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체크><홈파티>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인 보이체크를 알게 된 것은 김애란의 단편소설 <홈 파티>에서였다. 작가가 자신의 글에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인용하는 건 그 작품에 들어있는 어떤 의미를 가져오고 싶어서일 것이다. <보이체크>의 본문에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 내용을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웠다. 세 번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확실한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1836년경에 쓰인 <보이체크>는 미완성 희곡이다.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출판업자인 카를 에밀 프란초스가 다시 정리해 1879년 뷔히너 전집에 넣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 희곡의 주인공인 보이체크는 실존 인물이다.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1821년 어떤 과부를 살해하고, 1824년 라이프치히 시청 앞 광장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보이체크는 어린 시절부터 힘든 삶을 살아갔고 용병으로 군대를 전전한다. 군 생활을 마감하고 1818년 라이프치히로 돌아와 과부 우스트와 연인관계가 되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자 보이체크는 칼로 찔러 죽인다. 그동안 보이체크는 실직해 일이 없는 상태에서 구걸과 노숙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상태였다.

 

[뷔히너는 이 사건에다 여러 다른 소재를 버무려 한 인간의 개인적 비극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여기서 비극은 목적론적인 운명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존재 목적이 다른 어떤 존재에 있다면 개인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 뷔히너는 그런 목적론에 반기를 든다.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역사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회적역사적 결정론과 자기 소외는 뷔히너 문학의 주요 특징이다.

 

사회사적으로 보면 보이체크는 가장 비천한 계층 출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독일 최초의 비극이다....이 작품에서 그는 주체적 인간이 아닌 타인의 도구이자 사회적 상황으로 파탄 난 개체로 그려진다.

-p.373~374, 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역자해설 중에서]

 

 

이렇게 보이체크에 대한 배경을 알고 나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졌다. 왜 보이체크에게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일 정도로 내내 불안해하며, 정신없이 쫓기듯 뛰어다니며 일을 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보이체크는 이발사로 대위의 시중을 들고, 완두콩만 먹으며 의사의 실험 대상이 된다. 아내 마리와 아기를 위해 쉴 새 없이 돈을 벌어야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리는 남자들의 유혹 대상이 되고 결국 군악대장에게 넘어가고 만다. 보이체크는 본래 가지고 있던 불안과 세상에 대한 분노, 사랑에 대한 질투로 아내 마리를 살해한다.

 

김애란 작가는 홈 파티에서 배우인 이연의 입을 통해 왜 보이체크는 자신의 진짜 적인 대위나 군악대장, 하다못해 의사도 아닌 마리를 죽였는지 모르겠다고 질문한다.(p.31)" 이연의 말처럼 보이체크는 자신에게 착하지만 덕이 없다고 말하는 대위에게도, 자신을 짐승처럼 대하는 의사에게도, 아내에게 추근대는 군악대장에게도 아무 반발을 하지 못한다.

 

전염병의 영향으로 모든 바깥활동이 제약을 받을 때, 이연은 대학 동기인 성민의 초대로 오대표의 홈 파티에 가게 된다. 모 대학의 반년짜리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난, 마음 맞는 몇 명이 집에서 만나는데 특별손님으로 끼이게 된 것이다. 계산이 정확한, 상류사회에 속한 그들은 처음에는 이연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러다 결국 돈에 대한 얘기에 집중한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그들 안의 생각으로만 정리한다. 그들에게 보이체크는 고유명사에 불과한, 아는 체하기 알맞은, 한때의 추억일 뿐이다. 보이체크와 같은 부류의 타인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부담 없이 가볍게 간 이연은 평소 술을 좋아하면서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물만 마신다. 자신과 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그저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러다 점점 그들의 생각과 말에 불편해진다.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와인을 마시며 그들의 말에 반박하고 급기야 먼저 집에 가겠다고 일어나면서 오대표의 80년 된 영국산 빈티지 커피 잔을 와장창 깨뜨리고 만다.

 

이연은 흔들렸지만, 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고 있다. 이연이 보이체크에게 품었던 의문을 이연 스스로 답해주고 있다. 보이체크의 분노가 위가 아닌 아래로 향했듯이 이연 역시 자신이 흔들리고 실수하고 만다. 왜 항상 그들은 성처럼 굳건하고 완고한데 그 나머지사람은 실수하고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지....물론 이연과 보이체크를 그대로 비교할 순 없지만, 어쨌든 불안과 허무, 소외를 느끼는 쪽은 항상 그 나머지사람 쪽이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는이연과 보이체크는 각자의 방식으로 쓸쓸하고도 허무하게 홈 파티와 무대에서 내려온다.

 

[그렇지만, 아니 그렇다 해도 이연은 이 연극을 이대로 마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연은 무대에서 중요한 대사를 치기 전 순간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며 거실 창문 너머 하늘을 봤다. 미세먼지 탓인지 달이 비현실적으로 붉었다.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 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

-p.42, ‘홈 파티중에서]

 

 

<당통의 죽음>

 

혁명이란 단어처럼 이율배반적인 것이 있을까! 고통의 과부하에 짓눌리다 필연적으로 뭔가를 전복시키지만, 분명 혁명의 목적은 민중의 해피엔딩이다. 그 과정에서 폭력과 죽음은 어쩔 수없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뷔히너의 희곡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만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알다시피 프랑스 혁명은 과정이 워낙 복잡하다.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은 에베르파가 처형된 후 당통마저 사형당할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p.239, 작품해설 중에서)’ 여기에는 국민공회 대의원과 공안위원회 위원 등 여러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

 

실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는 당통파에 대한 숙청을 계획한다. 당통은 맞서든지, 도망을 가든지 해야 하지만, 이미 혁명에 대해 전의를 상실하고 피로감에 젖은 당통은 죽음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열렬히 원하고 실행시킨 혁명의 결과가 그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에 대해 당통은 허무함을 느낀다. 당통이 죽고 얼마 뒤 단두대에 올라 갈 로베스피에르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정적을 제거하고 혁명을 계속 진행한다.

 

프랑스 혁명이 남긴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듯이 이 희곡도 복잡하다. 일단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면 좋고,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사이의 의견 차이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차이에 대한 서로의 이해 부족은 모든 권력이 가진 속성이자 민중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혁명의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폭력과 공포가 따른다는 사실도 아이러니다.

 

[당통: ()안에 있지. 어디 한번 무의 세계보다 더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곳에 빠져 보게나. 최고의 안식을 주는 것이 신이라면 무가 곧 신이 아닌가? 하지만 난 무신론자야. ‘그 무언가는 무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은 지긋지긋해. 그런데 나는 그 무엇이야. 비통한 노릇이지! 창조가 자리를 다 차지하는 바람에, 무의 자리는 텅 비어있어. 어딜 가나 창조가 득시글거려. 무는 자살했고, 창조는 무의 상처야. 우리는 무의 핏방울이고, 세계는 무가 썩어 가는 무덤이야.

-p.188]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당통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책이다. 발자크,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의 여러 소설에서도 이 시기가 다뤄지기에 한 번쯤은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다. 노명식 선생이 쓴 이 책은 프랑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한국 대학생들과 일반 독자들이 근대 시민혁명의 전형인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에 전개된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도록 기획되었다. 선생의 말대로 이 책은 쉽게 읽히며 연대기 순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여러 각도에서 다채롭게 프랑스 혁명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다만 내용이 워낙 많아 요즘처럼 돌아서면 까먹는 내 뇌가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할지 걱정된다. 역사는 암기가 필수인가보다.



 

 

 

 

 

 






<레옹스와 레나>

 

뷔히너의 유일한 희극인 레옹스와 레나는 희극작품답게 언어유희와 풍자가 가득한 극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의 희극에서 보이는 왁자지껄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은 오히려 비극적 인물인 햄릿을 닮은 레옹스 왕자의 내면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세상 모든 것에 시큰둥하고 지루함을 느끼는 우울한 왕자 레옹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가 단짝인 발레리오(희극의 광대와 비슷한 역할)와 주고받는 대사는 그 어떤 것에 대비시켜도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발레리오는 레옹스를 글자 없는 책(왕자가 자신의 삶을 빈 종이에 비유한 것을 빗댄 말)’이라고 하며 현실적 이기보다 이상주의자인 왕자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포포 왕국의 왕자인 레옹스와 피피 왕국의 공주 레나는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 페터 왕은 그들의 결혼식 날에 레옹스에게 왕위를 물려줄 예정이다. 레옹스와 레나는 둘 다 그런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해 각자 이탈리아로 도망간다. 여행도중 우연히 한 여관에서 만난 레옹스와 레나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이 희극에는 정치적 풍자가 많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경직된 관료사회의 모습을 웃기게보여준다. 신랑과 신부가 없음에도 왕은 체면이 깎이지 않기 위해 정해진 날짜에 결혼식을 진행시키고자 한다. 거리에 농부들을 동원시키고, 발레리오가 레옹스와 레나에게 가면을 씌워 자동기계라고 속여 그것으로 신랑 신부를 대신하자고 해도 왕은 받아들인다. 실체가 없어도 형식만 갖춘다면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다.

 

가면이 벗겨지고, 레옹스와 레나는 서로의 진짜 존재를 알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정해진 날짜에 결혼식까지 진행되며 막을 내린다. 이 극은 행복한 결말을 맞아 전형적인 희극처럼 보이지만, 다른 희극에 비해 훨씬 더 진행과정이 치밀하고 연결과정이 매끄럽다. 대사에 들어있는 여러 비유도 의미가 깊어 생각할 것이 많다. 물론 이 극에 들어있는 유머도 좋다.

 

[왕자님, 제가 인간 삶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좀 씨불여 볼 테니까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는 상처 난 발로 추위와 뙤약볕을 뚫고 이 짐을 질질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저녁에라도 깨끗한 셔츠를 한번 입고 싶어서요. 그런데 막상 저녁이 되면 이놈의 이마에는 주름이 파이고, 뺨은 움푹 들어가고, 눈은 침침해집니다. 그래도 이제 셔츠를 갈아입나 했더니 그게 수의인 거죠.....왕자님, 이제 여기서 응용과 실천이 나옵니다. 우리는 순전히 수치심 때문에 내면의 인간에게도 저고리와 바지를 입히고, 그 안에 속옷을 입히려고 합니다.

-p.216, 발레리오의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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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1-24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이체크!
이연의 대화에 있었군요. 시간이 지났다고 기억이 가물하네요.ㅜ.ㅜ
페넬로페 님 덕분에 프랑스 역사 일부분도 주워 읽고 갑니다. 큰공부가 되었어요. 나중에 희곡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주인공 이연의 어떤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았느냐면요. 상류층 계급에 속한 듯한 그 무리들 속에서 겉도는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으려 곧은 매무새로 잘 유지하다가 빈티지 커피잔을 깨뜨려 어떡해야 할지 난감할 때 이연은 상대가 원하는 하나를 내줘야 이긴다?(맞는지 모르겠네요?) 그 말이 떠올라 오늘 어땠냐는 오대표의 질문에 굉장히 즐거웠다고 오대표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준 그 장면이 참 인상깊었어요.
오대표는 빈티지 잔이 깨졌을 때보다 이연의 그 대답에 순간 표정이 살짝 굳어졌었다고 하여 오대표는 처음부터 이연에게 계급의 속성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위선을 가진 자처럼 보였었고 그리고 오대표가 원한 그 대답을 할 수 있었던 이연도 ‘몸이 차가우면 더 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글을 읽으면서 본인이 차가워지기로 결심한 바로 그 순간이었던 건가? 그런 생각도 드네요. 읽고 나서 좀 씁쓸했었던 단편이었어요.

페넬로페 2026-01-24 18:13   좋아요 0 | URL
이 소설집에서 저는 <홈 파티>가 제일 인상적이었고 좋았어요. 저도 그랬어요.
이연이 오히려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서 하나를 내주는 거요.
근데 그 부분이 또 너무 씁쓸한거예요 ㅠㅠ
저도 이연처럼 그런 자리에서 괜히 주눅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신형철 평론가가 김애란 작가를 사회학자라고 표현한 게 이해가 돼요.
이 책이 좋았지만 너무 지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서 4별 줬어요.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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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말하고, 비틀고, 깎아낸 문장에 너무 공감되어 한편으로 화가 나고 분노가 치민다. 왜 저쪽에 비해 이쪽은 매번 뒤로 물러나고 외롭고 허무해야 하는가? 언제쯤 여기도 ‘서사적 윤기’가 자르르 흘러내릴지...나 역시 김애란 작가가 쓴 ‘시절의 안녕과 모두의 안녕을 빌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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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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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사탄탱고는 소설이지만 한 편의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듯했다.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황량함만 있는, 해체된 집단농장 마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없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당연히 있어야 할 최소한의 온기도 없었다. 생산적인 것과 물리적 육체를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떠나지 못하는 자들에게 필수적인 알코올과 상실, 경멸, 의심, 비천한 성욕만 있을 뿐이었다. 이 어둠을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너무나 잘 부각시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소설은 어떤 계절에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 한겨울에 읽은 사탄탱고는 나에게 한없는 우울감을 주었다. 읽는 내내 힘들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는 가을비와 그로 인해 질척거리고 악취 나는 진흙바다(p.13)’를 마치 내가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망 없음의 허무를 술로 달래는 마을 사람들의 취기역시 늪 같았고, 가난하면 특히 더 열악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어린 소녀들의 하루에 마음이 아팠다.

 

 

이 소설은 1부와 2부와 구성되어 있는데, 2부는 거꾸로 진행되어 결국 소설의 처음과 끝은 똑같은 장면과 문장으로 만난다. ‘원이 닫히며 그 안의 인간들은 영원의 원속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한다. 그들은 계속 원을 그리며 결코 구원되지 못할 구원을 바라고 있다. 라슬로가 인용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구절처럼 역설적이다.

 

1980년대 헝가리 집단농장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가는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을 바란다. 소설 전반에 걸쳐 들리는 종소리는 그런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소성당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전쟁으로 종탑마저 무너져 종이 울릴 리 없는데도, 들리는 종소리는 구원을 바라는 그들 마음의 바람이다. 나중에 밝혀진 터무니없는 종소리의 실체는 무의미한 구원의 바람에 대한 뒤늦은 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마을을 떠나야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결단을 내지 못한다. 서로 돈으로 얽혀 있고, 공산주의 사회 특성상 항상 감시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이리미아시는 사실 사기꾼이며 공산당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이리미아시는 권력 앞에서는 약자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희망을 주는 구세주 같은 사람으로 군림한다.

 

[그자들은 여전히 더러운 의자에 주저앉아 저녁마다 감자 요리나 먹으면서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의아해하고 있을걸. 의심에 가득 차 서로를 감시하고 조용한 방에서 큰 소리로 트림이나 하고, 그리고? 기다리는 거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끝도 없이 기다리다가, 누군가 자기들을 속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겠지.....그자들은 옛날 성에서 시중을 들던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주인 잃은 노예들인 주제에 명예와 자부심과 용기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들 하지. 둔한 마음 깊은 곳에선 저런 덕목들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감지하고 있겠지만 말이야. -p.71]

 

이렇게 마을 사람들을 대하는 이리미아시는 그들이 가진 마지막 돈을 갈취하고자 마을로 돌아온다. 이리미아시는 마을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다만 이리미아시의 조언으로 한 번 돈을 벌게 된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이리미아시를 그들과 다른 존재로 생각한다. 극도의 가난과 계속되는 좌절, 권력으로부터의 심한 감시는 사람들을 수동적이 되게 하며 어긋난 믿음을 갖게 만든다.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다는 것을 아는 이리미아시는 그들을 선동한다. 선동은 생각이 확고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자기 스스로 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인식한 이리미아시는 사람들을 선동하며 그들이 자신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따를 것임을 확신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그런 기회를 주었으며, 그것은 자신의 주체와 자유를 사탄에게 양도한 것과 마찬가지다.

 

마을의 의사는 지식인이며 생활에 필요한 돈을 가지고 있다. 의사만이 오늘 하루를 살 걱정이 아닌 헝가리라는 나라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창밖의 농장을 내다보기 위한 집 안의 최적의 장소에 겨울 외투와 이불을 채워 넣은 의자를 놓아두고 거의 하루 종일 앉아있다.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독서하고 일기를 쓴다. 쉴 새 없이 독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집 안팎이 엉망이 되어 가는데도 의사는 칩거하며 술만 마신다. 의사는 주변의 외적인 몰락에 맞서 자신의 기억력만을 지키고자 한다. 농장이 해체되고 정직된 그 역시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몰락에 맞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스스로 자신을 유폐시킨다. 행동하지 못한 기억의 잔존은 그 어떤 의미도 없다. 전의를 상실한 의사는 무기력하며 투쟁하지 않는 지식인의 전형이다.

 

이리미아시가 온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며 술집에 모인다. ‘몇 년 동안 계속되어온 비참과 불행에 종지부를 찍을(p.194)’ 생각에 희망이 샘솟는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그들을 구하러 목자가 온다는 소식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마시고 또 마신다. 종소리와 함께 이 소설의 중요한 상징인 거미가 끊임없이 거미줄을 치는 술집에서, 그들은 마시며 탱고를 춘다.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술집의 모든 곳에 달려있는 거미줄에 뒤엉켜 잠시 동안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 부분이 소설의 정점이다. 결코 끝나지 않을 그들의 어긋난 희망과 구원은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댄다. 작가는 그것을 불행한 사탄탱고라 이름 붙였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리미아시의 보고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단박에 설명해준다. 그것을 하나하나 윗사람이 읽기 쉬운 문장으로 다시 고치는 서기들의 모습에 공산주의의 허상이 드러난다. 라슬로는 망해가는 공산주의를 희화화시키며 헝가리의 미래를 예견한다.

 

라슬로가 사용한 문장은 시종일관 비관적이고 암울하다. 마을 사람들이 궤짝에 짐을 싣고 떠나는 모습, 방앗간에서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는 두 소녀 머리와 율리, 어쩔 수 없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어린 소녀 애슈티케, 곧 죽을 것 같은 의사, 뿔뿔이 흩어져 여전히 힘들게 살 마을 사람들....희망이 없는 곳에 구원 역시 없다는 것을 작가는 단호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상징으로 이루어진 종교적이며 현실적인 암시는 지금 이 시대의 나에게까지 연결된다.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고 매번 생각하는 나에게 라슬로는 쐐기를 박아주었다.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이 한편의 소설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았고, 그가 시도한 소설작법역시 작가의 의도를 돋보이게 했다. 각 인물의 특징과 존재가 두드러지면서 서사로 잘 연결되었다. 이 소설은 약간 어려웠지만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직관적으로 느끼고 이해시키면서도, 읽고 난 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마음을 무겁게 만든 작가의 문장들이 정말 탁월했다.

 

[그는 지금 굶주리고 얻어맞은 몸이 되어, 느닷없이 나타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에 앉아 있었다. 갈림길이 나와도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은 그가 아니었고, 덜컹거리며 달리는 낡은 트럭이 자신의 생을 결정짓는 것을 그는 다만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헤어날 길이 없다.’ 무감각하게 그는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망한 거고, 내일은 또 나를 기다리는 일이 뭔지도 모르는 채 낯선 방에서 깨어나겠지. 마치 혼자 길을 떠난 것처럼 얼마 되지도 않는 짐들을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놓고서....글쎄, 침대라도 있을까....창가에서 불빛들이 꺼져가는 걸 바라보겠지.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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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6-01-18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스트 울프> 분량이 다른 소설에 비해 얇고, 이 책을 추천한 독서 모임 독자를 위해서 3월 모임 때 읽기로 했어요. <사탄 탱고>와 <라스트 울프>를 읽어봤는데,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 애먹었어요. 눈을 바쁘게 움직이면서 문장을 쫓아가듯이 읽었는데, 팍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어려웠던 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6-01-18 22:46   좋아요 0 | URL
네, 조금 어려웠어요.
헝가리 역사를 세계사의 흐름에서 약간만 알고 있으니 작가가 사용한 상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직관적으로 의미를 이해했어요. 차차 다른 작품 읽어가며 조금씩 더 알아가리라 생각했어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저는 작품이 좋더라고요.^^

그레이스 2026-01-19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써서 올렸네요;;;
왤케 정신이 없는지...^^

페넬로페 2026-01-20 08:06   좋아요 1 | URL
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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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과 함께 비를 머금은 눈발이 내리는 날엔 따뜻한 커피가 제격이다. 브라질 다테하 버본 컬렉션은 첫 모금에 진하고 쓴 맛이 느껴진다. 별 개성 없는 커피라 여겨질 쯤 뒷맛에 남는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진하게 내려 달콤한 케잌과 함께 먹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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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경찰청 보안국 소속의 남영동 대공분실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악명 높은 곳이었다. 그곳에 무고한 많은 사람이 끌려갔고 일단 들어가면 목숨만 붙은 채 만신창이가 되어 나왔다. 드러내지 않고 숨은 채, 조작하고 부풀려 인권을 파괴하고 인간의 육체를 훼손시켰다. 통행금지가 있고 오후 여섯시가 되면 온 국민이 태극기를 향해 멈춰 서 있어야 했던 시절, ‘불온이란 낙인이 모든 것에 붙을 수 있었던 그 시절에, ‘남영동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사람들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경험하지 않아도 치가 떨리는 끔찍함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변했다.(그 와중에 마주한 계엄이라는 황당함은 생각하기도 싫다) 온통 AI 얘기뿐이다. AI 시대에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잊혀진지 오래다. MZ세대는 그런 곳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그 와중에 만난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 혼모노에 수록된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놀라웠다. 1994년생 작가가 그런 소재를 가져온 것도 그렇지만, 사람을 고문하기 위한 장소를 설계하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 신선하고도 충격적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반 유신운동이 거세지자 정부는 1974년 긴급조치를 시행한다. 정부가 불온세력으로 간주한 이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하자 그 수는 급격히 증가한다. 포화상태가 된 그들을 수용할 새로운 시설이 필요했고 내무부 장관의 지시로 갈월동 부지 사업의 건축가로 여재화 교수가 위임된다. 건물의 사용 목적을 알았기에 위임보다는 여재화의 수용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여재화는 재능은 있는데 야망은 없는, 주무르기 쉽다고(p.162)’ 생각한 제자 구보승에게 조수로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구보승은 취조를 해도 실토하지 않는 이들이 최후로 방문하는 밀실(p.176)’을 설계하기 위한 일을 받아들인다. 구보승은 그때부터 여재화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치밀하게 설계해 나간다. 건물의 존재이유와 목적에만 충실한 채, 사람을 고문해 거짓이라도 실토하게 만들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공간을 만들기에 최선을 다한다.

 

매일 정오, 십분만 빛이 들어오는 폭이 좁은 수직 창, 눈을 가린 채 계단을 오르는 사람에게 안정성을 빼앗고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60센티미터 너비의 급경사 나선형 계단, 취조실마다 출입문을 엇갈리게 해 피조사자들이 내통하는 것을 방지함, 벽면은 유공흡음관으로 마감해 비명 소리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함, 대신 복도 천장을 높여 취조실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다른 방에서 듣게 해 공포를 유발시킴, 전등갓에 철제 덮개를 씌워 자살이나 인질극에 대비함, 물고문을 위해 바닥은 방수 모르타르로 처리함, 안에서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목적의 외시경을 반대로 바깥에서 안을 감시할 수 있도록 바꿈.......

 

건축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공간에서 생활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가르친 여재화는 구보승의 설계에 경악하며 그에게 지독하다고 말한다. 야심에 차 이 건물의 설계를 수락했지만 여재화는 설계하는 도중 회의감과 공허함을 느낀다. 그는 건물의 용도에 맞는 설계를 하면서도 피조사자의 한 줌도 안 될 인간다움(p.181)’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반면 구보승은 철저히 건물의 목적과 건물 안에 들어갈 인간의 합리성만을 고려한다. 그것이 완벽하지 않다면 애초 그 건물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인간적이라 여재화는 구보승보다 나은 인물일까? 사람의 관점과 지향점에 따라 희망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비록 대공분실에 끌려왔지만 버티고 고초를 견뎌 그곳에서 나갈 수 있는 것에 여재화는 희망을 뒀다.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구보승은 철저히 건물의 목적에 부합한 희망만을 보았다. 물론 두 사람이 말한 희망엔 희망이 없다. 희망이 필요한 인간에게 대공분실이라는 건물은 시작부터 희망을 삭제한다.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p.192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라고요. 저는 그 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저히 인간을 위해 이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p.192~193]


2025610남영동 대공분실부지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이 개관되었다.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박종철 열사의 소식이 알려져 19876.10 항쟁으로 이어졌고 6.29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 건물에서 이루어진 무수한 폭력은 인간(약자)에게 가해진 권력의 횡포였다.

 

소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를 읽고 이곳을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날씨가 추웠지만 친구 카리나님과 갈월동에 다녀왔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M1구역과 M2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M1구역은 신축한 건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담은 상설전시관이다. M2구역은 옛 대공분실 건물을 그대로 둔 채 리모델링을 거쳐 그때의 상황과 피조사들이 겪은 고초를 보여주는 곳이다. 대체적으로 성해나 작가는 이 소설에 대공분실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대공분실 정문은 높고 굵은 철문으로 되어있다. 철문 밑에 작은 바퀴가 달려 문을 옆으로 열고 닫는다. 눈을 가리고, 머리를 깊숙이 숙인 채 끌려오는 피조사들은 이미 처음부터 이 철문 열리는 소리에 두려움을 느낀다. 마치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소설에는 3층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취조실이 5층에 위치하고 있다. 5층에만 있는 폭이 좁은 수직 창은 이 건물이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소설에는 정오에 단 십분만 빛이 들어온다고 했지만, 남향에 위치한 이 건물의 특성상 더 많은 시간동안 빛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나선형 계단은 1층부터 5층까지 층의 구분이 없이 이어져있다. 생각보다 더 폭이 좁고 가파르다. 어떤 피조사자는 눈이 가린 채 이 계단을 올라가며 지하로 내려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방향감각이 무뎌진데다가 계단 폭이 좁고 경사가 가팔라 안정성마저 상실된다면, 그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극대화될 것(p.188)’이라는 설계자의 의도대로이다.


취조실의 각 방은 서로 내통하지 못하도록 출입문이 엇갈려 있다.


각 방의 벽은 유공흡음관으로 마감해 비명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대공분실은 남영역과 붙어있어 전철이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로 안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그 당시에 이미 대공분실은 취조실에 cctv와 마이크를 설치해 피조사자의 모든 것을 감시가능하게 했다.


고 박종철 열사가 갇혀서 물고문을 받던 9호실.

이 방은 중요한 역사 현장이기에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고 박종철 열사의 사망진단서.

여기에 용기 낸 사람들의 결단이 담겨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늦게까지 성취되지 못했을 것이다.


건물 앞 잔디밭은 그 당시에 테니스장이 있던 곳이다. 취조실에 고통에 빠진 사람이 죽어나가도 형사들은 체력 단련을 위해 테니스를 쳤다. 그들이 치고받는 테니스공 소리와 웃음소리를 듣는 피조사자들의 마음은 어땠을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대한 여러 포스터이다. 그 중 이 포스터가 마음에 와 닿았다.

페미니즘이 없다면 데모크라시가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당대가 아닌 후대에 평가받는다. 이 사실을 몰랐을까? 이 건물에 꼭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싶었던 사람은 세월이 흐른다는 것과 세상은 변한다는 사실을 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으며 신념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을 것이다. 구보승처럼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p.201)'고 지하에서 자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도 사람들은 눈을 가린 채 끌려갔고, 계속 눈을 가린 채 취조를 받는다.(이 장면은 보여 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그들은 의족을 찬 사람(경찰)의 엇갈리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삐걱삐걱.... 사회에 복귀한 바히드는 그런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곳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청각으로 남은 상처와 억울함은 평생 바히드를 따라다닐 것이다.

 

폭력을 위한 건물의 모든 것에 관여한 사람들 모두 피조사자들의 트라우마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나와 건강을 회복하고, 법적으로 보상을 받았다 할지라도 계속 남아있는 트라우마에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폭력은 없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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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1-08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해나 작가의 구의집 갈월동98번지가 그런 내용이군요.
박종철 열사와 같은 시대 대학을 다닌 사람으로서 사진만 봐도 마음이 저며옵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왔고 또 어떤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페넬로페 2026-01-08 20:46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세대라 이 소설의 내용에 관심이 많이 갔고, 꼭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가보고 싶었어요. 박종철열사의 9호실 방 앞에서 묵념을 할 때 뭉클하더라고요.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남은 생을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그의 부모님의 마음도 헤아려졌어요. 지금 우리의 세상은 그래도 많이 달라졌다고 믿고 싶어요.

잉크냄새 2026-01-08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군요. 12.3 계엄 세력이 꿈 꾼 세상이 바로 소설 속의 그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페넬로페 2026-01-08 20:48   좋아요 1 | URL
12.3 계엄 세력이 아마 이 때의 권력을 꿈꾼 것 같아요. 황당하고도 어이 없었지만 언제라도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페크pek0501 2026-01-09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포스럽고 슬프네요.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헤아렸다면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딴 세상이 되었으나 두 세상의 시간이 그리 멀지 않으니 변화무쌍한 세태로 느껴지네요.
다른 책으로 혼모노, 만 읽었는데 다른 단편들도 혼모노 만큼 좋던가요? 이 책을 살까 안녕이라 그랬어, 를 살까 고민 중입니다.^^

페넬로페 2026-01-09 13:59   좋아요 1 | URL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불시에 뒷통수 맞은 기억때문에 세상은 언제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안녕이라 그랬어 보다는 혼모노가 더 좋았어요. 굉장히 참신한 글쓰기라 신선했어요.

책읽는나무 2026-01-10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과 사진을 보니 절로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를 했다니 좀 충격이네요.
그리고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에서 이것을 다루었다니? 놀랍습니다.
성해나 작가의 이력이 궁금하네요. 지난 번 위픽시리즈 중 성해나 작가의 중편을 읽었는데 경주에 있는 옛가옥을 리모델링을 할지? 그냥 그대로 놔둘지?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인상적였어요. 참 재미나게 읽으면서 성해나 작가가 다루는 주제가 이 책도 그렇고 <소설 보다>에서의 <스무드>도 인상깊어 작가가 다루는 주제들이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혼모노가 역시네요.^^

페넬로페 2026-01-11 10:4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 당시 굵직한 건물의 설계를 여러 건 했다고 들었어요. 소설집 <혼모노>에도 단편 <스무드>가 들어 있었는데 저는 그 작품도 좋았어요. 그 중 이 단편인 <구의 집>이 좋아 아무래도 관심이 더 가더라고요. 이 소설을 읽고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해설사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그레이스 2026-01-11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모노 빨리 읽어봐야겠네요.
건축이 계급을 상징하거나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고 이끌어낼수 있다고 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제가 그 책에서 반대하는 지점이거든요.
언뜻 보면 수긍할만한 내용이지만, 그 뒤에 있는 생각은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성공한 건축가도 단지 국정원이 클라이언트라 생각하고 용도에 맞게 설계했을지 몰라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네요.
하긴 그 시대 성공한 건죽가가 되는데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겠다는 생각입니다.ㅠㅠ

페넬로페 2026-01-12 10:44   좋아요 1 | URL
네, 이 짧은 소설이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더라고요. 여지껏 건축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 속에 있을 인간에 대해서도요. 혼모노에서 젊은 작가의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