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19세기 프랑스 여러 분야의 풍속을 그대로 담은 발자크 적 리얼리즘 소설인 인간극은 세밀하고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등장인물의 생김새부터 (발자크는 관상이나 골상학을 믿는 게 틀림없다.) 성격이나 자라 온 환경, 사건의 전개 등을 독자들의 상상력이나 해석이 별로 필요 없을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자크의 소설을 읽기 쉽다고 착각한다.

 

어둠 속의 사건이 그랬다. 프루스트를 읽고 난 다음 선택한 발자크의 소설은 프루스트에 비해 은유와 주어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길게 쓴 문장이 없어 술술 잘 읽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00페이지쯤 읽었을 때, 노트를 가져와 사건과 인물에 대해 정리하며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만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격변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과 변화에 순응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대조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그 당시 사회, 법률, 재판, 정치와 연결시킨 발자크의 글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혁명의 결과엔 늘 실망이 따르지만, 공통적으로 그 목적은 오랫동안 누려온, 부당하고 불평등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으로 왕권과 귀족의 권위는 무너졌고 많은 사람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으며, 그들의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거나 약탈되었다. 왕족과 귀족들은 망명자가 되어 왕정복고의 기회를 노리고, 부르주아는 국가로부터 귀속재산과 귀족의 지위까지 사들인다.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가 역사의 전반에 등장했지만 그들은 돈과 함께 옛 귀족이 가지고 있던 명예나 지위도 원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부르주아인 마르셀이나 스완, 베르뒤랭 부인, 오데트가 포부르 생 제르맹지역의 살롱에 가기를 원했고, 결혼을 통해 귀족의 작위를 얻는 데 집착한 이유가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돈만으로는 진정한 품위를 얻기 힘들어서였다. 부르주아(시민계급)는 가문의 전통을 상징하는 공작이나 백작, 후작이라는 지위, 이름 중간의 를 사용함으로써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새로운 역사와 권력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프랑스 혁명으로 한 밑천 잡은 고리오 영감이 그의 딸들에게 돈을 쏟아 붓는 것도, 귀족 숭배자이자 왕당파의 오노레 발자크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에 를 넣어 오노레 드 발자크가 된 경우도 똑같은 이유이다.

 

 

공드르빌 영지의 드 시뫼즈 후작 부부는 프랑스 혁명에 적대적이었던 독일의 귀족들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1790년에 재산을 빼앗기고 단두대에서 참수된다. 영지는 국유재산으로 환수되어 다시 매각되는데, 나폴레옹에 의해 국가참사회 의원으로 임명되고, 오브현의 실세인 말랭이 비밀리에 사들인다. 말랭은 프랑스 혁명이후 격변하는 시기에 12번의 정부가 바뀔 때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인물이다. 어둠 속의 사건에서 발자크는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인물(나폴레옹, 푸셰, 탈레랑, 시에예스)을 함께 등장시키는데, 말랭은 푸셰의 페르소나로 보일 정도로 푸셰의 삶을 똑같이 답습한다.

 

드 시뫼즈 후작의 쌍둥이 아들과 그들의 사촌 로랑스 드 생시뉴는 나폴레옹 정권에 반대하고 왕정복고를 위해 투쟁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열정이 넘치고 의리가 있지만,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주위를 둘러보는 데 실패한다. 혁명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계속 누려온 기득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민중이 고통 받았는지를 돌아보게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지키고자 하고, 돌려받기 원한 것은 그들의 재산과 권위이며,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한 가족의 명예인 것이다.

 

로랑스 드 생시뉴는 그 시대 여성답지 않게 당차고 용감하다. 발자크의 표현대로 로랑스는 오연(傲然)하다. ‘남성적인 결단력과 금욕적인 강인함(p.74)’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과 가문, 가족을 지키려고 한다. 나폴레옹의 암살을 응원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휘말린 그들의 사촌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나폴레옹을 만나러 위험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나폴레옹에게 굽히며 그들의 사면을 청한다. 자신을 끝가지 도운 미쉬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의 아들 프랑수아를 책임진다.

 

이 책의 표지인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절망적인 남자>는 보기에도 강렬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 위로 손을 올린 그림 속의 남자에게 당혹감과 놀라움, 절망, 불안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마 이 남자는 미쉬일 것이다. 보잘것없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미쉬를 거두어 관리인 자리까지 준 시뫼즈 후작 부인의 호의를 갚고자 그는 죽을 때까지 시뫼즈 형제와 로랑스를 위해 헌신한다. 발자크는 이 책의 초반에 미쉬에 대해 길게 서술한다. 미쉬의 미래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고, 독자는 미쉬가 정치와 법의 희생양이 될 운명임을 처음부터 알 수 있다.

 

발자크는 민중인 미쉬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그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격변하는 시기에 인간이 사는 방식은 다양하다. 미쉬처럼 충직하게 주인을 섬기거나, 또는 자코뱅당의 수장이 되어 귀족을 단두대로 보내는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귀족을 도울 수도, 귀족을 감시하는 경찰의 끄나풀이 될 수도 있다.

 

미쉬가 완전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혁명을 통해, 변화하는 역사에 발 빠르게 편승하여 민중에서 서민으로 자신의 신분을 바꿀 기회가 분명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쉬는 의리를 지키고 도덕적인 인간으로 남는 선택을 한다. 그런 미쉬같은 약자에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요구되는 것은 희생이다. 어떤 일을 처리하고 넘어가기 위해 한 사람 정도는 죽어줘야 하는 세상에, 그런 역할을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선택되는 것, 그것이 미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집정정부 시대였던 1800923, 보베성에서 상원 의원 클레망 드 리가 납치되는 실제의 사건을 모티프로 한 소설 어둠 속의 사건은 각자의 인간이 추구하는 자신만의 신념과 정치적 선택이 격변하는 역사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와 작정하고 덤벼드는 무고적(誣告的) 악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학에서 인용할 수 있는 그 어느 것보다 탁월한 정치적 분석을 담고 있다(p.343)’는 알랭의 말처럼 발자크는 문학을 통해 그 당시 프랑스 사회와 정치를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은 지금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그대로 담은 발자크의 소설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도출하고 분석하게 해준다. 그것이 발자크의 위대함이다.

 

[사회가 재판을 창안한 이후로, 사법 당국이 범죄에 맞서 누리는 권한과 동등한 권한을 사회가 무고한 피고인들에게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낸 적은 결코 없습니다. 재판은 쌍방향이 동등한 것이 아닙니다. 스파이도 경찰력도 갖고 있지 못한 방어 측은 자기 고객들을 위해 사회적 힘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무고함이 의지할 수 있는 건 논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배심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논리라는 것은 선입견을 가진 배심원들의 정신에는 무력한 것이 보통입니다. -p252]

 

[어둠 속의 사건은 인간의 삶이 역사의 굴곡과 얽혀 있어서, 인간의 운명이 결국은 역사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패멸하는 역사의 희생물로 그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p.342, 작품 해설 중에서]

 

소설 어둠 속의 사건은 실제 인물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조제프 푸셰를 빼놓고 읽을 수 없다. 이 두 사람은 소설속의 인물로도 등장한다. 푸셰는 말랭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등장하는데 발자크는 이 소설에서 이중적으로 푸셰를 등장시킨다. 발자크는 푸셰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의 본성을 정확하게 알아본 사람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실제 인물 푸셰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는 보나파르트의 비밀을 꿰뚫어 보고, 그에게 유용한 충고와 소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자신의 기량과 유용성을 증명해 보인 데 만족한 푸셰는 자신의 전모를 드러내는 것은 삼가면서 만사를 굽어보는 위치에 머무르고자 했다

P.98, ‘어둠 속의 사건중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역시 푸셰를 완벽히 분석한다. 탁월한 전기 작가인 츠바이크는 혁명을 시작으로 빠르게 변화되는 프랑스 역사 속에서 기회주의자인 푸셰의 삶을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푸셰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배반을 밥 먹듯이 하고, 그 누구에게라도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인간이다. 수도사 출신이지만 종교를 저버리고, 루이 16세와 친구인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리옹에서는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무수하게 학살했다. 항상 본심을 숨기고 끝가지 기다리며 마지막엔 언제나 승리자의 편에 선다.

 

츠바이크는 푸셰를

-정치적 인간, 차가운 피를 가진 사람

-무미건조한 사무실형 인간,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히는 사람

-현실주의자, 기회주의자

-가장 교활한 사내,

-영리한 계산의 달인

-팔색조, 집요한 모사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겠다는 일념

-탁월한 정치적 지성을 가진 사람

-철면피, 무쇠 인간

-이기적이고 냉정한 사람

-남을 우롱하기를 즐기는 사람

-비도덕적 인간형

으로 다양하게 묘사했다.

 

로베스피에르는 푸셰를 음모의 괴수라고 했으며

나폴레옹은

내가 아는 정말로 완벽한 배신자는 단 한 사람뿐이다. 바로 푸셰이다(p.297, 조제프 푸셰)”라고 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조제프 푸셰는 서로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10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들에게 믿음은 없었다. 항상 서로를 의심하고, 언제라도 상대방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도록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푸셰를 불신하고 화를 내며 증오하기까지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푸셰에게 벗어나지 못하며 10년을 보낸다.(p.199)’.

 

푸셰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협박한다. 정적을 위협하기 위해 언제라도 써먹을 수 있는 숨긴 정보가 가득하다. 영화 더 킹에서 검사인 한강식(정우성)이 필요할 때 하나씩 써 먹는 수법과 같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러운 세력과 손을 잡고 무자비하고 비열하게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이런 인간들은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며 물론 잘 살고 있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신념과 의리, 도덕, 인간성을 다 버리면 행복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택의 영역이다.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감아서도 안 되지만, 그 변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며 사는 것도 불행한 일이다. 사는 것, 살아내는 것은 매번 어렵다. 발자크도 츠바이크도 정확한 답을 주진 않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사람, 삶을 통해 또 한 번의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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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25 0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하고 독서모임하신 줄 알았어요! 😹

페넬로페 2024-03-25 09:03   좋아요 2 | URL
앗, ㅋㅋ
이제 확인하고 왔어요.
그레이스님과 6년째 독서모임 하고 있습니다.
주로 고전을 읽고 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4-03-25 10:35   좋아요 1 | URL
^^

자목련 2024-03-25 13:41   좋아요 2 | URL
저도 혼자 두 분이 같이 읽으셨나, 우연인가 궁금했는데.

새파랑 2024-03-25 1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 ‘드 페넬로페‘ 님으로 불러야 할거 같아요~!! 요새 발자크에 빠진 페넬로페님~!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셔서 인지 다른 책들은 쉽게 읽으시는 군요~!!

제가 저번에 플로베르를 읽었을때도 느꼈던 건데, 발자크나 플로베르를 읽기 위해서는 당시 프랑스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4-03-25 13:39   좋아요 3 | URL
‘드 페넬로페‘, 영광입니다 ㅎㅎ
어찌하다 보니 계속 프랑스 소설을 읽게 되었어요.
이왕 시작한 거 스탕달과 플로베르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선 2024-03-26 0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다보니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사람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친일파뿐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다 친일파(밀정)로 바뀐 사람... 지금도 다른 남의 뒤통수 치는 사람 있겠네요 어떤 시대든 그런 사람은 있지요 큰 뜻을 갖고 살지 않는다 해도 개인으로는 부끄럽지 않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해도...


희선

페넬로페 2024-03-26 09:50   좋아요 2 | URL
네, 어느 시대고 이런 사람이 수두룩해요, 지금도 그렇고요.
희선님 말씀처럼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모두 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지 않을까요!
 


 












우연히 영화 어톤먼트를 보게 되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왓챠에는 없었고, 되도록 고객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으로 내가 찾는 영화대신 그 영화와 비슷한 내용의 어톤먼트를 추천받았다. 이 영화의 원작이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라는 것도, 내용도 전혀 모른 채, ‘한 번 봐볼까?’라는 생각으로 봤는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오열하고 말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떤 악의에 의해 이렇게나 허무하게 끝날 수 있는가에 대해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처럼 분노가 치밀었다. 너무 화가 났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가 느끼는 불행의 강도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의 집단적인 죽음보다 한 개인에 초점 맞춰진, 그 한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세게 다가올 수 있다. ‘로비 터너의 인생이 불쌍했고, 그가 하루하루 견뎌낸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같이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는 것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영화보다 인물의 감정 하나하나를 더 세밀하게 표현했다. 생각, 느낌들이 생생했고 더운 날씨가 주는 끈적임과 짜증, 권태, 욕망 등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압축된 영화보다 긴장감은 조금 덜 했다. 영화 속 배우들의 이미지와 이미 알고 있는 사건으로 인해 소설을 읽는 데 몰입이 잘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100페이지쯤 지나고 나서 작가의 문장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치명적인 일은 한 순간의, 일시적인 현상만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보일수도 있는 것을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분량이 길다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의 반을 사용한다. 런던과 조금 떨어져 있는 탈리스 가의 저택에 여러 인물들이 모여든 19356월의 어느 3일 동안 일어난 일과 인물들의 삶에 대해 작가는 시시콜콜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을 파멸시키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마저 평생 고통 속에 몰아넣는 치명적인 일은 모든 것의 유기적인 결합으로만 일어날 수 있기에 작가는 그것에 대한 원인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브리오니한 사람이 거의 부각되지만, 소설에는 세실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아주 적극적인 동조에 의해 로비 터너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로비 터너는 탈리스 가의 파출부인 그레이스의 아들인데, 정원사인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여섯 살일 때 말도 없이 가족을 떠나버린다. 로비는 탈리스 가의 도움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다. 그는 다시 의대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탈리스 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탈리스 가의 세 자녀인 레온, 세실리아, 브리오니는 로비처럼 확실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레온은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평범한 은행원이 되었고, 세실리아는 케임브리지의 거튼 대학을 나왔지만 형편없는 성적을 받았다. 당시 여자들은 대학 졸업 증명서도 받을 수 없었기에 그녀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독립하기 위한 직업의 선택이 마땅하지 않고 그렇다고 단조로운 집에 머물기는 싫어한다. 세실리아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브리오니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이다


자주 심한 편두통에 시달리는 그들의 어머니인 에밀리 탈리스는 침대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그녀는 침대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다. 에밀리는 한낱 파출부의 자식인, 자기들의 도움으로만 학업을 할 수 있는 로비가 케임브리지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다시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들보다 로비가 뛰어나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낀다. 이 저택에 레온과 그의 친구인 초콜릿 사업가 폴 마셜이 올 예정이고, 부모의 이혼으로 갈 곳이 없는 이종 사촌인 롤라와 그의 쌍둥이 남동생은 이미 와 있다.

 

브리오니는 유아실의 활짝 열린 창문에서 멀리 떨어진 분수 앞에서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일어난 일을 쳐다보며 오해한다. 그 오해는 브리오니의 상상 안에서 부풀려지고 단정된다. 서재에서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을 목격한 브리오니는 또 한 번의 오해를 하며 자신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스토리를 더욱더 굳히고, 로비의 편지에 씌어져 있는 ‘cunt’라는 단어에 마침표를 찍는다. 한 번도 질문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은 채 브리오니에 의해 상상되어진 것은 로비에게 배은망덕한 인간의 굴레까지 덧붙여져 그에게 엄청난 불행을 가져다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브리오니는 느끼지만 이미 그것은 어른들이 처리할 일로 넘어가 브리오니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건이 되고 만다.

 

36개월간 감옥에 갇혀 힘든 생활을 한 로비는 감옥 생활 대신 제2차 세계대전에 사병으로 참가한다. 프랑스 북부 지역으로 파병되기 전 로비는 가족과 의절한 채 간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세실리아와 짧게 만난다. 어색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로비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세실리아는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로비는 됭케르크 마지막 철수 일인 194061일 브레이 듄스에서 사망했고, 세실리아는 그해 9월 독일군의 밸엄 지하철역 폭격으로 사망한다. 이 허무한 두 사람의 죽음으로 브리오니는 그들에게 직접 용서받을 기회를 잃는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작가로 평생을 산 브리오니에게 글쓰기는 무엇이었을까? 브리오니에게 글쓰기는 자기만의 비밀이 생겼다는 짜릿함뿐만 아니라 세상을 축소하여 손 안에 넣는 즐거움까지 맛보게 해(p19)’준다. ‘상상하고 바라던 대로 글을 쓰기만 하면 그 자체로 완벽한 세상이 탄생(p.62)’하는 소설이 글쓰기의 최고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는 문장을 읽는 일과 이해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손가락을 굽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장을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 어느 것도 끼어들지 못했다. 기호가 해석되는 과정엔 어떠한 시간적 틈도 없었다. ‘()’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눈앞에는 한여름 울창한 숲 뒤 저 멀리에 있는 성이 모습을 드러냈고, 대장간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올라갔으며,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선선하며, 자갈이 깔린 길은 구불구불 이어져 숲의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p.63]

 

읽는 일과 이해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 그 어느 것도 끼어들지 못하는소설처럼 브리오니는 로비에게 타격을 가한다. 결국 브리오니의 속죄도 그녀가 쓴 소설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 글쓰기, 소설은 어쩌면 상상의 세계에서만 완벽한 것인지도 모른다. 글쓰기의 재능으로 상상되고 단정된 것들은 그 속에서 숨 쉴 수 없을 만큼 읽는 것과 느끼는 것이 동시에 진행되며 완벽하게 보였지만, 현실에서는 치명적인 역할을 했다. 글 속에 담긴 것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고 작가는 자신이 만든 허구에 경탄하며 자기만족에 빠질 수 있다. 브리오니는 끝까지 속죄라는 단어에 글쓰기의 망상과 자기애를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불행하게 만든 이들을 생각하며 평생 괴로웠겠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글쓰기 세계에서 스스로 위로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만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p.521]

 

작가 이언 매큐언은 그의 문장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압축된 말을 가져와 인용한다.

 

[“몰란드 양, 당신이 품어온 의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겁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와 이 시대를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영국 사람입니다. 게다가 기독교인이지요. 제발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똑바로 보고 이해하고 판단해주세요. 그런 잔혹 행위를 해도 된다고 교육받은 적이 있습니까? 법이 그런 것을 묵인해 주고 있나요? 사람들간에 직접적인 왕래와 서신 교환이 잦은 이 나라에서, 남의 눈을 피할 길 없는 이 나라에서, 도로와 신문 덕분에 세상에 비밀이란 남아 있지 않게 된 이 나라에서 그런 잔혹 행위가 비밀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몰란드 양,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던 겁니까? 그들은 어느새 복도 끝에 다다라 있었다. 그녀는 수치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제인 오스틴, 노생거 수도원중에서 p.9]

 

영국인이라도, 기독교인이라도, 교육받은 사람이라도, 비밀이 없더라도, 제인 오스틴의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과 시기, 질투, 실수로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 ‘속죄는 종교적 원리에서만 통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속죄한들 이미 불행에 빠진 사람의 인생을 되돌리지 못한다. 그러니 일어나는 일을 똑바로 보고 이해하고 판단해야할 것이다.

 

브리오니를 연기한 배우 시얼샤 로넌이 영화 작은 아씨들조 마치였다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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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2-29 15: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타이틀이 무신 화두 같이 다가옵니다.

속죄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가.
어쩌면 속죄는 스스로를 위한 게
아닌가 싶네요.

소설은 예전에 매큐언 선생에 빠졌
을 적에 읽었는데, 영화도 한 번 보
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4-02-29 15:33   좋아요 1 | URL
특히 이 소설에서 매냐 님께서 말씀하신 ‘속죄‘에 대한 느낌을 더 전달받은 것 같습니다. 용서에 대한 의미도 더 깊게 다가왔고요.
‘속죄‘가 이언 매큐언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하던데 과연 좋았습니다. 덩케르크와 연결시킨 것도 탁월했고요.^^

얄라알라 2024-02-29 22:51   좋아요 1 | URL
제가 이언 매큐언 열심히 읽었던 당시, 레삭매냐님 영향을 받았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4-02-29 15: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품(영화) 딥빡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브리오니 땜에 브라우니도 싫었던 기억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02-29 15:35   좋아요 0 | URL
저 정말 로비가 너무 불쌍하고 속상해서 꺼억꺽 울었다니까요.
소설에서는 브리오니의 엄마도 한 몫 단단히 하더라고요 ㅠㅠ

coolcat329 2024-03-01 07:01   좋아요 0 | URL
저도 진짜 딥빡!

Falstaff 2024-02-29 15: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일 이이가 쓴 <암스테르담> 독후감 올릴 겁니다. <속죄>도 <칠드런 액트>도 <암스테르담>도 다 재미있더라고요. 이번에 다시 매큐언한테 폭 빠진 1인이었습니다.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02-29 16:33   좋아요 3 | URL
작년부터 계속 프랑스 소설 읽고 있는데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조금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저도 계속 매큐언의 소설을 읽어보려고 해요.
내일 <암스테르담>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02-29 17:04   좋아요 2 | URL
암스테르담
반전이 있는 소설
넘 좋았죠^^

얄라알라 2024-02-29 22:53   좋아요 3 | URL
폴스타프님의 매큐언 사랑^^ 물론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3월 1일 독후감 올라오는 군요^^ 놀러갈게요~~

그레이스 2024-02-29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죄가 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용서받았다는 느낌, 불완전하단 생각을 했습니다.ㅠ

페넬로페 2024-02-29 18:01   좋아요 1 | URL
자신의 방식으로만 속죄를 한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용서 받았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그저 살아 있는 사람들 마음이 끝까지 편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작가가 이런 것들을 잘 살렸더라고요^^

희선 2024-03-01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잘못한 걸 용서해줄 사람이 없군요 그러면 괴로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 소설이 안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 일은 자신이 멋대로 생각하면 안 될 듯해요 그걸 알게 됐다 해도 말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한데... 알고 싶으면 당사자한테 물어봐야죠 어려서 그랬다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4-03-01 08:51   좋아요 1 | URL
어려서, 잘 모르니까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결과였어요. 그래서 용납되지가 않고요. 어쩌면 용서받을 수 없기에 속죄할 기회를 스스로 없앴는지도 모르겠어요 ㅠㅠ

꼬마요정 2024-03-01 0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이 영화 진짜 너무 좋아해요!! 책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색감이랑 배경도 너무 예쁜데 로비랑 세실리아랑 너무 슬퍼요. 베네딕트 컴버배치 나온 줄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다죠. 가해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몇 없는데 그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어요. 가해자는 늘 용서받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그들에게 끊임없는 죄책감을 안겨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나마도 가해자에게 양심이 있다면 그렇겠지만요.

페넬로페 2024-03-01 08:55   좋아요 2 | URL
저도 완전 영화를 몰입해서 봤어요. 너무 먹먹하고 화가 나더라고요. 아, 데이비드 컴버배치, 어쩔 것이야 ㅎㅎ
셜록과는 이미지가 완전 다르게 나오더라고요.
가해자가 평생 고통을 받고 사는 건 당연한데도 피해자는 영원히 더 힘들 것 같아요.

coolcat329 2024-03-01 0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죄 읽고 브리오니가 너무 싫어서 죽겠더라고요.
시얼사 로넌도 덩달아 싫어지고 ㅎㅎ

페넬로페 2024-03-01 08:57   좋아요 1 | URL
어쩜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정말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시얼사 로넌은 다른 영화에 나와도 관객들은 브리오니가 연상되어 괴롭다고 다들 얘기해요.

coolcat329 2024-03-01 10:26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서 시얼사가 나오는 영화는 그 이후로 한 편도 안봤어요.

서곡 2024-03-01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속죄 녹색 드레스가 떠오르네요...페넬로페님 삼월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4-03-01 09:39   좋아요 1 | URL
네, 그 녹색 드레스가 정말 예뻤어요.
3월인데 날씨가 많이 추워요.
벌써 3월인데, 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하니 더 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4-03-01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안그래도 이언 매큐언 작가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궁금해서라도 나중에 영화도 책도 읽어봐야겠군요.^^
인간의 어리석음이 결국....ㅜ
그래서 피해를 입은 주인공들은 어쩐답니까.
이건 속죄를 한다고 해도 용서받기 힘든 상황이 아닐까? 페페 님의 리뷰를 읽기만 해도 그런 생각이 드네요.

페넬로페 2024-03-02 09:03   좋아요 1 | URL
저도 이언 매큐언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시잖아요, 실천이 잘 안되는거요.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되면서 내처 책까지 읽었어요.
가해자도 나름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건 이유가 안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들에게 너무 치명적이라 ㅠㅠ

새파랑 2024-03-03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속죄 재미있나보네요~! 저는 구판? 으로 사놓긴 했는데 왠지 손이 안가더라구요...표지 때문인가? ㅋㅋ

오늘 당장 찾아아봐야겠습니다. 브라우니가 나빴나보군요!!

페넬로페 2024-03-03 19:17   좋아요 1 | URL
네, 맘이 넘 아픈 소설입니다.
책 읽으시려면 영화보지 말고 시작하시는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내용이 좋아요^^
 


 













바쁜 하루를 보낸 날은 의식하지 못하는 걸음을 걷는다. 분명 종종걸음으로 많이 걸었을 거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운동이나 산책의 의미가 없다. 그런 날이면 밤늦게라도 집을 나와 내가 사는 아파트 안을 여러 번 돈다. 밤이 늦었음에도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많고 나처럼 걷는 사람도 있다. 서로 걷는 방향이 반대일 땐 계속 머쓱하게 마주치지만 누구 한사람도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고집스런 산책자들이다. 마르셀의 할머니가 <모든 날씨에, 이를테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프랑수아즈가 저 귀중한 버드나무 팔걸이의자가 비에 젖을까 봐 재빨리 안으로 들여놓을 때에도> 건강에 좋은 비와 바람을 맞고자 빗물로 넘쳐흐르는 오솔길로, 정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고집과 비슷하다.

 

헤어짐이 아쉬워 계속 빙빙 도는 연인도 있다. 그러다 여자를 들여보내고 남자는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행복한 기분으로 가득 차 있을 그의 어깨에 쓸쓸한 피곤함도 보인다. 차의 시동을 켜놓은 채 뛰어다니며 각 동에 물건을 배송해주는 쿠팡 배송원도 있다. 똑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이제 그만 쉬려고 빨리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도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이제는 서로 연락도 만남도 없는 지인의 실루엣에 잠시 모른 척 눈을 돌리기도 한다.

 

대단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일상의 연속이다.

 

나는 요리사가 차려주는 정찬을 먹고, 음악을 감상하며 예술을 얘기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속의 인물들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이 읽기 힘든 이유는 우리와 완전 동떨어져 있는 인물들에 대해 프루스트가 너무 자세히, 장황하게 글을 써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프루스트의 글을 통해 그 시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지만 거기에서 어떤 보편성을 가져와 내 것에 적용시킬지 쉽지 않다. 그저 재미있어 3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7되찾은 시간은 제1편인 스완네 집 쪽으로와 가장 많이 연결된다. 마르셀은 탕송빌에 있는 생루 부인(질베르트)의 저택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추억한다.(1편의 첫 부분에도 나와 있다.) 질베르트를 통해 그토록 다른 길이었다고 생각한 메제글리즈 쪽(부르주아, 스완)과 게르망트 쪽(귀족, 게르망트)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들어간다. 화자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파리로 돌아왔고 쥐피앵이 샤를뤼스를 위해 운영하는 동성애자의 소굴을 우연히 발견한다. 생루는 전쟁 중에 전사한다.

 

두 번째 요양원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끝내 자신의 병을 치유하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온 화자는 여전히 문학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는 돌고 돌아 게르망트 대공 부인이 되어 그토록 원했던 귀족의 반열에 오른 베르뒤랭 부인의 마티네(오후 모임)에 초대받는다.(어느새 화자의 나이가 47세 정도가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지난 시절의 사람들은 쇠락해 보였다. 스완의 부인이자 포르슈빌의 부인인 오데트는 게르망트 공작의 연인이 되어 있다. 그토록 콧대가 높던 게르망트 공작 부인(오리안)은 인기 없는 존재로 변해 있었다.

 

계속해서 서글픈 마음을 가지고 있던 화자가 게르망트 대공 부인의 저택 안마당에 들어섰을 때 들어오는 자동차를 피하려다 고르지 못한 포석에 부딪치고 만다. 몸을 바로 하려고 앞의 포석보다 조금 낮게 깔린 포석에 발을 내딛는 순간, 화자는 엄청난 행복의 감정을 느낀다. 예전에 어머니와 베네치아 여행을 갔을 때, 산마르코 성당 세례실에서 서로 높이가 다른 포석 두 개 위에 섰을 때, 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었을 때, 마르탱빌 종탑의 풍경을 봤을 때와 같은 행복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 행복한 감정은 화자의 절망감을 한꺼번에 제거해 버린다. 행복한 감각과 인상을 포착하려는 욕망 속에서 그는 다시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어렴풋하고 눈부신 광경이 다시 나의 의식을 스쳐 가면서 네게 힘이 있다면 지나는 길에 나를 붙잡고, 내가 제안하는 행복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해 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금방 나는 그 광경을 알아보았다. -p.30]

 

화자는 또한 스푼이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 풀 먹인 뻣뻣한 냅킨으로 내가 살아온 순간이 현재 내가 사는 순간인 것처럼보이는 것을 느낀다. 의도적이지 않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각으로 잊힌 과거를 소환하고 그것을 문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화자가 느끼는 이 순간적인 생각의 변화를 우리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삶이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은 확실한 이유와 계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감각, 인상, 이미지, 기호에 의해 훨씬 더 많이 좌우된다. 화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더 이상 글쓰기를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되찾은 시간은 화자가 글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첫 시점인 것이다. 여기에 화자의 예술관과 문학관도 들어 있다. 잃어버린 시간이 과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감정과 인상은 과거와 현재에서 동시에 느끼며 <과거를 현재로 스며들게 하여 내가 과거와 현재의 순간 중 어느 쪽에 있는지 알기를 망설이게 한다는 공통점이>있다. 시간으로 연결된 경험, 감각, 인상, 습관은 지금의 를 형성하고 그것은 를 초시간적인 존재로 만든다. 시간은 비의지적 감각을 통해, 지금의 나를 이뤘지만 잊고 있었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각자 예술가와 책이 되어 초시간적인 를 만날 수 있다. 내가 보고 느낀 것, 자연과 사람, 사물들에 대한 인상을 <보편적>이고도 <영속적>인 언어로 남길 수만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수만 페이지가 넘는 책의 문장에 기록된 주인공인 것이다. 화자가 말한 글쓰기의 소명과 문학(예술)만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 준다는 것은 이런 맥락으로 읽어야 한다. 또한 타인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나를 현재의 시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 이 삶은 어떤 점에서는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매 순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삶을 밝히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과거는 수많은 음화(陰畫)로 가득 채워진 쓸모없는 것이 된다. 우리의 지성이 이런 음화를 현상하지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우리의 우주와는 다른 우주, 달에서 보는 풍경만큼이나 우리에게는 낯선 우주에 대해 타자가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p.7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프루스트가 생전에 완성해 발표한 소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한 편뿐이다. 오랜 시간 코르크로 밀폐된 방에서 칩거하며 지병인 천식과 싸우며 이 방대한 소설을 집필했다. 작가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정한 직업 없이 사교계에 드나들었던 사람이라 이 소설이 자전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프루스트는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비평가 생트뵈브는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작가의 정신과 작품 세계의 특징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지만 프루스트는 생트뵈브에 반대하여라는 작품으로 생트뵈브의 비평을 반박했다.

 

김화영은 프루스트의 생애로 시작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전체 줄거리와 작품에 대한 구조와 의미를 설명한다. 일단 문장이 엄청나게 긴 이 소설은 읽기가 힘들다. 읽고 이해하기 힘들어 다시 읽고, 그래도 잘 몰라서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읽는다. 색깔이 다른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으며 의미 찾기에 몰두해 보지만 어떤 문장은 끝까지 알 수 없어 좌절한다. 김화영은 이 소설을 천천히, 몇 번씩 반복해서 읽으면 <미묘한 감칠맛>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작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화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 의식 속에 비쳐지는 모든 영상과 운동, 경험의 총체, 삶의 총결산>이다. 그래서 독자는 이 소설에 대한 의미 찾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이 책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연대기가 수록되어 있어 재미있다. 스완의 사랑에 해당하는 시기인 1879년부터 1901년 알베르틴의 죽음, 1919년 말의 게르망트 대공 부인의 오후 모임까지 소설의 중요 장면에 대한 대략의 시기를 알 수 있다. 김화영 선생은 머리말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번역을 위해 남은 생애의 시간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는데, 어서 선생의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한다.(선생은 1942년생이다. 번역본이 나오면 무조건 읽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자서전이 아니며 소설 속 화자는 프루스트가 아니고 등장인물은 오로지 저자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못을 박는다. 이 책은 나보코프가 웰즐리와 코넬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책에 대한 <전체적인 아이디어보다 세세한 부분들의 조합에서 빚어내는 관능적인 불꽃>을 더 중요시 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제1편인 스완네 집 쪽으로에 거의 초점을 맞춰 강의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해 프루스트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은, 기간에 따른 인격의 끊임없는 진화, 우리가 직관, 추억, 비자발적인 연상을 통해서만 떠올릴 수 있는, 잠재의식의 뜻하지 않은 풍요로움, 내면의 영감이 지닌 천재성에 보잘 것 없는 이성이 종속되는 것, 예술을 세상의 유일한 현실로 보는 시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보코프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강의한 내용은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어렵다. 그가 말한 내용에 대해 반복해서 읽으며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만 깊이 있는 나보코프의 시간과 과거, 예술에 대한 해석으로 프루스트의 문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조이스와 프루스트의 인물에 접근하는 방법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책은 나보코프의 강의를 서술했기 때문인지 약간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부분이 아쉬웠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현실적 삶에 적용시키는 사용 설명서이다. 경쾌하고도 위트 있는, 철학적이며 현학적인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쉽게 접근시켜주고 이 작품을 보는 시각을 다르게 한다. 한 번씩 피식 웃게 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 책은 프루스트를 통해 자기 계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잘 알려주고 있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에 대한 9개의 섹션을 지금 나의 인생에 직접 대비시키는 재미가 있고, 그것은 결국 소설과 연결된다.

 

알랭 드 보통은 작가 프루스트 개인과 그 주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어쩌면 생뚱맞아 보일수도 있는 소설 속 인물들과 내용에 담겨진 보편성을 보여 준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대한 확장으로 그것의 경이로움을 보게 하는 방법을 알게 한다. 모방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끼게 하는 클리셰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밝힌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분리되어 있던 베르뒤랭 부인, 스완 부인,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세상은 근본적으로 같은 세상이며,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오로지 속물근성이나 사회적인 관습으로 인한 모종의 우연뿐이었다>고 서술했다. 베르뒤랭 부인, 스완 부인, 게르망트 공작 부인처럼 나와 같은 궤도를 돌지 않는, 속물적이고 허영심 많은 친구를 가졌을 때, 그들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고도 뒤에서 깔 수 있는 방법을 보통은 가르쳐 주고 현명한 구분을 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눈을 뜨는 방법에서 프루스트가 우울하고 부러움도 많고 불만도 많은 한 젊은이에게 화가 장 바티스트 샤르댕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샤르댕은 주방기구, 빵 덩어리, 책 읽는 사람, 시장에서 빵을 사서 집에 돌아온 여자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것에 샤르댕은 깊은 의미를 부여했고 그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샤르댕은 높은 곳에 있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현재에 흥미로움과 매력을 찾게 해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가 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에 행복함을 느꼈듯이 우리는 평범함에서,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서 언제든지 <프루스트적 순간>에 눈을 뜰 수 있다. 지금 현재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


-p.4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긴 것은 제5권에 있는데 <일반적인 크기의 활자를 이용하여 일렬로 배열할 경우, 그 길이는 거의 4미터에 이르고, 웬만한 와인 병의 아랫부분을 17번은 충분히 감을 수 있는> 길이이다.

 

요즘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여유 없는, 시간에 쫓기는 듯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가? 그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긴 문장과 씨름해 보라. 당신에게 인내력을, 도망간 집중력을 다시 돌려 줄 것이다. 다만 잘 모르지만 뭔가, 더 큰 후유증을 각오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체력도, 기질도 완전 다른 프루스트의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는 <한 가지 슬픈 일은 아주 많이 아프거나, 아니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기 전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읽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13년에 방송된 여름 특집 문학 방송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시리즈를 제작한 로라 엘 마키는 로베르의 말에다 여름휴가를 추가한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2013년 여름 프랑스의 앵테르 방송에서 8명의 전문가가 8개의 섹션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각자 관심을 끄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엔 그들이 감동받은 책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각 섹션의 짧은 서문은 로라 엘 마키가 썼는데, 시간, 등장인물, 프루스트와 사교계, 사랑, 상상의 세계, 장소들, 프루스트와 철학자들, 예술에 대한 주제를 잘 정리한 것 같다.

 


20221015일 오후 103,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무 이름은 은목서이다.

 

그 날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날씨에 하늘의 색깔은 엄청 파랬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와 심은하가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장면을 볼 때처럼 그저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 들어가서 여러 군데를 둘러보다가 집의 뒤쪽으로 갔을 때, 은목서를 발견했다. 키가 크고 잎도 무성했고 잎마다 꽃이 달려 있었는데, 은목서에서는 너무나도 진하고 좋은 향기가 났다. 바람에 계속 꽃비도 내리고 있었다. 꽃잎마다 수많은 벌들이 모여 있었는데 혹시 벌에 쏘일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은목서의 향기에 취해 벌들은 인간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가 차에 적신 마들렌 맛을 봤을 때의 경이로움과 행복함이 이런 것이었을까? 은목서의 모습과 향기, 꽃잎이 떨어져 모여 있던 나무둥치와 기와장, 나무와 지붕 사이에 보이던 파랑만이 있는 하늘.....

 

한참을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곳에 있던 장면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프루스트라면 지금, 여기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 제목 때문에 과거라는 시점을 더 염두에 두기 쉽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에 있는 시간이지만 과거는 현재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과거는 명백히 현재가 지나간 것이다. 현재가 너무 찰나적이라는 게 문제지만....

 

알랭 드 보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시간의 소실과 상실 뒤에 놓인 원인에 대한 탐색이 중심 주제이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 어떻게 하면 시간 낭비를 중지하고 음미할 수 있는 삶을 시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이며, 더욱이 충분히 실용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일독할 때 난 과거에 더 초점을 맞춰 읽었다면, 재독할 땐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현재를 더 의식하며 읽었다. 지금, 여기, ‘의 중심에서 무엇을 소명으로 가질지 생각하며, 그것을 빛나는 나만의 문학으로 남겨두는 것이 일단 이 책을 가장 잘 수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므로 만일 내게 작품을 완성할 만큼 충분히 오랜 시간과 힘이 있다면, 비록 그 일이 인간을 괴물과 같은 존재로 만들지라도 인간을 묘사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터였다. 거기서 인간은 공간 속에 마련된 한정된 자리에 비해 반대로 지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세월 속에 침잠한 거인들처럼 그토록 멀리 떨어진 여러 다양한 시기를 살아 그 시기 사이로 많은 날들이 자리하러 오면서 삶의 여러 시기와 동시에 접촉하는 그런 무한으로 뻗어 가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 ‘시간속에서

 

 

-p.33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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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1-28 2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은목서나무 이름만 들어봤는데 실제로 보면 이런 나무였네요.
원서가 외국어인 책들을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 주말 잘 보내시고 따뜻한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4-01-28 21:07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께서는 이 나무의 이름을 알고 계셨네요.
저는 나무 이름이 너무 궁긍해 군산 시청에까지 전화를 해 보았어요.
우리에게 번역자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미미 2024-01-28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둑맞은 집중력을 찾아주는 프루스트!! >.<
(but 후유증 조심) 완벽한 페페님의 처방입니다.ㅎㅎ

‘은목서‘ 사진도 어쩐지 저에게는 프루스트의 디테일한 감정선을 떠오르게 하네요
이 글, 프린트 해 둬야겠어요ㅎㅎ

페넬로페 2024-01-29 00:08   좋아요 2 | URL
저의 처방이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ㅎㅎ
집중력을 더 흐리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요.
은목서를 만난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해 감히 프루스트의 마들렌에 견주어 봤어요^^

희선 2024-01-29 0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을엔 금목서와 은목서에서 진한 냄새가 난다는 말 들었는데, 은목서였군요 어쩌면 저 나무 본 적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같은 곳은 아니고, 다른 곳에서...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책 제목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지만, 그 시간이 꼭 지나간 날만은 아니군요 책을 보다 보면 지금 자신을 생각할 때도 있잖아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서도 그럴지... 페넬로페 님이 위에서 쓰신 것처럼 저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 이야기처럼 느껴질 듯도 합니다

그런 건 그렇다 치고 예술 문학이라는 것도 생각하게 하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01-29 09:00   좋아요 3 | URL
금목서 나무도 있군요.
그 나무도 한 번 보고 싶네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여러 번 읽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아마 읽을때마다 그 느낌과 해석이 달라 그럴 것 같아요.
희선님은 매번 문학을 하시잖아요^^

새파랑 2024-01-30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드디어 완독하셨네요~!! 그동안 잃시찾 읽는다고 소모했던 시간을 되찾길 바라겠습니다 ^^

소설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게 즐거움중의 하나인데

잃시찾은 너무 다른데다가 심오해서 좀 힘들었던거 같아요...

전 상류층(?) 이야기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류의 막장이 더 땡깁니다 ㅋㅋ

고생하셨습니다~!!

페넬로페 2024-01-30 16: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잃.시.찾 읽기 정말 쉽지 않더군요.
내용의 절반이나마 이해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해설서를 계속 읽어 의미라도 찾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프루스트 다음으로 발자크 읽고 있는데 재밌네요.
가난을 도스토옙스키 작가랑 조금 다르게 서술해서인지 잘 읽고 있어요.
도작가는 넘사벽이겠지만요 ㅎㅎ

서곡 2024-02-05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나무 이름이 궁금해서 그 나무 앞 건물 사무실에 전화해서 이름을 물어봤었어요 ㅋㅋ 페넬로페님 월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4-02-06 11:58   좋아요 1 | URL
저 나무 이름이 엄청 궁금했는데 그때 바로 물어보지 못해서 뒤늦게 알아냈습니다 ㅎㅎ
2월인데 눈이 왔네요.
이번 주는 설연휴도 있고요.
서곡님, 한 주 잘 보내시고 명절 잘 보내시라고 미리 인사드립니다^^
 


지난 가을 성수동에 있는 서울숲에 갔을 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이 있었다. 멀리서 볼 때 대나무 숲 같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곳은 은행나무 숲이었다. 나무를 촘촘히 심어(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대나무처럼 기둥이 가늘고 하늘로 곧게 뻗어 있었다. 새삼스레 생명을 가진 것들이 얼마나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지 실감했다.

 

하루하루 평범하고 되풀이되는 일상을 지내는 나에게 책은 가장 재미있고 스펙터클함을 준다. 책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지겹거나 힘들지 않다. 좋아하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꾸준하게 읽는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세상에 어찌 이리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지 감탄한다. 그 많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쌓여있다는 생각을 하면 행복하다.

 

이제 책은 나를 둘러싼 단단한 환경이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내 나이가 노년이라고 분류되는 곳에 다다르지만 책은 여전히 나를 성장하게 한다. 은행나무가 대나무처럼 자라듯 나 역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변화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 기대된다. 책은 나를 완고하지 않고 세상에 등 돌리지 않게 해 줄 것이다.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의 말처럼 삶이 나에게 미소 짓지 않아도 내가 언제나 삶에 미소 짓는 사람이 되도록책이라는 환경이 나를 성장시켜 줄 것이라 믿는다.



 

 

 

 

 

 

 

 






올해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았던 소설이다.

 

한강 작가는 우리가 지나온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 고통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이해해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은 나에게 온전하게 다가 올 수 없다. 작가는 섣부르지 않게 우회적으로 그들의 얘기를 들려주었지만, 내 몸이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프랑스 메디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

 

윌리엄 트레버 작가의 단편들을 읽으며 계속 먹먹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슬픈 것보다 먹먹한 것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 지나온 인생, 상처와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외롭게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모습들이 서글펐다. 그렇지만 내면의 단단함과 삶을 관조할 수 있는 힘이 좋았다. 이래저래 인생은 공평하다.

 

올해 처음 안톤 체홉 작가의 단편 소설과 희곡 작품을 읽었다. 트레버의 단편이 성실하고 정중한 느낌이 난다면 체홉의 단편은 역동적이었다. 악동의 이미지도 있었고, 유머러스했으며 정치적이기도 했다. 이쪽과 저쪽,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이렇게나 다양한 감정이 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은 언제나 멋있다.


2023년의 마지막 날에 가족들과 영화 노량(마침 무대인사도 있었다.)을 보았다


무엇을 위해 인간은 저렇게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죽여야 하는지....

이 세상에 평화만 있으면 좋겠다.

 

2024년에는 알라딘 서재의 친구들처럼 나도 하루 36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집중하겠다.

 

여전히 똑같은 결심도 한다. 집에서 잠자고 있는 책을 읽고, 죽을 때까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건강에 신경 쓰며, 책을 읽는 만큼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알라딘 서재 친구 분들께 감사드리고, 2024년에도 열심히 배우고 따라가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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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01 0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햐 복 많이 받으세요!!

페넬로페 2024-01-01 09:4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루피닷 2024-01-01 0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넬로페 2024-01-01 09:53   좋아요 2 | URL
루피닷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4-01-01 0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의미에 관한 멋진 글이네요! 페넬로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넬로페 2024-01-01 09:55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귀여운 두 꼬맹이들도 건강하고 행복한 2024년이 되도록 기원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1-01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평화로운 2024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넬로페 2024-01-01 09:57   좋아요 0 | URL
거리의화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언제나 평화를 빕니다.
올해 화가님의 하루는 48시간이 되는 거 아닙니까? ㅎㅎ

cyrus 2024-01-01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서울에 가게 되면 서울숲에 가보고 싶군요. 페넬로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페넬로페 2024-01-01 13:18   좋아요 0 | URL
서울숲이 사람 친화적이고 아기자기하더라고요.
cyrus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4년, 만사형통하십시오^^

미미 2024-01-01 1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일이 되니 저도 이런저런 다짐을 하게되고 설레네요. 페넬로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넬로페 2024-01-01 13:19   좋아요 2 | URL
1일의 다짐이 365일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봐야겠어요.
미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길요^^

2024-01-01 1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의 소설 중 체호프의 책에 대한 평이
제일 끌리네요. 나중에 읽어봐야겠어요.
페넬로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넬로페 2024-01-01 13:20   좋아요 2 | URL
쥬 님에게도 체호프의 작품이 좋았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감 하십시오^^

서니데이 2024-01-01 18: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오늘부터 2024년입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페넬로페 2024-01-01 22:59   좋아요 2 | URL
네, 2024년이 시작되었어요.
올해도 열심히, 즐겁게 살겠습니다.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은오 2024-01-01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향한 페넬로페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연말 페이퍼...🥹
저는 올해 윌리엄 트레버를 꼭 읽어보려고요 >.<
페넬로페님!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페넬로페님 따라서 열심히 읽겠습니다. 헤헤. 계속 같이 놀아주실거죠? 😍😍

페넬로페 2024-01-01 23:02   좋아요 1 | URL
작년에 멋지고 풋풋한 은오님 덕분에 즐거웠어요.
올해도 우리 신나게 놀자고요, ㅎㅎ
은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는 일 다 이루시기 바래요.
알죠?
계속 응원하고 있다는 것요!

은오 2024-01-02 21:44   좋아요 1 | URL
네!!!!! 😘😘😘😘😘

책읽는나무 2024-01-01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페 님.^^

페넬로페 2024-01-01 23:11   좋아요 1 | URL
제가 책나무님 안부를 먼저 여쭈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해요.
책나무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안하세요.
친정 아버님께서도 얼른 쾌차하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만복, 만희 자매들도
만복과 만희하기를 기원합니다^^

희선 2024-01-02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식구들과 영화 보셨군요 이순신 이야기 마지막 <노량>... 전쟁은 인류가 생겼을 때부터 했을까요 그랬을 것 같네요 평화로운 세계가 되면 좋을 텐데...

페넬로페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에 만나고 싶은 책 많이 만나세요 몸뿐 아니라 마음 건강도 잘 챙기세요


희선

페넬로페 2024-01-02 05:44   좋아요 1 | URL
영화 <노량>은 이순신 3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인데 약간 실망되는 부분도 있더군요.
희선님 말씀처럼 몸과 마음 둘 다 잘 챙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4-01-02 0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이 꼽으신 세 작품 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품들이네요 ㅋ 왠지 뿌듯합니다~!! 페넬로페님 24년에도 화이팅 입니다~!!!

페넬로페 2024-01-02 12:13   좋아요 2 | URL
알라딘 서재에서 독서취향이 비슷한 친구를 만난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행복한 것 같습니다.
올해도 새파랑님을 잘 따라가겠습니다^^

자목련 2024-01-02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널로페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책과의 만남도 이어가시고요^^

페넬로페 2024-01-02 12:15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더불어 열심히 책을 만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4-01-02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 읽다 말았는데
다시 도전을 !

페넬로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페넬로페 2024-01-02 13:05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감사합니다.
<마지막 이야기들> 좋았습니다.
작가들은 왜 이리 글을 잘 쓰는지요 ㅎㅎ

얄라알라 2024-01-02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께서 올려주신 서울숲 사진 예술인데요.
몇 번 가본 적은 있어도 울창하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해봤는데 사진의 느낌은 꽤 달라요^^

페넬로페님의 36시간, 그리고 꽉 차고 풍성한 2024년을 응원드립니다

페넬로페 2024-01-02 21:26   좋아요 2 | URL
서울숲에 가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루 36시간이 되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얄라알라님께도 건강하고 행복한 2024년이 되시면 좋겠어요^^

그레이스 2024-01-02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 물안개 끼면 정말 환상적이죠!^^

페넬로페 2024-01-02 21:26   좋아요 1 | URL
물안개는 어느 계절에 잘 끼일까요?
그때 같이 가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4-01-02 22:27   좋아요 1 | URL
네!
사진 찾아보니 겨울이었던듯 하네요
 

원인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20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닌 서구 주도로 이루어진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적 유산은 과거의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며 단절되었습니다. 반면 서구의 문물은 새롭고 진보된 것으로 여겨지며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현상이 20세기 내내 일어났죠. 그런 근대화 현상은 서구에서 만든 것이 우리가 만든 것보다 좋다는 착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근대화의 잔재는 현재까지도 사회문화 전반에 남아 있으며, 미술에 대한 인식에도 역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미술하면 (이상하게도자꾸만) 서양미술을 먼저 떠올리고, (이상하게도 자꾸만) 서양미술만 즐기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비판적으로 판단해볼 겨를 없이 문화적, 예술적 편식이 생기고 만 것입니다. - P6

뛰어난 미술가는 현재가 아닌 내일의 시대정신을 예리하게 감각해작품에 담아냅니다. 고로 뛰어난 미술가의 작품은 내일을 선취하고 또예견합니다. 오늘날의 미술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세계 역시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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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3-12-24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이웃을 만난 2023년을 기억하겠습니다. 청안하시길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12-24 12:40   좋아요 0 | URL
무한냥님, 감사드려요.
‘청안‘이라는 말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즐겁고 행복하게 잘 보내십시오^^

페크pek0501 2023-12-26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뛰어난 저술가들은 미래를 예언하더군요.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면서도 한 생각입니다.^^

페넬로페 2023-12-26 17:58   좋아요 1 | URL
그것이 예술가의 위대함 같습니다~~

서곡 2023-12-31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오늘 밤 안녕히 주무시고 내일부터 새해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4-01-01 03:29   좋아요 1 | URL
서곡님!
감사드립니다.
2024년에도 책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건강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