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7
로베르트 무질 지음, 박종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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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무질은 특성 없는 남자를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중 구상한다.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무질은 조국을 떠나 스위스로 간다. 나치는 무질의 작품을 금서로 지정해 작가에게 경제적 타격을 준다. 뇌졸중까지 찾아와 그는 가난과 병마로 고통 받아야 했다. 또한 심각한 글쓰기 장애까지 겪어 이 소설을 계속 집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1942년 뇌졸중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그는 끝내 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다. 무질이 사망한 후, 생전에 발표되지 못한 부분이 유고집으로 출간되었지만 한국에서 그 부분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무질의 어머니 헤르미네는 예민하고 별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20세에 결혼했는데, 7년 후 남편의 친구인 라이터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라이터는 계속해서 무질의 가족과 함께 한다. 무질은 마르타 마르코발디와 결혼한다. 마르타는 21세에 결혼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일찍 죽는다. 그녀는 재혼하지만 부부 관계가 좋지 않았고 가정이 있는 상태에서 1907년 베를린에서 무질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1911년이 되어서야 결혼할 수 있었다. 무질은 이러한 마르타의 삶을 그대로 울리히의 여동생인 아가테에게 투영한다. <특성 없는 남자>에서 울리히의 어머니는 일찍 죽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무질이 태어나기 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은 누이의 존재와 부모의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은 무질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런 이유로 무질의 삶이 거의 반영된 주인공 울리히에서 약간 뒤틀린 성적인 면이 발견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들인 아가테, 레오나, 보나데아, 디오티마, 라헬, 게르다, 클라리세는 모두 뭔가 결핍되어 있다. 근친상간, 소녀성애, 울리히를 향한 성적인 갈망이 그 시대의 본질과 특성의 해체를 위한 비유이자 상징으로 이용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당히 미묘한 껄끄러움이 존재했다. 프루스트, 조이스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시대가 가진 은근한 여성 비하를 무질도 넘어서지 못했다.

 

 

울리히는 나의 성공적인 서거를 알린다(p.11)’고 적힌 아버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메시지가 담긴 전보를 받는다. 울리히가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예전에 살았던 도시를 오랜만에 방문하는 것이 3(천년제국으로)의 시작이다. 아버지의 집에서, 결혼해서 1년 만에 병으로 남편이 죽어 3년 뒤에 재혼한 여동생 아가테를 만난다.

 

서먹한 사이였던 아가테는 울리히에게 남편 고들리프 하가우어와 이혼할 것이며, 그에게 아버지의 재산을 털끝만큼도 남겨주고 싶지 않아 아버지의 유언장을 위조할 것이라고 한다. 현학적이고 특성으로 가득 찬 하가우어와 야생적이고 자연적 성정의 아가테는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울리히와 대척관계에 있는 사람이 2부에서 아른하임 이었다면, 3부에서는 하가우어로 바뀐다. 하지만 울리히에게도 하가우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없지 않다. 이 문제로 아가테와 울리히는 도덕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특성 없는 남자’ 3부의 주제는 도덕에 관한 것이다. 아버지의 유언장을 위조하겠다는 아가테의 계획에 대해 울리히는 길게 도덕에 대한 이론을 펼친다. 울리히의 말을 이해한 아가테는 자신의 결심을 더욱 굳히고 울리히를 따라간다. 울리히는 아가테 안에서 자신의 이면을 보고 샴쌍둥이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가테에게서 자기애를 발견한다. 울리히는 하가우어에게 이혼을 통보하지만 하가우어는 그것에 응하지 않을 것이며 장인이 남긴 재산을 요구한다. 유언장 위조에 대해 나중에 울리히와 아가테가 곤경에 빠질 것이라는 암시가 있지만,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아가테와 함께 돌아온 울리히는 다시 애국대운동에 참여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처음의 선한 의지와 하나를 향한 단결은 없다. 각자의 특성과 이기심은 모든 것이 부질없으며, 평화주의를 가장한 전쟁이 눈앞에 닥쳐와 있다는 것만을 보여줄 뿐이다.

 

결국 울리히의 천년제국은 우리가 절대 다다를 수 없는 곳인지도 모른다. 관념만 있고 실제가 될 수 없는, 울리히 아버지의 서재 같은 우아한 황량함(p.82)’만 있는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무질이 창조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이며, 그 어렵고도 험난했던 시도만으로도 유토피아로 가는 길은 열려있다.

 

무질에게 문학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충실하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변하게 될 미래에 새롭게 형성될 삶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로베르트 무질‘, 최성욱, 한국학술정보, p.16)’라는 작가의 신념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고착화된 각 특성을 해체시켜 변화를 받아들이며 창의적이고 선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 무질의 열정을 알 수 있다.

 

다만 거기에 너무 많은 이론과 다양한 세계를 넣어 무질마저 이 소설을 어떻게 끝맺을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 소설이 완성되지 못한 이유가 무질이 말년에 처한 힘들었던 물리적 상황에 있겠지만, 작가가 광대하게 펼쳐놓은 내용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번역자 박종대 님의 말처럼 미완성으로 독자들에게 제국의 문을 열어주지 못했지만, 그 치열한 노력만으로 아낌없이 박수를 받고 추앙받을 수(p.602)’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울리히와 아가테는 멀리 산책을 나간다. 지친 그들은 중간에 찢어지게 가난하고 무지한, 독일어와 슬라브어가 섞인 사투리로 말하는 어느 양치기의 집에서 쉬어간다.

 

[늙수그레한 양치기 부부는 양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은 채 오두막을 가득 채우는 대화를 경탄스럽게 듣고 있었다.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무척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p.121

아가테는 희뿌연 연기 너머로 주인 부부가 싱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짧은 말로 자신들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단언하는 것을 보았다. -p.125]

 

경탄스럽게 듣고 있었다.“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무척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단언한다

 

늙은 양치기 부부가 울리히와 아가테의 대화를 들으면서 한 행동을 표현한 위의 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나의 감정과 정확히 일치했다. 완전 똑같았다. 잘 모르고 이해가 안 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혼신의 힘으로 쓴 무질의 고통스런 영혼을 볼 수 있었다.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거기에 담긴 비유와 상징이 마음에 와 닿아 이 책의 많은 부분에 수없이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를 했다.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힘, 끝없이 많은 생각으로 이끌어 주는 무질의 문장은 그 어떤 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함을 주었다. 세 달 동안 이 책을 읽으며 즐거웠다.

 

이 책의 마지막, 옮긴이 해설에 등장인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다. 일러두기에서 여기에 소설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으니 될 수 있으면 다 읽고 나서 일독하기를 권한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이 책의 1부를 조금 읽다보면 내용이 어려워 번역자의 해설로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번역자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은 아주 자세히, 이해되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어차피 이 소설은 서사보다는 무질의 실험이 우선시되는 소설이다. 내용을 알고 시작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래서 먼저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읽고 이 소설을 시작해도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가 지금껏 의견 일치를 본 모든 것에 따르면, 너는 이제 그 바다를 수정처럼 순수하고 영속적인 사건들로 가득찬, 움직임 없는 은둔의 상태로 상상해야 돼. 어떤 시대건 지상에서의 그런 삶을 상상하려고 노력해왔어. 그것이 천년제국이야. 우리가 아는 어떤 형태의 제국도 아닌, 오직 우리 자신에 의해 그 형태가 만들어지는 제국이지! 우리는 그렇게 살 거야!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재물이나 지식, 연인, 친구, 원칙,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조차 연연해하지 않을 거야. 그런 연휴에야 우리의 감각은 열리고, 인간 및 동물과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우리가 더는 우리로 남지 않고 오직 모든 세계와 어우러짐으로써 우리를 유지하는 그런 방식으로 펼쳐지게 될 거야!

-p.21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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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12-18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완성 작품이군요. 이 책 어렵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습니다. 페넬로페님은 완독 하셨군요~!
1900년 초중반 소설들을 읽다보면 참 힘든 시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5-12-18 15:26   좋아요 0 | URL
정말 많이 어려웠어요.
근데 무질 작가의 문장은 좋았어요. 힘들었지만 완독했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책 내용 중에 지금 현재에 적용할 것도 많아 좋았어요^^

책읽는나무 2025-12-19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삼개월의 특성 없는 남자의 집중 독서!
대장정을 마치신 걸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님의 리뷰를 따라 읽은 이것을 잘 기억했다가 훗날 독서내공이 쌓여 전권 다 갖춰 언젠가 꼭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무질 작가는 페넬로페 님께 이젠 특별한 작가로 기억에 남겠어요.

페넬로페 2025-12-19 22:55   좋아요 1 | URL
네, 정말 대장정이었어요.
작가가 가지고 있고 활용한 지식의 양이 방대해 그것의 일부만 이용해 읽었지만 그래도 완독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책나무님께서도 언젠가는 꼭 읽으시길 기원합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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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해 잘 모른다. 관심과 흥미는 있지만,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머리를 타고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SF소설을 읽을 땐 약간 조심스럽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오독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이 소설집의 비구름을 따라서을 읽으며 나는 반투막을 통해 이동되는 사물에서 인간의 소통을 생각했고, 요즘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금방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상품이 연상되었다. 작가의 해설에서 이 소설은 가능한 미래, 혹은 평행우주를 상상(p.379)’해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이 단초가 된 소설이라고 한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과 평행우주에 대해 먼저 알고 있어야 이 소설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SF소설을 좋아하게 된 것은 김초엽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나서였다. 과학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지 않지만 그 책은 읽는 순간 뭔가가 느껴졌다. 과학적 사실과 가설, 미래 세계 속에서 지금의 우리와 삶, 철학이 보였다. 무엇보다 책에 확실히 문학이 들어있어 좋았다.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기대를 많이 했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보다는 감동이 적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이 여러 목적을 두고 쓴 것이라 보편성이 약간 떨어졌고, 작가가 말하고자 한 주제가 다양하지 못했다. 소재를 사물에 많이 둔 것도 조금 지루했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양면의 조개껍데기였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그 어떤 모습으로도 겉모습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솜솜 피부관리숍에서는 물고기, 부엉이, 펭귄, 늑대, 고양이, 모래, 바위 등의 인공피부 제작이 가능하다. 마법사의 요술봉에 의해 한 번에 하고 변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신체적 기능을 고려한 과학적 변신이었다.

 

원래 안드로이드였던 수브다니는 인간화 시술을 받아 거의 사람처럼 보인다.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외관이 덮여있어 피부가 변할 염려도 없다. 하지만 수브다니는 물이나 산성 물질에 내구력이 높지 않는 금속 피부를 원한다. 물에 녹이 스는 금속 기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반 인간화된 수브다니는 연애도 하고, 예술도 하고, 배신도 당한다. 그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수브다니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녹이 슬어도 괜찮은 자신의 정체성으로.금속 기계로 여름휴가를 떠난 수브다니는 그곳에서 평온을 얻는다.

 

 

내 안에 분명 여러 자아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것은 동일한 세력을 갖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동일한 힘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양면의 조개껍데기에서 셀븐인 샐리(라임)와 타자아 레몬은 성향이 완전 다른 본성들이다. 거의 독립적 개체인 그들은 한 몸에서 같이 존재하기 쉽지 않다. 둘이 뭔가의 타협을 이루었어도, 완벽하게 공평할 수 없었고, 레몬의 예민함과 스트레스로 돌발적 상황이 발생한다. 그것을 매번 느끼고 신경 써야 하는 라임은 매번 피곤하다. 라임은 자기 몸에서 레몬의 자아를 강제 분리하지만 깊은 바다 속 잠수의 위험한 상황에서 정작 레몬은 라임을 구한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자아들,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나, 그것들이 연결되고 충돌하는 세계의 나는 힘들고 아프고 외롭다. 나를 이해하고 지탱하기 버거워 나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타인을 제대로 볼 힘도 없다. ‘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생소하고 어색하다. 내 속의 자아를 분석하기도, 통합시키기도 어렵다. 그냥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누구이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른다. 의무와 책임으로만 구성된 나의 껍데기가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다. 작가는 양면의 조개껍데기에서 굉장히 직접적인 서술로 나의 자아를 이해시킨다. 좋은 방법이었다.

 

이 소설집에서는 사물이 다양하게 나온다. 그 많은 사물에 다양한 이야기를 입히는 건 세상에 대한 시선을 넓게 갖는다는 것이다. 소통과 이해, 문제의식을 사물을 통해 서술한 작가의 상상력과 미래에 대한 안목이 특별하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위해 압구정 CGV에 가야했다. 영화를 보고 그 옆의 블루보틀 카페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필 사방에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천지로 늘려있는 압구정에서 읽는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훨씬 더 진하게 그 의미가 다가왔다. 언제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은 변신의 욕구가 있다. 그것은 어떤 모습이든 끝이 없다. 변하면 변할수록, 변하고 싶은 욕망이 더 생기고 자신은 잃는다. 차라리 녹슬기를 원한 수브다니가 그곳에서 절실히 이해되었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양면의 조개껍데기를 읽고,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 카페를 나와 샤브 전골을 먹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올해의 첫 눈이 내렸다. 기분 좋은 첫 눈을 맞으며 지하철역으로 왔고, 거의 50분 정도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첫 눈은 완전 폭설로 변해있었고, 도로는 내린 눈이 두껍게 쌓여있었다. 집으로 가는 잠깐 동안 내 옷과 머리에 눈이 쌓이고, 거리의 차들 역시 눈으로 덮인 채 겨우 가고 있었다. 그 날 서울은 눈으로 교통대란이 일어났고, 경기도에 사는 어떤 사람은 퇴근 후 집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5시라고 했다.

 

미래의 세상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만큼 발전할 것이다. 여기 이 책에서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인간과 AI는 자연을 어떻게 상대할지 궁금하다. 그 모든 가상의 가능성, 평행 세계, 우주와 연결되는 세상이 되면 비와 눈은 오지 않을까? 자연현상은 극복되거나 아니면 그 어떤 자연환경에서도 미래의 인간은 안전할지 궁금하다. 다음 김초엽 작가의 책은 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원래도 불완전한 소통 체계에 그렇게 많은 불일치를 더할 필요가 있을까? 이상한 건 그들이 그 무수한 문자 형식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했다는 거야.

이런 거죠. 원래 우리 언어는 불완전하잖아요. 기록도 불완전하고요, 아무리 애써도 문자로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는 왜곡이 생겨요. 우리는 문자 그 자체에 담긴 정보로만 서로 소통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문자를 이렇게 수많은 다른 꼴로 새기는 거예요. 문자로는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니까, 더 잘 전해보고 싶은 거예요. 어렵죠?”

그게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더 잘 전하고 싶어서 더 많은 불일치를 만들어내다니.

-p.127, ‘진동새와 손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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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잉어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7
비키 바움 지음, 박광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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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작가 로베르트 무질비키 바움의 소설을 동시에 읽었다. 각자의 삶이 다 다르겠지만 굵직한 국가의 운명아래 놓이는 건 비슷하기에 두 작가의 인생과 작품을 비교하게 된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되고 두 작가의 작품은 출판을 금지 당한다. 무질은 스위스로, 유대인이었던 바움은 미국으로 망명해 집필을 계속한다. 아직 완독하지 못한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에 비해 바움의 단편집 크리스마스 잉어(Der Weihnachtskarpfen)는 하루 만에 다 읽을 정도로 어렵지 않았다.

 

비키 바움의 문장은 상징이나 비유 없이 직설적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에다 상황을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그것이 세련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여러 감정을 유발시킨다. 이 책은 첫 번째 소설인 크리스마스 잉어에서 불행의 모습을 조금 보여주기 시작하여 점점 그것이 커져 마지막 백화점의 야페에서 정점을 이루어 터져버린다. 언제나 그렇듯이 소외된 자의 폭발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위험하지만 황당하고도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의 크리스마스 식탁엔 잉어 요리를 올리는 관습이 있다. 아이가 셋이 있는 라너 집안의 말리 고모는 126일부터 이 집에 와 크리스마스 요리를 준비한다. 고모의 증조모가 적기 시작해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가 들어 있는 너덜너덜한 공책을 들여다보며 고모는 부엌을 진두지휘한다. 오래 준비해온 만큼 매년 풍성하고 화려한 요리로 가득 찬 크리스마스를 보냈지만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부터는 잉어는커녕 다른 재료도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런 형편에, 기어이 잉어(어리고 가늘고 빈혈기가 있는)를 구해 우여곡절을 겪는 크리스마스 잉어는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황폐함을 다룬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식탁에 오른 잉어를 보며 모두 다 죽음을 연상하며 왜 전쟁을 통해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 난 이 소설을 읽으며 이 주제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여태껏 해 온 관습에 얽매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없으면 그냥 없는 대로, 시대와 환경에 맞게 살면 되는 거지 꼭 잉어를 죽여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어야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말리 고모를 보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마지막 말리 고모의 큰 소리의 흐느낌은 전쟁에 대한 비판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될 수도 있다.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의 집을 자주 보여준다. 대개 그들의 집엔 큰 옷 방이 있다. 사계절 옷을 종류별로 한 곳에 정리해놓은 그 공간이 난 늘 부럽다. 작은 집에 살면 에서의 친칸 부인을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지금 그녀의 고민은 너무 작고 오래전부터 용량이 넘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옷장대신 새 옷장을 사는 것이다. 몸이 아플 정도로 친칸 부인의 모든 촉수는 새 옷장 구매에 몰려있다. 가난한 친칸 부인의 하루는 모두 가족을 위한 것이다. 피곤하지만 쉴 틈이 없다. 식구들마다 다른 식사 시간, 청소, 시장 보기, 뜨개질, 다림질, 설거지, 재봉틀 앞에 앉아 옷 만들기, 속옷 수선과 양말 깁기.친칸 부인은 똑같은 일을 하는 수십만 부인 중의 한 사람일 뿐인 걸 알지만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녀가 가난하다는 것이다. 여유가 없는, 가난한 그녀는 하루 종일 스트레스 받으며, 종종걸음 치며 가계를 꾸려나가야만 한다.

 

수중에 90마르크만 있는 친칸 부인은 비 오는 날 새 옷장을 사러 여러 군데를 돌아다닌다. 형편없는 옷장도 최소한 300마르크는 필요하다. 결국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중고 옷장을 선택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앓아눕는다. 폐렴이었다.

 


제화 수습공이며 지능이 조금 낮은 열일곱 살 야페 플룬트는 백화점 진열창 안에 놓인 다채로운 빛깔의 실크 넥타이를 본다. 친칸 부인보다 훨씬 더 가난한 야페는 순간 그 실크 넥타이에 꽂히고 그것을 갖고 싶어 한다.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 그의 욕망은 집요해졌고, ‘그것은 그에게 하나의 목표이자 여정이 되었다. 야페는 돈을 열심히 모으고 다른 사람들에게 얻고 해서 겨우 1마르크를 모은다. 백화점에 간 야페는 넥타이의 가격이 6마르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6마르크의 넥타이를 원한 야페의 욕망은 1마르크의 넥타이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야페는 아무도 없는 저녁에 텅 빈 백화점에서 넥타이를 훔치기로 한다. 어두운 곳에서 넥타이를 훔치는데 성공한 그는 이 실크 넥타이가 자신의 누더기 같은 옷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때부터 백화점 순례를 시작한 야페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채 모든 물건을 손에 넣고 음식을 먹어본다. 야페는 속이 거북할 정도로 욕망에 들떠’ ‘쇼핑 놀이를 하며 광기에 사로잡힌다.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백화점 전체를 엉망으로 만든다. 백화점의 야페를 읽으며 계속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설마 야페가 더 이상 뭔가를 할까라는 우려와 점점 더 시원해지기도 하는 내 감정이 야페와 함께 춤을 추었다.

 

 

마주렌 총독의 딸이었고, 음악가 차이콥스키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던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레 폰 가브릴로는 정치적인 문제로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가브릴로프스키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은 아마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한 달에 35마르크의 연금 수급을 하고 18마르크를 집세로 낸다. 나머지로 한 달을 살아야하는 그녀는 굶주려야 하고 낡아빠진 코트와 스타킹, 구두를 대신할 새 물건을 살 수 없다. 심지어 그녀에게는 애완동물인 스컹크도 있다. 그녀의 약혼자인 백작이 그녀에게 준 선물이다. 언제나 냄새를 풍기고 위험한 동물이지만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그 동물을 차마 버릴 수가 없다. 굶주림이란 제목에 맞게 가브릴로프스키의 삶은 눈물겹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나 죽음을 응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폐렴에 걸린 친칸 부인과 백화점에서 광기어린 행동을 하고 있는 야페와 가브릴로프스키의 스컹크가 죽기를 바랐다. 친칸 부인이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건강해져도 그녀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친칸 부인의 모터는 다시 가족들을 위해 돌아갈 것이다. 야페는 어떤가? 결국 사형 당했을 것이다. 삶이 힘들어 망상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으며 매번 굶주리는 가브릴로프스키에게 스컹크는 그녀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줄 뿐이었다. 그들에게 오만한 나를 용서해달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아직 12월 초인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벌써 크리스마스 느낌이 난다. 행복과 따스함이 가득하다. 모든 것이 넘치게 빛나고 있어 이 세상이 풍요로워 보인다. 거기에 가난과 소외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은총 받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끊임없이 제공되는 물질의 향연뿐이다. 마법같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그곳에서 앞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생각날 것 같다.

 

4개의 단편은 전체 분량이 170쪽 정도의 짧은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다. 큰 주제의 흐름은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무력감과 자본주의에 의한 소외이지만 나는 그것을 떠나 각 인물의 삶이 먼저 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쟁이 있든 없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거기서 오는 무게감은 변함이 없다.

 

하필 크리스마스는 겨울에 있다. 겨울에 읽는 이 소설은 나에게 많은 우울감을 주었다. 절절했던 그들의 삶, 또는 나의 삶이 무거운 눈에 가지가 부러지는 나무처럼 나약하게 보인다.

 

 

[“병에 걸리면 안 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럴 시간이 없어요.” 오늘은 그녀의 모터가 다시 제대로 작동했다. 어제 다른 강둑으로 밀어 보내 막연하게 피했던 의무를 오늘은 다시 되찾았다. 오늘 그녀는 건강의 회복을 과업으로 받아들였다.

-‘중에서

 

몸이 불타면서 그는 파멸이 불러오는 넘쳐흐르는 끝없는 행복감에 휩싸였다. 1층부터 4층까지 사방이 불길에 덮여 바닥이 퍼렇게 녹아 움직이고, 아래에서는 엄청난 굉음이 났다. 기이한 것은 불이 강물처럼 넘치는 가운데 이상한 침묵과 평온함이, 일종의 고요와 적막이 이 광란 속에 흘렀다는 것이다.

-‘백화점의 야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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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5-12-06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5-12-07 06: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5-12-09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젠 오스트리아 작가까지 읽으시는군요~!! 뭔가 작품의 상황이 다 아이러니 하네요~!!

페넬로페 2025-12-09 21:58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오래간만이예요.
잘 지내시죠?
우연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도작가님의 <가난한 사람들>이 연상되더라고요.
 
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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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 권의 책에 푹 빠져버렸다. 산책길에서 오디오북으로 먼저 듣기 시작한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 혼모노는 드물게 딴 생각 없이 집중해서 듣게 되는 소설이었다. 순서대로 좋게 듣다 혼모노에서 더 집중했고,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서는 전율이 일어나 듣기를 멈추었다. 이건 무조건 책으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바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주문했다.

 

이 책에 수록된 7편의 단편소설의 소재는 모두 익숙한 것이다. 지금, 아니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우리에게 많은 고민과 갈등을 던져준 사회적이면서 개인적인 여러 이슈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평범한 소재들을 식상하지 않은 감성과 특별한 전개로 섬뜩하리만치 차갑게 사람을 각성시킨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생각지도 않은 반전이나 독한 문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 흐르듯, 조용히, 순조롭게 진행되면서도 단편하나를 다 읽고 나면 뭔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나부터 시작해 세상 모든 사람들 각자 한 명 한 명씩의 삶, 그로부터 비롯된 이 세상의 부조리함의 원인을 분석하게 된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공적인 재능과 사적인 하마르티아의 연관성을 다루고 있다. 사람은 어디까지 도덕적이어야 하는 것과 한 번의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이다. 사과를 한다면 있었던 일이 없는 일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한 사람을 향한 비난의 수위와 그 실수로 영원히 매장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 모든 일이 무마되었어도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도이 소설은 겉에서 보여지는 모습만큼 거기에 대응하는 소설 속 로 대변되는 팬덤의 태도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옹호와 납득으로 가려진 진실은 치앙마이의 손발톱과 송곳니를 뺀 호랑이의 등을 쓰다듬는 것과 같은 모호함과 찝찝함으로 남아 각자의 양심 안에 숨을 뿐이다.

 

외국인이 보고 느낀 한국과 광화문 일대를 휩쓸고 있었던 태극기 부대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그들은 왜 거의 노인으로 구성되고, 성조기를 함께 지니고 다녔을까? 그들의 이해 못할 행동들과 떼 지어 악을 써대던 모습이 징글징글해 그곳을 가게 되면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지도 않고 빨리 지나쳤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이민 3세대 듀이는 일로 한국에 와 잠깐 머문다. 산책삼아 나간 종로에서 만난 그들에게 듀이는 편견이 없었다. 그곳을 이승만 광장이라 명명한 그들이지만 듀이에게는 모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스무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본 어떤 모습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념이나 편견을 떠나면 모든 인간은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역설이 있다. 나와 반대편에 섰던 그들에 대해 오래 생각해보게 되었다.

 

굿이나 점집은 이미 한물간 과거의 산물로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스마트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건재했고 그 힘은 엄청났다. 나약한 인간은 뭔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주술과 신령의 기술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그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들을 완벽히 장악했다. 그들이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무당이나 법사의 말과 행동은 어떤 기운과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매번 궁금하다.

 

혼모노(本物)’는 진짜, 진품, 실물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것에 광적으로 집착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짜를 뜻하는 일본어는 니세모노(僞物)’이다. 삼십 년 동안 장수할멈 혼령에 의지해 활동한 박수무당인 는 한순간 예언의 힘을 잃어버린다. 말도 없이 장수할멈은 이웃 신애기의 몸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무당도 인간이라 뭔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혼모노는 장수할멈인가? 진짜처럼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람을 현혹시키며 광적으로 집착하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마지막 굿판에서 벌인 나와 신애기의 대결은 칼날과 작두에 의해 피를 쏟는 내가 승리한다. 혼모노와 니세모노가 묘하게 섞이며 정확한 경계를 흩뜨려버린다. 우리가 믿고 추종하는 것은 결국 확실치 않은 것이다. 진짜보다는 허상이 더 많은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은 단편은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였다. 남영동 대공분실, 지금의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정확한 지번 주소는 서울 용산구 갈월동 98-8번지이다. 작가는 이곳에 위치한 건물을 통해 과거를 소환하며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악의 최대치의 범위를 가늠하게 한다. 직접적인 고통을 보여주기보다 우회적 방법을 통해 더 잔인하고도 섬뜩한 공포와 거기에 희생되는 무고한 인간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아우슈비츠 수용소 반경 40M안의 주변 지역)’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고문대상자가 늘어날수록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많이 필요하다. 인적이 드물며 아무도 그들의 고통스런 비명을 들을 수 없는 곳, 안에서 벌어지는 것과는 무관한 국제해양연구소경동수련원같은 이름이 필요한 건물의 설계를 겸임교수 여재화가 맡는다. 여재화는 성실하고 기본에 충실하지만 야망은 없는 제자 구보승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때부터 구보승은 고문할 인간에게 최적화된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 붓는다. 아우슈비츠의 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인원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가에 대해 모든 생각을 집중했던 것과 비슷하다.

 

평범했던 구보승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회나 학교는 누구에게나 그런 것을 요구한다. 다만 거기에 인간이라는 요소가 들어있을 때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를 우리는 항상 맞닥뜨린다. ‘인간을 위한다는 것에 담긴 다양한 관점과 오류는 절대 하나로 완결될 수 없으며 결국 그것은 각자의 선택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고문대상자를 수용하기 위한 건물의 설계에서 약간의 인간미를 넣어 양심의 가책을 덜고자 한 여재화 역시 구보승과 다르지 않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1994년생, 31세인 이 젊은 작가가 정말 놀라웠다. 그동안 무엇을 얼마나 많이 했기에 이렇게나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성해나의 이 소설들은 모두 사람으로 귀결된다. 읽으면서 많은 사람과 거기에 얽힌 상황들을 인식하고 생각했다.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지금의 나는 누구이며 무슨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진짜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각성을 했다. 성해나 작가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선생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여재화는 흠칫했다. 이제껏 구보승이 밀어붙였던 합리와 대척점에 놓인 사고였다. 드디어 인간을 고려하다니, 독학하는 과정에서 건축의 기초를 깨달은 게 아닐까, 어렴풋이 유추하며 여재화는 안도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인간이 생활하는 공간에 창이 없어서는 안 되지.

, 제가 선생님의 뜻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창이 필요했던 건데.저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으니까요.빛이 공간의 형태를 드러내 조사자에게 두려움을 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무력감을 안길 거라고.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p.191~192,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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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1-29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책으로 ‘혼모노‘라는 단편을 읽었는데 완전히 반해 버렸죠.

페넬로페 2025-11-29 13:11   좋아요 0 | URL
네, 소설 혼모노 좋았어요.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소설도 좋더라고요^^

책읽는나무 2025-11-29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려고 몇 달 전부터 이 책 사다 놓았는데…아직도 손을 못 대고 있네요.
얼마 전에 읽은 소설 보다 시리즈에 <스무드>가 실려 있어 읽어보았는데 오! 싶었어요.
혼모노 빨리 읽어야겠다. 그러고선 또 다른 책들에 밀려 있구요.
12월 가기 전엔 꼭 읽어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5-11-30 00:13   좋아요 1 | URL
구매해 놓고, 도서관에서 대여해놓고 안 읽은 책이 저도 엄청 많아요 ㅎㅎ
그러면서 또 사고 빌리고요.
여기에 들어있는 소설들 다 좋았어요. 어서 읽어보세요.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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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남아있는 날이 살아온 날 보다 확실히 더 짧아져 그런지 몰라도 요즘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예전보다 두려움은 덜하지만 암담함은 여전하다. 존재해봤기에 분명 무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닐 것이다. 인간이었기에 복잡한 감정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을 다독여 어떤 죽음을 맞던 그저 담담하기만을 바랄뿐이다.

 

삶의 마지막 날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행운을 만나기 쉽지 않다. 닐스 비크는 비 내리는 11, 자신의 생의 마지막 날을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다. 15세 때부터 페리를 몰며 피오르를 오가며 사람과 가축을 실어 나르던 그는 마지막 날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515분에 일어나 똑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피오르(fjord)는 빙하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U자곡에 바닷물이 들어와 형성된 길고 좁은 만을 의미한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피오르가 생성된 곳은 노르웨이 해안으로 피오르란 단어도 노르웨이어에서 유래하였다. 즉 피오르의 생활상은 곧 노르웨이의 생활상이라고 할 수 있다.(나무위키)

 

닐스 비크에게 피오르는 삶의 현장이다. 그는 수많은 세월동안 ‘MB 마르타(아내의 이름)’란 이름의 페리를 운전하며 항해일지를 썼다. 닐스 비크는 삶의 마지막 날에 항해일지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한다. 페리를 탔던 과거에 속한 자들을 차례로 만난다. 각 시간마다 만나는 사람(죽은)과 거기에 뒤얽힌 사건과 대화, 긴박함, 안도, 환희, 슬픔, 그리고 침묵은 닐스 비크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하고도 흔들림이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에 속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에 그때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와 그들의 기분도 알 수 있다.

 

그는 어느 순간에도 침착성을 잃지 않는다. 성실하고 다정하며 굳건하다. 인정이 있으며 불의를 참지 못한다. 그 어떤 유혹과 부정한 것에 넘어가지 않으며 인간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일상의 무게를 견디며 바보 같지만 우직하게, 가난하지만 풍부한 세상을 살아낸다. 드물지만 세상에 분명 이런 사람도 존재한다. 소설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지만 지독하게 사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닐스 비크는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일상의 끝이라고 여긴다. 이 책은 죽음보다 오히려 일상의 숭고함을 얘기하고 있다. 마지막 날까지 함께 같이 온 지루하고 고된 여정의 일상이 있다. 사람이 그 무언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일상과 이왕이면 그것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견뎌내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닐스 비크가 만나는 과거의 사람들과의 여러 에피소드는 모두 감동적이었다.

 

[내 안의 날씨도 이렇게 변한다. 그는 일지의 어딘가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피오르 같은 사람이다. 피오르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부풀어 오르고 가라앉는다그렇다. 페리 운전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이지만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피오르 안팎을 막론하고 항상 그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다. 마치 물이 부서졌다가 합쳐지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싸안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항상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그의 손목시계 바늘처럼. 그는 이미 앞을 향해 출발했고 곧 엔진을 끌 것이며 배는 완전히 멈출 것이다. -p.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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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11-23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닐스 비크는 자신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다르게 보내지 않는군요 거의 그러기는 하겠지요 자신의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 모르고 살겠습니다 갑자기 찾아오면 아무것도 못하겠네요 날마다 마지막 날처럼 살기는 어렵겠지만, 생각하고 사는 게 좋겠습니다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죠


희선

페넬로페 2025-11-23 18:21   좋아요 1 | URL
어떤 죽음을 맞느냐에 따라 각자의 대응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닐스 비크는 마지막을 인식할 수 있었기에 그나마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었어요. 네, 정말 죽음도 삶의 일부분인데 잘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젤소민아 2025-12-04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을 얼마전에 읽고 이 소설을 읽어서요. 많이 겹쳤지만 좋았어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바다에서 정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아일랜드인들도 그렇고요. 그 점도 좋았어요. 정말 다른 바다가 느껴지는...

페넬로페 2025-12-05 08:58   좋아요 0 | URL
네, 욘 포세와 분위기가 비슷했어요. 피요르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이런 종류의 글들이 좋더라고요. 잔잔하고도 의미가 깊었어요.

젤소민아 2025-12-06 11:48   좋아요 1 | URL
노르웨이의 바다는 한반도의 바다와 정말 다르더군요.
어디가 더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르다는...

노르웨이의 바다는 웅장미가 있어요. 고고하고 침묵하는...침묵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시험하는 공간...그런 느낌이 들고,

아일랜드의 바다는 좀 더 온도가 올라가서...떠나고 돌아오는‘ 귀향 모티프가 느껴져요. 기억의 해안이라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