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영국에서 출생한 데미언 허스트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데미언도 성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곳에서 미래에 자신의 주요 작품 주제가 될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앨러튼 그레인지 스쿨과 리즈 예술 대학을 거쳐 런던의 골드 스미스 대학에 진학해 그림을 배운다. 1970년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 데미언과 그의 동료들은 런던 항만 구역의 창고에서 <프리즈>라는 전시를 연다. 자신들의 힘으로만 전시를 기획해야 했지만, 이 전시를 계기로 데미언은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큐레이터의 자질을 배웠고, 젊은 영국 예술가 그룹인 'yBa'를 탄생시킨다.

 

데미언 허스트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 속에서만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적극적으로 큐레이팅의 전 과정에 참여한다. ‘공간, 사물 및 전시회 자체를 매체로 사용하여 자신의 아이디어와 관심사를 시각과 예술적 실천 의지에 맞춰 큐레이팅(p.35)'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컬렉터인 찰스 사치는 데미언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 그를 후원한다. 남다르고 기발하며 파격적인 데미언의 작품은 사회적 관심과 함께 상대적으로 많은 비판도 받는다.

 

어렸을 때부터 데미언은 돌멩이나 광물, 책 등을 수집했다. 머더미(murderme-데미언의 수집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 컬렉션으로 포름알데히드 동물, 곤충 캐비닛과 같은 작품으로 표현했다.

 

[데미언의 수집품 머더미는 그의 주된 관심사였던 과학과 예술, 자연사, 죽음과 그 죽음을 이해하려는, 또는 그것을 피하려는 인간의 염원을 수집하고 정리한 행위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의 수집벽은 불멸의 숭고함을 추구한 인간의 욕망과 절대로 죽음을 이길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얘기하고자 한 생각을 대변한다. 이런 일관적 태도가 머더미 컬렉션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데미언의 삶의 지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p.47~48]

 

데미언은 나비와 곤충, 해골과 동물 등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이를 통해 삶에서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자연의 역사에 대한 시각으로 조명하는 데 전념해 왔음을(p.52)' 보여준다. 데미언 작품의 특이성은 그가 창립한 회사인 사이언스를 통해 조직적인 차원에서 창작을 하는 것이다. 체계적 시스템이 움직이는 곳에서 예술과 돈이라는 두 개의 목표에 가치를 둔다. 약국 레스토랑 운영도 하고 비지니스 매니저를 고용하여 그의 작품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이런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지만 예술 창작에 돈이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간과하기 어렵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많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오랫동안 의지한 것이 종교였다면 현대의 인간에게는 과학이 신앙을 대체한다는 사실이 그의 수많은 작품 속에 들어 있다. 이런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데미언은 해골, 시신 머리, 약병과 각종 수술 도구, 소머리, 파리, 상어와 소를 포름알데히드에 담는 것, 박제된 나비 등을 이용한다. 그런 오브제를 통해 죽음을 직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죽음은 외면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삶의 일부라는 사실과 생명이 들어있는 육신은 죽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약장작업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의학과 과학도 비판한다. 진열장 속의 수많은 약병에서 죽음을 멀리하고 생명 연장을 실현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신을 섬기면서도 약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태도(p.75)’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약은 약 자체로의 효능도 있지만, 형태와 포장에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데미언의 스팟 페인팅은 제약회사가 약을 제조하듯, 동그라미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약을 맹신하며 죽음을 멀리하는 인간의 생각을 풍자하고 있다. 또한 약과 포장 용기의 세련됨과 심미적인 것들이 사람을 기분좋게 해 그것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스핀 페인팅‘, ‘팩트 페인팅’, ‘다이아몬드 해골 작업을 통해서도 계속적으로 죽음, ,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다.

 

 

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는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이 집필한 책이다. 데미언 허스트의 연대기적 삶과 그에 따른 작품 세계를 설명했고, 작가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데미언 허스트에 전시에 맞춰 먼저 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 실려 있는 작품이 이번에 전시된 작품에 맞춰 잘 설명되어 있다. 마로니에 북스의 여러 화가에 대한 책은 보통 번역된 것이었는데 이번엔 한국인이 집필한 책이어서 반가웠다. 한국어로 쓰여진 책이라 읽기에 어렵지는 않았지만 김성희 관장의 문장은 많이 아쉬웠다. 또한 이 책은 화가에 대한 객관성이 부족했다. 화가의 예술론과 작품에 대한 설명만 있다. 데미언 허스트가 굉장히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예술가라는 언급은 그 어디에도 없다. 화가의 이름을 계속 데미언으로 표기하다 마지막 작가 소개 페이지에 데미안‘으로 표시되었다. 데미언이나 데미안이나 그 어떤 발음도 가능하다는 뜻인지?

 

[데미안 허스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설치미술, 조각, 회화, 드로잉을 통해 현대사회가 의식적으로 외면하거나 놓치면서 만들어낸 고정관념/신념 체계를 고찰하며, 미술과 과학, 종교, 그리고 대중 문화의 전통적인 경계에 도전해 왔다. 그는 특히 죽음속에 있는 강렬한 생명의 아름다움과 그 일시성의 불가피한 부패 등 삶의 이면에 담긴 숭고한 관념에 주목하며, 이를 관객 개개인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물과 물질의 기발한 조합으로 표현한다. -p.222]


-<미다스와 무한>, 나비, 큐빅, p.151


-<신만이 아신다>, 유리, , 포름알데히드 용액, p.155


-<신의 사랑을 위하여>와 함께 한 작가, p.18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되는 <데이미언 허스트전>을 보러가기 위해 작가와 작품에 대해 먼저 알고 싶었다. (이번 전시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데미언 허스트를 데이미언 허스트로 표기했다.)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책에 비해 다른 매체에서는 이 작가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너무 상업적이라는 것과 그것을 위한 작가의 비도덕적인 사건도 있었다. 특히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인골이나 곤충의 박제,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구는 동물을 이용하는 것에 많은 비판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관람료를 8000원으로 저렴하게 책정했고, 오디오 가이드도 무료로 제공해 다른 미술관에 비해 상업적인 것을 지양하는 인상을 주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비용이 충당되었는지, 아니면 부족분을 국민의 세금으로 상쇄시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데미언 허스트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너무 돈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양가감정으로 전시회 관람을 시작했지만, 완전히 그의 작품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데미언의 창의력에 놀랐고, 그가 추구하는 예술적 의미에 공감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아이러니를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주제가 작가 자신에게 머물지 않고 사회적 문제와 철학으로 확대되는 것에 생각할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작가의 메시지가 잘 이해되는 것이 좋았다. 지난겨울 관람한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은 너무 어려워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데미언 허스트는 현대 미술의 판도를 뒤바꿔 놓았지만,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이번 전시의 여러 섹션 중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는 그의 20대 시절에 제작한 작품을 모아 놓았다. 회화의 소재가 너무 많은 것에 길을 잃은 허스트는 콜라주 시리즈 돌파구를 찾는다. ‘스팟 페인팅은 한 화면 안에 같은 색을 반복하지 않으며 점 사이에 똑같은 간격을 유지한다. 여기에서 나중에 알약 시리즈로 확대해 나간다. ‘스핀 페인팅1994년부터 연작 시리즈로 시작했으며 모터를 이용해 캔버스를 회전시키며 그 위에 물감을 뿌린다. 스팟 페인팅이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면 스핀 페인팅은 우연성과 즉흥성을 표현한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이 유리 상자는 20톤이 넘고 길이 4m가 넘는 상어가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겨있다.


-’천년

이 상자 앞에 서면 뭔가 썩어가는 냄새가 난다. 두 개로 나뉘어진 부분 중 한 쪽은 죽은 소의 머리와 피가 있고, 다른 쪽은 구더기들이 파리로 부화한다. 두 쪽의 가운데에 나 있는 구멍으로 부화한 파리는 죽은 소의 머리로 갈 수 있다. 거기에서 영양을 섭취한 파리는 빛에 이끌려 위쪽의 보라색 전기 살충기로 가 죽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우리는 이 상자를 통해 보게 된다. 애써 잊으려고 하는 죽음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죽음으로 인해 또 누군가는 생명을 얻으며 그 또한 허망한 죽음을 향해 질주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는 거대한 유리 상자 안에 내용물을 넣어 관객을 철저히 관찰자적인 입장에서만 작품을 감상하게 한다. 여기서는 주로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준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 줄 알지만 그 실체에 대해 경험하지 못한 채 마치 그것이 없는 듯 살아간다.




-‘신의 사랑을 위해

18세기에 실제 살았던 사람의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붙였다. 치아는 원래의 것을 살리기로 해 전문적인 세척을 거쳐 다시 이식했다.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죽음을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결국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고 죽으면 누구나 해골의 상태로 남을 뿐이다.



-사람과 동물의 겉모습은 매끄럽고 아름답지만 피부를 한 꺼풀만 벗기면, 뼈와 혈관, 근육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조직체에 불과하다. 하나의 작품에 안과 밖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역시 죽음을 상기시킨다.


-‘벚꽃 시리즈

데미언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벚꽃


<침묵의 사치> 섹션은 이전에는 종교와 신을 숭배한 인간이 현대에는 의학과 돈을 맹신한다는 의미의 작품들이 있다. 종교와 과학이 만난 인간의 욕망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은 오디오 가이드중 일부분을 인용했다.


전시회장을 나와 뜨끈한 수제비와 기름진 빈대떡을 먹었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과 그가 말해주는 죽음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쨌든 죽을 수밖에 없는 내가 왜 이리 온갖 감정과 고통을 가지고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지 많이 허망했다. 그 헛헛함을 일단 따뜻한 국물과 기름으로 채워야 할 것 같았다. 돌아서면 언제 죽음을 생각했냐는 듯 다시 욕망 가득한 삶을 살겠지만, 그럼에도 전시회장에서 잠시 겸손했고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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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 2026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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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두 여성이 나누는 우정과 관계의 한계를 말하고자 한 소설의 의도는 이해하지만…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 나라의 음식과 타이완 서술이 너무 재미없고 지루했다. 치즈코와 첸허의 밀당(퀴어적)도 지치게 한다. 주제를 위해 하나의 소재로 이루어진 소설은 매력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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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27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람들이 많이 읽어서 좀 궁금했는데... 그냥 패스하기로 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6-05-27 16:56   좋아요 0 | URL
너무 음식과 먹는 얘기가 많아요
먹방 보는 것 같아 질려요 ㅠㅠ

그레이스 2026-05-31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만 재미없었던 게 아니군요.
저는 읽다가 중단!^^

페넬로페 2026-05-31 23:08   좋아요 1 | URL
본래 먹방을 싫어하거든요.
읽다가 이리 피곤한 책은~~ ㅠㅠ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배우 장미란(한선화 분)은 황동만(구교환 분)의 집에 놀러간다. 술을 마시다 미란은 동만의 작업실에 가본다. 원룸 같은 좁은 집의 베란다 한 구석에 동만은 글을 쓰는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다.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추운 곳이다. 미란은 그곳 책장에서 동만의 형인 황진만(박해준 분)의 시집 <어딘가 묻어 있는 잘못>을 꺼내 읽는다. 무심코 읽던 미란은 눈물을 흘린다. 진만의 시에 위로받은 미란은 위스키(분명 비싼 술일 것 같다)를 사서 진만을 찾아간다. 매번 소주만 마시는 진만에게 미란의 마음이 주는 감사였다.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한 때 윤후명 작가의 소설을 거의 다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알아도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소설이 쉽지는 않았다. 작가가 영면하신지 1주년이 되었다는 잠자냥 님의 글을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행간과 은유와 상징을 애써 찾아보지 않고 그저 소리내서 읽었다. 그런 것을 알려고 하면 시를 어려워하는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할 것 같았다. 그냥 미란처럼 읽었다. 그러자 나도 미란이 되었다. 글이 이미지가 되고 나는 작가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강릉과 부산, 부암동, 서촌, 고흐와 테오가 잠든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무덤이 생각났고, 하얼빈, 차마고도, 둔황,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호, 파미르고원, 황하를 상상했다. 시에 윤후명 삶의 궤적이 있었다. 시라는 형식을 빌려와 압축만 시켰지 그냥 나 여기 있소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었다. 시는 그저 짧을 글일 뿐이지, 우주처럼 크고 웅장하다.

 

강릉에서 태어난 윤후명은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많은 양의 시와 소설을 집필했고, 그림도 그렸다. 작가가 화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윤후명 시의 주된 키워드는 이다. 더 정확하게는 떠남과 귀환이 한 몸이 되는 길, 멀리 갈수록 자기 자신의 기원과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p.107)'라는 문학평론가 허희의 해설처럼 이 시집에는 여러 장소가 나온다.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새아버지, 친구, 스승, 다른 작가가 지나온 장소이다.

 

1998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원도의 힘>을 보고 나의 지인은 우리는 왜 강원도란 말만 들어도 주눅 들며, 지고 마는 걸까?’라며 자조 섞인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한참 웃었고 수긍했다. 지금도 난 강원도의 힘을 믿으며 그곳을 좋아한다. 언제 가도 변함없는 산과 바다가 좋다. 윤후명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이다. 이 시집에는 강릉과 연어가 거슬러 올라오는 남대천에 관한 것이 많다. 그에게 강원도는 전쟁, 가난을 거쳐 살아 온, 어머니가 계셨던 삶의 현장이다. 그곳의 모든 것이 작가와 연결된다.

 

나의 시어머니는 투 머치 토커에 해당되는 분이시다. 결혼하고 어머니를 뵐 때마다 어머니는 나에게 쉴새 없이 당신이 살아 온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야기를 들어 줄 새 대상이 생겨 좋으셨나 보다. 어머니의 말씀은 재미있었고, 난 항상 감탄하며 넉넉한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시댁 식구들은 강원도에 산 적이 있다. 어머니는 그 시절의 얘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한 번은 장독을 사러 기차를 타고 장에 다녀왔는데, 집에 돌아와 장독을 보니 거기에 미세한 구멍이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어머니가 느꼈을 속상함과 허무함이 시처럼 아득하게 보였다.

 

어머니는 이제 거동도 잘 못하시고, 귀가 안 들려 내가 가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는다. 나이 든 시인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고, 윤동주, 미당, 목월, 이상과 구보, 동리, 김춘수, 김민기, 박완서, 이미륵을 생각한다. 팔순에 이르렀지만, 아득하고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어디론가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시인과 내 엄마는 떠나고 아직 시어머니는 살아 계신다.


윤후명의 시를 읽으려고 그랬는지 마침 지난주에 부암동에 다녀왔다. ‘오징어 배를 탄 랭보에서 시인은 시를 이해하려고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p.49)'고 했다.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이 시집이 잘 읽히고 이해되어 시인에게 고맙다. 두둥실 두리둥실을 읽고 나도 오랜만에 사공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다.

 

[풀밭 길

 

풀꽃 핀 풀밭 길로 가고 싶다

노란 꽃, 파란 꽃, 붉은 꽃 흐리게나마 피어

가끔 마주치는 길이기를 바란다

내 발길이 그 옆에 놓여

신발을 벗어놓을 길이기를 바란다

그동안 멀고 먼 길을 걸어왔건만

이건 내 길이라고 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험한 길이 모두 이건 내 길이었던가

신발을 벗어놓고 그 길로 들어가고 싶었던 길

비밀의 문이 없어도

아무도 몰래 들어가 언제까지 있어도 좋을

풀밭 길로 가고 싶다

거기서 어디론가 사라져도 좋을

풀밭 길로 가고 싶다

이건 내 길로 어느덧 가고 싶다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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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24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루가 대장간의 모루더군요.
책으로 삶을 단련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서관이더군요.

페넬로페 2026-05-25 01:21   좋아요 0 | URL
시에
‘모루‘가 대장간에서 흔히 본 받침쇠라고 씌여 있어요.
제가 인용은 안했는데
이 시의 제목이 표제작이 된 건 이 시 속에 시인 삶을 관통하는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G1 게뎁 첼첼레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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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책 읽을 때, 비오고 눈 올 때, 숲에서 나무를, 바다에서 파도를, 강에서 윤슬을 보며 마시는 것이다. 커피는…머리 아플 때, 피곤할 때, 속상할 때 들이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어떤 것도 갖다 붙이면 안 된다. 그저 커피 열매를 따는 사람과 맛있게 만드는 사람의 노고에 감사만 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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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22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알라딘 새 원두 출시 늘 기다려지죠!?
이것도 왠지 맛날 거 같아요. ㅎ

페넬로페 2026-05-22 11:43   좋아요 1 | URL
에티오피아 커피는 언제나 환영이예요. 맛있을 것 같아요.

coolcat329 2026-05-22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얼마 전 구입한 원두 이제 마시기 시작했는데 또 새로 나왔군요! 거기다가 에티오피아라니...ㅠㅠ

페넬로페 2026-05-22 13:34   좋아요 0 | URL
새로운 커피 따라가기도 힘들죠? ㅎㅎ
커피는 언제나 좋아요.

잠자냥 2026-05-22 14:09   좋아요 3 | URL
심지어 500g 사신 쿨캣님....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6-05-22 14:58   좋아요 2 | URL
그것도 잠자냥님 리뷰보고 혹해서...😚

페넬로페 2026-05-22 15:02   좋아요 1 | URL
저도 기억합니다.
쿨캣님, 커피 끊는다는 결심을요. ㅎㅎ
과하지 않게 맛있게 마십시다.

coolcat329 2026-05-23 08:18   좋아요 0 | URL
앗 그러고 보니 전전 커피는 페넬로페님 리뷰보고 또 구입을 ㅠㅠ

독서괭 2026-05-22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게뎁 첼첼레… 왠지 이름이 이상할수록 맛있을 것 같아요 ㅋㅋㅋ

페넬로페 2026-05-22 15:04   좋아요 2 | URL
이 이름 뜻이 뭘까요?
원산지 이름 같기도 해요.

잠자냥 2026-05-22 16:12   좋아요 3 | URL
게뎁 첼첼레(Gedeb Chelchele)는 예가체프 남동쪽 게데오 존의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스페셜티 커피 생산지랍니다! 등급: G1은 결점두가 거의 없는 최상위 등급이라는데요, 쿨캣님 빨랑 마셔보고 싶어서 발동동 구르실 듯 ㅋㅋㅋㅋㅋㅋㅋㅋ
 
악령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59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박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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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소설로 기획된 이 작품에 풍자가 가득하다. 허무, 관념, 신이 이중적 구조로 얽히며 폭력과 죽음, 웃음이 뒤섞인다. 악령 들린 자들은 돼지떼에 실려 타인을 파멸시키고 스스로 사라진다. 독보적인 도선생님의 필력이 대단했지만, 그가 자주 인용하는 용서와 참회는 이곳에서만은 많이 과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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