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을 본 건 박근혜 탄핵 집회에서였다. 교보빌딩 앞 차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이재명 시장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고, 그 뒤를 몇몇 지지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생각보다 키가 작았다. 혹은 작다고 느껴졌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박근혜에게만 집중하기에도 바쁜 나날이었다.


내 손으로 뽑은 첫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부터 이후까지 여러 번의 선거가 있었고, 그 세월 동안 나는 한결같이 파란색 당 지지자다. 당원은 아니지만 당과의 일체감은 어떤 열성당원 못지않다. 하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이재명에게는 약간 걱정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니깐, 이재명이 싫다거나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그의 정책과 집행 능력이 과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받아들이기에,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에 그의 정책은 아직은 '과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나쁜 쪽으로는 아니었고, 좋긴 한데 가능할까, 이런 느낌이 강했다. 적절한 예가 없어서 급조한 예를 들어보자면. 그러니까 내게 이재명은.


사고 싶은데 가격이 좀 나가는 근사한 원피스 같은 느낌이었다. 원피스가 필요하다. 내 몸에 잘 맞고 나를 근사하게 만들어줄 원피스. 차려입어야 하는 자리에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가끔 생기는 그런 자리에 입고 갈 만한 원피스가 필요하다. 길이도 적당하고 색상도 얌전(네이비)하고 좋은 재질의 원피스. 나의 단점을 커버해 주고 나를 우아하게 만들어줄 디자인의 원피스. 마침, 그런 원피스를 발견했다. 원래는 더 비싼 제품인데, 지하 1층 행사장에 전시된 제품이라 4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고민의 핵심은 가격에 있지 않다. 원래 가격이라면 어림도 낼 수 없겠지만, 이 가격이라면 구매를 고민해 볼 만하다. 이걸 하나 구매하면 생각보다 오래 입을 수 있겠다 그런 생각도 든다. 가격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옷이 너무 좋은 옷이라는 데 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옷을 입어도 되나. 내가 이렇게 비싼 옷을 사도 되나. 내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나.

내게 이재명은 그런 느낌이다.


이재명이 대통령인 나라에 내가 살 수 있다고?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재명이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는 그 일이 6월 3일 화요일 밤에 이루어졌고, 그렇게 이재명은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이 되었다. 과한 옷을, 내게 과한 옷을 드디어 선물 받고 만 것이다. 생일도 아닌데, 특별한 기념일도 아닌데. 나는 받고야 말았다. 이재명이라는 선물을. 이재명이라는 근사한 선물을.

취임 선서 낭독 후 첫 일성이 국회 청소 노동자를 만나는 일이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영상도 보았다.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이재명 대통령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일렁인다. 대통령에 대한 보도가 쏟아진다. <소년공, 대통령 되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서민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면, 대선 토론장은 가장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 간의 '고통 경쟁', '고통 호소'의 장이 될 것이다. 그 고통을 이기고 성공한 사람, 유력한 정당의 대표가 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당 대표와 대통령이 되는 길은 비슷하면서도 똑같지 않다. 가끔 국민들은 바보 같은 결정을 하기도 하지만, 곧 그 결정을 철회하기도 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오랫동안 사람을 잘못 볼 수는 없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난,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사람들은 그걸 '예술적 승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렇게 변신했을 때, 그 영광은 이전의 고통과는 물리적으로도 화학적으로도 완벽하게 다른 형태와 모양을 지닌다. 나쁜 것에서 가끔 좋은 것이 나오기도 하지만, 나쁜 것에서 반드시 좋은 것이 나오는 건 아니고, 고통과 고난, 그리고 고생이 주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라는 건 확실하다. 고통은,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이며, 중단시키고 싶은 어떤 순간이다.

이재명은 자신의 고통, 자신의 고생,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잊지 않고 반복해서 말한다. 자신의 과거, 자신의 계급, 자신의 출신에 대해 자랑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틈만 나면 자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걸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고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종종 아니 자주. 나의 과거, 나의 계급, 나의 출신에 대해 부정한다. 부정하고 싶다. 그건 말하기 싫은 어떤 것이고,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것이 현재 나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벗어난 사람만이 되돌아갈 수 있다. 극복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재명의 훌륭한 점, 그의 범상치 않음은 자신의 고통,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태도에 있다. 14살의 아이가 여기저기 공장을 전전하며 남의 이름을 빌려 취업을 하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팔에 장애를 입고 나서도 계속해야만 하는 삶이라는 굴레를, 그 끈질김을 그가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 ~라떼는 말이야,라고 말하며 그곳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행세하지 않았다는 것. 스스럼없이 청소 노동자의 손을 잡고 한 사람, 또 한 사람의 손을 맞잡는다는 것. 내가 이재명에게 사로잡히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유능함은 지도자에게 당연히 필요한 덕목이다. 중고생 교복 무상 지원과 산모를 위한 공공산후조리원 설립, 어린이집 등 보육 시설 과일 공급과 만 24살 청년들에게 지급된 1인당 100만 원의 '청년 배당'. 공약 실천율 89%의 이재명은 유능한 행정가이다. 일개 자치 단체장에서 대통령까지의 영전은 그의 행정 능력을 시민들이 알아봐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능한 사람이 좋다. 말을 알아듣는 사람, 말을 잘 알아먹는 사람이 말 그대로 국민의 '심복'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도 혼자 생각한다. 혼자만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건 마음인가. 따뜻한 마음. 약한 사람에게 먼저 찾아가는 마음.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그 처지의 자신을,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는 마음. 자신의 성취를 뽐내지 않으면서 먼저 손 내미는 마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마음인 건가. 진공 청소기를 돌리며, 대통령의 첫 일성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내가 했던 생각이다.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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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6-05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재명 대통령을 잘 모르지만, 단발님이 ‘과분한 느낌‘으로 비유해주시니 기대해 보고 싶네요!

단발머리 2025-06-05 13:18   좋아요 1 | URL
혼자 하는 건 아니니까요. 대통령이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근데 이전 정부 보면 딱 그 대통령에 그 장관, 그 정도의 사람들이 같이 모여 일 하더라구요.
좀 다를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걱정스럽기는 합니다만, 그래도요. 기대고 싶습니다.

잠자냥 2025-06-05 1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첫 행보가 청소노동자 찾아갔다는 기사 보고 좀 울컥하더라고요.
퍼포먼스라고 할지라도, 그런 퍼포먼스조차 개념에 없던 정부 이후 그런 모습을 보니.. 눙물이...
이제야 뭔가 정상으로 돌아온 느낌....ㅠㅠ 3년 동안 뭘 본 건지....

단발머리 2025-06-05 13:2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잠자냥님. 퍼포먼스라도 말이지요. 저는 퍼포먼스가 나쁘다고 생각 안 하거든요. 하는 척도 안 했던 그 무도한 정부를 우리가 3년이나 봤던 거 아닙니까. 못 볼 거... 우리가 많이도 봤지요.
한 번에 안 되겠지만, 아무튼 사회대개혁의 발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두 다 만족할 수 없겠지만....
제 소원 여기에 하나 말해도 돼요? 최저임금인상. 전폭 인상을 저는 일단 신청해 봅니다 ㅎㅎ

잠자냥 2025-06-05 14:05   좋아요 1 | URL
전 성별에 관계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살포시 놓고 갑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6-05 15:22   좋아요 0 | URL
저는 비정규직에 1.5배 임금 지급 살포시 놓고 갑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06-05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뉴스보다가 저번 대선 시장에서 한 연설이 나오는데 갑자기 울컥해서 얼른 방에 들어왔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그래도 고생을 해 본 사람, 경제적으로 좀 궁핍해 본 적도 있고 이것저것 경험도 많이 해본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정말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공감할 수 있으니까... 머리로만 아는 것과 실제로 경험해서 아는 건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단발머리 2025-06-05 18:02   좋아요 1 | URL
아.... 네, 망고님 말씀도 맞아요. 어려운 상황에 처해 봤던 사람이 그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거에요. 정말 그렇죠. 저는 어렵게 살다가 쌩 깐(?) 사람들, 더 지독한 사람들 많이 봐서요 ㅠㅠㅠㅠㅠ
간절한 마음 변치 말고 부디 국민을 위한 정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wonderful 2025-06-05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지않고 일 열심히 할거같아요. 믿음이 갑니다.
 

















독서괭님의 <영어책 같이읽기> 공지를 보고 참여할 생각을 했던 건 아닌데(아닌데 ㅋㅋㅋㅋㅋ) 책에 자꾸 눈이 가기는 했다.

분명 아는 책인데, 읽지 않은 책이고. 저 책을 산 것도 같은데, 사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청소년용 영어책으로 잘 알려진 책이라 표지가 눈에 익어 그런 걸까. 일단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했다.









원서의 판권을 한국 출판사에서 사 온 듯한데, 책 플러스 단어정리가 잘 되어 있는 롱테일북스의 뉴베리 컬렉션 시리즈는 내가 애정하는 시리즈다. 영어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오는 책들 중 상당수가 이 시리즈로 나와 있는데, '원서읽기'의 중간 거점 같은 느낌이어서 '원서 읽기 시작해 보겠겠다' 하는 친구들에게 권하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그러다 지난주에 찾을 책이 있어서 책장 속 책들 위로 덮인 달력 종이들을 치우고 책을 찾기 시작했는데, 앗! 있었다. 있었던 것이다. 『The Miraculous Journey of Edward Tulane』이 집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책은 이 표지였고.







혼잣말로 아하~~ 표지가 달라 헷갈렸으며, 안 읽은 건 확실하다는 걸 책의 상태로 확인했으며. 그래도 다정하게 사진 한 장 찰칵!




내란성 불면증은 없었지만, 12월 3일 이후로 밤이 좀 다르게 느껴지기는 했다. 몸이 덜덜 떨리는 그 밤을 잊고 싶었는데도 자주 그 밤의 공포와 분노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노래 한 번 부르고 또 기다리던 그날이 드디어 왔다. 하루가 얼마나 길었던지.

닭강정 주문해놓고 또 기다린다.



이제 29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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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6-03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구조사 보니 마음놓아도 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5-06-03 20:22   좋아요 2 | URL
내란정당에 후보가 K인데 39%가 넘는다니.... 좀 충격이긴 해요.
망고님~~ 이제 우리 맘 놓고 오늘은 맘껏 기뻐해요! 👏🥳🎉

망고 2025-06-03 20:22   좋아요 1 | URL
0.7퍼를 이겨도 이긴거니까 저는 나름 만족하고 감격스러워요😭

단발머리 2025-06-03 20:40   좋아요 2 | URL
네네 맞아요. 진짜 그랬네요. 0.7퍼에 승패가 갈렸죠 ㅠㅠㅠㅠ
출구조사 보다 2%만 더 나와라, 싶은데 욕심 부리면 안 되겠지요. 저도 만족하고요. 감격의 도가니에 퐁당! 🎊

독서괭 2025-06-03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머 표지가 달라서 기억 못 하셨던 거군요! 저 표시도 예쁘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집으로 걸어가는 표지가 이야기에 더 맞는 것 같고 저도 그 표지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읽어보시죠. 쑝쑝!!

단발머리 2025-06-05 15:59   좋아요 1 | URL
네, 집으로 가는 표지가 맞는거 같아요. 제 책의 표지가 더 어둡긴 하지만요.
읽으려고 합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구요. 아, 근데 책 어디갔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25-06-04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차에서 원서로 소설을 읽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물 건너 갔다는...
한때 열심히 영어 공부했었는데... 살면서 포기가 많아져요. 하하~~

단발머리 2025-06-05 16:00   좋아요 0 | URL
물 건너 떠나간 소망을 찾습니다.
사실 저도 포기 한 번, 희망 한 번이 체크 무늬처럼 번갈아 나타납니다. 하하~~

다락방 2025-06-04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괭 님 따라서 읽으려고 사놓기만 한 바로 그 책입니다. 이상하게 나 이거 읽지 않았나? 갸웃하면서 샀는데 사고 보니 안읽은 것 같은.. 아무튼 지금도 안읽고 있긴합니다. 읽을겁니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을 맞이하게 되어서 정말 좋아요. 윤이 용산에 남겨둔 비품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일을 한건지, 일을 하긴 한건지.. -.-

단발머리 2025-06-05 16:02   좋아요 0 | URL
저는 10년도 넘은 거 같아요. 애들 읽히려고 산 책이거든요. 아니면 2,000원 적립금 받으려고 원서 넣다가 샀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린터가 안 되고(이해 안 됨), 종이, 볼펜도 없는데(이게 가능?) 인터넷도 안 되었다고 그러대요.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나쁜 일 하다가 런~~ 이런 분위기 아닌가 싶습니다.

하이드 2025-06-05 0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저는 이 책을 달리기하며 오디오로 들었는데, 점진적으로 가슴이 찢어지고, 마지막에는 달리다가 에드워드를 외치며 오열했습니다.

단발머리 2025-06-05 16:03   좋아요 0 | URL
점진적으로 가슴이 찢어지고, 에서 약간 걱정스러웠는데, 달리다가 에드워드 외치며 오열~~ 에서 읽기로 결정했어요.
하이드님, 저 이 책 읽으려고요! 다 읽고 리뷰로 돌아올게요^^
 
재생산 유토피아 - 인공자궁과 출생의 미래에 대한 사회적·정치적·윤리적·법적 질문
클레어 혼 지음, 안은미 옮김, 김선혜 감수 / 생각이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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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페이퍼를 쓰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주제는 '재생산권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 전제는 '재생산권을 통제한다' 혹은 '재생산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출산율, 이제는 출생률로 부르고 있는, 재생산 비율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획기적인 대안이 도출되지 않고 있음을 고려하면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 문제를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는 하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길어야 100년 사는 우리가 고민하는 지구의 미래에 대해 나는 좀 회의적이다.

문제는 권력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더 좋거나 더 나쁜 재생산 후보로 분류하고 서열화할 수 있으며, 이를 근거로 재생산을 통제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부분적으로는 좌파, 진보적 사상가, 선의를 지녔다고 인정되는 개인, 국가 또는 기관이 이행하기만 한다면, 그런 관행은 허용될 수 있고 심지어 유익할 수 있다는 위험한 신념 때문에 우생학이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이런 발상은 어떻게 아직도 할데인이 상상한 인공 자궁에 대한 잔재가 실현 가능한지, 우리가 얼마나 더 나아가야 체외발생이 화를 재촉하는 데 쓰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시사한다. (109쪽)

폭력으로부터 임신한 사람을 보호해 줄 자원을 제공하는 것보다, 그저 이들의 몸에서 태아를 적출하여 '더 안전한' 장소에서 자라는 편이 더 낫다는 발상은 지극히 충격적이다. 이런 주장은 태어난 어린이와 동등한 권리를 태아에게 부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임신한 사람이 임신에 최적화되어야 할 '환경'이자 인큐베이터에 불과하다고 암시하면서 이들의 권리를 침해한다. 그리고 이런 각각의 주장들은 인공 자궁을 우생학의 실현 도구로 활용하려는 과거의 잔재를 이어간다. (115쪽)

배아에 대한 실험적, 물리적 통제가 14일이었지만, 이제 그 기한은 이런저런 이유로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 초극소 미세아에 대한 돌봄 혹은 관리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경우, 두 개의 기술은 반드시 결합할 것이다. 의료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인공 자궁에 들어가는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테고, 그 이후에는 '편리함'을 이유로 인공 자궁을 이용해 아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런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에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기술의 적용에는 후진이 없다고 생각한다.

뒤쪽을 읽어갈 때는 '조산아'의 인종, 계급, 사는 지역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보건 의료 자원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에는 임신한 사람, 엄마, 영아들의 건강 불평등이 인종차별로 인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 있다. 미국의 경우 임신한 흑인 여성들의 사망률은 임신한 백인 여성들의 3~4배에 이른다. 또 임신 및 출산과 관련하여 '생명이 위태로워'지거나 신체적 손상이나 합병증으로 후유증을 겪을 확률도 실질적으로 더 높다. 원주민 여성들이 임신이나 출산과 관련된 원인으로 사망할 위험은 도시에 사는 백인 여성들보다 4.5배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 사는 흑인, 하와이 원주민, 미국 본토 원주민, 알래스카 원주민 아기들은 미숙아로 태어날 위험이 더 크고, 생후 일 년 이내에 사망할 확률도 더 높다. (144쪽)

적은 비용으로 치료가 가능한데도 건강 불평등 때문에 흑인, 원주민의 아기들이 목숨을 잃는 반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얻어진 최신 과학 기술 덕분에 생명을 '연장'하게 된 백인 아기들이 존재한다. 이는 명백히 자원의 배분과 연관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당연히 서열화일 것이다. 누가 누구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 정치를 넘어 문화의 영역에서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용인될 때, 사람들의 잘못된 신념은 구체적인 통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강제적' 평등이 강조되었을 때,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막을 수 없게 된다. 로이스 로이는 소설 『기억 전달자』에서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차이를 'sameness'로 치환하려 했을 때, 그러한 강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지 보여준다. 요는 '차이'를, '다름'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상을 우열로서가 아니라 차이로서 인식하는 것. 인류 문명이 다하는 날까지 어쩌면 그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부분에 재생산권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두 아이를 낳아본 입장에서 낳는 것보다 키우는 일이 몇 배 더 힘들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뱃속에 아이를 열 달 넣고 다니는 게 힘들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한 인간을 1인분으로 키워내고, 그 모든 과정에서 가능한(혹은 최대한)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나 자신을 반추해 나 자신이 먼저 성숙한 인간, 좋은 부모에 가까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부터라고 다락방님이 이야기해 줘서야 알았다. 같이 읽기를 시작했던 그 순간의 대화들도 기억이 또렷한데 7년이나 지났다고 하니,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책 선정에서부터 리뷰와 페이퍼 쓰기, 완독 독려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을 이끌어주신 다락방님께 특히 감사드린다. 함께 읽고 함께 쓰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었던 모든 이웃님들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도 배웠다.

완독의 기쁨을 5월 31일, 오늘 이날에 즐겁게 담아둔다.

기술로 만든 장치 안에서 자라는 아기의 경험은 인간의 자궁안에서 겪는 경험과는 어떻게 다를까? 또 우리가 결국 이런 계획을 추진해야 할 이유에 설득되어 동의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미래의 일을 넘겨짚는 대신, 1923년과 케임브리지의 북적북적한 학술모임에서 ‘체외발생‘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난 순간으로 돌아가 과거를 되짚어보면서 가능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자. - P85

달리 말하면 인공자궁은 ‘우월한 자‘만이 생존을 보장해준다는 이야기이다. 《오늘과 내일》 시리즈의 다른 저자들도 우생학이 완전히 실현된 미래가 더 나은 미래라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 P102

헉슬리가 전체주의와 우생학이 지배하는 체제를 상상한 시기는 나치의 그야말로 극단적인 우생학 정책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다. 하지만 당시 헉슬리는 영국, 유럽, 북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시행되고 있는 정책과 법률, 관행에서 정보를 얻었다. 이 책이출판된 지 3년이 지난 1935년에는 뉘른베르크 인종법Nuremberg RaceLaws으로 홀로코스트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의 불임화와 분리정책을 정당화할의도로 법규를 통과시켰듯이, 뉘른베르크 법은 유대인, 로마인, LGBTQ, 흑인, 장애인, 혼혈인을 인간 이하로 분류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이 법은 이들 중 누구도 ‘아리아‘ 독일인과 결혼하거나 성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사람들이 결혼 전에 건강적합인증서를 갖추도록 했다. 이러한 각각의 조치들은 미국에서 통과된 법규와 영국 우생학자들의 권고 및 저서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받았다. - P110

국가나 기관이 몸 안에 아기를 지니면 안 된다고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서 결정한다면, 이것은 우생학이다. 임신한 사람이 알코올이나 마약을 사용했든, 암 치료를 받았든, 학대에 희생되었든, 이런 행동 때문에 임신한 사람의 몸에서 아기를 적출되는 편이 아기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결할 권한이 판사에게 주어진다면, 이것도 우생학적이고 반페미니즘적 관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이 같은 판결을 마주한 사람이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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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6-02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5월 도서 완독을 축하드리고요 읽고 글까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같이 읽어주셔서 더 감사드리고요. 단발머리 님 덕에 이 같이읽기가 오래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같이읽기를 하게 된다면 꼭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님이 게셔야 힘이 납니다.
감사했어요!!

단발머리 2025-06-03 11:20   좋아요 0 | URL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좋은 책과 알라딘 이웃님들, 그리고 다락방님이 계셔서에요.
안식년 야무지게 잘 보내신 후 또 좋은 계획 있으면 공지해 주세요^^
우리도 더워요, 한국도요 ㅋㅋㅋㅋㅋ치앙마이도 덥겠죠? 땀 많이 내고 오세요!
 
레이먼드 윌리엄스, 마르크스주의와 문학 컴북스 이론총서
박만준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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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윌리엄스,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을 읽었다.

'문화'에 대한 여러 정의 중, 근대적 사고와 실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에서 시작해, 언어, 문학, 이데올로기, 헤게모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어디까지나 저자 박만준씨가 이해한 '윌리엄스 론'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읽는다.

노동자계급 출신의 윌리엄스는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수련의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교수의 자리에 올라서도 한결같이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았다. 당시 영국은 물질문명의 발달과 소비주의가 확산되는 분위기였는데, 윌리엄스는 자신의 지식과 그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 사회 현실에 대한 '보고'가 될 수 있도록 좌파적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윌리엄스는 의미를 생산하거나 의미 생산의 근거가 되는 것을 그 주된 기능으로 하는 텍스트나 문화적 행위를 문화라고 정의했는데, 이는 구조주의자들과 후기구조자들이 말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실천 행위(sygnifying practive)"와 동일하다(7쪽)

이를 문학이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대상에 적용할 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발간한 『문학비평용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윌리엄스의 문화유물론적 관점에서 문학은 해석되고 감상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여러 관계와 조건들을, 가치와 의미들을 구성하고 만들어 주는 하나의 행위로 존재하게 된다."

고정되고 확정된 형태로서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우리 삶의 관계와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행위로서의 문학. 문학 작품이 있고, 그 작품을 읽는, 감상하는, 작품 밖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작품을 읽을 때, 읽어낼 때, 그 작품을 읽는 과정, 그 작품을 읽어내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가치와 의미들을 구성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읽기가 연대라고 믿어요."라는 정희진쌤의 말씀이 이런 의미라고 나는 이해한다.

윌리엄스의 주요한 주장 중 하나인 헤게모니에 대한 이론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정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헤게모니는 단순히 위로부터 강요되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결과고 저항과 합병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다. 한 마디로 헤게모니는 '사회의 전 과정'으로서의 문화며,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를 통해 그들의 삶 전체를 정의하고 규정한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의미와 가치체계는 그 어떤 것이든 헤게모니를 통해 특정 계급의 이해를 표현하거나 투영하게 마련이다. (54쪽)

푸코의 권력에 대한 설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단순히 힘으로 강요되고, 위에서 아래로 강제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타협과 저항, 합병, 그리고 일련의 협의의 과정을 통해 헤게모니가 작동한다는 주장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무엇일까? 실제 그 계급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지배를 정상적 현실 혹은 상식으로 받아들이도록(52쪽) 하는데, 그것이 바로 헤게모니에 의한 지배를 가리킨다.

사실과 픽션,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이원화는 부르주아적 문학 이론이 글쓰기의 형식을 통제하고 특수화해 왔다는 증거이자 이론적·역사적 단서인 것이다.(80쪽)

사실과 픽션, 객관적인 것의 주관적인 것의 이원화, 이러한 부르주아적 글쓰기 행태에 대항하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은 페미니즘 글쓰기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마리 루티의 책에서 정확한 문장과 표현을 찾아내려 기억을 더듬어 루티의 책 두 권을 뒤져 보았으나,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읽고 있는 책 『재생산 유토피아』는 이원화 글쓰기의 반대 예가 될 수 있겠다. 체외수정에서부터 시작해 '인공 자궁'의 완벽한 실현이 다가오고 있는 즈음에, 지금까지 '부분 인공 자궁'의 역사를 살펴보고, 기술 발전과 나란히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쓴 책인데, 임신하고 있는 저자의 상태와 맞물리면서 '태아와 산모의 상호작용', 더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론과 실제의 이상적 결합, 객관성과 주관성의 치열한 경합을 다룬 글쓰기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에 없는 책이라 구입해서 읽었다. 아주 작고 얇은 책이라 몇 시간 만에 읽었는데, 내용 자체가 흥미로워 재미있게 읽었다. 스물셋에 읽었던 윌리엄스와 그의 이론, 특히 토대와 상부구조와 관련해 마르크스를 인용한 부분이 아직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나는 아직 어리고, 아직 철들지 않았으며, 생각보다 많이 성장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나를 빼고, 이 책만 두고 이야기할 때, 좋은 책이었고, 좋은 읽기의 시간이었음은 확실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언어는 물질적이며, 사회적 관계로서 표현되는 물질적 생산의 인간적 양식은 처음부터 언어라는 실천적 의식을 필연적 요소로 내포하고 있다. 세계와 세계를 이야기하는 언어를 분리하거나 실재와 의식을 분리해 버리면 언어의 물질성은 단지 물리적인 것으로 파악될 뿐 결코 물질적인 행위로 파악될 수 없다. - P16

윌리엄스에 의하면, 공통 문화는 아무도 상속할 수 없으며 인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야만 한다. 공통 문화의 토대는 평등한 사회이며, 윌리엄스가 성취하려 한 유일한 평등은 존재의 평등이다. - P24

한마디로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학과 전체적인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를 화해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학 혹은 창조적 문학 생산과 현실 사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불가피하다.
"우리의 사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 P25

각각의 생산양식은 생필품을 획득하는 방식이 다르고, 노동자와 생산양식을 통제하는 자들 간의 관계가 다르며, 문화제도를 포함한 특수한 제도가 다르다. 한마디로 물질적인 생산양식이 전반적으로 삶의 과정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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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27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대, 상부구조, 헤게모니 너무 오랫만에 읽는 단어들. 그냥 오래전에 눈이 닳도록 봐서인지 왠지 정겹고 고향에 온 듯한 그런 리뷰입니다. ^^아직 어리고 철들지 않은 인간 여기도 한명 있어요. ^^

단발머리 2025-05-27 20:49   좋아요 1 | URL
옛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리뷰라니.... 바람돌이님, 격정의 20대를 보내셨던 것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윌리엄스 배웠던 그 학기의 그 책이, 정확히는 교재죠. 아직도 있습니다. 책 많이 버렸는데 못 버리겠더라구요. 한 페이지 옮겨 적고 싶었는데 귀찮니즘 발동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리고 철들지 않은 우리 모든 어린이들~~ 오늘밤도 평안하시길!!

수이 2025-05-27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월의 리뷰로 선정하겠습니다. 제일 공감 가는 부분은 역시 마지막 태그 두개 :)

단발머리 2025-05-27 20:49   좋아요 0 | URL
애정어린 선정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직 철들지 않은 저를 부디 어여삐 여기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님, 굿나잇!
 














나도 남편도 재수를 안 했다. 첫째는 고4 생활 후에 대학에 들어갔고, 둘째도 재수(생활) 중이다. 재수를 안 했으면 했는데, 하게 됐고, 하고 있다.

나로 말하자면, 성적에 미련을 가질 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하고 싶다고 해서 재수할 형편도 아니었다. 아이들 상황은 좀 다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지 않았던가. 넉넉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더하고 싶다는데 할 수 없다 하는 건 또 아닌 것 같고. 내내 공부했는데 1년 더 공부하는 게 안쓰럽기는 하다. 그 고단함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나는 고 4이었던 적이 없는데. 그래도 밤낮으로 목청껏 부르는 노랫소리가 거실에서도 잘 들리는 걸 보면 아주 못할 정도는 아닌가 싶기는 하다.











그 재수생이 『자유론』을 읽겠다 했다. 쉬는 시간에 한 번 읽어보겠다 하니, 자유론 부자인 남편이 책 세 권을 꺼내주었고, 둘째는 책세상 출판사의 책을 집었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새로 나왔다. 한 챕터가 더해졌는데, 그 챕터가 <자유론>에 대한 글이다. 2009년에 나왔을 때 그러니까, 흰 바탕에 초록색 글씨의 『청춘의 독서』를 읽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던가, 집에 책이 없다. 앗싸!하면서 개정판을 구입했다. 원래, 유시민 이야기 쓸 때는 유시민쌤과의 컷을 꼭 첨부하는데, 나의 역사 아시는 알라딘 이웃님들 모두 다 보셨을 사진이라 이번에는 간단히 패스한다.




아침에는 요플레를 먹었다. 좋아하는 친구의 식습관까지 따라 하고 있는데, 이참에 건강식에 익숙해지면 참 좋을 것을. 실상은 유통기한 지났다. 얼른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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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5-23 11: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엄청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미 읽은 책이라 개정판은 관심 안뒀거든요. 그런데 한꼭지 추가.. 라고요? 허허 이것참.....

단발머리 2025-05-23 18:42   좋아요 0 | URL
허허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꼭지 추가라 새로 구입하기 좀 그렇기는 해요. 저는 집에 없어서 사는 겁니다. (단호)

독서괭 2025-05-23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유론 부자인 남편ㅋㅋㅋㅋㅋ 전 <자기만의 방> 부자입니다 ㅋㅋ 아이가 읽고 싶다 하면 이중에 맘에 드는 걸로 골라! 하면서 세권을 척. 멋진데요 ㅋㅋ
저도 재수를 안 했는데, 남편은 해서, 재수 시절 얘기 나오면 표정이.. 힘들긴 힘든가 봅니다.. ㅠㅠ 단발님 둘째도 잘 버티기를 빌어요!

단발머리 2025-05-23 18:43   좋아요 1 | URL
<자기만의 방> 부자님~~~ 얼렁얼렁 아이가 자라서 ˝엄마, 혹시 ‘자기만의 방‘ 가지고 있어요?˝ 물어볼 날이 오기를....
천천히 오기를. 아이가 크면 우리는 늙는다는 비밀 아닌 비밀....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잘 버텨내고 계속 노래 부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책읽는나무 2025-05-24 0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서 거들떠 보지 않은 청춘의 독서가 한 챕터 추가된 책이었다니!^^
단발 님댁네 아이들은 책을 참 좋아하는 성인으로 잘 컸네요. 남편분도 자유론 부자라고 하셔서 부럽습니다 ㅋㅋ
요즘 아이들에게 재수는 공부 좋아하는 아이들이 그나마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재수도 일단 경험 해봐야 본인이 보람을 느끼든, 시간 낭비를 했다는 걸 느끼든 본인의 성찰하기 나름에 따라 행동이 또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울 큰 아들은 보람보다는 시간 허비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보기엔 남는 게 있어 보입니다. 시간을 허비한 만큼 앞으로의 계획을 또 세우고 있긴 하더군요. 그래서 이것도 재수를 해봤기에 가능하구나! 이젠 시간 낭비 그만하려니? 기대 중입니다.
우리 집 둘째들은 한 녀석은 독서실 다니면서 재수 중인데…노래를 부르진 않는데 틈틈히 애니를 보면서 시간 관리?를 하고 있어요. 저게 진정 재수생의 생활인 건가? 아리쏭하지만 본인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하니 뭐! 밥 차려주는 저만 반찬 스트레스 받고 있는 중입니다.
막내 딸은 공부를 안 좋아해서 재수는 손사래를 치더라구요.ㅋㅋ
그래서 재수도 본인의 공부하겠다는 의지력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재수하는 아이들은 일단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마음입니다.
노래 부르는 막내 아드님 넘 귀엽네요.
울집은 재수 안 하는 딸이 노래를 늘상 부르는데 넘 시끄러워서 제가 노래 못부르게 하거든요.ㅋㅋㅋ

2025-05-25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5-05-27 08:59   좋아요 1 | URL
저도 재수라는 경험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시간의 한 부분이 될거라 생각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종일 책상에 붙어 앉아 공부하는게 쉽지 않잖아요. 책 펴놓고 툭하면 식탁에 고개 박고 있는 저에게는 특히 그것은 엄청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공부하는 둘째가 집에서 밥을 먹는가 봐요. 에구, 책나무님도 같이 재수하시는 거네요. 저는 점심, 저녁은 학원에서 먹어서 아침 한 끼만 차려주면 되는데, 그것도 맨날 메뉴 돌려막기를 하고 있거든요.

엄청 시끄럽기는 한데, 그래도 밤 아니면 노래하는 거 저는 그냥 둡니다. 저도 노래를 많이 부르는 사람이기도 하고 ㅋㅋㅋㅋ 그거라도 맘 편히 해라~~ 그런 맘이거든요. 재수하는 귀여운 아가들, 화이팅입니다!!