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미즈의 책은 이 책까지 3권을 읽었고, 품절이 걱정되어『자급의 삶은 가능한가』를 미리 구매해 두었다.

처음 마리아 미즈의 책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페이퍼에 3번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래도 다시 인용해 보자.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47쪽이다.

이 이슈를 자신의 의식 속에 받아들이게 되면, 그들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들이 한편으로는 피해자일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과 여성을 모두 속박하고 있는 착취와 억압의 체제에서 자신도 공범자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관계로 가고 싶다면 이제껏 해온 공모 행위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는 이 체제에서 특권을 가진 남성만이 아니라, 이 체제에 물질적 존재 기반을 두고 있는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47쪽)

머리에 띵~~하고 충격을 주었던 지점은 바로 여기다. 여성으로서 사는 내가,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내가, 여성혐오 문화의 자장 속에 갇힌 내가, 몰카 천국에서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내가, 피해자일 뿐 아니라,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을 착취하는 억압 과정의 공범자라는 사실이. 이걸 인정하고 현재까지의 공모 행위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마리아 미즈의 말이 내게는 너무 무거웠다.

손으로 만든 레이스를 사는 서구 여성들은 레이스 노동자들의 처지를 전혀 몰랐고, 자신의 사치품이 극도로 열악한 노동 조건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착취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182쪽)

서구의 여성들은 집안을 장식하는 도구로서 레이스를 인식한다. 레이스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다. 질문은 현재에 와닿고, 그에 대답하기는 항상 곤란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이미 제1세계에 속한 나라(비상 계엄으로 마이너스 30년 되긴 했지만) 아닌가. 일단 최근까지의 무역량, 경제 규모를 살펴볼 때 우리나라는 제1세계가 분명하다. 우리의 먹거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물품들은 제3세계 지역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빼앗은 대가로 얻어진다. 우리는 그 '많은 물건'들을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한다.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이 모두 다 그렇다. 남성의 여성 착취, 서구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착취, 백인의 유색인종 착취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러한 제1세계의 제3세계 '착취'가 진행 중인 것이다.

이에 대한 마리아 미즈의 해답은 '자급'이다. 가능할까. 한국에서, 서울에서, 우리 집에서.

•필요한 식료품 일부는 구매하지 않고 직접 생산한다.

•공동 기반 위에서 생산한다. 그 결과 새로운 공동체 또는 이웃이 생긴다.

•토지는 사유 재산이 아니라 공유 재산이다. 소유관계 대신 사용권이 존재한다.

•정치적 적대감은 공동체 활동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자급은 단결시키고 돈은 분열시킨다!

•자존을 책임지고 자선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커뮤니티 텃밭 농부들은 자급이 결핍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임을 경험한다. 좁은 땅에서도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거둘 수 있다. 이는 생산물을 나눌 수 있다는 뜻이다. (211쪽)


제일 주요한 부분은 직접 생산과 공동체 활성화일 것이다. 근교의 작은 텃밭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서 '수확이 너무 많아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던 나로서는 마지막 원칙, 자급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를 100% 믿을 수 있지만, 그것이 '가능'한가, '우리 집에서 가능한가'라고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할 가능성이 너무 크다. 생산 활동을 통해 자급하기보다는 소비를 줄이는 것,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이 훨씬 더 접근하기 쉬운 방법임을 안다.

최근에 읽은 한겨레 21의 <헌 옷 추적기>는 실천할 수 있는/실천해야 하는 하나의 방안을 제시해 주었다. (한겨레21: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6674.html)


<한겨레>는 헌옷에 추적 장치를 달아 이 옷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추적했다. 153점의 의류에 바느질로 옷에 추적기를 달았다. 추적기를 단 옷을 의류 수거함에 버렸다. 대도시의 의류들은 중소도시의 의류 수출업체로 보내졌다. 인천항, 평택항으로 이동한 뒤,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타이, 볼리비아, 인도네시아, 페루, 일본으로 보내졌다.


사진은 인도 하리아나주 파니파트의 도심 인근 주차장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옷들이 불타고 있다.



코로나 시작 직후, 1년간 옷 사지 않기를 결심했었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나름 잘 실천했었는데, 2024년에 취업을 하게 되면서 옷을 꽤나 구입했다. 좋은 옷이란 어떤 옷일까. 예쁘고 체형을 보정해주고 단정해 보이고 편안한 옷. 그런 옷을 찾는데 여러 번 실패했고, 그래서 다시 구입하게 되는 악순환을 경험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도 아닌 듯한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패션리더가 되었던가. 설마, 그런 일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2회독을 마치면서, 실천을 목표로 했던 항목이 있다. 육식 절제, 유제품 절제, 탈코르셋, 전기를 비롯한 모든 에너지 절약 그리고 옷 사지 않기. 할 수 있는만큼은 해보려고 <오늘의 결심>을 여기에 써둔다. 제3세계를 착취하는 제1세계의 '여성'에 대해서, 여성 간의 차이와 공통점에 대해서, '정체성 정치'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를 봐서 정리해 두려고 한다.(미래를 기약하는 스타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정체성 정치‘는 이후 여성 운동으로 확산해 내가 지금까지 대표하는 종류의 정치를 대학에서 제거했다. 이런 정치적 지향의 전환은 내가 떠난 후 사회과학연구소에 영향을 미쳤다. 이와 대조적으로 나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차이가 아니라 공통점, 즉 가부장제 · 식민주의 자본주의라는 조건 아래 착취와 억압을 경험한 데서 비롯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나중에 페미니즘 정치(특히 포스트모던 정치)의 초점은 여성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기독교인인지 무슬림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였다. - P225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25-01-14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니 왜 이렇게 멋져요. 태그 보고 깜놀했어요. 근데 정말 옷 안 사려구요?;;;;;

단발머리 2025-01-14 09:16   좋아요 1 | URL
일단 1년입니다. 아….. 🙄 너무 어려울까요? 6개월에 2개는 괜찮지 않을까요? 티셔츠 포함 😜

수이 2025-01-14 09:18   좋아요 1 | URL
책은요? 궁금해서요!!

단발머리 2025-01-14 09:20   좋아요 1 | URL
책은…… 책은…… 예전처럼 신간은 도서관에 먼저 신청한 후에 읽어보고 구입하기. 그러나 2월말까지는 희망도서 안 받으니깐 그냥 사기! 🤪 메롱!

수이 2025-01-14 09:24   좋아요 1 | URL
저는 단발님을 본받고 싶지만 옷이랑 책이랑 장신구랑 엄청 사댈 예정이라 그대를 나의 스승으로 삼고 3년 정도 미친듯 물욕을 실행하고 아 그래 이제는 스승님을 따라 살겠노라 할래요 메롱

단발머리 2025-01-14 10:37   좋아요 1 | URL
사실 저도.... 결심입니다. 저의 과소비를 목격하시면 이 페이퍼의 링크를 보내주세요~~ 수이님은 저보다 가벼운 삶을 살고 계셔서 제가 제자면 제자이지 스승은 절대 아닙니다. 이사할 때 버릴 것은 책 뿐이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설처럼 전해진대요.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메롱!

다락방 2025-01-14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첫줄만 읽고 마리아 미즈의 책 사러 갑니다. 슝 =3
다시 올게요!

단발머리 2025-01-14 12:5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얼른 다녀오세요! 😉

숲노래 2025-01-14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함께 저지른 짓”이라는 대목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을 떼어야 이다음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를 내면 으레 손가락질을 받거나 따돌림을 받습니다. “저놈들이야말로 잘못이잖아?” 하는 대꾸가 뒤따르지요.

그런데 바로 ‘서울’이라는 터전은, “시골을 쥐어짜고 우려내”어 굴러가고, “우리나라 시골뿐 아니라 이웃나라 시골까지 쥐어짜고 우려내”어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지난날에는 미국이나 영국이나 독일이나 프랑스나 에스파냐가 이런 얼거리였다면, 이제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와 대만이 이런 얼거리이고, 어느새 중국도 이런 얼거리로 접어듭니다.

“서울에서는 그냥 숨을 쉬기만 해도 누구나 시골을 쥐어짜고 우려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을 움직이는 모든 빛(전기)은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뽑아내어 서울까지 기나긴 줄(송전선·송전탑)로 이어서 실어나르고, 서울사람이 먹고 쓰는 모든 먹을거리와 물도 시골에서 거두고 짓는 모든 품이 밑받침입니다.

그래서 ‘적게쓰기·덜쓰기·아껴쓰기’로는 아무것도 못 풀어요. ‘서울떠나기’나 ‘서울버리기’를 해야 비로소 조금씩 바꿉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살더라도 바꾸는 길은 있어요. ‘대규모공장 공산품’이 아닌, ‘시골사람이 손수 지은 작은살림’을 눈여겨보면서 ‘목돈’을 들여 사서 쓰되, 이 시골살림을 오래오래 즐겁고 알뜰살뜰 쓰는 길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어느 나라·겨레에서도 ‘소비재(1회용품)’가 아닌 ‘살림·세간’만 지어서 썼어요. ‘살림·세간’을 서울에서 장만해서 쓴다는 마음이라면, 서울사람도 조금조금 온누리를 바꾸는 길을 갈 만합니다.

여기에는 책도 마찬가지라, 큰펴냄터가 아닌 작은펴냄터를 눈여겨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하고, 이름글꾼이 아닌 아름글꾼을 찾아볼 수 있는 눈썰미를 가꿀 노릇이라고 느껴요. 그냥그냥 큰펴냄터에서 책을 내는 사람도 많지만, 굳이 큰펴냄터는 모두 거르고서 작은펴냄터나 혼펴냄터에서만 책을 내는 사람도 꾸준히 늘어납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바꾸는 길도 하나 있습니다.

단발머리 2025-01-15 10:14   좋아요 0 | URL
유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게, 백인이 유색인종들에게, 그리고 남성이 여성에게 그러하듯/그러했듯 서울(사람)도 시골(사람)에 대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죠. 다만 그것이 첫걸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고요.

지금 한국 사회를 흔드는 위험요소 중 하나가 서울 중심주의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알려주신 실제적인 실천 방법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면 좋을 것 같네요.

다락방 2025-01-15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하셨네요.
저는 베란다 텃밭에서 화분 약간을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자급의 삶은 풍요롭다는 것을 압니다. 무엇보다 내 입에 들어갈 먹거리를 내가 키운다는 만족감이 와 정말 좋아요. 고수랑 바질 약간 키워보면서 이런 말 하는 건 너무 우습지만요. ㅋㅋ
저도 단발머리 님과 마찬가지로 자급은 결핍이 아니라 풍요로움임을 백퍼센트 확신합니다. 얼마전에도 엄마가 교회 권사님으로부터 늙은 호박 하나를 얻어오셨어요. 하하하하하.

저도 단발머리 님과 같은 결심을 늘 합니다.
사실 저는 옷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옷 안사기는 애를 쓰지 않아도 지키고 있고요, 탈코르셋도 어느 정도 잘하고 있습니다. 색조 화장품 마지막으로 산 게 언제인지.. (이건 좀 다른 얘긴데 타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없으면 가능해지는 것들이긴 합니다)육식 줄이기도 제가 결심한 목표였는데 그런데 저는 이걸 잘 못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책을 자꾸 삽니다.. 하아- 사실 제가 사소하게 뭘 잘 지키고 잘 안지키고.. 하는게 제가 여행 다니는 데에서 오는 탄소발자국에 비하면야 다 작은 것 같고요...

이게 부지런한 삶이어야 가능하잖아요.
자급의 삶이요. 이거 엄청 부지런해야 하잖아요.
일전에 냉장고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읽었는데, 냉장고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루종일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 해요. 정말로 끊임없이요. 끼니때마다 먹을 걸 새로 장을 봐야하거나, 많이 샀다면 냉장고가 없으니 저장하기 위해서 절이는 노동을 해야 하고요. 너무 먼 일 같지만 저도 냉장고 없이 사는 거,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회사 동료가 자급의 삶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저는 혼자라면 불가능해도 그룹을 이루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그 그룹을 이루는 일 자체가 쉽진 않겠지만요. 우리가 모여서 함께 텃밭을 가꾸고 함께 음식을 하고 서로가 필요한 걸 교환할 수 있다면..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삶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인생에 한 번쯤은 반다나 시바가 이룬 공동체에 가서 함께 살아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도 몇 번 해보긴 했습니다만, 자본주의에 찌들어버린 저에게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합니다. 제가 자급에 관심이 많아서 단발머리 님께 땡투하고 자급은 가능한가, 하는 저 책을 구입했습니다. 만세!!

단발머리 2025-01-15 10:21   좋아요 0 | URL
제가 위에서 자세히는 안 썼는데 저는, 저희 집에서는 뭐든 들어오면 죽습니다. 좋은 화분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금붕어들도 죽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먹을 만큼의 채소를 재배하는 것에도 사실 어려움이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 바질 키워 바질페스토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부지런한 삶에 대한 다락방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 친구는 음식을 거의 다 만들어 먹습니다. 외식도 안 하고 배달 음식도 안 좋아하구요. 여기까지만 써도 얼마나 부지런한지 아시겠지요? ㅋㅋㅋㅋㅋ 그 친구가 외부 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집의 그릇을 가지고 그 음식점에 갑니다. 담아옵니다. 부지런해야겠지요. (나는 어쩌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냉장고 없는 삶에 대해서는 저도 영상을 본적이 있는데(일본의 혼자 사는 청년) 그게 진짜 어렵잖아요.

하지만 그룹을 이루며 사는 삶에 대해서는 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일 비슷한 모델이 농촌으로 돌아가는 젊은 부부들 가정이더라구요.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고 가능하고요. 고미숙 선생님 공부 커뮤니티도 초반에 그런 모습이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요는.... 서로 마음에 맞는 그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이....
<자급은 가능한가>를 읽고 생각해봐야겠어요. 일단 귀한 책을 얻게 되신것 축하드립니다. 요즘은 책들이 툭하면 품절되더라구요.
좋은 책은 미리 찜콩하기^^

독서괭 2025-01-1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지방 살 때 보니 ‘로컬푸드‘라는 마트 비슷한 곳이 있어서, 생산자가 유통업체 통하지 않고 직접 갖다놓고 생산품에 자기 이름,사진 붙여놓고 팔더라고요. 저는 자급은 못할 것 같고, 이런 곳을 이용하면서 적게 소비하며 사는 삶이 좋겠다고 생각은 합니다.. 툭 하면 고기 구워먹는 우리 집 식생활은 답이 없지만요.. ㅜㅜ 옷이든 책이든 덜 사는 것은 일단 정리를 잘해야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뭘 갖고 있는지 살펴보다 보면 구매욕구도 줄어들더라고요.
단발님의 큰 결심을 응원합니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다. 어느 경우에서든 쓰기가 읽기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 내 마음속 최고의 일타강사 정희진쌤도 진정한 '공부'란 다름 아닌 '쓰기'라 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러나.













어떤 책들은 읽는 것만도 벅차서 사람의 마음을 짓누를 뿐 아니라, 쓰기를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리뷰를, 페이퍼를 쓸 수 없다. 그런 책들을 기억하자면,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 차일드』 등이다. 거기에 이 책 한 권을 더할 수 없어서, 간단하게라도 기록을 남긴다.











나는 비교적 최근에 『왓 이즈 섹스』를 읽었다. 하지만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라는 이 단순한 문장을 쉽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알게 됐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사실, 나의 무지와 내 무지의 확인은 변동될 수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됐다. 챗GPT를 가끔 이용하는 큰아이에게 말했다. **야, 이거, 걔한테 좀 물어봐. 10초도 안 걸려 찾아낸 해답. 그 결론.

남성과 여성(혹은 두 주체)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다르고, 서로 완전히 소통하거나 충족될 수 없다. 인간은 상징계(언어와 문화)의 제약 속에서 욕망을 표현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결핍이 남는다.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성적 관계"를 이상적이고 완벽한 것으로 묘사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결핍과 욕망의 비대칭성을 감추려는 환상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환상을 통해 타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만, 그 환상은 결코 실재계(the Real)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혹은 주체와 주체) 사이에 "완벽한 관계"나 "상호 완전한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관계는 없다.

아, 챗GPT의 문장을 읽고 나니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알 것 같애. 그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도 모르겠더니.

이런 나를 슬퍼하며, 이 두꺼운 책을 이어 읽는다. '성관계는 없다', 이렇게 써놓고.

그런데, 그 없다던 성관계가 있단다. 있다고 한다. 없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알겠다 했는데, 있다고. 성관계는 있다고.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반복하겠다. 신의 여자가 되어, 신에게 안겨, 말씀인 신의 아이를 낳는 것. 즉, "세계"를 낳는 것. 그것이 "여성의 향락=대타자의 향락의 극점이다. "성관계는 있다." 그렇다. "성관계는 없다"란 '이 세계에는 마리아가 없다. 따라서 예수가 출현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 다른 뜻은 없다. 한 사회를, 한 정치체를, 한 "세계"를 새로 낳지 않는다. 그래서 "성관계는 없다"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이다.(210쪽)











신의 여자가 되어 세계를 낳는 건 여성의 향락이며 또한 대타자 향락의 극점이다. 이를 사사키는 글쓰기의 향락이라고 부른다. 종교가 세계를 지배하고, 남성이 종교를 지배하던 시절, 그건 지금도 이어져 오는 시간이기는 한데, 여성이 자신의 향락을 극점으로, 최대한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건 바로 '글쓰기'라는 것. 페미니즘 초기 역사에서 '신과의 합입'로 남자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위치, 신의 여자가 되는 위치에 다다른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나(거다 러너의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일단 잠시 미뤄두고.

나는 오히려 '죽음'에 대한 챕터가 인상 깊었다. 죽음-영혼-영생 류의 생각은 언제나 나의 주된 관심사이다. 죽음과 관련된 책, 그것만으로 승부한 책들을 읽어보아도 '뾰족한' 정답은 없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논증은 이렇게 전개된다. 1) 죽음은 피할 수 없다 2) 죽었다가 살아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건 진정한 죽음이었다기보다는 일시적 코마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경우다. 3) 죽음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여 왔다 3.1) 과학적 노력에 의해 조만간 죽음을 피할 방법이 발견될 것이다 (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이니 당신과는 상관없다) 4)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엥?) 5) 죽음을 받아들여라.


나는 우주에 대한 의문과 삶에 대한 회의, 그리고 인생사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 '죽음'에 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외면하고 대면할 수 있는 '삶의 진실'이란 없다. 하지만, 인문, 교양, 사회심리학 등의 영역에서는 '죽음'을 위의 논증으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물론 과학은 좀 다르게 말한다. 나는 별의 일부, 우주의 먼지로써 치열한 진화의 과정에 등장한 '찰나'의 혼합물이며, 그런 '나'의 의식을 포함한 나의 육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산이 부서진다. 흔적 없이. 나는 이 책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건 '시체 인형'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완료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부가 아니다. 죽음, 그것에서 폭로되는 것은 너의 진리는 없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나의 죽음"을 지켜보고, 받아들이고, 완수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이다. 내가 죽었는지 여부조차 "이 나"는 모른다. 절대적인 비진리, 비-확실성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진리로 확정하는 것은 이 내가 없는 세계의 "타인"이다. "전부"를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타인, 죽어가는 내 몸을 끌어안고, 그 시체를 애도하는 타인뿐이다. (231쪽)


너의 죽음을 바라보는 이는 '너'가 아닌 타인이며, '너'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 역시 '너'가 아닌 '타인'이라는 설명이다. 죽음은 내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다. 죽음은 나의 슬픔이 아닌, 너의 슬픔이며, 나의 한계가 아니고, 바로 너의 한계다. 나는 그 죽음과 '상관'이 없다. 내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을 이미 완수했으므로. 나는 그때 존재하지 않음으로. 그때 등장하는 것이 '시체 인형'이다. 숨, 마지막 숨이 떠나간 뒤, 이 사람, 이 육체는 내가 사랑했던 '그'가 아니다. 시체 인형 속에 갇혀 있는 '그 무언가'는 떠나간다. 그 이후는 '그'는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죽음'에 대해 이렇게 길게 쓸려고 했던 거 아닌데, 어쩔 도리가 없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살펴보자. 그녀는 가장 최근에 출간한 소설에서 이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녀(죽은 자)는 어디로 갔지? 그녀는 바로 저기 있었어. 그런데 이제 그녀는 가버렸어.'










AT THREE O'CLOCK that morning Bob was woken by a phone call from Jim. "She's gone," Jim said.

JIM HAD BEEN sitting beside Helen's hospital bed in the living room when he heard her take her last breath. Jim was not aware that he was waiting for any breath at all, but then her breathing stopped. It just stopped. And he was absolutely stunned. He kept staring at her, and her eyes were partly closed, and she did not take another breath. Where was she? She was right there, but she was gone. He could not believe it.(『Tell me Everything』, 139p)

이제, 푸코. 물 한 잔 마시고. 가성비의 측면에서 볼 때, 『감시와 처벌』은 그 어떤 책보다 가성비가 높다. 푸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나였음) 1독 해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사사키 아타루는 『감시와 처벌』을 중심으로 푸코의 이론을 정리한다. 그걸 더 간단히 정리해 보자.

<제55절 세 가지 풍경>에서 사사키는 『감시와 처벌』이 "주권 권력의 신체형에서 규율 권력에 의한 교정·관리로" 요약된다고 소개한다. 첫 번째 '신체형'은 신체에 직접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주권을 확증한다. 신체형은 의례(483쪽)로서 현장에서 이를 목도하는 민중을 통해 잔인한 의식이 완성된다. 두 번째는 '형벌의 기호학'(489쪽)으로서 죄인의 신체에 영속적인 인쇄(인상)을 새겨넣는다. 이는 '처벌의 기호 기술'로 일컬어지는 '표상'의 처벌로서, 노동형을 통해 완성된다. 세 번째가 '감옥'이다. 이러한 처벌은 기호가 아니라 '훈련'으로 작동한다. 시간표, 일과시간 할당표, 의무적인 운동, 규칙적인 활동, 혼자 하는 명상, 공동 작업, 정숙, 근면, 존경심, 좋은 습관 등의 기술(493쪽)이 "복종하는 주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제일 흥미로운 지점은 503쪽이다. 권력이 시간을 대상으로 삼게 되면서, 직선적인 시간의 탄생을 가져왔고, 진화, 진보의 시간이 탄생했다고 본다. 이것이 규율 권력의 동일화, 동질화, 균질화를 촉진했고, 감옥의 운영 매커니즘이 학교, 병원, 군대, 공장과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밝혀낸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규율적이다. 그 무기는 규율의 성능, 규율의 효능이다"(521쪽)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자본주의의 무한 자기 계발과 자기 착취의 철학적 근간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그러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이렇게 책 3권을 찜해 둔다. 집에 2권이나 있어서 나도 놀랐다.











푸코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게 된 듯한데, 르장드르나 라캉에 대해서는 아직도 오리무중, 깜깜무소식이다. 110쪽이 남았는데, 다 읽고 나면 쓰지 못할 것 같아 아쉬운 대로 감상을 남겨둔다. 내가 뭐라고 썼는지 모르겠는 그 무엇을 쓰는 이 과정조차 배움의 과정이 될 거라 믿고 싶지만, 그게 항상,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그래도 사사키의 이런 문장을 만나서 기뻤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예를 들어도 좋다.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쓴다. 이 막막하고 어떤 결론에 이를지 전혀 모르는 작업, 저 새벽의 작업, 신앙과 무신앙 사이에 있는 저 잿빛 공간의 작업을 그녀는 어찌어찌 마무리하게 된다. 믿고 있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이 자기가 쓴 것이 그 순간 "돌연"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이 된다. 이를 읽은 타인 또한 당연히 그녀가 이것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리라.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 써 있으니까. 그리고 불현듯, 돌연 그녀는 깨닫게 된다. 어느새 자신도 믿고 있다는 것을. 자기도, 자기가 쓴 것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말았음을! (417쪽)

내가 쓴 것을 의심의 여지 없는 신념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내가 믿는 것은 내가 쓴 것,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어찌 마무리했다.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라캉은 분명하게 말했다. 대상 a는 "쪼가리 같은 대상objet dedecher"이고 "불가능한 것"이라고. 쓰레기, 똥, 욕망의 진정한 원인이고 주체의 진리이나 도달 불가능한 "그 무엇". "우리가 대상 a라고 부르는 저 특이한, 견줄 데 없는, 역설적인 대상." 그것은 본질이나 실체가 없고, 자기에 반해 항상 반전하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인" 것이다. - P172

처음부터 우리는 시체의 인형이고, 시체의 인형에서 나온 찌꺼기를 핥고, 시체의 인형에 붙은 작은 팔루스에 환희하고, 시체가 되자마자 자신과 닮은 시체의 인형으로 대체되어 이 인형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 P241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25-01-13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서야, 저도 블랑쇼 인용였던가요. 결국에 죽음은 죽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혹은 죽은이의 죽음을 받아들여야하는 사람들에 의해 선언되어야 한다는 뉘앙스의 부분에서 곰곰해졌던 기억이 났어요! (그런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 채 샤이가이 푸코에만 하트 치고 자빠져있었다 ㅋㅋㅋ)

맞아요. 정말 맞아요. 작년에 읽었던 버틀러의 위태로운 삶과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라는 책도 생각이 납니다. 죽음은 죽는 자가 아닌 타인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태도는 타인에 대한 태도와도 뗄 수 없을 것 같네요.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그녀는 없습니다. 그도 없고요. 그리고. 그게 죽음이네요.

단발머리 2025-01-13 09:50   좋아요 1 | URL
저는 내세를 믿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어떠하다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답을, 그러니까 ‘딱 떨어진‘ 답을 피하는 다른 책들에 비해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부딪힌거 같아요. 그 점에서 저는 점수를 주고 싶어요.

죽음은 ‘죽는 자‘가 아닌 타인의 것이구요. 그래서, 의미 있는, 혹은 나를 뒤흔들 수 있는 죽음이란 나의 죽음이 아니라 타인(반려동물 포함)의 죽음이 될 테고요.
아침 일찍 부고 소식을 접했어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오후에는 나가봐야겠습니다.
쟝님도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독서괭 2025-01-15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저도 챗지피티 요약글 읽고 오 뭔지 알겠어 했는데 그 밑에 인용문 읽으니 전혀 모르겠네요 ㅋㅋㅋㅋ 와 ㅋㅋㅋㅋ
요즘 드는 생각인데 여성주의 책을 못 읽다보니 점점 멍청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예요. 한창 여성주의 책 따라 읽을 때 썼던 글들 보면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싶네요 ㅜ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진짜 무서운 건 아픈 게 아니라 죽는 거다, 라고 생각한다. 생각했다. 아파보니 다르다. 진짜 무서운 건 아프다가 죽는 거다. 죽을 만큼 아픈 것. 아픈 데도 죽지 않는 것. 그런 게 진짜 무서운 일이다.

마지막 주에 너무 바쁘기도 했지만, 그간 피로가 쌓여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출근하는 날, 퇴근 인사를 할 때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아, 아, 아.... 안녕히 계세요!"를 말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도 그날만은 아플 수 없어서 알약 털어먹고, 물약 마시고, 뜨거운 물 마시고, 입안이 화~안 사탕을 세 개 물고, 마스크 쓰고, 네발로 기어서 교회에 갔다. 그렇게 송구영신예배를 무사히 마치고 와서는 계속 밥-잠-밥-잠-병원-밥-잠의 시간을 보냈다. 다시 주일이 한 번 지나가고, 정신을 차리니, 그러니까 달력을 쳐다보니 1월 6일이었다. 1월 6일? 그렇게 나의 새해는 1월 6일이었다. 그렇게 1월 6일을 1월 1일처럼 보내고 화요일이 돼서야 책을 펼쳤으나 갈 길이 멀었고. 친구가 보내준 라떼와 스트로베리 초콜릿케이크(사실 친구가 보내준건 아메리카노와 아이스박스)와 함께 즐거운 독서 시간을 마침내 보냈다.








그리고 그 길고 어려운 책을 읽는 사이사이, 쉬는 시간마다 이 책을 읽었다.


진짜 무서운 건 아픈 게 아니라 죽는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픔이 죽음으로까지 가는 과정이 괴로운 일이고, 그게 바로 노화라고 했을 때, '세월의 무게를 덜어주는 경이로운 노화 과학(부제)'이 궁금해서가 아니고. 아니고! 이 책을 번역하신 배동근 님이 정희진쌤의 매거진에 출연하셨을 때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 책을 찾아보게 된 거다. 어떤 글에서, 그 책을 '어떻게' 해서 읽게 됐는지 쓰는 건 초보 리뷰어가 하는 일이라고 쓰였던데, 이렇게 나는 초보 리뷰어다.

과학과 관련된 새로운 용어가 많이 나온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외워야 할 필요도 없고, 외울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써 본다.

전장유전체 연관성 분석genome-wide association study(GWAS): 어떤 사람의 성향에 대해서 유전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작은 효과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것 (49쪽)

적대적 다면발현antagonistic pleiotropy: 어떤 유전적 변이가 생애 초반에는 유익하게 작용하지만 후반이 되면 해롭게 작용한다고 가정하는 것. (63쪽)

호르메시스 효과hormesis effect: 역경을 통해 오히려 더 강인해지는 생물학적 현상(77쪽). '스트레스는 생명체를 강건하게 만든다.'

헤이플릭 한계Hayflick's limit: 인간의 세포도 정해진 횟수만큼 분열하고 나면 죽는다는 것. 레너드 헤이플릭이 입증해 냄.(122쪽)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화'의 열쇠를 찾는 데에 골몰한다. 키와 수명과의 연관성뿐만 아니라, 항노화 약물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노력. 늙지 않는 혹은 늙지 않게 하는 혹은 생체시계를 뒤로 감을 수 있는 세포를 찾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과 노화와 '피'와의 과학적 연관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200페이지까지 계속된다. 눈길을 끄는 건 세포자살과 좀비 세포에 대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자신의 상태를 세심하게 점검한다고 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했을 때,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고, 세포는 말 그대로 '팍' 죽어버린다. 아폽토시스라 불리는 세포자살인데, 이는 암을 예방하고 감염에 맞서기 위한 메커니즘이라고 한다.(132쪽) 몸 전체를 구하기 위해 사심 없이 자살. 만약 손상된 세포가 자멸하지 않고 세포노화라 불리는 상태로 진입하게 되었다면, 이런 상태의 세포를 좀비세포라고 부른다고 한다. 좀비세포가 되면 세포는 일상적인 활동을 중지하고 당연히 세포분열도 멈춘다고 한다. 다음 단계인 자살을 결행하지 않고 미적거리며 뭉개기만 한다고. 문제는 그다음이다. 몸에 해로운 잡다한 분자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노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모든 일의 사단은 아폽토시스 없음 때문에 일어난다. 제때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생로병사,의 흐름이 막혀버려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과학 정보들의 향연인지라, 그쪽으로 관심이 있거나 이미 가진 정보가 많은 사람이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천생 문과인 나는, '아~~ 그렇군요. 그런 거군요~.'하면서 따라 읽을 뿐이다. 진짜 궁금한 건 뒷부분에 나온다.

<파트 3. 유용한 충고>


취미 삼아 굶어보기, 단식, 식이요법, 콜레스테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화를 대하는 마음가짐.

결국 부자들, 그냥 부자말고 진짜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 부자들은 과거의 권력자들이 그러했듯이 불사의 길을 찾아낼 것이고,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냉동 상태'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돈 없는 나는 내 몸의 생체시계를 거스를 수 없기에 일단은 오늘의 생체시계만이라도.

정시에 맞춰보려고 한다.

친구의 가르침대로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득 마셔야 하는데 그건 안 되고 반 잔 마신다.

기상 후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기. 지금의 생체시계 제대로 맞추기.


호르메시스 효과는 결국 정도의 문제다. 아예 운동을 전폐하는 것보다는 조깅으로 몸에 자극을 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나친 운동은 금물이다. 과훈련 증후군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같은 논리로 바람에 노출된 나무가 더 튼튼하게 자란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치게 강하면 튼튼하게 만드는 건 고사하고 나무를 거꾸러뜨리거나 부러뜨릴 것이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유발한 손상에서 자신의 몸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정도 내에서만 호르메시스 효과를 누릴 수 있을 뿐이다. - P81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25-01-10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깅 미친듯 하는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안 늙으려고 하는 건가. 우리도 본받자!!!

단발머리 2025-01-10 09:38   좋아요 1 | URL
태그 보세요 ㅋㅋㅋ 미친듯 하면 오히려 부작용 납니다 ㅋㅋㅋ 그거 모르시네요, 그 분은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1-10 09:31   좋아요 0 | URL
폰이라서 안 보여요 태그🫢

단발머리 2025-01-10 09:38   좋아요 1 | URL
응 그럼 ㅋㅋㅋㅋ 요기 위에 인용문ㅋㅋㅋ지난친 운동은 몸에 해롭대요 ㅋㅋ미친듯 조깅은 건강에는 엑스!! 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1-10 09:43   좋아요 0 | URL
우린 그런데 그렇게 잠깐 해야 돼, 너무 안 움직여 ㅋㅋㅋ

2025-01-10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10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5-01-10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비세포 🧟 나의 세포들아 어서 죽어라! 새로 태어나라! 뿅뿅

단발머리 2025-01-11 10:45   좋아요 1 | URL
필사즉생 필생즉사 ㅋㅋㅋㅋㅋㅋ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화의 포인트는 좀비세포의 창궐과 면역세포들의 초과근무 ㅋㅋㅋㅋㅋ 좀비세포들이 사고 치고 다닐 때 면역세포들이 따라다니며 해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면역세포들 왕피곤. 하여 나이들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고, 질병에 취약해지며...
이거 재미나요. 다 읽고 노화에 대항하는 비법 나오면 또 제가 페이퍼로 정리를.... (사사키가 울고 있다) ㅋㅋㅋㅋㅋㅋ메롱!

그레이스 2025-01-12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픈거 그리고 치료과정이 무서워요.

단발머리 2025-01-15 09:5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아픈것이 무섭고 주사도 무섭고 약은 쓰고요. 안 아픈게 최고입니다^^
 
토니 모리슨의 말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생애 처음과 마지막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마음산책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니 모리슨 뽐뿌의 제 1요소는 바로 이 사진. 출처는 수이님.



토니 모리슨 뽐뿌의 제2요소는 바로 이 100자평. 출처는 유수님.


모리슨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빗발치는 궁금증은 적나라한 응시와 동시에 어떻게 이런 거리를 유지하는지, 에 대한 것이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정 부분 해소되었다. 다만 인간적으로 여전히 궁금하다. 극단을 다루면서도 그에 시달리지 않고 의연하게 지켜내는 인간애에 대해서. 내가 오독한 게 아니라면 작가는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영역이라 내내 힘주어 말하고 있다. (출처: 유수님 100자평)

나도 그게 궁금했다. 유수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적나라한 응시와 동시에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게 궁금했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아프리칸-아메리칸 여성의 삶.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그리고 그 위에 백인 남성을 지배자로 두고 살아야 했던 삶. 역사 속에 아로새겨진 고통과 슬픔을. 그 억울함을, 토니 모리슨은 어떻게 잊었던 걸까. 어떻게 이겨낸 걸까.

젠더, 계급, 인종은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어느 한 가지 요소가 다른 한 가지를 압도하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교차해 작용한다. 젠더와 인종이라는 측면, 특별히 흑인 여성의 입장에 대해서는 『여성, 인종, 계급』을 읽고 정리한 적이 있다. (흑인 여성과 선택의 문제: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364842)

토니 모리슨의 말을 따라 읽다가, 그녀가 예술의 영역에서 이루어낸 바로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이미 완성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여기 있고 떠나기 전에 존중받을 만한 일, 남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누군가를 돌보는 일, 타인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일은 아주 흥미롭고 까다로우며 지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무척 힘든 일입니다.

한편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희생자의 위치에 놓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위험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45쪽)


그러니깐, 토니 모리슨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순수한 피해자라는 옷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자신의 맨얼굴만으로 나설 수 있었을까. 원망하지 않으면서.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고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아픔과 고통에 직면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깐, 어떻게. 어떻게 그녀에게는 그 일이 가능했을까.


이런 인용이, 이런 접합이 적당한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라 이 책의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나는 미국에서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삶을 이해하는데 이것만큼 적절한 이론이 없을거라 생각한다.


권력은 획득할 수 있는, 손에 넣을 수 있는,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지점에서 진행되는 게임 속에서 행사되는 것이다. 권력관계는 다른 여러 관계에 내재해 있다. 경제 과정, 지식의 전수 관계, 성적 관계의 모든 요소에 그것은 존재한다. 권력은 그때마다 그것이 발생하는 장소에서 작용하고,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산출한다. 권력은 아래로부터 온다. 위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체의 모든 곳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역학 관계" 그 자체다. (『야전과 영원』, 621쪽)


백인은 흑인을 지배했고, 이는 노예제도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말하는 가축쯤으로 여겼기에 흑인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강탈이 가능했다. 하지만, 백인은 흑인을 지배함과 동시에, 흑인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백인은 가능한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흑인을 억압했지만, 동시에 흑인을 무서워했고, 두려워했다. 흑인은 백인이 자신들의 노동력에 기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라는 걸 알았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권력은 위로부터 오지만, 아래로부터'도' 온다.

그래서 내가 찾은 해답은 이거다. 그녀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를 '승리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 자신들이, 흑인들이 승리했다고 믿었기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고통을 밟고 일어설 수 있었다. 피해자라는 위치에 멈춰있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무언가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요점은 우리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마침내 승리한 아주 흥미로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수세기 동안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우리가 다 죽어 없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우리의 이야기는 단지 생존의 이야기가 아닌, 상상을 초월하는 번영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그 모든 고초를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세요. 그 결과 우리는 지금의 아주 특별한 문화를 갖게 되었고 이것은 토착의 문화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새로운 세계 문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138쪽)


그녀가 말하는 '우리'에 흑인 남성이 포함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당연하다. 흑인 여성은 그 모든 고통의 시간 속에 흑인 남성들과 함께했다. 아들을 둘 낳아 혼자서 기른 싱글맘의 위치에서, 모성에 대해 비관적이었던 제2물결 페미니즘에 대한 저어되는 마음을, 아이 둘의 엄마인 나도 100퍼센트 이해한다.

식민지 경험, 전쟁 폐허의 땅에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발전 이면에 강요되어왔던 '억척스런 어머니상'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모성의 신비화에 한결같이 반대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항상 흑인 남성을 보호해야만 했던(167쪽) 흑인 여성에게 모성이 작동된 방식은 우리의 그것과는 또 다른 역사이고, 그림자일 것이다. 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아이가 내게 주는 기쁨에 대해서. 두 사람만의 사랑과 숨겨둔 비밀 이야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테니. 언제나, 한결같이. 모성은 어려운 문제다. 해답으로서의 사진을 여기에 남겨둔다.



왜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신지는 모르겠다. 듬직한 토니 모리슨과 보호해 주고 싶은 그녀의 두 아들이다.




흑인 페미니스트는 스스로를 ‘우머니스트‘라고 불렀습니다. 간극이 있었죠. 둘은 달랐습니다. 역사적으로 흑인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보호했어요. 남자들이 일선에 나가 있었고 죽을 확률이 더 높았거든요. 실제로 저는 이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출판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많은 여성이 대학을 가기 위해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아들은 당연히 공부를 시켰지만 딸은 공부를 하려면 몹시 애를 써야 했어요. - P167

아프리카게 미국인 사회에서는 정반대였습니다. 딸은 공부를 시켰지만 아들은 시키지 않았어요. 딸은 언제든 돌봄노동을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교사라든가, 간호사라든가. 하지만 아들에게 공부를 시키면 갈등에 직면하거나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었어요. 결코 쉽게 성공할 수가 없었어요.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상황은 이제 바뀌었지만 당시에 우리는 자기를 보존하려는 하나의 유기체 같았어요. - P168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01-09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9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5-01-09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 유수님 백자평 찰진 거…

헤헤. 저는요. 토니 모리슨을 읽어보진 않았지만요, 저 잘못 읽으면 ‘정신 승리’로 읽힐 저 승리의 지점이요…, 언어를 (텍스트..! 르장드르식 텍스트!! 춤, 음악, 랩, 그림, 생산, 또…) 가졌다는 지점과도 매우 공명할 거라고 여겨집니다. 설명할 필요가 없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과 그 반복… 그러면서 삶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 허튼 소리에 피식 비웃어버리는 것. 나는 거기에 사랑과 경외를 담습니다. 저 강인한 작가님과 그를 알아보는 안목있는 독자님께 박수를 치고 싶어지는 글였다요.

단발머리 2025-01-09 20:40   좋아요 0 | URL
찰진 백자평 아주 야무져요. 너무 좋죠~~~~

그러고 보니 흑인들은, 승리라고 불릴만한 것을 가진 흑인들은 그 모든 걸 가졌네요. 언어, 춤, 음악, 그리고 음식 문화. 이 책 읽으면서 그냥 제가 느낀 부분이에요. 오바마를 정말 친족처럼 생각해요. 거의 내 아들급.... 각 개인은 특별하고, 또 개인의 특성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겠지요. 근데 흑인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공동체 의식‘에 대해서 저는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삶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 살아내는 건 모리슨님처럼 열심히 사신 분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 (이쯤에서 베짱이 눈물 한 번 닦고요)
안목 있는 독자가 될거에요. 제 꿈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5-01-11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11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회에서는 원래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 저번 주 금요일에도 똑같은 순서를 따랐는데, 나는 <1번> 나라를 위한 기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으니. 사실 나도 내 코가 석 자다. 갈 길을 모르는,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귀한 영혼이 우리 집에도 있다. 근데 나는 내 자식을 위해, 내 아들을 위해 기도할 수가 없다. 당최. 엄청난 패악질을 일삼던 1인이 계엄을 선포해 놓고는, 찬바람에 국민들 아스팔트에 앉게 한 것도 부족해,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이러는 형국이라서. 그래서 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데, 그다음 기도로 넘어갈 수가 없다. 찬찬히, 진지하게 나도 내 일상을 돌보고 싶다. 내 아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싶다.

지난달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샀다. 크리스마스 카드 받아본 사람만 안다. 아! 크리스마스 카드구나~ 봉투를 열 때의 두근거림, 단정한 글씨. 따뜻한 인사와 전해지는 사랑. 받아본 사람만 안다. 그래서 결심을 했더란다. 나도 올해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야지. 카드를 샀다. 심사숙고했다. 내용과 글씨가 자신이 없으니까, 외모로 승부를 보자 해서 숙고를 거듭했다. 그러나 이놈의 패악질(현재로서는, 다 나라 탓입니다) 때문에 차분히 앉아 카드를 쓸 시간이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올해 내내 고마웠다는 말을 결국 쓰지 못했다. 내년에는 꼭!을 3회 복창하였고. 올해 산 카드 내년에 보내도 되나요? 누군가에게인지 모르게 혼잣말로 물어본다.

근데 올해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많이도 만들었다. 1년 내내 너무 빡빡한 선생님 아니었나 싶어 1학년 아이들 공부 마치고 짬짬이 카드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인터넷에서 트리 이미지 찾아보고, 학습준비물실에서 검은 도화지랑 색종이, 별 스티커를 가져와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하트 만들어 달라 하면 검색해서 하트 접어주고, 흰색 바탕 카드 만들고 싶다고 하면 도화지를 접어 건네주었다. 그렇게 카드를,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다.

우리 학교는 알라딘이 아니라 그래24를 애용한다. 거래 업체를 바꾸기에는 나는 너무 힘이 없... 아이들 선물로 줄 책을 샀다. 내 돈으로 산 거 아니지만, 내가 고른 책이라 흐믓하고. 무엇보다 책이 너무 이쁘다. 책은 자고로, 예뻐야 한다.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평안이 알라딘 이웃님들 가정 가운데도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삶은 엉망이고, 꼬이고, 이상한 인간들을 종종 만나게도 되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리고 내일만큼은 크리스마스의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시기를 바란다.

내가 기도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24-12-24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인간들…… 나? 🙄

단발머리 2024-12-24 12:0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님은 귀여운 인간! 사랑스러운 인간!

유수 2024-12-2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꺄아 발구르게 되는 포인트가 너무 많은 페이퍼예요. 단발머리님께도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단발머리 2024-12-24 15:51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 포인트 중에 최고는 <해피버쓰데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란 원피스, 저도 필요하고요.
유수님과 유수님 가정도 깜찍하고 포근한 메리 크리스마스 되시길요!

독서괭 2024-12-24 16: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피버쓰데이 샀습니다! 아직 못 읽었지만요 ㅎㅎ 단발님이 가정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새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단발머리 2024-12-26 09:03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시간 보내셨기를 바래요~
저, 해피버쓰데이 제 꺼는 안 샀는데, 제브리나 컬렉션 맘에 쏙 들어서 저도 사고 싶어요^^

blueyonder 2024-12-24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평안이 단발머리 님 가정에도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4-12-26 09:05   좋아요 1 | URL
blueyonder님~ 따뜻한 성탄 인사 감사해요.
예수님의 사랑과 평안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절인거 같아요.
그 특별한 은혜가 blueyonder님 가정에도 가득하시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