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연습 위픽
김지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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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순간이 생방송처럼 흘러간다. 연습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게 어울리지 않게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실수하면 실수로 기억되는 그 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이 처음부터 이상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했다. 새해, 연습이라니. 궁금하기도 했지만, 맥락 없이 연습이란 말에 꽂혔다. 실수해도 실수로 봐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한참 지나버려서, 연습할 시간 따위 없이 흘러가는 순간들이 야속해서 말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려고 돌아서 왔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기로 결정하던 순간의 기분이 떠올랐다. 이만큼이나 살았는데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은 또 오래 보고 싶어서 그게 새롭다고 생각되어서 걸음을 돌린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싶어서 그게 새로운 것이어서 자극이 되어서 삶에 활력이 되어줄까 봐 그랬다. 넘어진 소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얼른 걸음을 돌렸다. 너무 오래 살았다는 기분이 든다. (68페이지, 할머니 양지의 일기 중에서)


어느 날 주인공 홍미에게 날이든 소식, 있는 줄도 몰랐던 할머니 양지의 죽음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홍미의 부모는 이혼했다. 일찌감치 혼자인 게 익숙하게 살아왔던 홍미에게, 부모도 아니고 얼굴 본 적도 없는 할머니의 죽음이라니. 할머니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죽는 순간마저 혼자였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기숙사에 살았고, 가족도 친구도 없이 살아온 홍미였다. 어쩌면 할머니의 죽음은 마치 거울을 보듯, 오랫동안 혼자였던 홍미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게 아닌데. 굳이 모른 척하려고 애쓰지도 않았겠지만, 이렇게 자신의 상황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그러는 건지 무섭기까지 하다.


할머니가 남긴 건 18년간 써온 일기장뿐이었다. 굳이 이걸 읽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잠시, 홍미는 할머니의 일기를 하나씩 읽으면서 그대로 파쇄한다. 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할머니가 18년을 채워온 일기장에는 무슨 말이 가득했을까. 혹시 어디에 숨겨둔 유산이라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숨겨진 건 아닐까? 홍미의 현재 상황에서는 그게 더 반가운 소식일 것 같은데. 회사는 그만두고 싶지만 더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세 들어 사는 집은 어느 채권자가 압류했다고 하고. 홍미의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지금 딱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위태로운 순간이니까. 그런데, 할머니의 일기장 안에는 유산이 아니라 단조로운 일상, 공백에 묻어둔 외로움이 느껴졌다.


어떤 기시감일까, 아니면 두려움일까. 이 책을 읽는데 헉, 하고 숨이 막히는 순간이 있었다. 미래의 어떤 날에 내가 마주할 장면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할머니의 일기장 속에는 한 사람만이 등장했다. 할머니 양지’. 그리고 가끔 할머니를 찾아오는 공 씨. 단조롭다 못해 무료하게 느껴질 정도의 일상에 공 씨의 등장은 이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누군가 보낸 선물 같았다. 가끔 안부를 물어주는 공 씨는 할머니에게 어떤 존재일까. 공 씨는 어떤 의무로 할머니를 찾아주는 사람이었지만, 할머니에게 공 씨의 목적이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주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그 자체로 공 씨의 존재는 할머니에게 위로가 되었을 테니까. 그러면서 할머니가 이루고 싶었던 인생, 현실의 할머니 처지가 아니라 할머니가 바랐던 다른 삶을 거짓으로 적어놓은 일기장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루고 싶은 인생의 모습. 저마다 바라는 삶의 그림이 있을 거다. 어떤 성공을 이루고 싶기도 하고,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원하기도 하겠지. 할머니가 일기장에 채워 넣은, 단조롭지만 평온한 세월의 기록은, 할머니가 이루지 못한, 언젠가 그리고 싶은 삶이었다. 마치 그런 삶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일기장에 연습처럼 적어놓는다는 듯이. 그렇게 적어놓고, 지금 생을 연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순간에도 이 연습이란 단어가 마냥 부정적으로만 들려서,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새해 인사를 미리 하는 홍미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눈앞의 문제는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데, 발랄하게 꺼내는 인사가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어김없이 다가올 새해를 홍미처럼 맞이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싫다고 해도 새해는 올 거고, 어떤 희망을 품고 있어도 불안과 절망이 같이 다가올 거기에, 그때마다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은 또 펼쳐질 거니까. 그 두려움 속에서도 아주 잘살아 보고 싶어서 미리 연습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홍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말이다.


서둘러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홍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생각할 때가 더 많았고 그날도 그랬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내는 데 통달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홍미는 자신이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고 착각했다. 홍미는 다음 날도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할 것이다. (60~61페이지)


결국, 할머니는 일기장에 적는 것으로(그것을 연습으로 볼 수 있다면) 그친 인생이었지만, 홍미에게는 아직 다른 내일이 있었다. 새로운 직장도 구해야 하고, 사는 집의 경매 문제도 해결되어야 전세 보증금이라도 구할 수 있다. 듣기만 해도 막막하고 울고 싶은 일들인데, 홍미 자신이 착각하는 것처럼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고 믿고 싶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운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착각이든 안목이든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지 않은가. 이런 순간들을 연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할머니의 일기장을 읽는 홍미도, 할머니 양지와 홍미의 이야기를 읽은 나에게도 새해가 되면 잘살아 보고 싶다. 이런 순간들을 연습으로 더 단단해졌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괜찮은 날들이지 않을까?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매일이 일종의 연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생각부터 한다. 쓰고 버려지는 습작들을 떠올려서만은 아니다. 매 순간 하는 일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인사나 오래전 연락이 끊긴 사람과의 안부 인사도, 평생 안 하던 짓을 해보는 것이나 하던 짓을 그만두는 것이나, 살면서 갈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장소에 가보는 것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이 실전이면서 또한 연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수많은 좌절을 겪으며 새삼 깨닫고 있다. 좌절할 것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기대하고 마음 상해하기도 한다는 것이, 역시나 오래전 그 사람이 나에 대해 한 말은 틀렸다는 증거 같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계속 더 오래 연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쓴 것 같다. 실패로 끝난다 해도 그게 완전한 절망은 아닐 거라는 마음에서. 그토록 속아놓고도 다시 또 기대에 차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하는 입 모양을 떠올리면서. (100~101페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새해연습 #김지연 #위즈덤하우스 #위픽 #한국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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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브라더스 -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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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평짜리 옥탑방에 성인 남자 4명이 부대끼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잠깐 숨이 막힌다. ‘잠깐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 모습을 상상하는 걸 아주 잠깐 했으니까. 친구의 하숙집 방에서 하룻밤도 신세 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모습이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혼자 생활하는 공간을 침범하는 게 어지간한 사정이 아니면 말도 못 꺼내 볼 것 같아서 이해되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다 보니 그런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게, 또 그게 현실 속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라는 게 더 아프기만 했다.


화자인 오영준. 8평짜리 옥탑방의 공식적인 세입자이자, 무명 만화가이다. 출간된 작품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백수에 가까운 구직자이기도 하다. 오늘을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근심하던 중, 어느 날 영준에게 예전 출간작의 출판사에서 알게 된 김 부장이 찾아와 함께 지내게 된다.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싶을 무렵, 김 부장은 텐트 하나로 옥탑방의 또 다른 방을 만든다. 거기에 오래전 영준이 들었던 만화 작법 강의에서 인연이 된 싸부도 이 옥탑방에 동거인으로 등록한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집주인이 아니다. 집주인 슈퍼 할아버지는 이들을 야단치고 명확하게 계산하여 월세를 다시 책정하기에 이른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지, 만년 고시생 삼척동자역시 이 옥탑방에 드나들며 이들과 형제애(?)를 쌓는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각자의 절망을 공유하는 이들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날들을 보면, 이게 형제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여기까지만 들어도 심란한데, 이들 모두가 오늘도 보장 못하는 날들을 살고 있다는 거다. 만화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일이 없어서 누가 건너 소개해준 학습만화를 그리게 된 것도 감지덕지하는 영준, 기러기 아빠로 아등바등하고 있지만 역시나 캐나다로 보내줄 돈이 없어서 걱정만 가득한 김 부장, 큰소리 떵떵 치고 있지만 별 볼 일 없어서 아내와 이혼 직전에 놓인 싸부, 언제까지 결과 모를 고시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걸 알지만 다른 길을 찾지 못한 삼척동자까지. 이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있으면 뭐가 나올까 궁금하긴 했다. 종종 월세도 못 내서 보증금 까먹는 건도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는데, 영준은 이들의 인생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이 방에서 나가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없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오갈 데 없는 이 루저들에게, 걱정에 한숨이 덤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무슨 대책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느긋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인간들이 모여 있는 게 수상하기만 할 무렵, 뭔가 꿈틀거린다.


바닥을 친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방법은, 그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랬다. 이들이 더 떨어질 수 없는 데까지 떨어졌을 때, 내가 아는 현실은 그냥 그 바닥에 누워있다가 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비빌 언덕도 없으면 또 포기하게 되는 거고. 이들이 가진 환경에서 다시 일어서고 뭔가 이뤄내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은가 보다. 자꾸만 뭔가 해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움직이고, 이렇게 계속 바닥을 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구시렁대는 사람에게, 언젠가는 보여준다. 계속하다 보면 되는 게 있다는 믿음을 주기 시작한다. 해봐, 더디지만 되긴 되잖아. 뭐 이런 말을 듣는 듯한?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고 정리해나가면서도,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잘 되지 못하는 결과 앞에서 더 절망하거나, 뭐 그랬다. 이들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가던 일도 그리 잘 되지는 못했다. 싸부는 결국 이혼했고, 삼척동자는 예상대로 고시에서 떨어졌다. 손맛을 자랑하던 김 부장의 콩나물국밥도 망한 것 같았다. 그렇지, 다시 일어서는 게 그리 쉽다면, 세상에 잘 안될 일이 뭐가 있겠어. 웃긴 건, 그런 나의 부정적인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가가 이들에게 한 번만 더 해보라는 주문을 거는 거다. 당장에 솥단지 엎고 그만둘 것 같았던 김 부장의 콩나물국밥은 몸이 피곤할 정도로 손님이 들끓었고, 뭘 위해 하는지도 모르게 계속 고시를 파고들었던 삼척동자도 다른 길을 찾았다. 지질한 이혼남으로 남을 것 같았던 싸부에게도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주인공 영준. 그는 생계를 위해 학습만화를 그리지만 그만의 또 다른 인생도 펼쳐졌다. 잘됐다고 엉덩이 팡팡 두드려주고 싶게 하는 이들의 표정이 막 그려진다. <꽃보다 남자>F4보다 이들이 더 사랑스럽다.


무슨 인생 반전을 이렇게 이뤄내나 싶겠지만, 소설이니까 그렇게 그리는 것 아니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그리고 이들과 같은 인생의 힘든 시기를 건너는 소설 밖 또 다른 주인공들에게. 이들이 다시 일어설 용기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냥 바닥에 누워있지만 않아서다. 뭔가 계속해보려고 하고, 그때마다 또 다른 위기에 부딪혀 다시 절망하며 벽 보고 누워있었지만, 또다시 벌떡 일어나려고 했던 의지를 보여줬기에. 말 안 해도 다 아는, 이 험한 세상 살아가기가 쉽지 않아서 별일을 다 겪고 사는 우리지만, 그때마다 망원동 브라더스의 고군분투를 떠올리면서 또 한고비 넘어가고 싶어진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 어쩔 건데.



#망원동브라더스 #김호연 #나무옆의자 #소설 #한국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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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멎는 밤(feat. 코골이) -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작지만 무서운 침묵
유제원 지음 / 좋은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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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사는 사람이 코를 곤다. 처음부터 그랬냐고?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쩌다 한 번씩. 그냥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한번 코를 골았던 게 점점 빈도수가 높아지는 듯하다. 원래 비염이 있는 사람이고 갑작스러운 코골이가 무슨 문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병원에 가보기도 했다. 새벽부터 줄 서서 접수해야 만날 수 있는 의사가 있는 곳이었다. 온전히 하루를 비우고 기다림에 지쳐 쓰러져갈 즈음 의사와 대면했다. 비염은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고, 현재 환자 상황이 크게 어떤 치료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코골이 상담. 콧속에 무슨 통로가 있단다. 이게 숨을 쉬는 것과 연관된 건데, 그 구멍이 양쪽의 크기가 다른 상태이고, 그것 때문에 코골이가 심해지거나 얕아질 수 있었을 거라고. (남편은 오래전에 큰 사고를 당했고, 그때 거의 전신 수술에 가까운 치료를 받았는데, 그 사고로 코뼈도 부러졌던 터라 코가 곧지 못하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어느 쪽으로 옆으로 누워서 자는 게 편한 잠을 이룰 수 있다고 조언해주었다. 이 사람의 코골이 역시 지금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정도도 아니라고 판단되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것. 궁금하면 수면다원검사도 해볼 수 있지만, 그것까지도 마구 추천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결론은 지금의 코골이가 심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거다.


사실 옆에서 같이 자면서 견딜 수는 있다. 이 사람이 눕기만 하면 코를 고는 것도 아니고,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 가끔 소란스러울 뿐이니까. 조금 피곤하다거나, 술을 한잔 정도 했을 때나. 순전히 궁금증 때문에 만났던 의사가 저 정도의 언급을 하니 이게 심각한 건 아닌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 제목을 보고 갑자기 심각해졌다. ‘숨이 멎는 밤이란다.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작지만 무서운 침묵이라니. 어쩌면 좋으냐. 많은 사람이 코골이를 단순하게 여긴다고 한다.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아버지도 평생 코를 골았고, 제부도 눕기만 하면 코를 고는 사람이라,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반대로 생각하면 코를 골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 차이를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했을 건데, 왜 코를 안 고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까.


저자는 피곤해서 그렇다는 말을 믿고 있으면 진짜 병을 놓칠 수 있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위험한 말이라고. 단순하게 보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술 한잔한 날에 코골이가 심해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은 일시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변화일 수 있단다. 하지만! 이게 매일, 몇 년째, 숨이 멎거나 다시 쉬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수면무호흡증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고, 온몸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병이라고 말이다. 여기에 몇 가지 오해를 확인해봐야 한다. 살이 쪄서 그렇다고, 마른 사람은 괜찮다고 여기거나, 애가 코를 고는 건 크면 괜찮다고 그냥 넘어가선 안 되는 신호다. 진짜 문제는 이런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 그러니 앞서 말한 증상이 심해지고 반복된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고 치료하면 훨씬 좋아질 수 있다고 하니 잘 살펴보길 바란다.



그래서 코골이는 못 고치나요? 아니다. 고칠 수 있단다. 맞춤형으로. 코골이의 원인은 너무 많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할 수 없기에, 코골이 원인에 따라 맞춤 전략으로 치료하는 게 핵심이다. 가장 먼저는 생활 습관을 잘 조절하여 좋아질 수 있다. 양압기 같은 기구를 사용할 수도 있고, 구개확장기 같은 구강 장치를 이용할 수 있다. 때로는 수술적 치료도 필요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전문적인 진단으로 치료 방법까지 이어져야 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치료할 수 있는 병이고, 생활 습관 개선으로 기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니,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생활 습관 개선으로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하다. 수면의 질이 일상생활의 질을 높여준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으로 편한 잠을 이루기 어렵다면 주저하지 말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숨이 멎는 밤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숨이멎는밤 #유제원 #코골이 #코골이치료 #수면무호흡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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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기윤슬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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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게 원래 이기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은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어느 정도 이타적인 태도로 살아야 하는 건 맞지만,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그 이타심을 발휘해야 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자기가 취하는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자신을 위한 마음이 녹아 있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인지 더 궁금해진 하더라.


주인공 현주의 오늘은 행복하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자리도 잡았고, 괜찮은 집안의 남자 석현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 행복을 계속 유지하기만 하면 인생 탄탄대로 그대로 달려가면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나타나 현주의 행복을 흔들고 있었다. 현주가 그렇게 잊고 지내고 싶었던 과거의 시간을 불러와 현주 앞에 펼쳐놓는다. 아니라고,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던 적도 있지만, 고의가 아니었으니 자기 잘못은 없다고 스스로 세뇌하듯 잊은 세월이었다. 어린 시절, 현주의 엄마가 재혼할 거라며 남자와 남자의 딸을 데리고 왔다. 현주 눈에는 마냥 한심해 보이는 이 남자가 자기 아빠가 될 자격은 없을 거로 여겼고, 그의 딸 역시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무시했다. 특히 그 남자의 딸 유미는 현주를 친언니처럼 따르며 사이가 좋은 자매 흉내를 내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없었던 현주는 참고 살았다. 자기 나름대로 이들을 이용해 가면서 말이다.


대학에 합격하고 현주는 살던 곳을 떠나왔다. 그곳을 바라보고 싶지도 않았고, 더는 자기 인생에 그 시간을 포함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인제 와서 이런 협박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누굴까. 누가 현주를 협박하면서 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자꾸 언급하는 걸까.


소설은 현주가 그 협박의 근원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에서 그녀의 주변 인물, 약혼자 석현과 오랜 세월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던 종욱 선배와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주의 고백 같은 시선과 엄마의 재혼남과 그의 딸 유미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때야 퍼즐이 맞춰진다. 아마도 그럴 줄 알았지만, 어느 정도의 뒤통수에 마치 내가 주인공인 삶조차 내 맘대로 될 수는 없는 건지 의욕이 꺾이기도 하더라. 아니면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의 속내를 그대로 알면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고, 상대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 살아야 하는지 불안하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보인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내 인생의 곁에 두기 싫을 때 내칠 수도 있는 건데, 현주는 그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왔던 것뿐인데, 왜 이런 결과를 맞이해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녀의 의도와 행동이 잘했다고 칭찬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도 현주와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 인생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내 인생부터 챙기자는 마음으로 삶의 방향을 정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미필적 고의는 법률 용어 중 하나로, 특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어떠한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때,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현주가 자기가 빠져있다고 여긴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행동을 누군가는 미필적 고의가 아니었냐고 묻는다. 어떤 상황이 나쁘게 될 것을 예상했음에도, 굳이 나서서 말리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방관함으로써 생긴 결과에 자기 인생이 피어나게 했다는 게, 정말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기만 한 걸까. 유미는 그곳에 가고 싶었을 뿐이고, 현주는 그곳에 가라고 했던 것뿐이고, 그곳에서의 일은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던 거 아닌가?


완벽하다고 믿었던 순간을 비웃듯, 완벽한 행복을 만들려고 했던 그 순간에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는 듯했다. 예상하지 못한 진실을 마주한 반전은 참 씁쓸했고, 내가 상대의 마음을 갖고 놀았다는 것이 오히려 우습게만 보였다. 사는 게 내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기운 빠지기도 한다. 많은 것을 가진 내가 이긴 것 같지만, 언제든 나를 무너뜨릴 약점을 들킬 수도 있다는 게 생존의 민낯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 생존의 방식에서 우리는 언제든 미필적 고의를 저지를 수 있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에 보이는 무심함이,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벗어나기 위해서. 그러면서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나도 모르게 저지른 미필적 고의는 없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지를.


#미필적고의 #기윤슬 #한끼 #소설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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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행복합니다
김가지(김예지) 지음 / 책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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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 날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학생들 시험과 상관없는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지만, 조카들이 있다 보니 아주 남의 일도 아니다. 지난 추석 명절에는 고3 조카가 전화했다. 중간고사와 수능시험, 수시고사를 앞두고 할머니를 보러 가지 못한다면서, 시험이 끝나면 보자고 했다. 이놈의 시험은 언제 끝이 있으려나. 이 나이를 먹고도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시험을 볼 때마다 공부하기 싫어서 괴롭다. 계약직이나 단순 업무 아르바이트하더라도 서류 심사와 면접까지 통과해야 하는 걸 보면, 아마 죽을 때까지 시험 보고 평가받는 일이 끝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조카와 통화하면서 마지막 인사로 건넨 말은, 지나간 일에 미련 두지 말라는 거였다. 혹시라도 시험을 못 봤다고, 점수가 몇 점 부족하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게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이게 말이 되는지 아닌지, 이상하게 그것마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많지만, 어쩌랴.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는 법이니.


이 책은 제목 때문에 펼쳐보게 됐다. 청소일을 하는 게 뭐가 어떻다고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까지 나와야 하는지 궁금했다. 말 그대로다. 청소일이 뭐? ?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인데, 그게 왜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의 어떤 인식, 청소 일은 많이 못 배우고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 일로 보이는 걸까? 20대의 젊은 여성이 청소일을 하는 게 낯설긴 한가 보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꿈을 위해서 나아가는 그 과정을 묵묵히 걸어가는 저자의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누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볼 때마다 단 한 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곤 했다. 역사 속 위인도 아니고, 지금 자기 상황을 열심히 사는 사람.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부모의 좋은 환경,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으니까. 그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생각하곤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저절로 알게 되더라. 사람의 상식적인 태도는 가방끈과는 무관했고, 돈이 많다고 다 예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을 알아가는데 필요한 건 시간과 마음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저자는 그림만 그리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림만으로는 일상에서 지출되는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투잡은 기본이 되어야 했다. 그때 청소일을 시작했다. 이른바 요즘에 종종 듣게 되는 N잡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이 가득했을 때, 저자는 엄마가 하는 청소 일을 같이하게 됐다. 혹시 엄마가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은근히 각인된 세상의 편견을 무시하고자 한다. 안정된 생계를 위해 청소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책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이어간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자기 몫을 살아가면서 밥벌이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귀하고 또 귀하다는 것. 그런데 세상이 내놓으라는 답은 그것과 달랐다. 이미 우리가 보편적으로 보는 어떤 기준이 답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어디 내놔도 감탄할 수 있는 명함을 가지는 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속상하다.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지 보지 않으려고 해서. 그래서 이 책이 의미 있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어떤 길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꿈을 꾸다가도 방향 전환을 할 수도 있다. 그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던 것을 후회만 할 텐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가끔은 익숙하지 않은 길로 돌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진 않겠지만, 이게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방식을 불안하지 않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른 선택의 삶을 원하면서도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 선택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일 수도 있다. 내 인생에, 내 선택에 선을 넘어 참견하려는 오지라퍼들의 입김에 나도 모르게 움츠려둘 때가 있는 걸 보면. 그 선택이나 답은 지금 바로 알 수 없거나, 시간이 지나야 확인하거나 확신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인내심이 필요하다. 선택하는 당사자도, 옆에서 참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도. 그러니 각자가 원하는, 진정한 나의 삶을 발견하게 되기까지 좀,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기를.


수능을 앞둔 조카는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수학 교사를 하고 싶은지 수학을 연구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혹시 또 수학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릴지도 모르지. 어쩌면 학교에 다니다가 또 다른 선택으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자기가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저자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현실은 청소일을 하고, 청소일로 소득을 올리고 그 여유로 그림 그리는 것에 만족하게 된 것처럼,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가능성도 충분히 크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부모 못지않게 그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는 이모의 기도를 담아, 지금 눈앞에 놓은 과제인 수능시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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