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라디오 -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아무튼 시리즈 71
이애월 지음 / 제철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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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라디오를 접했다. 언니가 중학생이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무렵, 친구들이 구구단 외우면서 산수(그때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였다) 숙제하고 있을 때, <두 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알지도 못하는 팝송을 흥얼거리고, 어느 광고에 나오던 음악에 귀를 열었다. 마치 내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듯이, 친구들과 방과 후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게 심심한 일이라는 듯이, 라디오 이야기를 하면 TV 만화 프로그램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마치 아이들 같다는 듯이. 그때의 나는 아이였으니, 아이들의 세상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는데도, 그 아이들 틈에서 나만 혼자 훌쩍 커버린 건방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긴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그 후로도 여전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랐고, 집안의 고요함이 싫을 때도 TV보다는 라디오를 켜 놓는 습관은 여전하다. 지금은 그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훨씬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TV보다 라디오가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 한 줄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 책 속의 한 문장 같을 때가 있다. 라디오와 책, 느낌이 닮았다.

 

겨울밤라디오처럼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게으름에 미뤄둔 책이지만, 이 추위에 제법 잘 어울려서 며칠 밤 계속 읽은 책이다. 며칠 동안 읽어야 할 정도로 두꺼운 책이 아니었건만, 지독한 감기에 두꺼운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식거리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건, 저자가 살아온 세월 속 라디오, 그 시절 속의 이야기를 모르지 않아서다. 저자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또래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일찌감치 라디오를 접했고, 라디오를 좋아해서 겪은 에피소드에 안타까움과 웃음이 저절로 났다. 그때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낯설지 않아서 흠칫했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까지 묻어났다. ‘그땐 그랬지같은 느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싶은 아쉬움까지, 괜히 오늘의 추위에 우울한 기분까지 밀려와서 옆에서 누가 꾹 찌르기라도 했다면 눈물까지 날 뻔했다.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일해온 사람이 전하는 라디오 이야기의 힘이 이런 건가.

 

라디오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을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라디오 공개방송을 들으면서 울고 웃고, ‘워크맨’(요즘 세대는 이걸 알려나?)이 소중했던 시절을 건너와 방송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라디오 때문에 행복했는데, 라디오가 좋아서 방송작가 되어보니 라디오 때문에 절망했던 순간이 따라오더라.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건 부러웠는데, 그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고 보니 고통스러운 순간이 또 생기더라는. 이러면 안 되는데, 좋아하는 건 계속 좋아하는 채로 남아주어야 하는데, 꿈이 이루어졌는데 왜 절망이 따라오는 건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어쩔 수 없는 이런 순간을 또 버텨내야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괜히 또 서글퍼진다. 그래도 좋았다. 주파수를 열어놓고 있을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누군가의 힘들다는 한마디에 위로를 담은 답 문자를 보내고, 그 문자 한 통에 또 힘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기뻤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데도 이런 안부를 묻는 게 가능하다는 건, 라디오가 가진 힘일 거다. 나 역시 그 힘을 나눠 받으며 살았으니, 그저 고마울 수밖에.

 

제목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이 있다. 어느 광고에서 들려오던, 익숙한 음악에 계속 반복되는 구절이, 일부러 떠올리지 않았는데도 불쑥 튀어나와 자꾸 맴도는 음악. 평소에 중독성 있는 음악이나, ‘훅송(Hook Song)’으로 불리는, 때로는 수능 금지곡이라는 위험한 이름이 붙여진 정도로만 생각했던 음악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귀벌레. ‘마치 귀에 음악 소리를 내는 벌레라도 들어온 것처럼, 그 벌레가 귀에서 나가지 않는 것처럼 특정한 노래나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현상을 두고 귀벌레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이름은 좀 징그럽지만,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게 이해되기도 한다. 일부러 듣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귀에 머물러서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게, 심지어 입으로 종일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음악에 붙여진 이름. 아이러니하게도 이 귀벌레가 부르지 않아도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웃기긴 하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사연 사이에 들어오는 음악과 함께였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따라올 때도 있는가 보다. 덕분에 나도 새로운 단어를 알았다. 귀벌레 증후군이라니. 계속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데도 익숙하지 않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을 것 같다. 요즘 나의 귀벌레 노래는 김필의 다시 사랑한다면이다.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소음이 심했던 병원의 대기실에서도, 책 속 문장에 시선이 머물러 있어도 귀에서는 이 노래가 자꾸 들려온다. 심지어는 며칠 푹 빠져 있었던 OTT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보는데도 계속 들렸다. 이 정도면 좀 심한 거 아냐? 때가 되면 귓가에서 사라질 목소리겠지만, 들리는 동안에는 뭐, 그냥, 즐긴다고 생각하고 있어 보지 뭐. 나중에 언젠가 이 노래가, 이 목소리가 그리워질지도 모르니까.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접할 수 있는 라디오였다. 최근 경험했던 단순노동의 현장에서도 일정 주파수에 맞춰진 라디오가 계속 켜져 있었고, 어느 사연에 박장대소하다가 누군가의 슬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에 살아가는 게 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가 좋았고, 병원에서 지루한 대기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이어폰 속의 DJ 목소리가 반가웠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을 전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라고 했는데, 그 외로움을 즐기면서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마다 라디오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 거기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외로움은 이 주파수에 맞춰 서로 통하고 있다는,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 믿음에 힘을 실어보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순간에, 대놓고 말하지 못해서 속이 터져나갈 것만 같을 때, 누가 내 얘기 좀 들어줬으면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나무숲이 라디오였다. 지금은 익명 게시판을 비롯해 여기저기 마음을 토해낼 공간이 많이 있지만, 그 시절의 우리에게 라디오는 마음상담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라디오 로맨스의 대표주자 같은 소설 속 로맨스는 현실에 없었다. 방송국이 배경이 된 드라마 속 로맨스도 없었다. 몰라서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전쟁통에도 사랑이 있다는 말처럼, 전쟁 같은 일터에서도 사랑을 있을 테니까, 좋아서 하는 일에도 절망은 따라오니 뭔가 설레는 일 하나쯤 같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 같은 게 아닐까. 살면서 때로 환상 같은 일도 생겨주면 좋잖아. 어쨌든, 나에게 라디오는 그 단어 자체로 포근해지고 정적인 분위기를 전하지만, 현실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그저 치열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낭만으로만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는 거다. 어렸을 적 뭣 모르고 두근거리기만 했던 라디오는, 어른의 세상에서 그 두근거림이 계속 이어질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게 아쉽고, , 그렇다. 그래도 놓을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 여전히 우리 곁에 라디오를 남겨 둔다. 저자의 말처럼 영원히 외롭지 않을 거라는 말보다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때론 어떤 존재와 온기로 생의 고독을 잊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더 좋아서 함께 하고 싶어진다. 지금처럼 울고 웃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그 틈틈이 외로울 것이고, 그때마다 슬쩍 그 외로움을 토해내고 싶어질 거다. 누군가 부담 없이 그 마음 들어주길 바란다면, 그건 아마도 라디오가 되겠지...

 

 

 

#아무튼라디오 #이애월 #제철소 ##책추천 #문학 #에세이 #라디오 #아무튼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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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1-2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했었는데, 마음을 흔드는 걸보니 글의 내력이 9단쯤 되시는군요...잘 읽었습니다!

구단씨 2026-02-03 20:48   좋아요 0 | URL
사실 지금은 라디오 듣는 시간이 훨씬 줄어서인지,
처음 라디오를 즐기며 푹 빠져있던 느낌을 그대로 느끼지는 못하는 듯해서 아쉬워요.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겨울밤에는 라디오죠. ^^
 
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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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또 하나의 ‘하영 시리즈‘로 이어지지 않을까 궁금해서 읽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추리 소설이라고 굳이 복잡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단순해서 심심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오히려 설화 ‘여우누이‘가 더 흥미진진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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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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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를 누누(유모)라고, 여자는 남자를 셰리(소중한 아이)라고 부른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너무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르는 애칭까지 알고 나니 마음에 표현할 수 없는 지진이 일어났다. 헉 소리와 함께, 도대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뭘까 싶었다. 진짜야? 설마. 이쯤 되니 나이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처음 관계가 문제가 되는 거였나 괜히 걱정되기도 했다. 나이 차이? , 그럴 수도 있지. 레아와 셰리의 모친이 서로 친구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충격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내 아들이 내 친구와 연인이라고 생각해 봐. 선뜻 사랑으로만 이해 가능한지. 하아. 어쨌든, 스물다섯 살 셰리와 마흔아홉의 레아는 서로 연인 사이라는 게 사실이니까.


그녀는 이제껏 전혀 아쉽지 않았던 것들을 난생처음으로 헛되이 기다렸다. 그것은 젊은 연인의 신뢰와, 무방비 상태의 느긋함과, 고백과, 진심과, 조심성 없는 감정의 토로였다. 젊은 연인이 거의 부모에 대한 청소년의 감사와 흡사한 감정으로 성숙하고 든든한 여자 친구의 따뜻한 품 안에서 밤새도록 눈물과 고백과 원망을 주저 없이 쏟아내는 시간들 말이다. (56페이지)


6년 전 어느 날 밤, 레아와 단둘이 있게 된 셰리가 갑자기 레아에게 키스한다. 처음에는 어린 애 장난처럼 여겼을지 모르겠는데, 레아는 생각할수록 설렌다.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에 휩쓸린 레아는 다시 셰리에게 키스하고, 셰리는 레아에게 무너진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레아를 불러왔던 누누라는 호칭이, 이제는 그에게 쾌락과 욕망을 함께 나누는 대상을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사랑하는 예쁜 연인을 보는 기분이 들지 않는 건 나뿐일까. 이 관계를 부정하거나 못 볼 꼴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둘을 보는 내내 크게 남은 감정은 불안이었다. 숨길 수 없는 감정을 나누는 두 사람이지만, 주변에 비밀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애써 아는 척하지 않은 건 아닐까. 혹시 이 둘의 관계를 모르더라도, 언제 들킬지 몰라 좌불안석이었다. ‘네가 감히 내 아들과 이런 짓을?’ 갑자기 셰리의 모친이 나타나 레아의 머리채를 휘어잡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셰리의 모친 역시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마치 모두가 비밀 하나씩 숨긴 채로 자기만의 욕심으로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급기야 셰리의 모친과 레아는 셰리를 젊은 여성과 결혼시키고 만다.


그러니까 이런 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셰리와 레아가 한때 그저 소중한 아이와 유모였던 관계에서, 이제는 다 키운 아이 결혼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보이기를 원하기라도 했을까. 셰리는 결혼했고, 레아는 쿨~하게 셰리의 결혼을 인정했다.


진짜 쿨~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6년이라는 시간, 나이 차이를 무색하게 서로에게 더할 수 없는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한쪽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서 이별하는 게 쉬운 일이던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고 해도 말이다. 사랑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서 서로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연기해왔지만, 서로를 탐하는 욕망만 앞세워 보려고 했던 것 같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휘몰아치던 불안한 마음을 이제야 비로소 보게 된다. ,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하는구나, 우리 정말 사랑했구나. 언제 이별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만나왔는데, 문제가 있었구나.


언제라도 쉽게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마냥 가볍게 여겼던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네가 결혼하는 게,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 셰리가 젊은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질투하지 않았는데,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든 레아였다. 마치 할 수 있는 건 다하는 것으로 보였다. 떠나보내고, 떠나고. 이제 우리는 그저 누누였고, ‘셰리였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가슴 깊이 묻어둔 말들을 삼킬 수 있는, 이별 따위 별거 아니라는 듯 표정 관리도 능숙한 어른이었다고. 다른 사람을 만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자기 육체가 증명하는 나이를 인지하면서 셰리를 잊었다고 착각한다. 아니, 레아는 그렇게 셰리를 잊고 잘살고 있다고 믿었을 거다. 내가 아무리 읽어도 레아는 처음부터 착각한 거였다. 레아만 그랬을까. 셰리 역시 결혼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했지만, 집을 나와 호텔에서 생활한다. 돈을 주고 산 사람에게 레아 이야기를 한다. ? 이게 뭐지?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셰리가 친구가 머무는 호텔에 같이 투숙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셰리와 같이 있던 그 사람은 그저 돈을 받고 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던 얘기를, 셰리는 마치 벽을 보고 얘기하듯 그 사람에게 레아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게 사랑이 아니야?


글쎄다. 이게 자존심인지, 마치 이 사랑의 끝을 알아서 미리 마음 단속을 한 건지 모르겠는데, 셰리가 결혼하고 몇 달을 떠나있던 레아의 마음도, 누군가를 붙잡고 끊임없이 레아 이야기를 했던 셰리의 마음도 알 것 같다는 게 혼란스러웠다. 결국, 아닌 척하던 마음은 더 숨길 수 없게 되고, 무너져내린다. 사랑한다고, 그 사랑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고,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고. 마치 자석에 끌리듯 매일 당신 집 문 앞을 서성이며, 떠난 당신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당신 옆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있었다고. 셰리의 울부짖음에 답답했던 나의 마음도 폭죽처럼 터지고 말았다. 진즉에 말하지, 오래된 연인을 두고 결혼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짓 따위 하지 말고, 이 결혼과 당신과의 관계 사이에서 고통스럽다고 말을 하지. 하긴, 말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할까? 사랑이 그 외의 모든 것을 다 감싸 안아 줄 수 있느냔 말이다. 셰리가 레아의 민낯을 보면서 낯설어하고, 잠깐 사이에 다시 화장하고 돌아온 연인의 얼굴을 보고 안도하는 시선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레아가 줄곧 차고 있던 진주 목걸이. 그냥 레아의 옷차림에 어울리는 액세서리 정도로 여겼는데, 그 목걸이가 나이 든 여자의 목주름을 가릴 용도로 활용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젊은 연인 앞에서 조금이라도 나이 든 흔적을 보여주기 싫은(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기에) 마음은 괴로웠다. 처음 이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서 줄곧 머물러 있던 불안감은, 애써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조건들 때문이었을 거다. 읽는 내내 그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전혀 편하지 않았던 마음은 소설의 시작에서 이미 그 끝이 보여서다. 내가 하는 사랑이 누구에게 환영받을 필요는 없지만, 누구도 환영하지 않을 그 시선에 저절로 움츠러드는 것도 모자라 춥기까지 하니 말이다. 아마도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괜찮은 척, 행복한 척, 현재의 삶에 만족한 척하면서 살아가겠지.


후속작 <셰리의 몰락>이 있다고 하니 거기까지 읽어봐야 하나 싶다. 궁금하긴 하네.



#셰리 #콜레트 #시도니가브리엘콜레트 #소설 #녹색광선

##책추천 #프랑스문학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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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 - 중년의 불안을 쓸고 닦는 법
송은주 지음 / 시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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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음‘의 두려움이 요즘처럼 크게 다가 온 적이 없다. 살아가면서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이유. 뜨거웠던 여름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뭘 하든,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저자의 이야기로 다시 새긴다. 멋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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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프리다 맥파든 지음, 정미정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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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저 사람 갈팡질팡 의심하고, 결국 나의 추리는 틀렸다. 진짜 범인을 찾는 일이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하지만, 이 소설이 가독성은 좋았지만, 그냥, 재미가 없다. 등장인물들도 매력이 없다. 이 작가의 작품을 더는 안 읽어도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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