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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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전문을 읽지 않아도, 아니 아예 책을 펼친 적이 없어도 내용을 안다고 여겨지는 소설 중, 대표적인 것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일 것이다. 작가 브론테 자매의 이력이 특별해 소설을 떠나 이미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흥미를 제공한다. 여러 번 영화로 제작되어 이 소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그런 이유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비극적 사랑과 복수로 요약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소설이 읽지 않아도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제야(드디어)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이 소설의 원제가 워더링 하이츠(WURTHERING HEIGHTS)라는 것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워더링은 영국 요크셔 지방의 방언으로 폭풍이 휘몰아치면 높은 언덕에 자리한 위치상 그대로 노출되고 마는 속성을 나타낸다. ‘워더링 하이츠는 나중에 히스클리프의 소유가 되는 언쇼가()의 집의 이름이다.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은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중역하는 과정에서 가져왔는데,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 제목이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소설은 좁은 면에서 보면 언쇼가의 워더링 하이츠와 린턴가의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가 이름으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닌, 문화와 사회적인 면에서 서로 대척되는 관계로 전개된다. 언쇼가는 많은 토지를 소유한 자영농이지만, 린턴가는 소작만 주는 젠트리 계층으로 그 당시 점점 부각되는 중간계급인 부르주아의 속성도 갖추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요크셔 지방의 거칠고 변화무쌍한 황야에서 서로 닮은꼴로 자유를 추구해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존재론적 관점으로 접근할 때,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은 그리 낯설지 않다.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 소유의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임대해 낯선 고장에 들어온 록우드와 그 집의 가정부인 넬리 딘이 서술하는 액자 식 구성의 소설이다. 주로 넬리 딘에 의해 서술되는 이 소설의 내용은 1771년부터 1802, 거의 30년에 걸친 언쇼가와 린턴가, 그 사이에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히스클리프와의 얽히고설킨 애증의 이야기다. 서술자 넬리 딘은 인정 많고 의리 있으면서도 객관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사건의 양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며 위기에 잘 대처한다. 때때로 신랄하게 잘못된 점을 인식시켜 주는, 극의 흐름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다만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이나 고정관념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광적인 사랑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완벽히 동떨어진 곳을 찾아 요크셔 지방의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임대한 록우드는 주인 히스클리프를 만나고 그와 약간의 동질성을 느낀다. 그는 바람이 차갑고 소낙눈이 내릴 때, 다시 워더링 하이츠를 방문한다. 히스클리프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냉대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험악한 날씨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옛 캐서린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곳에서 록우드는 캐서린의 유령을 보고 그 다음 날 바로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줄행랑을 친다. 감기가 걸려 심하게 앓게 된 록우드는 넬리에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1771,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인 언쇼씨가 리버풀에 갔다가 태생에 대해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는 아이를 데려와 자신의 죽은 아들의 이름인 히스클리프라 부르며 친자식처럼 대한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 언쇼와는 영혼의 단짝이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힌들리 언쇼는 그를 싫어하고 구박한다. 언쇼씨가 죽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하인으로 내몰고, 아내 프랜시스와의 사이에서 헤어턴 언쇼를 얻는다. 린턴가의 장남인 에드거 린턴은 캐서린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신분의 차이를 인식한 캐서린은 자신과 히스클리프 두 사람의 장래를 위해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히스클리프는 에드거 린턴을 연적으로 증오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느낀 가장 큰 고통은 히스클리프가 느낀 고통이었고나는 그 고통 하나하나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느껴왔어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바로 히스클리프야만일 다른 모든 게 사라지고 그 애만 남는다면 나는 계속 존재하겠지만다른 모든 게 남고 그 애가 소멸한다면 온 세상은 완전히 낯선 곳으로 변해버릴 거야나는 이 세상에 속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거야.넬리내가 곧 히스클리프야히스클리프는 언제나항상 내 마음속에 있어내가 늘 나 자신에게 기쁨은 아닌 것처럼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으로서그러니 우리가 떨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게다가.

-p.142~143]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이 말은 듣지 못하고, 린턴과 결혼하겠다는 말만 듣는다. 그는 떠났고, 캐서린은 3년 후인 17833월에 에드거 린턴과 결혼한다. 그해 9월에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언쇼가와 린턴가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두 집안의 재산을 서서히 빼앗고, 에드거의 동생 이저벨라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해 아들 린턴 히스클리프를 낳는다. 캐서린, 에드거, 이저벨라가 차례로 죽고, 캐서린의 딸 캐시 린턴은 히스클리프의 강압과 폭력에 의해 그의 아들 린턴과 결혼한다. 몸이 약한 린턴은 곧 죽고 히스클리프가 모든 것을 차지하지만, 그는 복수에 대한 전의를 상실하고 캐서린의 유령과 만나 식음을 거부하고 죽는다. 1803년 고종사촌간인 캐시 린턴과 헤어턴 언쇼는 결혼하기로 한다.


[“형편없는 결말이야안 그래?” 그가 방금 목격한 장면을 한동안 곱씹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지독히도 애를 썼건만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끝나버리고 말다니두 집안을 무너뜨리려고 지렛대와 곡괭이를 준비해놓고헤라클레스처럼 일할 힘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했는데정작 만반의 준비가 끝나고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때가 되니 어느 한 집 지붕에서 슬레이트 한 장 들어내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져버렸어나의 옛 적들은 아직 나를 이기지 못했고지금이야말로 그들의 후손들에게 복수해줄 때야나는 그럴 수 있고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못해그런데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지나는 때리고 싶지 않아굳이 손을 들어 올릴 필요도 못 느끼겠어이렇게 말하니 마치 그동안 내가 관대함이라는 미덕이나 드러내려고 애써온 것처럼 들리는군전혀 그렇지 않아나는 저들의 파멸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고헛되이 남을 파멸시키기에는 너무 게을러져버렸어-p544]

 

복수심에 불타올라 그 당시의 법을 악용해 야비하고도 비열하게 두 집안을 망가뜨리고, 모든 것을 차지하는 히스클리프는 결국 마지막에 모든 것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자신의 뜻대로 성취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인 캐서린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의 삶은 빈껍데기와 같은 것이었다. 히스클리프는 실재하지 않는 캐서린 대신 자신의 머리로 만든 캐서린의 유령이라도 붙잡아 삶의 궁극을 이루려하지만, 그것은 죽음으로 마감되고 만다. 그 죽음으로 다른 사람들은 행복을 되찾는다. 히스클리프의 죽음을 슬퍼한 유일한 사람이 헤어턴 언쇼라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이 소설이 지극히 비극적인 이유는 진정한 사랑과 관용이 없는 삶은 허무만이 남겨진다는 서늘한 교훈이 히스클리프를 통해 보여 지기 때문이다.

 

폭풍의 언덕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친 황야의 히스를 닮아서인지 돌같이 강하고 자주 광기에 사로잡힌다. 특히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황야의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구속이나 정해진 삶의 강요는 죽음과도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로 인한 정신적 착란은 몸의 균열을 가져오고 병으로 연결되어 건강한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 심하게 비틀린 상처받은 마음들은 폭력적으로 변해 계속적인 불행으로 연결된다. 이 인물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한 번씩 정나미가 떨어지지만, 소설을 읽는 목적이 그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기에,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면서 읽느라 약간 힘이 들기도 했다.

 

브론테 자매가 활동한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허용된 시기가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 샬롯 브론테는 제인 에어를 에밀리 브론테는 뒤틀린 사랑과 성정을 광적으로 표현한 워더링 하이츠를 탄생시켰다. 아일랜드 출신의 가난한 성직자의 딸인 그들은 요크셔 지방에 은둔했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다른 집의 가정교사로 가는 것으로 열악한 인생을 살아야했다. 특히 에밀리 브론테는 샬롯보다 더 은둔하며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상 속에서 소설의 인물과 드라마를 창조했으며 이 소설 한 편만을 남겨두고 요절했다.

 

이 소설의 중간정도까지는 예상한 대로였는데, 그 이후로 에드거 린턴이 죽고 그의 딸인 캐시 린턴이 히스클리프에 의해 불행해질 때, 눈물이 났다. 소설의 결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작가라면 모두 떠나고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이란 유령을 붙잡고 오랫동안 고통을 느끼며 외롭게 살게 했을 것이다. 언쇼 씨가 히스클리프를 워더링 하이츠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캐서린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캐서린의 본질은 폭풍의 언덕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그 어떤 것이라도 그녀의 자유와 광기를 구속하고 제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히스클리프가 존재하지 않는 캐서린의 삶이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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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7-17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식 결말이라면 이 작품이 이리 징글징글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어릴 때 읽었는데 어른이 된 후 제대로 정독 완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지만 기 빨릴 것 같아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페넬로페 2025-07-17 20:14   좋아요 1 | URL
‘폭풍의 언덕‘을 읽으니 이 소설이 엄청 많은 막장 드라마 버전으로
변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위대한 개츠비도 생각났어요.
근데 생각보다는 잘 읽히더라고요.
오늘 이 소설로 독서토론 했는데
다양한 의견들이 나와 재미 있었어요^^
 

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 드라마가 생겼다.
최근 들어 배역 스펙트럼이 점점 좁아짐에도 불구하고 이연은배우로서 지금 제 나이와 경험이 싫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연은 인간을 더 연민하게 됐으니까. 이연은 그리스신화 속 영웅이나 현대의 범인 못지않게 ‘그 나머지 사람들을 애정하게되었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을 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들을 변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약한 이들을 깊이 응시하게 되었다. 우선 이연부터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연은 착한 사람보다 성숙한 사람에게 더 끌렸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 P24

-사실 해방 이래 한 번도 돈을 욕망하지 않은 적 없으면서, 겉으로는 노동과 근면을 미덕인 양 가르쳐온 사회가 갑자기 저더러 문맹이라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그간 저나 제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을...... 응, 실존을 부정당한 것 같아서. - P38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임원 연기를 위해 ‘최대한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자. 저 사람들입장에서 느끼고 즐기자‘ 다짐했는데,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어서였다. - P40

꼭 연애 상대가 아니더라도 희주는 ‘일단 만나면 기분좋아지는 사람‘이었다. 많은 얘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찝찝한 후회나 반추를 안 하게 만드는 사람. 상대에게 자신이 판별당하거나 수집당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 근본은 따뜻하되 태도는 선선한 술친구였다.  - P152

몇 년동안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선주 입장에서는 이명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전부터 경수의 현재에서 늘 자신의 미래를 봤으니까. 그리고 그 미래에 자기 곁에는 아마 아무도 없으리라 여겼으니까.
선주는 ‘아직까지는 괜찮아‘ ‘더 버틸 수 있어‘라는 암시로 일상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선주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중요한 문제를 계속 모른 체하고 있다는 걸. 너무 무겁고 괴로운문제라 최대한 그 답을 미루고 있음을. 그리고 그건 기진도 마찬가지였다. - P195

그동안 여러 어려운 일을 겪어왔지만 가끔 이런 자연 속을거닐 때 나는 내가 다른 존재가 됨을 느낀다. 고통이 나를 압도할 때 나는 일부러 집밖으로 나가 수백 년 된 나무들 사이를걷는다. 갓 걸음마를 뗀 아기가 엄마 아빠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듯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공원을 지나간다. 마치거길 다 통과하면 내가 더 자라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런 뒤집으로 돌아와 세상에 고통을 해결해주는 자연 따위는 없음을깨닫는다. 그러곤 이미 아는 걸 한번 더 깨달으려 다음날 다시같은 장소로 나간다. 내 고통에 무심한 자연 앞에서 이상하게안도한다. - P204

엄마와 헤어지고 나니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비로소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안타까움과 미안함, 짜증과 홀가분함, 연민과 죄책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 P209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헌수는 ‘왠지 ‘가지 말라‘는청보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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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최진혁 사진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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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한강 작가의 소설이 쉽게 읽히는 것이 아니기에 이 책을 구매해놓고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시처럼 읽힌다는 짧은 단락의 문장들이 어려울 것 같았다.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올해 그의 작품을 거침없이 읽어보고자 결심했기에 어쨌든 이 책도 시작해야했다. 심호흡을 하며, 책속의 문장들과 단단히 싸워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잘 읽혔다. 막힘없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세상을 더 다양하게 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한 뼘 더 깊이 내려가 더 큰 의미를 알아내려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그들이 살아내는 인생을 이해할 수 있기에 내가 더 착하고 정의롭게 산다고 착각한다.

 

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같은 존재들이 그런 나의 자만을 깨준다. 한강의 은 그 어떤 종류의 필터도 통하지 않고 과거와 사물, 인간을 직접 마주한다. 거기에서 인식하고 느낀 것들을 압축된 문장들로 표현한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안다. 깊이 있지만 애써 그것에 대한 의미를 찾기보다 가볍게, 천천히 읽으며 직관적 느낌으로 이 책을 읽는 것이 더 좋다. 작가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배어 있는 흰(p.186)’이 담긴 글을 쓰기 원했다. 그러기에 이 책에는 작가의 경험과 죽음, ‘에 대한 마음이 들어있다.

 

내가 나고 자란 남쪽의 따뜻한 도시에는 눈을 거의 볼 수 없다. 눈이 내리면 도시가 마비될 정도이다. 어릴 때(아님 중학생 정도일 때) 많은 눈이 내려 그 도시가 하얗게 잠긴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사진기를 꺼내 눈이 쌓인 여러 풍경과 흰 색을 배경으로 한 가족사진을 찍어주셨다. 지금도 그 사진이 남아있다. 집에서 입는 옷차림 그대로, 별 표정 없이 눈 위에 일렬로 선 나의 가족들이 있다. 나에게 은 색깔보다는 이미지와 직관으로 다가온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선명하기도, 흐릿하기도 한 연결고리이다.

 

딸아이를 낳기 전, 배내옷을 장만했을 때, 그 옷이 너무 작아 신기했었다. 이렇게 작은 것으로 어떻게 아기를 감쌀 수 있을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나온 아기는 배내옷보다 훨씬 작았다. 배내옷이 너무 커 어른 옷을 입은 아이처럼 보였다. 배내옷에 폭 파묻힌 생명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눈물이 났다.

 

작가의 어머니는 혼자서 여덟 달 만에 첫 아이를 낳는다. 산달이 많이 남아 아직 아기의 배내옷도 준비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산통을 참으며 흰 천으로 배내옷을 만들고 강보로 쓸 홑이불을 꺼내놓는다.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은 배내옷을 입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이 어떨지, 얼마나 막막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작가는 그때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혹시 자신이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상상하며 폴란드의 바르샤바 거리를 걷는다. 죽은 아기가 살아있는 작가를 찾아오는 길에, 살아있는 아기가 작가대신 사는 삶에 자신의 희망과 웃음을 넣을지도 모른다.


[태어나 두 시간 동안 살아 있었다는 어머니의 첫 아기가 만일 나를 이따금 찾아와 함께 있었다면나로서는 그걸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그이에게는 언어를 배울 시간이 없었으니까한 시간 동안 눈을 열고 어머니 쪽을 바라보았다고 했지만아직 시신경이 깨어나지 않아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오직 목소리만을 들었을 것이다죽지 마죽지 마라 제발알아들을 수 없었을 그 말이 그이가 들은 유일한 음성이었을 것이다.

-p.32]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작가는 아들과 함께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떠난다. 그곳에서 걷고 또 걸으며 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에 대한 글을 쓴다. ‘소년이 온다의 도시와 바르샤바가 흰빛으로 연결되는 느낌이다. ‘에는 왠지 슬픔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재건되고 복구되는 사물과 인간의 힘이 에 담겨있다.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작가는 흰 것의 목록을 만든다. 그 중 하얗게 웃다라는 문장이 있다. 하얗게 웃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백목련에 잠시 머물며 옛 친정집 정원을 생각했고, 백발에 나를 대입했다. 그리고 수의....엄마는 아버지와 당신의 수의를 미리 마련해 두셨다. 아버지에게는 옥색을, 거의 20년 후의 당신에게는 연분홍의 수의를 입혀 세상을 떠났다. 흰 수의가 아니라서 난 조금 덜 슬프게, 하얗게 웃으며 그들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소설을 읽었다. ‘을 주제로 한 각 제목에 짧게 씌여진 문장을 읽으며 천천히 쉬어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직관의 묘미가 가득하다.


[몇 년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였다눈보라가 치는 서울의 언덕길을 그녀는 혼자서 걸어올라가고 있었다우산을 썼지만 소용없었다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얼굴로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알 수 없었다대체 무엇일까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동시에 연약한 것사라지는 것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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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7-04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깊이있는 페넬로페님~!! 큰 스토리가 없어서 금방 읽을수 있었지만 이해하긴 싶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옆에 두고 싶은 작품~! 저는 검은 사슴 읽으려고 준비중입니다~!!

페넬로페 2025-07-04 23:37   좋아요 1 | URL
네, 옆에 두고 조금씩 읽으면 좋을 문장들이 많았어요.
저도 이렇게 짧고도 강렬한 글을 쓰고 싶더라고요. 저는 한강의 여수의 사랑을 다음 책으로 정했어요^^

새파랑 2025-07-05 10:09   좋아요 1 | URL
여수의 사랑 좋습니다. 사랑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레이스 2025-07-05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흰 안에 소제목의 배열과 구조가 연결되더라구요. 놀라웠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쓰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수정을 했다는데 그 과정이 그려졌습니다.

페넬로페 2025-07-05 18:17   좋아요 1 | URL
네, 작가가 당연히 치밀하고 의미있게 연결시켰을 것 같아요.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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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물에서 나와 여기저기로 팔딱팔딱 뛰는 생선 같던 젊은 날의 김영하 소설을 젊은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와 내가 거의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마트한 세상이 약간 고개를 내밀 때, 아직은 촌스러운 낭만과 전근대적 성향이 남아 있었을 때의 김영하 소설은 다른 작가의 글과는 많이 달랐다. 한마디로 신박했다. 민족이나 모든 사람을 위한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그냥 개인이 주인공인 그의 소설이 재미있었고, 공감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동안 김영하 글쓰기는 변화되어 갔으며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갔다. 치열하게 살아낸 결과로 쌓인 궤적이 많지만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니 그것은 넘쳐날 수밖에 없다. 들인 공과 노력이 아깝지만 과감히 쳐내야만 한다. 특히 노년이라는 확실한 길이 보일 때, 급하게 불을 줄이고 필요 없는 것은 걷어내야 한다. 남겨야 할 것은 순수한 관조뿐이다.

 

김영하의 에세이 단 한 번의 삶에서 그것을 보았다. 작가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지만 많이 비워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에피소드와 다른 책의 인용이 조화로웠고, 작가다운 성실한 깊은 성찰이 있었다. 한 번씩 방송매체를 통해 본 작가가 워낙 달변이라 그가 쓴 에세이도 잘 읽힐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부모의 부재는 항상 실감되지 않는다. 평소 잊고 있다가 엉뚱한 곳에서 부모의 부재를 인식하게 되면 그때마다 슬픔을 느낀다. 이 책은 작가의 어머니의 빈소에서 시작된다. 나의 엄마와 비슷한 증상으로,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신 작가의 어머니 얘기에 그만 처음부터 울고 말았다.

 

자식은 부모의 제한된 정보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내가 인식하고 판단하는 부모는 실제와 많이 다를 것이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의 영정사진을 보며 내가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작가 역시 어머니의 빈소에서 인생을 중간에 보게 된 영화 같다고 느낀다. 빈소에서 알게 된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소설에서의 반전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보았던 부모님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실망할 때도 있다. 특히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권위적이었고 다정하지 않았다. 작가 역시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부모의 희망과 기대대로 자식은 잘 움직여주지 않는다. ‘기대와 실망의 왈츠(p.51)’가 계속 엇갈리며 반복된다. 그것이 어느 순간 서로에 의해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 각인되고 쌓인 감정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언제나 어렵다.

 

남들이 가는 길을 절대 그대로 가지 않을 것 같은 작가 인생의 이야기에 재미있는 부분도 많다. 뭔가를 저지르고 실패하고, 다시 재도전해 성과를 내는 작가의 고집도 좋았다. 많이 읽고 많이 쓴 사람답게 평범한 것에서, 느끼고 다듬어 깊은 울림을 주는 작가의 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내가 사는 방식, 늙음, 앞으로 가야할 방향에 대한 편안함과 용기를 얻었다. 대놓고 자기계발서라 이름 붙인 책보다 작가들의 에세이가 훨씬 더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 한번뿐인 삶에서의 인생 사용법(P.194)’을 오랜만에 유쾌하게 읽고 배웠다.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십 년이 여럿 쌓였다. 할 줄 아는 것만 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도 변했다.]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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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6-07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라디오 방송한 적 있는데, 그때 조금 들었어요 텔레비전 방송에 나온 건 본 적 없지만 라디오 방송은 들었네요 부모를 다 아는 자식도 자식을 다 아는 부모도 없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기도 어렵고... 부모를 생각하고 쓰는 사람 대단하다 싶어요


희선

페넬로페 2025-06-07 19:17   좋아요 0 | URL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를 봤는데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잘 하더라고요.
다양한 경험을 한 내용이 이 책에 들어있어 재미있기도 하고 진함도 있어요
부모와 자식 사이는 정말 어려운 관계인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5-06-07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밌게 읽었어요. 김영하 작가 에세이는 좀 취향이 아니다싶었는데 이 책으로 생각 수정했네요. ^^

페넬로페 2025-06-07 23:26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좋았어요.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요. 다만 소설가는 소설이 더 좋아야 한다는 편견으로 별 넷 줬습니다 ㅎㅎ
신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06-08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으면서 예전에 김영하 작가님이 소설가가 되기 전이었던가? 부모님이 말없이 늘 아들의 재떨이를 깨끗하게 씻어 놓아두셨다는 말씀을 하신 게 기억나네요.
저는 그래서 아버지가 좀 다정하신 분이셨나보다. 라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작가님의 자유로운 영혼을 생각해 본다면 부모 입장에서도 좀 쉽지 않은 자식이 아녔을까? 싶기도 하구요. 제 생각입니다만.ㅋㅋㅋ
참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데 요즘은 덥석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달까요?
그래도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즐겨 읽는 편인지라 애껴뒀다 읽어야겠어요.
그나저나 어머님 이야기에 페넬로페 님이 느끼셨을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 저도 모르게 또르르…
부모 이야기는 늘 먹먹한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5-06-08 11:02   좋아요 1 | URL
이 책이 부모님께 헌정되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작가의 부모님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책나무님께서 예상하신 것처럼 이 책 읽으면 김영하 작가가 정말 부모님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던 자식일 것 같아요.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선택도요. 작가의 부모님에 대한 글 읽으면서 예전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엄마의 야로 얘기에도 빵 터졌어요. 그 시대가 야로가 통했거든요. 작가도 늙어 가는지라 깊은 울림도 받았어요. 많이 비우고 욕심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부모님도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우주먼지1059번 2025-06-16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30줄에 접어드는 나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너무 큰 공감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김영하 작가님을 방송에서만 보고 살인자의 기억법을 쓴 유명한 작가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최근 다시 독서를 시작하려고 책을 찾던 중 이 분의 산문집에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해 고르게 되었어요. 근데 최선의 선택이었으며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군요.(취미로 종종 써봤습니다.) 진짜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작가의, 사람들의 인생이야기를 듣는게 더 도움이 된다는것에 큰 공감합니다!

페넬로페 2025-06-16 11:34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죠?
어렵지 않게 잘 읽히면서도 깊이있는 울림도 있고,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고요. 작가님들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가늠을 할 수는 없지만 그 내공이 그대로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거기다 인생이 들어 있어 더 공감되고요.
우주먼지님
어서 글을 쓰시면 좋겠습니다.
빨리 읽고 싶어요^^

젤소민아 2025-07-04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저도 이 책 좀 달리 읽어졌어요. 김영하 작가에 대한 편견이 좀 걷혔다랄까요 ㅎㅎ

페넬로페 2025-07-04 23: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젤소민아님! 책에서 읽는 문장으로 여러 사람과 과거가 많이 생각났어요.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마음가짐도 새롭게 다졌고요.
 
단어가 품은 세계 -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
황선엽 지음 / 빛의서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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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나를 형성하고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무수히 많다. 부질없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육체, 우주, 철학, 도덕, 세계, 자본주의, 사람아무리 생각해도 내 결론은 언어이다.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며 이해하고, 그것으로 나를 표현한다. 언어의 기본인 단어가 나라는 존재를 나타내는 출발인 것이다.

 

강원도 정선으로 방언 답사를 갔을 때, 어떤 어르신이 상추를 부루라고 하는 것을 듣고 시작된 황선엽 저자의 단어 탐구는 지평선이 보이지 않아 넘실대는 바다처럼 보이는 거대한 땅덩이 같다. 인간에 의해 시작된 단어가 땅에 뿌리를 내려 과거와 지금, 시작과 변천, 어원과 옛 문헌을 넘나들며 자라나고 때론 꺾이며, 열매를 맺는 과정을 저자는 생생하게 서술한다.

 

23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장마다 다른 주제로 단어의 세계를 소개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거의 내가 모르는 것들이기에 재미있었다. 강의식으로 서술한 저자의 친절함으로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좋은 강의를 듣고 흡족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말대로 단어의 변화를 들여다보며 인류의 변화상, 민족의 역사, 세태의 변천(p4)’을 엿볼 수 있었다. 외국어 문법은 열심히 공부하지만 우리말 문법은 당연하게 넘어가는 것(p8)에 대한 반성도 했다.

 

일생동안 한국어를 사용해왔고 나름 책도 열심히 읽는다고 자부하지만, 항상 단어의 부족을 느낀다. 글을 쓸 때도 매번 사용하는 단어가 비슷하다. 그렇다고 작가들의 사전에나 나올법한 단어의 남용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전하고자 하는 언어를 평범하면서도 신박하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신조어가 사용되기에 그것을 따라가기도 바쁘다. 사실 내가 탐구하고 공부해야 할 것은 단어나 국어인데, 신조어의 뜻을 몰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 싫어 오히려 그것에 대한 검색을 더 열심히 한다.

 

 

단어가 품은 세계는 정지용의 시 <향수>로 시작된다. 시보다는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의 노래로 먼저 알게 된 이 시(노래)가 너무 좋아 자주 듣고 따라 부르기도 했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얼룩백이 황소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본 적이 없었다. 얼룩백이는 몸에 호랑이처럼 줄무늬를 가진 칡소를 가리킨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누런 소를 한우로 규정하면서 예전에 볼 수 있었던 칡소가 사라졌다. 또한 황소는 누런 소가 아니라 다 성장한 수소를 뜻한다. 그러므로 얼룩백이 황소는 수소 칡소를 말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많은 것을 습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조금만 의문을 품고 생각해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칡소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시 <향수> 얼룩백이 황소는 바로 칡소다. 지금은 누런 소만 쉽게 볼 수 있으나, 원래 우리나라에는 흰 소, 검은 소, 칡소 등 다양한 색의 소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학교에 다닐 땐 선생님들이 왜 그리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켰는지 잘 모르겠다. 음치과에 속하는 나는 그것이 무척 곤혹스러웠다. 어른이 하라고 하니 안 할 수도 없어 할 수 없이 매번 불렀던 노래가 바닷가에서라는 동요였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챕터 11, ‘단어를 아는 과정은 삶을 아는 과정이다에서 저자는 해당화에 대해 언급하며 나의 추억을 소급해준다. 해당화는 장미과에 속하는 것으로 작은 나무에 향이 진한 꽃이 피고 주로 바닷가에서 찾아볼 수(p.141)’ 있다.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 가사에도 들어 있어 해당화는 한국의 토종 장미라고 불린다. 똑같은 한자를 사용하지만 중국에서는 해당화를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당화를 뜻한다. 외국에서 온 꽃사과나무가 산사나무와 비슷해 해당화라고 불렀다.



-산사나무 열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산사나무를 인용한 아름다운 문장이 많다. 민음사 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권의 책표지를 산사나무 잎을 모티프로 디자인 할 정도이다.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을 때 나에게 산사나무는 프랑스와 프루스트 적 느낌이 강한 것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듯한 이국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산사나무 열매는 이미 우리나라의 술 산사춘의 원료이고 탕후루의 원조도 산사나무 열매이다. 산사나무 열매는 신맛이 강해 달게 먹기 위해 탕후루로 만든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으로 이 나무가 전과 다르게 엄청 토속적으로 다가온다. 똑같은 사물과 단어라도 언제, 어디에서 사용되는가에 따라 이렇게나 그 의미나 느낌이 달라진다.

 


엄마는 당신이 나물 요리를 좋아해 반찬으로 많이 만드셨는데 그 중 내가 가장 싫어한 것이 가죽 나물이었다. 가죽나무는 참죽나무와 비교되는데, 참죽나무에 비해 쓸모없는 부분이 많아 가짜라는 의미의 ()’가 붙는다. 참죽나무의 과 대비된다. 저자는 장자<소요유>를 인용하며 가죽나무같이 쓸모없는 것에 대한 미학을 말한다.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엄마가 요리해주었던 가죽 나물은 사실 참죽나무 순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참죽나무를 가죽나무로 부르고 진짜 가죽나무는 개가죽나무라고 한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알았을 때, 요즘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

 

지인의 결혼식으로 강남에 있는 더채플앳청담예식장에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다. 저자는 '더채플앳논현' 결혼식장에 다녀온 적이 있나보다. 저자는 이 결혼식장이 상호를 정한 바탕에는 외래어에 대한 선호와 선망이 들어있다고 했다. 이러한 예가 단지 이것 하나뿐이겠는가? 시어머니가 쉽게 찾아오지 말도록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지어 놓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시댁식구들과 자주 가는 고기집 버드나무식당에서 즐겨 먹는 갈매기살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다. 갈매기살은 갈비와 삼겹살 사이의 부위인데 식감이 소고기와 비슷하다. 갈매기살이라는 단어는 갈매기와 전혀 상관없다. 갈매기살의 갈매기는 가로막이라는 말이 변한 형태이다. 이 부위가 돼지의 갈비와 삼겹살 사이에 있는 것이니 가로막의 의미를 사용해 갈매기살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평소에 왜 갈매기살인지 궁금했지만 한 번도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요즘 어디를 가도 완전 기본이 된 기계 장치가 키오스크. 주로 식당이나 카페, 햄버거 가계에 키오스크라고 불리는 무인단말기가 설치되어 있다. 본래 키오스크는 정자를 뜻하는 페르시아어인데 유럽에 들어오면서 터키풍의 정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말이 가판대란 의미로 바뀌고 현대에는 주문을 위한 무인단말기를 나타내는 것이 되었다.



 -키오스크는 원래 정원 등에 지은 개방형 작은 건물을 뜻했다. 이 말은 궁궐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



-키오스크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전면이 개방된 간이 판매대와 소형 매점을 일컬었다.

 

 

이 책의 내용은 다양하고 범위가 넓다. 고추, 산초, 상추, 강아지풀과 성경의 가라지, 명아주, 김치에 대한 단어의 어원과 유래열일하다’, 구독, 양치질, 낱말 앞에 이 붙는 단어들의 공통점, 순우리말, 지명에 대한 구체적이고 성실한 설명이 있다. 언어에 대한 정책들, 시대의 인권감수성의 반영, 민간어원 등 언어가 가지는 특수성과 문제점에 대한 고찰도 있다.  각 챕터마다 참고할 수 있는 이미지도 풍성하다. 한 책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있어 옆에 두고 여러 번,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훈몽자회로 시작해 고려가요가 나오는 순간 국어는 어려워진다. ‘그려긔, 그려가그려기에 관형격조사나 호격조사가 결합할 때 마지막에 있는가 탈락한다고 하겠지요. 그러다 관형격조사에서도 그려기의 형태가 쓰여 그려기의가 되고 현대국어에서는 호격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남게 된 것입니다.‘라는 문장도 뒷목을 잡게 한다.

 

단어가 품은 세계의 부제목은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이다. 이 책을 읽고 당연히 아는 것이 많아져 삶의 품격이 올라가고 단어의 사용이 풍부해진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국어 수업이라는 말에서 이 책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반부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책의 내용에 전문성이 많아 살짝 어려워진다. 어려워진다는 것은 재미없어진다는 말과 연결된다. 국어학자의 성실과 의무라고 여겨지지만 일반인 독자에게는 갑자기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저자 역시 딱딱한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그것이 우려된다.

 

저자의 강의를 직접 듣는 듯한 이 책은 단어로 시작하지만, 단어에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다. 단어로 시작해 세상의 이치를 알게 하고, 궁극적으로 삶의 자세와 철학을 배우는 중요한 기회를 준다. 봄빛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활기차게 보이는 요즘의 세상을 본다. 천지가 단어 투성이다. 그것에서 말이 이어지고 나의 우주가 열린다.  



**이 글에서 인용한 이미지와 그에 대한 설명은 책에 수록되어 있고 페이지는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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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27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키오스크의 유래 재밌네요. 써먹어야지.... ^^
이 책 읽으면 진짜 삶의 품격이 좀 올라갈까요? 요새 진짜 단어의 빈곤을 너무 많이 느껴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

페넬로페 2025-05-28 00:24   좋아요 1 | URL
키오스크의 어원은 정말 새롭더라고요, 오늘 산책길에서 저도 딸아이에게 키오스크와 갈매기살의 어원과 의미를 설명해줬어요.
이 책 읽으면 삶의 품격보다는 추억이 많이 소환되었어요.
국어 부분에서 깊이 들어갈때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의 악몽같은 문법이 떠오르고요 ㅎㅎ
내용은 정말 풍성합니다^^

그레이스 2025-05-30 09:32   좋아요 1 | URL
정원사에서 배움 ㅋ
근데 이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매번 파고라 라고 했어요 ㅎㅎ
저도 이 책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희선 2025-05-28 0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룩백이 황소나 황소가 누런 소가 아니다는 글을 보니, 이 작가가 예전에 라디오 방송에 나온 게 생각났습니다 그때 듣기는 했는데, 기억하는 건 별로 없네요 그래도 나왔다는 거 기억해서 다행입니다 앞부분은 재미있을 듯한데, 뒤로 가면 어렵게 느껴지겠습니다 해당화 이야기도 했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말을 잘 알고 딱 알맞은 데 쓰면 참 좋을 텐데, 어려운 일이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5-05-28 08:35   좋아요 1 | URL
아, 그랬군요,
저는 처음 접한 내용이라 새로웠어요. 제가 위에 인용한 것은 이 책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잘 기억을 못할 것 같아요.

단어를 적시적소에 잘 사용하는 것이 매번 어려워요.

희선 2025-06-07 16:33   좋아요 0 | URL
이걸 쓰고 얼마 뒤에 이중섭이 그린 소가 칡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소가 있는 게 더 좋을 텐데, 어쩌다가 누런 소만 남은 건지 아쉽기도 하네요


희선

새파랑 2025-05-28 0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칡소 처음 봤는데 우리나라 소 맞나요? ㅋ 저도 맨날 쓰는 단어만 쓰는거 같아요. 어휘력 부족 ㅜㅜ

페넬로페 2025-05-28 10:43   좋아요 2 | URL
네, 예전에는 검은 소, 칡소 같은 얼룩소가 있었는데, 누런소를 한우로 규정하면서 사라졌다고 해요.
이 책을 읽어도 어휘력은 별로 높아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몰랐던 단어의 세계가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