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 - 중년의 불안을 쓸고 닦는 법
송은주 지음 / 시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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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음‘의 두려움이 요즘처럼 크게 다가 온 적이 없다. 살아가면서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이유. 뜨거웠던 여름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뭘 하든,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저자의 이야기로 다시 새긴다. 멋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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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년째, 엄마 집을 정리하고 있다. 말은 정리라고 하는데, 그래봤자 가끔 가서 오래된 것들을 몇 개씩 버리고 오는 게 전부다. 시간도 없고,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결정을 못 하기 일쑤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다 보니, 항상 마음이 급하다. 어제는 엄마 집에 남은 오래된 앨범을 들고 왔다. 무겁다고 낑낑대면서 정리하다 보니, 우리 남매가 자라면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오래된 편지를 버리기 전에 읽어보는 것처럼, 앨범에서 사진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면서 그 시절을 소환했다. 항상 여유롭지 못했던 형편에 어려웠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게 좀 슬프기까지 했다. 혼자 울고 웃다가 마지막 앨범을 정리하면서 마주한 사진들을 아주 오래 보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절의 엄마였다. 오래전 엄마의 낡은 앨범을 버리면서 따로 챙겨둔, 엄마의 흑백사진.


사실 엄마 집에서 사진을 가져와서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오래전이었다. 갈 때마다 깜빡 잊고 그냥 왔는데, 이번에 잊지 않고 챙겨올 수 있었던 건 이 책 엄마만 남은 김미자때문이었다. 김중미 작가가 들려준 미자를 잊은 김미자 씨 때문에, 이름을 잃은 채로 살아온 엄마의 시간을 보고 싶었다.


모든 기억이 사라진 엄마에게 남은 유일한 정체성이 엄마라는 것이, ‘엄마만 남은 김미자 씨가 슬펐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 88페이지)


아동 청소년 문학을, 사회의 어둡고 낮은 자리를 담아낸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하긴 했다. 이 작가는 어떤 삶을 지나왔을까 하고. 부유하고 여유가 넘치는 세월이 작가의 인생에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하곤 했다. 작가가 그동안 작품에 담아낸 이야기는 비슷한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자라면서 형편이 여유로웠던 적은 없으니 그러려니 하다가도, 주변 친구들의 환경과 비교될 때마다 한 번씩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런 철이 없는 말조차도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던 엄마의 마음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철이 너무 늦게 들었던 거지.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분할된 화면처럼, 작가의 이야기와 나의 엄마 이야기를 같은 화면에 두고 듣고 있었다. 작가의 조부모님, 외조부모님 이야기부터, 가족의 형편보다 이상을 좇아 살면서 자존심이 앞섰던 아버지, 그런 환경에서 자식들 키우느라 엄마의 역할에 온 인생을 담아낸 어머니가 각자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 자라면서, 마치 그 가난을 견디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여긴 작가의 마음에 미처 몰랐던, 엄마 김미자의 인생이 끼어든다. 어쩌면 김미자 씨의 인생은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여성, 엄마의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대신, 친척들과 형제들의 이야기로 엄마의 새로운 시간을 보게 된다. 한 번도 이 가족을, 엄마 곁을 떠난 적이 없던 가난은 경제적 궁핍함만 주는 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가난하면 생활이 힘들고, 경제적인 어려움만 극복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더 싼 집을 찾아다니느라 이사는 잦아지고 그러면서 이웃들도 자주 바뀌었다. 언제 또 형편이 더 나빠져서 이사해야 할지 모르니 이웃과의 교류가 깊어질 수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사회적 고립은 계속되고, 깊어지곤 했으니, 이 또한 가난이 낳은 피해였다. 그때마다 작가가 배운 것은 연대였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이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엄마이야기는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우리 엄마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이면서, 이렇게 선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견뎌내야 할 게 더 많았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들더라. 동전 하나도 새로운 시절에 걸인에게 지폐를 내어주고, 어느 시인의 시구절을 읊는 마음도 알려주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여고생들의 상담사가 되기도 했던 엄마였다. 잦은 이사와 더 쪼그라들기만 하는 형편으로 그저 그런 김 씨와 밥집 아줌마가 되었을 때, 낡은 옷차림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함께 울고 웃을 이웃이 없었을 때, 급변하는 주변 환경과 개발로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마을이 사라지면서 낯선 외로움이 엄마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다시 산동네로 이사하면서 이웃을 만들고 긴장을 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의 요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식겁했다. 엄마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 이번 달 초에 내년 노인 일자리 사업에 지원했고, 지금 그 선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내년에 일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싶어서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다. 삼십만 원 남짓의 급여 때문만이 아니다. 한 달에 열흘 정도, 하루에 세 시간 정도, 몸이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든 일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아침에 나갈 곳이 있다는 게 일상의 낙이었다. 동네에 엄마가 아는 사람은 있지만, 대부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동네에 오래 살았는데,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또 다른 분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라 그 사업에 참여해야 그나마 얼굴 볼 수 있다. 엄마는 일자리에 갈 때마다 내가 시골에서 가져온 감을 가져가서 나눠 먹고, 그래봤자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몸의 신호를 전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거기서 만난 분들에게 매일 안부를 묻는다. 그 시간이, 자기가 쓸모 있음을 느끼며 사람들과 얼굴 보며 얘기하는 그 순간이 나도 모르게 일상을 파고드는 외로움을 달래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 외로움의 시간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더 큰 일이 벌어질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엄마가 인지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을 때, 두려움만큼이나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을 텐데, 그때마다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했을 텐데, 이제는 가까운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싶어서 말이다. 작가는 엄마의 중증 인지장애의 원인을 더듬으면서, 외할머니와 이모의 치매까지 생각해보면서 찾은 답은 다른 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들의 병은 유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겪어온 삶의 여정에서 이어져 온 유산 같다고 말한다. 엄마 김미자, 김미자의 어머니, 김미자 아버지의 삶까지 추적하며 그 이상으로 올라간다. 꿈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울리지 않았던 시절을 견뎌내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내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던 그들의 삶을, 부족해도 나누면 행복해진다는 경험을, 이런 믿음과 행복이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기억할 일이다.


단순하게 작가의 엄마가 기억을 잃어가는 이야기로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의 과거를 되짚으며 엄마를 더 잘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가, 엄마가 되기 전에 김미자로 살아가면서 품었던 모든 것을 듣는 시간이었다. 내가 몰랐던 시절의 엄마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나니, 엄마만 남게 되었는지 이해되는 것조차 슬펐다. 낯설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모두 보고 겪을 김미자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인지장애가 있는 구십 노인인 엄마가 얼떨결에 딸의 허벅지를 쓰다듬고는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의 김미자라서 좋았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 307페이지)



낡은 사진 속 십 대의 엄마는 검정 교복 차림이었다. 처음 봤다. 1960년대 초반, 엄마의 십 대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어느 시절에나 볼 수 있는 여고생의 분위기였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교복 모습에 놀라는 것도 잠시, 엄마의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들고 아침 등굣길에 나서는 엄마를 상상했다. 밥 굶어본 적 없이 여유롭게 살았다고 하니, 아마 엄마 인생에서 가장 마음 편하고 즐거웠던 때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스물을 넘긴 엄마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빴다고 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당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엄마의 청춘을 담아보기도 했다. 사진 속 옷차림이 왜 이렇게 촌스럽냐고 했더니, 엄마는 아니라고 한다. 자기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였다고. ^^ 부릴 수 있는 멋은 다 부리고 다녔다던 그때, 그다지 말을 잘 듣는 딸은 아니었다고 하니 외할머니 속을 좀 태우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집안의 농사를 돕고 외할머니 살림을 도우면서 이십 대 초반을 지내고 있었다고 하니, 아주 철이 없는 딸도 아니었던 듯하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 이때 아빠가 아니라 여러 남자를 더 만나보고 결혼했어야 했는데... ㅠㅠ)


작가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 평범해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삶의 궤적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피식 웃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시절의 엄마들이 이렇게 살아왔겠구나 싶어서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게 다 그런 건지, 자식 키우는 책임감이 이렇게 무거웠던 건지, 그래서 미자가 아닌 엄마만 남게 된 건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도 좋은 분명히 있다. 작가가 엄마와 할머니에게 배운 것들, 타인을 존중하고 곁을 내어주는 법을, 섬기고 배려하고 나누며 사는 삶의 행복을, 이 책으로 나도 같이 배웠다. 그리고 평소에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 준 많은 것(물론 좋은 것만)을 기억하면서, 또 엄마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사라져가는 기억을 오래 붙잡을 수 있도록, 내가 엄마에 대해 기억하는 게 지금보다 더 많아지도록, 더 자주 보면서 함께하는 시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뻔한 말을, 습관처럼 하는 다짐을 또 하면서 올해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엄마의 저 사진 속 포즈는 정말 시대물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엄마만남은김미자 #김중미 #사계절출판사 #에세이 ##책추천

#나는결코어머니가없었다 #어느날엄마에관해쓰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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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프리다 맥파든 지음, 정미정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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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저 사람 갈팡질팡 의심하고, 결국 나의 추리는 틀렸다. 진짜 범인을 찾는 일이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하지만, 이 소설이 가독성은 좋았지만, 그냥, 재미가 없다. 등장인물들도 매력이 없다. 이 작가의 작품을 더는 안 읽어도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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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호더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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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케이시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숲속의 오두막에 산다. 폭풍우가 예보되었지만, 그녀가 사는 오두막은 지붕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허술한 상태다. 집주인 루디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루디는 너무 느긋하다. 별일 없을 거라고, 폭풍우가 지나가면 고쳐주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근처 다른 오두막에 사는 리는 그녀에게 이 폭풍우가 심상치 않다고 걱정하면서 자기 집에 와 있으라고 하지만, 그녀는 모든 호의를 거절하고 오늘 밤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우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던 중 창고의 불빛을 발견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 불빛이라니. 누군가 침입한 게 분명하다.


과거.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엘라. 엘라의 엄마는 마트에서 일하고, 퇴근길에는 늘 어디에 사용할지 계획도 없는 중고품을 사서 온다. 정부 지원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이 모녀의 집에는 편하게 쉴 공간이 없다. 엘라의 엄마는 집 안에 물건을 잔뜩 쌓아두는 호더(Hoarder)이다. 심지어 상한 음식마저, 구더기가 그 음식을 다 파먹고 있는 상태인데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엘라는 버티듯 살아간다. 성인이 되면, 부모의 보호 아래 있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면 바로 이 공간을 떠나겠다고 마음먹는다.


케이시와 엘라, 현재와 과거가 오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현재의 케이시는 외딴 오두막에서 폭풍우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폭풍우의 위협에 긴장된 상태인데, 설상가상 누군가 침입했으니 더 숨이 막힌다. 누굴까. 지붕도 안 고쳐주면서 끈적이는 눈빛만 보내는 집주인 루디일까. 갑자기 이웃처럼 나타나 정체가 의심스러운 근처 오두막에 사는 리일까. 모른 척 잠이 들어도 상관없겠지만, 이미 빈 창고의 불빛을 봤는데 못 본 척할 수도 없다. 막상 창고에서 대면한 이는 어린 소녀였다. 손에는 칼을 들고, 입은 옷에는 피범벅이다.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고 여기까지 온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는 일부러 오지 않으면 누구도 방문하지 않을 곳인데 말이다. 아이를 집안으로 들여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하게 잠들게 한 후 아이의 가방을 살펴본 케이시는 깜짝 놀란다. 아이는 우연히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케이시의 오두막을 표시한 지도까지 있었던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이와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케이시는 혼란스럽다. 누굴까. . 아이라고 얕볼 수 없을 정도로 야무지게 공격적인 이 아이와 오늘 밤을 무사히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과거의 엘라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10대 소녀의 암울한 성장기였다. 쌓아두고 버리지 못하는 엄마는 집안에서 담배를 피워대고, 고장 난 세탁기는 방치된 채로 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밀려있는 빨래에 입을 옷이 없는 엘라는 쌓인 빨래 더미에서 그나마 나은 옷을 찾아 입고 학교에 간다. 온갖 서류와 종이 뭉치, 너무 무거워서 옮기지도 못할 어항, 냉장고에 터질 듯이 쌓인 음식들.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이미 상해버린 음식들을 그렇게 쌓아두는 이유가 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의 점심을 훔쳐 먹어 교장실에 들락거리는 것도 빈번해지고, 이미 문제아로 찍혀버렸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것도 일상이고, 집에 들어가는 것도 지옥이다. 엘라가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칼을 든 소녀가 오두막에 침입했을 때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어린 소녀가 손에 칼을 들고 있다는 게 범상치 않은 일이지 않은가. 뭔가 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예상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 소녀와 케이시 사이에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사연 하나쯤 튀어나올 거로 여겼다. 물론 이 부분은 소설의 끝에 다다르면 드러나지만, 생각보다 거칠거나 마냥 위험하기만 한 이야기가 남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의 과거 엘라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이 위험천만한 환경에서 엘라는 몇 살까지 살고 있었을지,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엘라가 무력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걱정됐다.


계속 화가 났다. , 부모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건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키운다고 큰소리치지 마라.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소리치지 마라. 부모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엘라와 같은 환경에 방치하는 것만으로도 폭력이다. 실제로 육체적인 폭력에 노출된 아이도 많고, 정서적 학대로 아이를 지배하려는 어른도 많다. 이때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최선의, 혹은 순간적인 방법으로 이 위기를 넘어가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또 다른 위기는 발생하고, 아이들은 다른 양상의 지옥에 빠져든다. 결국, 피해자인 아이들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까지 한다. 엘라를 지켜주려고 친구 앤턴이 저지른 일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엘라가 그 집에서 탈출하려고 선택한 일은 새로운 인생을 주었지만, 케이시의 오두막에 숨어든 아이가 피투성이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게 현실이다. 법이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이런 소설에 빠져들고 모범택시 시리즈를 기다린다.


작가가 뇌 손상 전문의라고 하던데, 그 어렵고 바쁜 일을 하면서 언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작하는 듯하다. 어쨌든, 한 권 읽고 좀 잊을 만하면 다시 새 책이 나오니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이번 책을 읽고 나니 너무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되니까 지루하기도 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는 게 한번은 만나고 가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더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그동안 주인공들이 마냥 센 언니였다면, 이번 주인공은 세 보이지만 따뜻한 언니정도라고 해야 할까.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관심 두어야 할 부분을 고민하게 하는 건 좋았다. 350여 페이지 수에 비하면 책값은 좀 비싼가 싶고, 가독성은 여전하나 재미로만 보자면 좀 아쉬운 것도 있어서 만족도는 좀 떨어진다.



#프리다맥파든 #차일드호더 #소설 #추리소설 ##책추천 #밝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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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연습 위픽
김지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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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순간이 생방송처럼 흘러간다. 연습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게 어울리지 않게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실수하면 실수로 기억되는 그 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이 처음부터 이상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했다. 새해, 연습이라니. 궁금하기도 했지만, 맥락 없이 연습이란 말에 꽂혔다. 실수해도 실수로 봐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한참 지나버려서, 연습할 시간 따위 없이 흘러가는 순간들이 야속해서 말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려고 돌아서 왔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기로 결정하던 순간의 기분이 떠올랐다. 이만큼이나 살았는데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은 또 오래 보고 싶어서 그게 새롭다고 생각되어서 걸음을 돌린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싶어서 그게 새로운 것이어서 자극이 되어서 삶에 활력이 되어줄까 봐 그랬다. 넘어진 소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얼른 걸음을 돌렸다. 너무 오래 살았다는 기분이 든다. (68페이지, 할머니 양지의 일기 중에서)


어느 날 주인공 홍미에게 날이든 소식, 있는 줄도 몰랐던 할머니 양지의 죽음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홍미의 부모는 이혼했다. 일찌감치 혼자인 게 익숙하게 살아왔던 홍미에게, 부모도 아니고 얼굴 본 적도 없는 할머니의 죽음이라니. 할머니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죽는 순간마저 혼자였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기숙사에 살았고, 가족도 친구도 없이 살아온 홍미였다. 어쩌면 할머니의 죽음은 마치 거울을 보듯, 오랫동안 혼자였던 홍미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게 아닌데. 굳이 모른 척하려고 애쓰지도 않았겠지만, 이렇게 자신의 상황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그러는 건지 무섭기까지 하다.


할머니가 남긴 건 18년간 써온 일기장뿐이었다. 굳이 이걸 읽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잠시, 홍미는 할머니의 일기를 하나씩 읽으면서 그대로 파쇄한다. 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할머니가 18년을 채워온 일기장에는 무슨 말이 가득했을까. 혹시 어디에 숨겨둔 유산이라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숨겨진 건 아닐까? 홍미의 현재 상황에서는 그게 더 반가운 소식일 것 같은데. 회사는 그만두고 싶지만 더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세 들어 사는 집은 어느 채권자가 압류했다고 하고. 홍미의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지금 딱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위태로운 순간이니까. 그런데, 할머니의 일기장 안에는 유산이 아니라 단조로운 일상, 공백에 묻어둔 외로움이 느껴졌다.


어떤 기시감일까, 아니면 두려움일까. 이 책을 읽는데 헉, 하고 숨이 막히는 순간이 있었다. 미래의 어떤 날에 내가 마주할 장면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할머니의 일기장 속에는 한 사람만이 등장했다. 할머니 양지’. 그리고 가끔 할머니를 찾아오는 공 씨. 단조롭다 못해 무료하게 느껴질 정도의 일상에 공 씨의 등장은 이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누군가 보낸 선물 같았다. 가끔 안부를 물어주는 공 씨는 할머니에게 어떤 존재일까. 공 씨는 어떤 의무로 할머니를 찾아주는 사람이었지만, 할머니에게 공 씨의 목적이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주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그 자체로 공 씨의 존재는 할머니에게 위로가 되었을 테니까. 그러면서 할머니가 이루고 싶었던 인생, 현실의 할머니 처지가 아니라 할머니가 바랐던 다른 삶을 거짓으로 적어놓은 일기장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루고 싶은 인생의 모습. 저마다 바라는 삶의 그림이 있을 거다. 어떤 성공을 이루고 싶기도 하고,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원하기도 하겠지. 할머니가 일기장에 채워 넣은, 단조롭지만 평온한 세월의 기록은, 할머니가 이루지 못한, 언젠가 그리고 싶은 삶이었다. 마치 그런 삶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일기장에 연습처럼 적어놓는다는 듯이. 그렇게 적어놓고, 지금 생을 연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순간에도 이 연습이란 단어가 마냥 부정적으로만 들려서,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새해 인사를 미리 하는 홍미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눈앞의 문제는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데, 발랄하게 꺼내는 인사가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어김없이 다가올 새해를 홍미처럼 맞이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싫다고 해도 새해는 올 거고, 어떤 희망을 품고 있어도 불안과 절망이 같이 다가올 거기에, 그때마다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은 또 펼쳐질 거니까. 그 두려움 속에서도 아주 잘살아 보고 싶어서 미리 연습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홍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말이다.


서둘러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홍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생각할 때가 더 많았고 그날도 그랬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내는 데 통달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홍미는 자신이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고 착각했다. 홍미는 다음 날도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할 것이다. (60~61페이지)


결국, 할머니는 일기장에 적는 것으로(그것을 연습으로 볼 수 있다면) 그친 인생이었지만, 홍미에게는 아직 다른 내일이 있었다. 새로운 직장도 구해야 하고, 사는 집의 경매 문제도 해결되어야 전세 보증금이라도 구할 수 있다. 듣기만 해도 막막하고 울고 싶은 일들인데, 홍미 자신이 착각하는 것처럼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고 믿고 싶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운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착각이든 안목이든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지 않은가. 이런 순간들을 연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할머니의 일기장을 읽는 홍미도, 할머니 양지와 홍미의 이야기를 읽은 나에게도 새해가 되면 잘살아 보고 싶다. 이런 순간들을 연습으로 더 단단해졌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괜찮은 날들이지 않을까?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매일이 일종의 연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생각부터 한다. 쓰고 버려지는 습작들을 떠올려서만은 아니다. 매 순간 하는 일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인사나 오래전 연락이 끊긴 사람과의 안부 인사도, 평생 안 하던 짓을 해보는 것이나 하던 짓을 그만두는 것이나, 살면서 갈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장소에 가보는 것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이 실전이면서 또한 연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수많은 좌절을 겪으며 새삼 깨닫고 있다. 좌절할 것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기대하고 마음 상해하기도 한다는 것이, 역시나 오래전 그 사람이 나에 대해 한 말은 틀렸다는 증거 같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계속 더 오래 연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쓴 것 같다. 실패로 끝난다 해도 그게 완전한 절망은 아닐 거라는 마음에서. 그토록 속아놓고도 다시 또 기대에 차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하는 입 모양을 떠올리면서. (100~101페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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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5-12-1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오늘을 살았으니 내일은 조금 더 괜찮아질 거야 하는 기대감. 그렇게 없다면 삶은 너무 슬프기만 하니까요.
구단씨 님의 새해를 응원합니다!

구단씨 2025-12-24 17:50   좋아요 0 | URL
‘괜찮아 질 거‘라는 그 믿음이나 바람이 없다면, 오늘 어떻게 마무리할지 무서울 것 같아요. ^^
내년에는 책을 좀 더 읽었으면 좋겠어요. 올해 정말 못 읽고 살았거든요.
자목련님의 내년을, 저도 응원합니다.
별 일 없이 사는 날들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지만, 그 별 일 없는 날들 중에도 더 소중한 날들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