝 머신이나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면서 미리 지불한 1년 치 돈이 빠져나가는 안타까움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정신적 고통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요즘은 집 근처 새로 조성되고 있는 호수 공원에 설치된 중량을 조절할 수 있는 운동 기구를 이용한다. 무게를 높일 수 있어 훨씬 운동하는 맛이 난다.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다. 공원 기구 운동은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데, 저녁 늦게 가면 학원 수업이 끝난 학생들도 많이 와서 운동을 한다. 저번에는 어떤 학생들이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이 놓고 운동을 하길래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전에는 태권도 도복을 입은 3명의 남학생과 1명의 여학생이 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쯤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10시쯤 태권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들린 듯 했다. 그들은 운동은 하지 않고 기구 옆의 벤치에 앉아 계속 떠들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거의 3명의 남학생이 1명의 여학생을 놀리는 것이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그 여학생을 놀렸는데, 여학생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여학생이 고통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재미있게 친구들과 즐기고 있는 것도 같았다. 20분 정도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가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왔지만 계속 그 광경이 지워지지 않았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여학생이 약간의 장애를 가진 친구는 아닐까? 아님 요즘 청소년의 행태나 우정을 내가 몰라서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학생 3명과 여학생 1명의 조합은 어딘지 조금 공평하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다. 설사 그들이 친한 친구라 해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놀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지금은 괜찮아도 그것이 쌓이면 나중에 그 여학생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다음날까지 고민하다가 학생들이 입은 도복에 인쇄된 상호의 태권도 학원으로 전화를 했다.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가 듣고 본 것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관장님이 전화를 받아 어제의 일을 상세히 말씀드렸다. 내가 오해를 할 수도 있고, 잘못 알 수도 있다. 아이들을 혼내라고 전화한 것도 아니다. 다만 정도가 조금 심한 것 같았으니 정확한 상황은 알아보시라고 했다. 관장님은 잘 알겠다고 하며 아이들과 얘기 나눠보겠다고 했다.

 

태권도 관장님은 그 다음날 나에게 전화를 해주셨다. 아이들과 얘기를 해보았지만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고, 서로 장난친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따로 여학생에게 남학생들이 한 행동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들었냐고 물어봤지만, 아이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고 했다. 관장님은 계속 아이들을 지켜볼 것이고, 태권도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도록 지도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여기서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의 말이 진심이기를 바라며,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우정을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의 호기심으로,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심심해서 부당한 것을 참거나 시키는 대로 행동하면 금세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김애란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가족소설이면서 성장소설이다. 지우, 소리, 채운은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고민이라는 표현은 가볍고 사실 불행하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가족의 죽음과 폭력으로 야기된 것들로 인해 현재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는, 불행에 빠진 세 청소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불행은 뭔가 거창한 것을 바라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것이 아니다. ‘큰 사건 없이, 존재해야 할 누군가와 살 수 있다는 바람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불행인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병이 찾아오고, 재수 없는 사고 같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하나라도 찾아오면 그냥 힘들어지는 것이다. 힘들기 시작하면 지우의 엄마인 지연처럼 피로와 허무에 젖어 살게된다. 그냥저냥 무난하고 무탈한 삶을 바라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드물다.

 

지우, 소리, 채운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그 연결을 거부하지 않는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 안주하거나 그것으로 타인을 배척하지도 않는다. 지금 아이들이 의지할 엄마는 없지만 그 대신 다른 어른이 그들을 보호해주려고 노력한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더 글로리악연은 청소년 시기를 정말 나쁘게 보낸 어른들의 이야기다. 김애란 작가의 착한 이 소설과는 정반대다. 전자에 비해 이 소설이 말하는 것이 너무 따뜻해 식상하고 재미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김애란의 소설에는 진심이 있다. 가족이 아니어도 마음 놓고 안길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아이들은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그냥 이것이 진리다.


이 소설속 아이들과 산책길에서 만난 태권 소년 소녀가 무탈하게 어른으로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바라는 건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집에서 한 과제라 채운은 '미끄럼틀'이나 '추락' 같은 단어를 미리 찾아볼 수 있었다. 채운은 저 때가 자기 삶에서 최고의 날까지는 아니어도 꽤 좋은 날이었음을 인정했다. 작은 몸에서 기쁨과 신뢰가 분수처럼 터져나오던 때, 저 아래서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마음놓고 내려와도 된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어 그 사람에게 정말 마음껏 안겼던 그날이

그런데 어쩌다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데 와 있을까?’ 

채운은 접속사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여러 선택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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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5-24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리 지불한 1년 치 돈이 빠져나가는 안타까움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정신적 고통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 ㄷㄷㄷ 아 바로 제가 작년에 겪은 일입니다! 몇 번 나가지도 않고 만료되었어요 막판에는 어서 빨리 끝나버려라 라는 자포자기적 심정이었지요 에휴 태권도장에 연락해보신 일은 정말 잘 하신 것 같아요 그냥 넘기고 묻어 버렸다면 엄청 찜찜하셨을 거에요

페넬로페 2025-05-24 19:55   좋아요 1 | URL
네, 등록해 놓고 안 가는 날이 많고 어느 순간 거의 가지 않는거죠 ㅎㅎ
이런 경우가 많아 운동을 많이 쉬었는데 할인 이벤트 전단지가 와서 고민중입니다 ㅋㅋ

태권 도장에 전화할지 고민이었는데 잘 한 것 같아요.
관장님이 성의 있게 경청해 주셨어요. 그 친구들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고요.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들도 조금 조심하지 않을까 합니다.

5월도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어요.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래요^^

책읽는나무 2025-05-24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장님 조금 당황하셨을 수도 있었을텐데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고 또 페넬로페 님께 경과를 보고하려고 따로 전화를 주신 것을 봐선 좋은 어른이신 것 같아요.
정말 김애란 소설에 나오는 어른들 중 한 분 같단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도 소설 속 아이들과 겹쳐보이기도 하구요.
요즘 김애란 작가의 예전 소설을 펼쳐 들고 다시 읽어보고 있어요.
<이중 하나는 거짓말> 소설이 나쁘진 않았는데 예전 소설과 결이 비슷한 듯 다른 듯한 이 분위기가 왜 바뀐 것일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페넬로페 님의 글을 읽으면서 김애란 작가님이 의도한 게 진심 이것!!! 오호!! 맞아, 이것일 수도 있겠구나!
해답을 찾은 느낌입니다.
역시 페넬로페 님^^

페넬로페 2025-05-25 00:05   좋아요 1 | URL
성장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거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나쁜 길로 가지 않고 보통 어른으로 무탈하게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요. 청소년 시기에는 아차하는 순간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때 좋은 어른 한 명이라도 있으면 아이를 잡아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최근에 뒤늦게 정주행한 드라마 ‘조립식 가족‘의 내용이 그렇더라고요.꼭 엄마나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어른이 아이들을 위해 잘 먹이고, 잘 케어만 해준다면 각자, 나름 잘 성장할 수 있는 걸 보여줘서 너무 감동깊게 봤어요^^
요즘은 작가들이 힘들듯요. 매운 맛이 아니면 사람들이 잘 안 보고, 잘 안 읽으니
ㅠㅠ

책읽는나무 2025-05-25 00:28   좋아요 1 | URL
조립식 가족.
저도 재미나게 봤습니다.
팟캐스트 듣고 있는데 김혜리 기자님이 재미나게 봤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한 번 봤다가 재밌어서 정주행 했었어요. 이런 드라마가 좀 더 많았음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우리들의 블루스>편에서도 학생 커플 이야기도 인상 깊었는데 줄곧 떠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몇 달 전부터 넷플릭스를 잠깐 끊었어요. 드라마나 영화 들여다 본다고 헤어나오질 못하여 이용료가 오른 이후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었는데 그 폭싹 속았쑤다를 보고 싶어서 다시 넷플 결제를 할까 말까 엄청 망설이고 있네요. 다시 접속한다면 또 폐인이 될 것 같아ㅋㅋ 근데 넷플 안 보는 대신 요즘 유튜브 세계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어 큰일입니다.ㅜ.ㅜ
이러나 저러나 폐인 안 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그중 가장 좋은 폐인은 책덕후 폐인인 듯 합니다만.^^
한국 소설 작가들 특히 여성작가들 책을 두루 읽어볼 계획을 세웠거든요. 확실히 젊은 작가일 수록 좀 자극적인 듯도 하구요. 특히나 안 읽던 호러쪽을 읽으면서 헐…이러면서도 차츰 중독되어 읽곤 있어요.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치부해야 할지 알 순 없지만 일단 읽어보자! 이러면서 읽습니다.
그래도 역시 저는 어둡지만 착한? 소설이 좋은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5-05-25 09:32   좋아요 1 | URL
조립식 가족 너무 좋죠?
이 드라마보고 황인엽 배우 팬도 됐고, 지인들에게도 좋은 내용이라고 소개했어요.
저는 요즘 넷플릭스 많이 보고 있어요 ㅠㅠ

책나무님, 한국 여성 작가 소설 읽으시고 리뷰 많이 부탁드려요.

잉크냄새 2025-05-25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학생들과 대화해보고 그 결과를 전화로 피드백해주는 걸 보니 해당 도장은 그래도 믿음이 가네요.

페넬로페 2025-05-25 10:47   좋아요 0 | URL
네, 전화상이지만 제 말을 진지하게 경청해 주셨고, 피드백까지 해주셔서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