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단순노동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몸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어떤 일을 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라서, 일장일단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했다. 몸을 쓰면서 일하다 보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더라. 심지어 손가락이 부어서 잘 굽어지지 않고, 젓가락질이 힘든 적도 있다. 그것도 며칠 지나면 그나마 적응되어 그냥 힘들다고 하면서 일하게 되더라는. 하지만 그런 일의 장점도 나름 있었다. 밤새 잠이 안 와서 짜증 났던 순간이 많았는데, 잠은 잘 오더라. 저녁 먹고 나면 초저녁부터 잠이 슬슬 온다. 엄마가 매일 저녁 일일 드라마를 보고 일찍 잠드실 때 왜 그런가 했는데, 이제야 좀 이해가 된다. 종일 종종거리며 집안일 하다가 몸이 쉬는 시간이 되니 잠이 오는 거다. 근데 잠이 일찍 온다고 다 좋은 건 또 아니었다. 책을 못 읽었다. 책 펴놓고 몇 분 지나면 고개가 꾸벅꾸벅 쏟아진다. 애들한테 공부하라고 하면 교재 펴놓고 바로 잠들어버리는 걸, 이제 뭐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반성도 해 본다.


작년 말에 집에 있는 책을 200권 정도 기증에 보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세계문학이었고, 나머지는 베스트셀러 위주였다.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훨씬 많아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래, 아무리 오랜 시간 내 책장에 모셔놔도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다는 확신에 미련 살짝 얹어서 보냈다. 어딘가에서 좋은 의미로 쓰일 것이라고 위안 삼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죄책감은 어쩔 수가 없어서, 덜 미안해지고 싶어서 펼쳐 든 책이 조경국의 , 읽는 재미 말고 이다. 제목부터 죄책감 덜어주지 않나? ^^ 표지의 한 문장처럼, ‘솔직히 다 읽으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김영하 작가의 책은,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라는 말과 함께 큰 위로가 된다. 진짜.



, 읽는 재미 말고의 저자는, 자기가 이 책을 쓴 단 하나의 목적은, 책방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책을 사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읽지 않아도 사서 집에 쟁여 놓고 싶게 하는 많은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사장님(헌책방 운영하신다고 함), 이 책이 아니어도, 정말 읽지 않아도 사서 집에 쟁여 놓고 사는 독자(?)는 이제 어떡해야 하나요? 저자가 더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책을 쟁여 놓는 습관은 오래전에 생겨버렸고, 앞으로도 쉽게 놓지 못할 버릇인 것 같다. 가끔 한 번씩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뜨끔한 마음이 들면 또 한 번씩 기증에 보내기는 하겠지만, 읽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게 되는 이 몹쓸 습관은 어찌해야 할꼬. 어쨌든, 반복적으로 하는 반성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이유가 공감되긴 하는데, 그중 몇 가지만 봐도 괜히 흐뭇해진다. 특히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는 놓칠 수 없다. 내가 그 시리즈를 더는 읽지 않기로 마음먹지 않는 이상, 포기할 수 없다. ‘책 선물하는 재미는 진짜 누군가에게 선물하면서, 내 돈 쓰고 기분 좋아지는 일이어서 행복했는데, 지금은 책을 선물하지 않는다. 처음에 뭘 모를 때, 내가 읽은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받는 사람도 당연히 좋아할 거란 착각을 하기 전까지는 종종 책을 선물했다. 하지만 받아보니 알겠다. 아무리 좋은 책도, 재밌는 책도,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받아도 미안한 선물이 된다. 꼭 책을 주고 싶다면, 차라리 받고 싶은 책을 골라서 말해 달라고 하는 게 서로에게 편하다. ‘책싸개 하는 재미는 좀 부지런해야 계속할 수 있는 습관이 아닐까 싶다. 한때는 내 책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비닐 커버를 종종 씌우기도 했는데, 이것도 몇 번 하니 귀찮더라. 정말 애서가가 아니라면, 이 책에 애정이 없다면 계속하기 힘든 책사랑이 아닐까. ‘영화 속 책을 찾는 재미는 가끔 따라 하기도 한다. 영화나 책에서 소개된, 언급된 책이 궁금해서 찾아보곤 한다. 다 읽지 못할 걸 알면서도, 목록이 늘어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혹시 알아? 어느 날 문득 그 책에 스르륵 손이 가게 될지도. ‘망가진 책 고치는 재미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 종종 하던 습관이다. 가장 흔한 건 찢어지거나 쩍벌이 책. 찢어진 책은 조심스럽게 가능하면 표시 덜 나게 붙여놓곤 했고, 쩍벌이 책은 목공풀로 섬세하게 발라서 뜯어지지 않게 만들어 놓고 반납하곤 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내가 빌린 책에 일정 페이지가 없다면, 찢어져서 문장이 잘려 나갔다면 화가 날 것 같아서. 그 외에도 책을 좋아하고 쟁여두고 싶은 이유를 많이 언급해주었는데, 책갈피나 사인본 수집하는 재미는 내가 아예 애정이 없는 부분이고, 필사는 게으름과 악필로 시도하지 않았고, 책 속 메모를 발견하면서 공감했던 경우는 거의 없고 낙서 때문에 화가 난 적이 많았고, 오탈자 찾아내는 재미도 없고 오히려 다른 독자보다 오탈자 잘 못 보는 인간이어서 많이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도 샀다. 200여 권의 책을 기증 보내고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또 샀다. 물론, 못 읽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배시시 웃기만 했다. 이 녀석들이 웃음이라도 주니 다행인가 싶어서 혼자 당당했다. , 읽는 재미 말고의 저자가 언급한 이유 중의 하나로,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로 차곡차곡 채우는 책이 있다. 그럼 이 시리즈를 왜 사기 시작했나 스스로 물어봤는데,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예뻐서 샀다. 녹색광선 출판사의 책이다. 처음에는, 예쁘기도 했지만 읽어보려고 산 거였다. 하지만 당연히 읽지 못했고,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 중에서 완독한 것은 셰리한 권이다.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이런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참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다. 디자인이 예쁘기만 하고 재미는 그에 미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 셰리읽고 나서 다른 책도 서둘러서 읽고 싶어졌다. 예쁜 외모만큼이나 내용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긴다. 다 읽었다고 해서 이 책을 쉽게 기증이나 다른 경로로 내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머지, 이 빠진 시리즈를 채워 넣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 정도면 책을 사야 할 이유가 분명한 거지? 헤헤




그동안 문학과지성사 출판사의 소설 보다시리즈를 꾸준히 사긴 했으나, 띄엄띄엄 샀다. 그때그때 기분이 내켜서 읽어보고 싶을 때만 샀는데, 2025년의 시리즈는 알림 신청해 놓고 다 샀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제목에 맞는 계절감을 책에서 느낄 수 있어서 말이다. 봄의 딸기, 여름의 포도, 가을의 무화과, 겨울의 감귤. 이렇게 썼지만, 표지의 각 과일이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제철 과일이 아니어도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과일이든 채소든, 제철이 가장 맛있긴 하지. 맛있는 과일 옆에 두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 같은? 그동안 이 시리즈는 짧게 읽는 재미가 좋아서 사곤 했는데, 2025년의 이 시리즈는 그 짧은 호흡으로 읽게 하는 재미도 있지만, 표지만 봐도 기분 좋아져서 더 펼쳐보고 싶게 한다. 올해는 어떤 표지로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되는데, 잠깐 읽고 덮어둘 게 아니라, 그래도 좀 오래 갖고 있고 싶어지게 하는 요소를, 그게 비록 표지만 예쁜 책으로 남게 되더라도 좀 잘 만들어주었으면 싶다. 책방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책을 사게 하고 싶다는 조경국 저자의 말처럼, 책이라는 게 읽는 것도 좋지만, 일단 사야 읽는 거 아닌가. 그러니 더 팔리는 책이 되게 하려는 애정을 출간된 책으로 보여주기를. 아마 2025의 시리즈는 2026년인 올해에 제대로 읽게 될 것 같다. 늘 그래왔듯이. ㅠㅠ




세계문학을 정리하려고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책이라고 해도 내가 읽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거기에 좀 짧은 분량에, 재밌게 세계문학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꾸준히 사서 모았던 게 문학동네의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 명작시리즈다. 221*188mm 판형의 가로로 넓은 디자인에 삽화까지 담겨 있어서 좀 편하게 읽힌다. 최근에 출간된 시리즈는 153*224mm 판형의 세로로 긴 일반도서 사이즈인데, 아무래도 이야기의 분량이 좀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무튼 이 시리즈 한 권씩 읽으면서, 나도 미뤄두었던 세계문학, 고전 읽는 독자가 되었고, 이 책들이 왜 꾸준히 사랑받고 추천되는지 알 것 같다. 그래, 역시 책은 읽어야 맛이지. 아무리 좋은 책, 여기저기서 추천되는 책이라고 해도 내가 확인하지 못하면 그 재미와 의미를 영원히 알 수 없으니까. 이 시리즈도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로 이어질 것 같다. 아직은 읽은 목록보다 안 읽은 목록이 많다. 근데 이 시리즈로 프랑켄슈타인읽어보려고 샀는데,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2025년 버전의 프랑켄슈타인을 봐버렸네. 재밌게 봤는데, 너무 미루지 않고 책으로 읽어볼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괴물의 간절함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에게도 동반자를 만들어줘.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은 절대 완독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절대 쉽게 정리해서 내보낼 책 목록에도 넣지 못하겠다. 처음 출간된 게 2018년이니까, 출간된 지 8년이 다 되었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꼭 읽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커서 말이다. 1권 읽다가 말고, 또 몇 페이지 읽다가 멈추고, 어느 장면에서는 잔인해서 그만 덮고. 주인공 패트릭 멜로즈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와 상처를 받았다. 그 기억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는 그 시절의 악몽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의 학대로 그의 20대는 약물에 중독된 시간으로 보내고, 세월이 흘러 그가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어도 그의 불안은 멈추지 않는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나쁜 아버지가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게 더 충격적이었는데, 저자 역시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털어놓는 건 힘들었다고 하고, 약물 중독에 자살 시도까지 했던 그가 이 책을 써야 했던 이유는 생존의 문제였다. 죽느냐, 아니면 이 책을 쓰느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다섯 살 때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의 극적인 그의 인생을 다룬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세상에 이런 부모가 있을 수 있는지, 분노하지 않으면서 읽어야 한다는 건 독자에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긴, 세상에 드러난 이런 사건들이 흔하게 들려오는 걸 보면, 이게 소설로 머물지 않을 이야기라는 건 이미 증명된 셈이다.



20대가 끝나가는 어느 날에, 지금 떠올려 보면 이런 철없는 말이 또 있을까 싶어질 정도인데, 친구랑 둘이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책방을 하자고, 커피도 팔고 간단한 음식도 파는 그런 책 카페를 하자고. 말은 쉬웠다. 우리는 모아둔 돈도 없었고, 대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보기 좋아서, 책이 쌓인 공간에 머물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 거의 매일 찾던 여러 카페에 손님으로 앉아있었을 뿐인데, 아무 대책도 준비도 없이 막연하게 쏟아낸 그 말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이런 말을 다시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확실히 알았다. 현실을 너무 몰랐던 망언이었다고. 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 저자는 책방지기에 대한 로망을 1년 차에 바로 깨졌다고 한다. 현장을 경험하기 전에는 다 알 수 없는 일이 책방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진리.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덤벼든 작은 책방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그래도 저처럼, 또 다른 많은 독자가, 다 읽지도 않을 책을 사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실 테니, 힘을 내요, 사장님. ^^



이제 나는 뭘 사야 하느냐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이야기를 들려줘요를 사고 싶은데, 그러려면 앞서 출간된 또 다른 책 올리브 키터리지내 이름은 루시바턴이나 버지스 형제도 사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에이미와 이저벨은 갖고 있네. 하하.











#책읽는재미말고 #패트릭멜로즈 #소설보다 #셰리 #아름다운여름 #감정의혼란

#솔직히다읽으려고사는건아니잖아요 ##책추천 #안읽어도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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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19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ㅎㅎ
그래도 가끔은 저걸 다 언제 읽나 싶죠!

구단씨 2026-01-25 15:06   좋아요 1 | URL
아, 죄책감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네요. ^^
그래도 삽니다. 살 수밖에 없었어요. ㅠㅠ
언젠가는 읽겠죠?

잠자냥 2026-01-20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렇게 모아놓으니까 참 예쁘네요?! 특히 보다 시리즈, 저는 한번도 구매한 적이 없어서... 저런 아름다움이? 하고 감탄.

구단씨 2026-01-25 15:06   좋아요 0 | URL
보다 시리즈 가끔 구매했는데요.
2025년은 표지가 예뻐서 저절로 사게 되더라고요. 표지에서 계절을 느끼게 되는... ^^

니르바나 2026-01-20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가지수 5000이 눈 앞에 보이는데 주식보다 책을 사시는 구단님이 멋있습니다.
책을 기부하는 손에 강복있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구단씨 2026-01-25 15:07   좋아요 1 | URL
하아... 주식을 몰라서 코스피 5천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순간에도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 ㅠㅠ
저에게는 사랑받지 못한 책들이 어딘가에서는 귀한 쓸모가 있기를 바라면서 보냈습니다.

살리에르 2026-01-2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 보다 책 사는 속도가 빠른 탓으로 방 한 칸이 책으로 뒤덮여서 나 죽을 때 어쩌나 하는 한숨을 매일 쉬는 사람에게는 공감이 안 가는 제목입니다 ㅎㅎ 책은 읽으려고 사는 거죠^^ 그게 언제냐가 문제지만요^^ 내 취향 아닌 책은 아무리 표지가 이뻐도 그냥 내 공간을 차지하는 짐덩어리일 뿐입니다. ‘이 빠진 시리즈 채워넣는 재미‘ 는 제가 글을 썼나 했네요. 나만 이러고 사는게 아니구나 하는 자기 위안으로 삼아봅니다..^^

구단씨 2026-01-28 20: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아요.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맞습니다. 뭐, 언젠가는 읽을 거니까요. ^^

서노기 2026-01-27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는 제 마음을 대변해주시는 듯하여 솔깃, 해서 방문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취미도 ‘책 소장‘인 것 같아서;; 요즘은 자제하고 있어요. 비우는 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구단씨 2026-01-28 20:33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책 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 나를 답답하게 하는 걸 찾아내어 조금씩, 더 비워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버리나 했는데, 없어도 크게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은 걸 보면, 뭐든 꽉 채우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살아가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벌써 몇 년째, 엄마 집을 정리하고 있다. 말은 정리라고 하는데, 그래봤자 가끔 가서 오래된 것들을 몇 개씩 버리고 오는 게 전부다. 시간도 없고,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결정을 못 하기 일쑤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다 보니, 항상 마음이 급하다. 어제는 엄마 집에 남은 오래된 앨범을 들고 왔다. 무겁다고 낑낑대면서 정리하다 보니, 우리 남매가 자라면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오래된 편지를 버리기 전에 읽어보는 것처럼, 앨범에서 사진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면서 그 시절을 소환했다. 항상 여유롭지 못했던 형편에 어려웠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게 좀 슬프기까지 했다. 혼자 울고 웃다가 마지막 앨범을 정리하면서 마주한 사진들을 아주 오래 보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절의 엄마였다. 오래전 엄마의 낡은 앨범을 버리면서 따로 챙겨둔, 엄마의 흑백사진.


사실 엄마 집에서 사진을 가져와서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오래전이었다. 갈 때마다 깜빡 잊고 그냥 왔는데, 이번에 잊지 않고 챙겨올 수 있었던 건 이 책 엄마만 남은 김미자때문이었다. 김중미 작가가 들려준 미자를 잊은 김미자 씨 때문에, 이름을 잃은 채로 살아온 엄마의 시간을 보고 싶었다.


모든 기억이 사라진 엄마에게 남은 유일한 정체성이 엄마라는 것이, ‘엄마만 남은 김미자 씨가 슬펐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 88페이지)


아동 청소년 문학을, 사회의 어둡고 낮은 자리를 담아낸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하긴 했다. 이 작가는 어떤 삶을 지나왔을까 하고. 부유하고 여유가 넘치는 세월이 작가의 인생에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하곤 했다. 작가가 그동안 작품에 담아낸 이야기는 비슷한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자라면서 형편이 여유로웠던 적은 없으니 그러려니 하다가도, 주변 친구들의 환경과 비교될 때마다 한 번씩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런 철이 없는 말조차도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던 엄마의 마음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철이 너무 늦게 들었던 거지.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분할된 화면처럼, 작가의 이야기와 나의 엄마 이야기를 같은 화면에 두고 듣고 있었다. 작가의 조부모님, 외조부모님 이야기부터, 가족의 형편보다 이상을 좇아 살면서 자존심이 앞섰던 아버지, 그런 환경에서 자식들 키우느라 엄마의 역할에 온 인생을 담아낸 어머니가 각자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 자라면서, 마치 그 가난을 견디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여긴 작가의 마음에 미처 몰랐던, 엄마 김미자의 인생이 끼어든다. 어쩌면 김미자 씨의 인생은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여성, 엄마의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대신, 친척들과 형제들의 이야기로 엄마의 새로운 시간을 보게 된다. 한 번도 이 가족을, 엄마 곁을 떠난 적이 없던 가난은 경제적 궁핍함만 주는 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가난하면 생활이 힘들고, 경제적인 어려움만 극복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더 싼 집을 찾아다니느라 이사는 잦아지고 그러면서 이웃들도 자주 바뀌었다. 언제 또 형편이 더 나빠져서 이사해야 할지 모르니 이웃과의 교류가 깊어질 수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사회적 고립은 계속되고, 깊어지곤 했으니, 이 또한 가난이 낳은 피해였다. 그때마다 작가가 배운 것은 연대였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이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엄마이야기는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우리 엄마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이면서, 이렇게 선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견뎌내야 할 게 더 많았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들더라. 동전 하나도 새로운 시절에 걸인에게 지폐를 내어주고, 어느 시인의 시구절을 읊는 마음도 알려주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여고생들의 상담사가 되기도 했던 엄마였다. 잦은 이사와 더 쪼그라들기만 하는 형편으로 그저 그런 김 씨와 밥집 아줌마가 되었을 때, 낡은 옷차림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함께 울고 웃을 이웃이 없었을 때, 급변하는 주변 환경과 개발로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마을이 사라지면서 낯선 외로움이 엄마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다시 산동네로 이사하면서 이웃을 만들고 긴장을 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의 요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식겁했다. 엄마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 이번 달 초에 내년 노인 일자리 사업에 지원했고, 지금 그 선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내년에 일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싶어서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다. 삼십만 원 남짓의 급여 때문만이 아니다. 한 달에 열흘 정도, 하루에 세 시간 정도, 몸이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든 일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아침에 나갈 곳이 있다는 게 일상의 낙이었다. 동네에 엄마가 아는 사람은 있지만, 대부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동네에 오래 살았는데,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또 다른 분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라 그 사업에 참여해야 그나마 얼굴 볼 수 있다. 엄마는 일자리에 갈 때마다 내가 시골에서 가져온 감을 가져가서 나눠 먹고, 그래봤자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몸의 신호를 전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거기서 만난 분들에게 매일 안부를 묻는다. 그 시간이, 자기가 쓸모 있음을 느끼며 사람들과 얼굴 보며 얘기하는 그 순간이 나도 모르게 일상을 파고드는 외로움을 달래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 외로움의 시간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더 큰 일이 벌어질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엄마가 인지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을 때, 두려움만큼이나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을 텐데, 그때마다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했을 텐데, 이제는 가까운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싶어서 말이다. 작가는 엄마의 중증 인지장애의 원인을 더듬으면서, 외할머니와 이모의 치매까지 생각해보면서 찾은 답은 다른 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들의 병은 유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겪어온 삶의 여정에서 이어져 온 유산 같다고 말한다. 엄마 김미자, 김미자의 어머니, 김미자 아버지의 삶까지 추적하며 그 이상으로 올라간다. 꿈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울리지 않았던 시절을 견뎌내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내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던 그들의 삶을, 부족해도 나누면 행복해진다는 경험을, 이런 믿음과 행복이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기억할 일이다.


단순하게 작가의 엄마가 기억을 잃어가는 이야기로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의 과거를 되짚으며 엄마를 더 잘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가, 엄마가 되기 전에 김미자로 살아가면서 품었던 모든 것을 듣는 시간이었다. 내가 몰랐던 시절의 엄마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나니, 엄마만 남게 되었는지 이해되는 것조차 슬펐다. 낯설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모두 보고 겪을 김미자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인지장애가 있는 구십 노인인 엄마가 얼떨결에 딸의 허벅지를 쓰다듬고는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의 김미자라서 좋았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 307페이지)



낡은 사진 속 십 대의 엄마는 검정 교복 차림이었다. 처음 봤다. 1960년대 초반, 엄마의 십 대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어느 시절에나 볼 수 있는 여고생의 분위기였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교복 모습에 놀라는 것도 잠시, 엄마의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들고 아침 등굣길에 나서는 엄마를 상상했다. 밥 굶어본 적 없이 여유롭게 살았다고 하니, 아마 엄마 인생에서 가장 마음 편하고 즐거웠던 때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스물을 넘긴 엄마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빴다고 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당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엄마의 청춘을 담아보기도 했다. 사진 속 옷차림이 왜 이렇게 촌스럽냐고 했더니, 엄마는 아니라고 한다. 자기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였다고. ^^ 부릴 수 있는 멋은 다 부리고 다녔다던 그때, 그다지 말을 잘 듣는 딸은 아니었다고 하니 외할머니 속을 좀 태우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집안의 농사를 돕고 외할머니 살림을 도우면서 이십 대 초반을 지내고 있었다고 하니, 아주 철이 없는 딸도 아니었던 듯하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 이때 아빠가 아니라 여러 남자를 더 만나보고 결혼했어야 했는데... ㅠㅠ)


작가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 평범해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삶의 궤적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피식 웃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시절의 엄마들이 이렇게 살아왔겠구나 싶어서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게 다 그런 건지, 자식 키우는 책임감이 이렇게 무거웠던 건지, 그래서 미자가 아닌 엄마만 남게 된 건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도 좋은 분명히 있다. 작가가 엄마와 할머니에게 배운 것들, 타인을 존중하고 곁을 내어주는 법을, 섬기고 배려하고 나누며 사는 삶의 행복을, 이 책으로 나도 같이 배웠다. 그리고 평소에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 준 많은 것(물론 좋은 것만)을 기억하면서, 또 엄마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사라져가는 기억을 오래 붙잡을 수 있도록, 내가 엄마에 대해 기억하는 게 지금보다 더 많아지도록, 더 자주 보면서 함께하는 시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뻔한 말을, 습관처럼 하는 다짐을 또 하면서 올해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엄마의 저 사진 속 포즈는 정말 시대물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엄마만남은김미자 #김중미 #사계절출판사 #에세이 ##책추천

#나는결코어머니가없었다 #어느날엄마에관해쓰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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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눈부셔서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모르는 사이에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여름 다음의 계절이 아닌, 곧 시작될 겨울을 예고하는 날씨에 마음이 더 추워진 듯하다. 어제 모처럼 생긴 여유에 아파트 놀이터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 바쁘고 피곤하다고 노래하면서 살다 보니 못 봤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놀이터 한쪽에 자리한 은행나무 잎이 진한 노랑으로 물들었고, 단풍잎은 금방이라도 타버릴 듯한 붉은색이 되어 있었다. 그러네, 가을이었네. 몰랐다. 조금 더 덥고, 조금 더 서늘하고, 그저 아침에 나갈 때 점퍼를 챙길까 말까 하는 생각만 했는데, 계절이 이렇게 흐르고 있었다.


다 지나간다, 기운 내라, 다 잘 될 거다. 너무 잘 아는 뻔한 말들이 귀에 들어올 때가 있다. 이런 말들이 눈앞의 현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쯤 듣고 지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머뭇거리고 싶을 때 말이다. 요즘 나의 일상이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일까. 평소 같으면 손이 가지 않았을 이 책들에 오늘은 잠깐 마음을 내려놔 볼 수 있었던 건, 내일 다시 시작될 한 주의 마음이 정돈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에서다. 오랜만에 찾은 도서관에서 신청한 책을 받아들고 나오다가 이상하게 눈길이 갔던 자리에, 이용자들이 읽고 반납한 도서를 놓아두는 자리에 쭉 늘어선 책들이 있었다. 한 사람이 빌렸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읽고 반납한 책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걸까. 상처받고 힘든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가, 그것도 아니면 많은 사람이 지금 위로의 한 마디가 필요했던 걸까.



이왕이면 둥글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 무슨 일이 생기든 조금 더 배려하며,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 근심과 걱정이 휘몰아칠 땐, 결국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대담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 책임감의 무게를 애써 버틸 줄 아는 것. 그렇게 성숙하게 살아가는 것.” (남에게 좋은 사람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 227페이지)


그래서 병이 났다. 그저 그러려니 하지 못해서, 둥글게 살아가지 못해서.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참 싫어하는데, 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순간은 너무 자주 찾아왔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했다. 그러니까 별것 아닌 이런 일들을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아야 하는데 성격이 그러지 못해서. 지난달에는 예정에 없던 지출이 있었다. 우리 집 한 달 소득 이상의 금액이었다. 어쩔 수 없는 지출이었고, 그만큼 오래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었지만, 막상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벌어지는 일은 알면서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번은 소비할 수 있는 지출이었으니 그런 날도 있는 거지 하면 될 것을, 필요한 지출이었으니 살아가는 날들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지나가면 될 것을, 머릿속은 갑작스럽게 구멍 난 금액을 채워 넣어야 하는 계획으로 다시 분주해졌다. 그래봤자 뾰족한 다른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ㅎㅎ 별 수 있나. 그저 살던 대로 열심히 살면서, 평소의 소비 습관대로 또 살아가면서, 조금 더 아껴가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그러면 되는 일인데, 왜 속에서는 안달복달 불안함만 남은 것인지. 이런 마음을 다독여줄 어떤 문장이 박혔으면 싶어서 페이지를 또 한 장 넘겨본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좀 나아질 테니 하면서.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너무 많은 것을 곁에 두려고 하면 스스로 견디기 힘들어진다. 가끔은 내려놓기도 하고, 또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무겁게 걸어가지 않았으면 싶다.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가벼울수록 멀리 갈 수 있으니까. 떠나보내고 내려놓아도 괜찮다. 모든 걸 짊어지고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 버리고 놓아주고 잊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신선한 기분. 뭐든 될 것만 같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159페이지)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 (단 한 번의 삶, 61페이지)


언제부턴가 누굴 옆에 두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에게 닿지 않을 때도 많았고,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시절 인연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한때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관계였다가도 여러 가지 이유로 끝난 인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사람 관계에 어느 정도 느슨해졌다고, 언제 끊어질지 모를 마음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일주일에 2~3일 같이 일하고 있다. 겪어 보니 이 사람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많은 순간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점점 그 성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는 거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나란 인간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서 어디까지 지켜봐야 하는 건가 싶어서 고민이 많아진다. 그 사람과 나,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일터에서 보이는 태도 때문에 나는 물론이고 주변이 불편해지는 걸 몇 번 보고 나니, 이 문제에 대해 언젠가는 대화해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더라. 분명 유쾌하게 받아들일 문제는 아닐 테고, 내가 이 말을 꺼내는 순간에 이 사람을 다시 안 보고 살 수도 있겠다는 다짐이 아직 서지 못했다. 이 사람과의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나쁜 마지막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생각해보니 이런 바람도 너무 과한 욕심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 어떤 마음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은 내려놓고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너무 많은 것을 곁에 두려고 애쓰지 말고, 내려놓기도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가볍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순간을 찾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기대감이 너무 컸나 싶기도 하고. 역시, 살면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였던가 보다. 아직 까지는 그렇더라.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고 애쓸수록 마음의 짐은 오히려 더 무거워진다. 피하는 것이 무조건 비겁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야 가벼워지는 짐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몰아붙이지 않고 때로는 느슨하게 자신을 다루는 것. 그것도 충분히 용기 있는 선택이다.” (어른의 품위, 87페이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전에 조금 일찍 나를 쉬게 하는 일. 쉬는 것도 감각이다. 그 감각을 무시한 채 앞으로만 나아가면 나만 흐려진다. 누구에게 강요받지 않고 내 선택으로 결정해서 멈췄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 내가 생각하는 휴식의 방법이다.” (어른의 품위, 92페이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아주 사소한 것도 잘 정리하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라고 여겼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최고의 것만 향해 가고, 좋은 것만 갖고 싶은 노력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정말 사소한 순간 하나도 잘 끝내고 싶었다. 다 잘하고 싶은 마음, 그게 얼마나 사람 속을 태우는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일주일에 2~3일 일하면 나머지 시간은 정말 여유로울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엄마를 살피러 다녀오면 하루가 지나가고, 가끔 한 달에 서너 번쯤 엄마와 병원 투어를 하면 또 하루가 사라진다. 또 어떤 날은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다.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엄마들은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갈까 하고 말이다. 이번 달에는 또 예정에 없던 병원 일정이 늘어나 있었고, 시어머니의 병원 일정까지 챙기게 되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 내일 하루는 좀 늦잠을 자고 밀린 은행 일을 보고, 시간이 남으면 혼자 커피라도 마셔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잠이 든 게 어젯밤에 세운 계획이었는데,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시간을 빠듯하게 사는 건 아닌데, 왜 항상 시간이 없다는 말이 입에 붙어있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고단했다. 몸이 먼저 알아채는 고단함은 잠잠했던 대상포진으로 표시를 냈고, 마음마저 물렁물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도 못 하고 종일 호되게 앓았다.


내가 해야 한다고 여기던 일들이 사실은 내가 아니어도 되었던 것을,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그 순간은 흘러갔을 것을, 왜 내가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마음을 볶아댔는지. 안 된다고, 싫다고, 핑계든 거절의 말이든 하면서 피해도 괜찮았던 것을 왜 못하고 그랬는지. 그래도 조금은 시간 여유가 되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마음의 짐이 무거워지는 것도 모른 채로,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순간이 올 것처럼 위태로웠던 것도 무시한 채로 말이다.



우리는 다 알면서 못 하곤 한다. 하다 보면 하게 되고, 일어서다 보면 걷게 되고, 잘하기 전까지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 안다. 사는 동안, 살아 있으면, 살아가다 보면 또 살아지게 된다는 것을. 아는 대로 배운 대로 해 오던 대로 이겨 내면 된다는 것을. 결국 잘 이겨 내리란 것을 안다.”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12페이지)



주말이라 도서관은 5시에 폐관한다. 5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자료실에 놓은 의자에 앉은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시간에 빠져있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집중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저마다의 목적에 맞게 선택한 책의 문장에 빠져있는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그들 틈에서 내가 오늘 이 책을 만났던 것은 의외의 인연이기도 하다. 평소에 자주 만나던 책들이 아니었기에, 그 뻔한 말들이 싫어서 화가 날 때도 있었기에. 잠깐이었지만, 그 문장들에 눈길이 머물렀던 순간은 좋았다. 거추장스러운 마음 한 조각 떼어내서 한쪽에 던져둘 수도 있었고, 변덕이 죽 끓듯 이랬다저랬다 하는 마음을 한 번 더 살필 수도 있었다. 이 순간이 지나고 금방 또다시 잊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고달파질 때마다 한 번씩 생각날 것 같기는 하다. 살짝 등을 한번 두드려주는 것처럼, 잊었던 다짐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나를 먼저 돌보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나이를 먹고, 참 새삼스럽다. 그걸 몰라서 고민하고 있다니. 아니, 고민보다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못 했던 것, 상대방을 먼저 살피느라 내 마음 그대로 표현하는 데 주저했던 것을 드러내는 일을 이제부터라도 잘해야겠다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주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도, 내가 책임지고 감당해야 한다고 여겼던 어른들의 존재도 잠시 잊고, 잠깐이라도 나를 먼저 챙기고 돌보는 일을 해야 할 때라고 말이다.


주말 잘 쉬었으니, 다시 시작되는 내일을 잘 준비해야겠다.











#어른의품위 #내가죽으면장례식에누가와줄까 #단한번의삶

#남에게좋은사람보다나에게좋은사람 #위로가필요해 #또한번의다짐 #나를먼저살피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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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ZM 2025-11-10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저도 다른 누구보다 내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ㅎㅎ인간관계에 지쳐있는데 글 보고 댓글 남겨봅니다^^

구단씨 2025-11-11 19:50   좋아요 1 | URL

이쯤 되니, 기대를 안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봐요.
그 사람에 대한 기대보다, 인간에 대한 기대였나 싶기도 하고요.

2025-11-20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단씨 2025-11-27 17:59   좋아요 0 | URL
제가 5년쯤 전에 대상포진 처음 걸렸는데, 진짜 죽는구나 싶었어요.
오래 치료 받고 주사도 맞고 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대상포진이 가끔 오긴 오는데, 거의 느낌 없이 왔다 가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몸이 힘들었나 봐요. ㅎㅎㅎ

추워지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몸도 마음도 포근한 연말연시 지내세요. ^^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희망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79페이지)


노인과 돌봄, 나이 들어 살아가는 일에 생각하곤 한다. 요즘 나의 고민과 힘듦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이기에 생각이 저절로 그쪽으로 기운다. 충분히 겪어봤기에 이제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병처럼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릴수록 고달픈 마음은 매번 그 수위를 경신한다. 현실에서 아무 경험해도 이 감정을 공유할 사람은 많지 않다.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는 그 이치를 또 한 번 확인하는 셈이다. 그래서 읽어봤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현실을 바꿔줄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하느라 답답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음을 감당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찾고 싶을 때 펼치게 된다.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이 정도로 마음의 위로가 되고 있다는 안도감 같은 거, 그걸 찾고 싶었던 듯하다.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처음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어떤 마음을 찾고 싶어서. 단순히 재미로, 시간 보내기로 책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 어떤 상황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 둘 곳을 찾다가 발견한 게 책이었다고. 비슷한 맥락으로 읽게 된 게 이 책이다. 작가는 책이 마음속 깊이 들어와 삶을 바꾼 순간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어떤 순간에? 그건 각자의 상황과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나는 좀 알 것 같다. 불안한 우리의 마음에 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유명한 강사의 몇 마디 조언보다, 순간적으로 와 닿았던 한 문장의 힘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책의 문장을 기억하려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여 몇 마디 덧붙이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자기만의 마음을 담은 문장이 계속될 수 있기에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들린다. 우리가 찾고 싶은 것이(그게 무엇이든, 얼마나 큰 것이든),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것이기에 말이다.


작가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나의 예상보다 길게 언급해서 좀 당황하긴 했다. 처음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리고 어떤 순간을 경험하면서 그 책이 주는 삶의 방식이 매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한 개인이 사유하는 그 책의 서사에 대해 듣는 일도 괜찮았다. 유명한 요리사의 자신감 정도로 여겼던 바베트의 만찬이 그렇게 우아한 결말이었던가 싶었고, 요리사의 손으로 예술이 불태워지면서 비로소 자유의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이 의미 있게 들려왔다.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작가들의 공통점을 떠올리며 그 작가들을 연결하는 방식이나 생각도 좋았다. ‘그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 내적인 추진력, 우리 삶이 중심축 삼아 빙빙 도는 핵심, 앞으로 나아가게 혹은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지배적인 그 어떤 것, 이를테면 행동과 선택의 패턴 같은 것을 예리하게 파악했다. (107페이지)’ 모르던 세계를 알게 해준 레이첼 카슨의 바다의 가장자리, 시간과 에너지가 만들어준 내 자리의 힘과 가능성을 발견해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존 버거가 알려준 연민과 사랑 가득한 저항과 연대에 관하여.


책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향하게 한다는 걸 새삼 듣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한 문장을 곱씹으면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누구였는지가 아니라 누구이고 싶은지 알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을 전파한다. 그렇게 우리가 책을 읽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 붙이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닮아간다고 말한다. 너무, 괜찮지 않나? 읽은 순간으로 멈춘다면, 그저 그런 취미 생활로 끝날 수도 있는데, 그 순간이 이어지면서 우리 삶이 계속된다는 말이, 계속 우리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것 같아서. 사실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이 책 읽으면서 어느 순간에서는 괜히 혼자 울컥한 적도 많았다. 그 이유를, 그 마음을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적을 수가 없다. 표현력 부족에,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어휘력 부족까지. 부끄럽지만, 그랬다. 내가 왜 이런 마음인 줄도 모르고 울컥해서 한밤중에 잠 못 드는 시간이 계속되는 게 힘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책이네.


작가는 말한다. 책을 읽는 게, 낯설거나 새롭거나 유혹적인 어떤 것인가를 받아들이면서 느리게 서서히 어쩌면 영원히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빠르게 갑자기가 아니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손바닥 뒤집히듯 바로 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달라지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거울로 마주한 내 표정이 달라져 있는 것을 기뻐할 수도 있다. 우울과 상실에 빠져 둘러보지 못한 주변이 보일 수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보나, 책을 읽어서 손해 볼 것도 없다. ‘문장들을 붉은 실 삼아 가슴의 상처를 꿰매려고 할 때찾아오는 삶의 변화를 이야기하게 되는 게, 그게 책이라는 게 괜히, 기쁘다. 한동안 읽지 못한 책이 어디로 도망갈까 봐 조급하던 마음마저 치유되는 듯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펼쳐도, 삶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남을 거라는 믿음에 안심이 된다.


특별히 소중하게 간직하는 책이 있다는 것은 마음을 다른 것, 자신이 가치를 부여한 어떤 것들로 채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 읽기는 낯설거나 새롭거나 유혹적인 어떤 것을 받아들이면서 느리게 서서히, 어쩌면 영원히 변하는 과정이다. 책 읽기는 이렇게 삶에 개입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대면하고 돌아보고 자신의 진실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뜻깊은 일로 여기고 삶과 연결시킬 때 독서는 독자의 고유하고 창조적인 경험이 된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75페이지)










#책을덮고삶을열다 #정혜윤 #녹스 #에세이 #문학

#바베트의만찬 #모비딕 #그러나아름다운 #호라이즌 #바다의가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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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뉘엿뉘엿 어두워지는 때 있죠. 노을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때. 여기선 그 시간을 북새라고 그래요. 나 시집왔을 때 어머님이 알려준 말인데 그때는 옛날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니 요즘엔 정겨워서 좋아요. 북새에 강변 하늘을 바라보면요, 누가 저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칠해놨을까 싶어요.”(뜻밖의 우정, 69페이지)


우리가 걷는 모든 시간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급성으로 찾아온 질병이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 노년의 시간을 거치며 죽음과 가까워진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을 만나는 게 아니면 시간의 흐름에 맡겨 놓은 것처럼 죽음의 문을 향해 걷고 있는 거다. 오랜 기간 아버지의 투병이 아니었다면, 매달 출석 체크하듯 병원을 찾는 엄마의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노년을 겪는 사람이나 죽음과 가까운 상황에 관해 잘 몰랐을 거다. 지금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경험했거나 지금도 경험하는 그 순간을 그래도 조금을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서늘하다.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었기에 말이다. 몸이 아프고 마음은 쓸쓸해지고, 자식들은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고,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과 이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어떻게 유쾌하기만 할 텐가. 딱히 할 일이 없어서 TV만이 유일한 친구가 되는 일, 그게 노년의 시간이라면 나도 그 시간을 만나고 싶지는 않을 듯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어르신이 그렇게 지내고 있다. 나의 노년도 그런 모습일까?


뜻밖의 우정』을 쓴 김달님 작가는 내가 알듯 말듯 한 노년의 모습을 누구보다 많이 봐온 사람으로, 그들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도 있겠다. 태어나서 줄곧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면서 가장 이해하고 싶은 대상이었다는 것은, 작가의 전작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느끼기는 했다. 그런 느낌을 이런 방식으로 시도할 것을 알지 못했을 뿐.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노년을 지내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 시기를 사는 모습이 다들 비슷할 거로 여겼는데,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일흔여섯의 정열 어르신은 래퍼 연습생이 된 것으로 마치 한을 풀어낸 것처럼 좋아했다. 순자 어르신은 중년에 시작해서 예순여섯 살에 검도 6단의 고수가 되었다. 영화와 책으로 일상을 꽉 채우는 승기 어르신은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홍자와 옥순 어르신은 같이 노인 돌봄 일하면서 마치 여고생 단짝이 된 것 같았다. 트로트 아이돌의 활발한 활동을 지켜보면서 삶의 활력을 찾은 선자 어르신의 바람이 계속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작가가 만난 많은 노년의 삶이 내가 아는 모습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었다. 아니, ‘모습이 아니라 그 마음을 듣는 게 낯설었다고 해야겠다. 아마 누구나 갖는 일상을 바라보는 마음이었을 텐데, 노인이라고 그 마음이 다를 거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나 보다. 생각보다 유쾌하게, 축 처지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즐거웠다. 우리 대부분, 각자의 일상을 그렇게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지내기도 하지만,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오래된 바람 하나 이뤄가면서 만족하는 삶. 시대가 그래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우선이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잠시 잊힌 꿈이 너무 오래 잊히기도 했다. MBTI ‘슈퍼 I’인 내가 그들의 일상을 보는 마음이 좀 떨리기도 했다. 노래를 쫓아 아이돌을 따라다닐 수 있지도 않았고, 운동하겠다고 체육관을 찾아가는 것도 선뜻 떠올릴 수 없는 일이다. 랩은커녕 문화센터 노래 교실에 가볼 생각도 못 하는 심장을 가졌고, 좋아하는 책도 무슨 하루 루틴처럼 읽어내지 못하는 게으름은 덤으로 갖고 있으니, 나는 그들이 보여준 일상의 방식과 다른 방향의 루틴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닮고 싶은 마음이 있다. 노년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안 되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야겠다는 거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힘들겠다는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는 일보다,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비록 그게 무모한 시도라고 할지라도 해봤으니 됐다는 시원한 기분을 느껴보는 것.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가는 내과 병원이 있다. 나도 항상 같이 가서 선생님을 만나곤 하는데, 환자 대부분이 노인들이라서 선생님이 괜히 우스갯소리로 대화를 시작할 때도 많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다른 아픈 데는 없는지 물으면서 다른 이상이 없으면 평소와 같은 약을 처방해주신다. 그러면서 인사를 하신다. “어머님, 다음 달에 꼭 오세요. 또 만나요.” 그러자 엄마가 흥칫뿡 하면서 대답하신다. 병원에 오는 게 뭐가 좋다고, 또 만나자고 하냐고. 그러니까 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매달 꾸준히 오는 어르신들이 있는데, 다음 달 안 오고 또 그다음 달 안 오고 그래서 알아보면, 돌아가셨다고. 어떤 면에서 어르신들이 꾸준히 다니는 병원에 매달 정해진 약속처럼 방문하는 일은, 그 어르신의 생사를 확인하는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가 독거노인 안부 묻기봉사활동을 하면서 부딪힌 그 순간, 어떤 어르신 이름에 두 줄이 그어진 채로 사망하셨다는 표시에 당혹스러운, 더는 이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아니라 일주일 사이에 세상과 이별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인 거다. 그래서 이 마음을 더 알고 싶어진다. 작가가 권하는 독거노인 안부 묻기봉사활동 참여에서 보고 알고 느끼게 되는 게 더 많아질 거라는 건 확실하다. 내가 향해 가는 그 시간, 지금 그 시간을 살아가는 이에게 관심 두며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말이다.


작가님은 아직 모를 거예요.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하루가 어떤 건지. 그분들에겐 어쩌면 작가님과 나누는 통화가 하루의 유일한 대화일지도 몰라요. 오늘 아침엔 무얼 먹었고, 지금은 무얼 하는지, 오늘 하루 기분은 어떤지,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누구와 나눌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든 즐겁게 나눠주세요.” (뜻밖의 우정, 198페이지)


어쩔 수 없는 순간이 늘어나는 게 노년의 시간이다. 중년을 살아가는 나도 많이 느끼는데, 나보다 더 나이 든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은 더 많겠지. 엄마가 소화가 불편해서 내과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결과는 나이가 들어서 위장도 늙었다는 말이었다. 눈이 침침해서 찾은 안과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는 말에 절망이 앞서곤 했다. 엄마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연장자들과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행동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노년을 향해 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나의 노년을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집안에서도 자기 주변을 정리하지 않고 모든 걸 늘어놓은 채로 살아가도 이상하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 나도 그런 모습으로 늙어가지 않을까 싶은 어색함도 있지만, 지금 가장 가까이서 보는 엄마의 현재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듯하다.


이미 작가의 전작을 읽어서 그런지, 작가가 노년을 주제로 이분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낯설지는 않다. 오히려 전작보다 더 피부로 와닿는 노년의 시간을 이야기해주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노년의 시간에 더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 걸까. 어쨌든 확실한 건, 우리가 그 시간을 만나지 않고 생의 끝에 닿을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러니 누군가가 앞서 걸었던 그 시간, 곧 우리가 걸어갈 그 시간을 모른 채로 살아가지는 말자는 것


사실 이 책 때문만은 아니라, 요즘 특히 노년과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 이유가 있긴 하다. 이제 팔순을 넘긴 엄마가 더 노쇠해지는 게 더 눈에 보이기도 하고, 그만큼 병원에서는 어떤 치료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내 몸이 불편한데 그 불편함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한 건 나뿐만 아니라 환자 본인이 가장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늙어간다는 게 이런 걸 그냥 받아들이라는 말 같아서 괜히 섭섭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거기에,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가까운 이를 보고 있자니,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는 걸 너무 잊고 살았나 싶기도 하다. 애써 내 몸의 늙어감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게, 이제는 더 부정할 수 없기도 했다. 몇 년 전에 노안을 진단받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게 예전처럼 마냥 편하지 않다. 책 읽으면서 늙어가는 할머니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그게 불가능한 일이 되면 어쩌나 지레 걱정부터 앞선다. 좋은 생각만 할 수 없던 요즘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또 요즘에 같이 읽고 있는 다른 책들을 떠올려 보니, 다른 이들이 전하는 노년의 시간, 상황, 마음을 들으면서 사는 일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들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정할 수 없게, 언젠가 마주할 내 모습을 미리 보는 건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안 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좋아하는 것을 해보는 시간 준비하며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쌓인 하루가 나의 노년을 채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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