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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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곳 주차장을 걷다가 발에 뭐가 걸려서 넘어졌다. 그날따라 반바지를 입었고, 넘어진 무릎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넘어진 게 창피해서 몰랐는데, 대충 치료를 하고 나니 점점 통증이 심해지더라. 아팠던 거다. 내 피부가 쓸리고 피를 흘리는 일은 아픈 거였다. 지금 무릎의 상처는 딱지가 되어 있다. 아픔보다는 가려움이 더 커진 상태. 처음에는 피부의 상처가 크게 보여서 속상했는데,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게 어디냐 싶어서 그때의 고통은 곧 잊히더라. 사는 방법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슬픔은 내일의 고통보다 가벼울지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3년 전, 정희는 아들을 잃었다. 2년 넘게 병원에 있던 아들은 더는 치료받을 수 없는 상황을 감당하며 죽어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그녀는 고스란히 경험했고, 3년이 지났음에도 아들이 잃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의 일상은 언제나 위태로웠고, 그나마 남편이 존재함으로써 견뎌내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정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른 여자를 향해 환히 웃으면서 달려가던 남편의 실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이상한 일은 계속 일어난다. 정희는 남편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실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다려보라고 말한다. 협박하듯 걸려온 전화, 연락도 없이 계속 실종 상태인 남편, 처음 본 시누이의 남편이 찾아와 이제까지 몰랐던 진실을 꺼내놓는 등 그녀를 둘러싸고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진다.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다. 꼬리만 드러낸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그녀가 나서야 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그녀가 겪은 슬픔의 감각이 만들어낸 예민함으로 한발 한발 진실의 중심으로 다가간다.


정희와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인물이 철식이다. 외모부터 피폐해 보이는 그는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이다. 그는 같이 탈북한 아내 록혜와 한국에서 행복할 줄만 알았다. 목숨 걸고 탈출한 그들이 아니었던가. 북쪽의 일은 다 잊고 이곳에서 뿌리내리는 삶을 계획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내가 자살했다. 그는 아내가 자살한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다가 록혜가 한 남자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철식의 남은 생은 한 가지를 위해 존재했다. 아내를 죽게 한 남자를 찾아서 죽게 하는 것.


알 듯 모를 듯 이 소설의 곳곳에 등장하는 인물이 영호였다. 정희의 시누이 지애의 남편으로, 결혼한 줄도 몰랐던 지애의 남편이라며 갑자기 찾아온 그는 혼란스러워하던 정희를 더 세게 흔들고 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정희 앞에 나타난 것이며, 그의 아내가 사라진 것을 왜 정희에게 말하고 은근한 협박 같은 말을 쏟아놓고 갔는가. 더 이상한 건 아내가 연락이 안 된다면서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찾아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거. 그가 성훈의 실종과 지애의 연락 두절 사이에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양한 인물의 등장으로 처음에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애쓰며 읽었다. 아이를 잃고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여자가 살아가는 모습에 빠져 있다가, 강인하면서도 나약해 보이는 남자의 분노에 두려워하다가, 너무 신사다운 모습으로 사라진 아내를 찾는 순한 남편의 태도에 안쓰럽다가도 이야기가 어디로 흐를지 몰라서 궁금했다. 정희의 눈앞에서 사라진 성훈은 어디에 있는지, 왜 사라진 건지, 그의 실종이 이 소설의 과정을 어떻게 장식할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이야기는 시작되었는데, 인물 각자가 가진 오늘의 무게가 버거워 보여서 단순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돈 때문에 죽고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영업하는 사람이 팔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시대가 된 거다. 돈과 목숨을 맞바꾸는 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이거 현실에 너무 진하게 물들어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도 사고팔 수 있다는 게 상상이 아니었다. 결말을 확인하면서 점점 나 자신에게 묻는 횟수가 늘어간다. 나는 어떤 상품일까. 얼마나 잘 팔릴까. 얼마에 팔릴 수 있을까. 아니, 내 삶이 나를 팔아야 할 정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묻고 있었다.


그녀는 희망이 없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상황이 어떤 식으로 치달아 갈지 역시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가슴이 조여 왔다. 정희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조용히 흐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도 이것은 끝이 아니며 가장 나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걸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 (206~207페이지)


내용을 다 소개하자니 이 책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스포일러가 될까 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한 사람을 의심하다가 보면 진실은 다른 곳에 있고, 다른 사람을 추적하면서 따라가다 보면 여기에서도 진실은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닥칠 때마다 누군가에게는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전율이 흐른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의 무너지지 않음이 이 소설의 희망이 된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고통에 빠져 있다가 벌떡 일어나게 될 계기가 되기도 하는, 어쨌든 찾아야 할 진실이 있다는 이유로 맨발로 뛰어야 했어도, 숨이 쉬어지지 않아 숫자를 세면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오늘이 가장 최악 같아도, 가장 나쁜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나쁜일 #김보현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 #한국소설 #소설 #문학

##책추천 #인간영업 #탈북민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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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400~500명의 민원인을 나와 옆자리 동료가 상대하고 있다. 짧게는 1~2, 길게는 4~5분씩 많은 사람과 얼굴 맞대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반년이 넘게 일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매일 느낀다. 좀 심하게 말하면 매일 진상을 마주한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진상은 매일 업그레이드되어 나타난다. 말 그대로 X진상.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대한 적도 없거니와 세상에 이렇게 많고 다양한 진상이 있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게 하루하루 멘탈이 뿌리째 흔들리곤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마스크 안에서 내 입은 소리 내지 않고 욕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에 마주할 사람은 더 심각한 진상이다.’라고 읊조리며 눈앞의 사람을 상대한다. 사람 성격 쉽게 안 변한다고, 어차피 두 번 볼 사람은 거의 없으니 진상 개조에 마음 둘 일은 아니다. 빨리 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그중에서도 정말 오랫동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는데, 나이 든 사람의 반말이다. (나이 든 사람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볼 때마다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다짐한다. 내가 하루에 마주하는 사람의 절반 가까이 나이가 든 사람이다. 보통 60대 이상의 노인분들. 딱히 적당한 호칭을 찾을 수 없어서 보통은 어머님, 아버님,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이들 중에는 겉으로 보이는 차림새에 상관없이 예의가 바르고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존대하면서, 찾아온 용건을 차분히 말하고 잘 해결하고 가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반말인 사람들이 있다. 이거 해줘, 안 했어, 모르지, 내가 어쨌는데, 등등. 반말로 시작해서 반말로 끝난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그런 거지? 나이를 먹으면 상대가 누구든 저렇게 말을 놔도 되는 건가? 친한 사이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초면에?


이럴 때마다 궁금해진다. 도대체 우리는 나이를 왜 먹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경험도 많아지고, 뭘 배우고 배우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될만한 세월인데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뭔지... 나이를 먹었으니 대접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보다 어려 보인다고 당연하게(?) 말을 놓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당연하게 뭐든 양보하고 우선으로 해줘야 한다고, 나이 든 사람의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었으니 당연하게 먼저 해주고 양보하고 상대가 손해를 봐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몸이 불편할 테니, 판단이 둔해질 수도 있을 테니, 한번 말한 것을 바로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 도와 드리고 안내하고 살피는 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도 계속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눈앞 노인의 나이가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는 건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여겼다. 나의 부모이고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그 배려를 버리고 싶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많은 노인을 만났고, 많은 반말을 들었다. 반쯤 올린 존댓말에 거의 내린 반말에 익숙한 하루를 보내던 중,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민원인을 마주했다. 너무나도 심한 반말 폭격에 내가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표현해야 하는데, 싸우지 않으면서 적나라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몇 초 고민하다가 말이 쏟아져 나왔다. 민원인이 찾아온 목적을 다 해결해주고 한마디 건넸다.


구단씨 : 어머님, 혹시 저를 아시나요?

민원인 : 그럼, 알지~

구단씨 : 어머, 정말요? 저를 어떻게 아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민원인 : . 전에도 여기서 본 적 있어~

구단씨 : 아니요. 그런 거 말고요. 혹시 원래 저를 알던 분이신가 해서요. (진짜 내 기억에 없는데?)

민원인 : 아니, 그건 아니고. 여기서 처음 봤는데?

구단씨 : , 그러세요. 저는 또... 처음 오시자마자 너무 편안하게 반말을 막 하셔서, 제가 아는 분인데 못 알아뵌 줄 알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고 여쭤봤어요.

민원인 : (정말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죄송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까? 사과하는 걸 보니 알아듣기는 한 것 같은데, 아마 뒤돌아서서 육두문자를 날렸을지도 모르겠다. 저 대화를 끝으로 나는 다음 사람을 부르며 그 민원인에게서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으니까. 옆자리 동료 역시 나와 비슷하게 정신이 피폐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20대 청년이 한 달 반가량 겪은 정신적인 피폐함은 그에게 절대 서비스직은 못 할 것 같다는 교훈을 주었다지. 내가 그 민원인에게 하는 말을 듣고 옆자리 동료가 잠깐 감탄의 눈으로 쳐다보기는 하더라만. 글쎄, 반년 넘게 벼르고 벼르다 꺼낸 말이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모르겠지만, 그 민원인이 많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처음 본 사이에 전혀 친하지도 않고, 많은 관공서나 은행 등등 이용하면서 만나는 직원에게, 자기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조건 반말부터 시작하는 무례한 태도가 바로 본인의 얼굴이라는 것을. 자기 자식이 어디에선가 자기같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누구나 늙는다. 언제까지 젊은 나이에 머물 수 없다는 게 인간의 몸이니까.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 이렇게 배우면서, 혹시라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을 계속 배워가는 게 나이 듦의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기 살아왔던 라떼만 계속 고집하지 말고, 나이 든 사람의 특권같은 것만 찾지 말고, 요즘 세상의 모든 것을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 다른 생각도 들어보면서 살아가는 태도를 쌓는 것. 말하는 것처럼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겪는 감정의 고통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건 안다. 이렇게 해야지 하는 다짐보다 이렇게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장점으로만 채울 수 없다면 단점을 지우면서 살아가는, 그것도 잘살아가는 잘 늙어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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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8-17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인류애가 사라지게 하는 진상들이 많군요ㅠㅠ 저도 일하면서 반말 제법 듣는데 제 동생은 정말 심한가 보더라구요. 약국에서 일하는데 진짜 자기는 노인포비아라고, 너무 공포스럽다가도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하더라구요. 배려를 권리로 여기고 나이를 훈장처럼 생각하고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구단씨 2022-08-18 00:54   좋아요 2 | URL
방송으로 비유하자면, 정말 비방용 진상들이 어마무시합니다.
겪을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진상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말하기 조심스러웠는데, 저 정말 노인포비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습니다. ㅠㅠ
동시에 배우게 됩니다. 사람이 존중받으려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요...

햇살과함께 2022-08-1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힘드시겠어요..
제 친구도 공무원인데 민원실 발령 받으면 정말 괴로워하더라고요.
전화 받자마자 욕 하는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나이 들어가면서 의식적으로 반말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되요.
친근감 표시(언제 봤다고??)라고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구단씨 2022-08-18 09:53   좋아요 1 | URL
저는 공무원은 아닙니다만, 정말이지 어느 관공서든 일반 회사 민원실이든 괴로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알라딘 고객센터 통화도 조심히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

오후즈음 2022-08-18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비슷한 일을 해 본적이 있어요. 마스크 없는 그때 집으로 오면서 수없이 혼자 속으로 욕했던때가 있었어요. 특히 특정한 지역 사람들이 너무 괴롭더라고요, 저도 늘 반성합니다. 난 저렇게 늙지말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님 내일도 화이팅 입니다
 



오메, 두권짜리네.

신간 알림 소식 듣고 들어왔더니, 이렇게 두툼한 장강명의 책은 처음 만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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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인간 우리 그림책 40
안수민 지음, 이지현 그림 / 국민서관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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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집안일 중의 한 가지가 분리수거인데,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이렇게 분리수거를 하면, 이 중에 얼마나 재활용이 되고 얼마나 환경을 살리는 일이 될까.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일정 부분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은 기대감으로 분리수거를 계속하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플라스틱. 많은 양의 플라스틱이 우리 집에서도 나온다. 자주 빨래하면서 많이 사용하는 세제부터, 오랜만에 과자를 하나 샀더니 그 안에 담긴 플라스틱 고정 틀, 편의점에서 사 먹은 초코우유도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다. 말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안다. 지금 우리 생활에서 플라스틱은 너무 깊게 자리 잡았고, 없으면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플라스틱 사용의 증가로 우리가 사는 지구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 편리한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흥미롭다. 어느 날 제임스 씨의 배꼽에서 꼬물꼬물 작은 것이 나오고 있었다. 인간의 배꼽에서? 그것도 남자가 낳은 무언가가? 낯설고 신기한 생명체에 사람들은 호기심이 끓었고, 그것에 플라스틱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묘한 것은 영리하고 귀엽기까지 했다. 먹을 것만 있으면 알아서 잘 자랐다. 제임스 씨도 이 플라스틱 인간을 예뻐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을, 이 작고 귀여운(?) 것은 점점 위험한 골리앗이 된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제임스 씨 배꼽에서 나온 작은 생명체는 플라스틱이다. 어쩌다가 인간의 몸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큰일이 난다. 제임스 씨의 하루를 지켜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는 아침에 생수를 마시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손에 든 채로 출근을 한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상이라 낯설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시는 생수, 매일 씻으면서 사용하는 샴푸나 목욕용품, 커피 한잔을 담은 종이컵, 걸레 대신 편해지자고 사용하는 물티슈, 매일 갈아입는 옷 같은 게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제임스 씨가 하루를 보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을 소비한다. 이게 제임스 씨의 이야기일 뿐일까?



읽으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건 나만이 아닐 테다. 제임스 씨의 하루를 지켜보면서, 그 몸에서 플라스틱 인간이 나오면서 느껴지는 불안함은 현실이 된다. 작고 귀엽던 플라스틱 인간은 끊임없이 플라스틱을 먹이로 섭취하면서 점점 거대해진다. 급기야 제임스 씨보다 더 커져 버린 플라스틱 인간은 이제 인간의 보살핌이나 조종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플라스틱 인간을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임스 씨의 플라스틱 인간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도 플라스틱 인간을 낳고 있었다. 누구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에서 플라스틱 인간이 태어나는 것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제 흔하게 보이는 이 플라스틱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상상 속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지울 수 없는 존재가 된 플라스틱 인간이다. 어느새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거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압권인데, 제임스 씨의 집은 이제 더는 그의 집이 아니었다. ‘이 집의 주인은 바로 나!’라고 외치는 거대한 플라스틱 인간의 표정을 보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제목에서 이미 이 책의 내용을 보여준다. 알고 읽었는데도 막상 다 읽고 나니 충격적이긴 하다. 아는데도 습관처럼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버리고, 다시 또 사용하는 일상을 떠올려보니, 이게 마냥 그림책 속 이야기로 멈추지 않는다는 걸 다시 상기하게 된다. 플라스틱의 과한 사용은 인간의 공간을 침범하는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우리가 조금 편리하다고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어느 날 우리를 공격하게 될 거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의 공격을 받는 중인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버려지는 쓰레기 속에서 항상 걱정하는 건 쓰레기 처리 문제가 아니었던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플라스틱은 이제 인간 생활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생활 곳곳에서 플라스틱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이제 플라스틱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줄이고 그 대체 용기를 생활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플라스틱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다.


플라스틱 인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제임스 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살 곳을 찾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플라스틱 인간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가 머물 공간이 남아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혹시 길거리를 떠도는 노숙자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이런 처지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얼마나 플라스틱을 남발했으면, 플라스틱에 내 공간을 내어주고 쫓겨난 신세가 된단 말인지. 플라스틱이 개발된 지 100여 년이 지났다는데, 그 시간 동안 우리가 플라스틱과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 집과 이 지구의 주인이 누구인지, 우리가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남겨두어야 하는지 돌이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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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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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가족이 가해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복수라도 하려는 게 아닐까 싶은 두려움이 생길지도, 법이 아니라 감정의 벌을 내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소중한 존재를 잃었는데, 아무리 법이 형량으로 죄인을 다스린다고 해도 마음의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겠나, 법이 해줄 수 없다면 직접 나서서 이 감정을 다스리는 수밖에.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행동한다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 분노의 감정을 억누를 방법이 없지만 참아야 한다는 것을. 피해자는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는 것으로 모든 일을 잊을 수 없다는 괴로움에 시달려야 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도대체 피해자가 당한 고통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계산도 되지 않는다. 사건은 끝났고 가해자는 벌을 받았다고 하는데, 왜 가해자는 여전히 가해자로 살아가야 하는가.


쇼타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과하게 마셨던 그 날, 집으로 돌아간 쇼타는 여자 친구 아야키의 문자를 보고 갈등한다. 지금 만나러 오지 않으면 끝이라는 말에 만나러 가야 하는지, 술을 마셨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하던 쇼타는 직접 운전하면서 아야키를 만나러 가다가 사고가 난다. 누군가를 친 것 같은데, 분명 사람인 것 같은데, 선뜻 인정할 수가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사람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겠지. 내려서 살펴볼 법도 하건만, 무서웠던 쇼타는 그냥 지나간다.


그날의 일은 쇼타의 인생에 무엇을 남겼을까. 완전범죄는 없었다. 쇼타는 그 사건을 뉴스로 확인하면서 개나 고양이를 친 게 아니라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됐다. 410개월의 형을 살게 된 쇼타뿐만 아니라, 쇼타의 가족 모두가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쇼타가 형기를 다 마치고 나왔을 때,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직시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 결혼을 앞둔 누나는 파혼했으며, 유능한 교육학자였던 아버지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졌다. 가족 모두가 정상의 삶을 유지할 수 없었다. 쇼타 역시 전과자로 쉽게 취직할 수 없었다. 예전 친구를 만나도 거리를 느낄 뿐이었다. 그나마 그의 곁에서 다시 친구가 되어준 아야카만이 유일한 인간미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의 옆 옆집으로 이사 온 이상한(?) 노인이 그의 시야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가해자가 있다면 피해자도 있기 마련이다. 쇼타가 낸 사고로 80대 여인이 죽었다. 그 여인에게도 가족은 있었고, 그 가족에게도 상실의 슬픔은 있었다. 슬픔을 잊기 위해, 허무하게 죽은 아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남편은 가해자를 쫓는다.


죽은 여인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다는 설정에,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분노의 감정을 인간이 보여주려는구나 싶었다.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법이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결론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 고통을 준 이의 목숨을 끊어놓고 싶은데, 법리적인 판단은 다르지 않았던가. 그러니 내가 만족할 수 없는 판결을 마주했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마무리 짓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지. 내가 예상했던 흐름은 이런 거였다. 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아 그만의 방식으로 복수하겠다는 거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가해자를 쫓던 그 마음은 나의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그렇게 빗나간 예상은 오히려 인간다운 면을 강조한 듯 보였다. 언제 어떤 상황을 만났느냐에 따라 우리는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한때는 가해자였던 이가 다른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야쿠마루 가쿠의 전작에서 보지 못한 다른 시선이었다. 작가의 작품 최초로 가해자의 눈으로 사건을 보는 이야기라고 했다. 뺑소니 사건의 가해자가 사건을 일으켰을 때부터 사건 이후의 이야기까지 가해자 쇼타의 시선으로 흐른다. 그는 분명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고, 법의 심판으로 벌을 달게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가 받은 형량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게 소설 속 이야기로만 남을 수 있을까? 운전해본 적은 없지만,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누구나 가해자 쇼타의 입장이 될 수 있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내가 일으킨 사고에서 내가 쇼타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같은 상황에 닥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쇼타와 내가 다를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사고를 일으켰지만, 남은 인생 웃으면서 살아가고 싶은 바람을 품으면 안 되는 걸까?


법이 접근할 수 없는 마음속 죄의식을 묻는 이 소설에 많이 공감했다. 법이 정한 형기를 마쳤다고 가해자의 책임을 다한 것인지, 마음속에 남은 죄의식이 남은 삶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가해자로도 피해자로도 마주할 수 있는 이 사건에서, 우리가 무게를 두어야 할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싶어질 것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까지 함께 다뤄져서 많은 생각을 남겨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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