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라디오 -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아무튼 시리즈 71
이애월 지음 / 제철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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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라디오를 접했다. 언니가 중학생이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무렵, 친구들이 구구단 외우면서 산수(그때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였다) 숙제하고 있을 때, <두 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알지도 못하는 팝송을 흥얼거리고, 어느 광고에 나오던 음악에 귀를 열었다. 마치 내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듯이, 친구들과 방과 후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게 심심한 일이라는 듯이, 라디오 이야기를 하면 TV 만화 프로그램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마치 아이들 같다는 듯이. 그때의 나는 아이였으니, 아이들의 세상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는데도, 그 아이들 틈에서 나만 혼자 훌쩍 커버린 건방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긴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그 후로도 여전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랐고, 집안의 고요함이 싫을 때도 TV보다는 라디오를 켜 놓는 습관은 여전하다. 지금은 그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훨씬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TV보다 라디오가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 한 줄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 책 속의 한 문장 같을 때가 있다. 라디오와 책, 느낌이 닮았다.

 

겨울밤라디오처럼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게으름에 미뤄둔 책이지만, 이 추위에 제법 잘 어울려서 며칠 밤 계속 읽은 책이다. 며칠 동안 읽어야 할 정도로 두꺼운 책이 아니었건만, 지독한 감기에 두꺼운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식거리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건, 저자가 살아온 세월 속 라디오, 그 시절 속의 이야기를 모르지 않아서다. 저자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또래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일찌감치 라디오를 접했고, 라디오를 좋아해서 겪은 에피소드에 안타까움과 웃음이 저절로 났다. 그때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낯설지 않아서 흠칫했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까지 묻어났다. ‘그땐 그랬지같은 느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싶은 아쉬움까지, 괜히 오늘의 추위에 우울한 기분까지 밀려와서 옆에서 누가 꾹 찌르기라도 했다면 눈물까지 날 뻔했다.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일해온 사람이 전하는 라디오 이야기의 힘이 이런 건가.

 

라디오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을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라디오 공개방송을 들으면서 울고 웃고, ‘워크맨’(요즘 세대는 이걸 알려나?)이 소중했던 시절을 건너와 방송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라디오 때문에 행복했는데, 라디오가 좋아서 방송작가 되어보니 라디오 때문에 절망했던 순간이 따라오더라.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건 부러웠는데, 그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고 보니 고통스러운 순간이 또 생기더라는. 이러면 안 되는데, 좋아하는 건 계속 좋아하는 채로 남아주어야 하는데, 꿈이 이루어졌는데 왜 절망이 따라오는 건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어쩔 수 없는 이런 순간을 또 버텨내야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괜히 또 서글퍼진다. 그래도 좋았다. 주파수를 열어놓고 있을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누군가의 힘들다는 한마디에 위로를 담은 답 문자를 보내고, 그 문자 한 통에 또 힘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기뻤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데도 이런 안부를 묻는 게 가능하다는 건, 라디오가 가진 힘일 거다. 나 역시 그 힘을 나눠 받으며 살았으니, 그저 고마울 수밖에.

 

제목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이 있다. 어느 광고에서 들려오던, 익숙한 음악에 계속 반복되는 구절이, 일부러 떠올리지 않았는데도 불쑥 튀어나와 자꾸 맴도는 음악. 평소에 중독성 있는 음악이나, ‘훅송(Hook Song)’으로 불리는, 때로는 수능 금지곡이라는 위험한 이름이 붙여진 정도로만 생각했던 음악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귀벌레. ‘마치 귀에 음악 소리를 내는 벌레라도 들어온 것처럼, 그 벌레가 귀에서 나가지 않는 것처럼 특정한 노래나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현상을 두고 귀벌레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이름은 좀 징그럽지만,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게 이해되기도 한다. 일부러 듣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귀에 머물러서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게, 심지어 입으로 종일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음악에 붙여진 이름. 아이러니하게도 이 귀벌레가 부르지 않아도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웃기긴 하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사연 사이에 들어오는 음악과 함께였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따라올 때도 있는가 보다. 덕분에 나도 새로운 단어를 알았다. 귀벌레 증후군이라니. 계속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데도 익숙하지 않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을 것 같다. 요즘 나의 귀벌레 노래는 김필의 다시 사랑한다면이다.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소음이 심했던 병원의 대기실에서도, 책 속 문장에 시선이 머물러 있어도 귀에서는 이 노래가 자꾸 들려온다. 심지어는 며칠 푹 빠져 있었던 OTT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보는데도 계속 들렸다. 이 정도면 좀 심한 거 아냐? 때가 되면 귓가에서 사라질 목소리겠지만, 들리는 동안에는 뭐, 그냥, 즐긴다고 생각하고 있어 보지 뭐. 나중에 언젠가 이 노래가, 이 목소리가 그리워질지도 모르니까.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접할 수 있는 라디오였다. 최근 경험했던 단순노동의 현장에서도 일정 주파수에 맞춰진 라디오가 계속 켜져 있었고, 어느 사연에 박장대소하다가 누군가의 슬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에 살아가는 게 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가 좋았고, 병원에서 지루한 대기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이어폰 속의 DJ 목소리가 반가웠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을 전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라고 했는데, 그 외로움을 즐기면서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마다 라디오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 거기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외로움은 이 주파수에 맞춰 서로 통하고 있다는,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 믿음에 힘을 실어보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순간에, 대놓고 말하지 못해서 속이 터져나갈 것만 같을 때, 누가 내 얘기 좀 들어줬으면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나무숲이 라디오였다. 지금은 익명 게시판을 비롯해 여기저기 마음을 토해낼 공간이 많이 있지만, 그 시절의 우리에게 라디오는 마음상담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라디오 로맨스의 대표주자 같은 소설 속 로맨스는 현실에 없었다. 방송국이 배경이 된 드라마 속 로맨스도 없었다. 몰라서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전쟁통에도 사랑이 있다는 말처럼, 전쟁 같은 일터에서도 사랑을 있을 테니까, 좋아서 하는 일에도 절망은 따라오니 뭔가 설레는 일 하나쯤 같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 같은 게 아닐까. 살면서 때로 환상 같은 일도 생겨주면 좋잖아. 어쨌든, 나에게 라디오는 그 단어 자체로 포근해지고 정적인 분위기를 전하지만, 현실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그저 치열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낭만으로만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는 거다. 어렸을 적 뭣 모르고 두근거리기만 했던 라디오는, 어른의 세상에서 그 두근거림이 계속 이어질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게 아쉽고, , 그렇다. 그래도 놓을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 여전히 우리 곁에 라디오를 남겨 둔다. 저자의 말처럼 영원히 외롭지 않을 거라는 말보다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때론 어떤 존재와 온기로 생의 고독을 잊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더 좋아서 함께 하고 싶어진다. 지금처럼 울고 웃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그 틈틈이 외로울 것이고, 그때마다 슬쩍 그 외로움을 토해내고 싶어질 거다. 누군가 부담 없이 그 마음 들어주길 바란다면, 그건 아마도 라디오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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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1-2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했었는데, 마음을 흔드는 걸보니 글의 내력이 9단쯤 되시는군요...잘 읽었습니다!
 
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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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를 누누(유모)라고, 여자는 남자를 셰리(소중한 아이)라고 부른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너무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르는 애칭까지 알고 나니 마음에 표현할 수 없는 지진이 일어났다. 헉 소리와 함께, 도대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뭘까 싶었다. 진짜야? 설마. 이쯤 되니 나이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처음 관계가 문제가 되는 거였나 괜히 걱정되기도 했다. 나이 차이? , 그럴 수도 있지. 레아와 셰리의 모친이 서로 친구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충격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내 아들이 내 친구와 연인이라고 생각해 봐. 선뜻 사랑으로만 이해 가능한지. 하아. 어쨌든, 스물다섯 살 셰리와 마흔아홉의 레아는 서로 연인 사이라는 게 사실이니까.


그녀는 이제껏 전혀 아쉽지 않았던 것들을 난생처음으로 헛되이 기다렸다. 그것은 젊은 연인의 신뢰와, 무방비 상태의 느긋함과, 고백과, 진심과, 조심성 없는 감정의 토로였다. 젊은 연인이 거의 부모에 대한 청소년의 감사와 흡사한 감정으로 성숙하고 든든한 여자 친구의 따뜻한 품 안에서 밤새도록 눈물과 고백과 원망을 주저 없이 쏟아내는 시간들 말이다. (56페이지)


6년 전 어느 날 밤, 레아와 단둘이 있게 된 셰리가 갑자기 레아에게 키스한다. 처음에는 어린 애 장난처럼 여겼을지 모르겠는데, 레아는 생각할수록 설렌다.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에 휩쓸린 레아는 다시 셰리에게 키스하고, 셰리는 레아에게 무너진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레아를 불러왔던 누누라는 호칭이, 이제는 그에게 쾌락과 욕망을 함께 나누는 대상을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사랑하는 예쁜 연인을 보는 기분이 들지 않는 건 나뿐일까. 이 관계를 부정하거나 못 볼 꼴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둘을 보는 내내 크게 남은 감정은 불안이었다. 숨길 수 없는 감정을 나누는 두 사람이지만, 주변에 비밀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애써 아는 척하지 않은 건 아닐까. 혹시 이 둘의 관계를 모르더라도, 언제 들킬지 몰라 좌불안석이었다. ‘네가 감히 내 아들과 이런 짓을?’ 갑자기 셰리의 모친이 나타나 레아의 머리채를 휘어잡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셰리의 모친 역시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마치 모두가 비밀 하나씩 숨긴 채로 자기만의 욕심으로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급기야 셰리의 모친과 레아는 셰리를 젊은 여성과 결혼시키고 만다.


그러니까 이런 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셰리와 레아가 한때 그저 소중한 아이와 유모였던 관계에서, 이제는 다 키운 아이 결혼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보이기를 원하기라도 했을까. 셰리는 결혼했고, 레아는 쿨~하게 셰리의 결혼을 인정했다.


진짜 쿨~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6년이라는 시간, 나이 차이를 무색하게 서로에게 더할 수 없는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한쪽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서 이별하는 게 쉬운 일이던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고 해도 말이다. 사랑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서 서로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연기해왔지만, 서로를 탐하는 욕망만 앞세워 보려고 했던 것 같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휘몰아치던 불안한 마음을 이제야 비로소 보게 된다. ,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하는구나, 우리 정말 사랑했구나. 언제 이별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만나왔는데, 문제가 있었구나.


언제라도 쉽게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마냥 가볍게 여겼던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네가 결혼하는 게,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 셰리가 젊은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질투하지 않았는데,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든 레아였다. 마치 할 수 있는 건 다하는 것으로 보였다. 떠나보내고, 떠나고. 이제 우리는 그저 누누였고, ‘셰리였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가슴 깊이 묻어둔 말들을 삼킬 수 있는, 이별 따위 별거 아니라는 듯 표정 관리도 능숙한 어른이었다고. 다른 사람을 만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자기 육체가 증명하는 나이를 인지하면서 셰리를 잊었다고 착각한다. 아니, 레아는 그렇게 셰리를 잊고 잘살고 있다고 믿었을 거다. 내가 아무리 읽어도 레아는 처음부터 착각한 거였다. 레아만 그랬을까. 셰리 역시 결혼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했지만, 집을 나와 호텔에서 생활한다. 돈을 주고 산 사람에게 레아 이야기를 한다. ? 이게 뭐지?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셰리가 친구가 머무는 호텔에 같이 투숙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셰리와 같이 있던 그 사람은 그저 돈을 받고 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던 얘기를, 셰리는 마치 벽을 보고 얘기하듯 그 사람에게 레아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게 사랑이 아니야?


글쎄다. 이게 자존심인지, 마치 이 사랑의 끝을 알아서 미리 마음 단속을 한 건지 모르겠는데, 셰리가 결혼하고 몇 달을 떠나있던 레아의 마음도, 누군가를 붙잡고 끊임없이 레아 이야기를 했던 셰리의 마음도 알 것 같다는 게 혼란스러웠다. 결국, 아닌 척하던 마음은 더 숨길 수 없게 되고, 무너져내린다. 사랑한다고, 그 사랑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고,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고. 마치 자석에 끌리듯 매일 당신 집 문 앞을 서성이며, 떠난 당신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당신 옆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있었다고. 셰리의 울부짖음에 답답했던 나의 마음도 폭죽처럼 터지고 말았다. 진즉에 말하지, 오래된 연인을 두고 결혼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짓 따위 하지 말고, 이 결혼과 당신과의 관계 사이에서 고통스럽다고 말을 하지. 하긴, 말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할까? 사랑이 그 외의 모든 것을 다 감싸 안아 줄 수 있느냔 말이다. 셰리가 레아의 민낯을 보면서 낯설어하고, 잠깐 사이에 다시 화장하고 돌아온 연인의 얼굴을 보고 안도하는 시선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레아가 줄곧 차고 있던 진주 목걸이. 그냥 레아의 옷차림에 어울리는 액세서리 정도로 여겼는데, 그 목걸이가 나이 든 여자의 목주름을 가릴 용도로 활용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젊은 연인 앞에서 조금이라도 나이 든 흔적을 보여주기 싫은(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기에) 마음은 괴로웠다. 처음 이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서 줄곧 머물러 있던 불안감은, 애써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조건들 때문이었을 거다. 읽는 내내 그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전혀 편하지 않았던 마음은 소설의 시작에서 이미 그 끝이 보여서다. 내가 하는 사랑이 누구에게 환영받을 필요는 없지만, 누구도 환영하지 않을 그 시선에 저절로 움츠러드는 것도 모자라 춥기까지 하니 말이다. 아마도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괜찮은 척, 행복한 척, 현재의 삶에 만족한 척하면서 살아가겠지.


후속작 <셰리의 몰락>이 있다고 하니 거기까지 읽어봐야 하나 싶다. 궁금하긴 하네.



#셰리 #콜레트 #시도니가브리엘콜레트 #소설 #녹색광선

##책추천 #프랑스문학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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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호더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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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케이시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숲속의 오두막에 산다. 폭풍우가 예보되었지만, 그녀가 사는 오두막은 지붕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허술한 상태다. 집주인 루디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루디는 너무 느긋하다. 별일 없을 거라고, 폭풍우가 지나가면 고쳐주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근처 다른 오두막에 사는 리는 그녀에게 이 폭풍우가 심상치 않다고 걱정하면서 자기 집에 와 있으라고 하지만, 그녀는 모든 호의를 거절하고 오늘 밤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우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던 중 창고의 불빛을 발견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 불빛이라니. 누군가 침입한 게 분명하다.


과거.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엘라. 엘라의 엄마는 마트에서 일하고, 퇴근길에는 늘 어디에 사용할지 계획도 없는 중고품을 사서 온다. 정부 지원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이 모녀의 집에는 편하게 쉴 공간이 없다. 엘라의 엄마는 집 안에 물건을 잔뜩 쌓아두는 호더(Hoarder)이다. 심지어 상한 음식마저, 구더기가 그 음식을 다 파먹고 있는 상태인데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엘라는 버티듯 살아간다. 성인이 되면, 부모의 보호 아래 있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면 바로 이 공간을 떠나겠다고 마음먹는다.


케이시와 엘라, 현재와 과거가 오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현재의 케이시는 외딴 오두막에서 폭풍우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폭풍우의 위협에 긴장된 상태인데, 설상가상 누군가 침입했으니 더 숨이 막힌다. 누굴까. 지붕도 안 고쳐주면서 끈적이는 눈빛만 보내는 집주인 루디일까. 갑자기 이웃처럼 나타나 정체가 의심스러운 근처 오두막에 사는 리일까. 모른 척 잠이 들어도 상관없겠지만, 이미 빈 창고의 불빛을 봤는데 못 본 척할 수도 없다. 막상 창고에서 대면한 이는 어린 소녀였다. 손에는 칼을 들고, 입은 옷에는 피범벅이다.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고 여기까지 온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는 일부러 오지 않으면 누구도 방문하지 않을 곳인데 말이다. 아이를 집안으로 들여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하게 잠들게 한 후 아이의 가방을 살펴본 케이시는 깜짝 놀란다. 아이는 우연히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케이시의 오두막을 표시한 지도까지 있었던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이와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케이시는 혼란스럽다. 누굴까. . 아이라고 얕볼 수 없을 정도로 야무지게 공격적인 이 아이와 오늘 밤을 무사히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과거의 엘라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10대 소녀의 암울한 성장기였다. 쌓아두고 버리지 못하는 엄마는 집안에서 담배를 피워대고, 고장 난 세탁기는 방치된 채로 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밀려있는 빨래에 입을 옷이 없는 엘라는 쌓인 빨래 더미에서 그나마 나은 옷을 찾아 입고 학교에 간다. 온갖 서류와 종이 뭉치, 너무 무거워서 옮기지도 못할 어항, 냉장고에 터질 듯이 쌓인 음식들.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이미 상해버린 음식들을 그렇게 쌓아두는 이유가 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의 점심을 훔쳐 먹어 교장실에 들락거리는 것도 빈번해지고, 이미 문제아로 찍혀버렸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것도 일상이고, 집에 들어가는 것도 지옥이다. 엘라가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칼을 든 소녀가 오두막에 침입했을 때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어린 소녀가 손에 칼을 들고 있다는 게 범상치 않은 일이지 않은가. 뭔가 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예상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 소녀와 케이시 사이에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사연 하나쯤 튀어나올 거로 여겼다. 물론 이 부분은 소설의 끝에 다다르면 드러나지만, 생각보다 거칠거나 마냥 위험하기만 한 이야기가 남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의 과거 엘라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이 위험천만한 환경에서 엘라는 몇 살까지 살고 있었을지,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엘라가 무력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걱정됐다.


계속 화가 났다. , 부모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건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키운다고 큰소리치지 마라.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소리치지 마라. 부모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엘라와 같은 환경에 방치하는 것만으로도 폭력이다. 실제로 육체적인 폭력에 노출된 아이도 많고, 정서적 학대로 아이를 지배하려는 어른도 많다. 이때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최선의, 혹은 순간적인 방법으로 이 위기를 넘어가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또 다른 위기는 발생하고, 아이들은 다른 양상의 지옥에 빠져든다. 결국, 피해자인 아이들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까지 한다. 엘라를 지켜주려고 친구 앤턴이 저지른 일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엘라가 그 집에서 탈출하려고 선택한 일은 새로운 인생을 주었지만, 케이시의 오두막에 숨어든 아이가 피투성이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게 현실이다. 법이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이런 소설에 빠져들고 모범택시 시리즈를 기다린다.


작가가 뇌 손상 전문의라고 하던데, 그 어렵고 바쁜 일을 하면서 언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작하는 듯하다. 어쨌든, 한 권 읽고 좀 잊을 만하면 다시 새 책이 나오니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이번 책을 읽고 나니 너무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되니까 지루하기도 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는 게 한번은 만나고 가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더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그동안 주인공들이 마냥 센 언니였다면, 이번 주인공은 세 보이지만 따뜻한 언니정도라고 해야 할까.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관심 두어야 할 부분을 고민하게 하는 건 좋았다. 350여 페이지 수에 비하면 책값은 좀 비싼가 싶고, 가독성은 여전하나 재미로만 보자면 좀 아쉬운 것도 있어서 만족도는 좀 떨어진다.



#프리다맥파든 #차일드호더 #소설 #추리소설 ##책추천 #밝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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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연습 위픽
김지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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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순간이 생방송처럼 흘러간다. 연습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게 어울리지 않게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실수하면 실수로 기억되는 그 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이 처음부터 이상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했다. 새해, 연습이라니. 궁금하기도 했지만, 맥락 없이 연습이란 말에 꽂혔다. 실수해도 실수로 봐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한참 지나버려서, 연습할 시간 따위 없이 흘러가는 순간들이 야속해서 말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려고 돌아서 왔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기로 결정하던 순간의 기분이 떠올랐다. 이만큼이나 살았는데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은 또 오래 보고 싶어서 그게 새롭다고 생각되어서 걸음을 돌린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싶어서 그게 새로운 것이어서 자극이 되어서 삶에 활력이 되어줄까 봐 그랬다. 넘어진 소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얼른 걸음을 돌렸다. 너무 오래 살았다는 기분이 든다. (68페이지, 할머니 양지의 일기 중에서)


어느 날 주인공 홍미에게 날이든 소식, 있는 줄도 몰랐던 할머니 양지의 죽음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홍미의 부모는 이혼했다. 일찌감치 혼자인 게 익숙하게 살아왔던 홍미에게, 부모도 아니고 얼굴 본 적도 없는 할머니의 죽음이라니. 할머니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죽는 순간마저 혼자였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기숙사에 살았고, 가족도 친구도 없이 살아온 홍미였다. 어쩌면 할머니의 죽음은 마치 거울을 보듯, 오랫동안 혼자였던 홍미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게 아닌데. 굳이 모른 척하려고 애쓰지도 않았겠지만, 이렇게 자신의 상황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그러는 건지 무섭기까지 하다.


할머니가 남긴 건 18년간 써온 일기장뿐이었다. 굳이 이걸 읽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잠시, 홍미는 할머니의 일기를 하나씩 읽으면서 그대로 파쇄한다. 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할머니가 18년을 채워온 일기장에는 무슨 말이 가득했을까. 혹시 어디에 숨겨둔 유산이라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숨겨진 건 아닐까? 홍미의 현재 상황에서는 그게 더 반가운 소식일 것 같은데. 회사는 그만두고 싶지만 더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세 들어 사는 집은 어느 채권자가 압류했다고 하고. 홍미의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지금 딱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위태로운 순간이니까. 그런데, 할머니의 일기장 안에는 유산이 아니라 단조로운 일상, 공백에 묻어둔 외로움이 느껴졌다.


어떤 기시감일까, 아니면 두려움일까. 이 책을 읽는데 헉, 하고 숨이 막히는 순간이 있었다. 미래의 어떤 날에 내가 마주할 장면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할머니의 일기장 속에는 한 사람만이 등장했다. 할머니 양지’. 그리고 가끔 할머니를 찾아오는 공 씨. 단조롭다 못해 무료하게 느껴질 정도의 일상에 공 씨의 등장은 이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누군가 보낸 선물 같았다. 가끔 안부를 물어주는 공 씨는 할머니에게 어떤 존재일까. 공 씨는 어떤 의무로 할머니를 찾아주는 사람이었지만, 할머니에게 공 씨의 목적이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주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그 자체로 공 씨의 존재는 할머니에게 위로가 되었을 테니까. 그러면서 할머니가 이루고 싶었던 인생, 현실의 할머니 처지가 아니라 할머니가 바랐던 다른 삶을 거짓으로 적어놓은 일기장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루고 싶은 인생의 모습. 저마다 바라는 삶의 그림이 있을 거다. 어떤 성공을 이루고 싶기도 하고,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원하기도 하겠지. 할머니가 일기장에 채워 넣은, 단조롭지만 평온한 세월의 기록은, 할머니가 이루지 못한, 언젠가 그리고 싶은 삶이었다. 마치 그런 삶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일기장에 연습처럼 적어놓는다는 듯이. 그렇게 적어놓고, 지금 생을 연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순간에도 이 연습이란 단어가 마냥 부정적으로만 들려서,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새해 인사를 미리 하는 홍미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눈앞의 문제는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데, 발랄하게 꺼내는 인사가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어김없이 다가올 새해를 홍미처럼 맞이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싫다고 해도 새해는 올 거고, 어떤 희망을 품고 있어도 불안과 절망이 같이 다가올 거기에, 그때마다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은 또 펼쳐질 거니까. 그 두려움 속에서도 아주 잘살아 보고 싶어서 미리 연습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홍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말이다.


서둘러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홍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생각할 때가 더 많았고 그날도 그랬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내는 데 통달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홍미는 자신이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고 착각했다. 홍미는 다음 날도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할 것이다. (60~61페이지)


결국, 할머니는 일기장에 적는 것으로(그것을 연습으로 볼 수 있다면) 그친 인생이었지만, 홍미에게는 아직 다른 내일이 있었다. 새로운 직장도 구해야 하고, 사는 집의 경매 문제도 해결되어야 전세 보증금이라도 구할 수 있다. 듣기만 해도 막막하고 울고 싶은 일들인데, 홍미 자신이 착각하는 것처럼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고 믿고 싶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운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착각이든 안목이든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지 않은가. 이런 순간들을 연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할머니의 일기장을 읽는 홍미도, 할머니 양지와 홍미의 이야기를 읽은 나에게도 새해가 되면 잘살아 보고 싶다. 이런 순간들을 연습으로 더 단단해졌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괜찮은 날들이지 않을까?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매일이 일종의 연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생각부터 한다. 쓰고 버려지는 습작들을 떠올려서만은 아니다. 매 순간 하는 일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인사나 오래전 연락이 끊긴 사람과의 안부 인사도, 평생 안 하던 짓을 해보는 것이나 하던 짓을 그만두는 것이나, 살면서 갈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장소에 가보는 것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이 실전이면서 또한 연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수많은 좌절을 겪으며 새삼 깨닫고 있다. 좌절할 것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기대하고 마음 상해하기도 한다는 것이, 역시나 오래전 그 사람이 나에 대해 한 말은 틀렸다는 증거 같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계속 더 오래 연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쓴 것 같다. 실패로 끝난다 해도 그게 완전한 절망은 아닐 거라는 마음에서. 그토록 속아놓고도 다시 또 기대에 차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하는 입 모양을 떠올리면서. (100~101페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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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5-12-1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오늘을 살았으니 내일은 조금 더 괜찮아질 거야 하는 기대감. 그렇게 없다면 삶은 너무 슬프기만 하니까요.
구단씨 님의 새해를 응원합니다!

구단씨 2025-12-24 17:50   좋아요 0 | URL
‘괜찮아 질 거‘라는 그 믿음이나 바람이 없다면, 오늘 어떻게 마무리할지 무서울 것 같아요. ^^
내년에는 책을 좀 더 읽었으면 좋겠어요. 올해 정말 못 읽고 살았거든요.
자목련님의 내년을, 저도 응원합니다.
별 일 없이 사는 날들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지만, 그 별 일 없는 날들 중에도 더 소중한 날들이 있기를.
 
망원동 브라더스 -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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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평짜리 옥탑방에 성인 남자 4명이 부대끼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잠깐 숨이 막힌다. ‘잠깐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 모습을 상상하는 걸 아주 잠깐 했으니까. 친구의 하숙집 방에서 하룻밤도 신세 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모습이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혼자 생활하는 공간을 침범하는 게 어지간한 사정이 아니면 말도 못 꺼내 볼 것 같아서 이해되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다 보니 그런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게, 또 그게 현실 속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라는 게 더 아프기만 했다.


화자인 오영준. 8평짜리 옥탑방의 공식적인 세입자이자, 무명 만화가이다. 출간된 작품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백수에 가까운 구직자이기도 하다. 오늘을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근심하던 중, 어느 날 영준에게 예전 출간작의 출판사에서 알게 된 김 부장이 찾아와 함께 지내게 된다.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싶을 무렵, 김 부장은 텐트 하나로 옥탑방의 또 다른 방을 만든다. 거기에 오래전 영준이 들었던 만화 작법 강의에서 인연이 된 싸부도 이 옥탑방에 동거인으로 등록한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집주인이 아니다. 집주인 슈퍼 할아버지는 이들을 야단치고 명확하게 계산하여 월세를 다시 책정하기에 이른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지, 만년 고시생 삼척동자역시 이 옥탑방에 드나들며 이들과 형제애(?)를 쌓는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각자의 절망을 공유하는 이들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날들을 보면, 이게 형제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여기까지만 들어도 심란한데, 이들 모두가 오늘도 보장 못하는 날들을 살고 있다는 거다. 만화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일이 없어서 누가 건너 소개해준 학습만화를 그리게 된 것도 감지덕지하는 영준, 기러기 아빠로 아등바등하고 있지만 역시나 캐나다로 보내줄 돈이 없어서 걱정만 가득한 김 부장, 큰소리 떵떵 치고 있지만 별 볼 일 없어서 아내와 이혼 직전에 놓인 싸부, 언제까지 결과 모를 고시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걸 알지만 다른 길을 찾지 못한 삼척동자까지. 이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있으면 뭐가 나올까 궁금하긴 했다. 종종 월세도 못 내서 보증금 까먹는 건도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는데, 영준은 이들의 인생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이 방에서 나가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없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오갈 데 없는 이 루저들에게, 걱정에 한숨이 덤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무슨 대책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느긋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인간들이 모여 있는 게 수상하기만 할 무렵, 뭔가 꿈틀거린다.


바닥을 친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방법은, 그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랬다. 이들이 더 떨어질 수 없는 데까지 떨어졌을 때, 내가 아는 현실은 그냥 그 바닥에 누워있다가 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비빌 언덕도 없으면 또 포기하게 되는 거고. 이들이 가진 환경에서 다시 일어서고 뭔가 이뤄내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은가 보다. 자꾸만 뭔가 해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움직이고, 이렇게 계속 바닥을 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구시렁대는 사람에게, 언젠가는 보여준다. 계속하다 보면 되는 게 있다는 믿음을 주기 시작한다. 해봐, 더디지만 되긴 되잖아. 뭐 이런 말을 듣는 듯한?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고 정리해나가면서도,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잘 되지 못하는 결과 앞에서 더 절망하거나, 뭐 그랬다. 이들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가던 일도 그리 잘 되지는 못했다. 싸부는 결국 이혼했고, 삼척동자는 예상대로 고시에서 떨어졌다. 손맛을 자랑하던 김 부장의 콩나물국밥도 망한 것 같았다. 그렇지, 다시 일어서는 게 그리 쉽다면, 세상에 잘 안될 일이 뭐가 있겠어. 웃긴 건, 그런 나의 부정적인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가가 이들에게 한 번만 더 해보라는 주문을 거는 거다. 당장에 솥단지 엎고 그만둘 것 같았던 김 부장의 콩나물국밥은 몸이 피곤할 정도로 손님이 들끓었고, 뭘 위해 하는지도 모르게 계속 고시를 파고들었던 삼척동자도 다른 길을 찾았다. 지질한 이혼남으로 남을 것 같았던 싸부에게도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주인공 영준. 그는 생계를 위해 학습만화를 그리지만 그만의 또 다른 인생도 펼쳐졌다. 잘됐다고 엉덩이 팡팡 두드려주고 싶게 하는 이들의 표정이 막 그려진다. <꽃보다 남자>F4보다 이들이 더 사랑스럽다.


무슨 인생 반전을 이렇게 이뤄내나 싶겠지만, 소설이니까 그렇게 그리는 것 아니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그리고 이들과 같은 인생의 힘든 시기를 건너는 소설 밖 또 다른 주인공들에게. 이들이 다시 일어설 용기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냥 바닥에 누워있지만 않아서다. 뭔가 계속해보려고 하고, 그때마다 또 다른 위기에 부딪혀 다시 절망하며 벽 보고 누워있었지만, 또다시 벌떡 일어나려고 했던 의지를 보여줬기에. 말 안 해도 다 아는, 이 험한 세상 살아가기가 쉽지 않아서 별일을 다 겪고 사는 우리지만, 그때마다 망원동 브라더스의 고군분투를 떠올리면서 또 한고비 넘어가고 싶어진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 어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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