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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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많은 소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나뉘어 출간된다. 분절된 책은 가벼워 읽고 휴대하기 편하지만, 1권을 읽고 바로 2권을 시작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가뜩이나 벽돌책은 앞의 내용과 뒤를 연결하기 쉽지 않은데, 읽기를 잠깐만 쉬어버려도 소설의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1권을 읽고 거의 한 달 반 만에 2권을 읽었지만 괜찮았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 잘 연결되었고, 2권만을 독자적으로 떼어놓아도 완성도가 높았다.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대작인 이유는 소설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형식이나 내용이 느슨해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독이라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읽을수록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나싶게 새로운 것이 많았다.

 

사랑을 느끼는 것은 잠깐이다. 사랑은 대상을 향하지만, 어떤 사람의 숨겨진 내면의 모습도 들어있다. 안나에게 폭풍처럼 들이닥친 사랑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존재를 자각하게 한다. 안나에게 남편 카레닌은 아들 세료자의 아버지라는 역할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이상 다시 카레닌에게 돌아갈 수는 없다. 안나는 거짓된 삶을 계속 살수 없었다. 찰나적으로 시작된 사랑은 안나를 카레닌의 둥지에서 벗어나 브론스키의 둥지로 옮겨가게 만든다. 그것은 여성으로서, 시대적 한계로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브론스키 역시 남자라는 사실이 안나를 불행하게 할 것이다. 안나가 여자이기에 그녀가 추구하는 삶은 자립적이지 못하다.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톨스토이의 삶이 투영된 레빈이라고도 한다. 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농업 혁명을 시도하지만 자주 벽에 부딪힌다. 농노 해방이후, 농민은 아직 농노와 노동자 사이에 어정쩡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들을 노동자나 민중으로 인식해 앞서나가는 레빈에 비해 농부들은 전근대적인 생각과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민중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만사태평과 방종과 만취와 거짓말(p.12)’에 레빈은 좌절하기도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럼에도 레빈은 농부의 생명력을 사랑하고, 그들을 향한 이해로 다가간다. ‘개인의 이해와 공공의 이해 사이에 놓인 필연적인 연관을 찾기 위해(p.30)' 분투한다.

 

레빈과 농부들이 함께 풀베기를 하는 모습은 압도적이다. 이론적인 레빈에게 낫을 휘두르는 솜씨와 더위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지치지 않고 화살처럼 똑바르게 풀을 베어 나가는 농부의 관록에서 레빈은 경외심과 노동의 참모습을 본다. 그들과 점심을 먹고 크바스를 마시며 행복을 느끼고, 그들과 가까워진다. 소설에서 이 풀베기의 장면은 시각적이고도 웅장하다. 레빈이 자신이 아닌, 농부의 시선에서 개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안나에게 직접 임신 사실과 결별 통보를 들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의 심리 변화도 재미있고 현실적이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던 자신의 삶에 균열을 가져 온 안나에게 카레닌은 그녀가 잘못했다고 단정하며 안나를 벌하기로 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행복한 생활을 용납하지 않고 사교계에 알려지기도 원치 않는다. 그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안나를 사랑해서가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다. 안나가 그것을 거부하자 카레닌은 안나에게 치욕과 고통을 주기 위해 이혼을 원한다. 조건은 아들의 양육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안나가 브론스키의 아이를 낳다가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가자 카레닌은 그녀에 대해 연민을 갖지만, 안나가 회복되자 다시 안나를 고립시킨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테레자와 토마시의 반려견에게 카레닌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여기에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밀란 쿤데라가 카레닌을 싫어해서 개에게 그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말도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사랑의 시작은 순간적이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데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결혼이라는 법적인 제도뿐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사교계의 시선, 자녀와 경제적 능력 등 여러 요소가 안정적으로 결합될 때, 사랑은 유지된다. 불륜으로 시작된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위태롭다. 공교롭게도 브론스키와 카레닌의 지위 역시 위협받는다. 어느 것 하나 그들에게 유리한 것이 없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확고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불리해지자 안나의 마음은 흔들리고 불안해진다


톨스토이는 카레닌의 심리 변화뿐만 아니라 안나의 마음과 생각의 변화도 탁월하게 묘사한다. 안나가 받은 모욕과 수치는 그녀를 고립시킨다. 그로 인해 야기된 불안은 안나를 피폐하게 만들어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자신의 의도와 선택에 의해 안나는 점점 파멸되어 가지만, 그녀가 여성이었기에 짊어져야 할 무게와 편견, 비난은 분명 공평하지 않다. 만약 카레닌이 불륜을 저질렀다면 안나와 같은 무게를 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안나의 오빠인 스테판 오블론스키의 경우를 봐도 이것은 분명하다.

 

작가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도 그랬지만,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죽음에 대해 명쾌하게 서술한다. 레빈의 형, 니콜라이 레빈의 죽음을 통해 톨스토이는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여러 태도에 대해 묘사한다. 니콜라이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다. 그런 니콜라이의 죽음 앞에 레빈은 쉽게 다가가지 못하지만, 키티와 마리야 니콜라예브나는 침착하고도 지혜롭게 대처한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현상을 의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환자도 힘들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건강한 사람의 견딤과 상실감도 힘들 수밖에 없다. 레빈은 형과 키티를 통해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p.563).‘ 레빈은 형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사랑과 삶에 강하게 이끌린다.

 

안나는 카레닌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아들 세료자를 보러 카레닌의 집으로 간다. 안나의 사랑으로 카레닌은 세료자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고 다그친다. 안나의 사랑을 응원하지만, 앞으로 세료자에게 닥칠 상황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안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도 혐오스럽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안나는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인 카를로타 파티의 공연을 보러가고 싶었지만 브론스키는 반대한다. 혼자 그곳을 간 안나는 모든 사교계 사람들이 그녀를 무시하고 혐오한다는 것을 느낀다.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브론스키 역시 안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했을 때의 안나의 똑같은 행동과 표정에 이제는 분노와 증오를 느낀다. 그의 마음에 짜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인 안나와 레빈은 성장 중이다. 안나는 자신에게 돌아가고 있고, 레빈은 이론과 사상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삶과 사람을 사랑한다. 다만 그들의 성장이 파멸과 결실로 끝맺을 것 같다는 나쁜 예감이 든다. 안나에게 성장의 다른 말은 불행일지도 모른다. 여자인 안나에게 그 시대는 불리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알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한 일을 후회하냐고요? 아뇨,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다시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할 거예요. 우리에게,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예요. 다른 것은 생각할 것도 없어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따로 지내고 서로 만나지도 않는 거죠? 왜 난 갈 수 없다는 거예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녀는 눈동자에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광채를 띠고 그를 쳐다보며 러시아어로 말했다.

"만약 당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요. 당신은 도대체 왜 날 바라보지 않는 거죠?"

-p.64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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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14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인물 묘사가 입체적이고 탁월했으면 개에게까지 이름 짓고 저주했을까요? ㅎㅎ
 













나에게 비극 읽기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애통함과 절절함, 다수의 죽음이 있어야 비로소 비극으로 인식된다. ‘아서 밀러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분명 비극이지만, 내가 읽은 고전에 비해 조금 단순하며 담백한 느낌이 들었다. 쉽게 읽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독파할 수 있었다.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감정들과 집착, 그것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멸되는 비극의 전통적 요소가 들어 있었고, 뉴욕 브루클린 노동자 집단의 삶을 통해 장소와 시대가 주는 한계도 잘 녹아 있었다.

 

극에서 비극으로 치닫는 이유는 다양하다. 운명과 예언, 탐욕과 질투, 야망과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 복수 등이다. 보통 이런 이유들과 많은 인물들이 얽혀 극은 절정으로 향한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난 다음에야 잘못된 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비극의 끝은 모두가 파멸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시작은 한 사람의 악마적 욕망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역시 주인공인 <에디 카본>의 성격적 결함이 결정적이다. 특히 여기엔 다른 고전 비극에서 볼 수 있는 조력자나 이간질을 하는 선동자가 전혀 없다. 철저히 에디 카본 스스로 모든 잘못을 하며 그의 심리 변화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를 고통에 빠뜨린다. 그래서인지 이 희곡은 고대 희랍 비극의 구성을 가져와 코러스 역할을 하는 변호사 <앨피에리>를 등장시킨다. 그는 독백으로 에디의 행동에 대해 설명하고 경고도 하며, 직접 찾아와 호소하는 에디에게 법적으로 해결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법은 결과론적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될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뉴욕 브루클린 항만 근처인 레드훅이라는, 부두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슬럼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써진 이 극은 한 인간이 갖는 감정의 변화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보호와 안전이라는 미명아래 덧씌워진 것은 실제로 질투와 집착의 촘촘한 그물이 되고 그것은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 아집으로 변형된다. 극도의 가난으로 미국으로 밀항한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 역시 약자에게 주어진 선택 없음을 대변한다. 이 모든 대립과 갈등은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막장을 보여준다. 그래서 코러스 앨피에리는 계속 중간을 강조한다.

 

[앨피에리 : 요즘 우리는 대개 중간쯤에서 타협을 하고 나는 그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거룩하며 나는 그(에디 카본)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그의 죽음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면서도 전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기억할 때 뭔가 삐뚤어지게 순수한 무언가가-순수한 선이 아니라 순수한 그가-생각난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진실을 온전하게 밝혔고 그래서 나는 모든 지각 있는 의뢰인들보다 그를 더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간쯤에서 타협하는 게 훨씬 낫고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종의경각심을 가지고 그를 애도합니다.

-p.158]

 

앨피에리가 말한 것처럼 에디 카본의 죽음은 정말 허망한가? 에디의 비극은 결국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질투로 일어난 일이다. 오셀로에게는 천하의 악인, 이야고가 있었지만, 에디는 온전히 자신만의 도덕적 결함으로 주위 사람들과 자신을 파괴한다. 어쩌면 자신에게만 순수한 이 남자의 죽음으로써의 결말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힘들어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을 때, 심지어 견딜 수 없는 수치와 모멸감을 느꼈을 때조차, 우리는 언제나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세상은 나에게 무수히 좌절을 주지만, 비극으로 가지 않는 길은 결국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작가 아서 밀러는 이 희곡에 서문을 첨가했다. 작가의 생각과 관점인 담긴 희곡이 연극으로 상연되었을 때, 그것은 작가의 의도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무대 장치, 배우가 말하는 방법과 액션의 디테일에 따라 극의 모습과 의미는 무수히 달라질 수 있다. 아서 밀러는 서문에서 그것을 인정한 듯하다.

 

[에디는 여전히 눈물의 대상이 되는 남자는 아니다. 이 극은 관객을 눈물바다에 빠뜨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우리의 행동과 연관시키고, 우리 자신을 고립된 심리적 개체로서뿐 아니라 우리의 동료나 과거와 연결된 존재로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p.11, 작가 서문 중에서.]


오랜만에 혼자 연극을 보고 왔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된 국립극단의 <그의 어머니(Mother of Him)>이다. 영국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의 희곡인데 국내에 아직 책으로 번역되어 있지는 않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처럼 이 극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이 기승전결의 성격을 뛴다면 그의 어머니는 사건의 결과를 먼저 말해주고 시작한다.

 

브렌다의 장남인 매튜(미성년자)는 하룻밤 사이 세 여자를 강간한다. 연극은 이 엄청난 사건 후, 가택연금 중인 매튜와 그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하는 엄마 브렌다, 동생 제이슨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집 앞에는 엄청난 취재진들이 몰려와있다. 매튜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건의 원인은 매튜와 브렌다가 아닌 기자들에 의해 파헤쳐진다.

 

그들은 점점 매튜보다 브렌다에게 초점을 맞춘다. 브렌다를 아는 모든 사람을 인터뷰해 과거에 그녀가 했던 말까지 가져와, 사건의 원인을 브렌다에게로 가져간다. 점점 지쳐가는 브렌다는 엄마로서 매튜를 지켜야하지만 실제 감정은 싸늘하게 식어간다. 또한 둘째 아들인 제이슨을 보호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키워내야 하기에 그를 구속하고 매튜와 연결되지 않게 한다. 차가워지고 상실감에 빠진 브렌다는 매튜를 변호사에게만 맡겨두지만, 결국 마지막에 용기를 내어 매튜와 함께 법정에 출석한다.

 

연극을 보는 내내 브렌다의 입장이 되었다. 답답했고, 벽이 느껴졌다. 도대체 세상은 왜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에게 온갖 부담을 주는지 잘 모르겠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성장시키지 않는가? 아이의 모든 것의 결과의 원인은 왜 항상 엄마인지.....만약 내가 매튜의 엄마였다면 난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룻밤에 세 여자를 강간한 매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에디 카본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원인을 분석해야하는지도 모른다. , 영화, 뉴스, 연극에서 파헤쳐지는 인간의 모순과 딜레마는 다양해 그것의 해석 역시 어렵다. 이런 이유로 비극은 한 없이 재생되고 우리는 힘들게 그 속에 들어가 또 다른 감정을 작동시킨다

비록 그것이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처럼 흐릿하고 주관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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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6-05-04 06: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달 한두 번 대학로에 가면, 보고 싶은 공연들을 많이 마주치게 돼요. 페넬로페님은 이미 알고 계실 수 있겠지만, 대학로에 희곡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가 있어요. 서점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 배우님이 있는데, 지난주 토요일에 남편 배우님이 나오는 공연을 보고 왔어요. 다음에 대학로에 공연 보러 오시면 <인스크립트> 방문해 보세요. 희곡 도서들이 많이 있어요. ^^

페넬로페 2026-05-04 08:55   좋아요 1 | URL
<인스크립트>
기억해 놓았다가
꼭 들러보겠습니다.

감은빛 2026-05-05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삶도 뜻하지 않게 마주치는 별 것도 아닌 작은 계기로 희극이 되기도 하고 비극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상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6-05-05 09:51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욕망과 집착을 조금만 줄이면 되는데 그게 또 잘 안되는 것이 인간이잖아요.

청아 2026-05-05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은 종종 연극을 보러 다녀요. 확실히 공연장에서 받는 에너지는 여타 장르와 다른 것 같아요.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읽어보고 싶네요. 역시 중용을 추구해야 하는 거죠? ㅎㅎ-집착에서 벗어나고자 늘 애?는 쓰는 청아가^^

페넬로페 2026-05-05 17:11   좋아요 2 | URL
중용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걸 행하기 어려워 여전히 책을 읽고 도를 닦는 중이예요. 돌아서면 까 먹으니 차에 기름 넣듯 계속 책을 읽어야 하는가 봐요 ㅎㅎ
 
불필요한 여자
라비 알라메딘 지음, 이다희 옮김 / 뮤진트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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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주식 얘기를 하는 불장의 시대에 난 아직도 문학을 읽고 있다. 여전히 책이 좋아서 그럴 것이다. 아니 관성으로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뭔가 다른 것을 할 엄두도 안 나고 사실 귀찮기도 하다. 세상을 등지고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외롭게 책을 읽고 있지만 라비 알라메딘불필요한 여자같이 책 속에 책이 많이 나오면 반갑기보다 좌절을 더 하게 된다. 여기에 들어있는 책 중 읽은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여태껏 읽은 것들을 이 책의 주인공인 알리야처럼 적시적소에 인용하며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느냐면, 그러지도 못한다. 외로운 섬은 작은 바람에도 사라지고 마는 작고 허술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는가 보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다고 말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어떻게 살면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궁금하다. 요즘 몸과 함께 마음도 늙어버린 느낌이 많이 들어서인지 불필요한 여자의 소설 속 여러 얘기 중, 알리야의 노년이 더 눈에 들어왔다. 72세의 알리야가 움직이는 공간에서 그녀가 느끼는 미세한 고통과 좌절이 이해되고 심지어 그 감각마저 내 몸에 전달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세상과 단절한 채 혼자 살아가는 알리야의 삶은 위태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지난 주, 3개월 동안 전주에서 근무하는 딸아이에게 다녀왔다. 밤늦게 도착해 피곤한 것 같아 식탁위에 있는 쏠라 c를 먹고 자겠다고 했다. 다른 비타민처럼 이 약도 물로 삼키면 될 줄 알았는데, 딸아이가 이건 씹어 먹는 거고 두 알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두 알을 씹어 먹고 물을 마시고 잤다. 다음 날, 간단한 요기를 하고 딸아이와 나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딸아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역시나 피곤할 수 있으니 비타민을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식탁 위의 쏠라 c 두 알을 한꺼번에 삼키고 물을 마셔버렸다. 알약 두 개가 목에 딱 걸리는 순간, 그제야 이 약은 씹어 먹는 것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목에 걸린 알약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계속 가슴을 치고 물을 마시며 넘어가기를 기다렸고, 그 사이 병원에 갈까도 생각했다. 5분쯤 사투(?)를 벌이니 알약은 서서히 목을 지나 식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목이 많이 아팠다.

 

이 겁나는 상황에서, 나는 내 몸만 걱정해야 하는데도 머리에서 계속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나를 내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자꾸 잊어먹고, 되풀이되는 황당한 일이 단순한 실수로 인정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럴까? 왜 이리 멍청한 사람이 되는 걸까?’라고 계속 푸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음만은 청춘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도 덩달아 초췌해지고 쪼그라들며 작아진다. 노년이란 자신을 명쾌하게 설득할 수 없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여자도 나의 경우와 비슷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알리야는 노안으로 설명서를 잘못 읽어 염색용 샴푸를 정량보다 10배나 더 많이 사용해 머리색이 그만 파란색으로 변해버렸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멀티태스킹에 약한 알리야는 72세의 혼자 사는 여성이다. 50년 동안 서점에서 근무했으며, 새해 첫 날에 새 책을 번역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37권의 책을 번역했다. 하지만 번역된 원고는 출간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 쌓아두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자신이 정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이혼당하고 난 뒤에 그녀는 서점, , , 음악만을 선택한 은둔의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은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그녀에게 평화로운 고립의 삶을 허용하지 않았던 적도 많았지만, 다행히 수차례 위기를 넘겨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알리야는 평생 문학과 함께 살아왔다. 바깥세상의 관습에 순종하지 않고 문학에 파묻혀 칩거하며 산다. 유일하게 한나와 교류하며 살았지만, 한나가 죽고 다시 혼자만의 삶을 이어간다. 문학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기에 그녀에게 모든 것은 문학으로 인용되고 표현된다. 알리야에게 책은 운명이다. 책은 그녀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며 세상과 단절해도 좋은 이유이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많이 든 그녀에게 고립은 위험하고도 힘들다. ‘이 나이가 되니 삶은 계속되는 패배의 인정이다. 노년과 패배는 끝까지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피를 나눈 형제이다(p.78~79)’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불필요한 여자라고 인정한다. ‘가까스로 작동하는몸으로 인해 힘들지만 그럼에도 읽는 사람인 알리야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언제나 그 정체성을 사랑한다.

 

이 책에는 알리야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혼란스러운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살아가는 것(최근에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또 레바논에 미사일을 날렸다), 알리야가 읽은 책과 음악에 관한 얘기도 많고, 여성과 우정이 엮어내는 슬픔도 있다. 특히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알리야의 현재의 모습과 생각이 다른 책의 문장으로 인용되며 유머러스하고도 애잔하게 표현된다. 책 속에 이렇게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 좋다. 생각이 많아지며, 내 삶을 여기에 대비시키기 좋기 때문이다. 레바논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 가지게 되었다.

 

알리야는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결코 녹록치 않았던 그녀의 삶 속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빼고, 나머지 모두는 알리야가 자신의 인생을 주도한다. 쉽지 않았을 알리야의 선택, 고집과 묵묵함이 멋있었다. 거기에 담겨있는 회한과 허무를 받아들이는 태도도 좋았다. 소설의 마지막에 웃기게도 와장장창 깨져버리는 알리야의 은둔 생활도 재미있었다. 이웃 여자들에게 발견된 숨겨진 번역 원고도 어떤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뭔가 많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알리야가 혼자가 아닌, 조금은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바랄 수조차 없다.

그와 별개로, 내 안에는 온 세상의 꿈이 다 있다.

-알바로데 캄포스, p.409]


벚꽃이 만발한 봄날에, 도라야키(밀가루, 달걀, 설탕을 섞은 반죽을 넣어 둥글납작하게 구워 두 쪽을 맞붙인 사이에 팥소를 넣은 화과자-위키백과) 가게에 한 할머니가 찾아온다. ‘아르바이트 구함이라는 쪽지를 보고 자신이 이 가게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76세의 요시이 도쿠에(키키 키린)’는 손에 상처가 많고 손가락이 불편하지만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가게의 점장인 센타로는 도쿠에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하며 자신이 만든 도라야키 하나를 도쿠에에게 준다.

 

도라야키 가게를 운영하지만 단것을 싫어하고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얼굴에 세상의 모든 비애를 짊어진 것 같은 사장 센타로는 사실 빚을 많이 져 이 가게에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다. 마치 지옥에 있는 사람처럼 그는 재미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나가고 있다. 이 가게에는 단골인 여중생 와카나가 자주 온다. 젊고 철없는 엄마와 함께 사는 와카나는 가난하기에 학원도 다니지 않고, 엄마에게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우울한 소녀이다. 그렇지만 와카나는 불만스러운 삶을 살기보다 센타로의 말벗이 되어주고, 보다 더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사는 학생이다.

 

며칠 후 다시 찾아온 도쿠에는 센타로에게 자신이 만든 단팥소를 먹게 한다. 그 맛에 반한 그는 도쿠에를 고용한다. 여태껏 업소용 팥을 사용했던 센타로는 도쿠에와 함께 이제 새벽 일찍부터 팥을 삶고 으깨고 설탕을 넣어 소를 만든다. 그들이 합작해 만든 도라야키는 너무 맛있어졌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 문 열기 전부터 손님들이 줄을 선다. 모처럼 센타로의 얼굴은 밝아졌고 웃게 된다. 그러나 벚꽃이 지고 파란 잎이 무성해진 어느 날 , 가게 주인이 와서 전하는 말은 충격적이다. 도쿠에는 한센병 환자라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소문이 퍼져 가게엔 손님이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도쿠에는 더 이상 가게에 오지 않는다.

 

다시 얼굴에 그늘이 지고 침울해진 센타로는 와카나의 제안으로 단풍이 든 가을에, 도쿠에를 찾아간다. 사실 소문은 와카나가 그녀의 엄마에게 얘기해서 나기 시작한 것이었고, 센타로는 도쿠에를 지켜주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와카나와 비슷한 나이에 병을 앓게 되어 한센병 격리 시설에 들어간 도쿠에는 그때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고 갇혀 살아야만 했다. 결혼하고 임신도 했지만 아이는 낳을 수 없었다. 평생 그곳에서 팥을 이용해 과자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

 

가게 주인이 자신의 조카와 같이 일하라고 해 더 곤란해진 센타로는 와카나와 다시 도쿠에를 찾아가지만 이미 그녀는 저 세상으로 간 상태였다. 센타로는 도쿠에가 자신에게 남긴 말에 용기를 얻어 가게에서 독립한다. 다시 벚꽃이 만발한 봄날에 사람들이 봄을 즐기는 한가운데에서 도라야키를 판다 그는 큰소리로 미소 지으며 도라야키 사세요! 도라야키 왔어요!’라고 외친다.

 

소설 불필요한 여자와 영화 : 단팥 인생 이야기70대 여자의 이야기다. 둘 다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지나왔지만, 한 사람은 자발적 의지로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켰고, 다른 사람은 타의에 의해 자유를 잃었다는 큰 차이가 있다. 소설의 내용도 좋았고 나 역시 알리야와 같은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로망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알리야보다 도쿠에에 연민과 정이 갔고 더 따스함을 느꼈다. 책에 파묻혀 책 속의 문장에서 세상을 들여다보기보다, 세상과 직접 만나며 그 모든 것에 말을 걸며 극진히 모시는 도쿠에의 품위와 정성을 닮고 싶었다. 센타로와 와카나에게도 선하고 좋은 영향을 주는 노년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모처럼 영화 보면서 펑펑 울었다.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그것은 팥이 보아 왔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 어떠한 바람들 속에서 팥이 여기까지 왔는지 팥의 긴 여행 이야기들을 듣는 일이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어. 햇빛이나 바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 그래서일까? 지난밤에 울타리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사장님에게 연락을 해 보라고 속삭이는 듯 느껴졌어.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어.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지. 이런 인생 이야기도 들려줄 걸 그랬어. 언젠가는 사장님이 사장님만의 특별한 도라야키를 만들어 낼 거라 믿어. 스스로 개척한 길을 걸어가야 해. 사장님은 해낼 수 있어.

 

주중 행사인 산책 중 달콤한 냄새에 끌린 날이었지. 사장님을 처음 보았는데 너무나 슬픈 눈빛이었어. 뭐가 그리 슬프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슬픈 눈을 하고 있었지. 그것은 예전의 내 눈이었어. 평생 담장 밖으로 못나간다고 인정했을 때의 내 눈이었지. 그래서 난 이끌리듯 가게 앞까지 갔던 것 같아. 내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사장님 정도의 나이가 됐겠지. 우리 사장님, 그 날 보름달은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어. ‘네가 봐 주길 바랐단다. 그래서 빛나고 있었던 거야.” 우리 사장님, 잊지 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센타로에게 들려주는 도쿠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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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21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중동 지역을 여행할 때 레바논을 가느냐 요르단을 가느냐로 고민을 했어요. 마침 베이루트에서 내려온 여행자를 만나 상황을 물어보니 ‘나이트 클럽에서 밤새도록 노래를 틀어나서 시끄러워서 떠나온 길입니다‘ 라는 답변을 듣고 요르단으로 떠났죠. 불과 십여년의 차이 밤새 나이트클럽이 성행하던 도시가 폭격의 화염으로 불타는 도시가 된 것이 참 서글픕니다. 베이루트를 보니 문득 그 시절이 또 떠올라 버렸네요.

페넬로페 2026-04-22 00:30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주인공인 72세의 알리야는 격동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지만 젊은 세대는 완전 다르게 살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어요.
사실 레바논의 역사나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잘 몰라요. 그냥 전부터 뉴스에서 베이루트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잉크냄새님께서는 그쪽 지역을 다녀오셔서 요즘의 소식들에 더 심려가 클 것 같습니다. 어서 전쟁이 끝나면 좋겠습니다.


서니데이 2026-04-22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 <앙>은 키키 키린이 나온다고 해서 본 적이 있어요. 포스터의 사진에 같이 있는 여학생이 손녀라고 들었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본지 몇년 되긴 했지만,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을 정도로 그 사이 10년이 빨리 지나가네요.
페넬로페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6-04-22 22:57   좋아요 2 | URL
이 영화가 2015년에 발표되었더라고요. 서니데이님 말씀처럼 와카나가 키키 키린의 외손녀이더군요. 이미지가 별로 비슷하진 않았어요 ㅎㅎ
평단의 평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저는 좋게 봤어요.
세월이 정말 빠르게 흘러갑니다 ㅠㅠ
서니데이님께서도
건강하게 아름다운 봄날을 잘 보내시길요^^

서곡 2026-04-25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페넬로페님 잘 지내셨는지요 저도 영화 앙 오래 전에 봤는데 여성감독의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소녀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지요 남은 이 달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6-04-25 12:00   좋아요 1 | URL
네, 여성감독 작품 맞아요.
앙 영화 보셨군요.
잔잔했지만 감동적이었어요.
와카다 역의 소녀가 나온 고레에다 감독 작품도 보고 싶네요.
요즘은 이렇게 조용하고도 울림이 있는 영화가 좋더라고요.
벚꽃이 지고 온통 연산홍과 철쭉이 피어나고 있어요.
서곡님,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서곡 2026-04-25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기적‘이란 제목이에요 그 영화 전 되게 좋아한답니다 그 영화에서 소녀의 역할도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남자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죠 감사합니다 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그러게요 저도 우리 동네 연산홍과 철쭉이 너무 빛깔이 고와서 와 하고 있답니다 ~~

페넬로페 2026-04-25 13:40   좋아요 1 | URL
네, 그 영화 보겠습니다.
 
불필요한 여자
라비 알라메딘 지음, 이다희 옮김 / 뮤진트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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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들어있는 것이 많다. 삶은 물론이고, 여러 책과 문장들, 여성, 노년, 관습, 우정, 레바논과 베이루트, 비극들...한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인생을 이어가야 한다는 고집과 묵묵함도. 책의 지나친 인용이 지치게도 하지만 ‘불필요한 알리야’가 책 자체이니 인정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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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 중 열린책들 세계문학 5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박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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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적 뿌리라고 단정해 러시아 정교를 전복시키려 하지만, 악령 들린 니힐리스트는 또 다른 종교가 필요하다. 숨겨놓고 언젠가 나타날 것이라 선동하며, 보여주지는 않는 광기의 허상이다. 거기엔 예수와 같은 순교자와 희생자가 설계된다. 모든 혁명은 이런 식이고, 그래서 폭력적이며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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