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마이페이퍼 당선작

상처가 영광이 되길 바라~ - 카알벨루치
1 김애란은 나보다 젊은 작가였다. 80년대생이었다. 신은 참으로 불공평하구나! 젊은 작가가 이렇게 글을 잘 쓰다니 그런 생각이다.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을 두어권 읽었는데, 나는 이제 ‘젊은 작가’에 들어갈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세월은 구약성경의 표현처럼 ‘장사의 쏜 화살처럼’ 스피드하게 흘러가는구나 싶다. 2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보면 그는 ‘형용사’나 ‘부사’의 사용을 굉장히 배제하거나 꺼린다. 주어와 동사로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기술할 수 있는 단문, 간결...

문명과 질병 : 동반자 또는 경쟁자 - 겨울호랑이
인류의 근대사에서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이 동물들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들이다. 역설적이지만 유행병을 일으키는 이 세균들은 대부분 오늘날 거의 인간들에게만 감염되고 있다.(p287)... 대중성 질병들은 반드시 대규모의 조밀한 인구 집단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구 집단은 약 10000년 전에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전에 도시의 발생과 더불어 가속화되었다.(p299) <총, 균, 쇠> 中...

얼마나 간절하면 유골을 먹고 싶은 걸까... - 구단씨
초저녁의 졸림을 이기려고 눈을 부릅뜨면서, 저녁 일일 드라마의 오늘 분량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엄마 얼굴을 보고 있다. 웃음이 난다. 졸리면 그냥 주무시지, 기어코 본방 사수하겠다면서 주인공의 복수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계신다. 일상의 낙이 매일 저녁 방송하는 TV 드라마를 보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웃기다. 마치 그걸 보지 않으면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것인지... 옆에서 조용히 앉아 이 책을 읽고 있다가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봤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나는 엄마의 무엇을 갖고 싶을까 하고. 저자는 엄마의 유골을 ...

모범장서가의 책자랑질 - 사전 - 붉은돼지
소생이 소싯적에는 책 읽기를 몹시 즐겨 하루라도 부독서면 입안에 생형극이라. 글을 읽느라 끼니 거르기가 다반사요, 날밤 까기가 부지기수라. 문중의 일각에서는 큰 선비가 났다고 수군거리기도 하였으나 무심한 세월이 물같이 바람같이 무심하게 흐르는 동안에 촉망받던 어린 독서가는 문득 늙어빠진 장서가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오오 슬프구나. 어떤 눈 밝은 이가 앞날을 예측하고 어떤 어진 이가 인생을 장담한단 말이런가. 연이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난날 독서에 용진할 때에는 비록 읽은 책으로 인하여 작은 흉중에 감상의 파도가 주책없이 밀...

40명의 순교자 - cyrus
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에 신 스틸러(scene stealer)가 한 명쯤은 꼭 있다. 비록 그들은 소설에서 잠깐 나오는 인물에 불과하지만, 주인공 못지않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2002) 『공포-한 친구의 이야기』, 『우수』 수록 『공포-한 친구의 이야기』는 체호프가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친구다. 드미트리 페트로비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합법적인 종결 - blanca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의 졸업식 행사가 다 취소되었다. 대학생들 입학식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까지 취소된 마당에 이 정도는 불만거리도 안 될 것이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Contagion, 2011)에 이와 흡사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의 십 대 딸은 신종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거의 집에서만 갇혀 지낸다.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기회도 남자 친구와 만날 시간도 신종 전염병 때문에 다 빼앗기고 만다. 딸을 위해 아버지는 집에서 졸업식 파티를 열어 준다. 아이들도 이 시간 동안 많은 기회를 추억을 박탈당한다는 느낌이...

길 잃어 떠나는 여행. - yureka01
"여행 가고 싶음 가면 될 거 아닌가"라고 반문해도 결국 여행을 못! 간다. 핑계를 대자면 왜 "못(NO")이냐 하면. 사는 게 다 못(PIN)으로 쳐돌려 있거든. 뭐 관광이라면 잠시 다녀오는 것으로도 가능할 수야 있겠지. 아니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어야 하는데, 몇달씩 집을 비우며 직장을 관두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회사가 한 달 두 달 간이나 여행 가겠다고 휴직하겠다 하면? 그러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몇 곳이나 될까. 연휴라 해봐야 명절에 빨간 색 날짜 이외엔 꼬박 징역살이하듯이 잡혀 있는 현실에서 장기간의 휴직이란...

‘내리는 사람‘과 ‘화창한 사람‘의 우정이 스며들다 - 잠자냥
만화를 즐겨 읽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 눈에 띄는 만화가 있고, 완결이 되지 않았음에도 다음 권을 기다리며 읽어나가게 되는 만화가 있다.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도 그런 만화 중 하나이다. 아니, 요즘에는 이 만화가 거의 유일하게 다음 권을 기다리면서 읽고 있는 만화랄까. 이 만화에 태그를 달자면 #일흔다섯 할머니 #십대 여고생 #우정 #BL만화 #오타쿠 등이다. 할머니와 여고생의 우정이라고 하면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데, 난데없이 BL만화가 끼어든다. 그 키워드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데, 바로 이 점이 ...

겨울은 나의 슬픔 계절, 봄에는 웃고 싶다 - 만화애니비평
겨울은 언제부터 나에게 슬픔이 되었을까? 겨울에 태어난 나로선 겨울은 나에게 생일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겨울은 나에게 슬픔의 계절이 되었다. 2월 어느 목요일, 이날은 나에게 매우 슬픈 날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금요일이 더 슬픈 날일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이제 3년째이다. 3년 상이란 옛날 말이 있다. 지금이야 근대문화에 따라 3일장만 하지만, 과거 조선시대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움막을 짓고 거기서 추모하던 것이 사대부의 도리였다. 분명 나는 사대부의 후손으로 사대부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기본...

폭력은 그 무엇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임을... - 비연
자자와 캄빌리의 아버지 유진은, 주변에는 후한 인심과 깊은 신심으로 명망이 높은 인사이지만, 집안에서는 폭군이다. 폭력적이고 실제 폭력도 휘두르며, 자식과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 할 뿐 아니라 자신의 광신을 강요하고 일과표를 통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었다. 십수 년간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들은 두렵고 공포에 떨었지만 이렇게 사는 것만이 인생이라는 생각 속에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고 아버지의 칭찬에 마음 푸근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1등은 누가 했니?" 마침내 아버지가 물었다."친웨 지데제요.""지데제? 지난 학기에 2등 했...

‘라쇼몽’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 - 초란공
‘라쇼몽’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 작년에 일본계 미국인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의《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를 알게 되어 찬찬히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쿠타니는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 New York Times》에서 34년 간(1983-2017) 서평을 담당했는데요, 그녀가 은퇴 후 처음 발표한 정치·문화비평서가 바로 이 책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이하 《진실》로 표기)입니다. 이 책을 읽던 중 알게 된 소설 한 편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입니다. 《진실》의...

시인의 숨소리 - 자목련
해가 지는 시각이 점점 늦어진다. 저녁은 천천히 찾아온다. 이렇게 계절이 흐르는구나 생각한다. 아파트 화단에 매화의 꽃봉오리가 보였다. 매화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뭔가 계속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활짝 터질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어린 시절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절기나 계절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봄이니까 꽃이 피고 겨울이니까 눈이 오는 게 당연했다. 뚜렷했던 계절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몇 해 뒤에는 하나의 계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가 느끼는 계절의 냄새가 새삼 달콤하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나는 이 책들이 좋더라. - Falstaff
출판사 문학동네는 오늘까지 모두 186권의 세계문학전집을 냈습니다. 이 가운데 제가 읽은 책들, 다른 출판사를 통해 읽은 작품은 비단 아무리 좋은 명작이라도 포함시키지 않고, 오직 문학동네 시리즈로 읽은 책 중에서 감명 깊게, 감동하며, 또는 동감하면서 기쁘게 읽은 책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아마추어 독자가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추천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순서는 시리즈 번호입니다. 5. J.M.G. 르 클레지오, <황금 물고기> 본격적으로 르 클레지오의 팬이 되게...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와 <기생충> - oren
민음사에서 완역본으로 출간한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이 쓴 불후의 걸작 『로마제국 쇠망사』를 동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마침내 끝냈다. 겁도 없이 이런 대작을 소개하겠다고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아주 식겁을 했다. 기번의 작품이 워낙에 대작인 데다가, 1,000년이 넘는 장대한 시간을 다루는 역사책을 영상으로 소개하려니 여간 품이 많이 드는 게 아니었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전6권> 4,150쪽이나 되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이 힘에 겨웠다. 대본이야 진작에 써 놓은 리뷰를 바탕으로 적당히 편집하...

좋은 어른은 있다. - 다락방
내가 잘 못해서, 잘 몰라서 끈질기게 시도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동문학과 시 이다. 봐도 봐도 잘 모르겠어서 '그래도 언젠가는 알게되겠지' 싶어 계속 시도하는데, 역시 그래도 잘 모르겠다. 얼마전에도 신간인 시집을 호기롭게 샀다가 바로 중고로 팔아버렸다.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 아동문학도 그렇다. 좋다는 그림책, 동화책을 읽어도 내가 너무 어른의 눈으로 봐서인지 제대로 감동을 할 수 없는 거다. 나는 항상 예술이란 제대로 감상하는 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면에서 볼 때 아동문학은 나랑 거리가 멀어도...

어린이의 감정이 흐르는 길에도 순한 것과 거친 것이 함께 있다. 웃음 뒤에는 비탄이 있고 호기심의 끝에서 공포를 직면하기도 한다. 어린이의 마음에 버젓이 있는 다양한 감정을 어른의 경험 위에서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바람직한 것 중심으로만 재편하려는 태도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이들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골을 따라 문방구에서 산 잔혹한 이야기 시리즈를 찾아 읽는다. 동화가 공포감을 외면한 결과다.- P79


<악령>은 정치소설 - 그 이후 - 푸른괭이
오랫동안 역자에 내 이름을 달고 있던 <악령>이 새롭게 나왔다. 표지를 바꾸지 않아 빨리 알아채지 못했지만 편집자와 통화도 하고 새 판본도 도착했다. <악령>은 내가 석사논문 쓴(통과된) 직후 번역하기 시작하여 박사과정 중에 출간한, 나의 번역 데뷔작이다. 나름 한시절의 종결^^;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세를 몰아, <악령> 개역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부디!) 일주일 정도만 더 주어지면 깔끔한 새 원고를 만들 수 있겠다. 이쪽 출판사도 일정이 있어 연내 출간은 힘들겠지...

고독은 영혼을 향해 있다 - stella.K
처음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평소 그의 영화를 좋아해 볼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영화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기에 보려고 했던 거다. 그런데 웬걸 그의 영화가 아니었다. 아마도 감독의 이름과 영화 제목이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고 생각해 착각을 불러일으켰나 보다. 그렇게 멋모르고 보기 시작한 영화가 완전 빠져들고 말았다.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토니 타키타니.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마다 그람은 잘 그리지만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

2020년 2월에 만난 책들 - 사실과 허구의 책 숲에서 계속 전진한다 - AgalmA
마스크 품귀 현상인 요즘, 알라딘이 사은품 줄 때 살 걸 후회하면서 알라딘 오프라인 매장 가도 없겠지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여전히 집(종이책 구역)과 사무실(전자책 구역)을 오가며 책을 본다. 이 달 독서는 나름 흡족한 성과가 있었다.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벽돌 책인 로버트 치알디니, 더글러스 켄릭, 스티븐 뉴버그 『사회심리학』, 엘리에저 J. 스턴버그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를 완독한 것! 📘 명성 자자한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글로벌 그린 뉴딜』이 나왔길래 리프킨...

문학의 세계화 - 레삭매냐
더 미룰 수가 없어 1,752쪽 짜리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전에도 이미 1권과 2권을 읽고 3권에서 멈춘 적이 있어 더 조심스럽다. 바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이단아,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의 로베르토 볼라뇨의 역작 <2666>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읽다가 과연 그전에 한 번 읽어서 그런지 기시감도 들고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간다. 하지만 방심하지 말지니. 이제 겨우 초반전일 뿐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배배 꼬이고 더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나의 혼을 빼놓을 것이다. 내러티브의 중심에는 192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