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왜 왔어?
정해연 지음 / 허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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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는, 취향이나 입맛에 따라 고르거나 정할 수 없이 주어지는 가족이라는 운명.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들리는 단어이지만, 때로는 그 가족이란 관계 속에서 느끼는 버거움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좋은 것만 공유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화기애애하게, 감정 상하고 서운하지만 괜찮다는 듯이, 가슴에 쌓여가는 울분을 눌러가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폭발하겠지.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분노가 최고치에 오른 만큼 잔인하게.


우리가 평소에 가족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리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작품 세 편이 담겼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우리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고, 그러니까 반려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착각으로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반려, 라는 작품은 인간이 얼마나 치밀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 남자의 광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어떤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섬뜩했다. 한치훈은 우연처럼 이정인을 만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자의 마음을 표현한다. 정인은 치훈이 자기에게 보인 호의가 조심스러웠지만, 조금씩 친해질 수 있는 관계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치훈은 정인이 마치 자기 여자인 것처럼, 정인이 보인 호의가 자기만의 연인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선을 한참 넘어버린다. 급기야 표출된 그의 광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반려의 의미를 잃게 된다.


대한민국 어느 가정의 가장으로,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남자 준구. 그의 일상에 예상하지 못 할 일이 생긴다. 두 번째 단편준구에서는 우리가 사는 동안 맞닥뜨릴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게 당연한 건지 희생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각자 속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것이기에, 준구의 선택이 이해되기도 하면서 때로는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해야 가족인 건가 싶은 마음에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고된 몸을 이끌고 지하철 막차를 탄 준구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자기 방에서 자는 줄 알았던 딸이 납치된 것을 알게 된다. 갑자기? 이유도 모르겠다. 그때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준구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연루되었다는 걸 인지하고, 딸을 구하기 위해 그는 이제 위험한 선택을 해야 한다. 자기 목숨을 걸고 딸을 구하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 속에서 매 순간 나는 고민하고 궁금해야 했다. 부모는 다 그런 것인지, 똑같은 상황이 자식에게 닥쳤어도 부모를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혹시 자기를 희생하는 선택이 아니라고 해서 비난받게 되는 건지. 여전히 이 단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고민은 계속된다. 나는 아직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했으므로.


세 번째 단편 은 가장 공감되고 익숙한 느낌의 작품이었다. 선경이 이룬 가정은 완벽해 보였다. 다정하고 유능한 남편, 외모부터 능력까지 겸비한 스튜어디스 큰딸, 큰딸보다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 대학생 작은딸. 아침마다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하며 이웃 여자의 부러움을 받는 선경은 이 순간을 즐기는 듯하다. 하지만 선경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남들에게 얘기하지 못할 속사정에 가슴이 썩어들어간다. 큰딸이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한 달 넘게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기력이 쇠하면서 누워지내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점점 더 마른 몰골이다. 전국의 온갖 병원을 다 다녀봐도 병명을 얻지 못했다. 이대로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데, 뾰족한 수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젊은 남자가 선경에게 말을 건다. “그 집에 아픈 사람 있죠?” 누군데 남의 집 속사정을 알고 말을 건넬까 싶은 것도 잠시, 남자는 연락하라면서 명함을 한 장 주고 떠난다. 이 집안의 말 못할 속내는 점점 더 깊어진다.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정석이 있을까. 어느 집이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순간, 그들만의 방식은 깨지기 쉽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렇게 보여주면서 즐기기까지 하게 되는 일은 오래 못 간다는 게 살면서 배워온 진리다. 세 번째 단편에서 선경의 마지막 선택에 씁쓸했다. 오래된 균열을 못 본 척 감추고 살아오기 급급했는데, 이번에는 더 큰 균열을 마주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갈 수 있을까? 완벽한 가족이라고 포장하고 보여주기 위해 집착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무색하게, 그 집 안의 모습은 곧 무너질 것 같은 균열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족이기 때문에 숨기고, 가족이기 때문에 상처 주고 원망한다. 이게 맞는 걸까, 가족이니까? 작가는 말한다. 가족이니까 그래서는안된다고. 그 말에 계속 생각하게 된다. 혹시라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없이 봐주기를 바란 적은 없는지, 가족이니까 내가 주는 상처 정도는 괜찮다고 여긴 적은 없는지, 가족이니까 원망의 대상으로 삼은 적은 없었는지.


정해연이라는 이름 하나로 고른 책이다. 분량도 적어서 가볍게 읽을 작품 정도로 생각했는데, 요즘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인 주제여서 그런지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어느 부분에서 내가 가족들에게 이기적으로 행동한 적은 없는지 살펴보게 되기도 하더라. 이런 반성(?)과는 별개로, 그동안 만난 정해연 작가의 탄탄하고 몰입도 높은 장편소설과 비교하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재미로만 따진다면 좀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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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가족 #완벽한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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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만지면 엄정순의 예술 수업
엄정순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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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기억한다. 친구 집에서 같이 TV를 보는데, 드라마의 주인공이 빨간 국수를 포크로 둘둘 말아서 먹는 장면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왜 국수를 포크로 말아서 먹는 거지?’하고 중얼거렸는데, 친구가 옆에서 얘기해주더라. ‘저건 국수가 아니라 스파게티야.’ 시골에 살면서 가정 형편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형제 많은 집의 아이였던 나에게 스파게티는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안 먹어봤어도 어디에서 한 번 정도 봤더라면 어떤 음식인지는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런 경험조차 없던 나에게는 스파게티는 물론이고 그걸 먹는 장면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친구가 스파게티라고 알려준 그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건, 어린 나이에 느낀 부끄러움이었다. 우리는 친구이고 같은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데, 그 아이가 아는 걸 나는 모른다는 게 그저 창피하기만 했다. 크게 부족한 거 없이 사는 친구여서 그랬는지 부모님과 자주 외식을 다녀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와 나의 차이를 상당히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우린 똑같이 앞이 보이는 채로, 비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비장애인으로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일에 따라오는 감정도 혼란스러웠는데,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보이지 않는 세상은 어떤 감정을 불러올지 궁금했다. 아니, 그게 전부는 아닐 거다. 어떤 사물이나 장면이 궁금한데 볼 방법은 없고, 그걸 설명해주는 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주관적인 의견이 섞일 것 같고, 어떻게 해야만 보이는 세상 그대로 그릴 수 있을까. 앞이 보이다가 보이지 않게 된 경우에는 시력을 잃기 전에 경험한 것을 토대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니면 아주 어릴 적부터 거의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면, 미처 어떤 경험을 하기도 전에 닫힌 시력으로 살아왔다면, 그럼 어떻게 눈앞의 세상을 알 수 있을까. 언제든 보고 싶은 거 보고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는 일이었다. 검색 한 번에 궁금증은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서, 게으르고 관심이 없어서 보지 못한 것에 간절함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절함을 잊은 일상의 습관이 부끄러웠다.


불경 열반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에 어느 왕이 맹인들을 불러 모으고는 코끼리를 만져 보게 했습니다. 그 뒤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이빨을 만져 본 맹인은 코끼리는 큰 무뿌리와 같다고 했고, 귀를 만져 본 맹인은 곡식을 까불 때 쓰는 키와 같다고 했으며, 꼬리를 만져 본 맹인은 노끈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에 왕은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각자 자기가 아는 것만으로 말한다. 진리도 그와 같으니라,”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이 이야기는 맹인 비하가 아니라, 자기가 아는 세계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이야기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엄정순 작가는 오랫동안 시각 장애 아이들에게 미술 교육, 그중에서도 10년간 코끼리 만지기프로젝트를 지속해왔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품고 살아온 작가가 답을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먼저 예술가와 아이들이 코끼리에 관해 묻고 답하면서, 코끼리가 얼마나 클지, 코는 얼마나 길지, 코끼리는 무엇을 먹고사는지 상상한다. 코끼리 코가 길다고 하니 수도꼭지에 매달린 호스를, 진공청소기의 긴 호스를 이야기한다. 땅 위에서 사는 동물 중 가장 크다고 하니 6층 건물만큼 크냐고, 아니면 바다 위의 커다란 배와 비슷하냐고 묻는다. 그런 덩치로 어떻게 풀과 과일만 먹고 사는지 궁금해한다. 이렇게 상상하다 보니 궁금증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말로 나누는 코끼리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처음 보였던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호기심이 남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저마다의 상상으로 그려낸 코끼리를 직접 만나러 태국으로 간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코끼리를 만져 보고 냄새를 맡아 본다. 그러고 나서야 진짜 코끼리를 느낀다. 코끼리는 코가 길쭉하고, 귀를 둥글둥글하고, 다리는 두껍고 묵직하다고 표현한다. 작가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것에 더듬으면서 다가가는 과정, 많은 자극과 경험으로 상상력을 키우고, 드디어 실체와 만나는 경험은 그 상상력과 창의력을 건드리며 예술적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때 예술가는 아이가 경험한 것을 떠올리고 그 느낌을 표현하도록 북돋운다. 이 책에서도 담겼지만, 아이들은 직접 만난 코끼리를 자기만의 모습으로 만들어낸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코끼리가 정말 다양한 모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이렇게 직접 부딪히는 과정으로 시각 장애 아이들은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자극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가는 성장을 보여준다. 비장애인인 우리에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장애로 인해 어떤 기능이 결여되었더라도, 그 결여는 새로운 신체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스스로 차이를 창조하는 주체적 과정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보이지 않아도 완성해낼 수 있는 예술의 세계가 얼마나 놀라운지 보여주면서, 신체적 장애가 인간의 성장을 방해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감동스럽다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의 커다란 가르침을 얻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책이다.


이 책 안에 시각 장애 아이들이 코끼리를 직접 만지고 느낀 그대로 만든 작품이 담겨 있다. 그 작품을 찍어서 첨부할까 하다가 말았다. 직접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작품을 마주하고 또 다른 감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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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위대함 #예술의위대함 #상상력 #창의력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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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안보윤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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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구는 가족 구성원 한 사람 때문에 평생을 피해자로 살아온 또 다른 사람 전수영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어린 나이에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휘두를 수 있는지 너무 잘 알던 전수미가 저지른 만행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가족들. 특히 한 살 터울의 동생 전수영은 그 가족 안에서도 전수미가 뿜어대는 모든 결과물을 고스란히 받게 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때려 부수고,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면서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전수미가 싼 똥을 치우는 이들 역시 가족이다. 읽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들더라. 진작에 이런 금쪽이를 오은영 박사에게 보냈어야 했나 싶었는데, 이 정도의 악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비록 아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변화를 끌어낼 수는 없지 않았을까 싶은 절망적인 결과가 먼저 떠오른다. 도대체 전수미는 어떻게 태어난 인물인가.


글쎄,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처음 전수미의 악행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부모의 한없는 감싸기가 이 지경을 만들었나? 아니면, 사람의 힘으로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탄생한 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감당할 수 없으면 피하는 게 답인가 싶어서 전수영은 전수미를 피해 따로 살기도 하지만, 가진 것 없이 혼자 살아가는 일은 고달프다. 그래도 전수미와 함께하는 것보다 차라리 고생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닐 테다. 열심히 살면 다른 인생이 펼쳐질 거라는 믿음은 누구나 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았다. 어깨 인대가 끊어지도록 일했고 돈도 모았다. 전세 사기를 당하면서 전수영의 인생은 다시 아무것도 없던 처음으로 돌아갔다. 살아가는 데 돈은 여전히 필요했고, 노견 클리닉센터에 일하게 된다. 센터의 원장은 사람 좋은 얼굴로 노견의 돌봄을 자처하는 것처럼, 이타심 넘치는 인물로 비치지만, 사실 그의 얼굴은 돈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무료 봉사가 아니니, 노견의 돌봄에 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 원장의 계산법에 토를 달 수도 없다.


전수미에게 당할 만큼 당한 전수영이 자기만의 인생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상하다. ‘전수미에게서만 벗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가는 곳마다 전수미가 있었다.’(117페이지) 노견 클리닉센터의 원장은 또 다른 전수미였다. 늙은 데다가 아프기까지 한 노견을 돌보는 일은 사랑이 가득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원장은 이 노견의 고통과 노견의 보호자가 감당해야 할 여러 가지 부담을 줄여준다며 노견의 운명을 자기가 정한다. 우아하게, 보호자가 노견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시간대를 골라서, 극적인 죽음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애써 목숨을 유지하려던 노견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센터는 마지막까지 돌봄을 다하지만 노견의 목숨을 더 붙잡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보호자는 노견의 마지막을 슬픔으로 가득 채워 보내주는 일. 그렇게 노견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새로운 노견으로 채워지고, 이런 반복을 지켜보던 전수영의 가슴 속에서 뭔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단순해 보였다. 전수미라는 악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전수영의 인생을 들려주는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요양병원에서 두 명의 노인이 죽었고, 그곳에서 일하던 전수미가 이 죽음을 방치했다면서 전수영의 인생에 다시 등장한다. 노인들의 죽음과 그 죽음의 현장에 머물렀던 전수미의 행적이 우연일까? 전수미에게 다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전수영은 노견 클리닉센터의 원장과 전수미를 동시에 떠올리며 이 죽음에 무엇이 빠져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한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처럼 보였던 노인의 죽음, 시간이 차이일 뿐이지 곧 죽음이 끝이라는 게 분명해 보이는 노견의 죽음. 이 죽음을 정하는 건 누구인가. 이 과정에서 스스로 묻기 시작하는 전수영의 감정 변화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수영이라고 전수미나 원장과 다를 수 있었는지 묻는다. 너는 달라? 너는 이 죽음에서 자유로워? 아무런 책임이 없어?


종종 바란다. 나는 세상이 말하는 악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많은 순간 갈등하며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거 아닐까 싶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어느 악행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방관자 혹은 가해자였던 적은 없는지 묻게 될 때 말이다. 마지막 전수영의 선택은 이 순간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였다고, 이 선택이 아니라면 전수미나 원장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고, 다른 선택은 할 수 없었다고. 쉽지 않은 선택으로 전수영은 다시 힘든 생활로 돌아갔다. 백수가 되었고, 가족을 등지게 되었다. ‘모든 비밀을 토해내며 다시 세상의 뒷면으로 머물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전수영은 전수미가 아니니까. 이 다짐이 전수영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향해야 할 시선이 어디쯤인지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눈 한번 깜빡이다가 전수미가 되는 순간을 거부하고 싶다면, 언제나 누군가의 진심을 먼저 보고 싶다면, 방심하지 마라. 전수미가 아닌 전수영으로 살아가는 게 맞는 세상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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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 지원사 교육을 받았다. 당장 무엇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은 건 아니다. 시간이 있을 때 이 교육에 참여해보고 싶었다는 게 가장 솔직한 마음이다. 이 교육을 받게 된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언젠가 이 교육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힐 수도 있다는 건데, 이건 아직 실습을 마무리하지 않았기에 지금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장애가 있는 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에 속한 내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함으로써 좀 더 따뜻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갑자기? 내가 이 교육을 받아보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이었다. 갑자기 왜? 사실 몇 년 사이에 겪은 일들로 장애인활동 지원사를 관심 두게 되었다. 그 역할은 말 그대로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건데, 그에 앞서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언젠가 그 일을 하게 된다면 잘 할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있어서였다.


재작년 겨울에 사회복지 실습을 지역아동센터에서 하게 되었는데,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장애 비장애 아동 통합 보육을 하는 곳이었다. 장애 아동이 있는 가정에서 이곳으로 아이를 보내기 위해 대기 번호를 걸어놓아야 할 만큼 지원자가 많은 곳이었다. 그만큼 장애 아동 돌봄을 하는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쩌다 보니 그곳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하게 되었고,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어려운 경험을 하는 시간이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들었다는 게 맞겠다. 처음 접하는 장애 아동과 소통하는 것부터 그 아이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니 대처하는 것도 너무 서툴렀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더 배워야,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장애인에 관해 더 알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장애 아동을 센터로 데리고 오는 장애인활동 지원사 몇 분과 이야기하면서, 그때야 장애인활동 지원사의 역할을 처음 알게 되었다. ,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이들에게 활동지원사의 역할이 분명 필요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거기에 몇 가지 더 이유를 찾자면, 시아버지는 시력을 거의 잃어서 활동에 불편함을 느끼는데, 그 옆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시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몇 년 전 무릎 시술을 받으면서 몸의 불편함이 늘어가는 엄마를 보면서도 느끼는 게 많았다. 그러다 보니 몸의 불편함, 혹은 신체의 보이지 않는 다른 부분의 불편함으로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저절로 시선이 갔다. 그들을 동정하거나 차별하기 위한 시선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타인을 더 이해하고 싶은 바람과 나를 비롯해 나의 주변에 있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다. 그러니까, 백지상태에서 조금씩 더 알아가고 싶은 작은 마음이라고 해두자.


작가 엄정순의 그림책 코끼리를 만지면과 뇌 병변 장애가 있는 정영민의 에세이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내가 장애인활동 지원사 교육을 받는 4일 내내 나의 가방에 함께 있었다. 강의 들으면서 틈나는 대로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내가 듣는 내용이 얼마나 생생한 현실인지 와 닿곤 했다. 엄정순 저자는 시력을 잃은 아이들에게 코끼리를 직접 접하고 만질 수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아이들이 손으로 보는 코끼리는 정말 다양한 모습이었다. 생각할수록 궁금해져요. 코끼리를 직접 만나고 싶어요.” 몇 장의 사진, 몇 줄의 문장으로 이 그림책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느꼈다. 본 적이 없는 코끼리,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만지고 느끼는 것만큼 코끼리의 모습이 선명해질 수 있을까? 저자의 시도가 너무 위대하게 보였다.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접근하고 소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보여준 게 아닐까 싶었다.


특히 정영민 저자의 책은 내가 들은 강의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 담겨 있기도 했고, 장애인으로 살면서 저자가 겪은 많은 일이 강의를 듣는 동안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장애를 여전히 불행하고 나쁜 일로,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여긴다. 일상을 꾸려나가는 보통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인도 보통 사람이다.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 형편껏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그냥 보통 사람.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9페이지)


정말로, 평범했다. 장애인활동 지원사 교육은 총 5일 동안 40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실습은 따로 진행된다. 특정 자격증이 있으면 나흘 동안 32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나는 나흘 동안 32시간의 교육을 받았는데, 오전 오후 각 4시간씩, 모두 여덟 명의 강사가 강의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각종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이 오셔서 강의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장애인이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무선 마이크를 끼고, 장애인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기에게 맡겨진 시간을 충분히 소화해냈다. 어렸을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았거나, 이십 대의 건장한 청년으로 살다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었거나, 선천적 신장 장애로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거나, 장애인 거주 시설을 운영하는 담당자이거나. 내가 만난 강사 모두가 장애인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말하고 원하는 것은 정영민 저자가 말하는 것과 같았다. ‘일상을 꾸려나가는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거다. 몸이 불편하다고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날들이었던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너무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자주 잊고 지내는 것 같다. 그 보통의 삶,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을, 누구나 바란다.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거였다. 소위 잘 사는 나라들에 왜 이렇게 장애인이 많아?’ 잘 산다고 장애를 갖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장애를 덜 갖게 지원해주니까 장애인이 적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한 건지 바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등록제다. 의사의 진단서와 온갖 서류를 갖춰 제출하고 심사받아서 통과해야만 장애인으로 등록된다. 이렇게 말하니까 쉬운 과정 같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노인 장기요양등급 받는 과정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비슷하거나 더 힘들다고 생각되더라) 나에게 장애가 있다고 증명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웠다는 게 정말 놀라울 뿐이었다. 복지가 잘 된 나라들은 일찌감치 장애를 위한 지원이 있고, 장애인 등록도 우리나라보다 수월하단다. 그러니 몸의 불편함을 알게 되면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국가의 지원으로 이 불편함을 치료하면서 한 사람의 독립적인 삶을 향해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장애인이 다른 나라보다 적은 게 아니라, ‘등록된장애인 숫자가 적다는 게 진실이다. 의료적 기준에 따라, 국가가 인정하는 장애인이 적을 뿐이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일까. 제대로 치료나 지원받지 못함으로써,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고, 한 사람으로 온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간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거 아닐까.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장애는 설명되지 않거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구체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이나 거북함에 대해 증명을 요구하면 대부분 추상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장애는 상세히 기록될 수 없는 불편이다. 증명도, 명료한 판단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명료하고 확정적이길 원한다. 정상성에 대한 환상이다. 현실에 우영우 변호사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91페이지)


너무나 귀한 시간에 눈물이 날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특히 현재 장애인 단체의 대표로 있는 한 분의 강의가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정영민 저자가 말하는 그 평범한 삶을 얻고 얼마나 귀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말하는 표정에서 세상 더 없을 기쁨을 보았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로 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전동휠체어에 의지하며 움직이고 있지만, 그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위해 큰 노력을 하면서 이 자리에 있다고 했다. 엄마가 아들을 놓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업고서 등하교시켰고, 성인이 된 후에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은 이들과 연결되었고, 단체까지 만들어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여 대학을 졸업했고, 여러 가지 활동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둘 다 몸이 불편한 상태로 결혼생활을 이어가다가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아내를 단념시키느라 힘들었는데, 장애인활동 지원사 정책이 시작된다는 얘기에 용기를 내어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몇 번의 유산이 있었지만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고, 아들이 태어나고 3개월 후부터 장애인활동 지원사의 도움으로 믿고 양육하게 되었다고. 그 아들이 지금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때 인연을 맺은 장애인활동 지원사는 지금도 이 가정에서 이모라고 불리며 가족 그 이상으로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좁은 집에 휠체어 두 대가 같이 움직이기 어려워서 주택을 개조해서 이사하고, 아들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그 아들은 자기가 성인이 되면 이모에게 어떻게 잘하고 싶은 부모에게 이야기를 날들을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차별을 겪으며 살아오기도 했던 날들을 뒤로 하고, 이들은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 우리 지금 행복하지?” 이 한마디에 강사의 말을 듣던 수강생 모두가 손뼉을 쳤다. 당신의 삶을 너무나도, 미치도록 응원한다고, 말이 더 필요 없었다.


행복이 뭘까.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1초의 고민도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행복한 것도 같고, 눈앞에 놓인 걱정거리에 한숨이 가득하기도 하고. 마음이 어느 정도 놓여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강사의 아내가 남편에게 행복하다고 건네는 말을 듣다가, 눈물이 흘렀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어느 날의, 누구네 집 일상으로 보였는데, 누군가는 그 환경을 만들기까지 애써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꺼낼 수 있는 말이 되었다. 내가 그 교육을 한번 받았다고 그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장애인의 삶에 완전히 들어갈 수도 없다. 다만, 여러 방향에서의 장애 이해 교육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해의 과정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소수자를 대하는 마음도 다르지 않다. 글쎄, 이게 나이 들어가는 마음인 건지, 요즘에 주변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보게 되면서 생긴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사회가 나 혼자서 잘 났다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거다. 공존하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해야 하나. 누구에게나 장애가 생길 수 있고, 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바람으로, 그저 평범한 삶을 바라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먼 이야기도, 그저 꿈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고 연결된다. 장애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문제와 연결된다. 어쩌면 그 모든 문제의 핵심 열쇠가 장애일 수도 있다. 어떤 장애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새롭게 재편될 수 있다.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182페이지)


장애인활동 지원사 교육이 무료는 아니다. 일정의 비용을 내야 한다. 정해진 인원이 있어서 일찍 마감한다고, 교육을 시작하기 한 달도 훨씬 전에 수강료를 완납하라고 했다.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고, 그 사이 마음이 바뀌면 취소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다가 개강 날짜가 되었기에 그냥 수업에 참여했다. 너무 좋은 내용의 시간이었기에 취소했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아는 사람과 함께 이 수업을 들으면서 내내 말했다. 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이 돈이 아깝지 않은 귀한 시간이었다고. 많은 사람이 이 교육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조금 가까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지난번 요양보호사 강의를 들을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는데, 이 강의까지 듣게 되어서 마음이 충만해졌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그 흔한 말이 얼마나 가치 있는 말인지 다시 가슴에 새겼다. 보통 사람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에 모두가 귀를 열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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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휴먼 #사이보그가되다 #역사속장애인은어떻게살았을까 #실격당한자들을위한변론

##책추천 #장애이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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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되지 않는 엄마 - 임경섭의 2월 시의적절 14
임경섭 지음 / 난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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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그해 2월은

도무지 이월되지 않고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은

잊히지 않고

기어코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이,

아팠던 그해 2월이

죽어 사라지지 않고

여기까지 같이 와 보란듯이 옆에 서 있다


원망스러운 그해 2월이,

그해 2월만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이런 글은 쓰지도 않을 것 같은 나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2월이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온전히 내 옆에 살아 있다


죽지 않고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죽지 않을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다 (176페이지)



시의적절시리즈를 알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세상에 책은 많고, 굳이 한번 안 읽고 지나간다고 해도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도 이번 2월의 책은 홀린 듯이 손이 갔다. 2월에 읽어야 할 것만 같았고, ‘이월되지 않는’, ‘이월될 수 없는존재와 마음에 관해 저절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고, 언제든 다음에라는 말로 지금 하지 못한 것의 미안함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러다가 결국 아쉬움과 그리움만 남기는 존재와 마음에 관해서 말이다.


인터넷서점에 소개된 저자의 설명은 두 줄 정도였다. 1981년생. 비슷한 나이에 여전히 엄마한테 등짝을 맞으며 살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잠깐, 또 생각했다. 그 나이에 엄마를 잃었다면 는 어떤 모습일까.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직은. 저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4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그리움이 무뎌질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엄마와의 이별에 관해 요즘 많이 떠올린다. 슬프고 아프겠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그 감정을 흐릿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막연하게 떠올린 그 무뎌지는 감정에 관해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를 얻게 되었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마음이라고 했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더 단단해지는 가슴을 갖게 되는 어른이 된다고 해도,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히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몇 년 동안은 그 괴로움이 너무나 버거워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하고 바라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들고 철도 좀 들고 그리하여 어른이라는 단어가 내게 조금은 어울리는 시점이 된다면 이 감정도 무뎌지겠지, 엄마를 잃은 슬픔이 허구한 날 나를 괴롭히지는 않겠지, 엄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는 일은 없겠지 싶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여기 있었다. 마흔다섯이 되었는데도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엄마의 표정과 엄마의 목소리가 불현듯 떠올라 아내 몰래 엉엉 우는 날이 여전히 잦다. (43~44페이지)


시와 에세이, 간혹 소설까지 담겼다. 21일부터 228일까지, 마치 매일 일기를 쓰듯 하루하루가 채워졌다. 저자는 왜,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짧은 2, 그것도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까 궁금했는데, 어쩌면 너무 짧은 달이어서 그랬던가 싶기도 하다. 마냥 그리워하고 싶은데, 일 년 내내 그리워해도 되지만, 특히 2월에 엄마를 더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건 아닐까 하고. 그러니까 2월에는, 이유를 찾지 않아도 그냥 보고 싶은 사람을 내내 떠올려도 좋은 때라고. 인생의 많은 처음중에서도 엄마와 함께 마신 술이 있었다. 젊은 엄마의 손을 잡고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았다. 그 순간에도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는데, 한 번도 그 죽음에 관해 생각하지 않고 지내왔을 나이를 뒤늦게 기억한다.


저자의 엄마가 떠나면서 들려준 말은 좋은 시인이 되라는거였다. 아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엄마가 좋은수식어를 더할 한 가지를 더 바라고 가셨다는 게, 그냥 엄마구나 싶었다. 더 하고 싶은 말도 다 묻어놓은 것만 같았다. 나이로는 성인이지만 아직 어리기만 한 마음으로 보냈던 이십 대 초반, 기꺼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순간에 건네는 말로 충분히 넘칠 듯했다. 남겨진 이 아이가 생각할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기도 전에, 남겨진 아이는 너무 빨리 가버린 엄마를 그리워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그 죽음을 생각하니 조금은 담담해졌으려나. 저자는 말한다. 우주에 관한 영상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태어나 우주로 돌아가는 게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렇게 생각해보니, 죽음이 꼭 슬픔이나 두려움은 아닌 것 같다고, 그저 짧은 한순간을 같이한 동년배 친구 같다고.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 이 세상이 아닌 그 어느 곳에서. 그동안 잘 지냈냐고 안부도 물으면서, 내가 이 세상 조금 더 살아오면서 겪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적응하느라 힘들었다고, 붕어빵 몇 개 사 먹으려고 일부러 현금을 준비해서 다녀야 했다고, 휴대폰 클릭 몇 번에 음식이 현관문 앞에 놓여 있어서 추운 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좋은 세상이었다고. 전자책을 보느라 시력은 더 나빠졌는데 이불 속에서 누워서 책을 보고 있었다고, 병원에 직접 가지 않아도 약을 처방받을 수도 있고, TV와 대화도 하면서 살았다고 하면 믿을까? 변하는 만큼 우리 몸은 편해졌지만, 가끔 이렇게 변한 세상이 괜히 섭섭하기도 하다고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어느 시절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말해줘야지.


부모의 죽음이라는 것은 막상 닥쳐온 바로 그때에는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질 때야 비로소,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큰 무게로 돌아올 때야 비로소 진짜 슬픔이란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걸 몸소 깨달을 때야 비로소 진정한 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엄마에 대한 추념은 끝이 없거니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다. 어쩐다. 나는 엄마의 죽음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170페이지)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예상해서 그런 걸까. 마냥 슬프고 어두울 거로 생각했다. 부모의 죽음과 부재가 얼마나 그리울지 떠올려 보면 그저 편안한 웃음이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읽다 보면, 오히려 담담한 말투가 안정감을 준다. 지금 우리는 죽음과 그리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혀 슬프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남긴 소중한 것을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저자의 말처럼, 엄마를 일찍 여의고 죽음에 의연해지게 되면서, 누군가의 앞에 닥친 죽음의 순간을 자기 경험으로 도울 수 있음이 선물 같다고 말하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죽음의 대상은 달라도 비슷한 경험을 한 나도 저자의 말을 그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엄마의 죽음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무슨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 테다.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떤가.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다면, 그래도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된다고, 엄마가 떠난 지 24년이 된 지금도, 앞으로 다시 24년의 세월 동안에도, 그래도 괜찮다고.


병원 대기실에서 이 책을 읽고 있었다. 다시 엄마의 검진 예약 때문에 기다리면서, 자기 차례가 언제 오는지 대기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많은 환자를 둘러보며, 누구나 겪을 이별과 죽음의 순간을 계속 생각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많은 시간, 살아온 과정과 고단함, 순간순간 떠오르는 후회들,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간단하지 않았던 마음, 그리고 또 다른 마음들이 더해진 오늘을 슬픔으로만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갑자기 찾아오는 설움마저 그러려니 하는 그리움으로 담아낼 수 있을 듯하다.


2월이 지나고, 시간이 한참 더 흘러도,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책이다.



#이월되지않는엄마 #임경섭 #시의적절 ##에세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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