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좌반구 - 새로운 비판이론의 지도 그리기 컨템포러리 총서
라즈미그 쾨셰양 지음, 이은정 옮김, 배세진 해제 / 현실문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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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관심이 가는 챕터, <포스트 여성성>을 읽었다.

해러웨이가 보기에 우리는 모두 어떤 점에서는 사이보그다(358쪽). 나는 지금 안경을 쓰고 있고, 출근할 때는 콘택트렌즈를 낀다. 안경이 없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 행동에 제약이 있다. 그 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나는 사이보그다.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다'에서 시작한 해러웨이는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흐릿해진 만큼 '인간/동물과 인간/기계'라는 이중 경계 역시 사라진다(361쪽)고 주장하는데, 이는 새로운 존재론으로 이어진다.

해러웨이가 보기에 인공물은 모든 사물에 대한 사유 모델을 제공한다. 그의 인공물주의는 급진적 반본질주의다. 그는 세계 내 어떤 실체도 ‘본질‘을 소유하지 않으며, 따라서 상호작용하는 다른 실체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사물은 언제나 혼종적인 것이요, 여러 심급의 혼합이다. 이는 ‘본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반본질주의는 동시대 비판 사상 대부분에 공통적이다.(361쪽)

혼종으로서의 사물, 여러 심급의 혼합인 사물을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생김새가 다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일테면, 『랜들 먼로의 친절한 과학 그림책』 62쪽 '생명체의 나무'를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은 인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비교적 최근에서야 나타났다. 인간, 근대적 인간은 분류하고, 구분하고, 무리 짓고, 카테고리별로 묶었다. 생명체의 나무에 따르면, 사람은 집에서 키우는 물고기보다는 새에 더 가깝고, 집에서 키우는 그 물고기는 사람을 잡아먹는 커다란 물고기보다 사람에 더 가깝다고 한다. 작은 나무처럼 생긴 버섯은 나무보다는 동물에 가깝고, 나무, 벌레, 사람과 같이 '하나보다 많은 보따리로 이루어진 모든 생물'은 세 번째 큰 가지에 속한다. 나무와 벌레, 그리고 사람. 작은 차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구별과 분류가 해러웨이 앞에서 무너진다.

해러웨이의 인공물주의의 이론적 결과 중 첫 번째는 반인간주의다. 어떤 사물도 본질을 갖지 않는다면, 인간 존재 또한 본질을 지니지 않는다(361쪽)는 주장. 당연히 인간은 동물보다 특별하지 '않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스레 반종차별주의로 간다. 두 번째로 해러웨이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362쪽), 인간이 유기체와 기계의 얽힘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인간과 동물 간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듯, 여성과 남성 역시 '본질'적인 구분이 불가능하다. '여성'됨이라는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362쪽)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이제 주디스 버틀러다. 휴우~~

버틀러가 보기에 섹스는 젠더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구성물이다. '섹스'와 '젠더'라는 구분 자체가 사회적·역사적으로 정립된 것이니, 그 구분을 이루는 항목들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 결국 버틀러가 최종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바로 본성과 문화의 분리다.(369쪽)

섹스와 젠더를 이해하던 이전의 방식을 버틀러는 완벽하게 분쇄한다. 어디까지가 본성의 범주이고 어디에서부터 문화의 영역인가. 평생에 걸쳐 반복해서 이루어지는 '젠더 사회화'를 통해 인간은 여성으로, 남성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강제적 이성애와 남녀 이분법은 이러한 배경하에서 더욱 공고해진다.

나왔다, 스피박.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와 페미니즘 내부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킨 스피 박의 개념은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essentialism다. 본질주의에 대한 비판은 동시대 비판 사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젠더든, 계급이든, 민족이든 모든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고, 따라서 우연적이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해 정체성은 객관적이거나 실체적인 그 어떤 것도 가리키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략적 본질주의 개념 역시 이런 비판에서 유래하며 사회 세계에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그러한 본질을 제거하기가 어려워 보일 만큼 일상생활과 사회 투쟁에서 개인이 본질을 자주 참조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379쪽)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전에 써두었던 글을 여기에 붙여둔다.


전략적 본질주의 :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5259889


저항주체인 여성의 전략적 본질주의 :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5262820



다시 해러웨이에게로 돌아가 보자. 해러웨이는 사물에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핵심은 급진적 반본질주의다. 버틀러의 주장에 따르면, 섹스는 젠더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구성물이다. 일상적 수행을 통해 특정 젠더로서 '기능'할 뿐이다. 버틀러가 고전 페미니즘의 '여성'이라는 범주에 대해 비판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379쪽) 젠더든, 계급이든, 민족이든 모든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379쪽) 하지만, 여전히!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당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고, 이런 현실에 대한 대응으로서 스피박은 '전략적 본질주의'를 주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382쪽을 읽다가, 나는 저자의 얼굴을 확인하러 구글로 갔다.


『제인 에어』는 19세기 자율적인 여성 주체의 출현을 나타낸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스피박은 이런 여성 주체의 출현이 식민지 출신 여성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다시 말해 식민지 출신 여성을 인간 이전의 상태로 일축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는 여성이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것이 흔히 식민지(그리고 피지배계급) 출신 가사도우미의 원조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명백하다. 따라서 여성이 놓인 조건의 역사와 제국주의의 역사는 분리될 수 없다. 이 둘은 함께 고려돼야 한다. 다만 이제껏 페미니즘에서는 그 작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382쪽)

남자일거라 예상했지만, 굳이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던 건, 페미니즘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것은 식민지 출신 가사도우미의 원조를 전제로 한다'는 그 말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많은 경우 그랬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여성이 해방되고자 간절히 원하는 '그 집안일'은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이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과 평가, 연구가 앞으로도 이루어지겠지만, 그 비판의 목소리조차 나는 여성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자신의 밥을 스스로 잘 챙겨 먹는 사람일 거라 추측하고 싶다. 엄마가, 아내가, 여자친구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으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해러웨이와 버틀러, 스피박 이론의 핵심을 잘 짚어내면서도 쉽게 설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밥 이슈를 빼고는 괜찮았다.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좌반구 살짝 돌았고, 우반구는 다음에 돌기로 하자.

이제부터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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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6-28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사흘 연달아 놀기만해도 될 것 같은 페이퍼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단발머리 2025-06-29 08:21   좋아요 0 | URL
놀기 이틀쨰입니다. 다락방님도 여유롭고 편안한 하루 되시길요^^ 날은 좀 후덥지근하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06-29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어려운 책을 척척 읽어내시는 단발 님께 좋아요를 수십 개 눌러드립니다.
해러웨이, 버틀러, 스피박…이름만으로도 와!
반대쪽 우반구로 빨리 돌아야 멀미가 사라지겠죠?ㅋㅋㅋ

단발머리 2025-06-29 16:29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닙니다 ㅠㅠㅠㅠㅠ 그러나 건네주신 좋아요~~는 다 받아도 되겠지요?
우반구는 다음을 기약해야 합니다. 일단 오늘은 좀 놀고욬ㅋㅋㅋㅋㅋㅋㅋㅋ
 














나의 '눌림 버튼'(제 친구가 제게 썼던 표현입니다. 쓰게 하는 사람. 쓰도록 하는 사람ㅋㅋㅋㅋㅋ) 건수하님의 궁금합니다,의 답을 이렇게 풀어쓴다.

스탠퍼드대 생물학부 박사과정의 올리브에게 안(Anh)은 베프 이상이다. 가족이라 할만한 사람, '내 사람'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자신과 몇 번 데이트를 했던 제레미와 안이 서로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올리브는 두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안은 제레미와의 데이트가 올리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 봐 제레미를 밀어낸다. 안의 표현대로 하면, 이른바 'girl code' 때문이라는 것. 몇 번을 말해도 안이 꿈쩍을 하지 않자 올리브가 생각해낸 계책은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고 안에게 거짓말을 한 것. 오늘도 남자와 데이트하러 간다고 나와서 실험실로 향했는데, 저기 저 복도 끝에서 안이 보인다. 이런 순.




복도에서 마주친 이 남자가 올리브의 '그'가 되어야 하는 순간. "Can I please kiss you?"라고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그에게 키스, 정확히는 뽀뽀를 해버린다. 안은 이 장면을 보고 뒤돌아 갔지만, 문제는 올리브 앞의 이 남자다.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엄격하기로 소문난, 아니 엄격함을 넘어서 잔인하다고 소문난 닥터 칼슨(애덤)에게 키스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말 그대로 오마이갓. 키스 한 번으로 지나칠 줄 알았던 상황은 점점 더 꼬이게 되고, 애덤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이유로 두 사람은 fake relationship을 갖기로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어 가고, 커져가는 감정을 깨달은 올리브는 더 큰 혼란을 겪게 되는데...

내가 읽은 로맨스 소설 작가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작가 알리 헤이즐우드를 읽었고, 콜린 후버를 읽었고, 에밀리 헨리를 읽었고, 린 페인터를 읽었다. 나는 읽었던 모든 로맨스 소설 중에 알리의 이 책을 제일 좋아한다. 이 세계(?)에 들어올 때 제일 먼저 읽은 책이기도 하지만(일명 첫사랑설), 무엇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만난 사람은 작가가 보여준 만큼만 알 수 있다. 그 너머는 어디까지나 상상일 수밖에 없는데, 나는 소설 속에 그려진 올리브와 애덤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두 사람의 말이 만들어내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섹슈얼한 대화가 아니라, 섹시한 대화. 금요일 어느 늦은 밤, 잠깐 쉬는 시간에 복도 의자에 앉아 과자 나누어 먹으면서 과학자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정말 섹시하지 아니한가 말이다. 무심한 듯 들어주는 애덤과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올리브.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정말 로맨틱하지 아니한가 말이다. 나만의 비밀을 털어놓게 만드는 그 분위기, 그 공기, 그 눈빛.



이번 주에는 선물을 받았다. 돈이 있어도 정성이 있어야 구할 수 있는 귀한 선물을, 그러니깐 지금 내게 딱! 필요한 선물을 애정을 담아 보내주셨다. 선물 해당자는 물론 구경하는 식구들 전부 감동을 받았더랜다. 우체국에서 택배 보내시기 전에 갑자기 내 이름을 모르신다는 걸 알게 된 알라딘 이웃님이 전화와 카톡을 주셨는데, 운전 중이라 받지를 못했다. 우체국에서는 '단발'이에게 소포를 배달하겠다는 톡을 보냈다. 오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이름을 알려드리고, 친구들에게 자주 보내는 뉴스 캡처본도 같이 보내드렸다. 계엄이 터지고 얼마 안 돼서 뉴스에 내 이름이 나온 화면인데, 화면 속의 그 사람이 '나'는 아니지만, 그 이름이 내 이름인 것은 진실이니깐. 문재인 대통령과 유시민 작가와 나란히 이름 나오는 거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는 순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장면이니깐.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웃님에게서 답이 왔다.

"본명 숨겨"

움하하하하하하하하~~~ 비밀이 하나 더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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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8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6-28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5-06-28 11:53   좋아요 1 | URL
일전에 이웃님 한 분도 그 말씀 하셨던것 같아요. 저도 일면 공감합니다.

2025-06-28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6-2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5-06-28 11:55   좋아요 1 | URL
그건 비밀 아니고요 ㅋㅋㅋㅋㅋ저의 하트도 좀 받으세요! ❤️🧡💛💚🩵💙💜🩷

건수하 2025-06-28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눌림버튼이란 말에 기뻐하며 글을 다 읽고 나니 제가 뭘 궁금하다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ㅋㅋㅋ

제가 진짜 연락처 달라는 말씀은 아니었구요 ㅋㅋ 진심반 농담반?

어쨌든 단발머리님 글을 하루에 두 개나 봐서 좋습니다 ^^

단발머리 2025-06-28 14:39   좋아요 0 | URL
이 책이 교수랑 학생 로맨스라.... 저어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로맨스와 권력 관계의 미묘함에 대해서는 저도 여러 번 글을 쓰기는 했는데, 제가 좀 나이브하게 보는 것 같기는 합니다.

진심이 앞에 있어서 진심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또 글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포스트 여성성/ 도나 해러웨이-주디스 버틀러-가야트리 스피박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충성!

다락방 2025-06-28 14:47   좋아요 1 | URL
오오 도나 해러웨이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이라니, ㅋ ㅑ, 기다리겠습니다!!

단발머리 2025-06-28 14:48   좋아요 0 | URL
‘쓰고 있어요‘ 🤣😆😎

망고 2025-06-28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표지 그림이 저런 이유가 있었군요 첫 만남이 입술 만남이었다니😚

단발머리 2025-06-29 08:39   좋아요 1 | URL
원래의 첫 만남은 다른 시간, 다른 장소였는데요. 올리브가 기억을 못한 관계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 표지의 저 그림이 공식적인 두 사람의 첫 대면이네요. 그러고 보면 이전의 마주침은 뭐랄까.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흑백 같다고 할까요. 저 순간에 두 사람의 세계가 비로소 컬러로 보이기 시작했다는ㅋㅋㅋㅋㅋㅋ
망고님, 오늘 좋은 날 되세요. 계속 비가 오다말다 해서 좀 흐리기는 하지만요^^

책읽는나무 2025-06-29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재인 대통령과 유시민 작가 이름과 나란히?
저는 제 본명을 좋아하지 않아 남의 예쁜 이름, 특이한 이름에 관심 많다가도 때론 심드렁하다가 좀 그렇거든요. 아닌가? 관심 많은가?🙄
암튼 심드렁해지려고 했는데 아니. 두 분의 유명하신 이름 특히나 제가 좋아하는 두 분의 이름과 나란히 하는 이름이시라니?
갑자기 궁금하네요.ㅋㅋㅋ
서…설마 지금 제 머릿 속에 갑자기 떠오른 그분의 이름은 아니겠지. 설마?! 그러면서 댓글 달고 갑니다.ㅋㅋㅋ

그리고 하필 이렇게 더워져 가고 있는 이 시점에 끈적한 로맨스 소설 이야기라니..ㅋㅋ
그것도 다짜고짜 키스로 시작하다니…쫌 덥네요. 더울 땐 호러물이었는데 이열치열이라고 로맨스물이 여름에 읽기 더 좋은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ㅋㅋㅋ

단발머리 2025-06-29 16:32   좋아요 0 | URL
나란히 있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나란히 나란히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궁금증이 잘 해소되셨을거라 생각하니 기쁘네요!
더워지는 때에 끈적한 로맨스 소설은, 진짜 반대입니다. 이럴 때는 부산 밀면을 먹고 후식으로 아메리카노에 달달한 디저트를 ㅋㅋㅋㅋㅋㅋㅋㅋ먹으면 좋겠지요? 신기한 거는 <하우스메이드> 읽을 때 좀 시원하더라구요. 무섭고 덜덜 떨리고 콩닥콩닥!
 














나는 외국 소설보다 한국 소설을 읽을 때 힘들다. 물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 일상의 삶을 사실적 문체로 나타내는 리얼리즘 문학도 불편하기는 한데, 아무래도 제일 불편한 건 역시나 한국 소설이다. 이 소설의 고민, 이 소설 속 주인공의 난관이 뭔지 알 것 같을 때, 번역이라는 필터 없이 감정의 진동이 훅 치고 들어올 때, 그럴 때 힘들다. 이전 세대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현시대의 소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잘 읽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 읽지를 못한다. 차라리 저기 머나먼 나라, 바닷가의 중세식 고성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나 이탈리아 나폴리의 식당에서 셰프로 일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게 속이 더 편하다. 현실 도피형에 더해 갈등 회피형인 나의 엄연한 현실이다.

프리다의 Housemaid 시리즈 세 번째 책인 『The Housemaid is Watching』의 배경은 미국이다. 2,30여 년 전쯤이라고 해야 할까. 미국 교외에 집을 장만한 한 가족이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먼 나라 이야기이고, 그래서 나는 편안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는데....

핵가족 이데올로기의 정점 딸 하나, 아들 하나, 남편 하나, 4인 가족의 생활이 너무나 한국적이다. 시작은 이사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우리 집을 마련했을 때의 행복과 두려움, 전학 가게 된 아이들이 새 학교에서 잘 적응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 아이들에게 놀이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한 (엄마의) 필사적인 노력,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의 묘한 긴장감,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친구들과의 다툼. '죄송합니다'로 시작되는 사과의 말씀. 내 아이가, 내 아들이 유독 폭력적인가, 혼자 되묻는 시간. 사건과 고민과 갈등의 전개가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어머, 이 소설이 장르가 뭐야? 하고 다시 묻게 된다. 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건 딱 하나, 플러팅. 이웃집 여자의 적극적인 플러팅.


내 남편이 너무 잘생기고 멋지고, 말 그대로 완벽 핫가이라서 눈을 뗄 수 없다는 건 이해하겠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눈을 뗄 수 없다는 걸 이해하겠다는 의미의 '이해한다'이다. 그건 본능에 충실한, 그래서 자주 '자연스럽다'라고 불리는 행동이다. 핵심은 그 행동의 제어와 관련이 있다. 빤히 쳐다보는 것보다는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좋다. 쳐다보고 있는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다. 결혼한 지 이제 12년 차. '나'(화자)의 남편은 항상, 언제나, 일관되게, 어김없이 핫가이였고, 어디서나 여자들의 집중 공략을 받아온 사람이어서, 화자는 그런 상황에 일면 익숙해진 상태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다른 여자들이 힐끗대거나 가까이 다가와 핫가이와 대화를 시도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앞집의 이 여성, 시선이 노골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자신의 매력을 새로 이사 온 이웃집 핫가이에게 어필하고 싶은 이 여성은 그와의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의심스러운 지점은 여기다. 나는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고,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책', 그중에서도 '소설'을 통해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전에 미국에서는, 혹은 현재 미국에서는, 이런 시도를 하는 여자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러니까, 이웃집 남자의 팔을 혹은 이두박근을 더듬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핫가이의 아내가 옆에 있는데, 자신의 남편이 바로 옆에 있는데, 이웃집 남자의 팔을 쓰다듬는 여성이 있단 말인가.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The Love Hypothesis』에서 올리브는 교수 애덤과 사귀는 척을 하고 있다. (여차 저차한 이유 때문인데, 그 이유가 궁금하신 분들은 개인톡 바랍니다.) 올리브와 그녀의 친구들은 학과에서 주최하는 프리스비 경기에 반강제로 구경을 가게 된다. 작열하는 햇빛, shirtless 남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올리브와 애덤이 진짜 사귀는 줄 알고 있는 올리브의 베프 안(Anh)은 올리브더러 애덤에게 선크림을 발라 주라고 말한다. 올리브는 안 된다고 펄쩍 뛰고, 오히려 안이 놀란다. "왜? 왜 그게 부적절한 일이야?"



하여, 올리브는 안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학과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잔뜩 모인 그곳에서 애덤의 등에 선크림을 발라 준다. 이건,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할만한 행동이라고 한다. 안이 그랬다.


여기, 할만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아까 그 여성분 되시겠다. 자신의 남편을 바로 옆에 버려두고, 핫가이의 어깨에 정성 어린 손놀림으로 선크림을 발라주는 이 대담함. 이 과감성, 이 적극성.




진짜 세상은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책에 있는 것이 모두 다 현실인 것도 아니겠지만, 이렇게 다시 내 의심은 한껏 솟구쳐 오른다. 연애할 때 남친은 물론이요,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의 손도 잘 잡지 않는 한국의 한 중년 여성은 그게 정말 궁금하다. 정말 이래? 그래, 정말? 일단 등 내밀고 있는 핫가이의 얼굴 한 번 더 보고, 다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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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6-27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소설 속 그 이웃집 사람들 설정이 너무 과한데 혹시 다른 반전이 있는 거 아닐까요? ㅋㅋㅋㅋ남편이 보는 앞에서 저런 행동을 한다는 건 세계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 할거 같아요.
저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속에선 1950년대 뉴욕 상류층 등장인물 중, 남편이 많이 어린 아내에게 충고랍시고 행동을 타박하며 가르치는데 남자 손님들 한테는 악수하지 말고 고개만 기울여 주라고 하더라고요ㅋㅋㅋㅋ
저 소설 속 남편은 왜 가만 있었을까...혹시 그도 핫가이에게 반했나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6-28 11:51   좋아요 1 | URL
일단 소설이라 좀 과하게 한 면이 적지 않을거라 생각하기는 해요. 없겠지요, 아마도? ㅋㅋㅋㅋㅋㅋㅋ근데 이 핫가이의 매력이 마성의 매력이라.... 소설 속 표현을 따르자면, 자기가 필요하다 싶으면.... 어필을 한다고 해요, 매력 어필이요. 다른 액센트를 쓴다고 나오는데, 그니깐 필요하면 언제든지요. 이 상황은 그걸 안 써도 이웃집 여성이 과감하게 ㅋㅋㅋㅋㅋ 비키니 입었어요. 장소가 바닷가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비키니 입으려고 그리로 초대한 걸수도.
남편은...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인데, 아내한테 아주 꽈악! 잡혀사는 사람인데요. 암튼 문제가 있는 사람이긴 한데, 거기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에요. 망고님 소설 속 남자하고 아주 정반대네요. 왜 이렇게 극단적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5-06-27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개인톡을 드리고 싶습니다. 연락처를 주세요! 🤪

Love Hypothesis는 영화화 안되었나요? 윗분은 좀 부담스럽고 등내밀고 있는 애덤은 귀엽게 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단발머리 2025-06-28 12:01   좋아요 0 | URL
개인톡 주실 수 있도록 번호를 기쁘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화는 아직 안 된거 같아요. 제가 ㅋㅋㅋㅋㅋ 방금 채경이에게 물어보니 판권 팔리고 각본 완성되고 감독도 정해졌다고 하네요. 출연진 확정이 아직이래요. 애덤이 귀여운 외모는 아니지만ㅋㅋㅋㅋㅋㅋ행동이 귀엽기는 합니다. 엄청나게 큰 사람이 캐스팅되어야 원작의 느낌은 잘 살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앞으로가 기대되네요.

독서괭 2025-06-28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3권에서는 딱 저희같은 가족구성원이 등장하는군요? 플러팅은 여기 현실에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만 ㅋㅋㅋㅋ 하지만 불륜이 그렇게 많은 거 보면 알쏭달쏭 ㅋㅋ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 하진 않지 않나요 느무하네 이웃집여자…
저 2권 열씨미 읽고 있습니다. 2권은 초반부터 쫄리게 만드는군요 ㅠㅠ 곧 파트 1이 끝나는데 파트1 엔딩에서 또 무슨 폭탄이 기다릴지??

독서괭 2025-06-28 08:49   좋아요 2 | URL
아 그리고 단발님이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의 마음 편함에 대해 하신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단발머리 2025-06-28 12:03   좋아요 1 | URL
불륜이 그렇게 많은 거 보면 알쏭달쏭ㅋㅋㅋㅋㅋ이기는 합니다. 저렇게 대놓고는 하지 않을거 같아요. 이도저도 다 보기 싫을 거 같기는 하구요. 너무한 분입니다, 그 분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권 읽고 계시는군요. 저는 2권보다 1권이 더 좋기는 했지만, 아주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독서괭님, 폭탄 잘 피하시길 바라고요.
다 읽으신 후에 폭풍 페이퍼 부탁드립니다.

단발머리 2025-06-28 12:07   좋아요 1 | URL
‘먼나라 이웃나라‘ 공감 매우 감사합니다.
저는 현실을 중시해야 한다 말하면서도 자꾸 먼나라에 가려고 합니다.
이 무슨 일일까요? 저의 이 현실 도피... 어찌해야 합니까?
설거지 미뤄두고 알라딘 하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빨래 쌓아두고 알라딘 하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6-28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썬크림 바르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많은 공개석상에서 발라주는것도 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중 1인 입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은밀하지 않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해변가에서 서로가 다 서로에게 발라주고 그러니까 괜찮은건가, 그렇지만 너무나 프라이빗한 장면이 모두 앞에서... 라서 좀 당황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세번째 시리즈 였을텐데요, 그레이랑 아나스타샤가 살 집을 설계를 맡기는데, 아나스타샤가 옆에 버젓이 있는데도 설계사인 여자가 노골적으로 그레이를 유혹하더라고요? 쟤네들은.. 왜저럼? 뇌가.. 없나? 막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무슨 생각으로... 정확히 그 장면이 어땠는지는 기억 안나는데 신체적 접촉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레이가 나한테 묻지 말고 내 아내한테 물어라, 고 해서 옆에 아나가 있음을 다시 인식시켜주긴 하는데, 아나스타샤가 아내인걸 알았든 몰랐든 어떻게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노골적 플러팅을 할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면 저는 참... 고지식한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되는게 너무 많습니다!!

단발머리 2025-06-29 16:3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니깐, 선크림을 자기가 바를 수 있는데, 왜 누가 발라줘야 하는지 말이지요. 저 소설에서는 선크림을 발라줄 수 밖에 없는 ‘설정‘이 있긴 했잖아요. 일단 핫가이들이 shirtless여야 하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그 장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그 장면 기억나요. 그 여자 입장에서는 아나스타샤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사람으로 보였던 거 아닌가 싶어요. 니가 누구든, 상관 없다. 근데 그게 딱 걸리는건, 그레이가 선을 정해줬을 때요. 이 사람이 내 아내될 사람인데... 그런거 보면 역시나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가. 이 속담을 저는 싫어하거든요. 근데, 그 장면에서는 이 속담이 생각나더라구요. 너랑 나는, 다음도 없다. 나는 아내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너한테 중요한 그 결정을 내려줄 사람이다.

참... 고지식한 다락방님을 저는 좋아합니다. 그 중에 일면이 저랑 통하는 것 같고요. 안 되는 거에 대해선 다음에 진지한 대화를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누어보아요~~~

책읽는나무 2025-06-29 1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의 리얼리즘. 그거 뭔지 알아요.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눈을 떠 김애란 작가의 옛 단편 하나를 읽었거든요. 아…ㅜ.ㅜ
너무 내 얘기 같아서 좀 몸을 가만히 놔둘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었죠. 그럴 땐 단편을 쭈루룩 못 읽어요. 마음이 좀 힘들어서요.ㅋㅋ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만 읽고 좀 가벼운 책들 다시 잡고 기분을 날려버리거나 유튜브 웃긴 걸 보거나…
안그러면 침체된 기분이 며칠 가더라구요.
그럼에도 그런 소설을 부러 찾아 읽게 되더라구요. 왜 그렇지? 생각해 봤는데 내가 소설을 통해서 반성?하려고 그런가? 이제부터 나는 저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또는 후회되는 행동들이 되살아 나 앞으로는 상처주는 행동을 하지 말자.(물론 돌아서면 바로 까먹습니다만.^^)
뭐랄까요. 소설을 약간 자기계발서 읽듯 읽는 경향이 있달까요? 좀 웃기죠?ㅋㅋㅋ
단발 님이 한국 소설 이야기 하시니까 제가 오랜시간 생각해온 한국 소설에 대한 저의
자세를 들려드리게 되네요.ㅋㅋㅋ
그리고 저의 외국 소설에 대한 자세는 제가 너무나 보수적인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닫게 해줘서 자꾸 기피하게 되더군요.
저도 단발 님이 지적하신 그런 대목처럼 도통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많아 나쁘다. 나쁘다. 그러면서 읽고 있는 겁니다.ㅋㅋㅋ
외국엔 정말 다들 그렇게 쿨하게 거리낌이 없는 건가? 내가 너무 고지식한 건가? 물음표가 몇 개가 생겨 버리니까 감정 이입이..ㅜ.ㅜ
저도 사실 울 남편이 다한증이라 손도 안 잡고 팔짱도 잘 안 끼는 사람인지라…그래서 더 공감을 못하는 걸까요?ㅋㅋㅋ
어쨌거나 소설의 단점을 막 열거하면서도 제일 많이 읽는 건 늘 소설이란 게 좀 아이러니하네요.^^

단발머리 2025-06-29 16:50   좋아요 0 | URL
너무 내 얘기 같아서.... 가 무슨 말인지 알거 같아요. 저는 예전에 시어머니 입원하신 병원 가는 길에 아니 에르노가 엄마 병원 가는 장면 나오는 거에요. 읽다가 말았습니다 ㅠㅠㅠㅠㅠ
저는 책나무님 댓글 읽으면서 책나무님 얼마나 착한 마음을 가진 분이신지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죄송해요~~~~ 이런 말이 싫으실수도 있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저는 소설 찾아 읽다가 반성을 안 하고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변명을 해요. 이것 봐, 다 이런 거야. 이것 봐, 나만 잘못한 거 아니야! 이렇게요. 오늘 책나무님 댓글 읽으면서 저도 책나무님 방법을 한 번 적용해봐야겠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어로 된 시,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건강하고 탄탄한 출판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많이 못 읽는 저로서는... 이것 또한 변명입니다.

저는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는 <하우스메이드>가 무겁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쪼금 무섭기도 했구요^^
 





















쓰지 않은 말을 읽기.
꼭 하고 싶은 말을 짐작하기.
내내 기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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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5-06-27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욕하지마요, 무섭쟈나

단발머리 2025-06-27 08:39   좋아요 0 | URL
이것은 욕이 아니오며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은 심장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은 하트 & 빨강 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5-06-27 08:57   좋아요 1 | URL
심장! 표지도 바바, 시뻘개!!!!

단발머리 2025-06-27 08:58   좋아요 1 | URL
언니~~ 저는 한결같이 파랑이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6-27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이 사용하지 않을 단어인데 하고 눌러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단발머리 2025-06-27 17:35   좋아요 1 | URL
아련한 시간, 따뜻한 공간이었어요. 어제 저 시집 읽다가 저도 한참 웃었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6-27 17:55   좋아요 1 | URL
확실한 건 시인은 이제 좋아하지 않는다_ 로 ㅋㅋㅋㅋ 난해합니다 시의 세계란
 














보통의 경우, 독자는 '나'에 감정이입하기 쉽다. 특히 작중 화자 '나'가 독자와 동성일 경우, 비슷한 연배일 경우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The Housemaid』의 housemaid, 오늘의 주인공 밀리에게 동일시하는 게 자연스럽다. 밀리는 비밀을 숨긴 채 나타난 사람이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고,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진 사람이며, 이상한 구조의 다락방에서 오늘 밤 잠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밀리에게 동일시하지 못했다.

"Who has the time?"

I bite back any kind of judgemental response. Nina Winchester doesn't work, she only has one child who's in school all day, and she's hiring somebody to do all her cleaning for her. (5p)

직업이 없는 여자가 집안일을 소홀히 한다는 비난조의 말투에 턱, 걸렸다. 집안일에 도움을 받기 위해 밀리를 고용했는데, 그러니깐 그런 필요가 밀리에게는 '고용 창출',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중요한 일자리가 되었는데, 밀리는 이 일을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데, 그랬는데도 밀리는 자신을 고용을 결정한 니나를 무시한다. 니나를 미워한다. 그런 니나와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앤드류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직업이 없고 돌볼 아이가 한 명인데도, 집안일에 소홀히 하는 어떤 여자. 왜, 앤드류는 니나 같은 사람과 결혼을...









직업도 있으면서 집안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여성도 있을 테다. 다만, 그런 여성들은 혹실드가 지적했던 second shift, '2교대제'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예상해야 한다.

'과도기적 결혼(transitional marriage)' 유형은 부부간 동상이몽의 사례로, 부인은 일터와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이 동등하게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일 우선 이데올로기를 고수한다. 부인은 가족생활 밖의 경제 영역으로 이동해 갔지만, 남편은 아직 가족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혹실드는 과도기적 결혼 유형이 가장 빈번히 관찰되는 현실이야말로 "정체된 혁명"의 증거라 주장하고 있다. (『앨리 러셀 혹실드』, 15쪽)

그렇다면, 직업도 없으면서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여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은 결혼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직장일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직업도 없으면서'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다른 방법은 직업은 없지만, 전업주부로서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다. 완벽한 '가정의 천사'로 사는 것이다.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은 의사이며 경제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김현철 씨의 저작이다. 의사라서 관찰할 수 있는 지점과 경제학자만의 분석의 조합이 절묘할 뿐만 아니라, 선정한 의제들도 관심을 끌만하면서도 중요한 주제들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꿈꾸다>라는 챕터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에 대한 부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 오세훈 시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사업이다. 홍콩과 싱가포르, 타이완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긍정적으로 운용된 사례가 소개되는데, 가사 노동의 상당 부분을 이미 외주화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가사, 그중에서도 육아를 전담시킨다는 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읽고 있노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이 제도가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을까 싶다.

아이의 엄마, 돌보는 일을 전적으로 맡을 것을 강요받는 기혼 여성이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학업을 계속하고 논문을 써야 할 때,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는 완벽한 해결책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특별히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 때, 돕는 손길이 간절한 고용인 입장에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임금 착취'로 고통당하는 '제3세계 여성'으로 보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이며, 금전적으로는 내게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여하튼,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은 그 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요는 직장을 그만두고 제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어 하는 여성과 남성이 '아이를 직접 키울 권리'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자아실현과 커리어, 그리고 소득의 이유로 직장 생활을 계속하길 원하는 여성과 남성이, 워킹맘 혹은 워킹대디로 일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아이의 보육과 교육에 투자하고, 아이의 성장과 건강한 삶을 위해 아이와 부모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고민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지만,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모델처럼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 대한 현금 지원을 대폭 상향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고, 양쪽 부모가 육아 휴직을 신청, 이용할 뿐만 아니라, 그 기간의 임금을 보전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은영 씨가 텔레비전에 나오기 훨씬 전, 혹은 이렇게 유명해지기 전에 읽었던 그의 책이 있다.

불안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일하는 엄마라면 '나는 사회적 성취와 경제적인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를 일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스스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전업주부인 엄마도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구나'라고 인정하고, 이렇게 살면 자신의 삶이 도태될 거라는 오해는 버려야 한다. 인정하고 오해하지 않아야 불안이 해결된다.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236쪽)

오랜 시간 전업주부였던 나는 아이들 때문에 내 삶이 도태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새로운 직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보니, 도태된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사회 구성원 중에 한 명으로서 사회 속에서 내가 아무런 자리를 갖고 있는 못하다는 게,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는 게 좀 아쉽기는 했다. (아, 그게 바로 삶이 도태되었을 때의 모습인가?) 오랜 시간, 나의 이런 상황이 자발적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내 체력을 고려했을 때, 그 '어쩔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아이들은 내 품이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고, 부모로부터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사춘기를 거쳐, 이제 성인이 되었다. 요즘이라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건 엄마가 아니라, 용돈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한 시절이 지나간 것에 대해 기쁘게,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과거의 결정을 부정하는 건 힘든 일이다. 공들였던 시간과 에너지를 부정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내 생각은, 내 마음은 자기합리화와 변명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최선이라 생각했던 나의 선택이 내게 선사했던 기쁨과 웃음이 거짓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암담함과 두려움 역시 여전히 내 몫이라는 걸 안다. 세상이 두려운 중년 여성, 잘하는 게 하나 없는 경단녀가 되었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한다.

하우스메이드 시리즈를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유려한 문장과 치밀한 구성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좀처럼 스릴러를 읽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적당히 무섭고, 꽤나 재미있는 소설이어서, 다른 책들도 연달아 읽어야겠다 생각이 든다. 핫가이가 계속 나온다. 아플 때 아니면 사시사철 '아이스!'를 외치는 철없는 나도 핫가이가 좋다. 가이라면 역시 핫가이. 게다가 스윗한 핫가이다.

파란 6월이 가고 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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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6-24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하우스 메이드 웨딩이라뇨. 제가 3편까지는 알았지만 웨딩까지 나온 줄은 몰랐네요. 과연 ..
저 코워커 번역서로 사뒀습니다. 아직 읽진 않았지만요.

저는 소설을 읽을 때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어떤 인물들에게 대입하게 되기는 하거든요. 물론 주인공인 경우가 많지만, 대체적으로 아픈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더 이입하는 편이긴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데 하우스메이드를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저 역시 밀리에게 이입하지는 못하겠다는거에요. 밀리라면, 제 경우에 좀 떨어져서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인것 같아요. 거리두기가 되는 인물이랄까요. 가사노동과 고용자에 빗대어 단발머리 님은 말씀하셨지만 제 경우엔, 엔조를 유혹하는 지점에서 좀 튕겨져 나와버려요. 외국의 문화와 차이가 있기도 하겠지만 저라는 사람이 꽉 막힌 구석도 있어서, 이 유부남 원하는데 안되니까 이 총각 꼬셔보자, 하는 지점에서 나랑은 너무 다른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 단발머리 님은 지적인 글을 쓰셨는데 저는 너무 원초적 댓글을 달아버렸네요.

단발머리 2025-06-24 14:50   좋아요 0 | URL
있더라구요, 웨딩이 ㅋㅋㅋㅋㅋ 그 책은 보너스 챕터 분위기에요. 이북으로 76쪽이구요. 그냥 작가가 서비스 차원에서 쓴 거 같아요.

아픈 사람에게 이입한다는 다락방님 댓글 보니... 그것도 소설을 읽는 좋은 방법인것 같아요. 아픈 사람, 고통 당하는 사람, 궁지에 몰린 사람이 보통 주인공이잖아요. 밀리가 엔조를 유혹하는 지점에서 튕겨져 나왔다는 거 완전 공감하고요. 저는, 밀리가 니나랑 앤드류 사이에서 눈치 없는 말을 할 때, 쟤 왜 저러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상황으로는 저도 니나 미워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밀리에게 이입이 안 되어서요.

원초적 댓글을 저는 좋아합니다. 뜨거운 댓글도 환영하고요. 아, 핫가이 댓글도 좋아합니다.
플러팅에 대해서 글 하나 쓰려고 하는데..... 아무튼 짧게라도 써보려고 해요. 기다리지 마시고, 기대하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6-24 10:58   좋아요 1 | URL
기다리고 기대합니다. 얼른요, 얼른!!

책읽는나무 2025-06-24 2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번역서를 신나게 읽은 자!ㅋㅋㅋ
저는 어느 쪽에 이입했을까? 생각해보니…밀리가 엔드류에게 마음이 갔을 때부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고..엔조의 가슴에 손을 얹었을 때도 뜨악! ㅋㅋㅋ
니나가 악다구니를 퍼붓고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사람을 미쳐버리게 상황을 조작하는 와중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밀리에게 한 번씩 고맙다고 인사를 몇 번 했었거든요.
그때 니나에게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밀리에게 완전히 이입되지 않았던 듯 해요.
신나게 읽을 땐 좋았었는데 다 읽고 나선 하우스 메이드가 아닌 다른 직업과 설정을 했었음 어땠을까? 이성적 유혹을 이용한 것, 그리고 결국 밀리는 넘어가고…그런게 좀 안타까웠어요.
아, 안타까웠다는 건 이미 밀리에게 감정 이입을 한 걸까요?ㅋㅋㅋ

저는 전업주부로서 애들은 많이 커가고 있는 요즘따라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 조금 고민이 생기곤 하거든요. 하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인데 이것도 좀 이기적인 것인가, 싶기도 하구요. 그런데 단발 님이 인용해주신 문구가 큰 위로가 되네요. 인정하고 오해하지 않아야 불안이 해결된다. 세뇌해야 할 문장이네요.ㅋㅋㅋ

단발머리 2025-06-28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두 번의 경우 다 뜨악~~ 했어요. 책나무님이 니나에게 뭔가 있는 것 같다고 느끼셨다는 그 지점이 참 놀라워요. 뒤쪽 내용 모르는데, 그냥 그렇게 느끼신 거잖아요. 저는ㅋㅋㅋㅋㅋㅋ 니나에게 다른 이유가 있다고 느꼈다기 보다는 너무 억울하더라구요. 그니깐 집안일도 잘 못하고, 잘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여자의 입장에서, 바로 제 입장ㅋㅋㅋ 억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데 나중에 짜잔~~~!!

위의 글에도 썼지만, 저는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업맘이 되었다, 이런 생각이 강했거든요. 원망하지는 않았는데, 이게 나의 최선이 아니었다, 뭐 그런 생각이요. 오박사님 저 책 읽고 그냥 저의 그런 과거와 선택을 받아주기로 했어요. 그 때, 나는 내 아이를 내가 키웠으면 좋겠다~~ 하고 결정했던 거요. 그것 역시 제 선택이었음을 받아들였어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쪼금 편안해지더라구요. 책나무님께도 그 책이 위로가 되었다고 하니, 제가 더 좋네요. 헤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서울은 덥습니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