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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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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벙어리 같은 웅얼거림과 눈먼 대화 속에, 공포와 희망과 고통으로 묶인 이들의 빽빽한 뒤섞임 속에, 같은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사이의 몰이해와 증오 속에, 20세기의 재앙들 중 하나가 비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 P37

밤이 지나갔다. 불타버린 잡초 위에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강물이 음울하게 숨 쉬며 제방에 부딪쳐왔다. 파헤쳐진 대지, 다 타버리고 남은 빈 건물 속 잔해를 보는 심장마다 온통 슬픔이 밀어닥쳤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지금, 전쟁은 이 하루를 검은 연기와 쇄석과 쇳조각으로, 피로 물든 붕대로 가득 채우고자 아낌없이 준비하고 있었다. 지나온 날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는 쇠붙이로 파헤쳐진 땅과 불로 가득 찬 하늘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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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 -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
SUN 도슨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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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된, 우리가 거의 아는 작가들의 그림을 쉽게 소개한 책!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약간의 에피소드와 짤막한 설명들이 재미있게 읽힌다. 고흐, 피카소, 마티스, 샤갈, 마그리트, 호퍼, 리히텐슈타인, 키스 해링..언젠가 한번은 이들을 보기 위해 뉴욕 모마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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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논픽션의 페르소나는 대리인이 아니다. 논픽션 작가는소설가나 시인이라면 거리를 둘 수 있는 변명과 낭패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소파에 드러눕는 거나매한가지다. 설령 작가가 자발적으로 그리 한다 해도 이런 전략은 대개 잘 먹히지도 않는다. 대체 몇 년이나 소파에 누워 있어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넋두리와 푸념, 자기혐오와자기변명만 늘어놨다간, 작가 자신 말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지루해할 텐데 말이다. - P11

작가의 대리인이 아닌 서술자는 자신의 사소한 관심사를 널리 공감할 수 있는 초연한 이야기로바꾸어, 무관심한 독자에게도 가치 있는 글을 써내야 하는 엄청난 과제를 떠맡는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에세이나 회고록을 쓸 때는 그런 페르소니를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조명 도구나 마찬가지다. 이게 없으면, 주제도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회고록이나에세이를 쓰는 작가는 그런 페르소나를 빚어내기 위해 소설가나 시인처럼 자기 성찰이라는 견습 기간을 거치며, 왜 말하는가.
누가 말하는가를 동시에 알아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 P12

모든 문학 작품에는 상황과 이야기가 있다. 상황이란 맥락이나 주변 환경, (가끔은 플롯을 의미하며, 이야기란 작가의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감정적 경험, 혹은 통찰과 지혜, 혹은작가가 전하고픈 말이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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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5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5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이란, 아무리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은 흔히 타인의 삶에 관해 뭔가 정확한 세부사항을 알면, 그로부터 정확하지 않은 결론을 도출하고, 또 새로이 발견한 이 사실에서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에 대한 설명을 찾기 때문이다. - P14

원래 우연성의 현실 세계보다 가능성의 세계에 더 많이 
열려 있던 내게 이런 일은 그만큼 더 위험했다. 
가능성의 세계는 인간의 영혼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지만, 
개인에게 속을 위험이 있다. 내 질투는가능성이 아닌 
이미지에서, 내게 고통을 주기 위해 생겨난 것이었다. 그런데 개인과 민족의 삶에서 (따라서 내 삶에서도 언젠가는 틀림없이 일어날) 어느 한순간 우리는,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공간 속에 숨겨진 가능성을 꿈꾸는 대신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성찰하고 생각하는 경찰청장이나 명철한 시각의 외교관 또는 수사반장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 P38

그때 굶주린 회복기 환자가 아직 허락되지 않은 온갖 음식을 미리 다 먹어 치우듯, 나는 알베르틴과의 결혼이 나를 다른 존재에게 바치는 지나치게 무거운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또 그녀의 지속적인 현존 때문에 나 자신이 부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영원히나로부터 고독의 기쁨을 빼앗음으로써 내 삶을 망가뜨리지않을지 자문해 보았다. 고독의 기쁨만이 아니다. 비록 내가 그런 날들에 바라는 것이 욕망뿐이라 할지라도 사물이 아닌존재가 야기하는 욕망 -그런 욕망 중에는 개인적인 
성격의것도 존재한다.  - P43

날씨가 나쁠 때에도 납작한 모자를 쓰고 모피 코트 
차림으로 장을 보려고 걸어서 외출하는 공작 부인을 안마당에서 마주칠 때가 가끔 있었다. 공작령도 공국도 없어진지금 게르망트 공작 부인이라는 이름이 무의미해지면서, 이제 그녀가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저 그런 여인에 불과해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존재와 고장을 향유하는 방식에서다른 관점을 택하고 있었다. 나쁜 날씨를 무릅쓰고 외출하는이 모피 코트 차림의 부인이, 내게는 공작 부인과 대공 부인과자작 부인으로서 소유하는 그 모든 영지의 성들을 그녀와 함께 가지고 다니는 듯 보였는데, 이는 마치 대성당 정문 상인방에 조각된 인물들이 그들이 건설한 대성당이나 수호하는 도시를 손에 들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런 성과숲 들을, 나는 내 정신의 눈을 통해서만 왕의 사촌 누이인 그모피 코트 입은 여인의 장갑 낀 손에서 볼 수 있었다.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에 내 육체의 눈이 식별해 내는 것은, 공작 부인이 들고 다니기를 꺼리지 않는 우산뿐이었다.  - P49

우리가 흔히농담으로 하는 말들은 대개는 그 농담과는 반대로, 우리가 어려움에 시달리며, 하지만 어려움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으며, 더 나아가 우리와 얘기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농담하는 걸 들으면서,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어 주기를 바라는 은밀한 기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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