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마이페이퍼 당선작

영원히 나의 것 - 단발머리
얼마 전 다락방님의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리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전에 읽다가 도중에 포기한 책이라서 더 관심이 갔다. 앞부분만 읽었지만, 하루키를 인터뷰했던 젊은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가 그의 왕팬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하루키의 작품을 오랫동안 깊이 있게 읽어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읽던 도중, 하루키 작품을 좀 더 읽은 후에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반납일도 성큼성큼 다가오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읽은 하루키 소설은 『기사단장 죽이기』인데, 친하지 않...

5월 1일에 노동을 생각하다 - 겨울호랑이
그대는 옷을 벗고 씨 뿌리고, 옷을 벗고 소들을 몰고 옷을 벗고 수확하시라. 데메테르 여신의 일을 모두 제때에 보살펴 모든 것이 제때에 자라기를 바란다면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나중에 궁핍해져서 남의 집을 돌며 구걸해도 아무것도 얻지못할 것이오.(390 - 395) <일과 날>(p120) 中 헤시오도스(Hesiodos, BC 740 ~ BC 670)의 시(詩) <일과 날 Opera et Dies>에 이미 '노동(勞動, labour)'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을 보면, 노동(형태와 무관하게)은 떼어놓...

나아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걸고**** - 페넬로페
민음사판의 '호밀밭의 파수꾼' 을 읽고 '홀든 콜필드' 를 잘 이해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읽을 책이 많음에도 항상 청소년을 접해야하는 나이기에 이 소년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이번에 문예출판사판으로 다시 읽었다. 매번 그렇듯이 같은 내용의 책을 한 번 더 읽으면 첫째번의 나의 독서가 많이 빈약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내용이 있었나싶게 새롭고 생소한 장면들이 나와서 저번에 읽었던 책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그 얘기가 나와 있었다. 민음사판의 번역이 약간 정제된 느낌이어서 홀든의 내면을 좇아가기 좋았다면, 문예출판사는 민음사판보다는 거...

다치기 쉬운 작은 마음들이 모여... - 푸른희망
예민한 작가구나 싶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감정들 생각의 가닥 가닥들을 섬세하게 놓치지 않고 들여다 보고 묘사해낸다. 그 감정과 생각에 경중이 있지 않고 앞뒤가 있지 않음을 세심하게 살핀다. 그 마음도 그 맞은 편의 다른 마음도 다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작가는 말하면서 은근하고 강단있게 그럼에도 옳은 방향은 이렇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 마음이 참 따뜻하다. 내가 누군가와 연대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내 속에 수만가지가 혼란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우월한 위치에서 시혜적인 마음한켠 이것이 전부 진실일 리 없다는 의심그 의심을...

밑줄긋기와 필사에 대하여... - oren
언제부턴가 '필사하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필사하기 좋은 책들이 필사 노트와 함께 팔리기도 했었다. 나도 이미 오래 전부터 필사의 유익함을 체험한 터여서 내심 그런 분위기가 반가웠더랬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밑줄 하나 긋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게으른 태도인가. 또한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을 단 한 줄도 옮겨 쓰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심한 태도인가. 나는 책을 읽는 동안에 노트에 뭐라도 좀 끄적거려야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근사한 대학 노트를 마련하는 걸 무슨 낙...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보들레르와 로트레아몽 - cyrus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의 《말도로르의 노래(Les Chants de Maldoror)》는 가장 난해한 문학작품 중 하나다. 우리는 이 작품을 ‘가장 난해한 시’ 아니면 ‘가장 난해한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 로트레아몽, 윤인선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 (달섬, 2020)*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 (문학동네, 2018) 학자와 역자들은 《노래》를 여섯 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산문시로 보고 있지만, 그 속에 시의 기본 형식인 운율과...

가난으로 내몰린 8억 명의 유령이야기 - 청공
아룬다티 로이는 첫 소설을 쓴 후 20년 만에 <지복의 성자>를 출간했다. 그녀는 지난 20년간 책상 앞에 앉아 있기보다 군중속에 있었다. 인도의 급성장 속에서 착취당한 사람들을 대변하며, 카스트 제도, 그리고 자본 세력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하면서 말이다. <자본주의:유령이야기>는 인도의 자본 시스템 작동을 면밀하게 파헤치고 불평등한 인도의 민낯을 드러낸 보고서다. 수백만 인구의 토지가 “공익”이라는 이름하에 강제로 빼앗긴다. 착취된 토지는 민간 자본에 넘겨진다. 석유화학, 천연가스, 고등학교, 생명과...

2020년 4월까지 읽은 책들 - 스파피필름
최근 읽은 책 중 감탄에 감탄을 하게 만드는 책 1871년부터 1900년까지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라 불리는 시간에 파리에서 활약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회학적으로 접근했다. 드가, 르누아르, 모네, 마네, 베르트 모리조(화가, 외젠 마네의 아내), 사라 베르나르(배우), 드뷔시, 졸라, 고흐, 프루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사적인 면모가 재밌게 읽힌다. 인상적인 몇 인물을 꼽자면 우선은 에펠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의 이야기..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이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귀스타브 에펠...

돈, 돈, 돈에 대한 빼어난 통찰 - 잠자냥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 때문에 걱정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크든 작든 다들 한번쯤은 돈 걱정, 돈 생각을 한다. 이렇게 일하며 사는 것도 모두가 그 ‘돈’ 때문이다. 돈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안락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아니 돈이 많은 사람, 부를 쌓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자기도 그 무리에 속하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정말 돈이 많으면 그저 안락하고 편안하며 행복할까? 돈은 인간에...

<창작과비평> 황인찬 시인과의 인터뷰를 읽고 - 초란공
「더 많은 아름다움이 있다」를 읽고창작과비평 187호(봄호) ‘작가조명’오연경(문학평론가) 지음 | [창비]이번 호에서 황인찬 시인을 인터뷰한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눈여겨 본 것은 시인 역시 자신이 쓰는 시의 ‘정체성을 묻는다’는 점이었다.시인은 ‘최근에 내 시를 봐도 그렇고 다른 시를 봐도 그렇고 ‘시의 화자를 시인과 분리할 수 있나’ ‘이게 시인가,에세이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시인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고민인가 싶기도하다. 황인찬 시인을 만나면 시인에게 ‘시란 무...

보이지 않는 곳에서 - 다락방
재현은 아내와 함께 아들 영재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삼 년 동안 서로를 보지 못했다. 영재는 호주 남서부 끝에 있는 퍼스라는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인천에서 그곳까지 가는 직항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싱가포르를 거쳐가기로 했다. 그는 조금 더 편안한 자세를 찾기 위해 몸을 뒤척였다. -우리[畜舍]의 환대, 장희원, p.301《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가장 나중 실린 단편, 장희원의 <우리[畜舍]의 환대>는 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재현과 아내가 호주 퍼스에서 워킹홀리데이로 가있는 아들 영재를 ...

어떤 관계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오 - 구단씨
혹시 내가,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딱 여동생만큼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결혼생활의 이상향을 보여주었던 여동생이 이혼을 언급했을 때는 충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동생이 그런 생각을 할 거로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시’자 붙은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역시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역시 시월드의 굴레는 벗어날 수 없는, 며느리의 고통 영역이었던가 싶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미 영화에서 보여준 김진영과 시어머니의 갈등은 여전...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이 책을 추천합니다. - Falstaff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우리나라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정말 특색 있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이고요. 도대체 이런 작품을 찍으면 우리나라 책 시장에 먹힐 수 있을까 싶은 책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야말로 이 총서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팔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는 작품을 소개하는 일이 사실 ‘문화사업’이라 하는 출판 회사의 핵심 역할일 터이니까요. 총서는 현재까지 모두 157권이 출간되었는데 저는 번역시는 전혀 읽지 않는 관계로 시집을 빼고 이 가...

하나의 소설이 내 일상을 쓰다듬고 주위를 살피게 만든다 - 자목련
원하는 삶은 언제나 멀리 있다. 가까스로 그곳에 닿으려 해도 손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삶이란 참 그런 것이다. 홍이의 부모가 부단히 벗어나려 하고 떠나려 해도 결국 머무는 곳이 남일동 언저리인 것처럼. 그렇다면 왜 떠나려 하는 것일까. 남일동이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혜진의 『불과 나의 자서전』은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까 당신이 벗어나고 싶은 동네, 혹은 재개발이라는 이유로 떠날 때를 기다리는 그곳 말이다. ​소설 속 홍이는 남일동에 살았다. 홍이에게 남일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달산 아래의 허름한 동네, ...

예링의 (재)발견 - 묵향
고등학생 때 이해도 못하면서 읽고 그저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표현만 남아 어쨌든 멋있다고 여겼던 기억이 난다(범우사 판으로 읽었다, 아래와 같이 표지도 멋졌다). 당시에는 사적 분쟁에서 내 이익과 권리를 찾기 위한 (이기적) 행동을 '투쟁'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까지 격상시키는 것이 다소 억지스럽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이번에 읽은 번역본에도, 자주 등장하는 私法을 한자로 병기하여 司法에 관한 서술이 아님을 그때그때 분명히 표시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20년만에 다시 읽으니 무척 새롭다. 크게 감동했고, 깊이 공감했고, ...

법이란 끝없는 노동이고, 더욱이 단순히 국가권력만의 노동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노동이다.- P32


바람이 분다, 살아내자. - 밥헬퍼
1.'잔인한 4월'이 5월까지 이어지고 있다. 숨어있는 바이러스는 사라질 줄 모르고 깊이 잠복해있다. 아직 건재하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지리한 싸움이다. 물론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다행히 계절은 한결같다. 5월에 들어서면서 날이갈수록 다른 ‘바람이 분다’. 몸에 닿는 바람이 거칠고, 뭉특하다해도 나는 애써 밀어내고 싶지 않다. 시샘하듯 스산해도 오히려 친근하게 맞아주고 싶다. 나에게 바람은 계절 전령사같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들에 나는 가볍게 산 길을 오르거나 강 길을 내달린다. 높이 올라 멀리 내다보고, 길게 내달려 ...

키다리 아저씨, 그리고 걸클래식 컬렉션 2 - Breeze
캐리 멀리건과 메릴 스트립, 헬레나 본햄 카터, 벤 위쇼 등이 출연한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를 보았다. 여성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영국의 여성 투표권이 1920년에 제정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앞서 나가던 나라였으나 여성에 대한 참정권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저 여성들은 남성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하는 존재로 여겼다. 여성 참정권에 대하여 싸운 여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를 읽으며 왜 이런 주제를 말하느냐 의심스러울 것이다...

약해져도 괜찮아 - blanca
아프기 전까지 몸과 의존의 문제는 타인의 것, 다른 영토의 일이다. 작은 수술로 입원하며 수술에서 깨어나던 시간, 옆병실 환자의 절규를 들으며 인간은 아무리 지성과 관념을 얘기해도 결국 한 평도 안 되는 육체에 갇혀있다는 뼈아픈 인식과 더불어 '돌봄'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수술 당일 나는 화장실을 스스로 갈 수 없었고 다음 날 모든 일상이 갑자기 대단한 일이자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변했다. 많은 환자에게는 보호자가 있었고 그들의 투병은 누군가의 간병, 희생과 얽히고설켜 있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생애 주기에서...

도리스 레싱~ 고양이에 대하여 - mini74
시대에 따라 여성이 갖게 되는 섬세함이 있다. 아니 섬세함보단 방어기제? 살아남기 위한 눈치 같은 거라고 해두자.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 혹은 그런 여성상의 다른 편에 서 있거나, 실패했거나 성공했거나 어느 편이든 불안하고 두렵다.여성의 삶은 고단하다. 선거권이 없어서 재산을 가질 수 없어서 삶의 주도권이란 다른 성에만 주어진 것이어서 온전한 평온도 없이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지금은 달라졌잖아? 그렇지만 지금 달라졌다고 해서 과거의 만행과 불합리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딘가에 흔적으로 아픔으로 각인되어 있다. 인종간의 학...

캐서린 M. 발렌티를 찾아라! 《스페이스 오페라》 - 안요한
제목을 '데시벨 존스(소설 속 등장 인물)를 찾아라'로 할까 잠시 고민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록밴드 '앱솔루트 제로스'를 통해 약 30초 가량의 인기를 누린 데시벨 존스의 이름이 우연히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라는 경연 참가자 후보 목록 가장 마지막에 실린 것을 본인이 알게 된 날, 전 지구인들은 이 대회 소식을(이런 대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포함해) "동시에" "가장 친숙한" 방식으로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후반부 즈음에 최종 경연이 끝나고 이야기도 함께 막을 내린다.​솔직히 이 소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