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중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것이 있다. 재미있어서 내가 자주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다. 2명의 게스트를 초대해, 그들 집의 냉장고 속 재료를 스튜디오에 그대로 가져와 그들이 원하는 요리를 15분 만에 셰프 들이 뚝딱 만들어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지는 내용이다. 그 중 중식요리를 전공한 셰프 들이 중국 요리를 만드는 방식에는 항상 비슷한 법칙이 있다. 일단 재료 손질을 먼저, 완벽히 하고 나서 나중에 불 쇼를 하며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벽돌책으로 분류되는 고전 읽기도 중국 요리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보통 고전이라 알려진 작품을 읽을 땐 처음 50페이지나 100페이지 정도는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본격적으로 중요한 사건(요리)이 나오기 전 작가들은 지루하고도 끈질기게 독자들에게 재료 준비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러다 불 쇼가 진행되면 그제서야 독자들은 기다려온 보람을 느낀다. 고전이란 언제나 읽다 지칠만할 때가 되어서야 진가가 발휘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도 당연히 그런 고전의 법칙이 적용된다. 한 명씩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1권이 끝나도록 그럴듯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계속 뭔가를 추측하게만 한다. 내가 뭔가 잘못 읽었거나 번역의 문제인가 싶어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다시 읽었지만 마찬가지였다. 민음사판 1권과 열린책들판 상은 주요 인물인 니콜라이와 표트르의 동시 등장으로 그냥 끝나버린다. 아마 2,3권에 중요한 사건이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대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이 초반 부분에 엄청 공을 들여 차례로 나오는 등장인물에 따라 문체와 어투를 달리한다. 스테판과 바르바라의 에피소드에서는 이제껏 읽은 도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엄청 가볍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꽉 차 있으므로 작품의 내용에 대해 얘기하기가 너무 어렵다. 뭔가 짧게 요약하기가 힘들다. 도작가의 작품은 그저 묵묵히, 반복해서 읽어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1800년대 중반 러시아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사상적 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1825년 알렉산드르 1세가 사망하고 왕위를 물러 받은 그의 동생인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 날 여러 파벌의 혁명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12월에 반란이 일어났기에 이 사건은 데카브리스트의 난으로 명명되었다. 러시아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모든 것이 뒤처진 상태였는데 당시 젊은 지식인이나 장교들은 강력한 개혁과 자유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었다. 니콜라이 1세는 이들을 진압하고, 이 사건에 놀라 극도의 보수주의자가 되어 자유사상을 탄압했다. 도스토옙스키가 1849년부터 참가한 공상적 사회주의의 경향의 페트라쎕스키 모임에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은 시기도 니콜라이 1세 때였다.

 

도스토옙스키가 악령을 집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세르게이 네차예프(1847~1882) 사건>이었다. 여러 급진 사상을 접한 니힐리스트 네차예프는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제네바로 가 바쿠닌을 만난다. 그의 영향을 받은 네차예프는 러시아로 돌아와 혁명 조직을 결성한다. 급진주의자인 네차예프는 폭력 적이었고 살인마저 저질러 체포되고, 이 일은 러시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악령은 이 사건을 토대로 여진 작품이다. 악령에서의 혁명가들은 모두 니힐리스트였고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그들을 비판하고자 이 소설을 썼다. 그러므로 악령은 작가의 정치소설이다.


[본래 니힐리즘은 19세기 러시아의 극도로 반동적이고 압제적인 현실에서 파생되었던 일종의 자유사상이었다. 이 자유사상, 즉 니힐리즘은 유물론과 개인주의라는 두 개의 사상에 기반했고 그것을 극한으로 추구했다. 니힐리스트들은 유물론자로서 모든 종교, 미신, 형이상학 등 물질적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무언가, 과학으로 분석되지 않은 것, 실질적인 유용성을 가지지 않은 것을 부정했다. 한편으로 개인주의자로서 그들은 완전한 개인의 자유를 위하여 개인에게 부과된 전통을 부정했다....이 니힐리즘이 오늘날 떠올리는 음울한 극단적 혁명이론으로 각인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네차예프라는 인물의 역할이다. 제정러시아의 아나키스트들조차 네차예프를 상종 못할 인간으로 간주했다.

-네이버 나무위키에서 발췌]


 

악령은 안톤 라브렌티예비치라는 화자의 연대기적 기술로 진행된다.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는 스테판과 바르바라, 아들 세대를 대표하는 니콜라이와 표트르의 대립적 구조로 여러 사건이 얽힌다. 인물 하나하나가 새롭게 등장하며 각자가 가진 캐릭터가 독자를 긴장시키고 나중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 추측하게 한다. ‘어떤 도시에서 최근에 일어난 그토록 이상한 사건을 기술(p.13)' 하기 위해 2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상세히 설명한다. 연대기의 서론에 해당하는 것은 20년 동안 계속된 스테판 베르호벤스키와 바르바라 스타브로기나 사이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친구이자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친구이지만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고 평생 그렇게 살면서도 헤어질 수는 없는(p.24)’ 사이로 뒤엉켜 지금은 영지를 소유한 돈 많은 바르바라가 스테판을 지켜주고 유모처럼 보살피고 있다.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바르바라의 외아들이다. 스테판 트로피모보치는 니콜라이의 교육자로 처음 이곳에 왔다. 바르바라는 스테판에게 니콜라이의 교육을 위임했지만 아들에 대한 관심은 지나칠 정도였고 그것을 니콜라이는 병적일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병약하고 조용하고 생각에 골몰하는열 여섯이 되었을 때 다른 도시로 공부하러 간다. 그 뒤 군대에 들어가지만 그때부터 니콜라이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 나오는 해리 왕자와 비슷한 행동을 해 그 이름이 별명이 되었다. 니콜라이는 방탕해지고 괜한 시비를 일삼고, 여러 번의 결투로 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어 재판까지 회부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사회의 인간쓰레기들과 살고 뒷골목을 전전한다. 소문과는 다르게 교양있고 지식을 갖춘, 잘 생기고 우아하며 단정한 신사로 고향에 돌아 온 니콜라이는 야수처럼 이상한 행동을 한다.


[우리의 왕자는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여러 인물에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두세 가지 뻔뻔스러운 짓을 저질렀는데, 중요한 것은 그 뻔뻔스러운 짓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것,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것, 흔히 통용되는 것이 전혀 아닌, 완전히 걸레짝 같고 어린애 같은 짓, 도무지 목적도, 동기도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그래도 나중에는 그가 이런 행동을 하던 그 순간에 꼭 미친 것처럼거의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그가 이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잘 이해했으되 당황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일말의 후회도 없이악의에 찬 즐거운 미소를 짓던 두 번째 순간만을 열렬히 기억할 뿐이었다-p.77~78]


 

사람들은 니콜라이를 증오하고 미워한다. 어떤 이유에선지 바르바라는 이러한 일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드디어 시작됐구나라고 생각한다. 간교하고 냉소적인, 때론 섬망 상태의 니콜라는 병원에 입원하고 회복 후에 삼 년 정도 여행을 다녀 점점 잊힌 존재가 된다.

 

스테판은 아들 표트르를 그동안 두 번 보았는데 한 번은 태어났을 때고 두 번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대학에 입학하려고 준비할 때였다. 표트르는 바르바라가 대 주는 생활비로 이모들 손에서 자랐다. 금발에 괴짜 같기도 하지만 예의범절이 훌륭하고 자기 확신에 찬 사람으로 스테판에게 돌아온 표트르는 아직은 신비로운 사람이다. 그에 대한 설명에 어쩐지라는 말이 계속 따라 붙는다.


[그는 다급히, 성급히 말하지만 동시에 자기 확신에 차 있고 말이 막히는 일도 없다. 그의 생각은 성급한 듯 보여도 실은 침착하고 분명하며 단정적인데 특히 이 점이 두드러진다. 그의 발음은 놀라울 정도로 또렷하다. 그의 단어는 언제나 당신의 비위에 맞게 선별되고 준비된 것으로 고르고 굵은 밀알처럼 흩뿌려진다. 처음에는 이것이 마음에 들겠지만 나중에는 바로 이 너무 또렷한 발음 때문에, 또 영원토록 준비된 구슬 같은 말 때문에 오히려 혐오스러워진다. 어쩐지 입속에 든 그의 혀가 어쩐지 특별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어쩐지 이례적으로 길고 가늘며 끔찍이도 붉고 혀끝이 굉장히 뾰족하며 저도 모르게 끊임없이 날름거린다는 생각이 어쩐지 들게 한다-p.305]


 

니콜라이와 표트르, 바르바라의 친구인 프라스코비야 부인과 그녀의 딸 리자베타, 새 도지사인 렘브케와 그의 아내 율리아가 이 도시로 들어오고, 퇴역 대위이자 주정뱅이인 레뱌드킨의 동생 마리야와 니콜라이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 이 연대기의 진짜 시작이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책의 제사로 4대 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마귀에 대한 것을 인용한다. 사람 속에 들어있던 마귀는 예수에게 자기들을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예수가 허락하자 마귀 떼는 돼지 속으로 들어가 모두 호수로 가서 빠져죽는다. 이렇게 예수는 마귀 들린 사람을 낫게 했다. 악령은 이 구절의 마귀와 뜻이 같다. 악령의 등장인물들에게는 다 마귀가 들어있는 듯하다. 예수같이 이들을 구해줄 것은 무엇이며, 그들 속에 있던 악령은 어디로 갈 것인지 다음 내용이 기대된다.



 

 

 









매핑 도스토옙스키는 제목 그대로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따라 그가 살았던 곳과 거기서 집필된 작품을 따라가는 연대기적 매핑(mapping)이다. 오랫동안 러시아 문학, 특히 도스토옙스키를 연구한 석영중 교수가 직접 그의 길을 따라 가며 서술한 책이라 더 깊이있고 볼거리가 많다. 신문에 연재되어서인지 글이 쉬워 읽기에 좋다.

 

1867년 재혼한 도스토옙스키는 부인 안나와 함께 유럽으로 떠난다. 주변의 버거운 사람들로부터의 탈출이었다. 43개월 동안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산 작가는 타국에서 백치악령을 완성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드레스덴에서 자신의 세 번째 장편소설인 악령을 집필했다. ‘1860년대 러시아에서 니힐리스트란 모든 사상, 모든 의미, 모든 권위, 모든 도덕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급진주의자를 지칭한다(p.335).' 외국에 있으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던 작가는 네차예프 사건에 충격을 받고 그것을 계기로 정치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악령의 표트르는 네차예프가 모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악령에서 니힐리스트의 폭력을 고발하면서도 더 나아가 인간 본성과 자신을 포함한 아버지 세대의 무책임에 대한 반성을 한다.


[그가 네차예프 사건에서 파헤친 것은 특정 사상의 문제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인간 본성의 문제였다. 그는 인간 본성의 심연에 뿌리 내린 권력 의지를 끄집어내서 하나의 인간 유형을 창조했다. 그는 네차예프를 광신자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멍청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표트르로 <재탄생한> 네차예프는 인간의 권력 의지를 증폭시켜 보여 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정치 소설로 기획된 작품은 결국 철학 소설로 굳어졌다. -p.339

카뮈는 악령이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 가장 예언적인 작품이라 상찬했다....악령은 분명 테러리즘을 예고한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에서 당대 현실과 미래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과거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p.342]


 

-p.336, 세르게이 네차예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6-03-21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적절한 비유입니다. 고전을 읽어보려하는데 매번 재료 손질만 하다가 웍 한번 못 돌려보고 포기하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완성된 요리가 아닌 ‘이 음식 맛이 없을거야‘ 라는 자기 합리화로 마무리 합니다. 고전은 인내심이 필요하더군요. ㅎㅎ

페넬로페 2026-03-21 21:10   좋아요 0 | URL
혼자 완독하기 힘들어,
주로 고전만 읽는 도서관 독서 동아리에 참여하여 읽고 있어요. 아무래도 동아리에 참여하면 의무적으로 완독은 해야하기에 숙제처럼 읽고 있습니다. 고전은 그 책에서 주는 의미도 좋지만 계속 고전을 읽음으로써 다른 책으로의 사다리가 되어 주는 점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마힐 2026-03-21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일전 유튜브 ‘일당백‘에 도스토옙스키의 우리나라 전도사라는 분의 ‘도선생님‘ 작품 세계에 대해 재미있게 들었어요. 도선생의 작품중 ‘백치‘ 가 끌려 알라딘 장바구니에 저장을 일단 했어요. ^^ 악령 소개도 했는데 페넬로페님 올리신 글 참고하고 전 좀 더 내공이 쌓이면 도전해야 될 것 같습니다. ^^

페넬로페 2026-03-21 23:32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유튜브 방송 들었어요. 도스토옙스키 작가의 책 모두 완독하는게 목표인데 저도 기회되면 백치 읽으려고 합니다. 악령 2, 3권도 열심히 읽고 리뷰 올려 보겠습니다^^
 
매핑 도스토옙스키 - 대문호의 공간을 다시 여행하다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스토옙스키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살았던 공간을 직접 따라가며 서술한 연대기다. 제목대로 도스토옙스키 전체 삶에 대한 장소, 작품, 의미를 기록한 매핑이다. 신문에 연재되어서인지 쉽게 읽히면서도 깊이 있고 볼거리가 많다. 도선생님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 사람들에게 세계 문학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나는 주인공 이름 딱 10개만 말해보라고 할 때, ‘안나 카레니나는 거의 빠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유명한, 주인공의 이름이 표제작인 이 작품을 거의 10년 만에 재독했다. 처음 읽었을 땐 약간 지루했는데, 다시 읽은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담백한 문장과 세련된 소설 구성에 감탄하며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일관되게 애정하고 러시아 최고의 작가라 생각하는 도스토옙스키가 톨스토이에게 자리를 내 줄것 같은 나쁜 예감마저 들 정도로 좋았다.(일단 1권에서)

 

여기엔 여러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 삶을 살아간다. 소설 첫 문장의 저마다 나름의 이유(p.13)"는 가정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적용되며 나름의 선택으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지만 그것은 어차피 내가 아닌 타인이 내린 판단일 뿐이다. 언뜻 안나 카레니나의 생의 결말이 불행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의 선택은 행복을 위해서였다. 행복과 불행은 다양한 삶에서 어쩔 수 없이 교차될 수밖에 없는 빛과 그림자와 같은 양면성이다.

 

이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와 카레닌, 레닌과 카체리나(키티)의 두 축으로 진행된다. 물론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불륜)이 가장 주된 내용이지만 이 두 사람이 소설 전반을 완전히 지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톨스토이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의 시작을 찰나적으로만 표현한다.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스치면서 서로를 본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라는 것에 구구절절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듯하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랑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서술되기 전, 안나의 오빠 스테판 오블론스키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이 먼저 등장한다. 소설의 첫 문장으로 너무나 유명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스테판의 가정에서 먼저 시작된다. 자기 집의 프랑스 가정교사와 바람이 난 스테판은 아내 다리야(돌리)와 냉전중이다. 이 에피소드는 사건의 포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을 중재하기 위해 안나 카레니나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오게 되고 그것은 브론스키를 만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또 하나는 여기에서 스테판과 레빈의 사랑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

 

스테판은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서른 네 살의 미남인 그는 벌써 다섯 아이와 죽은 두 아이를 낳은 서른 세 살의 아내 돌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바람피운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제 아름답지도 않고 쇠잔해진 돌리가 관대함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뻔뻔한 남자이다.(소설 초반의 스테판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다.) 브론스키도 이런 유형에 속한다. 브론스키는 키티에게 결혼할 의사도 없으면서 유혹하는 짓(p.128)’을 한다.

 

반면 레빈은 사랑과 가정은 연결되고 하나인 것으로 생각하며, 절대 배반이란 있을 수 없고 서로에게 충실해야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사람이다. 돌리의 동생 키티에게 청혼했지만 거절당한 레빈은 실의에 빠지고, 괴로운 상황을 벗어나고자 농민 운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키티를 사랑하며 그녀에게만 관심을 둔다. 맑고 선하며 빛나는 키티는 그에게 영원하며 끝까지 지켜져야 할 여자인 것이다.

 

얼핏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 레빈과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사랑관에는 차이가 많다. 레빈에게 사랑은 자신의 삶 자체이지만 카레닌의 사랑은 남에게 보여 지는 것에 불과하다. 카레닌은 사교계에서 자신의 가정이 완벽하게 보여 지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레닌에게 가정은 정치가로서 자신이 갖추어야 할 많은 것 중의 하나일 뿐이다.

 

기차역에서 안나를 우연히 마주친 브론스키는 한 번 더 그녀를 꼭 보아야겠다는 충동(p.137)‘을 가진다. 안나 역시 다정한 눈빛으로 브론스키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것으로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하지만 기차역에서 기차에 치인 경비원의 사고와 스테판의 집에 잠깐 들른 브론스키를 보며 안나는 어떤 공포감과 불길함을 느낀다. 여지껏 평온했던 안나의 삶에 불쑥 들어 온 브론스키를 떨쳐버리려 그녀는 모스크바를 급히 떠나지만 곧바로 브론스키는 안나를 따라 페테르부르크로 온다.

 

안나 카레니나 1권에서의 압권은 어쩌면 처음일 수 있는, 운명적 사랑에 빠진 안나의 심리적 변화이다. 이 부분을 톨스토이는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 모범적이고 습관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에 오른 안나에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좇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p.221)'였다. 브론스키를 떠올리며 뜨거움을 느끼는 그녀는 이제 자신이 예전의 안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페테르부르크 역에서 마중 나온 남편을 본 순간 안나는 , 어쩜! 저이의 귀는 어떻게 저렇게 생긴 걸까?(p.229)'라고 생각하며 남편에 대한 불쾌한 감정에 심장이 조이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그러한 감정은 오랫동안 느껴온 것이지만 이제야 그것이 고통스럽고 더 이상 남편에게 위선적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안나의 시선은 이제 카레닌이 아닌 브론스키로 향한다. 분명하고도 확고한 사랑의 시작은 안나를 솔직하게 만든다. 그녀의 전부였던 아들에게조차 다른 감정이 든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표적이 되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평소 모든 것이 완벽했던 안나를 시샘한 사교계 사람들은 이때다 여기며 덥석 미끼를 문다. 사교계 사람들 대부분은 보통 공공연히 불륜을 저지른다. 다만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래 숨기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 숨길 수가 없다.

 

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인식한 카레닌은 안나를 통해 처음으로 인생의 벽을 느낀다. 그는 예의와 법도를 언급하며 안나에게 경고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거침없이 진행되고 급기야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한다. 경마 대회에 출전한 브론스키가 말에서 떨어지자 그것을 구경하던 안나는 일어나 비명을 지른다. 그 일을 계기로 안나는 확실하게 카레닌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브론스키라고 못을 박는다. 키티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레빈은 시골로 돌아가 농장일에 몰두하고, 브론스키에 의해 실의에 빠진 키티는 온천으로 요양을 가 건강을 회복하는 것으로 2부는 끝이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분명 불륜이지만 적어도 그들의 시작은 사랑이었다. 아무 의심 없이 이러한 인식을 할 수 있는 건 분명 작가 톨스토이의 힘이다. 잔잔하고도 애잔하게, 때론 유머러스하면서도 강렬한 이 소설의 흐름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2권이 기대된다.


[“당신은 정말로 모르십니까내게는 당신이 삶의 전부라는 걸난 평온이란 걸 모릅니다그래서 당신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나의 모든 것사랑...., 그렇습니다난 당신과 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내게는 당신과 내가 하나입니다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든 당신에게든 평온 따윈 있을 것 같지 않군요내 눈에는 정말과 불행아니면 행복그것도 커다란 행복의 가능성만 보일 뿐입니다그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요?.“ -p.305]

 

 


독서 동아리에서 항상 고민되는 건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는 것이다. 동아리 멤버들과 2026년에 읽어야 할 책을 정하다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로 했다. 1년에 한 번은 굵직한 고전을 읽고자 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재독이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읽고 싶었던 책이라 반가웠다. 마침 안나 카레니나 뮤지컬이 상연된다는 소식에 본격적으로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뮤지컬을 먼저 관람하기로 하고 얼리버드로 예매했다. 안나 역에 세 배우가 더블캐스팅 되었지만 아무래도 옥주현 배우가 출연하는 회차를 관람하고 싶었다.

 

예매할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안 사실은 총 38회 공연 중 출연 횟수가 옥주현은 23~25, 나머지 두 배우는 8회와 7회에 불과한 사실이었다.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하기 위해 똑같이 연습할 건데도 출연 횟수가 이렇게 차이가 나면 나머지 배우는 정말 허탈할 것 같았다. 옥주현의 욕심에 실망했지만 이왕 예매를 했으니 이번에만 보고 다음에는 옥주현은 패스하기로 했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방대한 내용의 작품을 뮤지컬에 다 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안나, 브론스키, 카레닌 VS 키티, 레빈의 두 관계만을 집중해 보여주었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계속 변화시켜 보여주는 무대 연출도 괜찮았고, 끊임없이 변화되는 앙상블의 출연도 좋았다. 계속 어두운 분위기로 이어지는 뮤지컬을 보면서 안나는 불행해지더라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느꼈다.

 

옥주현 배우의 노래와 연기는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안나 카레니나에 걸맞는 카리스마도 보이지 않았다. 뮤지컬의 넘버는 거의 같은 분위기였다. 이 넘버를 살리기 위해서는 노래 실력이 좋아야한다. 옥배우의 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상당히 지루했다. 뮤지컬 말미에 패티 역의 한경미 소프라노가 나와 아리아를 부른다. 한경미 배우가 노래를 너무 잘 불러 옥주현 배우가 너무 묻혀버렸다. 많이 아쉬웠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은 뮤지컬을 상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 배우들의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국립 뮤지컬 전용극장이 새롭게 건설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기이름 2026-03-13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본적은 없는데 읽어봐야겠네요

페넬로페 2026-03-14 00:27   좋아요 0 | URL
네, 좋은 독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곡 2026-03-14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옥주현 안나 카레니나 생생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6-03-14 19:19   좋아요 1 | URL
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아무 의심 없이 이 소설의 제목인 비행운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꼬리 모양으로 생성되는 구름이라는 뜻의 飛行雲으로 받아들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볼 때, 또는 더 높아서 비행기는 보이지 않고 비행운만 보일 때 드는 감정은 언제나 한결같다. 아련함과 왠지 모를 슬픔, 막막함과 동경.다 늙어버린 지금도 그 모습만 보면 어릴 때 느꼈던 것과 똑같다. 살풋한 희망도 섞인 그 눈부심은 결국 어지러움만 남긴 채 사라지지만 여운은 길었다.

 

김애란 작가는 이 책 어디에도 제목에 대한 한자어를 남겨두지 않았다. ‘비행운이란 단어는 <하루의 축>에서 인천공항 청소부인 기옥 씨가 이륙한 비행기가 남긴 비행운을 안도의 긴 한숨 자국(p.176)’으로 표현하는 문장에만 한 번 나올 뿐이다. 나머지는 다 이미지와 상징으로 숨겨져 표현된다.

 

작가는 모질게 작정한 듯 여기에 수록된 8개의 단편에 불행을 심어 놓았다. 소설이 아닌 르포를 읽고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자세하고도 집요하게 어떤 이들의 쫓겨남과 비루함, 막막함을 드러낸다. 그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사람 사는 게 이래도 되는 건가 싶게 우울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의미로 제목인 비행운은 불운이나 고달픈 현실을 뜻하는 非幸運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飛行雲非幸運은 뜻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통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동경과 희망은 모두에게 성취될 수 없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지독하며, 거기에 자본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불운한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간 비행기가 남긴 흔적만 볼 수 있도록 남겨졌다.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좋은 이웃><빗방울처럼>의 소재와 비슷한, 이 책의 <벌레들><물속 골리앗>은 집과 관련된 것이다. 인간에게 먹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집이 부의 상징이자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 것은 고대에서부터 있어온 일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다만 월급 받아 아껴 성실히 저축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무서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경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을 작가는 가감 없이 서술한다.

 

나머지 단편 역시 다양한 소재의 내용으로 구성되었지만, 모두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많이 바라지 않고 그저 의식주의 기본만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개인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좌절하고 배반한다. 어쩔 수 없어서, 잘못된 선택으로, 그저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김애란은 그 잘못된 행위를, 변명으로 읽힐 수 있는 것들을, 쉽게 나쁜 것이라 단정하지 못하게 한다. 다시, 더 깊이 생각해 그들을 수긍하게 만든다. <하루의 축>에서 기옥 씨는 아들인 영웅이 범죄자가 되고 한 가족의 단란이 이렇게도 시시하게 망가지는 것이 어찌 이리 쉽냐고 반문한다. “엄마, 사식 좀.”이라는 영웅의 편지에 무너지지만, 그 사식을 위해 저녁 근무를 신청하는 기옥 씨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가 김애란의 글은 꼭 필요하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물속 골리앗이었다.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 내용의 흐름이 완벽히 들어맞았고 그 절절한 문장에 전율이 일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 거기에 고립된 소년과 그의 어머니, 타워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다 죽은 소년의 아버지, 끝내 죽어버린 어머니를 녹색 테이프로 칭칭 감던 모습, 모든 것이 물에 잠긴 곳에서 거친 물살에 그만 놓쳐 버린 어머니의 시체, 물속에서 골리앗처럼 서 있던 타워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 발견한 사이다와 라면 한 봉지. 구조를 바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소년.그 모든 것이 너무 슬펐고 아름다웠다. 여기에 온갖 의미를 다 갖다 붙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김애란 작가의 문장만으로 모든 것이 느껴진다.

 

[주위는 조금씩 밝아졌다. 놀랍게도 비가 거의 멎은 듯했다. 이러다 다시 내릴지, 완전히 개일지 알 수 없었다. 이 마을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에 뜬 노란 달을 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반달이었다. 비록 흐릿하긴 했지만 그걸 보니 엄마, 나무뿌리에 안겨 떠내려간 엄마 생각이 났다. 녹색 테이프에 감긴 얼굴로 오랫동안 내 쪽을 바라보던 모습도. 어머니는 지금쯤 어디 계실까. 어디쯤 가셨을까. 부디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는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면 좋을 텐데.그러곤 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조그맣게 중얼댔다. “누군가 올 거야.” 칼바람이 불자 골리앗크레인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p.126]


비행운을 읽으며 영화 <만약에 우리>를 봤다. 소설과 영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서른>에서 만난 힘겹게 사는 청년들이 영화에 있었다. 정원(문가영)과 은호(구교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가난하다. 가난한 사람이나 연인에게 들이닥치는 여러 악재가 이들에게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이나 부족한 돈이 그들을 헤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그저 변명일 뿐이다. 사실 그들이 헤어진 건 마음 때문이다. 특히 힘들어진 은호의 뒤틀림은 결국 정원을 떠나가게 한다.

 

정원과 은호는 헤어진 후 각자 자신이 원했던 길로 잘 간다. 그렇게 잘 가면서 왜 같이 있을 땐 안 되었던 걸까? 먼 훗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정원과 은호는 만약 그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헤어지지 않았을지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어 소용없지만,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우리 모두가 많이 하는 질문이다. 만약에 그때, 정원과 은호, 비행운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지금의 인생이 좀 더 나아졌을까? 힘들어도 마음만은 단단히 잡아 흔들리지 않은 너와 내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내 집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은호야.

-정원

 


작년에 김애란 작가의 두 소설과 커피, ‘안녕이라 그랬어표지의 북커버를 서재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 이제야 보내주신 책을 다 읽었다. 비슷한 시기에 투병 중이셨던 아버지와 엄마를 여윈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녀와 나의 애도가 너무 차이가 났다. 난 담담했지만 그녀는 장례 후 일 년이 지난 후에도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 애틋하고 따뜻해 난 엄마에게 미안했다. 마음이 점점 굳어지고 냉정해지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비행운을 읽으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친구도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친구가 아니었으면 아마 이 소설을 영원히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좋은 책을 보내준 친구가 고맙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03-08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08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6-03-09 0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소설집의 제목은 수록작들 중에 표제작으로 삼을만한 단편의 제목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죠. 가끔 작가와 출판사가 표제작으로 생각하는 작품이 달라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책 제목 [비행운]은 수록작들 제목이 아닌가봐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군요.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안 봤지만 이 책과 영화 [만약에 우리]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씀에 저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 저도 이 책과 이 영화를 보고 읽어야겠어요.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6-03-09 07:56   좋아요 0 | URL
<비행운>이라는 제목은 이 책의 단편들 내용을 고려해 작가가 따로 정한 것 같아요.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단편들의 느낌을 잘 살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좋았어요.
특히 여자 주인공인 정원 캐릭터가 인상에 많이 남았습니다. 제에게 이제 밥벌이를 해야 할 딸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청년들의 고달픔이 예사로 보이지 않아요.

2026-03-09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09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6-03-10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아다고 하신 <물속의 골리앗>기억나요. 저는 이 단편집이 아닌 젊은작가수상 대상으로 읽었어요. 영화 <만약에 우리>는 평이 좋던데 보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6-03-10 11:38   좋아요 0 | URL
<물속 골리앗>은 충분히 대상을 받을만 한 작품인 것 같아요. 너무 좋았어요.
영화는 내용이 사실 뻔한데 문가영, 구교환배우의 연기가 좋아 괜찮았어요. 특히 여자 주인공 정원의 역할이 좋아 영화를 살리더라고요.
 
니카라과 산 살바도르 카투라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월에 맞는 바람은 왠지 한겨울보다 차갑게 느껴진다. 그래서 따뜻한 커피가 아직 더 좋다. 신맛과 기교가 별로 없는, 맛이 정직한 이 남미 커피에 겨울에 대한 지겨운 마음과 봄이 제발 길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넣는다.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라떼로 마셔도 좋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