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가 세 명인 우리 집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나머지 두 명은 나의 책읽기를 응원해 주는 편이다. 불편할건데도 두 사람은 내가 여기저기 흩어놓은 책에 별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별 관심이 없지만, 벽돌책을 읽고 있으면 슬며시 앞표지의 제목을 보기도 한다.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삼 개월째 읽고 있는 중이라 두 사람은 저절로 제목을 외우고 있다.

 

내가 딸아이에게 작정하고 잔소리를 좀 하려고 하면, “엄마, ‘특성 없는 남자‘, 읽어야지! 독서 동아리 얼마 안 남았잖아하며 딸아이는 자리를 피한다. 어제는 갑자기 남편이 특성 없는 남자가 누구야? 왜 특성이 없는데?”라고 물었다. 생각지도 않은, 갑자기 들어온 질문이라 살짝 당황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 얼마 전 어떤 분이 나에게 기습적으로 한 질문이 생각났다.

 

그날도 대화중간에 갑자기 질문을 받았다.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어요?” 또는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였을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다 , 마들렌?”이라고 답했다. 내 대답에, 질문을 한 그 분은 순간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지만, 책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확신 있게 잘 대답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든가, 어떤 책이 좋으냐, 또는 그 책은 왜 좋은가에 대한 대답 말이다. 나에게 좋은 책이 다른 사람에겐 감동을 주지 않을 수도 있고, 더군다나 잃시찾이나 특성 없는 남자는 몇 번씩 읽어야 조금 이해되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아질 책이다. 한 책을 여러 번 읽으며 파고드는 것보다, 죽을 때까지 다 읽지 못하겠지만, 재미있고 좋은 새로운 책을 더 많이 읽기를 원하기에 매번 나의 책읽기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생각을 멈추고 남편을 바라본다. 이 사람은 내가 한 대답에 평가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가능성도 거의 0%에 가깝다. 당연히 내가 틀리게 말해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특성 없는 남자의 이름은 울리히야. 나이는 32세고 능력도 뛰어나고 잘 생겼어. 이 사람은 처음에 군사학교를 졸업해 장교가 되었지만 그만두고 공학을 공부하지만 또 그만두고 수학을 전공해 수학자가 되었어. 지금은 1년 정도 자신에게 인생의 휴가를 주고 있어. 울리히는 사람마다 소속되어 있는 집단이나, 사고, 개념이 가진 고정적 특성을 거부해. 이것들을 해체시키기를 원하지. 그래서 특성 없는 남자야. 현실보다는 가능성의 영역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매사에 이론적이야. 항상 뒤에서 앞에서 한 말을 뒤집고 있어. 울리히의 말은 언제나 모호해. 울리히는 좋게 말하면 자기식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인물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자기부정과 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야.”

 

남편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책의 번역자는 특성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울리히같은 가능성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이런저런 현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일어난 일을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실현된 것으로 여긴다(3-p.605~606)’고 해석한다.



 











로베르트 무질의 저자 최성욱은 울리히는 현대인의 비실체성불안정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항상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그에게 자아는 고정되고 확실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변화 가능한 것이다. 그에게 자아란 매우 잠정적이고 가변적이다. 이처럼 주체가 더 이상 고유한 실체가 아니라고 판명된다면, 이것과 연관된 불변의 특성도 더 이상 주체에게 부여할 수 없다. 무질에게 실체의 상실은 곧 특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p.198

 

울리히의 정체성은 그만의 고유한 특성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울리히의 특성은 이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항상 전이과정에 있는데 그것은 외부 환경은 언제나 변하며, 이의 영향을 받는 울리히의 특성 역시 항상 변화과정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특성 없는 남자는 항상 전이과정에 있는 인간이다. 따라서 그에게 한 가지 고정된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그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p.206]

 

작가 무질에 의해 특성이란 단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특성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특성은 보통 주어진 것이고 울리히의 아버지로 대표되는 특성 있는 남자는 언제나 그 세계를 확고히 지키려고 한다. 특성은 변화될 수 있지만 그것이 시대와 세계의 흐름으로 인한 변화만이라면 사람들은 또 하나의 거대한 특성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울리히의 특성 없음은 변화를 받아들이되 지향점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 지향점의 이해가 아직은 나에게 너무 어렵다.

 

 

사람을 만나다보면 지나치게 울리히가 정의한 특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가진 특성을 아무데서나 남발한다. 부담스럽다. 주어지고 선동된 특성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특성 없는 남자 2(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에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평행운동이 소요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요제프 황제 제위 70주년을 기념하고 오스트리아의 찬란한 정신을 도모하고자 한 애국대운동은 여러 반발에 부딪히고 각 특성을 가진 군중들은 시위에 참여한다.

 

시위현장에서 각기 다른 의지를 가진 개인들은 한순간에 단일한 의지의 군중(2, p.466)’으로 변한다. 평소에 절제와 신중함을 가진 사람이라도 군중이 되면 극단으로 밀고 가는 재주가 생긴다. 흥분하고 에너지를 방출한다. 보이지 않은 특성을 가진 이들이 조종하는 것에 저항 없이 동조한다. 보이지 않은 특성은 그들을 움직여 쉽게 자신들의 특성을 전파한다.

 

[그들은 군중 속에서 가장 내적 저항이 작은 점들이다. 그들이 직접 지르기보다 그들의 선동으로 더 많이 나오는 외침, 그들의 손에 들어간 돌멩이, 그들이 폭발시키는 감정, 이것들이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단계로까지 서로의 흥분을 상승시킨 다른 사람들이 미친 듯이 그 길을 밀고 나아간다. 그들은 주위의 행위에 반은 강요로, 반은 해방으로 느껴지는 집단적 성격을 부여한다.

-2, p. 466]

 

지하철에서나, 동네 공원, 산책길에서 이어폰 없이 유튜브를 큰 소리로 듣는 어르신들이 생각난다. 누군가의 선동과 지시로, 그것을 절체절명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군중 심리가 무섭다. 울리히의 특성 없음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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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3 0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누군가에게 뭘 권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반면에 뭔가에 꽂히면 악을 쓰면서 두 주먹 불끈 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릅니다. 불편한 사람은 이를 선동질이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 선동 속에도 엄연한 진실이 있다는 거죠. 무관심은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페넬로페 2025-12-13 10:56   좋아요 0 | URL
네, 쉽게 권하지 못하는게 맞습니다. 특히 책은 더 그런 것 같더라고요. 책 마다 각자 읽는 방식이나 해석이 다 달라서요. 호시우행님 말씀처럼 무관심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 같아요.

Falstaff 2025-12-13 0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십니다. ㅋㅋㅋ
저 다니는 도서관에서는 한 남자가 복도에서 이 책을 들고 걸으면서 몇날며칠 동안 읽더라고요. 며칠 후 개가실에서 책 구경을 해보니 책 세 권이 전부 등이 꺾여 너덜너덜.... ㅋㅋㅋ 도서관 빌런이었습니다. 그이는, 아니, 딱 그이 혼자 책 다 읽었을 겁니다. 저는 안병률 선생 번역으로 읽었는데, 그냥 활자만 읽어서 아무 생각 없습니다.

페넬로페 2025-12-13 10:59   좋아요 1 | URL
도서관의 빌런들 많지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책에 문장도 따라 적고 형광펜으로 죽죽 그어가며 읽고 있어요. 3권 읽다보니 아무래도 다시 읽어야겠더라고요. 안병률 번역자의 번역은 어떤가요?

책읽는나무 2025-12-13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성 없음의 특성이로군요.
특성 없는 남자는 항상 전이과정에 있는 인간이다.🤔
특성이 너무 강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하겠고…음…심오합니다.
그래도 벌써 2권!
올 해는 페넬로페 님과 함께 하는 특성 없는 남자로군요.^^

페넬로페 2025-12-13 11:03   좋아요 1 | URL
특성이란 단어를 삼 개월동안 계속 생각할줄은 미처 몰랐어요 ㅎㅎ
어렵지만 무질의 시도가 조금은 이해되고 있어요.
책나무님, 이 책 소장하고 계시니 같이 읽으시죠🙂

책읽는나무 2025-12-14 13:09   좋아요 1 | URL
실은 아직 3권 다 못 갖추고 2권만 들고 있어요. 페넬로페 님의 리뷰를 다 읽고 한 번 시도해보겠습니다만…어려울까봐 자신이 없네요.^^˝
아직은 재밌는 책?에 자꾸 손길이 먼저 가네요.

yamoo 2025-12-13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펠넬로페 님 특성없는 남자 리뷰 보고 저도 읽고 있습니다! 밴빌의 <오래된 빛>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이 작품, 완전 제 취향 저격인 작품이었네요!! 저는 이런 작품을 좋아합니다.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도 가독성은 떨어졌지만 그 특유의 작가적 관념을 읽는 게 좋았는데, 무질은 훨씬 순화된 맛이 있네요. 지금 1권 딱 중간 까지 읽었는데, 이 소설은 오스트리아의 세기말 적 풍경을 캐릭터에 잘 형상화시킨 작품인 듯해요. 세기말의 불안정성을 캐릭터로 보여주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주인공 울리히고 작가는 특성없는 남자라는 성격을 부여했죠. 저는 소설에서 시대성을 캐릭터에 잘 담아내는 작품을 선호하는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는 원탑이란 느낌이 팍 들고 있습니다. 아직 초반부 읽고 있지만 무질이 왜 서양현대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겠더군요. 무질은 줄리언 반스가 오래 전에 말한 ˝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는 걸 체험하게 해 줍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토끼도 잘 잡고 관념적 유희도 덤으로 엊어줍니다. <생도 퇴를리스의 혼란>은 재미없어 읽다 덮었는데 특성없는 남자 다 읽고 다시 들춰봐야 겠어요. 제겐 <특성없는 남자>가 올해의 발견 쯤 됩니다! ㅎㅎ 펠넬로페 님 리뷰 못봤으면 읽을 엄두를 못냈을 텐데...여튼 감사합니다!!ㅎㅎ(책은 진작에 사 두었었어요..ㅎㅎ)

페넬로페 2025-12-13 11:08   좋아요 0 | URL
yamoo님, 저와 같은 책 읽고 계신다니 너무 반가워요. <특성 없는 남자>를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질이 한 문장 한 문장을 혼신의 힘으로 썼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문장 하나하나가 다 좋습니다. 다만 이것을 제가 아직 다 연결시키지 못해 꼭 재독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줄리언 반스의 말이 실감되네요.
조만간 저도 <오래된 빛> 읽어보겠습니다.
 













고전을 읽을 때 내가 자주 고민에 빠지는 이유가 하나 있다. 책이 써진 시대의 특성만을 고려해 읽을 것인가, 아니면 현대적 관점을 조금이라도 들이밀 것인가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은 그것이 어느 시대의 것이든 그 의미가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것이지만, 어쨌든 매번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5대 희극에 들어가는, 1592년경 초연된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같은 작품이 내게 고민을 던져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번역가와 평론가는 이 작품이 역설적이며 극적인 반전과 풍자가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그러한 해석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본극 안에서 공연되는 극중극이다. 본극은 극중극보다 더 짧아 서극으로도 불린다. 영주는 술주정뱅이인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를 가짜 영주로 만들어 슬라이를 골탕 먹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하인들을 내세워 그를 혼란에 빠뜨린다. 처음에 슬라이는 자신이 영주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모두가 슬라이를 영주라고 하며 받들어 모시기에 점점 자신이 영주라고 믿어버린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슬라이 앞에서 희극배우들이 공연하는 극이다.

 

파도바의 갑부인 뱁티스타에게는 두 딸이 있다. 맏딸인 말괄량이인 캐서리나와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둘째딸인 비앵카이다. 캐서리나가 왜 말괄량이가 되었는지는 독자들이 추측해야만 한다. 하여튼 말괄량이로 소문난 캐서리나에게는 구혼자가 없고, 둘째딸인 비앵카에만 구혼자가 몰린다. 뱁티스타는 둘째딸의 구혼자들에게 큰딸의 구혼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절대 비앵카도 결혼시키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캐서리나는 불합리한 사회적 관습과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여성은 당연히 이해받지 못하고 고립된다. 그녀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독자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살아가지 못한다. 그녀에게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캐서리나는 결혼을 한 몫 챙기는 것으로만 여기는 무례한 남자인 페트루키오를 거부하지 못한다. 아버지와 신랑간의 계약으로만 성립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페트루키오가 캐서리나를 길들이는 방식은 유치하고 웃기게 보이지만 거기에는 끔찍하게 계산된 폭력이 있다. 캐서리나는 결혼을 거부하지만, 페트루키오는 강제적으로 밀어붙이며, 이상한 복장으로 결혼식에 늦게 와서 행패를 부린다. 잠을 재우지 않고,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며 마치 짐승을 길들이듯 변덕스럽게 캐서리나를 대한다. 사육사가 되어 아내를 잡는다. 캐서리나는 자신이 편안해지기 위해 페트루키오의 말을 듣는 척 한다. 페트루키오가 해를 달이라고 우기면 그냥 달이라고 인정해버린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듣는 척 하는 것일까? 길들여지고 가스라이팅 당하는 사람은 그런 척하기 쉽지 않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셰익스피어는 52장의 캐서리나의 말을 통해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의 역설과 가부장제를 조롱하고 비판(옮긴이 해설)’할지 모르지만, 이 연극을 통해 아무생각 없이 웃어넘기는 그 당시의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저 페트루키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을지? 대다수는 캐서리나가 그에게 길들여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난생처음 도전하는 셰익스피어 5대 희극5편의 셰익스피어 희극을 잘 설명해놓은 책이다. 각 작품마다 내용의 중요구절을 원문과 함께 인용해 극의 흐름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작품에 대한 평가와 거기에 담긴 의미, 인문학적 해석이 들어있다. 박용남 저자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셰익스피어시대의 가부장주의 문화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비판이 들어 있다(p.178)’고 말한다. 이 극은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캐서리나의 행동은 약자인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지혜로운 현실적 대안일지도 모른다고 서술한다. 과연 그럴까? 여전히 난 이 작품에 대한 해석에 만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카타리나는 정말로 말괄량이인가? 말괄량이란 일반적으로 말과 행동이 거칠고 여자답지 않은 여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당시 영국에서는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잔소리가 심한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말괄량이(shrew)’라는 단어는 꾸짖다(scold)’와 동의어로 인식되었다. 한마디로 여성의 언어(잔소리)는 통제되고 교정되어야 할 죄악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말에 복종하고 잠잠하라는 의미다. 여성의 말 없는 조용함이 미덕으로 간주된 것도 그 이유다.카타리나같이 가부장적인 사회규범에서 어긋나는 여성들은 말괄량이로 낙인직혔다. -p192~193’]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마지막에 죽음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될 뿐이다. 희극 역시 극의 내용은 폭력적이며 사람을 기만하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개인적 결함과 욕망, 운명으로 인해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이 훨씬 더 설득적일 수 있다. 풍자와 해학, 웃음으로 이루어진 희극적 내용에 더 지독한 인간의 애환과 씁쓸함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과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보텀은 희극적 해피엔딩 속에서도 지극히 비극적인 쓸쓸함으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슬라이 역시 마찬가지다. 신이나 기득권자에 의한 한 순간의 장난과 속임수에 불행해 질, 모두가 폭소를 터트릴 찰나에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인간의 단면을 희극은 여지없이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이 평범한 인간들의 삶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허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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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1-10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분홍책이다! ㅋㅋ 저도 오늘 분홍책 리뷰 썼는데 괜히 반갑 ㅋㅋㅋㅋㅋ
으아 저 <말골량이 길들이기> 진짜 싫어해요. 이 작품 말고도 말씀하신 부분 등 시대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지점이 있어서 저는 그토록 다들 찬양하는 셰익스피어…. 그냥 그렇더라고요. 흠..

페넬로페 2025-11-10 20:48   좋아요 0 | URL
저는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그냥 코믹극 정도일 줄 알았는데 이런 내용일지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셰익스피어가 영어를 잘 사용해서 칭송받는 것 같은데
원문으로 읽을 능력이 안되니 그저 번역문으로 열 받았습니다.
지만지의 이 책 번역은 더 억센 느낌이 들었어요 ㅠㅠ

독서괭 2025-11-10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지만지책 읽으셨군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원작으로 안 읽어보고 대충 줄거리만 알았는데 극중극인 줄은 몰랐네요;; 셰익스피어 작품 중 제일 별로일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5-11-10 21:18   좋아요 1 | URL
내용이 정말 황당했는데, 여기에 들어 있는 풍자나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을 잘 이해할 수가 없어요 ㅠㅠ
그 당시 남자들이 엄청 좋아했을 희극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5-11-10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병모 작가의 <절창>소설에도 셰익스피어 희극 몇 작품 잠깐씩 언급되어 요즘 관심이 좀 가고 있어요.
주로 <한여름 밤의 꿈>작품 언급이 많긴 했었는데 어떤 대목들의 비판은 아마도 <말괄량이 길들이기>였었나, 싶기도 하네요.
인어 공주 동화 내용도 있기도 했었구요.
저는 아직 셰익스피어 작품을 자세하게 읽어보진 못했네요.
읽게 된다면 답답하겠단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5-11-11 00:07   좋아요 1 | URL
구병모 작가는 셰익스피어 희극을 어떻게 소설에 인용했는지 엄청 궁금해요.
저는 희극보다는 셰익스피어 비극이 훨씬 더 좋더라고요. 절절하고도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요.
셰익스피어 읽으시려면 비극부터 시작하시길요^^

페크pek0501 2025-11-11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었는데 명언 같은 멘트가 좋아 셰익스피어 명언집, 이라는 책까지 샀더랬죠.ㅋ
저는 난생처음 도전하는 ~~4대 비극을 샀는데 재밌어요.

페넬로페 2025-11-11 13:3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희극보다는 비극을 더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박용남 저자의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희극은 비극보다는 생소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꼬마요정 2025-11-11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괄량이 길들이기> 싫어요!! 토마스 하디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도 뭔가 결말이 비슷한 느낌이거든요. 시대상이라는 게 참 그렇습니다… 저는 <템페스트>랑 <십이야>가 좋아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5-11-12 00:19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의 대다수 희극 작품의 과정과 결말에 뭔가 약간씩 기분 나쁜 요소가 들어 있더라고요. 거기에 다양한 의미와 풍자가 들어 있더라도 읽기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특히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제일 그랬어요.토마스 하디의 작품의 내용도 궁금합니다. <템페스트>는 작가의 말년 작품이라 그런지 저도 좋았습니다^^

yamoo 2025-11-21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런 고민이 있죠. 책 덕후들은 아마도 대개는 비슷한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는 1인..그걸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개진할 정도면 독서내공이 쌓인 고수인 것이죠...쉽게 말해서 남들이 다좋다고하고 평론가도 좋다고 하는데 아는 싫은 작품이 있는데 그걸 싫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신감 말이죠...ㅎㅎ 뭐..그렇다구요..^^;; 어쨌거나 저은 이런 리뷰가 좋아요!ㅎㅎ

페넬로페 2025-11-21 08:40   좋아요 0 | URL
독서에 고전의 비율이 많아 웬만하면 그 시대의 상황을 고려하며 읽는 편인데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도무지 그렇게 되지가 않았어요.
원서로 읽으면 그런 뉘앙스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과정이 너무 아니더라고요.
매번 책읽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그림을 낱낱이 분석한 평론가의 글엔 별로 집중하지 못한다. 어렵기도 하고 재미도 없다. 굳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그 앎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저 여러 화가의 그림 앞에 서서 열심히 볼 뿐이다. 그림을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눈이 열리고 감정과 생각이 교차되고 움직여진다. 작품마다 들어있는 개성과 창의성에 작가의 천재적인 면이 보이지만, 그 이면의 좌절과 성실에 더 감동받는다.

 

그림 안에는 화가의 의도와 작법이 있지만, 그 속에 작가 자신도 있는 것 같아 작가의 삶도 궁금하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사람자체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마로니에북스의 베이직 아트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연대기적으로 화가의 인생을 서술했고, 그림의 전반적인 특징과 시기에 따른 변화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놓았다. 책의 분량이 많지 않지만 그 속에 개괄적 내용이 들어있어 한 작가를 이해하는데 좋고, 길지 않아 오히려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다.

 

폴 세잔(1839~1906)은 오직 그림만을 위해 살았고, 그것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고, 사람들에 의한 좋은 평가도 비교적 늦게 받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간 예술가다. 은행가로 성공한 부르주아 아버지를 둔 세잔은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 때문에 파리로 간다. 세잔은 오랫동안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받았고,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아 안정적으로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파리에 있는 유명한 그림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두 번이나 낙방했고, 살롱전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세잔은 자신이 일드 프랑스(파리와 파리근교)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로 돌아가 작업한다. 세잔은 잠시 인상주의의 기법을 사용했지만, 순간적으로 빛에 의해 변화되는 것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자연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인상주의 그림이 지나치게 일시적이며 순간적이라(p.45)’고 느낀다. 세잔은 변하지 않는 자연 내부의 영원한 것을 묘사하기를 원했다. ‘영속성과 안정성(p.68)’ 으로 집중한다.

 

엑상 프로방스 인근의 1011m 높이의 생트 빅투아르 산은 거대한 석회암 산등성이로 이루어져 있다. 세잔은 이 산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거의 80여점 남겼다. 세잔은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빛을 표현하기 위해 푸른색을 많이 사용했다.

 

나는 사과 한 개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는 세잔의 포부는 그의 정물화에서 분명하게 이루었다. 이차원의 특성을 기본으로 신중하고 느리게 작업했다. 작업실 안의 모든 사물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고 한 작품을 몇 달 또는 몇 년간 그리기도 했다. 말년의 세잔은 수욕도를 많이 그렸다. 고전주의 화가에 대한 존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을 큰 캔버스에 그리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나는 캔버스의 모든 요소를 동시에 나의 통제하에 둔다. 사물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다시 모으기 위해 나는 내 본능과 신념을 동원한다.예술은 자연을 영속적으로 묶어두어야 한다. 모든 구성 요소와 변화의 모습까지도 고정시켜야 한다. 자연을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영원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p.67]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그림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쁨과 위안을 준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웃고 행복할 수 있다. 한순간 포착된 삶의 환희와 붉은 빛 낭만을 르누아르만큼 잘 표현한 사람이 있을까? 설사 이것이 그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일지라도 그의 그림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계가 어려워도 르누아르는 걱정이나 비관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그림보다 밝은 색의 그림을 그렸다.

 

세잔과 달리 가난한 중산계급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르누아르는 가난과 싸우며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도자기 공장에서 도제로 일하며 회화와 드로잉에 재능을 보인 그는 13세에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되었다. 돈을 모은 르누아르는 21세에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다. 샤를 글레르의 개인 화실에도 다니며 그림을 배웠다. 그곳에서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프레데리크 바지유를 만났다.

 

르누아르와 모네는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의 인상은 그들을 사로잡았으며 나중에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얻는다. 르누아르는 파리의 중산계급 사람들의 일상을 주로 그렸다. 로코코 거장들의 작품과 현대 프랑스 시각예술 전통에 뿌리를 둔 다양한 소재의 그의 그림은 당시 프랑스인의 일상과 여가를 잘 나타내주었다.

 

1883년경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양식을 버리기 시작한다. 2,3년 정도 불모의 시기를 거친 그는 더 이상 파리의 일상을 그리지 않는다. 르누아르는 친구 세잔처럼 사물의 형태를 견고하고 명확하게 묘사하려(p.62)’했다. 그 후 부드러운 양식으로 다시 복귀한다. 그는 예술에 대한 관점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르누아르의 색채는 훨씬 더 화려하고 강렬해졌다. 눈부신 색채와 경쾌한 붓놀림으로 넓은 곡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선천적으로 선량하고 소박한 사람이었으며, 그림을 통해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었다. 따라서 감각적인 아름다움보다 견고하고 이성적인 토대에서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르누아르는 혁명적이기를 원치 않았다. 언제나 새롭고 항구적인 미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는 진실의 한 부분을 보고 그대로 그렸을 뿐이다. 그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았으며, 자신만의 시각에 치우쳐 실제의 비례를 왜곡하지도 않았다. 그의 예술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과 빛, 영원한 자연을 사랑했다. 실존적 두려움과 중산계급의 불안과 절망이 커져갈 때, 르누아르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의 가능성을 그림으로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p.91]


-오베르 인근에서 그림을 그리는 폴 세잔, 1847년경, 사진, 헤이그 시립 미술관(p2)

-작업실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912, 사진, AFG 베를린, 뒤표지

(사진에서도 르누아르의 손가락은 많이 변형되어 있다.)

 

세잔과 르누아르의 말년은 병마와 싸우는 시기였다. 세잔은 당뇨병과 우울증을 앓고 있어 예민해져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르누아르는 심한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뼈가 변형되었고 몸무게가 47kg밖에 나가지 않았다. 르누아르의 손은 심하게 비틀려 휘어져 손과 붓을 묶어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누군가와 얘기할 때 통증이 밀려오면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얘기를 멈추어야 할 정도로 그는 고통스러웠다.

 

그런 힘듦에도 세잔과 르누아르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르누아르는 그 시기에 조각을 그리기 시작했고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기 위해 매일 그곳에 올랐다. 1906년 가을, 세잔을 큰 폭풍이 왔음에도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몇 시간동안 비에 젖은 몸이 쇠약해졌지만, 다음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정원으로 나가서 다시 악화되어 폐렴으로 사망했다.



 

 

 









엑상프로방스의 부르봉 학교에서 만난 세잔, 에밀 졸라, 장 바티스트 바유는 단짝 친구들이었다. 이 세 친구는 주변 지역을 여행하며 사냥을 했고, 수영을 즐겼다. 그들은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고 빅토르 위고와 알프레드 드 뮈세를 좋아했다. 그들은 시작(時作)을 했고, 세잔은 라틴어로 시를 쓰기도 했다. 세잔을 파리로 불러들인 사람은 친구인 에밀 졸라였다. 세잔이 평론가와 대중에게 비판받던 시기에도 에밀 졸라는 그를 옹호했다.

 

루공 마카르 총서를 쓰던 졸라는 성공해 세잔보다 훨씬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의 우정은 이미 예전 같지가 않았다. 18863,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출간은 두 사람이 완전 결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는 누가 봐도 세잔을 모델로 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책을 보내준 친구에게 세잔은 형식적인 편지를 보내고 관계를 끊는다. 세잔은 졸라의 장례식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세잔이 에밀 졸라가 이 소설에서 표현하고자 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거나, 내용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의 우정은 되돌릴 수 없었다. 편지의 내용에서 세잔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친애하는 에밀에게.

작품을 막 받았네. 친히 한 권을 보내주다니 정말 친절하군. 루공 마카르총서의 저자 분께 추억의 증표로 감사하다고 전해주게나. 또한 과거를 생각해서 그에게 그의 손을 꼭 붙잡아봐도 좋은지 여쭤봐 주게나.

과거 속에 살고 있는 당신의 폴 세잔. -p.62]



한가람 미술관의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는 파리의 오랑주리와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세잔과 르누아르 작품의 일부를 가져와 전시하는 기획전이다. 몇 년 전에 열렸던 <오르세 미술관>전에 비해 작품의 수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전시가 세잔과 르누아르의 작품을 서로 교차하며 보여주어 두 예술가의 세계를 비교할 수 있어 좋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의 사진 찍기가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사진 찍기가 허용되는데 왜 한국에서 그것을 금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품 보호 차원에서라면 오르세와 오랑주리에서도 금지되어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분명 허용된다. 관람객이 많으므로 빠른 회전율을 원한 주최측의 꼼수가 아닌지 의심되기도 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진을 찍지 않으니 좋은 점은 있었다. 작품 자체에 완전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에 담을 수 없고, 내가 파리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아 그림 앞에 오래 서 있기도 하고, 그림을 보고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면서 내 눈에 최대한 그림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수프 그릇이 있는 정물

-푸른색 꽃병

-밀집 장식 꽃병, 설탕 그릇과 사과(사진출처; 전시회홈페이지제공)

-폴 세잔


-튤립 꽃다발

-꽃병에 꽂힌 꽃

-복숭아가 있는 정물(사진출처;전시회홈페이지제공)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세잔과 르누아르의 그림은 나름 다 좋았다. 그런데 정물화에서만큼은 세잔이 완벽하게 승리한 것 같았다. 작품 자체를 놓고 볼 때 르누아르의 꽃을 그린 정물도 좋았지만, 세잔의 작품과 비교해서 보니 왜 세잔의 정물화가 그렇게나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피아노를 치는 이본과 크리스틴'-오랑주리 미술관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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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0-29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시 작품 수는 그리 많지는 않군요..🧐

페넬로페 2025-10-29 09:05   좋아요 1 | URL
네, 제 느낌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산 그림이나 르누아르의 대형화를 보고 싶었는데, 그 부분에서 많이 아쉬웠어요^^

yamoo 2025-10-29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술 평론가 글은 원래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미술 평론가 중에서도 자기가 무슨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는 평론가가 다수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평론 따위 읽는 건 작품 감상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어쨌든 세잔은 사과로 전 세계 미술인들과 평론가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건 변함이 없고 그의 형태와 구성에 대한 집착은 추상미술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죠. 많은 작가 중에서 세잔만큼 높은 재평가를 받는 이는 없는 듯합니다...르누아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평론가들과 화가들의 추종을 받고 있죠..^^

페넬로페 2025-10-29 12:24   좋아요 1 | URL
세잔을 소개한 유튜브에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모든 근대가 세잔에 모여 현대가 탄생했다˝
세잔의 정물화를 보면서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세잔의 정물화도 좋았고
르누아르의 오렌지빛 인물화도 멋졌어요.
오랑주리미술관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호시우행 2025-10-29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르누아르 화폭엔 대부분 여성들이 주인공이죠. 전시회 그임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5-10-29 14:57   좋아요 1 | URL
르누아르 그림 속 여성들은 넘 아름다워요. 그 속에 화양연화가 있는 것 같아요.

서곡 2025-11-08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전시 예약해뒀는데 얼른 가봐야겠어요 이 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5-11-08 17:14   좋아요 1 | URL
아, 아직 안 다녀오셨군요.
즐거운 감상 되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소설 액스(AX)를 원작으로 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박찬욱 감독이 왜 이 소설의 영화화를 필생의 프로젝트로 열망했고 17년 만에 기어코 스크린에 올려야만 했는지 궁금했다.

 

1997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소재와 내용의 전개가 굉장히 특이하면서 쇼킹한 면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치밀하게 설계해,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사회적 현상과 구조적 모순 때문에 자신도 어쩔 수가 없이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어쩔 수가 없다는 책에 여러 번 나오는 문장이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와 상관없이 일단 그 자체로 봐야한다. 이 책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면은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이것들을 과감히 배제한 채, 오직 한가지만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전 세계를 움직이는 조직적이고 악랄한 경제적 흐름에 한 순간 희생되는 개인과 그 가족들 각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작가가 의도한 것만을 볼 필요가 있다.

 

23년간 중간관리자로 한 제지회사에서 계속 근무해온 버크 데보레는 정리해고를 당한다.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2년 동안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재취업을 못하고 있다. 한창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이 필요하고 집 대출금도 남아있는 상태다. 아내는 두 군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최대한 긴축재정을 했지만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 ‘돈이 바닥났다.(p.33)’ 그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다시 직장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구직자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버크 데보레는 우체국 사서함의 주소를 빌려 주로 제지업을 다루는 잡지에 구인 광고를 낸다. 전해 축전지 제지 기계로 가동되는 가상의 제지공장의 새 생산 라인을 맡아 관리해줄 특수 용지 전문가를 찾는다는, 한마디로 가짜 내용으로 조작된 것이었다. 그 주소로 200명이 넘는 사람이 이력서를 보내왔고, 그는 자신과 비슷한 경력의 경쟁자를 추려 그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거침없이 실행한다. 그들과 자신이 원하는 삶은 비슷했고, 냉혹한 자본주의는 모두에게 필요할 것을 다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포기하거나 아님 둘 다 싸워 끝장을 봐야만 한다.

 

그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독일군에게 빼앗아 온, 50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총 루거가 있었다. 버크는 자신이 지원할 직종에 취업할 가능성이 있는 경쟁자를 찾아가 루거를 쏴 죽여 버린다. 그는 이력서를 제출한 경쟁자 4명을 죽인다. 일이 꼬여 릭스를 죽일 때 그의 아내도 죽인다. 마지막으로 버크가 취업을 원하는 회사의, 그 직책에 딱 버티고 있는 장애물인 업튼 팰런을 죽이고 그는 그 자리에 재취업하는데 성공한다. 6명을 죽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다.

 

운 좋게 버크 데보레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신이 계획한 일을 착착 진행해 성공한다. 그 사이 아내의 외도도 정리되고, 상담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도 개선된다. 말썽피웠던 사춘기 아들의 사고도 말끔하게 해결해줬다. 돈이 만사형통이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실직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야기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실직당한 이유가 자본주의 원리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자신과 그의 가족이 중산층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버크의 회사는 적자가 아닌 상당히 좋은 영업실적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직원의 4분의 1을 한꺼번에 해고시켰다. 해고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일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언제나 실직자가 구직자보다 많은 것이 문제다. 사람을 기계로 대처하고 필요 없어진 그 제품 라인을 다른 회사에 매각해 막대한 수익을 남긴다. 끊임없이 개발되는 신기술은 새로운 인력을 필요로 하고 쓸모없어진 직원은 해고당한다. ‘변화에 뒤처지면 끝장이지만(P.26)’ 그것을 좇아가기는 쉽지 않다. 버크는 종이라는 복잡한 주제의 전문가였지만, ‘종이라는 더 복잡한 주제가 난데없이 들어오며 수 십 년간 일해 온 회사에서 순식간에 도끼질당해야 했다. 투자 수익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와 회사의 흑자를 위해 임원들은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자신의 자리를 보장받는다. 해고자 개인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오래 전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독일의 한 가공육 공장을 취재한 것이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모든 생산라인 중 각 한 곳에만 배치된다. 먼저 소가 줄지어 들어오면 한 노동자는 소의 머리에 전기 충격기를 들이댄다. 기절한 소는 거꾸로 매달려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어떤 노동자는 소의 배를 가른다. 내장을 쏟아낸 소는 또 움직여 가죽이 벗겨진다. 다른 노동자가 작두를 쥐고 소의 앞발을 자른다.....이렇게 노동자는 생산 라인의 한 곳에서 하루 종일 한 가지 일만 반복적으로 한다. 점심시간에는 자신이 살생한 그곳에서 도시락으로 싸온 샌드위치를 먹는다. 아마 지금은 그마저도 거의 대부분 기계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 일만을 반복적으로 한 노동자가 해고되었을 때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작가 웨스트레이크는 이 책에서 거대하게 조직된 자본주의의 논리와 그에 따른 냉혹한 현실을 고발한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이 다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 잔혹한 사회가 한 사람을 총으로 무장시킨 채 밖으로 내몰고 있으며, 그는 총질을 하면 할수록 더 편하게 잘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그렇게 변한다.

 

[나는 킬러가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영혼이 없는 킬러. 그건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벌이고 다니는 짓은 사건의 논리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이다. 주주들의 논리, 임원들의 논리, 시장의 논리, 노동력의 원리, 밀레니엄의 논리, 그리고 나 자신의 논리. 대안을 알려주면 살인을 멈출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벌이는 짓은 끔찍하고, 까다롭고, 섬뜩하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p.162]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의 영화답게 미장센과 대사 특유의 유머와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다. 소설의 진지한 블랙코미디를 가볍게 비틀었지만 거기에 소설보다 더 끔찍한 비극이 들어있어 좋았다. 다만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것을 배제한 채 영화를 가족 판타지로 축소시킨 것이 아쉬웠다.

 

실업자가 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도 힘들다. 똑같은 처지지만 만수(이병헌)와 범모(이성민)의 대처는 다르다. 만수는 총을 쏴서라도 가족을 지키려 하지만 범모는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누가 더 맞다, 누가 더 잘한다는 있을 수 없다. 만수의 행동이 그 어떤 이유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두 사람의 차이나는 행동으로 만수의 아내인 미리(손예진)는 그의 동조자가 되고 범모의 아내 아라(염혜란)는 적이 된다. 아라는 범모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에게 실직당한게 문제가 아니라 실직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제야라고 말한다.

 

어느 누가 실직에 대처하지 않겠는가? 대처해도 잘 안 되니 문제가 된다. 실망하고, 자포자기하고.끝내는 어쩔수가없이극단적 행동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버크는 어떻게 해서든 내가 벌인 짓들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자살을 하지 못한다.(p.114)고 했다. 만수와 소설과 다르게 그의 살인을 알게 된 미리역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불안과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느낀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재취업한 만수는 거대한 기계실의 관리를 맡고 있다. 그는 그저 그 기계들이 잘 돌아가는지 체크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기계가 다 알아서 종이를 생산해준다. 만수는 귀에 귀마개(기계가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엄청나다)를 하고 손에 패드를 들고 기계 사이를 걷는다. 그의 얼굴엔 안도의 미소가 있다. 하지만 그 미소가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암시한다. 총질로 가까스로 거기에 갔지만, 멀지 않아 그의 길은 또다시 험난해질 것 같다. 지독한 박찬욱 표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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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0-23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엑스를 오래 전 읽었는데, 그리 재밌지 않았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원작이 엑스였군요~
저는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관심이 없었는데...엑스가 원작이었다니..ㅎㅎ

페넬로페 2025-10-23 21:41   좋아요 1 | URL
네, 그리 재밌지는 않은데 스토리 전개가 특이했어요.
저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좋아하는데,
<어쩔수가없다>도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5-10-24 0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페넬로페님은 책쟁이가 맞습니다~!
박찬욱 감독님도 책쟁이인거 같아요. 이런 책을 어떻게 아셨는지 ㅋ

페넬로페 2025-10-24 10:29   좋아요 1 | URL
박찬욱감독님이 독서를 엄청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책에서 소재를 많이 찾을 것 같아요.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독서괭 2025-10-26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영화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놀랍습니다. 원작 읽고 보면 더 많은 게 보일 것 같은 영화로군요.

페넬로페 2025-10-26 16:37   좋아요 1 | URL
저도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알게 되었어요.
책과 영화 내용은 비슷한데
각각 나름의 개성이 있더라고요^^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출연한 영화를 처음으로 본 건, 어릴 때 TV에서 방영한 주말 영화프로그램이었다. ‘내일을 향해 쏴라였다. 그 영화에는 지금도 레전드로 꼽히는 유명한 사운드 트랙과 장면이 있다.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흘러나오며 폴 뉴먼과 캐서린 로스가 자전거를 타는 씬이다. 나 역시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음악과 영상이 너무 좋았지만, 그때부터 난 폴 뉴먼이 아닌 로버트 레드포드의 팬이 되어버렸다. 보는 순간 그냥 처음부터 이 배우에 홀딱 빠져버렸다. 느끼하지 않게 잘 생긴 것이 매력 있었고, 그리 정열적이지도, 과하지 않은 담백한 연기도 좋았다.

 

그 뒤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영화는 거의 본 것 같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출연한 추억과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역할이 너무 차갑고 이기적인 것 같아 마음에 조금 들지 않았지만, 이 배우를 탓할 수는 없었다. ‘추억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사운드 트랙과 영상 역시 내 인생영화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더 좋았던 점은 그가 배우로만 머물지 않고 감독과 영화 제작자, 그리고 저예산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선댄스 영화제를 설립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전공한 딸아이는 올 초 미국 유타주의 파크시티에서 열린 ‘2025 선댄스 영화제에 자원봉사자로 다녀왔다. 혼자 짐을 꾸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걱정되어 반대하기도 했지만, 내 말을 들을 아이가 아니었다. 비록 자비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갔지만, 무료로 제공되는 훌륭한 숙소와 여러 인종과 나이가 섞여있는 다양하고 친절한 사람들 사이에서 딸아이는 좋은 영화도 많이 보고 우정도 쌓고 왔다. 그 경험이 플러스가 되었는지 딸아이는 올해 계속해서 한국의 여러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다. 오늘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한다.

 

너무나 더웠던 올 여름의 무더위도 어느새 물러나고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늘 세월은 흐르고 세상이 변하지만 아직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한 번씩 적잖은 우울과 마음의 허전함을 겪는다. 누군가를 보낼 땐 매번 힘들다.


주말에 자주 같이 영화를 봤던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이다.


-사진출처:네이버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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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9-17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르는 강물처럼>에 그가 나왔나 싶어 찾아보니 감독이었군요.

페넬로페 2025-09-17 20:27   좋아요 0 | URL
감독으로도 성공을 거둔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감독상도 수상했고요^^

다락방 2025-09-17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쩐지 흐르는 강물처럼이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페넬로페 2025-09-17 20:28   좋아요 0 | URL
<흐르는 강물처럼>도 정말 레전드죠^^

바람돌이 2025-09-18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을 향해 쏴라하고 스팅
여기서도 연식이 드러나는군요. ㅎㅎ 제게는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졌던 배우입니다. 부디 편히 영면하시기를.....

페넬로페 2025-09-18 23:07   좋아요 1 | URL
저도 연식이 많이 된 사람임이 확실해요 ㅎㅎ 할리우드 키드로서 미국 영화를 엄청 본 것 같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 배우는 정말 나이 들수록 멋있었어요. 자기 목소리도 확실히 내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