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마이페이퍼 당선작

<책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이란 외 - 페크pek0501
*가난한 사람들이란 원래 변덕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라 할 수 있죠. 나는 그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뒤틀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보는 눈조차 전혀 다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곁눈질해 보고, 언제나 겁먹은 눈으로 자기 주위를 둘러보면서 남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혹시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꼴사나운 놈이라고 욕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를 살피고 있는 거나 아닐까, 이쪽에서 보면 어떻고 저쪽에서 보면 어떨까...

당선된 글과 당선되지 않은 글 사이에서 - 맥락없는데이터
알라딘에서 이달의 페이퍼나 리뷰로 당선되어 적립금을 받는 일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물론 세 번뿐이라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특히 처음 당선되었을 때의 신선한 느낌은 상상하지 못한 보너스와도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정 기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무엇이 이 글들을 선택하게 만들었을까?세 차례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다른 글보다 더 신경을 쓴 글보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글들이 당선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신경을 썼던 '똥'에 대한 글보다, 아무런 기대 없이 썼던 '고요한 읽기'에 대...

어쩐지 물어보기 두려웠던 나의 실체... - 나귀님
언젠가 바깥양반과 산책하다가 옆동네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과 마주쳤는데, 푸러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하얀 놈이 갑자기 나를 보고 미친 듯이 짖어대는 거다. 내가 먼저 위협한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지랄발광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황당했고, 그걸 보고 제지하기는커녕 멀거니 서 있는 개주인의 행동 역시 황당했었다.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한동안 그 기억을 곰곰이 떠올려보게 된 까닭은 '그 개가 도대체 뭘 보고 그랬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내 뒤에 다른 뭔가가 없었으니 분명 나를 보고 짖은 것일 터인데, 도...

거대한 폭력을 담은 나의 몸짓들에 관하여 - 그레이스
한강의 소설을 읽으면 숨을 멈추고 모든 삶의 행위들을 생각하게 된다. 뻗었던 팔을 안으로 거두게 되고, 함부로 걷던 걸음의 보폭을 줄이게 되고, 말의 단어들을 고르게 된다. 나는 얼마나 주변인들 혹은 타인들에게 폭력적인 삶을 살아왔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호흡을 안으로 들이마시고, 발가락을 오므리고 전신을 움츠리는 자신을 상상한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손을 내밀어 빗물에 손을 적시던 두 부부. 아파트가 답답해서 살 수 없다고 하는 아내의 “우울질의 피가 흐르는 깡마른 몸뚱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내 여자...

2월 산책(202502) - 잠자냥
세상은 집요하고 독살스럽고 좀스럽고 게다가 뻔뻔하고 지겨운 놈들로 가득 차 있다. 애초에 뭣 하러 세상에 낯짝을 내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놈도 있다. 게다가 그런 낯짝일수록 하나같이 크다. 속세의 바람을 맞을 면적이 크다는 걸 무슨 명예라도 되는 양 생각한다. 5년이나 10년을 다른 사람의 엉덩이에 탐정을 붙여 방귀 뀌는 수를 헤아리고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사람 앞에 나와 너는 방귀를 몇 번 뀌었다, 몇 번 뀌었다, 하며 부탁도 하지 않은 것을 가르쳐 준다. 앞으로 나와 말한다면 그것도 참고로 해주지 못할...

책읽기의 짜릿함 - 바람돌이
비행기에서는 책이 잘 안 읽어진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이건 육체적 고통이다.기차는 가장 책 읽기 좋은 공간인데 같은 이동수단이면서도 비행기는 그게 힘들다. 나만 그런가?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면 그동안 안보던 영화나 드라마를 다운받아 간다.너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한 시간 활용이랄까? ㅠ.ㅠ이번 여행에서는 떠나기직전 올라왔던 오징어게임2를 다운받아 갔었다.그런데 재미가 없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1편의 컨셉의 반복과 힘이 너무 들어간 배우들의 연기가 몰입을 자꾸 방해하는 것이다. 3편쯤 보다가 때려치고 비행...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책] 딱 하나 - 단발머리
아침에는 영어 공부를 한다. 책만 펴면 얼마나 졸리는지. 순식간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게 된다. 너무 졸려서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를 돌아다닌다. 매해 벽두마다 두근두근 심정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뭘 준비해야 하나. 딥시크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용되지 않고 나 자신을 고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서 숙련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까. 돈을 받고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그...

이해한다는 착각 - Sarah
출산을 하고 1주일 만에 장이 꼬여 응급실에 실려갔었다. 원래 장이 좋지 않은데 제왕절개로 수술하다보니 장이 꼬여버렸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제왕절개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최대한 수술은 피하자며 장이 풀리도록 최대한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장이 꼬여 배에 가스는 계속 차오르고 통증에 시달려 앉아 있는 것도 힘든 상황이어서 사실 운동은 무의미했다. 남편은 자꾸 제게 걸어다녀야 한다고 했지만 몇 발자국도 못 걷고 주저앉았다.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우는 나에게 남편은 힘든 건 아는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나를 나무랐...

카프카의 성 - 우주
빛소굴출판사가 기획한 페이지터너스 시리즈가 마음에 들어 한 권씩 읽어 나가고 있었는데,어느 순간 멈춘듯 하여 아쉬웠다.그리고 등장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에밀졸라의 단편집 <방앗간 공격>을 읽으려고 하고 있는 찰나, 카프카의 성이 출간되었다. 당장 읽고 싶지만 한 번 이상 읽은 책은,나름 또 다른 이벤트를 만들어 읽는 것도 즐거움이라 생각하게 되어,2025년 5월에 읽을 생각이다. 카프카의 '성'을 마침내 끝냈다.도서관 대출과 반납을 꽤 여러 번 해야 할 만큼 '성'은 쉬이 속도가 나지 않았다.정말 성(城)을 오르고...

한중일 희곡 몰아서 읽기 - cyrus
2월 22일 토요일.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이날에만 내가 보고 싶은 연극이 무려 세 편이나 상연된다. 연극 한 편은 서울에서, 두 편은 대구에서 한다.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이 겹치는 데다가 서울과 대구를 오고 가는 시간도 부족하다. 결국 서울에서 하는 연극은 포기하고, 대구 연극 두 편을 관극(觀劇)하기로 했다.내가 서울에 가서 보고 싶었던 연극은 일본 극작가의 작품이다. 매년 이맘때에 일본 극작가의 희곡 작품을 낭독극 형식으로 선보이는 ‘현대 일본 희곡 정기 공연’이 있다. 2002년 도쿄에서 시작된 정기 공연은 올해로 12회째...

누구를, 무엇을 위한 증명인가 - 구단씨
장애인활동 지원사 교육을 받았다. 당장 무엇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은 건 아니다. 시간이 있을 때 이 교육에 참여해보고 싶었다는 게 가장 솔직한 마음이다. 이 교육을 받게 된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언젠가 이 교육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힐 수도 있다는 건데, 이건 아직 실습을 마무리하지 않았기에 지금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장애가 있는 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에 속한 내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함으로써 좀 더 따뜻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갑자기?...

추리소설의 매력 속으로 - 자목련
책 권태기가 오거나 읽어야 할 책이 지루하게 느껴져 속도가 나지 않으면 추리소설을 찾는다. 재미와 동시에 온전히 책 읽기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추거나 숨겨진 복선을 찾지는 못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누구나 다 알 정도의 유명한 추리소설을 읽거나 작가를 아는 건 아니다. 셜록 홈스나 뤼팽을 소설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로 본 게 전부다. 그러니 추리소설을 쓰는 다섯 명의 작가가 필독서로 꼽은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 목차에서 읽어본 소설은 손에 꽂을 정도였다. 그래도 읽은 책은 몇 권 없지만 영화로 만난 작품이 있어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scott
중국 하얼빈시 근교에 위치한 핑팡 지구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대부분 '핑팡'이라는 지명을 무심히 듣고 넘기겠지만, 어떤 이들은 핑팡을 '아시아의 아우슈비츠'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전쟁 기간 동안 일본 제국 육군 제 731부대가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인체 내구력의 한계를 조사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수많은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에게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기 때문입니다.이 부지 안에서 일본 육군 소속 군의관들은 의학 실험 및 무기 실험, 생체 해부, 신체 절단을 비롯한 조직적인 고문 등을 통해 중국군과 연합군 포로 수천 명을 직접 ...

나와 그대의 껍데기 - 페넬로페
딸아이가 어렸을 때(4살이나 5살 즈음) 구립 도서관에서 무료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참여해 종이로 뭔가를 만드는 수업이었다. 소란스런 분위기에서 작품이 하나씩 완성되어 강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강사는 우리들에게 탁자에 남아있는 자투리 종이를 찢어서 소리 지르며 위로 날리라고 했다. 강사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깜짝 이벤트를 마련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지도 않던, 갑자기 들어온 강사의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기쁘게 소리 지르며 종이를 찢고 흩날렸지만 난 그저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감각을 느끼거...

책과 꽃 - 다락방
겨울이면 다른 마을을 방문하기도 하고 독서를 하기도 했다. 읽는 책은 주로 그가 매년 일정 금액에 맞춰 주문하는 역사서였다. 그는 본인의 말처럼 자신을 위한 번듯한 서고를 꾸미고 있었으며, 구입한 책은 전부 읽기로 했다. 그는 서재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앉아 이 책들을 읽곤 했다.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의무로 지운 독서가 나중에는 습관적인 일과가 되었고, 특별한 만족과 진지한 일을 한다는 자각을 그에게 주었다. -4권, p.514 니콜라이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버지로부터 빚만 물려받았지만 열심히 일하고 관리해서 재산도 다시 쌓고 ...

빌라르스키, 공작 영애, 의사, 그리고 요즘 만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에르는 모든 사람들의 호의를 끌어내는 새로운 특징을 보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사물을 생각하고 느끼고 바라볼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로는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피에르를 불안하고 짜증스럽게 했던 저마다의 이런 당연한 독자성이 이제 그가 사람들에 대해 품는 공감과 흥미의 토대가 되었다. 자신의 삶과 타인들의 시각 사이에, 혹은 그 시각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나 때로 완벽하기까지 한 모순은 피에르에게 기쁨을 주고 조소 어린 온화한 미소를 불러일으켰다. - P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